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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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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영토 분쟁은 일본과 주변 국가 간에 발생하는 영토 관련 갈등을 의미한다. 주요 분쟁 지역으로는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북방 영토 분쟁), 오키노토리 암초, 중국, 대만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댜오위다오/댜오위타이 분쟁), 대한민국과의 독도 분쟁이 있다.

쿠릴 열도 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쿠릴 열도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일본은 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제도를 북방 영토로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오키노토리 암초는 일본이 섬이라고 주장하며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려 하지만, 중국, 대만, 한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은 동중국해의 무인도인 센카쿠 열도를 두고 일본, 중국,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1990년대 이후 이 지역에서 세 국가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독도 분쟁은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를 제시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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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 분쟁
개요
분쟁 유형영토 분쟁
관련된 국가일본
러시아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분쟁 지역
러시아쿠릴 열도 (일본은 "북방 영토"라고 주장)
대한민국독도 (일본은 "다케시마"라고 주장)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일본은 "센카쿠 열도"라고 주장)
한국/중국/대만 이외오키노토리시마
동해 배타적 경제 수역 경계
쓰시마섬
관련 주제
관련 주제일본의 민족주의
일본의 전쟁 범죄
반일 감정
중국의 반일 시위
재일 한국인
위안부
동해 명칭 문제

2. 쿠릴 열도 분쟁 (북방 영토 분쟁)

쿠릴 열도일본 홋카이도에서 러시아 캄차카 반도까지 뻗어 있는 열도이다. 쿠릴 열도와 인근 사할린 섬1855년 러일 화친 조약(시모다 조약)으로 처음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간의 경계가 확정되었다.[14][1] 이 조약에 따라 쿠릴 열도의 국경은 에토로프우루프섬 사이의 경계선으로 구분되었다.[14][1] 이후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1905년 러일 전쟁이 끝난 후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 등으로 쿠릴 열도의 소유권이 변동되었다.[14][1]

소련의 병합에도 불구하고 일본이투루프섬, 쿠나시르 섬, 시코탄하보마이 제도로 구성된 최남단 섬을 북방영토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14][1] 이 주장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및 그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서 및 선언의 모호성을 기반으로 한다.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이 서명한 얄타 회담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는 대가로 소련이 쿠릴열도를 포함한 여러 영토를 받을 것이라고 명시했다.[15][2]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규정한 이후의 포츠담 선언에서는 쿠릴 열도를 언급하지 않고 대신 미국, 영국, 중화민국1943년 카이로 선언을 언급했다.[16][3] 이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지만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국은 여전히 쿠릴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일본 영토로 간주한다.[17][4] 또한 일본은 북방영토가 쿠릴열도의 일부가 아니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시모다조약 이후 공식적으로 일본의 일부였으며 따라서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 영토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4][1][18][5] 이에 대해 러시아는 얄타 협정이 전체 군도의 병합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고 주장한다.[6]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은 소련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주요 원인 중 하나였으며, 그래서 1956년 소련과 일본이 포기하기로 합의한 소련과 일본의 공동 선언까지 양국 간의 전쟁 상태가 지속되었다.[1] 시코탄 섬하보마이 군도를 반환하는 소련에 대한 대가로 이투루프섬쿠나시르섬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협상은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고, 현재까지 소련의 후계국인 러시아와 일본 간에 공식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14][19][1][6]

쿠릴 열도 분쟁에 관한 일본 포스터

2. 1. 역사적 배경

쿠릴 열도일본 홋카이도에서 러시아 캄차카 반도까지 뻗어 있는 열도이다. 쿠릴 열도와 인근 사할린 섬1855년 러일 화친 조약(시모다 조약)으로 처음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간의 경계가 확정되었다.[14][1] 이 조약에 따라 쿠릴 열도의 국경은 에토로프우루프섬 사이의 경계선으로 구분되었다.[14][1] 이후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1905년 러일 전쟁이 끝난 후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 등으로 쿠릴 열도의 소유권이 변동되었다.[14][1]

