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
1. 개요
일본 황실은 짐무 천황부터 나루히토 천황까지 126명의 천황을 인정하며,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 씨의 영향, 이후 무사 정권의 등장으로 권력 변동을 겪었다. 초기 천황의 존재는 신화적이나, 6세기부터는 직계 남계 계보가 증명된다. 일본 황실은 1947년 법 개정 전까지 황족으로 불렸으며, 현재 천황, 상황, 황족으로 구성된다. 일본국 헌법에 따라 천황은 '국민 통합의 상징' 역할을 하며, 국사행위와 사적 행위를 수행한다. 황실 구성원은 일본 국민이며, 특별한 지위로 인해 기본적 인권이 제약받기도 한다. 황실은 황실 비용으로 생활하며, 의식과 행사, 타국 왕실과의 교류를 통해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관련 논란과 비윤리적 인체 실험 관여, 야스쿠니 신사 방문 문제 등 논란이 존재하며, 궁실 제도 유지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함께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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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왕가 -
오스만 왕조
오스만 왕조는 1299년 오스만 1세가 건국한 술탄 통치 튀르크계 왕조로, 600년 이상 존속하며 넓은 영토를 지배했으나 1922년 멸망 후 오스만 가문은 튀르키예에서 추방되었고 장자 상속 제도를 유지하며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
아시아의 왕가 -
샤일렌드라 왕조
샤일렌드라 왕조는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동남아시아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쳤으며, 대승 불교를 후원하여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설하고 촐라 왕조의 침략으로 쇠퇴하였다. -
일본 천황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일본 천황 -
아키히토
아키히토는 1933년 쇼와 천황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퇴위하고 상황이 되었으며, 어류학자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사죄와 국민과의 소통에 힘썼다. -
일본의 국가원수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일본의 국가원수 -
아키히토
아키히토는 1933년 쇼와 천황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퇴위하고 상황이 되었으며, 어류학자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사죄와 국민과의 소통에 힘썼다.
2. 역사
일본 황실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권력의 부침을 겪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씨가 외척으로서 권력을 행사했으나, 시라카와 천황의 인세이 시작으로 그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호겐의 난 이후로는 헤이케, 가와치 겐지 등 무사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여 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까지 무사 정권의 영향력이 지속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의 통제력이 강해졌으나, 막말의 혼란기를 거쳐 메이지 유신으로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황실은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잃고 일본국 헌법에 따라 일본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1. 고대 ~ 중세
일본 황실은 공식적으로 짐무 천황(기원전 660년 2월 11일 전승)부터 현 천황인 나루히토까지 126대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초대 짐무 천황을 비롯한 초기 25명의 천황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부족하여 신화적 존재로 간주한다. 6세기 초부터는 단절되지 않은 직계 남계 계승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실존이 확인되는 첫 천황은 제29대 킨메이 천황(539년 즉위)이다.
고대 일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왜'(倭)라고 불렸으며, 이후 왜국(倭國)이라는 명칭으로 발전했다. 후한서에는 수이쇼(帥升, 약 107년경)라는 왜의 왕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기록상 가장 오래된 일본 군주이다. 5세기경에는 왜의 다섯 왕(倭の五王)이 중국 남조에 사신을 보낸 기록이 있으며, 마지막 왕인 '[[왜왕 무|부]'(武)는 유랴쿠 천황(417/18년? ~ 479년)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그의 통치 기간 존재는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후지와라씨가 외척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여, 천황은 후지와라 가문의 여성을 황후로 맞이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러나 시라카와 천황이 인세이(院政)를 시작하면서 상황(上皇)이 실권을 행사하게 되어 후지와라씨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호겐의 난(1156년)과 헤이지의 난(1159년)을 거치면서 무사 세력이 정치의 중심에 등장했다. 특히 헤이케(平家)가 권력을 잡아 헤이시 정권을 수립했으며, 이후 가와치 겐지(源氏)가 헤이케를 몰아내고 가마쿠라 막부를 열었다. 이 시기부터 무사 정권이 천황의 후계자 결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가마쿠라 시대(호조씨의 싯켄 정치)와 무로마치 시대(아시카가씨의 쇼군 통치)까지 이어졌다. 비록 천황과 황실은 상징적인 권위를 유지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무사 계급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한편, 황실의 주된 계통 외에도 여러 분가(分家)가 형성되었다. 이들 분가는 주된 계통과 구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성(姓)을 하사받았다. 특히 황족 신분을 벗어나 신하의 신분으로 내려간(신적강하, 臣籍降下) 황자들로부터 비롯된 씨족들이 있는데, 미나모토(源, 겐지)와 다이라(平, 헤이시 또는 헤이케)가 대표적이며, 이들은 이후 강력한 무사 가문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아베(安倍)나 인척 관계를 통해 형성된 다치바나(橘) 등이 있다. 이들 씨족에서도 다시 여러 분가가 갈라져 나와 귀족 씨족을 형성했다.
