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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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 교회는 5세기에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 아일랜드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영국 국교회와 상통하는 자주적인 지역 교회이다. 종교개혁을 거치며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분리되자, 헨리 8세는 아일랜드에 성공회를 강제했으며, 이후 아일랜드 교회는 국교 지위를 상실했다. 현재 아일랜드 교회는 총회를 통해 운영되며, 주교, 사제, 부제의 세 가지 성직 계급으로 구성된다. 아일랜드 교회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보이며, 에큐메니컬 운동과 GAFCON과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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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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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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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Eaglais na hÉireann Kirk o Airlann |
종교 | 기독교 |
교파 | 성공회 |
성경 | 기독교 성경 |
신학 | 성공회 교리 |
정치 체제 | 감독제 |
관할 구역 | 아일랜드 |
언어 | 영어 아일랜드어 |
본부 | 아일랜드 더블린 라스마인스 처치 애비뉴 처치 오브 아일랜드 하우스 |
설립 | 1536년,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 |
독립 | 1871년 (국교 폐지) |
모 교회 | 잉글랜드 교회 (신학적으로) |
회원 수 | 343,400명 |
예배 장소 | 1100개소 |
교구 | 450개 |
웹사이트 | ireland.anglican.org |
조직 | |
지도자 직함 | 수석주교 |
지도자 | 아마 대주교 - 존 맥도웰 더블린 대주교 - 마이클 잭슨 |
연합 | 성공회 공동체 유럽 교회 협의회 영국 및 아일랜드 교회 협의회 아일랜드 교회 협의회 포르보 공동체 |
추가 정보 | |
주요 신학적 정체성 | 앵글로-가톨릭 자유주의 기독교 복음주의 성공회 |
2. 역사
5세기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처음 전래되었다. 이후 교황의 종주권이 확립되었고, 12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하였다.
종교개혁으로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자, 헨리 8세는 아일랜드인들에게 성공회를 따르도록 강제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시기에는 성공회나 장로교 신자들이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캔터베리 대주교 매슈 파커는 아일랜드 교회를 영국 국교회 산하에 두었으나, 현재 아일랜드 교회는 영국 성공회와 상통하는 자주적인 지역교회(관구)이다. 찰스 1세 등 역대 왕들은 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지위를 강화했다.
1700년대에는 조너선 스위프트가 성 패트릭 성당의 사제직을 맡았다. 1869년 아일랜드 교회령(1871년 1월 1일 시행)에 따라 아일랜드 교회의 국교 지위는 종식되었다. 아일랜드 교회는 스스로를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은 아일랜드 교회의 일부이며, 초기 성 패트릭의 켈트 교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여긴다.[1] 이는 아일랜드 교회가 지속적인 신앙과 실천의 전통을 계승한 가톨릭적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로마의 권위를 거부하고 종교 개혁으로 인한 교리와 전례의 변화를 받아들였기에 개신교적 성격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1]
1534년 잉글랜드 의회는 종교 최고 수장법을 통과시켜 교황청과 교류를 단절하고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2년 후 아일랜드 의회는 그를 아일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많은 주교와 성직자들이 순응을 거부했지만, 아일랜드 교회는 교구 건물과 토지를 유지했다. 봉건 제도 하에서 주교들은 왕관의 신하로서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다.[9]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로마 교회에 충실했으며, 얼스터에서는 교회가 장로교보다 수적으로 열세였다. 1869년 아일랜드 교회법에 따라 1871년 1월 1일부로 국교 지위가 박탈될 때까지 아일랜드 전체의 국교회로 남아 있었다.[9]
17세기 초, 아일랜드 원주민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였고, 얼스터에 정착한 프로테스탄트들은 독립적인 장로교회를 세웠다. 제임스 어셔는 1625년부터 1656년까지 아마 대주교를 지낸 신학자이자 역사가였다. 1615년, 아일랜드 교회는 자체 신앙 고백을 작성했다.[11] 1634년 39개조 신앙고백을 공식 채택했다.[11]
1704년, 종교검사법(Test Act)이 아일랜드로 확대되어 공직을 아일랜드 교회 교인에게만 제한했으며, 1829년 가톨릭 구제법 제정 전까지 유지되었다. 에드먼드 버크처럼 부모가 자녀의 종교를 다르게 교육시키는 방식으로 제한을 우회하기도 했다.[12] 아일랜드 인구의 15~20%만이 아일랜드 교회 교인이었고,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비국교도 양쪽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소수파였다. 1719년 관용법은 비국교도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했고, 아일랜드 의회는 목사들에게 '왕실 보조금'을 지급했다.[12]
1800년 연합법으로 아일랜드 교회는 잉글랜드 교회와 통합되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연합 교회'''를 형성했다. 아일랜드 출신 대주교 1명과 주교 3명이 웨스트민스터 상원에 의석을 차지했다. 아일랜드 교회는 85만 명의 공식 회원 수에 비해 4명의 대주교를 포함한 22명의 주교를 가진 과다한 인원이었다. 1833년 교회 임시 조치법(아일랜드)은 주교 수를 12명으로 줄이고 재정 개혁을 단행했다. 1832년 개혁법을 포함한 1830~1834년 휘그 정부의 개혁은 정치적 분열을 야기했고, 정부의 교회 통치 개입은 옥스포드 운동의 한 요인이 되었다.[13]
2. 1. 초기 기독교 전래와 발전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처음 전래된 것은 5세기, 성 파트리치오에 의해서였다. 이후 교황의 종주권이 확립되었으며 12세기 후반에 영국 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하였다.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전래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5세기 중후반 서력으로 여겨지는데, 로마계 브리튼인 성직자 성 패트릭이 개종 운동을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1] 12세기 이전까지 아일랜드 교회는 주교보다는 강력한 수도원에 의해 통치되었다.
