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도난카이 지진
1. 개요
쇼와 도난카이 지진은 1944년 혼슈 남쪽 해안의 난카이 해곡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필리핀해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난카이 해곡의 C & D 구획이 파열되었다. 일본 기상청 규모 Mj7.9, 표면파 규모 Ms8.0, 모멘트 규모 Mw8.1-8.2로 추정되며, 최대 9m의 쓰나미가 미에현 오와세시를 덮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1,223명이 사망하고 47,000채의 가옥이 피해를 입었으며, 군부의 정보 통제로 피해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지진은 이후 발생한 쇼와 난카이 지진과 유발 지진의 원인이 되었으며, 도카이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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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1944년 도난카이 지진 |
|---|---|
| 현지 시각 | 1944년 12월 7일 13시 35분 (JST) |
| 타임스탬프 | 1944년 12월 7일 04시 35분 |
| 위치 | 구마노나다 해역 (일본 도카이 지방, 와카야마현 인근) |
| 좌표 | 34.0, 137.1 |
| 깊이 | 30 km |
| 단층 | 난카이 해구 |
| 쓰나미 | 발생 |
| 규모 | Mw 8.1, Ms 8.2 (ISC) |
|---|---|
| 일본 기상청 규모 | MJ 7.9 |
| 최대 진도 (MMI) | VIII |
|---|---|
|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 6 |
| 진도 관측 지역 | 오마에곶, 쓰시 등 |
| 추정 최대 진도 | 7 (아이치현 니시오시, 시즈오카현 기쿠가와시 및 후쿠로이시 등) |
| 사망자 | 1,223명 |
|---|---|
| 부상자 | 2,135명 |
| 쓰나미 높이 | 오와세시에서 9m |
| 지속 시간 | 95초 |
|---|---|
| 유형 | 해구형 지진, 역단층형 |
-
1944년 지진 -
1944년 한국-중국 국경 지역 지진
1944년 한국-중국 국경 지역 지진은 1944년에 발생한 압록강 하구 지진으로, 규모는 M6.75에서 M7.1 사이로 추정되며, 중국 단둥시 등 서조선만 연안 지역에서 진동이 감지되고 가옥 붕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
1944년 일본 -
창씨개명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천황 중심의 국가 체계에 통합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
1944년 일본 -
도조 내각
도조 내각은 도조 히데키가 이끈 전시 내각으로,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고 국가 동원 체제를 강화했으나, 무리한 전쟁으로 일본을 패망으로 이끌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
1944년 12월 -
말메디 학살
말메디 학살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벨기에 말메디 인근에서 항복한 미군 포로들을 집단 학살한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로, 연합군의 전투 의지를 고취시켰으나 보복 행위를 야기했고, 책임 소재와 경위에 대한 논란 및 재판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1944년 12월 -
데켐브리아나
데켐브리아나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아테네에서 그리스 인민해방군을 주축으로 한 좌익 세력과 영국군 및 그리스 정부군 간에 벌어진 시가전으로, 저항 세력의 무장 해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발발하여 그리스 내전의 서막을 알렸다.
2. 지진 발생 배경
혼슈 남쪽 해안의 난카이 해곡은 필리핀해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는 경계로, 많은 지진을 유발한다. 난카이 거대 단층은 5개의 구획(A~E)으로 나뉘며, 이들은 지난 1300년 동안 단독으로 또는 함께 반복적으로 파열되었다. 이 구조에서 발생하는 거대 지진은 비교적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쌍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1944년 지진으로 C & D 구획이 파열되었고, 2년 뒤 A & B 구획이 파열되는 1946년 난카이도 지진이 발생했다. 1854년에도 유사한 지진이 두 차례 발생했는데, 각각의 경우 북동쪽 구획이 남서쪽 구획보다 먼저 파열되었다.
