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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반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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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율리우스 반센은 1830년 슐레스비히 공국에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이다. 킬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헌학을 공부하고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에 참전했으며, 뷔르템베르크 왕국에서 미학 관련 주제로 졸업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아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하고, 자신의 철학 사상인 '실재변증법'을 제시했다.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결합하려 했으며, 개인의 의지 갈등과 모순을 강조하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펼쳤다. 그의 철학은 비극 이론과 초월적 실재론으로 이어졌으며,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과의 논쟁을 통해 철학적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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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반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율리우스 반센
율리우스 반센
본명율리우스 아우구스트 빌헬름 반젠
출생지퇴네르, 슐레스비히
사망지렝보르크, 포메나리아
국적독일
시대19세기 철학
지역서양 철학
학파대륙 철학
형이상학적 주의주의
후기-쇼펜하우어 염세주의
다원주의
초월적 실재론
분야미학
인식론
형이상학
심리학
비극
주요 업적Realdialektik
세계에 대한 비극적 개념
학력 및 경력
모교정보 없음 (제공된 문서 내에 명시된 학력 정보가 없음)
소속 기관정보 없음 (제공된 문서 내에 명시된 소속 기관 정보가 없음)
영향 관계
영향 받음정보 없음 (제공된 문서 내에 명시된 영향 받은 인물 정보가 없음)
영향 줌정보 없음 (제공된 문서 내에 명시된 영향을 준 인물 정보가 없음)

2. 생애

율리우스 반센은 1830년 슐레스비히퇴네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서 철학문헌학을 공부하였고,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자원병으로 참전하였다. 이후 튀빙겐에서 미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곳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1862년부터 라우엔부르크 (렝보르크)의 김나지움에서 재직하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율리우스 반센은 1830년 슐레스비히퇴네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서 철학문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문헌학은 그레고르 빌헬름 니치 아래에서 배웠다. 1849년부터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1848-1851)에 자원병으로 참전하여 덴마크에 맞서 싸웠다. 1850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군대가 무장 해제되자, 뷔르템베르크 왕국튀빙겐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철학 공부를 계속하여 1853년 프리드리히 테오도어 비셔의 지도 아래 미학 관련 주제로 졸업했다. 졸업 후 여러 곳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1862년에는 힌터폼메른의 라우엔부르크 (렝보르크)에 있는 6년제 김나지움에 자리를 잡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2. 2. 교육 활동

반센은 에서 철학과 그레고르 빌헬름 니치 아래에서 문헌학을 공부하며 학문적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1849년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1848-1851)이 발발하자 덴마크에 맞서 자원병으로 참전하였다. 1850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군대가 무장 해제되자, 그는 뷔르템베르크 왕국튀빙겐으로 피신하여 철학 공부를 이어갔다. 1853년에는 프리드리히 테오도어 비셔의 지도 아래 미학 관련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여러 곳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1862년 힌터폼메른의 라우엔부르크 (렝보르크)에 있는 6년제 김나지움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편을 잡았다.

3. 철학 사상

율리우스 반센의 철학 사상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나,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독자적인 성찰을 통해 구축되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제자로서, 세계의 근본적인 동력을 비이성적인 의지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존재 안에 단일한 의지가 내재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에는 동의하지 않고, 각 개인은 고유하며 서로 충돌하는 개별 의지('의지 헤나데스' Willenshenadende)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존재론적 다원주의 입장을 취했다.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 개념에 주목했지만, 종합(Synthese)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는 진보주의적, 목적론적 해석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현실 세계와 개인의 내면 모두에서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갈등이 영속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실재변증법(Realdialektik|레알디알렉티크de)이라 명명했다. 이 관점에서 모순은 단순한 사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근본적인 특징이며, 현실은 끊임없는 대립과 부정의 과정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성격학, 비극 이론, 그리고 극단적인 염세주의로 이어진다. 그는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반된 의지 방향들의 충돌("의지 충돌")이 인간 고통의 근원이며, 세계의 법칙 자체가 비극적이라고 보았다. 특히 쇼펜하우어나 동시대 다른 염세주의자들(하르트만 등)과 달리, 반센은 지성을 통한 의지의 부정이나 다른 어떤 형태의 구원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비극성 앞에서 그는 유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반센은 관념론유아론적이라 비판하며, 개별 의지의 고유한 현실을 인정하는 초월적 실재론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동시대 철학자 하르트만과 초기에는 교류했으나, 일원론무의식 개념 등에 대한 해석 차이로 인해 결국 철학적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반센의 철학은 모순을 현실의 핵심으로 보고, 그것이 종합을 통해 해결되지 않으며, 그 근원이 의지에 있다는 세 가지 핵심 전제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의 사상은 루트비히 클라게스 등 후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3. 1. 실재변증법 (Realdialektik)