마엘 마에독 우아 모르가이르가 이끄는 개혁주의적 뱅거 수도원 원장의 영향을 받아, 1111년 라스 브레사일 공의회는 아일랜드 외부에서 일반적이었던 것처럼 주교가 이끄는 교구를 설립하여 수도원의 권력을 축소하려고 했다. 1152년 켈스 공의회에 따라 아일랜드 교회는 캔터베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체 대주교를 두게 되었다.[2] 1155년 라우다빌리터에 따라 영국 출신 교황 아드리아노 4세는 로마에 십일조를 바치는 대가로 잉글랜드의 헨리 2세에게 아일랜드 영주권을 부여했다. 그의 주장은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에 근거한 것으로, 이 기증은 교황청에 서쪽 로마 제국의 모든 기독교 지역에 대한 종교적 지배권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제국에 속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그 합법성에 대해 논쟁이 있었고, 기증 자체는 나중에 위조로 드러났다.[3]

아일랜드 교회의 기원은 432년(서로마 제국 말기) 성 패트릭의 전도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초기 아일랜드는 켈트계 기독교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수도원 중심의 체제와 독자적인 역법 및 관습 등을 가지고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사뭇 다른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큰 틀에서 보면 서방 교회의 일파였다. 또한 당시에는 가톨릭(로마 가톨릭 교회 및 정교회를 포함하는 공동의 교회)과 동방 교회의 결정적인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콥트 교회나 시리아 교회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9세기경 아일랜드는 빈번한 바이킹의 침략으로 수도원이 쇠퇴하고, 잉글랜드와 유럽 대륙에서 베네딕토 수도회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등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력이 진출하였다. 1155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가 발표한 교황 칙서에 따라 아일랜드 지배의 종교적 정당성 근거를 확보한 헨리 2세는 1171년 아일랜드에 침공하여 잉글랜드 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일랜드에 상륙하고, 교황으로부터 받은 아일랜드 영주(Lord of Ireland)의 지위를 바탕으로 지배를 시작했다. 이후 아일랜드에는 잉글랜드의 지배가 점차 미치게 되었고, 동시에 아일랜드 교회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배도 진행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아일랜드 고유의 교회 조직과 전통은 거의 소멸되었고, 아일랜드는 로마 가톨릭화되었다.
2. 2. 잉글랜드의 지배와 종교개혁
종교개혁으로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분리되자,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성공회를 따르도록 강제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와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시기에는 성공회나 장로교 신자들의 아일랜드 이주가 진척되었다.[9] 캔터베리 대주교 매슈 파커는 아일랜드 교회를 영국 국교회의 산하에 두었으나, 현재 아일랜드 교회는 영국 성공회와 상통하는 자주적인 지역교회(관구)이다. 이후 찰스 1세 등 역대 왕들은 아일랜드 지역에서 성공회의 지위를 강화시켜 나갔다.1534년 잉글랜드 의회는 종교 최고 수장법을 통과시켜 교황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2년 후 아일랜드 의회는 그를 아일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에 따랐다. 많은 주교들과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순응을 거부했지만, 아일랜드 교회는 교구 건물과 토지를 유지하게 되었다. 봉건 제도 하에서 주교들은 왕관의 신하로서 그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다.[9] 새 교회에 가입하는 데 따른 정치적, 경제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로마 교회에 충실을 유지했으며, 얼스터에서는 교회가 장로교보다 수적으로 열세였다.
잉글랜드의 교회가 잉글랜드 국교회로서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아일랜드 내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리 변경을 거쳐 프로테스탄트화되었다. 성공회는 아일랜드인 대다수가 가톨릭 신앙을 충실히 지키는 가운데(현대에도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가톨릭이다) 국교로 정해졌다. 또한, 아일랜드 교회 재산의 거의 전부가 아일랜드 성공회에 계승됨으로써, 오늘날에도 아일랜드 내 교회와 교회가 소유한 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1536년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의회(1297-1800)로부터 아일랜드 국교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 6세 치세에 영국 국교회의 프로테스탄트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일랜드 국교회에서도 프로테스탄트화가 추진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종교 통합에서 주교 전원(2명 제외)이 이를 받아들였고, 아일랜드 국교회에 사도 계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교회가 의심했던 캔터베리 대주교 매슈 파커의 서임 형식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 국교회는 영국 국교회보다 더 근본적으로 칼뱅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후일 아마 대주교가 된 제임스 어셔는 『Irish Articles』를 저술했는데, 이는 1615년에 채택된 후 1634년 아일랜드 주교회의에서 영국의 39개조와 함께 교리로 채택되었다. 1660년 영국 왕정 복고 이후에도 39개조는 우세했던 것으로 보이며, 국교에서 폐지된 후에도 공식 교리로 남아 있다.[84]
2. 3. 17-18세기: 성공회의 지위 강화와 갈등
헨리 8세가 종교개혁을 통해 성공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시키자,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성공회를 따르도록 강제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시기에는 성공회나 장로교 신자들의 아일랜드 이주가 진행되었다. 찰스 1세 등 역대 왕들은 아일랜드에서 성공회의 지위를 강화했다.17세기 초, 대부분의 아일랜드 원주민은 가톨릭 신자였고, 얼스터에 정착한 프로테스탄트들은 독립적인 장로교회를 세웠다.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더블린 출신의 신학자이자 역사가로, 1625년부터 1656년까지 아마 대주교를 지냈다. 1615년, 아일랜드 교회는 영국보다 더 칼뱅주의적인 신앙 고백을 작성했다.[11] 1634년에는 39개조 신앙고백을 공식 채택했다.