3. 지진의 특징
쇼와 도난카이 지진은 1944년 12월 7일에 발생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다. 미에현 쓰시와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시, 나가노현 스와시에서 진도 6을, 긴키 지방에서 주부 지방에 걸쳐 진도 5를 관측했다. 후쿠치촌과 후쿠로이시 등에서는 진도 7로 추정되기도 했다. 도쿄에서는 진도 3-4, 홋카이도 모리정과 아사히카와시에서도 진도 1을 관측했다. 오마에자키에서는 17.1초간 초기 미동, 3분간 강한 진동이 이어졌고, 도쿄에서는 주기 7-12초의 장주기 지진동이 10분 이상 지속되었다.
다음은 일본 각지 관측소에서의 진도표이다.
| 진도 | 지방 | 관측소 |
|---|---|---|
| 6 | 도카이 지방 | 오마에자키 · 쓰 · 도요하마 · 아카바네 · 오노 · 쓰시마 · 욧카이치 · 오스기타니 |
| 고신 지방 | 스와 | |
| 5 | 호쿠리쿠 지방 | 후쿠이시 · 쓰루가시 |
| 고신 지방 | 고후시 | |
| 도카이 지방 | 하마마쓰시 · 가메야마정 · 오와세정 · 기후시 · 나고야시 | |
| 긴키 지방 | 히코네시 · 나라시 | |
| 4 | 간토 지방 | 마에바시시 · 지치부시 · 도쿄도 (고지마치구) · 요코하마시 |
| 호쿠리쿠 지방 | 다카다시 · 도야마시 · 와지마정 | |
| 고신 지방 | 가와구치촌 · 마쓰모토시 · 이다시 | |
| 도카이 지방 | 아타미시 · 다카야마시 · 미시마시 · 시즈오카시 | |
| 긴키 지방 | 미야즈정 · 교토시 · 오사카시 · 고베시 · 스모토시 · 와카야마시 · 구시모토정 | |
| 시코쿠 지방 | 도쿠시마시 · 다카마쓰시 · 다도쓰정 · 마쓰야마시 · 무로토미사키정 · 고치시 |
지진으로 시즈오카현 오타가와강 제방 위 땅이 갈라지며 2m 침하, 구마노나다 신구시·도바시 0.3m 침하, 나고야시 0.25m-0.4m 침하, 아쓰미반도 0.3m-0.4m 침하, 하마마쓰시 0.3m-4m 침하, 스루가만 시미즈구 0.5m 침하했다. 가케가와시 0.07m 융기, 사가라항 0.3m 융기, 오마에곶 0.15m 융기했다. 서북쪽 침강, 동남쪽 융기한 지각변동은 안세이 도카이 지진과 비슷하나, 스루가만 서해안 침강, 지각변동 폭이 작은 점이 다르다.
미에현 오와세시 중심 구마노나다 연안에 쓰나미가 덮쳐 오와세시 가타지구 최대 소상고 9m를 기록했다. 미에현·와카야마현에 특히 높은 쓰나미가 덮쳐 아타시카초 6-8m, 가타 7.1m, 니시키 6m, 가쓰우라 4-5m였다. 쓰나미는 이즈반도-규슈 일본 남해안, 태평양 건너 미국 알래스카주 애투섬(0.28m), 영국령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미국 하와이, 알래스카주, 캘리포니아주(0.01-0.1m)에도 덮쳤다. 쓰나미 제1파 후 짐 가지러 갔다가 제2파에 휩쓸려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다음은 쓰나미 최대 높이표이다.
3.1. 규모
일본 기상청에서는 규모 Mj7.9로 측정하였다. 표면파 규모 Ms는 8.0, 모멘트 규모 Mw는 8.1-8.2로 추정하고 있다.
지진 단층의 매개 변수는 길이 L=120km, 폭 W=80km, 미끄럼량 D=3.1m 또는 L=110km, W=70km, D=4m(구마노나다)와 L=80km, W=80km, D=4m(엔슈나다)의 두 단층으로 나뉜다는 설이 있다. 지진 모멘트 M0은 1.5×1021N·m과 2.0×1021N·m 등의 값으로 추정하고 있다.
