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1954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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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지라 (1954년 영화)'는 1954년에 개봉된 일본 영화로, 핵실험으로 인해 깨어난 고대 괴수 '고지라'가 일본을 파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핵무기의 공포와 그로 인한 자연 재해를 은유하며, 특수 효과와 미니어처를 활용한 시각적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고지라'는 이후 여러 작품으로 제작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어 괴수 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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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1954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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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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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고지라 |
로마자 표기 | Gojira |
영어 제목 | Godzilla |
다른 영어 제목 |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
감독 | 혼다 이시로 |
제작 | 다나카 도모유키 |
제작 총지휘 | 모리 이와오 |
각본 | 무라타 다케오 혼다 이시로 |
원작 | 가야마 시게루 |
음악 | 이후쿠베 아키라 |
촬영 | 다마이 마사오 |
편집 | 다이라 가즈지 |
출연 | 다카라다 아키라 고치 모모코 히라타 아키히코 시무라 다카시 사카이 사치오 무라카미 후유키 야마모토 렌 사카키다 게이지 스즈키 도요아키 우마노 쓰루코 스가이 킨 오이카와 다케오 하야시 미키오 온다 세이지로 다카도 고쿠텐 오가와 도라노스케 |
제작사 | 도호 |
배급사 | 도호 |
개봉일 | 1954년 11월 3일 |
상영 시간 | 97분 |
언어 | 일본어 |
제작비 | |
직접 제작비 | 6,300만 엔 |
총 제작비 | 1억 엔 |
미국 달러 환산 (1954년) | 90만 달러 |
흥행 수익 | |
배급 수익 | 1억 5,214만 엔 |
미국 달러 환산 | 225만 달러 |
추가 정보 | |
다음 작품 | 고지라의 역습 |
2. 스토리
오오토 섬(大戸島)일본어 어부 마사지의 동생 신키치는 고지라의 오오토 섬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다. 이후 그는 오가타에게 맡겨져 오가타와 함께 야마네 박사의 집을 자주 방문한다.
이 전대미문의 기획은 'G작품'(G는 Giant의 이니셜)으로 명명되어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다나카 도모유키는 괴기 환상 작가 가야마 시게루에게 원작 집필을 의뢰하여 '시나리오풍의 원작'을 완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G작품 검토용 대본'이 만들어졌다. 츠부라야 에이지는 '바다에서 나타난 괴물 같은 고래가 도쿄를 강타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G작품의 괴수를 '거대 문어'로 하자는 주장을 했으나, 다나카는 '태고의 공룡'을 주장하여 결국 공룡으로 결정되었다.
혼다 이시로 감독과 무라타 타케오 감독이 각본 제작에 투입되었다. 당시 가제였던 《해저 2만리에서 온 대괴수》는 제목이 너무 길어, 사토 이치로 프로듀서가 토호 연극부에 있던 '구지라(고래)'를 좋아하는 '고리라(고릴라)' 같은 얼굴을 가진 인물의 별명 '구지라'를 참고하여 '고릴라'와 '고래'를 합친 《'''고지라'''》(ゴジラ)로 명명했다.
'G작품 준비고' 완성 후, 와타나베 아키라 미술감독이 228장면 306컷에 이르는 그림 콘티를 제작했다. 고지라의 '백열광'이나 '빛나는 등지느러미'는 이 검토 단계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아베 와스케에게 디자인화가 의뢰되었으나, 와타나베 아키라가 실제 디자인을 진행하여 6월 말에 점토 원형이 완성되었다.
츠부라야 감독은 스톱 모션 기법을 검토했으나, 공정상 무리로 판단하여 수트 액션 기법으로 결정했다. 나카지마 하루오와 데즈카 카츠미가 수트 액터로 정해졌고, 《고지라》는 본격적인 '인형탈 괴수'로서도 일본 최초의 대처였다.
일본 화물선 에이코마루호가 오도섬 근처에서 침몰하고, 구조선 빙고마루호도 같은 운명을 맞는다. 오도섬 어선 침몰 후 유일한 생존자는 고대 해양 생물 "고지라"를 언급한다. 기자들은 오도섬에서 바다의 무언가가 어업을 망치고 있다는 증언을 듣는다. 그날 저녁, 폭풍과 함께 고지라가 나타나 섬을 파괴한다.
오도섬 주민들은 도쿄에서 재난 구호를 요청하고, 정부는 야마네 교헤이를 파견하여 조사한다. 거대한 방사능 발자국과 삼엽충이 발견되고, 야마네는 고지라가 수중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교란되었다고 결론짓는다.
구축함이 파견되어 수심폭탄으로 고지라를 공격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야마네는 고지라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마네의 딸 에미코는 아버지 동료 세리자와 다이스케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히데토 오가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세리자와는 에미코에게 비밀 연구를 보여주며 비밀 유지를 요구한다.
고지라가 도쿄만에서 나타나 시나가와를 공격하고 바다로 돌아간다. 일본 자위대는 전기 울타리를 설치하지만, 고지라는 울타리를 뚫고 원자 빔으로 도쿄를 파괴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병원과 대피소는 부상자와 사망자로 가득 차고, 일부 생존자는 방사능 질환을 앓는다.
에미코는 오가타에게 세리자와의 연구, "산소 파괴자(Oxygen Destroyer)"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미코와 오가타는 세리자와에게 산소 파괴자를 사용하도록 설득하지만, 세리자와는 세계 강대국들이 무기로 악용할 것을 우려하여 거부한다. 그러나 참혹한 현실을 본 후, 세리자와는 마침내 사용을 허락하고 자신의 메모를 태운다.
해군 함선이 오가타와 세리자와를 태우고 도쿄만에 장치를 설치한다. 세리자와는 장치를 작동시키고 자신의 공기 지원을 차단하여 산소 파괴자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 고지라는 파괴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리자와의 죽음을 애도한다. 야마네는 핵무기 실험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고지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2. 1. 발단
1954년 8월 13일 19시 5분, 남해기선 소속 화물선 '에이코마루'가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 부근에서 원인 불명의 침몰 사고를 당한다.[119] 구조를 위해 출동한 '빙고마루' 역시 같은 지점에서 침몰하고, 이후 오오토 섬의 어선이 생존자를 구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이 어선마저 연락이 두절된다.어부 야마다 마사지는 오오토 섬에 표류하여 배들이 무언가에 의해 침몰했다고 증언한다.[120] 신문기자 하기와라의 취재에 응한 섬의 노인은 이 사건들이 오오토 섬의 전설 속 괴물 '고지라'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지라가 바다의 먹이를 다 먹으면 육지로 올라와 인간을 잡아먹으며, 예전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제물로 바쳐 고지라를 달랬다고 전한다.
2. 2. 전개
폭풍우가 치던 밤, '무엇인가'가 오오토 섬에 상륙하여 가옥을 파괴하고 주민과 가축을 살상한다. 이 사건으로 고생물학자 야마네 쿄헤이 박사는 국회에서 긴급 조사단 편성 및 파견을 주장하고, 오오토 섬에 조사단이 파견된다. 조사단에는 야마네 박사, 그의 딸 에미코, 에미코의 연인 오가타 히데토, 물리학자 타나베 박사가 참여한다. 조사단은 파괴된 마을을 조사하면서 방사능으로 오염된 우물, 거대한 발자국, 그리고 멸종된 삼엽충을 발견한다. 그 직후, 경종이 울리고 거대한 생물(고지라)이 팔번산 능선 너머에서 나타나 포효한다.도쿄로 돌아온 야마네 박사는 국회 전문위원회에서 이 거대 생물을 오오토 섬의 전설에 따라 '고지라'로 명명하고, 발견된 삼엽충 껍질에 묻은 암쇄토에서 스트론튬-90이 측정된 것을 근거로 "해저 동굴에 숨어있던 200만 년 전 쥐라기 생물이 거듭되는 수폭 실험 때문에 안주하는 땅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고지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선박 피해가 잇따르자, 프리깃 함대가 오오토 섬 서쪽 해안으로 파견되어 고지라에 대한 폭뢰 공격을 실시한다. 하지만, 야마네 박사는 귀중한 연구 자료인 고지라를 잃고 싶지 않아 마음 아파한다.[121]
2. 3. 위기
어느 날 밤, 도쿄만을 순항 중인 유람선에서 사람들이 고지라를 목격하고 공포에 휩싸인다. 특설 재해 대책 본부는 야마네 박사에게 고지라를 제거할 방법을 묻지만, 야마네 박사는 고지라의 생명력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마이아사 신문의 하기와라 기자는 에미코를 통해 세리자와 박사와의 면담을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한다. 세리자와 박사는 과거 에미코와 약혼했으나, 전쟁 중 부상으로 인간 불신에 빠져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세리자와 박사는 에미코에게 비밀리에 연구 중인 '옥시전 디스트로이어'의 실험을 보여주고, 에미코는 큰 충격을 받는다.[122]그날 밤, 고지라가 시나가와 앞바다에 나타나 방위대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나가와 부두에 상륙한다. 야마네 박사는 방위대에게 빛을 쏘면 고지라를 화나게 할 뿐이라고 경고하지만, 그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지라는 시나가와역과 게이큐 본선 야츠야마하시 과선교를 파괴하고 도쿄만으로 돌아간다.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여러 나라에서 조사단들이 잇따라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2. 4. 절정
고지라가 다시 시바우라 앞바다에 나타나 도쿄를 공격한다. 방위대는 곡사포, 중기관총, 경전차를 배치하여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고지라는 5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뚫고 긴자에 침입한다. 고지라는 마쓰자카야, 와코 빌딩, 일본극장, 국회의사당을 파괴하며 대화재를 일으키고, 도쿄는 초토화된다.임시 구호소에서 이재민들을 돕던 에미코는 참혹한 현실에 세리자와 박사의 실험 비밀을 오가타에게 밝힌다. 에미코가 본 실험은 수중의 산소를 파괴하여 생물을 질식사시키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였다. 오가타와 에미코는 세리자와 박사에게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를 사용해 고지라를 막아달라고 간청하지만, 세리자와 박사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가 병기화될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거절한다.[122] 하지만 텔레비전에 비친 참혹한 도쿄의 모습과 여학생들의 '평화의 기도'를 들은 세리자와 박사는 마음을 바꾸어 사용을 허락하고, 관련 연구 자료들을 모두 소각한다.[123]
2. 5. 결말
해상 보안청 순시선 '시키네' 갑판에서 타나베 박사는 도쿄만에 잠복한 고지라의 위치를 알아낸다. 세리자와 박사는 오가타의 지원을 받아 해저로 잠수하여 고지라 옆에 도달한다. 그리고 오가타를 수면으로 부상시키고, 고지라 발밑에서 혼자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를 작동시킨다. 바닷물이 거품처럼 솟아오르며 고지라가 고통스러워한다. 성공을 확인한 세리자와 박사는 해저에서 오가타에게 이별을 고하고, 스스로 생명선과 송기관을 끊어 자결함으로써 자신만이 아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의 비밀을 세상에서 완전히 묻는다. 그리고 고지라도 외마디 괴성을 남기고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74]선상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희로 솟아오르는 가운데, 야마네 박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저 고지라가 마지막 한 마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만약 수폭 실험이 계속된다면, 저 고지라의 동류(同類) 또한 세계 어딘가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74] 사람들은 평온을 되찾은 바다에 경건한 묵념을 바친다.
