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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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죄수부대는 군기 위반자, 범죄자 등을 징집하여 구성된 군부대를 의미한다. 고대 중국,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 제1·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과 소련 등에서 징벌 부대가 운용되었으며, 이들은 주로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죄수 모집을 통해 병력을 충원하는 사례가 있었다. 징벌 부대는 영화, 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도 다뤄지며, 특공대, 실미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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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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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부대 | |
개요 | |
유형 | 군사 부대 |
역할 | 전투 |
역사적 맥락 | |
기원 | 전쟁 또는 국가적 위기 시 동원된 수감자 특정 국가 (예: 러시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 |
동기 | 죄수들의 형량 감형 또는 사면 대가 참전 국가의 병력 부족 해결 |
국가별 사례 | |
러시아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슈트라프바트"(Shtrafbat) 운용 바그너 그룹의 죄수 용병 활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
우크라이나 | 군사 경험이 있는 수감자 석방 후 징집 (2022년) |
기타 | 역사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유사 사례 존재 가능성 |
특징 | |
사기 및 훈련 | 낮은 사기 및 훈련 부족 가능성 일반 부대에 비해 전투 효율성 떨어질 수 있음 |
정치적 논란 | 인권 문제 및 윤리적 문제 제기 가능성 전쟁 범죄 연루 가능성 |
참고 | |
관련 용어 | 징벌 부대 돌격대 바그너 그룹 |
2. 역사
징벌 부대는 죄수나 군기 문란자 등으로 구성되어 전투나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는 부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대의 역사는 고대 중국의 한 왕조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사기와 한서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한-대완 전쟁 중이던 기원전 102년, 한 무제는 사면을 약속하고 죄수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군대를 대완 공격에 동원했다.[1]
근대에 들어 징벌 부대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했다. 대규모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군대에서 발생하는 군기 문제를 해결하고,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2] 전투를 기피하는 병사들을 통제하고, 죄수들을 일반적인 수감 대신 전장에 투입하여 국가 인력을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부대는 정규군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결사적인 공격과 같이 극도로 위험한 임무에 주로 투입되었다.[2] 특히 프랑스 제1 제국은 전쟁 후반기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징벌 부대를 적극 활용했다.[3]
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 본토에서는 징벌 부대 운용이 줄어들었으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외 식민지에서는 계속 유지되었다.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와 같이 군기 문란자나 전과자들로 구성된 부대가 식민지 확장 전쟁에 동원되었으며[4][5], 더 가혹한 처벌을 받은 죄수들로만 이루어진 부대도 존재했다.[6] 이탈리아 통일 과정이나 포르투갈 제국의 식민지 유지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부대가 운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다시 징벌 부대가 주목받았다. 영국은 병력 부족을 이유로 죄수들에게 입대 기회를 제공했으며[7], 나치 독일은 군기 문란자나 범죄자들을 슈트라프바탈리온에 보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8][9] 소련 역시 제227호 명령을 통해 슈트라프바트를 대규모로 운용하며, 후퇴하는 병사나 포로가 되었던 병사 등을 징벌 부대에 편입시켜 최전선에 투입했다.[14][15] 중국 내전 당시 국민혁명군도 위험한 임무 수행을 위해 징벌 대대를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16]
미국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연합 포로로 구성된 부대를 운용한 사례가 있으나[17], 이후에는 죄수의 입대를 허용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별도의 징벌 부대를 편성하지는 않았다.[18][19][20] 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국가에서 징벌 부대 운용은 중단되었고, 죄수의 군 입대도 금지되거나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21][22]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에서 죄수를 군대에 동원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24][25][26][27]
2. 1. 고대 ~ 중세
징벌 부대의 가장 초창기 기록 중 하나는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와 한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대완 전쟁 중이던 기원전 104년, 한 무제는 이광리 장군의 초기 실패에 불만을 품었다. 이에 기원전 102년, 죄수, 죄인, 산적들에게 사면과 포상을 약속하고 이들로 구성된 6만 명의 군대, 이른바 "악소년"(惡少年)을 조직하여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대완을 공격하도록 보냈다.[1]2. 2. 근대
징벌 부대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본격적으로 구상되었다. 당시 대규모 징집병으로 구성된 군대는 군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2] 전투를 회피하는 병사는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에 징벌 대대는 군 기강을 확립하고 병사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고안되었다. 또한, 많은 국가에서 전시 상황에 죄수를 수감하거나 처형하는 대신 징벌 부대에 편입시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러한 부대는 정규군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결사적인 공격과 같이 위험 부담이 큰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잦았다.[2]특히 프랑스 제1 제국은 대프랑스 동맹과의 전쟁 과정에서 징벌 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인력 부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1811년에 창설된 Régiment pénal de l'Île de Ré|레지망 페날 드 릴 드 레fra는 거의 전적으로 범죄자와 사회 부적응자로 구성되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에 실전에 투입되었다.[3] 이 부대는 1814년 부르봉 왕정복고 시기에 해산되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대규모 징집 군대가 해체되고 전면전이 줄어들면서 유럽 대륙에서 징벌 부대 제도는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외 식민지에서는 이 제도가 유지되었다. 프랑스 식민 제국 확장을 위해 1832년 루이 필리프 1세의 명령으로 창설된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Afrique|바타이용 당판테리 레제르 다프리크fra, 일명 ''Bats d'Af'')가 대표적이다.[4] 이들은 군 복무를 마쳐야 하는 전과자나 군기 문란으로 징계를 받은 현역 군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알제리 정복과 크림 전쟁 등에서 활동했다.[5] 프랑스는 또한 알제리 남부 아인 세프라(Aïn-Sefra)에 주둔했던 '배제된 부대'(compagnies d'exclus|콩파니 데스클뤼fra)를 운용했다. 이 부대는 5년 이상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아 무기 소지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된 죄수들로 구성된 명백한 징벌 부대였다.[6]
한편,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도 징벌 부대가 활용되었다.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끈 붉은 셔츠단은 감옥의 죄수와 혁명가들을 모아 '투옥된 자들의 대대' 또는 '죄수 대대'라는 의미의 Battaglioni degli Imprigionati|바탈리오니 데글리 임프리지오나티ita를 조직했다.
