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
1. 개요
로힝야족은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와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주로 거주하는 무슬림 소수 민족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벵갈리'라 칭하며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민자로 간주하지만, 로힝야족은 자신들을 아라칸의 원주민으로 여기며 '로힝야'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로힝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민족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왔으며, 미얀마 독립 이후 정치적, 사회적 차별을 겪어왔다. 2012년 라카인주 폭력 사태, 2016년 이후 미얀마 군경의 탄압으로 인해 수많은 로힝야족이 사망하고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제 사회는 이를 인종 청소로 규탄했다. 현재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으며, 미얀마의 민주화 이후에도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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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𐴌𐴗𐴥𐴝𐴙𐴚𐴒𐴙𐴝 |
|---|---|
| 로마자 표기 | Ruáingga |
| IPA 표기 | rʊˈɜi̯ɲ.ɟə |
| 인구 | 1,547,778 - 2,000,000+ |
| 주요 거주 지역 |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카인주)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
| 언어 | 로힝야어 |
| 종교 | 주로 이슬람교; 소수의 힌두교, 기독교 |
| 관련 민족 | 벵골인 |
| 방글라데시 | 1,300,000+ (2018년 3월) |
|---|---|
| 미얀마 (라카인주) | 600,000 (2019년 11월) |
| 파키스탄 | 500,000 (2017년 9월) |
| 사우디아라비아 | 190,000 (2017년 1월) |
| 말레이시아 | 150,000 (2017년 10월) |
| 인도 | 14,000+ |
| 문화 | 로힝야 문화 |
|---|---|
| 디아스포라 | 디아스포라 |
| 깃발 | 로힝야족 깃발 |
| 역사 | 역사 |
|---|---|
| 고향 | 아라칸 |
| 종교 | 종교 |
|---|
| 갈등 | 로힝야족 분쟁 |
|---|---|
| 박해 | 미얀마의 무슬림 박해 |
| 집단 학살 | 로힝야족 집단 학살 |
| 관련 인물 | 로힝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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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민족 -
베두인
베두인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계 유목민을 가리키며,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제국과 관계를 맺고 사회 변화를 겪으며 현재는 다양한 국가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
로힝야족 -
로힝야어
로힝야어는 루아잉가어, 로힝야어, 로힌자어 등으로 불리며, 25개의 고유한 자음 음소와 아랍어, 벵골어, 버마어 등에서 유래한 자음 음소, 6개의 모음과 여러 개의 이중모음을 가지며 하니피 로힝야 문자, 로힝야 아랍 문자, 로힝야 라틴 문자 등으로 표기하고 주어-목적어-동사(SOV) 어순과 세 가지 시제와 네 가지 상을 구분하는 문법적 특징을 가진 언어이다. -
로힝야족 -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는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겪는 인권 침해와 탄압을 의미하며, 이들은 시민권 거부, 이동 제한 등의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고, 2010년대 후반 박해가 심화되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
무국적 -
조선적
조선적은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을 등록하기 위해 사용한 법적 지위로, 국적이 아닌 편의상의 표기이며, 재일 한국·조선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법적으로 무국적에 가깝고 대한민국 입국, 국적 문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 -
무국적 -
터미널 (2004년 영화)
터미널은 2004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쿠데타로 입국이 거부된 남자가 공항에서 9개월 동안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를 톰 행크스 주연으로 그렸다.
2. 명칭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벵갈리'라고 부르며, 이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로힝야족은 자신들을 '로힝야'라고 부르며, 이는 '라카인' 또는 '아라칸' 지역을 의미하는 '로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와 언론은 대체로 '로힝야'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일부에서는 '라카인 주의 무슬림' 등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대적인 용어인 로힝야(Rohingya)는 식민 시대와 식민 이전 시대의 용어인 "Rooinga"와 "Rwangya"에서 유래했다. 로힝야족은 자신들을 "Ruáingga"라고 부른다. 미얀마에서는 MLC 음역 체계에 따라 "rui hang gya" (ရိုဟင်ဂျာ미얀마어)라고 알려져 있으며, 방글라데시에서는 "Rohingga" (রোহিঙ্গা벵골어)라고 불린다.
