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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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조는 고려 시대에 한시와 향가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여 조선 시대에 유행한 한국의 정형시이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형식을 가지며, 마지막 구절의 첫 음절은 3음절로 고정된다. 시조는 시대에 따라 주제와 형식의 변화를 겪었으며, 고려 말에는 충절,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정신과 자연 예찬을 주로 다루었다. 이후 솔직한 연애 감정, 봉건 제도 비판 등으로 주제가 확장되었으며, 현대에는 평시조 외에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 시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시조는 노래를 목적으로 창작되었으며, 시조창은 시에 악기를 곁들여 낭송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주요 시조 시인으로는 황진이, 김천택, 최남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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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 |
|---|---|
| 시조 정보 | |
![]() | |
| 개요 | |
| 유형 | 한국의 시가 |
| 특징 | 전통적인 한국의 정형시 |
| 명칭 | |
| 한글 | 시조 |
| 한자 | 時調 |
| 로마자 표기 | sijo |
| 발음 (IPA) | /ɕi.dʑo/ |
| 설명 | |
| 기원 | 고려 말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 |
| 형식 |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 |
| 각 장 구성 | 초장 (3, 4, 4, 4) 중장 (3, 4, 4, 4) 종장 (3, 5, 4, 3) |
| 특징 | 평시조가 기본형 엇시조, 사설시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 조선시대 양반 계층이 주로 향유 |
| 내용 | 자연, 사랑, 인간사 등 다양한 주제 시조창으로 불려짐 |
| 관련 정보 | |
| 참고 문헌 | The Bamboo Grove: An Introduction to Sijo (Richard Rutt 저) |
| 관련 문화 | 한국 문학, 한국 시, 조선 문화 |
| 다른 뜻 | 시조 (동음이의)에 대해서는 :시조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2. 명칭
시조(時調)는 시절가조(時節歌調)를 줄인 것이다. 조선 영조 때의 유명한 가객(歌客)인 이세춘이 만든 말로, 그 시절에 유행하는 노래 곡조란 뜻이다.[1]
고려 중엽 한시와 향가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조는, 14세기경 고려 말기에 성립되어 조선 시대에 유행하였다. 조선 영조 때부터 '시조'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단가", "장단가", "신조" 등으로 불렸다.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인 시조는 "유행가"를 의미하며, 시인 이세춘(李世春)이 이 용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시조는 14세기경 고려 말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에 유행하였다.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부터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단가”, “장단가”, “신조”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1]
3. 역사
시조의 기원에 대해서는 무녀의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설, 향가에서 발전했다는 설,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등에 나타나는 고려 가요가 기원이라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시조는 우선 양반들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유교 정신을 노래하다가 점차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변화하였다. 기생들이 시조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구체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시조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나 민족적 시 형식으로서 시조의 가치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3. 1. 고려 시대
고려 중엽 한시와 향가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조는 조선 시대에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 뿌리는 고려 후기에 있다. 가장 오래된 시조는 14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졌는데,[12] 유교 학자들이 기존의 불교 중심 문학, 음악, 예술 형식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13] 따라서 고려 말기 시조와 조선 시대 시조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당시 주로 상류층 남성들이 지은 시조는 당대 정치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고려 시대 시조의 주제를 이해하려면 시조가 쓰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려 시대는 대부분 정치적 혼란에 시달렸다. 1170년 무신정권이 문신정권으로부터 권력을 장악했다. 무신들이 서로 음모를 꾸미고, 백성들이 지주와 관리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다음 25년 동안 정부와 농촌에는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하고 최씨정권을 수립한 1196년이 되어서야 안정을 찾았다. 그 후 한국은 1217년부터 1258년까지, 그리고 1270년부터 1356년까지 몽골의 침략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다. 몽골의 지배에서 해방된 후에도 고려는 사방에서 정치적 갈등에 시달렸다. 고려는 왜구와 원나라 난민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고, 홍건적의 두 차례 침입을 받았다. 마침내 이성계가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 태조라 칭하며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면서 고려는 멸망했다.
