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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상식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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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 번성했던 인식론 철학으로, 데이비드 흄의 회의론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되었다. 토마스 리드, 더갈드 스튜어트, 윌리엄 해밀턴 경 등이 주요 인물이며, 아이작 뉴턴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다. 이 학파는 상식적 현실주의를 강조하며, 직관적으로 확실한 확신을 주는 '제1원리'를 통해 자아, 실재 대상, 도덕적 신념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영국 관념론, 프랑스 영성주의, 미국 철학 및 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사상의 중요한 원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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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상식 학파

2. 역사적 배경

데이비드 흄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인식론 중심의 철학 사조이다.[4] 이 학파는 존 로크, 조지 버클리, 그리고 특히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험론 철학자들의 회의주의적인 주장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주요 인물로는 토마스 리드, 더갈드 스튜어트, 윌리엄 해밀턴 경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토마스 칼라일도 이 학파의 일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5][6]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아이작 뉴턴프랜시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철학적 회의론에 맞서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common sense)'을 인식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4] 이들은 복잡한 철학적 논증이나 회의적인 질문 속에서도, 일상적인 삶을 지탱하는 상식적인 믿음들이 중요하며 지식 습득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학파 내에서도 상식의 역할에 대한 입장은 다양했다. 토마스 리드가 상식을 철학적 논의의 토대로 삼으려 한 반면, 일부는 상식을 내세워 새로운 지적 변화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7]

이 학파는 이 제시한, 감각적 인상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념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인간이 외부 세계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러한 능력에 기반한 상식이 정당한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토마스 리드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처음 애버딘 대학교에서 시작되어 이후 글래스고 대학교, 그리고 에든버러 대학교로 중심지가 옮겨가며 발전했다. 이들의 사상은 당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주류를 형성하며 "도덕 철학"으로서 고전파 경제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비록 한동안 그 중요성이 간과되기도 했으나,[4]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특히 미국 독립 혁명기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과 18세기 후반 미국 정치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21][22]

2. 1.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형성과 애버딘 철학 협회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데이비드 흄『인간 본성론』(1739-40)과 그 후속작인 『인간 지성 연구』(1747)였다. 흄의 『인간 본성론』은 출판 당시부터 종교적 보수층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지만, 동시에 스코틀랜드 사상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훗날 상식 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토마스 리드 역시 흄에게서 큰 충격을 받은 인물 중 하나였다. 애버딘 대학교 마셜 칼리지에서 조지 턴불 등에게 조지 버클리 철학을 배운 후 뉴 마커 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하던 리드는 『인간 본성론』을 읽고 그동안 받아들였던 학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한편, 흄이 펼친 회의주의에 맞서 기존의 도덕과 종교(특히 스코틀랜드 전통 종교인 장로교회)를 옹호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하며 상식 학파의 형성을 준비한 인물은 스코틀랜드의 법률가이자 저술가였던 케이임스 경이다. 케이임스 경은 자신의 저서 『도덕과 자연 종교의 원리』(1751)에서 인식론과 도덕론 양면에서 흄의 사상을 비판했다. 그는 인식론에서 우리가 인상이나 관념을 거치지 않고 외부 세계를 직접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으며, 도덕론에서는 "도덕 감각"이 경험 이전에 주어진 것임을 주장하여 훗날 상식 학파의 방향성을 결정지었다.

케이임스 경의 『도덕과 자연 종교의 원리』가 출판된 1751년, 토마스 리드애버딘 대학교 킹스 칼리지의 도덕 철학 리젠트(교수)로 부임했다. 리드는 케이임스 경의 저서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출판 직후 그 내용을 요약 정리했으며, 이후 케이임스 경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당시 애버딘 대학교는 자코바이트 반란 이후 교원 교체를 거치며 킹스 칼리지와 마셜 칼리지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이 싹트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1753년부터 시작된 리젠트 제도에서 교수제로의 대학 개혁 역시 이러한 계몽적 분위기를 더욱 촉진했다. 리드 또한 일찍부터 학내 "철학 클럽" 등 연구회에 참여하며 흄과 그의 비판자인 케임스 경의 사상을 검토하고 감각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758년, 리드를 포함한 애버딘 대학교 교수 6명은 "철학 클럽"과 "신학 클럽"을 모태로 학술 단체인 「애버딘 철학 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에서는 당시 스코틀랜드의 다른 학술 단체들(에든버러 철학 협회, 글래스고 문예 협회 등)과 마찬가지로 자연 과학부터 인문학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애버딘 철학 협회"에서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조지 캠벨의 『기적론』(1762)과 리드의 『상식 원리에 기초한 인간 정신의 연구』(1764)가 출간되면서,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 2.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수용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제창자, 토마스 리드


