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1. 개요
조승희는 1984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간 후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선택적 함묵증과 사회적 불안 장애를 겪었으며, 학교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4월 16일,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그는 범행 전 NBC 뉴스에 보낸 자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으며, 그의 글과 행동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부 한국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조승희를 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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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조승희 |
|---|---|
| 한글 | 조승희 |
| 로마자 표기 | Jo Seunghui |
| 문화어 표기 | Cho Sŭnghŭi |
| 영어 표기 | Seung-Hui Cho |
| 출생일 | 1984년 1월 18일 |
|---|---|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
| 사망일 | 2007년 4월 16일 |
| 사망지 |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
| 사망 원인 | 총기 자살 |
| 동기 | 불확실, 염세주의 또는 집단 괴롭힘에 대한 보복 가능성 |
| 모교 |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
| 날짜 | 2007년 4월 16일 |
|---|---|
| 시간 | 오전 7시 15분, 오전 9시 40분 – 9시 51분 |
| 대상 | 학생, 교사 및 기타 직원 |
| 장소 |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캠퍼스 |
| 사망자 | 33명 (자신 포함) |
| 부상자 | 23명 (총상 17명) |
| 사용 무기 | 발터 P22 글록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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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연속살인자 -
우범곤
1982년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동거녀와의 다툼 후 격분한 경찰관 우범곤이 총기를 탈취하여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으로, 경찰의 초동 대처 미흡과 경찰관의 범행이라는 점에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내무부 장관 사임과 경찰 관련 규정 강화의 계기가 되었다. -
대한민국의 연속살인자 -
김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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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창초등학교 동문 -
로티플 스카이
로티플 스카이는 2001년 하늘로 데뷔하여 매드모아젤 활동 후 2010년 로티플 스카이로 솔로 데뷔, 류시원 프로듀싱으로 "No Way"를 발표하고 빅뱅 협업, OST 참여, 영화 및 드라마 출연 등 활동했으나 2013년 사망한 가수이다. -
서울신창초등학교 동문 -
봉태규
봉태규는 2003년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시작하여 영화 신인연기자상 수상 후 드라마, 영화,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미국의 연속살인자 -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켜 13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한 범인들로,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
미국의 연속살인자 -
찰스 휘트먼
2. 어린 시절 및 교육
조승희는 1984년 1월 18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지금의 아산시 온양동)에서 태어났다. 1992년 9월 조승희 가족은 자녀들에게 더 나은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당시 8세였던 조승희와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2년 동안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지하 주택에서 살았다. 조승희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했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수입밖에 얻지 못했다. 이민 후 가족은 처음에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살다가, 워싱턴 대도시 지역으로 이사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 거주 지역 중 하나였다. 조승희의 가족은 워싱턴 D.C.에서 서쪽으로 약 약 40.23km 떨어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서부 센터빌에 정착했다. 조승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센터빌에서 드라이 클리닝 사업을 시작했다. 조승희와 그의 가족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미국 영주권자가 되었다. 조승희의 부모는 지역 기독교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조승희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부모의 강한 기독교 신앙을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2.1. 가족의 우려
대한민국에 남아 있던 조승희의 가족들은 그의 어린 시절 행동에 대해 우려했다. 조승희의 친척들은 그가 선택적 함묵증이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승희의 삼촌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조승희의 외삼촌은 조승희를 "추운" 사람으로 묘사했고, 8살 때부터 가족의 걱정거리였다고 말했다. 조승희를 두 번 만난 고모는 조승희가 극도로 수줍어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모는 조승희가 다른 면에서는 "행실이 좋다"고 여겼고, 구두 명령과 단서들을 쉽게 따랐다고 덧붙였다. 고모는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후 조승희의 누나에 대한 소식은 자주 들었지만 조승희에 대한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2007년 8월 30일 ABC 뉴스 나이트라인 인터뷰에서 조승희의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조승희의 행동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조승희의 할아버지는 조승희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안기려고 다가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2.2. 학교에서의 행동
조승희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샹틸리에 있는 포플러 트리 초등학교에 다녔다. 5학년 때 조승희를 만났던 김경원에 따르면, 조승희는 포플러 트리 초등학교에서 3년 과정을 1년 반 만에 마쳤으며, 수학과 영어를 잘해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의 예로 지목했다고 한다. 김경원은 조승희가 평소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옷을 잘 입는 소년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한 지인은 조승희가 2학년 때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울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성질을 부리곤 했다고 말했다.
1999년 8학년 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국제적인 뉴스가 되었고 조승희는 그것에 구속되었다. 조승희는 학교 과제에서 콜럼바인을 반복하고 싶다는 글을 썼다. 학교 측은 조승희의 누나에게 연락을 취했고, 조승희는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다. 조승희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졌다.