고려 말기 시조가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건 때문이다. 이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잃어버린 대의에 대한 충절[14]이며, 가장 강력한 세력들이 충성심의 방향에 대해 고심하던 시기에 새로운 조선 왕조의 부상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의 송나라와 부상하는 명나라 사이의 동시다발적인 갈등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사람들의 충성심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따라서 당시의 혼란과 혼돈은 노년에 대한 후회와 사랑에 대한 슬픔과 같은 강한 감정들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을 표현하고 평화와 안정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러한 시대적 격변과 긴장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시조 중 하나는 정몽주의 시조(단심가)이다. 정몽주는 이 시를 이방원이 조선 운동에 합류하라는 제안에 대한 답으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백 번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되어도 “이 심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 시조를 특징짓는 충절과 정의, 그리고 신의를 보여준다. 이 시는 한국에서 충절의 전형적인 예시가 되었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조 중 하나이다.
3. 2. 조선 시대
조선 초기의 시조는 유교적 이념과 자연에 대한 예찬을 주제로 삼았다. 특히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집권한 후,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유교 이념에 따라 세조의 집권을 비판하는 시조가 많았다. 윤선도 등 선비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에 빗대어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을 노래했다. 이 시기 시조는 정형시적 특징을 잘 지켰으며, 3장 6구 45자 내외의 형식적 특징으로 인해 평시조라 불렸다. 평시조 이후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시조까지 3장의 첫 구는 3음절로 고정되는 특징을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시조의 주제는 솔직한 연애 감정, 봉건제도의 모순에 대한 비판 등으로 다양해졌다. 중인 계급의 경제력 성장과 예술 욕구 상승으로 3장 6구 45자 내외의 형식을 벗어난 엇시조와 사설시조가 나타났다.
시조는 조선 시대에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 뿌리는 14세기 말 고려 후기에 있다.[12] 유교 학자들이 불교 중심의 문학, 음악, 예술 형식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13] 고려 말기 시조는 당시 정치적 혼란을 반영하여 잃어버린 대의에 대한 충절[14]을 주제로 삼았다.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단심가)는 이러한 충절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오늘날 "단심가" 또는 "충절가"로 알려져 있다.[15]
시조는 14세기경 고려 말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 시대에 유행하였다.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단가", "장단가", "신조" 등으로 불렸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 "유행가"를 의미하며, 시인 이세춘(李世春)이 "시조"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시조는 양반들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유교 정신을 노래하다가 점차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변화하였다. 기생들이 시조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구체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3. 3. 18세기 시조의 중흥과 변화
18세기에는 시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는 시조라는 용어의 재등장이고, 둘째는 고전적 또는 전통적인 시조에서 현대적인 시조로의 변화이다. 18세기 동안 시조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고, 그와 함께 변화가 일어났다. 시조는 이제 한국어로 쓰여졌고 대중에게 더욱 접근 가능해졌다. 더 이상 지배 계급과 양반만을 위한 산물이 아니었고, 일반 한국 대중도 시조를 창작하고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유교적 이상과 계층 질서를 벗어난 새로운 시들이 쓰이고 공연되었다. 이는 사설시조(수다스러운 시조 또는 서사시조),[16] 엇시조("약간 변형된 시조"),[16] 연시조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시조가 발명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조의 주제는 확장되어 상류층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게 되었다.
18세기 전반기에서 중반기의 시조는 전통적인 시조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이 시기가 한국이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외국에 개방한 강화도 조약 이후 시조는 현대적인 시 형태로 변화했다. 조선 왕조 말기까지 이 시 형태에 대한 단일한 명칭은 없었고, 시조는 문학 장르로 간주되지 않았다. 대신 노래로 여겨졌고, 어떤 종류의 노래인지를 나타내는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들어, 시조가 불리는 상황에 따라 시조가, 시조다가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시조가 문학적 시 장르로 재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시조의 복원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세기였으며, 그 운동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역사적으로 불려졌던 시조창이라는 단어의 앞부분을 따서 "시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 문학 장르를 정의했다.
