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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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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나(支那)는 산스크리트어 '치나'에서 유래한 단어로, 중국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인도 승려들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전해져 18세기 난학자들에 의해 서양의 'China'와 같은 어원임이 밝혀졌다. 초기에는 중립적인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청일 전쟁 이후 경멸적인 의미로 변질되었고, 중일 전쟁 시기에는 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중립적 또는 비하적인 의미로, 홍콩에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일본의 침략과 전쟁 범죄와 연관되어 멸칭으로 간주되며, 1946년 중화민국은 일본에 '지나' 용어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지나'라는 용어는 차별적인 표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중국'이라는 명칭은 량치차오의 제안으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국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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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지도 정보
명칭
표기支那
シナ
중국어 발음표준 중국어: Zhīnà (지나)
광둥어: Zi1na5 (찌나)
객가어: Zii1-na4 (찌나)
오어: Tsy na (쯔나)
일본어 발음しな (시나)
한국어 발음지나
로마자 표기표준 중국어: Zhina
일본어: Shina
한국어: Jina
역사적 배경
어원'지나'는 고대 인도에서 중국을 가리키던 '치나(Cina)'에서 유래
이 단어는 불교 경전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전파됨
서양에서는 '시나' 또는 '차이나' 등의 형태로 사용
용례19세기 말부터 일본에서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됨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함께 사용 빈도 증가
중국인들은 이 용어를 멸칭으로 인식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용어로 여김
현대적 사용
한국현대 한국어에서는 '지나'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음
이 용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여겨지며, 대부분 '중국'이라는 명칭을 사용
간혹 일부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중국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음
일본일본에서는 ‘시나’라는 용어가 일부 남아있으나,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됨
그러나 여전히 중국인들에게는 민감한 용어로 인식됨
'중국'이라는 단어 사용이 일반적임
중국중국에서는 '지나'라는 용어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관련된 용어로 간주하여 사용을 극히 꺼림
중국 정부와 언론에서는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강조
기타
참고이 용어는 과거 중국을 가리키던 명칭이지만, 현재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됨.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임.

2. 역사

'지나'라는 용어는 본래 산스크리트어 단어인 '치나'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수나라당나라 시대에 인도 승려불경을 번역할 때, 당시 "중국"을 진나라의 후속으로 여겨 '치나'를 한문으로 음역하였다.[77][78][79] 이때는 支那(지나) 외에 至那(지나), 脂那(지나) 등으로도 썼다.

9세기일본에 한문 불경이 전해지면서 "지나"라는 호칭도 전해졌다. 18세기 일본 난학자들은 서양 서적을 번역하면서 영어의 "차이나"(China) 및 서양 언어의 동계 명칭이 "지나"(支那)와 같은 어원(진나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입구가 일본의 국시가 되면서 중화 사상적 뉘앙스를 풍기는 "중국" 대신 지나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었고,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점차 쇠퇴해가는 중국을 경멸하는 뉘앙스를 띠게 되었다.[77][78][79]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도 일본에서는 "중화민국" 대신 "지나 공화국"(支那共和國) 등으로 호칭하는 일이 잦았으며, 이는 중국인들의 불만을 샀다. 이후 중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일본의 지나 호칭은 경멸의 뉘앙스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중국을 공식적으로 "지나"라고 하는 일은 없지만, 일부 우익 성향의 정치가들(대표적으로 이시하라 신타로)은 여전히 지나라고 지칭하여 중국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77][78][79]

2. 1. 어원

지나(支那)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치나'에서 유래되었으며, 인도 승려들이 불경한문으로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77][78][79] 진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며,[24] 영어의 "차이나(China)" 및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는 명칭과 같은 어원을 가진다.[25]

산스크리트어 चीन|치나sa ()는 "중국"을 의미하며, 支那|지나중국어 (), 芝那|지나중국어 (), 脂那|지나중국어 (), 至那|지나중국어 () 등 다양한 형태로 음역되었다. "支那(시나)"라는 용어는 처음에 의 음역으로 만들어졌고, 불교 전파와 함께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 가 페르시아어라틴어 Sinala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221년부터 206년까지 중국을 통치한 진(秦)나라 (秦|진중국어, 고대 중국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보고 있으며, "支那(Shina)"는 다른 형태로 중국어로 돌아온 "진(Qin)"이라고 주장한다.