애덤 스미스의 후임으로 '''글래스고 대학교'''로 옮긴 리드는 그곳을 상식 학파의 두 번째 거점으로 삼아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인간 지적 능력에 관하여』'''(1785)와 '''『인간 정신의 능동적 능력에 관하여』'''(1788)라는 중요한 저작들을 발표하며 상식 학파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리드는 이 저작들에서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의 회의주의적 경향, 특히 버클리인식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회의주의가 "철학을 파괴하고 진리의 가능성 자체를 빼앗는 것"이라고 보았다. 리드는 근대 철학이 회의주의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이, 외부 세계를 직접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본 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인식의 원천을 '관념'이 아닌, 인간 정신의 고유한 '능력'과 그 '작용', 그리고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자명한 '상식(common sense)의 원리'에 두는 새로운 인식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리드는 이를 통해 '정신 해부학'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8][9][10][11]

리드가 제시한 "상식의 원리"는 다른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오즈왈드'''는 상식의 원리를 주로 종교 영역에 적용했고, '''제임스 비티'''는 미학 영역에 적용했다.

  • '''제임스 오즈왈드''': 스코틀랜드 교회의 성직자였던 오즈왈드는 '''『종교 옹호를 위한 상식에 대한 호소』'''(1766-72)를 저술했다. 그는 당시 지배적이던,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의 존재는 "상식이라고 불리는 인간 고유의 지각·판단 능력"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제임스 비티''': 애버딘 협회 회원이기도 했던 비티는 '''『진리의 성질과 불변성 — 궤변과 회의론에 대한 반박』'''(1770)을 썼다. 그는 리드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현대인의 사변적 형이상학만큼 혐오스러운 것은 없다"며 근대 철학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비티는 "상식"을 "점진적인 논증이 아닌,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충동에 의해, 교육이나 습관이 아닌 자연에서 유래하는 충동에 의해 진리를 지각하고 신념을 불러일으키는 정신의 능력"으로 정의했다.


오즈왈드와 비티의 활동 덕분에 상식 학파의 인지도와 명성은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리드가 본래 의도했던 "의심할 수 없는 상식에 기반한 인식론 구축"이라는 목표보다는, "회의론에 대한 비판"과 "기존 종교 및 도덕의 옹호"라는 측면이 더 강조되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을 낳기도 했다.[4]

한편, 상식 학파에 대한 주요 비판도 제기되었다. 특히 잉글랜드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리드 박사의 '연구', 비티 박사의 '논문', 및 오즈왈드 박사의 '호소'의 검토』'''(1774)라는 저작을 통해 리드, 오즈왈드, 비티 세 사람을 한데 묶어 비판했다. 유물론자였던 프리스틀리는 흄의 회의론에 맞서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상식 학파가 '상식'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여섯 번째 감각'에 의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프리스틀리의 비판은 상식 철학에 대한 중요한 반론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어 칸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2. 3.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발전과 『에든버러 리뷰』