찰스 1세 치하에서 아일랜드 교회는 사도 계승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교황청을 혁신이라고 비판했다.[12] 1641년부터 1653년까지의 아일랜드 연합 전쟁 동안, 아일랜드의 거의 3분의 2가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연합에 의해 통제되었다. 1644년 조반니 바티스타 리누치니(Giovanni Battista Rinuccini)가 아일랜드의 교황 사절이 되었다.

1660년 (아일랜드) 복위 후 교회가 재건되었고, 1661년에는 '가톨릭교도, 장로교도, 독립교도 또는 분리주의자'들의 모임이 불법화되었다.[12] 1685년,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2세가 왕이 되었으나, 그의 정책은 가톨릭교에 대한 관용을 넘어 확립된 교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여 상황이 변했다. 1688년 6월, 영국의 일곱 주교를 반역죄로 기소한 것은 그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다.
명예혁명으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즉위하면서, 이전의 선서에 구애받아 새로운 선서를 거부하는 비서약파 분열이 일어났다. 아일랜드 교회에서는 킬모어와 아다 주교 등이 비서약파가 되었다.[12]
1704년, 종교검사법(Test Act)이 아일랜드로 확대되어 공직을 아일랜드 교회 교인들에게만 제한했다. 많은 가톨릭 귀족들은 자녀들의 종교를 다르게 교육시키는 방법으로 이러한 제한을 우회했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아일랜드 교회에서 자랐지만 그의 부모는 그의 누이 줄리아나를 가톨릭 신자로 키웠다.[12]
아일랜드 인구의 15~20%만이 명목상 아일랜드 교회 교인이었고, 아일랜드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비국교도들 양쪽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소수파였다. 1719년 관용법은 비국교도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했고, 아일랜드 의회는 그들의 목사들에게 '왕실 보조금(regium donum)'을 지급했다.[12]
1749년, 버클리 주교는 가톨릭 성직자들에게 연설을 통해 (아일랜드) 국가 이익을 위해 교회와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12] 1750년 이후 정부는 가톨릭 해방을 중요하게 여겼다. 십일조 요구는 심한 반감을 샀다.[12]
1536년 종교 개혁 중에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의회(1297-1800)로부터 아일랜드 국교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종교 통합에서 주교 전원(2명 제외)이 이를 받아들였고, 아일랜드 국교회에 사도 계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일랜드 국교회는 영국 국교회보다 더 근본적으로 칼뱅주의로 전환되었다. 후일 아마 대주교가 된 제임스 어셔는 『Irish Articles』를 저술했는데, 이는 1615년에 채택된 후 1634년 아일랜드 주교회의에서 영국의 39개조와 함께 교리로 채택되었다. 1660년 영국 왕정 복고 이후에도 39개조는 우세했던 것으로 보이며, 국교에서 폐지된 후에도 공식 교리로 남아 있다.[84]
최초의 아일랜드어역 신약 성경의 번역은 오소리 주교(Bishop of Ossory) 니콜라스 월시가 담당했지만, 1585년 완성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번역 작업은 그의 부하였던 존 카니와 투암 대주교(Archbishop of Tuam) 네헤미야 도네안이 이어받았다. 이후 이 작업은 도네안의 후임 투암 대주교인 윌리엄 오드무뉴일(William O'Domhnuill, William Daniel이라고도 함)에게 이어져 완성되었고, 1602년에 출판되었다.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킬모어 주교(Bishop of Kilmore) 윌리엄 베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찰스 1세 시대에는 완성되었지만, 1680년까지 간행되지 않았다. 1680년에 간행된 것은 더블린 대주교 너시사스 마시(Narcissus Marsh)에 의한 개정판이었다. 베델은 그 외에도 성공회 기도서의 번역을 1606년에 수행했다. 영국 국교회에서 기도서는 1662년에 개정되었지만, 이 번역은 존 리처드슨에 의해 이루어져 1712년에 간행되었다.
2. 4. 국교회 지위 상실과 현대
1869년 아일랜드 교회령(1871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따라, 아일랜드 교회의 국교(國敎) 지위는 최종적으로 종식되었다.[9] 1871년 1월 1일 윌리엄 글래드스톤 내각 시 아일랜드 자치 확대의 일환으로 1869년 아일랜드 교회법(32 & 33 Vict. c. 42)이 시행되면서 국교 지위가 박탈되었다.[9]이 법으로 교회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지위가 종식되었다. 주교들은 상원에서 제외되었고 교회의 재산은 정부로 이전되었다. 성직자들에게는 보상금이 지급되었지만, 많은 소교구는 임대 수입을 창출하는 토지와 건물을 상실하여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13]
잉글랜드 교회가 잉글랜드 국교회로서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아일랜드 내 교회도 교리 변경을 거쳐 프로테스탄트화되었다. 아일랜드인 대다수가 가톨릭 신앙을 지켰음에도(오늘날에도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가톨릭이다) 성공회는 국교로 정해졌다. 아일랜드 교회 재산의 거의 전부가 아일랜드 성공회에 계승되어, 오늘날에도 아일랜드 내 교회와 그 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오늘날 아일랜드 성공회는 아일랜드 섬에서 가톨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회이다(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 장로교회에 이어 세 번째). 운영 기구는 일반인과 성직자의 총회에 의해 운영되며, 12개의 주교구로 나뉘어 있다. 현재 아일랜드 성공회 최고 권위자는 공석이며, 더블린 대주교 또한 공석이다.