2. 2. 초기 사용

'지나'라는 용어는 초기에는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한역불전을 통해 '시나'라는 말이 들어왔다. 헤이안 시대의 고승 쿠카이의 시문집인 「성령집」에 '시나'가 사용된 예[28]가 확인된다. 교토동복사 소장의 중요문화재에도 “支那禅刹図式”(남송 작)이 있다. 무로마치 시대 승려 만리집구의 “산곡선생을 제사 지내는 글”에도 이 용어가 나타난다.[29] 에도 시대 초기, 세계 속에서 이 지역을 지칭할 때 '시나'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라이 하쿠세키가 조반니 바티스타 시돗티를 심문한 기록인 『서양기문』에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과 함께 '시나'라는 기록이 있다.[30]

에도 후기에는 범어에서 온 'China' 등의 번역어로도 '시나'가 정착했다. 막말의 양학자 사토 모토나가는 육대륙과 대비하여 支那(시나)를 언급한다. 막말의 영어 사전 『증정화영통어』의 만연 원년 후쿠자와 유키치 서문에는 영어와 중국어의 대비로 “支那(시나)”가 사용되고 있다.[32]

초기에 '시나'는 명백히 모욕적인 의미가 없었다. 사토 사부로는 이 시기의 중국인이 아편전쟁의 패배나 개혁의 지연 등에 의해 “나약·인순고식·교만불손·무능·불결”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기에 유행한 “支那(시나)”라는 말이 그것에 연결되었다고 지적하고, 지츠토 케이슈도 일청전쟁 후에는 일본인의 “支那(시나)”라는 말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2. 3. 일본에서의 사용과 의미 변화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입구 사조와 함께 '지나'라는 호칭이 일본에서 일반화되었다.[77][78][79]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이 호칭은 점차 쇠퇴해가는 중국을 경멸하는 뉘앙스를 띠게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도, 일본에서는 중국을 정식 국호인 "중화민국" 대신 "지나 공화국"(支那共和國) 등으로 부르는 일이 잦았다. 이는 중국인들의 불만을 샀다. 이후에도 중국인을 "지나인"(支那人), 중일 전쟁을 "지나 사변"(支那事變) 등으로 표시하는 등, 중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일본에서 사용된 지나 호칭에는 경멸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중국을 공식적으로 "지나"라고 부르지 않지만, 일부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대표적으로 이시하라 신타로)은 여전히 중국을 지나라고 불러 중국 정부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77][78][79]

2. 4. 한국에서의 사용

일제강점기에는 '지나'라는 표현이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에서도 '지나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으며, 신채호는 자신의 책에서 중국을 '지나'라고 불렀다. 이는 당시 청나라와 동등한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중립적인 표현이었다.[78][79]

1921년 졸업사진에는 타이완(臺灣)에 유학 온 중국 본토 학생들을 “支那留学生(지나 유학생)”이라고 불렀다.


1935년 「타이완 일일신보(臺灣日日新聞)」에 실린 타이완(臺灣)과 남중국(南支那) 및 남양(南洋) 간 무역에 대한 기사


오늘날에는 반중 감정을 가진 일부 한국인들이 '지나' 또는 '중공(中共)'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이라고 부르지만, '짱깨'와 같은 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78][79]

2. 5. 중국에서의 인식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지나'라는 호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쑨원, 쑹자오런, 량치차오와 같은 중국 혁명가들은 초기에는 이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점차 '지나'를 외래어로 인식하고 사용을 중단했다. 대신 일본에게 중화민국의 정식 명칭과 약칭인 中國|중궈중국어 사용을 요구했다.[2]

제2차 중일 전쟁을 거치면서 '지나'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함께 모욕적인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1946년 중화민국은 일본에 '지나'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43]