조승희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두 곳의 중학교(오몬드 스톤 중학교,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에 다녔다. 8학년까지, 그는 특정 상황 및 특정 개인에게 말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불안 장애와 선택적 함묵증을 진단 받았다. 고등학교 내내, 그는 수줍음과 특이한 언어 패턴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의 영어 수업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크리스 데이비드에 따르면, 조승희는 고개를 숙이고 요청되었을 때 말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몇몇 학생들은 조승희가 웨스트필드에서 왕따를 당하고 조롱을 당했던 사례를 상기했지만, 대부분은 그를 내버려두고 나중에 그의 분노를 몰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조승희에게 큰 영감의 원천을 제공할 것이다. 조승희는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를 우상화했다. 조승희는 2003년 웨스트필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3. 선택적 함묵증 진단
사건 직후, 조승희의 가족들은 그가 자폐증인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조승희가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는 알려진 기록은 없다. 2007년 8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승희가 선택적 함묵증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2007년 8월 발표된 버지니아 공대 리뷰 패널 보고서는 조승희가 중학교 2학년(8학년) 봄에 이러한 진단을 받았고, 그의 부모는 약물치료와 치료를 통해 그를 치료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 조승희는 "감정 장애"로 분류되어 특수 교육에 배치되었다. 그는 구두 발표와 수업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고 한 달에 50분씩 언어 치료를 받았다. 그는 조승희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정신건강 치료를 계속 받았다.
조승희의 부모는 그를 교회에 데리고 갔다. 센터빌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에 따르면 조승희는 성경을 이해하는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3. 버지니아 공대 시절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 1학년 때 팸플린 경영대학에서 제공하는 비즈니스 정보기술 학부에 등록했고, 3학년 때 영어를 전공했다. 총격 당시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 코크레인 홀 바로 서쪽에 위치한 하퍼 홀 스위트 2121에서 룸메이트 5명과 함께 살았다.
니키 조반니 교수는 2005년 가을, 한 시 수업에서 조승희를 가르쳤는데, 그의 행동이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여 수업에서 제외시켰다. 조승희는 여학생들의 책상 아래 다리를 촬영하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시를 지어 여학생들을 위협했다. 루신다 로이 학과장은 조승희에게 시학 입문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행동이 때때로 "오만하고 불쾌하다"고 묘사하며 그를 돕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로이 학과장은 조승희의 행동과 글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와 일대일 작업을 시작했지만, 곧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었다.
동료 학생들은 조승희를 "누군가가 그를 맞이하면 반응하지 않을" 조용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2005년과 2006년에 코크레인 홀에서 조승희와 함께 방을 쓴 적이 있는 앤디 코치와 존 아이드는 조승희가 반복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코치는 조승희가 밤늦게 자기 방 문간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과, 자신에게 "조승희의 형, '물음표'"라는 이름으로 괴롭히는 휴대 전화 통화를 반복적으로 한 사건을 묘사했다.
코치와 아이드는 조승희가 적어도 세 건의 스토킹 사건에 연루되었고, 그 중 두 건은 버지니아 공대 경찰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3.1. 기본 정보
버지니아 공대 1학년 때, 조승희는 팸플린 경영대학에서 제공하는 비즈니스 정보기술 학부에 등록했다. 3학년 때 영어를 전공했다. 총격 당시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 코크레인 홀 바로 서쪽에 위치한 하퍼 홀 스위트 2121에서 룸메이트 5명과 함께 살았다.
3.2. 학교 관계자와의 관계
니키 조반니 교수는 2005년 가을, 한 시 수업에서 조승희를 가르쳤다. 조반니 교수는 조승희의 행동이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수업에서 제외시켰다. 조승희는 여학생들의 책상 아래 다리를 촬영하고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시를 지어 여학생들을 위협했다. 조반니는 "그와 함께 하기 전에 기꺼이 사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루신다 로이 학과장은 조승희에게 시학 입문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행동이 때때로 "오만하고 불쾌하다"고 묘사하며 그를 돕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로이 학과장은 조승희의 행동과 글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와 일대일 작업을 시작했지만, 곧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게 되었다. 로이 학과장이 당국에 조승희의 행동을 통보한 후, 조승희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촉구했으나, 조승희는 그 요청을 따르지 않았다.
리사 노리스 문예창작 교수는 조승희에게 '고급 소설 쓰기'와 '현대 소설'을 가르쳤고, 그의 불안한 태도에 익숙해졌다.
