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모토 기요미
1. 개요
쓰지모토 기요미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나라현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갖고 NGO 활동을 시작했으며, 사회민주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여 1996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비서관 급여 횡령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임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005년 재선에 성공했다. 사회민주당, 민주당, 입헌민주당 등을 거치며 중의원 의원, 국토교통 부대신 등을 역임했고, 2022년 참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며, 외교, 안보, 젠더 관련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과거 천황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있었으며, 비서 급여 유용 사건, 모리토모 학원 문제 관련 발언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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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辻元 清美 (쓰지모토 기요미) |
|---|---|
| 출생일 | 1960년 4월 28일 |
| 출생지 | 나라현 요시노군 오요도정 |
| 학력 |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 졸업 |
| 직업 | 정치인 |
| 소속 정당 | 사회민주당 (과거) 무소속 (과거) 민주당 (과거) 민진당 (과거) 구 입헌민주당 (과거) 신 입헌민주당 (현재) |
| 웹사이트 | 쓰지모토 기요미 공식 웹사이트 |
| 역대 직책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재해 봉사 활동 담당) |
|---|---|
| 내각 | 간 나오토 제2차 개조내각 |
| 임기 시작 | 2011년 3월 13일 |
| 임기 종료 | 2011년 9월 5일 |
| 참의원 의원 | 비례구 |
| 당선 횟수 (참의원) | 1회 |
| 임기 시작 (참의원) | 2022년 7월 26일 |
| 임기 종료 (참의원) | 현재 |
| 중의원 의원 | 비례긴키블록 (과거) 오사카 10구 (과거) 비례긴키블록 (과거) 오사카 10구 (과거) 비례긴키블록 (과거) 오사카 10구 |
| 당선 횟수 (중의원) | 7회 |
| 임기 시작 (중의원) | 1996년 ~ 2002년 3월 28일, 2005년 9월 11일 |
| 임기 종료 (중의원) | 2021년 10월 14일 |
| 주요 경력 | 입헌민주당 대표 대행 구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초대) 구 입헌민주당 정무조사회장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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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기범 -
나가노 가즈오
1970년대 후반 도요타 상사를 설립해 금괴 사기 사건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 기업인 나가노 가즈오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으나 우익 단체에 의해 암살당했고, 그의 죽음 이후 도요타 상사는 파산하여 일본 사회에 유사한 사기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
일본의 사기범 -
니시구치 아키라
니시구치 아키라는 1963년부터 1964년 사이 일본 각지에서 5명을 살해하고 사기 및 절도를 저지른 연쇄 살인범으로, 승려와 변호사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도피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으며, 그의 범행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일본의 여자 정치인 -
도이 다카코
도이 다카코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헌법학자로, 일본사회당과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며 일본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이자 중의원 의장을 역임했고,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에 기여, 진보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으나, 납북자 문제 대응 및 당 운영에 대한 비판과 친북 성향 논란 등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일본의 여자 정치인 -
야마구치 요시코
야마구치 요시코는 중국에서 태어나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며 친일 논란에 휩싸였으나,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배우 활동을 재개하고 참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펼치다가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민진당의 정치인 -
에다노 유키오
에다노 유키오는 1993년 정계 입문 후 민주당에서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립헌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민진당의 정치인 -
아즈미 준
아즈미 준은 1996년부터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NHK 기자 출신으로 일본신당, 민주당 등을 거쳐 현재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2. 생애
쓰지모토 기요미는 나라현 요시노군 오요도정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백화점에서 근무하다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로 아시아 각국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아시아 각국과 일본의 교류 활성화를 목표로 NGO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다. 이후 여러 시민 운동을 이끌며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도이 다카코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초선 의원이 되었다.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오사카부 제10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비서관 급여 횡령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임하고, 2003년 경시청에 구속되었다. 2004년 도쿄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석패율제로 비례대표에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4선에 성공, 사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하여 민주당, 사회민주당, 국민신당의 연립 정권(民社国連立政権일본어) 탄생을 이끌었다. 이후 국토교통 부대신에 취임했다.
2010년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미일 정부 간 합의에 대한 각의 결정에 서명을 거부한 후쿠시마 미즈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이 파면되면서 사회민주당의 연정 이탈 문제가 발생했다. 쓰지모토는 연정 이탈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결국 사민당이 연정 이탈을 결정하면서 부대신직을 사임했다. 이후 사민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합류했다.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6선 의원이 되었다. 민주당이 민진당으로 개편되면서 당적을 옮겼다.
