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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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네딘 지단은 197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알제리계 프랑스인으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선수 시절에는 칸, 보르도,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서 2002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8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에서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MVP를 수상했다. 감독으로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며 3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다양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단은 뛰어난 기술과 경기 조율 능력으로 "축구의 마법사"로 불리며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지단은 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 5월 18일 낭트와의 디비시옹 1 경기에서 데뷔했고,[530] 1991년 2월 10일 낭트를 상대로 첫 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끌었다.[531] 칸에서의 첫 시즌에 리그 4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에 성공했다.[533]
1988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U-16 UEFA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프랑스 대표팀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지단 자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398] 이후에도 지단은 다양한 연령별 프랑스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2. 유년 시절과 초기 경력
지네딘 지단은 1972년 6월 23일 마르세유의 라 카스테얀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제리의 카빌리아 혈통이다. 그의 부모 스마일과 말리카는 1953년 알제리 전쟁 발발 전에 알제리 아게문 마을에서 파리로 이주했다.[521][522] 그의 부모는 파리 북부 빈민촌에 정착했으나, 생계 문제로 1960년대 중반 마르세유 북부 라 카스테얀으로 이주했다. 지단은 4남 1녀 중 막내로, 그의 부친은 백화점 창고지기이자 야간 경비원이었고, 모친은 전업 주부였다.[521] 지단 가족은 마르세유의 우범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522][523]
지단은 5세 때 라 카스테얀의 주거 지역 광장(플라스 타르탄)에서 축구를 처음 접했다.[524] 그는 마르세유의 블라즈 슬리슈코비치, 엔초 프란체스콜리, 장피에르 파팽을 유년 시절의 본보기로 삼았다.[525][526] 10세 때, 지단은 인근 카스테얀의 생-앙리 유소년부에 입단하여 첫 선수 면허를 받았다.[527] 1년 반 후, 셉템-레-바욘에 입단하여 14세까지 활동했다. 같은 시기, 그는 엑상프로방스의 CREPS 3일 훈련에 참가하여 칸의 스카우터 장 바로에게 발굴되었다.[528]
3. 클럽 경력
1992-93 시즌, 보르도로 이적하여 4년간 활약하며 UEFA 인터토토컵 1995 우승,[534] UEFA컵 1995-96 준우승을 차지했다.[535][536] 1996년 리그 1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6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유벤투스로 이적,[540] 세리에 A와 인터콘티넨털컵 우승,[541] 세리에 A 2연패를 달성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1998년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2001년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다.
2001년, 당시 (7750만유로)의 역대 최고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544][545] 갈락티코스의 일원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승골,[548]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고,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552] 2006년 5월 7일 비야레알과의 고별 경기에서 득점하며 은퇴했다.[528]
3. 1. 칸
지단은 6주 훈련을 목적으로 칸에 입단했지만, 4년 동안 칸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가족을 떠나 칸에 입단한 그는 장-클로드 엘리노 칸 단장의 초청으로 20명의 훈련생들과 공유하던 기숙사를 떠나 단장 가족과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지단은 엘리노 단장과 동거하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았다고 회고했다.[521]
칸의 감독은 지단이 혈통과 가족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에 원색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관중을 해칠 수도 있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529] 칸 시절 1군 감독이었던 장 바로는 지단이 분노를 조절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단은 칸에서 자신의 출생 신분을 모욕한 상대에게 주먹질을 한 대가로 1주차에 주로 청소를 맡았다.[529] 그는 현역 시절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라는 점에서 양쪽 문화에 걸쳐있고, 라 카스테얀의 빈민가에서 성장하며 생존한 것으로 인해 자기 분열에 시달렸으며, 이는 현역 시절 간혹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529]
지단은 1989년 5월 18일, 낭트와의 디비시옹 1 경기에서 칸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530] 1991년 2월 10일에는 낭트를 상대로 칸 소속 첫 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이끌었다.[531] 경기 후 칸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잔치에서 지단은 알랭 페드레티 칸 회장으로부터 차를 선물받았는데, 페드레티 회장은 칸에서 첫 골을 넣으면 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532] 경기장에서 지단은 공을 다루는 특출난 기술을 선보이며,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오를 것임을 예고하는 비범함을 보여주었다.[528] 칸에서의 첫 시즌에 구단은 리그 4위를 기록하며 UEFA컵에 진출, 사상 첫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확보했다. 이는 1948-49 시즌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이래 구단 역사상 1부 리그 최고 성적이었다.[533]
3. 2. 보르도
지단은 1992-93 시즌에 보르도로 이적해 4년 동안 활동했다. UEFA 인터토토컵 1995에서 카를스루에를 꺾고 우승했으며,[534] UEFA컵 1995-96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535][536] 그는 빅상트 리자라쥐, 크리스토프 뒤가리와 함께 뛰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보르도와 1998년 프랑스 대표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5년,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 케니 달글리시는 지단과 뒤가리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구단주 잭 워커는 "팀 셔우드가 있는데 지단을 영입할 필요가 있나?"라며 반대했다.[537] 1996-96 시즌 전, 축구 에이전트 배리 실크먼에 따르면, 지단은 120만 파운드에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제의를 받았지만, 구단은 그를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뛰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해 거절했다.[538] 1996년, 지단은 리그 1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3. 3. 유벤투스