3. 4. 근대 시조
일제강점기 이후 지나치게 서구화된 문학 형식에 대한 반성으로 민족적 시 형식인 시조를 다시금 창작하자는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34] 이 시기 이후부터 장을 현대시의 연으로 배열하는 장별 배행 시조 등의 형식으로 변화했다. 시조에는 1876년 이전과 이후의 두 가지 주요 발전 과정이 있는데, 1876년 이전에는 전통 시조가 널리 유행했고, 1876년 이후에는 현대 시조가 창작되었다고 한다.[34]
3. 5. 현대 시조
일제강점기 이후 지나치게 서구화된 문학 형식에 대한 반성으로 민족적 시 형식인 시조를 다시금 창작하자는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34] 이 시기 이후부터 장을 현대시의 연으로 배열하는 장별 배행 시조 등의 형식으로 변화했다. 1876년 이전에는 전통 시조가 널리 유행했고, 1876년 이후에는 현대 시조가 창작되었다.[34]
현대 시조는 평시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각 행에 다양한 음절 수로 이루어진 3행시이다. 그러나 두 형식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현대 시조는 모두 제목을 가지고 있는 반면, 평시조는 제목이 없다. 또한 시조 창작과 문학 전반이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평시조는 중국 고전에 대한 언급을 많이 사용했고, 원래 노래였기 때문에 노래할 때의 리듬에 중점을 두었다. 현대 시조는 문학이 더욱 널리 보급되고 대중에게 접근 가능해짐에 따라 탄생하였으며, 따라서 더 많은 재치, 유머, 그리고 일상 경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또한 원래의 공연 측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리듬이 고정되지 않았다. 한자나 당나라 고전에 대한 언급 대신, 더욱 구어체적인 언어가 표준이 되었다. 3행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유지되었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시조를 쓰는 대신 현대 시조는 훨씬 더 길어질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된다. 평시조에 표준 음절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각 행의 음절 수는 현대 시조보다 짧았다. 전반적으로 현대 시조는 형식적으로 더 자유로워졌고, 평시조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
4. 주제와 형식의 변화
시조의 주제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고려 중반부터 조선 초기에는 유교적 가치관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나, 윤선도와 같이 자연을 통해 인간의 덕목을 이야기하는 시조가 많았다.[4] 이 시기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 형태를 엄격하게 지켰으며, 이를 평시조라고 부른다. 평시조의 마지막 장 첫 구는 3음절로 고정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시조까지 이어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시조의 주제가 다양해졌다. 솔직한 사랑 이야기나,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또한, 경제적으로 성장한 중인 계층이 예술 활동에 참여하면서 평시조의 형식을 일부 벗어난 엇시조와 사설시조가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는 서구화된 문학에 대한 반성으로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부터 시조는 현대시처럼 각 장을 나누어 배열하는 등 형식적인 변화를 겪었다.
4. 1. 평시조
평시조는 고려 중반기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일반적인 시조 형태로,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성을 지닌다.[4] 정형시적 특징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으며, 마지막 3장의 첫 구는 3음절로 고정되는 특징이 있다. 이는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시조까지 이어진다.평시조의 주제는 유교와 자연에 대한 예찬이 주를 이룬다. 특히 계유정난으로 인한 세조의 집권을 유교 이념에 비추어 비판하는 시조가 많았다. 윤선도 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물에 빗대어 인간의 덕목을 노래했다.
