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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비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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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베비슈할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도시로, 코허 강 계곡의 소금 우물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켈트족 시대부터 소금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1063년 문서에 처음 언급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제염업과 화폐 주조로 번영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제국 도시가 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의 대화재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1802년 뷔르템베르크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지역 경제 중심지로서, 중소기업과 관광 산업이 발달했다. 도시에는 야외 극장, 박물관, 역사적 건축물, 다양한 문화 행사와 스포츠 시설이 있으며, 교육 도시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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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비슈할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
위치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면적104.23 km²
고도304 m
일반 정보
종류도시
위치슈투트가르트 행정 구역
슈베비슈할 군
우편 번호74523
지역 번호0791, 07907 (줄츠도르프, 튄겐탈), 07977 (지텐하르트, 빌란츠바일러)
차량 번호판SHA, CR
지방 자치체 코드08 1 27 076
구성 단위핵심 도시 및 8개의 구역 (슈타트타일)
웹사이트www.schwaebischhall.de
정치
시장다니엘 불링거
임기2021–2029
시장 직함오버뷔르거마이스터 (Oberbürgermeister, 상급 시장)
소속 정당FDP
인구 통계
인구 (2022년 12월 31일)41,837 명
추가 정보

2. 지리

슈베비슈할은 험하게 깎인 코허 강 계곡의 오래된 소금 우물에 위치한 도시이다. 새로운 시역은 강 양안의 슈바벤-프랑켄 숲에 둘러싸인 "할 분지" 일대에 걸쳐 있다.

2. 1. 기후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연간
평균 기온 (°C)1.1°C1.8°C5.4°C9.7°C13.7°C17.2°C19°C18.6°C14.2°C9.6°C5°C1.9°C-
평균 강수량 (mm)74mm65mm71mm51mm80mm78mm89mm71mm59mm75mm70mm89mm-
일조 시간55.781.9134.3185210.7225.6240.4226.1168.2110.15945.51742.5



출처: 독일 기상청[26][27][28]

2. 2. 인접 자치 단체

슈베비슈할에 인접해 있으며 경계를 접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다음과 같다.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자치단체명소속 군
운터뮌크하임슈베비슈할 군
브라운스바흐슈베비슈할 군
볼파르츠하우젠슈베비슈할 군
일스호펜슈베비슈할 군
펠베르크슈베비슈할 군
오버존트하임슈베비슈할 군
미헬바흐안데어빌츠슈베비슈할 군
로젠가르텐슈베비슈할 군
미헬펠트슈베비슈할 군
발트부르크호엔로에 군


2. 3. 도시 구성

지역 배치도


슈베비슈 할은 하나의 핵심 지역과 비버스펠트, 엘터스호펜, 가이렌키르헤, 게르빙겐, 슐츠도르프, 퉁겐탈, 베클리덴의 8개 주변 지역으로 나뉜다. 이는 1970년대에 이루어진 합병의 결과이다. 이들 지역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시정촌법이 적용되는 작은 자치체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지역 의회와 지역 운영 책임자를 두고 있다. 지역 의회는 각 지역의 선거권을 가진 주민의 투표로 선출된다. 또한 각 지역에는 관리 사무소가 설치되어 "지역의 시청"으로서 기능하고 있다.[1]

핵심 지역과 각 지역은 더 작은 거주 구역으로 세분화되며, 그 이름에 "-베치르크" 또는 "보온플라츠"를 붙여 거주 구역명으로 한다.[1]

슈베비슈 할은 상급 중심 도시 하일브론을 핵으로 하는 하일브론-프랑켄 지역 연합의 중급 중심 도시이다. 중급 중심 도시로서 슈베비슈 할이 관할하는 도시와 자치체는 슈베비슈 할 군의 남서부에 해당하며, 브라운스바흐, 뷜러탄, 뷜러첼, 피히텐베르크, 가일도르프, 일스호펜, 마인하르트, 미헬바흐 안 데어 빌츠, 미헬펠트, 오버로트, 오버존트하임, 로젠가르텐, 술츠바흐-라우펜, 운터뮌크하임, 펠베르크, 볼파르츠하우젠이 있다.[1]

다음의 자치체는 모두 슈베비슈 할군에 속했으나, 슈베비슈 할 시에 편입되었다.[1]

편입 연도자치체
1930년 10월 1일슈타인바흐(콤부르크 및 아인코른 포함)
1935년 4월 1일하겐바흐(비버스펠트 지구)
1936년 7월 1일헤센탈
1972년 1월 1일가이렌키르헨, 출츠도르프, 충겐탈, 베클리덴
1972년 7월 1일비버스펠트
1973년 7월 1일엘터스호펜
1975년 1월 1일게르빙겐
1978년 1월 1일하임바흐(이후 미헬펠트의 일부가 됨)


3. 역사

슈베비슈할은 뷔르템베르크의 프랑켄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기록상 가장 오래된 문서에는 "할"로 불렸다. 이는 켈트어로 소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서게르만어군에서 유래된 "열을 가해 건조시키다"라는 의미로, 염전에서 소금을 농축하는 작업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크다.[5] 이 도시는 중세 초기 슈바벤 공작령이 아닌 동프랑크 왕국에 속했다.

기제르베르트 폰 몬스의 연대기(1190년)에는 "Hallam in Suevia"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지배 지역이었기 때문에 슈바벤 공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슈베비슈" 할이라는 이름은 14~15세기 제국 도시와 프랑크 왕국 간의 갈등에 대한 뷔르츠부르크 법정의 재판을 통해 정착되었다. 1442년 의회는 이 도시가 슈베비슈 할로 불리며, 슈바벤 지역에 위치하고, 뷔르츠부르크 법정 관할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1489년 이는 의회의 공식 결론이 되어, 모든 공식 문서에 "슈베비슈 할"(또는 라틴어로 ''Hala Suevorum'')로 기술되었다.