1996년 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유벤투스는 보르도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던 지단을 영입했다.[540] 지단은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즉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세리에 A와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우승했다.[541] 그러나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폴 램버트에게 밀착 견제를 당하며 1-3으로 완패했다.[542]
이후 지단은 32번의 리그 경기에서 7골을 기록, 세리에 A 2연패를 이끌며 팀의 ''작은 방패''를 지켜냈다. 유벤투스는 3년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1998년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0-1로 패했다. 1998년, 지단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2000-01 시즌, 유벤투스는 리그 준우승에 그쳤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요헨 킨츠를 머리로 가격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며 1차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했다.[543] 2001년, 지단은 두 번째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다.
3. 4. 레알 마드리드
2001년, 지단은 당시 (7750만유로)의 역대 최고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544][545] 4년 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은하 군단'' 정책의 일환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한 지단은, 마드리드에서의 첫 시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버쿠젠을 상대로 왼발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548] 이 골은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꼽힌다.[549][550][551]
이듬해, 지단은 루이스 피구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 통산 세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552] 2004년, UEFA 골든 주빌리 여론 조사에서 지지자들은 지단을 지난 50년 간 최고의 유럽 축구 선수로 선정했다.[512]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 마지막 시즌은 우승컵 없이 끝났지만, 2006년 1월 세비야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4-2 승리를 이끌었다.[553] 그는 2005-06 시즌 28경기에 출전해 9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호나우두와 데이비드 베컴에 이어 팀 내 득점과 도움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554] 2006년 5월 7일,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 은퇴를 선언한 지단은[555] 비야레알과의 고별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3-3 무승부에 기여했다. 선수단은 ''지단 2001-2006''이 구단 문양 아래에 새겨진 기념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80,000명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관중들은 "마법에 감사합니다"라는 배너를 들고 그의 마지막을 기념했다.[528]
2012년, 지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베테랑 경기에 출전해 레알 마드리드의 3-2 승리를 도왔다. 2013년 4월, 그는 ''마르카''지에 의해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 외국인 11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556]
4. 국가대표팀 경력
1994년 8월 17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위르겐 조르카에프의 부상으로 추가 소집된 지단은 2점 뒤진 상황에서 코랑탱 마르탱 대신 후반 18분부터 출전하여 2골을 넣었고[399], 이 경기를 계기로 대표팀에 정착했다. UEFA 유로 1996 예선에서 지단은 처음 두 경기에 교체 출전했지만, 두 경기 모두 무승부로 끝났고, 그 후 몇 경기에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95년 4월 26일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다시 소집되어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이 경기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한 지단은 프랑스의 4골 중 2골에 관여했다.[400] 10월 11일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는 지단의 하프 발리 골 등으로 3-1로 승리하여 홈에서 5년간 무패를 자랑하던 루마니아를 꺾었다. 최종 경기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2-0으로 승리하여 UEFA 유로 1996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지단은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401]
UEFA 유로 1996에서 프랑스는 4강까지 진출했다. 지단은 대회 내내 평범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였지만, 8강전과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나서서 두 번 모두 성공했다. 프랑스는 체코와의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해 탈락했다.[560]
1998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지단은 상대 팀 주장인 푸아드 아민을 밟아 퇴장당했다.[404] 하지만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지단의 헤딩 2골에 힘입어 첫 우승을 차지했고, 지단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에펠탑에는 지단의 얼굴이 게시되었다.[405] 지단은 이 활약으로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다.[406] UEFA 유로 2000에서도 우승하여 대회 최우수 선수, 그리고 두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2 FIFA 월드컵에서는 대회 직전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 영향으로 덴마크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만 출전했고, 프랑스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408]
UEFA 유로 2004에서 프랑스는 8강에서 탈락했고, 지단은 대회 3골을 기록했지만,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409]
2005년, 프랑스가 2006 FIFA 월드컵 예선 탈락 위기에 놓이자, 지단은 클로드 마케렐레, 릴리앙 튀람과 함께 프랑스 대표팀에 복귀했다.[410][411] 복귀 후 첫 경기인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3-0 승리에 기여했다.