평시조는 낭송을 우선시했기에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상류층 양반 계급 출신이었으며, 시조는 멜로디에 맞춰 불려지고 나중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리듬 패턴을 정확히 숙지해야 진정한 낭송으로 여겨졌다.[5]
평시조는 중국 당시(唐詩)의 영향을 받아 각 행이 3-4-3-4, 3-4-3-4, 3-5-4-3의 리듬 구조를 따른다. 특히 세 번째 행의 시작 부분에서는 “3-5” 음절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 시조의 수사적 결론을 강조했다.[6] 음절 계산은 시조의 행을 구성하는 네 개의 구절 또는 음절 그룹 간의 음절 분포 패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7]
평시조는 표준적인 3행시로, 각 줄은 중간에 휴지(중간 멈춤)를 통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각 반구(절반)는 다시 짝으로 나뉘어 한 줄에 총 네 개의 그룹이 생긴다. 한 그룹은 일반적으로 3~5음절로 구성되며, 약 45음절(모라)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음절 수의 변화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시조는 음절 수가 아닌 강세를 기준으로 하는 운율 형식이며, 한 그룹은 통사적이고 리듬적인 단위에 해당한다.[9]
위 표는 위치에 따라 전통적인 음절 분포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앞 두 줄의 끝과 3행의 그룹 I과 III은 변화가 거의 없다. 이러한 위치에서의 규칙성은 리듬 유지를 위한 것이다.[19]
기생들은 전문적인 연예인이자 공연 예술가, 기녀로 활동했던 여성들이다.[20] 이들은 하층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시조 예술에 기여한 시인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신분제가 엄격했으나, 기생들은 양반 남성들의 찬사를 받는 작품을 창작했다.[21]
많은 학자들은 기생들의 시조에 "감정의 자유로움, 풍자적인 시각, 뛰어난 기교가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사회적 기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애정 시와 관련되어 있으며, 황진이와 이매창이 대표적인 기생 시인이다.
3장 6구의 약 45자로 이루어지는 평시조는 3·4조 또는 4·4조가 기본이지만, 약간의 자수 부족이나 초과는 허용된다. 다만, 마지막 장의 첫 번째 구절은 반드시 3음절, 두 번째 구절은 5음절 이상이어야 한다.
'''3·4조'''
초장 ○○○ ○○○○ ○○○ ○○○○
중장 ○○○ ○○○○ ○○○ ○○○○
종장 ○○○ ○○○○○ ○○○○ ○○○
'''4·4조'''
초장 ○○○○ ○○○○ ○○○○ ○○○○
중장 ○○○○ ○○○○ ○○○○ ○○○○
종장 ○○○ ○○○○○ ○○○○ ○○○
이러한 정형에 따른 시조를 “단형 시조” 또는 “평시조”라고 부른다.
4. 2. 엇시조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시조의 형식이 다양화되면서, 3장 6구 45자 내외의 평시조 형식을 부분적으로 벗어난 엇시조가 나타났다. 엇시조는 중인 계급의 자본주의적 경제 능력 성장으로 인한 예술 욕구 상승 등의 원인으로 발생했다.[6] 엇시조는 평시조의 전통적인 구조에서 약간 확장된 형태이다. 구절 하나가 길어진 시조를 “중형 시조” 또는 “장시조”라고 부른다.4. 3. 사설시조
사설시조(辭說時調)는 조선 임진왜란 이후 평시조가 확장된 형태로, 18세기에 유행하였다. "사설(辭說)"은 "빽빽하게 엮어진", 또는 "밀집한"을 의미하며, 사설시조는 단순히 "수다스러운" 또는 "서사적인" 시조를 뜻한다.[26]사설시조는 시조의 기본 형식인 첫째 줄, 둘째 줄, 셋째 줄 각 15음절을 느슨하게 따랐지만,[27] 중간 부분은 추가적인 구절을 덧붙여 확장되었다.[28] 평시조와 마찬가지로 세 줄로 구성되며, 첫 번째 줄은 주제를 소개하고, 두 번째 줄은 주제를 확장하며, 세 번째 줄은 반전이나 깔끔한 결론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설시조에서 첫 번째 줄과 두 번째 줄은 일반 시조의 세 줄보다 훨씬 길다. 시조의 한 줄만 확장되면 "오시조(押時調)"라고 부르는데, "약간 변경된 시조"라는 뜻이다.[32] 한 줄 이상 확장된 것이 사설시조이며, 일반적으로 마지막 줄은 평시조의 마지막 줄의 원래 구조를 유지하고 3음절 단위로 시작한다. 사설시조의 길이에 대한 고정된 제한이 없다는 것은 형식이 내용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형식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3]
이 시기에 대부분의 사설시조 작가들은 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사설시조 작가들에는 여성, 양반, 중인(중상층), 그리고 상민들이 포함된다. 작가들은 더욱 현실적이고, 종종 거칠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29] 서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주제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설시조 작가들은 익명으로 남았다.[30]
사설시조와 평시조의 주제는 다르지만, 두 시조 형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조이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했다. 이는 단어와 이미지의 자유로운 놀이를 허용한다.