토마스 리드의 "정당한 후계자"로 불리는 더갈드 스튜어트에든버러 대학교의 도덕 철학 교수로서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를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스튜어트는 1802년 에든버러 왕립 협회에서 열린 리드 추도 강연에서 "상식의 원리"라는 표현이 리드의 사상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상식(common sense)' 대신 '신념의 기본 법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 "신념의 기본 법칙"을 "그것이 없으면 이 세상의 모든 업무가 즉시 정지하게 되는, 그 인간 본성의 기본 구조"로 재정의하며 상식 철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스튜어트는 상식 철학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여러 저서를 남겼다. 인식론을 다룬 『인간 정신 철학의 제 요소』(1792)를 시작으로, 윤리학을 다룬 『인간 능동적·도덕적 능력의 철학』(1828)을 간행했다. 경제학에 관한 저술은 계획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했고, 사후에 윌리엄 해밀턴 경이 편집한 『강의록』(1855)만이 전해진다. 또한 스튜어트는 정치경제학을 도덕 철학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 분야로 강의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스튜어트가 활동하던 시기 에든버러에서는 평론지 『에든버러 리뷰』(1802-1929)가 간행되어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잡지에는 스튜어트의 제자들이 쓴 논문이 자주 실렸으며, 이를 통해 상식 학파의 사상이 널리 퍼지는 데 기여했다. 『에든버러 리뷰』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흐름을 이어간 대표적인 인물로는 토마스 브라운과 윌리엄 해밀턴 경이 있다.
토마스 브라운은 『에든버러 리뷰』의 초기 논객으로 활동하며 이마누엘 칸트와 에라스무스 다윈 등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스튜어트의 뒤를 이어 도덕 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주요 저서인 『인간 정신의 철학 강의』(1820)에서는 하틀리로부터 유래한 관념 연합 심리학을 리드의 상식 철학에 접목하려 시도했다. 특히 리드가 엄격하게 구분했던 "감각"과 "지각"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했으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관념 연합 심리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윌리엄 해밀턴 경은 스튜어트로부터 리드의 상식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브라운과는 달리 칸트의 비판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그는 『에든버러 리뷰』에 발표한 논문 「무제약자의 철학」(1829)에서 쿠잔의 인식론을 비판하며, 인간은 오직 "제약된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상대적 인식론을 펼쳤다. 해밀턴 경은 "생각하는 것은 조건 짓는 것(To think is to condition)"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대상은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으므로 조건을 초월한 "무한"이나 "영원"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논문은 그가 에든버러 대학교의 논리학 및 형이상학 교수로 임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해밀턴 경은 논리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사상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넘어 프랑스 스피리추얼리즘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리드의 저작과 스튜어트의 유고를 모아 『토마스 리드 저작집』『더갈드 스튜어트 전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J.S. 밀과 같은 후대 철학자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3. 주요 특징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이 제시한 '인상과 관념'을 통한 인식론에 맞서, 지식의 확실한 근거를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Common Sense)'에서 찾으려 했던 철학 학파이다. 토마스 리드가 이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이 학파의 사상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의 저술과 18세기 후반 미국 정치 철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22]

상식 학파의 주요 인물로는 리드 외에도 케임즈 경 헨리 흄, 조지 캠벨, 제임스 비티, 제임스 오즈월드, 더갈드 스튜어트, 윌리엄 해밀턴 등이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 스코틀랜드 계몽 사상의 중심 흐름을 형성했으며, "도덕 철학"으로서의 고전파 경제학이 발전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애덤 스미스의 후임으로 글래스고 대학교 교수가 된 리드는 상식 학파의 주요 거점을 마련했다. 그는 『인간 지적 능력에 관하여』(1785)와 『인간 정신의 능동적 능력에 관하여』(1788) 등의 저서를 통해, 데카르트에서 에 이르는 근대 철학의 회의주의적 경향을 비판했다. 리드는 지식 획득의 기초를 '관념'이 아닌, 인간 정신의 타고난 '능력'과 자명한 '상식의 원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신 해부학'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리드가 제시한 '상식의 원리'는 다른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오즈왈드는 이를 주로 종교 영역에 적용하여 『종교 옹호를 위한 상식에 대한 호소』(1766-72)를 저술했다. 스코틀랜드 교회 성직자였던 그는 신의 존재가 논증이 아닌 상식적 직관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비티는 『진리의 성질과 불변성 — 궤변과 회의론에 대한 반박』(1770)에서 상식의 원리를 미학 영역에 적용하고 근대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그는 상식을 교육이나 습관이 아닌 자연에서 비롯된, 진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능력으로 보았다. 오즈왈드와 비티의 활동 덕분에 상식 학파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리드의 본래 의도였던 인식론 구축보다는 회의론 비판과 기존 종교 및 도덕 옹호라는 측면이 더 부각되기도 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리드 박사의 '연구', 비티 박사의 '논문', 및 오즈왈드 박사의 '호소'의 검토』(1774)를 통해 이들 세 학자를 비판했다. 프리스틀리는 흄의 회의론에 반대하는 점은 같았지만, 상식을 마치 '여섯 번째 감각'처럼 간주하여 철학의 기초로 삼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비판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칸트 역시 이 책을 읽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3. 1. 상식의 원리