현대 중국에서는 '지나'를 일본의 침략과 일본군의 전쟁 범죄와 연관된 멸칭으로 간주한다.[44] 이는 '支'()라는 한자가 '가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중국인이 일본인에게 종속적인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이 한자들은 의미가 아니라 발음을 고려하여 선택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지나' 표현에 대한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2008년에는 충칭의 한 음식점이 ''라는 상호 때문에 인터넷에서 비판을 받고 폐업하기도 했다.[50]

2. 6. 홍콩에서의 사용

일본 제국홍콩 점령 기간 동안 홍콩 거주 중국인을 '지나인(支那人, Shinajin)'으로 분류했다.[7] 당시 일본 정부에 유용하다고 여겨진 홍콩인, 은행가, 변호사 등 저명한 지역 인사들은 "홍콩 거주 중국인 유력자 조사표 (香港在住支那人有力者調查表, Honkon zaijū Shinajin yūryokusha chōsahyō)"라는 인구 조사 문서에 기록되었다.[7] 2016년에는 일본의 국수주의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홍콩의 한 기자를 지나인(Shinajin)이라고 불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8]

최근 홍콩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는 중국 본토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지나'의 광둥어 발음인 'Cheena'를 사용하기도 한다.[9] 예를 들어, 홍콩 지역주의 정치인인 야우와이칭과 식스투스 렁은 홍콩 입법회 선서 논란 당시 선서 과정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10][11][12][13] 홍콩 토착의 창립자인 레이 왕은 중국 공산당을 자신의 "개인적인 적"이라고 칭하며 중국 본토를 가리키는 데 "Cheena"를 사용한다고 밝혔다.[14]

2012년 9월 15일, 홍콩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중국 본토인과 병행 수입업자에 대한 시위를 조직했는데, 시위 도중 일부 시위대는 "Cheena 사람들, 나가!"라고 외치기도 했다.[15] 2013년 9월 24일, 홍콩 우선주의라는 홍콩 정치 단체가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 건물 정문을 돌파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홍콩 반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15] 홍콩 우선주의의 지도자인 빌리 치우는 나중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홍콩 우선주의가 "Cheena 군 주둔지"에 성공적으로 침입했다고 발표했다.[16] 2015년 10월, HKGolden의 한 네티즌이 중국 본토인을 "메뚜기"와 "Cheena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가사를 넣은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개사 버전인 "역겨운 Cheena 스타일 (核突支那Style)"을 만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17]

홍콩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는 중국 본토 학생들이 현지 학생들에 의해 종종 "Cheena 개"나 "황색 폭도"라고 불리기도 한다.[18][19] 2019년 이후의 항의 시위에서는 중련판 외벽에 " 支那"라고 낙서하는 등,[55] 중국 공산당으로부터의 분리 등을 주장하는 정치적 시위 행위로 '지나'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3. 논란

"지나"라는 호칭은 기본적으로 영어의 "차이나"(China)와 같이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던 "시나"(Sina), "신"(Chin) 등과 어원이 같아, 이 호칭이 차별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77][79]

일본에서는 1913년부터 1930년까지 공식 문서에서 '支那共和国|시나쿄와코쿠일본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중화민국은 ()를 사용했다. 일본은 ''와 그 약칭 中國일본어 () 사용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로 거부했다.

# 중국을 “중원” 또는 "세계의 중심"으로 언급하는 용어는 거만하게 여겨졌다.

# 서구 국가들은 "China"를 사용했다.

# 'Shina'는 수세기 동안 일본에서 일반적인 명칭이었다.

# 일본은 본토 혼슈 서쪽에 중국 지방을 이미 가지고 있다.

제2차 중일 전쟁으로 인해 "支那(Shina)"라는 용어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모욕적인 표현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1946년 중화민국은 일본에 "支那"라는 용어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2]

중국에서는 "지나"라는 용어가 일본의 침략과 일본군의 전쟁 범죄와 연관되어 모욕적인 인종 차별적 비하어로 간주되었다. 일본어에서 차별적인 용어로 배타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支중국어(일본어 ; 중국어 )라는 한자가 '가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중국인이 일본인에게 종속적인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원래 이 한자들은 의미가 아니라 발음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던 것이다.