1521년 슈베비슈 할은 슈바벤 크라이스에 가맹했다. 1802년 뷔르템베르크에 편입되면서 "슈베비슈"는 공식 명칭에서 삭제되었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다. 제3제국 시대 (1934년)에 "슈베비슈"는 다시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자유 제국 도시로서의 슈베비슈할의 역사를 종식시켰다.[1] 뤼네빌 조약(1801)에 따라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나폴레옹으로부터 프랑스에 귀속된 라인강 좌안의 영토에 대한 보상으로 이 도시를 점령하는 것을 허가받았다.[1] 1802년 슈베비슈할은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잃었다.[1]

1938년 11월 9일 크리스탈밤 당시, 지역 나치는 슈타인바흐의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고 유대인 시민들의 상점과 집을 파괴했다.[5] 슈베비슈할의 유대인 시민 약 40명이 동유럽의 절멸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되었다.[5]

1945년 4월 17일 도시는 심각한 저항 없이 미국 육군 부대에 점령되었다. 역사적인 구시가지는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1960년 슈베비슈 할은 대규모 자치시 지위를 획득했다.[5]

3. 1. 초기 역사

성 미카엘 교회


코허 강 옆 중심가의 가옥들


슈베비슈할 지역은 기원전 5세기경부터 켈트족에 의해 염수로부터 소금이 생산되었다.[5] 이 도시는 1063년 "외링거 슈티프퉁스브리프(Öhringer Stiftungsbrief)"라는 문서에 처음 언급되었다.[5]

이 마을은 아마도 처음에는 콤부르크-로텐부르크 백작령의 백작 가문에 속했고, 그 후 호엔슈타우펜 황가(ca 1116)로 넘어갔다.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황실 조폐국을 세우고 ''헬러'' 주조를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할(Hall)은 소금과 동전 생산으로 번성했으며, 1204년부터는 도시로 불렸다.[5]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몰락한 후, 할은 인근 귀족 가문(''림푸르크의 쉔켄'')의 주장에 성공적으로 대항했다.[5] 이 갈등은 1280년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에 의해 최종 해결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제국 도시 (''Reichsstadt'')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340년 황제 바이에른의 루이 4세는 내부 갈등(''Erste Zwietracht'')을 해결하는 헌법을 부여했다. 이후 도시는 12명의 귀족, 6명의 "중간 시민", 8명의 장인으로 구성된 내부 의회(''Innerer Rat'')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의회 수장은 ''슈테트마이스터''(Stättmeister, 시장)였다. 1510~12년의 내부 갈등(''Zweite Zwietracht'')은 귀족 지배를 종식시켰다. 귀족 가문과의 대립은 슈테트마이스터 ''헤르만 뷔슐러''가 시작했으며, 그의 딸 ''안나 뷔슐러''는 스티븐 오즈먼트 교수의 책("Bürgermeister's Daughter: Scandal in a sixteenth-century German city")의 주제이다. 이후 디트리히 본회퍼의 조상인 ''본회퍼'' 가문을 포함한 일련의 가문들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부상했다.

현재 슈베비슈할 시가 위치한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것은 신석기 시대(기원전 6,000년경)로 추정된다. 이들은 깊은 코허 계곡 위 고지대나 현재 크로이츠에커 지역과 헤센탈 일부에 거주했다. 오늘날 시역에서 켈트족의 제염업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5세기에서 1세기 사이로 증명되었다. 이들은 염분을 포함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가열하여 소금을 얻었다.

3. 2. 중세 시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할(Hall)은 귀족 가문과 콤부르크 수도원에서 얻은 주변 영토를 체계적으로 획득했다. 이 시대의 부는 인상적인 계단(1507년)이 있는 성 미카엘 교회(1427–1526년 재건)와 같은 고딕 건축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도시는 개신교 종교 개혁에 빠르게 동참했다.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인 요하네스 브렌츠는 1522년 성 미카엘 교회의 목사로 임명되어 루터교 노선을 따라 교회와 학교 시스템을 개혁했다.

30년 전쟁 동안 할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포위되거나 전투가 벌어진 적은 없었다. 황제군, 스웨덴군, 프랑스군에게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으며, 이들은 도시와 주변 지역을 약탈했다. 1634년과 1638년 사이에는 기아와 질병, 특히 페스트로 인해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사망했다. 전쟁으로 도시는 경제적으로 파탄났지만, 소금 생산과 무역 재조직, 와인 무역 성장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했다.

고대 거주 지역과 중세 슈베비슈 할의 연속성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할의 존재를 나타내는 최초의 문서는 『에링겐 기부 행위서』로, 1037년 날짜의 위서지만 실제로는 11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계곡에 중세 도시가 성립한 이유는 제염 때문이었다. 이 도시는 콤부르크 = 로텐부르크 백작령이었지만, 1116년 백작 가문 단절 후 슈타우펜 가문의 세력 하에 들어갔다. 도시 발전은 12세기에 여러 단계를 거쳤다. 1156년 성 미하엘 교회 봉헌 기록에 슈베비슈 할이 처음 명확하게 기재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가 할에 화폐 주조국을 설립하여 헬러 동전(할러 페니히)을 제조했다. 이 은화는 제국 안팎으로 유포되었으며, 근현대 독일 문화권의 보조 통화 단위 "헬러"의 어원이 되었다. 1204년 슈베비슈 할은 처음으로 슈타트(도시)가 되었다. 제염과 화폐 주조가 도시에 경제적 활력을 주었다.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는 1280년 림푸르크 헌작 시종 가문과의 통치 다툼을 종결시키고, 슈베비슈 할이 제국 자유 도시가 되도록 했다. 지배층은 슈타우펜 가문 집사 출신 도시 귀족이었다. 내분 후 비귀족이 통치자 일부를 차지했다. 1340년 황제 루트비히 폰 바이에른의 법령서는 1802년까지 유효했다. 시회(라트)는 12명 귀족, 6명 "중류 시민", 8명 장인으로 구성되었고, 시장(슈테트마이스터 또는 뷔르거마이스터)이 수장이었다. 1509년부터 1512년까지의 "제2차 분쟁"으로 도시 귀족 주도권이 파괴된 후, 시민 계급과 학문적 상류 계급이 주도권을 잡았다.

