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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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피쿠로스 학파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창시한 철학 학파이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정원"이라는 학교를 세웠으며,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인 선으로 보았지만, 무절제한 쾌락이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 즉 아타락시아(평온)와 아포니아(고통 부재)를 추구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에 번성하여 로마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크레티우스 등 많은 추종자를 배출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에피쿠로스의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 루크레티우스의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등이 있으며, 자연 철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철학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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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 | |
---|---|
철학적 배경 | |
주요 관심사 | 행복, 즐거움, 고통, 욕망, 두려움, 지식, 감각, 도덕, 정치, 우정 |
학교 | 쾌락주의 |
주요 인물 | 에피쿠로스, 메트로도로스, 램프사코스의 폴리아에노스, 헤르마르코스, 루크레티우스 |
주요 아이디어 | 쾌락은 삶의 유일한 내재적 선이며, 고통은 삶의 유일한 내재적 악이다. |
영향 받은 사상 | 데모크리토스, 키레네 학파, 아리스티포스, 피론주의 |
영향을 준 사상 | 쾌락주의, 공리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 무신론 |
개요 | |
유형 | 윤리적 쾌락주의, 심리적 쾌락주의, 동기적 쾌락주의 |
반대 | 금욕주의, 의무론 |
주요 개념 | |
아타락시아 | 정신의 평온과 자유 |
아포니아 | 육체의 고통 없음 |
헤도네 | 즐거움, 쾌락 |
자연주의 | 세계는 물질과 자연 법칙으로 설명 가능 |
원자론 | 모든 것은 원자와 공허로 구성됨 |
2. 역사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개념과 논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평생에 걸친 행복과 쾌락을 밀접하게 연결했다. 그는 진정한 쾌락이란 정신적인 것으로 덕과 불가분하며, 절제에 기초한 마음의 평안이라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이 점을 "빵과 물만 있어도 제우스보다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3세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에피쿠로스의 생애와 학설에 대해 역사적 근거가 없는 전설을 인용하고, 스토아 학파가 행한 추문적인 고발 및 공격을 기록했다.[107] 이 때문에 "마음의 평안, 고통이 없는 상태"를 현자의 목적으로 삼았던 에피쿠로스 철학은 의심스러운 소문이나 전설에서 가려내야 했고, 일반인들에게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에피쿠로스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서기 3세기 후반에는 신플라톤주의와 페리파토스 학파, 그리고 기독교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쇠퇴하여 그 존재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7]
1748년 라 메트리는 『인간 기계론』을 저술하여 욕망을 생활 원리로 여기고 그 근거로 에피쿠로스의 유물론을 제시했으나, 오히려 에피쿠로스 윤리학의 평판을 떨어뜨렸다.[115]
1841년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 『The Difference Between the Democritean and Epicurean Philosophy of Nature|데모크리토스의 자연 철학과 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의 차이영어』를 저술했다.
2. 1.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는 레스보스 섬의 수도인 미틸레네와 람프사코스에서 가르치며 추종자를 얻었다. 아테네에서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학파를 위해 "정원"이라고 불리는 부지를 구입했는데, 이는 나중에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름이 되었다.[2] 그 구성원으로는 헤르마르코스, 이도메네우스, 콜로테스, 폴리에누스, 메트로도로스 등이 있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우정을 강조했으며, 이 학파는 아테네 철학의 정치적 각광을 거부한, 적당히 금욕적인 공동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테네 기준으로는 상당히 세계주의적이었으며, 여성과 노예를 포함했다. 공동체 활동은 어느 정도 중요성을 지녔으며, 특히 매달 열리는 사교 모임인 에이카스가 있었다. 몇몇 구성원은 채식주의를 실천했는데, 약간의 증거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고기 섭취에 대한 금지는 없었다.[3][4]이 학파의 인기는 높아졌으며, 스토아 철학, 플라톤주의, 페리파토스 학파, 피론주의와 함께 헬레니즘 철학의 지배적인 학파 중 하나가 되어 후기 로마 제국까지 강력하게 지속되었다.[5] 헤르쿨라네움의 파피루스 저택 도서관에서 얻은 해독된 탄화된 두루마리에는 후기 헬레니즘 에피쿠로스 학파인 필로데모스와 에피쿠로스 자신이 쓴 많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이 학파의 지속적인 인기를 증명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에피쿠로스 학파에 크게 기울었는데, 이는 그가 카틸리나 음모 재판에서 스토아 철학의 카토에 반대하며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변론을 하도록 이끌었다.[6] 그의 장인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에소니누스 또한 이 학파의 추종자였다. 서기 2세기에는 희극 작가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철학의 부유한 옹호자인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가 저명한 에피쿠로스 학파였다.