포르투갈 제국 역시 1900년대 초반까지 군대 내 죄수들을 해외 식민지에 주둔하는 정규군 및 원주민 부대를 보충하는 병력으로 활용했다.
사르데냐 왕국에서는 1741년경 '프랑크 사냥꾼'이라는 의미의 Cacciatori Franchi|카차토리 프랑키ita라는 죄수 부대를 창설하여 운용했으며, 이 부대는 징벌 중대가 별도로 설립된 1878년까지 존속했다.[38]
2. 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군은 군 복무를 위해 병력을 동원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에게 수감 대신 입대할 기회를 주었으며, 보스탈 시설 등에 수감된 젊은 범죄자와 성인 죄수들이 군 복무를 조건으로 조기 석방되기도 했다. 영국 정부 관리들은 공식적으로는 범죄자들이 군 복무에 부적합하며 입대에 필요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력 부족이라는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죄수들을 모집했으며, 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을 활용하고 전시 교정 시설 운영 비용을 절감하려는 현실적인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2. 4.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군비 재무장 시기에 징벌 부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나치 독일 ===
1935년 5월, 나치 독일의 국방군은 징병법에 따라 군기 문제를 일으키지만 복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병사를 군 징벌 부대로 보내는 정책을 시행했다. 범죄자들도 형량 감경이나 사형 집행 유예의 대가로 징벌 부대에 징집되었다.[8] 이 부대들은 "특수 부서" 또는 통칭 '슈트라프바탈리온'(Strafbattalionde)으로 불렸으며, 야전 헌병의 감독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는 국방군 내에 9개의 슈트라프바탈리온이 있었다. 주요 역할은 최전선 지원이었으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퇴각 시 사형 선고를 받은 병사들을 자동으로 징벌 부대에 재배치하는 정책 변경으로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슈트라프바탈리온은 범죄자, 정치범, 군기 문란 병사 등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되어 부대 결속 유지를 위해 가혹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종종 최전선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며 싸움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도록 강요받았다.[9]
독일에는 여러 종류의 징벌 부대가 존재했다.
- 슈트라프바탈리온 (육군): 군기 위반자를 대상으로 한 전선 집행유예 제도(Frontbewährungde)의 일환으로 운영되었다.
- 제999아프리카 경사단: 사단급 징벌 부대로, Bewährungseinheitde(집행유예 부대) 성격을 가졌다. 전원이 징벌병은 아니었고 일반 부대도 포함되었으며, 북아프리카 전역 등에서 용감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부대는 사기가 낮아 탈영하여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기도 했다.[13] 부대 번호 "999"는 영국의 긴급 전화번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49]
- 36 무장친위대 척탄병 사단 (딜레반거 여단): 무장친위대의 징벌 부대로, 주로 파르티잔 토벌 임무를 수행했다. 원래 밀렵꾼으로 편성되었으나, 이후 일반 범죄자, 군기 위반자, 강제 수용소의 정치범까지 동원되었다. 외국인 비율이 높았고 군기는 극도로 열악했으며[50], 민간인과 전쟁 포로에 대한 잔혹 행위로 악명이 높아 국방군은 물론 같은 친위대 내부에서도 비판받았다.[10][11][12] 사단장 오스카르 딜레반거는 여러 차례 군법 회의에 회부될 뻔했으나 처벌을 면했다.
- 아인자츠그루펜: 동부 전선 점령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특수 작전 부대로, 징벌 부대 성격을 가졌다. 무장친위대에서 경미한 죄로 군법 회의에 회부된 대원들에게 지원을 대가로 면책을 제안하여 인원을 충원했다. 실상을 알고 거부하면 명령으로 전속되었고, 이마저 거부하면 총살되었다.[51]
- 러시아인 부대 내 징벌 중대: 독일에 협력한 구 소련군 포로로 구성된 부대 내에도 징벌 중대가 존재하여 이탈리아 전선 등에서 싸웠다.[52]
=== 소련 ===
소련은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붉은 군대 내 징벌 부대 운영을 본격화했다. 이전 겨울 전쟁 당시에도 존재했다는 증언이 있으며[54], 1942년 5월까지 각 군(軍)은 929명 규모의 징벌 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55][56]
1942년 7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중 이오시프 스탈린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Ни шагу назад!ru, Ni Shagu Nazad!)는 구호로 유명한 소련 국방인민위원령 제227호 (원문)를 발령했다. 이 명령은 무단 후퇴 시 즉결 처형을 포함한 엄벌을 규정했으며, 새로운 징벌 부대, 즉 '슈트라프바트'(штрафбат, штрафной батальонru) 창설을 명시했다.[57] 공식적으로는 독일군의 성공 사례를 참고했다고 설명되었으나, 실제로는 기존 소련군 제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58]
새로운 징벌 부대는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다.
- 징벌 대대: 계급을 박탈당한 장교들로 구성 (정원 800명, 이후 360명으로 표준화). 중·상급 장교 또는 정치장교가 지휘.[55]
- 징벌 중대: 부사관과 병들로 구성 (정원 150~200명). 부사관이 지휘.[55][59]
징벌 부대에는 다음과 같은 인원들이 보내졌다.
- 제227호 명령 위반자 또는 형법 제58조(반역죄 등) 유죄 판결자. 겁먹은 행동을 한 장교나 하사관은 병으로 강등 후 보내짐.[55]
- 포로가 되었던 병사: 포로가 되는 것 자체가 반역 행위로 간주되어, 구출되거나 탈출해도 처벌 대상이 되어 징벌 부대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았다.[60][61] 전후 생환 포로 중 사형된 경우도 있었다.[62][63]
- 적군 점령지에 남겨졌다가 생환한 병사: 포로와 마찬가지로 냉대받으며 징벌 부대로 보내짐.[64]
- 라게리 수용자 중 전직 군인.[65]
1942년부터 1945년 5월까지 약 600개의 징벌 부대가 편성되었고, 총 427,910명이 보내졌다. 이는 전체 참전 인원 3,450만 명의 일부였다.[66] 징벌 부대는 공격 임무에만 투입되었고, 수세 시에도 역습에 동원되었다.[55] 배속 기간은 1~3개월이었으며, 전투 중 부상을 입거나("피로 죄를 씻다") 영웅적인 전과를 올리면 감형 또는 원대 복귀가 가능했으나[67], 실제로는 이후에도 의심받는 경우가 많았다.
