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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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라반트는 동독에서 생산된 소형 자동차로, 1957년부터 1991년까지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다. 2행정 엔진, FRP 차체, 전륜구동 방식을 특징으로 하며, P50, 601, 1.1 등의 모델이 존재한다. 트라반트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을 상징하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독으로의 탈출을 상징하는 차량으로 인식되었다. 1990년에는 폭스바겐 엔진을 탑재한 1.1 모델이 출시되었으나, 독일 통일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다. 현재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다양한 미디어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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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반트 - [자동차]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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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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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 VEB 작센링 |
생산 기간 | 1957년–1990년 (동독) 1990년–1991년 (독일) |
총 생산량 | 370만 대 |
차체 | |
차체 형태 | 2도어 세단 3도어 스테이션 왜건 (Universal) 문 없는 지프 (퀴벨바겐) |
엔진 배치 | 가로배치 앞 엔진, 앞바퀴 구동 |
휠베이스 | 2020 mm |
전장 | 3360 mm |
전폭 | 1500 mm |
엔진 | |
엔진 종류 | 499 cc 2행정 I2 (1957–1962) 594 cc 2행정 I2 (1962–1990) 1043 cc BM 820 4행정 I4 (1990–1991) |
2. 역사
Trabant|트라반트de는 동독의 국영 기업인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 츠비카우(VEB Sachsenring Automobilwerke Zwickau)에서 1957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한 소형 자동차이다. 독일어로 '위성' 또는 '동반자'를 의미하는 이름은 당시 소련이 성공적으로 발사한 스푸트니크 위성에서 영감을 받았다.[5][6] 흔히 '트라비'(Trabi)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트라반트는 거의 3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생산되어 동독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였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국경을 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되면서 동독 사회와 그 종말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7][8]
동독의 계획 경제 하에서 트라반트는 심각한 공급 부족에 시달렸다. 구매 신청 후 차량을 인도받기까지는 평균 10년, 길게는 13년까지 기다려야 했다.[9][11] 이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공식 신차 가격(7,450 동독 마르크)의 두 배를 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11] 이러한 긴 대기 시간은 낮은 생산 능력, 수출 우선 정책, 소비 억제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48], 그리고 슈타지로 대표되는 감시 사회에서 자동차를 통한 개인의 이동 자유 확대를 꺼렸던[49] 동독 정부의 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차체는 강철 프레임 위에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 플라스틱 외피를 사용했는데, 이는 재활용 면 폐기물과 페놀 수지로 만들어져[5][10] 자원 부족이라는 동독의 현실을 반영했다. 이 소재 덕분에 차체는 비교적 내구성이 좋았지만(평균 수명 28년[10]), 동독 말기에는 품질 저하로 인해 서방으로부터 "마분지 차체의 자동차"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엔진은 초기 500cc를 거쳐 600cc급의 2행정 엔진을 사용했다. 이는 구조가 단순하고 저렴했지만, 낮은 출력(26PS@594cc)[14], 심한 소음과 진동, 심각한 대기 오염을 유발하는 매캐한 배기가스[17]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연료에 윤활유를 직접 섞어야 했고, 연료 펌프 없이 중력에 의존하는 연료 공급 방식(연료 탱크 24L[18])은 불편하고 위험했다. 전반적인 제작 품질은 낮았고, 승차감 또한 매우 열악했다.[11][12][13]
주요 모델로는 P 50(1957-1962), 600(1962-1965), 601(1964-1990), 1.1(1990-1991) 등이 있으며, 특히 601 모델은 큰 변화 없이 25년 이상 생산되었다. 이는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를 등한시한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러 차례 모델 체인지 계획이 있었으나, 동독 지도부의 반대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었다.[46]
독일 통일 이후 트라반트는 급격히 외면받았다. 서독의 중고차들이 대량 유입되면서 경쟁력을 잃었고, 많은 트라반트가 폐차되거나 헐값에 거래되었다. 폭스바겐 엔진을 탑재한 마지막 모델 '트라반트 1.1'도 시장의 외면 속에 1991년 단종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트라반트는 동독 시절의 향수와 역사적 상징성, 특유의 디자인 덕분에 클래식카로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단순한 구조 덕분에 복원 및 유지보수가 용이하여[44] 동호인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베를린 등지에서는 트라반트를 이용한 시티 투어 상품(Trabi World)이 운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배기가스 규제[43]나 안전 문제로 인해 운행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트라반트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고 트라비 고(Go Trabi Go)가 1991년 제작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2. 1. 개발 배경 (1950년대)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 츠비카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해당 부지에서 운영되던 아우토우니온/DKW 사업체에서 유래했다. 이 공장은 원래 아우토우니온의 일부로 고급차 호르히를 생산하던 곳이었으나, 독일 분단 후 동독에 속하게 되었다. 아우토우니온은 1932년 독일의 4개 자동차 회사(DKW, 반데르, 아우디, 호르히)가 합병하여 설립된 회사로, 각 브랜드가 특정 차급을 담당했다. 특히 1904년 창업한 DKW는 2행정 엔진과 전륜구동 기술로 유명했으며, 아우토우니온 결성의 핵심이었다. 전쟁 후 서독에서 아우토우니온이 아우디로 재건된 반면, 동독의 VEB 작센링은 DKW로부터 물려받은 2행정 엔진 기술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VEB 작센링은 호르히 공장을 이어받아 VEB HORCH Kfz- und Motorenwerke Zwickau로 1948년에 출범하여, 초기에는 전쟁 전 DKW 모델 기반의 IFA F8과 IFA F9을 생산했다. 또한 트랙터, 대형 디젤 트럭, 그리고 1956년부터는 '호르히' 이름을 사용한 고급 세단 작센링 P240도 잠시 생산했으나, 소련의 압력으로 1959년 단종되었다. 1957년 회사명에서 '호르히'가 빠졌다.
1956년 이후 900cc급 모델 생산은 아이제나하 공장의 후신인 아이제나허 모토렌베르크[45]로 이관되었고, 1957년 바르트부르크 311이 등장했다.
트라반트는 원래 삼륜 오토바이 설계 계획에서 파생된 이름으로,[5] 독일어로 천체의 위성을 뜻한다.[22] 이 차는 바르트부르크보다 작은, 전쟁 전 DKW 계열 기본형 차량의 부활 격으로 기획되었다. 직접적인 전신은 1955년부터 구 아우토우니온 아우디 공장의 후신인 VEB 아우토모빌베르크 츠비카우에서 생산된 AWZ P70이다. P70은 구형 IFA F8 기반에 현대적 디자인을 적용하고, 강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FRP 차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1958년 5월, VEB 아우토모빌베르크 츠비카우와 VEB 작센링은 합병하여 VEB Sachsenring Automobilwerke Zwickau로 재편되었고, 대형차 생산은 인근 공장으로 이관되었다.