소련의 병합에도 불구하고 일본이투루프섬, 쿠나시르 섬, 시코탄하보마이 제도로 구성된 최남단 섬을 북방영토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14][1] 이 주장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및 그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서 및 선언의 모호성을 기반으로 한다.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이 서명한 얄타 회담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는 대가로 소련이 쿠릴열도를 포함한 여러 영토를 받을 것이라고 명시했다.[15][2]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규정한 이후의 포츠담 선언에서는 쿠릴 열도를 언급하지 않고 대신 미국, 영국, 중화민국1943년 카이로 선언을 언급했다.[16][3] 이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지만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국은 여전히 쿠릴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일본 영토로 간주한다.[17][4] 또한 일본은 북방영토가 쿠릴열도의 일부가 아니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시모다조약 이후 공식적으로 일본의 일부였으며 따라서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 영토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4][1][18][5] 이에 대해 러시아는 얄타 협정이 전체 군도의 병합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고 주장한다.[6]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은 소련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주요 원인 중 하나였으며, 그래서 1956년 소련과 일본이 포기하기로 합의한 소련과 일본의 공동 선언까지 양국 간의 전쟁 상태가 지속되었다.[1] 시코탄 섬하보마이 군도를 반환하는 소련에 대한 대가로 이투루프섬쿠나시르섬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협상은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고, 현재까지 소련의 후계국인 러시아와 일본 간에 공식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14][19][1][6]

2.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쿠릴 열도일본 홋카이도에서 러시아 캄차카 반도까지 뻗어 있는 열도이다. 러일 화친 조약으로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간의 경계가 처음 정의된 이래 쿠릴 열도와 인근 사할린 섬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14]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1905년 러일 전쟁 이후 쿠릴 열도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14]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쿠릴 열도는 소련군사 작전을 통해 섬을 합병하면서 소련으로 넘어갔다.[14] 소련의 붕괴와 함께 통치권은 러시아에 넘어갔다.[14]

일본이투루프섬, 쿠나시르 섬, 시코탄하보마이 제도로 구성된 최남단 섬을 북방 영토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14] 이러한 주장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및 그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서 및 선언의 모호성을 기반으로 한다.[14]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이 서명한 얄타 회담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는 대가로 소련이 쿠릴열도를 포함한 여러 영토를 받을 것이라고 명시했다.[15]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규정한 이후의 포츠담 선언에서는 쿠릴 열도를 언급하지 않고 대신 미국, 영국, 중화민국1943년 카이로 선언을 언급했다.[16]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지만,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국은 여전히 쿠릴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는 일본 영토로 간주한다.[17] 일본은 북방영토가 쿠릴열도의 일부가 아니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공식적으로 일본의 일부였으며 따라서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 영토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4][18]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은 소련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14] 1956년 소련-일본 공동 선언까지 양국 간의 전쟁 상태가 지속되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협상은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고, 현재까지 소련의 후계국인 러시아와 일본 간에 공식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았다.[14][19]

2. 3. 현재 상황

러시아일본쿠릴 열도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영토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14][19] 1956년 소련-일본 공동 선언에서 소련은 시코탄섬하보마이 군도를 일본에 반환하는 대신, 일본은 이투루프섬쿠나시르섬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협상은 결렬되었고, 현재까지 공식적인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고 있다.[1][6]

일본은 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 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 4개 섬 전체 반환을 요구하는 반면,[14] 러시아는 얄타 회담을 근거로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2개 섬(시코탄섬, 하보마이 군도) 반환 의사만을 보이고 있다.[14][18][6]

일본은 포츠담 선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근거로 4개 섬이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일본 고유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14][18] 반면 러시아는 얄타 협정이 전체 군도의 병합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고 주장한다.[6] 일본은 얄타 회담이 미국, 영국, 소련 간의 비밀 협정이며, 이 협정에 당사자가 아닌 일본은 구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 오키노토리 암초