"Rohingya"라는 용어의 사용은 영국령 인도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왔다. 1799년, 프랜시스 부캐넌은 "A Comparative Vocabulary of Some of the Languages Spoken in the Burma Empir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는데, 그는 아라칸의 원주민 집단 중에 "오랫동안 아라칸에 정착해 있으며 자신들을 'Rooinga' 또는 아라칸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무슬림'들"이라고 썼다.
1948년부터 1962년까지 버마가 민주주의 국가였을 때, 우 누 총리 정부는 라디오 연설에서 "Rohingy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킹 드래곤 작전으로 인한 난민에 대한 UNHCR 보고서는 피해자들을 "벵골계 무슬림(로힝야라고 불림)"이라고 언급했다.
오늘날 "Rohingya"라는 이름의 사용은 양극화되어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이 이름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2014년 인구 조사에서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자신을 "벵골인"으로 확인하도록 강요했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로힝야(Rohingya)"는 식민지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로힝야 공동체는 아라칸 인도인(Arakanese Indians)과 아라칸 무슬림(Arakanese Muslims)으로도 알려져 왔다. 미얀마의 군부 정권과 정부는 로힝야라는 용어 사용에 강력히 반대하며, 이 공동체를 "방글라데시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경멸적인 표현인 "칼라르(kalar)"는 미얀마에서 로힝야를 향해 널리 사용된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라는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방글라데시에서 유입된 불법이민자라는 주장에서, ‘벵골인’이라는 의미의 벵갈리(ဘင်္ဂါလီ미얀마어)라고 부른다.
일본은 “방글라계 이슬람교도인 로힝야”라고 표기하고 있다. 외무대신 기자회견 등에서는 로힝야라는 단어를 피하고 “라카인 주의 무슬림”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십자에서는 “정치적·민족적 배경 및 피난되어 있는 분들의 다양성에 배려”라는 이유로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로힝야(Rohingya)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역사가 초민틴(Cho Min Thwin)은 원래 벵골어와 치타공 방언에서 라카인 지역을 “로항(Rohang)” 또는 “로앙(Roang)”이라고 불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로앙야(Roangya)” 또는 “로잉가(Rooinga)”라고 불렀다고 주장한다. 로항(Rohang) 또는 로앙(Roang)의 유래는 아라칸 왕국의 수도 무라우크(Mrauk-U)의 옛 이름 Mrohaung이라는 설이 있다.
3. 역사
로힝야족이 다수 거주하는 아라칸(라카인) 지역은 오랫동안 미얀마 중심 지역과는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버마인과 비슷한 라카인족이 다수였지만, 벵골 지역과도 가깝고 교역자들이 오가며 벵골 왕국, 무굴 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인도계 인구가 유입되었다.
대영제국 통치 시기인 19세기 말 ~ 20세기 초, 노동력이 부족한 아라칸 지역으로 벵골계 인구가 대량 유입되면서 로힝야족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불교를 믿는 버마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벵골계 사람들의 증가를 위협으로 느꼈다.
1942년 일본 제국이 영국령 버마를 침공하면서 민족 갈등이 폭발했다. 일본은 벵골계 토지를 버마인에게 돌려주었고, 영국군은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일본에 맞서게 했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과 라카인족 양쪽 모두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후, 로힝야족의 참정권은 제한되고, 외국계 인구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었다. 군사정권 기간 동안 로힝야족의 분리주의 활동이 이어졌고, 1978년에는 '용왕 작전'으로 20만 명 이상이 불법체류자로 지정되어 방글라데시로 쫓겨났다. 1982년 버마 국적법 개정으로 대부분의 로힝야족이 무국적 상태가 되었다.
1988년 8888 항쟁 이후 군부는 반대파 탄압을 강화하며 무슬림 탄압도 본격화했다. 미얀마군은 로힝야족의 재산을 빼앗고 강제 노동을 시켰다. 1991-1992년에만 25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2005년 이후 UNHCR의 개입으로 일부 송환이 이루어졌으나, 많은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 남았다.