2. 2. 본격적인 생산 (1957년 ~ 1991년)

트라반트는 거의 3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생산되어 동독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국경을 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되면서 동독 사회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다.[7][8]
동독의 국영 기업인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VEB Sachsenring Automobilwerke Zwickau)에서 제조한 트라반트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으로 인해 구입 신청 후 수령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9] 구매자들은 차를 받기 위해 최대 13년까지 기다려야 했으며[11], 대기 시간은 수도인 베를린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5] 공식적인 국가 가격은 7,450 동독 마르크였으나, 1989년에는 수요가 생산량의 43배에 달할 정도로 공급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의 두 배 이상으로 형성되었고, 평균적인 노동자는 10년 이상을 기다리거나 웃돈을 주고 중고차를 구매해야 했다.[11]
트라반트는 강철 프레임을 기반으로 하며, 지붕, 트렁크 뚜껑, 보닛, 펜더, 도어 등 차체 외판은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두로플라스트는 소련에서 공급받은 재활용 면 폐기물과 동독 염료 산업에서 나온 페놀 수지를 결합하여 만든 단단한 소재였다.[5][10] 이는 재활용 소재로 차체를 만든 두 번째 자동차 사례로, 첫 번째는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생산된 AWZ P70이었다. 이 소재는 내구성이 뛰어나 트라반트의 평균 수명은 28년에 달했다.[10] 그러나 "마분지 차체의 자동차"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이는 동독 말기 제조 품질 저하로 표면 질감이 조악해진 것을 서방에서 비꼬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의 일종이었으나, 말기에는 경제난으로 인해 원가 절감을 위해 종이 펄프와 양모를 사용하기도 했다는 주장이 있다.
트라반트의 제작 품질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으며, 소음이 심하고 성능이 낮으며 설계가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11][12][13] 칙칙한 색상과 비좁고 불편한 승차감으로도 유명했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크기 때문에 "지붕이 있는 점화 플러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애정을 받기도 했다.[7][8]
트라반트에는 크게 네 가지 주요 변형 모델이 있었다.
- '''트라반트 P 50''' (Trabant 500으로도 불림, 1957년 ~ 1962년 생산)
- '''트라반트 600''' (P 60, 1962년 ~ 1965년 생산)
- '''트라반트 601''' (1964년 ~ 1990년 생산)
- '''트라반트 1.1''' (1990년 ~ 1991년 생산, 폭스바겐(VW)의 1.1리터 엔진 장착)

최초 모델인 '''트라반트 P 50'''은 1957년 11월 7일 작센주 츠비카우에 위치한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에서 처음 출고되었고, 1958년 정식 출시되었다. 출시 당시에는 전륜구동, 모노코크 바디, 독립현가장치 등 상당히 앞선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였다. 그러나 가장 큰 약점은 엔진이었다. 1950년대 후반 서유럽의 소형차들이 점차 깨끗하고 효율적인 4행정 엔진을 사용했지만, 동독의 예산 제약과 원자재 부족으로 인해 트라반트에는 구식이지만 저렴한 2행정 엔진을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쟁 전 DKW 설계를 기반으로 한 공랭식 2기통 엔진이었다. 초기 P 50은 500cc 엔진에 17마력(PS)의 출력을 냈으며, 1960년에는 완전 동기화 기어박스를 장착하고 출력을 20마력(PS)으로 높였다.
1962년에는 '''트라반트 600'''(P 60)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엔진 배기량이 600cc으로 늘어나고 출력은 23마력(PS)으로 향상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생산된 모델은 1964년에 출시된 '''트라반트 601'''이다. P 6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전면 디자인, 보닛, 지붕, 후면 디자인이 변경되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P 50에서 이어받았다. 601 모델은 25년 이상 거의 변화 없이 생산되었으며, 후기 모델에서 12V 전기 시스템, 후면 코일 스프링, 업데이트된 대시보드 등이 추가된 것이 전부였다. 1980년대 모델에도 여전히 계기판 조명, 헤드라이트/방향지시등 표시등, 연료 게이지, 뒷좌석 안전벨트, 외부 연료 주입구가 없었으며, 운전자는 직접 가솔린과 오일을 혼합하여 보닛 아래에 있는 연료 탱크에 주입해야 했다.[20]
601 모델의 2행정 엔진은 594cc 배기량에서 26마력(PS)의 출력을 냈으며[14], 차량 중량은 약 600kg이었다. 정지 상태에서 최고 속도인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21초가 걸렸다.[15][16] 이 엔진은 매캐한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여 심각한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었다. 2007년 유럽 평균 자동차보다 탄화수소는 9배, 일산화탄소는 5배 더 많이 배출했다. 연료 소비량은 7L/100km였다.[17] 2행정 엔진 특성상 연료에 오일을 섞어 사용해야 했으며, 24L 용량의 연료 탱크[18]에 연료 대비 오일 비율 50:1(또는 33:1)로 혼합해야 했다. 당시 동독의 주유소에서는 혼합된 연료를 판매하기도 했다. 연료 펌프가 없어 연료 탱크가 엔진 위에 위치하여 중력으로 연료를 공급했는데, 이는 전면 충돌 시 화재 위험을 높이는 구조였다. 초기 모델에는 연료 게이지가 없어 막대기를 탱크에 넣어 남은 연료량을 확인해야 했다.

트라반트 설계자들은 P601의 생산이 1967년까지만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여러 차례 후속 모델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이 프로토타입 중 일부는 드레스덴 교통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원자재 부족과 정치적인 이유로 새로운 모델 개발 계획을 번번이 거부했다.[46] 그 결과 트라반트는 큰 변화 없이 오랫동안 생산되었고, 노동 집약적인 생산 방식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생산량은 1964년 연간 3만 4천 대에서 시작하여 1973년 10만 대를 넘어섰고, 1989년에는 최고 15만 대에 달했다.[11]
1989년 중반, 수천 명의 동독인들이 트라반트에 짐을 싣고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서독으로 향하는 이른바 "트라비 트레일(Trabi Trail)"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동독 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많은 트라반트가 서독으로 넘어갔지만, 서독의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23]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기존 2행정 엔진을 대체하기 위해 서독 폭스바겐과의 협력으로 폭스바겐 폴로에 사용되던 1.1리터(1,043cc) 4행정 엔진(BM 820)을 라이선스 생산하여 탑재한 '''트라반트 1.1''' 모델이 개발되었다. 최초 시제품은 1988년에 제작되었고, 1990년 5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었다. 이 모델은 기존 601 모델과 병행 생산되었다. 엔진 변경 외에도 플로어 마운트 기어 변속기, 개선된 그릴과 범퍼, 전면 디스크 브레이크,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전륜 서스펜션 등 여러 부분이 개선되었다. 출력은 45마력(PS)으로 향상되었고, 소음과 배기가스 배출량도 줄었다.