2006 FIFA 월드컵 본선에서 프랑스는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지단은 결승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파넨카 칩킥으로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었지만, 연장 후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여 퇴장당했다. 경기는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가 패배하여 준우승에 그쳤지만, 지단은 대회 MVP인 아디다스 골든볼을 수상했다.
월드컵 통산 12경기 5득점, 유럽 선수권 대회 통산 13경기 5득점. 월드컵 결승 통산 3득점은 바바, 펠레, 제프 허스트와 함께 역대 최다 타이기록이며, 두 대회에 걸친 결승전 득점은 바바, 펠레, 파울 브라이트너에 이어 역대 4번째이다.
4. 1.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1996 직전, 지단은 운전 중 사고를 냈다.[402] 대회까지 부상은 회복되었지만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출전하여 전 경기에 출전, 팀은 4강에 진출했지만, 체코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402] 지단은 "계속 통증을 안고 경기를 했고, 준결승에서는 출전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403]
4. 2. 1998년 FIFA 월드컵
1998년 FIFA 월드컵은 지단이 처음으로 참가한 FIFA 월드컵이었다. 이 대회는 프랑스에서 열렸다. 프랑스는 조별 리그 3경기에서 모두 이겼지만, 지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차전에서 푸아드 아민을 밟아 퇴장당했다. 지단은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에서 퇴장당한 프랑스 선수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1-0으로 이겼고, 지단은 8강전에 복귀하여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이겼다. 프랑스는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에서 2-1로 역전승했다. 지단은 프랑스의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했지만, 이때까지 FIFA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지단과 프랑스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1998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을 만났다. 프랑스는 브라질을 압박했고, 지단은 에마뉘엘 프티와 유리 조르카에프가 찬 코너킥을 모두 머리로 받아넣어 두 골을 기록했다. 지단의 두 골 덕분에 프랑스는 전반전을 2-0으로 앞섰고, FIFA 월드컵 트로피에 가까워졌다.[528] 프티가 후반 추가 시간에 쐐기골을 넣어 3-0으로 승리하며 프랑스는 처음으로 FIFA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지단은 곧바로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샹젤리제에 모인 100만 명의 사람들은 지단의 사진이 에투알 개선문에 "고마워요 지주"라는 말과 함께 비치는 것을 보며 우승을 축하했다.[561][562][563]
4. 3.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0에서 프랑스는 1974년 서독 이후 최초로 FIFA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국가가 되었다. 지단은 이 대회에서 스페인과의 8강전 감아차기 프리킥 골과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 페널티킥 골든골을 포함하여 2골을 기록했다. UEFA는 지단을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했다.[564]
4. 4.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과 세계를 제패했던 프랑스는 2002년 FIFA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참가했지만, 허벅지 부상을 당한 지단은 프랑스의 처음 두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 없이 경기를 치른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두 경기에서 모두 무득점으로 침묵했다. 그는 덴마크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몸상태가 완쾌하지 않은 채 급히 복귀했지만, 프랑스가 1골도 넣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탈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는 대회 역사상 전 대회 우승국이 거둔 역대 최악의 성적이기도 했다.[565]
4. 5. UEFA 유로 2004
UEFA 유로 2004에서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스위스를 꺾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지만, 이후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에 0-1로 패했다. 지단은 잉글랜드와의 조별 리그 1차전에서 추가 시간에 프리킥과 페널티킥으로 2골을 넣어 프랑스에 2-1 승리를 안겼다. 프랑스가 대회에서 탈락한 후, 지단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566]
4. 6. 2006년 FIFA 월드컵
