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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샌더스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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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찰스 샌더스 퍼스는 미국의 철학자, 논리학자, 과학자, 수학자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수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삼차신경통으로 인한 고통과 사회적 고립을 겪었다. 퍼스는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미국 연안측량부에서 일하며 '형이상학 클럽'을 결성하여 실용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기호학, 논리학, 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실용주의, 기호학, 과학적 방법론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20세기에 재평가받아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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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샌더스 퍼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찰스 샌더스 퍼스
1891년의 퍼스
출생일1839년 9월 10일
출생지미국 매사추세츠주케임브리지
사망일1914년 4월 19일 (향년 74세)
사망지미국 펜실베이니아주밀포드
가족벤자민 퍼스 (아버지)
소속 기관존스 홉킨스 대학교
모교하버드 대학교
학문 분야논리학
수학
통계학
철학
계량학
화학
실험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과학사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영향을 준 인물이마누엘 칸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프리드리히 셸링
벤자민 퍼스
영향을 받은 인물존 듀이
윌리엄 제임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주요 관심사논리학
수학
통계학
철학
지역서양 철학
시대후기 근대 철학
사상실용주의
실용론
찰스 샌더스 퍼스의 서명
찰스 샌더스 퍼스의 서명 (1839–1914)
사상
인식론에서의 실용주의귀추법
오류주의
실용론
격률로서
진리 이론으로서
탐구 공동체
논리학
기호학 이론
기타 기여
지도 학생

2. 생애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 대학교의 수학 교수 벤저민 퍼스(Benjamin Peirce)의 아들로 태어났다.[13]

퍼스는 10대 후반부터 당시 "안면 신경통"으로 알려진 신경 상태로 고통받았으며, 이는 오늘날 삼차신경통으로 진단된다.[14] 그의 전기 작가는 고통의 괴로움을 겪었을 때 "처음에는 거의 멍한 상태였으며, 그 다음에는 냉담하고, 차갑고, 우울하고, 극도로 의심이 많고, 사소한 횡단에도 참을성이 없었으며, 격렬한 화를 냈다."라고 말한다.[14] 그 결과는 그의 말년의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미국 연안측량부(沿岸測量部)의 기사가 되고, 한편 7-8명의 동료와 '형이상학 클럽'을 만들어 철학을 연구했다. 회원들에게 공통된 사상을 그는 ‘실용주의’라 명명하고 그 사상 내용을 두 개의 논문으로 나누어 저널에 발표했다. 〈믿음을 확정하는 방법〉(월간 <대중과학>, 1877년 11월)과 〈어떻게 우리들의 관념(觀念)을 명석하게 만드는가〉(같은 저널, 1878년 1월)가 그것이다.

1867년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서 퍼스는 이미 1847년에 조지 부울이 발표한 『논리의 수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그 체계를 개선했다. 학회가 주목하지 않아 중단되었지만, 퍼스의 기호 논리학에서의 작업은 슈뢰더의 『논리 대수학 강의』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로 결실을 맺게 된다.

1883년에 그가 일으킨 이혼 문제가 청교도 도덕이 강했던 매사추세츠주에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 총장 찰스 W. 엘리엇은 퍼스를 교내 어떤 곳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1887년 이후 펜실베이니아주 밀포드로 은거하여, 다양한 사전 및 잡지에의 기고와 신간 서평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네이션 (The Nation)』지의 신간 서평을 담당했을 때는 엄청난 수의 책을 읽고 매일 2000단어씩 썼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이집트학, 범죄학, 언어학, 심리학, 수학, 역학, 천문학, 화학, 측량, 사회학, 역사, 문예 평론, 신학, 전기에 걸쳐 있었다.

퍼스는 중년 이후 완전히 궁핍한 상태로 보냈다. 오랜 세월 동안 지병에 시달리면서,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학자들에게 이해받는 학설을 계속 써 내려갔다.

퍼스는 펜실베이니아주 밀포드에서 극빈 상태로 사망했다.[65]

2. 1. 출생과 가계

찰스 샌더스 퍼스는 1839년 9월 10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3 필립스 플레이스에서 태어났다.[13]
퍼스의 생가. 현재 레슬리 대학교의 예술 및 사회 과학 대학원 건물
그는 하버드 대학교의 수학 및 천문학 교수였던 벤자민 퍼스(Benjamin Peirce)와 새라 헌트 밀스의 아들이었다.[13] 벤자민 퍼스는 선형대수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다. 12세 때 찰스는 형이 가지고 있던 리처드 와틀리의 ''논리학 원리''를 읽었는데, 당시 이 책은 영어권에서 논리학 분야의 선도적인 교재였다. 그렇게 그의 평생에 걸친 논리와 추론에 대한 매료가 시작되었다.[13]

퍼스는 10대 후반부터 "안면 신경통"으로 알려진 신경 질환을 앓았으며, 이는 오늘날 삼차신경통으로 진단된다.[14] 그의 전기 작가인 조셉 브렌트는 고통에 시달릴 때 "그는 처음에는 거의 멍해졌고, 그 다음에는 냉담하고 차가우며 우울해하고, 극도로 의심스러워하며, 사소한 반대에 참을성이 없고, 격렬한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라고 말한다.[14]

2. 2. 교육

찰스 샌더스 퍼스는 10대 시절부터 리처드 와틀리의 ''논리학 원리''를 읽고 논리학과 추론에 관심을 가졌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문학사 및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15] 로렌스 과학 학교에서 최우등 화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15] 그의 학업 기록은 그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다.[16] 하버드에서 프랜시스 엘링우드 애벗, 챈시 라이트, 윌리엄 제임스와 평생 지속되는 우정을 시작했다.[17] 그의 하버드 강사 중 한 명인 찰스 윌리엄 엘리엇은 퍼스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렸는데, 엘리엇은 하버드 총장(1869-1909년)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차례 퍼스의 대학 고용을 거부하여 그의 학문적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18]

2. 3. 초기 경력

찰스 샌더스 퍼스는 1859년부터 1891년까지 미국 연안측량부(1878년 미국 해안 및 측지 측량국으로 개칭)에서 다양한 과학 분야의 업무를 수행했다.[19] 1880년 부친 벤저민 퍼스 사망 전까지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며 측량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20] 측량부에서 주로 측지학과 중력 측정 분야에서 일했으며, 진자를 사용하여 지구 중력의 작은 지역적 변동을 결정하는 방식을 개선했다.[19] 측량국은 퍼스를 유럽에 다섯 차례 파견했는데,[25] 첫 번째는 1871년 일식 관측을 위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퍼스는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윌리엄 킹던 클리포드 등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들을 만났다.[26]

1869년부터 1872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 조수로 근무하며 별의 밝기와 은하수의 모양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했다.[27]

1872년에는 퍼스를 비롯해 올리버 웬들 홈스 주니어, 윌리엄 제임스[28]이 참여한 '형이상학 클럽'을 설립했다.[28] 챈시 라이트, 존 피스크, 프랜시스 엘링우드 애벗, 니콜라스 세인트 존 그린, 조셉 뱅스 워너 등도 회원이었다.[28] 이 클럽은 1872년 1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결성되어 그해 12월 해산될 때까지, 대화 형식의 철학 토론을 통해 실용주의 사상 탄생에 기여했다.

1859년의 퍼스

2. 4. 건강 문제와 사회적 고립

찰스 샌더스 퍼스는 10대 후반부터 "안면 신경통"으로 알려진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이 병은 오늘날 삼차신경통으로 진단된다. 그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퍼스는 이 병으로 인해 "처음에는 거의 멍한 상태였으며, 그 다음에는 냉담하고, 차갑고, 우울하고, 극도로 의심이 많고, 사소한 횡단에도 참을성이 없었으며, 격렬한 화를 냈다."라고 묘사될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증상은 그가 말년에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2. 5.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시절과 해고

1879년, 퍼스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논리학 강사로 임명되었다.[35] 이 대학교는 철학(로이스와 듀이가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리학(G. 스탠리 홀이 가르쳤고 조지프 자스트로우가 연구했으며, 그는 퍼스와 함께 획기적인 경험적 연구를 공동 집필했다), 그리고 수학(J. J. 실베스터가 가르쳤으며, 그는 퍼스의 수학 및 논리학 연구를 존경하게 되었다)등 그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에서 강력한 학과들이 있었다.[35]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구성원의 논리학 연구''(1883)에는 그 자신과 앨런 마르퀀드, 크리스틴 래드, 벤자민 아이브스 길먼, 오스카 하워드 미첼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으며,[35] 그들 중 일부는 그의 대학원생이었다.[36] 퍼스가 홉킨스에서 재직한 비정규직은 그가 가졌던 유일한 학문적 임명이었다.

