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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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격주의는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철학적, 신학적 운동으로, 정의가 다양하고 모호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인격 향상, 사회 제도에서의 인격 존중, 인격의 향상에 노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보스턴 인격주의, 프랑스 인격주의, 가톨릭 인격주의 등 다양한 갈래가 있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격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인격주의는 칸트의 철학에서 시작되어 킹, 요한 바오로 2세 등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와 기술 사회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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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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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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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철학 및 신학 사조 |
정의 | |
주요 개념 | 개인의 존엄성, 가치, 중요성 강조 |
칸트 인용구 | 인간이 도덕을 갖는 점에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가치가 있다. 이 가치는 무엇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절대 가치이다. 그러므로 이 인격만이 존중을 받을 수 있다. |
관련 용어 | |
관련 개념 | 퍼소니즘 유신론적 퍼스널리즘 |
독일어 | Personalismus 페르조날리스무스 |
영어 | personalism |
프랑스어 | personalisme 페르소날리스메 |
일본어 | 인격주의 (人格主義, じんかくしゅぎ 진카쿠슈기) |
2. 인격주의의 정의와 의미
토마스 D. 윌리엄스[4]와 얀 올로프 벵트손[5][6]은 "개인주의적"(personalist) 윤리와 세계관을 지닌 여러 "학파"의 다양성을 언급하며, 인격주의를 정의하기 어려운 철학적, 신학적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자크 마리탱의 말을 인용하여 "때때로 '개인'이라는 단어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열두 가지 개인주의적 학설"이 있다고 지적한다.[7]
윌리엄스에 따르면, 서구에서 "개인주의"라는 명칭을 따르는 수십 명의 이론가와 사회 운동가가 있지만, 그들의 특정 초점은 사실상 점근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 중요한 시점에서 갈라질 수 있다.
인격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 인격 향상과 관련하여 선악을 판단한다. 인간에 의한 도덕적 선악 판단은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과의 관계에서 판단된다는 개념이다. 최고선(das höchste Gutede)으로서 인격이 있으며, 다음으로 각 상황에서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위가 선이라는 도덕적 판단이 있으며, 판단 기준은 계층 구조를 이룬다.
- 사회 운동, 사회 제도에서 인격을 존중한다. 사회 운동, 사회 제도에서는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거기에서 각 인격의 자유로운 행동(자유주의), 각 인격의 평등한 대우(평등주의, 민주주의), 인명 존중 등이 귀결된다.
- 인격의 향상에 노력한다. 자신의 상태(현존하는 인격)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양하여 마땅한 상태(있어야 할 인격)에 이르게 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고 의미 있는 행위라는 개념이다.[49] 여기서 인격은 ①현존하는 인격(현재의 인격), ②높은 것을 지향하는 인격(현재 진행형 인격), ③있어야 할 인격(목표로서의 인격)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50] ①에서 ②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자각(self-consciousness, Selbstbewusstseinde)이라고 한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③의 상태까지 고양하는 것을 인격 수양, 인간 형성, 교양(Bildungde)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인격주의는 교양주의로 이어진다.
2. 1. 인격 존중의 윤리
인격주의는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인격 향상과 관련하여 선악을 판단한다. 인간에 의한 도덕적 선악 판단은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과의 관계에서 판단된다는 개념이다. 최고선(the highest good, das höchste Gutede)으로서 인격이 있으며, 다음으로 각 상황에서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위가 선이라는 도덕적 판단이 있으며, 판단 기준은 계층 구조를 이룬다.
- 사회 운동, 사회 제도에서 인격을 존중한다. 사회 운동, 사회 제도에서는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거기에서 각 인격의 자유로운 행동(자유주의), 각 인격의 평등한 대우(평등주의, 민주주의), 인명 존중 등이 귀결된다.