3.3. 학생들과의 관계
동료 학생들은 조승희를 "누군가가 그를 맞이하면 반응하지 않을" 조용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하퍼홀에서 조승희와 스위트룸을 함께 썼던 카란 그레달은 조승희가 창문 옆에 있는 나무 로커에 앉아 아래 잔디밭을 응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과 2006년에 코크레인 홀에서 조승희와 함께 방을 쓴 적이 있는 앤디 코치와 존 아이드는 조승희가 반복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코치는 조승희가 밤늦게 자기 방 문간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과, 조승희가 코치에게 "조승희의 형, '물음표'"라는 이름으로 괴롭히는 휴대 전화 통화를 반복적으로 한 사건을 묘사했다. 코치는 여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도 이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코치와 아이드는 조승희의 소지품을 뒤져 주머니칼을 찾았지만 위협적인 물건은 발견하지 못했다. 코치는 또한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학교에서 조승희로부터 받은 전화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조승희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치와 이드는 조승희가 적어도 세 건의 스토킹 사건에 연루되었고, 그 중 두 건은 버지니아 공대 경찰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11월 27일에 발생한 첫 번째 스토킹 사건에서, 조승희는 여학생에게 인스턴트 메시지를 보내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그 메시지들에 실제적인 폭력 위협은 없었지만, 단순히 성가신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13일에 밝혀진 두 번째 스토킹 사건에서, 조승희는 코치의 여자 친구와 연락을 취했고, 그녀의 문간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썼다. 같은 날 오후 조승희는 코치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살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코치는 조승희가 자살할까 봐 아버지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 둘 다 캠퍼스 당국과 접촉했다.
4. 정신 감정
조승희는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과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8학년 무렵, 조승희는 특정 상황에서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 불안 장애의 일종인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줍음, 특이한 말투, 그리고 민족성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
1999년 조승희가 9학년이 되던 해,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조승희는 이 사건에 매료되어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를 우상화했다. 그는 학교 과제에서 "콜럼바인을 반복하고 싶다"고 썼고, 이로 인해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졌다.
조승희는 선택적 함구증 진단을 받았으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약물 치료와 치료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는 "정서 장애"로 특수 교육을 받았고, 구두 발표와 수업 대화에서 면제되었으며 언어 치료를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말까지 정신 건강 치료를 계속 받았다.
조승희의 가족은 조승희의 함구증이 자폐증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자폐증 진단 기록은 없으며, 버지니아 공대 검토 위원회 보고서는 고등학교에서 자폐증 진단을 배제했다. 한 임상 심리학자는 조승희가 자폐증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리학 저널의 2017년 논문은 조승희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조승희의 부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를 교회에 데려갔다. 센터빌 한인 장로교회의 한 목사는 조승희가 성경을 이해하는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완전한 문장을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니키 조반니는 조승희의 행동이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여 수업에서 내보냈으며, 그의 글이 "위협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루신다 로이는 조승희의 글이 매우 충격적이라고 판단하여 경찰과 대학 행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승희가 명시적인 위협을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로이는 조승희에게 여러 번 상담을 받으라고 말했고, 조승희가 "한 번은 외롭고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른 교수들도 조승희의 불안한 태도를 알고 있었고 상담을 권했다. 일부 교수들은 조승희가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경찰에 신고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거나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었다"고 추측했다.
조승희는 대학 첫 해에는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마지막 해에는 매우 고립되었다. 룸메이트들은 조승희가 은둔형이었고 상호 작용을 피했다고 보고했다. 조승희는 "젤리"라는 가상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의 수면 패턴이 이상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조승희는 두 명의 여성 학생을 스토킹한 혐의로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 경찰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았다.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11월 27일에 발생했으며, 조승희는 전화 통화와 직접 방문으로 한 여성 학생에게 접근했고, 학생은 경찰에 신고했다. 두 번째 사건은 2005년 12월 13일에 알려졌으며, 조승희는 다른 여학생에게 AIM을 통해 연락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그녀의 문패에 적었다. 같은 날 늦게, 조승희는 룸메이트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금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했다. 조승희가 자살할까 봐 걱정한 룸메이트는 캠퍼스 당국에 연락했고, 조승희는 뉴 리버 밸리 지역사회 서비스 위원회로 이송되었다.
4.1. 법원 명령 정신 감정
2005년 12월 13일, 조승희는 뉴 리버 밸리 커뮤니티 서비스 위원회에 의해 "정신적으로 병들어 입원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승희를 진찰한 의사는 조승희가 자살 사상을 부인하고 사고 장애 증세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달리 감정이 평탄하고 우울했다고 말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임박한 위험이 있다는 의혹을 받은 조승희는 버지니아주 래드포드에 있는 캐리온 세인트 앨번스 행동 건강 센터에 임시 구금되었다.
폴 바넷 버지니아 특별재판관은 조승희가 정신 질환의 결과로 자신에게 임박한 위험이 있음을 증명하고 대신 외래 환자 치료를 권했다. 2005년 12월 14일, 조승희는 바넷 판사가 "법원에서 명령한 모든 권장 치료법을 따르라"는 지시를 받고 외래 환자 기준으로 정신 건강 치료를 받도록 명령받은 후 정신 건강 시설에서 풀려났다.