그러나 트라반트 1.1은 이미 독일 재통일이 진행되던 시점에 출시되었고, 동독 시장에서는 18,600 동독 마르크라는 높은 가격과 서독 중고차 유입으로 인해 외면받았다.[58] 서독 시장에서도 여전히 구식 디자인과 낮은 성능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결국 트라반트 1.1은 세단, 스테이션 왜건(유니버설), 오픈카(트램프), 픽업트럭 등 여러 파생 모델을 포함하여 약 4만 대를 생산한 끝에 1991년 4월 단종되었다. 이로써 33년간 총 370만 대[25] 이상 생산된 트라반트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츠비카우 공장은 폭스바겐에 매각되어 엔진 생산 기지로 전환되었고, 일부 폭스바겐 골프와 폭스바겐 파사트를 생산하기도 했다. 나머지 회사는 HQM Sachsenring GmbH로 재편되었다.

트라반트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기술 개발 정체, 낮은 생산성, 열악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동독 주민들의 주요 이동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통일 이후에는 급격히 도태되었지만, 특유의 디자인과 역사적 의미 때문에 클래식카로서 일부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베를린 등 일부 도시에서는 특별 허가를 받아 운행되기도 한다.[43][44]
2. 3.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1989년 ~ 1990년)
1989년 중반, 수천 명의 동독인들은 트라반트에 짐을 싣고 헝가리나 체코를 거쳐 서독으로 향하는 이른바 "트라비 트레일(Trabi Trail)"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트라반트를 서독으로 운전하기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이는 트라반트가 서독의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심각한 대기 오염을 유발했기 때문이다.[23]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트라반트에게 상징적인 순간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이동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동독 주민들이 트라반트를 타고 국경 검문소를 넘는 모습은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동독의 낡은 트라반트와 최신 서독제 자동차(폭스바겐 골프, 오펠 아스트라 등)가 같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양쪽 운전자와 시민들에게 강렬한 컬처 쇼크를 안겨주었다.
한편, 동서독 간 무역 협정에 따라 트라반트의 낡은 2행정 엔진을 폴크스바겐 폴로의 1.1리터 4행정 엔진(EA111 시리즈) 라이선스 버전으로 교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첫 시제품은 1988년에, 시리즈 이전 차량은 1989년에 등장했지만[24], 실제 양산은 두 독일이 이미 재통일에 합의한 후인 1990년 5월에야 시작되었다. 이 개선된 모델은 '트라반트 1.1'로 불렸으며, 엔진 외에도 브레이크, 신호등, 그릴 등이 소폭 개선되었고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서스펜션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재통일된 독일 경제에서 구시대적인 트라반트가 설 자리는 없었다. 트라반트 1.1은 생산 시작 불과 11개월 만인 1991년 4월에 단종되었고, 이로써 총 370만 대를 생산한 트라반트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25] 비효율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생산 라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츠비카우의 공장은 폭스바겐에 매각되었고, 폭스바겐은 이 공장을 현대적인 엔진 생산 시설로 전환하고 일부 폭스바겐 골프와 폭스바겐 파사트를 생산하는 거점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2. 4. 통일 이후 (1991년 ~ 현재)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트라반트의 운명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동독 주민들이 트라반트를 타고 서독으로 국경을 넘는 모습은 전 세계에 방송되며 동구권 붕괴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7][8] 하지만 통일 이후 많은 동독 주민들은 더 나은 서독제 자동차를 선호하며 트라반트를 버렸고, 한때 동독의 국민차였던 트라반트는 길가에 버려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서방 세계에 동독 체제의 기술적, 사회적 후진성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여겨졌다.[26] 최신 폭스바겐 골프나 오펠 아스트라와 나란히 달리는 낡은 트라반트의 모습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강렬한 컬처 쇼크를 안겨주었다.
통일 직후 트라반트는 매우 저렴한 가격(단 몇 독일 마르크)에 거래되거나 심지어 무료로 주어지기도 했다. VEB 작센링크는 동독의 생산 및 고용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모델인 '''트라반트 1.1'''을 1990년 5월부터 생산했다. 이 모델은 폭스바겐 폴로의 1100cc 4행정 엔진을 탑재하고 디스크 브레이크를 채택하는 등 상당한 현대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낡은 디자인과 높은 가격(18,600 마르크) 때문에 외면받았다. 결국 약 4만 대를 생산한 뒤 1991년 단종되면서 트라반트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58]
시간이 흐르면서 트라반트는 단순한 중고차를 넘어 클래식카로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수집품으로서 가격이 다소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특유의 귀엽고 각진 외모와 누구나 쉽게 수리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 덕분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44] 베를린 등에서는 트라반트를 이용한 시티 투어 상품(트라비 사파리)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관련 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매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트라반트 퍼레이드가 열린다.[34]
하지만 오래된 설계와 2행정 엔진의 한계로 인해 환경 및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일에서는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2008년부터 베를린 등 일부 도심 지역에서 특별 허가를 받은 차량 외에는 트라반트의 운행이 제한되었다.[43]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카에 대한 관심 증가로 특별 허가를 받아 운행하는 트라반트의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며, 2010년 기준으로 약 3만 대가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44]
트라반트는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적 아이콘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 예술: 퍼포먼스 아티스트 리즈 코헨은 1987년형 트라반트를 1973년형 쉐보레 엘 카미노로 개조하는 ''Bodywork'' 프로젝트를 진행했다.[27]
- 외교: 불가리아 전 외무장관 솔로몬 파시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을 받은 트라반트로 나토 사무총장들을 태웠으며, 이 차는 현재 불가리아 국립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30] 영국 외교관 스티븐 피셔도 트라반트를 외교 차량으로 사용했다.[32][33]
- 영화: 트라반트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고 트라비 고가 1991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고 속편도 만들어졌다.