2012년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족과 라카인족 간의 갈등이 폭력적으로 터져 나왔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5년에는 보트 피플 사태가 발생했고, 2016년에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섬으로 이주시키려 했다.
2016년 분리주의 반군의 공격으로 미얀마군이 로힝야족 탄압을 시작, 즉결처분, 폭행, 집단강간 등이 발생했다. 국제연합과 국제 앰네스티는 아웅산 수찌의 침묵을 비판했다. 2017년 미얀마 군경의 '소탕작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UN 등은 인종청소로 규탄했으나 미얀마 정부는 부정했다.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로힝야 제노사이드 범죄로 제소되었다.
3.1. 아라칸 왕국 시대 (1430년~1784년)
아라칸 왕국은 1430년부터 1784년까지 현재의 라카인 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번영했던 왕조였다. 불교 왕조였지만, 인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포르투갈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해양 왕국이었으며, 다른 민족, 종교, 문화에 관대했다. 소수파인 무슬림들도 다수파인 라카인족 불교도들과 공존하고 있었으며, 초대부터 11대까지의 왕은 무슬림식 이름을 병용하였다. 궁정에는 무슬림 대신과 궁정 시인도 있었고, 왕조가 주조한 화폐에는 이슬람교의 칼리마("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3.2. 영국 식민지 시대 (1826년~1948년)
대영제국이 아라칸(라카인) 지역을 통치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노동력이 부족한 아라칸 지역으로 벵골 지역 사람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로힝야족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절대다수가 불교를 믿던 버마인들에게 이슬람교를 믿고 민족도 다른 벵골계 사람들의 급증은 위협적으로 여겨졌다.
1942년 일본 제국이 영국령 버마를 침공하고 영국군이 일시 퇴각하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하자 민족 간 대립이 폭력적으로 터져 나왔다. 일본은 아시아 해방을 내세우며 벵골계 사람들이 차지했던 토지를 버마인들에게 돌려주었고, 대다수 버마인들은 이러한 일본 당국을 지지했다. 영국군은 대일 전투를 위해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민병대로 참여시켰고, 친일 성향의 버마 민족주의자들과 라카인족도 이에 맞서 싸웠다. 버마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 과정에서 로힝야족과 라카인족 양쪽 모두 적어도 수만 명이 학살당했다.
3.3. 미얀마 독립 이후 (1948년~현재)
1962년 네 윈의 쿠데타 이후, 로힝야족의 참정권은 제한되고 32만 명 가량의 인도 출신 이민자가 추방되는 등 외국계 인구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군사정권 기간 동안 아라칸 북부를 중심으로 로힝야족의 분리주의 반정부활동이 이어졌는데, 1978년에는 소위 '용왕 작전'으로 20만 명 이상의 로힝야인이 불법체류자로 지정되어 인근 방글라데시로 쫓겨났다. 1982년 버마 국적법 개정 당시 130여 소수민족 목록에도 오르지 않아 대부분의 로힝야족이 무국적 상태가 되었다.
1988년 8888 항쟁이 일어나고 1990년 아웅산수찌가 총선에 승리하자 군부는 반대파 탄압을 강화하였고, 이때 무슬림 인구에 대한 탄압도 본격화되었다. 미얀마군은 로힝야족의 토지나 재산을 빼앗고 대가없는 강제 노동을 시행했다. 1991년에서 1992년 동안만 25만 명 이상이 인근 방글라데시로 유입되는 등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였다. 2005년 아웅산수찌 등이 주도한 정치적 합의 이후 UNHCR의 개입으로 로힝야인들이 방글라데시로부터 송환될 수 있도록 허용되었으나, 미얀마 정부의 부정적 태도로 많은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 남았다. 수천 명의 로힝야인들은 태국으로도 피신했고 태국과 미얀마의 경계를 따라 위치한 9개의 난민촌에 대략 11만 1천 명의 난민들이 수용되었다.