토마스 리드는 상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만약 우리 본성의 구성이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이끌고, 그 이유를 제시할 수 없더라도 삶의 일반적인 문제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원칙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상식의 원리라고 부르며, 명백히 그것에 반하는 것을 터무니없다고 부른다."[9]

스코틀랜드 상식 현실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감각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고 보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철학을 지지한다.[10] 상식의 원리는 형이상학적 지식과 물리적 지식 모두를 쌓아가는 데 기본이 된다.[4] 하지만 단순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지식을 설명할 수 없으며, 진리는 성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10] 리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또한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개별 대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인식한다. 이 인식의 직접적인 대상은 약 643.74km 떨어져 있으며,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내가 그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11]

상식 학파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능력'(faculty) 또는 '정신 능력'이다. 이는 우리가 지각하고 개념을 형성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적 능력은 다양한 정신 활동, 예를 들어 '내 앞에 문이 있다'고 판단하거나 상상하고, '모든 문에는 손잡이가 있다'고 추론하는 것 등을 가능하게 한다. 리드는 우리의 능력과 감각이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했지만, 일상생활에서 항상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감각은 능력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냄새가 대상의 존재를 암시하듯 감각은 대상의 성질에 대한 개념을 만들고 우리의 믿음을 형성한다. 자유 역시 능력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확신으로 여겨졌다. 리드에게 이러한 능력은 "진정한 철학, 과학, 실천적 삶의 기초이며, 그것 없이는 우리는 회의주의와 절망에 빠질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상식 학파는 모든 사람이 다음과 같은 직관적으로 확실한 믿음을 공유한다고 가르쳤다.

  • 자아의 존재: '나'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믿음.
  • 실재 대상의 존재: 보고 만질 수 있는 외부 세계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
  • 제1원리: 건전한 도덕과 종교적 신념을 세울 수 있는 기본적인 원리들.


이러한 원리들은 리드가 제시한 지각 이론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리드는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버클리으로 이어진 근대 철학의 관념론적 경향, 특히 인식론에서의 회의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경향이 '관념'을 매개로 해야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대신 리드는 인식의 원천을 관념이 아닌, 정신의 '능력'과 그 '작용', 그리고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자명한 '상식의 원리'에 두어 '정신 해부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3. 2. 지각 이론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주요 철학자인 토마스 리드와 더갈드 스튜어트는 상식적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지각 이론을 제시했다. 이들의 이론은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어 데이비드 흄에 이르기까지 회의론적 경향을 보인 근대 철학의 관념론에 대한 반론으로 등장했다.[8] 리드는 인간이 외부 세계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식의 매개체로 '관념'을 설정하는 기존 철학을 비판했다. 그는 인식의 근원을 정신의 타고난 "능력"과 그 "작용", 그리고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자명한 "상식(Common Sense)의 원리"에서 찾고자 했다.

예일 대학교의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리드의 지각 이론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핵심 원칙으로 정리했다.[14]

# 지각 행위의 대상은 우리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 대상이다. 즉,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이다.

# 외부 대상을 지각하기 위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은, 그 대상이 우리에게 그 대상에 대한 개념과 직접적이고 추론적이지 않은 믿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 인간은 외부 대상이 감각을 일으키고, 이 감각이 다시 개념과 직접적인 믿음을 '암시'함으로써 지각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었다.

# 감각은 우리가 그 감각 자체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그것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지 않더라도, 개념과 믿음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자주 그렇게 한다.

리드는 감각이 외부 대상의 존재를 암시하고 우리의 믿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지만, 지각의 직접적인 대상은 감각 자체가 아니라 정신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11][14] 그는 정신의 다양한 능력(판단, 상상, 추론 등)을 통해 개념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으며, 이러한 능력들은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신뢰하게 된다고 보았다(Leher 785-786).