율리우스 반센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실재변증법(Realdialektik|레알디알렉티크de)은 헤겔변증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반센은 헤겔 변증법의 종합(Synthese)을 통한 발전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대립하는 힘들이 오직 서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모순과 갈등만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보았다. 이는 세계에 내재된 합리성이나 목적론적 진보를 부정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사상은 쇼펜하우어의 철학, 특히 세계의 근본 동력으로서의 비이성적 의지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반센은 모든 개체에 단일한 의지가 내재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비판하고, 각 개체는 고유하고 서로 충돌하는 '개별 의지'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 개별 의지들의 끊임없는 내적 모순("의지 충돌")과 외부 세계에서의 물질적 대립(실제변증법)이 현실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반센에게 모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의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본질이며, 따라서 세계 질서는 필연적으로 비극이다. 그는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지성을 통한 의지 부정과 구원의 가능성을 단호히 부정했다. 의지 없는 지성은 무력하며, '무(無)를 의지하는 것'조차 의지의 한 형태이므로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 불가능성과 극단적인 염세주의는 반센 철학을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반센은 자신의 실재변증법 사상을 ''역사철학에 관하여''(1871), 핵심 저서인 ''세계의 지식과 존재에서의 모순''(1880/82), 그리고 ''세계 법칙으로서의 비극과 형이상학의 미학적 형태로서의 유머''(1877) 등의 저작을 통해 구체화했다.

3. 1. 1. 헤겔 변증법 비판

율리우스 반센은 철학 탐구를 시작하며 19세기 초 독일에서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주목받던 헤겔주의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헤겔 사상의 핵심인 범논리주의와 급진적 합리주의에 만족하지 못했다. 반센이 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명백한 비합리성과 여러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단순한 이론, 합리화, 설명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다. 현실 존재 자체가 가혹하고 혼란스러우며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 개념 자체는 흥미롭다고 여겼다. 변증법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오래전 그의 단편에서 지적했듯이) 끊임없는 갈등의 순환 속에서 세상과 그 자체의 깊은 대립을 설명하는 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센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상정한 내재적 로고스나 헤겔이 말하는 합리적 정신과 같은 개념은 잘못된 가정이며, 이로 인해 헤겔의 변증법이 진보주의역사주의적 관점으로 오염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헤겔 변증법의 "오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센은 자신만의 '''''Realdialektik'''''(현실 변증법)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의 현실 변증법에는 서로 대립하는 두 힘 사이에서 종합(Synthese)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립은 오직 부정과 그에 따른 모순되는 측면의 파괴로만 이어진다고 보았다. 반센에게 존재에는 어떠한 합리성도 없었으며, 따라서 모든 갈등의 끝에서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인 힘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3. 1. 2. 쇼펜하우어 철학 수용과 비판

쇼펜하우어의 제자로서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추상적 영역에 한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결합하고자 했다. 그는 비이성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쇼펜하우어적 의지를 세계의 본질이자 유일한 실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반센은 의지가 모든 개인 안에서 동일하다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개개인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개인의 성격과 기질 연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결되며, 존재론적 다원주의로 이어졌다. 그는 통일된 의지가 아닌, 고유한 갈망과 목표, 소원을 가진 '개별 의지'들('의지 헤나데스' Willenshenaden|빌렌스헤나덴de)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별 의지들은 비이성적 특성으로 인해 서로 모순되는 욕망("의지 충돌")으로 고통받는다.