다음은 사설시조의 예시이다.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모란은 꽃 중의 왕이고 해바라기는 충신이로다.한국어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요 행화(杏花)는 소인(小人)이라 국화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는 한사(寒士)로다 박꽃은 노인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이라 규화(葵花)는 무당이요 해당화는 창녀(娼女)로다|연꽃은 군자이고 살구꽃은 소인이라 국화는 은둔하는 선비이고 매화는 가난한 선비로다. 박꽃은 노인이고 패랭이꽃은 소년이라 아욱꽃은 무당이고 해당화는 기생이로다.한국어
이 중에 이화(李花)는 시객(詩客)이요 홍도벽도(紅桃碧桃) 삼색도(三色桃)는 풍류랑(風流郞)인가 하노라|이 중에 배꽃은 시객이고 붉은 복숭아꽃, 푸른 복숭아꽃, 삼색 복숭아꽃은 풍류랑인가 하노라.한국어
4. 4. 현대 시조
일제강점기 이후 서구화된 문학 형식에 대한 반성으로, 민족 고유의 시 형식인 시조를 다시 창작하자는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34] 이 시기부터 시조는 현대시의 연(聯)처럼 장(章)을 나누어 배열하는 장별 배행 시조 등의 형식으로 변화했다.현대 시조는 20세기 이전에 발전하고 사용되었던 평시조와 비교해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현대 시조는 모두 제목을 가지고 있는 반면, 평시조는 제목이 없다. 또한, 평시조는 양반 계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중국 고전에 대한 언급을 많이 사용하고 노래할 때의 리듬에 중점을 두었으나, 현대 시조는 문학이 대중화되면서 재치, 유머, 일상 경험을 더 많이 담게 되었다. 또한 공연 측면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 리듬이 고정되지 않았다. 한자나 당나라 고전에 대한 언급 대신 구어체적인 언어가 표준이 되었다. 3행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유지되었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시조 대신 현대 시조는 훨씬 더 길어질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된다. 전반적으로 현대 시조는 형식적으로 더 자유로워졌다.