14, 15, 16세기 제국 도시 슈베비슈 할은 판도를 확대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배권을 사들였고, 필요하면 무력으로 방어했다. 1595년 페르벨크 통치권을 사들인 것이 마지막 큰 수확이었다.

1522년 이후 신학자 요하네스 브렌츠는 1523년 종교 개혁으로 전환, 1543년 교회 법령집으로 전환을 완료했다.[1] 이 제국 도시는 1525년 독일 농민 전쟁 당시 봉기한 농민에 대항하여 지켜낸 몇 안 되는 자치 조직 지역 중 하나였다.[1] 슈말칼덴 전쟁에서 프로테스탄트 측에 섰기 때문에 황제 카를 5세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1] 30년 전쟁에서는 황제군, 프랑스군, 스웨덴군이 번갈아 점령했다.[1] 1634년1638년 사이, 주민 5명 중 1명이 전염병과 기아로 희생되었다.[1] 전쟁 종결 후에는 빠른 부흥을 보였다.[1]

화재가 도시를 자주 덮쳤다.[1] 1316년 도시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1680년 낙뢰로 게르빙거 교외 건물 약 100채가 소실되었다.[1] 1728년 대화재에서는 구시가지 2/3가 소실되었다.[1] 민가 294채, 교회 2개, 병원, 시청, 제염소가 불탔다.[1] 이때 부흥으로 도시는 바로크 양식 경관을 갖게 되었다.[1]

3. 3.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화재는 대부분 목조 주택에 끊임없는 위협이었다. 1680년과 특히 1728년의 대화재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이는 바로크 양식의 시청과 같은 새로운 건물로 이어졌다.[1]

1802년 당시의 슈베비슈할의 제국 자유 도시 편입


나폴레옹 전쟁은 자유 제국 도시로서의 슈베비슈할의 역사를 종식시켰다.[1] 뤼네빌 조약(1801)에 따라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공작은 나폴레옹으로부터 프랑스에 귀속된 라인강 좌안의 영토에 대한 보상으로 이 도시와 몇몇 다른 소국을 점령하는 것을 허가받았다.[1] 1802년에 슈베비슈할은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잃고 Oberamtsstadtde (Oberamtde의 소재지, 에 해당)가 되었다.[1] 염전 소유권은 국가에 이관되었다.[1] 19세기 동안의 긴 경제 위기로 많은 시민들이 독일의 다른 지역이나 해외, 주로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다.[1] 하일브론과 같은 다른 도시들이 산업 혁명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동안, 슈베비슈할의 인구는 정체되었다.[1] 19세기 후반에는 경제 상황이 개선되었는데, 주요 요인은 하일브론으로 가는 철도 노선 (1862)이었지만, 도시의 상당한 성장은 따르지 않았다.[1]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구시가를 둘러싼 고지대에 새로운 정착지가 건설되었다.[1] 슈베비슈할은 또한 슈타인바흐 (1930)와 헤센탈 (1936)의 합병을 통해 성장했다.[1]

1827년에는 코허 강의 섬 중 한 곳에 건강 온천이 설립되었다.[1] 특히 철도 건설 (1862) 이후 이는 상당한 경제적 요인이 되었다.[1] 잘 보존된 구시가 또한 관광객 수를 증가시켰다.[1] 20세기 초부터 슈베비슈할은 많은 축제를 발전시켜왔다.[1] 특히 유명한 것은 매년 도시 중심부의 성 미카엘 계단에서 공연되는 연극 작품이다.[1]

1802년, 제국 도시 슈베비슈할은 나폴레옹의 동의에 따라 뷔르템베르크에 병합되었다.[1] 이는 라인 좌안 일대를 프랑스에 할양하는 대가로 얻은 동의였다.[1] 이 도시는 오버아무트(뷔르템베르크의 구획 행정 도시)가 되었지만, 이 도시에 부속된 마을과 촌락은 다른 오버아무트에 속하는 독립적인 행정 구획으로 지정되었다.[1] 이후 도시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정체와 쇠퇴의 시기로 접어들었다.[1] 나폴레옹 전쟁이 도시의 재정을 파탄시켰기 때문이다.[1] 상인과 장인은 바이에른의 프랑켄 지방에 있던 시장이 새로운 국경으로 분단되었고, 전통을 가진 김나지움1811년에 라틴 학교로 강등되었다.[1] 그전까지 많은 시민의 사유 재산이었던 제염 공장도 국가에 접수되었다.[1] 그 보상 협상은 1827년까지 걸렸다.[1] 합의된 "영구적인 대여료"는 오늘날까지 당시 소유자의 자손에게 지급되고 있다.[1] 그러나 화폐 가치 변동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치는 대폭 하락했다.[1] 제염 공장은 1924년에 폐쇄되었다.[1] 오버아무트가 됨으로써 이 도시에 관청이 설치되었다.[1] 1807년에 카메랄아무트(재무국, 1919년부터는 세무국), 1811년에 오버아무트 재판소(1879년부터는 구 재판소, 일본의 간이 재판소에 해당)가 설치되었다.[1] 1839년에는 형무소를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구시가의 가장자리에 있는 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인 노이바우가 이에 할당되어 1846년까지 사용되었다.[1] 1868년에는 군 재판소(상급 심리를 수행)가 설립되어 오버아무트 재판소의 상위에 배치되었고, 1932년에는 폐지되었다.[1] 1896년에는 노동국이 설립되었으며, 교육, 철도, 우편, 통신, 도로 건설, 관세, 군사의 행정 기관이 설치되었다.[1]

