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정보개발본부는 닌텐도의 주요 게임 개발 부서로, 1984년 정보개발본부 제4부(R&D4)로 시작하여 1989년 닌텐도 정보개발본부(EAD)로 재편되었다. EAD는 슈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동물의 숲, 피크민, 마리오 카트 등 닌텐도를 대표하는 게임 시리즈를 개발했으며, 미야모토 시게루, 테즈카 타카시, 아오누마 에이지 등 주요 개발자를 배출했다. 2015년 닌텐도 기획개발부와 합병하여 엔터테인먼트 기획 & 개발부(EPD)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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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닌텐도는 장난감 회사였으나, 대화형 엔터테인먼트와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닌텐도 내 유일한 게임 개발 부서였던 크리에이티브 부서에는 게임 & 워치 게임을 디자인한 카노 마코토와 여러 닌텐도 프랜차이즈를 창조한 미야모토 시게루 등 여러 디자이너들이 고용되었다. 1972년, 해당 부서는 연구 개발부로 개칭되었으며, 약 20명의 직원이 있었다. 이후 부서는 하나의 부서로 통합되어 닌텐도 R&D1, R&D2, R&D3의 세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2. 1. 1980년대: R&D4 시절
1984년경, 이마니시 히로시는 닌텐도 제조부의 다른 세 부서를 보완하기 위해 전용 콘솔용 비디오 게임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개발 부서인 정보개발본부 제4부 (일반적으로 닌텐도 R&D4로 축약)를 창설하도록 감독했다.[3][4][5] 이마니시는 전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던 이케다 히로시를 신설 부서의 총괄 매니저로 임명하고, 미야모토 시게루를 수석 프로듀서로 임명했는데,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디오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이 되었다.[6] 닌텐도는 또한 테즈카 다카시와 미키 켄지를 포함한 몇몇 핵심 그래픽 디자이너를 부서에 투입했다.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 위축되면서,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1부는 소프트웨어 개발 자원의 대부분을 닌텐도의 게임보이의 세계적인 성공에 힘입어 떠오르는 휴대용 비디오 게임 콘솔 시장에 집중했다. 이로 인해 정보개발본부 제4부는 닌텐도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의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가 되어 패밀리 컴퓨터(Famicom으로 축약, 북미, 유럽, 호주에서는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알려짐)를 위한 수많은 게임을 개발했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동키콩'' 아케이드 게임의 성공은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창설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케다 히로시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많은 비디오 게임 디자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모두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부족했다. 시스템즈 리서치 앤드 디벨롭먼트(SRD)라는 작은 회사의 나카고 토시히코는 컴퓨터 지원 설계 (CAD) 도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패밀리 컴퓨터 칩셋에 매우 익숙했으며, 원래 우에무라 마사유키의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2부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내부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2부와 SRD가 함께 정보개발본부 제1부의 아케이드 게임을 패밀리 컴퓨터로 이식하기 시작했을 때, 미야모토 시게루는 나카고를 정보개발본부 제2부에서 빼내어 미야모토가 자신의 첫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4부 비디오 게임인 ''엑사이팅 바이크''를 만드는 것을 돕는 기회를 잡았다. 그리하여 원래 정보개발본부 제4부는 디자인을 담당하는 미야모토, 테즈카 다카시, 미키 켄지, 마에다 미노루, 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하는 콘도 코지, 나카츠카 아키토, 타나카 히로카즈, 기술 및 프로그래밍 핵심을 담당하는 나카고 토시히코와 SRD로 구성되었다.
''엑사이팅 바이크''를 개발한 미야모토가 이끄는 같은 팀은 1985년에 스크롤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 아케이드 게임 ''쿵푸 마스터''(1984)를 NES로 이식한 ''쿵푸''를 개발했다. 미야모토의 팀은 두 사이드 스크롤러 작업에서 얻은 기술적 지식을 활용하여 ''동키콩''으로 창조한 "운동 게임" 장르를 더욱 발전시켰고, 광대한 사이드 스크롤 플랫폼 게임에 대한 미야모토의 비전을 향한 핵심적인 단계였다.[7][8]
정보개발본부 제4부가 개발한 첫 번째 게임 중 하나는 1983년 미야모토가 디자인하고 감독한 ''마리오 브라더스''였다. 그러나 부서는 경험이 부족한 팀으로 게임을 프로그래밍할 수 없었고, 요코이 군페이와 정보개발본부 제1부의 프로그래밍 지원을 받았다. 첫 번째 완전 자체 개발 게임 중 하나는 ''마리오 브라더스''의 속편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였다. 이 게임은 플랫폼 장르의 기준을 세웠으며, 비평적,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했다. 1986년, 정보개발본부 제4부는 미야모토가 다시 감독을 맡은 ''젤다의 전설''을 개발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의 경이적인 판매량은 이후 스스로 프로듀서가 된 곤노 히데키, 에구치 카츠야, 타나베 켄스케, 시미즈 타카오와 같은 젊은 게임 디자이너들의 부서 확장을 촉진했다.