3. 등장 괴수
ゴジラ|고지라일본어의 조형은 토시미츠 테이조, 야기 칸주, 야기 야스에이, 카이마이 에이조가 담당했다.
처음 제작된 1호 수트는 너무 무거워 액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벼운 2호 수트가 제작되어 전신 촬영에 사용되었다. 1호 수트는 허리 부분에서 분할되어 다리 업 씬과 물 위 장면 등에 사용되었고, 촬영 이후 소년 잡지 이벤트 기획으로 스미다강에서 도쿄만으로 가라앉았다.
철탑을 물어뜯는 장면 등에는 손으로 조작하는 기뇰 모형이 사용되었다. 기뇰 조작은 처음에는 거리의 기뇰 조정사가 맡았지만, 괴수의 움직임과 맞지 않아 나카시루 후미오가 담당하게 되었다. 고지라의 뼈는 토시미츠 테이조가 철심에 솜을 꽂아 고무를 스며들게 하는 기법으로 만들었다.
고지라의 체색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카이마이 에이조는 흰색에 유성도료를 뿌린 회색이고 입안은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고 했지만, 아리카와 사다마사는 검붉은 색이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스즈키 요시오는 칙칙한 갈색 계열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고무 표피 주조에는 당시에는 라텍스가 없어, 생고무를 물에 불려 바셀린을 섞어 반죽하고 석고 틀에 발라 적외선 램프로 가열 건조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고무는 당시 매우 비싼 재료였다. 야기 형제는 하리코(張り子) 기법을 활용하여 철골에 철망과 고지를 깔고 고무 표피를 붙여 주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고무 반죽이 부족하여 표피가 찢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1호 고지라는 너무 무거워 각재조차 넘지 못했고, 테스트 때는 성인 남성 3, 4명이 모여 세워야 했다.
카이마이에 따르면 당시에는 발포 우레탄(스펀지)가 없었고, 표피 안쪽에는 솜을 포대에 채워 꿰매 붙여 무게가 더 늘었다고 한다. 등 쪽 출입구는 지퍼가 아닌 후크를 사용했고, 촬영 시에는 철사나 데구스(テグス)로 묶어 닫았다. 발밑에는 게타(下駄)를 넣었고, 눈알과 입은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와이어와 고무를 이용해 외부에서 조작했다. 엄니는 목재로 만들면 쥐처럼 보여 고무로 만들어졌고, 등지느러미는 철심에 종이를 펴 고무칠을 하였다.
3. 1. 고지라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 부근에서 일본 선박들이 잇따라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119] 오오토 섬의 어선이 생존자를 구조하지만, 이 어선마저 연락이 두절된다. 오오토 섬에 표류한 어부 야마다 마사지는 배들이 무언가에 의해 침몰했다고 증언한다.[120] 섬의 노인은 이 사건들이 섬의 전설 속 괴물 '고지라(呉爾羅)'의 소행이며, 고지라가 바다의 먹이가 없어지면 육지에 올라와 인간을 먹는다고 말한다.폭풍우가 치던 밤, 고지라가 섬에 상륙하여 가옥을 파괴하고 주민과 가축을 살상한다. 이로 인해 야마다 신키치를 제외한 그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는다.[121] 고생물학자 야마네 쿄헤이 박사는 국회에서 긴급 조사단 파견을 주장하고, 야마네 박사, 그의 딸 에미코, 에미코의 연인 오가타 히데토, 물리학자 타나베 박사 등이 조사단에 참여한다.
오오토 섬에 도착한 조사단은 파괴된 마을을 조사하던 중 방사능 오염과 거대한 발자국, 그리고 멸종된 삼엽충을 발견한다. 곧이어 고지라가 나타나 포효하는 것을 목격한다.
도쿄로 돌아온 야마네 박사는 고지라가 수폭 실험으로 인해 서식지에서 쫓겨난 200만 년 전 쥐라기 생물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고지라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선박 피해가 계속되자, 프리깃 함대가 파견되어 고지라에게 폭뢰 공격을 가한다. 야마네 박사는 연구 자료인 고지라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 아파한다.
- 신장: 50m
- 체중: 20000ton
- 무기: 백열광
- 수트 액터: 나카지마 하루오, 데즈카 카츠미
관련 미디어 등에서는 '''초대 고지라''' 또는 '''초고지'''로 불린다.
야마네 쿄헤이 박사에 따르면, 고지라는 200만 년 전 쥐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서식하던 해서 파충류와 육상 수류의 중간 생태를 가진 생물이다. 수폭 실험으로 인해 서식 환경이 파괴되어 인간에게 원한을 품고 도쿄를 공격하지만, 옥시전 디스트로이어에 의해 소멸한다.
3. 1. 1. 조형

고지라(ゴジラ)는 쓰부라야 에이지 감독 하에 도시미츠 테이조(都築 貞夫)와 와타나베 아키라가 디자인했다.[12] 초기 단계에서 다나카 도모유키(田中友幸)는 "고지라(ゴジラ)"라는 이름이 일본어로 ゴリラ|고릴라일본어와 クジラ|쿠지라(고래)일본어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괴수의 디자인을 고릴라 또는 고래처럼 할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공룡과 같은 디자인으로 결정했다. 아베 가즈요시(阿部和世)가 고지라 디자인을 위해 더 일찍 고용되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고지라가 너무 인간형이고 포유류처럼 생겼고, 머리가 버섯 구름 모양이었기 때문에 거부되었다. 하지만 아베는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남았다.
도시미쓰와 와타나베는 고지라의 디자인을 티라노사우루스, 이구아노돈 및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지느러미 요소를 결합하여 공룡을 기반으로 디자인 하기로 결정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쓰부라야는 꺼려하며 결국 슈트 액션으로 결정했다. 도시미쓰는 슈트를 기반으로 할 세 개의 점토 모델을 조각했다. 처음 두 개는 거부되었지만, 세 번째 모델은 쓰부라야, 다나카, 혼다(本多猪四郎)의 승인을 받았다.
고지라 슈트는 야기 간주(八木勘十), 야기 야스에이(八木康衛), 카이마이 에이조(甲斐誠造)가 제작했는데, 슈트 내부의 골격을 만들기 위해 얇은 대나무 막대와 철사를 사용하고, 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금속망과 쿠션을 추가한 후 라텍스를 여러 겹으로 칠했다. 또한 녹은 고무를 여러 겹 바르고, 조각한 홈을 파고 라텍스 조각을 표면에 붙여 고지라의 비늘 피부를 만들었다. 이 첫 번째 버전의 슈트는 100kg의 무게가 나갔다. 클로즈업을 위해 도시미쓰는 입에서 안개를 분사하는 소형 기계식 손 조종 인형을 만들어 고지라의 원자 빔으로 사용했다.
나카지마 하루오와 테즈카 카츠미는 그들의 힘과 지구력 때문에 고지라 슈트를 착용하는 배우로 선택되었다. 첫 번째 의상 착용 시, 나카지마는 무거운 라텍스와 뻣뻣한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슈트 안에서 넘어졌다. 이 첫 번째 버전의 슈트는 두 개로 잘라서 고지라의 부분적인 샷이나 클로즈업에만 필요한 장면에 사용되었고, 하반신에는 나카지마가 착용할 로프 서스펜더가 장착되었다. 전신 샷을 위해 첫 번째 슈트보다 가벼운 두 번째 동일한 슈트가 만들어졌지만, 나카지마는 기절하기 전까지 3분밖에 슈트 안에 있을 수 없었다. 나카지마는 영화 제작 기간 동안 9kg을 감량했다. 나카지마는 1972년 은퇴할 때까지 고지라와 다른 괴물들을 연기했다. 테즈카는 고지라 슈트를 입고 장면을 촬영했지만, 그의 나이 든 몸 때문에 역할에 필요한 육체적 요구에 완전히 충족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장면 중 몇 개만 최종 편집본에 포함되었고, 사용 가능한 장면은 매우 적었다. 테즈카는 나카지마가 이용할 수 없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역할에서 휴식이 필요할 때 그를 대신했다.
