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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푸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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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리푸트라는 초기 불교의 중요한 인물로, 석가모니의 주요 제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은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총명함과 학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교단의 으뜸이 되었으며, 지혜 제일로 칭송받았다. 사리푸트라는 대승 경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석가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유물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불교 미술에서 부처의 오른쪽에 묘사되는 등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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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푸트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마하메브나와 불교 수도원의 사리푸트라 동상,
마하메브나와 불교 수도원의 사리푸트라 동상, "황금빛 안색" 묘사
본명우파티샤 (팔리어: Upatissa)
법명사리푸트라
별칭해당 사항 없음
출생지라지기르, 마가다의 날라카 또는 우파티샤 마을
사망지라지기르, 마가다의 날라카 또는 우파티샤 마을
종교불교
종파모두
주요 제자첫 번째 주요 제자 (Paṭhamasāvaka), 오른손 주요 제자 (Dakkhinasāvaka), 지혜로운 자 중 으뜸
스승고타마 붓다
부모반간타 또는 티샤 (아버지), 사리 (어머니)
불교 용어 정보
산스크리트어Śāriputra (शारिपुत्र), Śāradvatīputra (शारद्वतीपुत्र)
팔리어Sāriputta
버마어ရှင်သာရိပုတ္တရာ (Shin Sāriputtarā), [ʃɪ̀ɴθàɹḭpoʊʔtəɹà]
중국어舎利弗 (Shèlìfú), 舎利子 (Shèlìzi)
일본어舎利弗 (Sharihotsu), 舎利子 (Sharishi)
크메르어សារីបុត្រ (sareibŏt)
한국어사리불
몽골어해당 사항 없음
샨어해당 사항 없음
싱할라어සාරිපුත්ත, සැරියුත්
타밀어해당 사항 없음
태국어สารีบุตร (Saribut)
티베트어ཤཱ་རིའི་བུ་ (sha ri bu)
베트남어Xá Lợi Phất, Xá Lợi Tử
인도네시아어해당 사항 없음
수행 및 가르침
스승산자야 벨라티푸타 (육사외도)
고타마 붓다 (불교)
제자라훌라
지혜 제일
존칭지혜 제일 (智慧第一)

2. 이름의 뜻

사리푸트라의 어머니 이름은 "사리"이다. 산스크리트어 '푸트라(Putra)'는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사리푸트라'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25]

2. 1. 사리불(舍利佛)

사리푸트라의 어머니 이름은 "사리"이다. 산스크리트어 푸트라(Putra)는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25] 중국과 대한민국 불교에서는 흔히 사리불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푸트라(Putra)를 음차하여 "부처 불(佛)"이라는 글자를 썼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불은 사리푸트라가 이미 아나함과(아라한)를 성취하여[26] 윤회를 벗어났다고 증명했다.[27]

2. 2. 사리자(舍利子)

사리푸트라(사리불)의 어머니 이름은 "사리"이다. 산스크리트어 '푸트라(Putra)'는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사리푸트라'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25] 반야심경에서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사리자(舍利子)라고 부른다.[28]

3. 생애

사리푸트라는 북인도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라자가리하) 북부 나라카 촌 출신으로, 사제 계급(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우파티사(Upatissapi)였다.[13] 총명하여 베다 경전을 익혔지만, 브라만교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옆 마을 친구 목건련과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고, 산자야 발라티풋타를 스승으로 삼았다.

앗사지(아설시)를 통해 석가의 가르침[14]을 듣고 예류과에 도달한 사리푸트라는 목건련과 함께 석가 교단으로 개종했다. 산자야 교단의 제자 250명도 이들을 따랐는데, 이는 석가 교단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석가의 제자가 된 사리푸트라는 곧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 교단의 으뜸이 되었다. 석가는 그를 신임하여 설법을 맡기거나, 아들 라훌라(라후라)의 스승으로 삼았다. 데바닷타(제바달다)가 교단을 분리하려 할 때, 사리푸트라는 설법으로 비구들을 되돌렸다.

목건련이 외도에게 살해당하고 사리푸트라도 병에 걸리자, 그는 석가의 허락을 받고 고향 나라카 촌(Nālakagāmapi)[17]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병사했다.[15] 이후 교단의 후계자는 마하 카사파가 되었다.

3. 1. 탄생과 어린 시절

마가다의 수도 라자그리하 밖 나란다의 부유한 바라문 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우파 티사"라고 불렀지만, 어머니 사리에게서 받은 이름인 사리푸트라(사리불)가 더 유명하다.[29] 얼굴이 잘 생겼었고, 학문과 기예를 익혔다. 특히 베다에 통달했다. 16세에 종교 이론들을 해석하고 논박하였으며, 자신과 다른 이론들까지 굴복시켰다.[30] 목련존자와 절친한 친구사이였다.[30]

사리푸트라의 초기 이름은 우파티샤(팔리어: ''우파티싸'')였으며, 고대 인도 마가다 왕국의 라자그라하 근처 마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물라사르바스티바다 전통의 경전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테라바다 전통의 팔리어 주석서에는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불교 순례자 법현은 사리푸트라의 출생 마을을 날라(날라카)라고 언급했고[1], 중국 순례자 현장은 그 마을을 칼라피나카라고 언급했다.[2] 이 마을은 오늘날의 사리차크,[3] 찬디만(찬디마우),[4] 또는 나난(가장 유력한 위치로 간주)으로 다양하게 식별된다.[5][6]