1992년 아사히 신문사에서 간행된 『지역으로부터의 세계사』 시리즈 제6권 『내륙 아시아』에서 나카미 다테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65]

> 근대 세계에서 몽골 민족이나 티베트 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중국”이라는 개념의 문제가 떠오른다. 이러한 민족들에게는, 적어도 청나라 붕괴 단계에서는,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중국”이라는 말이 있었다. 오해를 무릅쓰고 쓰자면, “시나”(이 경우, 대략 몽골이나 티베트는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지역 개념은 있었다. 그러나, 한인들이 품는 것과 같은, 다민족의 공동체,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중국”이라는 개념은 결여되어 있었다.

1999년 이시하라 신타로도쿄도지사 선출 출마 표명 기자회견에서 “시나는, 청나라가 망하고 중국 대륙이 혼란했을 때, 손문이 만든 말이다. 손문은 타이완에서도 대륙에서도 국부로서 존경받고 있다. 왜 일본인이 사용하면 차별이 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66][67]

가토 도오루는 “중국인이 ‘支那(시나)’라는 일본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같은 한자 문화권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자칭을 한자로 쓰면, 그대로 의미가 통하는데, 일본인은 굳이 ‘支那共和国(시나공화국)’이라는 국명을 만들었다. 중국인은 거기에 악의와 굴욕을 느꼈다. 나라끼리라도 개인끼리라도, 동등한 관계라면, 상대방의 자칭을 인정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68]

오 지잉은 “支那(시나)” 금지는 부당한 트집이라고 주장했다.[71]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시나”를 사용하며, “‘시나’는 차별어가 아니다. ‘진’을 어원으로 한다. ‘차이나’와 같은 중국을 역사적으로 보는 명칭이다” 또는 “여기서 통일된 ‘시나’에는 만주도, 티베트도, 위구르도, 내몽골도, 타이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고 주장했다.[72]

1900년 일본 우체국 5센짜리 우표 (支那 표기)


1914년 일본 삽화: 러시아는 파이프를 피우는 곰, 중국은 기압계를 보는 돼지, 인도는 코끼리, 영국은 잉어, 독일은 멧돼지 등으로 묘사됨


1937년 일본이 제작한 지도 (支那 표기)


아사히 신문, 1937년 8월 14일 상하이 사건 보도 (중화민국을 "支那의 폭정"이라고 언급)


1939년판 북지, 몽강, 신강 소형 상세 지도

3. 1. 비하적 표현인가?

"지나"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영어의 "차이나"(China)와 마찬가지로 유럽 국가들이 사용하던 "시나"(Sina), "신"(Chin) 등과 어원이 같기 때문에, 이 호칭이 차별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77][79] 특히 일본중국 사이에서 이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는데, 동중국해(東シナ海|히가시시나카이일본어), 인도차이나 반도(インドシナ半島|인도시나한토일본어) 등 지명에 "지나"가 들어가는 것이 차별적인 표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77][79]

일본에서는 한자로 표기하는 "지나"(支那)를 차별어로 규정하여, IME 일본어 입력기에서도 자동 변환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77][79] 대신 지명 등에 쓰이는 "지나"는 가타카나 표기인 "시나"(シナ|시나일본어)로 바꾸어 서양 언어의 번역임을 강조하고, 지명 등에 한해서만 사용하도록 하였다.[77][79] 그러나 일본 민간에서는 라면을 "시나소바(支那そば|시나소바일본어)"라고 부르는 등, 이 명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중일 양국 네티즌 간의 인터넷 분쟁 등에서는 여전히 경멸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77][79]

