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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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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적판은 불법, 비공식 또는 무허가 녹음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며, 금주법 시대에 술을 밀수한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196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록 음악 부틀렉은 밥 딜런의 미발표 곡을 담은 "The Great White Wonder" 앨범으로 대중화되었다. 라이브 부틀렉이 흔하며, 아티스트 참여 없이 배포되는 개인 또는 스튜디오 녹음도 있다. 해적판은 카세트 테이프와 CD-R의 등장, 인터넷을 통한 공유로 더욱 확산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해적판 산업이 확장되었다. 1980년대에는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가 사용되었고, 1990년대에는 CD 제작이 증가하고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거래가 활발해졌다. 부틀렉은 저작권 및 관련 법률 위반으로 간주되며, 아티스트와 음반사는 공식 발매, 테이핑 허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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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Hate Myself and Want to Die"는 너바나가 1993년에 녹음하여 컴필레이션 앨범에 처음 수록한 곡으로, 원래 싱글 B-사이드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으며, 자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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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
개요
유형비공식 음반
다른 이름해적판
사제 음반
언오피셜 릴리스
프라이빗 릴리스
레어 트랙
설명상업적 또는 홍보용으로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은 음반, 콘서트, 또는 다른 음원 녹음물
정의 및 특징
기원원래는 금주법 시대의 술병에 붙은 상표를 의미
불법적이거나 허가받지 않은 제품이라는 의미로 확장됨
음악 산업에서의 의미아티스트나 음반사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제작 및 배포되는 음반
주로 라이브 공연, 데모 녹음, 스튜디오 세션, 방송 녹음 등이 포함됨
법적 지위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자료를 무단으로 복제 및 배포하는 행위는 불법
많은 국가에서 해적판 제작 및 판매는 처벌 대상
해적판의 유형
라이브 음반콘서트나 공연 실황을 녹음한 음반
팬들에 의해 직접 녹음되거나,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녹음되기도 함
데모 음반아티스트가 정규 음반 발매 전에 제작하는 데모 음반
음반사 관계자나 동료 음악가들에게 배포되어 의견을 수렴하는 용도로 사용
스튜디오 아웃테이크정규 음반 제작 과정에서 녹음되었지만 최종 음반에 포함되지 않은 미발표 트랙
팬들 사이에서 높은 희소성으로 인해 인기가 높음
라디오 방송 녹음라디오 방송 중 아티스트의 공연 실황이나 인터뷰 등을 녹음한 자료
음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희귀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님
해적판의 유통
초기 유통 경로주로 음반 수집가나 팬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거래
우편 주문, 음반 교환 모임, 소규모 음반 가게 등을 통해 유통
인터넷의 영향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해적판의 유통이 더욱 활발해짐
온라인 커뮤니티, 파일 공유 사이트, 경매 사이트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통
디지털 해적판MP3, FLAC 등 디지털 음원 파일 형태로 유통되는 해적판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저작권 침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듦
해적판의 합법성 문제
저작권 침해해적판은 아티스트, 작곡가, 음반사 등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음원을 복제, 배포,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됨
처벌해적판 제작 및 판매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음
민사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음
예외적인 경우공정한 이용(fair use)에 해당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음
교육, 연구, 비평 등의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합법으로 인정될 수 있음
해적판의 긍정적 측면
희귀 음원 접근성 향상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은 희귀한 음원을 팬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아티스트의 초기 음악 스타일이나 실험적인 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줌
음악적 다양성 증진주류 음반 시장에서 벗어난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활성화에 기여
음반 업계의 대응
저작권 보호 강화저작권법을 강화하고 해적판 단속을 강화
불법 복제 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
공식 음원 제공 확대미발표 음원이나 라이브 음원 등을 공식적으로 발매하여 팬들의 수요를 충족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음원을 합법적으로 제공

2. 정의 및 어원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긴 부츠 다리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1]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제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용어는 바이닐 LP, 실버 CD 또는 기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미디어 또는 자료를 포함하여 불법, 비공식 또는 무허가 녹음의 포괄적인 용어가 되었다. 대체 용어인 ROIO( "Recording of Indeterminate/Independent Origin"의 약자) 또는 VOIO(Video...)는 녹음 소스 및 저작권 상태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핑크 플로이드 수집가들 사이에서 생겨났다.[1]

초기의 록 부틀렉은 제목이 고무 도장으로 찍힌 단순한 슬리브 형태로 나왔으나, 곧 경쟁업체와 제조업체를 구별하기 위해 더 정교한 포장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포장 및 데스크톱 출판 기술의 발달로 일반인도 "공식"처럼 보이는 CD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카세트 테이프와 CD-R의 출현으로 일부 부틀렉은 전문적인 제작 시도 없이 개인적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부틀렉 공유가 가능해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Who's Zoo''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출시되지 않은 더 후의 초기 싱글과 B 사이드를 모았다. 여러 Trademark of Quality 부틀렉과 마찬가지로, 윌리엄 스타우트가 커버 아트를 제공했다.


부틀렉은 공식적으로 출시된 녹음을 무단 복제하여 종종 공식 제품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가짜'' 또는 ''무허가'' 녹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음반 회사는 관리 범위를 벗어나고 대가를 받지 않는 ''모든'' 레코드를 부틀렉을 포함하여 위조품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부틀렉 제작자들은 부틀렉 및 위조 녹음 시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부틀렉의 전형적인 소비자는 해당 아티스트의 공식 릴리스를 대부분 또는 전부 구매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부틀렉은 공식 릴리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 후의 초기 싱글을 모은 ''Who's Zoo'' 부틀렉은 미발표 자료를 출시하여 부틀렉 제작자를 이긴 공식 앨범 ''Odds And Sods''에 영감을 주었고, 1960년대 중반 밴드의 다양한 컴필레이션은 앨범 ''Nuggets'' 시리즈에 영감을 주었다.