우파티샤는 "황금빛 피부"를 가졌다고 묘사된다. 그는 6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우파세나, 순다, 레바타라는 세 명의 형제와 찰라, 우파찰라, 시수파찰라라는 세 명의 누이가 있었다. 그의 모든 형제들은 자라서 부처의 ''아라한'' 제자가 되었다. 팔리어 전통에 따르면 우파티샤의 아버지는 방군타였으며, 물라사르바스티바다 전통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티샤(팔리어: ''티사'')였다. 우파티샤의 어머니는 사리(다른 이름으로는 루파사리, 사리카, 또는 사라드바티)라고 불렸는데, 그녀가 사리카 새와 같은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 때문에 우파티샤는 나중에 사리푸트라(사리의 아들)로, 때로는 사라드바티푸트라(사라드바티의 아들)로 알려지게 되었다.[7]

우파티샤는 콜리타(나중에 목건련으로 알려짐)와 같은 날 태어났는데, 콜리타는 이웃 마을에서 온 소년으로, 그의 가족은 우파티샤의 가족과 7대째 친구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되었다. 우파티샤와 콜리타는 교육을 통해 베다의 대가가 되었으며, 각각 많은 젊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어느 날, 라자그라하에서 열린 축제에서 삶이 덧없다는 깨달음이 두 친구에게 찾아왔고, 그들은 삼베가 즉, 정신적인 절박함을 느꼈다.

고대 날란다 수도원에 있는 사리푸트라를 기리는 탑. 냐나포니카 테라는 날란다가 사리푸트라가 태어나고 죽었던 곳과 가까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도 비하르 주 날란다 사원의 사리푸트라의 탑

3. 2. 출가

사리푸트라는 친한 친구인 목련존자(목건련)와 축제를 보러 갔다. 둘은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100년 뒤에는 이 사람들은 볼 수 없겠지?"라는 대화를 나누고는 인생무상을 느끼고 출가를 결심했다.[31]

사리푸트라와 목련존자가 처음 스승으로 삼은 사람은 여섯 외도 중 한 명인 "산자야비라지자"였다. 7일 만에 첫 스승의 가르침을 모두 통달하였고, 250명의 스승이 되었으나, "산자야비라지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주지 못해 다른 스승을 찾아나섰다.[32]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라자가리하) 북부 나라카 촌 출신인 사리푸트라는 사제 계급(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우파티사()[13]였다. 타고난 총명함으로 브라만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으며 베다 경전을 익혔지만, 점차 브라만교에 대한 불신을 키워갔다. 옆 마을에 살던 절친한 친구 목건련과 함께 브라만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출가 수행자인 사문이 되었다.

처음 두 사람은 왕사성에서 명성을 떨치던 자유 사상가(육사외도) 중 한 명인 불가지론자 산자야 발라티풋타를 스승으로 삼았다. 사리푸트라는 곧 산자야의 교리를 터득하여 교단의 고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날 석가의 제자 중 한 명인 앗사지(아설시)를 만나 앗사지를 통해 석가의 가르침 일부[14]를 듣자마자 예류과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에 도달했다고 전해진다.

사리푸트라는 목건련과 상의하여 석가 교단으로 개종을 결심했고, 산자야 교단의 제자 신도 250명도 두 사람을 따라 산자야를 떠나 석가 부처님께 귀의했다. 왕사성에서 명성과 세력을 떨치던 산자야 교단에서 고제자 2명과 제자 250명이 이탈한 것에 대한 세상의 동요도 컸고, 석가 교단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3. 3.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되다

사리푸트라(사리불)는 탁발을 나온 석가모니불 제자와의 문답을 통해 "제법무아"를 바로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제자 250명을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서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되었다.[33] 목건련(목련존자)도 함께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되었다.

사리푸트라는 보름 만에 아라한(아나함과)이 되어 번뇌와 집착을 떠났다.[34] 이는 부처(불)가 된 것으로, 음차한 한자어로는 사리불이라고 한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완전히 깨달은 붓다가 세상에 나타날 때는 항상 주요 제자들이 따르게 된다. 현재의 붓다인 고타마 붓다의 경우, 남성 제자 중에서는 사리푸트라와 목건련이, 여성 제자 중에서는 크헤마와 웃팔라반나가 주요 제자였다. 붓다밤사에 따르면, 과거의 모든 붓다 역시 두 명의 주요 남성 제자와 두 명의 주요 여성 제자를 선택했다. 독일의 불교 학자이자 승려인 냐나포니카 테라는 붓다가 항상 두 명의 주요 제자를 선택하는 이유가 각 제자의 특기에 따라 책임을 균형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팔리 경전에 따르면, 먼 과거에 사리푸트라는 사라다라는 부유한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의 재산을 내어주고 고행자가 되어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그는 과거 붓다인 아노마다시 붓다를 방문하여 설법을 듣고, 미래의 붓다의 첫 번째 주요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노마다시 붓다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라다는 친구 시리바다나에게도 같은 붓다의 두 번째 주요 제자가 되기를 권했고, 시리바다나 역시 아노마다시 붓다에게 소원을 빌어 예언을 받았다. 두 친구는 남은 생과 미래의 많은 생 동안 선행을 행했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이 소망은 고타마 붓다 시대에 이루어져 사라다는 사리푸트라로, 시리바다나는 목갈라나로 환생했다.

사리푸트라와 마우드갈야야나가 부처의 제자가 되는 모습을 묘사한 상아 부조


사리푸트라는 스승 산자야를 떠난 후, 부처의 최초 다섯 아라한 제자 중 한 명인 아스바지(Assaji) 스님을 만났다. 그는 스님의 평온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가르침을 구했고, 아스바지 스님은 《연기》 게송을 가르쳤다.

이 게송은 불교 세계에서 널리 알려져 많은 불상에 새겨졌다. 철학자 폴 카루스는 이 게송이 당시 브라만교의 신성한 개입 사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기원과 종말이 인과 관계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고 설명한다.