- 인격의 향상에 노력한다. 자신의 상태(현존하는 인격)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양하여 마땅한 상태(있어야 할 인격)에 이르게 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고 의미 있는 행위라는 개념이다.[49] 여기서 인격은 ①현존하는 인격(현재의 인격), ②높은 것을 지향하는 인격(현재 진행형 인격), ③있어야 할 인격(목표로서의 인격)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50] ①에서 ②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자각(self-consciousness, Selbstbewusstseinde)이라고 한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③의 상태까지 고양하는 것을 인격 수양, 인간 형성, 교양(culture, Bildungde)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인격주의는 교양주의로 이어진다.
2. 2. 사회 제도와 인격 존중
인격주의는 사회 운동 및 사회 제도에서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49] 여기에서 각 인격의 자유로운 행동(자유주의), 각 인격의 평등한 대우(평등주의, 민주주의), 인명 존중 등이 도출된다.[50]2. 3. 인격 완성을 위한 노력
인격주의는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여겨진다.- 인격 향상과 관련하여 선악을 판단한다.
- 사회 운동, 사회 제도에서 인격을 존중한다.
- 인격의 향상에 노력한다.
자신의 상태(현존하는 인격)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양하여 마땅한 상태(있어야 할 인격)에 이르게 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고 의미 있는 행위라는 개념이다.[49] 여기서 인격은 ①현존하는 인격(현재의 인격), ②높은 것을 지향하는 인격(현재 진행형 인격), ③있어야 할 인격(목표로서의 인격)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50] ①에서 ②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자각(self-consciousness, Selbstbewusstsein)이라고 한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③의 상태까지 고양하는 것을 인격 수양, 인간 형성, 교양(culture, Bildung)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인격주의는 교양주의로 이어진다.
3. 인격주의의 다양한 갈래
3. 1. 보스턴 인격주의
보스턴 대학교의 신학자 보덴 파커 바운은 실재를 설명하기 위한 근본적인 범주로써 인격을 강조했고, 오직 인격만이 실존한다고 주장하며 인격주의를 발전시켰다.[15][16][17][18] 보운은 인격을 단순한 물질 입자로 묘사하는 유물론에 반대했다. 예를 들어, 인격이 광대한 우주 속의 하찮은 먼지 입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 보운은 우주 전체가 그것을 경험할 인격 없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존재론적으로 인격은 우주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우주는 그것을 경험하는 인격의 작은 한 측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격주의는 영혼의 존재를 긍정하며, 대부분의 인격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실재하며 하나님은 인격이라고 주장한다.[19]보운은 또한 인격에는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가치론, 윤리학 참조) 인격의 가치를 낮추려는 철학적 자연주의와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담론을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실증주의에 반대했다.
조지아 하크니스(Georgia Harkness)는 주요 보스턴 인격주의 신학자였다. 프랜시스 존 매코넬(Francis John McConnell)은 보스턴 인격주의의 주요 2세대 옹호자로서 당시의 사회 문제에 이 철학을 적용하려고 했다.
3. 2. 프랑스 인격주의 운동
프랑스에서 1930년대에 전개된 인격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 사회에서 파시즘 등장 및 히틀러 정권 장악 등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에 대한 해결책을 인격주의적 관점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 운동은 대체로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첫째, 에마뉘엘 무니에 주도로 1931년부터 간행된 잡지 「에스프리」(Esprit)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다. 1930년대 인격주의 운동은 오늘날 이 흐름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장-마리 도메나크의 지휘 아래, 이 잡지는 알제리 전쟁 당시 고문 사용을 비판했다.
둘째, 아르노 당디외의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알렉상드르 마르크의 조직적 추진력으로 만들어진 잡지 「새 질서」(L’Ordre Nouveau)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다. 이 흐름은 주도 인물의 죽음으로 1933년에 갑자기 중단된다.
셋째, 장 드 파브레그와 띠에리 몰니에를 중심으로 지식 청년층에 의해 1934년까지 이루어진 활동으로, 에마뉘엘 무니에는 이 흐름을 ‘청년 우파’(Jeune Droite)라고 불렀다.
