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야이야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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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야이야코 산은 안데스 산맥의 푸나 고원 남단에 위치하며, 아르헨티나 살타 주와 칠레 안토파가스타 주에 걸쳐 있는 해발 6,739m의 활화산이다. 이 산은 세계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높은 활화산이며, 뚜렷한 용암류와 용암 돔으로 이루어진 복합 화산이다. 유야이야코 산에서는 1950년대에 여러 고고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잉카 시대의 인신 공양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를 높였다. 현재는 류야이야코 국립공원의 일부이며,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등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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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야이야코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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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류야이야코 |
지리적 위치 |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 |
산맥 | 안데스산맥, 아타카마 고원 |
좌표 | 24°43′00″S 68°32′00″W |
높이 | 6,723 m |
돌출 높이 | 3,700 m |
고립 | 5,000 m |
지름 | 25 km |
유형 | 성층 화산 |
등재 | 울트라 저명한 봉우리 |
지질학적 정보 | |
시대 | 플라이스토세 |
마지막 분출 | 1877년 5월 |
등반 정보 | |
최초 등반 | 1950년, 이전에는 잉카 문명에 의해 등반됨 |
기타 정보 | |
지역 | 칠레, 아르헨티나 |
관련 국립공원 | 유야이야코 국립공원(가칭) |
주변 지역 | 4호 온천 염전(가칭) |
주변 동물 | 미쓰유비시깃다초우(가칭) |
2. 명칭
'유야이야코'라는 이름은 케추아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케추아어 단어 llulla||거짓, 거짓말, 속임수qu와 yaku||물qu 또는 llaco||물qu가 합쳐진 것으로, "거짓 물"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지만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는 빙하의 용해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산은 물의 중요한 근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또는 현지 계곡의 홍수 위험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유야이야코 산은 아르헨티나 북서부 안데스 산맥에 위치하며, 푸나 고원의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이 이 산을 지나가며, 아르헨티나 쪽은 살타 주의 로스 안데스 데파트먼트, 칠레 쪽은 안토파가스타 주에 속한다. 산의 높이와 이 지역의 맑은 공기 덕분에 유야이야코 산은 190km 떨어진 세로 파라날에서도 보인다.
안데스 산맥의 화산 활동은 나스카 판과 남극 판이 남아메리카 판 아래로 섭입하면서 발생한다.[1][2] 나스카 판은 연간 7cm에서 9cm의 속도로, 남극 판은 연간 2cm의 속도로 섭입한다.[1] 이 과정에서 판에서 방출된 물과 휘발성 물질이 상부의 맨틀 쐐기로 유입되어 마그마가 형성된다.[1] 안데스 산맥의 화산 활동은 연속적이지 않고, 북부 화산대(NVZ), 중부 화산대(CVZ), 남부 화산대(SVZ), 호주 화산대(AVZ)라는 네 개의 뚜렷한 화산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다.[1][2] 이 화산대들은 섭입하는 판이 거의 수평으로 들어가는 평판 섭입 구간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1]
다른 해석으로는 아이마라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아이마라어 lloclla||따뜻한ay와 yacu||물ay를 합쳐 "뜨거운 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화산 활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케추아어로는 "생각", "기억"과 "물"의 조합으로 해석되거나, 화산 활동을 암시하는 llullu||부드러운 형태로 형성된 후 굳어지는 것qu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3. 지리 및 지형
이 화산은 정상 높이가 6723m[7] 또는 6739m로, 안데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높은 활화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장 높은 활화산은 오호스 델 살라도이다. 유야이야코 산은 주변 지형보다 약 2.2km에서 2.5km 더 높이 솟아 있으며, 주변의 다른 산들보다도 수백 미터 더 높다.
유야이야코 산은 주로 용암류로 이루어진 복합 화산이다. 정상 부분은 약 4개의 용암 돔이 모여 형성된 작은 원뿔 모양이며, 길이는 1km에서 3km에 달하고 가파른 벽을 가지고 있다. 정상 능선 동쪽에는 화산 분화구로 추정되는 3개의 움푹 팬 지형이 있다. 화산의 경사는 매우 가팔라서, 수평 거리 3km 내에서 고도가 1800m나 높아진다.[5] 해발 5600m에서 6100m 고도에는 유야이야코 산 초기 발달 단계에 형성되었다가 침식된 화산 분화구의 잔해로 보이는 지형이 있다.