2017년 민진당이 희망의 당으로 합류하는 것에 반발, 입헌민주당에 입당하여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을 역임했고, 2020년 입헌민주당 부대표와 간사장 대행으로 취임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낙선했다.
2022년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참의원 의원이 되었다. 2024년 1월 26일 입헌민주당 대표 대행에 취임했다.
2.1. 어린 시절과 시민 운동 (1960~1996)
나라현 요시노군 오요도정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서 성장했다. 나고야 대학 교육학부 부속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백화점에서 근무했다. 이후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에 입학하여 1987년에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로 아시아 각국이 갈등하는 것을 보고, 아시아 각국과 일본의 교류 활성화를 목표로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활동했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 회담에 NGO 대표로 참가했고, 1993년에는 에이본 여성 대상 교육상을 받았다.
2.2. 정치 입문과 초기 활동 (1996~2002)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로 아시아 각국이 갈등하는 모습을 지켜본 쓰지모토는 아시아 각국과 일본의 교류 활성화를 목표로 관련 비정부기구(NGO) 단체를 구성해 활동했다. 이후 여러 시민 운동을 이끌며 NGO에 참여하다가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도이 다카코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여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사회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초선 의원이 되었다. 1998년 1월에는 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했고, 에다노 유키오 등과 함께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NPO법)을 같은 해 3월에 성립시켰다. 1998년 9월에는 당 홍보 위원장에 취임했다.
그 외에도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 정보 공개법, 아동 매춘·아동 포르노 금지법 등의 제정에 힘썼다. COP3 "지구 온난화 방지" 프로젝트 팀, 남녀 공동 참여 사회 기본법, 환경 어세스먼트법 심의에 관여했다.
당시 사민당은 자사사 연립 정권의 일익을 담당하는 여당이었지만, 사민당·신당 사키가케 2당은 총선거 직전에 대량의 탈당자를 내고 (그 대부분이 구 민주당 결당에 참가),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참패를 맛보았다.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거쳐 발족한 제2차 하시모토 내각에서는 사민·사키가케는 각료를 내지 않고, 각외 협력으로 전환, 후에 정식으로 연립 정권을 이탈했다. 쓰지모토는 일반적으로 "자사사"라고 불린 연립의 틀을 "사자사"라고 불렀다.
2000년 6월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오사카 10구에서 사민당 공인으로 출마하여, 공명당 공인·자민당 추천의 이시가키 가즈오, 민주당의 히다 미요코 등을 꺾고 재선되었다. 같은 해 7월, 사회민주당 정책 심의 회장에 취임했다.
2002년 3월, 한 주간지가 쓰지모토의 비서관 급여 횡령 의혹을 보도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의원직을 사임하였다.
2.3. 비서 급여 횡령 의혹과 의원직 사퇴 (2002~2004)
2002년 3월, 주간 신조의 보도를 통해 쓰지모토 기요미의 비서 급여 횡령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으로 쓰지모토는 자신의 비서관 급여를 선거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쓰지모토는 3월 28일에 중의원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2003년 7월 18일, 경시청은 쓰지모토를 비롯해 초대 정책 비서, 도이 다카코 당수의 전 비서이자 지도역인 고시마 마사코 등 4명을 비서 급여 사기 혐의로 체포하였다. 이들은 체포 후 증거 은폐를 시도하고 사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2004년 2월, 도쿄 지방 법원은 쓰지모토에게 비서 급여 1840만 엔(18.4)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징역 2년, 집행 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쓰지모토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2004년 6월 사회민주당을 탈당하고, 같은 해 7월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오사카부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4. 정계 복귀와 사회민주당 활동 (2004~2010)
2004년 6월, 쓰지모토는 사회민주당을 탈당하고 같은 해 7월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오사카부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사민당에 복당하여 2005년 9월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10구에 다시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 석패율제로 비례대표에 당선되어 중의원 의원직에 복귀했다.