조승희는 입원 중인 정신건강시설에서 무의식적으로 헌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지니아 법에 따라 총을 구입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법률에 따르면, "법무관은 정신 질환이 있고 입원이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구금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버지니아 공무원과 다른 법률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바넷의 명령은 조승희가 "정신적 결함"으로 판단되어 연방법에 따라 총기 구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버지니아 주가 연방법의 요건을 시행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4.2. 가족의 노력
버지니아 공대 리뷰 패널 보고서는 조승희의 가족이 이른 사춘기에 그를 위한 도움을 확보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조명했다. 조승희의 어머니는 그가 수업에 대한 무관심, 결석, 사회적 행동에 대해 점점 더 걱정했으며, 2006년 여름 동안 버지니아 북부의 여러 교회에서 조승희를 위해 도움을 구했다.
워싱턴 원마드 장로교회(우드브리지 소재) 이동철 목사에 따르면, 조승희의 어머니는 조승희의 문제로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동철 목사는 "조승희의 문제는 영적인 힘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그와 같은 몇몇 사람들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 교회에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철 목사의 교회 신도들은 심지어 조승희의 어머니에게 그가 "악령적인 힘"에 시달렸고 "배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회가 가족을 만나기 전에,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4학년을 시작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5.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경 EDT (UTC 11시 15분),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 내 기숙사인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4층에서 에밀리 J. 힐셔와 라이언 C. "스택" 클라크 두 학생을 살해했다. 이후 조사관들은 조승희의 신발에서 힐셔의 방 바깥 복도에서 발견된 혈흔 자국을 발견했다.
2시간 30분 뒤, 조승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무장하고 NBC 뉴스에 사진, 디지털 비디오 파일, 문서 등이 담긴 소포를 부쳤다. 오전 9시 45분경, 캠퍼스를 가로질러 교내 교실 건물인 노리스 홀에 도착했고, 9분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을 총으로 쏴 30명이 사망했다. 경찰이 접근하자 조승희는 노리스 211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총상을 입고 자살했다.
경찰은 출입국 기록과 범행에 사용된 총기의 지문을 대조해 조승희의 신원을 확인했다. 조승희가 노리스 홀과 유일하게 아는 인연은 사회학 수업을 이 건물 2층 교실에서 들은 것뿐이었다. 초기 수사 당시 경찰은 조승희가 노리스홀 총기난사 사건과 웨스트앰블러 존스턴홀 사건의 가해자라고 단정하지 않았지만, 법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두 사건 모두 동일한 총기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목격자인 학생 트레이 퍼킨스는 조승희가 범행 당시 "얼굴에 조금의 감정도 없었다"고 전했다.
5.1. 범행 준비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경, 조승희는 대학교 공동 교육 기숙사인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 4층에서 에밀리 J. 힐셔와 라이언 C. 스택 클라크 두 학생을 살해했다. 조사관들은 조승희의 신발에서 힐셔의 방 바깥 복도에서 발견된 혈흔 자국을 발견했다.
이후 조승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무장하고 NBC 뉴스에 사진, 디지털 비디오 파일, 문서 등이 담긴 소포를 부쳤다. 오전 9시 45분경, 그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교내 교실 건물인 노리스 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9분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을 총으로 쏴 30명이 사망했다. 경찰이 접근하자 조승희는 노리스 211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총상을 입고 자살했다. 그는 범행 전 사격장에서 최대 3번 훈련을 받았다.
조승희는 선택적 함구증으로 진단받았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2007년 8월, 중학교 2학년 봄의 일이었다. 부모는 그를 위해 투약 및 심리 치료를 요청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정서 장애"라는 구분 아래 특수 교육을 받았으며, 구두 발표나 수업 중 대화는 면제되었고, 언어 치료를 받았다. 그 후 3학년 말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조승희의 가족 두 명과 그의 친구 한 명은 그의 함구증이 자폐증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조승희가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는 알려진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보고서는 조승희의 고등학교가 그가 받은 자폐증 진단을 무시했다고 한다.
5.1.1. 공격에 사용된 무기
2007년 2월과 3월에 조승희는 범행에 사용된 무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2월 9일, 조승희는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 본사를 둔 연방 허가 총기 판매업체인 TGSCOM 주식회사로부터 .22구경 발터 P22 반자동 권총을 구입했고, 3월 13일에는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의 로아노크 화기로부터 9mm 글록 19 반자동 권총을 구입했다.
조승희는 총기상들에게 미국 영주권 카드, 버지니아 거주 증명서, 수표책을 제시하고 30일 대기 기간을 거쳐 두 권총 구입을 완료했다. 2007년 3월 22일, 아이다호 엘크 리지 슈팅 서플라이즈에서 이베이를 통해 발터 P22 권총용 10발 탄창 두 개를 구입했다.
조승희는 연조직에 들어가면 팽창하여 무장하지 않은 표적에 대한 완전 금속 자켓 탄환보다 더 큰 조직 손상을 주는 자켓 중공점 탄환도 구입했다.