정상 원뿔에서는 비교적 젊은 세 개의 용암류가 북쪽과 남쪽으로 흘러내렸는데, 길이는 4.5km에서 8km에 이른다. 이 용암류들은 형태학적으로 적갈색의 아아 용암 흐름이며, 크기가 5m에 달하는 검은색 및 붉은색 유리질 암석 덩어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용암류 끝부분의 두께는 15m에 달한다. 북쪽 용암류에는 용암 제방(levée)과 같은 구조가 두드러지며, 남서쪽 용암류는 6km 길이로 분출 당시 점성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화산체는 23km x 17km의 타원형 면적을 덮고 있으며, 부피는 약 37~50 km³에 달한다.
여러 개의 건조한 계곡이 유야이야코 산에서 시작되는데, 북북동쪽 사면의 케브라다 데 라스 소리타스(Quebrada de las Sorritas), 북서쪽 사면의 케브라다 엘 살라도(Quebrada El Salado) 및 케브라다 유야이야코(Quebrada Llullaillaco), 남서쪽 사면의 케브라다 라 바르다(Quebrada La Barda) 등이 있다. 이 계곡들은 대부분
4. 지질
유야이야코 산은 약 1,000개 이상의 화산이 존재하는 중부 화산대(CVZ)에 속한다.[3][2] 이 지역에서는 최소 44개의 화산 중심이 역사 시대에 활동했으며, 18개의 대규모 칼데라 형성 화산이 확인되었다.[1] 중부 화산대의 화산 활동은 주로 해발 6000m 이상의 높은 성층 화산이 밀집한 알티플라노 고원과 서부 산맥에서 발생한다.[4] 유야이야코 산 정상과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페루-칠레 해구 사이에는 약 15km에 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수직 낙차 중 하나가 존재한다.[5] 화산 아래의 와다티-베니오프대는 깊이 180km에 위치한다.[6]
유야이야코 산 주변의 기저암은 고생대의 퇴적암과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 신생대 화산암에 의해 덮여 있다.[3][4] 이 지역의 지각 두께는 약 70km에 달한다.[4] 유야이야코 산은 올라카파토-엘 토로 단층선이나 아치바르카 단층과 같은 심부 구조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아치바르카 단층은 유야이야코 산을 가로지르며 화산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7][8][3][9][4] 유야이야코 산은 이미락-살리나 델 프라일레 단층 흔적 위에 형성되었다.[10]
유야이야코 산은 칼륨과 알루미늄이 풍부한 데이사이트(dacite)질 용암을 주로 분출했으며,[4] 이는 칼크알칼리 계열의 특징을 보인다.[4] 일부 암석은 쇼쇼나이트(shoshonitic)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4] 암석 내 반정은 주로 각섬석이나 휘석이며, 흑운모와 석영은 소량 포함된다.[3][4]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출된 암석은 더 펠스(felsic)질로 변하는 경향을 보인다.[3] 마그마는 마그마 방 내에서의 분별 결정 작용, 마그마 혼합, 상승 중 지각과의 상호작용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3][6][4] 유야이야코 산의 총 마그마 분출률은 약 0.02 km³/kyr에서 0.05 km³/kyr 사이로 추정된다.[11][12]
유야이야코 산은 최소 두 번의 주요 건설 단계를 거쳤다. 초기 플라이스토세에 형성된 유야이야코 I은 현재 심하게 침식되었으며, 빙하 작용과 열수 변질의 흔적을 보인다. 이 시기의 용암류는 최대 20km 길이에 달했다. 그 위에 유야이야코 II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더 작은 규모의 용암류와 화산쇄설류 퇴적물을 남겼다. 유야이야코 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약 150만 ± 40만 년 전에 분출된 것으로 측정되었다. 유야이야코 I에서 II로의 전환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약 45만 년 전 또는 41,000 ± 1,000년 전 이후로 추정된다. 정상 부근의 젊은 암석에서는 5,600 ± 250년, 48,000 ± 12,000년, 930 ± 140년 등 다양한 연대가 측정되었다.[3]
