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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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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코네성은 시가현 히코네시에 있는 렌카쿠식 평산성으로, 1603년 이이 나오카쓰가 축성을 시작하여 1622년에 완공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이 나오마사의 아들인 나오카쓰가 아버지의 명을 이어 축성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보존되어 현재 국보로 지정된 천수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히코네성은 1952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되었다. 현재는 히코네성 박물관, 겐큐엔 등과 함께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시대극 촬영 장소로도 자주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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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히코네 성 천수
히코네 성의 천수 (2016년 11월 촬영)
다른 이름금귀성 (金亀城, Kinkijō)
유형연곽식 평산성 (連郭式平山城, rengōkushiki hirayamajiro)
위치일본 시가 현 히코네 시
문화재 지정국보
특별 사적
역사
건축1603년 ~ 1622년
축성자이이 나오카쓰
주요 건축 시기1622년 (겐나 8년)
과거 소유이이 씨 (1622년–1874년)
현재 소유일본 (1874년–현재)
용도 변경1876년?
보존 상태대체로 온전함. 내전은 1987년에 재건됨.
해체없음
주요 전투해당 없음
구조
천수 구조복합식 망루형 3중 3층 지하 1층 (1604년 축조)
주요 자재나무, 돌, 회반죽, 기와
남아있는 것현존 천수, 망루, 문, 담, 마구간, 석벽, 토루, 해자
재건된 것오모테고텐 오모테무키 (表御殿表向)
문화재 정보
국보 지정 연도1952년
소유자히코네시
시대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위치 정보

2. 역사

겐큐엔에서 바라본 히코네 성


히코네성은 1873년 폐성령에도 불구하고 오쿠마 시게노부의 건의로 1878년 파괴를 면하고 보존되었다.[18] 천수를 포함한 여러 망루와 문 등이 현존하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드문 마굿간도 중요문화재에 포함된다.[15] 1931년 천수가 국보 보존법에 따라 국보(舊 국보)로, 1952년 문화재 보호법 개정에 따라 다시 국보(新 국보)로 지정되었다.

히메지성과 함께 옛 건물 그대로 보존되어 1951년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히메지 성보다 5년 빠른 것이다. 1987년에는 어전이 복원되어 히코네 성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번정시대 생활용품과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깥 해자에는 미토시에서 선물 받은 흑고니를 기르고 있어, 관광객들이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시노이치분(武士の一分)》,《오오쿠(大奥)》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져 있으며, 1992년 일본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다.

히코네는 호수와 산 사이에 위치하며, 나카센도와 홋코쿠카이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고대부터 중요한 요충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이시다 미쓰나리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이이 나오마사를 배치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사와야마 성에 니와 나가히데를, 나가하마 성을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주었다.

이 지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전투가 발생했다.



1602년 이이 나오마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이 나오카쓰에 의해 20년의 건설 기간을 거쳐 1622년 히코네 성이 완공되었다. 히코네 성은 히코네 번의 행정 중심지였으며, 도쿠가와 막부 내에서 많은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바쿠마츠 시대 타이로 이 나오스케는 일본의 쇄국 정책을 끝낸 결정으로 1860년 암살되었다. 히코네의 마지막 다이묘 이 나오노리는 보신 전쟁에서 황실을 지지했으며, 메이지 정부는 그를 히코네의 황실 지사로 확정했다.

메이지 천황의 요청으로 히코네 성은 보존되었고,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성 중 하나이다.

1934년 성 부지에 1,000 그루 이상의 요시노 벚나무가 심어졌다. 1944년 이이 가문에 의해 히코네시에 기증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히코네시는 공습으로 파괴될 예정이었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폭격은 실행되지 않았다.

히코네 성의 본관은 195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다른 구조물들은 중요 문화재 지위를 받았다.

주요 수리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천수''에, 1960년부터 1968년까지 ''망루''에 걸쳐 이루어졌다. 1987년 ''다이묘''의 궁전은 "히코네 성 박물관"으로 복원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추가 수리가 진행되었다. 2006년 일본 100대 명성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오쿠마 시게노부


히코네 성은 JR 서일본 비와코 선 히코네 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히코네성은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지만, 등록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20년 이상 추천이 보류되고 있다.

2. 1. 축성 배경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인 이이 나오마사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오미 국 북동부를 18만 석에 하사받았다. 그는 서군 지휘관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던 사와야마성에 입성했다. 그러나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다는 점과 성의 방어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호수 연안에 가까운 이소야마(현 마이바라시)로 거성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때 입은 부상으로 1602년 사망했다. 이이 나오카쓰가 가독을 이었으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정무를 담당할 수 없었다. 이에 나오마사 시절 가신이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1603년 비와호에 있는 히코네 산(긴카메 산)에 히코네 성을 축성하게 되었다.

축성 공사는 데쓰다이부신[68]으로 진행되어 주변 7개국 12 다이묘(15 다이묘라는 설도 있음)도 건설에 동원되었다. 나가하마성, 사와야마성, 오쓰 성 등 주변 성의 골조를 사용해 지었다. 특히 4층 오쓰 성 천수를 3층으로 축소해 이축했다고 전해진다. 천수가 약간 통통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시대극 배경으로 자주 이용되는 덴빈 망루(天秤櫓)는 나가하마 성에서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1606년 두 번째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1607년 천수 완성과 동시에 나오카쓰가 입성했다. 1616년 히코네번 자체 공사를 시작, 이 시기에 어전이 지어졌으며, 1622년 모든 공사가 끝나 히코네 성이 완성되었다. 1633년 이이씨는 후다이 다이묘 중 최고인 35만 석에 입봉된다.