3. 1. 2. 프로토타입 고지라
초대 고지라 수트 제작 전에 만들어진 참고용 모형이다. 이 모형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쳤는데, 처음에는 머리 부분이 매우 크고 뱀 같은 비늘 모양의 체표가 특징이었다. 이후 머리가 좀 더 작아지고 양서류 같은 모양의 체표로 바뀌었다가, 악어 같은 모양의 체표로 바뀌어 지금의 초대 고지라의 모습에 가까워졌다.[12]쓰부라야 에이지 특수촬영 감독은 다나카 도모유키 프로듀서, 혼다 이시로 감독과 함께 '생물'로서의 고지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포유류인 고릴라의 이미지를 섞어 파충류나 양서류보다는 포유류에 가까운 외형을 가진 '초대 고지라'가 탄생하게 되었다.[12]
초기 단계에서 다나카는 "고지라(ゴジラ)"라는 이름이 일본어로 ゴリラ|고릴라일본어와 クジラ|쿠지라(고래)일본어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괴수의 디자인을 고릴라나 고래처럼 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공룡과 같은 디자인으로 결정했다. 티라노사우루스, 이구아노돈, 스테고사우루스의 특징을 결합한 디자인이었다.
이 프로토타입 모형은 개봉 전 이미지 스틸 소재로만 쓰였을 뿐, 극 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2] 그래서 대형 완구 업체의 피규어 같은 상품은 없었고, 2004년경 발매된 토호 계약 상품인 반다이의 '고지라 비프 육포'에 4cm가량의 완구와 수트 자료 사진이 있는 카드가 들어있던 것이 유일하다.[12]
3. 1. 3. 수트 액터
中島 春雄|나카지마 하루오일본어가 고지라의 메인 수트 액터를 맡았고, 手塚 勝巳|데즈카 카츠미일본어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다.[12] 원래 혼다 이시로 감독은 데즈카 카츠미를 메인 수트 액터로 추천했지만, 테스트 결과 나카지마가 10미터 정도를 더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츠부라야 에이지에 의해 메인 수트 액터로 결정되었다.나카지마는 츠부라야의 "사람이 안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을 보여달라는 주문에 따라 1933년 영화 《킹콩》을 참고하고, 동물원에서 사자의 위압감, 곰의 직립, 코끼리의 발걸음을 관찰하여 고지라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츠부라야는 나카지마와 데즈카에게 고지라의 포효와 움직임을 직접 지도하며, 특히 "발바닥을 보이지 않고 스모 선수처럼 걸으라"고 지시했다.
고지라 수트는 2벌이 제작되었다. 처음 제작된 1호 수트는 너무 무거워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에, 가벼운 2호 수트가 제작되어 전신 촬영에 사용되었다. 1호 수트는 허리 부분에서 분할되어 다리 업 씬과 물 위 장면 등에 사용되었다. 철탑을 물어뜯는 장면 등에는 손으로 조작하는 기뇰 모형이 사용되었다.
나카지마는 고지라 수트 안에서 좁은 시야로 미니어처 풍경을 보며 진짜 괴수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촬영 중에는 수트 안의 전력 케이블 누전으로 실신하는 사고도 있었다.
3. 1. 4. 초대 재현 수트
2018년 11월 3일 도쿄 히비야에서 열린 '고지라 페스티벌 2018'에 초대 고지라를 재현한 수트가 등장했다.[1] 이 수트는 2019년 1월 11일에 개장한 '쓰부라야 에이지 뮤지엄'에 전시하기 위해 새로 제작되었다.[1] 또한, 이 수트는 뮤지엄 특별 영상인 '꿈의 도전 고지라 스키가와에 나타나다' 촬영에도 사용되었다.[1] 제작은 업아트가 맡았으며, 수트의 원형은 사카이 유지가 원형을 담당했던 초대 고지라 개라지 키트를 3D 스캔하여 수트 크기로 확대 출력한 것을 기반으로 하고, 머리는 사카이 유지가 직접 마무리했다.[1]3. 1. 5. 이후 작품에서의 취급
ゴジラ×メガギラス G消滅作戦|고지라 X 메가기라스 G 소멸작전일본어에서는 초대 고지라가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묘사되었다.ゴジラ×メカゴジラ|고지라 X 메카고지라일본어에서는 초대 고지라의 최후 묘사가 변경되어 완전히 용해되지 않고 뼈가 남은 것으로 바뀌었고, 장소도 도쿄 만에서 지바현 다테야마시 앞바다로 변경되었다. 또한 초대 고지라의 상반신 수트가 새롭게 만들어져 새로 찍은 사망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이때의 슈트 액터는 키타가와 츠토무였다. 일부 장면에서는 도쿄 마루이에서 발매한 'RC괴수 시리즈'가 사용되었다.
4. 등장 인물
배역 |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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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히데토 | 다카라다 아키라 |
야마네 에미코 | 고우치 모모코 |
세리자와 다이스케 박사 | 히라타 아키히코 |
야마네 쿄헤이 박사 | 시무라 타카시 |
타나베 박사 | 무라카미 후유키 |
하기와라 | 사카이 사치오 |
야마다 마사지 | 야마모토 렌 |
야마다 신키치 | 스즈키 토요아키 |
난카이 해운 회사 사장 | 오가와 토라노스케 |
국회 위원장 | 하야시 히로시 |
오야마(국회 위원) | 온다 세이지로 |
오자와(국회 위원) | 스가이 킨 |
국회 위원 | 히로세 쇼이치 |
노어부 | 고도 코쿠텐 |
에이코 마루 무선 통신 담당관 | 후지키 유 |
기자 및 파티 참석자 | 사하라 켄지 |
변전소 근무자 | 혼다 이시로 |
고지라, 신문 기자, 변전소 기술자 | 나카지마 하루오 |
고지라, 신문 편집부 직원 | 테즈카 가츠미 |
별도로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Japan's Favorite Mon-Star''에서 출연진을 발췌했다.
- '''야마네 에미코'''는 야마네 쿄헤이 박사의 외동딸이며 오가타 히데토의 연인이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124] 오도 섬 조사단에 참가하여 고지라와 조우한다. 세리자와 다이스케 박사와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으나, 주변에서는 그와 약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야마다 신키치'''는 오오토 섬 어부인 마사지의 동생으로, 고지라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오가타 히데토에게 맡겨진다.[122]
4. 1. 오가타 히데토
다카라다 아키라가 연기한 오가타 히데토는 남해기선 자회사인 남해 샐비지 KK의 젊은 소장이다. '에이코마루'와 '빙고마루' 침몰 사건으로 남해기선 사장과 함께 해상보안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오오토 섬 조사단에 잠수 작업 전문가로 참여한다. 오오토 섬 조사 중 팔번산 너머로 나타난 고지라와 조우한다.[119]오가타는 야마네 박사의 외동딸 에미코와 연인 사이지만, 야마네 박사를 비롯한 주위에는 아직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고지라를 죽일 것인지 보호할 것인지를 두고 야마네 박사와 대립한다. 세리자와 다이스케 박사와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다.
4. 2. 야마네 에미코
야마네 에미코는 야마네 박사의 외동딸로, 오가타의 연인이다. 어머니가 없는 가정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124] 야마네 박사의 조수로 오도섬 조사단에 참가했으며, 팔번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고지라와 조우한다. 세리자와 박사와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처럼 따르고 있었지만, 항간에선 그와 약혼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또한, 오가타와의 관계에 대해선 아직 주위에 말하지 않은 상태다. 하기와라 기자의 부탁으로 세리자와 박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세리자와 박사의 비밀 실험을 보게 되고 그 비밀을 세리자와 박사와 공유하게 된다.[124]세리자와 박사의 비밀 실험은 수중의 산소를 파괴하여 모든 생물을 질식사시켜 액상화하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였다. 에미코는 이 실험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에미코는 고지라로 인해 파괴된 도쿄의 참혹한 상황에 괴로워하다가 오가타에게 세리자와 박사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4. 3. 세리자와 다이스케
芹沢 大助|세리자와 다이스케일본어는 약물 화학자[122]이자 전 베이징 대학 교수[123]로, 야마네 쿄헤이 박사의 제자이다. 전쟁 중 오른쪽 눈을 잃어 얼굴 오른쪽에 안대를 하고 있다.[122] 야마네 에미코와 결혼하여 야마네 박사의 양자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세리자와 박사 또한 에미코에게 남몰래 마음을 품고 있다.세리자와 박사는 자택 지하 실험실에서 산소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액체 속의 산소를 파괴하는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를 발견한다.[122]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원자폭탄처럼 악용될 것을 우려하여 일절 발표하지 않았지만, 에미코에게만 이 비밀을 털어놓는다.[122]
4. 4. 야마네 쿄헤이
山根 恭平|야마네 쿄헤이일본어는 고생물학자로 에미코의 아버지이다.[124] 시나가와 근교 자택에서 에미코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오오토 섬에서 일어난 이변을 보고받고, 즉시 국회에서 조사단 편성의 필요성을 설파하여 자신이 조사단의 단장으로 오오토 섬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지라와 조우한다.[124]귀경 후 수소 폭탄에도 살아남은 고지라의 말살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그 생명력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펼친다. 그 때문에 고지라의 말살을 주장하는 오가타와 대립하게 된다.[124]
4. 5. 야마다 신키치
오가타 히데토가 맡게 된 야마다 신키치는 오가타와 함께 야마네 쿄헤이 박사의 집을 자주 찾아온다.[122] 그는 오오토 섬의 어부 마사지의 동생으로, 고지라가 오오토 섬을 습격했을 때 가족을 잃었다.[122]5. 등장 병기
철조망 공사가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지라가 시바우라 앞바다에 나타난다. 방위대는 철조망 배후에서 곡사포와 중기관총, 경(輕)전차를 배치하고 고지라를 기다린다. 이윽고 고지라는 시바우라 해안에 상륙해 5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접촉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고지라가 입에서 내뿜은 방사능을 띈 백열광으로 송전탑은 금세 달아오른 물엿처럼 녹아내린다. 방어선을 돌파한 고지라는 제1게이힌 국도로 북상하여 타마치에서 제49전차대를 전멸시킨 다음 긴자에 침입한다.