2.2. 근대 (메이지 유신 이후)
에도 시대(도쿠가와씨)에는 황실에 대한 막부의 영향력이 역사상 가장 강화되었다. 하지만 흑선 내항으로 인해 막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막말이 도래하여 도막과 좌막이 대립하는 가운데 대정봉환이 행해지고 보신 전쟁을 겪고 난 뒤 왕정복고가 완료되었다. 이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판적봉환, 폐번치현 등의 과정을 거치며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이후, 황실은 일본의 실질 권력의 대표에서 전후 국가 일본의 상징적인 형태로 변모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3. 현대 (일본국 헌법 이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이후, 황실은 실질적인 권력을 잃고 일본국 헌법 하에서 일본국의 상징적인 존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점령 정책에 따라 황실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47년 10월, GHQ는 황실 재산 축소와 화족(華族) 제도 폐지의 일환으로, 본가(천황 직계)를 제외한 방계 황족(구미야케, 舊宮家)들이 황족 신분을 잃도록 조치했다. 이로 인해 후시미노미야(伏見宮)를 비롯한 여러 방계 가문들이 황실 구성원에서 제외되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각 가문의 당주들이 존재한다.
1947년 황족 신분을 잃었지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미야케는 다음과 같다.
* 후시미노미야(伏見宮)
아사카노미야(朝香宮)
히가시쿠니노미야(東久邇宮)
카야노미야(賀陽宮)
쿠니노미야(久邇宮)
** 타케다노미야(竹田宮)
한편, 일부 구미야케는 후계자 부재로 단절되었다. 고마쓰노미야(小松宮)는 1922년,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는 1951년, 카초노미야(華頂宮)는 1970년, 야마시나노미야(山階宮)는 1987년, 기타시라카와노미야(北白川宮)는 2018년에 각각 단절되었다. 현존하는 방계 가문의 종가 격인 후시미노미야 본가 역시 현재 당주인 후시미 히로아키(1932년생)에게 아들이 없어, 그의 사후에는 직계 후손이 끊길 예정이다. 다만, 양자로 들인 조카 손자에게 아들이 있어 가문의 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 역할
일본국 헌법에 따라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않는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된다. 천황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따라 헌법 제6조 및 제7조에 명시된 형식적인 국사행위를 수행한다. 여기에는 법률이나 조약의 공포, 국회가 지명한 내각총리대신의 임명, 국회의 소집 등이 포함된다. 필요한 경우, 황족 중에서 섭정이나 국사행위 임시대행을 두어 이러한 행위를 대행하게 할 수 있다.
국사행위 외에도 천황과 황족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공적인 활동 및 역할을 수행한다.
* 주요 의식 및 제사 주관
* 황실 의식: 즉위의례나 대상의례와 같은 황위 계승 관련 중요 의식을 비롯한 여러 황실 의식을 주관한다. 과거 대일본제국헌법과 구 황실전범 하의 황실령에 의해 규정되었던 의식들은 현재 폐지되었으나, 관례에 따라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 의식은 국사행위로서의 의식과 황실의 사적인 행위로서의 의식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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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제사: 풍년과 국가,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도 의식이다. 일본신화에 따라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자손으로 여겨지는 천황이 주관하며, 주로 현재의 공휴일에 해당하는 날에 거행된다. 대표적인 제사는 다음과 같다.
