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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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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화사전은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발행된 일본의 대규모 한자 사전으로, 모로하시 데쓰지가 편찬했다. 총 15권으로 구성되어 5만 자가 넘는 한자와 53만 개 이상의 단어와 숙어를 수록하고 있으며, 고전 중국어와 고문 어휘에 중점을 둔다. 이 사전은 중국 정부에서도 도서관 비치용으로 주문받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한국의 대학교와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다. 대한화사전은 한자, 어휘, 색인, 보충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다양한 색인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효율적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1990년에는 어휘 색인이 추가되었고, 2000년에는 보충권이 발행되었다. 이 사전은 일본의 문자 코드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니코드의 한자 코드표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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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화사전
기본 정보
위나라 삼체석경 (모사본), 위쪽부터 고문, 전자, 예서
위나라 삼체석경 (모사본), 위쪽부터 고문, 전자, 예서
제목대한화사전
원제대한화사전 (大漢和辞典)
저자모로하시 데쓰지 (諸橋轍次)
편집자스즈키 잇페이 (鈴木一平)
초판 발행1955년 ~ 1960년
증보판 발행1984년 ~ 1986년
발행처다이슈칸 쇼텐 (大修館書店)
언어일본어
문자한자 (필사체, 인쇄체)
가나
코드 체계JIS X 0208
JIS X 0212
간체자
쪽수약 50,000쪽
표제 항목 수약 50,000 항목
총 글자 수약 305,000자

2. 편찬 역사

1917년 한학자였던 모로하시는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갔는데, 글자와 뜻풀이, 용례 및 출전을 모두 알 수 있는 사전이 없는 것에 주목했다. 1919년 모로하시는 약 20권의 연구 노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 후 대수관의 사장인 스즈키 잇페이가 초대형 한자 사전 편찬을 구상하고 모로하시를 찾아갔다. 모로하시는 처음에 거절했으나, 약 1년 3개월에 걸친 교섭과 설득 끝에 사전 편찬을 수락한다.[13]

1925년경, 스즈키 잇페이는 모로하시에게 한자 연구를 바탕으로 한화 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당시 다이토 문화 학원의 학내 분쟁으로 퇴학당한 학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모로하시는 임시로 사전 편찬을 승낙했다. 예비 조사 결과, 사전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방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스즈키와 모로하시는 협의 끝에 간행을 결정했다. 대수관에는 전용 조판소가 설치되었다.

1927년 6월부터 모로하시의 조시가야 자택 응접실에서 편집 작업이 시작되었다. 1929년경부터는 초고의 가필·수정 작업이 병행되었고, 1930년경에는 초고를 정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32년 4월, 정서 및 가필된 "원고"에서 출판을 위한 "최종 원고" 작성이 시작되었고, 1933년에는 간다구니시키초에 대 한화 사전 전용 특설 조판소가 신설되었다. 1934년 4월, "최종 원고"의 진척도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였고, 7월부터 최종 원고를 바탕으로 조판 작업이 시작되었다. 1935년 3월, 기한까지 원고가 완성되었으나 일부는 미완성이었고, 같은 해 스기나미구의 아마누마에 편찬실("엔진손샤")이 마련되어 교정쇄 수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1936년 12월, "엔진손샤"는 폐쇄되고 편찬실은 니시오치아이의 모로하시 저택 "다실"로 이동했다.

1937년부터 모로하시 저택의 다실에서 교정쇄 가필 수정 작업이 계속되었다. 같은 해 7월, 대수관 서점 전용 조판소에서 전체 '최종 원고'의 봉조립이 완료되었다. 1941년 10월, 추가된 棒組み(보:막대 모양의 활자)가 1937년 당시의 4할에 달했고, 최종 교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1943년 제1권이 간행되었으나,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대수관 본사 및 인쇄소, 저작이 모두 파괴되었다.[13] 전후 남겨진 교정쇄를 중심으로 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활자 관련 인력 부족으로 사진 식자 연구소에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요청하여 협조를 얻었다. 스즈키 사장은 아들들을 대학에서 중퇴시켜 편찬·인쇄·경영을 전수하는 등 온 가족이 사전 작업에 몰두하였다.[13]

1946년 11월, 모로하시는 오른쪽 눈의 백내장 악화로 실명하고, 왼쪽 눈은 백내장 수술 실패로 의안을 삽입했다. 1950년, 대수관의 부흥과 함께 대한화사전 출판 계약이 갱신되었다. 가마다 마사시(鎌田正)와 요네야마 토라타로(米山寅太郎)를 중심으로 남겨진 교정쇄를 바탕으로 지명 정정 및 당용 한자 자형 추가 작업이 시작되었다.