철학자 에마뉘엘 무니에는 프랑스 인격주의의 대표적인 주창자였다. 인격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지나친 집산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권과 인격을 존중할 수 있는 사상으로 여겨졌다. 무니에의 인격주의는 마르크 상니에의 청년 공화국 연맹과 같은 정치 운동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자크 엘륄은 초기에는 무니에와 함께 인격주의 운동에 참여했지만, 이후에는 운동성과 현실 참여를 중요시하며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함께 반파시스트주의 노선을 걷고, "새질서"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구체적인 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술적인 진보를 경계하였으며, "에스프리 보르도 그룹"등의 소그룹 활동을 통해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기도 하였다.
3. 3. 가톨릭 인격주의
20세기에는 도로시 데이의 저술을 계승하여 독특한 그리스도교 인격주의가 발전했다.[9] 그 주요 이론가는 폴란드 철학자 카롤 보이티와(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다. 그는 1960년에 처음 출판된 그의 저서 『사랑과 책임』에서 '인격주의적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이 규범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인격은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사용의 대상으로, 즉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될 수 없는 선의 종류라는 것을 말합니다. 긍정적인 형태에서 인격주의적 규범은 이것을 확인합니다. 인격은 유일하게 적절하고 충분한 태도가 사랑인 선입니다.[10]
이러한 유형의 인격주의는 현대의 인격에 대한 개념을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과 조화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토마스주의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11] 보이티와는 독일 현상학자 막스 셸러의 '''윤리적 인격주의'''의 영향을 받았다.[12]
그리스도교 인격주의의 첫 번째 원리는 인격은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우디움 에트 스페스』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인격주의의 핵심 표현으로 여겨지는 것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그 자체를 위해서만 원하신 지상 유일의 피조물이며, 자신을 진실되게 내어주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13]
자기 충족을 위한 이 공식은 개인적인 "실현"과 사회 생활의 필요 또는 요구 사이에서 자주 느껴지는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 인격주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카리타스 인 베리타테』에서 강조하듯이 상호 인격주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 피조물은 상호 인간 관계를 통해 정의됩니다. 그가 또는 그녀가 이러한 관계를 더욱 진실되게 살아갈수록 그의 또는 그녀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은 더욱 성숙해집니다. 인간은 고립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확립합니다.[14]
3. 4. 혁명적 인격주의 (자크 엘륄)
프랑스에서 철학자 에마뉘엘 무니에는 인격주의의 지도적인 주창자였다. 인격주의는 지나친 집산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권과 인간 인격을 존중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보였다. 무니에의 인격주의는 마르크 상니에르의 청년 공화국 연맹과 같은 정치 운동 등을 비롯하여 프랑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자크 엘륄은 초기에 무니에와 함께 인격주의운동의 동지였으나, 잡지 <에스프리Esprit>를 통해서 지식층이나 이념적인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세력을 펼쳐나가자고 주장하는 무니에와 결별한다. 자크 엘륄은 1930년대에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함께 현실에 깊게 관여하여 혁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운동을 만들어나가려고 사회정치적 상황에 참여하면서도 특정 진영에 가담하는 것을 반대하는 반파시스트주의 노선을 걷는다. 초기에는 무니에의 운동에 함께 하지만, 후에는 운동성과 현실의 참여를 중요시하며 <새질서>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구체적인 강령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혁명적 인격주의 운동은 구체적 강령과 함께 미국식 생산방식을 비판하며 기술적인 진보를 경계한다.(<기술체계> 대장간 역간) 이들은 수많은 소그룹으로 연결괸 "에스프리 보르도 그룹"으로 더 많은 소그룹을 결성하려고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기도 한다. 이들은 소그룹에서 파리중심의 중앙집권화에 반대하며 강령이나 이론의 구체적 반응과 진행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샤르보노와 자크 엘륄의 이러한 인격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 시대, 기술체계 속에서 사로잡혀 옴짝달싹도 못하며 갈바를 모르는 현대인에게 인격으로의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와 토대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개인의 삶이 사라지지 않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역사가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인격주의 운동을 "파시즘과 정치적 반응과 사상을 공유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격주의를 매우 논쟁적인 방식으로 정의했다.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반란"이 그를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도록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3. 5. 비판적 인격주의