2009년 8월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정권교체 바람을 타고 약 50%의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 9월, 사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하여 민주당, 사회민주당, 국민신당이 참여한 "민사국 연립 정권(民社国連立政権일본어)" 탄생을 이끌었다. 연립 정권 합의에 따라 국토교통 부대신에 취임했다. 당초 국회대책위원장직에 있었기에 당무 집중을 위해 입각 요청을 고사했으나,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가 각의(국무회의)에서 쓰지모토의 국토교통 부대신 임명에 대한 동의 서명을 하면서 결국 임명을 수락했다. 국회대책위원장 업무는 시게노 야스마사 간사장이 대행했고, 2010년 1월 아즈마 쇼조가 후임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할 때까지 국회대책위원장과 국토교통 부대신을 겸임했다. 국회대책위원장 퇴임 후에는 신설된 사민당 특명 상임 간사에 취임하여 당 집행부에 잔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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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0일, JAL 재생 태스크 포스 해산 후 설치된 일본항공 재건 대책 본부(본부장 마에하라 세이지)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오시카 야스아키에 따르면, 쓰지모토는 "JAL의 파산은 지금까지 일본이 경험한 적 없는 국제 대형 도산이다"라는 인식하에 정부 및 메가뱅크와의 조정을 맡았다. 메가뱅크와의 회담에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다투면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줍니다. 여러분이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100% 납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서로 양보해야 합니다"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11월 6일 JAL 재건 대책 본부가 일본 정책 투자 은행 등 JAL 주력 거래 은행 간부에게 1000억 엔 규모의 "가교 융자"를 요청했을 때, 은행 측은 쓰지모토의 요청을 유보하고, 반대로 JAL에 대한 융자 보증을 정부가 확보할 것을 요청했다. 쓰지모토는 "정부 보증 등으로, 우리도 노력할 테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며 양보하는 자세를 보였다. 최종적으로 JAL은 2010년 1월 19일 회사 갱생법 적용을 신청했다.
2009년 12월 1일, 관광 입국 추진 본부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중국인 관광 비자 취득 요건 완화에 힘썼고, 발급 조건 연수입 25만 위안(약 320만 엔) 이상을 과도한 소득 제한이라며 연수입 6만 위안(약 80만 엔)으로 인하했다. 2010년도 중국인 관광객 수의 전년 대비 41% 증가를 실현한 것에 대해 쓰지모토는 예산이 필요 없는 경제 자극책이라고 자찬했다.
2010년 2월 4일, 국토교통성 관련 공공 사업 예산 배분 정보를 민주당 지방 조직에 누설한 마부치 스미오 국토교통 부대신의 경질을 요구한 자민당에 대해 "(자민당은) 과잉 반응하고 있다"라고 일축했다.
부대신 재임 당시, 대형 순시선은 1척뿐이었다. 해상 보안청 경비력 증강을 위해 쓰지모토는 신형 아키쓰시마 도입을 주장했다.
2010년 5월 28일, 오키나와현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 관련 미일 정부 간 합의에 각의 결정으로 반대하며 서명을 거부한 후쿠시마 미즈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이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게 각료에서 파면당하면서, 연립 정권 이탈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 외유 중이던 쓰지모토는 연립 이탈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정치적으로 하나의 갈림길입니다만, 일본에 돌아가 사민당 동료들과 상의해서, 향후 대응을 결정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거취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은 5월 29일 쓰지모토에게 부대신 유임을 요청했지만, 사민당이 5월 30일 연립 이탈을 결정하면서 쓰지모토도 같은 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5월 31일 사표가 수리되었다. 사표 제출 후 인터뷰에서 "국토교통성은 이권의 소굴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불안이 가득했지만, 많은 직원들이 바꾸려고 하는 마음에 찬동해 주었다. 그만두는 것은 쓸쓸하고 괴롭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연립 이탈에 대해 쓰지모토는 "하토야마 정권 이탈이라는 선택이 좋았는지, 망설여진다. 이탈함으로써 자민당 정권이 부활하거나, 개헌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정작 중요한 후텐마 기지 문제도 어찌할 수 없는 꼴사나움을 견디면서, 정권에 남아있는 편이 여지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옳은 선택이 옳은 결과를 가져온다고는 할 수 없겠지"라고 말했다. "당시, 미일 합의가 있더라도 오키나와의 합의가 없으면 헤노코 이설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각의 결정을 할 수 없는지, 교섭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제동을 걸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26일 밤, 시게노 야스마사 간사장과 회담을 갖고 탈당 의사를 전달했다. 7월 27일 오전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의 탈당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계 제출 후 기자 회견에서 차기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혔다. 탈당 이유로는 "현실과의 투쟁에서 도망가지 않고 국민을 위한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싶다"라고 밝혔다. 후쿠시마와의 면담이 시게노와의 회담 다음 날이 된 이유는 후쿠시마가 쓰지모토와의 대화를 여러 번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8월 19일, 사민당은 쓰지모토의 탈당계를 수리했다. 당 오사카부 연합의 요청에 따라 제명 등 처분은 보류되었다.