후기 플라이스토세 시기인 약 15만 6천 년에서 14만 8천 년 전(± 5,000년) 사이에 유야이야코 산의 동-남동쪽 측면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3] 이 산사태는 화산 활동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이며,[3] 약 165km2의 면적을 덮었고, 추정 부피는 1km3에서 2km3에 달한다.[3] 산사태 퇴적물은 아르헨티나 방향으로 흘러내려 살라르 데 유야이야코까지 도달했으며,[3] 최대 50m 높이의 제방과 같은 지형을 형성했다.[3] 산사태의 속도는 45m/s에서 90m/s로 추정된다.[3] 이러한 대규모 산사태는 안데스 지역의 다른 화산들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으로, 가파른 화산 구조와 분화 관련 지진 활동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3]
유야이야코 산은 역사 시대에도 활동 기록이 있는 활화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활화산 기록이다. 19세기에 세 차례의 분화가 보고되었으나, 직접적인 관측 기록은 부족하여 확인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19세기 후반에 간헐적으로 연기가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20세기에도 분화가 있었다는 비공식적인 보고가 존재한다. 현재 유야이야코 산은 휴화산으로 간주된다. 알려진 푸마롤 활동은 없지만, 정상 부근의 얼음과 호수에서 지열 활동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살라르 데 유야이야코 주변에는 온천이 분포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유야이야코 산을 잠재적 위험도 측면에서 중간 정도로 분류하고 있다. 미래에 분화가 발생할 경우 화산쇄설류, 용암류, 또는 추가적인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나, 주변 지역의 인구 밀도가 낮고 경제 활동이 적어 인명이나 재산 피해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평가된다.
5. 기후
이 지역의 기후는 춥고 건조하며 햇볕이 잘 든다. 유야이야코산에는 기후 데이터가 제한적으로만 존재한다. 정상 부근의 기온은 약 -15°C~-13°C이며, 여름철 최고 기온은 -8°C에서 겨울철 -13°C 사이이다. 지표면의 온도는 밤낮에 따라 크게 변동하며, 여름철에는 12.5°C까지 올라갈 수 있다. 기후는 극도로 햇볕이 잘 드는데,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 중 하나일 것이며, 자외선 복사 강도가 매우 강하다. 높은 일사량은 구름의 부재, 높은 고도, 그리고 하지가 근일점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20mm 에서 50mm에 달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감소하고, 평균값을 제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헐적으로 발생한다. 주로 여름철의 대류 활동이나 겨울철의 사이클론과 관련이 있다. 강설은 해발 4000m까지 발생할 수 있다. 건조 대각선은 유야이야코산을 지나가는데, 여기서 강수량의 절반은 여름에, 나머지 절반은 겨울에 내린다. 유야이야코산과 아타카마 사막의 존재는 강수량 감소 효과, 남태평양 고기압 내의 공기 하강,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차가운 훔볼트 해류에 기인한다. 높은 증발률과 낮은 강수량으로 인해 유야이야코산의 토양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토양 중 하나이다.
기후가 항상 균일하게 건조했던 것은 아니다. 후기 빙하기 동안인 14,000년에서 9,500년 전 사이에 습윤한 시기가 알티플라노에 호수를 만들었다 (타우카 호수의 다우성 기후). 유야이야코산과 주변 산에서 살라르 데 푼타 네그라로의 물 방출이 증가하여, 정체된 수역이 형성되었다. 15,000년에서 10,000년 전 사이에 빙하가 후퇴하면서 호수들이 축소되었다. 9,000년에서 4,000년 전 사이에는 기후가 극도로 건조했고 초기 홀로세 (홀로세 기후 최적기) 동안 현재보다 기온이 더 따뜻했다. 케브라다 데 라스 소리타스 계곡의 퇴적물은 2,500년에서 1,600년 전 방사성 탄소 연대 사이에 표면 유출이 더 강했음을 나타낸다.