시조 창작을 장려한 저명한 작가 이병기는 꽃에 대한 전통적인 도덕적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도 현대적인 어투로 시조를 지었다. 그의 작품 "난초"는 다음과 같다.[34][35]
난초|난초한국어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한국어
자줏빛 굵은 줄기 하얀 꽃이 피고|자줏빛 굵은 줄기 하얀 꽃이 피고한국어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맺혔다|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맺혔다한국어
본래 그 마음은 맑음을 좋아하여|본래 그 마음은 맑음을 좋아하여한국어
맑은 모래 틈에 뿌리를 내리고|맑은 모래 틈에 뿌리를 내리고한국어
티끌도 가까이 하지 않고 이슬과 비를 받아 사느니라|티끌도 가까이 하지 않고 이슬과 비를 받아 사느니라한국어
이병기는 시조가 전통적인 단일 연에서 둘 이상의 연으로 구조가 확장됨으로써 현대 생활을 담아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다음은 현대 시조의 예시이다.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한국어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한국어
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한국어
이호우 시조 '바람 벌' 중|이호우 시조 '바람 벌' 중한국어
근심이 산이 되어 울멍줄멍 솟아 둘리고|근심이 산이 되어 울멍줄멍 솟아 둘리고한국어
물은 여울여울 눈물 받아 흐르는 나라|물은 여울여울 눈물 받아 흐르는 나라한국어
가서 내 살고 싶은 곳 거기는 또 내 죽어 묻힐 곳|가서 내 살고 싶은 곳 거기는 또 내 죽어 묻힐 곳한국어
이은상 시조 '가서 내 살고 싶은 곳'|이은상 시조 '가서 내 살고 싶은 곳'한국어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한국어
산골에 남은 눈이 다 녹은 듯이 보이고녀|산골에 남은 눈이 다 녹은 듯이 보이고녀한국어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별밭 아래 들려라|토담집 고치는 소리 별밭 아래 들려라한국어
정인보 시조 '조춘 (早春)' 중|정인보 시조 '조춘 (早春)' 중한국어
5. 시조의 구조
평시조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형식에 대한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양반 계층 출신이었으며, 시조는 먼저 노래로 불리고 나중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시조의 리듬 패턴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진정한 낭송으로 여겨졌다.[4]
우탁의 시조는 다음과 같다.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듸업네|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잠깐 불고 간 곳 없네한국어
저근듯 비러다가 뿌리과저 머리우희|잠깐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리고 싶어라한국어
귀밋헤 해묵은 서리를 불녀볼까 하노라|귀밑에 오래된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한국어
시조에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 여러 변형이 있다. 평시조는 3행으로 구성되며, 각 행은 중간 멈춤을 통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각 부분은 다시 짝으로 나뉘어 한 행에 총 네 개의 그룹이 생긴다. 한 그룹은 보통 3~5음절로, 작품 전체는 약 45음절(모라)이 된다.[6] 그러나 음절 수는 변할 수 있으며, 이는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다. 시조는 음절 수가 아닌 강세를 기준으로 하는 운율 형식이다. 모든 전통 시조는 곡조에 맞춰 지어져 규칙적인 리듬과 운율을 가진다.[7]
5. 1. 음수율
평시조는 글보다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시조 형식에 대한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작가들은 대부분 양반 계층 출신이었으며, 시조는 먼저 노래로 불리고 나중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시조의 리듬 패턴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4]당(唐) 시는 전통적으로 연(句)이 리듬으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평시조와 다른 초기 시조 형태에도 전해졌다. 시조는 종종 한자와 한글의 음절 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리듬 구조를 따르는데, 각 행은 3-4-3-4, 3-4-3-4, 3-5-4-3의 리듬 구조를 따른다. 