- 모터스포츠: 일부 매니아들은 트라반트를 랠리나 서킷 경주용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과거 랠리 몬테카를로에 출전하여 완주한 기록도 있으며,[50] 튜닝을 통해 최고 속도 235km/h를 기록한 사례도 있다.[51]
2007년, 독일의 모형 제조 업체 헬파는 트라반트 생산 50주년을 맞아 명칭 사용권을 구입하고 새로운 모델을 통한 부활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 "New Trabi"의 축소 모형을 공개했으며,[59] 초기에는 BMW 엔진 탑재가 거론되었다.[7][8][35][60][61][62]
2년 뒤인 200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는 '''트라반트 nT''' (new Trabi)라는 이름의 전기자동차 콘셉트카가 공개되었다.[36][63] 이 모델은 리튬이온전지로 구동되는 45kW 유도전동기를 탑재하여 한 번 충전으로 약 약 160.93km를 주행하고 최고 속도 80mph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40][64] 지붕에는 태양전지 패널을 장착하고 내비게이션, 휴대폰 및 아이팟 연결 단자 등 현대적인 편의 장비도 갖출 예정이었다. 헬파, IndiKar, IAV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은[37][65] 트라반트의 고향인 츠비카우에서 생산하여 2012년까지 약 2.9만달러 가격으로 시장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투자자를 모집했으나,[38][39][66][67][68]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3. 기술적 특징
트라반트는 기술적으로 여러 독특한 특징과 함께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자동차였다. 기본적인 구조는 래더 프레임 위에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한 섬유 강화 플라스틱(FRP) 재질의 차체를 얹는 방식이었다. 이는 동독의 만성적인 강판 부족 상황에서 고안된 해결책이었으나, 강성이나 충돌 안전성 측면에서는 모노코크 구조에 비해 불리했다. 이 구조와 소재 덕분에 차량 중량은 약 600kg으로 매우 가벼웠다.[5][10]
엔진은 초기에 공랭식 직렬 2기통 2행정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여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이 엔진은 구조가 간단하고 저렴했지만 출력이 낮고(26PS)[14] 매연과 소음이 심했으며, 연료 효율(7L/100 km)도 낮아[17]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최고 속도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 21초가 걸렸다.[15][16] 후기 모델인 트라반트 1.1에서는 폭스바겐 폴로의 1.05L 4행정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변속기는 4단 수동변속기였으나, 싱크로매시가 없는 비동기식(non-synchromesh)이어서 부드러운 변속을 위해서는 더블 클러치 기술이 필요했다. 변속 레버는 대시보드에 위치했다.
서스펜션은 네 바퀴 모두 독립현가장치 방식이었지만, 앞뒤 모두 가로로 놓인 판스프링을 사용하는 구식 설계였다. 브레이크는 전 모델에 걸쳐 4륜 드럼 브레이크가 기본이었으며, 성능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후기의 트라반트 1.1 모델에 와서야 전륜에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되었다.
안전 및 편의 장비는 매우 부족했다. 초기 모델에는 연료 게이지가 없었고, 연료 탱크가 엔진룸 앞쪽에 위치하여 정면충돌 시 화재 위험이 높았다.[18] 1980년대 후반 모델조차 계기판 조명이나 방향지시등 표시등, 뒷좌석 안전벨트, 외부 연료 주입구 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20] 전조등 각도 조절 스위치가 램프 하단에 있어 차 밖에서 조작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트라반트의 가장 큰 기술적 한계는 1950년대 후반 설계 이후 거의 변화 없이 생산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동독의 설계자들은 P601을 대체할 여러 프로토타입(P603, P1100 등)을 개발했지만,[46] 사회주의 계획경제 하의 경직성과 원자재 부족 문제로 인해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5] 이로 인해 서구 자동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동안 트라반트는 제자리에 머물렀고, 기술적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이는 당시 동독 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마지막 모델인 '''트라반트 1.1'''(1990-1991)이 등장했다. 이 모델은 폭스바겐 폴로의 1.05L 4행정 엔진(BM 820, 45PS)을 탑재하고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전륜 서스펜션 등 일부 기술적 개선이 이루어졌으나,[24]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설계와 독일 재통일이라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고 단종되었다.[25]
3. 1. 엔진
트라반트의 엔진은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 츠비카우가 전쟁 이전 아우토우니온/DKW로부터 물려받은 2행정 엔진 기술에 기반한다. 동독의 예산 제약과 원자재 부족으로 인해, 1950년대 후반 서유럽 소형차들이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4행정 엔진을 채택하던 시기에도 트라반트는 구식이지만 저렴한 2행정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5] 이는 당시 서독의 로이드 자동차와 기술적으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로이드는 공랭식 2기통 4행정 엔진을 사용했다. 트라반트는 당시 많은 유럽 자동차들과 달리 엔진을 전륜에 가로로 배치하고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비교적 진보적인 설계였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생산 기간 내내 엔진 기술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서유럽 수출에 제한을 받았다.초기 모델인 트라반트 P 50(1958년-1962년)은 DKW 설계를 기반으로 한 공랭식 500cc 2기통 2행정 엔진을 탑재했다. 초기 출력은 17PS였으나 1960년에는 완전 동기화 기어박스와 함께 20PS로 향상되었다. 1962년에는 배기량을 600cc로 늘리고 출력을 23PS로 높인 P 60 모델(1962년-1964년)으로 발전했다.
1964년에 출시된 P601 모델은 P60의 엔진을 이어받았다. 이 크랭크케이스 압축식 공랭 직렬 2기통 엔진은 배기량 594cc로, 최대 출력 23HP/3,800rpm(DIN 기준, 26HP/4,200rpm이라는 데이터도 있음), 최대 토크 5.5kgm/3,000rpm의 성능을 냈다. 이는 1970년대 일본 경자동차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다. 공칭 최고 속도는 95km/h에서 105km/h 사이였으며, 4명을 태우고 8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나 가속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트라반트의 2행정 엔진은 구조적으로 몇 가지 특징과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 연료 혼합 방식: 엔진 오일을 가솔린에 직접 혼합하여 주입해야 했다.
- 연료 공급: 24L 용량의 연료 탱크가 보닛 안쪽, 대시보드 앞에 위치했다. 이는 1930년대 이전 소형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방식으로, 연료를 엔진보다 높은 곳에 두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료를 공급했다. 따라서 연료 펌프가 필요 없었지만, 주유 시마다 보닛을 열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엔진과 연료 탱크가 가까워 정면 충돌이나 엔진 과열 시 화재 위험이 높아 안전성 면에서 매우 불리했다.
- 연료 게이지 부재: 연료 잔량을 확인하려면 주입구에 막대를 넣어 직접 측정하거나, 주유 시 트립 미터 기록과 평소 연비를 바탕으로 다음 주유 시기를 예측해야 했다.