하지만, 퍼스가 학문적 직위, 보조금, 과학적 명성을 얻으려는 노력은 당시 주요 캐나다-미국 과학자 사이먼 뉴컴의 은밀한 반대에 의해 반복적으로 좌절되었다.[37] 뉴컴은 퍼스의 아버지의 가장 총애받는 제자였으나,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살리에리처럼, 그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만큼의 재능과 그런 사람을 시기할 만큼의 졸렬함을 가지고 있었다."[38] 게다가 "강렬하게 독실하고 문자 그대로 믿는 경건한 기독교인으로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퍼스의 개인적인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38]

1875년, 첫 번째 부인인 해리엇 멜루지나 페이("지나")가 그를 떠난 후,[41] 퍼스는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줄리엣과 관계를 맺었다.[42] 1883년 지나와의 이혼이 확정되자 그는 줄리엣과 결혼했다.[45] 그해 뉴컴은 존스 홉킨스 이사에게 퍼스가 홉킨스 직원으로 있는 동안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함께 살면서 여행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로 인한 스캔들로 인해 그는 1884년 1월 해고되었다.[46] 수년에 걸쳐 퍼스는 여러 대학에서 학문적 직책을 구했지만 실패했다.[47] 그는 두 번의 결혼에서 자녀를 갖지 않았다.[48]

2. 6. 말년과 빈곤

1887년, 퍼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펜실베이니아주 밀포드 근처의 2000에이커(8제곱킬로미터)의 시골 땅을 매입했지만, 경제적 이득은 전혀 없었다.[49] 그는 그곳에 1854년에 지어진 농가를 자신의 설계대로 개조하고,[50] 부동산 이름을 "아리스베"라 지었다.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으며,[51] 많은 글을 썼지만, 대부분 출판되지 않았다. 분수에 넘치는 생활은 곧 심각한 재정적, 법적 어려움으로 이어졌다.[52] 찰스는 마지막 20년 동안 겨울에 난방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아 지역 빵집에서 기증받은 묵은 빵으로 연명했다. 새 문방구를 살 여유가 없어서 낡은 원고의 뒷면에 글을 썼다. 폭행 혐의와 미납된 빚으로 인해 그는 한동안 뉴욕시에서 도망자로 지내기도 했다.[53] 그의 형제 제임스 밀스 퍼스[54]와 이웃, 기포드 핀초트의 친척들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의 빚을 해결하고 재산세와 모기지를 지불했다.[55]

퍼스는 과학 및 엔지니어링 컨설팅을 하고 주로 백과사전 사전 항목과 ''더 네이션''의 서평을 써서 적은 돈을 벌었다.[56] 그는 스미소니언 협회를 위해 번역 작업을 했으며, 이는 당시 협회장이었던 새뮤얼 랭글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퍼스는 또한 랭글리의 동력 비행 연구를 위해 상당한 수학적 계산을 수행했다. 돈을 벌기 위해 퍼스는 발명을 시도했다.[56]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57] 1888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그를 조폐 위원회에 임명했다.[58]

1890년부터 그는 시카고의 프랜시스 C. 러셀 판사라는 친구이자 숭배자를 두게 되었는데,[59] 그는 퍼스를 ''The Monist''의 편집자 폴 카루스와 소유자 에드워드 C. 헤겔러에게 소개했고, 결국 ''The Monist''는 퍼스의 기사를 최소 14편 이상 게재했다.[60] 그는 제임스 마크 볼드윈의 ''철학과 심리학 사전'' (1901–1905)에 많은 글을 썼는데; 그에게 기인한 것들 중 절반은 실제로 그의 감독하에 크리스틴 래드-프랭클린이 쓴 것으로 보인다.[61] 그는 1902년에 새로 설립된 카네기 연구소에 자신의 평생 연구를 설명하는 체계적인 책을 쓰기 위한 지원금을 신청했다. 이 신청은 실패로 끝났는데, 그의 숙적인 뉴컴이 카네기 연구소 집행위원회에서 활동했고, 그 연구소의 회장은 퍼스가 해고될 당시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총장이었다.[62]

이 어려운 시기에 퍼스를 돕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그의 오랜 친구 윌리엄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그의 저서 ''믿음의 의지'' (1897)를 퍼스에게 헌정했고, 퍼스가 하버드 근처에서 두 차례의 강연 (1898년과 1903년)을 하도록 주선하여 돈을 받게 했다.[63]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임스는 1907년부터 1910년 사망할 때까지 매년 보스턴 지식인들에게 퍼스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으며, 이 기금은 제임스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퍼스는 제임스의 장남을 줄리엣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자신의 상속인으로 지정함으로써 이에 보답했다.[64]

2011년 아리스베


찰스와 줄리엣 퍼스의 묘

2. 7. 사망

퍼스는 펜실베이니아주 밀포드에서 극빈 상태로 사망했다.[65] 그의 아내 줄리엣은 퍼스의 유골이 담긴 단지를 아리스베에 보관했다. 1934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기포드 핀쇼는 줄리엣의 밀포드 묘지 매장을 주선했으며, 퍼스의 유골이 담긴 단지는 줄리엣과 함께 안장되었다.[65]

그는 마지막 20년 동안 겨울에는 난방 없이 지냈으며, 지역 빵집에서 호의로 기증해 준 낡은 빵을 항상 먹었다.[65] 새로운 문구류를 살 수 없어서, 그는 낡은 원고의 뒷면에 글을 썼다. 폭행 및 채무 불이행에 대한 미집행 체포 영장 때문에, 그는 한동안 뉴욕시에서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그의 형제 제임스 밀스 피어스와 그의 이웃들, 기퍼드 핀쇼의 친척들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의 빚을 처리하고 그의 재산세와 대출금을 지불했다.

3. 주요 업적 및 사상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다. 그는 하버드 학부생일 때 주로 독일어로 된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몇 페이지를 매일 읽으면서 철학을 배웠다. 그의 저서는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 측량학, 측지학, 실험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역사학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 걸쳐 있다.

== 과학적 방법론 ==

퍼스는 실용주의 철학에 따라, 우리가 신념을 확정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퍼스는 과학적 방법만이 바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 얻어지는 신념은 연구자 간에 공개되어 최종적으로 전원의 의견 일치를 보았을 때에만 진리로서 승인된다.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 기호학 ==

퍼스의 기호학 이론은 일반론적 주장으로 인해 가장 복잡한 기호학 이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140] 퍼스에 의하면 기호는 표상체, 대상체, 해석체가 결합한 삼항 구조다. 표상체는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상이다. 그것은 반드시 상징적이거나 언어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구름은 비가 올 징조다. 대상체는 기호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이다. 해석체는 일종의 아이디어나 효과, 해석, 인간 또는 기타로 형성된 부호의 의미 또는 결과이다.

== 논리학 ==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1918년 논리학자 C. I. 루이스는 "C.S. 퍼스의 기호 논리학에 대한 기여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 적어도 19세기에, 더 많고 다양하다."[134]라고 썼다.

== 수학 ==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다.[240] 그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 철학 ==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5년간 강연한 시기만이 전문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학부생 시절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매일 독일어 원본으로 몇 페이지씩 읽으며 철학을 공부했다.[27] 그의 저술은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 계측학,[3] 측지학, 실험 심리학,[4] 경제학,[5] 언어학,[6] 그리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퍼스의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세 범주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

퍼스는 실용주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가 신념을 확정하는 방법에는 고집의 방법, 권위의 방법, 선험적(先驗的) 방법, 과학적 방법의 네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퍼스는 과학적 방법만이 바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 얻어지는 신념은 연구자간에 공개되어 최종적으로 전원의 의견일치를 보았을 때에만 진리로서 승인된다. 철학의 과제는 애매한 관념이나 언어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명석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는 하나의 기호이므로 퍼스의 철학은 기호의 의미를 확실히 정하고, 기호체계를 분석하는 기호학 및 기호논리학이 본질적 구성 부분이다.

== 실용주의 (Pragmatism) ==

퍼스는 실용주의의 창시자로, 그의 실용주의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방법론이다.[108] 퍼스는 1870년대 초 형이상학 클럽에서 윌리엄 제임스 등과 토론하며 실용주의를 발전시켰다.[108]

== 탐구 이론 (Theory of Inquiry) ==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철학을 배웠다. 그의 저서는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 측량학, 측지학, 실험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역사학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 걸쳐 있다.[240]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그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3. 1. 과학적 방법론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다. 그의 저서는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 측량학, 측지학, 실험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역사학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 걸쳐 있다.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퍼스의 실용주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가 신념을 확정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퍼스는 과학적 방법만이 바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 얻어지는 신념은 연구자간에 공개되어 최종적으로 전원의 의견일치를 보았을 때에만 진리로서 승인된다.

"믿음의 고정"(1877)에서 퍼스는 일반적인 탐구를 진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움, 불일치 등에서 비롯된 짜증나고 억제적인 의심에서 벗어나 안전한 믿음에 도달하려는 투쟁으로 묘사했다. 믿음은 행동을 준비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퍼스는 과학적 탐구를 더 넓은 스펙트럼의 일부로 구성하고, 일반적인 탐구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의심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단순한 언어적, 논쟁적 또는 과장된 의심은 무익하다고 여겼다.

퍼스는 의견을 정착시키는 네 가지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했으며, 성공적인 정도에 따라 순서를 매겼다.

# 의 방법 (초기 믿음을 고수하는 정책) – 편안함과 결단력을 가져다주지만, 진리가 본질적으로 공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처럼 반대되는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무시하려고 한다. 이 방법은 사회적 충동에 반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초기 의견만큼 좋다고 인식할 때 쉽게 흔들린다. 이 방법의 성공은 훌륭할 수 있지만 일시적인 경향이 있다.

# 의 방법 – 불일치를 극복하지만 때로는 가혹하다. 이 방법의 성공은 웅장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특히 현재와 과거의 다른 사회에 대해 알게 될 때, 의심을 무한정 견딜 만큼 사람들을 철저하게 규제할 수 없다.

# 방법 – 덜 가혹하게 동조를 장려하지만 "이성에 맞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대화와 관점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 취향과 같은 의견을 조성한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유행에 의존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맴돈다. 더 지적이고 존경할 만하지만, 처음 두 가지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이고 변덕스러운 믿음을 유지하며, 일부 사람들은 의심하게 만든다.

# 의 방법 – 탐구가 현실은 발견될 수 있으며 특정 의견과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므로, 다른 방법과 달리 탐구는 자체적으로 잘못될 수 있고(오류주의), 옳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비판하며, 수정하고 개선한다.