2. 1. 정의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긴 부츠 다리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제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용어는 바이닐 LP, 실버 CD 또는 기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미디어 또는 자료를 포함하여 불법, 비공식 또는 무허가 녹음의 포괄적인 용어가 되었다.[1]

부틀렉은 공식적으로 출시된 녹음을 무단 복제하여 종종 공식 제품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가짜* 또는 *무허가* 녹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부 음반 회사는 관리 범위를 벗어나고 대가를 받지 않는 *모든* 레코드를 부틀렉을 포함하여 위조품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일부 부틀렉 제작자들은 부틀렉 및 위조 녹음 시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하며, 부틀렉의 전형적인 소비자는 어쨌든 해당 아티스트의 공식 릴리스를 대부분 또는 전부 구매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2. 어원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긴 부츠 다리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1]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제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용어는 바이닐 LP, 실버 CD 또는 기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미디어 또는 자료를 포함하여 불법, 비공식 또는 무허가 녹음의 포괄적인 용어가 되었다. 대체 용어인 ROIO( "Recording of Indeterminate/Independent Origin"의 약자) 또는 VOIO(Video...)는 녹음 소스 및 저작권 상태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핑크 플로이드 수집가들 사이에서 생겨났다.[1]

2. 3. 관련 용어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긴 부츠 다리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제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용어는 바이닐 LP, 실버 CD 또는 기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미디어 또는 자료를 포함하여 불법, 비공식 또는 무허가 녹음의 포괄적인 용어가 되었다.[1] ROIO( "Recording of Indeterminate/Independent Origin"의 약자) 또는 VOIO(Video...)는 녹음 소스 및 저작권 상태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핑크 플로이드 수집가들 사이에서 생겨난 대체 용어이다.

부틀렉은 공식적으로 출시된 녹음을 무단 복제하여 종종 공식 제품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가짜'' 또는 ''무허가'' 녹음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부틀렉 제작자들은 부틀렉 및 위조 녹음 시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부틀렉의 전형적인 소비자는 해당 아티스트의 공식 릴리스를 대부분 또는 전부 구매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흔한 유형은 라이브 부틀렉으로, 종종 청중 녹음이며 라이브 콘서트에 소리 녹음 장비를 밀반입하여 만들어진다. 많은 아티스트와 라이브 공연장은 이러한 형태의 녹음을 금지하지만, 1970년대부터 휴대용 기술의 가용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부틀렉 제작이 더 쉬워졌고, 소비자 장비가 정교해짐에 따라 이러한 녹음의 전반적인 품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상되었다. 많은 부틀렉은 라이브 또는 이전에 녹음된 라이브 공연의 FM 방송을 통해 시작되었다.[2] 다른 부틀렉은 라이브 공연에서 음향 시스템에 공급하기 위해 사용되는 멀티 트랙 믹싱 콘솔에서 직접 가져온 사운드보드 녹음일 수 있다.

일부 부틀렉은 아티스트의 참여 없이 배포된 개인 또는 전문 스튜디오 녹음으로, 데모 (음악), 진행 중인 작업 또는 폐기된 자료가 포함된다. 초기 록 부틀렉의 주제는 오래된 싱글과 B-사이드와 같은 삭제 (음악 산업) 레코드를 하나의 LP로 복사하여 모든 원본 녹음을 얻는 것보다 저렴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3. 역사

해적판의 역사는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비밀 녹음과 공유가 점차 상업적인 규모로 확대되었고, 기술 발전과 함께 형태와 유통 방식이 변화해왔다.


  • 초기 (1960년대 이전):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대에 그의 희곡 비공식 필사본이 출판되던 것에서 해적판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영화 사운드트랙이나 찰리 파커의 연주 녹음 등이 해적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 1960년대: 밥 딜런의 미발표곡 모음집 "The Great White Wonder"가 최초의 록 음악 해적판으로 인기를 얻었다. 롤링 스톤스의 ''Live'r Than You'll Ever Be''는 음질로 호평받으며 공식 앨범 발매를 촉진하기도 했다.
  • 1970년대: 스타디움 록의 인기와 함께 해적판 산업이 급성장했다. 레드 제플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인기 아티스트들의 공연 실황이 해적판으로 제작되었다.
  • 1980년대: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한 해적판 유통이 증가했고, DIY 윤리에 기반한 테이프 거래 문화가 확산되었다. 프린스의 ''블랙 앨범''은 발매 직전 철회되어 해적판으로 인기를 얻었다.
  • 1990년대 ~ 현재: CD 제작 증가와 함께 인터넷의 발달로 디지털 해적판이 등장했다. 냅스터와 같은 파일 공유 서비스는 해적판 유통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유튜브는 해적판 녹음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 아날로그 레코드 시대 이후: 미국에서 주로 제작되던 해적판은 CD 시대로 넘어오면서 단속이 느슨한 일본에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개인용 컴퓨터소프트웨어의 발달로 개인도 쉽게 CD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CD-R이나 DVD-R 형태의 해적판도 증가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다운로드 해적판도 증가하고 있으며, 미디어는 아날로그 레코드에서 CD, DVD로 변화했다.

