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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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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자사전은 한자의 자형, 음, 의미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배열한 책으로,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해 왔다. 중국의 사전은 자전, 운서, 훈고서, 유서로 분류되며,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의 《계림유사》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이다. 일본은 자서, 훈고, 운서 등의 형태를 거쳐, 근대 이후 포르투갈어 사전인 《일포사서》, 오츠키 후미히코의 《언해》, 《코지엔》과 같은 다양한 사전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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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 - 옥편
    옥편은 543년 고야왕이 편찬한 원본 옥편을 지칭하며, 자음 반절, 경서 및 고주 인용을 통해 자의를 설명하는 체례를 갖추고, 일본에 일부가 보존되어 있으며, 『대광익회옥편』, 『와옥편』, 『운회옥편』 편찬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 한국에서는 부수별 한자 사전을 옥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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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사전

2. 중국의 사전과 체계

사고전서의 소학류(小學類)에는 중국의 사전을 자서, 운서, 훈고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한자사전의 구분법이며 주로 낱자를 다룬다. 옛 중국어는 한 글자가 한 낱말인 경우가 많아서 낱자를 다뤄도 어휘를 충분히 다룰 수 있었다.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휘를 설명하는 사전이 필요해졌고 이는 사전(辭典/詞典)으로 부른다. 현대한어사전과 같은 서구 사전학의 영향을 받은 중국어사전은 병음을 중심으로 배열하여 전통적인 분류체계에서 벗어난다.

'''자전'''(字典) 혹은 자서(字書)는 한자의 자형(字形)에 따라 뜻과 음, 어원 등을 배열한 책이다. 설문해자, 옥편 등이 이에 해당되며, 강희자전 이후 주로 자전이라 불리었다. 자전은 부수로 나뉜 뒤 획수로 배열되는 부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후한의 허신이 설문해자(서기 100년경)에서 구축한 방법론이다.

중국어사전의 가장 오랜 형태는 초급 한자 교재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부분만 남아있거나 다른 책에 인용된 형태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서주 선왕대의 역사가들이 편집한 사주편(史籀篇)은 이후 설문해자에 실린 주문(籀文) 이체자의 원형을 담고 있었다.

2세기경의 설문해자는 540부수로 한자를 나누었고, 543년에 쓰인 옥편은 542부수로 재분류했다. 1615년 매응조(梅膺祚)가 쓴 자휘/字彙중국어는 540부수를 214부수로 줄이고 획수의 개념을 만들어 부수 안에서의 한자 배열에 규칙을 두었다. 1716년강희자전은 214부수 체계로 만들어진 사전의 결정판으로, 이 부수법은 지금까지도 이용된다.

대표적인 자전으로는 다음이 있다.



'''운서'''(韻書)는 한자의 소리(字音), 특히 운(韻)을 기준으로 글자를 배열한 사전으로, 주로 한시 창작에 필요한 운자를 찾기 위해 사용되었다. '절운(切韻, 601년)을 시초로 보며 광운(廣韻, 1011년)과 집운(集韻, 1037년)으로 확대되었다. 운서는 음절의 각운이나 성조에 따라 낱자를 분류하며, 현대의 각운 사전이나 역순 사전에 해당된다.

운서의 문제점은 운을 알아야만 찾을 수 있어 지식인들만 사용 가능했다는 점이다. 용감수감(龍龕手鑑)의 경우 부수를 운으로 배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운서로는 절운 (1만 2158자), 당운, 광운 (2만 6194자), 예부운략 (9590자), 집운 (5만 3525자), 오음집운, 평수운, 고금운회거요 (1만 2652자), 운부군옥, 중원음운, 홍무정운, 오거운서, 패문시운, 패문운부, 등이 있다.

'''훈고서'''(訓詁書)는 한자의 의미(字義)를 기준으로 글자를 분류하고, 고전(古典)의 해석을 돕는 사전이다. 대표적인 훈고서로는 《이아》(爾雅), 《방언》(方言), 《석명》(釋名) 등이 있다. 《이아》는 사물을 19가지 의미 분류로 나누어 설명한 최초의 훈고서이다. 한대의 《소이아》(小爾雅)는 13 분류로 줄였고, 북위의 《광아》(廣雅)는 19 분류를 유지했다. 북송의 《비아》(埤雅)는 동식물을 8분류로 나누었으나, 찾아보기에 좋은 분류는 아니어서 비효율적이었다.