퍼스는 실제 문제에서 느리고 비틀거리는 추론은 종종 본능과 전통적인 감정에 비해 위험할 정도로 열등하며, 과학적 방법은 이론적 연구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116] 이는 다른 방법과 실제적인 목적에 의해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성의 "첫 번째 규칙"[139]은 배우기 위해서는 배우고 싶어 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탐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은 결국 가장 안전한 믿음에 도달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어, 가장 성공적인 실천이 기반을 둘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방법보다 뛰어나다. 사람들은 진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나고 억제적인 의심을 잠재우려고 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퍼스는 투쟁을 통해 일부 사람들이 믿음의 온전함을 위해 진리에 복종하고, 주어진 목표에 대한 잠재적 행동의 지침을 진리로 추구하며, 과학적 방법에 헌신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세 가지 논증 방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하고 근본주의정합주의와는 다른 퍼스의 접근 방식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의 탐구 역학을 통해 주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 활동적이고 귀추적인 이론의 생성, 진리에 대한 사전 보장은 없음;

# 잠정적 이론의 실질적 함의를 명확히 하기 위한, 가변적인 이론의 연역적 적용;

# 미래 경험, 즉 ''예측''과 ''통제''의 두 가지 의미에서 잠정적 이론의 유용성을 귀납적으로 검증하고 평가함.

그리하여 퍼스는 단순히 현상학적 패턴을 재명명하는 것에 불과한 귀납적 일반화의 단순한 이미지보다 훨씬 더 견고한 탐구 접근 방식을 고안했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과학적 방법이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인식론으로 제안된 최초의 시도였다.

경쟁 이론보다 우리 세계를 더 잘 예측하고 통제하는 이론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진리에 대한 작동적 개념이다.

퍼스는 고전 논리학에서 탐구에 대한 실용적인 모형 또는 이론을 추출하여 기호 논리학의 초기 발전과 병행하여 정제하여 과학적 추론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귀추법, 연역법, 귀납법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 불완전하게 느껴지지만, 탐구라는 공통된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한 전체로 이해될 수 있는 주기를 구성한다. 상상할 수 있는 실질적 함의에 대해 생각하는 실용적인 방식에서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며, 가능하다면 그 목적이 먼저 표시되어야 한다. 귀추법은 연역법이 검증될 함의로 명확히 할 설명을 가설로 세우고, 귀납법이 가설을 평가하여 문제적인 불확실성에서 더 안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추론 방식을 서로 분리하여 연구하는 것이 전통적이고 필요하다 하더라도, 탐구의 완전성은 주요 구성 요소의 효과적인 모듈성을 강력하게 제한한다.

퍼스의 "소홀히 여겨진 논거"의 §III–IV에 제시된 과학적 방법의 개요는 아래에 요약되어 있다(별도로 언급된 경우 제외). 그는 또한 타당성 및 귀납적 정밀도( 논증 비판 문제)를 검토했다.

# ''귀추적''(또는 역추론) 단계.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한 설명적 가설에 대한 추측, 추론. 귀추법으로부터, 퍼스는 검증을 바탕으로 가설의 진실 비율을 추론하는 귀납법을 구별한다. 아이디어, 거친 사실, 또는 규범과 법칙에 대한 모든 탐구는 이러한 영역 중 하나 이상에서 놀라운 관찰에서 비롯된다(예를 들어 이미 진행 중인 탐구의 어느 단계에서든). 이론의 모든 설명적 내용은 귀추법에서 비롯되며, 이는 놀랍거나 복잡한 현상을 간단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새롭거나 외부적인 아이디어를 추측한다. 우리의 추측의 약간의 성공은 우연의 행운을 훨씬 능가하며, 특히 최고의 추측이 갈릴레오의 자연스러운 이성의 빛에 의해 "쉽고 자연스러운" 의미에서 최적으로 타당하고 단순한 한, 개발되거나 내재된 본능에 의해 자연에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귀추법은 가장 풍부하지만 가장 안전하지 않은 추론 방식이다. 그 일반적인 근거는 귀납적이다. 그것은 종종 성공하며 새로운 진리에 우리를 신속하게 인도하는 데 대체할 수 없다.[119] 1903년, 퍼스는 실용주의를 "귀추법의 논리"라고 불렀다.[120] 조정 방식은 타당성을 테스트하고[121] 그 시험이 어떻게 탐구 자체를 절약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타당한 가설을 귀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122] 가설은 안전하지 않으므로 적어도 정신적 검증으로 이어지고 과학에서는 과학적 검증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함의가 있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추측은 반증에 대한 검증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먼저 검증할 순서에 속할 수 있다. 추측은 주관적 가능성이 논리적일 수 있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유혹이 있을 수 있는 반면, 타당성 또는 합리적인 객관적 확률이 있는 경우 본질적으로 검증할 가치가 있다. 추측은 신중함(퍼스는 그 예로 스무고개 게임을 들었다), 광범위함 또는 단순성 때문에 전략적으로 시험을 위해 선택될 수 있다.[123] 충분한 경험을 통해 어쨌든 드러날 수 있는 것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요점은 그것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연구의 경제성은, 말하자면, 귀추법의 도약을 요구하고 그 기술을 지배한다.[122]

# ''연역적'' 단계. 두 단계:

:i. 명시: 명확하게 전제되지 않지만, 가설의 부분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가설의 연역적 분석.

:ii. 증명: 절차에서 유클리드적인 연역적 논증. 발견될 증거에 대한 예측으로서 가설의 결과에 대한 명시적 연역. 따름정리 또는 필요한 경우 정리.

# ''귀납적'' 단계. 가설의 평가, 그 연역된 결과에 대한 관찰 또는 실험적 검증으로부터 추론. 귀납의 규칙의 장기적인 타당성은 (일반적으로 추론에 전제되는) 현실은 "충분한 조사가 이끌 최종 의견의 대상일 뿐"이라는 원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110] 즉, 그러한 과정을 배제하는 것은 어떤 것도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증거의 지속적인 축적을 포함하는 귀납은 "충분히 지속되면" "오차를 미리 지정된 정도 이하로 감소"시키는 "방법"을 따른다. 세 단계:

:i. 분류. 명확하게 전제되지 않지만, 일반적인 아이디어에 따른 경험의 객체에 대한 귀납적 분류.

:ii. 검증: 직접적인 귀납적 논증. 절차에서 조잡하거나 점진적이다. 한 덩어리의 경험에 기초한 조잡한 귀납법(CP 2.759)은 질문에 대한 미래 경험이 모든 과거 경험과 완전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CP 2.756). 점진적 귀납법은 각 검사 후에 가설의 진실 비율에 대한 새로운 추정을 하고, 질적 또는 양적이다. 질적 점진적 귀납법은 조사 대상 클래스의 다양한 품질의 상대적인 증거 가중치를 추정하는 데 의존한다(CP 2.759; ''찰스 샌더스 퍼스의 수집된 논문'', 7.114–120 참조). 양적 점진적 귀납법은 ''S''의 공정한 표본에서 ''S''가 실제로 ''S''에 대해 예측된 ''P''와 함께 발견되는 빈도에 의존한다(CP 2.758). 측정, 통계 또는 계산에 의존한다.

:iii. 명제 귀납. "...귀납적 추론에 의해 다양한 검증을 개별적으로 평가한 다음, 그 조합을 평가한 다음, 이러한 평가 자체를 자가 평가하고 전체 결과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3. 2. 기호학

퍼스의 기호학 이론은 일반론적 주장을 담고 있어 가장 복잡한 이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140] 퍼스는 기호를 표상체, 대상체, 해석체의 삼항 구조로 보았다. 표상체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상이며,[156] 대상체는 기호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이다.[158] 해석체는 기호의 의미나 결과로, 아이디어나 효과, 해석 등으로 형성된다.[149] 이 세 요소는 환원 불가능한 삼항 관계를 이룬다.[154]

퍼스는 기호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전통적인 접근 방식인 '확장'(기호의 대상)과 '내포'(대상의 특성)에 더해, 정보의 변화를 포함하는 '정보'라는 세 번째 방식을 추가하여 이들을 통합했다.[151] 기호는 대상에 의해 특정화되며, 해석체는 기호와 대상 모두에 의존한다.[154] 대상은 기호가 해석체를 결정하도록 하며, 해석체는 대상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대상을 나타낸다.[154] 이러한 결정은 3항적이다.[154]

퍼스는 기호 작용(semiosis)에 세 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148]

# '''기호''' (또는 '''표상체''')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156]

# '''객체''' (또는 '''기호학적 객체''')는 기호와 해석자의 주제이다.[158]

# '''해석자''' (또는 '''해석자 기호''')는 해석으로 형성된 기호의 의미이다.

이해를 위해서는 객체에 대한 부수적인 경험이 필요하다.[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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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의 공동 분류 라인.
모든 기호는:[160]

|-

| ||1.|| ||2.|| ||3.

|-

|I.||퀄리사인||''or''||신사인||''or''||레지사인

|-

|''and''||colspan=5 title="퀄리사인에서 아이콘까지 한 줄. 신사인에서 아이콘과 인덱스까지 두 줄. 레지사인에서 아이콘, 인덱스, 심볼까지 세 줄." |
142px


|-

|II.||아이콘||''or''||인덱스||''or''||심볼

|-

|''and''||colspan=5 title="아이콘에서 레메까지 한 줄. 인덱스에서 디시사인과 레메까지 두 줄. 심볼에서 레메, 디시사인, 아규먼트까지 세 줄." |

|-

|III.||레메||''or''||디시사인||''or''||아규먼트

|}

퍼스는 여러 기호 유형을 분류했는데, 그 중 세 가지가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기호 자체(퀄리사인, 신사인, 레지사인),[161] 두 번째는 기호와 대상의 관계(아이콘, 인덱스, 심볼), 세 번째는 해석자에 대한 기호와 대상의 관계(레메, 디시사인, 아규먼트)에 따른 분류다.[161]