더갈드 스튜어트 역시 리드의 영향을 받아 지각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리드의 핵심 주장을 "믿음의 근본 법칙"이라고 칭했다.[15] 그러나 스튜어트는 리드보다 더 온건한 실재론적 입장을 취했으며, 지각 과정에서 감각이 가지는 유용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15]

4. 영향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사상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국 등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4] 오랫동안 과소평가되기도 했지만, 유럽의 다른 지역과 미국 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4] 이 학파는 18세기 초 "대학의 정통 철학"[4]으로 자리 잡으며 계몽주의 시대의 지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했다.[4]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쿠쟁 등이 상식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미국 독립 혁명 시기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대학 교육과 기독교 사상, 실용주의 철학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21][22]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 참고)

비록 윌리엄 해밀턴 경 이후 학파 자체는 약화되었지만, 그 사상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어 현대 사상의 중요한 원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4. 1. 미국 독립 혁명과 건국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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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미국 지식 사회에는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가 널리 퍼졌다.[17] 토머스 리드의 철학은 미국 독립 혁명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으며, 안정적인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17]

일부에서 "현대 정신 의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17] 벤자민 러시는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강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형성했다. 이는 노예제에 대한 도덕적 반대를 포함하여 그의 과학적, 정치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17] 토머스 제퍼슨존 애덤스의 철학에서도 스코틀랜드 상식 현실주의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애덤스는 더갈드 스튜어트의 업적을 아리스토텔레스르네 데카르트의 저작에 비견하며 높이 평가했다.[17]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유일한 스코틀랜드 출신인 존 위더스푼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그의 지도 아래 프린스턴 대학교는 12명의 주지사, 55명의 제헌 의회 대표, 그리고 미래의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등을 배출했다.[17] 위더스푼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현실주의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스코틀랜드 현실주의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제임스 매코시(1811–1894)는 1868년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이 되어 스코틀랜드 현실주의 운동의 주요 거점으로서 프린스턴의 위상을 다시 높였다. 노아 포터(1811–1892) 역시 예일 대학교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학생들에게 상식 현실주의를 가르쳤다.

4. 2. 기독교 근본주의

1800년대의 프린스턴 신학교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보수적인 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29년 신학교의 방향 전환 이전까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프린스턴의 신학자들은 "상식"적 실재론, 성경주의, 고백주의를 바탕으로 정교한 신학 체계를 구축했다.[18]

제임스 맥코시는 그의 저서 ''신적 통치의 방법''(The Method of the Divine Governmenteng) 덕분에 퀸스 칼리지 벨파스트에서 프린스턴 칼리지(현 프린스턴 대학교)의 도덕 철학 교수이자 총장으로 초빙되었다. 이 책은 찰스 다윈종의 기원 (1859) 출간 이전에 나온 기독교 철학 저서였다. 맥코시를 비롯한 여러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맥코시는 프린스턴을 북미의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이자 장로교의 주요 지적 신학교로 발전시키고자 했으며, 당시 칼리지와 신학교의 교수진에는 진화론적 사상가와 비진화론적 사상가가 공존했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 신학은 프린스턴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상식적 실재론의 영향을 반영한다.[19]

신약학자 그랜트 R. 오스본은 스코틀랜드 상식 실재론이 성경 해석학에 영향을 미쳐, 성경 본문의 표면적 의미에 치중하는 이해 방식과 개인주의적 해석 경향을 확산시켰다고 평가한다.[20]

4. 3. 기타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윌리엄 해밀턴 경을 마지막으로 영국의 관념론 또는 직관주의에 흡수되었다. 해밀턴의 제자인 제임스 허치슨 스털링은 영국의 토머스 힐 그린이나 존 맥태거트 등과 함께 영국 관념론의 주요 인물로 여겨지지만, 스코틀랜드 철학자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잉글랜드화가 진행되면서 스코틀랜드 대학의 독자적인 전통과 함께 상식 학파라는 분류도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상식 학파의 사상은 여러 형태로 계승되었다. 영국의 철학, 특히 직관주의적 입장의 헨리 시지윅이나 G.E. 무어와 같은 철학자들은 토마스 리드와 더갈드 스튜어트의 전통을 따라 상식(Common Sense)을 중요하게 여겼다.

프랑스에서는 메인 드 비랑과 로와이에-콜라르가 일찍부터 리드와 스튜어트의 철학을 받아들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빅토르 쿠쟁은 상식 학파의 내성(內省) 중시와 같은 관점을 발전시켜, 훗날 프랑스 영성주의라 불리며 앙리 베르그송으로 이어지는 사상 조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쿠쟁은 해밀턴 경과 논쟁을 벌이는 등 후기 상식 학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상식 학파의 저작이 제임스 매코시 등에 의해 장로교 계열 대학(예: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양 과목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이후 찰스 퍼스는 이를 비판적 상식주의로 발전시켜 실용주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미국의 철학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 사상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를 형성했다.