《이아》와 다른 체계를 가진 훈고서로 방언과 석명이 있다. 방언은 말 그대로 방언을 다룬 사전이었고, 석명은 익살스러운 뜻풀이를 담고 있었다.

유서(類書)는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가진 책으로, 자연 현상, 사물의 명칭, 고전의 용례 등을 분류하여 수록했다.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사전이라기보단 전집같은 느낌을 주었다. 예문유취(藝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覧), 영락대전(永樂大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패문운부(佩文韻府) 등이 있다.

2. 1. 자전 (字典)

자전(字典) 혹은 자서(字書)는 한자의 자형(字形)에 따라 뜻과 음, 어원 등을 배열한 책이다. 설문해자, 옥편 등이 이에 해당되며, 강희자전 이후 주로 자전이라 불리었다. 자전은 부수로 나뉜 뒤 획수로 배열되는 부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후한의 허신이 설문해자(서기 100년경)에서 구축한 방법론이다.

중국어사전의 가장 오랜 형태는 초급 한자 교재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부분만 남아있거나 다른 책에 인용된 형태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서주 선왕대의 역사가들이 편집한 사주편(史籀篇)은 이후 설문해자에 실린 주문(籀文) 이체자의 원형을 담고 있었다.

2세기경의 설문해자는 540부수로 한자를 나누었고, 543년에 쓰인 옥편은 542부수로 재분류했다. 1615년 매응조(梅膺祚)가 쓴 자휘/字彙중국어는 540부수를 214부수로 줄이고 획수의 개념을 만들어 부수 안에서의 한자 배열에 규칙을 두었다. 1716년강희자전은 214부수 체계로 만들어진 사전의 결정판으로, 이 부수법은 지금까지도 이용된다.

대표적인 자전으로는 다음이 있다.

2. 2. 운서 (韻書)

운서(韻書)는 한자의 소리(字音), 특히 운(韻)을 기준으로 글자를 배열한 사전으로, 주로 한시 창작에 필요한 운자를 찾기 위해 사용되었다. '절운(切韻, 601년)을 시초로 보며 광운(廣韻, 1011년)과 집운(集韻, 1037년)으로 확대되었다. 운서는 음절의 각운이나 성조에 따라 낱자를 분류하며, 현대의 각운 사전이나 역순 사전에 해당된다.

운서의 문제점은 운을 알아야만 찾을 수 있어 지식인들만 사용 가능했다는 점이다. 용감수감(龍龕手鑑)의 경우 부수를 운으로 배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운서로는 절운 (1만 2158자), 당운, 광운 (2만 6194자), 예부운략 (9590자), 집운 (5만 3525자), 오음집운, 평수운, 고금운회거요 (1만 2652자), 운부군옥, 중원음운, 홍무정운, 오거운서, 패문시운, 패문운부, 등이 있다.

2. 3. 훈고서 (訓詁書)

훈고서는 한자의 의미(字義)를 기준으로 글자를 분류하고, 고전(古典)의 해석을 돕는 사전이다. 대표적인 훈고서로는 《이아》(爾雅), 《방언》(方言), 《석명》(釋名) 등이 있다. 《이아》는 사물을 19가지 의미 분류로 나누어 설명한 최초의 훈고서이다. 한대의 《소이아》(小爾雅)는 13 분류로 줄였고, 북위의 《광아》(廣雅)는 19 분류를 유지했다. 북송의 《비아》(埤雅)는 동식물을 8분류로 나누었으나, 찾아보기에 좋은 분류는 아니어서 비효율적이었다.

《이아》와 다른 체계를 가진 훈고서로 방언과 석명이 있다. 방언은 말 그대로 방언을 다룬 사전이었고, 석명은 익살스러운 뜻풀이를 담고 있었다.

유서(類書)는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가진 책으로, 자연 현상, 사물의 명칭, 고전의 용례 등을 분류하여 수록했다.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사전이라기보단 전집같은 느낌을 주었다. 예문유취(藝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覧), 영락대전(永樂大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패문운부(佩文韻府) 등이 있다.