현재 아일랜드 성공회는 고교파(앵글로-캐톨릭주의)에 속하는 여러 교구를 포함하고 있지만, 성공회 내에서는 저교파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교구 간에 교회의 태도에 대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고교파와 복음주의(저교파 내의 복음주의) 중에서도 몇몇 두드러지게 자유주의적인 교구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이는 앵글리칸 공동체에서는 뉴질랜드 대교구가 1857년에 인정되었다가 1871년에 폐지된 이후로 가장 큰 사건[85]이며, 1991년에 처음으로 여성을 사제로 임명한 대교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더블린에 두 개의 대성당(주교좌성당)을 소유하고 있다. 성벽 터 안쪽에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더블린 대주교의 주교좌가 있다)이 있고, 성벽 바로 바깥쪽에 성 파트리크 대성당(1870년에 국립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이 있다. 다른 교구에도 각각 대성당이 하나씩 있다. 교회는 더블린 남부 교외 래스거(Rathgar)에 아일랜드 성공회 신학교(Church of Ireland Theological College)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 중앙 사무소는 래스마인즈(Rathmines)에 아일랜드 성공회 교육대학(Church of Ireland College of Education)과 인접해 있다.
1999년에 성공회는 성 패트릭 깃발 이외의 깃발을 게양하는 것을 금지했다.[86] 그러나 현재도 북아일랜드의 많은 교회에서 영국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3. 교구
아일랜드 교회는 주교제를 따르며, 전통적인 교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30개가 넘는 교구가 있었으나, 현재는 11개의 교구 또는 통합 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교구는 주교가 이끌며, 두 개의 대교구로 나뉜다.[14] 2022년에는 투엄, 킬랄라, 아콘리 교구가 리머릭과 킬랄로 교구와 합병되었다.[14]
교회법과 교회 정책은 총회에서 결정한다. 총회는 주교원과 대표원으로 구성된다. 주교원은 10명의 교구 주교와 2명의 대주교로 구성되며, 대표원은 성직자와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다. 대표원에서 성직자는 의석의 3분의 1을, 평신도는 3분의 2를 차지한다.[15] 2017년 현재 대표원에는 성직자 216명과 평신도 432명이 있다.[16] 정책 변경은 양원의 단순 다수결로, 교리 변경은 양원의 3분의 2 다수결로 가결되어야 한다. 대표원은 관례적으로 공개 투표를, 주교원은 비공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1999년 드럼크리 분쟁 해결을 위해 주교원이 공개적으로 만장일치 지지를 표명한 적이 있다.[19]
3. 1. 더블린 대교구
더블린 대교구의 지도자는 더블린 대주교이며, 현재 마이클 잭슨이다.[14] 아일랜드 성공회는 더블린에 두 개의 대성당을 소유하고 있는데, 성벽 터 안쪽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에는 더블린 대주교의 주교좌가 있고, 성벽 바로 바깥쪽에 있는 성 파트리크 대성당은 1870년에 국립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85]3. 2. 아르마 대교구
1111년 라스 브레사일 공의회(Rath Breasail이라고도 함)[7] 이후 아일랜드 가톨릭교회는 수도원 중심에서 교구 및 본당 기반의 조직 및 통치 체계로 전환되었다. 현재 아일랜드의 많은 교구는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경계를 따른다. 교회 조직화 작업은 1152년 조반니 추기경 파파로니의 주재하에 열린 켈스 공의회에 의해 완료되었다. 교구 개혁이 계속되면서 대주교 관구 수는 2개에서 4개로 증가하였다. 이 공의회는 아일랜드의 수위를 아마 대교구에 부여하였다.아일랜드 성공회의 운영 형태는 다른 성공회와 마찬가지로 감독제를 채택하고 있다. 교회 자체는 종교 개혁 이전의 건물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리적인 교구(parishes)는 교구(dioceses)에 포함되어 있다. 북쪽 7개 교구는 아마 대주교가 관할한다. 아마 대주교는 Primate of All Ireland|전 아일랜드 대주교영어로 불리지만, 이 명칭에서 아마 대주교가 상위임이 명시되어 있다. 이 차이는 아마 대주교가 더블린 대주교에 비해 약간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이다. 아마 대주교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선출 과정 또한 다른 주교들과는 다르다.
4. 교회 운영 및 제도
아일랜드 교회는 스스로를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은 아일랜드 교회의 일부이며, 초기 성 패트릭의 켈트 교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여긴다. 이는 아일랜드 교회가 지속적인 신앙과 실천의 전통을 계승한 가톨릭적 성격을 가지는 동시에, 로마의 권위를 거부하고 종교 개혁으로 인한 교리와 전례의 변화를 받아들였기에 개신교적 성격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111년 라스 브레사일 공의회 이후 아일랜드 가톨릭교회는 수도원 중심에서 교구 및 본당 기반의 조직 및 통치 체계로 전환되었다. 현재 아일랜드의 많은 교구는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경계를 따른다. 교회 조직화 작업은 1152년 조반니 추기경 파파로니의 주재하에 열린 켈스 공의회에 의해 완료되었다. 교구 개혁이 계속되면서 대주교 관구 수는 2개에서 4개로 증가하였다. 이 공의회는 아일랜드의 수위를 아마 대교구에 부여하였다.
1534년 잉글랜드 의회는 종교 최고 수장법을 통과시켜 교황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2년 후 아일랜드 의회는 그를 아일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에 따랐다. 많은 주교들과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순응을 거부했지만, 아일랜드 교회는 교구 건물과 토지를 유지하게 되었다. 봉건 제도 하에서 주교들은 왕관의 신하로서 그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새 교회에 가입하는 데 따른 정치적, 경제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로마 교회에 충실을 유지했으며, 얼스터에서는 교회가 장로교도보다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러나 글래드스톤 제1차 내각의 1869년 아일랜드 교회법에 따라 1871년 1월 1일부로 국교 지위를 박탈당할 때까지 아일랜드 전체의 국교회로 남아 있었다.[9]
현대 아일랜드 교회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며, 북아일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장로교회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다. 아일랜드 교회의 수장은 직권으로 아마 대주교이다. 1870년, 아일랜드 교회의 국교 해제 직전에 총회(General Synod)의 지도 아래 내부 통치 체계를 마련하고, 대표 교회 기구(Representative Church Body)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았다. 다른 아일랜드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교회는 1920년대 아일랜드의 분할에도 분열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아일랜드 전역을 기반으로 통치되고 있다.