2. 2. 1989년 ~ 2002년: 정보개발본부(EAD)로 재편
1989년, 슈퍼 패미컴이 일본에서 출시되기 1년 전, R&D4 부서가 분사되어 '닌텐도 정보개발본부'(일반적으로 '닌텐도 EAD'로 약칭)라는 자체 부서로 설립되었다.[9] 이 부서는 비디오 게임 개발에 주력하며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끄는 '소프트웨어 개발부'와 프로그래밍 및 도구 개발에 주력하며 사와노 타카오가 이끄는 '기술 개발부'의 두 부서로 구성되었다.[10] 기술 개발부는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SRD를 돕던 R&D2의 여러 엔지니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이 부서는 아르고노트 소프트웨어와 협력하여 SNES용 슈퍼 FX 칩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 기술은 1993년 ''스타폭스''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부는 3D 시대에 더욱 두각을 나타냈으며, SRD와 함께 닌텐도 EAD의 여러 3D 게임을 프로그래밍했다.
1990년에 출시된 F-ZERO는 이 부서에서 완전히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었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밍이 SRD Co. Ltd.에 외주를 주었다.[11]
1997년,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 EAD의 각 타이틀 개발 과정에서 약 20~30명의 직원이 투입되었다고 설명했다.[12] 그는 또한 부서 내에 SRD 프로그래밍 회사가 존재하며, 이는 이전 닌텐도 R&D2의 소프트웨어 부서로, 약 200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12]
게임큐브와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출시하면서 닌텐도는 기업 경영 구조를 변경하고자 했다. 2000년 6월,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키기 위해, EAD 및 통합 연구 개발부의 총괄 매니저인 미야모토 시게루와 다케다 겐요가 각각 이사회에 참여했다. 또한, 전 HAL 연구소 사장이자 미래의 닌텐도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도 이사회에 합류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사로 승진하면서 그는 이제 닌텐도의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을 감독하게 되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프로듀서 공석을 채우기 위해 부서 내에서 일련의 승진이 이루어졌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오랜 동료인 테즈카 타카시가 부총괄 매니저로 승진했으며, 아오누마 에이지, 콘노 히데키, 시미즈 타카오, 스기야마 타다시, 에구치 카츠야와 같은 여러 선임 이사들이 부서 내 자체 개발팀을 감독하는 프로듀서로 승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승진 후에도 일부 게임의 프로듀서를 계속 맡았다.
2002년, 닌텐도는 도쿄에 닌텐도 EAD 스튜디오를 개설하고, 시미즈 타카오를 지점장으로 임명했다. 이 스튜디오는 교토까지 이동할 의향이나 능력이 없는 일본 수도권의 신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게임큐브용 ''동키콩 정글 비트''였으며, 이는 ''동키콩가''를 위해 처음 만들어진 DK 봉고를 사용했다.