2. 2. 로마 시대
에피쿠로스 학파는 스토아 철학, 플라톤주의, 페리파토스 학파, 피론주의와 함께 헬레니즘 철학의 지배적인 학파 중 하나였으며, 후기 로마 제국까지 강력하게 지속되었다.[5] 헤르쿨라네움의 파피루스 저택 도서관에서 발견된 탄화된 두루마리에는 후기 헬레니즘 에피쿠로스 학파인 필로데모스와 에피쿠로스 자신이 쓴 많은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이 학파의 지속적인 인기를 증명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크게 경도되었는데, 이는 카틸리나 음모 재판에서 스토아 철학의 카토에 반대하며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변론을 하도록 이끌었다.[6] 그의 장인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에소니누스 또한 이 학파의 추종자였다. 2세기에는 희극 작가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철학의 부유한 옹호자인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가 저명한 에피쿠로스 학파원이었다.포에니 전쟁 이후 그리스 철학이 로마에 유입되면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함께 교육받은 로마인들을 매료시켰다. 대표적인 로마인 추종자로는 카이사르 암살자 중 한 명인 카시우스, 카이사르의 장인이자 필로데모스의 후원자인 피소, 키케로의 친구 아티쿠스가 있다.[108]
그러나 크리시포스 이래 스토아 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비방했기 때문에, 많은 로마인들은 에피쿠로스 추종자들을 "욕망의 노예"로 간주했다. 키케로는 그의 철학 해설서 《De finibus bonorum et malorum|선과 악의 궁극에 대하여la》에서 에피쿠로스의 학설을 통속화하고, 억제되지 않는 탐닉과 향락을 정당화하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유물론자와 동일시했다.[109] 시인 호라티우스는 자신을 "에피쿠로스 짐승 무리의 돼지"라고 칭하기도 했다.[110]
한편, 베르길리우스나 루크레티우스 등의 시인은 에피쿠로스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루크레티우스의 《De rerum natura|사물의 본성에 대하여la》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열광적이고 화려한 시구로 서술하며, 미신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설파했다. 에피쿠로스 철학이 르네상스 이후의 독자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루크레티우스의 영향이 크다.[111]
2. 3. 중세와 르네상스
1417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포지오 브라촐리니가 루크레티우스의 저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필사본을 발견하면서 에피쿠로스주의가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112] 1431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쾌락에 관하여(De Voluptate)』를 저술하여 고대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주의를 비교하고 전자의 금욕주의를 버리고 후자의 쾌락주의를 채택하였다. 그는 인간의 감각적 본성은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며, 자연은 신적인 것이므로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주장했다.[113]17세기, 프랑스의 피에르 가상디는 에피쿠로스의 교리를 해설한 저서의 서문에서 에피쿠로스의 도덕설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114]
2. 4. 근대
1417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포지오 브라촐리니가 루크레티우스의 저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필사본을 발견하면서 에피쿠로스주의가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112]1431년,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는 『쾌락에 관하여(De Voluptate)』를 저술하여 고대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주의를 비교하고 전자의 금욕주의를 버리고 후자의 쾌락주의를 채택했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적 본성은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며, 자연은 신적인 것이므로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선이라고 주장했다.[113]
17세기, 프랑스의 피에르 가상디는 에피쿠로스의 교리를 해설한 저서의 서문에서 에피쿠로스의 도덕설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114]
1748년에 『인간 기계론』을 저술한 라 메트리는 욕망을 생활 원리로 여기고 그 근거로 에피쿠로스의 유물론을 제시했으나, 오히려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렸다.[115]
1841년,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 『The Difference Between the Democritean and Epicurean Philosophy of Nature|데모크리토스의 자연 철학과 에피쿠로스의 자연 철학의 차이영어』를 저술했다.
