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촐레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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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엔촐레른가는 11세기 슈바벤 지역의 촐레른 백작에서 시작되어, 뉘른베르크 성백을 거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로이센 왕국, 그리고 독일 제국 황제를 배출한 유럽의 유서 깊은 가문이다. 프랑켄계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가문으로 이어져 독일 제국을 통치했으며, 1918년 독일 혁명으로 몰락했다. 슈바벤계는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을 통해 루마니아 왕가를 배출했으나, 현재는 분가들이 존재하며, 호엔촐레른 가문의 당주는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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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엔촐레른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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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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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명 | 호엔촐레른 가문 |
독일어 명칭 | Haus Hohenzollern (하우스 호엔촐레른) |
루마니아어 명칭 | Casa de Hohenzollern (카사 데 호엔촐레른) |
어원 | 호엔촐레른 성 |
창시자 | 부르크하르트 1세, 촐레른 영주 |
마지막 통치자 | 독일 및 프로이센: 빌헬름 2세 (1888년–1918년) 루마니아: 미하이 1세 (1927년–1930년, 1940년–1947년) |
현재 수장 | 독일 및 프로이센: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공자 (1994년–현재)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카를 프리드리히 공자 (2010년–현재) |
설립 연도 | 1061년 이전 |
폐지 | 독일 및 프로이센: 1918년 빌헬름 2세의 퇴위 루마니아: 1947년 미하이 1세의 강제 퇴위 |
관련 국가 | 독일, 루마니아 |
민족 | 독일인 |
가문 | |
모가문 | 해당 사항 없음 |
분가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분가 슈바벤 분가 루마니아 분가 |
작위 | |
보유 작위 | 독일 황제 촐레른 백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프로이센 공작 뉘른베르크 성백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 변경백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프로이센 국왕 프로이센 내의 왕 루마니아 국왕 튜턴 기사단 총장 호엔촐레른-헤힝겐 공자 (1869년 이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자 (1869년 이전) 호엔촐레른 공자 (1869년 이후) 뇌샤텔 공자 (1707년–1807년, 1814년–1857년) 루마니아 공자 |
주요 인물 | |
주요 인물 |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1세 프리드리히 2세 빌헬름 1세 빌헬름 2세 |
기타 | |
영지 | 독일, 프로이센, 루마니아, 러시아 |
2. 역사
1191년 촐레른의 백작 프리드리히 3세가 프랑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그의 영지는 두 아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이에 따라 호엔촐레른가는 프랑켄계(호엔촐레른 본가)와 슈바벤계(지크마링겐 가)로 나뉘었다.
프랑켄계 콘라트는 뉘른베르크, 바이로이트, 안스바흐 등을 통치했다. 1415년 프리드리히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에게 충성하고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공으로 브란덴부르크를 상속받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왕위를 획득하고, 1871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제국 황제도 겸했다.
슈바벤계는 독일 남서부의 작은 공국들을 통치했다. 1849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호엔촐레른헤칭겐 두 공국은 프로이센에 흡수되었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 카를 안톤의 차남 카를은 루마니아 왕국 국왕이 되었다. 이 왕조는 1947년 루마니아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존속했다. 호엔촐레른헤칭겐 가문은 1869년 단절되었다.
2011년 5월 11일, 루마니아의 국왕 미하이 1세는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왕가와 모든 왕조적, 역사적 관계를 끊고 가문 이름을 "로므니아 왕가(Familia Regală a României)"로 바꾸었으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의 모든 작위를 포기했다.[19][20]
2. 1. 기원과 초기 역사 (11세기 - 15세기)
호엔촐레른 가문은 1061년 베르톨트 폰 라이헤나우의 연대기에 처음 등장하며, 슈바벤 지역을 다스리는 촐레른 백작이었다.[7] 1095년, 촐레른의 아달베르트 백작은 검은 숲에 성 베네딕토회 소속 알피르스바흐 수도원(Alpirsbach Abbey)을 세웠다.