오키노토리 암초필리핀해에 있는 환초이다.[20] 유럽 탐험가들이 발견한 오키노토리시마는 일본인이 1931년에 영토에 도착할 때까지 소유권이 주장되지 않았으며 이 환초는 일본의 최남단 지점이 되었다.[20]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를 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섬 주변에 거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주장하고 있다.[20]

그러나 이러한 분류에 대해 중국, 대만, 대한민국은 오키노토리시마가 UNCLOS(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의 인간 거주 가능 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일본이 전략적으로 위치한 환초 주변의 EEZ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20][21]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6억 달러의 관측소를 건설하고 침식태풍 피해에 대비하여 환초를 보호하고 암초를 천천히 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이 지역에서 산호를 재배하고 있다.[22]

3. 1. 일본의 입장

오키노토리 암초필리핀해에 있는 환초이다.[20] 1931년 일본인이 영토에 도착하면서 일본의 최남단 지점이 되었다.[20]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를 이라고 주장하며,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섬 주변에 거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주장하고 있다.[20] 일본은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6억 달러의 관측소를 건설하고 침식태풍 피해에 대비하여 환초를 보호하고 암초를 천천히 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이 지역에서 산호를 재배하고 있다.[22]

3. 2. 국제사회의 이견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대만) 등은 오키노토리 암초가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상 섬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 설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20][21][7][8]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를 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UNCLOS에 따라 섬 주변에 거대한 EEZ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타이완, 대한민국은 오키노토리시마가 UNCLOS의 인간 거주 가능 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일본이 전략적으로 위치한 환초 주변의 EEZ를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4. 센카쿠 열도 분쟁 (댜오위다오/댜오위타이 분쟁)

동중국해에 위치한 무인도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대만명 댜오위타이)에 대한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대만) 간의 영유권 분쟁이다. 센카쿠 열도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다오(钓鱼岛), 중화민국(대만)에서는 댜오위타이(釣魚台)로 알려져 있으며, 동중국해에 위치한 5개의 무인도 열도이다.[10] 일본 제국청일 전쟁 중인 1895년에 처음으로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오키나와현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켰다.[10]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센카쿠 열도는 1972년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 이후 일본에 반환될 때까지 류큐 열도 미국 민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11]

1968년에 이 지역에서 잠재적인 석유 매장량이 발견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11]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주장은 1884년 일본이 이 섬을 발견하기 전과 청일 전쟁 중 일본이 이 섬을 점령하기 전부터 이 섬에 대한 지식과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11] 청일 전쟁의 결과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과 주변 섬들이 일본에 양도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은 센카쿠 열도를 이 거래에 포함시키고,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포함되어,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했다는 것이다.[11] 일본과 미국은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1895년 일본이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 중국의 흔적이 없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중국 정부의 반대 없이 류큐 열도의 행정 구역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11] 1990년대 이후 센카쿠 열도는 이 분쟁의 중심에 있는 세 국가 간에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서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간의 순시선 및 군용기 활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4. 1. 역사적 배경

일본 제국은 1895년 청일 전쟁센카쿠 열도오키나와현에 편입하여 자국 영토로 주장했다.[23][10] 이는 1885년 청나라와의 갈등을 우려하여 보류되었던 조치였다.[23][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센카쿠 열도는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에 따라 일본에 반환되었다.[24][11]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대만)은 1968년 이 지역에서 석유 매장량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통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24][11] 양국은 1884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발견하고 청일 전쟁 중 섬을 지배하기 이전부터 자신들이 섬에 대한 지식과 통제 하에 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24][11] 청일 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과 주변 섬들이 일본에 양도되었는데, 중국은 이 교환에 센카쿠 열도가 포함되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대만을 중국에 반환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범위에도 센카쿠 열도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24][11]

일본과 미국은 1895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했을 당시 중국인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류큐 제도의 행정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24][11]

