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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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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대인 자치주는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 1934년 소련의 민족 정책에 따라 설립되었다. 이 지역은 아무르 강과 접하며,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원래는 유대인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1930년대 후반의 대숙청과 소련 붕괴 이후 유대인 인구는 감소했지만, 현재 유대인 문화 부흥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주요 산업은 공업, 농업, 그리고 교통이며, 이 지역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동강-니즈넬레닌스코예 철도교 등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주민 구성은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유대인은 소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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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자치주
개요
러시아 지도 (2014–2022) - 유대인 자치주 (크림 반도 분쟁 지역).svg
러시아 지도 (2014–2022) - 유대인 자치주 (크림 반도 분쟁 지역)
위치48
지역 설명니콜라예프카 마을 근처의 겨울 퉁구스카강.
겨울 퉁구스카 강 (니콜라예프카 마을 근처)
기본 정보
공식 명칭 (이디시어)|Yidishe avtonome (oytonome) gegnt}}
정치적 지위자치주
연방 관구극동
경제 지구극동
행정 중심지비로비잔
면적 순위61번째
면적 (km²)36271
설립일1934년 5월 7일
자동차 번호판79
ISORU-YEV
웹사이트www.eao.ru
상징
유대인 자치주 깃발
유대인 자치주 문장
국가유대인 자치주의 국가
정치
주지사 권한대행마리아 코스튜크
입법부입법의회
인구
2021년 인구 조사150453
2021년 인구 조사 순위80번째
2021년 도시 인구 비율70.8%
2021년 농촌 인구 비율29.2%
언어
공용어러시아어, 이디시어 (사실상 러시아어)

2. 역사

소련이오시프 스탈린 민족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원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소련 당국은 이러한 민족정책이 이디시 문화 계승을 추구하기 위한 넓은 영토를 소련 영내의 유대인 인구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84]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한때 유대인 자치공화국을 크림반도나 우크라이나 지역에 두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해당 지역의 비유대인 토착민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제안은 거부되었다.

비로비잔을 비롯한 유대인 자치주 지역은 대체로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비로비자네르 슈테른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비로비자네르 슈테른yi)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러시아어이디시어로 쓰여진 유대인 자치주정부 명판


유대인 자치주 내의 정착지 발트게임(Валдгейм|발트게임ru, וואלדהיים|발트하임yi)[87]의 역사는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치주 최초의 집단농장이 개설되었었다.[88] 1980년에는 이디시어 학교가 문을 열었다.[89] 아무르제트(Амурзет|아무르제트ru; אמורזעט|아무르제트yi)[90][91]는 1929년부터 10년간 비로비잔 남쪽 유대인 정착의 중심지였다.[92] 오늘날 유대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안식일 의식을 가지고, 이디시어 노래, 유대인 음식문화와 유대문화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을 건설자의 후손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마을에 남아 있으며, 그들 중 특히 이스라엘에 친족들을 가진 거주민들은 유대인의 전통과 뿌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93] 2006년 현재 아무르제트의 인구는 5213명이다.[94] 스미도비치(Смидович|스미도비치ru; סמידאוויטש|스미도비치yi) 또한 자치주의 초기 유대인 정착지이다.

1939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1만 7695명의 유대인(지역 전체인구의 16%)이 살고 있었으며, 1948년에는 3만 명에 이르러 지역 인구의 1/4를 차지했다.[85]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부터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959년 인구조사에서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 1만 4269명이 되었다.[95]

1961년 니키타 흐루쇼프는 우즈베크와 카자흐에 살던 유대인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이 지역에서 30만 명의 유대인 인구를 확보하려 하였으나,[96] 실행되지 못했다. 2002년에는 2327명의 유대인(지역 인구의 1.2%)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러시아인이 90%를 차지했다. 20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유대인은 불과 1628명(지역 인구의 1%)뿐이며, 러시아인이 92.7%를 차지했다.[97] 그러나 2010년 인구조사 결과는 《예루살렘 포스트》가 자치주에 4천여 명의 유대인이 남아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유대인 자치주의 랍비 Mordechai Scheiner에 따르면, 유대교와 유대인 문화는 최근 들어 종교적, 문화적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98]

현재는 유대인 문화 부흥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한때 폐간되었던 신문 『비로비잔의 별』의 이디시어판도 부활했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도 이루어지고 있다.