빅상트 리자라쥐, 마르셀 드사이, 클로드 마켈렐레, 릴리앙 튀람과 같은 노장 선수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프랑스의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이 큰 위기에 봉착했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간곡한 부탁에, 지단은 은퇴를 번복하고 국가대표팀에 복귀해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받았다.[567] 지단은 튀랑과 마켈렐레와 함께 국가대표팀에 돌아와 2005년 9월 3일에 페로 제도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복귀전을 펼쳤고, 프랑스가 3-0 완승을 거두었다. 이 삼인방은 4위에 머물러 있던 프랑스가 예선 조에서 1위를 차지해 본선에 직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568] 2006년 5월 27일, 지단은 1-0으로 이긴 멕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로 100번째 경기를 치렀는데, 이 경기는 그가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지단은 드사이, 튀람, 디디에 데샹에 이어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사상 4번째로 100경기를 치른 선수로 기록되었다.[569]
프랑스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부진한 시작을 보였고, 지단은 조별 리그 최종전에 경고 누적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스페인과의 16강전에 복귀해 파트리크 비에라의 골을 도왔고, 스스로 득점도 올렸다. 1998년 FIFA 월드컵 결승전 이래 재회한 브라질과의 8강전 맞대결에서는 단 1번 골문 안으로 찬 공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었다. 지단은 티에리 앙리의 결승골을 도왔고, FIFA는 그를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했다.[570] 프랑스는 6년 전 브뤼셀에서의 맞대결처럼 포르투갈과 준결승전에서 맞대결을 벌였고, 경기의 승부처가 된 것은 지단의 페널티킥 골이었고, 프랑스는 또다시 주요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574]
베를린에서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을 치르기 전, 지단은 대회 최우수 선수로 골든볼을 받았다.[571] 그는 이미 2005-06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 계약이 만료되면서 은퇴할 의사를 밝혔기에 축구계는 지단의 경력 마지막을 장식할 순간을 두 번째 FIFA 월드컵 결승전으로 보았다. 경기 시작 7분 만에 지단은 페널티킥으로 프랑스가 앞서나가게 되었고, 그는 펠레, 파울 브라이트너, 바바에 이어 두 번의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득점을 기록한 4번째 선수가 되었고, 바바, 펠레, 제프 허스트와 함께 3골로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연장 전반에 또다시 득점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머리로 넣으려 한 공이 이탈리아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에 막혔다. 이후 지단은 110분에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을 가격해 퇴장당했고,[572] 그 없이 진행된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에 3-5로 졌다.[573] 지단의 행위는 세계 언론 1면을 장식했는데, 프랑스의 ''르 피가로''지는 그의 박치기가 "혐오스러웠다"고 평했고, ''레키프''지 1면은 "영원히 우리의 본보기 대상이 되었던 당신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요? ... 어떻게 당신과 같은 분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574]
프랑스 귀국 후,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국기를 흔들며 박자에 맞추어 "지주! 지주!"를 연호했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574] 시라크 대통령의 말은 프랑스 국민의 심금을 울렸고, 지단과 연루된 사건을 놓고 실시된 투표에서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61%의 프랑스인은 그의 행위를 벌써 용서했다고 천명했고, 52%는 그의 행동에 공감이 간다고 밝혔다.[574] 필리프 오클레어 프랑스 기자는 지단의 토너먼트전 활약상이 "파란 유니폼을 입은 이래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평했다.[574]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지단은 선수단에 희망을 선사했고, 프랑스의 ''리베라시옹'' 일간 신문은 "1달 동안, 프랑스는 지단으로 꿈을 꿨다"라고 표의했다.[574] 지단은 프랑스 대중 사이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고, 한 프랑스 기자는 "우리 국가적인 영웅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인간적이다"라고 평했다.[574] 인터뷰에서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고, 그 발언으로부터 분노로 감정이 고조된 지단이 박치기를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575] 2010년, 지단은 결승전에서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하느니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감정을 꺼냈지만,[576] 경기에 계속 임해 프랑스가 우승하는데 힘을 거들었을 경우 그가 "절대 혼자 살아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했다.[577] 그는 나중에 "현역 시절에 14번 퇴장당한 것을 돌아보며, 12번은 도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건 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나, 핑계가 아니고, 열정이자, 인성, 끓는 피로 인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578]