1951년, 활자 장인 부족으로 기존 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스즈키는 사진 식자의 공동 발명가인 이시이 모키치에게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의뢰하여 1년 이상의 설득 끝에 협조를 얻었다.

1954년 10월, 사진 식자에 의한 대 한화 사전 제1권 조판이 시작되었다. 1955년 11월, 발안 후 30년 만에 제1권이 간행되었다.

1957년에 스즈키는 기쿠치 간 상을 수상하고, 1960년에 전 13권이 완성되어 작업이 일단락된다.[13] 1960년, 사진 식자 문자를 제작한 이시이 시게키치가 키쿠치 간 상을 수상했다.

1961년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1965년 모로하시는 문화 훈장을 수상하였고 1982년에 사망했다.[13] 1966년 대한화사전의 축쇄판 간행을 시작(-1968년)했다. 1974년 수정 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동양학술연구소를 설립했다.

1984년 거의 모든 어휘의 출처를 밝히고, 본문자 해설도 수정한 수정판(전 13권)의 간행을 시작(-1986년)했다. 1989년 수정판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새롭게 어휘 색인을 추가한 수정 제2판(전 14권)의 간행을 시작(-1990년)했다. 1995년 보권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 "대한화사전 보권"을 간행하여 전 15권이 되었다. 이로써 모로하시 데쓰지의 당초 구상의 전체가 완성되었다.[13] 2018년 「대한화사전 디지털판」을 간행했다. 2021년 웹판 「대한화사전」의 제공이 시작되었다.

2. 1. 초기 구상 및 계약

한학자였던 모로하시는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1917년 중국에 건너갔을 때, 글자와 뜻풀이, 용례 및 출전을 모두 알 수 있는 사전이 없는 것에 주목했다. 강희자전은 글자와 뜻풀이가 실려 있었지만 출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패문운부》(佩文韻府, 중국의 운서)에는 용례는 있었으나, 뜻풀이가 없었다.[13] 모로하시는 1919년 중국어 어휘가 가득 찬 20권의 연구 노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13]

1925년경, 대수관의 창업자 스즈키 잇페이는 '기존의 두 배 이상 규모의 한화 사전'(초기 구상에서는 1~2권)을 구상하고 한자 연구로 알려진 모로하시에게 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당시 모로하시가 교편을 잡고 있던 다이토 문화 학원은 학내 분쟁으로 백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퇴학을 해야 했고, 모로하시는 그들 중 몇 명의 취업 자리를 찾는 동안 임시로 일자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한화 사전 편찬을 승낙했다. 모로하시의 예비 조사 결과, 초기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규모의 사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라 주저하기도 했지만, 스즈키와 모로하시는 협의 끝에 간행 작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대수관에는 이 책을 위한 전용 조판소가 설치되었다.[13]

2. 2. 준비 및 착수

한학자였던 모로하시는 1917년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건너갔는데, 글자와 뜻풀이, 용례 및 출전을 모두 알 수 있는 사전이 없는 것에 주목했다. 강희자전은 글자와 뜻풀이가 실려 있었지만 출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패문운부》에는 용례는 있었으나 뜻풀이가 없었다.[13] 1919년 모로하시는 중국어 어휘가 가득 찬 20권의 연구 노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이슈칸의 사장 스즈키 잇페이가 초대형 한자 사전 편찬을 구상하며 모로하시를 적임자로 찾아갔다. 방대한 작업 규모에 모로하시는 처음에 거절했으나, 약 1년 3개월에 걸친 설득 끝에 사전 편찬을 수락했다. 예비 조사 결과, 편찬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방대하여 모로하시는 주저했지만, 다이슈칸 서점 내에 전용 조판소가 마련되었다.

1927년 6월, 모로하시와 다이슈칸 간 출판 계약이 성립되었다. 모로하시의 조시가야 자택 응접실이 편집실이 되어, 모로하시의 제자 등이 사서오경을 비롯한 중국 고전 및 천문, 의약, 동식물, 법률, 예술 등 모든 분야의 문헌에서 어휘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퇴근 시 작업 서류를 복도에 치웠으나, 후에 모로하시가 근처 2층 집을 빌려 편집실을 옮겼다. 수집된 어휘는 카드로 정리되어 '원고'라 불리는 초고에 붙여졌다.

1929년경부터 '원고' 붙이기와 함께, 완료된 '원고' 앞부분을 가필·수정하는 작업이 병행되었다.