3. 1. 초기 (1960년대 이전)

클린턴 헤일린에 따르면, 해적판 음반의 개념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비공식 필사본이 출판되곤 했다.[1] 당시 사회는 누가 작품을 썼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저작권 숭배"는 19세기에 확립되었다. 그 결과 1886년 최초의 베른 협약이 저작권을 다루게 되었다. 미국은 원래 조건에 동의하지 않아 19세기 말까지 많은 "해적판" 악보가 미국에서 출판되었다.[2]

영화 사운드트랙은 종종 해적판으로 제작되었다. 공식적으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이 하우스 오케스트라로 다시 녹음된 경우, 영화에서 직접 가져온 원본 오디오 녹음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한 예로, 주디 갈랜드가 베티 허튼으로 교체되기 전에 녹음한 ''애니는 총을 잡았다''(1950)의 해적판이 있었다.[3] 미국 레코딩 산업 협회(RIAA)는 무단 발매에 반대하며 제작에 대한 여러 차례 단속을 시도했다.[4] Wagern-Nichols Home Recordist Guild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많은 공연을 녹음하여 작가와 연주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판매했다. 이 회사는 아메리칸 방송 회사(ABC)와 컬럼비아 레코드 (당시 오페라 하우스에서 녹음한 공식 권리를 소유)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음반 제작 금지 가처분을 받았다.[5]

색소폰 연주자이자 찰리 파커의 팬인 딘 베네데티는 1947년과 1948년에 클럽에서 파커의 솔로 연주를 여러 시간 동안 테이프와 디스크 녹음으로 해적판으로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네데티는 이 녹음을 보관했고, 베네데티가 사망한 지 30년이 넘은 1988년에야 재발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재즈 신화"가 되었다. 이 녹음의 대부분은 나중에 1990년대에 모자이크 레코드에서 공식적으로 발매되었다.[3]

가장 초기의 해적판은 개인 수준에서 클래식 음악 등의 콘서트를 비밀리에 녹음하여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것을 동료들에게 배포했던 것이 시초로 여겨진다.

3. 2. 1960년대: 부틀렉의 대중화

''Kum Back''는 1969년 초 비틀즈의 녹음 모음집으로, 공식 발매된 ''Let It Be''보다 먼저 등장했다.


최초의 록 음악 부틀렉(해적판)은 1969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레코드 가게에 등장한 밥 딜런의 미발표곡 모음 레코드인 "The Great White Wonder"로 알려져 있다. 이 레코드는 재킷과 레이블이 모두 하얀색이었으며, 초판 8,000장이 완판되고 추가로 40,000장의 복제본이 유통되었다고 한다.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거의 사라졌던 밥 딜런1967년 말 ''존 웨슬리 하딩''을 발매하기 전까지의 활동으로 최초의 인기 있는 록 음악 부틀렉을 낳았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딜런이 공식적으로 발매하지 않은 곡으로 히트를 기록하면서 딜런의 원본 녹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특히 로스앤젤레스 지역 라디오에서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라디오 업계의 다양한 인맥을 통해 여러 선구적인 부트레거들은 음악 출판사에 배포하기 위한 미발표 딜런 곡들을 담은 릴 테이프를 구입하여 LP로 제작했다. 이들은 현금으로 지불하고 가명과 가짜 주소를 사용하며, 지역 음반 제작소를 설득하여 1,000에서 2,000장의 복사본을 은밀하게 찍어냈다. 음반 회사들의 주의를 끌 수 있었기에 슬리브를 상업적으로 인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LP는 ''Great White Wonder''가 고무 스탬프로 찍힌 평범한 흰색 커버로 발매되었다.[3] 이후 딜런은 수많은 릴리스와 함께 부트레깅되는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4]

롤링 스톤스의 ''Live'r Than You'll Ever Be''는 1969년 말 발매되어 ''롤링 스톤''에서 극찬을 받았다.


롤링 스톤스가 수년 만에 처음으로 1969년 미국 투어를 발표했을 때, "Dub"이라는 이름의 부트레거는 몇몇 공연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젠하이저 805 샷건 마이크와 우어 4000 릴 투 릴 테이프 레코더를 구입하여 공연장에 밀반입했다.[5] 그 결과물인 부트렉 ''Live'r Than You'll Ever Be''는 투어가 끝난 지 몇 주 후인 196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매되었고, 1970년 1월 ''롤링 스톤''에서 "훌륭하고, 존재감이 넘치며,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 모두 아름답게 포착... 궁극의 롤링 스톤스 앨범"이라고 극찬했다.[6] 이 부트렉은 수만 장이 팔렸는데, 이는 일반적인 클래식 또는 오페라 부트렉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으며,[7] 그 성공으로 인해 1970년 라이브 앨범 ''Get Yer Ya-Ya's Out!''가 공식 발매되었다. "Dub"은 Trade Mark of Quality (TMOQ 또는 TMQ) 부트렉 레코드 레이블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8]

1969년에는 비틀즈의 미발표 앨범 『GET BACK』을 수록한 "KUM BACK"도 발매되었는데,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히트 차트에 진입할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후, 해적판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록 아티스트,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스, 밥 딜런, 비틀즈의 해적판을 중심으로 융성하게 되었다.

3. 3. 1970년대: 부틀렉 산업의 확장

1970년대 미국에서 스타디움 록 또는 아레나 록 시대에 맞춰 해적판 산업은 급속히 확장되었다. Kornyfone과 TMQ와 같은 해적판 레이블들은 이윤을 위해 많은 수의 음반을 발행했다.[1] 록 아티스트들의 많은 추종자들은 바이닐로 비공식 녹음을 대량 생산하는 수익성 있는 시장을 창출했는데, 이는 갈수록 더 많은 팬들이 구매 의향을 보였기 때문이다.[2] 더욱이 콘서트에 몰려드는 엄청난 군중들로 인해 비밀 녹음 장비의 존재를 감시하는 것이 어려웠다. 레드 제플린은 라이브 콘서트의 강세와 빈도로 인해 해적판 제작자들에게 인기 있는 대상이 되었으며, 1970년 LA 포럼에서 녹음된 ''Live on Blueberry Hill''은 매니저 피터 그랜트를 분노하게 할 정도로 성공했다.[3] 브루스 스프링스틴E 스트리트 밴드는 1970년대에 수많은 콘서트를 라디오 방송을 위해 녹음했고, 그 결과 많은 스프링스틴 해적판이 나왔다.[4]