2012년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족과 라카인족 간의 민족 갈등이 폭력적으로 터져 나왔다. 2012년 5월 28일, 3명의 로힝야족 남성이 라카인족 여성을 강도살인한 사건이 벌어졌고, 이들은 곧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6월 3일, 로힝야족들이 탄 버스에 용의자들이 타고 있다고 착각한 라카인족 군중이 버스를 공격하여 10명의 로힝야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로힝야족이 보복하면서 대립이 급격히 심각해졌다. 6월 8일 마웅도에서 로힝야족 마을에 방화가 벌어진 것을 시작으로 전역적인 폭동이 벌어져, 수십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2015년에는 수천 명의 로힝야족 피난민이 보트 피플이 되어 떠도는 사태가 일어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6년에는 방글라데시 난민촌의 관리가 힘들어져 이들의 생활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고,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바산 차르(Bhasan Char) 섬으로 집단이주시킬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2016년 10월 9일에는 분리주의 반군의 공격으로 국경 시설물이 파괴되고 9명의 경비대원이 살해당했으며, 11일에는 4명의 미얀마 군인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에 미얀마군이 불교 극단주의자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로힝야족 탄압을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즉결처분, 폭행, 집단강간 등이 발생하였다. 이는 국제연합과 국제 앰네스티의 주목을 끌었고, 아웅산 수찌가 상황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17년 8월, 미얀마 군경이 라카인주 북부에서 '소탕작전'에 돌입하였고, 이슬람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가 공격을 행하자 수천 명의 로힝야족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이후 라카인 북부 전역에서 이러한 공격이 반복되어 1달 만에 로힝야족 전체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UN 등 여러 국제단체가 인종청소로 규탄하였으나 미얀마 정부는 이를 부정하였다. 2019년 11월 11일, 이슬람 국가기구(OIC)는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로힝야 제노사이드 범죄로 제소했다.
4. 사회
로힝야족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러 사건과 갈등을 겪으며 형성되었다.
9세기경, 라카인족은 아라칸 산맥을 넘어 아라칸 지역으로 이주하여 여러 도시를 건설했다. 1406년 버마군의 침략으로 라카인 통치자들은 벵골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1430년, 벵골 술탄국의 군사적 지원으로 아라칸 왕위를 되찾은 민 사우 몬 왕은 벵골인들의 정착을 허용했다. 이후 아라칸 왕국은 벵골 술탄국의 봉신국이 되어 이슬람식 칭호를 사용하고 벵골 화폐를 사용했다.
벵골 술탄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아라칸 왕들은 무슬림 칭호를 유지하고 무굴 제국을 모방하며 무슬림들을 왕실 행정부에 고용했다. 17세기에는 아라칸 약탈자들과 포르투갈 정착민들이 노예를 데려오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1660년, 무굴 제국의 샤 슈자 왕자는 아라칸으로 망명했으나, 이후 아라칸 왕에게 재산을 압수당하고 봉기가 일어났다. 샤 슈자의 수행원들은 아라칸에 남아 왕실 군대에 합류했다. 1666년, 무굴 제국은 아라칸으로부터 치타공을 탈환했다.
1785년 꼰바웅 왕조의 아라칸 정복 이후, 많은 라카인 주민들이 영국령 인도로 피난했다. 1799년, 프랜시스 부캐넌 해밀턴은 아라칸에 정착한 무슬림들이 스스로를 "로힝야"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아라칸 산맥의 지형 때문에 아라칸 지역은 바다를 통해 접근하기 쉬웠다. 영국령 아라칸 주에서는 아카브 항구를 통해 영국령 인도와 활발한 무역을 했다. 많은 인도인들이 아카브에 정착했다.
1936년 미얀마 총선에서 로힝야족 출신 변호사들이 미얀마 입법평의회와 미얀마 의회에 선출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 육군이 영국령 버마를 침략하면서 아라칸인과 무슬림 주민들 사이에 종파 간 폭력이 발생했다. 1942년 아라칸 대학살은 영국군이 무장시킨 로힝야 신병들과 친일 라카인족 사이의 갈등을 포함한다. 일본군 점령 기간 동안 많은 무슬림들이 벵골로 피난했다.