| 월 | 일 | 제례 |
|---|---|---|
| 1월 | 1일 | 사방배(四方拝) |
| 세단제(歳旦祭) | ||
| 3일 | 원시제(元始祭) | |
| 4일 | 소사시(奏事始) | |
| 7일 | 선제제(先帝祭)(쇼와 천황제) | |
| 30일 | 고메이 천황례제 | |
| 2월 | 17일 | 기년제(祈年祭) |
| 23일 | 천장제(天長祭) (천장절제) | |
| 3월 | 춘분의 날 | 춘계 황령제(皇霊祭) |
| 춘계 신전제(神殿祭) | ||
| 4월 | 3일 | 신무천황제(神武天皇祭) |
| 황령전 어신락(皇霊殿御神楽) | ||
| 6월 | 16일 | 향순황후(香淳皇后)례제 |
| 30일 | 절절(節折) | |
| 대발(大祓) | ||
| 7월 | 30일 | 메이지 천황례제 |
| 9월 | 추분의 날 | 추계 황령제(皇霊祭) |
| 추계 신전제(神殿祭) | ||
| 10월 | 17일 | 신상제(神嘗祭) |
| 11월 | 23일 | 신상제(新嘗祭) |
| 12월 | 중순 | 현소 어신락(賢所御神楽) |
| 25일 | 다이쇼 천황례제 | |
| 31일 | 절절(節折) | |
| 대발(大祓) |
* 국민과의 교류
* 일반참하: 신년과 천황탄생일을 기념하여 황궁에서 열리는 행사이다. 천황과 황족이 황궁 장화전 베란다에 나와 국민들의 축하를 받는다. 이는 국사행위가 아닌 공무로 간주된다. 궁내청 발표에 따르면, 2008년에는 역대 최고인 2만 2655명이 참하했으며, 참석자들은 대부분 일장기 소형기를 흔들며 박수로 맞이하는 것이 관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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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회: 천황과 황후가 주최하는 사교 모임으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아카사카 어용에서 개최된다.
* 행차: 메이지 천황 등 과거 천황들의 순행을 본받아, 쇼와 천황 이후 현재까지 전국 순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의식에 주빈으로 참석하여 축사나 인사말(어사(御言葉))을 하는 것 외에도, 전쟁이나 재해 피해 지역 방문, 의료기관, 사회복지시설, 아동복지시설 방문, 전몰자 위령비 참배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 가회시: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궁중에서 열리는 와카 모임으로, 정해진 주제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시(詠進歌)를 모집한다.
* 황궁 봉사활동 접수: 궁내청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인 의사에 기반한 무급 자원봉사로서 황궁 및 아카사카어용지의 청소 활동 참가를 받는다.
* 황궁 등 시설 참관 허가: 고쿄, 교토 고쇼, 교토 센토 고쇼, 게이케이리큐 등의 황실 관련 시설 참관을 사전 예약을 통해 허가하며, 이는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활동이다.
* 국제 관계
* 외국 왕실과의 교류: 다른 나라의 군주제 국가 왕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협정에 따라 각 왕실에 불행이 있을 경우 조기를 게양하고 조문하는 것이 관례이다.
* 외교 사절 접견: 천황의 국사 행위인 "외국의 외교관 접수"의 일환으로, 신임장 제정식 시 도쿄역에서 황궁까지 황실 마차를 이용한 영접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각국과의 친선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 외국 정상과의 만남: 외국 국가원수와의 만남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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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성원
일본 황실의 구성원은 일본국 헌법 및 황실전범에 따라 천황, 황후, 상황, 상황후, 그리고 황족으로 이루어진다. 황족에는 황태후, 태황태후, 친왕, 왕, 친왕비, 왕비, 내친왕, 여왕이 포함된다.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에 따라 퇴위한 천황인 상황 및 그 배우자인 상황후도 황실 구성원이다. 과거에는 궁실(宮室) 또는 제실(帝室)로도 불렸다.
1947년 10월, 11개의 방계 황족이 황실에서 제외된 후, 황실의 공식 구성원은 사실상 다이쇼 천황의 직계 남성 후손과 그 배우자, 그리고 미혼의 직계 여성 후손으로 제한되었다. 황족이 아닌 일반 여성이 황족 남성과 결혼하면 황족이 될 수 있다. 반면, 황족 여성은 천황이나 다른 황족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한, 일반 남성과 결혼하면 황족 신분을 잃는다(신적강하).