히코네성은 원래 호숫가에 직접 위치해 있었고, 북쪽과 동쪽은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히코네 지역은 오미국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헤이안쿄와 동부 지방을 연결하는 도산도(후에 나카센도) 고속도로의 자연적인 요충지였다. 전략적으로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에서 수도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었다.

2. 2. 축성 과정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인 이이 나오마사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18만 석을 받고 오미국 북동부에 봉해졌다. 이후 서군 지휘관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던 사와야마성에 입성했다. 사와야마성은 "미쓰나리에게 과분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시마 사콘과 사와야마의 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지만, 나오마사는 중세적인 낡은 성곽 구조와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다는 점을 싫어했다고 한다.[16] 이 때문에 비와호 해안에 가까운 이소야마(현재의 마이바라시 이소)로 거성을 옮길 계획을 세웠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의 부상이 낫지 않아 1602년에 사망했다.

가문을 이은 이이 나오쓰구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나오마사의 유신(遺臣)인 가로 기마타 모리카쓰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상의하여 나오마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1603년 비와호에 면한 히코네산에 히코네성의 축성을 시작했다. 축성에는 공의(公儀) 어봉행 3명이 배치되었으며, 오와리번이나 에치젠번 등 7개국 12 다이묘(15 다이묘라고도 함)가 원조를 명령받는 천하 부신이었다. 1606년 2기까지의 공사가 완료되었고, 같은 해 천수 완공과 거의 동시에 나오쓰구가 입성했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도요토미 씨가 멸망한 후, 1616년 히코네번에 의해 제3기 공사가 시작되어 어전이 건조되었다. 1622년 모든 공사가 완료되어 히코네성이 완성되었다. 그 후에도 이이 씨는 가증을 거듭하여, 1633년에는 도쿠가와 막부 아래의 후다이 다이묘 중 최고인 35만 석을 얻게 되었다.

히코네성을 축성하면서 오쓰성, 사와야마성을 비롯한 오미국의 여러 성을 이전하거나 파각(破却)하여 성의 건설물에 이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히코네번에는 히코네성밖에 남지 않았고, 다이로도 배출한 후다이 으뜸인 이이 씨가 여러 다이묘에게 일국일성령을 지키는 본보기를 보인 셈이 되었다. 으뜸 가로인 기마타 가는 1만 석을 영유했지만, 진야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매달 20일은 니시노마루 삼중 망루에서 집무를 했다고 한다. 도쿠가와 통치하의 태평 시대에는, 성곽은 군사 시설로서의 의의를 잃고, 히코네성도 서국 다이묘를 억제하기 위한 에도 막부의 중요한 군사 거점에서, 번정 및 연공미의 보관 장소가 되었으며, 천수와 망루는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다.

1854년(안세이 원년)에 덴빈 망루의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그 당시 돌담의 절반이 다시 쌓였다. 오른쪽은 축성 초기부터의 "고보 쌓기", 왼쪽은 새롭게 쌓은 "오토시 쌓기"의 돌담이다.

막부 말기에 다이로를 맡았던 이이 나오스케도, 35세에 번주가 되기 전까지 이 성하 마을에서 지냈다. 나오스케가 그 당시에 살았던 저택은, "우모레기노야"로 현존하고 있다.[17]

2. 3. 에도 시대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인 이이 나오마사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오미 국 북동부를 18만 석에 하사받았다. 그는 서군 지휘관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성인 사와 산성에 입성했다. 그러나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다는 점과 성의 방어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호수 연안이 가까운 이소야마(현 마이바라시)로 거성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때 입은 부상으로 1602년 사망한다. 이이 나오카쓰가 가독을 승계했지만, 아직 유아였기 때문에 정무를 담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오마사 대의 가신이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1603년 비와호에 떠있는 히코네 산(긴카메 산)에 히코네 성을 축성하게 되었다.

축성 공사는 데쓰다이부신[68]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주변 7개국 12다이묘(15다이묘라는 설도 있다.)도 건설에 동원되었다. 나가하마성, 사와 산성, 오쓰 성 등 주변 성의 골조를 사용해 지었다. 특히 4층 오쓰 성 천수를 3층으로 축소해 이축했다고 전해진다. 천수가 약간 통통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시대극의 배경으로 자주 이용되는 덴빈 망루(天秤櫓)는 나가하마 성에서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이 덴빈 망루는 해자를 가로지르는 가교 위에 지어졌고, 다몬[69]의 좌우에 끝에 2층 2계의 한 쌍은 망루를 지었다. 이름처럼 천칭(天秤)과 같은 톡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1606년 두 번째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1607년 천수 완성과 동시에 나오카쓰는 입성한다. 1616년 히코네번 자체만의 공사를 시작한다. 이 시기에 어전이 지어졌으며, 1622년 모든 공사가 끝나고 마침내 히코네 성이 완성되었다. 그 후, 1633년 이이 씨는 후다이 다이묘 중 최고로 35만 석에 입봉된다. 더불어 필두 가로 기마타 씨에 1만 석의 영지를 주지만, 히코네 성에는 기마타 씨의 집무소를 따로 두지 않았다. 그래서 니시노마루에 있는 산주 망루를 집무실로 활용하였다. 이것은 이미 에도 막부하에 태평성대로 군사시설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단지 성은 번의 상징적 존재로 변해 있었고, 서국[70]에서의 공격에 대비한 히코네 성도 각 번 조직의 관할 창구 역할로 천수를 사용했고, 나머지 건물은 대부분 창고로 이용되었다.