가르침을 받은 사리푸트라는 수다원(최초의 깨달음의 단계)을 얻었다. 그는 이 사실을 목건련에게 알렸고, 목건련 역시 수다원을 얻었다. 두 친구는 산자야의 제자들 상당수와 함께 부처에게 출가했으며, 그날 사리푸트라와 목건련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아라한이 되었다. 냐나포니카 테라는 두 친구가 수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깨달음을 얻기 전에 더 긴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여러 경전에서는 제자들의 옷이 불교식 가사로 바뀌고 머리카락이 저절로 빠지는 등 기적적인 요소와 함께 서품에 대해 묘사한다. 서품 후, 사리푸트라는 팔리어로 Sāriputta, 목건련은 Moggallāna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리푸트라와 목건련이 서품을 받은 후, 부처는 두 사람을 자신의 두 수제자(aggasavaka)로 선언했다. 이는 과거의 붓다들도 행했던 일이다. 일부 스님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부처는 그들이 여러 생애 전에 수제자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목건련은 강도 높은 명상 수행을 거쳐 서품 7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 사리푸트라는 부처가 베다나빠리그라하 수트라를 설법하는 동안 부채질을 해주면서 서품 2주 후에 아라한이 되었다. 팔리어 경전에는 고행자가 사리푸트라의 조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 티베트, 산스크리트어 경전에는 그의 삼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타카타》와 같은 주석에 따르면, 사리푸트라는 수제자로서 그의 지식이 더 철저해야 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4. 석가모니불의 최상위 제자

사리불(사리푸트라)은 탁발을 나온 석가모니불 제자와의 문답을 통해 "제법무아"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제자 250명을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서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되었다.[33] 목련존자(목건련)도 함께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되었다.

사리푸트라는 보름 만에 아라한(아나함과)이 되어 번뇌와 집착을 떠났다.[34]

보드가야의 사리푸트라 조각상


사리푸트라는 부처의 첫 번째 수제자이자 지혜 제일로 여겨졌으며, 비구니 크세마(팔리어: ''Khemā'')와 이 칭호를 공유했다. 그는 마하목갈라나와 함께 수제자 칭호를 공유했으며, ''마하파다나 수트라''에서는 "수제자 쌍, 훌륭한 쌍" (팔리어: ''sāvakayugaṁ aggaṁ bhaddayugaṁ'')으로 묘사된다. ''마하바가''에서 부처는 사리푸트라와 마하목갈라나를 각각 지혜와 초능력 제일로 선언했다. 경전에는 마하목갈라나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사리푸트라가 답하고, 사리푸트라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마하목갈라나가 답할 수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불교 전통에서는 첫 번째 수제자인 사리푸트라가 관례적으로 부처의 오른쪽에, 두 번째 수제자인 마하목갈라나가 왼쪽에 앉았다고 하며, 불교 예술에서도 그렇게 묘사된다.

사리푸트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체계화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했다. 불교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부처에게 질문하고 가르침을 간청하며, 스스로 요점을 명확히 하고 제자들에게 질문하거나 동료 제자들의 지식을 시험하기도 했다. 부처는 종종 주제를 제시하고 사리푸트라가 자세히 설명하고 설법하도록 했다. 트리피타카에 기록된 ''다수타라 수트라''와 ''상기티 수트라''에서 부처는 허리를 쉬어야 한다며 사리푸트라에게 대신 가르침을 펴도록 했다. 그는 달마를 가르치는 능력으로 "달마 원수" (산스크리트어: ''Dharmasenapati'')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카투마 수트라''에서처럼, 사리푸트라가 비구들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해 부처에게 꾸짖음을 받는 등 결함이 있는 모습도 경전에 나타난다.

사리푸트라는 승가에서 지도자 역할을 맡아 병든 비구를 돌보거나 재가 신자를 방문하는 등 승가의 일상적인 문제를 처리했다. 부처는 비구들에게 다른 곳으로 여행할 때 사리푸트라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리푸트라는 부처를 대신하여 비구들을 서품해달라는 요청을 처음으로 받았으며, 부처의 아들 라훌라를 서품하는 임무도 맡았다. 그는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주고 명상의 대상을 할당했다. ''사차비방가 수트라''에서 부처는 사리푸트라를 아이를 낳는 어머니에, 마하목갈라나를 아이를 키우는 간호사에 비유하며, 사리푸트라가 제자들을 수다원(깨달음의 첫 단계)으로, 마하목갈라나가 아라한(깨달음의 최고 단계)으로 훈련시킨다고 설명했다.

사리푸트라는 이단자와 논쟁하고 개종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 Mūlasarvāstivāda 전통에서 6명의 이단 교사들이 불교도들에게 대결을 요청했을 때, 부처는 사리푸트라에게 그들과 겨루게 했다. 사리푸트라는 정신력을 사용하여 폭풍을 일으키고 변신하여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사밧티 주민들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승려 데바닷타분열을 일으켜 부처의 제자들을 이끌고 떠났을 때, 사리푸트라는 목갈라나와 함께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데바닷타의 공동체에 합류하는 척하여 설법으로 사람들을 부처에게 돌아오게 했다.

사리푸트라는 수도 규칙 제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부처에게 규칙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성실하고 세심하게 수도 규칙을 준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사리푸트라는 마늘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렸지만 부처가 금지했기 때문에 거부했고, 부처가 규칙을 철회한 후에야 마늘을 먹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그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했다. 불교 주석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이단자들의 비판을 막기 위해 수도원을 청소하고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여러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전생에 뱀이었기 때문에 완고하다고 말한다.