1940년대 파키스탄 운동 당시, 버마 서부의 로힝야 무슬림들은 해당 지역을 동파키스탄에 합병하기 위한 분리 독립 운동을 조직했다. 1948년 버마 독립 전, 아라칸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무함마드 알리 진나에게 마유 지역을 파키스탄에 편입하는 데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이주한 사람들의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55년 연구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치타공 출신들이 해당 지역으로 불법 이주한 규모는 엄청났다"고 기술되어 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국가연합정부(NUG)는 타트마도가 로힝야족에 대해 저지른 전쟁범죄를 최초로 인정했다.
2022년, 타트마도는 2012년 로힝야족의 고등교육기관 진학 금지를 해제했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2024년, 타트마도는 로힝야족 남성들을 징집하고 있으며, 징집을 피한 로힝야족 중 많은 사람들은 아라칸군을 위해 싸우려고 한다.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는 로힝야 청년들을 범죄 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3만 5천 명의 로힝야족이 바산 차르로 이송되었다고 발표했다.
2024년 이후, 아라칸 연합과 아라칸군은 로힝야족과 화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로힝야 공동체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4.1. 거주 지역
로힝야족은 주로 미얀마 라카인 주 북부와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거주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던 버마(현 미얀마)에서 농업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많은 벵골인들이 아라칸(현 라카인 주)으로 이주했다. 당시 아라칸은 인구 밀도가 낮고 비옥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인접 지역의 벵골 주민들이 이주하도록 장려했다. 193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라칸 주 전체 인구의 25.3%가 무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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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로힝야 난민 위기와 2016년과 2017년 군부의 강경 진압 이전, 미얀마 내 로힝야족 인구는 약 110만 명에서 130만 명 정도였다. 그들은 주로 라카인 주 북부 마을에 거주하며, 인구의 80~98%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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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얀마에서는 "불법 이민자"로 간주되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학업과 취업 또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많은 로힝야족이 9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있는 방글라데시 남동부로 피난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로힝야가 난민 또는 불법 이민자로 취급받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에는 약 100만 명의 로힝야가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및 파키스탄 등에도 로힝야족이 거주한다. 미얀마에는 1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국내 실향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으며, 당국은 그들이 캠프를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음 표는 아라칸 지역 무슬림 인구 통계를 보여준다.
4.2. 종교
로힝야족의 문화는 방글라데시의 벵골인과 거의 같다.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으며, 2014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국민의 87.9%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이슬람교가 주류인 로힝야족의 종교는 탄압을 받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대부분의 마을에 모스크와 종교 학교가 있으며,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집회에서 기도를 하고 여자들은 집에서 기도를 한다.
로힝야족 대다수는 이슬람교를 실천하며, 수니파 이슬람과 수피즘이 혼합된 형태를 따른다. 로힝야족 인구 중 상당수는 힌두교와 기독교를 믿는다. 정부는 그들의 교육 기회를 제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선택지로 기본적인 이슬람 연구를 추구한다. 대부분의 마을에는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은 집단으로 기도하고 여성들은 집에서 기도한다.
미얀마의 무슬림들은 종종 종교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배 장소 건설 승인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르치고 실천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로힝야족 대부분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소수의 힌두교도도 있다.
4.3. 언어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아리아어파에 속하는 로힝야어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어와 가깝지만, 벵골어와는 상호 이해가 어렵다.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공용어인 미얀마어(중국-티베트어족)를 사용하지 않아 사회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힝야어는 정서법이 확립되지 않아 아라비아 문자, 우르두 문자, 라틴 문자, 미얀마 문자 등 다양한 표기가 사용된다. 1980년대에는 모라나 하니피가 아라비아 문자를 기반으로 한 로힝야 문자(하니피)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영어 알파벳 26자(A~Z)와 추가로 라틴 알파벳 Ç(역행성 R 표기)와 Ñ(비음 표기)를 사용하는 로힝야어 라틴 알파벳이 개발되었다. 이 알파벳은 로힝야어 음운론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섯 개의 악센트가 있는 모음(áéíóú)도 사용하며, ISO 639-3 코드 "rhg"로 ISO에서 인정받았다.