5. 주요 인물과 저작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과 그들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 '''케이임스 경 헨리 흄''' (Henry Home, Lord Kames, 1696–1782): 스코틀랜드의 법률가이자 저술가로,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에 맞서 기존 도덕과 종교를 옹호하며 상식 학파의 형성을 준비했다. 그의 저서 '''『도덕과 자연 종교의 원리』'''(1751)는 인식론과 도덕론 양면에서 흄의 사상을 비판하며, 외부 세계의 직접적 직관과 "도덕 감각"의 선험성을 강조하여 후대 상식 학파의 방향을 제시했다.[21]
  • 1751년. ''도덕과 자연 종교의 원리'' (''Essays on the Principles of Morality and Natural Religion'')

  • '''토마스 리드''' (Thomas Reid, 1710–1796): 상식 학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애버딘 대학교글래스고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데이비드 흄의 인식론에 반박하고, 인간의 정신 능력과 "상식(Common Sense)의 원리"에 기반한 인식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는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이 관념을 매개로 지식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회의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고, 정신의 능력과 작용 자체를 탐구하는 '정신 해부학'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8][9][21]

  • 1764년. ''상식의 원리에 따른 인간 정신 탐구'' (''An Inquiry into the Human Mind on the Principles of Common Sense'')
  • 1785년.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하여'' (''Essays on the Intellectual Powers of Man'')
  • 1788년. ''인간 정신의 능동적 능력에 관하여'' (''Essays on the Active Powers of the Human Mind'')

  • '''조지 캠벨''' (George Campbell, 1719–1796): 애버딘 대학교 교수로, 애버딘 철학 협회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그의 저작은 협회에서의 토론 결과물로, 특히 기적에 대한 논증과 수사학 연구로 알려져 있다.[21]
  • 1762년. ''기적론'' (''A Dissertation on Miracles'')
  • 1776년. ''수사학의 철학'' (''The Philosophy of Rhetoric'')

  • '''제임스 비티''' (James Beattie, 1735–1803): 애버딘 철학 협회 회원으로, 리드의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그는 "상식"을 교육이나 습관이 아닌 자연에서 유래하는 직관적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를 통해 상식 학파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저작은 궤변과 회의주의에 대한 반박을 담고 있다.[21]
  • 1770년. ''진리의 본질과 불변성 — 궤변과 회의론에 대한 반박'' (''An Essay on the Nature and Immutability of Truth, in Opposition to Sophistry and Scepticism'')

  • '''제임스 오즈왈드''' (James Oswald, 1703–1793): 스코틀랜드 교회 성직자로, 리드의 상식 원리를 종교 영역에 적용했다. 그는 신의 존재가 논증이 아닌 "상식"이라는 직관적 능력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당시 지배적이던 온건파 종교인들의 입장에 의문을 제기했다.[21]
  • 1766–1772년. ''종교 옹호를 위한 상식에의 호소'' (''An Appeal to Common Sense in Behalf of Religion'')

  • '''더걸드 스튜어트''' (Dugald Stewart, 1753–1828): 에든버러 대학교 도덕 철학 교수이자 리드의 정당한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상식"이라는 용어 대신 "신념의 기본 법칙" 사용을 제안하며 리드의 철학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인식론, 윤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했으며, 특히 정치경제학을 도덕 철학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강의한 선구자 중 한 명이다.[5][21]
  • 1792년. ''인간 정신 철학의 요소'' (''Elements of the Philosophy of the Human Mind'')
  • 1828년. ''인간의 능동적, 도덕적 능력의 철학'' (''The Philosophy of the Active and Moral Powers of Man'')
  • 1855년. ''정치경제학 강의'' (''Lectures on Political Economy'', 사후 출판)

  • '''제임스 매킨토시 경''' (Sir James Mackintosh, 1765–1832): 스튜어트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법률가이자 역사가, 철학자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의 비판에 반박하는 글을 썼으며, 윤리 철학사 연구에도 기여했다.[21]
  • 1791년. ''갈리아의 옹호'' (''Vindiciae Gallicae'')
  • 1830년. ''윤리 철학의 발전에 관하여'' (''Dissertation on the Progress of Ethical Philosophy'')