1854년 덴빈 망루를 수리할 때, 석축의 반을 다시 쌓았다. 우측 성벽에는 축성 당시의〈고보즈미(ごぼう積み)〉[71], 좌측에는 새로운 방법인〈오로시즈미(落し積み)〉[72]로 석축을 다시 쌓았다.

막부 말기에 다이로로써 유명한 이이 나오스케는 번주로 되기 전까지 불운한 청년기를 성 주변에서 보냈다. 나오스케가 청년기에 지냈던 저택은「우모레기노야(埋木舎)」로 현존하고 있다. (1985년 즈음부터 6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폐번치현으로 각 번의 성곽은 이전 기능을 잃고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대부분 폐성령에 의해 폐성되었지만, 히코네성은 당초 육군성 관할 시설이 되었기 때문에 유지되었다. 그러나 노후화로 인해 민간에 매각되어 파각될 예정이었으나, 1878년 메이지 천황의 히코네 행행 시에 수행했던 참의 오쿠마 시게노부가 천황에게 건의한 결과, 천수각과 망루의 보존이 결정되었고, 황실 부속지 히코네 어료소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마지막 히코네 번주였던 이이 나오노리에게 하사되어 보존되었다.[18]

  • 1934년: 축성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요충지 역할을 해오던 히코네성에는 벚꽃이 심어져 있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히코네정 시의원 요시다 시게지로가 관광의 상징으로 소메이요시노 묘목 1,000그루를 성 안에 심었다.[19]
  • 1944년: 이이 가문에서 히코네시에 히코네성과 그 일대를 기부했다.
  • 1945년 8월 15일 밤: 연합군이 히코네시를 야간 폭격할 예정이었으나, 같은 날 정오 종전의 조칙으로 일본의 항복이 발표되어 폭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20]
  • 1951년: "히코네성터"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 천수각 등 6동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52년: 전년도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6동 중 천수각(1동)과 츠케야구라 및 다몬야구라(1동)의 2동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히코네성 국보 지정서

  • 1956년: "히코네성터"가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쇼와 대수리
  • 1957년 ~ 1960년: 천수각, 츠케야구라 및 다몬야구라의 수리.
  • 1960년 ~ 1962년: 니시노마루 삼중 야구라와 니노마루 사와구치 다몬 야구라의 해체 수리.
  • 1965년 ~ 1968년: 마구간 등의 해체 수리.
  • 1963년: 마구간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87년: 히코네시 시제 50주년으로 오모테고텐 오모테무키가 외관 복원(철근 콘크리트 구조)되어 "히코네성 박물관"으로 번정 시대의 가구·무구 등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오쿠무키는 발굴 조사를 거쳐 "평면도"와 "일으킴 그림"을 바탕으로 목조 복원되었다.
  • 1993년 7월 1일 ~ 1996년 12월: 헤이세이 대수리가 이루어졌다. 천수, 부요 및 다몬 야구라 지붕 개량, 벽 및 옻칠 재도색, 목재 부식 부분 보수, 당파풍 장식 금속의 금박 재도포, 서쪽 마루 삼중 야구라와 속 야구라 지붕 개량 및 벽 재도색 등의 수리가 진행되었다.
  • 2005년 ~ 2008년: 돌담 구축 조사, 석재 조사, 붕괴 조사, 역사 조사·정리 등이 이루어졌으며, 향후 관리·수리를 위한 석담 대장이 작성되었다.
  • 2006년 4월 6일: 일본 100명성 (50번)에 선정되었다.
  • 2007년: 국보·히코네성 축성 400년제가 열렸다.
  • 2012년 이후: 해자에 자전거 (대부분 도난 자전거)를 투기하는 피해가 잇따라 문제가 되고 있다.
  • 2014년 8월: 태풍 11호의 영향으로 덴빈 야구라의 회반죽이 두 곳에서 떨어져 나갔다.
  • 9월 14일: 축성 이래 처음으로 야간 입성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 11월: 전국 성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 2015년
  • 4월 24일: "비와호와 그 수변 경관 - 기원과 삶의 물 유산"의 구성 문화재로 일본 유산에 인정받았다.
  • 12월: 다이쇼 시대의 항공 사진이 발견되어 당시에는 아직 매립되지 않은 해자의 모습 등이 밝혀졌다.
  • 2017년: "국보·히코네성 축성 410년제"가 열렸다.
  • 같은 해 1월: 외해자 발굴 조사에서 기리도구치 어문의 초석과 석담이 발견되었다.
  • 2020년 2월 27일: 코로나19 감염증의 유행으로 휴성, 6월 15일에 재개.
  • 2023년 11월 11일 ~ : 유네스코 지침 유산과 창의성에 기반하여 천수에 프로젝션 맵핑을 투영하는 유니크 베뉴를 실시 (11월 18, 19, 23, 24, 25일 및 12월 2일)[32]
  • 2024년
  • 2월 13일 ~ 3월 15일: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구마모토성이 피해를 입은 것을 계기로 긴급 점검을 실시한 결과 천수각을 보강할 필요가 확인되어, 일반 참관을 중지하고 내진 공사를 실시. 그 동안 대체 조치로 니노마루 사와구치 다몬 야구라를 특별 공개. 또한, 공사는 같은 해 6월 17일 ~ 7월 19일, 8월 26일 ~ 9월 27일에도 실시[33]
  • 3월 22일 ~ : 전년도의 유니크 베뉴가 호평을 받아 벚꽃 버전의 프로젝션 맵핑을 실시(~3월 31일)[34]
  • 7월 17일: 14일부터 계속 내린 선상 강수대를 동반한 집중 호우의 영향으로, 내호의 돌담 일부가 붕괴된 것이 확인[35]