초기 시조의 엄격함은 특히 세 번째 행에서 볼 수 있는데, “3-5” 음절 규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이는 시조의 수사적 결론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4] David McCann에 따르면, 음절 계산은 “시조의 행을 구성하는 네 개의 구절 또는 음절 그룹 간의 음절 분포 패턴에서 역할을 한다.”[5] 또한 대부분의 평시조는 제목이 없었고 낭송을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 구조는 후대의 시조 형태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시조에는 표준적인 3행시인 평시조부터 약간 확장된 엇시조, 그리고 크게 확장된 사설시조까지 여러 변형이 있다. 평시조의 전통적인 구조는 세 줄로 구성되며, 각 줄은 중간에 휴지(중간 멈춤)를 통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각 반구(절반)는 다시 짝으로 나뉘어 한 줄에 총 네 개의 그룹이 생긴다. 한 그룹은 일반적으로 3음절에서 5음절로 구성되며, 이는 약 45음절(모라)의 작품으로 이어진다.[6] 그러나 이러한 음절 분포는 평균일 뿐이며, 음절 수의 변화는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다. 시조는 음절 수를 기준으로 하는 운율 형식이 아니라 강세를 기준으로 하는 운율 형식이다. 한 그룹은 일반적으로 통사적이고 리듬적인 단위에 해당하며, 조사나 어미와 같이 상호 대조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모든 전통 시조는 원래 곡조에 맞춰 지어졌으며, 이는 각 시에 더욱 규칙적인 리듬과 운율을 부여한다.[7]
위 표는 위치에 따라 전통적인 음절 분포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함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1행의 그룹 I에서 3음절이 아닌 경우가 13번 있다. 반대로, 앞 두 줄의 끝과 3행의 그룹 I과 III은 변화가 거의 없다. 이러한 위치에서의 더 큰 규칙성은 앞이나 뒤에 오는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규칙성의 증가는 리듬이 손실되지 않도록 한다.[9]
3장 6구의 약 45자로 이루어진다. 음수율은 3·4조 또는 4·4조가 기본이지만, 일본의 와카나 하이쿠처럼 엄격하지 않고, 약간의 자수 부족이나 초과는 허용된다. 다만, 마지막 장의 첫 번째 구절은 반드시 3음절이어야 하며, 두 번째 구절은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구의 세는 방법에는 두 가지 설이 있어, 3·4(또는 4·4)를 하나의 구로 하여 총 6구로 세는 설과, 각각을 하나의 구로 하여 총 12구로 세는 설이 있다.
'''3·4조'''
초장 ○○○ ○○○○ ○○○ ○○○○
중장 ○○○ ○○○○ ○○○ ○○○○
종장 ○○○ ○○○○○ ○○○○ ○○○
'''4·4조'''
초장 ○○○○ ○○○○ ○○○○ ○○○○
중장 ○○○○ ○○○○ ○○○○ ○○○○
종장 ○○○ ○○○○○ ○○○○ ○○○
- 이와 같은 정형에 따른 시조를 “단형 시조” 또는 “평시조”라고 부른다.
- 구절 하나가 길어진 시조를 “중형 시조” 또는 “장|한국어시조”라고 부른다.
- 구절이 두 개 이상 길어진 시조를 “장형 시조” 또는 “사설 시조”라고 부른다.
- 여러 편의 시조가 의미를 가지고 연결된 것을 “연시조”라고 부른다.
- 초장과 종장만 있고 중장이 없는 시조를 “양장 시조”라고 부른다.
- 초장만 있는 시조를 “단시조”라고 부른다.
- 어린이의 감성을 시조로 표현한 것을 “동시조”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지어지는 것은 정형에 따른 “평시조”이다.
6. 목적
시조는 모든 일반적인 운문 문학의 근원과 동일하게 가창을 목적으로 했다. 정형시적인 특징을 지니는 이유 역시 리듬에 맞춰 가창해야 했기 때문이고, 후기의 사설시조가 길게 편성된 이유도 가창과 동시에 가창에 맞춘 무용을 충분히 펼칠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1]
7. 제목
시조는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제목을 따로 붙이지 않았다. 따라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대 이전의 시조는 각각의 초장을 제목으로 붙였으며, 이는 향유 계층에서 가창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각 시조별로 주어진 곡조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1]
현대시조의 경우 일반적인 시와 동일하게 시인이 제목을 직접 붙인다.[1]
8. 시조창(時調唱)
시조는 고려 후기 서민들 사이에서 공연 예술로 등장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양반 계층 사이에서 유행하다가 점차 서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이 시기에 시조는 구전 전통으로 전승되어 예술 형식을 보존하는 수단이 되었다. 시조는 다양한 한국 전통시 형태를 포함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조창이라는 특별한 변형이 있다. 일반 시조와 시조창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악기 사용 여부이다. 시조창은 시를 낭송하는 음성에 다양한 한국 악기를 사용하여 반주한다.