퍼스는 1860년대부터 기호학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148] 그의 기호학은 삼항 관계에 기초한다.[148] 그는 기호 작용을 "기호, 대상, 해석자의 협력을 포함하는 작용"으로 정의했다.[148] 모든 사고는 기호 안에서 이루어지며 해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143]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그는 논리학을 "형식 기호학"으로 정의하고, 수학적 추론을 통해 논리학의 원리를 도출했다.[150]

3. 3. 논리학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1918년 논리학자 C. I. 루이스는 "C.S. 퍼스의 기호 논리학에 대한 기여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 적어도 19세기에, 더 많고 다양하다."[134]라고 썼다. 찰스 샌더스 퍼스의 "관계의 논리"(1870)에 관한 첫 번째 논문부터 시작하여, 퍼스는 관계의 이론을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이 개척한 영역으로 확장했다. 관계 논리는 응용 분야를 얻었다. 수학에서는 E. H. 무어의 추상적 분석과 격자 이론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가렛 비르코프의 연구였다. 컴퓨터 과학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관계형 모델이 퍼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에드거 F. 코드의 연구에서 개발되었으며, 그는 아서 W. 버크스의 박사 과정 학생이었고, 아서 W. 버크스는 퍼스 연구자였다.[135]

찰스 샌더스 퍼스와 그의 동시대 인물인 에른스트 슈뢰더 및 고틀로프 프레게에 관해, 힐러리 퍼트넘(1982)[91]은 프레게의 양화사 논리에 대한 연구가 동시대 인물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기록했는데, 이는 프레게의 연구가 퍼스와 그의 제자 오스카 하워드 미첼의 연구보다 4년 먼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퍼트넘은 수학자와 논리학자들이 퍼스와 미첼의 독립적인 연구, 특히 당대 최고의 미국 수학 저널에 발표되었으며 페아노와 슈뢰더 등이 인용했으며 프레게를 무시했던 퍼스의 "논리 대수학에 관하여: 표기 철학에 대한 기여"[90](1885)를 통해 양화사 논리에 대해 배웠다고 밝혔다.

퍼스의 형식 논리에 대한 연구는 에른스트 슈뢰더 외에도 다음과 같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 철학적 대수학자 윌리엄 킹던 클리퍼드[136]와 논리학자 윌리엄 어니스트 존슨, 둘 다 영국인;
  • 알프레드 타르스키를 포함한 폴란드 논리 및 기초 수학 학파;
  • 아서 프라이어, 그는 1964년 논문[27]과 ''형식 논리''에서 퍼스의 논리적 연구를 칭찬하고 연구했으며 (4페이지에서 퍼스에 대해 "아마도 그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논리학자보다도 본질을 더 날카롭게 파악했다.")라고 말했다.


퍼스는 논리학 자체를 철학의 한 분야로 여겼으며, 미학윤리학에 기반한 규범 과학이자 형이상학보다 근본적이며, "연구 방법을 고안하는 기술"이라고 보았다.[140] 더 일반적으로는, 추론으로서 "논리학은 사회적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는데, 추론은 어떤 의미에서 무한한 관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141]

그의 "F.R.L." 논리의 첫 번째 규칙(1899)에서 퍼스는 논리의 첫 번째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규칙은 '배우려면 배우고 싶어 해야' 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139] 따라서 첫 번째 규칙은 '경이로워하는 것'이다. 퍼스는 연구 관행과 이론 형성의 중요한 주제로 나아간다.

> ...다음은 철학 도시의 모든 벽에 새겨야 할 따름정리가 있다.

>::탐구의 길을 막지 마라.


퍼스는 연구에서 방법론과 경제성이 최고지만 어떤 이론을 시도하는 데에 명백한 죄는 없으며, 이는 그 시도를 통해 조사가 방해받거나 낙담하지 않고 진행될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없는 유일한 죄"는 진실의 진전에 대한 철학적 바리케이드이며, "모든 시대의 형이상학자들이 가장 열중하는" 범죄라고 덧붙인다. 퍼스는 많은 글에서 논리가 형이상학 (존재론적, 종교적, 물리적)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1868–1869년의 세 편의 논문에서[143][145][146] 퍼스는 단순한 언어적 또는 과장된 회의를 거부하고, 최초 또는 궁극적 원리를 거부했으며, 우리가 (그가 번호 매겼듯이[145])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내성 능력 없음. 내적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은 알려진 외부 사실로부터의 가설적 추론을 통해 얻어진다.

# 직관 능력 없음(이전 인지에 의한 논리적 결정 없이 인지하는 것). 인지 단계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처음이 아니다. 모든 정신 활동은 추론의 형태를 띤다.

# 기호 없이 사고하는 능력 없음. 인지는 인지 자체이기 위해 후속 인지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 절대적으로 인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개념 없음.

(위의 "직관"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거의 칸트의 것과 같다"고 퍼스는 말했다. 그것은 본능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추론을 포함하는 현재의 더 느슨한 의미와 다르다.)

퍼스는 이러한 무능력들이 일반적인 것과 연속적인 것의 실재성, 추론 방식의 타당성[146], 그리고 철학적 데카르트주의(아래 참조)의 허구성을 함축한다고 주장했다.

퍼스는 (보통 칸트에게 귀속되는) 인식 불가능한 사물 자체의 개념을 거부했고,[145] 나중에 "가짜 믿음을 없애는 것"이 실용주의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147]

3. 4. 수학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다.[240] 그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퍼스의 순수 수학에서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논리 및 기초 분야였다. 그는 또한 선형대수, 행렬, 다양한 기하학, 위상수학, Listing numbers, Bell numbers, 그래프, 사색 문제, 그리고 연속성의 본질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경제학, 공학 및 지도 투영법에서 응용 수학을 연구했으며 특히 확률과 통계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86]

퍼스는 형식 논리 및 기초 수학에서 여러 괄목할 만한 발견을 했으며, 거의 모든 발견이 그가 죽은 후 한참 뒤에야 가치를 인정받았다.

  • 1860년[87]에 그는 게오르크 칸토어가 연구를 시작하기 여러 해 전이자 베르나르트 볼차노의 1851년(사후) ''Paradoxien des Unendlichen''에 접근할 수 없었던 시기에 무한수에 대한 기수 산술을 제안했다.
  • 1880-1881년[88]에 그는 부울 대수를 반복적인 충분한 단일 이진 연산(논리적 NOR)을 통해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헨리 M. 셰퍼보다 33년이나 앞섰다. (드 모르간의 법칙 참조).
  • 1881년[89]에 그는 자연수 산술의 공리화를 제시했는데, 이는 리하르트 데데킨트주세페 페아노보다 몇 년 앞선 것이었다. 같은 논문에서 퍼스는 데데킨트보다 여러 해 앞서 "데데킨트 유한"으로 알려진 의미에서 유한 집합의 최초의 순수한 기수적 정의를 제공했으며, 동일한 획으로 무한 집합에 대한 중요한 형식적 정의(데데킨트-무한)를 제시했는데, 이는 적절한 부분 집합 중 하나와 일대일 대응을 할 수 있는 집합이다.
  • 1885년[90]에 그는 일차 및 이차 양화를 구별했다.[91][92] 같은 논문에서 그는 최초의 (원시적인) 공리적 집합론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제시했는데, 이는 체르멜로보다 약 20년 앞선 것이었다(Brady 2000,[93] pp. 132–133).
  • 1886년에 그는 부울 계산이 전기 스위치를 통해 수행될 수 있음을 알았고,[12] 이는 클로드 섀넌보다 50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 1890년대 후반[94]에 그는 술어 계산을 위한 도식적 표기법인 존재 그래프를 고안하고 있었다.


퍼스는 오귀스트 콩트와 마찬가지로 수학을 철학 및 특수 과학(자연 및 마음)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퍼스는 수학을 (1) 논리 수학, (2) 이산 계열, (3) 의사-연속체(그가 부른 용어, 실수 포함) 및 연속체의 세 가지 하위 영역으로 분류했다. 그의 아버지 벤자민의 영향을 받아, 퍼스는 수학이 순전히 가설적인 객체를 연구하며 단지 양의 과학이 아니라 더 넓게는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수학은 그 반대가 아니라 논리를 돕고, 논리 자체는 철학의 일부이며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학이다.[95]

퍼스는 과학이 확실성이 아닌 통계적 확률을 달성하며, 자발성("절대적 우연")은 현실이라고 주장했다(그의 관점에 대한 타이키즘 참조). 그의 대부분의 통계 관련 저술은 확률의 빈도 해석 (사건의 객관적 비율)을 옹호하며, 객관적인 무작위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확률 모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고 (사용을 비판) 있다.[96] 퍼스는 대체로 빈도론자였지만, 그의 가능 세계 의미론은 칼 포퍼보다 먼저 "성향" 확률론을 도입했다.[97][98] 퍼스 (때로는 조셉 야스트로우와 함께)는 실험 대상자의 확률 판단을 연구했는데, 이는 실험 심리학과 (나중에 불리게 된) 베이즈 통계학에서 "아마도 최초의" 주관적 확률의 도출 및 추정이었다.[2]

퍼스는 통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과학 논리의 예시" (1877–1878)와 "확률적 추론 이론" (1883)에서 현대 통계학을 정립했다. 반복 측정 설계를 통해 찰스 샌더스 퍼스와 조셉 야스트로우는 1884년에 블라인드 무작위 대조 실험을 도입했다.[99] (Hacking 1990:205)[1] (로널드 A. 피셔보다 먼저).[2] 그는 중력 실험을 위한 최적 설계를 발명했으며, 여기서 그는 "평균을 보정"했다. 그는 상관 관계와 스무딩을 사용했다. 퍼스는 그의 아버지 벤자민 퍼스의 이상치에 대한 연구를 확장했다.[2] 그는 신뢰와 가능도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제르지 네이만과 피셔보다 먼저). (스티븐 스티글러의 역사적 저서와 이안 해킹 1990 참조.[1])

연속성과 연속주의는 퍼스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이 내가 점차 발견하게 된 것처럼, 철학의 열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168]

수학적 관점에서 그는 무한소를 받아들였고, 연속체의 수학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그는 오랫동안 실수가 의사-연속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169] 진정한 연속체는 ''위상수학''(위상수학)의 실제 주제이며, 진정한 순간의 연속체는—그리고 시간의 경과 내에서—어떤 알레프 수 (그가 부른 어떤 무한한 '다수')의 순간들을 담을 공간을 초과한다고 보았다.[170]

1908년 퍼스는 진정한 연속체가 그런 공간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제롬 하베넬(2008): "1908년 5월 26일에 퍼스는 모든 연속체에 어떤 다수의 모임이라도 담을 공간이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마침내 포기했다.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서로 다른 종류의 연속체가 존재한다."[171]

3. 5. 철학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5년간 강연한 시기만이 전문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학부생 시절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매일 독일어 원본으로 몇 페이지씩 읽으며 철학을 공부했다.[27] 그의 저술은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 계측학,[3]측지학, 실험 심리학,[4] 경제학,[5]언어학,[6] 그리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의 연구는 최근 과학 발전에 대한 그의 예견뿐만 아니라 철학이 인간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덕분에 재조명받고 호평을 받으며 부활했다.