2. 3. 2003년 ~ 2015년: 구조 개편과 닌텐도 SPD와의 합병
2003년 9월 30일, 닌텐도는 조직 개편을 통해 닌텐도 R&D1과 닌텐도 R&D2의 인력을 닌텐도 EAD 산하로 재배치하여 하나의 부서로 통합하고 새로운 매니저와 프로듀서들을 영입했다.[13] 콘노 히데키, 에구치 카츠야, 아오누마 에이지, 키무라 히로유키, 스기야마 타다시가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 내 각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시미즈 타카오는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오타 케이조와 니시다 야스나리가 기술 개발 부서 내 각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2013년, 에구치 카츠야는 교토와 도쿄의 두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의 부서장으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 그룹 No. 2''의 그룹 매니저 직을 사임했고, 노가미 히사시가 그를 대신했다. 2014년 6월 18일, EAD 교토 지사는 닌텐도 중앙 사무소에서 교토의 ''닌텐도 개발 센터''로 이전했다. 이 건물에는 닌텐도 EAD, SPD, IRD 및 SDD 부서를 포함한 닌텐도의 모든 내부 연구 개발 부서에서 1100명 이상의 개발자가 근무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본부장을 맡았으며, 슈퍼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닌텐도의 주요 게임들이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원래는 미야모토 시게루나 테즈카 타카시 등이 소속된 디자이너 집단 '크리에이티브과'를 전신으로 한다.[18][19] 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현재 세계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정보개발본부는 크게 제작부, 도쿄 제작부, 정보개발관리부, 기술 제작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게임 소프트는 제작부의 5개 그룹과 도쿄 제작부의 2개 그룹에 의해 만들어졌다.[20][21]
2015년9월 16일, 닌텐도 EAD는 기획개발본부와 합병하여 기획제작본부가 설립되었다.[22][23] 이는 2015년 7월 이와타 사토루 사장의 사망 이후 닌텐도 경영진과 부서의 내부 구조 조정을 따른 것이다.[14]
3. 조직 구조
닌텐도 정보개발본부(EAD)는 1989년 슈퍼 패미컴 출시 1년 전, R&D4 부서가 분사되어 설립되었다.[9] 이 부서는 크게 제작부, 도쿄 제작부, 기술 제작부로 구성되었다.
제작부: 닌텐도의 주요 게임 시리즈를 개발하는 부서로, 5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그룹은 콘노 히데키, 에구치 카츠야, 아오누마 에이지, 키무라 히로유키, 스기야마 타다시와 같은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이끌었다.[13]
도쿄 제작부: 2002년 도쿄에 설립된 스튜디오로, 동키콩 정글 비트,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 등의 게임을 개발했다. 시미즈 타카오가 초대 지점장을 맡았으며, 이후 코이즈미 요시아키가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승진했다.
기술 제작부: 게임 개발에 필요한 기술 지원과 도구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로, 사와노 타카오가 이끌었다.[10]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아르고노트 소프트웨어와 협력하여 슈퍼 FX 칩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3년 조직 개편으로 오타 케이조와 니시다 야스나리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합류했다.[13]
1997년,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 EAD의 각 타이틀 개발에 약 20~30명의 직원이 참여하며, SRD 프로그래밍 회사는 약 200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12]
2013년, 에구치 카츠야는 교토와 도쿄의 두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 부서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에는 EAD 교토 지사가 닌텐도 개발 센터로 이전하여 1100명 이상의 개발자가 근무하게 되었다.
2015년 9월 16일, 닌텐도 EAD는 닌텐도 기획개발본부와 합병하여 EPD가 되었다.[14]
2003년 9월 30일, 닌텐도의 조직 개편으로 닌텐도 R&D1 및 R&D2의 여러 구성원이 닌텐도 EAD 산하로 재배치되면서, 콘노 히데키, 에구치 카츠야, 아오누마 에이지, 키무라 히로유키, 스기야마 타다시가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 내 각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임명되었다.[13]
3. 2. 도쿄 제작부
닌텐도 EAD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부''는 일본 수도권의 신진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2002년에 설립되었다. 일본 도쿄의 닌텐도 도쿄 오피스에 위치해 있다.[13]
2003년에는 교토의 엔터테인먼트 분석 & 개발부 소속 20명이 닌텐도 도쿄 오피스로 이동하여 개발 자원을 확장했다. 이들은 주로 슈퍼 마리오 선샤인 팀 출신이었다. 경영진은 도쿄에서 생활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개발자를 확장하고 모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았다.
시미즈 타카오(초대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와 코이즈미 요시아키(디렉터)는 세가, 코에이, 스퀘어 에닉스와 같은 여러 회사에서 온 신규 인재를 도쿄에서 고용하기 시작했다. 시미즈와 코이즈미는 공동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인 ''동키 콩 정글 비트''를 주도했다. 이어서 2007년에는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가 출시되었다.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 출시 후 코이즈미는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승진하여 공식적으로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 그룹 2를 열었다.