반센은 철학 초기에 헤겔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나, 헤겔의 범논리주의와 합리주의가 현실 세계의 비합리성과 모순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 개념을 수용하되, 헤라클레이토스로고스나 헤겔의 합리적 정신과 같은 목적론적 요소를 배제했다. 대신 그는 두 상반된 힘 사이의 종합 없이 오직 부정과 파괴적인 모순만이 존재하는 실제변증법(Realdialektik|레알디알렉티크de) 개념을 발전시켰다. 반센에게 존재에는 합리성이 없으며, 갈등 끝에 진보로 이어지는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센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그 안의 비이성적 의지 개념이 자신의 철학 체계에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는 쇼펜하우어 철학에 깊이 몰두하여 쇼펜하우어 학파 내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가 되었으나,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쇼펜하우어 사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실제변증법과 쇼펜하우어의 의지 중심 형이상학을 결합하여, 현실이 물질적 대립(실제변증법)의 지속적인 투쟁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 역시 해결 불가능한 의지 방향들의 적대감("의지 충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모순은 세계의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본질이며, 세계의 법칙은 비극적인 세계 질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철학과 반센 철학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구원의 가능성이다. 쇼펜하우어는 해방된 지성을 통해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지만, 반센에게 구원은 불가능했다. 그는 의지 없는 지성은 무력하며, '무(無)를 의지하는 것'조차 의지의 한 형태이므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극도로 염세적인 세계관은 반센을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염세주의 철학자들(프라우엔슈테트, 마인랜더, 하르트만)과도 명확히 구별 짓는다.

반센은 이러한 사상을 ''성격학에 대한 기여''(1867), ''의지와 동기의 관계에 관하여''(1870), ''모자이크와 실루엣''(1877), ''역사철학에 관하여''(1871), 핵심 저서인 ''세계의 지식과 존재에서의 모순''(1880/82), ''세계 법칙으로서의 비극과 형이상학의 미학적 형태로서의 유머''(1877) 등의 저작을 통해 제시했다.

3. 2. 의지 형이상학

쇼펜하우어의 제자였던 율리우스 반센은 헤겔변증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의지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의지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세계와 존재에 내재한 비합리성과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 헤겔 철학의 합리주의적 측면을 비판하고, 변증법의 갈등 개념을 차용하되 진보나 합성을 배제한 실제변증법(Realdialektikde)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끊임없는 대립과 부정만이 존재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틀이 되었다.

또한 반센은 쇼펜하우어의 비이성적 '의지'를 세계의 근본 동력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모든 존재가 단일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일원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존재론적 다원주의 입장에서, 고유한 갈망과 목표를 가진 무수한 개별 의지들, 즉 의지 헤나데스(Willenshenadende)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반센 형이상학의 핵심은 이 개별 의지들이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이며, 내부에 서로 상충하는 욕망들을 동시에 품고 있어 끊임없는 내적 갈등(의지 충돌)을 겪는다는 점이다. 이 모순은 해결 불가능하며, 세계의 근본적인 비극성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쇼펜하우어와 달리 어떠한 형태의 구원도 부정하는 극단적인 염세주의로 귀결된다. 반센에게 모순은 세계의 영원한 본질이며, 따라서 세계 질서는 필연적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3. 2. 1. 의지 갈등

쇼펜하우어의 제자였던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결합하고자 시도했다. 다만 헤겔의 변증법은 추상적인 영역에서만 받아들였다. 그는 비이성적이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쇼펜하우어적 의지 개념을 세계의 본질이자 유일한 실재로 인정했지만, 이 의지가 모든 개인 안에서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반센 사상의 성격학적 측면은 루트비히 클라게스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저작 ''성격학에 대한 기여''(1867)를 비롯하여 ''의지와 동기의 관계에 관하여''(1870), ''모자이크와 실루엣''(1877)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반센에 따르면, 불합리함의 본질은 모순, 특히 서로 다른 여러 의지의 방향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에 있다. 따라서 현실 세계는 물질적인 대립(실제변증법)이 끊임없이 투쟁하는 장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 역시 서로 상반되는 의지 방향들이 해결할 수 없는 적대감(의지 충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반센은 '의지 헤나데스'(Willenshenaden|빌렌스헤나덴de)라고 표현한 무수한 개별 의지 단위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는 모순이야말로 세계의 근본적인 본질이며 영원히 지속된다고 보았고, 이로 인해 세계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세계 질서가 된다고 주장했다.