퍼스의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세 범주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 진리가 불변하며 실제 의견과 무관하다는 믿음(오류주의)과 발견 가능하다는 믿음(급진적인 회의주의는 없음), 기호, 논증 및 탐구 방식에 대한 형식적 기호학으로서의 논리학—철학적 실용주의 (그가 창시), 비판적 상식주의, 그리고 과학적 방법—그리고 형이상학에서는 스코트주의적 실재론, 예: 요한네스 스코투스, 신, 자유, 그리고 최소한 희미한 불멸에 대한 믿음, 객관적 관념론, 연속성과 절대적 우연, 기계적 필연성, 창조적 사랑의 실재에 대한 믿음.[177] 그의 저술에서 오류주의와 실용주의는 다른 사람들의 저술에서 각각 회의주의와 실증주의와 다소 유사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퍼스에게 오류주의는 반 회의주의에 의해 균형을 이루며 절대적 우연과 연속성의 실재에 대한 믿음의 기초가 되며,[100] 실용주의는 일반적인 것의 실재에 대한 반유명론적 믿음에 헌신하게 한다(CP 5.453–457).

퍼스는 실용주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가 신념을 확정하는 방법에는 고집의 방법, 권위의 방법, 선험적(先驗的) 방법, 과학적 방법의 네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퍼스는 과학적 방법만이 바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 얻어지는 신념은 연구자간에 공개되어 최종적으로 전원의 의견일치를 보았을 때에만 진리로서 승인된다. 철학의 과제는 애매한 관념이나 언어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명석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는 하나의 기호이므로 퍼스의 철학은 기호의 의미를 확실히 정하고, 기호체계를 분석하는 기호학 및 기호논리학이 본질적 구성 부분이다.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퍼스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퍼스는 미학과 윤리학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쓰지 않았지만,[102] 1902년 경에는 미학, 윤리학, 논리학이 이 순서대로 규범 과학을 구성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103] 그는 미학을 선(admirable로 파악됨)의 연구, 즉 모든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목적의 연구로 특징지었다.[104]

퍼스는 형이상학을 (1) 존재론 또는 일반 형이상학, (2) 심적(psychical) 또는 종교적 형이상학, (3) 물리학적 형이상학으로 나누었다.

범주 보편 문제에 관해, 퍼스는 1868년 이른 시기부터 스코투스적 실재론자로, 일반자의 실재성을 선언했다.[166] 퍼스에 따르면, 그가 "제3성"이라고 부른 자신의 범주는 세계에 대한 더 일반적인 사실로서, 정신 외적 실재이다. 양상 (가능성, 필연성 등)에 관해, 그는 말년에 양상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실재적인지에 관해 이전에는 흔들렸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1897년 "관계의 논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퍼스는 어떤 목적에는 유용하다면서 정보 상태에 따른 정의를 유지했지만, 실용주의자는 대상이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적 일반 조건 명제 측면에서 대상을 이해함으로써 강력한 양상적 실재론에 전념한다고 주장했다.[167]

연속성과 연속주의는 퍼스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것이 내가 점차 발견하게 된 것처럼, 철학의 열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168]

수학적 관점에서 그는 무한소를 받아들였고, 연속체의 수학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그는 오랫동안 실수가 의사-연속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169] 진정한 연속체는 ''위상수학''(위상수학)의 실제 주제이며, 진정한 순간의 연속체는—그리고 시간의 경과 내에서—어떤 알레프 수 (그가 부른 어떤 무한한 '다수')의 순간들을 담을 공간을 초과한다고 보았다.[170] 1908년 퍼스는 진정한 연속체가 그런 공간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171]

퍼스는 신을 믿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관념의 세계, 사실적 자료, 그리고 진화하는 습관에 대한 사색 속에서 탐구할 수 있는 본능에 기초한다고 특징지었다. 이는 신을 ''실제적인'' 또는 ''존재하는'' 존재(퍼스의 이러한 단어의 의미에서)가 아닌, 그럼에도 ''실재적인'' 존재로 믿는 것이었다.[172] "신 실재성에 대한 간과된 논증(A Neglected Argument for the Reality of God)" (1908)에서[117] 퍼스는 신의 실재성을 위해 신을 필연적 존재로 가정한 논증을 간략하게 제시한다.

퍼스는 (1) "절대적 우연" 또는 무작위성 (그의 티키스트 견해), (2) "기계적 필연성" 또는 물리적 법칙 (아난키스트 견해), 그리고 (3) 그가 "사랑의 법칙"이라고 부른 것 (아가피스트 견해)의 현실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그의 범주인 제일성, 제이성, 제삼성에 각각 해당한다.[177] 그는 우연적 변동 (그는 이를 "도박성"이라고도 불렀다), 기계적 필연성, 그리고 창조적 사랑이 우주와 그 부분의 세 가지 진화 방식(각각 "티카즘", "아난카즘", "아가파즘"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176] 그는 자신의 아가파즘 개념이 라마르크적 진화에 구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퍼스는 두 분야, "일반학"과 "검토의 과학"을 개략적으로 설명했으며, 둘 다 철학이라고 불렀다. 1903년에 그는 이론적으로 기본적인 것부터 덜 기본적인 것으로 다음과 같이 배열했다:[101]

# 발견의 과학.

## 수학.

## 일반학 (이전 이 문서에서 논의된 철학 - 범주적, 규범적, 형이상학적)은 제1철학으로서 일반적인 긍정적 현상에 관한 것이며, 특수 과학의 발견에 의존하지 않으며, 탐구와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를 포함한다.

## 개별학 또는 특수 과학 (자연과 마음에 대한).

# 검토의 과학, 궁극적 철학으로서, "... 발견의 결과를 배열하고, 요약부터 시작하여 과학 철학을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예시에는 훔볼트의 ''코스모스'', 콩트의 ''철학 포지티브'', 스펜서의 ''종합 철학''이 포함되었다.

# 실용 과학 또는 기술.

퍼스는 검토의 과학 내에 과학 분류 (수학 및 철학 포함)의 작업과 이론을 배치했다.

그는 평생 동안 여러 번 철학의 분류를 시도했는데, 1902년 이후의 최종 분류에서는[235], 그는 철학을 두 종류, 즉 "제1 철학"(philosophia prima)과 "최종 철학"(philosophia ultima) 또는 "종합 철학"(synthetic philosophy)으로 나누었다. 제1 철학의 본질을 잘 포착하는 용어로, 퍼스는 제러미 벤담의 cenoscopy (coenoscopy)를 채택했다[236]。cenoscopy는 "공통적인 것의 관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οινοσκοπιά에서 유래한다. 이 명칭처럼, 퍼스는 제1 철학을 특수한 실험을 수행하지 않고, 인간의 일상생활에서의 관찰에서 얻어지는 데이터에 기초한 실증학으로 파악했다. 제1 철학은 더 나아가 현상학, 규범학, 그리고 형이상학으로 분류된다.

3. 6. 실용주의 (Pragmatism)

퍼스는 실용주의의 창시자로, 그의 실용주의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방법론이다.[108] 퍼스는 1870년대 초 형이상학 클럽에서 윌리엄 제임스 등과 토론하며 실용주의를 발전시켰다.[108] 제임스 등은 퍼스의 논문, 특히 "우리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방법"(1878)을 실용주의의 기초로 보았다.[108]

퍼스는 자신의 실용주의적 사고를 위해 '실용주의적 경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여러 버전의 '실용주의적 격률'로 요약했다.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퍼스는 '실용주의'라는 기존 명칭이 F.C.S. 실러와 제임스에의하여 남용되자,[109] 1905년 "원래 정의를 표현할 명확한 목적"으로 실용주의적 경향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었다.[109] 그러나 1906년 원고에서 제임스와 실러와의 차이점을 언급했고,[109] 1908년 출판물에서 제임스 및 조반니 파피니가 실용주의의 정의 불가능성을 선언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109] 퍼스는 진리가 불변하고 무한이 실재한다는 자신의 견해가 다른 실용주의자들과 대립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과 연대했다.[109]

퍼스의 실용주의는 대상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는 방법으로, 대상에 대한 모든 개념을 그 대상의 영향에 대한 개념과 동일시한다. 그는 "과학의 논리 도해" 논문에서 실용주의와 통계적 원리를 과학적 논리의 측면으로 공식화했다. "우리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방법"에서 퍼스는 개념의 세 가지 등급의 명확성을 논의했다.

