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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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러 관계는 역사, 경제, 군사,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의 관계를 포괄한다.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중러 관계는 소비에트 연방 시기 이념적 갈등으로 악화되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관계를 개선하여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강화하며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양국은 상하이 협력 기구(SCO)와 브릭스(BRICS) 등 다자 협력 체제를 통해 국제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있으며, 에너지, 무역, 군사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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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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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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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시작 | 1992년: "건설적 동반자 관계" 선언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발전 2001년: "우호 협력 조약" 체결 |
특징 | 동맹은 아니지만, 동맹 이상의 관계 권위주의적 호환성 (미국 견제 목적)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 역할 증대 (러시아의 중국 의존 심화) |
외교 관계 | |
러시아 대사관 | 베이징 러시아 대사관 |
중국 대사관 | 모스크바 중국 대사관 |
러시아 대사 | 이고르 모르굴로프 |
중국 대사 | 장한후이 |
정치 및 군사 협력 | |
협력 수준 | 군사 협력 로드맵 체결 |
러시아 입장 | 중국은 러시아의 동맹국이며,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 |
영토 관련 입장 | 중화민국이 통제하는 타이완, 펑후 제도, 진먼 섬, 마츠 섬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인정 |
경제 관계 | |
에너지 협력 | 주요 에너지 거래 합의 |
무역 규모 | 2023년 무역액 2,400억 달러 기록 |
러시아의 대중국 석탄 산업 의존도 | 러시아 석탄 산업의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의 전환 가속화 |
기타 | |
견해 | 러시아가 중국의 '경제 식민지'가 될 위험 존재 |
2. 역사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8] 17세기 중반, 러시아의 동진과 만주족의 청나라 건국은 양국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넘어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청나라는 만주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양국 간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면서 러시아와 청나라 간 최초의 조약으로, 양국 국경을 확정하고 통상 및 분쟁 해결을 위한 질서를 확립했다.[266] 이후 1727년 캬흐타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의 국경 획정 및 통상에 대해 규정했다.
19세기 중후반, 제정 러시아는 애로호 전쟁 등의 혼란을 틈타 청나라와 아이군 조약(1858), 베이징 조약(1860) 등을 체결하여 연해주를 비롯한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다.[18]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초기 중국 국민당 정부를 지원했으나, 이후 중국 공산당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냉전 시대에는 이념적 갈등과 국경 분쟁 등으로 인해 1961년 중소 분열이 발생하여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18] 1960년대 초에는 양국 간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1969년에는 짧은 중소 국경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18]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관계를 개선해 왔다. 1992년 양국은 '건설적인 동반자 관계'를 추구한다고 선언했고, 1996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256] 2001년에는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관계 발전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18]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중국과의 더욱 우호적인 관계로 기울게 되었다.[23] 2019년까지 양국은 미국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은 남중국해 통제, 무역 및 기술 정책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점령한 것에 대한 경제 제재에 불만을 가졌다. 비록 공식적인 동맹은 아니지만, 양국은 외교 및 경제적 움직임을 조율하고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합의를 맺었다.[26][27]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하며 양국 관계는 더욱 밀착되고 있다.