3. 한국의 사전

계림유사(鷄林類事)는 고려 시대에 송나라 사신 손목이 편찬한 고려어 어휘집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사전이다.[2] 356개의 어휘가 실려있다. 고려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명나라 때의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1408)는 596개의 조선어 어휘를 한자로 기록해놓은 책이다.[2] 이후 향약구급방(1236)이나 향약집성방(1433) 등에서 각종 약초명의 목록을 볼 수 있다.[2] 이후 실학연구가 심화되면서 사물의 명칭을 모은 초기 백과사전 형태인 물명류가 다수 집필되었다.[2] 이만영이 출간한 재물보(1789)나 유희의 물명고(1820년대)가 대표적이고 정약용의 《청관물명고》는 다수의 필사본이 전한다.[2] 정약전자산어보도 특화된 형태의 물명류 책이다.[2] 각종 이두 사전과 역관들의 학습을 위한 사전인 유해류(《역어유해》·《역어유해보》(중국어), 《왜어유해》(일본어), 《몽어유해》·《몽어유해보편》(몽골어), 《동문유해》(만주어), 《방언집석》(5개 언어(우리나라, 중국, 일본, 몽골, 만주)), 《한청문감》(만주어·중국어) 등)도 우리말 연구에 유용한 옛사전들이다.[2]

운서류로는 고려말로 추정되는 《삼운통고》가 가장 오랜 것이며, 이후 《삼운통고보유》(1702), 《증보삼운통고》(18세기) 등으로 보완되었다.[2] 삼운통고류와 사성통고, 최세진의 《사성통해》(1517), 《홍무정운역훈》, 《속첨홍무정운》 등은 모두 중국음만을 실었던 운서들이다.[2] 한국음까지 실린 운서에는 동국정운(1448), 홍계희의 《삼운성휘》(1751), 박성원의 정음통석(1787), 규장각 학사들이 지은 《규장전운》(1796) 등이 있다.[2] 삼운성휘는 한자 배열의 순서를 훈몽자회 한글자모 순에 맞추었다.[2]

자전으로는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 한호석봉천자문(1583), 이식의 《초학자훈증집》(자훈을 증보간행, 1664), 정조대의 《전운옥편》 등이 있다.[2] 박선수는 《설문해자익징》(설문해자의 주해, 1912)을 펴내기도 했다.[2] 이 외에도 백과사전류가 있다.

근래 한국의 자전 중 주목할만한 것으로 한한대사전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한자대사전의 한국측 성과이다.[2]

3. 1. 초기 사전

계림유사(鷄林類事)는 고려 시대에 송나라 사신 손목이 편찬한 고려어 어휘집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어 사전이다.[2] 356개의 어휘가 실려있다. 고려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명나라 때의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1408)는 596개의 조선어 어휘를 한자로 기록해놓은 책이다.[2] 이후 향약구급방(1236)이나 향약집성방(1433) 등에서 각종 약초명의 목록을 볼 수 있다.[2] 이후 실학연구가 심화되면서 사물의 명칭을 모은 초기 백과사전 형태인 물명류가 다수 집필되었다.[2] 이만영이 출간한 재물보(1789)나 유희의 물명고(1820년대)가 대표적이고 정약용의 《청관물명고》는 다수의 필사본이 전한다.[2] 정약전자산어보도 특화된 형태의 물명류 책이다.[2] 각종 이두 사전과 역관들의 학습을 위한 사전인 유해류(《역어유해》·《역어유해보》(중국어), 《왜어유해》(일본어), 《몽어유해》·《몽어유해보편》(몽골어), 《동문유해》(만주어), 《방언집석》(5개 언어(우리나라, 중국, 일본, 몽골, 만주)), 《한청문감》(만주어·중국어) 등)도 우리말 연구에 유용한 옛사전들이다.[2]

운서류로는 고려말로 추정되는 《삼운통고》가 가장 오랜 것이며, 이후 《삼운통고보유》(1702), 《증보삼운통고》(18세기) 등으로 보완되었다.[2] 삼운통고류와 사성통고, 최세진의 《사성통해》(1517), 《홍무정운역훈》, 《속첨홍무정운》 등은 모두 중국음만을 실었던 운서들이다.[2] 한국음까지 실린 운서에는 동국정운(1448), 홍계희의 《삼운성휘》(1751), 박성원의 정음통석(1787), 규장각 학사들이 지은 《규장전운》(1796) 등이 있다.[2] 삼운성휘는 한자 배열의 순서를 훈몽자회 한글자모 순에 맞추었다.[2]

자전으로는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 한호석봉천자문(1583), 이식의 《초학자훈증집》(자훈을 증보간행, 1664), 정조대의 《전운옥편》 등이 있다.[2] 박선수는 《설문해자익징》(설문해자의 주해, 1912)을 펴내기도 했다.[2] 이 외에도 백과사전류가 있다.