3. 2. 일본에서의 인식 변화

일본에서는 '지나(支那)'라는 한자 표기 대신 가타카나 표기인 '시나(シナ)'를 사용한다. 이는 '지나'가 차별어로 규정되어 일본어 입력기에서도 자동 변환되지 않도록 조치되었기 때문이다.[77][79] '시나'는 인도차이나 반도(インドシナ半島일본어), 동중국해(東シナ海일본어) 등 지명에 한정되어 사용되며, 서양 언어의 번역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라면을 '시나소바(支那そば일본어)'라고 부르는 등 여전히 '지나'라는 명칭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77][79]
라면집 간판에 걸린 "支那そば"(오카야마시 기타구)

3. 3. 현대적 사용과 인식

현대 한국에서 '지나'라는 용어는 중국이라는 용어 대신 사용되며,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중립적인 의미로 쓰인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에서도 중립적 용어로 '지나인'이라고 표기하여 일본인과 구별하였다. 신채호는 자신의 책에서 중국이라는 말 대신 '지나'라는 용어만을 사용했다. 20세기에는 중국이라는 용어가 중화사상을 강조하는 명칭으로 여겨져, 중립적인 용어로 '지나'가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의 명칭인 '차이나'처럼 '지나'를 사용하기도 한다.[78][79]

하지만 현재는 반중 감정을 가진 일부 한국인들이 중국을 "지나" 또는 "중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이라고 부르지만, "'''짱깨'''"라는 속어로 부르는 사람도 있으며, 오랑캐라고 부르는 노인들도 있다.[78][79]

일본에서는 '지나'(支那)를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차별어로 규정하고, 일본어 입력기에서도 자동 변환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대신 지명 등에 쓰이는 '지나'는 가타카나 표기인 '시나'(シナ)로 바꾸어 서양 언어의 번역임을 강조하고, 지명 등에 한해서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 민간에서는 라면을 "시나소바(支那そば|시나소바일본어)"라고 부르는 등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중일 양국 네티즌 간의 인터넷 분쟁에서 경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77][79]

제2차 중일 전쟁 이후, 중국에서는 "지나"라는 용어가 일본의 침략과 일본군의 전쟁 범죄와 연관되어 모욕적인 인종 차별적 비하어로 간주되었다. 현대 일본에서는 중화민국을 中華民国|주카 민코쿠일본어, 중화인민공화국을 中華人民共和国|주카 진민 쿄와코쿠일본어로 표기하며, "지나"를 포함하던 단어들도 대부분 수정되었다. 예를 들어, 한학은 中国学|주고쿠가쿠일본어 또는 中華学|주카가쿠일본어로, 제2차 중일 전쟁은 日中戦争|닛추 센소일본어로 변경되었다.[2]

일본에서 "지나"를 쓰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으며, 특히 한자 형태(支那)는 언어 사냥의 대상이 된다. 가타카나(シナ)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일본어에서 한자가 모욕적인 단어를 쓰는 방법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동중국해는 일본어로 각각 南シナ海|미나미 시나 카이일본어와 東シナ海|히가시 시나 카이일본어로 불리며(2차대전 이전에는 南支那海|미나미 시나 카이일본어와 東支那海|히가시 시나 카이일본어), 라면 토핑인 "시나치쿠"(支那竹|시나치쿠일본어 또는 シナチク|시나치쿠일본어)도 "지나"에서 유래했지만, 최근에는 メンマ|멘마일본어로 대체되었다.[5]

일부 우익 일본인들은 '지나'라는 용어의 어원에 호소하며 사용을 정당화하지만, 잽(Jap) 역시 마르코 폴로의 지팡구에서 유래했으므로, 중국인들이 '지나'에 상처를 받는다면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6]

최근에는 타이완과 홍콩에서, 특히 을 지지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중국 본토 및 주민에 대한 차별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PTT나 등 인터넷 게시판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홍콩 본토파 정당 청년신정이 입법회 의장석에서 "지나"라고 발언하거나, 2019년 이후 시위에서 중련판 외벽에 "支連弁", "fk支那"라고 낙서하는 등 정치적 시위 행위로 사용되기도 한다.[53][54][55] 그러나 타이완에서는 "지나"가 원래 중립적인 단어이며 China의 중국어 음역에 불과하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었다.[56]