1848년 혁명 당시 슈베비슈할에서는 혼란이 있었지만, 폭력 사태로 이어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1] 시민 다수는 민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에는 온건한 공화제론자인 슈투트가르트의 교수 빌헬름 치머만을 선출했다.[1] 1848년 가을, 뷔르템베르크 정부는 시민의 "무정부주의적인 사상" 때문에 군대에 의한 점령을 실시했다.[1] 몇 명의 지방 공화제 지도자는 호엔아슈페르크에서 체포되어 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1] 제국의 멸망까지 시민 대부분은 좌익 자유주의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인물을 제국 의회나 영방 의회에 계속 선출했다.[1] SPD의 지방 사무소가 1864년에 개설되자마자 노동자의 대변인으로 인식되어 선거에서 득표수의 1/4을 획득했다.[1]

슈베비슈할의 산업화는 주민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수공업의 일자리를 잃게 했다.[1] 1862년하일브론으로의 철도 개통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관광객이 증가하고, 휴양지로서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1] 주민 대부분은 공업 밀집 지역의 근교나 해외로 이주했다.[1] 이 때문에 19세기의 인구는 미미하게 증가하는 데 그쳤다.[1] 20세기의 초가 되면 구시가지 주변에 정착자가 늘기 시작했다.[1] 시는 이 지역의 교육적 중심 역할을 회복했다.[1] 1877년에 옛 김나지움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1] 1886년성공회 병원이 개설되어 서비스업의 발전을 촉진했다.[1] 이 병원은 현재도 이 도시 주민의 가장 큰 고용주 중 하나이다.[1]

3. 4. 나치 독일과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시대 독일 공군의 공군 기지가 헤센탈에 건설되었다.[5] 1938년 11월 9일 크리스탈밤 당시, 지역 나치는 슈타인바흐의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고 유대인 시민들의 상점과 집을 파괴했다.[5] 슈베비슈할의 유대인 시민 약 40명이 동유럽의 절멸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되었다.[5]

1944년 할-헤센탈 기차역 옆에 강제 수용소가 세워졌다. 1933년 유대인 지구에서 도망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남겨진 121명이 포위되어 구속, 학살되었다. 슈베비슈 할에 살던 유대인 약 40명이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되었다. 1940년 성공회 장애인 보호 시설에 있던 270명이 소위 안락사 정책의 대상이 되어 강제 연행되었고, 대부분 살해되었다. 1944년 800명을 수용하는 헤센탈 강제 수용소가 개설되어 공군 기지에서 수리 작업을 하게 되었다. 최소 182명이 살해, 기아, 질병으로 사망했다. 알라흐 교외에 있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의 "헤센탈의 죽음의 행진"에서 추가 희생자가 나왔다.

1945년 2월 23일 할 기차역은 미국의 공습 목표가 되었지만, 피해는 주로 성 카타리나와 운터림푸르크 교외에 국한되었다. 1945년 4월 17일 도시는 심각한 저항 없이 미국 육군 부대에 점령되었다. 여러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지만, 역사적인 구시가지는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3. 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 슈베비슈 할은 대규모 자치시 지위를 획득하여 시가 군의 일부 업무를 인수했다.[5] 1950년대에 슈베비슈 할의 인구가 20,000명을 돌파하면서 시 당국은 그로세 클라이스슈타트(Große Kreisstadt)로의 승격을 청구했고,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는 1960년 10월 1일에 이를 시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냉전 종식까지, 돌란 막사(Dolan Barracks)와 슈베비슈 할 육군 비행장은 1993년 독일로 반환될 때까지 미 육군 항공 부대와 병기 부대를 주둔시킨 병영이었다.[6]

1982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제3회 지방 정원 박람회 개최 도시가 되었다.

슈베비슈 할은 이 지역의 교육, 상업, 문화 중심지이며, 기계 공학 등 중소기업 도시이기도 하다. 1944년 베를린에서 도이체 국민 은행 주택 금융 공사 주식회사가 쇠퇴한 이래, 현재는 슈베비슈 할 주택 금융 공사 주식회사로 이 도시 최대 고용주가 되었으며, 2001년까지 가장 많은 영업세를 납부하는 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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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외국인 노동자로서 많은 터키인들이 슈베비슈 할에 왔다. 그들은 이 지역의 무슬림 1,000명 중 약 800명을 차지한다. 1979년에는 터키인 노동자의 상호 부조회와 스포츠 협회가 조직되었고, 2004년부터 터키인 무슬림 교도의 자치구가 가일도르프 가도변의 메브라나 모스크에 만들어졌다.