결승전 퇴장 이후, 지단은 프로 무대를 나갔고, 그는 자신의 결정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579] FIFA는 지단에게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령을 내렸다.[580] 그러나, 그는 이미 은퇴했기에 FIFA는 징계를 사흘 간 FIFA의 인도주의 활동과 연계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흘 간의 봉사 활동에 참가했다.[581] 지단은 브라질의 카푸와 더불어 6장으로 FIFA 월드컵 경기에서 가장 많은 카드를 수집한 선수가 되었다.[582]
5. 은퇴 이후
은퇴 후,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 베테랑 선수로 정기적으로 경기를 뛰었고, 풋살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2008년 6월 기자 회견에서, 지단은 다시 축구를 할 의사를 밝혔지만, 바로 뛰어들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583]
2009년 6월 1일, 지단은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조언가가 되었다.[584] 그는 호르헤 발다노 사무 총장, 미겔 파르데사 단장과 함께 구단의 주요 결정 권한을 갖게 되었다.[584]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조기에 탈락하자, 지단은 빠른 시일 내에 감독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585]
2010년 9월, 카타르의 2022년 FIFA 월드컵 유치 위원회는 지단을 유치 홍보 대사로 위촉했다고 발표했다.[586] 2022년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카타르가 확정되자,[587] 지단은 "매우 만족스럽다"라고 밝혔다.[588] 그는 "축구가 전 세계 모두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는 국가가 FIFA 월드컵을 유치할 수 있게 헌신이 빛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카타르와 중동 전체가 유치전 승리의 자격이 있으며, 이 덕에 전 기쁩니다. 이는 아랍 세계의 승리입니다."라고 말했다.[517]
지단은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7년 태국에서 열린 자선 경기에서 7750USD (฿260,000)를 모금하여 학교와 주택 건설에 사용했다.[113] 2008년에는 유엔 개발 계획의 지원을 위한 빈곤 퇴치를 위한 경기에 참가했다.[114] 2001년부터 UN 친선 홍보 대사로 활동하며 "모두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115]
2009년에는 캐나다를 방문하여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에서 친선 경기를 가졌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116] 2010년에는 자선 행사 축구 지원에 참가하여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경기를 펼쳤다.[117] 2013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재단을 위한 자선 경기에 참가했다.[118] 2015년에는 에볼라 유행 피해 지역 지원을 위한 빈곤 퇴치를 위한 경기에 참가했다.[119] 2018년에는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 팀 동료들과 함께 자선 경기를 치렀다.[120]
2003년부터 다논 네이션스컵의 공식 홍보대사를 맡는 등 많은 자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6. 지도자 경력
2010년 11월, 지단은 주제 모리뉴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의 요청으로 레알 마드리드 1군의 특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지단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참가하고, 1군 선수단과 동행하며 경기 전 회의, 훈련, 감독과의 모임에 참석했다.[594] 2011년 7월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신임 단장으로 임명되었다.[595] 2013년에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수석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596]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참고 | |||||||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 2014년 6월 25일 | 2016년 1월 4일 | 57 | 26 | 17 | 14 | 88 | 58 | +30 | 45.61 | [261] |
레알 마드리드 | 2016년 1월 4일 | 2018년 5월 31일 | 149 | 105 | 28 | 16 | 398 | 163 | +235 | 70.47 | [262] |
2019년 3월 11일 | 2021년 5월 27일[160] | 114 | 69 | 25 | 20 | 207 | 104 | +103 | 60.53 | [263] | |
통산 | 320 | 200 | 70 | 50 | 693 | 325 | +368 | 62.50 |