2. 1. 배경

1928년, 요시프 스탈린의 사회주의 민족 정책에 따라 아무르 강 연안의 중소 국경 지대에 '''유대인 민족구'''가 설치되었다. Західна Україна|서우크라이나uk에서 Заходняя Беларусь|서벨라루스be에 걸쳐 있는 루테니아[66](카르파티아 루테니아(카르파트 우크라이나)·갈리치아(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몰도바·베사라비아 등)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슈테틀)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왔다. 사회주의적 틀 안에서 유대인의 문화적 자치를 목표로 이디시어 학교와 신문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전간기에는 갈리치아 등에서 온 난민들이 으로 몰려들어 이디시어 공동체를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67]

1934년 5월에 '''유대인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소비에트 당국은 유대인 자치주를 유대인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시키는 취지의 지침을 발표했다.[68]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은 체포·투옥되었고, 유대인 문화는 박해받았다. 이 때문에 유대인 인구는 감소했고, 소련 붕괴 후의 새로운 이민 정책에 따라 더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이나 미국 등으로 출국했다.

현재는 유대인 문화 부흥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한때 폐간되었던 신문 『비로비잔의 별』의 이디시어판도 부활했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 무역의 9할[69]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중러 국경을 넘는 동강 철로 대교도 건설되었다.[71]

2. 1. 1. 러시아의 아무르 지역 합병

1858년 아이군 조약 체결로 으로부터 할양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한 아무르 코사크 군이 결성되어 아무르 강 경비를 담당했다.

2. 1. 2. 군사적 식민화

1858년 12월,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 남동부 국경과 아무르강, 우수리강의 통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르 코사크 군 편성을 승인했다.[16] 이 군사적 식민화에는 트란스바이칼리아 출신 정착민들도 포함되었다. 1858년부터 1882년 사이에 목조 주택으로 이루어진 많은 정착촌이 건설되었다.[12] 이 지역으로 이주한 러시아 군인은 4만 명으로 추산된다.[12]

미하일 이바노비치 베뉴코프, 레오폴트 폰 슈렌크, 카를 막시모비치, 구스타프 라데, 블라디미르 레온티예비치 코마로프 등 지리학자, 민족지학자, 자연과학자, 식물학자들의 탐험은 이 지역 연구를 촉진했다.[16]

2. 1. 3.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

1899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지역 구간 공사가 시작되어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했다. 이 사업은 많은 새로운 정착민의 유입과 새로운 정착촌의 기반을 마련했다. 1908년부터 1912년 사이에 볼로차예프카, 오블루치예, 비라, 비라칸, 론도코, 인, 티콘카야에 역이 개장했다. 철도 건설은 1916년 10월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을 가로지르는 2590m 하바롭스크 다리 개통으로 완료되었다.[16]

1917년 혁명 이전 이 지역 주민은 대부분 농민이었다.[16] 유일한 산업 기업은 퉁구스키 제재소였지만, 수타라 강에서는 금이 채굴되었고, 소규모 철도 공장도 있었다.[16]

2. 1. 4. 러시아 내전

1922년 러시아 내전 당시, 훗날 유대인 자치주가 되는 지역에서 볼로차예프카 전투가 벌어졌다.[13]

2. 2. 소련의 소수 민족 및 유대인 정책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에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본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소련 당국에 의하면, 이러한 민족정책은 이디시 문화 계승을 추구하기 위한 넓은 영토를 소련 영내의 유대인 인구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84]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한때 유대인 자치공화국을 크림반도나 우크라이나 지역에 두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해당 지역의 비유대인 토착민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제안은 거부되었다.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yi, "비로비잔의 별")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1961년 니키타 흐루쇼프는 우즈베크와 카자흐에 살던 유대인들을 이 곳으로 강제이주시켜, 이 지역에서 30만 명의 유대인 인구를 확보하려 하였으나,[96] 실행되지 못했다.