교회의 내부 법규는 총회의 양원에 제안된 법안으로 공식화되며, 통과되면 법규(Statutes)가 된다. 교회의 통치 문서인 헌법은 법규를 통해 개정, 통합 및 공포되며, 가장 최근판인 제13판은 2003년에 발행되었다.
1833년,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성공회의 교구를 대주교구와 주교구를 합쳐 22개였던 것을 12개로 줄이고, 교구 운영에 드는 비용과 그 지역의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들(전체적으로는 소수파)의 감독을 통합했다. 이는 성공회 계열 교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옥스퍼드 운동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 통합으로 인해 가톨릭의 교구와 거의 같은 형태로 존재했던 주교구는 그 형태를 바꾸게 되었고, 동시에 네 개였던 대주교 관구도 투암 대주교 관구와 캐슬 대주교 관구가 통합으로 사라지고, 현재의 북부 대교구(아마 대주교 관구)와 남부 대교구(더블린 대주교 관구) 두 개가 남게 되었다.
국교 지위에 있는 아일랜드 성공회는 전체적으로는 소수파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형태로, 그 수입을 전 아일랜드 주민에게 부과되던 십일조에서 얻고 있었다. 그러나 십일조는 1831년부터 1836년에 일어난 십일조 전쟁(Tithe War)과 같은 폭발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후 십일조는 폐지되었지만, 더 가벼운 세금인 십일조 지대(tithe rentcharge)라는 세금으로 대체되었다.
4. 1. 총회 (General Synod)
교리, 교회법, 교회 통치, 교회 정책 및 예배 문제는 총회에서 결정한다. 총회는 주교원과 대표원의 두 의원으로 구성된다. 주교원은 10명의 교구 주교와 2명의 대주교로 구성되며,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대표원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구성된다. 성직자 계급은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평신도 계급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15] 2017년 현재, 대표원에는 성직자 216명과 평신도 432명이 있다.[16] 대표원의 구성원은 각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특정 수의 의석이 할당된 교구 대표로 구성되며, 이 대표들은 3년마다 선출된다.[17] 총회는 매년 개최되며, 수석 주교 또는 어느 계급의 3분의 1 이상이 요청하면 특별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18]정책 변경은 주교원과 대표원 모두의 단순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교리의 변경, 예를 들어 여성 사제 서품 결정은 양원 모두의 3분의 2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두 의원은 일반적인 협의를 위해 함께 모이지만, 일부 논의와 투표는 별도로 진행한다. 대표원은 항상 공개 투표를 하며, 종종 계급별로 투표하지만, 주교원은 비공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안건이 총회의 회의장에 상정되기 전에 결정을 내린다. 이 관행은 1999년 주교원이 드럼크리의 승천 교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아마 대주교, 아마 교구 및 총회 상임위원회의 노력을 공개적으로 만장일치로 지지했을 때 단 한 번 깨졌다.[19]
교회법 및 교회 정책은 총회에서 결정되며, 정책 변경에는 주교회의(House of Bishops)와 대표회의(House of Representatives; 사제와 평신도로 구성) 양쪽 모두에서 가결되어야 한다. 단, 중요한 변경(예를 들어 여성을 성직에 임명하는 것 등)은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투표에 관해서 대표회의는 관례적으로 공개 투표를 하는 반면, 주교회의는 총회에서 결과가 나오기 전에 비공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과거 단 한 번 깨진 적이 있으며, 1999년 5월 18일(그 해 예수 승천일), 포타다운(Portadown) 근교의 드럼크리 교회(Drumcree Church)에서 아마 교구와 총회 대표들이 난국을 타개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주교회의는 “아마 대주교의 노력”[93]을 인정하기 위해 공개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4. 2. 대표 교회 기구 (Representative Church Body)
아일랜드 교회의 대표 기구인 대표 교회 기구(Representative Church Body, RCB)는 법에 따라 교회의 법인 수탁자이며, 교회 재산 대부분이 이 기구에 위탁되어 있다.[20] RCB 회원은 주교와 각 교구 대표, 그리고 12명의 선출 회원으로 구성되며, 연 4회 이상 회의를 개최한다.[20] 대표 기구 직원들은 성직자 공무원과 유사하며, 교회 건물, 묘지, 투자 등 재산 관리, 일부 급여 및 연금 지급, 교회 도서관 운영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20] 교구, 교회 구조의 다른 부분들이 각자의 재산을 관리하지만, 이는 종종 RCB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20]4. 3. 성직 제도
▉▉▉ 아마 교구▉▉▉ 더블린 교구||alt=아일랜드 교회의 교구||upright=1.0||left]]
아일랜드 교회의 정치 체제는 다른 성공회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주교 중심의 교회 통치이다. 교회는 전통적인 구조, 즉 교구로 조직된 지리적 교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11개 교구 또는 통합 교구가 있으며, 각 교구는 주교가 이끌고 두 교구 중 하나에 속한다.[14]
남부 교구의 지도자는 더블린 대주교이며, 북부 교구의 지도자는 아마 대주교이다. 이 두 대주교는 각각 아일랜드의 수장과 전 아일랜드의 수장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후자가 더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 아마 대주교는 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 존경받으며, 다른 주교들과는 다른 절차를 통해 선출된다.