근대 이후 새로운 자료도 발견되고 있다. 그 예로 이탈리아의 헤르쿨라네움 유적의 파피루스장에서 발견된 에피쿠로스의 『On Nature (Epicurus)|자연에 관하여영어』와 필로데모스의 저작 파피루스, 터키의 Oenoanda|오이노안다영어 유적에서 발견된 Diogenes of Oenoanda|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영어의 비문이 있다.[108]
3. 철학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인생의 주요한 선으로 보고 쾌락주의적 가치관에 기초하여 윤리학을 세웠다.[44][35] 에피쿠로스는 평생 동안 최대한의 쾌락을 얻되, 지나친 쾌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절제하는 삶을 옹호했다.[44] 그는 열정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결혼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유흥을 위한 섹스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피해야 할 필요 없는 욕구로 여겼다.[36] 정치 참여는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이 덕과 마음의 평화를 해치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권장되지 않았다.[37][38] 또한 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려 했는데, 이 두려움이 삶의 주요 갈등 원인이라고 보았다.[39]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육체의 쾌락''과 ''정신의 쾌락''으로 나누었다.[42] 육체의 쾌락은 현재에만 존재하지만,[42][43] 정신의 쾌락은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존재할 수 있어 육체의 쾌락보다 더 크다고 여겨졌다.[43]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다시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으로 나누었다.[45][46][47] ''동적 쾌락''은 행동이나 변화를 수반하는 쾌락이고,[50] ''정적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쾌락이다.[51] 완전한 육체적 정적 쾌락은 ''무통(aponia)'', 완전한 정신적 정적 쾌락은 ''아타락시아(ataraxia)''이다.[45] 에피쿠로스는 고통의 부재인 무통(aponia)와 정신 동요 부재인 아타락시아(ataraxia)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48][49]
에피쿠로스 학파는 욕망 자체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여 욕망을 통제해야 했다.[54] 욕망 통제는 ''무통''과 ''아타락시아''를 가져온다.[55] 에피쿠로스 학파는 욕망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종류로 나눈다.[54]
종류 | 설명 | 예시 |
---|---|---|
자연적이고 필요한 것 |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존재. 행복, 신체적 불편함 해소, 생명 유지에 필요. | 의복, 쉼터, 음식 |
자연적이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 | 인간에게 본질적이지만, 행복이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음. 행복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지 않고, 얻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며, 필요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유발. |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 |
헛되고 공허한 것 | 인간에게 본질적이지 않고, 행복이나 건강에 필요하지 않음. 무제한이며 결코 충족될 수 없음. 불편함만 초래. | 부, 명예 |
에피쿠로스는 자연적이고 필요한 욕망만을 따르면 ''무통''과 ''아타락시아''에 도달하여 가장 높은 형태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56] 불필요하고, 특히 인위적인 욕망은 억제해야 했다.[57] 그는 "빵과 물만 있어도 제우스보다 행복하게 이길 수 있다"고 표현했다.
3. 1. 자연 철학 (물리학)
에피쿠로스는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리적 세계의 본질에 대해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즉,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생겨날 수 없고, 파괴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8] 이 원칙의 목적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영구적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립하는 것이었다.[9] 에피쿠로스 학파의 물리학은 전체 우주가 물질과 진공,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10]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자는 모양, 크기, 무게라는 변하지 않는 특성만을 가진 작은 몸체이다.[11][12] 에피쿠로스 학파는 세상이 질서 정연하고 변화는 특정한 일관된 근원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원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식물 종은 동일 종의 씨앗에서만 자라며,[16][13] 우주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구성되는 물질이 변경될 수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본질적으로 파괴될 것이다.[15][16]에피쿠로스는 유한한 수의 원자 유형과 무한한 양의 진공뿐만 아니라 무한한 양의 원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1] 그는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더욱이 사물의 합은 원자의 수와 진공의 범위로 인해 무제한이다. 진공이 무한하고 몸체가 유한하다면 몸체는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무한한 진공을 가로질러 흩어질 것이며, 위로 튀어 오르도록 돌려보낼 지지대나 억제 장치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진공이 유한하다면 무한한 몸체는 있을 곳이 없을 것이다.[14]
원자가 무한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무한한 수의 세계, 즉 '코스모이'가 있다.[11] 이 세계 중 일부는 우리 세계와 매우 다를 수 있고, 일부는 매우 유사할 수 있으며, 모든 세계는 광대한 진공 지역('메타코스미아')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11]
