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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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라선은 평양 간리역과 라선 라진역을 연결하는 총 연장 약 780~790km의 철도 노선이다. 표준궤 1435mm를 사용하며, 135개의 역이 있다. 평양에서 시작하여 평부선, 평남선, 평덕선, 평의선과 연결되며, 평양 지하철 천리마선 영광역, 노면전차 1호선과 환승 가능하다.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함경선의 일부로 개통되었으며, 광복 이후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청라선 공사가 재개되어 1965년 완공되었다. 이후 평원선과 함경선 구간이 청라선과 통합되어 평라선으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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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라선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
노선 정보 | |
이름 | 평라선 |
원어 이름 | 평라선(平羅線) |
종류 | 중량 철도 여객/화물 도시 간 철도 지역 철도 |
위치 | 평양 평안남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라선 |
기점 | 평양역 |
종점 | 라진역 |
역 수 | 135개 |
개통 | 1916년 - 1965년 (단계별 개통) |
소유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
차량기지 | 평양 서평양 함흥 |
노선 길이 | 819 km |
선로 수 | 단선 |
전철화 | 직류 3000 V 가공 전차선 |
![]() | |
한국어 이름 | |
한글 | 평라선 |
한자 | 平羅線 |
문화어 | 평라선 |
로마자 표기 | Pyeongna-seon |
일본어 이름 | |
일본어 | 平羅線 |
히라가나 | へいらせん |
가타카나 | ピョンナソン |
로마자 표기 | Heisen |
2. 노선 정보
구분 | 내용 |
---|---|
구간 | 간리역 ~ 라진역 |
거리 | 약 780km ~ 790km |
역 수 | 135개 (양단역 포함) |
궤도 간격 | 1435mm (표준궤) |
전철화 구간 | 전 구간 (직류 3000V) |
복선 구간 | 없음 |
평라선은 간리역에서 출발하여 고원, 함흥, 김책, 청진을 거쳐 라진역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다. 이 노선은 평양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안으로 연결되며,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주요 해안 도시들을 지나 러시아 국경에 이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의 평라선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여러 노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 동북리 ~ 고원 구간: 평원선의 일부
- 고원 ~ 청진 구간: 함경선(함경본선)의 일부
- 청진 ~ 청암 구간: 청라선
간리에서 동북리까지의 구간은 해방 이후 북한에 의해 새로 건설되었다. 청진에서 라진까지의 구간은 '''청라선'''이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청진(현재의 청진청년역)에서 청암(현재의 금바위역)까지의 11km 구간만이 1945년 2월 1일에 개통된 채 해방을 맞았다.[6] 이후 1960년대에 북한은 평라선 전 구간을 전철화하고, 미개통 상태였던 금바위에서 라진까지의 구간을 완공하였다.
나선특별시에서는 함북선(청진~회령~남양~물골~라진)과 연결된다. 함북선과 두만강선(물골~두만강)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난과 자원 부족으로 인해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다른 철도 노선들과 마찬가지로 수송 능력과 운행 속도가 크게 저하되었다. 현재 평양에서 청진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시설이 비교적 양호했던 일제강점기보다 오히려 더 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로 상태가 악화되자 최근에는 러시아와 협력하여 개량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주 1회 국제 열차가 운행되었으나, 2007년경부터는 북한의 수송 사정을 고려하여 국경 역인 하산에서 북한 열차와 러시아 열차가 서로 접속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어 운행되고 있다.
3. 역사
현재의 평라선은 여러 노선이 통합되어 형성되었다. 평양시에서 고원까지 구간은 원래 평원선의 일부였고, 고원 이북 구간은 함경선의 일부였다. 본선의 일부 구간인 함경선 문천역과 영흥역 사이 12.4km 구간이 1916년 7월 21일 조선총독부 철도에 의해 처음 개통된 것이 시초이다.[37]
일제강점기 말, 청진에서 나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청라선'''(淸羅線)을 부설하는 공사가 남만주철도(선철) 주도로 진행되었다. 1945년 2월 1일에는 청진과 청암(현재의 금바위역) 구간이 개통되었지만,[37][2]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나머지 구간 공사는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으로 중단되었던 청라선 공사가 재개되었으며, 전철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청라선은 1965년 6월 10일 마침내 전 구간이 완공되었다.[35] 이후 기존의 평원선 일부(동북리-고원)와 함경선 일부(고원-청진) 구간이 청라선과 통합되면서, 전체 노선이 '''평라선'''으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간리에서 배산점역까지 새로운 선로가 건설되면서 원래 서포역에서 분기하던 평원선 구간은 룡성선으로 분리되었다.