5.1.2. 범행 동기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조승희가 '부잣집 아이들', '방탕한', '속인 사기꾼' 등을 비판한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에서 조승희는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초기 언론 보도들은 그가 동료 학생인 에밀리 힐셔에게 집착했고, 그녀가 그의 구애를 거절하자 격분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사법조사관들은 힐셔가 조승희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조승희와 그의 희생자 중 한 명인 로스 알라메딘은 2006년 가을 같은 영어 수업을 들었다. 그는 한 비디오에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를 언급하며 "에릭과 딜런과 같은 순교자들"이라고 말했다.
6. 사건의 여파
2007년 4월 16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미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재미 한인 사회는 가해자가 한국계 이민자라는 사실에 큰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사건 직후, 조승희의 범행 동기와 배경을 밝히기 위한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수사 결과, 조승희가 범행 전 NBC 뉴스에 자신의 범행을 예고하는 사진, 비디오 파일, 문서 등을 담은 소포를 보냈고, 범행에 사용한 총기에서 불법적으로 일련번호가 삭제되었으며, 범행 전 사격 연습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FBI은 조승희의 신용 카드 거래 내역을 추적하여 범행 한 달 전 딜리버리 헬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이용한 정황을 포착했으나, 성적인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정신 질환 치료 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재미 한인 사회는 이 사건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6.1. 범죄 수사
사법당국은 조승희가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와 버지니아 공대 노리스 홀에서 글록 19 권총을 발사한 사실을 탄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승희는 살인사건 당시 170여 발의 총격을 가했으며,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최소 17개의 빈 탄창을 발견했다. 수사 과정에서 연방 법률 조사관들은 발터 P22와 조승희가 난동 당시 사용한 글록 19 권총 모두 일련번호가 불법으로 제거돼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수사관들은 3월 중순 조승희가 캠퍼스에서 약 64.37km 떨어진 로어노크의 사격장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6.2. 조승희의 진료기록 검토
조사 과정에서 조승희가 법원 명령에 따른 정신 건강 치료를 받았는지 여부도 조사 대상이었다. 버지니아 주 수사관들은 조승희의 의료 기록을 검토한 후, 그가 외래 환자로서 강제 정신 건강 치료 명령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사관들은 또한 법원이나 뉴 리버 밸리 지역 봉사단 모두 조승희가 명령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사건을 감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뉴리버밸리커뮤니티서비스는 조승희 사건에 대한 질의에 "해당 시설이 정신건강 치료 제공자로 법원명령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며 "법원 명령 후 치료에서 퇴원하면 책임이 종료됐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플린 버지니아텍 쿡상담센터 소장은 법원이 조승희에게 외래 정신 건강 치료를 받도록 요구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사무실에 알리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플린은 "법원이 강제적으로 외래진료를 명령할 때 그 명령은 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버지니아 주법은 지역사회 서비스 이사회에 정신 건강 환자에 대한 '특정 치료 과정 및 프로그램 추천'과 '그 사람의 준수 여부 모니터링'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했지만, 조승희는 외래 환자로서의 정신 건강 의무 치료에 대한 법원 명령 준수를 면했다. 조승희는 2005년 12월 14일 외래 환자로서의 정신 건강 의무 치료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법정에 소환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는 몇 주 전부터 조승희의 진료 기록을 찾았지만, 사생활 보호법 때문에 버지니아텍은 조승희가 사망한 뒤에도 조승희의 가족으로부터 허락 없이 진료 기록을 공개할 수 없었다. 2007년 6월 12일, 조승희의 가족은 그의 의료 기록을 위원회에 공개했지만, 조사위원회는 그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법원의 명령에 의해 추가 정보를 입수했다. 조승희는 촬영 몇 년 전부터 파록세틴을 처방받았으나 1년 만에 복용을 중단했다. 이후 공식 부검에서 나온 독성학 실험 결과, 총살 당시 그의 체내에 정신과나 어떤 종류의 불법 약물도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8월, 조승희의 가족은 버지니아 공대가 2009년 7월에 발견한 기록과 함께 이 기록을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허락했다.
6.3. 조사 패널 보고서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여파로 캠퍼스 총기 난사 사건을 조사할 위원회를 임명했으며, 조사단은 약 2~3개월 후에 조사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었다. 케인 주지사는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을 패널로 초청해 "조승희의 정신건강 이력과 경찰이 비극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검토했다. 케인 주지사는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을 둘러싼 긴급 대응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컬럼바인 고등학교 사태를 조사했던 회사를 고용했다.