6. 1.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2014년 6월,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밝혔다.[516] 그러나 같은 해 8월 29일, 미겔 갈란 스페인 국립 축구 감독 교육원(CENAFE) 원장은 지단이 공식 감독 자격증 없이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을 맡았다고 고발했다.[597] 갈란은 "누구도 축구계와 연관된 어느 일이든지 지단이 올해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을 맡는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으려야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기정 사실화된 일로 레알 마드리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597] 카스티야의 세군다 디비시온 B 개막전 공식 경기 보고서에는 산티아고 산체스가 '하얀 군단'(레알 마드리드를 지칭)의 감독으로, 지단이 수석 코치로 기록되었지만, 갈란은 "이 서열은 서류상에만 존재합니다. 사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지단은 현재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이며, 한편, 그의 동료들에게 죄송하지만, 산체스 씨의 역할은 감독 자격증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라고 주장을 이어갔다.[597][598]6. 2. 레알 마드리드

2016년 1월 4일, 레알 마드리드는 라파엘 베니테스를 해임하고 지단을 2년 반 계약으로 후임 감독으로 임명했다.[599] 지단의 임기 첫 경기는 닷새 후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와의 라 리가 경기로, 레알 마드리드는 5-0 완승을 거두었다.[600] 그가 감독으로 처음 치른 고전 더비 경기는 4월 2일 캄 노우에서 열렸고, 지단은 바르셀로나에 2-1로 승리하여 바르셀로나의 39경기 무패행진에 종지부를 찍었다.[601] 이로써 지단은 2007년 12월 베른트 슈스터 이후 감독으로 치른 첫 고전 더비 경기에서 승리한 첫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되었다.[602]
5월 4일, 지단은 맨체스터 시티를 합계 1-0으로 이기고 레알 마드리드를 2016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려놓았다.[603] 레알 마드리드는 라 리가에서 바르셀로나에 승점 1점 차로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5월 28일에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통산 11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했다. 지단은 선수와 감독으로서 유러피언컵 및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7번째 인물이 되었고, 미겔 무뇨스에 이어 두 번째로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이자 감독으로 모두 대회 우승을 거둔 인물이며, 아르헨티나 이중국적을 가진 엘레니오 에레라를 제외하고 대회를 우승한 첫 프랑스인 감독이 되었다.[604][605][606]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의 첫 정규 시즌인 2016-17 시즌을 2016 UEFA 슈퍼컵에서 세비야를 상대로 승리하며 시작했다.[135] 2016년 12월 10일, 레알 마드리드는 35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며 클럽 신기록을 세웠다.[136] 2016년 12월 18일, 클럽은 2016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의 가시마 앤틀러스를 4-2로 꺾고 2016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137] 2017년 1월 12일 2016-17 코파 델 레이 16강 2차전에서 세비야와 3-3으로 비기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합산 점수 6-3으로 8강에 진출했고, 40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가 기록한 모든 대회 통틀어 39경기 무패 스페인 기록을 경신했다.[138] 3일 후 2016-17 라 리가에서 같은 상대를 상대로 1-2로 원정에서 패하면서 무패 행진이 종료되었다.[139] 그 후 팀은 셀타 비고에 합산 점수 3-4로 패하며 코파 델 레이에서 탈락했다. 그해 5월, 레알 마드리드는 93점을 얻어 5년 만에 첫 번째 우승이자 통산 33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140] 2017년 6월 3일, 클럽의 2017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시대에 처음으로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팀이 되었고, 1989년과 1990년 AC 밀란 이후 이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팀이 되었다.[141][142]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은 12번째였고, 기록을 경신했으며, 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이었다. 이 업적은 "''라 두오데시마''"로도 알려져 있다.[143]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지단은 호세 비야롱가 료렌테와 함께 감독으로 첫 두 시즌 만에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한 두 번째 감독이 되었다.[144]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2017 UEFA 슈퍼컵에서 2-1로 승리하며 2회 연속이자 통산 4번째 UEFA 슈퍼컵을 획득하며 2017-18 시즌을 시작했다.[145] 5일 후, 레알 마드리드는 캄 노우에서 열린 2017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3-1로 꺾었고,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2-0으로 꺾어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 24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마감하고 시즌 두 번째 트로피를 획득했다.[146] 이 우승으로 지단은 비센테 델 보스케와 함께 7개의 타이틀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세 번째로 성공적인 감독이 되었으며, 루이스 몰로니보다 한 개 적었다. 