4. '중국' 명칭과의 관계

'지나'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चीनsa ()에서 유래했으며, 支那중국어 (), 芝那중국어 (), 脂那중국어 (), 至那중국어 () 등 다양한 형태로 음역되었다. 이 단어는 불교 전파와 함께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 가 진나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1]

당나라 현종이 지은 ''제범서(題梵書)''라는 시에 支那중국어 ()라는 용어가 사용된 초기 사례가 있다.[1] 불경이 한자로 번역될 때 "치나"에 "支那"(또는 "脂那", "至那") 등의 한자가 사용되었다. 인도의 언어에서 "진나라"를 나타내는 "치나스타나"는 "震旦", "真丹" 등으로 한자화되었다. 7세기 현장 시대에는 불교 관련 서적에서 중국을 칭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18세기 무렵에는 중국에서 "支那"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27]

19세기 말, 청나라 말기에는 한족 공화주의 혁명가들이 만주족의 청나라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화국의 국호를 모색하면서, '지나'라는 호칭을 일시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쑨원도 초기에는 '지나'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33][34][35]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공식 국호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근대 주권국가 체제로 변화하면서, 청나라보다는 '중국'이라는 명칭이 점차 국호로 자리 잡았다.[37] 그러나 일본 제국중화민국을 '지나공화국'으로 칭하며 일중 관계의 불평등을 야기했다.[38] 중국 국민당의 북벌 이후 국권회복운동이 일어나면서, 중화민국은 일본에 '지나' 대신 '중화민국'으로 칭할 것을 요구했고, 이는 1930년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결정은 일본 내에서 '중화사상'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4. 1. '중국' 명칭 사용의 정당성

'중국'이라는 명칭은 중화사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명칭이다.

'지나(支那)'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명나라 말기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위광국(마르티노 마르티니)는 자신의 저서 Nuvus Atlas Sinensis영어에서 '지나'가 중원 최초의 통일 왕조 진나라(Qín중국어, 범어: Thin・Chin,영어 그리스어·라틴어: Sinae영어)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24] 그는 진나라의 명칭이 주변 국가로 전해졌고, 인도에서 '지나'로 변형되었다고 설명한다.

2세기 전후 인도에서는 중국을 '치나 스타나(China staana영어)'라고 불렀다. 1995년 서작생은 윈난성 서부 도시 '지나성(支那城)'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발표했다. 인도에서 불교수나라에 전래될 때, 경전 속 범어 '치나 스타나(China staana영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 '지나(支那)'이다. 이외에도 '진단(震旦, 真丹, 振丹)', '지나(至那, 脂那)', '지영(支英)' 등으로도 음역되었다. '시나'라는 발음은 서양으로 전해져 영어China영어, 프랑스어의 Chine프랑스어 등의 어원이 되었다고 여겨진다.[25]

기원전(서주 시대)부터 이미 "중국"이라는 글자가 사서에 나타났다.[74]

  • 《서경(書經)》 '재재(梓材)'편: "황천이 이미 중국 백성에게 그 땅을 선왕에게 부여하였다(皇天既に中國民と厥疆の土地を先の王に付す)."
  • 《시경(詩經)》 '대아(大雅)' 중 "생민지십(生民之什)" 장의 "민로(民勞)"편: " (이 중국에 은혜가 있으니, 사방이 평화로울 것이다)"
  • 1963년 출토된 '하존(何尊)'(서주 성왕 시대, 기원전 11세기 청동기): 명문에 "내가 이 중국에 거처하여 백성을 다스리리라(余其宅茲'''中国''' 自之乂民)"라고 새겨져 있다.[75] 이는 유물 자체에 있는 "중국" 용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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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한서(後漢書)》 서역전(西域傳) 대진국(大秦國) 조: "그 백성들은 모두 크고 균형이 잡혔으며 중국과 비슷하다(其の人民皆長大平正で、中國に類する)."
  • 《삼국지(三国志)》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 "그 사신이 중국에 가면 모두 스스로를 대부라고 칭한다(その使者が中国に訪問すると、みな自ら大夫と称す)."