1930년경, '원고' 붙이기가 대체로 완료되어, 가필·수정된 부분부터 '원고'로 정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정서 과정에서 추가 어휘가 더해졌고, 작성된 '원고'에도 수시로 어휘가 추가되었다. 현대 중국어나 일본어가 아닌 어휘는 반드시 출처가 명확한 것만 채록했기에, 사전 등에서 수집한 어휘의 출처를 찾는 작업도 큰 부담이었다. 이때부터 한일사전의 규모가 당초 구상보다 획기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2. 3. 난관과 극복

1917년 한학자였던 모로하시는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에 건너갔는데, 글자와 뜻풀이, 용례 및 출전을 모두 알 수 있는 사전이 없는 것에 주목했다. 1919년 모로하시는 약 20권의 연구 노트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 후 다이슈칸의 사장인 스즈키 잇페이가 초대형 한자 사전을 편찬할 구상을 가지고 모로하시를 찾아갔다. 모로하시는 처음에 거절했으나, 약 1년 3개월에 걸친 교섭과 설득 끝에 사전 편찬 프로젝트를 수락한다.[13]

1925년경, 스즈키 잇페이는 모로하시에게 한자 연구를 바탕으로 한화 사전 편찬을 제안했다. 당시 다이토 문화 학원의 학내 분쟁으로 퇴학당한 학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모로하시는 임시로 사전 편찬을 승낙했다. 예비 조사 결과, 사전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방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스즈키와 모로하시는 협의 끝에 간행을 결정했다. 다이슈칸에는 전용 조판소가 설치되었다.

1927년 6월부터 모로하시의 조시가야 자택 응접실에서 편집 작업이 시작되었다. 모로하시의 제자들과 관계자들이 사서오경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문헌에서 어휘를 수집하고 카드로 정리하여 초고에 붙이는 작업이었다. 1929년경부터는 초고의 가필·수정 작업이 병행되었고, 1930년경에는 초고를 정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어휘는 반드시 출처가 명확한 것만을 채록하였고, 사전에서 수집한 어휘의 출처를 찾는 작업도 큰 부담이 되었다.

1932년 4월, 정서 및 가필된 "원고"에서 출판을 위한 "최종 원고" 작성이 시작되었고, 하라다 타네시게가 사전 편찬에 참여했다.[6] 1933년에는 간다구니시키초에 대 한화 사전 전용 특설 조판소가 신설되었다. 1934년 4월, "최종 원고"의 진척도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였고, 1년 동안 나머지 3분의 2를 완성해야 했다. 7월부터 최종 원고를 바탕으로 조판 작업이 시작되었다. 1935년 3월, 기한까지 원고가 완성되었으나 일부는 미완성이었고, 4월 중에 추가로 완성되었다. 같은 해 3월, 스기나미구의 아마누마에 편찬실("엔진손샤")이 마련되어 교정쇄 수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1936년 12월 말, "엔진손샤"는 폐쇄되고 편찬실은 니시오치아이의 모로하시 저택 "다실"로 이동했다.

1937년부터 모로하시 저택의 다실에서 교정쇄 가필 수정 작업이 계속되었다. 1937년 7월, 대수관 서점 전용 조판소에서 전체 '최종 원고'의 봉조립이 완료되었다. 1941년 10월, 추가된 棒組み(보:막대 모양의 활자)가 1937년 당시의 4할에 달했고, 최종 교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1943년 제1권이 간행되었으나,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다이슈칸 서점 본사 및 인쇄소, 저작이 모두 파괴되었다.[13] 전후 남겨진 교정판을 중심으로 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활자 관계 인력 부족으로 사진 식자 연구소에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요청하여 협조를 얻었다. 스즈키 사장은 아들들을 대학에서 중퇴시켜 편찬·인쇄·경영을 전수하는 등 온 가족이 사전 작업에 몰두하였다.[13]

1946년 11월, 모로하시는 오른쪽 눈의 백내장 악화로 실명하고, 왼쪽 눈은 백내장 수술 실패로 의안을 삽입했다. 1950년, 다이슈칸의 부흥과 함께 대한화사전 출판 계약이 갱신되었다. 가마다 마사시(鎌田正)와 요네야마 토라타로(米山寅太郎)를 중심으로 남겨진 교정쇄를 바탕으로 지명 정정 및 당용 한자 자형 추가 작업이 시작되었다.

1951년, 활자 장인 부족으로 기존 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스즈키는 사진 식자의 공동 발명가인 이시이 모키치에게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의뢰하여 1년 이상의 설득 끝에 협조를 얻었다. 스즈키는 아들들에게 편집, 인쇄, 경영을 맡겨 사전 제작을 이끌었다.