9월 28일, 중의원 원내 회파 "민주당·무소속 클럽"에 입회하여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수석 이사로 취임했다. 9월 29일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 리셉션에 참석했다.
2.5. 민주당 합류와 활동 (2010~2017)
2010년 5월 28일, 오키나와현의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하여 미일 정부 간 합의에 대한 각의(국무회의) 결정에 서명을 거부한 후쿠시마 미즈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이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의해 파면되면서, 사회민주당의 연립정권 이탈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 출장 중이던 쓰지모토는 연정 이탈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으나, "일본에 돌아가 사민당 동료들과 상의해서 향후 대응을 결정하겠다"며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대신은 5월 29일 쓰지모토에게 부대신 유임을 요청했지만, 사민당이 5월 30일 연정 이탈을 최종 결정하면서 쓰지모토도 같은 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5월 31일 사표가 수리되었다. 사표 제출 후 인터뷰에서 쓰지모토는 "국토교통성은 이권의 소굴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많은 직원들이 바꾸려고 하는 마음에 찬동해 주었다. 그만두는 것은 쓸쓸하고 괴롭다"며 눈물을 흘렸다.
쓰지모토는 연정 이탈에 대해 "하토야마 정권 이탈이라는 선택이 좋았는지 망설여진다. 이탈함으로써 자민당 정권이 부활하거나, 평화 헌법 개정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후텐마 기지 문제도 정권에 남아있는 편이 더 논의할 여지가 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미일 합의가 있더라도 오키나와의 합의가 없으면 헤노코 이설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각의 결정을 할 수 없는지 교섭하고 있었다. 저는 그 제동을 걸 수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 26일, 쓰지모토는 시게노 야스마사 사민당 간사장과의 회담에서 탈당 의사를 전달했다. 7월 27일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계를 제출하고, 기자 회견에서 차기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혔다. 탈당 이유에 대해서는 "현실과의 투쟁에서 도망가지 않고 국민을 위한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8월 19일, 사민당은 쓰지모토의 탈당계를 수리했다. 제명 등의 처분은 보류되었다.
9월 28일, 쓰지모토는 중의원 원내회파 "민주당·무소속 클럽"에 입회하여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수석 이사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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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3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재해 자원봉사 담당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으로 취임했다.
9월 5일, 노다 내각 출범으로 수상 보좌관을 퇴임했다. 9월 7일 민주당 입당 의사가 보도되자,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는 "응원했던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좋은 일이 아니다. 이념보다 권력에 가까이 가는 쪽을 선택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비판했다. 9월 10일 민주당 오사카부 연합에 입당계를 제출하여 승인받았고, 9월 27일 당 본부 상임 간사회의 승인을 거쳐 정식으로 입당했다. (동시에 중의원 오사카부 제10구 지부장 취임)
10월 20일, 민주당 정조 부회장에 취임했다. 10월 24일, 마에하라 세이지 정조 회장에 의해 "제안형 정책 분류"의 "분류인"으로 선정되었다.
2012년 4월 19일, "가을의 대형 연휴" 도입을 검토하는 프로젝트 팀의 좌장으로 첫 회의를 열었다. 4월 24일, 소비세 증세 법안 각의 결정에 항의하여 사표를 제출한 마쓰자키 데쓰히사 국토교통 부문 회의 좌장의 후임으로 기용되었다.
12월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10구에 출마, 유신회의 마쓰나미 겐타에게 패했지만 비례 긴키 블록에서 부활하여 5선에 성공했다. 당시 오사카부에서 당선된 유일한 민주당 중의원 의원이었다.
2013년 9월, 민주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했다.
2014년 4월 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터키와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원전 수출을 가능하게 하는 원자력 협정 승인안 표결에 당론과 달리 불참했으나, 국회대책위원장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책받지 않았다.