도쿄 그룹은 베테랑 게임 개발자인 에구치 카츠야를 총괄 매니저로 영입했으며, 그는 교토 소프트웨어 개발부의 개발 운영도 감독했다.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2007년 이후 닌텐도 EAD 부서의 두 번째 부서의 매니저가 되었다.
닌텐도 정보개발본부(EAD) 내 기술 제작부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기술 지원과 도구 개발을 담당했으며, 사와노 타카오가 이끌었다.[10] 이 부서는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SRD를 돕던 R&D2의 여러 엔지니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아르고노트 소프트웨어와 협력하여 SNES용 슈퍼 FX 칩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 기술은 1993년 ''스타폭스''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기술 개발부는 3D 시대에 더욱 두각을 나타냈으며, SRD와 함께 닌텐도 EAD의 여러 3D 게임을 프로그래밍했다.
1990년에 출시된 F-ZERO는 이 부서에서 완전히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었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밍이 SRD Co. Ltd.에 외주를 주었다.[11]
2003년 9월 30일, 닌텐도의 조직 개편 결과로 닌텐도 R&D1 및 R&D2의 여러 구성원이 닌텐도 EAD 산하로 재배치되면서, 오타 케이조와 니시다 야스나리가 기술 개발 부서 내에서 각자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임명되었다.[13]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기술개발부 개발 비디오 게임 목록
연도
제목
장르
플랫폼
1999
마리오 아티스트: 페인트 스튜디오マリオアーティスト ペイントスタジオ|마리오 아티스토 페인토 스튜디오일본어
미야모토 시게루가 본부장을 맡아, 슈퍼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닌텐도의 주요 타이틀이 여기서 제작되었다. 원래는 미야모토나 테즈카 타카시 등이 소속된 디자이너 집단 '크리에이티브과'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18][19]。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현재 세계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피크민 시리즈는 닌텐도 EAD에서 개발한 실시간 전략 게임 시리즈이다. 플레이어는 피크민이라는 작은 생명체를 조종하여 행성을 탐험하고 자원을 수집하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독특한 게임 시스템과 귀여운 캐릭터가 특징이다.
해당 시리즈 개발에 참여한 주요 개발자는 다음과 같다.
키무라 히로유키
히노 시게후미
아스케 시게유키
4. 5. 마리오 카트 시리즈
마리오 카트 시리즈는 닌텐도 정보개발본부에서 개발한 대표적인 레이싱 게임 시리즈이다.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아이템을 사용하며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곤노 히데키는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1그룹 매니저로서, 마리오 카트 시리즈의 주요 개발자 중 한 명이다.
닌텐도 EAD는 미야모토 시게루를 본부장으로 하여 슈퍼 마리오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닌텐도의 주요 타이틀을 제작해왔다. 닌텐도 EAD는 크게 제작부, 도쿄 제작부, 정보개발관리부, 기술 제작부로 구성되었으며, 게임 소프트웨어는 제작부의 5개 그룹과 도쿄 제작부의 2개 그룹에서 만들어졌다.[20][21]
2000년 6월,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사로 승진하면서 닌텐도의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을 감독하게 되었고, 그의 프로듀서 공석을 채우기 위해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내에서 일련의 승진이 이루어졌다. 테즈카 타카시가 부총괄 매니저로 승진했으며, 아오누마 에이지, 콘노 히데키, 시미즈 타카오, 스기야마 타다시, 에구치 카츠야와 같은 여러 선임 이사들이 부서 내 자체 개발팀을 감독하는 프로듀서로 승진했다.[13]
2003년 9월 30일, 닌텐도의 조직 개편 결과로 닌텐도 R&D1 및 R&D2의 여러 구성원이 닌텐도 EAD 산하로 재배치되면서, 닌텐도 EAD는 하나의 부서로 통합되었고, 새로운 매니저 및 프로듀서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콘노 히데키, 에구치 카츠야, 아오누마 에이지, 키무라 히로유키, 스기야마 타다시가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 내에서 각자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임명되었으며, 시미즈 타카오는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오타 케이조와 니시다 야스나리가 기술 개발 부서 내에서 각자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임명되었다.[13]
'''스기야마 타다시''': Wii Fit, 스틸 다이버 및 스타 폭스 시리즈의 프로듀서이다.