4.4. 인구
로힝야족의 정확한 인구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2017년 이전에는 미얀마 내에 약 100만 명 이상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영국 식민 통치 시기, 인접 지역의 벵골 주민들이 아라칸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로힝야족 인구가 증가했다. 1872년 영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키압 지구에 58,255명의 무슬림이 있었고, 1911년에는 178,647명으로 증가했다.
2015년 로힝야 난민 위기와 2016년과 2017년 군부의 강경 진압 이전에는 미얀마 내 로힝야족 인구가 약 110만 명에서 130만 명 정도였다. 이들은 주로 라카인 주 북부 마을에 거주하며, 인구의 80~98%를 차지했다.
2017년 이후 미얀마군, 경찰, 자경단 등의 공격으로 인해 해외로 피난한 로힝야족은 60만 명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현재는 미얀마 내 인구보다 국외 난민 인구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90만 명 이상)로 피난했고, 그 외에도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및 파키스탄 등으로 피난했다. 미얀마에는 1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국내 실향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으며, 당국은 그들이 캠프를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음 표는 아라칸 지역 무슬림 인구 통계를 보여준다.
| 연도 | 아라칸 주 무슬림 인구 | 아키압 지구 무슬림 인구 | 아키압 지구 총 인구 | 아키압 지구 무슬림 비율 | 아라칸 주 총 인구 | 아라칸 주 무슬림 비율 |
|---|---|---|---|---|---|---|
| 1802년 인구 조사 (버마) | 누락됨? | 248,604 | ||||
| 1869년 | 24,637 | 10% | 447,957 | 5% | ||
| 1872년 인구 조사 | 64,315 | 58,255 | 276,671 | 21% | 484,963 | 13% |
| 1881년 인구 조사 | 359,706 | 588,690 | ||||
| 1891년 인구 조사 | 416,305 | 673,274 | ||||
| 1901년 인구 조사 | 162,754 | 154,887 | 481,666 | 32% | 762,102 | 21% |
| 1911년 인구 조사 | 178,647 | 529,943 | 30% | 839,896 | ||
| 1921년 인구 조사 | 576,430 | 909,246 | ||||
| 1931년 인구 조사 | 255,469 | 242,381 | 637,580 | 38% | 1,008,535 | 25.3% |
| 1983년 인구 조사 | 584,518 | 2,045,559 | 29% |
4.5. 무장 세력
2016년 10월 9일, 반군이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을 따라 미얀마 국경 초소 3곳을 공격하여 국경 경비대원 9명이 사망했다. 10월 11일에는 군인 4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 공격 이후, 미얀마 보안군이 로힝야족 반군에 대한 진압 작전 중 여러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는 보고가 나왔다.
미얀마군과 극단주의 불교도들은 미확인 반군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라카인 주 서부 지역의 로힝야족 무슬림에 대한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 살해, 집단 강간, 방화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
라카인 주 정부 관리들은 처음에 이 공격의 배후로 로힝야 연대 조직(RSO)을 지목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17일,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공격의 책임을 주장했다. 미얀마 군은 2016년 11월 15일, 라카인 주 북부에서 최근 충돌로 로힝야족 반군 69명과 보안군 1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3월,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경찰 문서에는 2016년 10월 9일 이후 체포된 로힝야족 423명의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10세 어린이를 포함한 13명의 어린이가 있었다. 미얀마 경찰은 아이들이 심문 중에 혐의를 자백했으며, 구타나 압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얀마군은 2017년 9월 1일, 사망자 수가 반군 370명, 보안 요원 13명, 정부 관리 2명, 민간인 14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유엔은 2016년 10월 이후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했는데, 이는 미얀마 정부의 발표와 상반된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국가연합정부(NUG)는 타트마도가 로힝야족에 대해 저지른 전쟁범죄를 최초로 인정했다.
2024년 2월 10일 이후, 타트마도는 18세에서 35세 사이의 로힝야족 남성들을 징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징집을 피한 로힝야족 중 많은 사람들은 아라칸군을 위해 싸우려고 한다.