이후 역대 왕조의 정사인 《24사(二十四史)》에서도 "중국" 표기는 일관되게 나타나며, 국가·민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취급되었다.[76]

4. 2. 명칭 변경 과정

19세기 말까지 중국 대륙만주족청나라 지배하에 있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서는 중국을 청국, 그 국민을 청국인이라고 불렀다. 청나라 말기 공화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청국, 청국인이라는 호칭은 "만청의 신하"를 의미한다는 인식이 생겨, 청나라를 공화제로 바꾸려는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공화국의 호칭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청나라 말기(19세기 말~1911년) 한족 공화주의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세울 공화국의 국호와 왕조, 정권의 변천을 초월하는 호칭을 찾고자 했다. 이때, 고유 명사 호칭 중 하나로 오래된 “지나”라는 호칭을 선택하여 만주족의 청나라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혁명가들이 일시적으로 널리 사용했다.

중화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쑨원은 1902년 미야자키 도텐의 『삼십삼년지몽』에 실은 글에서 “지나”라는 용어를 사용했고,[33] 1910년에는 “지나암살단”을 설립했으며,[34] 중화민국 성립 후 1914년 오쿠마 시게노부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지나” 표기를 34회 사용했다.[35] 쑨원의 협력자였던 일본인 우메야 쇼키치는 신해혁명 성공 후 “지나공화국공인기성동맹회”를 결성했고, 이 현판은 광저우의 손중산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1902년에는 일본에 망명해 있던 중국인 공화주의자들이 우에노 세이요켄에서 “지나망국242년기념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에 유학했던 쑹자오런도 기관지 제목을 『20세기의 지나(二十世紀之支那)』로 했다.[35] 1911년 신국가의 국호 후보에도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중화민국”이 채택되었다.[36]

량치차오1901년 『중국사서론』에서 “우리가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우리 나라에 국호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며, 당(唐)이나 한(漢)은 왕조명이고, 지나는 외국인이 사용하는 호칭이며, 중국(中國)·중화(中華)는 자존자대의 기미가 있다고 하면서도 “역시 우리 구어의 습관에 따라 ‘중국사’라고 부르는 것을 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대 주권국가 체제로 향하는 정치 운동에서 결집의 핵심은 청나라(清朝)보다는 “중국”이었고, 이 시기에 점차 국호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37] 신해혁명을 거쳐 성립한 중화민국의 국호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국호를 사용하지 않고 이주원 彦吉 주청 공사의 제안에 따라 “지나”를 채택했다.

이는 근대 일본의 대 중국 대륙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며, 일중 관계의 불평등화를 의미했다.[38] 일본 정부는 중국 정부와 체결하는 조약 등 공식 호칭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 공화국에 대한 호칭을 “지나공화국”으로 정했다.[38]

마정량 주일 대리 공사로부터 “중화민국”을 사용하라는 항의가 있었지만, 마키노 노부아키 외상은 이미 관보에 고시했기에 정정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단, 양국 간 공문서에서는 일본어로는 “지나공화국”, 한문으로는 “中華民国”을 사용하기로 했다.

중국 국민당의 북벌 완료 후 국권회복운동이 성행하자, 일본이 사용하는 “지나공화국”이라는 호칭에 대한 반발은 다시 강해졌다. 1930년 5월 27일, 중화민국은 외교부에 “지나”라고 표기된 공문서를 받지 않도록 훈령을 내렸다. 중화민국 중앙정치회의의 결의를 받아, 중화민국 외교부는 영어 국호 표기를 Republic of China (ROC)로, 중문 표기를 “大中華民国”로 하고, 일본 정부에 “지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요청했다.

그 이유는 “지나라는 말의 의미는 매우 불명확하고, 현재의 중국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이었다. 10월 31일 “지나국호의 호칭에 관한 건”이라는 각의 결정으로[39][40] “앞으로는 ‘지나국’이 아닌 ‘중화민국’이라고 쓰기로 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中華”가 옛 중화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고, 일본 지식인 등에게 강한 반발을 샀으며, 하시다라 기쥬로 외상의 “연약 외교의 증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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