4. 2.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의 주장

중화인민공화국(PRC)과 중화민국(대만)은 센카쿠 열도를 각각 댜오위다오(钓鱼岛)와 댜오위타이(釣魚台)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한다.[10][11] 1968년 이 지역에서 석유 매장 가능성이 확인된 이후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본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11][24]

두 나라는 모두 1884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발견하고 청일 전쟁 중 섬을 지배하기 이전부터 자신들이 섬에 대한 지식과 통제 하에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11][24] 청일 전쟁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과 주변 섬들이 일본에 양도되었는데, 중국은 이 교환에 센카쿠 열도가 포함되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대만을 중국에 반환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범위에도 센카쿠 열도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11][24]

반면 일본과 미국은 1895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했을 당시 중국인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류큐 제도의 행정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11][24]

4. 3. 현재 상황

센카쿠 열도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다오(钓鱼岛), 중화민국(대만)에서는 댜오위타이(釣魚台)로 알려져 있으며, 동중국해에 위치한 5개의 무인도 열도이다.[10] 일본 제국청일 전쟁 중인 1895년에 처음으로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오키나와현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켰다.[10]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센카쿠 열도는 1972년 1971년 오키나와 반환 협정 이후 일본에 반환될 때까지 류큐 열도 미국 민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11]

1968년에 이 지역에서 잠재적인 석유 매장량이 발견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11]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주장은 1884년 일본이 이 섬을 발견하기 전과 청일 전쟁 중 일본이 이 섬을 점령하기 전부터 이 섬에 대한 지식과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11] 청일 전쟁의 결과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대만과 주변 섬들이 일본에 양도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은 센카쿠 열도를 이 거래에 포함시키고,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포함되어,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했다는 것이다.[11] 일본과 미국은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1895년 일본이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 중국의 흔적이 없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중국 정부의 반대 없이 류큐 열도의 행정 구역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한다.[11] 1990년대 이후 센카쿠 열도는 이 분쟁의 중심에 있는 세 국가 간에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서 일본과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간의 순시선 및 군용기 활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 독도 분쟁

독도동해에 있는 두 개의 작은 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서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른다. 러일 전쟁 중인 1905년 일본 제국은 독도가 ''무주지''라고 주장하며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 1905년 한일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으며, 5년 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12]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은 한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했지만, 독도는 최종 초안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12] 1952년 대한민국은 독도를 배타적 경제 수역에 포함시키며 개발을 시작했다.[12]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둔에 항의하고 있다.[25] 일본과 한국 모두 이 지역에서 각 측의 활동을 나타내는 역사적 문서를 근거로 섬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남북한 모두 한반도 전체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였던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북한은 이 문제를 일본과 대한민국 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자체적인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13]

5. 1. 대한민국의 입장

대한민국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25][12] 신라 시대 우산국 정벌 기록, 조선 시대 문헌,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등 역사적 자료와 1952년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 선언)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25]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독도에 대한 영토 주권을 확고히 행사하고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우산국등의 역사적 기록이 죽도 또는 울릉도와 같은 다른 섬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12]

5. 2. 일본의 입장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칭하며,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12][25]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12][25]

일본은 17세기 중엽부터 일본 어민들이 독도를 이용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제시한다.[12][25] 일본측 기록에는 늦어도 1667년부터 섬 주변에서 일본 어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12] 또한 러일 전쟁 중 1905년 일본 제국에 의해 ''무주지''라는 주장으로 편입되었다고 주장한다.[12]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이 항복한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둔을 항의했다.[25] 대신 늦어도 1667년부터 섬 주변에서 일본의 어업 활동을 나타내는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25]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1952년 독도를 60km에 달하는 배타적 경제 수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독도 개발에 착수한것은[25] 불법 점거라고 주장한다.