핑크 플로이드 해적판 ''The Dark Side of the Moo''는 초기 싱글과 B-사이드 곡들을 모았다. 출시 당시에는 미국에서 "Astronomy Domine"의 스튜디오 버전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이 곡은 미국에서 발매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해적판 제작자들은 1960년대에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록 팬들이 해체되어 재결합할 가능성이 없는 밴드들의 희귀하거나 미발표된 녹음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야드버즈의 아웃테이크를 모은 해적판인 ''Golden Eggs''의 발매는 매우 인기를 얻어 해적판 제작자가 밴드의 키스 렐프와 속편인 ''More Golden Eggs''를 위해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5] 아카이브 라이브 공연이 인기를 얻었으며, 1966년 맨체스터 자유 무역관에서 딜런호크스(나중에 더 밴드가 됨)의 공연(로열 앨버트 홀로 잘못 알려짐)은 음질과 콘서트의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했다.[6]

로스앤젤레스에는 메이저 레이블을 위해 음반을 제작하는 데 우선순위가 밀려 대형 공장이 과부하되었을 때만 작업을 받는 여러 개의 음반 마스터링 및 프레싱 공장이 있었다. 이 프레싱 공장들은 의심스러운 합법성을 가진 해적판을 제작하여 수입을 올렸다.[7] 때로는 음반 회사 임원들이 올 때 해적판 작업을 숨기기도 했고(이 경우 인쇄된 레이블에 아티스트와 노래 이름을 표시할 수 있음), 다른 경우에는 허구의 이름을 가진 레이블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1974년 핑크 플로이드 해적판인 ''Brain Damage''는 밴드의 초기 이름 중 하나인 Screaming Abadab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8] 이러한 프레싱 공장에서 음반과 커버를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적판 제작자들은 상업 레이블에서는 발행하기 어려울 수 있는 작품과 패키징을 제작할 수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1962년 비틀즈함부르크의 스타 클럽에서 녹음한 것으로, ''The Beatles vs. the Third Reich''(초기 미국 앨범 ''The Beatles vs. the Four Seasons''의 패러디) 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녹음(대부분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발췌)을 담은 ''Elvis' Greatest Shit''이다.[9]

이 시대의 해적판 수집가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적판과 최근 발매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연례 지하 잡지인 ''Hot Wacks''에 의존했다. ''Hot Wacks''는 가짜 레이블이 있는 해적판에 대한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아티스트와 트랙 목록, 다양한 녹음의 출처와 음질에 대한 세부 정보를 포함했다.[10]

초기에는 해적판과 구매처에 대한 정보가 입소문을 통해 퍼졌다.[11] 선구적인 해적판 제작자 러버 더버는 그의 라이브 공연 해적판 녹음 사본을 ''롤링 스톤''과 같은 잡지에 보내 검토를 받으려고 했다. 밥 딜런의 음반 회사인 컬럼비아 레코드가 반대하자, 러버 더버는 자신이 단순히 음반 회사의 중개 없이 팬들에게 음악을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12] 1970년대 동안 대부분의 해적판 레코드는 품질이 좋지 않았으며, 많은 앨범 커버는 저렴한 복사에 불과했다. 패키징은 10년 말로 갈수록 더 정교해졌고 19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13] 펑크 록은 1970년대에 해적판 시장에 잠깐 진입했는데, 특히 섹스 피스톨스의 아웃테이크 모음집인 해적판 ''Spunk''가 그랬다. 이 앨범은 Sounds의 Chas de Whalley로부터 "자존심 있는 록 팬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앨범이라는 좋은 평을 받았다.[14]

3. 4. 1980년대: 카세트테이프와 DIY 문화

1980년대에는 오디오 카세트와 비디오테이프가 해적판 녹음을 유포하는 데 더욱 많이 사용되었는데, 개인 복사 장비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여러 복사본을 제작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5] 카세트는 또한 더 작고, 배송이 쉬웠으며, 바이닐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거나 거래할 수 있었다. 카세트 문화와 테이프 거래는 펑크 하위 문화의 DIY 윤리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테이프를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여러 개의 복사본을 만드는 명예 시스템에 의존했다.[5] 한동안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과 같은 주요 음악 행사장의 가판대에서는 불과 몇 시간 전에 공연했던 밴드들의 해적판 사운드보드 녹음본을 대량으로 판매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곧 가판대를 급습하여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응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말까지 페스티벌 해적판의 수는 감소했다.[5]

1980년대 가장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해적판 중 하나는 프린스의 ''블랙 앨범''이다. 이 앨범은 1987년 말에 일반적인 메이저 레이블 발매 예정이었지만, 발매 직전인 12월 1일에 프린스는 앨범을 철회하기로 결정하여 50만 장의 복사본을 폐기해야 했다.[6] 몇몇 선행 복사본이 이미 배송되었고, 이것이 해적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결국 앨범의 공식 발매로 이어졌다. 1980년대 말, 비틀즈의 스튜디오 아웃테이크를 담은 해적판 시리즈인 ''Ultra Rare Trax''는 컴팩트 디스크로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공식 스튜디오 발매와 비교할 수 있는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3. 5. 1990년대 – 현재: 디지털 시대의 부틀렉

1990년대 ''Ultra Rare Trax''의 성공 이후 해적판 CD 제작이 증가했으며, 수십 년 전 공연의 재발매도 이루어졌다. 독일과 이탈리아 회사들은 자국의 완화된 저작권법을 이용하여 많은 CD를 생산했고, 팬들이 쉽게 공연을 찾아 주문할 수 있도록 목록을 제공했다.[5] 1993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호주의 완화된 저작권법 때문에 상표법을 근거로 법적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은 "무단"으로 표시된 무단 녹음 발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1994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협정으로 1995년 1월 1일부터 "보호 격차"가 해소되었다.