비판적 인격주의는 독일에서 발전한 이론이다. 인본주의적 고찰(예: 로베르트 슈파만/Robert Spaemannde), 아프리카적 인격론(예: 크와시 와이레두/Kwasi Wiredu영어), 공동체주의 이론의 수용(예: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영어), 그리고 발달, 사회 및 성격 심리학의 경험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동체 안에서의 인격 발달 문제를 다룬다.[23] 각 개인은 공동체 내에서 특정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개별적인 인격을 형성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인격의 발달은 공동체에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무한히 다양한 결합체로 여겨지며, 고정된 가치로 특징지어지지 않고 오히려 실제 실천으로 인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한다는 점으로 특징지어진다. 담론 윤리(위르겐 하버마스, 카를-오토 아펠/Karl-Otto Apelde)와 비판적 매개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서 비판적 인격주의는 의사소통 관행과 인격 발달을 위한 사회적 조건에 대해 반성한다.[23]4. 인격주의와 대립하는 사상
이마누엘 칸트 등 인간의 자주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관념론은 인격주의를 내세웠지만, 헤겔과 같이 객관적인 정신을 강조하거나 우주를 사변적으로 해석하는 형이상학 등은 인격주의와 대립한다. 인격과 대립하는 사물(동물이나 물건 등)을 중시하는 유물론,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hedonism), 공리주의, 이기주의 등도 인격주의와 대립하는 사상이다. 이들은 자기 상태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향상시켜 완벽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가장 존귀하고 의미 있는 행위, 가치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인격주의에 따르는 이론적 문제로는 이상적인 인격의 구체화, 인격 수양의 모호성 극복, 인격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와 관계, 인격주의에서의 사회 문제 대처 방안(사회와의 연대 등) 등이 있다.
5. 인격주의의 역사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형식적으로는 인격주의자로 여겨지지 않지만,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절대적인 내적 가치)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인격주의 운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가톨릭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은 프란치스칸 대학교의 존 크로스비가 저서 "인격주의 논문"(Personalist Papers)에서 인격주의의 주요 지지자로 제시되었다. 크로스비는 "동의의 문법"(Grammar of Assent)에 제시된 뉴먼의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뉴먼 인격주의의 주요 원천으로 지적한다.[24]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의 연구 과정에서 인격주의의 큰 영향을 받았다. 킹은 오직 인격만이 실재한다는 견해에 동의하게 되었고, 이는 하나님을 개인적인 신으로 이해하는 것을 공고히 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인격은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다는 그의 신념에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했다.[25]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인격주의 운동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인격주의 사회윤리로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무니에와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였고, 개념적 명확성이 부족하다고 다른 인격주의 작가들을 비판했다. 리쾨르는 또한 정의의 중요성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점에서 다른 인격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했으며, 공적 영역에서 이를 우선시했다. 반면 무니에는 공적 및 정치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사랑과 우정의 관점에서 묘사했다.[26]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는 기독교 실존주의(Christian existentialism)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주창한 인격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로마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 그는 인격주의로 가득 찬 철학적 저서인 "인간과 행위"(Person and Act) (때로는 "행위하는 인간"으로 잘못 번역됨)를 저술했다.[27] 그는 가톨릭 사회 및 개인 윤리의 전통적인 흐름 안에 머물렀지만, 예를 들어 경제와 성윤리에 관한 그의 회칙에서 표현된 도덕 규범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인격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28] 그의 로마 교황으로서의 저술은 가족과 사회 질서의 신학에 대한 인격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 이후 세대의 가톨릭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5. 1. 서양의 인격주의