- 환경 문제: 1970년대 이후 서구권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동독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트라반트의 2행정 엔진은 정화 장치 없이 많은 매연을 배출하여 동구권의 대기 오염을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23]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서독 간 무역 협정에 따라 트라반트 1.1 모델(1990년-1991년)에는 기존 2행정 엔진 대신 폭스바겐 폴로에 사용되던 1.05L(1050cc) 직렬 4기통 SOHC 4행정 엔진(최고 출력 45PS)의 라이선스 생산 버전(모델 코드 BM 820)이 탑재되었다.[24] 이 엔진은 기존 2행정 엔진보다 훨씬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성능도 향상되었다. 엔진 변경과 함께 연료 탱크 위치는 차체 오른쪽 뒤로 옮겨졌고, 늘어난 출력을 감당하기 위해 전륜 브레이크는 디스크 브레이크로, 전륜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코일 스프링으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미 독일 재통일이 진행되던 시점이었고, 서독 중고차 유입 등으로 인해 시장 경쟁력을 잃어 1991년 4월 단종되었다.[25][58]
3. 2. 차체
트라반트는 래더 프레임 위에 별도의 차체를 얹는 고전적인 구조를 가졌다. 이는 당시 서구에서 점차 보편화되던 모노코크 구조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이러한 분리형 구조 덕분에 큰 강도가 요구되지 않아 차체의 일부 재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트라반트 601 군용 버전(큐벨바겐)과 같은 다양한 파생 모델을 비교적 쉽게 개발할 수 있었다.
차체의 지붕, 트렁크 뚜껑, 보닛, 펜더, 도어 등 외판은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한 합성수지로 만들어졌다.[5][10] 두로플라스트는 소련에서 공급받은 재활용 면 폐기물과 동독 염료 산업에서 생산된 페놀 수지를 혼합하여 만든 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의 일종이다. 이는 동독의 만성적인 강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며, 재활용 소재를 차체에 사용한 것은 1955년부터 생산된 AWZ P70에 이은 두 번째 사례였다. 두로플라스트는 내구성이 뛰어나 트라반트의 평균 수명은 28년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다.[10]
하지만 "마분지 차체의 자동차"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동독 말기에 제조 품질이 저하되어 표면의 질감이 조악해진 것을 서방 세계에서 비꼬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두로플라스트가 주재료였지만, 동독 경제가 악화된 말기에는 원가 절감을 위해 실제로 종이 펄프나 양모 같은 저급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차체 형식은 기본적으로 문짝 2개에 트렁크 공간이 분리된 3박스 형태의 리무진(세단)과 짐 공간을 넓힌 유니버설(스테이션 왜건) 두 가지가 주로 생산되었다. 초기 모델인 P50과 P60(1958년~1964년)은 전체적으로 둥근 디자인에 프런트 그릴이 없는 형태였으나, 1964년부터 생산된 P601 모델은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을 따라 차체를 좀 더 직선적으로 다듬고 지붕을 낮추었으며, 라디에이터 그릴 형태의 장식을 전면에 추가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디자인 변경에 그쳤으며, 기본적인 차체 구조와 설계는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차량 크기는 전장 3.5m, 전폭 1.5m 정도로 매우 작았으며, 정원은 4명이었다. 차량 중량은 FRP 차체 덕분에 600kg 정도로 매우 가벼웠다. 소소한 특징으로는 전조등의 상하 각도를 조절하는 스위치가 헤드램프 유닛 바로 아래에 붙어 있어, 조절하려면 차에서 내려 직접 손으로 돌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래더 프레임과 FRP 차체의 조합은 철제 모노코크 구조에 비해 차체 강성 확보나 충돌 시 안전성 측면에서 불리했으며, 생산성도 낮아 대량 생산되는 대중차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술적 한계와 개선 의지 부족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하에서 경쟁 없이 안주했던 동독 자동차 산업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서구의 자동차들이 안전과 환경 규제 강화, 기술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동안 트라반트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3. 3. 기타
독일어 단어 '트라반트'(Trabant)는 '위성' 또는 '동반자'를 의미하며, 이는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성공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이름이다.[4][5][6] 흔히 '트라비'(Trabbi 또는 Trabi)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거의 30년간 큰 변화 없이 생산된 트라반트는 동독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였으며, 특히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 주민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동독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7][8]
동독의 국가 독점 기업에서 생산된 트라반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여 구매 신청 후 차량을 인도받기까지 평균 10년, 길게는 13년까지 기다려야 했다.[9][11] 대기 시간은 수도인 동베를린과의 거리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5] 공식적인 국가 판매 가격은 7,450 동독 마르크였으나, 1989년에는 수요 대비 공급 비율이 1:43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공급 부족 상태였다. 이 때문에 중고차 가격은 신차 가격의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평균적인 노동자는 10년 이상을 기다리거나 웃돈을 주고 중고차를 구매해야 했다.[11]
트라반트는 전장 3.5m, 전폭 1.5m의 소형차로, 정원은 4명이었다. 구조적으로는 래더 프레임 위에 별도의 차체를 얹는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차체 외판 중 지붕, 트렁크 뚜껑, 보닛, 펜더, 도어 등은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소련에서 공급받은 재활용 면 폐기물과 동독 염료 산업에서 나오는 페놀 수지를 결합한 것이었다.[5][10] 이 덕분에 차체 중량은 약 600kg 정도로 가벼웠다. 두로플라스트는 내구성이 뛰어나 평균 수명이 28년에 달했지만,[10] 전반적인 제작 품질은 조악했고 소음이 심했으며 설계가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11][12][13] 동독 말기에는 물자 부족으로 품질이 더욱 저하되어 차체에 골판지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도어 3박스 리무진(세단형) 외에 유니버설(스테이션 웨건형)도 있었다. 1964년 이전의 P50·P60 모델은 둥근 차체에 프런트 그릴이 없었지만, 1964년 이후의 P601 모델은 다소 직선화되고 지붕이 낮아졌으며 프런트 그릴이 추가되었다.