이 시기 인터넷의 발달로 해적판 리뷰 사이트가 등장했고, 해적판의 품질 관리가 중요해졌다. 부정적인 리뷰는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적판은 규모가 커져 여러 장의 CD 패키지가 일반화되었다. 1999년에는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 녹음 세션 3시간 30분 분량을 담은 4장짜리 CD 세트가 발매되기도 했다.

영국 음반 산업 협회(BPI), 미국 레코드 협회(RIAA) 등의 단속 강화로 영리 목적의 비닐 및 CD 해적판 유통은 지하로 숨어들었다.[5] 물리적 해적판 제작은 저작권법이 느슨한 국가로 이동했고, 지하 채널, 이베이 같은 공개 시장, 전문 웹사이트를 통해 배포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이베이는 해적판을 금지했다.[7]

1990년대 후반, MP3, 리얼 오디오 같은 오디오 파일 형식의 등장과 인터넷 파일 공유로 디지털 해적판의 무료 거래가 증가하면서 물리적 해적판의 수요는 급감했다. 1999년 냅스터의 등장은 해적판 공유를 더욱 쉽게 만들었다. 오래된 아날로그 녹음은 디지털로 변환되었고, 해적판 CD 트랙은 컴퓨터로 리핑되었으며, 디지털 녹음으로 새로운 자료가 만들어져 공유되었다. 팬들은 노래 단위로 해적판을 검색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었다.[8] 밥 딜런은 팬들의 아카이브 녹음 다운로드를 허용했지만,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메탈리카는 냅스터가 로열티 지불 채널을 우회한다며 비판했다.

유튜브는 해적판 녹음의 주요 전달자가 되었다. 구글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의 "안전 항구" 조항에 따라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기에 소송 위험 없이 해적판 미디어를 호스팅할 수 있었다. 유튜브 폐쇄는 콘텐츠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콘서트 관객 녹음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롤링 스톤''에서 긍정적인 리뷰를 받기도 했다.[9] 빌랄의 미발표 2집 앨범 ''Love for Sale''은 2006년 유출되어 디지털 해적 시대의 가장 악명 높은 해적판 중 하나가 되었고,[10] 유튜브에 곡들이 남아 있다.[11] 라나 델 레이의 2006년 데모 앨범 ''Sirens''도 2012년 유튜브에 유출되었다.[12] 2010년 유튜브는 동영상 15분 제한을 삭제하여 전체 콘서트 업로드가 가능해졌다.[13]

아날로그 레코드 시대에는 미국에서 주로 제작되었지만, CD 시대에는 단속의 느슨함으로 인해 일본산 해적 CD가 주목받고 있다. 겉으로는 유럽제 등으로 판매되지만, 도쿄도신주쿠구니시신주쿠 7초메의 고타키바시 거리 일대에 있는 콜렉터즈 CD 가게에서 제조,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용 컴퓨터 보급과 소프트웨어 발달로 개인도 CD 제작이 쉬워져 CD-R이나 DVD-R (R반) 판매도 많아졌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개인 제작 CD를 복사해 판매하는 업자도 있고, 업자 제작 CD를 복사해 옥션 등에서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R반은 내구성과 음질 문제가 있어 수집 가치는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미디어는 아날로그 레코드에서 CD, DVD로 변화했고, 온라인 다운로드 해적판도 증가하고 있다.

4. 법적 문제 및 윤리적 쟁점

문학 및 예술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 협약은 1886년부터 문학, 과학, 예술 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해 왔다. 이 협약은 작곡가에게 공연권을 부여하고, 2차적 저작물의 사용 방식에 대한 통제권을 주며, 이러한 권리는 사후 최소 50년 이상 유지된다.[14] 곡이 퍼블릭 도메인에 있는 전통적인 편곡이라 해도 공연권은 침해될 수 있다.[15] 공연자의 권리는 전체 저작권보다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로마 협약은 공연 후 최소 20년의 기간을 설정한다.

미국에서는 1976년 저작권법이 모든 녹음에 저작권 보호를 확대하면서 해적판 제작자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법은 연방법 및 주법에 의해 해적판을 금지했다. ''미국 대 마르티뇽'' 사건에서 2004년 미국 지방 판사 해럴드 베어 주니어는 라이브 음악 해적판 판매 금지 부분을 무효화했지만,[16][17] 2007년 이 판결은 뒤집혔고, 미국 제2 순회 항소 법원은 해적판 방지 법규가 의회의 권한 내에 있다고 판결했다.[18]

1990년대부터 해적판 CD 제작이 증가했는데, 특히 독일, 이탈리아, 호주의 완화된 저작권법을 악용한 사례가 있었다.[5]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1993년 호주에서 상표법을 근거로 법적 이의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무단"으로 표시된 무단 녹음 발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GATT 1994 협정은 1995년 1월 1일부터 이러한 "보호 격차"를 해소했다.

인터넷 접근성이 증가하면서 해적판 리뷰 사이트가 등장했고, 품질 관리가 면밀히 검토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 녹음 세션 3시간 30분 분량을 담은 4장짜리 CD 세트가 발매되기도 했다.