4. 정치

슈베비슈할 시의회는 의석수 38석으로 구성되며, 당선된 의원들은 "시의원"이라는 직함을 갖는다. 시 행정부는 21세기 초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서 리눅스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을 일찍 시작했다.[16]

4. 1. 시장

슈베비슈할의 시장은 2021년 7월에 선출된 다니엘 불린거이다.[1] 그는 1997년부터 재임했던 헤르만-요제프 펠그림의 뒤를 이었다.[7]

역대 시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재임 기간이름
1803년 - 1819년게오르크 카를 하스펠
1819년 - 1828년요한 프리드리히 헤첼
1829년 - 1848년로렌츠 비벨
1848년 - 1881년프리드리히 하거
1882년 - 1887년오토 분더리히
1888년 - 1899년프리드리히 헬버
1899년 - 1926년에밀 하우버
1927년 - 1945년빌헬름 프린징 2세
1945년 - 1954년에른스트 호르눙
1954년 - 1974년테오도어 하르트만
1974년 - 1996년카를 프리드리히 빈더
1997년 - 2021년헤르만-요제프 펠그림 (독일 사회민주당)


4. 2. 시의회

슈베비슈 할 시의회는 의석수 38석으로 구성되며, 당선된 의원들은 "시의원"이라는 직함을 갖는다. 2021년 7월에 다니엘 불린거가 시장으로 선출되었다.[1] 그는 1997년부터 시장직을 맡았던 헤르만-요제프 펠그림의 뒤를 이었다.[7] 시 행정부는 21세기 초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서 리눅스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전환하는 선구적인 시도를 했다.[16]

4. 3. 자매 도시

슈베비슈할은 다음 도시들과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22]

도시국가체결 연도
에피날Épinal|에피날프랑스어 프랑스1964년
러프버러Loughborough|러프버러영어 영국1966년
라펜란타Lappeenranta|라펜란타fi 핀란드1985년
노이슈트렐리츠Neustrelitz|노이슈트렐리츠de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1988년
자모시치Zamość|자모시치pl 폴란드1989년
발리케시르Balıkesir|발리케시르tr 튀르키예2006년


5. 경제

슈베비슈할은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사이의 중요한 지역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이다.[18] 과거에는 소금이 중요했지만,[7] 오늘날 경제는 주로 무역 및 서비스 부문에 중점을 둔 중소기업들이 이끌고 있다.[5][2] 부동산 금융, 태양 에너지, 통신 부문을 다루는 여러 기업들이 슈베비슈할에 본사를 두고 있다.[2] 주요 기업으로는 1944년에 설립된 주택 신용 회사인 바우파스파르카세 슈베비슈 할 AG와 항공기 좌석 제조업체인 RECARO 항공 시트가 있다.

매년 괴테 인스티튜트 학생들은 슈베비슈할 호텔에서 최대 600박을 숙박한다.[14]

항목내용출처
숙박총 숙박193,213[19]
외국인 숙박41,600
세율토지세 A400 v.H.[19]
토지세 B400 v.H.
영업세280 v.H.
소매 무역상권 인구160,000명[19]
슈베비슈할 시3.051억유로
1인당8,320 유로
도시의 구매력100.2
고용 통계사회 보험에 가입된 고용 인원20,563[19]
생산 무역5,188
무역, 식당 및 교통3,424
서비스 부문11,951
출근자12,119
퇴근자4,809
실업률4.5%


5. 1. 교통

슈베비슈할에는 6번 고속도로 (하일브론-뉘른베르크) 진입로가 있으며, 14번 연방 도로 (슈투트가르트-뉘른베르크)와 19번 연방 도로 (울름-아알렌-슈베비슈 할-뷔르츠부르크)가 시를 통과한다.

철도는 슈베비슈 할-헤센탈역이 바일블링겐-슈베비슈 할 철도와 크레일스하임-하일브론 철도의 분기점이며, 슈베비슈 할역(시내역)은 크레일스하임-하일브론 철도에 있다.[1]

이 도시는 두 개의 비행장이 가까이 있지만, 상업 항공 운송은 제공하지 않는다. 튀겐탈러 거리 북쪽에는 레크리에이션용 잔디 비행장인 베크리덴(EDTX)이 있고, 남쪽에는 뷔르트 그룹과 관련된 아돌프 뷔르트 공항(EDTY)이 있어 자체 사업용 제트기 운영을 지원한다.

5. 1. 1. 도로

6번 고속도로 (하일브론-뉘른베르크) 진입로가 있다. 14번 연방 도로 (슈투트가르트-뉘른베르크)와 19번 연방 도로 (울름-아알렌-슈베비슈 할-뷔르츠부르크)도 시를 통과한다.

5. 1. 2. 철도

슈베비슈 할-헤센탈역은 바일블링겐-슈베비슈 할 철도와 크레일스하임-하일브론 철도의 분기점에 있으며, 슈베비슈 할역(시내역)은 크레일스하임-하일브론 철도에 있다.[1]

슈투트가르트 - 슈베비슈 할 - 크라이힐스하임 - 뉘른베르크를 잇는 철도 노선 상에 있으며,[1] 이 노선의 역은 헤센탈 지구에 있다.[1] 여기서 욀링겐을 경유하여 하일브론으로 이어지는 호엔로에 철도가 분기한다.[1] 이 구간에는 슈베비슈 할 시역이 있다.[1] 지구를 넘나드는 대중교통 버스 노선도 있으며,[1] 모든 교통 서비스는 슈베비슈 할 근교 교통 그룹에 속한다.[1]

5. 1. 3. 항공

이 도시는 서로 매우 가까운 두 개의 비행장에 의해 운영되지만, 어느 곳도 상업 항공 운송을 제공하지 않는다. 튀겐탈러 거리 북쪽에는 레크리에이션용 잔디 비행장인 베크리덴(EDTX)이 있고, 남쪽에는 뷔르트 그룹과 밀접하게 관련된 아돌프 뷔르트 공항(EDTY)이 있으며, 자체 사업용 제트기 운영을 지원한다.

6. 문화

슈베비슈 할은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한다. 도시의 역사적인 소금 경제를 기념하는 소금 축제, 여름밤 축제, 빵 굽는 오븐 축제, 전통 수공예품을 포함하는 크리스마스 마켓 등이 대표적이다.[12]

주요 연중 행사는 다음과 같다.