9월, 민주당 넥스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새로운 공공·사회적 포괄·소비자 및 식품 안전·양성 평등·아동 빈곤·자살 대책·NPO)·민주당 새로운 공공·사회적 포괄 종합 조사 회장에 취임했다.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인 '여성 활약' 법안에 대해 정책 담당으로서 수정안 책정에 참여했다.
12월 14일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10구에 출마, 자치노동조합 등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어 6선에 성공했다. 가이에다 반리 대표 사임에 따라 2015년 1월 18일 실시된 대표 선거에서 오카다 가쓰야의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오카다 대표 선출 후 정조 회장 대리에 취임했다.
2015년 12월, 민주당 임원실장에 취임했다.
2.6. 입헌민주당 창당과 활동 (2017~2021)
2017년 9월 28일 민진당 양원 총회에서 희망의 당으로 합류하는 것이 결정되자, 쓰지모토 기요미는 이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입헌민주당에 입당하여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을 역임했고, 2020년에는 입헌민주당의 부대표와 간사장 대행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낙선했다.
2.7. 참의원 의원 당선과 활동 (2022~현재)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후, 2022년 1월 21일 입헌민주당은 차기 제26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비례대표에 쓰지모토를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1월 31일, 쓰지모토는 온라인 보고회를 통해 출마를 공식 표명하고 당 대표 이즈미 켄타에게 공천을 신청했다. 2022년 2월 8일, 입헌민주당은 쓰지모토를 일본 사철 노동 조합 총연합회의 "준 조직 내" 후보로 비례구에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7월 제26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은 비례대표 7석을 획득했고, 쓰지모토는 당내 득표수 1위로 당선되었다. 제211회 국회에서 쓰지모토는 참의원 환경 위원회, 예산 위원회, 헌법 심사회에 소속되었다.
2024년 1월 26일, 입헌민주당 대표 대행에 취임했다.
3. 정책 및 주장
쓰지모토 기요미는 나라현 요시노군 오요도정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백화점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1983년 대학생 시절, 오다 마코토 등 평화주의 활동가들과 함께 피스 보트를 설립했다. 피스 보트는 '평화, 인권,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환경 존중을 증진하기 위해' 교육적인 세계 항해를 조직하는 풀뿌리 국제 우호 단체이다. 일본 정부의 과거 침략에 대한 침묵을 비판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을 방문하여 일본과 이들 국가 간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 왔다. 야세르 아라파트를 여러 번 만났으며,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2002년 피스 보트의 입국을 거부했다. 오사카에서 비영리 단체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1992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 회담에 NGO 대표로 참석했다.
1996년 자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일본 사회당은 붕괴되었고, 이후 사회민주당으로 개편되었다. 쓰지모토는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중의원에 당선되어, 가정 폭력, 성 평등, 아동 포르노, 비영리 단체 활동 관련 법률 제정에 기여했다.
쓰지모토 기요미의 기타 정책 및 주장은 다음과 같다.
| 항목 | 내용 | 출처 |
|---|---|---|
| 아베노믹스 평가 | 2014년 "평가하지 않는다", 2017년 "어느 쪽이냐고 하면 평가하지 않는다", 2022년 "평가할 수 없고, 재검토해야 한다" | , , |
| 모리토모 학원 문제・가케 학원 문제에 대한 아베 내각 대응 평가 | 2017년 "평가하지 않는다" | |
|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매각 관련 공문서 위조 문제에 대한 국가 대응 | "더욱 조사와 설명을 해야 한다" | |
| 원자력 발전소 필요성 | 2014년, 2021년 "필요 없다" | , |
| 원자력 발전 의존도 | 2021년, 2022년 "제로로 해야 한다" | , |
| 도덕 교육 찬반 | 2014년 "반대" | |
|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 2014년 "반대", 2017년 "어느 쪽도 아니다" | , |
| 소비세 증세 법안 | 2012년 찬성 |
3.1. 헌법
* 헌법 개정에 대해, 2012년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반대"로 응답했다. 2014년 아사히 신문사의 설문 조사와 2017년, 2021년, 2022년 NHK의 설문 조사에서 "반대" 또는 "어느 쪽이냐 하면 반대"로 응답했다.
* 9조 개헌 및 헌법 9조에 자위대 명기에 대해, 2014년, 2022년 마이니치 신문사와 2021년, 2022년 NHK의 설문 조사에서 "반대"로 응답했다.