2024년 2월,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야당 정치인의 사망에 대해 "러시아의 내부 문제"라며 논평을 거부했다.[30]
2. 1. 러시아와 중국의 원나라(몽골 제국)
13세기 몽골 제국의 팽창으로 러시아 공국들과 중국이 몽골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양 지역 간 최초의 연결이 이루어졌다. 원나라 시대 러시아인 포로들이 중국으로 끌려와 둔전병으로 복무하거나 칸의 친위대에 편입되기도 했다.[259]『원사』에 따르면, 1330년 중국으로 끌려온 러시아인 포로들은 둔전병으로 국경 방위와 경작 임무를 맡았다. 원나라는 베이징(대도)에 둔전병을 관리하는 특별 기구를 설치했다.[259] 베이징에서 러시아인 포로들은 칸의 친위대에 입대했다. 킵차크인, 아스인, 러시아인 연대가 편성되었다. 칸 친위대의 러시아인 부대는 "충성심이 깊은 러시아인 연대"를 의미하는 "선충알라사위친군(宣忠斡羅思衛親軍)"이라고 불렸다. 1331년의 부대 인원은 60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사』의 1332년 조항에 따르면, 러시아인 포로들의 도착이 세 차례 있었다.[260][261][262][263]
도착 시기 | 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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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 170명 |
두 번째 | 2,500명 |
세 번째 | 청장년 30명, 미성년 103명 |
또한 몽골인, 킵차크인, 러시아인 혼성 부대의 지휘관으로 몽골인 지휘관 보야니(Бояньru)가 임명되었다.[260][261][262][263]
2. 2. 러시아 국가와 중국의 명나라
1608년 - 러시아는 처음으로 중국 왕조와 관계를 맺으려 시도했다. 차르 바실리 슈이스키는 알탄 칸의 후예가 통치하는 몽골로 향하는 러시아 사절을 중국으로 보내는 법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숄로이 우바시 훈타이지|Шолой убаши хунтайж|en|Ubasi Khong Tayijimn[264]와 흑칼미크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사절단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1616년 코사크 지도자 아타만 바실리 튜메네츠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몽골에 도착했으나, 숄로이 우바시 훈타이지에게 영접만 받고 중국으로 가지 못한 채 모스크바로 돌아갔다.[265]2. 3. 러시아 국가와 청나라

17세기 중반, 러시아의 동진과 만주족의 청 건국은 양국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넘어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청나라는 만주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양국 간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 1654년 ~ 1657년: 러시아 사절단이 중국에 파견되었으나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수의 자료와 문서를 수집하여 돌아왔다.
- 1675년 ~ 1678년: 니콜라이 스파파리가 이끄는 사절단이 활동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아무르강 유역(외만주)의 러시아인 정착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 1684년: 만주군이 러시아인 정착지를 습격하고 (청-러 국경 분쟁), 알바진과 네르친스크를 포위했다.
-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러시아와 청나라 간 최초의 조약으로, 양국 국경을 확정하고 통상 및 분쟁 해결을 위한 질서를 확립했다.[266] 표도르 골로빈 사절단이 조약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아무르강 이남 영유권 주장을 철회했다.
- 1727년: 부린스크 조약 (부린스크 협정) 체결.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규정된 국경을 명확히 했다.
- 1727년: 캬흐타 조약 체결.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의 국경 획정 및 통상에 대해 규정했다.
- 1851년: 쿨자 조약 체결. 러시아와 중국 간 통상 협정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무역 경제 관계를 맺었다.
- 1858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약화된 청나라는 러시아와 아이군 조약을 체결, 러시아는 연해주를 포함한 만주의 주요부를 획득했다.
- 1860년: 베이징 조약 체결. 애로 전쟁 종결 직후 체결된 조약 중 하나로, 아이군 조약이 비준되었다.
- 1864년: 카슈가르 의정서 체결. 베이징 조약의 부록. 이 의정서는 카자흐스탄에 의한 러시아와 청나라에 대한 이중 책봉 체제를 종식시켰다. 이후 카자흐인의 대주즈는 러시아 제국에 대해서만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러시아와 청나라는 국경 문제와 통상 문제 등을 둘러싸고 복잡한 관계를 이어갔다. 특히 19세기 중후반, 제정 러시아는 애로호 전쟁 등의 혼란을 틈타 청나라와 아이군 조약(1858), 베이징 조약(1860) 등을 체결하여 연해주를 비롯한 광대한 영토를 획득했다.