조사위의 최종 보고서는 조승희의 정신 건강 이력을 상세히 기술하는 데 2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할애했다. 보고서는 버지니아 공대 교육자, 행정관, 정신건강 담당자들이 조승희가 3학년 때부터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경고 신호였던 수많은 사건들로부터 "점들을 연결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학교의 정신 건강 시스템이 "자원 부족, 사생활 보호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 수동성 때문에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버지니아의 정신 건강법을 "불법"이라고 불렀고, 버지니아의 정신 건강 서비스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버지니아의 부적절한 신원조회 요건 때문에 조승희가 연방법을 위반해 총기 2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6.4. 조승희 가족의 반응
조승희의 누나는 가족을 대표하여 성명을 발표하고, 동생의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더불어 희생자들과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희생자 가족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녀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변호사를 통해 "이 사람은 내가 함께 자라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그에게 현저한 폭력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승희의 할아버지는 "내 손자 승희는 매우 내성적이어서, 그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08년, 사건 1주년 기사에서 워싱턴 포스트는 조승희의 가족을 추적했으며, 사건 후 몇 달 동안 숨어 지내다가, 후에 점차 집으로 돌아와 "가상적으로 가족이 세상과 격리된" 것처럼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들의 집의 몇몇 창문은 종이로 덮여 있고, 나머지 창문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외부와의 연락 창구는 지정된 연방 수사국(FBI) 수사관과 변호사뿐이며, 한국에 있는 친척들의 방문조차 거부하고 있다.
7. NBC 뉴스로 보낸 미디어 패키지
조승희는 2007년 4월 16일 두 차례의 총격 사건 사이에 버지니아 공과대학교 캠퍼스 인근 우체국을 방문해 NBC 뉴스 뉴욕 본사에 DVD가 든 소포를 부쳤다. 이 소포에는 동영상, 사진, 그리고 자신의 행동 이유를 설명하는 성명서가 담겨 있었다. USPS 익스프레스 메일 봉투에 "A. Ismail"로 주소가 지정된 패키지는 우편번호와 주소가 잘못되어 배송이 지연되었다. 조승희의 팔에는 붉은 잉크로 '이메일 축'이라는 글자가 휘갈겨져 있었다.
이후 인터넷에서는 조승희의 팔에 적힌 'Ismail Ax', 소포에 적힌 'A. Ishmael', 그리고 소포 내용물에 포함된 'axishmiel'의 의미에 대한 추측이 분분했다. 'Ismail Ax'가 이슬람교에서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를 없애기 위해 도끼로 우상을 부순 이야기나, 알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희생하라고 요구했다는 믿음과 관련하여 신의 분노를 의미한다는 가설이 있었다. 그러나 조승희가 무슬림이었다는 보고는 없었으며, 그는 스스로를 기독교 용어로 지칭하며 예수의 십자가형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와는 관련이 없다.
그 외에도 'Ismail-Ax'가 드럼 해들리의 시 "염소 목장주"에 나오는 "이스마엘의 도끼"를 언급하는 것,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화자인 이스마엘을 언급하거나, 다니엘 퀸의 책에 등장하는 고릴라 이스마엘을 언급하는 것이라는 가설도 있었다. 또한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프레리의 영웅인 이스마엘 부시를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었다.
7.1. 자료 공개
2007년 4월 18일, NBC는 조승희가 보낸 소포를 받고 관계 당국에 연락했다. NBC는 소포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조승희의 의사소통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영상의 사진과 영상이 여러 뉴스에 방송되자 버지니아 공대 학생들과 교수진은 조승희의 난동을 미화하는 것이 모방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조승희에게 살해된 학생 중 한 명인 메리 리드의 아버지 피터 리드는 언론에 조승희의 성명서 방송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영상과 사진, 성명서를 검토한 경찰 관계자는 미디어 패키지 내용이 조승희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고 이해하는 데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자료를 검토한 마이클 웰너 박사는 조승희의 고함소리가 그의 난동을 촉발시켰을지도 모르는 정신 질환에 대한 통찰력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7.2. 내용물
조승희는 2007년 4월 16일 두 차례의 총격 사건 사이에 우체국을 방문하여 NBC 뉴스 뉴욕 본사에 DVD가 든 소포를 부쳤다. 여기에는 동영상, 사진, 그리고 자신의 행동 이유를 설명하는 성명서가 담겨 있었다. 소포는 4월 17일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잘못된 우편번호와 주소 때문에 하루 늦게 도착했다.
조승희는 선언문에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범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를 언급했고, 자신에게 가해진 불특정 잘못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쾌락주의와 기독교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비디오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내가 이럴 필요는 없었어. 떠날 수도 있었어. 도망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아니, 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아니면 내 자식들, 네가 엿먹인 내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난 그들을 위해서 한 거야. 때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당신은 오늘 천억번의 기회와 피할 방법이 있었지만, 당신은 내 피를 흘리기로 결정했어요. 당신은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을 주었어요. 결정은 네 것이었어. 이제 손에는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어 있다.
>
> 가학적인 속물들이야 나는 개똥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당신은 내 심장을 망가뜨리고, 내 영혼을 강간하고, 내 양심에 불을 질렀다. 넌 그게 네가 소멸시키고 있는 한 불쌍한 아이의 삶이라고 생각했겠지. 너희 덕분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어서, 나약하고 무방비 상태의 백성 세대에게 영감을 주겠다.