1954년 10월, 사진 식자에 의한 대 한화 사전 제1권 조판이 시작되었다. 1955년 11월, 발안 후 30년 만에 제1권이 간행되었다. 1957년에 스즈키는 기쿠치 간 상을 수상하고, 1960년에 전 13권이 완성되어 작업이 일단락된다.[13] 1960년, 사진 식자 문자를 제작한 이시이 시게키치가 키쿠치 칸 상을 수상했다.

2. 4. 완성과 이후

1943년 제1권이 간행되었으나, 도쿄 대공습으로 다이슈칸 서점 본사 및 인쇄소, 저작이 모두 파괴되었다.[13] 전후 남겨진 교정판을 중심으로 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활자 관련 인력 부족으로 종래 방식으로는 작업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사진 식자 연구소에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요청하여 끈질긴 설득 끝에 협조를 얻는다.[13] 동시에 스즈키 사장은 아들들을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중퇴시켜 편찬·인쇄·경영을 전수하는 등 온 가족 단위로 사전 작업에 몰두하였다.[13]

1957년에 스즈키는 기쿠치 간 상을 수상하고, 1960년에 전 13권이 완성되어 작업이 일단락된다.[13] 1965년 모로하시는 문화 훈장을 수상하였고 1982년에 사망했다.[13] 2000년에 보충판을 포함 전 15권이 완성되어 모로하시가 최초로 구상했던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13]

1946년 11월, 모로하시는 오른쪽 눈의 백내장이 악화되어 실명했다. 왼쪽 눈은 백내장 수술 실패로 의안을 삽입했고, 1955년 개안 수술 성공까지 거의 맹인 상태였다.

1950년 대수관(大修館)의 부흥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다시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출판 계약을 갱신했다. 가마다 마사시(鎌田正)와 요네야마 토라타로(米山寅太郎)가 중심이 되어, 남겨진 교정쇄를 바탕으로 "만주국(満州国)" 등의 지명을 정정하고, 당용 한자의 자형을 추가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1951년 활자를 새기는 장인의 부족 등으로 인해 기존 형태의 간행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스즈키는 사진 식자 기계 연구소(샤켄)의 이시이 시게키치에게 사진 식자 원자 작성을 의뢰했다. 이시이는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했지만, 스즈키는 1년 이상을 들여 그를 설득했다. 또한, 동시에 스즈키는 장남인 토시오, 차남인 케이스케, 삼남인 소우오를 회사로 불러들여 각각 편집, 인쇄, 경영 등을 습득하게 하여 사전 제작의 한 축을 담당하게 했다.

1954년 10월 사진 식자에 의한 대한화사전 제1권의 조판을 시작했다. 7교, 8교까지 이르렀던 원판이 분실되어 모두 새로 조립했기 때문에 교정 작업도 방대한 양이 되었다.

1955년 11월 발안 후 30년 만에 대한화사전 제1권 간행.

1960년 13권이 완결되어 일단 완성을 보았다. 사진 식자 문자를 제작한 이시이 시게키치가 키쿠치 간 상을 수상했다.

1961년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원래 1934년까지 2년간 3분의 1밖에 완성하지 못했던 원고를 1935년까지 1년 동안 나머지 부분을 급하게 완성했기 때문에, 특히 후반부에서는 출처 등에 관해 손으로 베껴 쓰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 출판 후 문의가 많았던 점도 있어, 모로하시로서도 수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1965년 가을에 모로하시는 문화 훈장을 수훈했다.

1966년 대한화사전의 축쇄판 간행을 시작(-1968년)했다. 축쇄판에서는 본문자 해설의 수정 외에, 세 글자 본문자 추가 등이 이루어졌다.

1968년 스즈키 잇페이(鈴木一平)는 다이슈칸(大修館)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경영에서 은퇴했다.

1971년 스즈키 잇페이가 사망했다.

1974년 수정 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동양학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잇페이의 장남인 토시오(敏夫)가 다이슈칸의 사장으로 취임했다(1987년 4월 사망).

1978년 이 무렵, 대한화사전에서의 어휘 부족을 실감한 모로하시는 수정판의 발문 집필 시에 수정판 완성 후의 증보판 편집을 고제자인 가마다 마사시(鎌田正)와 요네야마 토라타로(米山寅太郎) 두 명에게 유촉했다.

1982년 모로하시가 사망했다.

1984년 거의 모든 어휘의 출처를 밝히고, 본문자 해설도 수정한 수정판(전 13권)의 간행을 시작(-1986년)했다.

1985년 연말, 수정판 최종권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25년에 걸친 수정 작업이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간단한 수정 작업은 계속되었다.[7]

1989년 수정판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새롭게 어휘 색인을 추가한 수정 제2판(전 14권)의 간행을 시작(-1990년)했다.