종교로서의 유대교는 무신론을 정책으로 삼고 시나고그를 폐쇄하고 신자들을 괴롭히는 등 조직적인 유대인 공동체를 탄압한 볼셰비키 당의 정책과 상반되었지만, 블라디미르 레닌은 소수 민족의 지지를 얻고 관용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소수 민족을 달래고자 했다.[31]

1924년, 사유 재산 소유에 반대하는 소련의 정책으로 인해 유대인의 실업률은 30%를 넘어섰다.[14] 이 정책은 혁명 이전 많은 유대인들이 생계를 유지해왔던 장인이나 소규모 사업가의 길을 막았다.[15] 정부는 유대인들을 사회의 더욱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유대인 농촌 정착을 위한 위원회인 콤제트를 설립했다.[14] 소련 정부는 소련 내 모든 유대인을 지정된 지역에 재정착시켜 "내용은 사회주의적이고 형식은 민족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고려했다. 러시아는 또한 유대인의 고향으로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수립이라는 시온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고자 했다. 사회주의 시온주의자인 베르 보로호프와 같은 인물은 당시 추종자들을 얻고 있었고, 시온주의는 이디시어 해석과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 정치 경제에서 선호되는 이데올로기였다. 이는 이디시 운동이 (예: 엠마 골드만) 소련 국가를 구성하고 구조화했던 바로 그 민족주의에 대한 반대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다.[16]

1920년대 초, 이미 상당한 유대인 인구를 보유하고 있던 크림 반도가 처음으로 고려되었다.[16] 크림 반도에는 두 개의 유대인 지역(러시아어: районы)이, 우크라이나 남부에는 세 개의 유대인 지역이 형성되었다.[14][17] 그러나 더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대안적인 계획이 실행되었다.[16]

1928년, 요시프 스탈린의 사회주의 민족 정책에 따라 아무르 강 연안의 중소 국경 지대에 '''유대인 민족구'''가 설치되었고, 에서 에 걸쳐 있는 루테니아(우크라이나어판)[66]라 불린 지역(카르파티아 루테니아(카르파트 우크라이나)·갈리치아(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몰도바·베사라비아 등 각 지역)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슈테틀)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왔다. 사회주의적 틀 안에서 유대인의 문화적 자치를 목표로 하여 이디시어 학교와 신문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전간기에는 갈리치아 등에서 온 난민들이 으로 몰려들어 이디시어 공동체를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67]

1934년 5월에 '''유대인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1935년부터 37년에 걸쳐 소비에트 당국은 유대인 자치주를 유대인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시키는 취지의 지침을 발표했다.[68]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은 체포·투옥되었고, 유대인 문화는 박해받았다.

2. 3. 초기 역사

1858년 아이군 조약을 통해 으로부터 이 지역을 할양받았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한 아무르 코사크 군이 결성되어 아무르 강 경비를 담당했다.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1928년, 이오시프 스탈린사회주의 민족 정책에 따라 아무르 강 연안의 중소 국경 지대에 '''유대인 민족구'''가 설치되었고, 서우크라이나에서 서벨라루스에 걸쳐 있는 루테니아[66]라 불린 지역(카르파티아 루테니아(카르파트 우크라이나)·갈리치아(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몰도바·베사라비아 등 각 지역)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슈테틀)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왔다.

1934년 5월 7일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기 이전 초기에는 비로비잔을 비롯한 유대인 자치주 지역은 대체로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틀 안에서 유대인의 문화적 자치를 목표로 하여 이디시어 학교와 신문이 만들어졌다.

유대인 자치주 내의 정착지 발트게임(Валдгейм|발트게임ru, וואלדהיים|발트하임yi)[87]의 역사는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치주 최초의 집단농장이 개설되었었다.[88] 아무르제트(Амурзет|아무르제트ru, אמורזעט|아무르제트yi)[90][91] 또한 자치주의 유대인 정착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92] 오늘날 유대인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안식일 의식을 가지고, 이디시어 노래, 유대인 음식문화와 유대문화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마을의 건설자의 후손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마을에 남아 있으며, 그들 중 특히 이스라엘에 친족들을 가진 거주민들은 유대인의 전통과 뿌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93] 2006년 현재 아무르제트의 인구는 5213명이다.[94] 스미도비치(Смидович|스미도비치ru, סמידאוויטש|스미도비치yi) 또한 자치주의 초기 유대인 정착지이다.

2. 3. 1. 설립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에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원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소련 당국은 이러한 민족정책이 이디시 문화 계승을 추구하기 위한 넓은 영토를 소련 영내의 유대인 인구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84]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한때 유대인 자치공화국을 크림반도나 우크라이나 지역에 두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해당 지역의 비유대인 토착민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제안은 거부되었다.