# 친숙하고 쉽게 사용되는 개념의 명확성.

# 논리학자들이 말하는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만드는것을 분석하여 얻어지는 명확성. 퍼스는 칸트를 반영하여 이러한 정의를 "명목적"이라고 불렀다(CP 5.553).

# 개념적 영향의 상상 가능한 실제적 함의의 명확성. 여기서 그는 실용주의적 격률을 소개했다.

퍼스는 진리와 실재에 대한 개념을 추론의 전제에 대한 질문으로 다루었다. 명확성의 두 번째 등급에서 그는 진리를 기호가 대상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실재를 그러한 상응의 대상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진리와 실재는 탐구 공동체가 생각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확성의 세 번째 등급에서 그는 진리를 조만간 충분히 연구를 수행하여 도달할 '수 있는' 의견으로 정의했다. 실재는 그 이상적인 최종 의견에 의존한다.[110]

퍼스는 개념의 의미는 그 개념의 "수용"에 의해 암시되는 "모든 일반적인 합리적 행동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다.[111] 그의 실용주의는 개념의 의미를 그 자체의 이점이나 비용과 동일시하지 않는다.[111] 그의 실용주의는 마키아벨리적인 실용주의와 전혀 유사하지 않다.[111] 대신 실용주의적 격률은 실험적 정신적 반성의 방법이다.[111]

퍼스의 실용주의는 정의와 개념적 명확성에 대한 방법 및 이론으로서, 그의 탐구 이론의 일부이다.[113] 그는 이를 투기적, 일반적, 형식적 또는 보편적 수사학 또는 방법론이라고 불렀다.[114]

3. 7. 탐구 이론 (Theory of Inquiry)

퍼스는 30년 동안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철학을 배웠다. 그의 저서는 수학, 논리학, 철학, 통계학, 천문학,[240]측량학, 측지학, 실험 심리학, 경제학, 언어학, 역사학을 포함한 광범위한 학문 분야에 걸쳐 있다.[240] 퍼스는 논리학을 철학의 한 부문으로, 형이상학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보았다.[241] 그는 현재 연구 및 응용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논리학"라고 불리는 종류의 많은 것을 "논리학의 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철학적) 논리와 논리학의 수학 모두에서 생산적이었고, 이는 그의 작업과 사상에 깊이 연결되었다.

퍼스는 수십 년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고의 과정을 명확히 하고 과학의 작용을 설명하는 형식적인 철학적 방법을 모색했다. 자연과 양육에 뿌리를 둔 탐구의 역학에 대한 이러한 불가분의 얽힌 질문은 기호와 추론에 대한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기호학을 발전시키도록 이끌었고, 그 절정으로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연구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예술의 예술, 과학의 과학, 모든 방법의 원칙에 이르는 방법과 같이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중세의 정의에 따른 논리학일 것이다.[242]

1877년 논문 "믿음의 고정"에서 탐구의 심리적 기원과 목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퍼스에 따르면, 개인은 의심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불안과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에 의해 탐구를 시작한다. 퍼스는 의심을 "우리가 벗어나고자 애쓰는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이며, 믿음의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라고 묘사한다. 퍼스는 의심의 경험을 묘사하고, 이러한 경험이 왜 우리를 동기 부여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짜증"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퍼스는 의심으로 인한 짜증스러운 감정은, 의심을 야기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만족스러운 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 해소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안정된 상태, 즉 믿음은 퍼스에 의해 "우리가 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묘사된다. 믿음의 만족을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 즉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퍼스는 이를 "탐구"라고 부른다.

"믿음의 고정"(1877)에서 퍼스는 일반적인 탐구를 진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움, 불일치 등에서 비롯된 짜증나고 억제적인 의심에서 벗어나 안전한 믿음에 도달하려는 투쟁으로 묘사했다. 믿음은 행동을 준비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퍼스는 과학적 탐구를 더 넓은 스펙트럼의 일부로 구성하고, 일반적인 탐구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의심에 의해 촉발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단순한 언어적, 논쟁적 또는 과장된 의심은 무익하다고 여겼다.

네 가지 무능력—진정한 자기성찰 없음, 비추론적 인지라는 의미의 직관 없음, 기호가 아닌 사고 없음, 절대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개념 없음—의 방법론적 함의를 이용하여 철학적 데카르트주의를 공격했다.[145]

'''탐구의 방법'''

퍼스는 의견을 정착시키는 네 가지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했으며, 성공적인 정도에 따라 순서를 매겼다.

# 의 방법 (초기 믿음을 고수하는 정책) – 편안함과 결단력을 가져다주지만, 진리가 본질적으로 공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처럼 반대되는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무시하려고 한다. 이 방법은 사회적 충동에 반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초기 의견만큼 좋다고 인식할 때 쉽게 흔들린다. 이 방법의 성공은 훌륭할 수 있지만 일시적인 경향이 있다.

# 의 방법 – 불일치를 극복하지만 때로는 가혹하다. 이 방법의 성공은 웅장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특히 현재와 과거의 다른 사회에 대해 알게 될 때, 의심을 무한정 견딜 만큼 사람들을 철저하게 규제할 수 없다.

# 방법 – 덜 가혹하게 동조를 장려하지만 "이성에 맞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대화와 관점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 취향과 같은 의견을 조성한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유행에 의존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맴돈다. 더 지적이고 존경할 만하지만, 처음 두 가지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이고 변덕스러운 믿음을 유지하며, 일부 사람들은 의심하게 만든다.

# 의 방법 – 탐구가 현실은 발견될 수 있으며 특정 의견과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므로, 다른 방법과 달리 탐구는 자체적으로 잘못될 수 있고(오류주의), 옳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비판하며, 수정하고 개선한다.

'''과학적 방법'''

퍼스는 실제 문제에서 느리고 비틀거리는 추론은 종종 본능과 전통적인 감정에 비해 위험할 정도로 열등하며, 과학적 방법은 이론적 연구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116] 이는 다른 방법과 실제적인 목적에 의해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성의 "첫 번째 규칙"[139]은 배우기 위해서는 배우고 싶어 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탐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은 결국 가장 안전한 믿음에 도달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어, 가장 성공적인 실천이 기반을 둘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방법보다 뛰어나다. 사람들은 진리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나고 억제적인 의심을 잠재우려고 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퍼스는 투쟁을 통해 일부 사람들이 믿음의 온전함을 위해 진리에 복종하고, 주어진 목표에 대한 잠재적 행동의 지침을 진리로 추구하며, 과학적 방법에 헌신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실용적 반성을 통한 명확화가 설명적 가설에 적합하고 예측과 검증을 촉진하는 한, 실용주의는 기존의 두 가지 근본적인 대안을 넘어선다. 즉, 자명한 진리로부터의 연역, 또는 ''합리주의''; 그리고 경험적 현상으로부터의 귀납, 또는 ''경험주의''.

세 가지 논증 방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하고 근본주의정합주의와는 다른 퍼스의 접근 방식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의 탐구 역학을 통해 주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 활동적이고 귀추적인 이론의 생성, 진리에 대한 사전 보장은 없음;

# 잠정적 이론의 실질적 함의를 명확히 하기 위한, 가변적인 이론의 연역적 적용;

# 미래 경험, 즉 ''예측''과 ''통제''의 두 가지 의미에서 잠정적 이론의 유용성을 귀납적으로 검증하고 평가함.

그리하여 퍼스는 단순히 현상학적 패턴을 재명명하는 것에 불과한 귀납적 일반화의 단순한 이미지보다 훨씬 더 견고한 탐구 접근 방식을 고안했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과학적 방법이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인식론으로 제안된 최초의 시도였다.

경쟁 이론보다 우리 세계를 더 잘 예측하고 통제하는 이론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진리에 대한 작동적 개념이다.

퍼스는 고전 논리학에서 탐구에 대한 실용적인 모형 또는 이론을 추출하여 기호 논리학의 초기 발전과 병행하여 정제하여 과학적 추론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귀추법, 연역법, 귀납법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 불완전하게 느껴지지만, 탐구라는 공통된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한 전체로 이해될 수 있는 주기를 구성한다. 상상할 수 있는 실질적 함의에 대해 생각하는 실용적인 방식에서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며, 가능하다면 그 목적이 먼저 표시되어야 한다. 귀추법은 연역법이 검증될 함의로 명확히 할 설명을 가설로 세우고, 귀납법이 가설을 평가하여 문제적인 불확실성에서 더 안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추론 방식을 서로 분리하여 연구하는 것이 전통적이고 필요하다 하더라도, 탐구의 완전성은 주요 구성 요소의 효과적인 모듈성을 강력하게 제한한다.

퍼스의 "소홀히 여겨진 논거"의 §III–IV에 제시된 과학적 방법의 개요는 아래에 요약되어 있다(별도로 언급된 경우 제외). 그는 또한 타당성 및 귀납적 정밀도( 논증 비판 문제)를 검토했다.