영국 음반 산업 협회(BPI), 미국 레코드 협회(RIAA) 등의 단속 강화로 영리적인 해적판 유통업체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5] 물리적인 해적판 제작은 저작권법이 느슨한 국가로 이동했으며, 이베이와 같은 공개 시장 사이트와 전문 웹사이트를 통해 배포되었다. 2010년 말까지 이베이는 해적판을 금지했다.[7]

1990년대 후반, MP3 및 리얼 오디오와 같은 오디오 파일 형식의 등장과 냅스터와 같은 파일 공유 서비스의 등장으로 디지털 해적판 무료 거래가 증가하면서 물리적 해적판 수요가 감소했다.[8] 밥 딜런은 팬들이 아카이브 녹음을 다운로드하도록 허용했지만,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메탈리카는 냅스터가 로열티 지불 채널을 우회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유튜브는 해적판 녹음의 주요 전달자가 되었다. 구글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의 "안전 항구" 조항에 따라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믿고 해적판 미디어를 호스팅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콘서트 중 하나의 관객 녹음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롤링 스톤''에서 긍정적인 리뷰를 받기도 했다.[9] 빌랄의 미발표 2집 앨범 ''Love for Sale''은 2006년에 유출되어 디지털 해적 시대에 가장 악명 높은 해적판 녹음 중 하나가 되었다.[10][11] 라나 델 레이의 2006년 데모 앨범 ''Sirens''도 2012년 유튜브에 유출되었다.[12] 2010년, 유튜브는 동영상 15분 제한을 삭제하여 전체 콘서트가 업로드될 수 있게 되었다.[13]

많은 국가에서 해적판 유통은 불법이며 처벌 대상이다.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단속이 가능하지만, 국내 아티스트 신작 편집반을 판매한 경우 외에는 단속 사례가 거의 없었다. 1990년대에 니시신주쿠에 있던 해적판 취급점이 단속된 사례가 있었지만, 이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복제반(counterfeit盤)은 저작권법 위반 외에, 상표법·부정경쟁 방지법에도 위반되어 죄가 더 무겁다. 미국과 같이 지적 재산권 보호에 적극적인 국가에서는 해적판을 점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2000년대 전반, 비틀즈 음원 테이프를 대량 반출한 해적판 전문 업자가 현행범 체포된 사례도 있다. 2010년 시점의 저작권법 등에서는 구입하는 측은 위법은 아니지만,[26] 민사상 청구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며, 손해 배상 명령이나 파기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 수입 시 세관에서 발견되면 관세법에 의해 몰수·파기될 수 있다.

5. 아티스트 및 음반사의 대응

1990년대부터 해적판 CD 제작이 증가했으며, 특히 독일, 이탈리아, 호주의 완화된 저작권법을 악용한 사례가 많았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1993년 호주에서 상표법을 근거로 법적 이의를 제기했으나, 법원은 "무단"으로 표시된 무단 녹음 발매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GATT 1994 협정으로 이러한 "보호 격차"가 해소되었다.[5]

인터넷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해적판 리뷰 사이트가 등장했고, 품질 관리가 중요해졌다. 1999년에는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 녹음 세션 3시간 30분 분량을 담은 4장짜리 CD 세트가 발매되기도 했다.[8]

영국 음반 산업 협회(BPI), 미국 레코드 협회(RIAA) 등의 단속 강화로 해적판 유통은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이베이 등 온라인 মার্কেট플레이스를 통해 거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MP3, 리얼 오디오 등 디지털 파일 공유가 증가하면서 물리적 해적판 수요는 급감했다. 1999년 냅스터의 등장은 해적판 공유를 더욱 쉽게 만들었다.[7]

온라인 해적판 공유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밥 딜런은 팬들이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아카이브 녹음을 다운로드하도록 허용한 반면,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메탈리카는 냅스터에 대해 비판적이었다.[8]

유튜브는 해적판 녹음의 주요 전달 수단이 되었다. 유튜브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의 "안전 항구" 조항에 따라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해적판 미디어를 호스팅했다. 2010년 유튜브는 동영상 길이 제한을 15분에서 무제한으로 늘려, 전체 콘서트 영상 업로드가 가능해졌다.[13]

음반 회사들은 해적판을 "회색 지대" 또는 "반쯤 허용된" 라이브 녹음으로 묘사한다. 연구에 따르면 해적판 구매자들은 해당 아티스트의 열성 팬인 경우가 많았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팬들이 해적판을 구매하는 이유를 이해하지만, 품질 관리 부족과 이윤 추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5] 프랭크 자파는 해적판을 혐오하여 ''Beat the Boots!'' 박스 세트를 발매하고, 팬들이 해적판을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을 만들기도 했다.[5]

그레이트풀 데드는 라이브 쇼 테이핑을 허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상업적 해적판에는 반대했지만, 팬들 간의 테이프 교환은 밴드의 공동체 의식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1985년에는 공식적으로 라이브 테이핑을 지지하며 전용 구역을 설정하기도 했다.[5] 펄 잼, 피시, 데이브 매튜스 밴드 등도 테이핑을 용인했지만, 이윤 추구는 금지했다.[5]

많은 해적판 녹음이 പിന്നീട് 공식 발매되기도 했다. 1969년 존 레논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토론토 록앤롤 부활절 공연은 ''Live Peace in Toronto 1969''로 공식 발매되어 해적판 판매를 종식시켰다. 밥 딜런의 1966년 ''Royal Albert Hall'' 콘서트도 1998년 공식 발매되었다.[19]

은 웹사이트에서 100개의 부틀렉을 다운로드 판매하고 수익금을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에 기부했다. 킹 크림슨의 Discipline Global Mobile(DGM)은 콘서트 녹음을 다운로드로 판매하며, 팬 부틀렉을 기반으로 한 "공식 부틀렉"을 발매하기도 했다.[21] 메탈리카, 피시, 펄 잼 등은 콘서트의 즉석 라이브 부틀렉을 배포했다. 2014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콘서트에서 부틀렉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USB 스틱 판매를 발표했다.[24]