일본 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은 각 부처에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한 후 전면적인 협력을 얻었다. 자위대가 영화 협력에 참여한 것은 본 작품이 처음이다. 도바 로케이션에서는 해상보안청의 '고우즈', '코타카', '아이치마루' 순시선이 촬영에 협력했다.[95] 헬리콥터도 실제 순시선에 탑재된 것이었다.[95] 승무원은 배우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실제 해상보안관이 엑스트라로 출연했으며, 마지막 장면의 경례 구령도 고우즈의 차석 통신사가 맡았다.[95]
고카쇼만(五ヶ所湾) 로케이션에서는 해중 촬영을 위해 잠수함 인양 회사가 협력했지만, 회사 직원이 송기 펌프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수중 촬영 중이던 촬영 감독 아이자와 유키오(逢沢譲)가 질식할 뻔한 사고가 발생했다.[62]
5. 1. 가공
- 옥시전 디스트로이어
- M24 채피
- 2.5t 트럭 (이스즈형·GMC형)
- 3/4t 트럭 (닷지 WC54형)
- 1/4t 트럭 (미쓰비시형·윌리스 MB형)
- 13t 견인차 M5
- 트럭 크레인
- 모터그레이더 (일본개발기형)
- 쿠스형 호위함
- F-86 D/F 전투기
- 155mm 유탄포 M1
- M1919A4 중기관총
- M1917 중기관총
- 7.62mm 소총 M1
- 치후리형 순시선 '시키네', '코우즈'
- S-55 헬리콥터
- 순찰차 (도요타 BFR형)
- 소방펌프차 (닛산 180형)
에미코는 오가타에게 세리자와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산소 파괴자(Oxygen Destroyer)"라는 무기로, 산소 원자를 분해하여 유기체를 질식시켜 용해시키는 무기였다. 에미코와 오가타는 세리자와에게 산소 파괴자를 사용하도록 설득하지만, 세리자와는 처음에는 거부하며 장치를 사용하면 세계 강대국들이 그에게 더 많은 산소 파괴자를 초강력 무기로 만들도록 강요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가의 비극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본 후, 세리자와는 마침내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메모를 태운다.
5. 2. 실제
어느 날 밤, 도쿄만을 유람 중인 납량선 '타지바나마루'의 갑판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던 중, 해수면에서 나타난 고지라를 목격하고 혼란에 빠진다. 특설 재해 대책 본부는 야마네 박사를 소환하여 고지라를 죽일 방법을 묻지만, 야마네 박사는 고생물학자로서 수소폭탄 세례를 받고도 살아있는 고지라를 없애는 것보다 생명력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한편, 하기와라 기자는 에미코에게 세리자와 박사와의 면담 중개를 의뢰한다. 세리자와 박사는 과거 에미코와 약혼했지만, 전쟁 중 오른쪽 눈을 잃고 인간 불신에 빠져 에미코를 멀리하고 있었다. 세리자와 박사는 에미코에게 비밀로 해달라며 '어떤 끔찍한 실험'을 보여주고, 에미코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른다.
그날 밤, 고지라가 시나가와 앞바다에 나타나 방위대의 중기관총 요격에도 불구하고 시나가와 부두에 상륙한다. 고지라는 시나가와역 선로 쪽으로 침입하여 국철 EF58형 전기기관차와 객차를 유린하고, 시나가와 운전소와 게이큐 본선 야츠야마하시 과선교를 파괴한 뒤 도쿄만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외국 조사단들이 잇달아 방문한다. 대책 본부는 도쿄만에 숨어든 고지라로부터 도쿄를 방어하기 위해 도쿄만 해안선 일대에 유자철선을 설치하고 5만 볼트의 고압 전류로 고지라를 감전사시키려는 작전을 계획한다.
일본 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은 시나리오 검토 후 전면적으로 협력했다. 자위대가 영화 협력에 참여한 것은 본 작품이 처음이다.
도바 로케이션에서는 해상보안청의 '고우즈', '코타카', '아이치마루' 순시선이 촬영에 협력했다.[95] 헬리콥터도 실제 순시선에 탑재된 것이었다.[95] 승무원은 배우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실제 해상보안관이 엑스트라로 출연했으며, 마지막 장면의 경례 구령도 고우즈의 차석 통신사가 맡았다.[95]
고카쇼만(五ヶ所湾) 로케이션에서는 해중 촬영을 위해 잠수함 인양 회사가 협력했지만, 회사 직원이 송기 펌프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수중 촬영 중이던 촬영 감독 아이자와 유키오(逢沢譲)가 질식할 뻔한 사고가 발생했다.[62] 또한, 한여름 바다 촬영에서 순시선 갑판 위에서 상반신을 벗고 촬영에 임했던 혼다가 심하게 햇볕에 탐하여 등에 물집이 생겨, 몇 년 후까지 흉터가 남았다.[62]
작품에 등장하는 "대도섬(大戸島)" 장면은 미에현(三重県) 도바시(鳥羽市) 이시가미정에서 촬영되었다.[84][45][91] 이시가미정은 주민 대부분이 어부나 우미(海女) 일에 종사하는 작은 어촌이다.[85][44] 고지라의 출현, 프리깃 함대의 항해, 산소 파괴기(オキシジェン・デストロイヤー) 사용을 위한 잠수 등의 장면 촬영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본 작품에서는 "섬"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이시가미정은 섬이 아니다. 촬영 당시 이시가미정 주변은 육상 교통망이 정비되지 않아, 도바 시가지에서 배로 2시간이나 걸려 촬영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육지의 孤島"였다.[84] 1954년 8월 『고지라』 로케이션에 엑스트라로 참가했던 이시가미정의 원로는 "당시에는 이시가미정으로 통하는 도로가 없어, 이 근처는 도바항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육지의 孤島'였다."라고 말하고 있다.[85]
이시가미정에서의 로케이션에서는 "고지라가 나타났다!"라고 반종이 울리고 대도섬 주민들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약 300명의 현지 주민이 엑스트라로 기용되어 평소 어부나 해녀의 옷차림 그대로 촬영에 참가했다.[84][85][83][44]
한여름에 진행된 이시가미정에서의 로케이션은 고되었다.[83][44] 마을에는 평지가 거의 없고, 해안에서 갑자기 산의 사면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 특유의 기복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로케이션 팀은 한여름의 폭염 아래 무거운 촬영 장비와 짐을 가지고 경사가 많은 비포장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 때문에 피로로 일사병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했다.[44]
대도섬 신사에서의 가구라 장면은 도바의 카타 신사에서의 가구라를 그대로 촬영했다.[84][45] 텐구의 가면과 춤의 봉납 등도 모두 현지의 것이고, 이후쿠베가 작곡한 가구라만이 허구의 것이다.[84]
5. 2. 1. 방위대
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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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은 시나리오 검토 후 전면적으로 협력했다. 자위대가 영화 협력에 참여한 것은 본 작품이 처음이다. 특차대 출동 장면은 우쓰노미야 주둔지에서 촬영되었다. 함상 대원 모습과 폭뢰 폭발 장면은 1944년 8월 10일 공개된 「일본 뉴스 제219호」의 「구잠 훈련」 장면 영상을 활용했다.[88]
도바 로케이션에서는 해상보안청의 「こうず|고우즈일본어」, 「こたか|코타카일본어」, 「愛知丸|아이치마루일본어」 순시선이 촬영에 협력했다. 헬리콥터도 실제 순시선에 탑재된 것이다. 승무원은 배우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실제 해상보안관이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마지막 장면의 경례 구령도 고우즈의 차석 통신사가 맡았다. 도바 촬영 후 해상보안관과 배우들은 소프트볼 친선 경기를 했다. 조감독 소 켄지에 따르면, 니가타 배치 함선도 동원되어 니가타 측 경비가 허술해져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고카쇼만(五ヶ所湾) 로케이션에서는 해중 촬영을 위해 잠수함 인양 회사가 협력했지만, 직원 실수로 수중 촬영 중이던 촬영 감독 逢沢譲|아이자와 유키오일본어가 질식할 뻔했다. 또한, 한여름 바다 촬영에서 혼다는 순시선 갑판에서 상반신을 벗고 촬영하다 심하게 햇볕에 탐하여 등에 물집이 생겨 몇 년간 흉터가 남았다.
시나리오에서는 조사단이 오가타 선장의 「かもめ丸|카모메마루일본어」를 타고 오토도시마(大戸島)로 가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촬영 시 조사단은 해상보안청 순시선 「しきね|시키네일본어」를 타는 것으로 급히 변경되었다.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환초에서 미군 수소폭탄 실험 「브라보 실험」으로 죽음의 재를 뒤집어쓴 다이고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을 도쿄로 예항한 것도 해상보안청 순시선 「しきね|시키네일본어」였다.[89] 조사단 선상 장면은 「こうず|고우즈일본어」에서 촬영했다.