이는 또한 당시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패배한 경기만큼 많은 타이틀을 획득했음을 의미했다. 지단의 성공으로 그는 2017년 The Best FIFA 남자 코치로 선정되었다.[147] 2017년 12월 16일, 지단은 코치로서 8번째 트로피를 획득했는데, 레알 마드리드가 2017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 클럽 그레미우를 1-0으로 꺾고 트로피를 지킨 첫 번째 팀이 되었다.[148] 2018년 1월 24일, 레알 마드리드는 레가네스에게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패하여 2017-18 코파 델 레이 8강에서 탈락했다. 팀의 2017-18 라 리가 캠페인 또한 실망스러웠고, 레알 마드리드는 76점에 그쳐 챔피언 바르셀로나보다 17점 뒤진 3위로 마쳤다. 레알 마드리드는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다시 한번 결승전에 진출하여 리버풀을 3-1로 꺾고 챔피언스 리그 시대에 3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클럽이 되었으며, 1976년 바이에른 뮌헨 이후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당시 그는 밥 페이즐리와 카를로 안첼로티와 함께 유러피언 컵에서 세 번 우승한 세 명의 감독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세 시즌 연속으로 트로피를 획득한 최초의 코치가 되었다.[149] 5월 31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5일 후, 지단은 클럽의 "변화의 필요성"을 떠나는 이유로 언급하며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사임을 발표했다.[150][151]
7. 평가와 전설
지네딘 지단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칭송받았으며,[477] 그의 플레이는 발레의 우아함에 비유되기도 한다.[460]
인물 | 평가 |
---|---|
펠레 | "지단은 거장이다. 지난 10년 동안 그와 같은 선수는 없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162] |
미셸 플라티니 | 지단과 함께 1980년대에 활약한 프랑스의 2대 스타 선수로 꼽힌다.[461][478] "컨트롤이나 패스 등 기본적인 기술에 관해서 지단은 왕이다. 공을 받고 컨트롤하는 면에서 아무도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479] |
케빈 키건 | "아무도 이런 선수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마라도나는 명선수였다. 크루이프도 명선수였다. 그들은 다른 선수들과 달랐지만 비슷했다. 지단은 차원이 다르다. 지단의 공 다루는 솜씨는 마치 그가 지나가는 길을 사는 것과 같다. 그를 매우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비전이다."[480]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지단은 빼어나다. 지단이 피치에 들어서면 다른 10명의 선수들의 움직임까지 갑자기 좋아진다. 그는 다른 별에서 온 것 같다. 마법이다."[481] |
파헤이라 | 지단의 활약과 능력에 대해 "괴물"이라고 칭했다.[163] |
프란츠 베켄바우어 | "지단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며,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했다.[482]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진정한 천재"라고 칭찬하며 "적어도 40세까지는 선수 생활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483] |
호베르투 카를루스 |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뛰었으며, 2010년 레퀴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본 선수 중에 최고"라고 말했다.[484] |
데이비드 베컴 |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말했다.[485] |
사비 에르난데스 |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대결했으며, 2010년 인터뷰에서 엘 클라시코에서 가장 어려웠던 선수로 지단을 꼽았으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선수"라고 말했다.[486] |
호나우지뉴 | "역대 최고의 선수이며, 내 안의 아이돌 중 한 명"이라며 최고의 선수로 지단의 이름을 언급했다.[487] |
리오넬 메시 | "경기 후 유니폼 교환을 나 혼자 부탁한 선수는 딱 한 명, 그게 지단이다"라고 증언했다.[488] |
마르첼로 리피 | "우리가 지난 20년간 본 선수 중에서 가장 재능 있는 선수이다."라고 평가했다. |
티에리 앙리 | 2005년 지단이 국가대표 복귀를 발표했을 때 "지단이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프랑스의 모두가 신의 존재를 깨달았다. 신이 돌아온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에덴 아자르 | 지단을 "역대 최고"로 여긴다.[638] |
지단은 FIFA 올해의 선수로 3번 선정되었는데, 이는 호나우두,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만이 달성한 업적이다.[643] 2002년 ESPN은 지단을 "세계 최대 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묘사했다.[644] 2002년 FIFA 투표에서 FIFA 월드컵 드림팀에 선정되었고,[645] 2004년 UEFA 지난 50년간 최고의 유럽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FIFA 100에 이름을 올렸다.[646] 2004년 프랑스 신문 ''Journal du Dimanche''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역대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인"으로 선정되었다.[648] 2014년 프랑스 TV 채널 TF1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프랑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649] 2016년 프랑스 신문 ''르 파리지앵''이 주도한 연구에서는 "역대 최고의 프랑스 선수"로 선정되었다.[650]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동료 선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제공하는 등 공격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면 직접 슛을 날리는 득점력을 겸비했다.[459] 정력적으로 동료들을 이끄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었다.[461]