2. 5. 세계유산 등재 노력

히코네성일본어1992년 일본의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지만, 최근 세계유산 등록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20년 이상 추천이 보류되고 있다.[15]

  • 1992년 10월 1일 - 일본의 세계유산 후보 1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의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다.[36][37]
  • 2000년~2002년 -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주변(완충 지대)의 경관 수정을 요구하자, 시가현과 히코네시는 간사이 전력과 협력하여 내호(內堀)를 따라 늘어선 전신주 약 40개와 연결된 전선을 철거하고 전선 지중화를 실시하였다. 이는 국내 세계유산 등록지·후보지 중 처음 있는 사례로, 유네스코도 높이 평가하였다. 장기적으로는 방재 관점에서도 성 주변 시가지(성하마을) 전체의 지중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38]
  • 2007년 1월 23일 - 문화청이 실시한 세계유산 후보지 공모 선정 결과 발표에 따른 문화심의회의 세계 문화유산 특별 위원회는[39],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히메지성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마쓰모토성 등도 포함하여, "근세 일본의 목조 천수각식 성곽"이라는 틀로 히메지성의 확장 등록을 목표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히메지시는 "확장 등록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고 거부하였다.[40] 이에 따라, 시청 기획 추진부는 "히코네성의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하는 간담회"를 개설하고, 등록을 위한 본격적인 고찰을 시작하였다.[41]
  • 2008년 4월 - 시 교육위원회 문화재부에 "히코네성 세계유산 등록 추진실" 설치, 추천서 초안 작성 등을 시작하였다.[41]
  • 2008년 9월 - 문화심의회가 제시한 "히메지성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근세 성곽군" 안에 관해, "일정한 방향성이 보이면 준비를 진행해야 한다"는 검토 결과를 받아, 마쓰모토성에 이누야마성을 더해, 마쓰모토시·이누야마시와의 공동 추천에 관한 "국보 4성 근세 성곽군 연구회"를 발족하였다.[40]
  • 2009년 - 간담회가 "히코네성 세계유산 추진 위원회"로 개칭되었다.[41]
  • 2011년 9월 -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이코모스)의 국내 위원회가 현지 시찰을 실시, 이축된 성이라는 문화 자재의 문화 순환이 있다는 점[42], 히메지성에는 남아 있지 않은 어전(御殿)이나 마구간 등이 있어 무가(武家) 문화의 총체를 엿볼 수 있으며, 비와호나 그에 연결된 수로 등도 포함한 문화적 경관을 목표로 하는 방법[43]도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44]
  • 2012년 11월 - 이코모스의 연구자를 초빙하여 현지 시찰을 실시, 히메지성에서는 볼 수 없는 복잡한 해자(堀)나 성하마을의 도시 기능이 주목할 만하다는 조언을 받았다.[44][45]
  • 2014년 6월 - 부시장이 파리유네스코 본부 세계유산 센터를 방문하여, 봉건 영주의 정신적·문화적 생활과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46]
  • 2014년 8월 - 현과 시의 "세계유산 관련 연락 조정 회의"와 작업 그룹을 설치하고(시의 "히코네성 세계유산 추진 위원회"는 병합 해산), 새로운 콘셉트를 "근세 다이묘의 성과 어전"으로 하여 어전도 포함하였다.[41][47]
  • 2015년 1월 - 부시장이 세계유산 센터를 재방문하여, 국제 비교로서 유럽 및 인접한 대한민국의 성에서 실시해야 하며, 기존의 역사학·건축학 외에 미술사 시점도 포함해야 하며, 성하에서의 무사뿐만 아니라 사찰과 서민을 포함한 사회적 조화의 문화적 심벌 역할을 추구해야 하며, 도시화되고 있는 시가지와의 경관 격차에 대해 견해를 전개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받았다.[46]
  • 2015년 7월 - 마쓰에성이 국보로 지정된 것을 받아, 국보 4성 연구회에 마쓰에시도 참가하여 히메지성을 포함한 "국보 5성"의 세계유산 등록을 목표로 하였다.[40]
  • 2016년 - 시가 히코네성의 단독 등록을 목표로 한다며 국보 4성 연구회를 탈퇴하였다.[40]
  • 2016~2017년 - 여러 해외 연구자를 초빙하여 협의를 거듭하며, 자연과의 관계나 종교관 등도 고려해야 하며, 옥외 광고물 규제 등 경관 보전의 노력도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을 얻어, "수도(水都) 히코네"의 지침을 제시하였다.[48]
  • 2017년 - 히코네시가 "유식자에 의한 학술 검토 위원회"를 설치하였다.[41]
  • 2018년 - 이코모스의 "성채·군사 유산 국제 학술 위원회(이코포트)"를 초빙하여 국제 회의를 개최, 천수각 외 다이묘 정원이나 성하마을의 무가 저택 등과 일체로 한 "에도 시대의 무사의 통치를 나타내는 복합체"를 콘셉트로 2024년 등록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단, 2015년에 등록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 혁명 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 산업의 구성 자산에 하기성하마을이 포함되어 있어, 그쪽과의 차별화를 도모할 필요성도 지적되었다.[49]
  • 2020년 3월 - 잠정 목록 게재 후 4반세기 이상이 지나, 2022년 등록 심사를 목표로 처음으로 추천서 초안을 문화청에 제출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영향으로 국내 후보지의 선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50]
  • 2020년 4월 - 현이 문화재 보호과에 "히코네성 세계유산 등록 추진실"을 설치하였다.[41]
  • 2020년 5월 - 현과 시에 의한 "히코네성 세계유산 등록 추진 협의회" 설치(현과 시의 "세계유산 관련 연락 조정 회의"와 작업 그룹이 통합 해산, 양 등록 추진실의 협력 체제)되었다.[41]
  • 2021년 3월 - 2023년 등록 심사를 목표로 다시 추천서 초안을 제출했지만, 금을 중심으로 하는 사도 광산의 유산군 (정식 추천을 위해 사도섬의 금산으로 명칭 변경)이 선정되었다.
  • 2021년 6월 14일 - 히코네 시장이 시의회 정례회의 일반 질문 답변에서 히코네성이 잠정 목록에 오른 지 30년 가까이 지났음을 언급하며, 2024년 등록을 놓칠 경우 더 이상의 노력이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고 발언하며 운동 중단을 시사하였다.[51]
  • 2022년 6월 - 2024년 심사 심사를 목표로 추천서 초안을 재차 제출했지만, 8월 3일에 문화청이 히코네성의 2024년 등록 심사 희망을 1년 연기하고 2025년으로 변경한다는 것을 통지하였다. 이것은 2023년에 심사 예정이었던 사도 금산이 서류 미비로 인해 심사가 1년 연기되었고, 2022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제45회 세계 유산 위원회가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개최가 1년 연기되었으며(위원회 개최국이 러시아였다), 사도의 심사가 2024년으로 늦춰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52]
  • 2023년 3월 15~17일 - 히코네성에 대해, 해외와의 비교 연구나 국제적인 평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대한민국핀란드의 연구자를 초빙하여 시찰과 논의를 실시하였다.[53] 이를 바탕으로 "에도 막부 성립 후에 건설되어, 전쟁에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평화의 시대의 상징'"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며, "평화의 요새"를 헌장으로 내걸고 있는 유네스코에 어필하였다.[54]