행사명설명
케이크와 샘 축제성령 강림절에 열리는 제염업자 축제로, 14세기부터 개최되었다.
야코비 마르크트하르 광장의 상인 시장과 슈베비슈할-슈타인바흐의 코허비젠트에서 열리는 거리 공연이다.
여름밤 축제도시 광장 "아커안라겐"에서 열리는 낭만적인 빛 축제로, 음악과 불꽃놀이가 함께한다.
남부 독일 치즈 시장5월에 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에서 개최되며, 독일 전역 및 인접 국가의 수제 치즈를 전시한다.
빵 굽는 오븐 축제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에서 열리는 연중 가장 큰 축제이다. 시장도 열리며, 오븐에서 갓 구운 "브로츠", 댄스 그룹, 가축 콘테스트, 곡예사 및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매년 9월 마지막 주말에 개최된다.
수공예가의 크리스마스 시장전통적인 수공예 작품 시장으로, 모든 예술가와 수공예가의 작품이 활발하게 전시된다. 매년 대림절 첫 번째 주말에 열린다.


6. 1. 극장

슈베비슈 할에는 성 미하엘 교회 야외 계단과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하는 야외 여름 극장이 있다.[2] 6월부터 8월까지 성 미하엘 교회 대계단에서 야외 극장이 열리고 운터베르트의 하라 글로베 극장에서 공연한다.[12] 게르하르츠 마리오네트 극장도 있다.

6. 2. 미술관/박물관

할리쉬-프랑키쉐 박물관(Hällisch-Frankische Museum)과 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은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역사를 보여준다.[2] 쿤스트할레 뷔르트(Kunsthalle Würth)는 19세기부터의 회화, 그래픽 아트,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 미술관이다.[2]

슈베비슈할의 주요 미술관/박물관은 다음과 같다.

이름설명
뷔르트 예술 홀사업가 라인홀트 뷔르트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
헬리쉬-프렌키셰 박물관도시와 지역의 역사 박물관
호엔로허 야외 박물관지방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야외 박물관
갤러리 암 마르크트현대 미술 갤러리
하우스 란게 슈트라세 491470년 아르모이테 하우스에 관한 중세 고고학 연구 자료 전시
소방 박물관소방 관련 역사 박물관


6. 3. 건축

슈베비슈할에는 역사적인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섞여 있다.[7] 오래된 건물은 대부분 중세 시대 건물로, 도시 중심부에는 목골조, 고딕 건축, 바로크 건축 양식이 주를 이룬다. 현대적인 건물들은 도시 외곽과 교외에 위치하여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1680년과 1728년의 대화재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이는 시청과 같은 바로크 건축 양식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7]

볼거리는 역사적 건축물이 많은 구시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은 1728년 대화재 이후 지어진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 로젠뷔르, 코허강 사이의 남동부, 게르빈거 거리나 카타리넨 지구, 바이러 지구에 중세 후기의 오래된 민가가 남아 있다.
주요 건축물

  • 마르크트 광장: 대계단, 수치, 하우스 보이셔의 조각(1509년)이 새겨진 분수, 성 미카엘 교회(슈베비슈할)(이 도시의 상징), 바로크 건축 양식의 시청사(Am Markt 4, 1735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집(Am Markt 5/6, 1550년), 호텔 아델스호프(오래된 부분은 1300년) 등
  • 도시 방어 시설: 문, 시벽, 탑, 노이바우(1526년의 대병기창)가 있는 시트가르텐 지구, 바이러 문이 있는 바이러 지구
  • 오버 헤른가세 및 운터 헤른가세: 15-16세기의 도시 귀족의 저택, 1289년에 건축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가옥 중 하나(Untere Herrngasse 2)
  • 케켄투름: 13세기 주택(헤리쉬-프렌키셰 박물관의 일부)
  • 운터베르트(코허강의 작은 섬): 구시가지, 야외 극장인 글로베 극장, 로템 슈테크(붉은 소교), 슐퍼슈테크(염전 소교, 지붕이 있는 나무 다리)

교회

  • 성 미카엘 교회(슈베비슈할)(복음주의): 1156년 건축. 후기 고딕 양식의 할렌키르헤(홀식 교회)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 미하엘 엘하르트의 그리스도 십자가상(1494년), 네덜란드제 주 제단(1470년) 등
  • 성 카타리나 교회(복음주의): 고딕 리바이벌 건축(1896년 - 1898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1240년), 고딕 양식의 성가대석(1343년), 중세 유리창, 금박 장식의 네덜란드 제 제단(1450년)
  • 성 우르반 교회(원래는 마리아 교회, 복음주의) 운터림프루크 지구: 1230년 창설, 1250년경 확장. 15세기-17세기 네덜란드제 조각 제단(1445년)
  • 성 요한 교회: 로마네스크 양식(12세기 말) + 고딕 건축. 성 요한 기사단의 교회(1812년 세속화, 현재 전시 홀)
  • 도심부 외 복음주의 교회: 하임바흐 지구의 요하네스-브렌츠 교회(1954년), 크로이체커 교회(1956년), 토일러스호프의 조피-숄 교회(2003년 신축), 하겐바흐너 링의 루카 교회(1989년)
  • 가톨릭 교회: 성 요제프 교회(1887년, 고딕 리바이벌 양식), 토일러스호프의 크리투스 쾨니히 교회(1961년), 하겐바흐너 링의 성 마르쿠스 교회(1983년)
  • 감리교 크리투스 교회(1933년)
  • 신사도 교회