6. 빙설 및 빙하
유야이야코 산에 빙하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일부 자료에서는 유야이야코 산에 빙하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는 유야이야코 산을 빙하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4] 반면 다른 자료에서는 해발 6000m 이상의 고도에 작은 빙하가 있고, 북동쪽과 남쪽 경사면에 4개의 영구적인 적설 빙하가 있으며, 해발 6500m 이상에 0.55km2 (2002년 기준)의 단일 빙하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6년 칠레 일반 수자원국은 산의 북서쪽에 7개의 개별적인 얼음 덩어리가 있다고 밝혔다. 1958년에는 해발 5600m~6500m 사이의 서쪽 경사면에 얼음 덩어리가 보고되었지만, 빙하는 아니었다. 빙하가 없는 것은 건조한 기후의 결과이며, 높은 일사량과 건조한 공기로 인해 모든 눈이 빙하를 형성하기 전에 증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야이야코 산에는 보호된 틈새에 영구적인[2] 설원[5]이 있으며, 이는 빙하를 형성할 만큼 크지 않다. 해발 5000m 이상에서 1m~1.5m 높이의 참회자가 나타나며, 특히 더 보호된 지역과 옛 분화구 주변에서 나타난다. 설선은 해발 5400m~5800m에 위치한다. 임시적인 눈 덮임도 발생한다. 유야이야코 산의 눈과 얼음 지대는 7m~10m 두께에 이르며 살라 데 푼타 네그라에 물을 공급한다.
플라이스토세 동안 유야이야코 산과 그 주변 지역에서 과거의 빙하 작용이 있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과거 빙하 활동의 흔적은 정상 부근에서 발견되며, 권곡은 북서쪽 경사면에 존재했을 수 있으며, 빙하는 해발 5100m까지 내려왔을 수 있으며, 해발 4900m에 빙퇴석 고리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용암에 의해 파괴된 빙하 지형의 증거가 있으며[12], 화산 이류도 있다. 한때 유야이야코 산이 3번의 대규모 빙하 작용을 겪었다고 믿어졌지만, "빙퇴석"은 실제로는 이류/화산 퇴적물이다. 일부 지형은 어떠한 빙하 작용이 최후 빙기 이전에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최후 빙기 동안 기온이 떨어졌을 때조차 유야이야코 산의 기후는 빙하 발달을 허용하기에는 너무 건조했을 수 있다. 빙하 확장 현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기후가 더 습했던 후빙기 동안이었다.
주빙하 현상은 유야이야코 산에서 관찰되며, 해발 4300m에서 시작하여 칠레 쪽에서는 5100m~5400m 부근에서,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5350m~5700m에서 최대에 이른다. 이들은 토류(솔리플루션) 표면, 한랭평탄면 표면, 블록 방벽이며, 다각형 지형이다. 영구 동토는 더 높은 고도에서 발견되며 설원과 연결되어 있다. 아이리스 산과 미트랄 산에서도 한랭평탄면과 토류 지형이 관찰된다. 이 지형은 과거 기후가 더 습했던 시기에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7. 동식물
식생은 건조한 기후 때문에 희소하며, 특히 강수량이 식생 발달을 허용하기에 너무 적은 해발 3700m에서 3800m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식생은 드문 쿠션 식물과 관목이 있는 스텝의 형태를 띤다. ''Acantholippia punensis'', ''Atriplex imbricata'', ''Cristaria andicola''는 이 고도 위에서 자라는 첫 번째 식물들이다. 이 식물들은 해발 3900m에서 고도 4910m까지 발견될 수 있는 ''Stipa frigida''와 함께 나타난다. 최대 식생 밀도는 표면의 12%를 차지하며 해발 4250m 부근에서 발견된다. 이 고도에서는 이전에 언급된 식물 외에도 ''Adesmia spinosissima'', ''Fabiana bryoides'', ''Mulinum crassifolium'', ''Parastrephia quadrangularis''가 발견된다. 이 고도 위에서는 저온으로 인해 식생 피복이 다시 감소하며, 해발 5000m 이상에서는 사라진다. 화산의 대부분은 이 식생 한계선 위에 있다. ''Deyeuxia curvula'', ''Distichia muscoides'' 및 ''Oxychloe andina''는 계곡에서 습지 (bofedaleses)를 형성한다.
동물상으로는 사슴, 과나코, 비쿠냐가 있으며, 비즈카차도 서식한다. 특히 수역 주변에는 오리, 플라밍고 및 레아와 같은 새들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해발 4600m 이상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전갈의 한 종은 이 화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류야이야코 산에는 푼타데바카스 잎귀쥐 개체군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알려진 모든 척추 동물 종 중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영구적으로 서식하는 개체군일 가능성이 높다.