2012년 ''롤링 스톤''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아티스트들이 유튜브 등에서의 해적판 공연 단속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저스틴 비버는 트위터를 통한 비디오 클립 배포를 수용하여 팬층을 늘렸다.[13]

킹 기저드 앤 더 리저드 위저드는 공식 웹사이트에 부틀렉 발매 전용 섹션을 마련하고, 부틀렉 배포 및 판매를 허용하며, 비닐과 CD로 하드 카피를 제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25]

몇몇 뮤지션들은 해적판의 불법 유통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뮤지션대책
폴 매카트니윙스의 1975년~1976년 음원 유출에 대응하여 3매 세트 레코드 『윙스 오버 아메리카』(1976년)를 발매. 이후 대부분의 대규모 라이브 투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
그레이트풀 데드관객의 라이브 음원 무상 테이프 교환을 인정하고 녹음 공간을 확보. 단, 음원 매매는 금지.
프랭크 자파시중 해적판을 재현한 Beat the Boots!(1991년, 8매 세트), Beat the Boots! II(1992년, 7매 세트) 발매. 사후 미발표 라이브 음원 정규 발매 사업 지속.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 주재 디시플린 글로벌 모바일의 『킹 크림슨 컬렉터스 클럽』에서 해적판 라이브 음원을 정규 음반으로 판매.
도어즈웹 통신 판매 전문으로 미발표 라이브 음반 판매.
지미 헨드릭스웹 통신 판매 전문으로 미발표 라이브 음반 판매.
에머슨, 레이크 & 파머"전람회의 그림" 라이브 음원 해적판 회수 후, 1971년 뉴캐슬어폰타인 공연 녹음을 세 번째 앨범으로 발표.
펄 잼초기 강경 대응에서 공식 부트레그 발매로 전환. 이후 웹에서 전개.



영국 방송 협회(BBC) 방송 음원(예: 비틀즈, 야드버즈,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이나 MTVMTV 언플러그드 라이브, 미국의 킹 비스킷 플라워 아워(King Biscuit Flower Hour) 방송 라이브(예: 캔자스, 에머슨, 레이크 & 파머) 등이 정식 CD로 출시되기도 했다.

"공식 해적판(OFFICIAL BOOTLEG)" 등의 명칭으로 발매된 음원은, 음질, 기획, 곡목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해적판 대책" 뉘앙스로 뮤지션 측에서 다시 발매하는 경우가 있다.

뮤지션사례
비틀즈비틀즈 앤솔로지』 시리즈 및 오리지널 앨범 기념 에디션 발매, 전 멤버 참여 확보 및 단속 강화로 라이브 음원 외에는 일단락.
밥 딜런『로열 앨버트 홀』, 『할로윈 콘서트』 등 완전판 공식 발매. 1991년부터 『부트레그 시리즈』 발표(2019년 현재 제15집).
레드 제플린미발표곡 발매, 지미 페이지의 관리 강화로 현재 소강 상태.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이 신구 라이브 음원 순차 발매.
딥 퍼플각 단계 라이브 음원 순차 발매.
지미 헨드릭스전 밴드 멤버 참여 음원 관리, 필요 음원 순차 발매.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 킹 크림슨로버트 프립 등은 해적 CD 마니아로, 방일 시 니시신주쿠 등의 해적 CD 가게를 방문한다. 가게 측은 팬심과 불법 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해적 CD/비디오를 무료 증정하기도 한다.

뮤지션들의 해적 CD 가게 방문 목적은 "해적판 제거" 및 유통되는 미발표/라이브 음원 내용 파악, 시장 조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적판은 수요와 공급 불일치로 인한 "타협의 산물"이므로, 해적판을 통해 유출 음원 및 수요를 파악하여 공식 제품화를 꾀한다.

페이지는 니시신주쿠 해적 CD 가게에서 자신이 관여한 밴드의 해적 CD를 모두 가져가며, 제프 벡의 벡, 보가트 & 어피스 음원[28], 밥 말리의 해적 CD도 가져갔다고 한다.

딥 퍼플, 레인보우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는 과거 라이브 음원 해적판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지만, 스튜디오 미발표 음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전 야구 선수 랜디 존슨은 레드 제플린 해적 CD 수집가이다.

데프 레파드의 조 엘리엇은 2023년 방일 시 니시신주쿠 해적판 CD 숍 방문 모습을 공식 사이트에 공개하며 "어뮤즈먼트"로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1980년대 후반 데이비드 보위에게 'All The Young Dudes' 일본 부트렉 복제를 의뢰받았다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는 2024년 방일 공연 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니시신주쿠 해적판 CD 숍에 갔다고 밝혔다.

6. 부틀렉의 종류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부츠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으며, 불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제품을 의미한다. 록 음악 부틀렉은 196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최초의 록 부틀렉은 고무 도장으로 제목을 찍은 단순한 슬리브 형태로 나왔다.[1] 이후 포장이 정교해졌고, 카세트 테이프와 CD-R의 등장으로 개인 간 거래도 증가했으며, 인터넷을 통한 공유도 활발해졌다.[1]

부틀렉은 공식 릴리스를 무단 복제한 ''가짜''와는 다르며, 일부 음반 회사는 모든 무허가 레코드를 위조품으로 간주했지만, 부틀렉 제작자들은 부틀렉 소비자가 공식 릴리스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1]

부틀렉의 가장 흔한 유형은 라이브 공연을 몰래 녹음한 라이브 부틀렉이다. 1970년대부터 휴대용 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틀렉 제작이 쉬워졌고, 음질도 향상되었다.[2] 라이브 공연의 FM 방송이나 사운드보드 녹음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한다.[2]