2. 4.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소비에트 연방(소련)은 초기 중국 국민당 정부를 지원했으나, 이후 중국 공산당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냉전 시대에는 이념적 갈등과 국경 분쟁 등으로 인해 1961년 중소 분열이 발생하여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18] 1960년대 초에는 양국 간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1969년에는 짧은 중소 국경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18] 이러한 적대감은 1976년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완화되기 시작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전까지 양국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18]2. 5. 러시아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은 관계를 개선해 왔다. 1992년 양국은 '건설적인 동반자 관계'를 추구한다고 선언했고, 1996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256] 2001년에는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관계 발전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18]1990년대 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미국의 영향력에 균형을 맞추고 다극적인 국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상호적인 욕구에 의해 촉진되었다.[21]
2004년, 양국은 오랜 국경 분쟁을 해결하는 국경 협정에 서명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중국과의 더욱 우호적인 관계로 기울게 되었다.[23] 2019년까지 양국은 미국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은 남중국해 통제, 무역 및 기술 정책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점령한 것에 대한 경제 제재에 불만을 가졌다. 비록 공식적인 동맹은 아니지만, 양국은 외교 및 경제적 움직임을 조율하고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합의를 맺었다.[26][27]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하며 양국 관계는 더욱 밀착되고 있다.
2024년 2월,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야당 정치인의 사망에 대해 "러시아의 내부 문제"라며 논평을 거부했다.[30]
2024년 7월 상하이 협력 기구 정상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현재 중러 관계가 "양국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국가 주석)는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해서 포괄적인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고, 외부로부터의 간섭에 대항하며, 지역의 평온과 안정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267][268]
3. 국경
1994년 5월 29일,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의 베이징 방문 중에 양국은 국경 무역을 촉진하고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국경 관리 시스템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19] 같은 해 9월 3일에는 분쟁 지역이었던 서부 국경 55km 구간의 경계를 확정하는 협정이 체결되었다. 2000년대 초, 최종적인 경계 획정이 이루어져 국경은 4209.3km로 측정되었으며, 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긴 국경이다.[57]
2004년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간의 중러 국경 동부 구역에 관한 보충 협정[58]에 따라, 러시아는 아바가이투 섬, 인롱(타바로프) 섬 전체, 볼쇼이 우수리스키 섬의 약 절반과 일부 인접 섬을 중국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지속된 국경 분쟁이 해결되었다. 아무르강(헤이룽강)과 아르군강(어얼구나강)의 이 섬들은 러시아가 관리하고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이 협정은 양국 지도자들에 의해 화해와 협력의 감정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도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러시아 국가 두마에서 비준되었다. 공식 양도식은 2008년 10월 14일에 현장에서 거행되었다.
4. 경제 관계
1990년대 중러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연간 50억에서 80억 달러 사이를 오갔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08년 경제 위기 이전에는 1,000억 달러를 달성할 궤도에 있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무역 규모가 약 600억 달러로 급감했지만, 2017년부터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60] 양국은 2024년까지 무역 규모를 2,000억 달러로 늘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61]
2008년과 2009년 러시아의 금융 위기 동안 중국으로부터의 차입이 급증했으나, 이러한 추세는 오래가지 못하고 2013년부터 다시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다.[62]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양국 간 무역은 7.7배 증가했으며, 2014년에는 양자 무역 규모가 더욱 증가했다.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의 관계 악화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 확대로 이어졌다. 2020년까지 양국은 양자 무역을 2,000억 달러로 늘릴 계획이었다. 러시아 연방 관세청(FCS)에 따르면, 2016년 러시아와 중국의 대외 무역액은 661억 달러(2015년 636억 달러)였다. 러시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6년 수출은 280억 달러, 수입은 381억 달러였다(2015년에는 각각 286억 달러와 359억 달러). 러시아와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5년 12.1%에서 2016년 14.1%로 증가했다. 2010년부터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63]