1995년 보권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 4월 10일 "대한화사전 보권"을 간행하여 전 15권이 되었다. 이로써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의 당초 구상의 전체가 완성되었다.

2018년 11월 28일 「대한화사전 디지털판」을 간행했다. 대수관 서점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수정 제2판 및 보권의 내용을 USB 메모리에 수록하고 있다.[8]

2021년 4월 1일 재팬 너리지의 추가 콘텐츠로서, 웹판 「대한화사전」의 제공이 시작되었다.[9]

3. 구성 및 특징

《대한화사전》은 전 13권, 보충 1권, 어휘 색인 1권으로 구성된 총 15권의 대규모 한자 사전이다. 5만여 개의 한자와 53만여 개의 숙어를 수록하고 있으며, 각 단어의 출전을 《시경》, 《논어》, 《맹자》, 《장자》 등 중국 고전에서 찾아 함께 제시하고 있다.[13] 또한 1만여 개의 전서체도 수록되어 있다.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 정부에서도 도서관 비치용으로 주문했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의 대학교와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다.[13]

초판은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발행되었으며, 총 13,757페이지에 달하는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9,964개의 표제자와 37만 개 이상의 단어 및 구절을 포함하고 있으며, 고전 중국어와 고문 어휘에 중점을 둔다. 시, 서적 제목, 역사적 인물, 지명, 불교 용어, 현대 표현 등 백과사전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주요 표제어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따른다.


  • 훈독, 중국어 차용어 발음, 반절(fanqie) 표기, 운서 범주 (《집운(Jiyun)》에 수록된 중고 중국어 발음), 주음 부호, 웨이드-자일스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된 표준 중국어 발음
  • 10,000개의 전서 글자 및 다른 변형된 형태의 글자
  • 가장 오래된 인용문부터 역대 순으로 배열된 의미 (다양한 고전 텍스트와 중국어 사전에서 용례 제공)
  • 자원(글자 어원) (《설문해자》에서 유래된 자(字) 분석)
  • 2,300개의 그림 (1609년의 삼재도회와 같은 자료에서 복사)


초판은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사용하여 일본어 발음을 제공한다.

각 권에는 부수별 색인이 있으며, 중국 부수(214개 강희 자전 부수)에 따라 배열되고, 글자의 나머지 획순의 총수에 따라 세분된다. 최종 색인 권(제13권)에는 총획 색인, 자음 색인, 자훈 색인, 사각호마 색인이 포함되어 있다.

제13권에는 1,062개의 한자를 나열한 부록, 1,850개의 일본 공식 도요 한자, 517개의 중국어 간체자도 포함되어 있다.

대수관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친자 5만여 자, 숙어 53만여 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의 한화 사전'[3]이라고 소개하며, 총 15권(사전 본문 12권, 친자 색인 1권, 어휘 색인 1권, 보권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4] 1984년 수정판 간행 시 중국 정부로부터 500세트의 일괄 발주를 받았다.[4]

1917년부터의 중국 유학 경험을 통해, 한자와 단어를 망라하고 단어의 출처가 정확한 사전의 필요성을 느껴, 철저한 어휘 수집과 출처 명확화를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친자는 주로 강희자전, 中華大字典|중화대자전중국어, 설문해자주, 설문통훈정성, 송원 이래 속자보 등에서 수집하여, 강희자전의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친자의 음과 반절(fanqie)에는 광운이 아닌 집운을 채택하고 있다. 음훈은 역사적 가나 표기로 표기하며, 상용자에는 현대 중국어의 음이 주음부호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친자의 자원설 및 전서체는 주로 설문해자를 인용하고 있다.

어휘는 패문운부, 駢字類編|병자류편중국어에서 주로 수집했으며, 더불어 사서오경, 주례, 의례, 춘추좌씨전,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의 당본, 관자, 순자, 한비자 등의 제자(諸子), 문선, 초사, 진당소설, 수호전, 홍루몽, 원곡 등의 희곡, 그리고 한적해제, 중국인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読史方舆纪要|독사방여기요중국어, 전해, 사물이명록, 해록쇄사, 연감류함, 고금도서집성, 본초강목, 명률, 대청회전, 불교대사전, 삼재도회, 신선지나시문사전[5] 등의 사전류에서도 수집·인용했다. 어휘는 50음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일본어·한문에 관해서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현대 중국어에 관해서는 병음의 가타카나 표기로 섞어서 배열되어 있다.

제13권은 색인 권으로, 총획 색인, 자음 색인, 자훈 색인, 사각호마 색인, 그리고 보유로서 대한화번호 48903~49964의 한자가 게재되어 있다. 2000년에는 새롭게 804개의 한자와 3만 3천여 어휘를 수집한 「보권(補巻)」이 제공되었다.