지의류는 바위에서 자란다. 눈 조류를 포함한 조류 및 시안 박테리아는 참회자(penitentes)에서 살고, 때로는 색깔 있는 덩어리를 형성하며, 조류와 미생물 매트는 라고 류야이야코(Lago Llullaillaco)에서 자란다. 호수에서는 한 종의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 호수의 미생물은 일부 측면에서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와 리칸카부르 호수와 같은 다른 중앙 안데스 호수의 미생물과 유사하며 다른 측면에서는 다르다. 종 다양성이 낮은 균류 및 박테리아 군집이 류야이야코의 토양(테프라)에서 발견되었으며, 균류 ''Naganishia friedmanii''가 가장 흔한 종이다. 토양은 유기물이 매우 부족하며 단순한 생태 군집을 가지고 있다. 이 미생물들은 혹독한 건조, 강한 UV 방사선, 일상적인 동결-해빙 주기 및 영양분 부족과 같은 지구상에서 가장 극한 환경 조건 중 일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생명체는 일산화 탄소와 같은 특이한 식량원이나 바람에 의해 산으로 운반되는 유기물(예: 식물 잔해)에 의존할 수 있으며, 광합성 생물은 물의 가용성이 높은 지역으로 제한된다.
류야이야코 산 지역은 1995년에 만들어진 류야이야코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인근 에스콘디다 구리 광산에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이 류야이야코 산에 도달하여 그곳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8. 고고학
1950년대에 유야이야코산에서 여러 고고 유적이 발견되었다.[7] 1952년 최초 발견 이후 1953년, 1954년, 1958년, 1961년, 1974년, 1983년, 1984년, 1985년 및 1993년에 다양한 연구자와 단체에 의한 추가 탐험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고고학자 요한 라인하르트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산 정상 및 그 부근에서 3곳의 유구를 조사하기도 했다. 발견된 유적 중 일부는 이후 도굴되기도 했다.
3개의 잉카 길은 살라르 데 유야이야코, 살라르 데 푼타 네그라, 소콤파에서 유야이야코 산으로 연결되어 북동쪽 측면 해발 5200m 지점에 있는 '탐보'(여관)에서 만난다. 수많은 건물로 구성된 이 탐보는 등반을 위한 베이스 캠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라르 데 유야이야코에서 이어지는 길에는 1972년에 16구의 시신이 발견된 묘지가 있다. 이 묘지에는 유야이야코 고고 유적 건설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반쯤 파괴된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단지는 테라스 위에 지어졌으나, 산사태로 인해 부분적으로 묻혀 있다. 묘지와 탐보 사이에는 두 개의 수원지가 있다.
잉카 의례 길은 탐보에서 시작하여 화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너비는 보통 1.5m에서 2m 정도이며(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더 좁아진다), 나무 기둥과 돌무더기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눈이 길을 덮을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길은 해발 5600m과 6300m에 있는 작은 건물과 보호 벽으로 구성된 두 개의 중간 지점을 지나 계속된다. 해발 6500m 지점의 '포르테주엘로 델 잉카'(Portezuelo del Inca)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정상으로, 다른 하나는 해발 6715m의 고원으로 이어진다. 해발 6550m에도 보호 벽과 작은 건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중간 지점이 있다. 고원에는 두 개의 울타리와 11m × 6m 크기의 플랫폼이 있으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고고 유적 중 하나이다.
이 잉카 길은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와 코피아포 사이를 잇는 주요 남북 잉카 도로와 연결된다. 유야이야코 인근 도로를 따라 도로 표지, 쉼터, 탐보와 같은 기반 시설도 발견된다. 유야이야코의 길은 단순한 오솔길이 아니라 옹벽, 경계선, 그리고 '포르테주엘로 델 잉카' 위쪽의 계단까지 갖춘 잘 정비된 길이다. 이 길은 잉카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 건설 방식은 잉카 신화를 반영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길은 1958년 마티아스 레비치에 의해 발견되었다.
유야이야코는 이 지역, 어쩌면 중앙 안데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잉카의 성산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고고 유적 단지는 안데스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잉카 통치 기간 동안 지역 아타카마인들이 사용한 순례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잉카 이전 시대의 활동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야이야코에서는 약 45개의 구조물이 확인되었는데, 여러 유적지에 분포하며 뚜렷한 건축 양식의 차이를 보여 모든 구조물이 국가 주도로 건설된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구조물에는 석환과 지붕이 있는 건물 등이 포함된다. 잉카 길이 산으로 올라가는 케브라다 유야이야코와 케브라다 데 라스 조리타스를 포함하여, 푼타 네그라의 살라르를 향해 유야이야코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계곡에서도 고고 유적이 발견된다.