  • '''토마스 브라운''' (Thomas Brown, 1778–1820): 스튜어트의 후임으로 에든버러 대학교 도덕 철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리드의 상식 철학에 관념 연합 심리학을 도입하여 "감각"과 "지각"의 관계를 새롭게 논하며 심리학 발전에 기여했다.[21]
  • 1820년. ''인간 정신 철학 강의''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the Human Mind'')

  • '''윌리엄 해밀턴 경''' (Sir William Hamilton, 9th Baronet, 1788–1856): 스튜어트로부터 리드의 철학을 계승하면서 이마누엘 칸트의 비판 철학을 수용하려 했다. 그는 『에든버러 리뷰』에 발표한 논문 「무제약자의 철학」에서 인간은 "제약된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상대적 인식론을 펼쳤다. 또한 리드와 스튜어트의 저작을 편집하여 출판하는 데 공헌했다.[5][21]
  • 1829년. 「무제약자의 철학」 (''The Philosophy of the Unconditioned'')

  • '''제임스 F. 페리어''' (James Frederick Ferrier, 1808–1864):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도덕 철학 및 정치경제학 교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인식론존재론을 결합한 독자적인 형이상학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21]
  • 1854년. ''형이상학 연구: 앎과 존재의 이론'' (''Institutes of Metaphysic: The Theory of Knowing and Being'')

  • '''제임스 허치슨 스털링''' (James Hutchison Stirling, 1820–1909): 스코틀랜드 철학자이자 헤겔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상식 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영국 철학계에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 철학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21]
  • 1865년. ''헤겔의 비밀: 기원, 원리, 형식 및 내용에 있어서의 헤겔 시스템'' (''The Secret of Hegel: Being the Hegelian System in Origin, Principle, Form, and Matter'')

참조

[1] 서적 Dominant themes of modern philosophy: a history https://books.google[...] Ronald Press Co
[2] 논문 'Philosophically Playing the Devil' recovering readers' responses to David Hume and the Scottish Enlightenment 2010-05
[3] 논문 Uncovering the Significance of the Animal Imagery in Modern Chivalry: An Application of Common Sense Realism http://web.ebscohost[...] 1979-12-01
[4] 논문 The Correspondence of Thomas Reid
[5] 서적 Carlyle and Scottish Thought Macmillan Press
[6] 논문 The Contribution of Thomas Carlyle to British Idealism, c. 1880–1930 https://www.euppubli[...] 2019-09-20
[7] 문서 The Necessity of Experience Yale University Press
[8] 서적 An Inquiry into the Human Mind on the Principles of Common Sense Edinburgh University Press LTD
[9] 문서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omas Reid
[10] 문서 Scottish Philosophy 2007-04
[11] 문서 Essays on the Intellectual Powers of Man https://archive.org/[...] Ireland
[12] 논문 The Prejudices of Education: Educational Aspects of the Scottish Enlightenment http://web.ebscohost[...]
[13] 논문 "Scientific Whigs"? Scottish Historians on the French Revolution http://web.ebscohost[...] 2013-01
[14] 논문 What Sort of Epistemological Realist was Thomas Reid? 2006-Autumn
[15] 문서 Dugald Stewart on Beauty and Taste http://web.ebscohost[...] 2007-04
[16] 웹사이트 Key to Trumbull's picture http://www.americanr[...]
[17] 문서 The Scottish Enlightenment and the American Founding 2007-04
[18] 문서 Modern Christian Thought: The Enlightenment and the nineteenth century
[19] 문서 Renewing the center: evangelical theology in a post-theological era
[20] 문서 The Hermeneutical Spiral: A Comprehensive Introduct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Rev. and expanded, 2nd ed. InterVarsity Press
[21] 논문 'Philosophically Playing the Devil' recovering readers' responses to David Hume and the Scottish Enlightenment 2010-05
[22] 논문 Uncovering the Significance of the Animal Imagery in Modern Chivalry: An Application of Common Sense Realism http://web.ebscohost[...] 1979-12-01
[23] 서적 Charles Hodge : guardian of American orthodoxy https://www.worldcat[...]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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