# ''귀추적''(또는 역추론) 단계. 최선을 다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한 설명적 가설에 대한 추측, 추론. 귀추법으로부터, 퍼스는 검증을 바탕으로 가설의 진실 비율을 추론하는 귀납법을 구별한다. 아이디어, 거친 사실, 또는 규범과 법칙에 대한 모든 탐구는 이러한 영역 중 하나 이상에서 놀라운 관찰에서 비롯된다(예를 들어 이미 진행 중인 탐구의 어느 단계에서든). 이론의 모든 설명적 내용은 귀추법에서 비롯되며, 이는 놀랍거나 복잡한 현상을 간단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새롭거나 외부적인 아이디어를 추측한다. 우리의 추측의 약간의 성공은 우연의 행운을 훨씬 능가하며, 특히 최고의 추측이 갈릴레오의 자연스러운 이성의 빛에 의해 "쉽고 자연스러운" 의미에서 최적으로 타당하고 단순한 한, 개발되거나 내재된 본능에 의해 자연에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귀추법은 가장 풍부하지만 가장 안전하지 않은 추론 방식이다. 그 일반적인 근거는 귀납적이다. 그것은 종종 성공하며 새로운 진리에 우리를 신속하게 인도하는 데 대체할 수 없다.[119] 1903년, 퍼스는 실용주의를 "귀추법의 논리"라고 불렀다.[120] 조정 방식은 타당성을 테스트하고[121] 그 시험이 어떻게 탐구 자체를 절약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타당한 가설을 귀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122] 가설은 안전하지 않으므로 적어도 정신적 검증으로 이어지고 과학에서는 과학적 검증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함의가 있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추측은 반증에 대한 검증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먼저 검증할 순서에 속할 수 있다. 추측은 주관적 가능성이 논리적일 수 있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유혹이 있을 수 있는 반면, 타당성 또는 합리적인 객관적 확률이 있는 경우 본질적으로 검증할 가치가 있다. 추측은 신중함(퍼스는 그 예로 스무고개 게임을 들었다), 광범위함 또는 단순성 때문에 전략적으로 시험을 위해 선택될 수 있다.[123] 충분한 경험을 통해 어쨌든 드러날 수 있는 것만 발견할 수 있으므로, 요점은 그것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연구의 경제성은, 말하자면, 귀추법의 도약을 요구하고 그 기술을 지배한다.[122]

# ''연역적'' 단계. 두 단계:

:i. 명시: 명확하게 전제되지 않지만, 가설의 부분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만들기 위한 가설의 연역적 분석.

:ii. 증명: 절차에서 유클리드적인 연역적 논증. 발견될 증거에 대한 예측으로서 가설의 결과에 대한 명시적 연역. 따름정리 또는 필요한 경우 정리.

# ''귀납적'' 단계. 가설의 평가, 그 연역된 결과에 대한 관찰 또는 실험적 검증으로부터 추론. 귀납의 규칙의 장기적인 타당성은 (일반적으로 추론에 전제되는) 현실은 "충분한 조사가 이끌 최종 의견의 대상일 뿐"이라는 원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110] 즉, 그러한 과정을 배제하는 것은 어떤 것도 현실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증거의 지속적인 축적을 포함하는 귀납은 "충분히 지속되면" "오차를 미리 지정된 정도 이하로 감소"시키는 "방법"을 따른다. 세 단계:

:i. 분류. 명확하게 전제되지 않지만, 일반적인 아이디어에 따른 경험의 객체에 대한 귀납적 분류.

:ii. 검증: 직접적인 귀납적 논증. 절차에서 조잡하거나 점진적이다. 한 덩어리의 경험에 기초한 조잡한 귀납법(CP 2.759)은 질문에 대한 미래 경험이 모든 과거 경험과 완전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CP 2.756). 점진적 귀납법은 각 검사 후에 가설의 진실 비율에 대한 새로운 추정을 하고, 질적 또는 양적이다. 질적 점진적 귀납법은 조사 대상 클래스의 다양한 품질의 상대적인 증거 가중치를 추정하는 데 의존한다(CP 2.759; ''찰스 샌더스 퍼스의 수집된 논문'', 7.114–120 참조). 양적 점진적 귀납법은 ''S''의 공정한 표본에서 ''S''가 실제로 ''S''에 대해 예측된 ''P''와 함께 발견되는 빈도에 의존한다(CP 2.758). 측정, 통계 또는 계산에 의존한다.

:iii. 명제 귀납. "...귀납적 추론에 의해 다양한 검증을 개별적으로 평가한 다음, 그 조합을 평가한 다음, 이러한 평가 자체를 자가 평가하고 전체 결과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비판적 상식주의'''

토마스 리드의 상식 철학과 우리의 다소 모호한 상식의 명제들이 현재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도, 예를 들어 과학을 통한 우리 세계의 변형으로 인해 나중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오류주의의 결합이다.[115] 여기에는 거의 변하지 않거나 천천히 변하는 핵심적인 공통적인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들의 시험에서 진정한 의심을 제기하려는 노력이 포함된다.

'''반 데카르트주의'''

퍼스는 네 가지 무능력—진정한 자기성찰 없음, 비추론적 인지라는 의미의 직관 없음, 기호가 아닌 사고 없음, 절대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개념 없음—의 방법론적 함의를 이용하여 철학적 데카르트주의를 공격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145]

# "철학은 보편적인 의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 그러나 우리는 선입견, 즉 "의문을 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편견"으로 시작하며, 비록 나중에 의문을 품을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을 철학에서 의심하는 척하지 말자."

# "확실성에 대한 궁극적인 시험은... 개인의 의식에 있다고 가르친다" - 그러나 과학에서는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이론이 심사 보류 상태로 유지되며, 그러면 실제로 의심하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단독 개인은 철학의 여러 세대에 걸친 꿈을 실현하리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 "솔직하고 훈련된 마음"이 이론적인 문제에 대해 계속 동의하지 않으면, 그 이론의 저자조차도 그것에 대한 의심을 느껴야 한다.

# 그것은 "눈에 띄지 않는 전제에 의존하는 단 하나의 추론 고리"를 신뢰한다 - 그러나 철학은 "성공적인 과학"처럼, 유형적이고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전제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어떤 하나의 논증이 아니라, "그 논증의 다수와 다양성"을, 최소한 가장 약한 고리만큼 약한 사슬이 아니라 "아무리 가늘더라도 충분히 많고 밀접하게 연결된 섬유"를 형성하는 것으로 신뢰해야 한다.

# 그것은 많은 사실들을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신이 그렇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 설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면"[124] - 그러나 철학은 "비이상주의적"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하며,[125] 어떤 실제적인 것이 모든 가능한 생각을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다고 잘못 믿고, 필연적으로 "어떤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분석할 수 없는 궁극"을 가정하는데, 이 설명적 추측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므로 용납될 수 없다.

'''범주론'''

1867년 5월 14일, 27세의 퍼스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 "새로운 범주 목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 논문은 이듬해에 출판되었다. 이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마누엘 칸트, G. W. F. 헤겔의 저작을 읽고 이에 대응하여 퍼스가 개발한 세 가지 보편적인 범주를 포함하는 술어 이론을 개략적으로 설명했으며, 퍼스는 평생 동안 자신의 작업 전반에 걸쳐 이 범주를 적용했다.[19] 퍼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새로운 목록"을 퍼스의 "건축론", 즉 실용주의 철학의 청사진의 기초를 다지거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범주에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명확하게 만드는 방법" (실용주의의 기초가 되는 1878년 논문)과 그의 작품에 있는 수많은 다른 삼분법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집중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

"새로운 범주 목록에 관하여"는 칸트식 연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지만 내용이 밀집되어 있어 요약하기 어렵다. 다음 표는 이 논문과 후기 작품에서 발췌한 것이다.[126] 1893년에 퍼스는 덜 전문적인 독자를 위해 그 내용의 대부분을 다시 설명했다.[127]

퍼스의 범주 (기술적 명칭: 세노피타고라스 범주)[128]
이름전형적인 특징경험의 우주로서양으로서기술적 정의원자가, "가수"
제1성[129]느낌의 질아이디어, 우연성, 가능성모호함, "어떤"기초에 대한 참조 (기초는 품질의 순수한 추상화이다)[130]본질적으로 단항 (퀄리아, 즉 그것의 의미에서,[131] 질을 가지고 있는 것)
제2성[132]반응, 저항, (이항) 관계사실, 현실특이성, 이산성, "이것"상관물에 대한 참조 (관련자에 의해)본질적으로 이항 (관련자와 상관자)
제3성[133]표상, 매개습관, 법칙, 필연성일반성, 연속성, "모든"해석자*에 대한 참조본질적으로 삼항 (기호, 대상, 해석자*)



 ''*참고:'' 해석자는 해석 과정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인간 또는 기타) 해석이다.

『추측 철학 저널』 시리즈(1868–1869) 포함

  • 인간에게 요구되는 특정한 능력에 관한 질문(1868)
  • 네 가지 무능력의 몇 가지 결과(1868)
  • 논리 법칙의 타당성 근거: 네 가지 무능력의 추가적인 결과(1869)


1868–1869년의 세 편의 논문에서[143][145][146] 퍼스는 단순한 언어적 또는 과장된 회의를 거부하고, 최초 또는 궁극적 원리를 거부했으며, 우리가 (그가 번호 매겼듯이[145])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내성 능력 없음. 내적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은 알려진 외부 사실로부터의 가설적 추론을 통해 얻어진다.

# 직관 능력 없음(이전 인지에 의한 논리적 결정 없이 인지하는 것). 인지 단계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처음이 아니다. 모든 정신 활동은 추론의 형태를 띤다.

# 기호 없이 사고하는 능력 없음. 인지는 인지 자체이기 위해 후속 인지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 절대적으로 인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개념 없음.

(위의 "직관"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거의 칸트의 것과 같다"고 퍼스는 말했다. 그것은 본능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추론을 포함하는 현재의 더 느슨한 의미와 다르다.)

퍼스는 이러한 무능력들이 일반적인 것과 연속적인 것의 실재성, 추론 방식의 타당성[146], 그리고 철학적 데카르트주의(아래 참조)의 허구성을 함축한다고 주장했다.