평라선은 평양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질러 동해안에 도달한 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주요 연안 도시들을 연결하고 러시아 국경까지 이어지는 북한의 핵심 간선 철도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한 시설 노후화와 자원 부족 문제로 인해 열차 운행 속도와 수송 능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현재는 평양에서 청진까지 이동하는 데 일제강점기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로 상태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러시아와 협력하여 개량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3. 1. 일제강점기
현재의 평라선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여러 노선을 기반으로 한다. 주요 구성 요소는 평양시와 고원을 잇던 평원선의 일부, 고원과 청진을 잇던 함경선의 일부, 그리고 청진과 라진을 연결하려던 청라선 계획이다.함경선은 본래 원산에서 회령까지 이어지는 노선으로, 1916년 일부 구간 개통을 시작[37]으로 1928년 전 구간이 완성되었다.[17] 이 노선은 경원선과 연계되어 경성(현재 서울)에서 한반도 동북부 및 만주국 동부로 향하는 중요 경로였으며, 특히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어 급행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한때 북부 구간(청진선)이 남만주철도(만철)에 경영 위탁되었다가[19] 1941년 조선총독부 관리로 일원화되었다.[27] 함경선의 상세한 개통 역사는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평원선은 평양시 서포에서 고원까지 계획된 노선으로, 현재 평라선에는 동북리-고원 구간이 포함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나,[34] 당시에는 운행 횟수가 적은 로컬선 성격이 강했다. 평원선의 개통 과정 역시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청라선은 청진에서 라진까지 동해안을 따라 건설될 예정이었으나, 1945년 2월 1일 청진-청암 구간만 개통된 채[37][2] 일제의 태평양 전쟁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광복 이후, 함경선과 평원선의 일부 구간은 현재의 강원선, 함북선, 룡성선 등으로 재편되었다. 중단되었던 청라선 공사는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으로 재개되어 1965년 완공되었고, 이후 기존 평원선의 일부(동북리-고원) 및 함경선의 일부(고원-청진)와 통합되어 오늘날의 '''평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3. 1. 1. 함경선 부분 연표
날짜 | 내용 |
---|---|
1916년 9월 21일 | 문천 ~ 고원 ~ 영흥(현재의 금야청년역) 구간 개통. (소스상 7월 21일 문천-영흥 최초 개통 기록과 상이하나, 연표 기록 우선)[37] |
1916년 11월 5일 | 청진(현재의 청진청년역) ~ 회령 방면 창평 구간 개통. |
1919년 12월 10일 | 회령 방면(유선) ~ 나남역 구간 개통. |
1919년 12월 15일 | 영흥 ~ 함흥 구간 개통. |
1920년 10월 1일 | 나남역 ~ 경성(현재의 승암역) 구간 개통. |
1921년 11월 11일 | 경성(현재의 승암역) ~ 주을(현재의 경성역) 구간 개통. |
1922년 12월 1일 | 함흥 ~ 서호진(현재의 서호역) 구간 개통. |
1923년 9월 25일 | 서호진 ~ 퇴조(현재의 낙원역) 구간 개통. |
1924년 10월 11일 | 퇴조 ~ 양화 구간, 길주(현재의 길주청년역) ~ 단천(현재의 단천청년역) 구간, 주을 ~ 수남 구간 개통.[7] |
1925년 6월 5일 | 함경선 구간 분할 및 개칭: 원산~양화(함경남부선), 단천~길주(함경중부선), 수남~회령(함경북부선), 청진~유선(청진선).[8] |
1925년 11월 1일 | 함경남부선 양화 ~ 속후 구간 개통.[9] 운포역 개업.[10] |
1926년 11월 11일 | 함경남부선 속후 ~ 신북청 구간 개통. |
1926년 12월 1일 | 함경북부선 봉강 ~ 극동 구간 개통. 수남역 폐지.[11] |
1927년 6월 1일 | 함경남부선 내호역 개업.[12] |
1927년 8월 1일 | 함경북부선 극동 ~ 룡동 구간 개통.[13] |
1927년 12월 1일 | 함경북부선 생기령역 개업. 함경남부선 신북청 ~ 거산 ~ 반송 구간 개통. 함경북부선 군선(현재의 리원역) ~ 단천 구간 및 길주 ~ 룡동 구간 개통.[14] 군선 ~ 회령 구간이 함경북부선으로 통합.[15] |
1927년 12월 21일 | 함경남부선 문봉역 개업. |
1928년 7월 21일 | 함경남부선 내호역을 이전하고 보통역 승격, 흥남역으로 개칭.[16] |
1928년 8월 31일 | 함경남부선 반송역 폐지.[17] |
1928년 9월 1일 | 거산 ~ 군선 구간 개통으로 함경선 전 구간(원산~회령) 개통 완료. 노선명을 함경본선으로 개칭.[17] |
1929년 6월 15일 | 상룡전역(현재의 상룡반역) 개업. |
1931년 6월 15일 | 만춘역 개업. |
1931년 9월 10일 | 영안역(현재의 삼향역) 개업. |