에피쿠로스 학파는 원자가 더 작은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15] 물질이 움직이려면 진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공과 물질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것은 분해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진공을 포함하지 않으면 물질의 어떤 부분도 더 작은 하위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으므로 분해할 방법이 없다.[16] 원자는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17] 원자는 서로 단순히 충돌한 다음 서로 튕겨져 나갈 수 있다.[17]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형성할 때 원자는 더 큰 물체의 전체적인 모양을 유지하면서 서로 충돌하면서 진동할 수 있다.[17]
다른 원자가 막지 않으면 모든 원자는 자연적으로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관련하여 같은 속도로 아래쪽으로 움직인다.[17][18] 이 아래쪽 움직임은 원자에게 자연스럽지만, 네 번째 움직임 수단으로 원자는 때때로 자신의 평소 아래쪽 경로에서 무작위로 벗어날 수 있다.[18] 이 빗나가는 움직임은 우주를 창조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더 많은 원자가 빗나가고 서로 충돌하면서 원자가 결합함에 따라 물체가 형태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빗나감이 없었다면 원자는 서로 상호 작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같은 속도로 아래쪽으로 계속 움직였을 것이다.[17][18] 에피쿠로스는 또한 이 빗나감이 인류의 자유 의지를 설명한다고 느꼈다.[19] 이 빗나감이 없었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과 관계의 사슬에 굴복했을 것이다.[19] 이것은 에피쿠로스 학파가 종종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점이었다.[19]
3. 2. 인식론
에피쿠로스 철학은 감각에 기반한 경험론적 인식론을 사용한다.[20] 에피쿠로스 학파는 감각 또한 원자에 의존한다고 믿었다.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 자체에서 입자를 방출하며, 이 입자는 관찰자와 상호 작용한다.[21] 시각, 후각, 청각과 같은 모든 감각은 이러한 입자에 의존했다.[21] 방출되는 원자는 감각이 인식하는 품질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원자가 방출되는 방식은 관찰자가 그러한 감각을 경험하게 했다. 예를 들어, 붉은 입자 자체는 붉은색이 아니지만, 보는 사람이 붉은색을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방출되었다.[21] 원자는 개별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감각으로 인식된다.[21]에피쿠로스 학파는 모든 감각적 지각이 진실이라고 믿었으며,[22][23] 오류는 우리가 그러한 지각을 판단하는 방식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23] 우리가 사물에 대해 판단(''hupolepsis'')을 형성할 때, 추가적인 감각 정보를 통해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23][24][25] 예를 들어, 누군가 멀리서 둥근 탑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실제로 사각형임을 알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원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 잘못된 의견을 수정할 수 있다.[26]
에피쿠로스는 세 가지 진리 기준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감각(''aisthêsis''), 선입관(''prolepsis''), 그리고 감정(''pathê'')이다.[27] 나중에 에피쿠로스 학파에 의해 "마음의 현시적 적용"(''phantastikai epibolai tês dianoias'')이라고 불리는 네 번째 기준이 추가되었다고 한다.[27][28] 이러한 기준들은 에피쿠로스 학파가 지식을 얻는 방법론을 형성했다.[20]
에피쿠로스 학파는 감각이 기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각은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있어 진리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기준이었다.[23] 심지어 감각 입력이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에도, 입력 자체는 진실이며 오류는 그 입력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곧은 노를 물에 넣으면 굽어 보인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노에서 관찰자의 눈으로 이동하는 원자, 즉 노의 이미지가 변형되었고, 실제로 굽은 노의 형태로 관찰자의 눈에 도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29] 관찰자는 자신이 받는 이미지가 노를 정확하게 나타내며 어떤 식으로든 왜곡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데 오류를 범한다.[29] 지각 가능한 것에 대한 오류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대신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기 위해, 에피쿠로스 학파는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여 지각 가능한 것에 대한 "명확한 시각"(''enargeia'')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30] 이것은 지각되는 것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30] ''Enargeia''는 판단이나 의견에 의해 변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감각, 즉 그 대상에 대한 명확하고 직접적인 지각으로 특징지어진다.[31]
개인의 선입관은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개념(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이러한 개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각 입력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 형성된다.[32] 선입관과 관련된 단어가 사용되면, 이러한 선입관은 마음에 의해 사람의 생각으로 소환된다.[33] 우리가 지각하는 것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선입관을 통해서이다.[26] 선입관은 또한 에피쿠로스 학파에 의해 플라톤이 ''메논''에서 제기한 학습에 관한 역설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33] 플라톤은 학습이 우리가 이미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정보를 성공적으로 학습했을 때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33] 에피쿠로스 학파는 선입관이 학습에 필요한 사전 지식을 개인에게 제공한다고 주장한다.[33]
우리의 감정, 즉 정서(''pathê'')는 우리가 쾌락과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이다.[28] 그것들은 지각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감각과 유사하지만, 외부 사물과 반대로 우리의 내부 상태를 지각한다.[28]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감정은 우리가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어떤 것이 쾌락적이면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어떤 것이 고통스러우면 우리는 그것을 피한다.[28]