3. 1. 구성

전 13권, 보충 1권, 어휘 색인 1권으로 구성된 총 15권의 대규모 한자 사전이다. 5만여 개의 한자와 53만여 개의 숙어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 출전은 《시경》, 《논어》, 《맹자》, 《장자》 등 중국 고전이다.[13] 약 1만여 개의 전서체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도서관 비치용으로 주문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의 대학교와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다.[13]

초판은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발행되었으며, 총 13,757페이지에 달하는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9,964개의 표제자와 37만 개 이상의 단어 및 구절을 포함하고 있으며, 고전 중국어와 고문 어휘에 중점을 둔다. 시, 서적 제목, 역사적 인물, 지명, 불교 용어, 현대 표현 등 백과사전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주요 표제어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따른다.

  • 훈독, 중국어 차용어 발음, 반절(fanqie) 표기, 운서 범주 (《집운(Jiyun)》에 수록된 중고 중국어 발음), 주음 부호, 웨이드-자일스 로마자 표기법으로 표기된 표준 중국어 발음
  • 10,000개의 전서 글자 및 다른 변형된 형태의 글자
  • 가장 오래된 인용문부터 역대 순으로 배열된 의미 (다양한 고전 텍스트와 중국어 사전에서 용례 제공)
  • 자원(글자 어원) (《설문해자》에서 유래된 자(字) 분석)
  • 2,300개의 그림 (1609년의 삼재도회와 같은 자료에서 복사)


초판은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사용하여 일본어 발음을 제공한다.

각 권에는 부수별 색인이 있으며, 중국 부수(214개 강희 자전 부수)에 따라 배열되고, 글자의 나머지 획순의 총수에 따라 세분된다. 최종 색인 권(제13권)에는 다음 네 가지 색인이 포함되어 있다.

  • 총획 색인 (전체 획수(1-64)별, 부수별 세분)
  • 자음 색인 (빌려온 중국어 발음(''음독'')순, 획수별)
  • 자훈 색인 (고유한 일본어 발음(''훈독'')순, 획수별)
  • 사각호마 색인 (4자리 숫자(0000–9999)와 선택적 추가 숫자, 획수별)


제13권에는 1,062개의 한자를 나열한 보충, 1,850개의 일본 공식 도요 한자, 517개의 중국어 간체자도 포함되어 있다.

대수관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친자 5만여 자, 숙어 53만여 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의 한화 사전'[3]이라고 소개하며, 총 15권(사전 본문 12권, 친자 색인 1권, 어휘 색인 1권, 보권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4] 1984년 수정판 간행 시 중국 정부로부터 500세트의 일괄 발주를 받았다.[4]

3. 2. 친자(親字)

親字중국어는 대한화사전 본문에서 한자의 풀이를 위해 제시된 주요 한자를 의미한다. 주로 강희자전, 설문해자주, 설문통훈정성, 송원 이래 속자보 등에서 수집되었으며, 강희자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다.[13]

친자의 음과 반절(fanqie)에는 광운이 아닌 집운을 채택하였다. 음훈은 역사적 가나 표기로 표기되었으며, 상용자에는 현대 중국어의 음이 주음부호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친자의 자원설 및 전서체는 주로 설문해자를 인용하고 있다.[13]

대한화사전이 편찬된 1930년대 당시에는 갑골문자학이나 음운학이 현재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한자의 이나 자원에 대한 설명에 다소 오래된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어, '東' 자는 갑골문자학에 의해 오늘날에는 '자루'를 나타내는 상형 문자가 자원이라는 생각이 주류이지만, 대한화사전에서는 설문해자에서 '나무 안에 해가 있다'라고 자원을 설명하고 있다. 대한화사전의 친자 설명은 거의 전면적으로 과거 문헌의 인용과 그것의 일본어 번역으로 일관하고 있다.[13]

본문 중 친자 설명에 제시된 주요 출처는 다음과 같다.[13]

이아, 방언, 광아, 설문해자주, 설문장전, 석명, 경전석문, 일체경음의, 간록자서, 여문, 옥편, 천편, 류편, 해편, 편해류편, 편해, 편해대성, 혜운, 편운, 광운, 집운, 오음집운, 오음편해, 용감수감, 수진옥경, 본초강목, 통지, 통지략, 육서략, 시경, 자휘, 자휘보, 정자통, 강희자전, 송원 이래 속자보, 중화대자전, 사해, 신선자경, 화명류취초, 류취명의초, 절용집, 이체자변, 화한삼재도회, 화자정속통