사전 평가제의 신청을 알리는 시청

  • 2023년 7월 4일 - 문화심의회가 히코네성의 처리에 대해, 그해부터 운용이 시작된 사전 평가 제도(프릴리미너리 어세스먼트)를 이용하는 방침을 제시했다. 이는 추천 물건의 학술적 가치를 심사하는 자문 기관(문화 유산의 경우 이코모스)이 추천 희망 물건을 추천 전에 조사하여 시정 지적 사항 등을 지도함으로써 등록을 쉽게 하는 것이다. 등록 심사에 최소 4년이 소요되며, 최단 2027년이 된다.[55]
  • 2023년 9월 5일 - 사전 평가 제도에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56] 그동안의 논의와 연구를 통해, 히코네성을 "팍스 토쿠가와나(토쿠가와에 의한 평화 / 역사학자 하가 도루가 제창)의 상징"으로 위치 짓고, "다이묘 통치 시스템"이라는 근세 일본의 지방 정치 체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삼았다.[57]
  • 2024년 10월 9일 - 사전 평가 제도의 결과가 공표되었다(유네스코에서 문화청으로 통보된 것은 10월 2일). 그에 따르면, "세계 유산으로서의 평가 기준을 충족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도, 히코네성의 가치를 표현한 "다이묘 통치 시스템"에 대해서는 "히코네성 단독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하며, 지리적으로 떨어진 2개 이상의 관련 물건을 하나의 유산으로 추천하는 시리얼 노미네이션으로의 추천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58] 이 제도에 의한 평가 결과를 반영한 정식 추천은 5년 이내이며, 유효 기간 내에 추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시 사전 평가 심사를 받아야 한다.[59]
  • 2024년 11월 29일 - 히코네시 동(東) 지구 공민관에서 개최된 보고회 "유네스코의 사전 평가 결과와 히코네시의 향후 노력에 대해"에서, 현 문화재 보호과 히코네성 세계 유산 등록 추진실 보좌관인 미오 지로가 최근의 등록 심사 경향을 분석하고, "다이묘 통치 시스템"을 세계 유산의 전제 조건인 부동산유형 재산구축물로 증명하고, 또한 무형의 스토리성을 엮을 필요가 있으므로, 히코네 번과 관련된 인근 사적지(예: 마이바라시의 세이간지 정원이나 하나키 덴에몬에 의해 생약으로 생산된 오미 소고기된장 절임의 사육·제조지 등)를 보완 자료로 안내하고, 그것들을 방문하는 데 관광 공해 대책으로 오미 철도를 활용하는 안 등이 소개되었다.[60]

3. 구조



히코네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인 이이 나오마사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오미국 북동부 18만 석을 하사받아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성인 사와 산성에 입성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쓰나리의 거성이었다는 점과 방어 능력을 이유로 비와호에 떠있는 히코네 산(긴카메 산)에 새로운 성을 축성하게 되었다.

축성 공사는 주변 7개국 12다이묘(15다이묘라는 설도 있다.)가 동원된 데쓰다이부신[68]으로 진행되었다. 나가하마성, 사와 산성, 오쓰 성 등 주변 성의 골조를 사용하여 건설되었으며, 특히 오쓰 성 천수는 3층으로 축소되어 이축되었다고 전해진다. 덴빈 망루는 나가하마성에서 이축한 것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지어졌으며, 양쪽에 2층 2계의 망루를 가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1606년 두 번째 공사가 마무리되고, 1607년 천수 완성과 동시에 이이 나오카쓰가 입성하였다. 1616년부터 히코네번 자체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어전이 지어졌고, 1622년 모든 공사가 완료되어 히코네 성이 완성되었다.