징벌 부대는 가장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
- 징벌 보병: 지뢰밭 돌파, 위력 정찰, 미끼 역할, 탱크 데산트 등.
- 공군 징벌 전대: 부상이 곧 전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감형이 어려웠고, 전사할 때까지 위험 임무에 투입되었다. 비행 수당도 없었다. 후방 사수는 10회 생환 후 해방 규정이 있었으나, 그 전에 지뢰 처리 부대로 전속되기도 했다.[53][55]
- 지뢰 처리 부대: 평균 수명이 극히 짧았으며, '소모품'처럼 취급되어 지뢰밭을 맨몸으로 돌파하는 임무 등에 투입되었다.[55][68]
전투 시에는 NKVD나 스메르시 소속 독전대가 후방에 배치되어 퇴각하는 병사를 사살하며 진격을 강요했다.[57] 징벌 부대 지휘관 및 관리 요원은 일반 장병 중에서 차출되었으며, 위험한 임무의 대가로 높은 급여와 특별 연금을 받았다. 1944년까지 소련군의 공세에는 거의 항상 징벌 부대가 선봉에 섰고, 대부분 전멸했다.[57] 드물게 징벌 부대에서 살아남아 명예를 회복한 사례로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블라디미르 카르포프가 있다.[53]
=== 미국 ===
미국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연합 포로로 구성된 갈바나이즈드 양키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죄수들의 입대를 허용한 사례는 있었으나, 별도의 징벌 부대를 편성하지는 않았다.[17] 전쟁 후에도 법원에서 피고에게 입대와 수감 중 선택권을 주는 경우가 있었으나[19][20], 현재 미군은 중범죄 면제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으며[20][21][22], 징벌 부대를 운영하지 않는다.
2. 5. 냉전 시대
미국에서는 미국군이 역사적으로 죄수의 입대를 허용했지만, 별도의 징벌 부대를 편성하지는 않았다.[19][20]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미국의 법원은 피고에게 입대와 감옥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는 관행이 있었다.[18][19][20] 1961년, 17세의 비행 청소년이었던 R. 리 어메이는 이러한 방식으로 미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그는 훗날 영화 ''풀 메탈 자켓''에서 훈련 교관 역할로 유명해졌다.[18] 그러나 이러한 입대는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달려 있었고, 군대가 해당 피고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19][20] 현재 미국 군대의 모든 부대는 유죄 판결이나 투옥의 대안으로 죄수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으며(미 해군은 구체적인 금지 조항은 없으나 내부 규정으로 강력히 권장하지 않음),[20] 징벌 부대는 유지하지 않는다. 다만, 중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도 적절한 중범죄 면제를 받으면 입대가 허용될 수 있다.[21][22]소련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운용했던 징벌 부대(슈트라프바트)의 존재를 소련의 붕괴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53] 이는 냉전 기간 내내 유지된 입장이었다.
냉전 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중국 내전(1945-1949) 중에는 국민혁명군(NRA)이 징벌 대대를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영병이나 전투 중 비겁한 행동으로 비난받은 자들로 구성된 이 부대는 매복 확인을 위한 선발 정찰, 도하 가능 여부 확인, 미확인 지뢰밭 통과 등 극히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16]
2. 6. 현대
오늘날 징벌 군부대를 배치하는 관행은 대부분 중단되었으며, 대부분의 군대는 죄수의 입대를 권장하지 않거나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군대는 특정 요구 사항(예: 적절한 면제 획득)을 충족하는 전과자를 받아들이기도 한다.[21] 드물지만, 무장 군대에서 죄수를 받아들이는 관행은 일부 관할 구역 및 상황에서 계속되거나 허용되었다.미국의 미국군은 역사적으로 징벌 부대를 배치했고 죄수의 입대를 허용했었다. 미국 남북 전쟁 중 연방은 1862년부터 약 1866년까지 연방에 충성을 맹세한 남부 연합 전쟁 포로인 갈바나이즈드 양키를 징벌 부대에 입대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죄수들은 전쟁에 기여할 수 있었고, 1942년에는 여러 죄수들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제안했으며, 일부는 입대 전에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 군대에서 징벌 부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17] 20세기까지 미국의 법원은 피고에게 입대와 감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까지 계속되었다. 1961년 17세의 비행 청소년이었던 R. 리 어메이, 1987년 영화 ''풀 메탈 자켓''에서 연기자로 유명한 미 해병대 상사이자 훈련 교관이 입대할 때 이러한 방식이었다고 한다.[18] 그러나 죄수들은 별도의 징벌 부대에 배치되지 않았고, 이러한 관행은 군대가 피고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 등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 있었다.[19][20] 현재 미국 군대의 모든 부대는 유죄 판결 후 및 투옥의 대안으로 죄수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으며(미 해군은 구체적인 금지 조항은 없지만 프로토콜로 강력히 권장하지 않음),[20] 징벌 편성은 유지하지 않지만, 중범죄 전과가 있는 전과자는 적절한 중범죄 면제를 받으면 여전히 허용된다.[21][22] 2018년 미국 군대 모집관은 ''The Daily Beast''에 모집 후보자가 "성인으로서 비폭력 중범죄 1건"을 가질 수 있으며 "우리가 얻는 가장 훌륭하고 유능한 후보자 중 일부는 면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21] 2021년 플로리다 주의회는 처음 범죄를 저지른 25세 이하의 청소년에게 투옥 대신 입대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법안을 제안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19][2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양측 모두 죄수를 동원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인 수감자를 석방하여 우크라이나군에 합류시켜 전선에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7][24]