러시아의 대중국 수출 대부분은 광업 및 석유화학 부문에서 비롯된다.[64] 러시아의 대중국 수출의 절반 이상은 광물 연료, 석유 및 석유 제품(60.7%)이며, 목재 및 목재 제품(9.4%), 비철금속(9%), 어류 및 해산물(3.5%), 화학 제품(3.3%)이 그 뒤를 잇는다. 중국은 점차 러시아 농산물의 주요 소비국이 되고 있다.[29]
중국에서 러시아로의 주요 수입 품목은 기계 및 장비(35.9%), 의류(13.7%), 화학 제품(9.1%), 모피 및 모피 제품(5.6%), 신발(5.3%), 가구(3%)이다. 중국 전자 제품은 러시아에서 꾸준히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29]
중국 일반 관세청에 따르면, 2017년 1월~5월 양자 무역은 연간 26.1% 증가하여 323억달러에 달했으며, 2017년 상호 무역은 800억달러를 초과할 수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16년 1월 1일 기준으로 중국에 누적된 러시아의 직접 투자는 9.469억달러였으며, 중국의 대 러시아 투자는 10배 이상인 89.39999999999999억달러로 추산된다.[63]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RIC(러시아-인도-중국)과 같은 조직에의 참여는 양국 경제 관계에 매우 중요하다. 2021년 9월 상하이에서 열린 러-중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은 "러시아와 중국은 BRICS를 더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 구축, BRICS 개발 은행의 조기 설립 및 광범위한 글로벌 금융, 경제 및 국제 정치 문제에 대한 협력 및 조정 메커니즘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65]
금융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양국은 통화 스와프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중앙 은행은 위안화로 자국 은행에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 러시아와는 1500억위안(25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통화 스와프는 루블화와 위안화를 더 안정적으로 만들 것이며,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통화 거래 확대로 투자 프로세스가 원활해질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국제 무역에서 미국 달러의 역할을 줄이는 것을 옹호해 왔으며, 양자 무역 및 상호 투자의 발전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양국이 선택한 탈달러화 속도는 국제 결제 및 정산에서 위안화(RMB)의 점유율이 빠르게 증가한 데 기인한다(2013년 10월 - 0.84%, 2014년 12월 - 2.17%, 2015년 2월 - 1.81%).[66]
2013년,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새로운 경제 구상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주로 경제적 유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아시아 및 기타 지역의 투자자들이 "21세기 실크로드 경제 벨트"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지역은 중국에서 중앙 아시아와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이는 중국과 유럽 간의 중요한 운송 물류 연결 고리이며,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67]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국경 간 인프라 건설에 대한 협력을 강화했다. "충칭-신장-유럽" 철도와 러시아를 통과하는 "서유럽 - 서중국" 노선을 포함한 새로운 유라시아 교통 노선도 건설되고 있다. 중국 북동부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양국은 교량, 항만 및 기타 프로젝트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국가들과의 협력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EAEU 창설은 이 지역에서 다자간 협력을 위한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모든 참가국이 러시아의 우호적인 이웃이자 파트너이며, 중국의 전통적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EAEU와 중국 간의 자유 무역 지대 조성과 이 지역에서 자국 통화 사용에 관심이 있다.[68]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의 국제 제재가 시행된 후, 중국은 러시아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33] 2022년 중국과 러시아의 총 무역액은 사상 최대인 1900억달러를 기록했다.[69] 같은 해, 중국은 러시아 수입의 40%를 차지했다.[70] 2023년 상반기, 중국 자동차 회사의 모델이 러시아 전체 판매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71]
중국은 러시아의 주요 하이테크 및 디지털 제품 공급업체로 자리 잡았다. 서방 하이테크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함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점차 장악하고 있다.[72]
2023년 5월,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와 알렉산드르 노바크 부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노바크는 러시아의 대중국 에너지 공급이 2023년에 전년 대비 40%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창 중국 총리는 "신시대 중러 간의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환영하며, 지난 1년 동안 중러 간의 양자 무역이 40%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73]
2023년 10월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치적 상호 신뢰" 심화를 강조하며, 강력한 전략적 조율과 사상 최대의 양자 무역액을 높이 평가했다.[74]