반센은 자신의 사상 중 실제변증법적 측면에 대해서는 논문 ''역사철학에 관하여''(1871), 그의 핵심 저서인 ''세계의 지식과 존재에서의 모순''(1880/82), 그리고 튀빙겐 시 기념 출판물 ''세계 법칙으로서의 비극과 형이상학의 미학적 형태로서의 유머''(1877) 등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3. 2. 2. 염세주의

쇼펜하우어의 제자로서 반센은 헤겔의 변증법(단, 추상적 영역에 한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결합하려 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비이성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지를 세계의 본질이자 유일한 실재로 받아들이면서도, 의지가 모든 개인 안에서 동일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보았다.

반센은 초기에 헤겔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나, 헤겔 철학의 범논리주의와 급진적 합리주의가 현실의 은폐되지 않은 비합리성과 모순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존재 자체가 가혹하고 혼란스러우며 모순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는 헤겔의 변증법 사상, 특히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세계의 대립을 설명하는 측면에 주목했다. 그러나 헤겔이 상정한 합리적 정신이나 헤라클레이토스로고스 개념이 변증법을 진보주의역사주의로 오염시켰다고 비판하며, 자신만의 실제변증법(Realdialektikde) 이론을 발전시켰다. 반센의 실제변증법에서는 대립하는 두 힘 사이의 합성 개념이 없으며, 대립은 오직 부정과 모순되는 측면의 파괴로만 이어진다. 존재에는 합리성이 부재하며, 따라서 모든 갈등 끝에 진보로 이끄는 목적론적 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실제변증법적 측면은 ''역사철학에 관하여''(1871), 핵심 저서 ''세계의 지식과 존재에서의 모순''(1880/82), ''세계 법칙으로서의 비극과 형이상학의 미학적 형태로서의 유머''(1877) 등에서 제시되었다.

헤겔 변증법에서 형이상학적 추진 주체를 제거하자, 반센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 공백을 메울 개념을 발견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비이성적 의지 개념을 받아들였으나, 모든 존재가 단일한 실체의 일부라는 일원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심리학, 특히 개인의 성격과 기질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반센은 각 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보았고, 존재론적 다원주의로 기울었다. 그는 통일된 의지가 아닌, 고유한 갈망, 목표, 소원을 가진 '개별 의지'들, 즉 의지 헤나데스(Willenshenadende)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성격학에 대한 기여''(1867), ''의지와 동기의 관계에 관하여''(1870), ''모자이크와 실루엣''(1877) 등의 저작에서도 나타난다.

반센에 따르면, 불합리함의 본질은 모순, 특히 한 개인 안에 여러 상반된 의지 방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있다. 개별 의지들은 비이성적 특성으로 인해 모순된 욕망에 시달리며, 이는 현실이 물질적 대립(실제변증법)의 지속적인 투쟁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 또한 반대되는 의지 방향들의 해결 불가능한 적대감(의지 충돌)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개별 의지 단위들의 구원을 부정하고, 모순의 존재가 세계의 근본적 본질로서 영구하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세계의 법칙은 비극적인 세계 질서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쇼펜하우어의 주의주의적 형이상학과 자신의 실제변증법 아이디어를 결합한 결과, 반센의 염세주의는 쇼펜하우어의 그것과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쇼펜하우어가 해방된 지성에 의한 의지 부정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둔 반면, 반센의 철학 체계에서는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의지 없이는 지성은 무력하며, '무(無)를 의지하는 것'조차 여전히 의지의 한 형태이므로 모순이다. 지성이 낳는 모든 생각은 모순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의지의 욕망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영원히 자기 자신과 갈등하기 때문이다. 주체에게 탈출구를 제공하지 않는 이러한 극도로 염세적인 세계관은 반센을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염세주의 철학자들(프라우엔슈타트, 마인랜더, 하르트만)과 구별짓는 특징이다. 그의 사상은 프리드리히 니체영원 회귀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반센은 말년에 자신의 염세주의를 이상주의적 낙관주의나 비난하는 냉소주의와 구별하고자 했다. 그는 진정한 염세주의자는 "이상주의적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머리의 냉정한 계산"을 통해 현실을 직시한다고 설명했다. 즉, 모든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깨닫지만, 이러한 불가능성에서 오는 슬픔이 오히려 염세주의자를 좌절시키는 대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존재의 "세계고통( Weltschmerzde )"을 느끼기에 공감과 연민으로 더욱 힘을 얻는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세상의 고통이 쾌락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세하다는 식의 "쾌락주의적" 염세주의를 비판했다. 개인마다 고통과 쾌락을 측정하는 기준이 다르므로 그러한 계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번 개인주의적 신념을 강조했다. 반센에게 진정한 염세주의란, 모든 도덕적 목적과 이상이 결국 헛되다는 것을 깨닫고 탈출구나 구원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태도 그 자체이다.