1999년에는 요한 라인하르트와 아르헨티나의 고고학자 콘스탄사 체르티가 이끄는 합동 원정대가 산 정상 부근에서 약 500년 이상 전의 것으로 보이는 인신 공양된 잉카 어린이 미라 세 구를 발견했다.[7] 이 미라들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8] (미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유야이야코의 아이들 섹션 참조)
이러한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화산 정상 지역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해 국가 역사 유적지(''Lugar Histórico Nacional'')로 지정되었고, 2014년 6월 24일 유야이야코 고고 유적 단지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야이야코와 관련된 여러 신화가 전해지며, 이 산은 살라르 데 아타카마 동쪽에 있는 소카이레 주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부 등반은 오늘날에도 의례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8. 1. 유야이야코의 아이들
1999년 3월, 요한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아르헨티나·페루 합동 고고학자 팀은 유야이야코 산 정상 부근 1.7m 깊이의 구덩이에서 약 500년 이상 전의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 미라 세 구를 발견했다.[7] 이들은 각각 7세 남자아이 '엘 니뇨'(El Niño), 6세 여자아이 '라 니냐 델 라요'(La Niña del Rayo), 15세 여자아이 '라 돈셀라'(La Doncella, 처녀라는 뜻)로 명명되었다. 다만 이후 연구에서 세 아이 모두 발견 당시 추정된 나이보다 더 어렸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라들은 모두 옷을 입고 앉은 자세로 발견되었으며, 어린 아이들에게서는 두개골 변형의 흔적이 나타났다.이 미라들은 산 정상의 차갑고 건조하며 산소가 부족한 환경 덕분에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미라 중 가장 잘 보존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생물에 의한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어린 '라 니냐 델 라요'는 이름처럼 번개(낙뢰)를 맞아 일부 손상된 상태였다. 아이들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질식했거나 의식을 잃은 채 생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남자아이 '엘 니뇨'는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사망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들은 잉카 문명의 신들에게 바쳐진 인신 공양의 제물이었다. 당시 스페인 선교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잉카 제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카파코차(Capacocha)'라는 제물 의식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잉카에서는 잉카 황제의 죽음과 같은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자연 재해 시 자연을 달래거나, 산신에게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인신 공양을 행했다. 제물로는 주로 신들이 깨끗한 존재를 선호한다는 믿음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선택되었으며, 특히 흠 없는 몸을 가진 아이나 처녀가 선호되었다. 역사 기록과 미라 분석 결과, 이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가문 출신이었고 영양 상태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옮겨져 제물로 바쳐졌다.
2013년 생물학적 분석 결과, 아이들은 제물로 바쳐지기 전 해부터 코카 잎이나 알코올(옥수수로 만든 맥주인 치차)을 섭취하는 등 특별한 식생활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10][11]
- 라 돈셀라 (La Doncella): 15세 소녀 미라로, 화려한 깃털 머리 장식을 하고 있어 '태양의 처녀'를 의미하는 '아쿠야'(Aclla)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왕가의 아내나 수녀, 또는 다른 제물 후보자들과 함께 선발되어 관리되었음을 시사한다. 갈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여러 개의 조상(사람과 동물을 형상화한 조각상)과 함께 매장되었다. 머리카락은 정성스럽게 땋아져 있었으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백발이 몇 가닥 발견되었다.[11]

- 엘 니뇨 (El Niño): 7세 남자아이 미라로, 옷 일부에 혈액이 섞인 토사물이 묻어 있어 폐부종을 앓다가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 미라 중 유일하게 몸이 끈으로 묶여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골반이 탈구된 상태였다.[12] 반듯이 누운 자세로 발견되었다.