교리, 교회법, 교회 통치, 교회 정책 및 예배 문제는 교회의 총회에서 결정한다. 총회는 주교원과 대표원의 두 의원으로 구성된다. 주교원은 10명의 교구 주교와 2명의 대주교로 구성되며,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대표원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구성된다. 성직자 계급은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평신도 계급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15] 대표원의 구성원은 각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특정 수의 의석이 할당된 교구 대표로 구성되며, 이 대표들은 3년마다 선출된다.[17]
정책 변경은 주교원과 대표원 모두의 단순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교리의 변경은 양원 모두의 3분의 2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대표원은 공개 투표를 하며, 종종 계급별로 투표하지만, 주교원은 비공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19]
아일랜드 교회는 세 가지 성직 서열을 따른다: 부제, 사제(또는 장로), 주교. 각 교구 또는 통합 교구는 교구장 주교가 이끌며, 교구장 주교는 여러 명의 사제총대리와 각 본당 그룹마다 한 명의 시골대목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4. 4. 교구 및 본당 운영
아일랜드 교회의 정치 체제는 다른 성공회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주교 중심의 교회 통치를 따르고 있다. 교회는 전통적인 구조인 교구로 조직된 지리적 교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30개가 넘는 교구가 있었지만, 수세기 동안 통합되어 현재는 11개 교구 또는 통합 교구가 있으며, 각 교구는 주교가 이끌고 있다.[14] 2022년에는 투엄, 킬랄라, 아콘리 교구가 리머릭과 킬랄로 교구와 합병되어 투엄, 리머릭, 킬랄로 교구가 되었다.[14]남부 교구의 지도자는 더블린 대주교이며, 북부 교구의 지도자는 아마 대주교이다. 이 두 대주교는 각각 아일랜드의 수장과 전 아일랜드의 수장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후자가 더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 아마 대주교는 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 존경받으며, 다른 주교들과는 다른 절차를 통해 선출된다.
교리, 교회법, 교회 통치, 교회 정책 및 예배 문제는 교회의 총회에서 결정한다. 총회는 주교원과 대표원의 두 의원으로 구성된다. 주교원은 10명의 교구 주교와 2명의 대주교로 구성되며, 대표원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다. 대표원에서 성직자 계급은 의석의 3분의 1을, 평신도 계급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15] 2017년 현재, 대표원에는 성직자 216명과 평신도 432명이 있다.[16]
정책 변경은 주교원과 대표원 모두의 단순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교리의 변경은 양원 모두의 3분의 2 다수결로 통과되어야 한다. 대표원은 공개 투표를 하지만, 주교원은 비공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각 교구는 교구청장(Ordinary)이 이끌며, 여러 명의 사제총대리(Archdeacon)와 각 본당 그룹마다 한 명의 시골대목자(Rural Dean)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각 교구에는 교구 시노드(diocesan synod)가 있으며, 교회법과 총회 및 대표 기구의 업무에 따라 교구 운영을 감독한다. 각 교구 시노드는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교구 의회(diocesan council)를 임명한다.
각 교구에는 성직자 대표가 있으며, 두 명의 교구 관리자(churchwarden)와 종종 두 명의 교회 부지 관리자(glebewarden)가 보조한다. 각 유형의 관리자 한 명씩은 성직자에 의해, 다른 한 명은 인기 투표로 임명된다. 교구의 모든 자격을 갖춘 성인 구성원들은 일반 교구 회의(general vestry)를 구성하며, 매년 부활절 교구 회의(Easter Vestry)로 만난다. 또한 선출된 교구 회의(select vestry)가 있는데, 이는 성직자 대표와 보좌 사제(curate), 관련 교구 관리자와 교회 부지 관리자, 그리고 부활절 교구 회의에서 선출된 여러 구성원들로 구성된다. 선출된 교구 회의는 교구와 하나 이상의 교회 건물의 관리 및 운영을 지원한다.
4. 5. 대성당 운영
▉▉▉ 아마 교구▉▉▉ 더블린 교구||alt=아일랜드 교회의 교구||upright=1.0||left]]
아일랜드 교회는 다른 성공회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주교 중심의 교회 통치 체제를 따르며, 교구로 조직된 지리적 교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더블린(대성당 두 곳이 있음), 아마, 다운, 벨파스트에 있는 5개 주요 대성당의 관리 및 운영에는 특별 조항이 적용된다.
5. 현대 아일랜드 성공회
현대 아일랜드 교회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며, 북아일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장로교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다.[9] 성공회는 아일랜드에서 성 패트릭의 켈트 기독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적 성격과 개신교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1534년 잉글랜드에서 종교 최고 수장법이 통과된 후, 아일랜드 의회도 헨리 8세를 아일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많은 주교들과 성직자들이 이에 반대했지만, 아일랜드 교회는 교구 건물과 토지를 유지했다.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신앙을 지켰지만, 아일랜드 교회는 1871년까지 국교 지위를 유지했다.[9]
1800년 연합법에 따라 아일랜드 교회는 잉글랜드 교회와 통합되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연합 교회'가 되었다. 아일랜드 출신 성직자들도 영국 상원에 의석을 얻었다. 1833년 교회 임시 조치법(아일랜드)에 따라 주교 수가 12명으로 줄었고, 재정 개혁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혁은 옥스포드 운동의 한 요인이 되었다.[13]
십일조 전쟁 이후 십일조는 '십일조 지대 부담금'으로 대체되었지만, 1869년 아일랜드 교회법이 제정될 때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법으로 교회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지위가 종료되었고, 재산은 정부로 이전되었다.[13]
현대 아일랜드 교회는 저교파 전통을 따르지만, 고교파와 복음주의 교구도 존재한다. 1991년에는 여성 사제 서품을 시작했다.