5. 2. 2. 해상 보안청
도바 로케이션에서는 해상보안청의 '고우즈', '코타카', '아이치마루' 순시선이 촬영에 협력했다.[95] 헬리콥터도 실제 순시선에 탑재된 것이었다.[95] 승무원은 배우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실제 해상보안관이 엑스트라로 출연했으며, 마지막 장면의 경례 구령도 고우즈의 차석 통신사가 맡았다.[95] 도바 촬영 후에는 해상보안관과 배우들이 소프트볼 친선 경기를 하기도 했다.[95] 조감독 소 켄지에 따르면, 니가타에 배치된 배도 동원했기 때문에 니가타 측 경비가 허술해져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고카쇼만(五ヶ所湾) 로케이션에서는 해중 촬영을 위해 잠수함 인양 회사가 협력했지만, 회사 직원이 송기 펌프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수중 촬영 중이던 촬영 감독 아이자와 유키오(逢沢譲)가 질식할 뻔한 사고가 발생했다.[62] 또한, 한여름 바다 촬영에서 순시선 갑판 위에서 상반신을 벗고 촬영에 임했던 혼다가 심하게 햇볕에 탐하여 등에 물집이 생겨, 몇 년 후까지 흉터가 남았다.[62]
시나리오에서는 조사단이 오가타가 선장을 맡은 '카모메마루'를 타고 오토도시마(大戸島)로 향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촬영 시 조사단은 해상보안청 순시선 '시키네'를 타고 오토도시마로 향하는 것으로 급히 변경되었다.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이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 '브라보 실험'을 만나 죽음의 재를 뒤집어쓴 다이고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을 도쿄로 예인한 것도 해상보안청 순시선 '시키네'였다.[89] 조사단 선상 장면은 '고우즈'에서 촬영했다.[95]
5. 2. 3. 경찰·소방
본 작품에서는 "섬"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이시가미정은 섬이 아니다. 그러나 촬영 당시 이시가미정 주변은 간선도로를 비롯한 육상 교통망이 아직 정비되지 않아, 도바 시가지에서 배로 2시간이나 걸려 촬영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육지의 孤島"였다.[84] 1954년 8월 『고지라』 로케이션에 엑스트라로 참가했던 이시가미정의 원로는 "당시에는 이시가미정으로 통하는 도로가 없어, 이 근처는 도바항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육지의 孤島'였다. 『고지라』 로케이션 팀 약 60명도 배로 이시가미정에 왔다"라고 말하고 있다.[85] 또한 스태프가 숙박했던 여관 "나가토칸"의 경영자는 전봇대 등이 없어 촬영에 편리했을 것이라고 회상하고 있다.[45]이시가미정에서의 로케이션에서는 "고지라가 나타났다!"라고 반종이 울리고 대도섬 주민들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약 300명의 현지 주민(당시 마을 인구의 약 4분의 1[85])이 일당 600엔으로 엑스트라로 기용되어 평소 어부나 해녀의 옷차림 그대로 촬영에 참가했다.[84][85][83][44]
한여름에 진행된 이시가미정에서의 로케이션은 고되었다.[83][44] 마을에는 평지가 거의 없고, 해안에서 갑자기 산의 사면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 특유의 기복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로케이션 팀은 한여름의 폭염 아래 무거운 촬영 장비와 짐을 가지고 경사가 많은 비포장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 때문에 피로로 일사병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했다.[44] 엑스트라로 촬영에 참가했던 현지 주민들은 로케이션 팀의 짐을 옮기거나 촬영 장비를 운반하는 등 도와주었고, 배우와 스태프는 주민들에게 깊이 감사했다.[44] 감독 혼다 이사부로는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고지라가 습격하여 파괴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라고 한탄했다.[44]
야마네 박사 역을 연기한 시무라 쿄는 "이시가미 마을에는 여관 등의 숙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도바에서 1시간 반 정도 해상보안청 배에 흔들리며 이시가미로 통하고 있는데, 배멀미와 일사병으로 매일 수명의 여배우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이시가미 항에 배가 도착하면, 거기서 촬영 장소의 정상까지 가파른 언덕길을 1시간 정도 올라가야 합니다.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을 때에는 모두 지쳐서 아주 촬영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런 오지라면 고지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묘하게 납득했습니다."라고 말했다.[88] 섬 주민 역의 테라자와 히로코도 배멀미로 2, 3일 앓아누웠다.[92]
산길을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섬 주민 역의 쿠사마 쇼후가 발을 베이는 부상을 입었다.[78] 로케이션에 참가하지 않았던 카토 시게오에 따르면, 로케이션에서 돌아온 공연자 츠츠미 야스히사가 "카마이타치"를 만났다고 떠들고 다녔고, 로케이션에서의 화제는 그 건으로 한창이었다고 한다.[78]
이시가미 로케이션에서는 고지라가 대도섬에 상륙하여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을 목격한 섬 주민과 조사단 일행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장면의 촬영이 주를 이루었다.[44] 따라서 갑자기 거대한 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한 후 연기해야 했다.[44] 스태프가 엑스트라로 참가한 주민들에게 고지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저기 산의 능선 너머에서 고지라가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라고 해도, 주민들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웃을 뿐 아무도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84][44][78][89] 배우와 엑스트라가 한바탕 산길을 달려 촬영을 끝냈다.[44] 1년에 1~2회 마을 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리는 순회 영화회에서만 영화를 접했던 주민들은 "그 고지라라는 것은 여기에 없는데, 어떻게 촬영할 수 있는가?"라고 조감독 카지타 코지에게 질문했고, 그는 답변에 곤란을 겪었다.[44]
대도섬 신사에서의 가구라 장면은 도바의 카타 신사에서의 가구라를 그대로 촬영했다.[84][45] 텐구의 가면과 춤의 봉납 등도 모두 현지의 것이고, 이후쿠베가 작곡한 가구라만이 허구의 것이다.[84] 작품에서 고지라는 대도섬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전설의 거대한 바다 괴물로 그려져 있지만, 이시가미정을 포함한 시마 지방에는 "바다에는 사람을 유혹하여 해저로 끌어들여 인명을 빼앗는 토모카즈키[93], 사람의 엉덩이에서 생간을 빼내는 시리코보시[85] 등의 마물이 잠복하고 있다"라는 옛날부터의 전승이 있다.[85][93] 이시가미정의 해녀들은 2019년 현재도 이러한 바다 마물을 물리치기 위한 부적으로 도만세만이 들어간 이소기와 수건, 도구를 몸에 지니거나 휴대하고 바다에 들어가고 있다.[85][93] 이시가미정에서는 주민들의 부적 신앙을 보여주는 "소민장래 자손가의 축문"도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다.[85]
이시가미정에서의 촬영에는 합성 장면이 많기 때문에, 츠부라야 에이지도 참석했다.[84] 2014년 8월, 이시가미정에서 고지라와의 연결을 나타내는 것은 도바 이소베 어업협동조합 이시가미 지소[86] 사무소 앞에 놓여 있는 고지라의 얼굴 내밀기 패널뿐이다.[85] 고지라가 거대한 발자국을 남겼다는 오오기노하마도 로케이션 당시의 모습과 거의 변하지 않고 해녀들의 일터가 되고 있다.[85] 섬 주민들이 고지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에 사용된 일대는 같은 해 12월 시점에서 "고지라 언덕"이라는 통칭으로 친숙해져 관광 명소로도 소개되고 있다.[87]
소방차가 전도하는 장면은 츠부라야가 직접 コマ의 속도와 미니어처의 움직임을 지시하여 촬영했다.[94]
6. 제작 과정
도호는 이 전대미문의 기획을 'G작품'(G는 Giant의 이니셜)으로 명명하고 극비리에 진행했다. 대략적인 스토리와 괴수 설정이 결정된 후, 다나카 도모유키는 괴기 환상 작가 가야마 시게루에게 원작 집필을 의뢰하여 '시나리오풍의 원작'을 완성했다. 이 시점에서 쓰부라야 에이지가 기획에 참여했다.
쓰부라야 에이지는 이전에 '바다에서 나타난 괴물 같은 고래가 도쿄를 강타한다'거나 '인도양에서 거대 문어가 일본 포경선을 덮친다'는 특촬 영화 구상을 냈던 적이 있었고, G작품의 괴수를 '거대 문어'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나카 도모유키는 '당시 풍조에 따라 매치하는 게 좋다'며 '태고의 공룡'을 주장하여, 결국 고지라는 태고의 공룡으로 결정되었다.
다나카 도모유키는 혼다 이시로를 감독으로, 무라타 타케오를 각본가로 발탁했다. 당시 가제였던 《해저 2만리(마일)에서 온 대괴수》는 너무 길다는 의견에 따라, 사토 이치로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고릴라'와 '고래'를 합친 '''고지라'''(ゴジラ)로 명명되었다.
'G작품 준비고'가 완성된 후, 와타나베 미술감독이 이끄는 학생들이 228장면, 306컷에 달하는 그림 콘티를 제작했다. 이 콘티를 바탕으로 제작진은 장면별 검토를 거듭했고, 고지라의 '백열광'이나 '빛나는 등지느러미'와 같은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고지라 디자인은 만화가 아베 와스케에게 의뢰되었으나, 버섯 구름 이미지가 강해 참고에 그쳤고, 실제 디자인은 와타나베 아키라가 진행했다. 도시미츠 테이조가 제작한 점토 원형은 6월 말에 완성되었다.