* 2014년 7월 1일, 정부는 기존의 헌법 해석을 변경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것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같은 해 아사히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이 결정에 대해 "전혀 평가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으며, 같은 해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반대"로 응답했다.
* 헌법을 개정하고 긴급 사태 조항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2022년 NHK의 설문 조사에서 "반대"로 응답했다.
3.2. 외교·안보
쓰지모토 기요미는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북한과의 대립보다는 대화를 옹호하며, "북한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2012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국외로 이전해야 한다"고 답했고, 2022년 같은 조사에서는 헤노코 이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센카쿠 열도 국유화에 대한 2012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는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재검토 논의에 대해 2014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재검토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제출한 특정 비밀 보호법에 대해 2014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고, 안전 보장 관련법 성립에 대해서는 2017년 설문 조사에서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 기지 공격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반대"라고 답했으며,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에 대해서도 2022년 NHK 설문 조사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일본 정부의 러시아 제재 조치에 대해, 2022년 NHK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하지 않았으나, 같은 해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는 "현재의 제재로 타당하다"고 답했다.
NATO 가맹국의 국방비 목표(GDP 대비 2% 이상)를 예시하며 5년 이내 방위력 강화를 명기한 정부 방침에 대해, 2022년 NHK 설문 조사에서 "어느 정도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징용공 소송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인한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2022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서로 양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3.3. 젠더
쓰지모토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2014년, 2017년, 2021년, 2022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2015년에는 "상사의 판단으로 허가되지 않는 회사도 아직 많기 때문에 통칭 사용으로는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성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서는 2017년, 2021년, 2022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LGBT 등 성소수자를 둘러싼 이해 증진 법안을 조기에 성립시켜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할당제 도입에 대해 2021년, 2022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2021년 5월 12일, 초당파 여성 의원들의 "할당제 실현을 위한 간담회"의 첫 번째 회의에 입헌민주당을 대표하여 참가했다.
3.4. 기타
쓰지모토 기요미는 나라현 요시노군 오요도정에서 태어나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백화점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1983년 대학생 시절, 오다 마코토 등 평화주의 활동가들과 함께 피스 보트를 설립했다. 피스 보트는 '평화, 인권,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환경 존중을 증진하기 위해' 교육적인 세계 항해를 조직하는 풀뿌리 국제 우호 단체이다. 일본 정부의 과거 침략에 대한 침묵을 비판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했던 국가들을 방문하여 일본과 이들 국가 간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 왔다. 야세르 아라파트를 여러 번 만났으며,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2002년 피스 보트의 입국을 거부했다. 오사카에서 비영리 단체 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1992년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 회담에 NGO 대표로 참석했다.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북한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며 북한과의 대립보다는 대화를 옹호했다.
다음은 쓰지모토 기요미의 기타 활동 및 입장이다.
| 항목 | 내용 | 출처 |
|---|---|---|
| 아베노믹스 평가 | 2014년 "평가하지 않는다", 2017년 "어느 쪽이냐고 하면 평가하지 않는다", 2022년 "평가할 수 없고, 재검토해야 한다" | , , |
| 모리토모 학원 문제・가케 학원 문제에 대한 아베 내각 대응 평가 | 2017년 "평가하지 않는다" | |
|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매각 관련 공문서 위조 문제에 대한 국가 대응 | "더욱 조사와 설명을 해야 한다" | |
| 원자력 발전소 필요성 | 2014년, 2021년 "필요 없다" | , |
| 원자력 발전 의존도 | 2021년, 2022년 "제로로 해야 한다" | , |
| 도덕 교육 찬반 | 2014년 "반대" | |
|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 2014년 "반대", 2017년 "어느 쪽도 아니다" | , |
| 소비세 증세 법안 | 2012년 찬성 |
4. 논란 및 비판
쓰지모토 기요미는 2002년 비서 급여 유용 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이 사건은 스즈키 무네오가 사기 혐의로 수감될 당시, 쓰지모토가 그의 주요 적대자 중 한 명으로 부상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 내 갈등으로 인해, 민주당의 한 직원이 쓰지모토가 비서의 정부 급여를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비난했고, 쓰지모토는 이를 인정하고 의원직을 사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후 쓰지모토는 2004년 참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5년 2005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중의원 의석을 얻으며 정계에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스즈키 무네오 역시 같은 해 참의원 선거에서 낙선 후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2022년 9월 27일, 쓰지모토는 2012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관련 단체인 세계평화여성연합 학습회에 참가한 사실을 밝혔다. 이는 자민당과 통일교의 유착을 비판해 온 쓰지모토의 행보와 상반되는 것으로, 그녀는 언론인 아리타 요시후의 통일교 관련 학습회에 참가하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에 반대하는 등 통일교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쓰지모토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 1987년 천황에 대해 "생리적으로 싫다"고 발언했다가 2017년 "일면적이었다"며 반성했으나, 1998년과 2000년 저서에서 헌법상 천황 관련 규정 삭제를 주장했다.