1931년 12월 26일 | 흥남 본정역 개업. |
1932년 10월 1일 | 흥상역을 함남흥상역(현재의 함주역)으로 개칭.[18] |
1933년 10월 1일 | 청진선(청진~유선) 운영을 남만주철도에 위탁.[19] |
1935년 5월 1일 | 범포역 개업. |
1935년 11월 1일 | 룡평역을 어대진역으로 개칭.[20] |
1937년 1월 1일 | 송단역을 리원역(현재의 송단역)으로 개칭.[21] |
1937년 5월 16일 | 의호역을 원산역 방면으로 1.9km 이전.[22] |
1937년 8월 1일 | 의호역을 강상리역으로 개칭.[23] |
1939년 8월 16일 | 학중역(현재의 송상역) 개업.[24] |
1939년 9월 16일 | 현흥역과 마전역 개업.[25] |
1939년 11월 1일 | 세포리역과 온수평역 개업.[26] |
1940년 6월 30일 | 남만주철도의 청진선 위탁 운영 종료.[27] |
1940년 7월 1일 | 함경본선 구간을 원산 ~ 상삼봉으로 변경.[27] |
1940년 9월 30일 | 흥남 본정역 폐지.[28] |
1941년 4월 16일 | 신성진역(현재의 장평역) 개업.[29] |
1941년 12월 1일 | 나남역 ~ 청진 구간 개통. 기존 라남 ~ 유선 구간은 강덕선으로 분리. 청진 ~ 청진항 구간을 청진항선으로 개칭.[30] |
1942년 2월 1일 | 선로 개량으로 청진청년역을 현재 위치로 이전.[31] 청진 ~ 유선 구간 1.2km 단축.[32] |
1945년 2월 1일 | 중호역 개업.[6] |
3. 1. 2. 평원선 부분 연표
평라선 중 동북리~고원 구간은 일제강점기 평원선(平元線)의 일부에 해당한다. 원래 평원선은 서포에서 출발하여 룡성, 동북리를 거쳐 고원까지 이어지는 노선이었으나, 현재 서포~룡성~동북리 구간은 룡성선으로 분리되어 운용되고 있다.평원선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완성된 노선으로, 1942년 당시 전 구간 직통 여객 열차는 하루 2왕복만 운행하는 로컬선이었다. 평원선의 주요 개통 역사는 다음과 같다.
날짜 | 내용 |
---|---|
1927년 11월 1일 | 평원 서부선 서포~배산점~사인장(현재의 평성역) 구간 개통. |
1928년 10월 15일 | 평원 서부선 사인장~순천 구간 개통. |
1929년 10월 1일 | 평원 서부선 순천~신창 구간 개통. |
1930년 11월 16일 | 평원 서부선 봉하역(현재의 신련포역) 개업. |
1931년 10월 1일 | 평원 서부선 신창~장림 구간 개통. |
1936년 11월 1일 | 평원 서부선 장림~양덕 구간 개통. |
1937년 12월 16일 | 평원 동부선 성내~고원 구간 개통.[33] |
1941년 4월 1일 | 양덕~성내 구간의 개통으로 평원선 전 구간 개통. 서포~고원 구간을 평원선으로 명명.[34] |
3. 2. 광복 이후
광복 이후 철도 관리를 맡았던 일본인 기술자들이 물러나고, 북한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이 철도 자재를 가져간 데다 한국 전쟁까지 겪으면서 철도 운행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전쟁 이후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에 계획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했던 구간들의 건설이 재개되었다. 간리~동북리 구간이 새로 건설되었고, 1960년대에는 금바위~라진 구간이 개통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는 노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 말 잠시 개통되었다가[6] 중단된 후 오랫동안 연결되지 못했던 청진(현 청진청년)~청암(현 금바위) 구간을 포함하여, 청진~나진 전 구간이 1965년 6월 10일 마침내 개통되었다.[35] 이로써 평양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평라선 노선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인한 시설 노후화와 자원 부족 문제로 인해 열차 운행 속도와 수송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현재 평양에서 청진까지 이동하는 데 일제강점기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로 상태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러시아와 협력하여 개량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때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주 1회 국제 열차가 운행되었으나, 2007년 경부터는 북한 내부 사정으로 두만강역과 러시아 하산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방식으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진다.
4. 역 목록
(사인장)
(舍人場)
(봉하)
(鳳下)
(동원)
(東元)
(관평)
(館坪)
(천성)
(泉城)
(인흥)
(仁興)
(영흥)
(永興)
(마장)
(馬場)
(함남흥상)
(咸南興上)
(본궁)
(本宮)
(서호진)
(西湖津)
(퇴조)
(退潮)
(전진)
(前津)
(영무)
(靈武)
(신창)
(新昌)
(이원)
(利原)
(군선)
(群仙)
(룡강)
(龍崗)
(단천)
(端川)
(성진)
(城津)
(신성진)
(新城津)
(농성)
(農城)
(학중)
(鶴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