근래 한국의 자전 중 주목할만한 것으로 한한대사전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한자대사전의 한국측 성과이다.

3. 2. 물명류 (物名類)

실학 연구가 심화되면서 사물의 명칭을 모은 초기 백과사전 형태인 물명류가 다수 집필되었다.[2] 이만영이 출간한 《재물보》(1789)나 유희의 《물명고》(1820년대)가 대표적이고 정약용의 《청관물명고》는 다수의 필사본이 전한다.[2]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특화된 형태의 물명류 책이다.[2]

3. 3. 유해류 (類解類)

유해류(類解類)는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을 위해 편찬된 사전이다. 《계림유사》는 고려어를 중국의 손목이 듣고 한자로 기록한 것으로 356개의 어휘가 실려있다.[2] 이후 역관들의 학습을 위한 사전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역어유해》·《역어유해보》 (중국어), 《왜어유해》(일본어), 《몽어유해》·《몽어유해보편》(몽골어), 《동문유해》(만주어), 《방언집석》(5개 언어(우리나라, 중국, 일본, 몽골, 만주)), 《한청문감》(만주어·중국어) 등이 우리말 연구에 유용한 옛 사전들이다.[2]

3. 4. 운서류 (韻書類)

한국의 운서는 중국의 운서를 참고하여 편찬되었으며, 한글 창제 이후에는 한글로 한자의 음을 표기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2] 대표적인 운서로는 《삼운통고》, 《동국정운》(1448), 홍계희의 《삼운성휘》(1751) 등이 있다.[2] 《삼운성휘》는 한자 배열 순서를 최세진의 훈몽자회 한글 자모 순서에 맞추었다.[2] 고려말로 추정되는 《삼운통고》가 가장 오래된 운서이며, 이후 《삼운통고보유》(1702), 《증보삼운통고》(18세기) 등으로 보완되었다. 《삼운통고》류와 최세진의 《사성통해》(1517) 등은 모두 중국음만을 실었던 운서들이다.[2]

3. 5. 자전류 (字典類)

고려 때의 어휘를 기록한 계림유사는 한국에서 가장 이른 언어사전 중 하나이다.[2] 이후 조선관역어(1408)는 596개의 조선어 어휘를 한자로 기록했다.[2] 향약구급방(1236)이나 향약집성방(1433) 등에서는 약초명 목록을 볼 수 있다.[2] 실학 연구가 심화되면서 사물의 명칭을 모은 물명류가 다수 집필되었는데, 이만영재물보(1789), 유희의 물명고(1820년대), 정약용의 《청관물명고》, 정약전자산어보 등이 대표적이다.[2] 이두 사전과 역관 학습용 사전인 유해류(《역어유해》·《역어유해보》(중국어), 《왜어유해》(일본어), 《몽어유해》·《몽어유해보편》(몽골어), 《동문유해》(만주어), 《방언집석》(5개 언어), 《한청문감》(만주어·중국어) 등)도 우리말 연구에 유용하다.[2]

운서류로는 고려말로 추정되는 《삼운통고》가 가장 오래되었고, 《삼운통고보유》(1702), 《증보삼운통고》(18세기) 등으로 보완되었다.[2] 《삼운통고》류와 최세진의 《사성통해》(1517), 《홍무정운역훈》, 《속첨홍무정운》 등은 중국음만 실었다.[2] 한국음까지 실린 운서에는 동국정운(1448), 홍계희의 《삼운성휘》(1751), 박성원의 정음통석(1787), 규장각 학사들의 《규장전운》(1796) 등이 있다.[2] 《삼운성휘》는 한자 배열 순서를 훈몽자회 한글 자모 순에 맞추었다.[2]

자전으로는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 한호석봉천자문(1583), 이식의 《초학자훈증집》(자훈 증보 간행, 1664), 정조 때의 《전운옥편》 등이 있다.[2] 박선수는 《설문해자익징》(설문해자 주해, 1912)을 펴냈다.[2]