1928년 3월 28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상임위원회는 "러시아 극동 아무르 강 근처의 유대인 노동자 정착을 위해 콤제트에 무료 영토를 할당하는 것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켰다.[21] 이 법령은 "해당 지역의 영토에 유대인 행정 구역 단위를 설립할 가능성"을 의미했다.[16][21]

새로운 영토는 처음에 비로비잔 유대인 국립 군(郡)이라고 불렸다.[31]

비로비잔을 비롯한 유대인 자치주 지역은 대체로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1928년 봄, 654명의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도착했지만, 1928년 10월까지 그중 49.7%가 혹독한 환경 때문에 떠났다.[31] 1928년 여름에는 폭우로 농작물이 침수되었고, 탄저병이 발생하여 가축이 죽었다.[23]

그러나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비로비자네르 슈테른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비로비자네르 슈테른yi, "비로비잔의 별")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1934년 5월 7일, 중앙집행위원회 상임위원회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내에서 유대인 자치주로 전환하는 것에 관한 법령을 승인했다.[16] 1938년 하바롭스크주가 형성되면서 유대인 자치주(JAR)는 그 구조에 포함되었다.[21]

1939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1만 7695명의 유대인(지역 전체인구의 16%)이 살고 있었으며, 1948년에는 3만 명에 이르러 지역 인구의 1/4를 차지했다.[85]

2. 3. 2. 1930년대 초 유대인 공동체의 성장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 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본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yi, "비로비잔의 별")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유대인 자치주 내의 정착지 발트게임(Валдгеймru, וואלדהייםyi)[87]의 역사는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치주 최초의 집단농장이 개설되었었다.[88] 아무르제트(Амурзетru; אמורזעטyi)[90][91]는 1929년부터 10년간 비로비잔 남쪽 유대인 정착의 중심지였다.[92] 스미도비치(Смидовичru; סמידאוויטשyi) 또한 자치주의 초기 유대인 정착지이다.

1930년대, 소련은 더 많은 유대인 이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이 캠페인은 포스터와 이디시어 소설 등 당시 소련의 표준적인 홍보 도구를 일부 활용하여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그렸다. 한 예로, 벨라루스의 유대인 거주 지역 상공에서 비로비잔을 홍보하는 전단이 비행기에서 투하되었다. 또 다른 예로, 정부가 제작한 이디시어 영화 ''행복 추구자들''은 해외 유대인 가족이 비로비잔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16]

북미의 유대인 공산주의 단체인 소련 유대인 이주위원회는 미국의 일부 주민(예: 미래의 스파이 조지 코발의 가족)이 1932년에 도착하는 등 이민을 성공적으로 장려했다.[16][26] 소련 이외의 유대인 약 1,200명이 비로비잔에 정착하기로 선택했다.[16][18]

1934년 5월, 유대인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소비에트 당국은 유대인 자치주를 유대인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시키는 취지의 지침을 발표했다.[68]

2. 3. 3. 스탈린 시대와 제2차 세계 대전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에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원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소련 당국은 이디시 문화 계승을 위한 넓은 영토를 소련 영내의 유대인에게 제공하기 위해 이러한 민족정책을 시행했다고 한다.[84] 193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1만 7695명의 유대인(지역 전체인구의 16%)이 살고 있었으며,[85] 1937년 전쟁 전 최고치인 2만 명에 달했다.[27] 1948년에는 3만 명에 이르러 지역 인구의 1/4를 차지했다.[85]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한때 유대인 자치공화국을 크림반도나 우크라이나 지역에 두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해당 지역의 비유대인 토착민의 반감을 사는 것을 우려하여 그러한 제안은 거부되었다.