러시아의 경우,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죄수들을 대규모로 동원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6개월 복무와 20만러시아 루블의 보수를 조건으로 죄수들을 석방하여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69] 이 과정에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러시아 연방 형집행청(FSIN), 그리고 민간군사기업인 바그너 그룹[70]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5][26][27]
인권 단체 굴라그 넷은 2022년 7월부터 관련 제보를 공개하기 시작했으며[71], iStories 등 언론 매체들도 죄수 가족들의 증언을 보도했다.[72] 특히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직접 러시아 각지의 교도소를 방문하여 죄수들에게 입대를 권유하는 연설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73][74][75][76]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자로 알려진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는 2022년 8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죄수 콘스탄틴 투리노프를 영웅으로 소개하며, 러시아 당국의 죄수 동원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77][78][79]
죄수 동원 과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었다. 메디아조나는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죄수가 교도소의 징벌방에 수감되는 사례를 보도하며, 정보 차단이나 PMC와의 계약 강요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로 간 죄수의 사망 통지를 가족이 갑자기 받거나, 부상을 입어도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에서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인권 단체의 보고도 있었다.[80][81] 2022년 9월 30일에는 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쿠루르타이 주의회 의원이 러시아 하원에 "죄수가 특별 작전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82]
3. 국가별 징벌 부대
징벌 부대는 군대 내에서 기강을 문란하게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군인, 또는 민간인 범죄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목적과 형태로 운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는 중국의 사기와 한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무제는 한-대완 전쟁 중 이광리 장군의 실패 이후, 죄수와 불량배들로 구성된 6만 명의 군대를 조직하여 기원전 102년 대완을 공격하도록 했다.[1]
근대적인 징벌 부대는 대규모 징집 군대가 일반화된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군기 문란 행위나 전투 거부는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가적 수치로 여겨졌기에, 징벌 부대 편성은 군 기강 확립과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전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수들을 징집하여 징벌 부대에 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 부대는 정규군에게 멸시받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살 임무나 다름없는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다.[2] 특히 프랑스 제1제국은 전쟁 후반기 인력난 속에서 징벌 부대를 적극 활용했으며, 1811년 창설된 '레지망 페날 드 릴 드 레'는 범죄자와 사회 부적응자들로 구성되어 전쟁에 참여했다.[3]
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 본토에서는 징벌 부대 운용이 줄어들었으나, 식민주의 시대 해외 식민지에서는 계속 유지되었다. 프랑스는 1832년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할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를 창설하여 프랑스 식민 제국 확장에 동원했다.[4][5] 또한 무기 소지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된 중범죄자들로 구성된 '콩파니 덱스클뤼'라는 명백한 징벌 부대도 운용했다.[6]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는 붉은 셔츠단이 죄수와 혁명가들을 모아 징벌 부대를 조직했으며, 포르투갈 제국 역시 20세기 초까지 군 복역 죄수들을 해외 식민지 주둔 병력으로 활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은 병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죄수들에게 징역 대신 입대 기회를 제공했다.[7]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나치 독일과 소련이 대규모 징벌 부대를 운용했다. 독일은 군기 문란자나 범죄자로 구성된 슈트라프바탈리온을 운용했으며[8], 이들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9] 특히 딜레반거 여단과 같은 부대는 극심한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다.[10][11][12] 제999아프리카 경사단처럼 반체제 인사로 구성되어 사기가 낮은 부대도 있었다.[13] 소련 역시 제227호 명령을 통해 슈트라프바트를 대규모로 운용했으며, 이들은 주로 최전선의 위험한 공격 임무에 소모적으로 투입되었다.[14][15]
중국 내전 시기 국민혁명군도 탈영병 등으로 구성된 징벌 대대를 운용하여 위험한 정찰 임무 등에 투입했다.[16] 미국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 포로로 구성된 갈바나이즈드 양키스를 운용했으며[17], 20세기까지 법원에서 징역 대신 입대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나[18], 공식적인 징벌 부대를 편성하지는 않았다.[17]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징벌 부대 운용이나 죄수의 군 입대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20],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전과자의 입대를 허용하는 경우는 있다.[21][22]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의 바그너 그룹 등이 죄수들을 모집하여 전투에 투입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24][25][26][27]
아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거나 현재 운용 중인 각국의 주요 징벌 부대 목록이다. 하위 섹션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 국가도 있다.