고대 철학에서 처음으로 인격을 발견하고 의식한 사람은 소크라테스라고 알려져 있다.[51] 중세 철학에서는 보에티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의 개념 아래 인격 존중을 주장했지만, 오늘날 말하는 인격주의인지는 문제가 있다.[51]근세 철학에서 인격주의를 처음으로 표명하고 그 기초를 세운 사람은 이마누엘 칸트이다. 칸트는 『인륜 형이상학의 기초』(1785년)에서 “인격의 존엄”(die Würde der Person)을 제시했다. 거기서 인격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유명한 원리를 도출한다. 칸트는 인격(Person)과 인격성(Persönlichkeit)을 구분한다. 칸트는 학문, 도덕, 예술의 종합으로서 인격을 파악했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은 인격을 존중하는 나머지 엄격한 것이 되었다. 칸트는 인간이 존엄성(절대적인 내적 가치)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인격주의 운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칸트의 인격주의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은, 영국에서는 영국 관념론(British idealism)이며, 그 대표는 토마스 힐 그린의 『윤리학 서설』(1883년)이다. 독일에서의 계승자는 한편으로 테오도르 리프스의 『윤리학 개론』(1899년),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이며, 다른 한편으로 신칸트학파(Neukantianer)의 파울 나투르프와 막스 쉐러이다. 나투르프는 『일반 교육학』(1905년), 『사회적 교육학』(1921년)에서, 쉐러는 『윤리학에서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 윤리학』(1916년)에서 인격주의를 주장했다.[52]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인격주의(personnalisme)가 있으며, 그 대표는 샤를르 르누비에의 『인격주의』(1903년), 에마뉘엘 무니에의 『인격주의』(1949년)이다.[53] 무니에가 창간한 기관지 『에스프리』를 중심으로 결집한 “1930년대의 비순응주의자”라고 불리는 한 무리의 지식인들은 적지 않게 인격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으로 예를 들면, 후에 선구적인 기술 사회 비판을 전개한 프로테스탄트 사상가 자크 엘륀이 있다.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인격주의 운동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인격주의 사회윤리로 확장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무니에와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였고, 개념적 명확성이 부족하다고 다른 인격주의 작가들을 비판했다. 리쾨르는 또한 정의의 중요성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점에서 다른 인격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했으며, 공적 영역에서 이를 우선시했다. 반면 무니에는 공적 및 정치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사랑과 우정의 관점에서 묘사했다.[26]
가톨릭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은 프란치스칸 대학교의 존 크로스비가 저서 "인격주의 논문"(Personalist Papers)에서 인격주의의 주요 지지자로 제시되었다. 크로스비는 "동의의 문법"(Grammar of Assent)에 제시된 뉴먼의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을 뉴먼 인격주의의 주요 원천으로 지적한다.[24]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의 연구 과정에서 인격주의의 큰 영향을 받았다. 킹은 오직 인격만이 실재한다는 견해에 동의하게 되었고, 이는 하나님을 개인적인 신으로 이해하는 것을 공고히 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인격은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다는 그의 신념에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했다.[25]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는 기독교 실존주의(Christian existentialism)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주창한 인격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로마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에 그는 인격주의로 가득 찬 철학적 저서인 "인간과 행위"(Person and Act) (때로는 "행위하는 인간"으로 잘못 번역됨)를 저술했다.[27] 그는 가톨릭 사회 및 개인 윤리의 전통적인 흐름 안에 머물렀지만, 예를 들어 경제와 성윤리에 관한 그의 회칙에서 표현된 도덕 규범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인격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28] 그의 로마 교황으로서의 저술은 가족과 사회 질서의 신학에 대한 인격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인 이후 세대의 가톨릭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5. 2. 한국의 인격주의
한국의 인격주의에 대한 내용은 현재 제공된 자료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 철학의 수용과 함께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인격주의가 연구되고 주창되었다.[54] 칸트, 그린 등의 서양 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카지마 리키조, 오니시 이와이, 니시다 기타로, 다카야마 쇼규, 쓰나시마 료카와, 니시 신이치로 등이 인격주의를 연구했다.[54] 신도토 이나조는 교육 현장에서 인격주의를 주창했고,[55] 아베 지로는 『인격주의』(1922년)를 통해 학문적으로 인격주의를 본격적으로 주장했다.[56] 쇼와 시대에는 카와이 에이지로가 『학생에게 주는 말』(1940년)을 저술했다.[57]6. 인격주의 논쟁: 스테른헬의 무니에 비판
7. 현대 사회와 인격주의
전후에는 가치관의 다양화, 과학주의의 융성, 마르크스주의의 융성(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까지) 등으로 서양과 일본 모두에서 인격주의는 힘을 잃고, 마이너한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인격주의를 과거의 사상으로 처리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샤르보노와 자끄 엘륄의 인격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 시대, 기술체계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갈 바를 모르는 현대인에게 인격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와 토대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개인의 삶이 사라지지 않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인격주의 운동을 "파시즘과 정치적 반응과 사상을 공유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격주의를 매우 논쟁적인 방식으로 정의했다.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반란"이 그를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도록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7. 1.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격주의