주변 거주 구역의 교회

  • 성 십자가 엘라흐 교회(복음주의): 세례반(로마네스크 양식), 프레스코화(1400년경)가 있는 고딕 양식 방어 교회
  • 세례자 성 요한 교회(가톨릭, 슈타인바흐): 로마네스크 양식,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1100년경)
  • 성 에기지엔 교회(클라인콤부르크, 슈타인바흐): 힐자우어 양식의 로마네스크 바실리카(1120년경), 1880년 프레스코 복원. 현재 교회 미사용. 카푸친회수도원 증축(슈베비슈 할 형무소 분소, 출입 금지)
  • 성 니콜라우스 교회(콤부르크, 슈타인바흐): 1715년 바로크 건축 양식 참사회 교회, 로마네스크 양식 탑
  • 비버스펠트(복음주의 성 마르가레타 교회, 1868년 창건, 오래된 탑), 엘터스호펜(1769년 복음주의 필리아 교회), 가일렌키르헨(로마네스크 양식 복음주의 소교구 교회), 게르빈겐(복음주의 성 마리아, 양 요한 및 카타리나 교회, 고딕 양식, 1949-50년 재건), 고트볼스하우젠(고딕 양식 복음주의 성 요한 바티스트 교회), 헤센탈(1949-51년 재건, 오래된 탑, 복음주의 성 마테우스 교회, 가톨릭 성 마리아 쾨니긴 데스 프리데스 교회, 1964년), 슈타인바흐(복음주의 마르틴스 교회, 1968년), 슐츠도르프(복음주의 성 마르가레타 교회, 1949-50년 재건), 튀겐탈(복음주의 운세렌 리벤 플라우 소교구 교회, 1949-50년 재건)


6. 4. 기타 볼거리

슈베비슈 할에는 성 미하엘 교회 야외 계단과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하는 야외 여름 극장이 있다.[2] ''할리쉬-프랑키쉐 박물관''(Hällisch-Frankische Museum)과 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은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역사를 보여준다.[2] 19세기부터의 회화, 그래픽 아트,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 미술관인 ''쿤스트할레 뷔르트''(Kunsthalle Würth)도 있다.[2] 슈베비슈 할과 그 주변 지역은 스포츠 비행, 수영, 하이킹,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제공한다.[2]

도시 문화의 다른 부분으로는 도시의 역사적인 소금 경제를 기념하는 소금 축제, 여름밤 축제, 빵 굽는 오븐 축제, 전통 수공예품을 포함하는 크리스마스 마켓 등이 있다.[12]

  • 콤부르크, 슈베비슈 할-슈타인바흐 고지에 있는 유명한 베네딕토회 수도원.
  • 림푸르크 성터, 운터림푸르크 지구의 고지에 위치.
  • 아인코른, 슈베비슈 할-헤센탈의 고지에 있는 전망대가 있는 경치 좋은 산과 바로크 양식의 14성인 교회의 유적.
  • 강제 수용소 추모지, 슈베비슈 할-헤센탈. 헤센탈 강제 수용소(1944-45년) 추모 장소.
  • 유대인 묘지, 슈베비슈 할-슈타인바흐.
  • 로봇 기술 전시관(바일러)과 '브뤼켄헤크스텐'(헹커스브뤼케)
  • 뢰벤브라우에라이 할, 전설적인 할러 뢰벤브로이는 여기서 양조되었다.

6. 5. 연중 행사

슈베비슈 할에서는 성 미하엘 교회 야외 계단과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하는 야외 여름 극장이 열린다.[2] 도시 문화 행사로는 도시의 역사적인 소금 경제를 기념하는 소금 축제, 여름밤 축제, 빵 굽는 오븐 축제, 전통 수공예품을 포함하는 크리스마스 마켓 등이 있다.[12]

주요 연중 행사는 다음과 같다.

행사명설명
케이크와 샘 축제성령 강림절에 열리는 제염업자 축제로, 14세기부터 개최되었다.
야코비 마르크트하르 광장의 상인 시장과 슈베비슈할-슈타인바흐의 코허비젠트에서 열리는 거리 공연이다.
여름밤 축제도시 광장 "아커안라겐"에서 열리는 낭만적인 빛 축제로, 음악과 불꽃놀이가 함께한다.
남부 독일 치즈 시장5월에 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에서 개최되며, 독일 전역 및 인접 국가의 수제 치즈를 전시한다.
빵 굽는 오븐 축제호엔로어 야외 박물관에서 열리는 연중 가장 큰 축제이다. 시장도 열리며, 오븐에서 갓 구운 "브로츠", 댄스 그룹, 가축 콘테스트, 곡예사 및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매년 9월 마지막 주말에 개최된다.
수공예가의 크리스마스 시장전통적인 수공예 작품 시장으로, 모든 예술가와 수공예가의 작품이 활발하게 전시된다. 매년 대림절 첫 번째 주말에 열린다.


7. 교육

슈베비슈할은 오랜 교육 도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13]

슈베비슈할은 직업 학교와 다양한 기술 학교를 통해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슈베비슈할 복지 학교, 사회 전문 사회 서비스학과, 노인 대상 개신교 직업 학교, 대안 교육 간호 학교, 간호 학교 및 아유르베다 교육 및 훈련 기관인 아유르베다 및 요가 연구소와 같은 학교에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13]

슈베비슈할에는 괴테 인스티튜트 지부가 있어,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최대 2,000명의 학생들을 유치한다.[14] 이 프로그램은 특히 여름 방학 동안 학점을 취득하고 독일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생들이 참여하면서 인기가 높다.