쓰부라야 에이지는 당초 스톱 모션 기법을 고려했으나, 제작 기간 문제로 슈트 액션 기법을 채택했다. 나카지마 하루오와 데즈카 가쓰미가 슈트 액터로 선정되었고, 쓰부라야 에이지는 나카지마 하루오에게 "스톱 모션으로 하면 7년이 걸리는데, 네가 맡아주면 3개월이면 된다"고 설득했다.
F-86F 세이버 전투기, M4 중전차와 M24 경전차 등은 2척(尺) 크기의 미니어처로 제작되었다. 특히 전차는 쥬서믹서 모터를 내장하여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제작되었고, 피아노선으로 조작했다. 155mm 榴彈砲(류탄포) 미니어처는 1990년대까지 도호의 특수미술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6. 1. 기획
1953년, 인도네시아와의 합작 영화 제작이 무산되자, 제작자 다나카 도모유키는 당시 사회 문제였던 비키니 환초 핵실험과 제5후쿠류마루 피폭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해저 2만리에서 온 대괴수'라는 기획을 세운다.[84] 이 기획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도호에 관계된 인물로, 쓰부라야 에이지를 초빙한 모리 이와오의 지지를 받아 'G작품'으로 명명되어 극비리에 진행된다.[81]SF 작가 가야마 시게루가 원작을 집필하고, 혼다 이시로가 감독으로 발탁된다. 다나카 도모유키는 '고릴라'와 '고래'를 합쳐 '고지라'라는 제목을 붙인다.
6. 2. 각본
카야마 시게루의 원작을 바탕으로, 무라타 타케오와 혼다 이시로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했다.[83] 원작에서는 에미코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가 주요 내용이었으나, 각본에서는 고지라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로 변경되었다. 또한, 원작에서는 고지라가 여러 번 등장하지만, 각본에서는 등장 횟수를 줄여 공포감을 높였다. 신키치의 역할도 원작보다 축소되었다.[84]각본 집필은 무라타가 원작을 바탕으로 초고를 작성하고, 혼다와 무라타가 번갈아 가며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나카 토모유키와 츠부라야 에이지는 각본 작업에 매일 참여하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무라타는 특수촬영의 한계를 언급했지만, 츠부라야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써라. 어떻게든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격려했다.[92]
무라타는 마지막 장면에서 야마네 박사의 대사를 통해 원자폭탄 반대의 염원을 담았다.[93] 그는 수소폭탄 실험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했으나,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속편에서 고지라를 재등장시켜야 했다.[94]
각본 검토 단계에서 고지라가 내뿜는 '백열광'이나 '빛나는 등지느러미'와 같은 아이디어가 추가되었다.[95] 이러한 아이디어는 영화의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6. 3. 디자인
고지라의 디자인은 티라노사우루스, 이구아노돈, 스테고사우루스 등 공룡의 요소를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조형은 토시미츠 테이조, 야기 칸주, 야기 야스에이, 카이마이 에이조가 담당했다.[99]스톱 모션 대신 슈트 액션 기법이 채택되었으며, 2개의 슈트가 제작되었다. 처음 만들어진 1호 슈트는 너무 무거워 경량화된 2호 슈트가 제작되었다. 1호 슈트는 상하반신으로 분할되어 활용되거나 이벤트에 사용되었다.[99] 철탑을 물어뜯는 장면 등에는 손인형 모형이 사용되었다. 고지라의 왼팔은 '1호', '2호' 모두 몸통과 일체화된 형태였다.
고지라의 체색은 명확하지 않지만, 카이마이 에이조는 회색, 아리카와 사다마사는 검붉은색, 스즈키 요시오는 칙칙한 갈색 계열이라고 증언하여 스태프 간 증언이 엇갈린다.[99]
고무 표피 주조에는 당시 라텍스가 없어 생고무를 가열 건조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야기 형제는 하리코(張り子) 기법을 활용, 고무 반죽 부족 등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1호 고지라를 제작했다. 1호 고지라는 너무 무거워 성인 남성 3~4명이 필요했고, 촬영 중 쓰러지면 자력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99]
카이마이에 따르면, 당시에는 발포 우레탄이 없어 솜 포대를 사용해 무게가 늘었다. 출입구는 후크를 사용했고, 발밑에는 게타(下駄)를 넣었다. 눈알과 입은 오토바이의 브레이크 와이어와 고무를 이용하여 외부에서 조작했다. 엄니는 고무, 등지느러미는 철심에 종이를 펴 고무칠했다.[99]
초대 고지라의 수트 제작 전 참고 모형은 여러 변화를 거쳤다. 처음에는 뱀 같은 비늘 모양이었으나, 양서류, 악어를 거쳐 현재 모습에 가까워졌다. 포유류 이미지를 합성하여 파충류나 양서류보다 포유류에 가까운 외형이 되었다. 이 모형은 완구로 출시되지 않았다.[99]
메인 슈트 액터는 나카지마 하루오, 보조 역할은 데즈카 카츠미였다. 테스트에서 데즈카는 3미터, 나카지마는 10미터를 움직여 나카지마가 메인으로 발탁되었다.[99]
나카지마는 츠부라야의 주문에 따라 《킹콩》(1933)을 참고하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관찰했다. 츠부라야는 '발바닥을 보여주지 않고 스모 선수처럼 걸으라'고 지시했다. 나카지마는 좁은 시야로 미니어처를 보며 괴수가 된 기분을 느꼈다.[99]
촬영 초기에는 데즈카와 나카지마의 비중이 비슷했지만, 나카지마의 비중이 점차 커졌다. 긴자(銀座)의 와코(和光) 시계탑 파괴 장면은 여러 번의 NG 끝에 성공했다. 수영장 촬영 중에는 나카지마가 감전되는 사고도 있었다.[99]
영화 개봉 당시에는 특촬 기술이 비밀이었으나, 속편부터 적극적으로 공개되었다. 2018년에는 초대 고지라를 재현한 슈트가 등장, 2019년 츠부라야 에이지 뮤지엄에 전시되었다.[99]
6. 4. 특수 효과
쓰부라야 에이지가 특수 효과 감독을 맡았다. 조형은 도시미츠 테이조, 야기 칸주, 야기 야스에이, 가이마이 에이조가 담당했다.[53]고지라 슈트는 2개가 제작되었다. 처음에 만들어진 1호는 너무 무거워 액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량화된 2호 슈트가 제작되었다. 2호 슈트도 100kg에 가까운 무게였지만, 전신 컷 촬영에 사용되었다.[53] 1호 슈트는 상하로 분할되어 하반부는 긴자나 시나가와역을 걷는 장면, 상반부는 물 위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이 고지라 슈트는 개봉 후 다카라다 아키라, 고우치 모모코를 초청한 소년 잡지 주최 이벤트에서 극 중처럼 스미다강에서 도쿄만으로 가라앉았다.[53]
철탑을 물어뜯는 장면 등 세밀한 표정이 필요한 촬영에는 허리부터 머리까지 있는 손인형(기뇰) 모형이 사용되었다. 조형은 도시미츠 테이조가 담당했으며, 검토용 2척 점토 모형을 석고로 본뜨고 고무로 뽑은 것이 사용되었다. 기뇰 조작은 원래 거리의 기뇰 조정사를 불렀지만, 인형극과 괴수 움직임의 차이로 인해 나카시루 후미오가 담당하게 되었다. 조작 시에는 머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엎드려 누워서 위를 향해 움직였다. 마지막 장면의 '고지라의 뼈'도 도시미츠 테이조가 담당했으며, 철심에 솜을 꽂아 고무를 스며들게 하는 기법으로 만들어졌다.[53]
본 작품은 흑백 영화이기 때문에 고지라의 체색은 명확하지 않지만, 가이마이 에이조는 "흰 도료에 유성 도료를 뿌린 회색이고 입안은 붉게 칠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리카와 사다마사는 "체색은 검붉은 색이었고 회색은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스즈키 요시오는 "회색이나 갈색 계열 중 칙칙한 색이었다"고 하여 스태프 간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53]
고무 표피 주조에는 당시 라텍스가 없어, 생고무를 물에 불려 바셀린을 섞어 반죽하고 석고 틀에 발라 적외선 램프로 만든 전용 가마에서 250도로 가열 건조하는 공정이 필요했다. 당시 고무는 1크롬에 5천 엔으로 매우 비쌌다. 야기 칸주, 야기 야스에이 형제는 하리코(張り子) 기법으로 철골에 철망과 고지를 깔고 고무 표피를 붙인 후 굳게 반죽한 고무를 담아 주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무 반죽이 부족해 표피가 찢어지는 문제가 있었고,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1호 고지라는 너무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었다.[53]
가이마이 에이조에 따르면 당시에는 발포 우레탄(스펀지)이 없었고, 표피 안쪽에 솜을 포대에 채워 꿰매 붙여 무게가 더 늘었다고 한다. 등 쪽 출입구는 지퍼가 아닌 후크를 사용했고, 촬영 시에는 철사나 데구스(テグス)로 묶어 닫았다. 발밑에는 게타(下駄)를 넣었다. '눈알'은 목공부에서 달걀형 목제 공을 만들어 주었고, 눈알과 입은 오토바이 브레이크 와이어와 고무를 이용해 외부에서 조작했다. '엄니'는 고무로 만들어졌고, '등지느러미'는 철심에 종이를 펴 고무칠을 하였다. 고지라의 왼팔은 1호, 2호 모두 점토 원형 모양에 맞게 팔꿈치 부분에서 몸통과 일체화된 형태로 되어 있다.[53]
쓰부라야 에이지는 스톱 모션 기법을 검토했으나, 개봉일(11월 3일)을 고려하여 연기자가 인형탈 안에 들어가는 '슈트 액션' 기법으로 결정했다. 슈트 액터는 나카지마 하루오와 데즈카 가쓰미로 정해졌고, 쓰부라야 에이지는 나카지마 하루오에게 "스톱 모션으로 하면 7년이 걸리는데, 네가 맡아주면 3개월이면 된다"고 설득했다.[53]
6. 5. 촬영
영화의 대부분은 도호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미에현 시마반도에서 오오토 섬 장면이 촬영되었다. 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협력을 받아 군사 장면이 촬영되었다.6. 6. 음악 및 음향 효과

본 작품에서는 작곡가 이후쿠베 아키라의 극중 음악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53] 특히 메인 타이틀 테마는 이후의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에도 계승되었다.