2024년 2월 이후, 아라칸군은 타트마도의 징집을 피하기 위해 라카인 주에 거주하는 로힝야족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네 산 린에 따르면, 타트마도는 부티다웅 마을의 로힝야족에게 아라칸군에 대한 시위를 강요하여 종교적 갈등을 부추겼다.
2024년 이후, 아라칸 연합과 아라칸군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통치하는 지역의 로힝야족과 화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칸군의 과거 행동과 잔혹 행위 혐의를 고려할 때, 로힝야 공동체는 아라칸 연합의 노력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5. 로힝야족 학살
2015년 이후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인종 청소' 또는 '집단 학살'로 규정하고 비판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미얀마 정부에 군사 작전 중단과 인권 침해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19년에는 감비아가 미얀마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으며, ICJ는 미얀마에 로힝야족 학살 방지 조치를 명령했다.
2016년 10월 9일, 분리주의 반군의 공격으로 국경 시설물이 파괴되고 9명의 경비대원이 살해당했다. 11일에는 미얀마 군인 4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에 미얀마군은 불교 극단주의자들을 동원하여 로힝야족을 탄압했고, 즉결처분, 폭행, 집단강간 등이 발생하였다. 이는 국제 앰네스티의 주목을 받았고, 아웅산 수찌가 침묵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2017년 8월, 미얀마 군경은 라카인주 북부에서 '소탕작전'을 시작했고, 아라칸 로힝야 구세군(ARSA)의 공격 이후 로힝야족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한 달 만에 로힝야족 인구의 40%인 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2015년, 예일대 로스쿨은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탄압이 국제법상 집단학살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알자지라 영어 방송과 포티파이 라이트는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을 체계적으로 표적했다고 밝혔다. 런던대학교의 국제국가범죄이니셔티브는 로힝야족에 대한 집단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로힝야족의 탈출을 민족 청소라고 표현했다. 2017년 12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미얀마 정부의 군사 작전이 "집단학살"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2018년 8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17년 8~9월 사건이 미얀마 정부와 군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여 "반인도 범죄", "민족 청소", "집단학살" 혐의로 기소해야 할 근거가 된다고 발표했다.
2022년 7월, 로이터는 타마다우가 로힝야족을 몰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6. 난민 문제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으로 피난하고 있다. 1978년 미얀마 군부의 킹 드래곤 작전으로 약 20만 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유입되었으며, UNHCR의 협조 하에 대부분 귀환했다. 1990년대 초, 미얀마 군부의 탄압으로 약 25만 명의 난민이 다시 방글라데시로 넘어갔고, UNHCR의 감독 하에 미얀마로 귀환하는 송환 협정이 체결되었다.
2012년 라카인주 폭동 이후, 최대 1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약 14만 명의 로힝야족이 국내 실향민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2015년에는 폭력과 박해를 피해 수천 명의 로힝야족이 '보트 피플'로 불리며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향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2만 5천 명이 보트를 타고 이동한 것으로 추산한다.
2017년 8월,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공격 이후 미얀마군의 "소탕 작전"으로 수십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2018년 8월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17년 8월 25일 이후 미얀마 군부와 현지 불교도들에 의해 24,000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 기준으로 방글라데시에는 약 100만 명의 로힝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을 바산 차르 섬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권 단체들은 강제 이주 및 열악한 생활 환경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송환하는 어려움과 외국 무장 단체가 방글라데시를 게릴라의 안전한 피난처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로힝야족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난민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7.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 정부는 로힝야족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미얀마 정부에 로힝야족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한국 시민단체는 로힝야족 지지 운동을 전개하고, 미얀마 정부의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있다.
한편, 일본 내 재일 미얀마인 사회와 로힝야족 간의 갈등이 존재하며, 이는 한국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8년 재일 미얀마인 협회 설립 당시에는 로힝야족이 협회 서기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 이후 미얀마 정세 안정화와 함께 재일 미얀마인 사회 내에서 "로힝야족(벵골인)은 미얀마인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로힝야족이 배척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15년에는 NHK의 로힝야 표기 변경에 대한 항의 성명을 여러 재일 미얀마인 단체가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