비로비잔을 비롯한 유대인 자치주 지역은 대체로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yi, "비로비잔의 별")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유대인 자치주 내의 정착지 발트게임(Валдгеймru, וואלדהייםyi)[87]의 역사는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치주 최초의 집단농장이 개설되었었다.[88] 이곳에서 1980년에 이디시어 학교가 문을 열었다.[89] 아무르제트(Амурзетru; אמורזעטyi)[90][91] 또한 자치주의 유대인 정착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9년부터 10년간, 이 마을은 비로비잔 남쪽의 유대인 정착의 중심지였다.[92] 2006년 현재 아무르제트의 인구는 5213명이다.[94] 스미도비치(Смидовичru; סמידאוויטשyi) 또한 자치주의 초기 유대인 정착지이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비로비잔이 유대인 난민들의 잠재적인 거주지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1948년에 약 4만 6,000~5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비로비잔 유대인 자치주 전체 인구의 약 25%에 해당한다.[53]

2. 3. 4. 냉전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의 민족정책에 따라 1934년 5월 7일에 유대인 자치주가 성립되었다. 원래 계획에는 유대인이 모여 사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될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83] 1939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17,695명의 유대인(지역 전체인구의 16%)이 살고 있었으며, 1948년에는 3만 명에 이르러 지역 인구의 1/4를 차지했다.[85]

1928년 이전까지 이 지역에는 이렇다 할 정착지가 없었으며, 소련 내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본부 등 서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정책으로 이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디시 문화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대인 정착자들은 이디시어 신문 《비로비자너 슈테른》(Биробиджанер Штерн|비로비자네르 슈테른ru; ביראָבידזשאַנער שטערן|비로비자네르 슈테른yi, "비로비잔의 별")을 창간했고, 극단이 만들어졌고, 거리 이름도 유명한 이디시어 작가 숄롬 알레이헴과 Y. L. 페레츠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금도 《비로비자너 슈테른》 지는 신문에 이디시어 섹션을 계속 싣고 있다.[86]

유대인 자치주 내의 정착지 발트게임(Валдгейм|발트게임ru, וואלדהיים|발트하임yi)[87]의 역사는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치주 최초의 집단농장이 개설되었었다.[88] 아무르제트(Амурзет|아무르제트ru; אמורזעט|아무르제트yi) 또한 자치주의 유대인 정착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90][91] 스미도비치(Смидович|스미도비치ru; סמידאוויטש|스미도비치yi) 또한 자치주의 초기 유대인 정착지이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부터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959년 인구조사에서 이 지역의 유대인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 14,269명이 되었다.[95]

1961년 니키타 흐루쇼프는 우즈베크와 카자흐에 살던 유대인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이 지역에서 30만 명의 유대인 인구를 확보하려 하였으나,[96] 실행되지 못했다.

1980년 발트게임에 이디시어 학교가 설립되었다.[30]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개혁적인 소련 정부는 많은 정치범들을 사면하고 미국 유대인 사회에 11,000명의 유대인 거부자(refusenik)들의 이민을 허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89년 소련 인구 조사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8,887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는 유대인 자치주 전체 인구 214,085명의 4%에 해당한다.[31]

2. 4.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유대인 자치주는 연방 주체가 되면서 하바롭스크 지방의 관할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 시기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소련을 떠났고, 남은 유대인들은 지역 인구의 2% 미만을 차지했다.[32] 1996년 초에는 당시 유대인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872명이 전세기를 통해 텔아비브로 이주했다.[33]

비로비잔 주민들이 1993년 3월 23일 이스라엘에 도착하는 모습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이스라엘 이민)


2002년에는 2,357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지만,[28] 2004년 기사에 따르면 유대인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34] 2005년 기준으로 아무르제트에는 작지만 활동적인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35] 2007년 4월 예루살렘 포스트 기사는 유대인 인구가 약 4,000명으로 증가했으며, 당시 유대 문화가 종교적, 문화적으로 부흥을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36] 2010년 러시아 인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에는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이 약 1,600명(총 인구의 1%)만 남아 있었고, 러시아계가 인구의 93%를 차지했다.[37]

2000년대 이후 비로비잔에는 이디시어를 가르치는 여러 개의 국영 학교, 종교 교육을 위한 이디시어 학교, 그리고 유치원이 있었다. 5~7세 어린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디시어를 배우고 유대인 노래, 춤, 전통도 배우고 있었다.[38] 2006년 워싱턴 타임스는 학교에서 이디시어를 가르치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으며, 비로비자너 슈테른 신문에는 이디시어 섹션이 있다고 보도했다.[39]

유대인 시인 아이작 레이보비치 브론프만 기념비


2002년, 스탈린이 유대인 자치구를 건설하고 정착시킨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L'Chayim, Comrade Stalin!''이 시네마 길드에 의해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유대인 자치주의 건설 역사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대 비로비잔의 모습과 유대인 주민들과의 인터뷰도 담고 있다.[40]