5. 1. 교세
아일랜드 교회는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며, 북아일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장로교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종교 단체이다.[9] 2016년 기준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에는 126,414명의 회원이 있으며(2011년 인구 조사 결과 대비 2% 감소)[21], 북아일랜드에는 약 260,000명의 회원이 있다.[22][23]2013년 아일랜드 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교회 전체 평균 주일 출석자 수는 58,257명이며, 그중 74%가 아마 교구에 속해 있었다.[24] 교구별 출석률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다운과 드로모어 교구의 평균 주일 출석자 수가 12,731명으로 가장 높았고, 미스와 킬데어 교구는 1,463명으로 가장 낮았다.[24] 2016년, ''앵글리칸 연구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아일랜드 교회의 총 회원 수는 약 384,176명이고, 활동적인 세례 회원 수는 58,000명이다.[25]
20세기 동안 아일랜드 교회의 회원 수는 크게 감소했지만, 최근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회원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87] 이는 가톨릭과 개신교 부부 사이 자녀의 종교 교육에 대한 규정 완화, 성공회 신자들의 이주, 가톨릭 신자들의 개종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88]
2006년 아일랜드 공화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비율은 서부(골웨이주, 메이오주, 로스코먼주)에서 가장 크게 증가했고, 수치상 증가는 중부 동부(위클로주, 킬데어주, 미스주)에서 가장 컸다. 위클로주는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 비율이 6.88%로 가장 높았고, 그레이스톤즈는 9.77%로 도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2007년, 아일랜드 성공회의 성직 서품자 수는 20명으로, 가톨릭(9명)보다 많았다.[92]
5. 2. 주요 시설
아일랜드 교회는 더블린에 두 개의 대성당을 가지고 있다. 옛 도시 성벽 안에는 더블린 대주교의 주교좌인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이 있고, 옛 성벽 바로 밖에는 1870년 아일랜드의 국립 대성당으로 지정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있다. 다른 교구에도 대성당이 있다.[25]아마(Armagh)에는 아일랜드의 주교좌 대성당인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있다. 이 대성당은 존 맥도웰 대주교의 주교좌이다.
교회 중앙 사무실은 라스민에 있으며, 과거 아일랜드 교회 교육대학과 인접해 있었다. 교회 도서관은 처치타운에 있다. 교사 양성은 현재 더블린시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이루어지며, 과거 올 헬로우스 대학에 있는 아일랜드 교회 센터의 감독을 받았다. 교회는 더블린 남부 외곽 지역 라스가에 아일랜드 교회 신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25]
5. 3. 사회적 입장
아일랜드 교회는 인간의 성(性)에 대한 여러 측면을 두고 분열되어 왔다. 2002년, 한 교구 목사가 레즈비언 커플에게 축복을 제공하면서 이 문제가 중요해졌다.[39] 교단은 논의 내의 다양한 관점에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숙고 기간을 발표했다. 2010년, 한 교회 공동체는 LGBTI(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 공로로 LGBTI 상을 수상하여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40] 아일랜드 교회 교회법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정의하며 동성 결혼을 집례하지 않지만, 동성 커플이 민법상 결혼을 등록할 법적 권리를 지지하기도 했다.[41][42][43]
2005년부터 시민 동반자 관계가 허용되었다. 교회는 시민 결합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 2008년, "아일랜드 교회 연금위원회는 시민 파트너를 배우자와 동일하게 다룰 것이라고 확인했다."[44] 총회는 2008년 연금위원회의 정책을 채택했다.[45] 2011년, 아일랜드 교회의 한 성직자가 감독의 허락을 받고 동성 시민 파트너십을 맺었다.[46][47] 그 성직자에게는 성적 금욕에 대한 보장이 요구되지 않았다.[48] 2012년, 교회의 성직자 연금 기금은 "회원의 등록된 시민 파트너의 연금 수혜는 배우자의 연금 수혜와 동일하다"는 점을 계속 인정했다.[49] 동거에 관하여 교회는 "동거에 대한 어떤 견해도 그 관계 내에서 평생에 걸친 충성과 충실을 다짐하는 커플의 의도여야 한다"고 말했다.[50] 2004년, 당시 대주교 존 닐은 "교회는 세금, 복지 혜택, 상속 및 병원 방문과 같은 문제에 대한 법적 권리를 동거 커플(동성 및 이성 커플 모두)에게 확대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51] 교회는 동성 관계에 대한 반대에서 수용에 이르기까지 교단 내의 네 가지 일반적인 관점을 인정한다.[52]
동성 결혼에 대한 국민투표 이전에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중립을 유지했다.[53] 2015년, 코크의 주교 존경하는 폴 콜턴[54], 캐셜의 주교 마이클 버로우스[55] 및 두 명의 은퇴한 더블린 대주교는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56] 동성 결혼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팻 스토리 주교는 시민 결합을 지지했다.[57] 또한 55명의 성직자가 동성 커플 축복을 지지하는 서한에 서명했다.[58] 교회의 사목 서한에서 교회는 현재 교회 결혼은 이성애 커플만을 위한 것이지만 성직자는 동성 커플을 위한 기도를 제공할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59] 성직자가 동성 시민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서한은 "모든 사람은 입법에 명시된 후 민주적 권리를 행사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성직자는 성직 서약과 아일랜드 교회 총회의 권위에 더욱 구속된다"라고 명시했다.[59] 동성 결혼에 대한 감사 예배가 교회 공동체에서 열렸다. 예를 들어, 세인트 오도언 교회는 동성 결혼을 위한 "감사 예배"를 주최했다.[60] 코크, 클로인, 로스 교구에서도 LGBTI 예배가 허용된다.[61]