현재(2024년 기준) 황실 구성원은 총 16명이다.
황실 구성원은 일반 국민과 달리 호적 대신 '황통보(皇統譜)'라는 특별한 신분 등록부에 기록된다. 이 때문에 성(姓)을 가지지 않으며, '칭호+이름+신위' 형식으로 표기된다. 예를 들어, 아이코 내친왕의 정식 표기는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敬宮愛子内親王)'이며, '도시노미야(敬宮)'는 칭호이지 성이 아니다.
황실 구성원도 일본국 헌법 제10조에 따라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 국민"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호적이 없어 공직선거법 부칙에 따라 참정권은 당분간 정지되어 있다. 또한, 황족이라는 특수한 지위 때문에 일반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적 인권이 상당 부분 제약받는다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이 사실상 제한되며, 안전을 위해 24시간 감시를 받고 외출 시에는 항상 황궁호위관이나 경찰관의 경호를 받아야 한다. 종교적으로도 천황은 일본 신화에 따라 신토 의례를 주관해야 하므로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경제적으로는 국고에서 지급되는 황실비로 생활하며, 공적인 활동 비용은 궁정비, 사적인 비용은 내정비(천황 일가) 또는 황족비(기타 궁가)로 충당한다. 황족은 경비상의 이유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
궁가(宮家)는 궁호(宮号)를 받은 황족의 가계를 의미한다. 현재는 다음 4개의 궁가가 존재한다.
결혼으로 황적에서 이탈하여 일반인이 된 전 황족 여성 중 현존하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이름 | 결혼 전 신분 | 생년월일 | 관계 |
|---|---|---|---|
| 이케다 아츠코 | 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 | 1931년 3월 7일 | 쇼와 천황의 넷째 딸 |
| 시마즈 타카코 | 스가노미야 타카코 내친왕 | 1939년 3월 2일 | 쇼와 천황의 다섯째 딸 |
| 고노에 야스코 | 야스코 내친왕 | 1944년 4월 26일 |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첫째 딸 |
| 센 마사코 | 마사코 여왕 | 1951년 10월 23일 |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둘째 딸 |
| 구로다 사야코 |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 | 1969년 4월 18일 | 상황 아키히토의 외동딸 |
| 센게 노리코 | 노리코 여왕 | 1988년 7월 22일 |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둘째 딸 |
| 모리야 아야코 | 아야코 여왕 | 1990년 9월 15일 |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셋째 딸 |
| 고무로 마코 | 마코 내친왕 | 1991년 10월 23일 |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첫째 딸 |
4.1. 가계도
천황( 天皇일본어)은 일본 황실의 수장이다.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 天皇の退位等に関する皇室典範特例法일본어) 제3조와 제4조는 상황( 上皇일본어)과 상황황후( 上皇后일본어)를 정의한다.
황실전범( 皇室典範일본어) 제5조는 황족( 皇族일본어)을 황후( 皇后일본어), 황태후( 太皇太后일본어), 황태후( 皇太后일본어), 천황의 적자와 적장손인 친왕( 親王일본어) 및 그 배우자인 친왕비( 親王妃일본어), 천황의 미혼 적녀와 적장손녀인 내친왕( 内親王일본어), 천황의 3대 이후 적장자손인 왕( 王일본어)과 그 배우자인 왕비( 王妃일본어), 그리고 천황의 3대 이후 미혼 적녀인 여왕( 女王일본어)으로 정의한다.
영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친왕(親王)과 왕(王) 모두 "왕자"로, 친왕비(親王妃), 내친왕(内親王), 왕비(王妃), 여왕(女王)은 모두 "공주"로 번역된다.
1947년 10월, 11개의 방계 황족이 황실에서 제외된 이후, 황실의 공식 구성원은 사실상 황족 외의 사람과 결혼한 여성 및 그 자손을 제외한 다이쇼 천황의 남계 후손으로 제한되었다.
현재 황족은 16명이다. 아래는 현재 황실 구성원의 계보를 간략히 나타낸 것이다. 상세한 계보는 일본 황실 계보 목록 문서를 참조하라.