대한화사전의 친자 번호(대한화 번호)는 49,964번까지 있지만, 본문 중 각 곳에서 대시 부호가 붙은 번호로 친자를 보충하거나, 결번으로 삭제된 흔적이 보인다. 또한 개정판마다 획수의 정정 등으로 순서가 바뀌는 것도 보인다. 보권에서는 추가된 친자의 번호가 804번까지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수정 제2판에서는 보권을 더해 친자는 총 51,110자가 된다. 친자 수의 변천은 아래 표와 같다.[13]

대한화사전발행 연도결번대시 부호 번호2대시 부호 번호친자 총수비고
초판1955-1960151개 번호497개 번호1개 번호50,311
축쇄판1966-1968154개 번호502개 번호2개 번호50,3143자 추가, 3자 이동
수정판1984-1986171개 번호510개 번호2개 번호50,30511자 삭제, 2자 추가, 9자 이동
수정 제2판1989-1990174개 번호513개 번호3개 번호50,3061자 추가, 16자 이동



단, 수정 제2판에서도 친자 중에는 동형·동음을 가진 한자가 다수 발견된다. 이는 서로 다른 출처에서 채취된 같은 한자가, 우연히 다른 부수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지되지 않고 중복 게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동형이고, 동음·동의 또는 그 의심스러운 한자는 70쌍 정도 확인되었으며, 이를 고려하면 대한화사전의 친자 수는 약 51,000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13]

3. 3. 어휘(語彙)

《대한화사전》은 53만 개에 달하는 방대한 숙어(熟語)를 수록하고 있다. 이 숙어들은 《시경》, 《논어》, 《맹자》, 《장자》 등 중국 고전과 함께 출전이 명시되어 있다.[13]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인정받아 도서관 비치용으로 주문을 받았을 정도이다.[13]

어휘 수집은 御定駢字類編|어정병자류편중국어과 패문운부를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 외에도 사서오경, 주례, 의례, 춘추좌씨전,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의 당본(唐本), 관자, 순자, 한비자 등 제자(諸子), 문선, 초사, 진당소설, 수호전, 홍루몽, 원곡 등 희곡 작품도 참고했다. 또한 한적해제, 중국인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 読史方舆纪要|독사방여기요중국어, 전해, 사물이명록, 해록쇄사, 연감류함, 고금도서집성, 본초강목, 명률, 대청회전, 불교대사전, 삼재도회, 신선지나시문사전[5] 등 각종 사전류에서도 어휘를 수집하고 인용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최종 어휘 수는 53만 개, 도판 수는 2,800개에 달하게 되었다.

어휘 배열은 50음 순이지만, 일본어와 한문은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현대 중국어는 병음의 가타카나 표기로 섞여 있다. 예를 들어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 "요우" 항목은 《대한화사전》에서 "에우"에 있을 수 있어,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모르면 찾기 어렵다.

3. 4. 색인(索引)

索引중국어은 대한화사전의 검색을 돕기 위한 부록이다.

제13권은 색인 권으로, 다음 네 가지 주요 색인을 제공한다.[13]

색인 종류설명
총획 색인전체 획수(1-64)별로 문자를 나누고, 부수별로 세분화한다.
자음 색인빌려온 중국어 발음(음독)순으로 문자를 배열한 다음 획수에 따라 배열한다.
자훈 색인고유한 일본어 발음(훈독)순으로 문자를 배열하고, 획수에 따라 세분화한다.
사각호마 색인4자리 숫자(0000–9999)의 복잡한 중국 시스템과 선택적 추가 숫자, 획수에 따라 세분화하여 문자를 정리한다.



일본어 발음은 역사적 가나 표기법으로 표기되어 있다.[13] 예를 들어, 현대 일본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ゐ일본어 "wi"와 ゑ일본어 "we"가 사용되었다.

제13권에는 주요 표제어에 포함되지 않은 1,062개의 한자를 나열한 부록, 1,850개의 일본 공식 도요 한자, 517개의 중국어 간체자도 포함되어 있다.[13]

대한화사전의 특징인 방대한 어휘는 13권의 내용만으로는 검색하기 어려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정 제2판에서는 대부분의 어휘를 현대 가나 표기법으로 검색할 수 있는 '어휘 색인'(제14권)이 추가되었다.