히코네성은 원래 호숫가에 직접 위치해 있었고, 북쪽과 동쪽은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히코네 지역은 오미국 동부에 위치하며, 헤이안쿄와 동부 지방을 연결하는 도산도(후에 나카센도) 고속도로의 요충지였다. 전략적으로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었다.

3. 1. 주요 건축물

천수 동쪽, 어금고, 츠즈키야구라를 바라보다.


성의 형식은 렌카쿠식 평산성이다.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와 북쪽에 야마자키 구루와가 배치되었다. 어전은 니노마루에 위치했다. 혼마루에는 천수, 니시노마루와 야마자키 구루와에는 3중 망루가 세워졌다. 야마자키 구루와 3중 망루는 메이지 시대 초기에 철거되었다. 성의 북쪽에는 겐큐엔과 라쿠라쿠엔이라는 다이묘 정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겐큐 라쿠라쿠엔"으로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겐큐엔, 라쿠라쿠엔은 과거 마쓰바라 내호(전중·전후에 간척)에 면해 있어, 이리에 내호도 조망할 수 있는 절경이었다.

현존하는 예가 적은 축성 기술인 "노보리이시가키"가 양호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석벽은 덴빈 망루의 오른쪽이 고보 쌓기(노즈라 쌓기의 일종), 왼쪽이 내려쌓기로 되어 있다.

히코네 성의 건축물에는, 오미의 명족 교고쿠 다카쓰구가 성주를 맡았던 오쓰성의 천수를 시작으로, 사와야마성에서 사와구치 다몬 야구라(비현존)와 타이코 야구라 문, 오다니성에서 니시노마루 삼중 야구라, 간논지성에서 옮겨왔다는 것 외에도, 어느 곳에서 옮겨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타이코 문 등이 이전되었다는 전승이 많다. 건물이나 석재의 이전·전용은 미신적인 의미 외에도,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나고야성, 오카야마성, 히메지성, 후쿠오카성 등 많은 성에 건물의 이전 전승이 있다.

덴빈 망루는 나가하마성에서 이전했다고 전해지며, 시대극 촬영에도 사용된다.[61] 해자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 돌출된 부분에 해당하는, 긴 다몬의 좌우 끝에 2중 2층의 한 쌍의 모서리 망루(隅櫓)를 배치하여, 저울과 같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3. 2. 방어 시설

히코네성은 콘키산이라고 불리는 100m 언덕을 둘러싼 두 개의 동심원형 수로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 자체는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남동쪽에 "가네노마루" 구역, 북서쪽에 "니시노마루" 구역, 중앙에 "혼마루" 또는 내곽이 있다. 마른 해자는 이 내곽을 보호하고 다리가 놓여져 있다. 해자의 벽은 돌로 보호되었다. 원래 정문은 서쪽을 향한 "오테몬" 문이었지만, 나중에 나카센도와 연결되는 남동쪽을 향한 "사와구치" 문이 주된 문이 되었다.[2]

히코네성은 서국 다이묘의 방어를 위한 성이었기 때문에 방어를 위한 여러 장치가 되어 있다. 사마는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졌고, 계단은 적을 위에서 밀어 떨어뜨릴 수 있도록 급경사(최대 62도)이며, 또한 걷어차 떨어뜨릴 수 있는 구조이다.

덴빈 망루는 나가하마성에서 이전했다고 전해지며, 시대극 촬영에도 사용된다.[61] 덴빈 망루는 호리키리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 돌출된 부분에 해당하는 긴 다몬의 좌우 끝에 2중 2층의 한 쌍의 隅櫓(모서리 망루)를 배치하여, 저울과 같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1854년 덴빈 망루를 수리할 때, 석축의 반을 다시 쌓았다. 우측 성벽에는 축성 당시의 '고보즈미(ごぼう積み)'[71], 좌측에는 새로운 방법인 '오로시즈미(落し積み)'[72]로 석축을 다시 쌓았다.

또한, 현존하는 예가 적은 축성 기술인 "노보리이시가키"가 양호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석벽은 덴빈 망루의 오른쪽이 고보 쌓기(노즈라 쌓기의 일종), 왼쪽이 내려쌓기로 되어 있다.

4. 문화재

; 국보


  • 천수[13]
  • 부요 및 다몬야구라 (1동)[14]


; 중요 문화재

  • 덴빈야구라
  • 다이코몬 및 츠즈키야구라 (1동)
  • 니시노마루 삼중 야구라 및 츠즈키야구라 (1동)
  • 사와구치 다몬야구라
  • 마굿간


천수 동쪽 면


니시노마루 삼중 야구라 (중요 문화재)


덴빈야구라 (중요 문화재)


니노마루 사와구치 다몬야구라 (중요 문화재)


니노마루 사와구치 다몬야구라와 해자


성곽 복원 모형


마굿간 내부

5. 관광

히코네성은 시가현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성 북쪽에는 다이묘 정원인 겐큐엔과 라쿠라쿠엔이 있으며, 국가 지정 명승지로 등록되어 있다.[67]

1987년 히코네시 시제정 50주년을 기념하여 어전을 복원, 히코네성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번정 시대 생활용품과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깥 해자에서는 미토시에서 선물 받은 흑고니를 기르고 있어, 관광객들이 흑고니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히코네성은 《부시노이치분》, 《오오쿠》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져 있으며, 1992년 일본 세계유산 신청 목록에 등재되었다.

