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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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서(魏書)는 북제(北齊) 시대 위수(魏收)가 편찬한 북위(北魏)의 정사(正史)이다. 이 책은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한 〈서기〉를 본기 첫머리에 두었으며, 일본 서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동위를 정통으로 하고 서위의 황제를 생략하는 등 편향적인 서술로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북위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위서에는 제기, 열전, 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사 관련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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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편찬 배경 및 특징
《위서》는 북위(北魏)가 탁발 씨족에 의해 건국된 후, 내부 갈등으로 동위와 서위(西魏)로 분열되고, 북제(北齊)가 건국되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편찬되었다. 550년 고양이 북제를 건국하면서, 위수에게 이 두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였다.[3] 위수는 북제 황제의 지원을 받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조상의 기원을 찬양하려는 엘리트들의 압력을 견뎌냈다.[4]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었다.[4] 현대 독자들 역시 《위서》가 대상 왕조인 북위를 칭찬하고, 북위의 전신 국가인 대의 힘을 과장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또한, 북위 효문제가 도입한 한화된 성씨를 이전 사건에 적용하여 역사적 인물의 실제 이름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3]
《위서》와 같은 제목으로 편찬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서는 모두 9가지나 되지만, 《삼국지》의 〈위서〉와 위수의 《위서》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편찬자와 시기가 미상인 《위서》의 일부 구절이 전해진다.
2. 1. 편찬 과정
북제(北齊) 문선제의 명으로 위수가 편찬하였다.[3] 위수는 북제의 신하로서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고 서위(西魏)는 의도적으로 뺐다.[3] 이러한 이유로 당대에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비판받았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수는 대(代)부터 북위 초기까지의 혼란스럽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하고 일관성 있는 기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3]2. 2. 주요 특징
- 본기 첫머리에 태조 도무제의 기록이 아닌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한 〈서기(序紀)〉를 두고 있다. 이는 일본 서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3]
-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 열전에 5호 16국과 남조(南朝) 국가들을 포함시켰다.
- 불교와 도교 관련 사건을 기록한 〈석로지(釋老志)〉가 있다.
- 북송(北宋)대에 교정되면서 일부 내용이 소실되어 《북사》를 통해 보충되었다.[1]
- 정통 왕조를 조위 - 서진에서 북위로 직접 연결하고, 남조는 물론 일시적으로 화북을 통일한 전진의 정통성도 인정하지 않는다.[3]
- 흉노의 한의 유연·후조의 석륵은 서진의 천하를 어지럽힌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3]
- 유유를 한 왕조의 후예로 하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국호 「송」도 인정하지 않고 「이초」라고 멸칭으로 부르고 있다.[3]
- 남조의 인물은 어리석은 자들뿐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으며, 열전 제85의 말미 사평에서는 「(이초들은) 궁흉극미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것이 이초의 상성인가?」라고 인종차별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3]
- 동진 이하 남조 제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열전」으로 취급하였다.[3]
-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심하게 깎아내린다는 평판이 있었다.[4]
- 서위의 삼제 본기를 세우지 않았다.[4]
- 남조를 「밭은 메말랐고, 섬 오랑캐가 치장하는 것과 같다. 중원의 사람들은 모두 강동의 무리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하는데, 음, 여우나 너구리 종류와 다를 바 없다」고 헐뜯고 있다.[4]
- 남조의 군주 유유는 유씨를 사칭한 것이며, 「본래 성은 '항'이고, 출신지도 알 수 없으며, 유씨 계통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고 폄하하고 있다.[4]
- 저자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을 잃은 기술이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2][4]
3. 구성
《위서》(역사서)는 이전 정사(正史)의 형식을 따른다. 총 1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황제의 삶과 사건을 서술하는 본기(紀)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3. 1. 제기(帝紀)
《위서》(魏書)에서 제기(帝紀)는 북위 역대 황제들의 통치 기록을 담고 있으며, 도무제 이전의 추존 황제 기록인 〈서기(序紀)〉를 포함한다. 태조 도무제(太祖 道武帝)부터 동위 효정제(孝靜帝)까지 총 12명의 황제 기록을 담고 있다.