3.2. 진원역
안도(1975)의 단층 모델에선 진원역은 아이치현 미카와만 남쪽 해역에서부터 와카야마현 구시모토정 동남쪽 해역에 이르는 난카이 해곡과 평행한 직선의 광범위한 영역이다.
1940년대 후반 일본에선 큰 지진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쇼와 도난카이 지진 2년 후인 1946년 12월 21일엔 쇼와 난카이 지진이 일어났다. 두 지진은 동시에는 아니지만 난카이 해곡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쇼와 도난카이 지진은 안세이 도카이 지진처럼 스루가만 안쪽 스루가 해곡까지 단층 파괴가 일어나지 않고 하마나코 해역 동남쪽 근처에서 단층 파괴가 끝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도카이 지진의 진원역은 지진공백역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마나코 해역에서 단층 파괴가 끝난 이유는 1891년 미노-오와리 지진으로 난카이 해곡 지역의 왜곡이 늘어나고 스루가 해곡 지역의 왜곡이 줄어들어 그랬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 지진예지연락회 전 회장인 모기 키요는 미노-오와리 지진으로 도카이 지진의 발생이 대략 20년 정도 늦어졌다고 말했다.
3.3. 지진동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일본 미에현 쓰시와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시, 나가노현 스와시에서 진도 6, 긴키에서 주부 지방에 걸친 지역에서 진도 5를 관측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쿠치촌과 후쿠로이시 등 피해 조사를 통해 진도 7로 추정된 곳도 있었다. 도쿄에서는 진도 3-4, 홋카이도 모리정과 아사히카와시에서도 진도 1을 관측했다. 오마에자키에서는 초기 미동이 17.1초간, 강한 진동이 3분간 이어졌고, 도쿄에서는 주기 7-12초의 장주기 지진동이 10분 이상 계속되었다.
일본 각지의 관측소에서 느낀 진동은 다음과 같다.
| 진도 | 지방 | 관측소 |
|---|---|---|
| 6 | 도카이 지방 | 오마에자키 · 쓰 · 도요하마 · 아카바네 · 오노 · 쓰시마 · 욧카이치 · 오스기타니 |
| 고신 지방 | 스와 | |
| 5 | 호쿠리쿠 지방 | 후쿠이시 · 쓰루가시 |
| 고신 지방 | 고후시 | |
| 도카이 지방 | 하마마쓰시 · 가메야마정 · 오와세정 · 기후시 · 나고야시 | |
| 긴키 지방 | 히코네시 · 나라시 | |
| 4 | 간토 지방 | 마에바시시 · 지치부시 · 도쿄도 (고지마치구) · 요코하마시 |
| 호쿠리쿠 지방 | 다카다시 · 도야마시 · 와지마정 | |
| 고신 지방 | 가와구치촌 · 마쓰모토시 · 이다시 | |
| 도카이 지방 | 아타미시 · 다카야마시 · 미시마시 · 시즈오카시 | |
| 긴키 지방 | 미야즈정 · 교토시 · 오사카시 · 고베시 · 스모토시 · 와카야마시 · 구시모토정 | |
| 시코쿠 지방 | 도쿠시마시 · 다카마쓰시 · 다도쓰정 · 마쓰야마시 · 무로토미사키정 · 고치시 |
3.4. 지각 변동
시즈오카현 오타가와강에서는 제방 위 땅이 갈라지며 2m 정도 침하했다. 구마노나다의 신구시는 0.3m 침하, 도바시는 0.3m 침하, 나고야시는 0.25m-0.4m 침하, 아쓰미반도는 0.3m-0.4m 침하, 하마마쓰시는 0.3m-4m 침하, 스루가만의 시미즈구는 0.5m 침하했다. 가케가와시는 0.07m 융기, 사가라항은 0.3m 융기, 오마에곶은 0.15m 융기했다. 서북쪽이 침강하고 동남쪽은 융기한 지각변동은 안세이 도카이 지진과 비슷하나 스루가만 서해안이 침강한다는 점과 지각변동의 폭이 작다는 점이 다르다.