국가 | 부대명 | 활동 시기 | 주요 특징 및 활동 |
---|---|---|---|
벨기에 | 특수 임업 소대 | 1918년 ~ 전후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플랑드르 운동 관련 병사들로 구성된 비전투 징벌 부대. 프랑스 오른에서 벌목 작업 수행.[28][29][30][31] |
볼리비아 | 제50보병연대 | 차코 전쟁 시기 | 유죄 판결을 받은 군인 및 경찰관으로 구성된 죄수 부대.[32][33][34][35][36] |
핀란드 | 제21독립대대 (Erillinen Pataljoona 21) | 1941년 ~ 계속전쟁 시기 | 행정 구류 중인 죄수 및 좌파 인사 자원자로 구성. "퍨미의 악마들", "검은 화살" 별명.[37] |
프랑스 | 레지망 페날 드 릴 드 레 Régiment pénal de l'Île de Ré프랑스어 | 1811년 ~ 1814년 |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 활동. 범죄자 및 사회 부적응자로 구성.[3] |
프랑스 |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 ('Bats dAf') 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Afrique프랑스어 | 1832년 ~ 1972년 |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서 활동. 전과자 및 군 기율 위반자로 구성.[4][5] |
프랑스 | 바타이용 당판테리 레제르 도트르메르 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Outre-Mer프랑스어 | 1948년 ~ 1949년 |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군 포로 및 프랑스 협력자로 구성. |
프랑스 | 극동 외국인 연대 징계 중대 Compagnie disciplinaire en Extrême-Orient프랑스어 | 1946년 ~ 1954년 |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 징계 중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활동. |
독일 | 슈트라프바탈리온 Strafbattalionde | 1935년 ~ 1945년 | 국방군의 징벌 부대. 위험한 임무 수행.[8][9] |
독일 | 제999아프리카 경사단 | 1942년 ~ 1943년 | 국방군의 징벌 사단. 반파시스트 성향 인원으로 구성. 낮은 사기.[13] |
독일 | 딜레반거 여단 | 1940년 ~ 1945년 | 무장친위대 징벌 부대. 극심한 잔혹 행위와 전쟁 범죄로 악명 높음.[10][11][12] |
이탈리아 | 카차토리 프랑키 Cacciatori Franchiit | 1741년경 ~ 1878년 | 사르데냐 왕국군의 죄수 부대.[38] |
이탈리아 | 바탈리오네 디 리고레 Battaglione di Rigoreit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군대의 죄수 부대. |
이탈리아 | 바탈리오니 데글리 임프리지오나티 Battaglioni degli Imprigionatiit | 이탈리아 통일 전쟁 시기 | 붉은 셔츠단의 죄수 대대. 죄수 및 혁명가로 구성. |
파라과이 | 하라의 마체테로스 | 1932년 창설 | 전직 무법자들로 구성된 보조 기병 연대. |
러시아 | 폭풍-Z | 2023년 4월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창설된 징벌 부대.[39] |
러시아 | 폭풍-V | 2023년 6월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창설된 징벌 부대.[40] |
대한민국 | 684부대 | 1968년 ~ 1971년 | 대한민국 공군의 흑색 작전 부대. 경범죄자 등으로 구성. 김일성 암살 목적. 실미도 사건으로 해체. |
소련 | 슈트라프바트 Штрафбатru | 1942년 ~ 1945년 | 붉은 군대 및 내무인민위원회의 형벌 부대.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활동.[14][15] |
우크라이나 | 카라크테르니키 대대 | 2024년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죄수 동원 법안 통과 후 창설.[41] |
우크라이나 | 슈크발 대대 | 2024년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죄수 동원 법안 통과 후 창설된 부대 그룹.[42][43] |
우크라이나 | 죄수 대대 (제92 공격 여단 배속) | 2024년 ~ 현재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죄수 동원 법안 통과 후 창설.[44][45] |
영국 | 왕립 아프리카 군단 | 1800년 ~ 1821년 | 영국의 초기 죄수 부대 중 하나. |
미국 | 갈바나이즈드 양키스 | 1862년 ~ 1866년 |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연합 포로 중 연방에 충성 맹세한 자들로 구성.[17] |
3. 1. 독일
나치 독일에는 여러 종류의 징벌 부대가 존재했다.1935년 5월, 독일 국방군은 독일 징병법에 따라 군기 문제를 일으키지만 복무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병사를 징벌 부대로 보내는 정책을 시행했다. 범죄자들 또한 감형이나 사형 집행 유예를 조건으로 징벌 부대에 징집되었다.[8] 이 부대들은 일반적으로 '''슈트라프바탈리온'''(Strafbattalion|슈트라프바탈리온de)으로 불렸으며, 야전 헌병의 감독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에는 국방군 내에 9개의 ''슈트라프바탈리온''이 존재했으며, 주로 최전선 지원 임무를 맡았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퇴각 명령 위반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병사들이 자동으로 징벌 부대에 재배치되도록 군사 정책이 변경되면서 ''슈트라프바탈리온''의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슈트라프바탈리온''은 범죄자, 정치범, 군기 문란 병사 등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되어 부대 결속력 유지를 위해 가혹한 조치가 동원되기도 했다. 이들은 종종 최전선에서 극도로 위험한 임무, 사실상의 자살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전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도록 강요받았다.[9]
독일 육군에는 군기 위반자에 대한 전선 집행유예(
무장친위대의 대표적인 징벌 부대로는 파르티잔 토벌 임무를 주로 수행했던 '''딜레반거 여단'''이 악명 높았다. 이 부대는 본래 체포된 밀렵꾼들로 창설되었으나, 점차 일반 범죄자 출신 지원병과 군기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들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소련 영토 출신의 러시아인과 민족 독일인도 다수 포함되어 외국인 비율이 절반에 달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강제 수용소의 정치범까지 동원되었다. 병력의 절반 이상은 육해공군 출신, 10~15%는 무장친위대 출신의 집행유예자들이었다. 하사관 대부분은 밀렵꾼 출신이었고, 장교는 징벌로 강등되어 전속된 자들이었다. 극도로 열악한 군기[50]와 더불어, 민간인과 전쟁 포로에 대한 극심한 잔혹 행위로 악명이 높아 전쟁 범죄를 빈번히 저질렀다.[10][11][12] 이들의 만행은 국방군은 물론 같은 친위대 내부에서조차 "친위대의 수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으며, 친위대 법무 본부는 사단장 오스카르 딜레반거 친위대 상급대령을 비롯한 사단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군법 회의에 회부하려 했으나, 딜레반거의 후원자였던 고틀로프 베르거의 비호로 번번이 무산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부 전선 점령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아인자츠그루펜(특수 작전 집단) 역시 징벌 부대의 성격을 일부 띠고 있었다. 무장친위대에서 아인자츠그루펜으로의 배속은 징벌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경미한 군기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대원에게 아인자츠그루펜 지원을 조건으로 처벌을 면제해주는 경우가 있었으며, 일부는 처벌 회피와 지위 유지를 위해 이에 응했다. 전속 전 교육 과정에서 아인자츠그루펜의 실체를 알게 된 후 대량 학살 가담을 거부하면 강제 명령으로 전환되었고, 이마저 거부하면 총살형에 처해졌다.[51]