퍼스는 (보통 칸트에게 귀속되는) 인식 불가능한 사물 자체의 개념을 거부했고[145], 나중에 "가짜 믿음을 없애는 것"이 실용주의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147]

퍼스의 논리학의 핵심에 있는 것이 그의 범주론이다. 그는 어떤 곳에서 자신의 범주론이 "내가 세상에 보내는 선물"이며, "나 — 내 신체 — 가 흔적 없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그 안에 머물 것이다"라고 말했다[186]

범주란 보편 개념, 즉 어떠한 사고에서도 작용하는 개념을 말한다. (일반 개념도 "보편 개념"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서는 구분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예를 들어 "인간"은 일반 개념이지만 보편 개념은 아니다.) 「새로운 범주표」의 목적은 이러한 보편 개념을 찾아내어, 그것을 통해 인간 사고의 구조를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밝히는 것이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범주의 응용으로서, 기호에는 「유사체」[195], 「지표」[196], 「심볼」[197]의 3종류가 있다는 것이 제시된다.[198]

4. 평가 및 영향

버트런드 러셀은 "의심할 여지 없이 [...] 그는 19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인 정신 중 하나였으며 확실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사상가였다"라고 평가했다.[243][66] 칼 포퍼 또한 퍼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보았다.[245][68][106]

그러나 퍼스의 업적은 즉시 인정받지 못했다. 윌리엄 제임스조사이어 로이스[246] 같은 동시대인들은 그를 존경했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1924년 하버드 대학교에 도착한 직후 퍼스의 미공개 원고를 읽는 동안 퍼스가 자신의 "과정" 사고를 예상했던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244][27]

퍼스에게 전문적인 관심을 기울인 첫 번째 학자는 로이스의 제자 모리스 라파엘 코헨이었다. 그는 퍼스의 저작 선집인 ''우연, 사랑, 논리''(1923)를 편집하고, 퍼스의 산발적인 저작 목록을 작성했다.[70] 존 듀이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퍼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36] 1916년부터 자신의 저작에서 퍼스를 여러 차례 존경심을 담아 언급했다. 그의 1938년 저서 ''논리: 탐구 이론''은 퍼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71]

''Collected Papers''의 첫 6권(1931–1935)의 출판은 퍼스 연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코헨이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여 가능하게 했다.[72] 그러나 이는 이차 연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촉진하지는 않았다. 찰스 S. 퍼스 협회는 1946년에 설립되었고, 이 협회의 학술 분기 간행물인 ''Transactions''는 1965년부터 퍼스의 실용주의와 미국 철학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73]

1943년, ''웹스터 전기 사전''은 퍼스를 "현재 그의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로 여겨진다"고 언급했다.[74] 1949년, 수학 역사가 캐롤린 아이즐레는 우연히 퍼스의 친필 서신을 발견한 후,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퍼스를 다룬 연구(1976, 1979, 1985)를 시작했다.[75] 1960년경부터, 철학자이자 아이디어 역사가 맥스 피쉬는 퍼스에 대한 권위자로 떠올랐다.[75]

퍼스는 브라질 (CeneP/CIEP 및 Centro de Estudos de Pragmatismo), 핀란드 (HPRC 및 ), 독일 (Wirth's group, Hoffman's and Otte's group, 그리고 Deuser와 Härle의 그룹[76]), 프랑스 (L'I.R.S.C.E.), 스페인 (GEP), 이탈리아 (CSP) 등에서 연구 센터를 통해 국제적인 추종자를 얻었다. 그의 저작은 독일어, 프랑스어, 핀란드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퍼스 학자들은 퍼스 에디션 프로젝트(PEP)가 있는 인디애나 대학교 – 퍼듀 대학교 인디애나폴리스와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에 집중되어 있다.

존 딜리는 퍼스를 "모던의 마지막 인물"이자 "포스트모던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썼다. 그는 퍼스의 기호론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에 기여한 것으로 칭송했다. 딜리는 또한 "퍼스는...서구 교부의 마지막 인물이자 중세의 첫 번째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차지했던 위치와 유사한 위치에 있다"고 언급했다.[77]

최근 몇 년 동안, 퍼스의 삼분법은 마케팅 및 디자인 작업에 종사하는 점점 더 많은 실무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4. 1. 당대 및 후대의 평가

버트런드 러셀은 "의심할 여지 없이 [...] 그는 19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인 정신 중 하나였으며 확실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사상가였다"라고 평가했다.[243][66] 칼 포퍼 또한 퍼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보았다.[245][68]

그러나 퍼스의 업적은 즉시 인정받지 못했다. 윌리엄 제임스조사이어 로이스[246] 같은 동시대인들은 그를 존경했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1924년 하버드에 도착한 직후 퍼스의 미공개 원고를 읽는 동안 퍼스가 자신의 "과정" 사고를 예상했던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244]

퍼스에게 전문적인 관심을 기울인 첫 번째 학자는 로이스의 제자 모리스 라파엘 코헨이었다. 그는 퍼스의 저작 선집인 ''우연, 사랑, 논리''(1923)를 편집하고, 퍼스의 산발적인 저작 목록을 작성했다.[70] 존 듀이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퍼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36] 1916년부터 자신의 저작에서 퍼스를 여러 차례 존경심을 담아 언급했다. 그의 1938년 저서 ''논리: 탐구 이론''은 퍼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71]

''Collected Papers''의 첫 6권(1931–1935)의 출판은 퍼스 연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코헨이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여 가능하게 했다.[72] 찰스 S. 퍼스 협회는 1946년에 설립되었고, 이 협회의 학술 분기 간행물인 ''Transactions''는 1965년부터 퍼스의 실용주의와 미국 철학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다.[73]

1943년, ''웹스터 전기 사전''은 퍼스를 "현재 그의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로 여겨진다"고 언급했다.[74] 1949년, 수학 역사가 캐롤린 아이즐레는 우연히 퍼스의 친필 서신을 발견한 후,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퍼스를 다룬 연구(1976, 1979, 1985)를 시작했다. 1960년경부터, 철학자이자 아이디어 역사가 맥스 피쉬는 퍼스에 대한 권위자로 떠올랐다.[75]

퍼스는 브라질 (CeneP/CIEP 및 Centro de Estudos de Pragmatismo), 핀란드 (HPRC 및 ), 독일 (Wirth's group, Hoffman's and Otte's group, 그리고 Deuser와 Härle의 그룹[76]), 프랑스 (L'I.R.S.C.E.), 스페인 (GEP), 이탈리아 (CSP) 등에서 연구 센터를 통해 국제적인 추종자를 얻었다. 그의 저작은 독일어, 프랑스어, 핀란드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퍼스 학자들은 퍼스 에디션 프로젝트(PEP)가 있는 인디애나 대학교 – 퍼듀 대학교 인디애나폴리스와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에 집중되어 있다.

존 딜리는 퍼스를 "모던의 마지막 인물"이자 "포스트모던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썼다. 그는 퍼스의 기호론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에 기여한 것으로 칭송했다. 딜리는 또한 "퍼스는...서구 교부의 마지막 인물이자 중세의 첫 번째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차지했던 위치와 유사한 위치에 있다"고 언급했다.[77]

4. 2. 학문적 영향

버트런드 러셀은 "의심할 여지 없이 [...] 그는 19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인 정신 중 하나였으며 확실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사상가였다"라고 평가했다.[243][66]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192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퍼스의 미공개 원고를 읽고 퍼스가 자신의 "과정" 사고를 예상했던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244][27] 칼 포퍼는 퍼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했다.[245][68][106] 그러나 퍼스의 업적은 즉시 인정받지 못했다. 비록 윌리엄 제임스조사이어 로이스[246] 같은 동시대 인물들이 그를 존경했지만,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퍼스에게 전문적인 관심을 기울인 첫 번째 학자는 조사이어 로이스의 제자 모리스 라파엘 코헨으로, 퍼스의 저작 선집인 ''우연, 사랑, 논리''(1923)를 편집하고 퍼스의 산발적인 저작 목록을 작성하였다.[70] 존 듀이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퍼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36] 1916년부터 그의 저작에서 퍼스를 여러 번 존경심을 담아 언급했다. 듀이의 1938년 저서 ''논리: 탐구 이론''은 퍼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71] ''Collected Papers''의 첫 6권(1931–1935) 출판은 퍼스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지만,[72] 이차 연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촉진하지는 못했다.

찰스 S. 퍼스 협회는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퍼스의 실용주의와 미국 철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술 분기 간행물인 ''Transactions''는 1965년부터 출판되었다.[73] 1949년, 수학 역사가 캐롤린 아이즐레는 퍼스의 친필 서신을 발견하여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퍼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1976, 1979, 1985).[75] 1960년경부터 철학자이자 아이디어 역사가 맥스 피쉬는 퍼스에 대한 권위자로 떠올랐다.[75]

퍼스는 브라질 (CeneP/CIEP 및 Centro de Estudos de Pragmatismo), 핀란드 (HPRC 및 ), 독일 (Wirth's group, Hoffman's and Otte's group, 그리고 Deuser와 Härle의 그룹[76]), 프랑스 (L'I.R.S.C.E.), 스페인 (GEP), 이탈리아 (CSP) 등 여러 나라에서 연구가 진행되며 국제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저작은 독일어, 프랑스어, 핀란드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76]

존 딜리는 퍼스를 "모던의 마지막 인물"이자 "포스트모던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기호론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에 기여한 것으로 보았다.[77]

4. 3. 현대적 의의

버트런드 러셀은 "의심할 여지 없이 [...] 그는 19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인 정신 중 하나였으며 확실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사상가였다"라고 썼다.[24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1924년 하버드에 도착한 직후 퍼스의 미공개 원고를 읽는 동안 퍼스가 자신의 "과정" 사고를 예상했던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244] 칼 포퍼는 퍼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보았다.[245] 그러나 퍼스의 업적은 즉시 인정되지 않았다. 그의 동시대인 윌리엄 제임스조사이어 로이스는 그를 존경했으나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다.[246]

5. 한국 사회와의 관련성

5. 1. 실용주의와 한국 사회

5. 2. 학문적 영향

5. 3. 사회적 함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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