샤르보노와 자끄 엘륄의 인격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 시대, 기술체계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갈 바를 모르는 현대인에게 인격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세상의 구조와 토대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개인의 삶이 사라지지 않는 혁명이기 때문이다.역사가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인격주의 운동을 "파시즘과 정치적 반응과 사상을 공유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격주의를 매우 논쟁적인 방식으로 정의했다. 스테른헬은 무니에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반란"이 그를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도록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전후에는 가치관의 다양화, 과학주의의 융성, 마르크스주의의 융성(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까지) 등으로 서양과 일본 모두에서 인격주의는 힘을 잃고 마이너한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인격주의를 과거의 사상으로 처리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7. 2. 기술 사회와 인격주의
전후에는 가치관의 다양화, 과학주의의 융성, 마르크스주의의 융성(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까지) 등으로 서양과 일본 모두에서 인격주의는 힘을 잃고, 마이너한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인격주의를 과거의 사상으로 처리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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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断の努力による向上が人格主義の特徴であるとともに、そこに非難も集中する。どこまでも向上を目指すことの意味への疑問や目指すことの漠然としていることへの疑問など。人格向上は文明人として大前提になることであり、取り立てて説とすることもない、といった批判もある。人格主義者と言われる人の中にも、これを積極的には主張しない人もいる。例えば、フランス系の人格主義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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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現にある人格(現状の人格と進行中の人格)、②あるべき人格(目標としての人格)の二つとする考えもある。その場合、前者と後者の言葉を変える手法が採られる。例えば、前者は人格(person, Person)、後者は人格性(personality, Persönlichk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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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格主義の成立にキリスト教が大きく貢献したことは事実である。ただ、神を前提とすることが人格主義と相容れるかは議論のあるところである。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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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ックス・シェーラーは当初新カント派であったが、その後エドムント・フッサールの現象学の影響を受け、新カント主義を離脱したと言われる。しかし『倫理学における形式主義と実質的価値倫理学』の第2部においては、カントの人格主義の精神は受け継がれている。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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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他、フランス系の人格主義者と擬せられる者としては、メーヌ・ド・ビラン、ドニ・ド・ルージュモン、ガブリエル・マルセルなどがいる。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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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時代における学的な人格主義研究の経緯を詳細に研究したものに、佐古純一郎『近代日本思想における人格観念の成立』(朝文社、1995年)がある。主としてイギリス理想主義から日本人学者への影響を追求したものに、行安茂『近代日本の思想家とイギリス理想主義』(北樹出版、2007年)がある。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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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渡戸は第一高等学校校長として、人格主義、理想主義を鼓吹し、多くの卒業生に影響を与えた。新渡戸の人格主義は教育学的人格主義と言える。各種新渡戸伝参照。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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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部の人格主義はリップス『倫理学概論』(1899年)によ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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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合の人格主義はカントとグリーンによるところが大きい。河合は『トーマス・ヒル・グリーンの思想体系』(1930年)を書いたし、カントについてはほぼ全著作を原著で解読し、まとめる寸前に病死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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