2023년 중국과 러시아의 총 무역액은 사상 최대인 2400억달러를 기록했다.[75] 2023년 12월 31일, 시진핑은 2023년에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말했다.[76] 중국산 자동차 및 트럭의 무역 증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양국 간의 무역량 증가는 특히 헤이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77]
2024년 4월,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산 알루미늄, 구리, 니켈 수입 금지를 발표했다.[78] 제재로 인해 러시아 니켈, 구리 및 팔라듐 채굴 및 제련 회사인 노릴스크 니켈은 일부 구리 제련을 중국으로 이전하고 중국 회사와 합작 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79] 완제품 구리 제품은 서방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 제품으로 판매될 것이다.[80] 중국은 2023년부터 노릴스크 니켈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81] 니켈은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중요한 금속이며, 팔라듐은 촉매 변환기의 중요한 요소이며, 천연 가스 자동차의 구성 요소이다.[82]
2010년 11월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의 회담에서 양국이 양자 무역에 미국 달러 대신 자국의 국가 통화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베이징과 모스크바 간의 관계를 더욱 개선하고 2007-2008년 금융 위기 동안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의 거래는 중국 은행 간 시장에서 시작되었으며, 위안화와 루블화의 거래는 2010년 12월 러시아 외환 시장에서 시작되었다.[84][85]
2014년,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고 대응하기 위해 1500억위안 규모의 중앙은행 통화 스와프 라인 협정을 체결했다.[86]
2014년 12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라 필요할 경우 러시아에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루블화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87]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중국 위안화 의존도는 크게 증가했다. 위안화로 지급되는 러시아 수출 비중은 침공 전 0.4%에서 2022년 12월 16%로 증가했으며, 위안화로 지급되는 수입 비중은 침공 전 4%에서 23%로 증가했다.[88][89] 러시아 주식 시장 거래에서 위안화의 비중은 3%에서 33%로 증가했다.[70] 2023년까지 약 50개의 금융 기관이 위안화 예금 계좌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계는 2022년 말까지 러시아 은행에 약 60억달러 상당의 위안화를 보유하고 있었다.[70]
2023년 말까지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의 90% 이상이 위안화 또는 루블화로 이루어졌다.[90][91] 또한 러시아는 중국 이외의 다른 국가와의 국제 무역의 25% 이상에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92]
2024년 8월까지 러시아와 중국 은행(특히 소규모 은행) 간의 거래가 대부분 중단되었다.[93] 엄격한 세컨더리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중국과 돈을 교환할 수 없게 되었다.[94][95] 중국 은행의 최대 98%가 러시아로부터의 직접적인 위안화 결제를 거부했다.[96]
5. 에너지 관계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관계는 상호 협력과 이익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99]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입 필요성이 커졌고, 러시아 경제는 천연 자원 수출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99] 중국은 1993년에 석유 수입국이 되었고, 2011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소비국이 되었다.[99]
러시아는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천연가스 수출국으로서, 지리적으로도 중국과 가까워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력한 국가였다.[102] 에너지 관계는 주로 석유, 가스, 석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16]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풍력, 수력) 기술 협력도 있었다.[103]
2014년, 러시아와 중국은 30년 동안 4000억달러 규모의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110]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을 통해 2019년부터 중국으로 천연가스 공급이 시작되었다.[110] 이 파이프라인은 중국의 석탄 의존도를 줄이고, 러시아에게는 새로운 경제 협력 기회를 제공한다.[111] 러시아의 서 시베리아 석유 분지에서 중국 북서부로 연결되는 서부 가스 노선은 '시베리아의 힘 2'(알타이 가스 파이프라인)로 알려져 있다.[112]
2022년, 러시아산 석유를 최대 30%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하면서 중국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5월에 55% 증가했고, 러시아는 중국의 최대 석유 공급국이 되었다.[113][114]
2024년 11월, 중국은 중국-러시아 동부 노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예정보다 7개월 일찍 완료했다.[115]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 국경 근처의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과 상하이를 연결하며, 2024년 말까지 상하이에 러시아 가스를 공급할 예정이다.[115] 2024년 12월, 중국은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 전체를 완성했다.[116]
6. 군사 관계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EU 무기 금수 조치가 내려진 후, 중국은 러시아 군사 장비의 주요 수입국이 되었다. 러시아의 대외 군사 판매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50%에 달한다.[215] 1993년 11월 9일, 러시아 국방부 장관 파벨 그라체프와 중국 국방부 장관 츠 하오톈은 5개년 국방 협력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 수도에 주재하는 무관의 수를 늘렸다.[20] 1994년 7월 12일에는 양국 국방부 장관이 국경 보안 협정에 서명하여 의도하지 않은 레이더 방해 및 영공 침범과 같은 잠재적 위험을 방지하고자 했다.[20] 1996년 12월, 러시아는 수호이 Su-27 전투기 및 관련 생산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20]