3. 3. 성격학

쇼펜하우어의 제자였던 반센은 그의 철학에서 헤겔의 변증법과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결합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비이성적인 의지를 세계의 본질로 받아들이면서도, 이 의지가 모든 개인 안에서 동일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보았다. 이는 그의 성격학 이론의 기초가 된다.

반센은 특히 심리학, 개인의 성격기질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각 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인식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존재가 단일한 형이상학적 실체의 부분일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일원론을 완전히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동시대의 필립 마인랜더와 유사하게 존재론적 다원주의를 지향하며, 통일된 하나의 의지가 아닌, 고유한 갈망과 목표를 가진 다수의 '개별 의지'(그는 이를 "의지 헤나데스"라고 불렀다)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반센 사상의 이러한 성격학적 요소는 그의 저작 Beiträge zur Charakterologie|성격학에 대한 기여de(1867)를 비롯하여 Zum Verhältnis zwischen Wille und Motiv|의지와 동기의 관계에 관하여de(1870), Mosaiken und Silhouetten|모자이크와 실루엣de(1877)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관점에서 비합리성의 본질은 모순, 특히 한 개인 안에 공존하는 여러 상반된 의지 방향에 있다. 따라서 현실은 물질적 대립(그의 용어로는 Realdialektik)의 끊임없는 투쟁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 역시 해결 불가능한 의지들의 적대감("의지 충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개별 의지들은 비이성적 특성 때문에 모순된 욕망으로 고통받는다. 이는 반센이 쇼펜하우어의 주의주의적 형이상학과 자신의 Realdialektik 아이디어를 결합한 결과이다. 그는 세계의 근본 법칙이 모순이며, 이는 영원히 지속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세계 질서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며, 개인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지성을 통해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본 쇼펜하우어의 관점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반센에게 지성은 의지 없이는 무력하며, '무(無)를 의지하는 것'조차 의지의 한 형태이므로 의지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염세주의는 반센을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하르트만 등 동시대 다른 염세주의 철학자들과도 차별화시킨다. 그의 사상은 루트비히 클라게스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도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3. 4. 하르트만과의 관계

율리우스 반센은 동시대 철학자 카를 로베르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으나, 이후 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쇼펜하우어와 헤겔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각자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이들의 철학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방식이 크게 달랐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하르트만이 일원론적 관점을 취하며 헤겔의 합리주의를 받아들인 반면, 반센은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을 중심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는 결국 두 사람의 우정을 갈라놓고 지속적인 철학적 대립으로 이어졌다.

3. 4. 1. 하르트만의 일원론 비판

반센은 카를 로베르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과 처음에는 친밀한 우정을 쌓았으나, 결국 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은 쇼펜하우어와 헤겔에게서 비슷한 철학적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였다. 하르트만은 쇼펜하우어의 '끊임없이 욕망하는 의지'라는 개념을 주체의 무의식적 정신에 두면서도, 헤겔의 급진적인 합리주의와 역사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범신론일원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며, 의지와 합리적 정신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이며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센은 헤겔의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그의 변증법을 부정적인 형태로 받아들여, 이를 쇼펜하우어의 다원적인 의지 형이상학에 통합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은 두 사람의 관계에 긴장을 불렀다. 하르트만은 반센의 다원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개별 의지"의 공통 기반은 단일한 의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반센은 하르트만이 "헤겔 합리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본질적으로 목적이 없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반센은 목적론적이며 항상 최종 목표를 지향하는 헤겔의 정신은, 아무런 합리적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결합될 수 없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지성이 의지의 부수적인 노예일 뿐, 의지의 필수적인 특징이 아니라고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하르트만은 의지 자체가 비합리적이므로, 정신이 의지를 이끌어 목적을 부여해야만 창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관찰하는 표상은 의지의 유일한 목적이며, 이 표상은 명백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반센은 감정이야말로 의지의 비표상적 목적이며, 의지의 모든 목적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르트만은 감정을 '무의식적 표상'의 일종으로 간주했지만, 반센은 증명할 수 없는 '무의식적 표상'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이 논쟁은 해결되지 못했다.