현역 시절 마르첼로 리피와 비센테 델 보스케 밑에서 지도를 받았고, 은퇴 후에도 조제 모리뉴나 카를로 안첼로티와 같은 명감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폭넓은 전술 옵션을 갖추고 있다.[490] 또한, 필요 최소한의 말로 선수들을 동기 부여하여 라커룸을 잘 통제하고,[491] 기용하는 선수의 로테이션도 적극적으로 실시한다.[492]
델 보스케는 "유연함에 더해 과감함도 있다"라고 평가했고, 델 보스케의 어시스턴트를 오랫동안 맡았던 토니 그란데는 델 보스케와의 특히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공통점을 지적하며, "그 정도의 선수였으면서도 감독이 된 후에도 에고를 드러내지 않고, 발언이나 태도도 항상 부드럽다. 침착하고, 호전적인 발언을 하는 일도 없다."라고 했으며, 갈락티코스 시대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홍보부장을 지냈던 호아킨 마로트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감독의 공통점으로 "호전적이지 않은 것. 감독으로서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 올바른 것."의 3가지를 들며, 지단의 인품이 팀을 이끄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493] 안첼로티는 끊임없이 배우고 최신 정보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경험을 쌓아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494]
감독으로서도 현역 시절과 변함없는 승부 근성을 보여, 감독으로 치른 타이틀이 걸린 결승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2020년 2월 현재).[495] 그 승부 근성은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496]
8. 수상 내역
선수 시절 | |
---|---|
클럽 | |
보르도 | |
유벤투스 | |
레알 마드리드 | |
국가대표 | |
프랑스 | |
개인 | |
프랑스 디비시옹 1 올해의 영 플레이어 | 1993–94[265] |
프랑스 디비시옹 1 올해의 선수 | 1995–96[265] |
세리에 A 외국인 선수상 | 1996–97, 2000–01 |
옹즈 다르장 | 1997, 2002, 2003 |
ESM 올해의 팀 | 1997–98, 2001–02, 2002–03, 2003–04 |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 1998[265] |
레키프 국제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 1998[267] |
레키프 프랑스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 1998[267]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1998, 2006 |
월드 사커 어워드 올해의 선수 | 1998[265] |
프랑스 풋볼 프랑스 올해의 선수 | 1998, 2002[265] |
옹즈 도르 | 1998, 2000, 2001 |
발롱도르 | 1998[17] |
FIFA 올해의 선수 | 1998, 2000, 2003[17] |
엘 파이스 유럽 올해의 선수 | 1998, 2001, 2002, 2003 |
옹즈 드 브롱즈 | 1999 |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 2000[265] |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팀 | 2000, 2004 |
세리에 A 최다 어시스트 | 2000–01[269] |
세리에 A 올해의 축구 선수 | 2000–01 |
UEFA 올해의 팀 | 2001, 2002, 2003 |
돈 발론 어워드 | 2001–02 |
라 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 | 2001–02[270] |
UEFA 클럽 올해의 축구 선수 | 2002 |
FIFA 월드컵 드림팀 | 2002 |
FIFA 100 | 2004 |
UEFA 지난 50년간 최고의 유럽 선수 | 2004 |
FIFA FIFPro 월드 XI | 2005, 2006 |
IFFHS 세계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 2006[271] |
FIFA 월드컵 골든 볼 | 2006[17] |
UNFP 명예상 | 2007 |
마르카 레옌다 상 | 2008 |
골든 풋 레전드 상 | 2008 |
로레우스 평생 공로상 | 2011[265] |
UEFA 팀 오브 팀 | 2011[276] |
UEFA 챔피언스 리그 지난 20년간 최고의 선수 | 2011[277] |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XI | 2012[278] |
월드 사커 역대 최고의 XI | 2013[279] |
IFFHS 레전드 | 2016[282] |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역대 XI | 2016[283] |
발롱도르 드림 팀 (실버) | 2020[287] |
참조
[1]
웹사이트
Acta del Partido celebrado el 12 de mayo de 2019, en San Sebastián-Donostia
http://actas.rfef.es[...]
Royal Spanish Football Federation
2019-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