목갈라나가 정신력에 가장 뛰어났지만, 사리푸트라 또한 공중 부양, 다른 존재 영역 방문, 과거 생 기억, 천리안 등 여러 정신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 이야기에서 ''야크샤''가 명상 중인 사리푸트라의 머리를 때렸지만, 그는 타격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두통만 느꼈다. 목갈라나는 그의 정신력을 칭찬했다. Mūlasarvāstivāda 경전에서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지옥에 내려가 데바닷타에게 예언을 전하고, 지혜에 기반한 명상으로 지옥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비를 만들었다. 또 다른 경전에서 목갈라나는 사리푸트라를 데려오려 했지만, 사리푸트라는 정신력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목갈라나는 정신력의 힘이 지혜의 힘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교 경전은 사리푸트라가 부처보다 조금 먼저 고향에서 죽었다고 기록한다. 팔리 주석서에 따르면, 그는 명상을 통해 수명이 7일 남았음을 깨닫고 어머니를 가르치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어머니를 개종시킨 후 카르티카 보름날 평화롭게 죽었다. 그러나 물라사르바스띠바다 경전에서는 부처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자발적으로 열반을 달성했다고 한다. 사르바스띠바다 기록에서는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같은 날 자발적으로 열반을 달성했다고 한다.

사리푸트라의 장례는 라자가하에서 열렸고,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다. 조수 춘다는 유물을 사밧티에 있는 부처에게 가져갔고, 부처는 아누파다 수트라에서 그의 지성과 덕을 칭찬했다. 디가니카야 주석에 따르면, 부처는 유물을 제타바나의 차이티야에 안치했다. 물라사르바스띠바다 경전에서는 재가 신자 아나타핀디카가 을 세워 제타바나에 유물을 안치했다.

3. 5. 열반

목련존자(목건련)가 외도에게 폭행당해 열반(죽음)에 들자, 사리푸트라는 석가모니불에게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기를 청했다.[35]

석가모니불이 한 겁(한 우주가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우주가 생기는 시간) 뒤에 열반에 들라고 하자, 사리푸트라는 석가모니불이 그렇게 하면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36]

사리푸트라는 다시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기를 청하며, 석가모니불의 열반(죽음)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석가모니불은 사리푸트라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이를 허락했다.[37]

사리푸트라는 친동생 쭌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사리"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 음력 11월 보름에 열반에 들었다.[38]

4. 일화

사리푸트라(사리불)는 아라한(아나함과)이 되었기에 화내는 마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이단자들과 논쟁하고 그들을 개종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묘사된다.[39] 물라사르바스티바다 전통에 따르면, 6명의 이단 교사들이 불교도들에게 대결을 요청했을 때, 부처는 사리푸트라에게 그들과 겨루게 했다. 물라사르바스티바다 경전에는 사리푸트라가 정신력을 사용하여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사밧티(사위성)의 주민들을 개종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40] 승려 데바닷타가 부처의 수도 공동체에서 분열을 일으켜 부처의 제자들을 이끌고 떠났을 때, 사리푸트라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경전에 따르면,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분열 소식을 듣고 데바닷타의 공동체에 합류하는 척했다. 수석 제자들이 합류한 후, 데바닷타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사리푸트라에게 대신 설교를 하도록 했지만, 데바닷타는 잠이 들었고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부처에게 돌아오게 했다.[41]

불교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부처에게 수도 규칙 제정을 요청했고, 부처는 적절한 때에 규칙을 정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리푸트라는 성실함과 수도 규칙을 세심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사리푸트라는 마늘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렸지만, 부처가 이전에 승려들이 마늘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정했기 때문에 거부했으며, 부처가 그 규칙을 철회한 후에야 마늘을 먹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사리푸트라는 빵이 자신을 탐욕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한 불교 주석에서는 다른 승려들이 탁발을 하러 떠났을 때 사리푸트라가 이단자들이 제자들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수도원을 세심하게 청소하고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여러 불교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전생에 뱀으로 환생했으며, 이것이 그의 완고함의 이유라고 말한다. 마하상기카 경전에서 부처는 일부 승려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한 사리푸트라에게 벌을 내려 햇볕 아래 서 있게 했다. 다른 승려들이 나중에 부처에게 벌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을 때, 부처는 사리푸트라가 벌을 받기로 한 결정은 뱀이었을 때 마음을 바꾸지 않은 것처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마히샤사카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다른 승려가 그가 맛있는 음식을 몰래 먹는다고 의심하자 약으로 처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종류의 과일을 먹는 것을 거부했으며, 부처는 마찬가지로 사리푸트라의 완고함을 설명하기 위해 뱀으로서의 그의 삶을 언급했다.

목갈라나가 정신력에 가장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지만, 불교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 또한 그러한 능력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다양한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공중 부양, 다른 존재 영역 방문, 과거 생 기억, 천리안 등 ''아라한''에게 흔한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보고된다. 한 이야기에서 ''야크샤'' 또는 정령이 명상 중인 사리푸트라의 머리를 때렸다. 목갈라나가 그 사건을 보고 사리푸트라에게 괜찮은지 물었을 때, 사리푸트라는 타격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약간의 두통만 느꼈다고 말했다. 목갈라나는 사리푸트라의 정신력을 칭찬했으며, 이는 ''Patisambhidamagga'' 경전에서 "집중력에 의한 개입의 힘"(Pali: ''samādhivipphāra-iddhi'')의 예로 묘사된다. Mūlasarvāstivāda 경전에서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지옥으로 내려가 데바닷타에게 미래에 ''pratyekabuddha''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다. 목갈라나는 비를 내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했지만 비는 흩어졌다. 사리푸트라는 지혜에 기반한 명상을 사용하여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비를 만들었다. 또 다른 Mūlasarvāstivāda 경전에서 부처는 바느질을 하고 있던 사리푸트라를 데려오기 위해 목갈라나를 보냈다. 사리푸트라가 바느질을 마치고 가겠다고 말하자, 목갈라나는 땅을 흔드는 정신력을 사용했지만 사리푸트라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리푸트라가 먼저 돌아가라고 말하자 목갈라나는 부처에게 돌아갔고, 사리푸트라가 이미 도착했음을 발견했다. 목갈라나는 정신력의 힘은 지혜의 힘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야바라밀다''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종종 ''반야바라밀다''의 참된 의미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묘사된다. ''아스타사하스리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에서 사리푸트라는 ''반야바라밀다''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자인 수보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체에 따르면, 이 경전은 사리푸트라가 이원론에 몰두하여 반야바라밀다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대품반야경''에서 사리푸트라는 질문을 하고 가르침을 받는 주요 대화자 중 한 명이다. 콘체는 사리푸트라가 뛰어난 지혜에도 불구하고 ''반야바라밀다'' 교리가 그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경전에 대한 ''대지도론'' 주석서는 사리푸트라를 전생에서 ''보살''의 길을 따랐지만, 자신의 눈을 땅에 던진 거지에게 기증한 후 포기하고 ''성문승''의 길로 돌아선 사람으로 묘사한다.