또한 반센은 근본적인 측면에서 하르트만과 의견이 달랐다. 만약 하르트만의 주장처럼 의지와 (합리적인) 개념이 서로 다르다면, 자신의 의지가 없는 개념이 어떻게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르트만은 자신의 일원론에 충실하며 그들이 "다르지만 통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반센에게 모순으로 보였고, 오히려 자신의 Realdialektik(현실 변증법) 개념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르트만은 반센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정신병적 우울증 상태이며 "갈등"과 "모순"을 구별하지 못하는 철학적 무능력을 지녔다고 진단하며 비판했다.

3. 4. 2. 무의식 개념 논쟁

반센은 카를 로베르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과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였으나, 결국 철학적 견해 차이로 관계가 틀어져 라이벌이 되었다. 두 사람은 쇼펜하우어와 헤겔로부터 비슷한 철학적 영향을 받았지만, 그 해석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하르트만은 쇼펜하우어의 '끊임없이 갈망하는 의지'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헤겔의 급진적 합리주의 및 역사주의와 결합하려 했다. 그는 범신론일원론을 지지하며, 의지와 합리적 정신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센은 헤겔의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그의 변증법을 부정적인 형태로 수용했으며, 이를 쇼펜하우어의 다원론적 의지 개념과 통합하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헤겔과 쇼펜하우어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은 그들을 가깝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해석의 차이는 그들의 우정에 갈등을 야기했다. 이는 반센이 주장한 '모순으로서의 존재' 개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하르트만은 반센의 다원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개별 의지'의 바탕에는 단일한 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센은 하르트만의 '헤겔 합리주의'가 본질적으로 목적 없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반센에 따르면, 헤겔의 정신은 목적론적이며 항상 최종 목표를 향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그러한 합리적 목적이 없으며 지성은 의지의 부수적인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 둘은 결합될 수 없다고 보았다.

하르트만은 의지 자체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정신이 의지를 특정 목적(표상)으로 이끌어야만 창조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에게 우리가 관찰하는 표상은 의지의 유일한 목적이며 명백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반센은 감정 역시 의지의 중요한 목적이며, 이는 표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측면이라고 반박했다. 즉, 의지의 모든 목적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하르트만은 감정조차 '무의식적 표상'의 한 형태로 보았지만, 반센은 이러한 '무의식적 표상'이라는 개념의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겼기에 논쟁은 평행선을 달렸다.

더 나아가 반센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 하르트만의 주장처럼 의지와 (합리적) 개념이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자신의 의지가 없는 개념이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르트만은 자신의 일원론적 입장에 따라 의지와 개념이 "다르지만 통합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반센에게 이는 모순으로 보였다. 이러한 논쟁은 오히려 반센 자신의 Realdialektik|레알디알렉티크de(현실 변증법) 이론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르트만은 반센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정신병적 우울증' 상태에 있으며 '갈등'과 '모순'을 구분하지 못하는 철학적 무능력자라고 진단하기까지 했다.

3. 5. 비극 이론

율리우스 반센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으나, 헤겔의 변증법적 아이디어를 일부 수용하고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다. 그는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의지'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지 않고 각기 다르며, 이 다양한 의지들 사이의 내적 모순과 충돌이 현실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실제변증법'(Realdialektik|레알디알렉티크de) 개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현실 자체가 끊임없는 모순과 대립의 과정이라는 사상이다.

반센의 비극 이론은 바로 이 실제변증법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현실의 근본적인 모순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은 서로 충돌하는 의무나 가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쪽을 저버릴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죄책감이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센에게 비극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계의 근본적인 법칙 그 자체였다.