이후쿠베 아키라는 고지라의 울음소리를 만들기 위해 콘트라베이스의 현을 송진을 묻힌 가죽 장갑으로 튕긴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사용했다.[66] 이 "고지라의 소리"는 이후 작품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 고지라의 발소리는 전시 영화에서 사용된 폭발음의 앞부분을 잘라내고, 촬영소 계단에서 스피커로 재생하여 에코를 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68]
이후쿠베 아키라는 본 작품에 대해 "파충류가 활약한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큰 것이 나올 때는 큰 소리로"라는 정공법의 작곡을 했다고 한다.[69] 고지라의 주음은 콘트라파곳이나 콘트라바스 튜바와 같은 "큰 소리"가 나는 악기를 사용했다.[75]
7. 개봉 및 반응
이 작품은 1954년 10월 27일 나고야에서 처음 개봉되었고, 11월 3일 전국 개봉되어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했다.[74] 도호(東宝)의 당해 첫날 관객 동원 수 기록을 경신했으며, 시부야 도호(渋谷東宝)에 늘어선 관객들의 줄은 도겐자카(道玄坂)까지 이어졌고, 대기 시간은 2시간에 달했다. 개봉 첫날 도쿄 도내에서만 14만~15만 명의 관객이 동원되었으며, 엄청난 매진으로 인해 타나카 유키치(田中友幸) 자신이 시부야 도호나 일극(日劇)에서 티켓을 찢는 일을 도왔을 정도였다. 1관 개봉 동원만으로 관객 동원 수는 961만 명에 달해, 국민 10명 중 거의 1명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고질라(ゴジラ)』의 성공은 당시 기울어져 가던 도호의 경영을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도호의 중역들은 이 대성공을 기뻐하며, 촬영 스태프들이 중역실에 초대되어 각 관의 흥행 기록이 잇따라 보고되는 가운데, 후지모토 마스미(藤本真澄) 등 본사 중역들이 맥주와 양주를 대접하는 이례적인 대우로 이를 격려했다. 도호에서는 개봉 극장 내에서 많은 아동들에게 설문 조사가 실시되었고, 고지라에게 동정하는 의견이 많이 제출되었다. 관객들로부터도 “왜 고질라를 죽였는가?”, “고질라가 불쌍하다”는 항의의 목소리가 나왔다. 호다 아키라(宝田明)도 “고지라에게 공감했다”, “왜 인간이 죄 없는 동물을 죽여야 하는가, 무심코 눈물이 날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말했고,[92] 각본 담당인 무라타도 “고질라가 불쌍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스태프들에게도 동정 여론이 많았다.
공개 당시 일본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낮았고, “기괴한 영화(ゲテモノ映画)”, “기이한 영화(キワモノ映画)”라고 혹평하는 경우도 많았다.. 각 신문의 논평에서도 특수 촬영 면에서는 극찬을 받았지만, “인간 드라마 부분이 불필요하다”며 혼다의 의도를 헤아린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타나카에 따르면 당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만이 “원폭의 공포가 잘 나타나 있으며, 발상도 훌륭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문명 비판의 힘을 가진 영화다”라며 드라마 부분까지 포함하여 본 작품을 극찬했다.. 저명인으로는 후에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94]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 요도가와 나가하루(淀川長治),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 등이 본 작품을 극찬했다.
작품은 해외에서도 대히트를 쳤고, 이미 특수 촬영 기술자로서 견줄 자가 없었던 쓰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의 이름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타나카와 혼다는 “먼저 유럽에서 인정받고 미국에서 대히트함으로써 일본 국내의 평가가 확정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チェルノブイリ原子力発電所事故) 후 프랑스(フランス)에서는 본 작품이 재평가되었고, 프랑스의 TV 방송국이 구로사와 영화 『꿈 (영화)(夢)』(1990년)의 촬영 현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연출 보조를 맡았던 혼다에 대한 인터뷰도 실시했다.
7. 1. 마케팅
ゴジラ일본어의 개봉에 맞춰, 도호 영업·선전부의 사이토 타다오(斉藤忠夫), 우치다 카즈야(内田和也) 등에 의해 현재의 미디어 믹스 형식과 같은 대대적인 사전 홍보가 진행되었다. 장기 홍보의 시작으로, 아직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인 개봉 4개월 전 7월 5일에 제작 발표 기자회견을 실시하고, 같은 날 각 신문 조간에 “괴물 영화계를 휩쓸 ‘원자 괴물’ 도쿄에 상륙(ゲテもの映画界をまかり通る"原子怪物"東京に上陸)”이라는 제목으로 ゴジラ일본어의 제목과 함께 제작 발표를 했다.[74] 이때 사용된 홍보 사진은 검토용 초기 점토 원형을 바탕으로 만든 콜라주였다.7월 17일부터 닛폰 방송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시작했다(하단 참조). 개봉 직전에는 잡지, 주간지, 신문, 전철 차내 광고 등 모든 홍보 매체를 사용하여 철저한 홍보를 펼쳤다. 또한, 개봉 전후에는 고지라 인형을 실은 홍보 트럭이 도쿄 시내를 순회했고, 고지라 홍보용 비닐 인형도 도호에서 준비했으며, 고지라 원 디자인을 담당한 아베 카즈스케(阿部和助)의 만화도 발행되어 극장에서 배포되었다(하단 참조).
결과적으로 ゴジラ일본어는 도호 흥행사에 남을 만한 대대적인 홍보 작품이 되었다. 구도 아키라(工藤明) 선전부 부장(당시)은 개봉 다음 해인 1954년도의 홍보 성공작으로 7인의 사무라이, 이키루, 나비부인을 언급하면서, 이 ゴジラ일본어를 이들을 뛰어넘는 “전례 없는 대히트작”으로 회고하고 있다.
한편, 특수촬영에 대해서는 비밀주의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고지라의 자세한 내용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고, 삼엽충을 고지라의 전신으로 소개하거나, 신장·체중 수치가 매체마다 달라 정보가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다.
; 科学冒険劇 怪獣ゴジラ일본어
: 1954년 7월 17일 ~ 9월 25일, 전 11회, 닛폰 방송 라디오 방송.
: 주 1회, 골든타임에 방송되었으며, 사전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각색 및 연출은 호리에 시로.
: 성우 출연은 오가타 역에 나가이 토시오, 에미코 역에 후지노 세츠코, 야마네 박사 역에 무라카미 후유키, 내레이션은 타나카 아키오.
: 음성은 마지막 회만 현존하며, 도호가 2001년에 한정 판매한 「G의 충격 고지라 프리미엄 컬렉션 세트」(Gの衝撃 ゴジラ・プレミアム・コレクションズ・セット) 부속 CD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2024년 1월 1일 닛폰 방송에서 방송된 「고지라|닛폰 방송 70주년 특별 프로그램 幻의 라디오 드라마 부활! 신춘 고지라 담화」(ゴジラ|ニッポン放送70周年特別番組 幻のラジオドラマ復活!新春ゴジラ談義)에서 재방송되었다.[114]
7. 2. 극장 개봉
본 작품은 1954년 10월 27일 나고야에서 처음 개봉되었고, 11월 3일 전국 개봉되어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했다.[74] 도호(東宝)의 당해 첫날 관객 동원 수 기록을 경신했으며, 시부야 도호(渋谷東宝)에 늘어선 관객들의 줄은 도겐자카(道玄坂)까지 이어졌고, 대기 시간은 2시간에 달했다. 개봉 첫날 도쿄 도내에서만 14만~15만 명의 관객이 동원되었으며, 엄청난 매진으로 인해 타나카 유키치(田中友幸) 자신이 시부야 도호나 일극(日劇)에서 티켓을 찢는 일을 도왔을 정도였다. 1관 개봉 동원만으로 관객 동원 수는 961만 명에 달해, 국민 10명 중 거의 1명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고질라(ゴジラ)』의 성공은 당시 기울어져 가던 도호의 경영을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일본어 버전의 축약판이 서독에서 개봉되었으며, 1955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상영되었다. 해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하여 특수 촬영 기술자로서 이미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쓰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타나카와 혼다는 “먼저 유럽에서 인정받고 미국에서 대히트함으로써 일본 국내의 평가가 확정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1982년, 2004년, 2014년, 2021년에 재개봉되었다.
7. 3. 미국판
이 작품은 미국 할리우드 자본에 매입되어, 레이먼드 버를 주연으로 테리 O. 모스 감독 지휘 아래 추가 촬영이 이루어졌다.[74] 재편집된 후 일본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메이저 배급망을 통해 1956년에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영어(''괴물왕 고지라'')라는 제목으로 미국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개봉 후 4일 만에 17000USD를 벌어들였고, 최종적으로 500000USD를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해외판에서는 미국의 신문 기자 스티브 마틴이 카이로로 가는 길에 들른 도쿄에서 고지라를 만나 그 경험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틴이 야마네 박사 등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비슷한 옷을 입은 보디 더블(body double) 배우가 뒷모습만 출연한다.[74] 추가 촬영은 신규 촬영분을 포함하여 수주 정도 만에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의 결과, 고질라가 등장하기 전에 야마네 박사가 고질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고질라가 도쿄를 진행하는 순서가 다른 등 원작 내용과 모순되는 부분이 많다.[74] 또한 고질라의 체격을 원작과 다르게 "키 약 121.92m(약 122m) 이상", "건물 30층 높이"라고 표현하는 장면도 있다.