3. 2. 열전(列傳)
《위서》의 열전은 황후, 종실, 공신, 외척, 유학자, 문인, 효자, 충신, 관리, 은둔자, 예술가, 열녀, 간신, 환관 등 다양한 인물들의 전기를 담고 있다. 주변 국가 및 민족(고구려, 백제, 거란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3. 3. 지(志)
《위서》의 〈지〉는 천문, 지리, 예법, 음악, 경제, 형벌, 관직,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제도 및 문물 기록을 담고 있다. 〈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4. 한국사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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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판 및 한계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붙었다.[1] 위수가 북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북제 중심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과, 위수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는 북송대에 교정되었을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텍스트에도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8]
위진남북조 시대의 정사(正史)는 《삼국지》, 《진서》 외에는 빠진 부분이 종종 있으며, 《송서》 등과 같이 북송 시대에 《북사》, 《남사》 및 기타 야사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 많은데, 《위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따르면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 역시 북송 시대에 교정할 때 29편의 산실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결함을 보충했다.[8]
5. 1. 편향성 문제
魏書중국어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붙었다.[1] 위수가 북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북제 중심의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과 위수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5. 2. 내용 오류 및 누락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이 있었다.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도 북송대에 교정되었을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텍스트에도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8]위진남북조 시대의 정사(正史)는 《삼국지》, 《진서》 외에는 빠진 부분이 종종 있으며, 《송서》 등과 같이 북송 시대에 《북사》, 《남사》 및 기타 야사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 많은데, 《위서》도 마찬가지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에 따르면 현존하는 위수의 《위서》 역시 북송 시대에 교정할 때 29편의 산실이 발견되어, 《북사》에 의해 결함을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다.[8]
6. 현대적 의의 및 평가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폄하하고 사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남조를 '섬 오랑캐'와 같다고 폄하하고, 남조 사람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헐뜯는 등 편파적인 서술로 인해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위서》의 사례는 역사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역사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1. 역사적 가치
비록 《위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예사(穢史, 더러운 역사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북위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3] 특히, 북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내용은 북위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위수는 대(代)부터 북위 초기까지의 매우 혼란스럽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조화시키고 일관성 있는 사건 기록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았다.[4]《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 본기의 첫머리에 태조 도무제의 기록이 아닌 북위 건국 이전 탁발부의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를 두고 있다.
- 북제 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동위를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 열전에 5호의 여러 나라와 남조의 계승을 내세우는 점.
- 불교·도교 관련 기사를 수록하는 석로지를 세우고 있는 점.
하지만, 위서는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폄하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 서위의 삼제 본기를 세우지 않았다.
- 남조를 '섬 오랑캐'와 같다고 폄하하고, 남조 사람들을 '맥자(너구리)'라고 헐뜯었다.
- 남조의 군주 유유를 유씨를 사칭한 것으로 폄하하고, 출신지도 알 수 없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이유로 '예사(더러운 역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위·북주·수를 정통으로 하는 위담의 《위서》(92권)나, 당의 장대소가 저술한 《후위서》(100권)도 존재했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6. 2. 동아시아사 연구 기여
《위서》는 북위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유연, 토욕혼 등 주변 국가 및 민족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 동아시아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 《위서》의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 분석을 통해 그 가치를 더한다.[3]6. 3. 현대적 교훈
僞書|위서중국어 편찬 과정과 내용은 역사 기록의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편찬 당시부터 적국을 심하게 깎아내린다는 평판이 있었으며, 저자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 공정을 잃은 기술이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으며 '예사'(더러운 역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서를 비판적으로 읽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7. 판본
- 백납본 (송·촉 대자본)
- 1974년 중화서국 평점본
8. 관련 자료
(주어진 원본 소스가 없으므로, 관련 자료 섹션은 비워둡니다.)
참조
[1]
서적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2]
서적
The Road to Miran: Travels in the Forbidden Zone of Xinjiang
HarperCollins, Great Britain. Flamingo edition
1994
[3]
서적
The Biography of Wei Shou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1964
[4]
문서
[5]
서적
魏書 匈奴劉聡伝
[6]
서적
魏書 列伝第八十五、島夷桓玄・海夷馮跋・島夷劉裕伝
[7]
서적
魏書 列伝第八十五・島夷劉裕伝
[8]
서적
四庫全書総目提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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