성역에는 히코네성 박물관과 개국기념관이 있고, 정원 겐큐엔을 포함한 내호 안쪽 구역은 유료(성인 800JPY)로 입장할 수 있다.[65] 히코네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히코냥을 매일 등장시키고 있다.[66]

일본 100명성 스탬프 랠리 스탬프는 히코네성 개국기념관에 설치되어 있으며, 야카타부네(관광선)를 이용해 내호를 순회할 수 있다. 야카타부네는 야마자키 어문 앞과 겐큐엔 앞 선착장을 오간다.

5. 1. 교통


  • '''철도'''
  • 히코네역(JR 서일본 도카이도 본선(비와코선) · 오미 철도 본선(히코네·다카타이샤선))에서 히코네성 순환 버스를 타고 히코네성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로 바로 (※계절 운행).
  • 히코네역에서 도보 약 15분.
  • '''택시'''
  • 마이바라역(JR 도카이 도카이도 신칸센 · 도카이도 본선, JR 서일본 도카이도 본선(비와코선) · 호쿠리쿠 본선, 오미 철도 본선(히코네·다카타이샤선))에서 약 20분.
  • 히코네역에서 약 5분.
  • '''자동차'''
  • 메이신 고속도로 히코네IC에서 차로 약 5분.
  • 호쿠리쿠 자동차도 마이바라IC에서 차로 약 20분.
  • 국도 8호선: 히코네시·소토마치 교차로에서 국도 306호선과 교차.
  • 국도 306호선: 히코네시·소토마치 교차로가 종점.
  • 국도 307호선: 히코네시·하라마치 교차로가 기점.
  • '''주차장'''
  • 히코네성 주차장 (1일 1000JPY)

6. 대중문화

《부시노이치분(武士の一分일본어)》,《오오쿠(大奥일본어)》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67] 도에이 교토 촬영소나 교토 영화 촬영소와 가깝기 때문에, 히메지 성과 함께 시대극 로케이션 촬영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히메지 성이 에도 성의 대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그보다 소규모인 히코네 성은 이름 없는 작은 성이라는 설정으로 촬영되는 경우가 많다.


  • 영화
  • * 야규 일족의 음모 (1978년) - 에도 성
  • * 아코 성 단절 (1978년) - 천칭 야구라와 복도 다리가 아코 성의 정문, 다이코몬 야구라가 에도 성
  • * 카게무샤 (1980년) - 카스가야마 성
  • * 무사도 블레이드 (1981년) - 야마토노카미의 거성
  • * 부엉이 성 owl's castle (1999년) - 쥬조와 고헤이의 마지막 싸움이 사와구치 타몬 야구라와 해자에서 촬영
  • * 무사의 품격 (2006년)
  • * 오오쿠 (2006년)
  • * 프린세스 토요토미 (2011년) - 오사카 성
  • * 타임 스쿠프 헌터 아즈치 성 마지막 날 (2013년) - 아즈치 성
  • * 가면라이더 × 가면라이더 가이무 & 위자드 천하를 가르는 전국 MOVIE 대합전
  • * 위대한, 슈라라본 (2014년) - 주인공의 거성
  • * 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 편 (2014년) 세타 소지로가 오쿠보 토시미치를 암살
  • 텔레비전 드라마
  • * 그림자의 군단 시리즈 (1980년 ~ 1982년, 1985년) - 에도 성
  • 정보 프로그램
  • * 반도 미츠고로가 간다 일본의 성 미스터리 기행 (2010년 11월 26일 방송분)
  • * 꼭 가고 싶어지는! 닛폰 불멸의 명성 「히코네 성」 (NHK BS 프리미엄, 2021년 7월 2일 방송분)