3.5. 쓰나미
미에현 오와세시를 중심으로 구마노나다 연안 일대에 쓰나미가 덮쳤으며, 오와세시 가타지구에서 최대 소상고 9m를 기록했다. 미에현과 와카야마현에 특히 높은 쓰나미가 덮쳐 아타시카초에서는 6-8m, 가타에서는 7.1m, 니시키에서는 6m, 가쓰우라에서는 4-5m를 기록했다. 쓰나미는 이즈반도에서 규슈에 이르는 일본 남해안 대부분 지역과 태평양 건너편 미국 알래스카주 애투섬(0.28m), 영국령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미국 하와이, 알래스카주, 캘리포니아주(0.01-0.1m)에도 덮쳤다.
쓰나미 제1파가 덮쳤다가 물러난 후 집에 짐 등을 가지러 갔다가 제2파에 휩쓸려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4. 전조 현상
1944년 8월부터 오와세시 지방에서 군발지진 활동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 지역과 간토 지방 내륙 지역에서 지진 활동이 다소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감소한 정도가 평소의 오차와 비슷하며 다른 시기에도 이 정도의 평온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결정적인 전조 현상이라 보기엔 어렵다. 조위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보고도 있다.
도쿄제국대학 이마무라 아키쓰네 교수는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에서 프리슬립(pre-slip) 현상으로 볼 수 있는 지각변동을 관측하였다. 쇼와 시대 초기 도카이 해역과 난카이 해역에 거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이마무라 아키쓰네 교수의 요청으로, 지진 전날부터 지진 발생 직전까지 일본 육군 측지측량부가 가케가와에서 오마에자키시 근처까지 지질 측량을 시행했다. 수준점 1등수준측량 결과 4mm를 넘는, 일반적인 측량에선 나타날 수 없는 오차값이 나왔다. 4mm의 오차는 지진이 일어난 날 아침 측량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지진 발생 10분 전부터는 수준의의 눈금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에 이 오차는 지진 직전 일어난 지각변동으로 보인다고 결론내렸다. 이 지각변동은 도카이 지진 예지의 근거가 되는 지진 직전 지각변동의 예시이다.
5. 피해
쇼와 도난카이 지진으로 아이치현, 미에현,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총 1,223명이 사망하고 2,13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47,000채에 달하는 가옥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아이치현 한다시의 나카지마 비행기 공장과 나고야시 미나미구의 미쓰비시 중공업 비행기 공장 건물이 붕괴하여 각각 130명, 6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여자근로정신대원 6명도 사망했다.
1975년 연구에 따르면, 지진으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는 다음과 같다.
| 지역||colspan="2"|인적 피해||colspan="2"|주택||colspan="2"|기타 건물 | ||||||
|---|---|---|---|---|---|---|
| |부상자||완전 붕괴||반파||완전 붕괴||반파 | ||||||
| 아이치현 | 438 | 1,148 | 6,411 | 19,408 | 10,121 | 15,890 |
| 시즈오카현 | 295 | 843 | 6,970 | 9,522 | 4,862 | 5,553 |
| 미에현 | 406 | 607 | 3,776 | 4,537 | 1,417 | 2,228 |
| 기후현 | 16 | 38 | 406 | 541 | 459 | 388 |
| 나라현 | 3 | 17 | 89 | 177 | 244 | 224 |
| 시가현 | 0 | 0 | 7 | 76 | 28 | 88 |
| 와카야마현 | 51 | 74 | 121 | 604 | 46 | 63 |
| 오사카부 | 14 | 135 | 199 | 1,629 | 124 | 63 |
| 야마나시현 | 0 | 0 | 13 | 11 | 14 | 3 |
| 후쿠이현 | 0 | 0 | 1 | 2 | 2 | 3 |
| 효고현 | 0 | 2 | 3 | 0 | 23 | 9 |
| 나가노현 | 0 | 0 | 12 | 47 | 1 | 2 |
| 총 합 | 1,223 | 2,864 | 18,008 | 36,554 | 17,341 | 24,514 |
* 유실 주택: 3,129채
* 침수 주택: 8,186채
* 소실 주택: 3,129채
* 화재 발생: 26건
기이 반도 동쪽, 특히 신구와 쓰에서 피해가 컸다. 지진으로 총 26,146채의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이 중 11채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쓰나미로 3,059채가 추가로 파괴되었다.