시조창은 느린 선율과 길게 늘어지는 마지막 발음 때문에 "짧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노래"라고 불리기도 한다. 노래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 연주자와 연주자 간의 높은 수준의 기량과 조화가 필요하다. 각 시조마다 가수는 비브라토와 음높이 변화와 같은 숙련된 기법을 사용한다.[17]
가수는 대금(대나무 피리)과 장구(모래시계 모양의 북)의 반주를 받는다. 가수는 음높이 변화 외에도 다양한 비브라토를 사용한다. 모든 시조창은 매우 느린 속도로 불린다. 가수는 효과를 위해 노래의 음표를 늘이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다른 악기들은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피리(대나무 oboe), 대금(횡적), 단소(종적 피리), 해금(두 줄의 현악기)이 가수의 반주에 사용될 수 있다. 시조창 가수의 반주로 다양한 악기가 사용될 수 있지만, 한 번에 모든 악기가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비공식적인 환경에서는 장구만이 사용될 수도 있다. 종종 무릎을 치는 소리가 유일한 반주로 사용되기도 한다.[17]
9. 주요 시조 시인
- 정몽주: 고려 말기의 충신으로, 이방원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그의 시조 단심가(또는 충절가)는 한국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15]
- 황진이: 조선 중기의 기생으로, 뛰어난 시조 작품을 남겼다.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이 특징이다.[21]
- 이매창: 황진이와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기생 시인 중 한 명이다. 애정을 주제로 한 시조를 주로 창작했다.
- 김천택: 조선 후기의 시조 시인이자 가인(歌人)으로, 시조집 청구영언을 편찬하여 시조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중인 출신으로, 사회 계층 간의 갈등과 자연을 소재로 한 시조를 창작했다.[23]
- 최남선: 1926년 최초의 근대 시조집 '백팔번뇌'를 창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잡지를 발간하여 젊은이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 이광수: 한국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주의 운동가였다.
- 정인보: 일제강점기의 학자, 역사가, 언론인, 정치인이자 작가였다.
- 이은상: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역사가이며 문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노산 시조집"의 저자이기도 하다.
- 이병기: 시조의 창시자이자 작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 이호우: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언론인으로, 농촌 생활의 소박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 윤선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자연을 소재로 한 시조를 많이 남겼다. 특히 40수로 구성된 연시조 '어부사시사'가 유명하다.[36]
- 이탁: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
- 이색: 고려 말의 시인.
10. 시조집
김천택은 1728년에 가장 오래된 시조 시집 중 하나인 청구영언을 편찬했다.[22] 김수장은 1763년에 해동가요를 편찬했고, 박효관과 안매영은 1876년에 가곡원류를 편찬했다. 그 외에도 송계연월옹의 고금가곡, 백경현의 동가선, 남훈태평가, 최남선의 백팔번뇌,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정인보의 자원시조집 등이 있다.
11. 현대 시조의 의의와 전망
시조에는 1876년 이전과 이후의 두 가지 주요 발전 과정이 있다. 1876년 이전에는 전통 시조가 널리 유행했고, 1876년 이후에는 현대 시조가 창작되었다고 한다.[34] 시조는 판소리와 같은 전통 한국 노래의 리듬을 반영하는 엄격하게 정의된 구조를 가진 한국의 짧은 시 한 장르이다. 판소리에서 유래한 시조는 고려 시대에 한국에서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번영하기 시작했다.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성립된 시조는 지배 계급인 유교 학자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 형태가 되었다. 당시 시조는 구전되거나 기록되었으며, 현대주의 시대, 특히 19세기에 활발해진 시조 복원 운동 이후에 시조라는 공식적인 명칭이 생겨났다. 이 운동의 활동가들은 이전까지 이름이 없었던 시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음악 '시조창'의 첫 부분을 따서 시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시조가 사장된 예술 형식으로 여겨질 정도로,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시조가 창작되고 있다.[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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