종교학자 더글러스 오스토는 사리푸트라가 ''반야바라밀다 경전''에서 이와 같이 묘사되는 이유가 그가 ''아비달마''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비달마''는 ''법''이 최종 현실이라고 가르치는 반면, 이는 모든 ''법''이 공(空)이라고 가르치는 ''반야바라밀다 경전''의 핵심 가르침과 대조를 이루며, 따라서 사리푸트라를 이상적인 대조점으로 만든다.

4. 1. 사위성의 인욕자

사위성 사람들은 사리불이 인내심이 강한 인욕자라고 칭송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사리불의 등을 세게 쳤다. 사리불은 "이게 뭔가?"하고 중얼거린 후, 다시 가던 길을 갔다.[39]

4. 2. 어머니와의 일화

사리(사리푸트라의 어머니)는 4남 3녀를 두었으나, 장남 사리푸트라가 출가한 후 다른 자식들도 모두 출가하여 집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리는 아들 사리푸트라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40]

사리푸트라가 고향에 와서 탁발을 하자, 사리는 아들을 심하게 꾸짖었다. 팔십만 냥이나 되는 재산을 버리고 남이 주는 밥찌꺼기를 먹으며, 시큼하게 상한 쌀죽도 버리지 않고 먹는다고 비난했다. 또한 머리를 밀고 가사를 입은 이상한 사람들과 집집마다 다니며 국자 뒷면을 핥고 다닌다며 모욕하고, 집안을 망쳤다고 질책했다.[41]

이러한 어머니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사리푸트라는 아무 말 없이 탁발을 마치고 돌아갔다.

5. 가족

불교 경전마다 사리푸트라의 가족 구성원에 대한 묘사가 다르다. 다음은 여러 경전에 나타난 사리푸트라의 가족 구성원과 그 이름에 대한 기록이다.

경전아버지어머니형제/자매 (이름, 특징)기타 친족
담마파다, 테라가타방간타(Vanganta)[16]루파사리(Rūpasārī)[17]
『불본행집경』 47단전야나(檀嬢耶那, 단나달다, Dānyayana)
마하승기사설
유부출가사(有部出家事)제사(底沙)앵무
마하바스투사리(サーリー)


  • 유부출가사, 『대지도론』은 마하 구치라를 장조범사(長爪梵士)로, 사리푸트라의 숙부로 묘사한다.
  • 『불본행집경』에서는 대슬(구치라)를 사리푸트라의 동생으로 묘사한다.
  • 팔리어 문헌에서는 마하구치라를 장조범사와 관련시키지 않고, 장조를 사리푸트라의 조카로 묘사한다.

6. 대승경전에서의 사리불

불교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이단자와 논쟁하고 개종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주요 특권 중 하나로 여겨졌다.[22] 대승경전에서는 성문승[22]의 대표자이자 청중의 대변자로서, 보살과 대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유마경''의 사건을 묘사한 중국 그림


팔리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부처 다음가는 현명하고 강력한 '''아라한'''으로 묘사되지만, 대승 불교 경전은 그에게 더 다양한 묘사를 부여한다. 어떤 대승 경전은 그를 위대한 불교 제자로 묘사하는 반면, 다른 경전은 그를 대승 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인물로 묘사하여 소승 불교 전통을 대표하는 대립 구도로 묘사한다.[22] 불교학자 도널드 S. 로페즈 주니어는 후자를 가장 현명한 "소승" 제자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승 교리가 얼마나 심오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아이러니"라고 설명한다.[22]

''반야바라밀다''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종종 ''반야바라밀다''의 참된 의미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묘사된다.[22] ''아스타사하스리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에서 사리푸트라는 ''반야바라밀다''의 궁극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자인 수보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22]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체에 따르면, 이 경전은 사리푸트라가 이원론에 몰두하여 반야바라밀다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한다.[22] ''대품반야경''에서 사리푸트라는 질문을 하고 가르침을 받는 주요 대화자 중 한 명이다.[22] 콘체는 사리푸트라가 이 경전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지혜에도 불구하고 ''반야바라밀다'' 교리가 그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2] 이 경전에 대한 ''대지도론'' 주석서는 사리푸트라를 전생에서 ''보살''의 길을 따랐지만, 자신의 눈을 땅에 던진 거지에게 기증한 후 포기하고 ''성문승''의 길로 돌아선 사람으로 묘사한다.[22]

반야바라밀다심경 4행과 8행의 처음에 '''"사리자"'''라는 글자가 있다.