나고야시를 중심으로 한 주쿄 지역은 미쓰비시 중공업, 나카지마 비행기 등 항공기 산업 중심지로 군용기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도카이도선은 가케가와역 서쪽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오타가와 주변에서는 화물 열차가 탈선, 전복되어 화재가 발생했다. 전복된 화차는 수십 량에 달했다.
기타 피해는 다음과 같다.
* 도로 파괴: 505개소
* 교량 유실: 61개
* 제방 붕괴: 155개
* 철도 피해: 48개소
* 선박 유실: 1,898척
* 안벽 파괴: 84개소
5.1. 보도 통제
태평양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일본 군부는 군수 공장의 피해 상황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정보를 통제했다. 다음 날인 12월 8일이 진주만 공습 3주년이었기 때문에 전쟁 의식을 고양시키는 보도 외에는 전부 차단되었다. 지진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신문 3면 하단에 짧게 단신으로 적혀 있었으며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적히지 않았다.
피해 지역 주민과 학도근로동원에 동원되었던 학생들에게는 피해 상황에 대해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는 엄격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예를 들어, 당시 공장에서 있던 한 학생은 또래 학생이 지붕에 깔려 죽은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붕괴 현장에 갇혀 있다 구조되었으나 교사들이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되며 피해를 말하는 것은 간첩 행위와 같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 조선인 근로정신대도 똑같아 지진 20여 일 뒤인 12월 24일 뒤늦게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공장 붕괴와 정신대원 사망이 보도되었으나 지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5.2. 연합국의 인지
세계 각국의 지진계에 지진이 관측되어 다른 국가도 지진 발생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군사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포함하여 대서특필하였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스는 "지구가 6시간 동안 흔들렸으며 세계 관측소는 '파괴적인 진동'을 느꼈다"고 보도했으며, "일본 중앙부에서 대지진"이라는 등 지역을 특정하여 보도한 언론사도 있었다. 지진 발생 3일 후, 미군 항공기가 해일 피해 분석을 위해 정찰 사진을 촬영하여 연합국 측은 피해 상황을 전부 확인했으며, 특히 군수공장 등 주요 전략 거점의 피해 상황을 분석했다. 지진 6일 뒤인 12월 13일에는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나고야시 일대의 항공기 공장을 폭격했다.
6. 유발지진
1944년 쇼와 도난카이 지진의 영향으로 진원역 및 여진 지역과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도 규모가 큰 유발지진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유발지진은 다음과 같다.
7. 향후 지진 위험
난카이 해곡은 혼슈섬 남쪽 해안을 따라 뻗어 있으며, 필리핀해 판이 유라시아 판 아래로 섭입하는 경계이다. 이 수렴 경계의 움직임은 거대 지진을 포함한 많은 지진을 유발한다. 난카이 거대 단층은 독립적으로 파열될 수 있는 5개의 구획(A~E)으로 나뉘며, 지난 1300년 동안 이 구획들은 단독으로 또는 함께 반복적으로 파열되었다. 이 구조에서 발생하는 거대 지진은 비교적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쌍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1944년 지진(C & D 구획 파열) 이후 2년 뒤에 A & B 구획이 파열되는 1946년 난카이도 지진이 발생했고, 1854년에도 유사한 지진이 두 차례 발생했는데, 각 경우에서 북동쪽 구획이 남서쪽 구획보다 먼저 파열되었다.
1944년 지진의 파열 지역 동쪽에 있는 거대 지진대는 1854년 이후 파열되지 않았으며, 이 지진 동쪽에서 '도카이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단층대가 과거에 단독으로 파열되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 단층대 E의 파열은 단층대 C & D를 포함할 수도 있으며, 이는 피해가 컸던 1854년 도카이 지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