"마음의 현시적 적용"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직접 지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논의하고 질문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34] 우리는 다른 감각을 통해 지각하는 대신, 그러한 것들의 인상을 직접 마음속에서 받는다.[27] "마음의 현시적 적용"의 개념은 우리가 직접 지각할 수 없는 것(예를 들어 신들)에 대해 어떻게 배우는지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을 수 있다.[27][34]
3. 3. 윤리학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인생의 주요한 선으로 보았고, 쾌락주의적 가치관에 기초하여 윤리학을 세웠다.[44][35] 에피쿠로스는 평생 동안 최대한의 쾌락을 얻되, 지나친 쾌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절제하는 삶을 옹호했다.[44] 그는 열정적인 사랑을 반대했고, 결혼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유흥을 위한 섹스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피해야 할 필요 없는 욕구로 여겼다.[36] 정치 생활은 권력욕이나 명예욕과 같이 덕과 마음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므로 정치 참여는 권장되지 않았다.[37][38] 에피쿠로스는 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려 했는데, 이 두려움이 삶의 주요 갈등 원인이라고 보았다.[39]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쾌락 추구보다는 고통 회피에 초점을 맞추었다.[42] 그들은 자연이 고통을 피하도록 명령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모든 동물들이 가능한 한 고통을 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41]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육체의 쾌락''과 ''정신의 쾌락''으로 나누었다.[42] ''육체의 쾌락''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고통 없는 편안한 상태와 같은 육체 감각을 포함하며, 현재에만 존재한다.[42] 즉, 경험할 때만 존재한다.[43] ''정신의 쾌락''은 정신적 과정과 상태를 포함하며, 기쁨, 두려움 부재, 즐거운 기억 등이 그 예이다.[42] 정신의 쾌락은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존재할 수 있다. 과거의 즐거운 기억이나 미래의 즐거운 기대는 모두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43] 따라서 정신의 쾌락이 육체의 쾌락보다 더 크다고 여겨진다.[43]
정신적 쾌락이 육체적 쾌락보다 더 강조되었다.[44]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다시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으로 나누었다.[45][46][47] 고통의 부재인 무통(aponia)와 정신 동요 부재인 아타락시아(ataraxia)는 정적 쾌락의 예이며, 에피쿠로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48][49] ''동적 쾌락''은 행동이나 변화를 수반하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쾌락이다.[50]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욕구 충족, 고통 제거(즐거운 행위로 간주됨)는 육체적 동적 쾌락의 예이다.[45][51] 기쁨의 감정은 정신적 동적 쾌락의 예이다.[45] ''정적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쾌락이다.[51] 동적 쾌락처럼 정적 쾌락도 육체적(예: 갈증 없는 상태)이거나 정신적(예: 두려움 없는 상태)일 수 있다.[45][50] 완전한 육체적 정적 쾌락은 ''무통(aponia)'', 완전한 정신적 정적 쾌락은 ''아타락시아(ataraxia)''이다.[45]
쾌락 추구가 철학의 초점이었지만, 고통, 불안, 고통을 최소화하는 "정적 쾌락"에 주로 집중되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가장 큰 쾌락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52] 따라서 에피쿠로스 윤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통(aponia)''과 ''아타락시아(ataraxia)''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었다.[52]
에피쿠로스 학파는 욕망 자체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여 욕망을 통제해야 했다.[54] 욕망 통제는 ''무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욕망이 거의 없어 불편해질 것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아타락시아''를 가져오는 데도 도움이 된다.[55] 에피쿠로스 학파는 욕망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눈다.[54]
종류 | 설명 | 예시 |
---|---|---|
자연적이고 필요한 것 |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제한된 욕망. 행복, 신체적 불편함 해소, 생명 유지에 필요. | 의복, 쉼터, 음식 |
자연적이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 | 인간에게 본질적이지만, 행복이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음. 행복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지 않고, 얻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며, 필요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유발. |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 |
헛되고 공허한 것 | 인간에게 본질적이지 않고, 행복이나 건강에 필요하지 않음. 무제한이며 결코 충족될 수 없음. 불편함만 초래. | 부, 명예 |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자연적이고 필요한 욕망만을 따르면 ''무통''과 ''아타락시아''에 도달하여 가장 높은 형태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56] 불필요하고, 특히 인위적인 욕망은 억제해야 했다.[57]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개념과 논증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평생의 행복과 쾌락을 밀접하게 연결하여, 진정한 쾌락이란 정신적인 것으로 덕과 불가분하며, 절제에 기초한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다. 그는 "빵과 물만 있어도 제우스보다 행복하게 이길 수 있다"고 표현했다.