석가에게 가르침을 받는 사리불. 『법화아아게회초속편』 1818년


반야심경에서 사리푸트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가르침은 그에게 향해 있다. 사리푸트라는 대승 보살 관세음보살에게 지혜를 어떻게 수행할지 질문함으로써 경전의 가르침을 촉구한다.[22] 관세음보살의 답변은 사리푸트라에게 전달되며, 이후 경전의 내용을 구성한다.[22] 관세음보살이 경전을 마치자 부처는 그 가르침에 동의를 표하고, 사리푸트라, 관세음보살, 그리고 청중은 기뻐한다.[22]

법화경 방편품 제2(「십여시」까지). 불과 292자 중에 "사리불"이 5번이나 나온다


일본의 법화경 묘사, 여기서 사리푸트라는 부처에게 설법을 촉구한다.


''법화경''에서 부처는 붓다의 더 높은 지혜와 중생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산스크리트어: ''upāya'')의 사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모임에 참석한 ''아라한''들을 혼란스럽게 한다.[22] 사리푸트라는 부처에게 다른 중생들을 위해 그의 가르침을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고, 부처는 ''법화경''을 설법하도록 촉구한다.[22] 이후 경전에서 부처는 사리푸트라가 과거 생에서 ''보살''의 길을 따랐지만 잊어버리고 현생에서는 ''성문''의 길을 따랐다고 설명한다.[22] 부처는 사리푸트라에게 그 또한 성불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사리푸트라가 미래의 부처인 화광불(범어:Padmaprabha 파드마프라바[24])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22]

  • 법화경의 제3장 "비유품"에서, 사리불은 석가모니불로부터 작불의 기별을 받았다. 사리불은 미래세에서도 수행에 힘쓰고, 범부로서의 마지막 전생에서 일국의 왕자로서 태어나도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 수행하면, 마침내 성불을 이루어 "화광"(범어:Padmaprabha 파드마프라바[24])이라는 이름의 이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화광여래의 정토는 "이구(離垢)", 그 시대는 "대보장엄(大寶荘厳)"이라고 불린다. 화광여래의 후계가 되는 제자는 견만보살(Dhṛti-paripūrṇa 드리티파리푸르나)이라고 하며, 그도 또한 화족안행불(Padma-vṛṣabha-vikrāmin 파드마브리샤바비크라민[24])이라고 불리는 부처가 된다고 한다.

7. 유물

사리푸트라의 유물이 발굴된 산치 ''스투파''.


7세기 중국 순례자 현장의 기록에 따르면, 사리푸트라와 마하목갈라나의 유물은 아소카 왕이 세운 ''스투파''에서 인도 도시 마투라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9년 기준으로 중국 순례자나 불교 경전에 언급된 장소에서 이러한 발견을 확인하는 고고학적 보고서는 없었지만, 다른 장소에서는 발견이 이루어졌다.[10]

1851년,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엄과 프레드 C. 메이시 중위는 ''스투파'' 중 하나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뼈 조각이 들어 있는 사암 상자 한 쌍을 발견했으며, 상자에는 사리푸트라와 마하목갈라나의 이름이 브라흐미 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사리푸트라의 함에는 커닝엄이 사리푸트라의 화장의 일부라고 생각한 백단 조각이 들어 있었다. 사리푸트라의 상자는 남쪽에, 마하목갈라나의 상자는 북쪽에 놓여 있었다. 커닝엄에 따르면, 고대 인도인들은 종교 의식 중에 동쪽을 향해 앉았으며, "앞"을 나타내는 단어로 동쪽(''para'')이라는 단어를, "오른쪽"을 나타내는 단어로 남쪽(''dakshina'')이라는 단어를, "왼쪽"을 나타내는 단어로 북쪽(''vami'')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이는 상자의 배치가 각각의 제자가 우익 및 좌익 제자임을 상징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치는 부처가 전통적으로 동쪽을 향해 앉았다는 사실, 즉 남쪽이 그의 오른손 측이 되고 북쪽이 그의 왼손 측이 된다는 사실로도 설명되었다.[10] 커닝엄과 메이시는 인근 도시 사트다라의 ''스투파''에서 발굴한 또 다른 상자 한 쌍에서도 두 수제자의 이름이 새겨진 뼈 조각을 발견했다. 커닝엄은 제자들의 죽음 이후 라자가하 근처의 ''스투파''에 유물이 안치되었고, 아소카 왕 시대에 인도 전역의 ''스투파''에 재분배되었다고 결론지었다. 학자들은 또한 숭가 제국의 왕이 부처와 그의 수제자들의 유물을 유사하게 재분배하고, 산치에 있는 것과 같은 ''스투파''를 지어 그 안에 유물을 안치했을 수 있다고 이론화했다.

수제자들의 것으로 여겨지는 산치 유물 상자에 대한 커닝엄의 스케치.


커닝엄과 메이시는 나중에 자신들의 발견물을 서로 나누었고, 메이시는 사트다라 유물을 영국으로 가져와 1866년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대여했다. 유물은 결국 1921년 메이시의 아들로부터 박물관에 의해 구매되었다. 커닝엄은 자신의 발견물을 두 척의 배로 영국으로 가져갔는데, 그 중 하나가 침몰하여 산치 유물이 분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학자 토르켈 브레케는 메이시가 모든 유물을 가지고 갔으며, 따라서 산치 유물이 사트다라 유물과 함께 영국으로 갔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 인도와 버마의 불교 단체들은 영국 정부에 유물을 인도에 반환하여 제대로 숭배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영국 정부는 결국 외교적 이유로 유물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1947년 불교 단체와의 합의에 따라 유물은 주로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로 옮겨져 콜롬보 국립 박물관에 임시 전시되었다.[10] 1949년, 유물은 인도에 보내져 북인도와 아시아 여러 지역을 순회했다. 1950년, 유물은 버마로 순회되었고, 버마 총리 우 누는 나중에 인도에 유물 일부를 요청했다.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1952년 카바 예 파고다에 안치된 유물 일부를 버마에 "영구 대여"하기로 동의했다. 스리랑카도 유물 일부를 받았으며, 1952년 산치에서 가져와 스리랑카의 마하 보디 협회에 보관되었다.[11] 인도에 남아 있던 유물 일부는 1952년 산치의 체티야기리 비하라에 안치되었다.