독일군에 협력한 구 소련군 전쟁 포로로 구성된 부대 내에도 징벌 부대가 존재했으며, 이들은 이탈리아 전선 등지에서 전투에 투입되었다.[52]
3. 2. 미국
미국군은 역사적으로 죄수부대를 운용했으며 죄수의 입대를 허용한 사례가 있다.미국 남북 전쟁 중 연방은 1862년부터 약 1866년까지 남부 연합 전쟁 포로 중 연방에 충성을 맹세한 이들을 Galvanized Yankees라는 이름으로 징집하여 부대를 운용했다.[17] Galvanized Yankees는 미국 남부 연합군 및 미국 남부 연합 해군 출신 군인 및 포로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체포된 후 연방에 충성을 맹세하고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연방군과 연방 해군에 입대한 이들을 가리킨다. 연방군에 남부 연합군 포로를 징집하는 관행은 1862년경 시작되어 1866년까지 지속되었다. 유사한 관행이 미국 남부 연합에서도 있었으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죄수들이 전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1942년에는 여러 죄수들이 군 입대를 자원했으며 일부는 입대 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군대 내에서 공식적인 죄수부대가 편성되었다는 기록은 없다.[17]
20세기까지 미국의 법원은 피고에게 감옥 수감 대신 군 입대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관행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이어졌다. 1987년 영화 ''풀 메탈 자켓''에 출연하여 유명해진 미 해병대 상사이자 훈련 교관인 R. 리 어메이는 1961년 17세의 비행 청소년 시절, 판사의 제안으로 입대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18] 하지만 죄수들이 별도의 징벌 부대에 배치되지는 않았으며, 입대 허용 여부는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달려 있었고 군대가 해당 피고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19][20]
현재 미국 군대의 모든 부대는 유죄 판결 및 투옥의 대안으로 죄수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다(미 해군은 명시적 금지 조항은 없으나 내부 규정으로 강력히 권장하지 않음).[20] 또한 별도의 죄수부대를 운용하지 않는다. 다만, 중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도 적절한 중범죄 면제 절차를 통과하면 입대가 허용될 수 있다.[21][22] 2018년 미군 모병관은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성인으로서 비폭력 중범죄 1건"까지는 허용될 수 있으며, "가장 훌륭하고 유능한 후보자 중 일부는 면제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1]
2021년 플로리다주 의회에서는 처음 범죄를 저지른 25세 이하 청소년에게 투옥 대신 입대 기회를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법안이 제안되었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19][23]
3. 3. 소련
소련의 대표적인 죄수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붉은 군대와 내무인민위원회(NKVD)가 운용한 슈트라프바트( штрафбат|슈트라프바트ru)이다. 이 부대는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 정치범, 기타 소모품으로 간주된 인원들로 구성되어 동부 전선에서 싸웠다.[53] 소련 당국은 소련의 붕괴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형벌 부대의 존재를 부인했지만[53], 실제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형벌 부대가 존재했으며, 그 제도화는 1940년경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 당시에도 이미 형벌 부대가 존재했다는 증언이 있다.[54] 1942년 5월까지 각 전선에는 통상 929명으로 구성된 형벌 대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 시기에는 공격뿐 아니라 방어 임무에도 투입되었다.[55][56]1942년 6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시작되고 전황이 악화되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같은 해 7월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마라!"( Ни шагу назад!|니 샤구 나자트!ru)라는 구호로 유명한 제227호 명령을 발령했다. 이 명령은 허가 없는 후퇴에 대해 즉결 처형을 포함한 가혹한 처벌을 규정했으며, 새로운 형태의 형벌 대대( штрафбат, штрафной батальон|슈트라프바트, 시트라프노이 바탈리온ru)와 형벌 중대 창설을 명시했다.[57] 공식적으로는 나치 독일의 집행 유예 대대 성공 사례를 참고했다고 설명되었지만, 실제로는 기존 소련군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58] 새로운 형벌 대대는 계급을 박탈당한 장교들로 구성되었고 초기 정원은 800명이었으며, 형벌 중대는 부사관과 병을 대상으로 각각 150명에서 200명으로 편성되었다.[55][59] 기존의 형벌 부대들은 새로운 체계로 통합되었고, 운용 방식도 변경되어 오직 공격 임무에만 투입되었으며, 방어 상황에서도 역습 부대로 활용되었다.[55] NKVD 기록에 따르면,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는 1942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 사이에 2,961명의 장병이 형벌 부대로 보내졌다.[58] 새로운 방침에 따른 첫 형벌 대대는 1942년 8월 22일 스탈린그라드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강등된 929명의 장병 중 3일간의 전투 후 생존자는 300명에 불과했다.
1942년 11월 26일, 최고 사령관 대리 게오르기 주코프에 의해 소련의 형벌 부대는 "군 형벌 부대"( Положение о штрафных батальонах действующей армии|폴로제니예 오 시트라프니흐 바탈료나흐 데이스뜨부유셰이 아르미ru)로 정식 표준화되었다. 전직 장교로 구성된 형벌 대대의 정원은 360명으로 정해졌고[55], 소련군 중·상급 장교나 정치 장교가 지휘했다. 형벌 중대는 하사관이 지휘했다. 대부분은 보병 부대였지만, 형벌 지뢰 처리 부대나 공군 형벌 비행대대도 존재했다.
형벌 부대로 보내지는 대상은 다음과 같았다.
- 제227호 명령 위반자 또는 러시아 공화국 형법 제58조(반역죄 등) 유죄 판결자. 특히 겁이 많은 행동을 했다고 간주된 장교나 하사관은 병으로 강등된 후 형벌 부대로 보내졌다.
- 포로가 되었던 소련군 병사. 포로가 되는 행위 자체가 반역으로 간주되어, 구출되거나 탈출에 성공해도 "전(前) 군인"으로 취급받았다. 이들은 소련 형법 제193조(탈주 및 임무 포기)나 러시아 공화국 형법 제58조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형벌 부대로 보내졌다. 1943년 3월 이후에는 중죄 혐의가 없으면 신속히 형벌 부대로 보내도록 명확화되었고, 1944년 11월부터는 심문 중인 모든 전직 장교 포로도 형벌 부대로 보내졌다. 전후 생환한 포로 중 상당수는 처형되기도 했다.
- 적군 점령지에 남겨졌던 병사("적군에 포위된 자"). 포로가 되지 않았더라도 파르티잔 활동을 하거나 적진을 돌파해 생환한 병사들도 포로와 유사하게 취급받았다. 초기에는 후방 건설 부대에 보내져 라게리와 비슷한 처우를 받았으나, 이후에는 형벌 부대로 보내지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 라게리 수용자. 다양한 범죄로 수용소에 있던 전직 군인들도 형벌 부대로 보내졌다.