5. 1. 미야모토 시게루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를 대표하는 게임 개발자다. 1970년대 닌텐도에 합류하여 동키콩을 시작으로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수많은 명작 게임을 개발했다.[3][4][5][6]
미야모토 시게루는 플랫폼 게임 장르를 확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3년 마리오 브라더스를 디자인하고 감독했으며,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통해 플랫폼 게임의 기준을 세웠다.[7][8]1986년에는 젤다의 전설을 통해 액션 어드벤처 장르를 혁신했다.
그는 게임 디자인 철학을 확립하고 닌텐도의 게임 개발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97년 닌텐도 EAD의 각 타이틀 개발에 약 20~30명의 직원이 투입되었다고 밝혔다.[12]2000년 6월, 닌텐도 이사회에 참여하여 닌텐도의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을 감독하게 되었다.
5. 2. 테즈카 타카시
미야모토 시게루와 함께 슈퍼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초기 닌텐도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닌텐도 EAD의 총괄 책임자로서 게임 개발을 이끌었다.[6]
1984년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제4부(닌텐도 R&D4) 창설 당시 핵심 그래픽 디자이너로 합류했다.[6] 초기에는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콘도 코지 등과 함께 닌텐도 초기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1989년 R&D4가 닌텐도 정보개발본부(닌텐도 EAD)로 분리되면서, 닌텐도 EAD의 부총괄 매니저로 승진했다.[9] 2000년 6월에는 닌텐도 이사회 이사로 승진한 미야모토 시게루의 뒤를 이어 닌텐도 EAD의 부총괄 매니저가 되었다.[9]아오누마 에이지, 곤노 히데키 등과 함께 닌텐도 EAD 내 자체 개발팀을 감독하는 프로듀서 역할도 수행했다.
1997년 당시 인터뷰에서 미야모토 시게루는 테즈카 타카시를 포함한 닌텐도 EAD의 각 타이틀 개발 과정에서 약 20~30명의 직원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12]
'''아오누마 에이지'''(青沼 英二)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프로듀서이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 등 여러 명작 게임 개발을 주도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이사로 승진하면서 닌텐도의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을 감독하게 되었고, 그의 프로듀서 공석을 채우기 위해 2000년 6월, 닌텐도 정보개발본부 내에서 일련의 승진이 이루어졌다. 이때 아오누마 에이지는 콘노 히데키, 시미즈 타카오 등과 함께 선임 이사에서 부서 내 자체 개발팀을 감독하는 프로듀서로 승진했다.[13]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2007년부터 닌텐도 EAD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 그룹 2의 매니저 겸 프로듀서이다.[14] 2003년 9월 30일, 닌텐도 R&D1 및 R&D2의 여러 구성원이 닌텐도 EAD 산하로 재배치되면서 닌텐도 EAD는 하나의 부서로 통합되었고, 새로운 매니저 및 프로듀서들을 맞이하게 되었다.[13]
닌텐도 EAD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부는 일본 수도권의 신진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2002년에 설립되었으며, 일본 도쿄의 닌텐도 도쿄 오피스에 위치해 있다.
2003년, 교토의 엔터테인먼트 분석 & 개발부 소속 20명이 개발 자원 확장을 위해 닌텐도 도쿄 오피스로 이동했다. 이들은 주로 슈퍼 마리오 선샤인 팀 출신이었다. 경영진은 도쿄에서 생활하는 것을 교토로 이주하는 것보다 더 편안하게 느끼는 개발자들을 확장하고 모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았다.
시미즈 타카오(초대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와 코이즈미 요시아키(디렉터)는 SEGA, 코에이, 스퀘어 에닉스와 같은 여러 유수 회사에서 온 신규 인재를 도쿄에서 고용하기 시작했다. 시미즈와 코이즈미는 공동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인 ''동키콩 정글 비트''를 주도했다. 이후 2007년에는 비평가와 상업적으로 호평을 받은 ''슈퍼 마리오 갤럭시''가 출시되었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출시 후 코이즈미는 매니저 겸 프로듀서로 승진하여 공식적으로 도쿄 소프트웨어 개발 그룹 2를 열었다.[14]
도쿄 그룹은 베테랑 게임 개발자인 에구치 카츠야를 총괄 매니저로 영입했으며, 그는 교토 소프트웨어 개발부의 개발 운영도 감독했다.
코이즈미 요시아키는 슈퍼 마리오 갤럭시, 슈퍼 마리오 3D 월드 등 3D 마리오 시리즈의 프로듀서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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