8. 유산 및 평가

불교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이단자들과 논쟁하고 그들을 개종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그의 주요한 특권 중 하나로 여겨졌다.[1] Mūlasarvāstivāda 전통에 따르면, 당시 6명의 이단 교사들이 불교도들에게 대결을 요청했을 때, 부처는 사리푸트라에게 그들과 겨루게 했다. Mūlasarvāstivāda 경전은 사리푸트라가 정신력을 사용하여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고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여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사밧티의 주민들을 개종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2] 승려 데바닷타가 부처의 수도 공동체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부처의 제자들을 이끌고 떠났을 때, 사리푸트라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경전에 따르면,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분열 소식을 듣고 데바닷타의 공동체에 합류하는 척했다. 수석 제자들이 합류한 후, 데바닷타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사리푸트라에게 대신 설교를 하도록 했지만, 데바닷타는 잠이 들었고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부처에게 돌아오게 했다.[2][3]

불교 경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 규칙 제정을 사리푸트라의 공으로 돌리며, 사리푸트라가 부처에게 규칙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사람이었다. 사리푸트라가 요청했을 때, 부처는 적절한 때에 규칙을 정하겠다고 말했다.[2] 사리푸트라는 그의 성실함과 수도 규칙에 대한 세심한 준수로 유명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사리푸트라는 마늘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에 걸렸지만, 부처가 이전에 승려들이 마늘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정했기 때문에 거부했으며, 부처가 그 규칙을 철회한 후에야 마늘을 먹었다.[2][4] 또 다른 이야기에서 사리푸트라는 빵이 그를 탐욕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4] 한 불교 주석에서는 다른 승려들이 탁발을 하러 떠났을 때 사리푸트라가 이단자들이 제자들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수도원을 세심하게 청소하고 정리했다고 설명한다.[4] 여러 불교 경전은 사리푸트라가 전생에 뱀으로 환생했으며, 이것이 그의 완고함의 이유라고 말한다. 마하상기카 경전에서 부처는 일부 승려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한 사리푸트라에게 벌을 내려 햇볕 아래 서 있게 했다. 다른 승려들이 나중에 부처에게 벌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을 때, 부처는 사리푸트라가 벌을 받기로 한 결정은 뱀이었을 때 마음을 바꾸지 않은 것처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마히샤사카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다른 승려가 그가 맛있는 음식을 몰래 먹는다고 의심하자 약으로 처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종류의 과일을 먹는 것을 거부했으며, 부처는 마찬가지로 사리푸트라의 완고함을 설명하기 위해 뱀으로서의 그의 삶을 언급했다.[5]

목갈라나가 정신력에 가장 뛰어난 것으로 묘사되지만, 불교 경전은 사리푸트라 또한 그러한 능력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다양한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공중 부양과 다른 존재 영역을 방문하는 능력, 그리고 과거 생을 기억하고 천리안과 같은 ''아라한''에게 흔한 능력과 같은 여러 정신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보고된다.[6] 한 이야기에서 ''야크샤'' 또는 정령이 명상 중인 사리푸트라의 머리를 때렸다. 목갈라나가 그 사건을 보고 사리푸트라에게 괜찮은지 물었을 때, 사리푸트라는 타격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약간의 두통만 느꼈다고 말했다.[4] 목갈라나는 그 후 사리푸트라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타격을 견딜 수 있었던 그의 정신 능력을 칭찬했으며, 이는 ''Patisambhidamagga'' 경전에서 "집중력에 의한 개입의 힘"(Pali: ''samādhivipphāra-iddhi'')의 예로 묘사된다.[7] Mūlasarvāstivāda 경전에서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는 지옥으로 내려가 데바닷타에게 그가 미래에 ''pratyekabuddha''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전했다.[8] 방문하는 동안, 목갈라나는 비를 내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했지만 비는 흩어졌다고 한다. 사리푸트라는 이것을 본 후 지혜에 기반한 명상을 사용하여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주는 비를 만들었다.[9] 또 다른 Mūlasarvāstivāda 경전에서 부처는 바느질을 하고 있던 사리푸트라를 데려오기 위해 목갈라나를 보냈다. 사리푸트라가 바느질을 마치고 가겠다고 말하자, 목갈라나는 땅을 흔드는 정신력을 사용하여 그를 강제로 데려오려 했지만 사리푸트라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리푸트라가 먼저 돌아가라고 말하자 목갈라나는 부처에게 돌아갔고, 사리푸트라가 이미 도착했음을 발견했다.[8] 목갈라나는 이것을 보고 정신력의 힘은 지혜의 힘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9]



부처의 수제자로서, 사리푸트라는 불교, 특히 상좌부 불교에서 특히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불교 학자 레지날드 레이에 따르면, 사리푸트라는 팔리 경전에서 가장 위대한 ''아라한''이었으며, 부처에 버금가는 인물로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11] 한 텍스트에서는 그를 "법왕"(산스크리트어: ''Dharmaraja'')이라고 부르는데, 이 칭호는 일반적으로 부처에게만 사용되며, 여러 텍스트에서 그를 부처에게 일반적으로 연관된 특권인 "법의 바퀴를 돌리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12] 팔리 경전에서 사리푸트라는 부처가 그의 심오한 가르침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에 여러 ''수트라''의 주요 해설자로 인정받고 있다.[13] 인도학자 알렉스 웨이먼은 사리푸트라를 네 가지 ''brahma-vihārās''의 전형으로 묘사하며, 부처가 그에게 승가의 리더십을 맡긴 이유로 이러한 미덕을 꼽는다.[13]