2000년대 초, 러시아는 중국의 주요 군사 장비 공급국이었다.[217] 러시아는 경제적 취약성과 수입원 확보 필요성, 그리고 잘 무장된 중국 군대가 자국보다 미국과 유럽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지정학적 판단 때문에 중국에 군사 장비를 판매했다.[217] 그러나 2004년, 러시아 외무부는 수호이 Su-27SK (일명 선양 J-11)의 중국 생산 합의에 대한 우려로 수호이 Su-35와 투폴레프 Tu-22M 폭격기의 중국 판매를 중단했다.[218]
현재 중국은 제트 엔진과 같은 특정 군사 제품을 여전히 러시아에서 수입하지만, 자체적인 무기 설계 및 제조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국방 부문에서 독립하고 글로벌 무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방 부문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219] 중국의 2015년 국방 백서는 첨단 무기 및 장비의 "독립적 혁신"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했다.[219]
2018년 9월, 러시아는 보스토크 2018 군사 훈련에 중국과 몽골 군대를 초청하여 양국 관계를 개선했다. 이는 이전 소련 외 국가가 훈련에 참여한 최초의 사례이다.[220][221]
2019년 7월과 2020년 12월, 러시아와 중국은 태평양 상공에서 연합 폭격기 순찰 비행을 실시했다.[232][233] 2022년 11월에는 투폴레프 Tu-95 및 XIAN H-6K 장거리 전략 폭격기를 포함한 양국 군용기가 동해와 동중국해 상공에서 연합 순찰 비행을 실시했다.[234] 2022년 9월, 러시아는 군사 훈련에 중국 군대를 초청했다.[235] 2024년에는 중국과 러시아 해군이 서부 및 북부 태평양에서 네 번째 연합 해상 순찰을 실시했다. 이 순찰은 양국 간 연례 협정의 일환이며, 제3국을 겨냥하지 않았다.[236]
2019년 12월, 로스텍 관계자들은 중국이 다양한 군사 기술의 지적 재산권 침해를 했다고 비난했다.[222] 2020년 6월, 러시아는 민감한 정보를 중국에 넘긴 혐의로 자국 북극 과학자를 기소했다.[223] 2022년 8월에는 러시아 극초음속 과학자 알렉산드르 시플류크가 국가 반역 혐의로 체포되었다. 로이터는 러시아가 시플류크가 2017년 중국에서 열린 과학 컨퍼런스에서 기밀 자료를 넘긴 것을 체포 이유로 지목했다고 보도했다.[228]
2023년 4월 17일, 리상푸 중국 국방부 장관은 첫 해외 방문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회담에서 중러 관계가 "냉전 시대의 군사-정치적 동맹을 능가한다"고 말했다.[229][230]
2024년 7월, 러시아와 중국은 기후 변화로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는 북극에서의 군사 및 경제 협력 증가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일축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대 기지를 개조하여 북극 군사 주둔을 강화했으며, 중국은 극지 탐사에 투자했다. 캐슬린 힉스(Kathleen H. Hicks)는 중국이 러시아 북극 에너지 프로젝트 자금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알래스카 인근에서 실시된 연합 군사 훈련에 주목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해당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옹호했다.[237]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 동맹을 형성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2016년 중국 외교부 전 부부장 푸잉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이나 서방에 대항하는 공식적인 블록 동맹을 만들 의사가 없었다.[239] 2023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간 군사 동맹은 없으며, 양국 군대는 "투명하다"고 밝혔다.[238] 2023년 11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중-러 국방 관계가 제3자를 겨냥하지 않으며, "특정 공격적인 서방 국가와 달리" 양국은 "군사 블록을 만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239]
7. 국제 관계
중국과 러시아는 국제 무대에서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에 반대하고 다극화된 세계 질서를 지향하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양국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상하이 협력 기구(SCO), 브릭스 등 다자 협력 체제를 통해 지역 안보 및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256][257]
1996년 상하이 협력 기구(SCO) 창설을 시작으로, 양국은 중앙아시아 문제에 대해 협력하며, 때로는 경제 문제에서 경쟁하기도 하지만, 이는 상황의 산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198][199] SCO를 통해 군사 훈련에서 협력해왔으며,[200] 다자 외교 증진을 위한 협력과 조정을 정기적으로 요구한다.[201][202][203] 공동 성명을 통해 "국제 안보는 포괄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일부 국가의 안보는 군사 및 정치적 동맹 확대를 포함하여 다른 국가를 희생하여 보장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04]
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석유 및 가스 공급을 놓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에너지 협력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206] SCO 내 중앙아시아 에너지 "클럽" 구축을 통해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방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207]
2014년 5월, 양국은 러시아가 매년 38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30년 가스 거래를 체결했다.[214]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양국 관계는 개선되었으며, "건설적인 파트너십", "전략적 파트너십"을 거쳐 "우호 협력" 조약에 서명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왔다.[256]