광학 합성으로 만들어진 고질라의 빛나는 등지느러미와 입에서 내뿜는 백열광으로 고압 송전선 철탑이 녹아내리는 장면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혼다 감독에 따르면 특히 이 백열광을 본 미국의 바이어는 "훌륭한 리얼리즘이다"라며 극찬하고 곧바로 매매 계약을 제안했다고 한다.
해외판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50개국에서 상영되어 인기를 얻었고, 400억 엔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괴수 "고지라"라는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고 "어떻게 괴수를 저렇게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을까"라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했는지, "정치적 의미, 반미, 반핵 메시지"는 완전히 삭제되었다.[105]
원래는 미국에서 도에이 작품 상영을 추진하는 국제 도에이의 전무인 우자키 고로가 『7인의 사무라이』와 함께 미국에서의 판매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계약이 거의 끝난 『7인의 사무라이』와 달리 이 작품의 계약은 난항을 겪었다. 그래서 우자키의 지인이었던 전 컬럼비아 인터내셔널 극동 대표 에드먼드 골드먼을 통해 내용을 변경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20000USD에 판매되었다.[74] 가격이 너무 싸다는 이유로 도에이 본사에서 항의가 나왔지만, 도에이 사장인 고바야시 후사오는 광고비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만류했다고 한다.[74]
당시 일본 영화의 해외 계약은 모두 필름 매입 형식이었고, 필름 편집권은 판매처인 흥행사에 있었다. 혼다 감독은 "그런 계약이었기 때문에"라고 말했지만, 원래 감독의 동의를 얻지 않은 재편집은 본의가 아니라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식적인 완전판이 상영된 것은 2004년이 되어서야 가능했으며,[74] 그 주제성과 완성도의 높이가 미국에서 극찬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1957년에 일본어 자막을 넣고 화면 상하를 잘라 시네마스코프(시네스코)(도에이 스코프) 사이즈로 공개되었으며,[74] 엔드 크레딧도 해외판과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이 버전은 오랫동안 소재 불명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에 효고현 이타미시의 영화관 "이타미 그린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후에 필름이 발견되어 2014년 11월 24일 일본영화전문채널에서 첫 방송되었다.
7. 4. 평가
개봉 당시 일본에서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기괴한 영화", "기이한 영화"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특수 촬영 기술은 높이 평가받았다.[74] 각 신문의 논평에서도 특수 촬영은 극찬했지만, "인간 드라마 부분이 불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렸다.[92]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는 "원폭의 공포가 잘 나타나 있으며, 발상도 훌륭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문명 비판의 힘을 가진 영화다"라며 극찬했다.[93]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내 평가는 높아졌다. 특히 제5복룡호(第五福竜丸) 사건을 배경으로 반핵과 문명 비판을 주제로 한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94] 오즈 야스지로, 데즈카 오사무, 요도가와 나가하루, 미즈키 시게루 등도 이 작품을 극찬했다.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특수 촬영 기술자 쓰부라야 에이지의 이름이 해외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재평가되기도 했다.
특촬 영화 연구가 다케우치 히로시는 "연출, 각본, 특수촬영 어느 것을 봐도 최고의 작품이며, 이를 능가하는 괴수 영화는 일본에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고 평가했다. SF 연구가 오오토모 쇼지는 "불안과 패닉의 묘사에 뛰어나고, 본편과 특수촬영이 융합된 유일한 작품이며, 핵무기 반대라는 테마를 정면으로 다루는 등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다."라고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고지라(1954)'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핵무기에 대한 공포와 문명 비판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최고의 괴수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8. 주제 및 유산
이 영화에서 고지라(Godzilla)는 일본의 관점에서 핵전쟁을 상징하며, 그 이후로 핵무기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문화적으로 인식되어 왔다.[4] 제작자 타나카 도모유키(Tomoyuki Tanaka)는 "이 영화의 주제는 처음부터 핵폭탄의 공포였습니다. 인류가 핵폭탄을 만들었고, 이제 자연이 인류에게 복수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7] 감독 혼다 이시로(Ishirō Honda)는 고지라의 도쿄 습격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반영하여 촬영했으며, "고지라가 공룡이나 다른 동물이었다면 대포알 하나로 죽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지라가 원자폭탄과 맞먹는 존재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자폭탄의 특징을 고지라에 적용했습니다."라고 말했다.[7]
1954년 3월 1일, 영화 제작 몇 달 전, 일본 어선 ''다이고 후쿠류 마루''("럭키 드래곤 5호")가 인근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 군의 15메가톤 "캐슬 브라보" 수소폭탄 실험의 방사성 낙진을 뒤집어썼다. 이 배의 어획물은 오염되었고, 일본에서 생선 섭취의 안전에 대한 공황이 일어났으며, 선원들은 병들었고, 한 선원은 결국 방사병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1955년 8월까지 3천만 명의 서명을 받은 반핵 청원을 통해 대규모이고 지속적인 반핵 운동을 촉발했고, 결국 일본 반핵·평화 운동으로 제도화되었다. 고지라가 일본 선박을 파괴하는 영화의 오프닝 장면은 이러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며, 최근 사건이 대중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일본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학자 앤 앨리슨(Anne Allison), 토마스 슈넬바허(Thomas Schnellbächer), 스티브 라이플(Steve Ryfle)은 ''고지라''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경험한 것에 기인할 수 있는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으며, 일본 관객들은 괴물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시청자들이 고지라를 피해자로 보고, 그 생물의 배경 이야기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경험을 상기시킨다고 이론화했다. 또한 그들은 고지라를 깨운 원자폭탄 실험이 미국에 의해 수행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이 겪은 문제와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묻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이 영화가 일본 국민이 전쟁의 사건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문화적 대처 방법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5][6][7]
마더보드의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는 이 영화를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핵무기에 대한 암울하고 강력한 은유"라고 불렀으며,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이 만든 비극, 특히 핵 비극에 대처하고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냉정하고 강력한 영화입니다. 아마도 핵무기에 대한 전후 태도를 가장 큰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최고의 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4] 뉴욕 타임즈의 테렌스 레이퍼티(Terrence Rafferty)는 고지라가 "원자폭탄에 대한 명백하고 거대하며, 미묘하지 않고, 엄숙한 목적의 은유"라고 말했다.[8]
뉴욕 잡지 웹사이트의 마크 제이콥슨(Mark Jacobson)은 고지라가 "인본주의적 지껄임을 초월한다. 매우 적은 구조물만이 특정 시대의 지배적인 공포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는 잘못된 세상의 상징이며, 한 번 만들어지면 되돌릴 수 없거나 삭제할 수 없는 인간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9]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팀 마틴(Tim Martin)은 1954년 원작 영화는 "B급 영화 후속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세 배나 되는 예산만큼이나 야심 찬 영화의 냉철한 우화로, 성인 관객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도록 고안되었다."라고 말했다.[10]
개봉 이후 ''고지라''는 최고의 거대 괴수 영화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평론가 앨런 퍼킨스는 이 영화를 "단순한 고전 괴수 영화가 아니라 중요한 영화적 성과"라고 불렀다.[53] 2017년, 시각효과협회(Visual Effects Society)는 1954년 영화를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시각 효과 영화 70편 목록에 추가했다.[59]
이 영화는 총 38편의 영화,[60] 비디오 게임, 책, 만화, 장난감 및 기타 미디어로 구성된 멀티미디어 프랜차이즈를 탄생시켰다.[61] ''고지라'' 프랜차이즈는 ''기네스 세계 기록''에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영화 프랜차이즈로 인정받았다.[62] 데뷔 이후 고지라는 수많은 표절, 모방, 패러디 및 헌정을 불러일으키며 국제적인 대중문화 아이콘이 되었다.[63][64][65] 1954년 영화와 그 특수 효과 감독인 특촬의 선구자 쓰부라야 에이지는 ''특촬''의 틀을 만든 것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다. 평론가이자 학자인 히카와 류스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즈니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틀을 만들었다. 같은 방식으로 (특수 효과 스튜디오) 쓰부라야는 일본 영화 사업의 틀을 만들었다." [66]
스티븐 스필버그는 ''쥐라기 공원''(1993)에 대한 영감으로 ''고지라''를 언급했다.[68]
9. 한국의 관점
ゴジラ|고지라일본어의 탄생 배경과 일본을 공격하는 모습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피해와 고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의 반핵 메시지는 핵무기 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은 고지라를 통해 전쟁과 폭력의 비극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114]
영화 제작 당시 감독 혼다 이시로는 "수폭(수소폭탄) 아래 공포에 떨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적 변형"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파괴의 공포와 절망"을 통해 반성을 이끌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혼다 감독은 전후 원폭 피해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민중"이라는 인식을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고지라가 도쿄를 습격하는 장면은 도쿄 대공습을 재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조선의혹과 이누카이 켄 법무대신의 지휘권 발동 등으로 요시다 시게루 내각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지라가 국회의사당을 파괴하는 장면에 관객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ゴジラ|고지라일본어는 단순한 괴수 영화를 넘어, 전쟁과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관점에서는 핵무기 개발과 군사력 증강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평화와 안보를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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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카야마 시게루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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