- 라 니냐 델 라요 (La Niña del Rayo): 6세 여자아이 미라로, 발견 당시 몸과 지니고 있던 공예품 일부가 여러 차례의 낙뢰로 인해 손상되어 '빛나는 소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마에는 금속판이 달린 머리 장식을 착용하고 있었다. 티티카카 호나 쿠스코 주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항아리)와 함께 매장된 점으로 미루어 장거리를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미라와 함께 총 145점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가죽 가방, 깃털 머리 장식, 도자기(항아리, 접시, 냄비, 꽃병 등), 금, 은, 스폰딜루스(굴의 일종) 껍질로 만든 사람 및 동물 조각상, 신발, 직물 등이 포함된다. 나무와 양모로 만든 용기도 있었으며, 용기와 가방 안에서는 코카 잎, 머리카락, 손톱 등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고고학계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유야이야코 산에 대한 관광객 증가와 해당 지역 원주민 문제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라들은 발견 초기 살타 가톨릭 대학교에 보관되었다가, 2007년 이들을 위해 특별히 설립된 아르헨티나 살타의 고산 고고학 박물관(Museo de Arqueología de Alta Montaña, MAAM)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9] 미라의 손상을 막기 위해 특수한 환경 조건 하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발견 이후 다양한 과학적 분석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물관에 미라를 전시하는 것을 두고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과 오랜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9. 등반 및 접근
해발 고도가 높아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특수한 등산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등산 루트가 여러 개 존재한다. 가장 쉬운 등반 경로는 산의 북동쪽 사면에 있는 과거 잉카 길을 따르는 것이며, 칠레에서 접근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톨라르 그란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칠레에서는 칠레 5번 국도, 소콤파 고개, 탈탈 또는 토코나오에서 푼타 네그라 염호로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한다. 거기에서 유야이야코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으며, 이 도로는 아구아다 데 라스 조리타스에서 세 갈래로 나뉜다. 한 도로는 유야이야코 산 북쪽의 고개 근처에서 끝나고, 두 번째 도로는 아수프레라 에스페란토에서 끝나며, 세 번째 도로는 화산을 남서쪽에서 돌아 유야이야코 산 남쪽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간다. 일부 도로는 막다른 길일 수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양쪽에서 정상까지 캠프를 설치하며 등반이 이루어진다.
강렬한 자외선, 산소 부족, 눈보라, 저체온증, 번개는 유야이야코 산에서 흔히 발생하는 위험 요소이다. 과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분쟁 시기(1978년-1982년)에 지뢰가 설치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나[6], 2006년 다국적 노력으로 제거되었다. 2020년 새로운 베이스캠프가 개장되었다.
서양인의 첫 등반은 1952년 칠레인 비온 곤잘레스와 후안 하르샤임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훨씬 이전에 등반했다. 유야이야코 산은 선사 시대 등반 기록이 있는 가장 높은 산으로, 이는 고도가 높은 지역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큰 장애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당시의 기술로 산에 건축물을 건설하기도 했다.
대부분 잔설 지대를 지나기 때문에 아이젠과 피켈이 필수적이다.
참조
[1]
웹사이트
ユーヤイヤコ山
http://kotobank.jp/w[...]
[2]
웹사이트
Andes 6000m peak list
http://www.andes.org[...]
[3]
논문
The quaternary glaciation of Chile: a review
http://rchn.biologia[...]
[4]
서적
Yuraq Janka: Cordilleras Blanca and Rosko
[5]
웹사이트
Salar de aguas Calientes IV
https://rsis.ramsar.[...]
2009-08-14
[6]
웹사이트
Extreme Microbes Found Near Mummy Burial Site
http://www.ouramazin[...]
OurAmazingPlanet
2012-06-20
[7]
웹사이트
Secretaría de Cultura de Salta Argentina – MISSION AND ORIGINS
http://maam.culturas[...]
2007-12-16
[8]
웹사이트
ナショジオピープル ヨハン・ラインハルト(Johan Reinhardt)
http://www.ngcjapan.[...]
[9]
뉴스
In Argentina, a Museum Unveils a Long-Frozen Maiden
http://www.nytimes.c[...]
The New York Times
2007-09-11
[10]
논문
Archaeological, radiological, and biological evidence offer insight into Inca child sacrifice
[11]
웹사이트
Secretaría de Cultura de Salta Argentina – ORIGEN Y MISION
http://www.maam.org.[...]
2007-12-16
[12]
뉴스
Child mummies yield 'grim' evidence
http://www.metro.co.[...]
200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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