일부 부틀렉은 아티스트의 참여 없이 배포된 개인 또는 전문 스튜디오 녹음으로, 데모 (음악), 미완성 작업, 폐기된 자료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자료는 개인 녹음, 마스터 녹음의 도난 또는 복사, 프로모션 자료 복사 등을 통해 유출된다.[1]

초기 록 부틀렉 중에는 삭제 (음악 산업)된 싱글과 B-사이드를 모아 LP로 만든 것도 있었다. 이는 공식 릴리스보다 저렴하게 모든 녹음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었다. 일부 부틀렉은 공식 릴리스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더 후의 초기 싱글을 모은 ''Who's Zoo'' 부틀렉은 Odds And Sods 앨범 발매에 영감을 주었다.[1]

1969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레코드 가게에 등장한 밥 딜런의 미발표곡 모음 레코드 "The Great White Wonder"는 해적판 대중화의 시초로 여겨진다. 초판 8,000장이 완판되었고, 추가로 40,000장의 복제본이 유통되었다.

2개월 후, 롤링 스톤스의 콘서트를 수록한 "Liver Than You'll Ever Be"가 발매되었다. 이는 1969년 오클랜드 콜로세움에서의 콘서트를 수록한 것으로, 정규 앨범 『겟 야 야 야즈 아웃』의 발매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틀즈의 미발표 앨범 『GET BACK』을 수록한 "KUM BACK"도 발매되었다.

BOØWY, X JAPAN, LOUDNESS 등 일본 밴드의 라이브 및 데모 음원도 많이 유통되었다. 특히 X JAPAN은 고등학생 시절 라이브를 포함해 꾸준히 해적판이 유통되었고, JASRAC에 등록된 해적판이 무허가로 등장한 드문 사례도 있었다.

단독 앨범 관련 해적판으로는 비치 보이스의 미발매 앨범 『스마일』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벡, 보가트 앤 아피스, 데릭 앤 더 도미노스, 보스턴, 프린스 등의 미발표 앨범이나 곡들이 해적판으로 유통되었다.

아날로그 레코드 시대에는 미국에서 주로 제작되었지만, CD 시대에는 일본산 해적 CD가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도쿄도신주쿠구니시신주쿠 7초메 일대의 콜렉터즈 CD 가게에서 제조,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PC 보급과 소프트웨어 발달로 개인이 CD를 제작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CD-R이나 DVD-R 형태의 해적판도 많아졌다. 또한, 온라인 다운로드를 통한 해적판도 증가하고 있다.

7. 부틀렉의 가치와 한계

"부틀렉(bootleg)"이라는 단어는 미국 금주법 시대에 술을 긴 부츠에 숨겨 밀수하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는 불법 제품을 의미하게 되었다.

부틀렉은 공식 출시된 음반을 무단 복제한 '가짜'와는 다르다. 일부 음반 회사는 모든 무허가 음반을 위조품으로 간주했지만, 부틀렉 제작자들은 부틀렉과 위조 음반 시장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부틀렉의 전형적인 소비자는 해당 아티스트의 공식 릴리스를 대부분 구매한 사람들이다.

가장 흔한 유형은 라이브 부틀렉으로, 청중 녹음이나 FM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다.[2] 다른 부틀렉은 사운드보드 녹음일 수 있다. 일부 부틀렉은 아티스트의 참여 없이 배포된 개인 또는 전문 스튜디오 녹음으로, 데모 (음악), 미완성 작업, 폐기된 자료 등을 포함한다.

초기 록 부틀렉은 삭제 (음악 산업)된 레코드를 복사하여 저렴한 대안을 제공했다. 일부 부틀렉은 공식 릴리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Who's Zoo'' 부틀렉은 Odds And Sods 앨범에 영감을 주었고, 1960년대 중반 밴드의 컴필레이션은 Nuggets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다.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킹 크림슨로버트 프립 등은 해적 CD를 수집하고, 시장 조사를 위해 해적 CD 가게를 방문하기도 한다. 해적판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타협의 산물"이므로, 자신의 해적판을 찾아 유출 음원을 확인하고 수요를 파악하여 공식 제품화를 꾀하기도 한다.

페이지는 니시신주쿠의 해적 CD 가게에서 자신이 관여한 밴드의 해적 CD를 모두 구매해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제프 벡의 벡, 보가트 & 어피스의 미발표 음원[28]을 해적 CD 가게에서 입수하기도 했다.

딥 퍼플, 레인보우리치 블랙모어는 라이브 음원 해적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지만, 스튜디오 미발표 음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전 야구 선수 랜디 존슨은 레드 제플린의 해적 CD 수집가였다.

데프 레파드의 조 엘리엇은 니시신주쿠의 해적판 CD 숍을 방문한 경험을 공개하며, "어뮤즈먼트"로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비드 보위로부터 'All The Young Dudes'의 일본 부틀렉 복제를 의뢰받았다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는 2024년 방일 공연 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니시신주쿠의 해적판 CD 숍에 갔다고 밝혔다.

참조

[1] 서적 Netmusic: your complete guide to rock and more on the Internet and online services Random House
[2] 서적 Collectible '70s: A Price Guide to the Polyester Decade Krause Publications
[3] 뉴스 POP VIEW; The Legendary, Lost Recordings Of Charlie Parker https://www.nytimes.[...] 2024-05-22
[4] 웹사이트 A Brief History Of Bootlegs http://backtrax-reco[...] Backtrax Records 2009-09-23
[5] 웹사이트 Bootlegs, an insight into the shady side of music collecting http://www.moremusic[...] More Music e-zine 2006-09-23
[6] 서적 Icons of R&B and Soul: 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 The Temptations ; The Supremes ; Stevie Wonder Greenwood Publishing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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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문서 1994年に正式発表。
[28] 문서 1曲のみ公式にCD化された。
[29] 문서 《네이버 국어사전》 해적판 海賊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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