그는 이러한 비극 이론과 실제변증법에 대한 생각을 그의 주요 저작인 『세계의 지식과 존재에서의 모순』(1880/82)과 『세계 법칙으로서의 비극과 형이상학의 미학적 형태로서의 유머』(1877) 등에서 상세히 전개했다. 반센의 이론은 인간 존재와 세계에 내재된 근본적인 모순과 갈등을 강조하며, 이후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3. 5. 1. 비극적 선택

반센의 비극 이론은 그의 '실제변증법'(Realdialektikde)이라는 모순에 대한 생각에서 직접 비롯되었다. 이는 현실 자체가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의 과정이며, 개인의 내면 역시 상반된 의지들의 충돌로 가득하다는 관점이다. 그는 현실이 모순으로 가득하며, 각 개인의 내면 역시 서로 부딪히는 의지들 때문에 갈등한다고 보았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실러헤겔의 비극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들은 비극적 영웅이 처한 상황에서 올바른 도덕적 선택이 무엇인지 명확하며, 단지 그 선택이 매우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보았다. 특히 헤겔은 개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항상 집단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센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반센에게 비극적 상황에서의 '명확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확한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비극 속 영웅은 서로 충돌하는 의무가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든 필연적으로 다른 의무나 가치를 저버리게 되며, 그 결과 죄책감을 느끼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반센은 비극이 바로 세상에 내재된 모순, 즉 어떤 선택을 하든 완벽하게 옳을 수 없는 상황을 드러낸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철학자 프레데릭 C. 바이저(Frederick C. Beiser)는 반센의 이론을 설명하며, 비극의 본질은 개인이 상충하는 의무와 가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다른 의무나 가치를 희생하기 때문에 고통받거나 처벌받는다는 점에 있다고 요약했다. 즉, 최선을 다해 옳은 일을 하려 해도 결국 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센이 궁극적으로 이성이 우리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우리의 선택은 결국 감정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이유이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니체관점주의를 발전시키고, 키르케고르가 모든 선택이 슬픔과 후회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기 전에 이미 나타난 것이었다.

반센은 "옳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식의 단순한 기독교선교 논리를 비판하며,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일은 없다고 보았다. 모든 도덕적 선택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며, 그에 따른 결과가 뒤따른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비극 앞에서 반센은 유머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유머만이 우리에게 삶의 비극을 웃어넘기고 우울증과 같은 절망에서 벗어날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3. 5. 2. 유머의 중요성

반센은 비극 이론을 통해 세상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비극 속 영웅이 서로 충돌하는 의무나 가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죄를 짓고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는 쉴러헤겔처럼 명확한 도덕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본 기존 이론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반센에게 '명확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선택이든 다른 의무나 가치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반센은 결국 이성이 우리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우리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감정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니체관점주의를 발전시키고 키르케고르가 모든 선택이 슬픔과 후회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기 몇 년 전에 이미 반센이 예견했던 결론이다. 그는 "옳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기독교 선교사의 주장을 비판하며, 세상에는 단 하나의 '옳은' 일은 없다고 보았다. 모든 도덕적 선택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있으며,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순과 고통으로 가득 찬 끔찍한 현실 앞에서 반센은 유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유머만이 우리에게 존재의 비극을 웃어넘기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3. 6. 초월적 실재론

반센은 모든 형태의 관념론을 거부했다. 그는 관념론의 아이디어가 본질적으로 유아론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개별적인 의지가 가진 고유한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몇 가지 기술적인 목적상, 반센은 동시대 염세주의 철학자 율리우스 프라우엔슈테트, 필립 마인랜더, 카를 로버트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과 함께 초월적 실재론이 초월적 관념론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반센의 철학은 그의 생애 동안 지속적인 편집과 세부적인 수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전제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1) 모순은 현실의 핵심에 존재하며, 단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만 국한된 속성이 아니다.

2) 모순은 헤겔 철학에서처럼 합성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

3) 이러한 모순의 근원은 바로 의지이다.

이는 헤겔의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거부하고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반센에게 현실의 근본 모순은 관념 속에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 뿌리내린 실재 그 자체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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