3. 4. 정치 철학
> 지혜롭고 선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서는 유쾌한 삶을 살 수 없으며, 유쾌한 삶을 살지 않고서는 지혜롭고 선하고 정의롭게 살 수 없다.[58]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의를 본질적으로 자기 이익에 기반하여 이해했다. 정의는 상호 이익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59] 개인은 부당한 행동을 하더라도 발각되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60] 처벌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에게 고통을 야기하고 행복을 방해한다.[60]
에피쿠로스는 사회 계약 개념을 발전시킨 초기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플라톤의 ''국가''에서 묘사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다.[61] 에피쿠로스 학파가 확립한 사회 계약 이론은 신의 칙령이 아닌 상호 합의에 기초한다.[61] 그는 정의를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않기로 한 합의로 정의했다.[59] 법과 처벌이 있는 사회에서 사는 목적은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받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61] 따라서 인간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지 않는 법은 정의롭지 않다.[61] 그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해를 최소화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상호주의 윤리의 독자적인 버전을 제시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스토아 학파, 플라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와 같은 다른 철학적 전통과는 다르다.[62]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모든 사회적 관계는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리고 관습과 전통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도 본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니거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1] 그것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 우월하다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없고, 모든 사람은 동일한 원자 물질로 만들어졌으므로 본질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1] 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치 참여 및 기타 정치 관련 활동을 권장하지 않았다.[1] 그러나 에피쿠로스 학파가 비정치적인 것은 아니며, 일부 정치적 연합은 일부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유익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62] 일부 정치적 연합은 개인에게 쾌락을 극대화하고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특정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62]
3. 5. 우정과 공동체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우정을 강조했으며, 그의 학파는 아테네 철학의 정치적 각광을 거부한, 적당히 금욕적인 공동체였던 것으로 보인다.[3] 이들은 아테네 기준으로 상당히 세계주의적이었으며, 여성과 노예를 포함했다.[3] 공동체 활동은 어느 정도 중요성을 지녔으며, 특히 매달 열리는 사교 모임인 에이카스가 있었다. 몇몇 구성원은 채식주의를 실천했는데, 약간의 증거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고기 섭취에 대한 금지는 없었다.[3][4]에피쿠로스는 만족스러운 삶의 기반으로서 우정을 발전시키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고통과 공포를 피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에피쿠로스 학파의 이상이었다.[62] 에피쿠로스는 정치 참여가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적인 삶에 반대했다.[62] 또한 가족을 갖는 것의 어려움에 비해 아내와 자녀의 혜택이 더 적다고 보았기에, 가족을 시작함으로써 정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62] 대신 에피쿠로스는 전통적인 정치 국가 밖에서 친구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권장했다. 이 덕이 있는 친구들의 공동체는 내부 문제와 정의에 집중했다.[62]
그러나 에피쿠로스주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다.[62] 고통과 공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항상 동일한 접근 방식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가족을 갖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고, 다른 상황에서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고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에피쿠로스주의자의 몫이다.[62]
3. 6. 죽음과 신