>
> 얼굴에 침을 뱉고 목에 쓰레기를 처박은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자신의 무덤을 파는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목이 귀에서 귀까지 베인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살아서 횃불을 든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십자가에 못박혀 굴욕을 당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그리고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피를 흘려 죽도록 남겨두었다구요? 당신은 평생 단 한순간의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다.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능한 한 많은 고통을 우리 삶에 주입하고 싶었나요? 원하는 건 다 가졌잖아 벤츠로는 부족했어, 이 양반들 금목걸이로는 부족했어, 이 속물들아. 당신의 신탁 자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요. 보드카와 코냑으로는 부족했어 너의 모든 방랑자들로 충분하지 않았어. 당신의 쾌락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어요. 넌 모든 걸 가졌어.
>
> 넌 날 십자가에 못박는 걸 좋아했어 당신은 내 머릿속에 암을 유발하고, 내 심장을 두렵게 하고, 내 영혼을 강간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
> 때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했다. 어쩔 수 없이
MSNBC 법무특파원 피트 윌리엄스는 조승희가 "논리적 통치가 부족했다"고 말해 조승희가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영상에서 조승희는 또한 교내에서 기만적인 사기꾼, 부유한 아이들, 물질주의, 쾌락주의를 비난했고, 다른 영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무방비"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8. 글
버지니아 공대 보고서에 따르면, 조승희는 "특히 시를 쓰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책을 출판하려고 시도했다. AOL에 조승희가 쓴 Richard McBeef 와 Mr. Brownstone 이라는 두 편의 희곡이 제공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 약 1년 전, 조승희는 "단편 소설 입문" 수업 과제로 대규모 학교 살인 사건을 계획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논문을 썼다. 2006년 3월 버지니아 공대 제22회 연례 연구 심포지엄 및 박람회에서 조승희는 폭력적인 구절이 포함된 "Spear me down, Heaven"이라는 제목의 시를 제출했다.
CBS 뉴스는 "조승희의 폭력적인 글쓰기 [그리고] 외톨이 기질은 시크릿 서비스의 총격범 프로필에 부합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시크릿 서비스는 학교 총격범의 가장 전형적인 행동 특성 중 하나로 폭력적인 글쓰기를 언급했다.
8.1. 예문
버지니아 공대 보고서에 따르면, 조승희는 "특히 시를 쓰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책을 출판하려고 시도했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조승희의 전 동급생이 AOL에 조승희가 쓴 두 편의 희곡을 제공했는데, AOL 관계자는 희곡의 진위 여부가 온라인에 게시되기 전에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희곡에는 2006년에 쓰여진 Richard McBeef 와 Mr. Brownstone이 포함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 약 1년 전, 조승희는 "단편 소설 입문" 수업 과제로 논문을 썼는데, 이야기의 주인공이 계획한 대규모 학교 살인 사건에 대해 썼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버지니아 공대 패널은 조승희가 쓴 논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2006년 3월 버지니아 공대 제22회 연례 연구 심포지엄 및 박람회에서 조승희는 "Spear me down, Heaven"이라는 제목의 시를 고급 학부생 부문에 제출했는데, 이 시에는 "나 자신을 없애고 싶다"와 "쪼개서 말려 죽여라, 나를 먹어라"와 같은 폭력적인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지니아 공대 패널은 미공개 논문의 사본을 버지니아 주 경찰과 버지니아 공대만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지니아 주 경찰은 논문을 공개할 수 없다고 보고했고, 버지니아 공대는 총격 사건 이후 논문의 내용에 대해 서로 논의했다. 논문 누락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후, 버지니아 공대는 2007년 8월 25일 주 후반에 패널에 논문 사본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에드워드 팔코는 조승희가 그의 수업에서 발표한 두 편의 희곡을 모두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팔코는 그 희곡들에 대해 "글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의사소통의 한 형태는 된다."라고 말했다. 조승희를 가르쳤던 또 다른 교수는 그의 작품을 "매우 청소년적"이고 "우스꽝스럽다"고 묘사하며 "슬랩스틱 코미디"와 "폭력적인 요소"를 시도했다고 평했다. 급우들은 "그 희곡들이 정말 병적이고 기괴했다"고 생각했다.
CBS 뉴스는 "조승희의 폭력적인 글쓰기 [그리고] 외톨이 기질은 시크릿 서비스의 총격범 프로필에 부합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콜럼바인 학살 이후 실시된 2002년 미국 시크릿 서비스 연구를 언급한 것으로, 폭력적인 글쓰기는 학교 총격범의 가장 전형적인 행동 특성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미국 시크릿 서비스는 "가장 큰 규모의 [학교 총격범]이 시, 에세이 또는 일기장 항목과 같은 자신의 글에서 폭력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Something Awful은 리처드 맥비프에 대한 패러디 "CliffsNotes" 항목을 만들었다.