근래 한국의 자전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한한대사전》이 있다.[2]

4. 일본의 사전

일본의 사전은 한자와 가나를 함께 사용하며, 자서(字書), 운서(韻書), 훈고(訓詁)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일본 최초의 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승려 구카이(空海)가 편찬한 《전예만상명의(篆隷万象名義)》이다. 중국의 《옥편(玉篇)》을 기초로 만든 것이다. 승려 쇼쥬(昌住)가 편찬한 한자사전인 《신찬자경(新撰字鏡)》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자를 자형으로 분류한 자서(字書)이다. 이후 유취명의초(類聚名義抄)로 이어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헤이안 시대 중기 미나모토노 시타고(源順)가 편찬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는 의미별 분류 사전으로, 항목이 다양하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백과사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계통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 백성들의 일반인들의 문자 해독력이 좋아지면서 보급된 《하학집》(下学集)이나 《절용집》(節用集) 같은 사전 등이 있다.

남북조 시대의 취분운략(聚分韻略)이 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말기인 1603년예수회 선교사들이 최초의 사전인 일포사서/Vocabvlario da Lingoa de Iapampt(日葡辞書)를 만들었다. 《일포사서》는 포르투갈어를 당시 일본어 음운으로 기록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에도 시대에는 절용집이나 오라이모노(往来物)를 기초로 다수의 사전이 발행되었다. 그중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会)》나 《고금요람고》(古今要覧稿) 등은 백과사전으로 불릴만한 내용을 담고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오츠키 후미히코(大槻文彦)의 언해(言海)가 편찬되었다. 오츠키는 서양의 언어이론(특히 웹스터 사전)을 기초로 일본어의 언어이론을 체계화하고 언해를 지었다. 이후 언해를 모방한 사전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패전 후에 신무라 이즈루(新村出)가 출간한 《코지엔(広辞苑)》을 비롯해 독특한 뜻풀이로 알려진 야마다 다다오(山田忠雄)외가 편찬한 《신명해국어사전》(新明解国語辞典) 등 다양한 사전이 나왔다.

4. 1. 자서 (字書)

일본 최초의 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승려 구카이(空海)가 편찬한 《전예만상명의(篆隷万象名義)》이다. 중국의 《옥편(玉篇)》을 기초로 만든 것이다. 승려 쇼쥬(昌住)가 편찬한 한자사전인 《신찬자경(新撰字鏡)》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자를 자형으로 분류한 자서(字書)이다. 이후 유취명의초(類聚名義抄)로 이어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4. 2. 훈고 (訓詁)

헤이안 시대 중기 미나모토노 시타고(源順)가 편찬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는 의미별 분류 사전으로, 항목이 다양하여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백과사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계통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 백성들의 일반인들의 문자 해독력이 좋아지면서 보급된 《하학집》(下学集)이나 《절용집》(節用集) 같은 사전 등이 있다.

4. 3. 운서 (韻書)

남북조 시대의 취분운략(聚分韻略)이 있다.

4. 4. 근대 이후의 사전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말기인 1603년예수회 선교사들이 최초의 사전인 일포사서/Vocabvlario da Lingoa de Iapampt(日葡辞書)를 만들었다. 《일포사서》는 포르투갈어를 당시 일본어 음운으로 기록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에도 시대에는 절용집이나 오라이모노(往来物)를 기초로 다수의 사전이 발행되었다. 그중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会)》나 《고금요람고》(古今要覧稿) 등은 백과사전으로 불릴만한 내용을 담고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오츠키 후미히코(大槻文彦)의 언해(言海)가 편찬되었다. 오츠키는 서양의 언어이론(특히 웹스터 사전)을 기초로 일본어의 언어이론을 체계화하고 언해를 지었다. 이후 언해를 모방한 사전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패전 후에 신무라 이즈루(新村出)가 출간한 《코지엔(広辞苑)》을 비롯해 독특한 뜻풀이로 알려진 야마다 다다오(山田忠雄)외가 편찬한 《신명해국어사전》(新明解国語辞典) 등 다양한 사전이 나왔다.

5. 현대 사전의 분류

참조

[1] 서적 An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Lexicography Walter de Gruyter
[2] 뉴스 우리나라 국어사전 편찬의 역사 http://www.kuk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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