주력 모델인 P50, 600, 601에는 직렬 2기통 2행정 엔진이 가로로 배치되어 전륜구동 방식으로 동력을 전달했다. 이 엔진은 공랭식이었으며, 1989년 단종 직전 모델 기준으로 594cc 배기량에서 최고 출력 26 PS를 내는 데 그쳤다.[14] 정지 상태에서 최고 속도인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21초가 걸렸다.[15][16] 2행정 엔진의 특성상 휘발유에 엔진 오일을 50:1 또는 33:1 비율로 직접 섞어 주유해야 했으며, 매우 매캐한 배기가스를 배출하여 심각한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었다. 2007년 기준으로 유럽 평균 자동차보다 탄화수소는 9배, 일산화탄소는 5배나 많이 배출했으며, 연료 소비율은 7L/100km 수준이었다.[17]
연료 탱크는 24L 용량으로[18] 보닛 안쪽, 대시보드 앞에 위치했다. 이는 1930년대 이전 소형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방식으로, 주유 시 보닛을 열어야 했다. 별도의 연료 펌프 없이 중력에 의해 연료가 기화기로 공급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엔진과 연료 탱크가 가까워 정면충돌 시 화재 위험이 높았다. 초기 모델에는 연료 게이지가 없어, 연료 잔량은 주입구에 막대를 넣어 확인하거나 주행 거리를 기반으로 추측해야 했다.
변속기는 4단 수동변속기였으나, 싱크로매시가 없는 비동기식이었기 때문에 부드러운 변속을 위해 더블 클러치 조작이 필요했다. 변속 레버는 대시보드에 위치했는데, 이는 실내 공간 확보에는 유리했지만 1960년대 후반 이후 서구 자동차들의 플로어 타입 변속 레버 추세와는 달랐다. 브레이크는 전 기간 동안 4륜 드럼 브레이크를 사용했으며 성능은 부족한 편이었다. 전조등의 상하 각도 조절 스위치는 등화 장치 바로 아래에 있어 차에서 내려 직접 조작해야 했다.
칙칙한 색상과 비좁고 불편한 승차감 때문에 많은 독일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동구권 체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졌다.[19] "지붕이 있는 점화 플러그"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독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면서 대중적인 애정을 받기도 했다.[7][8] 1950년대 후반 출시 이후 디자인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1980년대 모델조차 계기판 조명, 방향지시등 표시등, 연료 게이지, 뒷좌석 안전벨트, 외부 연료 주입구 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20] 이는 비슷한 시기 서독의 폭스바겐 비틀이 여러 차례 디자인 변경과 성능 개선을 거친 것과 대조적이었다.[21] 트라반트는 1990년까지 601 모델이 생산되었고, 이후 폭스바겐 엔진을 탑재한 1.1 모델이 1991년까지 잠시 생산되었다. 군용 등 특수 목적 차량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4. 모델
트라반트의 첫 모델은 1957년 11월 7일 작센주 츠비카우에 위치한 VEB 작센링 자동차 공장에서 출고되었다. 이듬해 정식 출시되었을 때, 이 차는 전륜구동, 모노코크 바디, 독립 현가장치를 갖추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였다. 그러나 가장 큰 약점은 엔진이었는데, 예산 제약과 원자재 부족으로 인해 구식이지만 저렴한 2행정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시 많은 서유럽 소형차들이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4행정 엔진을 사용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비슷한 크기에 공랭식 2기통 4행정 엔진을 사용한 서독의 로이드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트라반트는 후륜 엔진이나 전륜 엔진-후륜 구동 방식이 많았던 시대에 전륜에 가로로 배치된 엔진과 전륜 구동 방식을 채택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생산 방식이 거의 개선되지 않아 2행정 엔진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구식이 되었고, 이는 서유럽 수출에 제약이 되었다.
트라반트의 공랭식 500cc 엔진(1962-63년 600cc로 개선됨)은 전쟁 전 DKW 설계를 기반으로 했으며, 생산 기간 동안 약간의 변경만 이루어졌다. 동독의 다른 자동차 제조사인 바르트부르크는 수냉식 3기통 1000cc 2행정 DKW 엔진을 사용했다.
=== P50 / P60 ===
1958년에 출시된 최초의 트라반트는 트라반트 P 50이었다. 500cc, 17 PS의 출력을 냈으며, 1960년에는 완전 동기화 기어박스를 장착하고 출력을 20 PS로 높인 버전이 나왔다. 1962년에는 엔진 배기량을 600cc로 늘리고 출력을 23 PS로 향상시킨 트라반트 P 60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 601 ===
1964년에는 업데이트된 트라반트 601이 출시되었다. 이는 P 6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전면 디자인, 보닛, 지붕, 후면 디자인이 변경되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P50의 것을 유지했다. 이후 후기 모델에서 12V 전기 시스템, 후륜 코일 스프링, 개선된 대시보드 등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생산 종료 시점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다.
트라반트 설계자들은 P601을 대체할 여러 프로토타입을 개발했지만, 동독 정부는 원자재 부족 등을 이유로 신모델 개발 제안을 계속 거부했다. 이로 인해 트라반트 601은 25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생산되었으며, 매우 노동 집약적인 생산 방식 또한 그대로 유지되었다. 생산량은 1964년 연간 3만 4천 대에서 시작하여 1973년에는 연간 10만 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1989년에는 최고 15만 대에 달했다.[11]
1989년 중반, 수천 명의 동독 주민들이 트라반트에 짐을 싣고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서독으로 향하는 '트라비 트레일(Trabi Trail)' 현상이 나타났다. 이 차량들은 서독의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당시 유럽 평균의 4배에 달하는 대기 오염을 유발했다.[23]
=== 1.1 ===
동서독 간 무역 협정에 따라 트라반트의 2행정 엔진을 폭스바겐 폴로의 1.05리터(1050cc), 45 PS 4행정 엔진(라이선스 생산, 모델 코드 BM 820)으로 교체한 트라반트 1.1이 개발되었다. 1988년 시제품이 제작되고 1989년 시험 생산을 거쳐, 양독 통일이 합의된 후인 1990년 5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었다. 이 모델은 기존 601 모델에 비해 약간의 외관 수정(플로어 마운트 기어 변속기 포함)이 있었고, 더 조용하고 환경 친화적이었다. 또한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되었고, 휠 어셈블리는 폭스바겐의 것을 사용했으며, 전륜 서스펜션은 기존의 판 스프링 방식 대신 맥퍼슨 스트럿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차체 형식은 2도어 세단과 2도어 스테이션왜건(유니버설)이 있었으며, 전륜구동 방식이었다. 차량 중량은 약 700kg에서 740kg 사이였다.
그러나 트라반트 1.1은 동독 시민들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18,600 마르크)이었고, 통일 이후 서독의 중고차가 대량 유입되면서 성능과 브랜드 이미지에서 열세인 트라반트 1.1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58] 결국 1991년 4월, 생산 시작 11개월 만에 단종되었고, 이로써 33년간 약 370만 대가 생산된 트라반트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25] 재통일된 독일 경제에서 트라반트의 자리는 없었으며, 비효율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생산 라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츠비카우 공장은 폭스바겐에 매각되어 엔진 생산 기지 및 일부 폭스바겐 모델 생산 공장으로 재개발되었고, 나머지 회사는 HQM 작센링 GmbH가 되었다.