2010년에는 비로비잔의 14개 공립학교 중 이디시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는 단 한 곳뿐이었다. 도시 학생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두 개의 학교는 6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이디시어 수업을 의무적으로 제공했다.[42][41] 2012년 기준으로 비로비자너 슈테른은 매주 2~3페이지 분량의 이디시어 기사를 계속 게재하고 있으며, 한 지역 초등학교에서 여전히 이디시어를 가르치고 있다.[42]

2012년 기사에 따르면, "매우 소수의 노년층만 이디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14a 숄롬-알레쳄 거리에 새로운 차바드 후원 회당이 문을 열었고, 숄롬 알레쳄 아무르 주립대학교는 이디시어 강좌를 제공한다.[29] 2015년 기사에 따르면, 코셔 고기가 몇 주 간격으로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도착하고, 일요일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금요일 저녁과 안식일에는 미니얀도 있다.[43]

2017년 11월 가디언 기사는 "소비에트 시온의 부흥: 비로비잔은 유대인 유산을 기념하다"라는 제목으로, 현재 유대인 인구가 1%에 불과하지만, 관리들이 소련 붕괴 후 떠난 사람들을 다시 유치하기를 바란다고 시사했다.[44]

현재는 유대인 문화 부흥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한때 폐간되었던 신문 『비로비잔의 별』의 이디시어판도 부활했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 무역의 9할[69]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중러 국경을 넘는 동강 철로 대교도 건설되었다.[71]

2. 4. 1. 유대인 자치주와 인접 지역 합병 제안 (2013년)

2013년 하바롭스크 지방 또는 아무르주와 유대인 자치주를 합병하려는 제안이 있었으나,[16] 주민[45]들과 러시아 유대인 공동체의 반대와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러시아 헌법에 따라 합병이 가능한지, 합병에 전국적 국민투표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16]

3. 지리

하바롭스크 변경주, 아무르주와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아무르강을 건너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과 국경을 이룬다. 북부와 서부 지역은 소흥안령과 부레야 산맥 등의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부레야 산맥에 위치한 스투덴체스카야 산은 해발 1421m로 유대인 자치주의 최고봉이다.[47] 남부와 동부 지역은 아무르 강 유역의 일부이며, 소규모의 잔구 산맥이 소수 존재한다.[47]

3. 1. 기후

이 지역은 몬순/고기압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동아시아 몬순의 영향으로 따뜻하고 습한 여름과,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춥고 건조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철이 특징이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혹독한 자연환경이다.

4. 행정 구역

유대인 자치주는 5개의 군(район)과 2개의 시(город)로 구성되어 있다. 주도인 비로비잔 외에 오블루치예가 시에 해당하며, 그 외에 11개의 도시형 촌락이 있다.

4. 1. 시

4. 2. 군

유대인 자치주는 5개의 군(район)으로 나뉜다.

군 이름중심지
비로비잔스키군비로비잔
레닌스키군레닌스코예
오블루첸스키군오블루치예
옥탸브리스키군아무르제트
스미도비치스키군스미도비치



자치주의 주도인 비로비잔은 도시 지위(районного значения)를 가지는 도시이며, 이외에 오블루치예라는 도시가 하나 더 있다. 또한 11개의 도시형 촌락이 있다.

5. 주민

2010년 러시아 인구조사 결과, 유대인 자치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은 러시아인으로 92.7%(16만 185명)이었고, 우크라이나인이 2.8%(4,871명)로 그 뒤를 이었다. 유대인은 1%(1,628명)였다. 그 외에 3,832명이 행정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민족 집단을 밝히지 않았다.[99]

2012년 공식 조사에 따르면,[100] 자치주 인구의 22.6%가 러시아 정교 신자, 6%가 기타 정교 신자, 9%가 기타 기독교 신자였다. 유대교 신자는 인구의 0.2%였다. 35%는 "영적이나 종교는 없음", 22%는 무신론자라고 밝혔다. 5.2%는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답변하지 않았다.[100] 2010년 러시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 주민 중 97명이 이디시어를 구사한다.[101]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주하면서 유대인 자치주의 유대인 인구는 크게 감소했다. 1989년 8,887명(전체 인구의 4%)에서[31] 2010년에는 약 1,600명(전체 인구의 1%)으로 줄었다.[37] 1996년 초에는 872명이 전세기를 통해 텔아비브로 이주하기도 했다.[33]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유대인 문화와 종교가 부흥하면서 유대인 인구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도 있었다.[34][36] 2004년에는 비로비잔시나고그가 생겨났고,[100] 2007년에는 유대인 인구가 약 4,000명으로 증가했다는 기사가 예루살렘 포스트에 실리기도 했다.[36]