5.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 전체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독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26][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독도 문제를 대한민국과의 남북 관계 개선 및 일본과의 관계에서 활용해 왔다.[26][13] 특히,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13]

5. 4. 대한민국의 대응

대한민국은 독도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자국의 영토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25][12] 1952년 대한민국은 독도를 배타적 경제 수역에 포함시키고 개발을 시작했다.[25][12] 대한민국 정부는 독도에 대한 영토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둔에 항의하고 있다.[25][12] 일본은 1667년부터 일본 어부들이 섬 주변에서 활동한 기록을 제시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25][12]

대한민국은 신라가 512년에 정복한 우산국을 포함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한국이 소유한 섬들이 독도라고 주장한다.[25][12] 반면 일본은 신라가 소유했던 섬이 죽도울릉도와 같은 다른 섬이라고 주장한다.[25][1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한 한반도 전체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고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26][13]

참조

[1] 뉴스 Russian-held isles: So near, so far https://www.japantim[...] The Japan Times 2018-02-20
[2] 웹사이트 The Yalta Conference http://avalon.law.ya[...] 2018-02-20
[3] 웹사이트 Potsdam Declaration - Birth of the Constitution of Japan http://www.ndl.go.jp[...] 2018-02-20
[4] 논문 A Historical Reevaluation of America's Role in the Kuril Islands Dispute 1998
[5] 웹사이트 Japan's Northern Territories http://www.mofa.go.j[...] Ministry of Foreign Affairs, Japan 2018-02-20
[6] 논문 50 Years from San Francisco: Re-Examining the Peace Treaty and Japan's Territorial Problems 2001
[7] 논문 Okinotorishima: Just the Tip of the Iceberg http://pranj.org/pap[...] 2018-02-20
[8] 뉴스 An islet the size of your bedroom has Japan and Taiwan fighting http://www.latimes.c[...] Los Angeles Times 2018-02-20
[9] 뉴스 Japan to spend millions on tiny islands 1,000 miles south of Tokyo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18-02-20
[10] 서적 Sovereign Rights and Territorial Space in Sino-Japanese Relations University of Hawaii Press
[11] 논문 Territorial Disputes Among Japan, China and Taiwan Concerning the Senkaku Islands https://www.dur.ac.u[...] University of Durham 2018-02-20
[12] 논문 The Resolution of the Territorial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over the Liancourt Rocks https://www.dur.ac.u[...] University of Durham 2018-02-20
[13] 논문 Instrumental Nationalism? The Dokdo Problem Through the Lens of North Korean Propaganda and Diplomacy 2013
[14] 뉴스 Russian-held isles: So near, so far https://www.japantim[...] The Japan Times 2018-02-20
[15] 웹인용 The Yalta Conference http://avalon.law.ya[...] 2018-02-20
[16] 웹인용 Potsdam Declaration - Birth of the Constitution of Japan http://www.ndl.go.jp[...] 2018-02-20
[17] 간행물 A Historical Reevaluation of America's Role in the Kuril Islands Dispute 1999
[18] 웹인용 Japan's Northern Territories http://www.mofa.go.j[...] Ministry of Foreign Affairs, Japan 2018-02-20
[19] 간행물 50 Years from San Francisco: Re-Examining the Peace Treaty and Japan's Territorial Problems https://archive.org/[...] 2001
[20] 간행물 Okinotorishima: Just the Tip of the Iceberg http://pranj.org/pap[...] 2018-02-20
[21] 뉴스 An islet the size of your bedroom has Japan and Taiwan fighting http://www.latimes.c[...] Los Angeles Times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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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적 Sovereign Rights and Territorial Space in Sino-Japanese Relations University of Hawaii Press
[24] 간행물 Territorial Disputes Among Japan, China and Taiwan Concerning the Senkaku Islands https://www.dur.ac.u[...] University of Durham 2018-02-20
[25] 간행물 The Resolution of the Territorial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over the Liancourt Rocks https://www.dur.ac.u[...] University of Durham 2018-02-20
[26] 간행물 Instrumental Nationalism? The Dokdo Problem Through the Lens of North Korean Propaganda and Diplomac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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