3. 5. 보권(補巻) (15권)

2000년에 새롭게 804개의 한자와 3만 3천여 어휘를 수집한 「보권(補巻)」이 제공되었다.[13] 그러나 이들 한자와 어휘는 단권으로만 색인이 제공되었으며, 본권과는 통합하여 검색할 수 없었다. 보권에서는 이시이 명조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추가 어휘의 친자(親字)도 대한화사전 본권과는 다른 이체자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대한화사전에서는 眾중국어에 어휘가 모여 있었지만, 보권에서는 이체자인 衆에 어휘가 모여 있는 등).[3] 또한, 대한화사전 본권이 역사적 가나 표기법·문어체를 사용하고 있는 데 반해, 보권은 현대 가나 표기법·구어체를 사용하고 있다.[4]

4. 한계 및 비판

《대한화사전》은 방대한 내용과 높은 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와 비판을 받는다.


  • 높은 가격과 큰 판본: 전 13권, 보충 1권, 어휘 색인 1권으로 구성되어 총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큰 판본으로 인해 개인이 소장하기 어렵고, 가격 또한 고가이다.
  • 디지털화의 어려움: 정보화 시대에 따라 디지털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컴퓨터에서 처리 가능한 한자 외의 한자가 많고 작업량이 방대하여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 접근성 제한: 대학교, 도서관 등에 주로 비치되어 있어 일반 대중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2018년 11월, 대수관 서점은 《대한화사전》의 전자판(Windows PC용)을 출시했지만, 여전히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13]

5. 현대적 의의 및 활용

大漢和辭典일본어은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전자 사전 출시: 2018년, 대수관 서점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大漢和辭典일본어의 디지털 버전(Windows PC용)을 출시했다. 수정 제2판 및 보권의 내용을 USB 메모리에 담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들은 방대한 사전을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8]
  • 웹 서비스 제공: 2021년에는 재팬 너리지의 추가 콘텐츠로 웹 버전 大漢和辭典일본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9]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온라인 환경에서 사전에 접근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문자 코드 제정에 영향: 大漢和辭典일본어은 일본의 문자 코드 제정 과정에서 문자를 식별하고 정의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 1990년 제정된 JIS X 0212:1990 및 2000년 제정된 JIS X 0213:2000년판 모두에 大漢和辭典일본어의 번호가 참고 정보로 포함되었다.
  • 국제 한자 부호 표준화 조직인 CJK-JRG (ISO/IEC JTC 1/SC 2/WG 2/IRG)가 1991년 한자 코드를 정리하여 "Unified Repertoire and Ordering"(URO)을 제정할 때, 大漢和辭典일본어강희자전과 함께 문자를 판별하고 배열 순서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 URO는 ISO/IEC 10646(UCS) 및 유니코드의 한자 코드표의 기반이 되었다.
  • 유니코드 한자 확장: 大漢和辭典일본어에 수록된 대부분의 문자는 호적 통일 문자를 통해 UCS/유니코드로 부호화되고 있다. 1998년부터 2017년까지 확장 한자 AF(Extension-A to F)로서 63,000자 이상이 제정되었다.
  • 확장 한자 F까지 부호화되지 않은 문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이들 역시 추가될 예정이다.[10][11]
  • 이체자 셀렉터 활용: 大漢和辭典일본어의 일부 한자는 UCS/유니코드에서 동일한 부호로 통합되지만, 이체자 셀렉터를 통해 자형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12]


이처럼 大漢和辭典일본어은 학술적 연구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자 사용 및 표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 같이 보기

참조

[1] 웹사이트 「大漢和辞典」ついに!デジタル化 https://this.kiji.is[...] 2020-01-23
[2] 웹사이트 大漢和辞典デジタル版 https://www.taishuka[...] 2020-05-30
[3] 웹사이트 大漢和辞典記念室 https://kanjibunka.c[...] 大修館書店 漢字文化資料館 2020-11
[4] 뉴스 「諸橋大漢和」ついにデジタル化 不可能といわれた辞典プロジェクトが実現 https://book.asahi.c[...] 朝日新聞社 2020-11
[5] 논문 「大漢和辞典」編纂資料としての「新撰支那時文辞典」
[6] 서적 漢文のすゝめ
[7] 서적 「大漢和辞典」を読む 大修館書店 1986
[8] 웹사이트 大漢和辞典デジタル版 | 大修館書店 創業100周年記念企画 https://www.taishuka[...] 大修館書店 2018-09
[9] 웹사이트 Web版「大漢和辞典」をJK Lib追加コンテンツとして公開 https://japanknowled[...] NetAdvance 2021-04-01
[10] 웹사이트 文字情報基盤 モジラボ https://mojikiban.ip[...] 字辞典UCS対応情報 2016-08-30
[11] 논문 ISO/IEC 10646:2017にない日本の漢和辞典の漢字 http://kanji.zinbun.[...] 2018-03
[12] 데이터베이스 Ideographic Variation Database https://unicode.org/[...] Unicode コンソーシアム 2017-12-12
[13] 서적 책 세상을 경영하다 평단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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