에피쿠로스 학파는 불멸을 부정한다. 영혼의 존재는 믿지만, 영혼은 육체와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고 물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64] 에피쿠로스는 사후 세계의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해체된 것은 감각이 없고, 감각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65] 이 교리에서 에피쿠로스 학파의 묘비명이 생겨났다. ''Non fui, fui, non sum, non curo''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했었다, 존재하지 않는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의 추종자들의 묘비에 새겨졌고, 로마 제국의 많은 고대 묘비에서도 볼 수 있다.[66]에피쿠로스 학파는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신들이 세상사에 관여하는 것을 부정한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따르면, 신들은 인간의 삶이나 우주의 나머지 부분에 어떤 식으로든 간섭하지 않는다.[67] 따라서, 무서운 기상 현상이 신의 보복이라는 생각은 배척한다.[68] 에피쿠로스 학파가 벗어나야 할 두려움 중 하나는 신들의 행동과 관련된 두려움이다.[69]
에피쿠로스 학파의 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에피쿠로스 학파가 신들을 마음 밖에 존재하는 물질적 대상(실재론적 입장)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신들이 단지 이상으로서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관념론적 입장).[67][70][71] 실재론적 입장은 에피쿠로스 학파가 신들을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원자로 만들어진 육체적이고 불멸의 존재로 이해한다고 본다.[67][71] 그러나 신들은 나머지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현실에 관심이 없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며, 현실에 의해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72] 대신 신들은 '메타코스미아'(metakosmia), 즉 세계와 세계 사이의 공간에 산다고 한다.[73] 반대로, 관념론적 입장(혼동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비실재론적 입장"이라고도 함)은 신들이 단지 최고의 인간 삶의 이상화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하며,[70][74] 신들은 추구해야 할 삶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70] 이 두 입장 사이의 논쟁은 A. A. 롱(A. A. Long)과 데이비드 세들리(David Sedley)가 1987년에 쓴 저서 『헬레니즘 철학자들』(The Hellenistic Philosophers)에서 부활했는데,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관념론적 입장을 옹호했다.[70][71] 학자들 사이에서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실재론적 입장이 현재 지배적인 견해로 남아 있다.[70][71]
4. 주요 저작
에피쿠로스의 주요 저작으로는 37권의 철학 논문인 《자연에 관하여》(Περὶ φύσεωςgrc)가 있지만, 대부분 유실되었다.[75][76][77] 일부 발췌본은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타버린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수집되어 보존되었다. 이 파피루스들은 파피루스 저택에 보관되어 있으며, 살아남은 파피루스 대부분은 나폴리 국립 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Vittorio Emanuele III)에 보관되어 있다. 제2권의 중요한 부분은 대영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75][76]
《자연에 관하여》가 대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에,[78] 에피쿠로스가 헤로도토스, 메노케우스,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편지가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요 저술로 여겨진다. 루크레티우스의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도 에피쿠로스의 저작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76]
에피쿠로스, 람프사쿠스의 메트로도로스, 미틸레네의 헤르마르쿠스, 람프사쿠스의 폴리에누스가 제정한 40가지 주요 교리도 에피쿠로스 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주요 교리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이 가르침을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요약한 것이지만, 매우 간결하여 추가적인 해설 없이는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에피쿠로스의 편지 세 통을 보존했다.
- ''헤로도투스에게 보낸 편지''[80]는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과 자연 연구 방법의 입문서로, 무수히 많은 세계에 대한 교리, 원자론, 시간 현상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81] 이 편지는 《자연에 관하여》 제1권~제13권의 요약본으로 보인다.[82]
-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편지''[83]는 기상 현상, 소행성, 코스모이의 생성과 소멸,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는 행성체의 경로 등 우주의 천체 현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에피쿠로스 학파 윤리학의 신학, 욕망의 위계, 순수한 쾌락을 얻기 위한 방법 등을 요약한 것이다.