2000년대 이후 비로비잔에는 이디시어를 가르치는 국영 학교, 종교 교육을 위한 이디시어 학교, 유치원 등이 운영되고 있다.[38] 2012년 기준으로 ''비로비잔스키 슈테른''은 매주 이디시어 기사를 게재하고 있으며, 지역 초등학교에서 이디시어를 가르치고 있다.[42] 숄롬 알레쳄 아무르 주립대학교는 이디시어 강좌를 제공한다.[29]

2021년 유대인 자치주 인구 통계[52]
민족인구비율
러시아인133,62588.8%
우크라이나인1,2920.9%
유대인8370.6%
타타르인4310.3%
아제르바이잔인4110.3%
타지크인3710.2%
기타 민족2,7121.8%
민족 미상10,7747.2%



2022년 유대인 자치주 주요 통계[56][57]
구분수치 (인구 천 명당)
출생아 수1,430명 (9.3명)
사망자 수2,272명 (14.8명)
합계 출산율1.62명 (여성 1명당)[58]
평균 수명66.12세 (남성: 61.73세, 여성: 70.58세)[59]


6. 경제

극동 연방관구에 속하는 유대인 자치주는 공업과 농업이 발달했으며, 자유경제구역이다. 광물, 건축자재, 마감재는 러시아 시장에서 수요가 많다. 특히 비철금속 야금, 기계공학, 금속 가공, 건축자재, 임업, 목재 가공, 경공업, 식품 산업이 발달했다.[48]

비옥한 토양과 습윤한 기후 덕분에 농업은 유대인 자치주의 주요 경제 부문이다.

이 지역의 가장 큰 기업으로는 킴카노-수타르스키 광산 및 가공 공장 (2017년 매출 6800만달러), 테플로오제르스키 시멘트 공장 (1700만달러), 브리더 무역 회사 (1400만달러)가 있다.[49]

6. 1. 교통

행정 중심지인 비로비잔이 강조된 유대인 자치주.


1899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지역 구간 공사가 시작되어 치타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했습니다. 이 사업은 많은 새로운 정착민의 유입과 새로운 정착촌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08년부터 1912년 사이에 볼로차예프카, 오블루치예, 비라, 비라칸, 론도코, 인, 티콘카야에 역이 개장했습니다. 철도 건설은 1916년 10월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을 가로지르는 하바롭스크 다리 개통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유대인 자치주는 극동 연방관구에 속하며, 교통망은 도로, 철도, 수로를 포함합니다. 이 지역의 잘 발달된 교통망은 차르 시대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포함한 약 530km의 철도, 아무르 강과 퉁구스카 강을 따라 약 600km의 수로, 그리고 약 1,900km의 도로(포장도로 약 1,600km 포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도로는 아무르 강을 횡단하는 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바롭스크-비로비잔-오블루치예-아무르주 고속도로입니다.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비로비잔 유즈니 공항(Birobidzhan Yuzhniy Airfield)은 비로비잔을 하바롭스크 및 외곽 지역 중심지와 연결합니다.

동강-니즈넬레닌스코예 철도교는 길이 약 2.22km, 3.55억달러가 투입된 다리로, 유대인 자치주 니즈넬레닌스코예(Nizhneleninskoye)와 중국 헤이룽장성(Heilongjiang Province) 동강(Tongjiang, Heilongjiang)을 연결합니다. 이 다리는 2021년에 개통되었으며[50] 연간 300만 톤 이상의 화물과 15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한다.[51]

7. 문화

자치주와 그 역사는 다큐멘터리 영화 ''L'Chayim, Comrade Stalin!''에 묘사되어 있다.[46] 2002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조셉 스탈린이 유대인 자치주를 건설하고 수천 명의 러시아어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일부 정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는 유대인의 고향 건설의 역사를 다루는 것 외에도 현대 비로비잔의 삶의 모습과 유대인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7. 1. 언어