=== P800 RS ===
'''트라반트 P800 RS'''는 트라반트 P601을 기반으로 개발된 랠리 전용 차량으로, RS는 'Rallysport'의 약자이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단 3대만 생산되었다. 엔진은 P601의 2행정 공랭식 엔진을 771cc까지 보어업하여 일반 모델의 약 2배 이상인 48kW(약 65 PS)의 출력을 냈다.[52][53] 차체는 2도어 세단 형식이며, 전륜구동 방식이고 차량 중량은 600kg이었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간헐적으로 참가했으며, 주로 핀란드 랠리에 그룹 A 클래스로 출전했다. 강력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포인트를 획득하기는 어려웠지만, 1986년에는 2대가 완주했고[54], 1987년과 1988년에는 각각 1대가 완주했으며[55][56], 1989년에는 1000cc 이하 클래스에서 2, 3, 4위를 차지하는 등[57]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선전했다.
=== 모델 종류 ===
- '''P50''': 초기 모델명. 후에 500으로 불림 (리무진, 유니버설[콤비])
- '''600''': P50 기반 개선 모델 (리무진, 유니버설)
- '''601''': 주력 모델 (리무진, 유니버설)
- * 601S (Sonderwunsch|존더분슈de; 특별 사양): 안개등, 후진등, 주행 거리계 장착
- * 601 딜럭스: 601S와 유사하며 투톤 색상, 크롬 범퍼 추가
- * 601 쿠벨: 군용 또는 특수 목적용. 접이식 지붕, 보조 난방, RFI 차폐 점화 장치, 문 없는 구조.
- * 601 트램프: 쿠벨의 민수용 버전. 주로 그리스로 수출됨.
- * 601 하이코맷: 자동 클러치 장착 (왼쪽 다리 사용이 불편한 운전자를 위함)
- * 800RS: 랠리 버전
- '''1.1''': 4행정 엔진 탑재 모델 (리무진, 유니버설, 트램프컨버터블)
=== 프로토타입 ===
수십 년에 걸쳐 여러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으나, 동독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양산되지는 못했다. 일부는 드레스덴 교통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1954년 트라반트 P50 프로토타입[41]
- 1954년 트라반트 P50 유니버설 프로토타입
- 1959년 트라반트 P504
- 1961년 트라반트 P100
- 1965년 트라반트 P602V
- 1970년 트라반트 P760
- 1971년 트라반트 P610 프로토타입
- 1981년 트라반트 P601 Z
- 1982년 트라반트 601 WE II 프로토타입 [42]
- 1988년 트라반트 1.1 E
=== nT (컨셉카) ===
2007년, 트라반트 생산 시작 5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의 모형 제조 업체 헬파가 트라반트 상표권을 구입하고 신형 모델 부활 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트라반트 nT'''라는 이름의 컨셉카가 공개되었다.[63]
이 컨셉카는 리튬이온전지로 구동되는 45kW 유도전동기를 탑재한 전기자동차로 설계되었다. 1회 충전 시 항속거리는 약 160.93km (약 160km), 최고 속도는 80mph (약 130km/h)를 목표로 했다.[64] 지붕에는 태양전지 패널을 장착하고, 내부에는 내비게이션, 휴대 전화 및 아이팟 연결 단자 등을 갖출 예정이었다.
헬파는 자동차 부품 업체 IndiKar, 자동차 기술 기업 IAV와 함께[65] 츠비카우에서 생산을 계획하고 2012년 판매를 목표로 투자자를 모집했다.[66][67] 예상 가격은 2.9만달러 (약 1.9600000000000002만유로) 수준이었으나,[68]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5. 사회문화적 의의
독일어 단어 '트라반트'(Trabant)는 '위성' 또는 '동반자'를 의미하며, 이는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영감을 받아 지어진 이름이다.[5][6] 흔히 '트라비'(Trabbi 또는 Trabi)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트라반트는 거의 3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생산되면서 동독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가 되었다. 특히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 주민들이 이 차를 타고 서독으로 국경을 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되면서 동독이라는 나라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7][8]
동독의 국가 독점 기업에서 생산된 트라반트는 구입 신청 후 실제 차량을 받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매자들은 평균 10년, 길게는 13년까지 기다려야 했으며,[11] 대기 시간은 수도 베를린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5] 공식적인 신차 가격은 7,450 동독 마르크였지만, 1989년 기준으로 수요는 생산량의 43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즉시 구매 가능한 중고차는 신차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고, 평균적인 노동자는 긴 시간을 기다리거나 비싼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11] 이러한 상황은 당시 동독 사회의 폐쇄성과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트라반트는 강철 프레임 위에 두로플라스트(Duroplast)라는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든 차체를 얹었다. 두로플라스트는 소련에서 공급된 재활용 면 폐기물과 동독 염료 산업의 페놀 수지를 이용해 만든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지붕, 트렁크 뚜껑, 보닛, 펜더, 문 등에 사용되었다.[5][10] 이는 재활용 소재를 차체에 사용한 두 번째 사례였으며(첫 번째는 AWZ P70 츠비카우), 소재 자체의 내구성 덕분에 트라반트의 평균 수명은 28년에 달했다.[10] 그러나 "마분지 차체의 자동차"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이는 동독 말기 제조 품질 저하로 표면 질감이 나빠진 것을 서방에서 비꼬아 표현한 것으로, 실제 재료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동독 말기 경제난으로 인해 실제 종이 펄프나 양모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트라반트는 낮은 제작 품질, 소음, 느린 속도, 불편한 승차감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11][12][13] 초기 모델부터 601 모델까지 탑재된 2행정 엔진은 출력이 매우 낮아(1989년 모델 기준 26PS), 최고 속도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 21초나 걸렸다.[15][16] 또한 이 엔진은 매캐한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여 심각한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되었다. 2007년 유럽 평균 자동차보다 탄화수소는 9배, 일산화탄소는 5배나 많이 배출했으며, 연료 소비량은 100km당 7L였다.[17] 연료 탱크는 엔진 위에 위치하여 중력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정면충돌 시 화재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칙칙한 색상과 불편함 때문에 많은 독일인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지붕이 있는 점화 플러그"라는 별명), 동독 체제의 기술적, 사회적 후진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19][26] 1950년대 후반 출시 이후 디자인이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1980년대 모델조차 기본적인 편의 장비(계기판 표시등, 연료 게이지, 뒷좌석 안전벨트 등)가 부족했다.[20] 이는 비슷한 시기 서독의 폭스바겐 비틀이 꾸준히 개선된 것과 대조적이었다.[21]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많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트라반트를 버렸고, 이는 서방 세계에 동독 체제의 결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되었다.[26] 최신 서독 자동차(폭스바겐 골프, 오펠 아스트라 등)와 낡은 트라반트가 같은 도로를 달리는 풍경은 양쪽 운전자 모두에게 강렬한 컬처 쇼크를 안겨주었다. 동독 주민들이 트라반트를 타고 국경을 넘는 모습은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 종말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트라반트의 기술적 한계는 초기부터 명확했지만, 사회주의 체제 하의 계획경제는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바르트부르크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스코다와 공동으로 모델 체인지를 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의 명령 등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다.[46] 경쟁 없는 체제 속에서 트라반트는 안전 및 환경 규제 강화, 기술 혁신 등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채 생산되었고, 결국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말았다. 동독 정부는 자동차 보급에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수출 우선 정책, 소비 억제를 통한 경제적 평등 추구라는 이념적 이유, 그리고 자동차를 통한 개인의 이동의 자유 확대를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48][49]