* 1990년 "외국 문화 유입으로 일본 문화 인식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 1998년 "천황제는 헌법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천황의 제도적 지위 폐지를 주장했다.
* 2000년 "천황제 폐지, 여성 총리, 미일 안보 조약 폐기가 일본을 바꿀 것"이라 주장하고, 헌법 9조 변경에 반대했다.
* 2001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에서 전후 보상은 당연하며, 납치 문제만 강조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 2002년 "일본은 소국, 선진국 그룹 이탈이 좋다", "일본은 헌법 9조가 있는 도라에몽의 노진구"라고 발언했다.
* 2005년 "국가의 틀을 붕괴시키는 역할의 국가 붕괴 의원"이라고 발언했다.
* 2008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 기금' 방식에 반성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 2009년 고바야시 요시노리에게 "헌법에 천황이 규정되어 있어 궁중 다과회에 왔다"고 답했다.
* 2013년 아베 정권의 고노 담화 재검토에 대해 "심각한 외교 문제"라고 비판했다.
* 2017년 "자민당 내 양심적인 보수파는 탄압받아 비합법 조직처럼 공부회"를 한다고 발언하고, "아베 신조 얼굴만 봐도 싫다"고 발언했다.
* 2022년 기시다 정권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에 대해 "군비 경쟁 위험, 최대 방어는 외교"라고 비판했다.
* 2023년 중앙분리대를 넘어 도로를 횡단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4.1. 비서 급여 유용 사건
2002년 쓰지모토 기요미는 비서 급여 유용 사건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스즈키 무네오가 사기 혐의로 수감될 당시, 쓰지모토는 그의 주요 적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 내 갈등으로 인해, 민주당의 한 직원이 쓰지모토가 비서의 정부 급여를 선거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쓰지모토는 자금의 부적절한 사용을 인정하고 의원직을 사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4.2. 모리토모 학원 문제 관련 발언
2017년 3월 24일,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 전 이사장 카고이케 야스노리의 부인이 총리 부인 아베 아키에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면서 쓰지모토 기요미와 관련된 내용이 논란이 되었다. 산케이 신문은 이 이메일에 "쓰지모토 기요미가 유치원에 침입하려 했고, 우리를 화나게 하려고 했어요. 거짓 증언을 한 남자는 쓰지모토와 친한 간사이 생 콘 사람이었어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진당은 쓰지모토가 유치원에 침입하거나 작업자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민진당 측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후 칸노 타모츠의 인터뷰에서 카고이케 부인은 쓰지모토의 유치원 침입을 확인하지 않고 이메일을 썼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28일, 산케이신문은 쓰지모토에게 새로운 '3가지 의혹'이 있다며, (1) 유치원 침입, (2) 초등학교 건설 현장 작업원 파견, (3) 민주당 정권 시절 국토교통 부대신으로서 모리토모 학원 인접 부지 '노다 중앙 공원' 구매 관련 보조금 지급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3)은 이메일에 없는 내용으로, 보수 성향 웹사이트 등에서 떠돌던 내용이었다.
민진당은 3월 24일과 28일에 (1), (2) 의혹에 대해 "전혀 없다"고 반박했고, 쓰지모토는 "쓰카모토 유치원에 들어간 적도 없고, 들어가려고 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노다 중앙 공원 관련 보조금은 아소 정권에서 결정된 것을 하토야마 정권에서 인계받아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 29일, 민진당은 산케이 신문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항의하고, 렌호 대표는 "가짜 뉴스"라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4월 6일 기자 회견에서 렌호는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대해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며 반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여러 언론인들이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 (1)에 대해 카고이케 부인은 칸노 타모츠와의 인터뷰에서 쓰지모토의 유치원 침입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딸도 착각이었다고 인정했다.