1111년 호엔촐레른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로부터 백작(Graf) 칭호를 받았다. 119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는 프리드리히 1세 (뉘른베르크 성백)를 뉘른베르크 성백으로 임명하여, 프랑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1218년(또는 1214년) 영지 분할로 장남 콘라트 1세 (뉘른베르크 성백)는 프랑켄계(호엔촐레른 본가)의 시조가 되었고, 차남 프리드리히 2세 (뉘른베르크 성백)는 슈바벤계(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왕가)의 시조가 되었다.
슈바벤의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충실한 봉신이었던 호엔촐레른 가문은 영토를 상당히 확장할 수 있었다. 뉘른베르크의 부르크그라프 프리드리히 1세(Frederick I, Burgrave of Nuremberg)는 1180년 황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함께 사자공 하인리히에 대항했고, 1192년 황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로부터 뉘른베르크 부르크그라프령을 받았다.[6] 1185년경, 그는 뉘른베르크의 부르크그라프 라이프스 콘라트 2세의 딸인 라프스 안 데어 타야 성의 소피아와 결혼했다.[6] 콘라트 2세가 남성 상속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한 후, 프리드리히 3세는 부르크그라프 프리드리히 1세로서 뉘른베르크를 받았다.
1218년, 부르크그라프령은 프리드리히의 장남 뉘른베르크의 콘라트 1세에게 넘어갔고, 그는 1415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을 획득한 프랑켄 호엔촐레른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6]
14세기부터 호엔촐레른 백작들은 경제적 문제와 내부 갈등으로 이웃 뷔르템베르크 백작들과 슈바벤 동맹 도시들의 압박을 받았다. 1423년 슈바벤 동맹 군대는 호엔촐레른 성을 포위하여 파괴했다. 그럼에도 호엔촐레른 가문은 브란덴부르크 사촌들과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을 받아 영지를 유지했다. 1535년, 호엔촐레른 백작 카를 1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봉토로서 지크마링겐과 페링겐 백작령을 받았다.[6]
1576년, 호엔촐레른 백작 카를 1세가 사망하면서 백작령은 세 개의 슈바벤 분가로 분할되었다. 아이텔 프리드리히 4세는 호엔촐레른-헤힝겐 칭호와 함께 호엔촐레른 성을 차지했고, 카를 2세는 지크마링겐과 페링겐을, 크리스토프는 하이거로흐를 차지했다. 크리스토프의 가문은 1634년에 대가 끊겼다.

2. 2. 프랑켄계 호엔촐레른 가문 (15세기 - 20세기)
호엔촐레른가의 프랑켄 분가는 콘라트 1세(1186–1261)에 의해 창설되었다.[3]이 가문은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호엔슈타우펜가와 합스부르크가의 신성 로마 제국 통치자들을 지지했고, 그 대가로 여러 영토를 하사받았다. 16세기부터 이 가문은 개신교로 개종하여 결혼과 주변 토지 매입을 통해 영토 확장을 추진했다.[3]
이 가문은 점차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처음에는 독일의 프랑켄 지역에서 여러 소규모 영토를 획득했다.