* 나루히토 천황
* 마사코 황후 황후
* 아이코 내친왕
* 아키히토 상황
* 미치코 상황황후 상황황후
* 후미히토 황태자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 기코 황태자비 (후미히토 친왕비 기코)
* 가코 내친왕
* 히사히토 친왕
* 마사히토 친왕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 하나코 친왕비 (마사히토 친왕비 하나코)
* 노부코 친왕비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의 비)
* 아키코 여왕
* 요코 여왕
* 히사코 친왕비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비)
* 쓰구코 여왕
참고
* 굵은 글씨는 현재 황실 구성원을 나타낸다.
* 괄호 안의 숫자는 황위 계승 순위를 나타낸다. (단, 여성 황족은 계승권이 없다.)
* 이탤릭체는 결혼으로 황실을 떠난 전 황족을 나타낸다.
* †는 사망자를 나타낸다.
===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가문은 상황 아키히토의 차남이자 현 천황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 친왕이 창설한 궁가이다. 후미히토 친왕은 현재 황태자(황위 계승 순위 1위)이며, 그의 아들 히사히토 친왕은 황위 계승 순위 2위이다. 이 가문은 황실전범에 따른 황위 계승권을 가진 남성 황족을 2명 보유하고 있다.
궁저는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의 아카사카 어용지 내에 있으며, 1997년 3월부터는 옛 지치부노미야 저택을 사용하고 있다. 2021년에는 장녀 마코 내친왕이 결혼으로 황족 신분을 잃었다(황실전범 제1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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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5. 황실 관련 용어
일본 황실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고시츠(皇室, 황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코카(皇家, 황가)라고도 부른다. 과거 구 일본제국헌법과 구 황실전범 하에서는 큐시츠(宮室, 궁실) 또는 테이시츠(帝室, 제실)라는 용어도 사용되었다.
황실 구성원의 신분은 일본국헌법 및 황실전범에 규정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다.
* 천황
* 황후: 천황의 배우자
* 황태후: 선대 천황의 배우자
* 태황태후: 선선대 천황의 배우자
* 황태자 및 황태손, 그리고 그 배우자인 황태자비(황태손비)
* 친왕: 천황의 아들과 손자 (적출 남계)
* 왕: 천황의 증손 이하 남계 자손 (적출 남계)
* 내친왕: 천황의 딸과 손녀 (적출 남계)
* 여왕: 천황의 증손녀 이하 남계 자손 (적출 남계)
* 친왕비: 친왕의 배우자
* 왕비: 왕의 배우자
또한,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에 따라 퇴위한 천황인 상황 및 그 배우자인 상황후도 황실 구성원에 포함된다.
일반 국민 여성(국적 제한 없음)은 황족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황족 신분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만 15세 이상의 내친왕, 왕, 여왕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황족 신분을 떠날 수 있으며(황적이탈), 황태자 및 황태손을 제외한 친왕, 내친왕, 왕, 여왕은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황실회의의 의결을 거쳐 신분을 떠날 수 있다. 특히 황족 여성은 천황 및 다른 황족 이외의 남성과 결혼하면 황족 신분을 상실한다(이른바 신적강하).