* (2)에 대해 오기우에 치키는 작업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쓰지모토와 전혀 접점이 없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산케이 신문 보도에 근거해 보도한 방송국에 항의하여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 (3)에 대해 쓰지모토 측은 아소 정권 시절인 2009년 5월, 정부가 도요나카시에 예산 배분을 내시했다는 국회 답변 자료를 제시했다.
쓰지모토는 카고이케 부인의 메일 내용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민간인의 내심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4.3. 구 통일교회와의 관계
2022년 9월 27일, 쓰지모토 기요미는 2012년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관련 조직인 세계평화여성연합 학습회에 참가했음을 밝혔다. 쓰지모토 기요미는 이전부터 통일교와 자민당의 유착을 강하게 비판해 왔으며, 언론인 아리타 요시후의 통일교 관련 학습회에 참가하는 등 해당 조직과 정치의 관계를 밝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2022년 9월 9일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 개최에 대해, 통일교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알려진 아베 신조의 국장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4.4. 기타 발언 논란
* 1987년, 천황에 대해 "생리적으로 싫다", "일본이 싫은 이유 중 하나"라고 발언했다. 2017년에는 이 발언에 대해 "일면적이었다"며 반성했다. 그러나 1998년 저서에서는 헌법 1조부터 8조(천황 관련 조항) 삭제를 주장했고, 2000년 저서에서도 "천황제 폐지"는 아니지만 헌법에서 천황 관련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90년, "외국 문화가 들어와 충돌함으로써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 1998년, "천황제는 헌법의 주권 재민, 법 아래 평등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천황을 국가의 틀에서 빼고 법률에 의한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00년, "천황제를 폐지하고 여성이 총리가 되고, 안보를 폐기해야 일본이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헌법 9조를 바꾸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 2001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전후 보상은 당연하며, 납치 문제만 주장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2002년, "일본은 소국으로 좋고, 선진국 그룹에서 이탈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며, "일본은 도라에몽이라는 헌법 9조가 있는 노진구"라고 비유했다.
* 2005년, "저는 국가의 틀을 얼마나 붕괴시킬까 하는 역할의 국가 붕괴 의원"이라고 발언했다.
* 2008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가 '국민 기금'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 2009년, 고바야시 요시노리에게 "일본국 헌법에 천황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궁중 다과회에) 온 것"이라고 답했다.
* 2013년, 아베 정권의 고노 담화 재검토에 대해 "외교 문제로서 심각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 2017년, "자민당의 제대로 된 보수적인 사람들은 탄압받고 있으니, 수면 아래에서 비합법 조직처럼" 외교 안보 공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아베 신조의 얼굴만 봐도 싫어진다"며 '아베토모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고 발언했다.
* 2022년, 기시다 정권의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에 대해 "군비 경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며, "최대의 방어는 외교"라고 주장했다.
* 2017년,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 문제와 관련하여 카고이케 야스노리 이사장의 부인이 아베 아키에에게 보낸 메일에 쓰지모토의 이름이 언급되었고, 민진당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론했다.
* 2023년, 중앙 분리대를 넘어 도로를 횡단한 것에 대해 "맹성하고 있다"며 사과했다.
5.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96년 중의원 총선거 | 비례대표(긴키) | 사회민주당 | 3,547,240표 | 6.4% | 1위 | 당선 | |
| 2000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사회민주당 | 55,839표 | 29.70% | 1위 | 당선 | |
| 2004년 참의원 통상선거 | 오사카부 선거구 | 무소속 | 718,125표 | 19.67% | 4위 | 낙선 | |
| 2005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사회민주당 | 68,614표 | 31.53% | 2위 | 당선 | 석패율제로 당선 |
| 2009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사회민주당 | 109,693표 | 50.53% | 1위 | 당선 | |
| 2012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민주당 | 65,411표 | 33.29% | 2위 | 당선 | 석패율제로 당선 |
| 2014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민주당 | 61,725표 | 34.35% | 1위 | 당선 | |
| 2017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입헌민주당 | 75,788표 | 42.77% | 1위 | 당선 | |
| 2021년 중의원 총선거 | 오사카부 제10구 | 입헌민주당 | 66,943표 | 33.35% | 2위 | 낙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