1942년부터 독소전이 끝나는 1945년 5월까지 약 600개의 형벌 부대가 편성되었으며[58], 총 427,910명이 형벌 부대에 보내졌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군 전체 종군자 약 3,450만 명의 일부에 해당한다.[66]
형벌 보병 부대의 배속 기간은 통상 1개월에서 3개월이었으며, 최장 3개월은 주로 사형 판결을 받은 자에게 적용되었다. 부상을 입어 "피로 죄를 씻었"거나 영웅적인 전과를 세우면 감형 또는 원대 복귀가 인정되었지만[67], 표면적인 명예 회복 후에도 반체제 인물로 의심받는 경우가 많았다. 형벌 부대원 중에는 전차 외부에 탑승하여 싸우는 탱크 데산트 임무에 투입된 경우도 많았다.
공군의 형벌 비행대대는 부상 자체가 전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전상으로 인한 감형이 어려웠다. 조종사들은 보통 전사할 때까지 계속 출격 명령을 받았고 비행 근무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전직 조종사 아르티옴 아피노게노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형벌 비행대대가 가장 위험한 임무만 맡았으며, 임무를 수행해도 기록에 남지 않았고 오직 부상만이 해방의 길이었으나 공중전에서의 부상은 치명상인 경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53] 후방 사수 등은 전사율이 매우 높아, 규정상 10회 생환 후 해방되어야 했지만 그 전에 지뢰 처리 부대로 전속되는 경우가 잦았다.[55]
지뢰 처리 부대의 평균 수명은 형벌 보병보다도 짧았다.[55] 이들은 소모품으로 취급되어 적의 방어가 견고한 지점을 시험하거나, 지뢰밭을 맨몸으로 통과하는 "인간 지뢰 제거" 임무에 투입되었다.[68] 또한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위력 정찰이나 미끼 부대로도 사용되었다.[57]
형벌 부대가 전투에 나설 때는 후방에 NKVD나 스메르시 소속 독전대가 배치되었다. 독전대는 형벌 부대원이 후퇴하려 하면 즉시 사살하며 진격을 강요했다.[57] 이 때문에 형벌 부대원들은 적의 공격이나 지뢰로 죽을 때까지 전진해야 했으며, 살아남아 목표를 달성해도 다시 다음 공격에 투입되었다.[55] 형벌 부대의 지휘관이나 감시 병력 등 관리 요원으로는 정규 장병이 배치되었으며, 이들은 위험한 임무의 대가로 높은 급여와 특별 은급을 받았다.
전쟁 기간 동안 소련의 형벌 부대는 널리 활용되었으며, 특히 1944년까지 소련군의 주요 공세에는 형벌 부대가 선봉에 서서 대부분 전멸하는 경우가 많았다.[57] 형벌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살아남아 명예를 회복하고 승진까지 한 드문 사례로는 블라디미르 카르포프가 있다. 그는 억울한 누명으로 형벌 중대에 보내졌으나 최종적으로 근위대 대령이 되었고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53]
3. 4. 영국
왕립 아프리카 군단은 1800년부터 1821년까지 존재했던 영국의 죄수 부대 및 그 파생 부대이다.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은 병력 충원을 위해 죄수를 동원하기도 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형 대신 입대할 기회를 주었으며, 보스탈과 같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군 복무를 조건으로 조기 석방되었다. 당시 영국 정부 관리들은 공식적으로는 범죄자들이 군 복무에 부적합하며 입대에 필요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필요성과 전시 교도소 운영 비용 절감을 위해 죄수들을 모집했으며, 특히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을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
3. 5. 프랑스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부터 죄수들로 구성된 징벌 부대를 운용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전쟁 후반기 인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징벌 부대 활용이 두드러졌다. 1811년 창설된 '레지망 페날 드 릴 드 레'(Régiment pénal de l'Île de Réfra, 레 섬의 형벌 연대)는 범죄자와 사회 부적응자들로 구성되어 나폴레옹 전쟁 후반에 투입되었으며, 레 섬에 주둔하다가 1814년 첫 번째 왕정복고 시기에 해산되었다.[3]나폴레옹 시대 이후 유럽 본토에서는 징벌 부대가 점차 사라졌지만,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에서 이 제도를 유지하며 주요 운용 국가가 되었다. 1832년 루이 필리프 1세의 명령으로 창설된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Afriquefra, 약칭 ''Bats d'Af'')는 프랑스 식민 제국 확장을 위한 대표적인 부대였다.[4] 이 부대는 군 복무를 마쳐야 하는 전과자나 군대 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군인들로 구성되었으며,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주둔하며 알제리 정복과 크림 전쟁 등 여러 전쟁에 투입되었다.[5] 이 부대는 1972년에 해산되었다. 프랑스는 또한 알제리 남부 아인 세프라(Aïn-Sefra)에 주둔했던 '콩파니 덱스클뤼'(compagnies d'exclusfra, 배제된 중대)라는 부대도 운용했다.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와 달리 이 부대는 5년 이상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아 무기 소지 자격이 없다고 판단된 죄수들로만 구성된 명백한 징벌 부대였다.[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프랑스 육군은 죄수나 협력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운용했다. 독일 국방군이나 무장친위대 출신 독일인 전쟁 포로, 그리고 민병대나 제33SS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등에 소속되었던 프랑스인 대독 협력자들을 모아 3개의 바타이용 당판테리 레제르 도트르메르(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Outre-Mer, 해외 경보병 대대)를 편성했다. 이 부대는 1948년 프랑스 식민지 복무를 위해 창설되었으나, 소수의 인원만 모집되었고 프랑스 공산당의 반대 운동에 부딪혀 1949년에 해산되었다. 또한, 프랑스 외인부대 내에도 징계 부대가 존재했다. '극동 외국인 연대 징계 중대'(Compagnie disciplinaire en Extrême-Orientfra)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외인부대원들로 구성되어 1946년 창설되었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배치되어 활동했다. 이 부대는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해체된 후인 1954년 8월에 해산되었다.