역사적으로 황실의 직계 남계에서 분리된 분가들은 주계와 구별하기 위해 성(姓)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1947년 법률 개정 전까지 황족(皇族 Kōzoku)으로 간주되었다. 주요 분가로는 신노케(親王家, Shinnōke)가 있으며, 그중 후시미노미야(伏見宮) 가문이 가장 높은 지위를 가졌다. 후시미노미야 가문에서는 다시 오케(王家, Ōke)라는 분가들이 갈라져 나왔는데, 현대까지 이어진 가문으로는 쿠니(久邇), 카야(賀陽), 아사카(朝香), 히가시쿠니(東久邇), 타케다(竹田)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계승권에서 제외되어 쿠게(公家, 공가)나 부케(武家, 무가) 신분으로 강등된 황자들로부터 유래한 가문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미나모토(源, Genji), 다이라(平, Heishi), 아베(安倍) 등이 있으며, 인척 관계를 통해 형성된 다치바나(橘) 가문 등도 있다. 이들 가문에서 다시 수많은 분가들이 갈라져 나와 귀족 일본 씨족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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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척경, 천총운검, 야사카노마가타마
성씨 부재
천황과 황족은 씨족 제도에서 유래한 씨(우지)나 성(카바네)를 가지지 않는다. 궁가(宮家)의 당주가 사용하는 “○○궁”과 같은 칭호는 개인의 궁호(宮号)일 뿐, 일반 국민의 성명과는 다르다.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서는 대왕(おおきみ, 오오키미, 후의 천황)이 신하에게 씨(氏)와 성(姓)을 부여하는 존재였다(씨족 제도). 따라서 씨족을 부여하는 상위 존재가 없는 대왕 자신은 씨족을 가지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이며, 고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에서 왕조 교체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근거 중 하나로 해석되기도 한다. 1072년 일본 승려 성심(成尋)이 북송의 신종을 만났을 때 "본국 왕의 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본국 왕에게는 성이 없다"고 답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씨족 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인 5세기의 왜의 오왕은 중국 기록(『송서』 왜국전 등)에 '왜찬(倭讚)', '왜제(倭濟)'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왜왕이 '왜(倭)'라는 성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남조 송과의 책봉 체제 관계 속에서 성을 칭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왜 왕가가 '왜' 성을 포기한 시기는 중국 책봉 체제에서 이탈한 5세기 말 또는 씨족 제도가 형성되던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 사이로 추정된다.
『수서』 왜국전에는 왜왕의 성이 "아매(阿毎)"(아마 또는 아메)라는 기록이 있어 7세기 초까지 대왕가가 성을 가졌다는 설도 있지만, 중국식 한자 성이 아니므로 성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아매"는 이름(字)인 타라시히코(タリシヒコ)와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일본어로는 "아메 타라시히코(天垂らし彦)"가 되어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 즉 '천손(天孫)'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는 중국의 천자(天子)에 해당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다른 해석으로는 『만엽집』 등을 근거로 '하늘이 충만한 남자'라는 의미의 존칭으로 보기도 한다.
요시다 타카시는 왜국이 5세기 말 중국 책봉 체제에서 이탈하고 7세기 초에도 책봉을 받지 않은 것이, 대왕(천황)이 성을 가지지 않고 성(姓) 제도를 초월하는 존재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관련 존칭어
* 어사진(御写真): 천황, 황후 및 기타 황족의 사진을 높여 부르는 말. 특히 관공서나 학교 등에 하사된 메이지 천황·쇼켄 황태후, 다이쇼 천황·정명황후, 쇼와 천황·고준황후의 사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전(戦前), 궁내성(현재 궁내청)의 공식 용어는 '어사진(御寫眞)'이었으나, 일반에서는 '어진'(ごしんえい)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 어영(御影): 천황·황후의 사진. '교에이(ぎょえい)'라고 읽는다. 1910년(메이지 43년) 이후, 문부성(현재 문부과학성) 조사위원회에서 정하여 각 학교에 배포했다.
* 어존영(御尊影), 어존상(御尊像), 어초상(御肖像): 천황, 황후, 황태후의 사진. 주로 신문·잡지에 게재된 것을 가리킨다.
* 자칭존경어: 천황이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1인칭 대명사. 제2차 세계 대전 직후까지는 짐(朕, ちん)을 사용했으나, 전후에는 와타시(私, わたし 또는 わたくし)를 사용하고 있다.
6. 논란 및 과제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다케다노미야 쓰네요시 등 일부 황족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생물 의학 시설의 승인, 자금 조달, 공급 및 검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비윤리적 인체 실험 프로그램에 관여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는 전쟁 범죄와 관련된 일본 황실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다.
또한, 1978년 이후 쇼와 천황, 아키히토, 나루히토 등 역대 천황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지 않고 있다. 이는 쇼와 천황이 A급 전범 합사에 대해 불만을 표명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 및 처리와 관련된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황실의 정치적·상징적 역할에 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일본의 궁실 제도 유지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1997년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2%가 궁실 제도 유지를 지지했으나, 이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3 가량이 궁실 제도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답했다. 궁실 제도는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민적 통합, 정신적 중심, 외교적 역할, 전통 계승 등의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황실 제도가 현대 사회와 맞지 않으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