1887년 헤르만 우제너가 수집한 에피쿠로스의 텍스트, 단편, 증언 모음집인 에피쿠레아(Epicurea)도 에피쿠로스 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85]
5. 영향 및 유산
에피쿠로스는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와 람프사코스에서 가르치며 추종자를 얻었고, 아테네에서는 "정원"을 구입하여 학파를 설립했다. 이 학파는 헤르마르코스, 이도메네우스 등을 포함했으며, 우정을 중시하고 적당히 금욕적인 공동체 생활을 했다. 여성과 노예도 포함된 세계주의적인 학파였으며, 매달 에이카스라는 사교 모임을 가졌다. 일부는 채식주의를 실천했다.[2][3][4]
에피쿠로스 학파는 헬레니즘 철학의 주요 학파 중 하나로 성장하여 로마 제국 후기까지 강력하게 지속되었다.[5] 헤르쿨라네움의 파피루스 저택에서는 필로데모스와 에피쿠로스의 저작이 발견되어 학파의 지속적인 인기를 증명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장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에소니누스도 에피쿠로스 학파에 호의적이었다.[6] 2세기에는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가 저명한 에피쿠로스 학파원이었다. 그러나 3세기 후반부터 신플라톤주의, 페리파토스 학파,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쇠퇴했다.[7]
초기 로마의 에피쿠로스 학파 옹호자로는 아마피니우스가 있었고,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통해 에피쿠로스 철학을 알렸다. 가다라의 필로데모스의 작품도 파피루스 저택에서 발견되어 중요성이 커졌다. 키케로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비판했지만,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자료를 제공했다.[2]
초기 기독교 작가 락탄티우스는 에피쿠로스를 비판하고 악의 문제 논증을 에피쿠로스에게 잘못 귀속시켰지만,[86][87] 실제로는 피론주의 철학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저작에 나타난다.[89] 유대교에서는 "에피코로스(Epikoros)"를 이단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는데, 이는 유일신론과 내세에 대한 믿음과 상반되는 에피쿠로스의 견해 때문이었다.[90][91] 단테 알리기에리는 ''신곡''에서 에피쿠로스 학파를 지옥의 6번째 고리에 배치하여 이단으로 묘사했다.[92]
프랜시스 베이컨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관련된 격언을 남겼다.[93][94] 17세기 피에르 가상디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부활시키려 노력했고, 월터 찰턴도 영어로 관련 저서를 출판했지만, 케임브리지 플라톤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95]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을 에피쿠로스 학파라고 언급했으며,[96] 가상디, 월터 찰턴, 드니 디드로, 제러미 벤담 등도 에피쿠로스 학파로 여겨진다. 미셸 온프레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97] 스티븐 그린블랫도 자신을 에피쿠로스 학파 지지자로 묘사했다. 인본주의 유대교도 에피쿠로스 학파라는 칭호를 주장한다.
현대에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평온함)와 ''아포니아''(고통 없음)를 중시하고 과도함을 경계했다.[40] 그는 "선", "지혜와 교양"을 중시했으며,[101] 절제 속에서도 가끔의 사치를 허용했다.[102][103] 그의 공동체는 에이카스라는 잔치로 유명했는데, 이는 그리스 달의 스무 번째 날에 열렸다.[104][105][106]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행복을 위한 활동으로 정의하고, 진정한 쾌락은 정신적인 것이며 덕과 절제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그는 "빵과 물만 있어도 제우스보다 행복하다"고 표현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부정확한 전설과 비방을 전했지만,[107] 에피쿠로스 학파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로마에서는 포에니 전쟁 이후 에피쿠로스 학파가 인기를 얻어 카시우스, 피소, 아티쿠스 등이 추종했지만, 스토아 학파의 비방으로 인해 "욕망의 노예"로 여겨지기도 했다.[108] 키케로는 에피쿠로스 학설을 통속화하고 방탕함을 정당화하는 유물론으로 비판했으며,[109] 호라티우스는 자신을 "에피쿠로스 짐승 무리의 돼지"라고 불렀다.[110]
반면 베르길리우스와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연구했으며, 특히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111] 1417년 포지오 브라치올리니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필사본을 발견하면서 에피쿠로스주의가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112] 1431년 로렌초 발라는 『쾌락에 관하여(De Voluptate)』에서 에피쿠로스주의를 옹호하고 쾌락을 진정한 선으로 주장했다.[113] 17세기 피에르 가상디는 에피쿠로스의 도덕설을 승인했다.[114] 라 메트리는 에피쿠로스의 유물론을 바탕으로 욕망을 생활 원리로 보았지만, 에피쿠로스 윤리학의 평판을 떨어뜨렸다.[115] 1841년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근대 이후 헤르쿨라네움 유적의 파피루스장에서 에피쿠로스의 저작과 필로데모스의 저작, 터키의 오이노안다 유적에서 오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의 비문이 발견되었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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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스페인 르네상스의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Francisco Suárez, 1548 ~ 1617), 근세의 [[휘호 흐로티위스]] (Hugo Grotius, 1583 ~ 1645),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 ~ 1679년), [[존 로크]] (John Locke, 1632 ~ 1704) 및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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