8.1.1. 리처드 맥비프
2006년, 수업 과제로 조승희는 '리처드 맥비프'라는 제목의 짧은 단막극을 썼다. 이 연극은 아버지가 보트 사고로 사망한 13세 소년 존과 존의 의붓아버지인 전직 축구 선수 리처드 맥비프(존은 계속해서 "딕"이라고 부른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리처드가 '아버지 대 아들' 대화를 시도하던 중 존의 무릎에 손을 대자, 소년은 갑자기 의붓아버지가 자신을 성추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은 새아버지가 자신의 친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비난하고 리처드를 죽이겠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존, 리처드, 수(존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큰 논쟁에 휘말린다. 리처드는 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차로 물러나지만, 존은 리처드가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며 의붓아버지와 함께 차에 타 그를 괴롭힌다. 이 연극은 존이 새아버지의 목에 바나나맛 시리얼바를 쑤셔 넣으려고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극적인 성격의 리처드는 "순전히 모멸된 상처와 분노에서" 소년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반응한다.
8.1.2. 미스터 브라운스톤
조승희는 다른 수업 과제를 위해 두 번째 연극 "미스터 브라운스톤"을 썼다. 이 작품에서 그는 45세 수학 교사인 브라운스톤 씨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표현하며, 카지노에 앉아 있는 17세 세 명의 모습을 그렸다. 이들은 브라운스톤 씨가 자신들을 학대한다고 주장하며 "암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존이 슬롯머신에서 수백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리자, 브라운스톤 씨는 학생들의 욕설 속에서 카지노 관계자들에게 이들이 미성년자이며 불법적으로 당첨 티켓을 주웠다고 알린다. 브라운스톤 씨는 카지노 관계자들에게 "정말 대박을 터뜨린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말한다. "미스터 브라운스톤"은 헤로인을 소재로 한 건즈 앤 로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며, 조승희의 연극 한 페이지는 이 노래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
8.2. 단편소설
2006년 봄, 조승희는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단편소설 입문(Intro to Short Fiction) 수업 과제로 주인공의 계획으로 일어난 집단 학교 살인 사건을 다룬 논문을 썼으나, 주인공은 살인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사건 이후, 버지니아 공대 패널은 이 논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일부 위원들이 논문 누락에 불만을 제기하자, 버지니아 공대는 2007년 8월 25일 주 후반에 논문 사본을 위원회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패널은 논문을 전달받았지만,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8.3. 글에 대한 반응
에드워드 팰코 버지니아 공대 연극작문학과 교수는 조승희가 그의 수업에서 두 가지 연극을 썼다고 인정했다. 팰코는 연극에 대해 "좋은 글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사소통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조승희를 가르친 또 다른 교수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폭력의 요소'를 시도하며 자신의 작품을 '매우 사춘기'와 '실리'로 표현했다.
반 친구들은 "그 연극은 정말 병적이고 기괴했다"고 믿었다. 조승희의 전 동창인 이언 맥팔레인은 "조승희의 희곡을 읽을 때 악몽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그 연극들은 정말 뒤틀리고, 흉기를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폭력이었다."라고 말했다. 조승희와 같은 반이었던 선배 스티븐 데이비스는 리처드 맥비프를 읽고 룸메이트에게 "이런 사람이 교실로 걸어 들어가 사람들을 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반 학생이었던 안나 브라운은 친구들과 함께 조승희가 "폭발적인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그런 남자"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CBS 뉴스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사태 이후 실시된 2002년 미국 비밀경호국(US Secret Service) 연구를 언급하며, 조승희의 폭력적 글쓰기와 외톨이 상태는 비밀경호국 저격범의 전형적인 행동 특성 중 하나라고 밝혔다. 미국 비밀경호국은 "가장 많은 학교 총기난사 집단이 시, 에세이, 저널 등 자신의 글에 폭력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며 연구를 마무리했고, 학교 총기난사범들은 다른 폭력 매체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낮았다.
9. 논란
조승희가 벌인 총기 난사 사건은 인종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2015년부터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승희를 '조승희 장군', '제너럴 조' 등으로 부르며 일종의 '콘셉트' 놀이를 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조승희는 평소 빈부 격차와 인종 차별에 대한 불만이 컸으며, 그가 남긴 '선언문'에는 인종차별적 언어폭력, 신체 폭력, 물건 투척 등 심각한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5년에는 한 10대 청소년이 교실에 불을 지르는 사건(사망자 없음)이 발생했는데, 그는 "조승희처럼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일부 한국 인터넷 사용자들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미화하고 조승희를 "조 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2017년 유나이티드 항공 3411편 강제 퇴거 사건 이후에는 많은 한국 인터넷 사용자들이 "조승희 장군이 그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군' 칭호는 2014년 디시인사이드의 한 포럼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조승희를 인종차별, 특히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맞선 영웅으로 묘사했다. '장군'이라는 별명은 조승희가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착안, 그를 천재적인 전술가로 칭송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승희는 한국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식하는 반한 감정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