시립 기록 보관소인 할은 역사 연구와 기억 관리를 위한 문서 센터이다.[15] 시립 기록 보관소는 아카이브 및 컬렉션을 주문, 준비, 평가 및 관리하여 역사 연구를 지원하고, 전시회에 협력하며, 슈베비슈할의 역사에 대한 자체 또는 기타 출판물을 발행한다.[15]

이 기록 보관소는 현재 시 행정부와 그 전임자들의 공식 기록과 파일을 보관하고 있으며, 사진, 포스터, 그래픽, 그림, 지도 및 계획, 또는 신문 스크랩 컬렉션과 같이 도시에 관련된 다양한 유형과 출처의 수집 품목을 보관한다.[15] 또한 슈베비슈할과 이 지역의 역사에 관한 문헌, 귀중한 역사적 인쇄물 등 광범위한 도서관 컬렉션이 있다.[15]

슈베비슈 할에는 사립 전문 단과대학인 응용과학대학교(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가 있다. 이는 재단법인 "슈베비슈 할 성령 병원"에 의한 국가 인가 전문 단과대학이다.

슈베비슈 할의 기본 교육에는 2개의 김나지움(슐첸트룸 베스트의 에라스무스-비트만 김나지움과 성 미하엘 교회 근처에 김나지움), 2개의 실과 학교(슐첸트룸 베스트의 레온하르트-쾰른 실과 학교와 쉔켄제 실과 학교), 2개의 기간 학교(쉔켄제 실과 학교 부속 기간 학교와 슐첸트룸 베스트의 토마스-슈바이커 실과 학교 겸 기간 학교), 1개의 장애인 학교(프리덴스베르크 학교), 그리고 많은 기초 학교가 있다.

슈베비슈 할 군에는 3개의 직업 훈련 학교(영업 학교, 상업 학교, 지빌라-에겐 가사 학교)가 있다. 또한, 언어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있다.

다음의 사립 학교가 슈베비슈 할의 교육 환경을 향상시키고 있다: 재단법인 슈베비셰 양로원 연맹의 노인 요양 학교, 슈베비슈 할 복음주의 사회 교육학 전문 학교, 하임 존넨호프의 복음주의 간호 교육 간호 학교, 슈베비슈 할 자유 발도르프 학원, 슈베비슈 할 신교 사회 봉사단의 환자와 병자 간호 학교, 하임 인 프라이어 트레거샤프트의 정신 장애인을 위한 요양 학급을 가진 존넨호프 요양 학원.

콤부르크에는 교사를 위한 계속 교육과 자기 교육을 위한 학교가 있다.

8. 스포츠

슈베비슈할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는 수영, 육상, 테니스, 사격, 축구, 야구, 핸드볼, 미식축구이다.[21] 스포츠 시설로는 22개의 스포츠 홀과 25개의 야외 경기장이 있다.[21] 슈베비슈 홀 유니콘스는 2011년과 2012년에 독일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후 독일 미식축구 팀 중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모리츠 뵈링거의 전 소속팀으로도 유명하다.


  • 마르코 자일러(1985년 출생): 축구 선수, 310경기 이상 출전
  • 토비아스 바이스(1985년 출생): 축구 선수, 226경기 출전
  • 루크 소렌센(1985년 출생): 아일랜드 출신의 전 테니스 선수
  • 요나스 코흐(1993년 출생): 사이클 선수

9. 보건

슈베비슈할은 염수와 역사를 함께 한다.[20] 최초의 염수 목욕은 1827년에 시작되었다.[20] 574개의 병상을 갖춘 디아코니-크랑켄하우스(Diakonie-Krankenhaus)는 슈베비슈할의 주요 병원이다.[20] 슈베비슈할에는 100명의 일반의, 전문의 및 물리 치료사가 있다.[20] 이곳에서는 웰-비탈 건강 박람회(Well-Vital Health Fair) 및 할러 건강 및 자연 치유 박람회(Haller Gesundheits- und Naturheiltagen)와 같은 건강 박람회가 열린다.[20]

참조

[1] 뉴스 Oberbürgermeisterwahl Schwäbisch Hall 2021 https://www.staatsan[...] Staatsanzeiger
[2] 웹사이트 The city of Schwäbisch Hall http://www.goethe.de[...] Goethe-Institut 2011-03-22
[3] 서적 Hall und das Salz. Sigmaringen
[4] 웹사이트 Schwäbisch Hall http://www.castleroa[...] castleroad.de 2011-03-26
[5] 웹사이트 The history of Schwäbisch Hall - an overview https://www.schwaebi[...] Schwäbisch Hall 2021-03-23
[6] 웹사이트 U.S. ARMY INSTALLATIONS - HEILBRONN http://www.usarmyger[...] 2016-03-20
[7] 웹사이트 Welcome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23
[8] 웹사이트 Religion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26
[9] 웹사이트 Lufttemperatur: vieljährige Mittelwerte 1991 - 2020 https://www.dwd.de/D[...] Deutscher Wetterdienst 2024-02-23
[10] 웹사이트 Niederschlag: vieljährige Mittelwerte 1991 - 2020 https://www.dwd.de/D[...] Deutscher Wetterdienst 2024-02-23
[11] 웹사이트 Sonnenscheindauer: vieljährige Mittelwerte 1991 - 2020 https://www.dwd.de/D[...] Deutscher Wetterdienst 2024-02-23
[12] 웹사이트 Festivals and Celebrations – City Schwäbisch Hall http://www.schwaebis[...] 2018-04-07
[13] 웹사이트 Schulen in Schwäbisch Hall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26
[14] 웹사이트 Goethe-Institute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23
[15] 웹사이트 Stadt- und Hospitalarchiv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31
[16] 웹사이트 Open Source for municipalities http://www.schwaebis[...] Schwäbisch Hall 20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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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간행물 Hofmann, Melchior
[24] 간행물 Braun, Lo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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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웹인용 Lufttemperatur: vieljährige Mittelwerte 1991 - 2020 https://www.dwd.de/D[...] Deutscher Wetterdienst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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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웹인용 Sonnenscheindauer: vieljährige Mittelwerte 1991 - 2020 https://www.dwd.de/D[...] Deutscher Wetterdienst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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