이이 나오스케가 번주 자리에 오르기까지, 앞선 번주나 그 후보자들 중 많은 이들이 요절했기 때문에 신비로운 이야기의 무대로 자주 다루어진다. 또한 국보 히코네성 축성 400주년 개최를 계기로 소설을 대상으로 2007년 후나바시 세이이치 문학상이 창설되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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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国指定史跡事典) National Historic Site Encyclopedia 学生社 2012
[3] 서적 International Dictionary of Historic Places, Volume 5: Asia and Oceania Fitzroy Dearborn Publishers
[4] 웹사이트 Nagahama Castle http://www.jcastle.i[...]
[5] 웹사이트 彦根城天守、附櫓及び多聞櫓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6] 웹사이트 彦根城馬屋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7] 웹사이트 彦根城天秤櫓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8] 웹사이트 彦根城太鼓門及び続櫓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9] 웹사이트 彦根城二の丸佐和口多聞櫓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0] 웹사이트 彦根城西の丸三重櫓及び続櫓 https://bunka.nii.ac[...]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1-09-15
[11] 웹사이트 Japan Castle Foundation https://web.archive.[...]
[12] 서적 角川日本地名大辞典 25 滋賀県
[13] 문서 [[京極高次]]가建て다대진성천수를이축한것.
[14] 문서 「附櫓及び多聞櫓」를1동에수는다.
[15] 문서 국보지정의현존천수를가진5개소의성곽,[[히메지성]],[[마쓰모토성]],'''히코네성''',[[이누야마성]],[[마쓰에성]]을가리킨다.
[16] 서적 名城を歩く : 彦根城 : 関ケ原合戦が生んだ湖東の水城 PHP研究所 2003-03
[17] 문서 쇼와60년도부터6년간에걸쳐수복을받았다.
[18] 웹사이트 【展示】公文書に見る近代の城郭 https://www.pref.shi[...] 滋賀県 2021-05-28
[19] 간행물 広報ひこね第1262号4ページ 2012-03-01
[20] 문서 전월에는중호와외호의사이에있는마바쵸가공습을받았다([[히코네공습]])가,성은피해를받는일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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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뉴스 彦根城の堀に相次ぎ自転車投棄 計115台、愉快犯か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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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웹사이트 Tentative Lists 》 Hikone-Jo (castle) https://whc.unesco.o[...]
[37] 문서 初回候補には翌年登録された姫路城や法隆寺の他、1994年登録の古都京都の文化財、1995年登録の白川郷・五箇山の合掌造り集落、1996年登録の厳島神社、1998年登録の古都奈良の文化財、1999年登録の日光の社寺、2000年登録の琉球王国のグスク及び関連遺産群、そして2012年に推薦したものの登録が見送られた武家の古都・鎌倉がある
[38] 서적 ユネスコ世界遺産年報2002 日本ユネスコ協会連盟 2002-03-15
[39] 문서 この時の公募では2013年登録の富士山-信仰の対象と芸術の源泉、2014年登録の富岡製糸場と絹産業遺産群、2015年登録の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造船、石炭産業、2017年登録の「神宿る島」宗像・沖ノ島と関連遺産群、2018年登録の長崎と天草地方の潜伏キリシタン関連遺産、2019年登録の百舌鳥・古市古墳群 -古代日本の墳墓群-、2021年登録の北海道・北東北の縄文遺跡群がある他、2024年登録審査予定の佐渡島の金山、2026年登録審査予定の飛鳥・藤原の宮都とその関連資産群があり、彦根城は遅れをとっている
[40] 뉴스 国宝5城で世界文化遺産登録へ 松本、犬山、松江市が「連携」も…「単独」の姫路、彦根市とは温度差 https://www.tokyo-np[...]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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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문서 ユネスコが採択したグローバル・ストラテジー(世界戦略)では運河や水路とそこでの伝統的な水運・舟運の文化的景観の登録を推奨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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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문서 彦根城下町には重要伝統的建造物群保存地区選定の河原町芹町地区があるが、必ずしも江戸時代の街並みというわけではない
[46] 웹사이트 世界遺産登録に向けた取り組み(平成26年度) https://www.city.hik[...]
[47] 문서 城郭御殿は古都京都の文化財の構成資産二条城で既に登録さ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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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웹사이트 彦根城の世界遺産登録、24年度の目標堅持 市長、逃した際「方向性考え直す」 https://www.chunichi[...] 中日新聞 2021-06-15
[52] 웹사이트 世界遺産登録へ1年お預け/滋賀 https://web.archive.[...] 2022-08-03
[53] 뉴스 “彦根城の世界遺産登録に何が必要” 3人の専門家が視察 https://www3.nhk.or.[...] 2023-03-17
[54] 뉴스 戦う城から平和の象徴へ。築城当時のままの姿を現代に残す国宝「彦根城」 https://nihonmono.jp[...] 2023-04-18
[55] 웹사이트 今後の世界文化遺産への推薦に係る文化審議会意見について https://www.bunka.go[...] 文化庁 2023-07-04
[56] 뉴스 彦根城の「事前評価」申請=世界遺産の可能性確認へ―政府 https://sp.m.jiji.co[...] 2023-09-05
[57] PDF 世界史の中の江戸時代 江戸時代、大名と城は如何に独創的であったのか https://www.pref.shi[...] 彦根城世界遺産登録推進協議会 2024-01-28
[58] 뉴스 世界遺産の登録目指す「彦根城」ユネスコ諮問機関 課題も指摘 https://www3.nhk.or.[...] 2024-10-09
[59] 뉴스 滋賀県「彦根城」の世界遺産登録へ、イコモス事前評価の結果公表、「大名統治システム」示す複数物件まとめる提案など https://www.travelvo[...] 2024-10-15
[60] 웹사이트 東地区公民館だより https://www.city.hik[...] 彦根市
[61] 문서 内藤信成時代の長浜城大手門
[62] 문서 ごぼうのように細長い大小の自然石を土塁の中に差し込み、石を積んでいく野面積みの一種である。外観は野面積みの一種だが、細長い石を縦横に組み合わせた組み木のような石積みで、非常に堅固である。四角く切った石を積んだ石垣と違い、見た目は無骨だが崩れにくく、非常に頑丈な石垣である。(「石垣の積み方」も参照。)
[63] 서적 【決定版】図説・天守のすべて : 城の象徴にこめられた技と智恵 学習研究社 2007-04
[64] 웹사이트 彦根城 天守の「隠し部屋」には屋外から見えない小窓が存在 https://www.news-pos[...]
[65] 웹사이트 彦根城観覧について http://www.hikoneshi[...]
[66] 웹사이트 彦根城域での登場 http://hikone-hikony[...]
[67] 문서 エド 막부의 직책의 하나로 쇼군의 보좌역이며 필두 가신이다.
[68] 문서 막부에서 여러 다이묘에 명령을 내려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는 일
[69] 문서 성벽위에 담과 같이 만들어진 긴 건물
[70] 문서 규슈, 주고쿠 지방, 시코쿠 지방
[71] 문서 석축 쌓는 방식 1
[72] 문서 석축 쌓는 방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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