일대일로 구상과 같은 경제 이니셔티브를 통해 경제적 연결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경을 넘는 인프라 건설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2024년 7월 상하이 협력 기구 정상 회담에 맞춰 진행된 중러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현재의 중러 관계가 양국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시진핑 총서기(국가 주석)는 포괄적인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고 외부 간섭에 대항하며 지역의 평온과 안정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67][268]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지지를 표명하고 경제 제재에 반대하는 등 양국 간 전략적 연대가 강화되었다.
7.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은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고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36] 중국은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등 러시아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36]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해 중러 간 경제 협력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56] 중국은 러시아에 군사 장비 및 이중 용도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45][46][53] 이는 서방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2월 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만나 양국 관계에 "제한이 없다"고 선언했다.[31][32] 서방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에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침공을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32]
중국 언론은 침공 직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반복했다.[33] 2022년 2월 22일, 베이징 뉴스의 Horizon News는 웨이보에 우크라이나 위기 보도 지침을 유출했는데, 여기에는 "러시아에 불리하거나 친서방적인 내용은 게시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33][34]
2022년 2월 25일, 푸틴은 시진핑에게 전화하여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협상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35] 2022년 3월, 러시아는 타이완을 외국 국가 및 영토 목록에 추가했다.[37] 6월에 시진핑은 푸틴에게 러시아의 "주권과 안보"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약속했다.[38][39]
2022년 4월, 러시아 정치학자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중국이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자 친구"라고 말했다.[40] 2022년 6월, 시진핑은 푸틴과의 통화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러시아 지지를 재확인했다.[41][42]

2023년 2월, 푸틴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중국의 평화 제안을 거부했다.[44] 2023년 3월, 폴리티코는 중국 국영 무기 제조업체 노린코가 러시아에 돌격 소총, 드론 부품, 방탄복 등을 선적했다고 보도했다.[45] 미국 국방부는 중국산 탄약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용되었다고 밝혔다.[46]
2023년 3월 20~22일, 시진핑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과 회담을 가졌다.[47] 이는 국제형사재판소가 푸틴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이후 푸틴의 첫 국제 회의였다.[48]
2023년 5월, 유럽 연합은 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무기 부품을 공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8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49] 2023년 7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손상되었다.[50][51]

2023년 7월, 미국 국가정보국장실은 중국 정부가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돕고 이중 용도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53] 2023년 10월, 미국 상무부는 42개 중국 기업을 Entity List에 추가했다.[54]
2024년 2월, 유럽 연합은 러시아를 돕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제안을 했다.[55] 2024년 6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국제 제재로 인해 중국은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되었다.[56] 러시아 중앙 은행에 따르면, 2024년 6월 중국 위안화는 러시아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결제하는 데 사용되었다.[56] 그러나 2024년 6월 중국 은행은 제재 대상 러시아 은행에 대한 지급을 중단했다.[56]
8. 한반도에 대한 영향
중러 관계 강화는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러 양국의 협력 또는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중러의 군사 협력 강화는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러 양국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9. 국가 비교
1982년 12월 4일 (현행 헌법)
1991년 12월 26일 (소련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