연도 | 지역 |
---|---|
1331년 | 안스바흐[4] |
1340년 | 쿨름바흐[4] |
이후, 독일의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 지역, 그리고 현재의 폴란드에서 대규모 영토를 획득하며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
연도 | 지역 |
---|---|
1417년 |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5] |
1525년 | 프로이센 공국[5] |
이러한 영토 확장을 통해 프랑켄 호엔촐레른가는 독일의 작은 군주 가문에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 중 하나로 변모했다.[5]
1701년 1월 8일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칭호는 프로이센 "안"의 왕 칭호에, 1772년 9월 13일부터는 프로이센 "의" 왕 칭호에 부속되었다.[6]
1427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뉘른베르크 제국 자유 도시에 뉘른베르크 성과 부르크그라프로서의 권리를 매각했다.[10]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영토는 뉘른베르크 부르크그라비아의 일부였으며 가족 소유로 남았다.[10]
'''뉘른베르크 부르크그라프'''
재위 기간 | 이름 |
---|---|
1192년–1200년/1204년 | 프리드리히 1세(촐레른 백작(Frederick III)) |
1204년–1218년 | 프리드리히 2세(아들, 또한 촐레른 백작(Frederick IV)) |
1218년–1261년/1262년 | 콘라트 1세/3세(형제, 또한 촐레른 백작) |
1262년–1297년 | 프리드리히 3세(–1297), 아들 |
1297년–1300년 | 요한 1세(1279년경–1300년), 아들 |
1300년–1332년 | 프리드리히 4세(1287년–1332년), 형제 |
1332년–1357년 | 요한 2세(1309년경–1357년), 아들 |
1357년–1397년 | 프리드리히 5세(1333년 이전–1398년), 아들 |
1398년 1월 21일 프리드리히 5세가 사망하자 그의 영토는 두 아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재위 기간 | 이름 |
---|---|
1397년–1420년 | 요한 3세/1세(아들, 또한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 |
1397년–1427년 | 프리드리히 6세/1세/1세(형제, 또한 선제후 및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또한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및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
요한 3세/1세가 1420년 6월 11일에 사망한 후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국은 프리드리히 6세/1세/1세 아래에서 잠시 재결합되었다. 그는 1398년 이후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국을 통치했다. 1420년부터 그는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의 변경백이 되었다. 1411년부터 프리드리히 6세는 브란덴부르크의 총독이 되었고, 나중에는 프리드리히 1세로서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이자 변경백이 되었다. 1440년 9월 21일 그가 사망하자 그의 영토는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 알브레히트 3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이자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 요한 2세,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
2. 2. 1.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15세기 - 18세기)
1415년, 프리드리히 1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로부터 브란덴부르크를 상속받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었다.[2] 1618년, 요한 지기스문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이 성립되었다.[2] 1640년~1688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대선제후) 통치 하에 30년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여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2]호엔촐레른가의 프랑켄 분가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호엔슈타우펜가와 합스부르크가의 신성 로마 제국 통치자들을 지지했고, 그 대가로 여러 영토를 하사받았다. 16세기부터 이 가문은 개신교로 개종하여 결혼과 주변 토지 매입을 통해 영토 확장을 추진했다.[3]
이 가문은 점차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처음에는 독일의 프랑켄 지역에서 여러 소규모 영토를 획득했다.
연도 |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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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년 | 안스바흐[4] |
1340년 | 쿨름바흐[4] |
이후, 독일의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 지역, 그리고 현재의 폴란드에서 대규모 영토를 획득하며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
연도 |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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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5] |
1525년 | 프로이센 공국[5] |
이러한 영토 확장을 통해 프랑켄 호엔촐레른가는 독일의 작은 군주 가문에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 중 하나로 변모했다.[5]
1427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뉘른베르크 제국 자유 도시에 뉘른베르크 성과 부르크그라프로서의 권리를 매각했다.[10]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의 영토는 뉘른베르크 부르크그라비아의 일부였으며 가족의 소유로 남았다.[10]
1701년 1월 8일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칭호는 프로이센 "안"의 왕의 칭호에, 1772년 9월 13일부터는 프로이센 "의" 왕의 칭호에 부속되었다.[6]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15세기 - 18세기)
재위 기간 |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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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년~1440년 | 프리드리히 1세[7] |
1440년~1470년 | 프리드리히 2세[7] |
1470년~1486년 |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7] |
1486년~1499년 | 요한 치체로[7] |
1499년~1535년 | 요아힘 1세 네스토르[7] |
1535년~1571년 | 요아힘 2세 헥토어[7] |
1571년~1598년 | 요한 게오르크[7] |
1598년~1608년 |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7] |
1608년~1619년 | 요한 지기스문트[7] |
1619년-1640년 | 게오르크 빌헬름[7] |
2. 2. 2. 프로이센 왕국 (18세기 - 19세기)
1688년부터 프로이센 공작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대왕
1772년부터 프로이센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