동서독 통일 이후 트라반트는 한때 거의 공짜로 주어질 정도로 가치가 폭락했지만, 점차 클래식카로서 수집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지만, 특유의 디자인과 역사적 의미 덕분에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91년에는 트라반트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고 트라비 고》(Go Trabi Go)가 제작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에는 트라반트 박물관과 시티 투어 상품을 제공하는 '트라비 월드'(Trabi World)가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매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트라반트 퍼레이드가 열린다.[34]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1997년 트라반트는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가 전복되었던 무스 테스트를 통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31] 불가리아의 솔로몬 파시 전 외무장관은 자신의 트라반트로 NATO 사무총장들을 태우고 다녔으며, 이 차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30] 영국의 한 외교관은 트라반트를 외교 차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32][33]
2008년부터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는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트라반트의 운행이 제한되었지만, 역사 문화재로서 특별 허가를 받아 운행하는 차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43][44] 귀여운 외모와 단순한 구조 덕분에 직접 수리하고 개조하는 매니아들도 많으며, 레이싱카나 랠리카로 튜닝하여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하여 완주한 기록도 있으며,[50] 최근에는 튜닝된 트라반트가 235km/h의 속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51]
동서독 통일 직후, 폭스바겐 엔진을 탑재한 개량 모델 '트라반트 1.1'이 잠시 생산되기도 했으나, 이는 동독의 생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가까웠고, 트라반트의 시대는 냉전 종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일본에서도 수입 시도가 있었지만, 배기가스 규제와 안전성 문제로 정식 등록에는 이르지 못했다.
6. 미디어 속 트라반트
리처드 라이비에 따르면, 트라반트는 "동독 국가의 기술적, 사회적 후진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26]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많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트라반트를 버렸고, 이는 서방 세계에서 동독 체제의 결함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라다 니바, 스코다 에스텔, 폴스키 피아트, 유고와 달리 트라반트는 서유럽 시장에서는 거의 판매되지 못했다.
1990년대 초에는 트라반트를 단 몇 독일 마르크만으로도 살 수 있었고, 무료로 나눠주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수집품으로서 가치가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 리즈 코헨은 자신의 ''Bodywork'' 프로젝트에서 1987년형 트라반트를 1973년형 쉐보레 엘 카미노로 개조하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27] 1990년대 후반 우즈베키스탄에서 '올림프'(Olimpuz)라는 이름으로 트라반트 생산을 재개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28] 실제로는 단 한 대의 시제품만 생산되는 데 그쳤다.[29]
트라반트는 외교 무대에도 등장했다. 불가리아 전 외무장관이자 불가리아 대서양 클럽 창립 회장인 솔로몬 파시는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을 받은 트라반트를 소유했다. 그는 이 차로 나토 사무총장 만프레트 뵈르너, 조지 로버트슨, 야프 더 호프 셰퍼 등을 태우기도 했다. 2005년, 파시는 불가리아의 나토 가입을 기념하며 이 트라반트를 불가리아 국립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30] 또한 2007년에는 영국 대사관 부다페스트의 참사관이었던 스티븐 피셔가 영국 경주용 녹색과 유사하게 도색한 1.1 모델 트라반트를 외교 차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32][33]
1997년에는 트라반트가 급격한 방향 전환 시 차량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무스 테스트를 통과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가 같은 테스트에서 전복되었기 때문에, 튀링겐 지역 신문은 "무스야, 와서 우리를 잡아봐! 트라비가 A클래스 살인 테스트를 통과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31]
미국의 트라반트 소유자들은 매년 11월 초 워싱턴 D.C.에서 트라반트 퍼레이드를 열어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한다. 사설 박물관인 국제 스파이 박물관이 후원하는 이 행사에서는 트라반트를 이용한 시내 투어, 시승 기회, 독일 라이브 음악 공연, 동독 관련 전시 등이 진행된다.[34]
다양한 미디어에서도 트라반트를 찾아볼 수 있다.
- 잽알로피 (Jalopy): 낡은 트라반트를 수리하고 개조하여 동유럽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디 드라이빙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스팀 상점 페이지
- 마스터 키튼: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주인공 다이치 키튼이 자신의 차를 수리 맡긴 동안 대차로 트라반트를 이용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 국경의 에밀리아: 만화 작품으로, 주인공 스기우라 에밀리아의 파트너 차량으로 트라반트가 등장한다.
-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오프닝 장면에서 주인공 로이드 포저가 트라반트 601 모델(애칭: 트라비)을 운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코믹스 3권 표지 뒷면 일러스트에서는 요르 포저, 아냐 포저와 함께 이사를 위해 트라반트를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토게마루: 일본 록밴드 스피츠의 앨범으로, 'TRABANT'라는 제목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 스미토모고무공업: 2015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이 회사의 스터드리스 타이어 'WINTER MAXX' 광고에 트라반트(P601 모델)가 등장했다. 광고 모델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였으며, CG 또는 모형으로 제작된 펭귄 한 마리도 함께 출연했다.
- 신용협동조합 (일본): 2019년도 자동차 대출 홍보 포스터에 트라반트 P601 모델의 미니어처카가 사용되었다. 포스터 모델은 2018년부터 신용협동조합의 이미지 모델을 맡고 있는 사카사키 미아였다.
7.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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