불교 미술에서 그는 종종 부처 및 목건련과 함께 묘사되며, 사리푸트라는 일반적으로 부처의 오른쪽에, 목건련은 일반적으로 부처의 왼쪽에 묘사된다.[10] 냐나포니카 테라에 따르면, 이 이미지는 그들이 생전에 가졌던 상대적인 지위를 상징하며, 사리푸트라는 부처의 오른팔 승려였다.[14] 대승 불교에서는 부처의 좌우에 배치되는 이러한 도상학이 보살 보현보살문수보살, 또는 제자 아난마하카샤파와 같은 다른 인물들에게도 사용되기도 한다.[15] 버마에서는 사리푸트라가 숭배자들에게 지혜를 부여한다고 믿어지며, 보호 의식에서 흔히 숭배받는 8명의 ''아라한'' 중 한 명이다.[16]

사리푸트라는 부처의 주요 제자 대부분이 연관된 숲속 불교와는 달리 학문과 정착된 승가 생활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11] 레이는 사리푸트라를 고대 코삼비에서 발전한 남방 불교의 이상을 구현한 "전형적인" 불교 성자로 묘사한다.[17] 그러나 레이는 ''우다나''와 ''테라가타''와 같은 일부 팔리 텍스트가 사리푸트라를 숲속의 성자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팔리 텍스트에서 그와 관련된 숲과 학문, 최소 두 가지 전통이 있다고 결론짓는다.[18] 미고는 사리푸트라의 학문적 특징을 제외하는 텍스트를 가장 초기의 자료로 식별하고, 역사적인 사리푸트라가 팔리 경전에 보존된 인물과 다르다고 주장한다.[18][19] 그는 사리푸트라가 고대 코삼비 지역에서 성자로 숭배받았고, 초기 상좌부 불교가 당시 지역의 전통적 가치에 따라 그의 학문적 측면을 발전시켰으며, 사리푸트라가 원래 숲속의 성자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17] 레이는 사리푸트라의 학문적 특징이 나중에 추가된 텍스트의 결과일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결론짓기에 충분한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20]

참조

[1] 서적 The University of Nalanda https://books.google[...] Oriental Publishers 1972
[2] 서적 Si-yu-ki: Ta-Tʻang-si-yu-ki. Books 6-9 https://books.google[...] Susil Gupta 1958
[3] 서적 Purātattva https://books.google[...] Indian Archaeological Society 2006
[4] 서적 East and West https://books.google[...] Instituto italiano per il Medio ed Estremo Oriente 1988
[5] 간행물 Nalanda vis-à-vis the Birthplace of Śāriputra https://www.jstor.or[...] 1988
[6] 서적 The Maha Bodhi https://books.google[...] Maha-Bodhi Society. 1981
[7] 웹사이트 Sharadvatiputra, aka: Śāradvatīputra https://www.wisdomli[...] 2019
[8] 간행물 La légende du Buddha
[9] 웹사이트 Saccavibhanga Sutta: An Analysis of the Truths https://www.accessto[...] Access to Insight 2020-03-03
[10] 웹사이트 The Life of Sariputta, compiled and translated from the Pali texts by Nyanaponika Thera. https://www.accessto[...] 2020-04-26
[11] 웹사이트 Buddhist center breaks tradition, shows pope revered relic https://catholicphil[...] 2020-03-29
[12] 간행물 梵文法華経のテキストに関する若干の問題(特集 「法華経」とシルクロード) http://www.totetu.or[...] 東洋哲学研究所
[13] 웹사이트 Sāriputta Thera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14] 문서 阿説示が舎利弗に語ったのが「縁起法頌」だとされる
[15] 서적 いちばんやさしい ブッダの教え https://books.google[...] 西東社 2014-05
[16] 웹사이트 Vanganta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17] 웹사이트 Rūpasārī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18] 웹사이트 3. Revata (called Khadiravaniya)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19] 웹사이트 1. Cālā Therī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20] 웹사이트 1. Upacālā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21] 웹사이트 Sīsupacalā Therī - Buddhist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http://www.palikanon[...]
[22] 문서 小乗(hīnayāna)とも呼ばれるが、ヒーナ(hīna)は「打ち捨てられた、卑しい」を意味し、蔑称であることに注意。
[23] 문서 「紅蓮の光輝をもつ者」の意。『妙法蓮華経』では「華光如来」、『正法華経』では「蓮華光如来」と漢訳される。
[24] 문서 「堅満」は「決心を完全に成就した者」の意。「華足安行」は「八大地獄#八寒地獄(参考)|紅蓮地獄を雄々しく越えて行く者」の意であり、『正法華経』では「度蓮華界」と漢訳される。
[25] 웹인용 "[지혜의 향기]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https://news.koreada[...] 중앙일보 2013-12-03
[26]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①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2-27
[27]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④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19
[28]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④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19
[29] 웹인용 경전안물열전-사리푸트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5-04-01
[30] 웹인용 경전안물열전-사리푸트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5-04-01
[31] 웹인용 경전안물열전-사리푸트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5-04-01
[32] 웹인용 경전안물열전-사리푸트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5-04-01
[33] 웹인용 경전안물열전-사리푸트라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5-04-01
[34] 웹인용 아라한은 어떤 사람인가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11-04-30
[35]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⑤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25
[36]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⑤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25
[37]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⑤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25
[38]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⑤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25
[39]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①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2-27
[40]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④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19
[41] 웹인용 사리불 존자 ④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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