보수적인 로비 단체인 REFORM 아일랜드는 공식 서한을 "고백하는 성공회로부터의 위험한 이탈"이라고 비판하고 동성 결혼 인정에 계속 반대하고 있다.[62] 분열을 반영하여 교회는 모든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동성 결혼에 대한 보고서를 연기했다.[63] "편집상 독립적인" ''아일랜드 교회 가제트''는 동성 커플을 위한 축복 의식을 지지했다.[64] 대성당을 포함한 많은 교회 공동체가 공개적으로 LGBTI 권리를 지지하고 있다.[65] 교회 보고서는 "성경에서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깔린 도덕적 논리는 오늘날 헌신적이고 사랑스럽고 성스러운 동성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결정했다.[66][67] 2017년, 총회는 동성 커플을 위한 공개 감사 예배를 요청하는 제안을 검토했지만, 제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교회의 인간 성에 관한 특별 위원회는 주교들이 문제를 계속 연구할 것을 권고했다.[68] 공개 예배를 요청하는 동의안에 대한 반대표는 176표, 찬성표는 146표, 기권은 24표였다.[69] 폴 콜턴 코크 주교는 아일랜드 교회에서 동성 결혼식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70] 세 개의 교구, 즉 투엄, 리머릭, 킬랄로 연합 교구, 더블린과 글렌덜로 교구, 캐셜, 페른스, 오소리 교구는 동성 시민 결혼 축복을 지지하고 총회에서 동의안을 심의해 줄 것을 요청하는 투표를 했다.[71][72]
5. 4. [[에큐메니컬 운동]]
아일랜드 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 유럽교회협의회, 영국과 아일랜드의 함께하는 교회들, 아일랜드 교회협의회를 포함한 많은 에큐메니칼 단체의 회원이며, 포르보 공동체의 회원이기도 하다.[26]5. 5. [[GAFCON(세계 성공회 미래 회의)]]과의 관계
GAFCON 아일랜드는 2018년 4월 21일 벨파스트에서 열렸으며,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에서 320명이 참석했다. 국제 연사로는 피터 젠슨(은퇴한 시드니 대주교)과 그레고리 베네이블스(남미 성공회 총대주교)가 있었다.[27]아일랜드 교회는 2018년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예루살렘에서 열린 GAFCON III에 킬모어, 엘핀, 아르다의 페란 글렌필드 주교와 다운과 드로모어의 해롤드 밀러 주교를 포함한 6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28][29]
이들의 참여는 아일랜드 교회 일부 회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30] 그러나 아일랜드 교회는 GAFCON의 회원이 아니며, 성직자의 참석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비공식적이었고, 총회는 람베스 회의에 대한 GAFCON의 성명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31]
GAFCON 지지자들은 비판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여전히 아일랜드 교회의 공식 입장이지만 성공회 공동체의 자유주의 교구들에 의해 거부된 인간 성에 대한 람베스 1.10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찰스 레이븐 목사는 "GAFCON이 분리주의 또는 분파주의 단체라는 주장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충실한 성공회 신자들이 공동체 내에 남아 있도록, 특히 북미와 브라질에서 가능하게 한 개혁과 활성화 운동입니다. 공동 생활에 대한 참여가 단순한 역사적 유대가 아니라 성경적 복음에 대한 충실성에 기반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2008년 예루살렘 선언문은 '우리의 교제는 성공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32]
5. 6. 기타
잉글랜드의 교회가 잉글랜드 국교회로서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아일랜드 내의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리 변경을 거쳐 프로테스탄트화되었다. 성공회는 아일랜드인 대다수가 가톨릭 신앙을 충실히 지키는 가운데(오늘날에도 아일랜드인 대다수는 가톨릭이다) 국교로 정해졌다. 아일랜드 교회 재산의 거의 전부가 아일랜드 성공회에 계승되어, 오늘날에도 아일랜드 내 교회와 교회가 소유한 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후 아일랜드 내에서 소수파였지만 국교 지위를 유지했으나, 1871년 1월 1일 자유당 정권 윌리엄 글래드스톤 내각 시 아일랜드 자치 확대의 일환으로 국교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85]오늘날 아일랜드 성공회는 아일랜드 섬에서 가톨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회이다(북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 장로교회에 이어 세 번째). 일반인과 성직자의 총회에 의해 운영되며, 12개의 주교구로 나뉘어 있다. 현재 성공회 최고 권위자인 Archbishop of Armagh영어 (Primate of All Ireland영어)는 Alan Harper (archbishop)영어이며, 또 다른 대주교인 더블린 대주교는 John Neill영어이다.
현재 아일랜드 성공회는 고교파(앵글로-캐톨릭주의라고도 불린다)에 속하는 여러 교구를 포함하고 있지만, 성공회 내에서는 저교파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태도에 대해 교구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고교파와 복음주의(저교파 내의 복음파) 중에서도 몇몇 두드러지게 자유주의적인 교구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아일랜드 성공회는 더블린에 두 개의 대성당(주교좌성당)을 소유하고 있다. 성벽 터 안쪽에 있는 것이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더블린 대주교의 주교좌가 있다)이고, 성벽 바로 바깥쪽에 있는 것이 성 파트리크 대성당(1870년에 국립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다)이다. 다른 교구에도 각각 대성당이 하나씩 있다. 교회는 더블린 남부 교외 래스거(Rathgar)에 아일랜드 성공회 신학교(Church of Ireland Theological College)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 중앙 사무소는 래스마인즈(Rathmines)에 아일랜드 성공회 교육대학(Church of Ireland College of Education)과 인접해 있다.
1999년에 성공회는 성 패트릭 깃발 이외의 깃발을 게양하는 것을 금지했다.[86] 그러나 현재도 북아일랜드의 많은 교회에서 영국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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