2010년 러시아 통계청의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 주민 가운데 97명이 이디시어를 사용한다.[101] 소련 시대에는 비로비잔에서 이디시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60] 1997년 자치주 헌장에 따르면 이디시어는 인정된 소수 언어 중 하나이다.[11]

현재 이디시어는 이 지역의 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주민들은 거의 전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한다.[61] 2000년에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비로비잔에는 이디시어를 가르치는 여러 개의 국영 학교, 종교 교육을 위한 이디시어 학교, 그리고 유치원이 있다. 5~7세 어린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디시어를 배우고 유대인 노래, 춤, 전통도 배우고 있다.[62] 2006년 ''워싱턴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이디시어를 가르치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으며, ''비로비잔어 슈테른'' 신문에는 이디시어로 된 섹션이 있다고 한다.[39]

7. 2. 종교

2012년에 수행된 공식조사에 따르면,[100] 자치주 인구의 22.6%가 러시아 정교 신자이며, 6%가 러시아 정교 외의 기타 정교 신자이다. 9%가 기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교 신자는 인구의 0.2%이다. 그 외에 35%가 "영적이나 종교는 없음(spiritual but not religious)", 22%가 무신론자임을 밝혔다. 기타 5.2%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답하거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100] 비로비잔에는 2004년시나고그가 생겨났다.

2012년 유대인 자치주 종교 현황 (Sreda Arena Atlas)[63][64]
러시아 정교회23%
기타 동방 정교회6%
기타 러시아의 기독교10%
러시아의 이슬람교1%
유대교1%
종교는 믿지만 특정 종교는 없음35%
무신론 및 비종교22%
기타 및 무응답3%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유대인 자치주 인구의 23%는 러시아 정교회를, 6%는 다른 교구의 동방 정교회 신자 또는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은 정교회 신자이며, 9%는 무교파 기독교 신자 또는 일반적인 기독교 신자이다.[63] 유대인 자치주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집단과 관련된 유대교는 인구의 1%만이 신봉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고 다른 연방 주의 유대인 공동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인구의 35%는 "종교는 믿지만 특정 종교는 없음"으로, 22%는 무신론자로 응답하여 유대인 자치주를 러시아에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지역 중 하나로 만들었다. 전체 인구의 5%는 다른 종교를 믿거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63]

에프라임(프로시얀카) 대주교(2015년)는 2002년에 설립된 비로비잔 러시아 정교회 주교구(교구)의 수장이다.

8. 교육

숄롬-알레이헴 명칭 프리아무르스키 국립대학


주도(비로비잔)에는 숄롬-알레이헴 명칭 프리아무르스키 국립대학(Приамур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Шолом-Алейхемаru)이 있다. 유대인 자치주에서 유대인 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학생들은 유대인 학교에서 히브리어이디시어를 배운다. 비로비잔에는 이디시어를 가르치는 국립학교, 종교 교육을 위한 이디시어 학교와 유치원이 있다. 5~7세 아동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디시어, 유대인 민요, 무용과 전통을 배운다.[102]

현재 비로비잔의 14개 공립학교에서는 이디시어와 유대인 전통을 가르친다. 1991년 개장한 메노라 학교는 공립학교로, 학부모가 선택하면 반일(半日)간 이디시어와 유대식 수업을 제공한다. 학생의 절반인 120명 정도가 이디시어 수업에 등록한다. 제2공립학교에서도 1학년부터 12학년에게 반일 동안 이디시어/유대식 수업을 제공한다. 러시아에서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대학급 교육기관은 몇 곳 안 되는데, 그중 하나인 비로비잔 사범대학이 이 지역에 있다.[103]

2000년 기사에 따르면, 비로비잔에는 이디시어를 가르치는 여러 국영 학교, 종교 교육을 위한 이디시어 학교, 유치원이 있다. 5~7세 어린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디시어를 배우고 유대인 노래, 춤, 전통도 배운다.[62] 2006년 ''워싱턴 타임스'' 기사에서는 학교에서 이디시어를 가르치고 이디시어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며, ''비로비잔어 슈테른'' 신문에 이디시어로 된 섹션이 있다고 보도했다.[3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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