부대명 | 창설 | 해산 | 주요 특징 및 활동 |
---|---|---|---|
레지망 페날 드 릴 드 레 Régiment pénal de l'Île de Réfra | 1811년 | 1814년 | 나폴레옹 전쟁 후반기 참전, 범죄자 및 사회 부적응자로 구성. 레 섬 주둔.[3] |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 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Afriquefra, 'Bats dAf'' | 1832년 | 1972년 |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서 복무. 전과자 및 군 기율 위반자로 구성.[4] 알제리 정복, 크림 전쟁 등 참전.[5] |
콩파니 덱스클뤼 Compagnies d'exclusfra | 19세기 | ? | 중범죄자로 구성된 명백한 징벌 부대. 무기 소지 불가. 알제리 남부 주둔.[6] |
바타이용 당판테리 레제르 도트르메르 Bataillons dInfanterie Légère dOutre-Merfra | 1948년 | 1949년 |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 국방군/무장친위대 포로 및 프랑스 콜라보라토르로 구성. 프랑스 식민지 복무 목적이었으나 소수만 모집 후 해산. |
극동 외국인 연대 징계 중대 Compagnie disciplinaire en Extrême-Orientfra | 1946년 | 1954년 |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 징계 중대. 중범죄 외인부대원으로 구성.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배치. |
3. 6. 대한민국
684부대는 대한민국 공군 소속의 흑색 작전 부대로, 주로 경범죄자들로 구성되었다.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창설되었는데, 이 사건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소속 124군 부대가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려 했던 미수 사건이었다. 684부대는 북한의 김일성 암살을 목표로 실미도에서 극도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그러나 1971년, 남북 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변화하면서 암살 작전은 취소되었고 부대는 해체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부대원들은 처우 개선과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섬을 탈출하여 버스를 탈취하고 서울로 향했으나, 군경과의 총격전 끝에 대부분 사망하거나 체포 후 사형 선고를 받았다.
3. 7. 러시아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소련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붉은 군대는 징벌 군부대, 즉 ''슈트라프바트''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죄 판결을 받은 병사, 정치범, 소모 가능하다고 여겨진 인원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독일의 초기 침공 당시 명령 없이 후퇴한 많은 붉은 군대 병사들이 초기의 징벌 부대로 재편성되었다. ''슈트라프바트''의 규모는 요제프 스탈린이 1942년 7월 발표한 제227호 명령 (디렉티바 스타브키 V.G.K. No. 227)에 의해 크게 증가했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Ни шагу назад!|니 샤구 나자트!rus)라는 구호로 유명한 이 명령은 독일과의 전쟁 초기 공황 상태에서의 후퇴 이후 군 기강을 재확립하려는 절박한 조치였으며, 허가 없는 후퇴 시 즉결 처형을 포함한 가혹한 처벌을 규정했다.[14][15]소련의 징벌 부대에 보내진 인원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유형 | 설명 |
---|---|
소련 국방 인민 위원령 제227호 위반자 또는 형법 제58조 위반자 | 반역죄나 기타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 제227호 명령 위반 외에도 겁을 먹은 행동을 한 장교나 하사관은 계급이 강등된 후 징벌 부대로 보내졌다. |
포로가 되었던 소련군 병사 | 소련군 병사가 포로가 되는 것은 반역 행위로 간주되어, 구출되거나 탈출에 성공해도 자발적으로 항복한 자들과 함께 "전(前) 군인"으로 취급되었다. 이들은 형법 제193조(탈주 및 임무 포기)나 제58조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징벌 부대로 보내졌다. 1943년 3월 지령 제97호는 중죄 혐의가 없는 "전 군인"을 신속히 징벌 부대로 보내도록 명시했다. 소련군의 반격으로 포로 구출이 늘었지만, 이들은 자국의 수용소나 징벌 부대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았다. 1944년 11월에는 특별 수용소에서 심문 중이던 모든 전직 장교도 징벌 대대로 보내졌다. 전후 생환한 포로 중 일부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
적군 점령지에 남겨진 자 ("적군에 포위된 자") | 포로가 되지 않았더라도, 파르티잔 활동을 하거나 적진을 돌파해 생환한 병사들도 포로와 유사하게 냉대받았다. 초기에는 후방 건설 부대에서 라게리와 비슷한 처우를 받았으나, 이후에는 징벌 부대로 보내지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
라게리 수용자 | 민간인뿐 아니라 다양한 범죄로 수용소에 있던 전직 병사들도 포함되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러시아는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죄수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6개월 복무와 20만러시아 루블의 보수를 조건으로 죄수들을 석방하여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69]。 이 과정에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러시아 연방 형집행청(FSIN), 그리고 바그너 그룹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70]。
인권 단체 굴라그 넷은 2022년 7월 2일부터 관련 제보를 공개하기 시작했으며[71], iStories 역시 죄수 가족들의 증언을 보도했다[72]。 같은 해 8월에는 메디아조나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직접 러시아 각지의 교도소를 방문하여 죄수들을 모집했다고 보도했다[73][74]。 프리고진이 교도소 내에서 연설하며 모집하는 영상이 알렉세이 나발니 측에 의해 유출되어 9월 14일에 공개되기도 했다[75][76]。
2022년 8월 7일, 영화감독이자 푸틴 대통령 지지자인 니키타 미할코프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БесогонTV'에 올린 영상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죄수 콘스탄틴 투리노프를 영웅으로 소개하며 러시아 당국의 죄수 동원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77][78][79]。
죄수 동원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보고되었다. 메디아조나는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죄수가 교도소 징벌방에 수감되는 사례를 보도했는데, 이는 정보 유출을 막거나 바그너 그룹과의 계약을 강요하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또한, 우크라이나로 보내진 죄수의 사망 통지가 가족에게 갑자기 전달되거나, 부상을 입어도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에서만 제한적인 치료를 받고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인권 옹호자 올가 로마노바가 대표로 있는 '로시안 시팅'(Russia Behind Bars) 재단에 의해 제기되었다[80][81]。
2022년 9월 30일에는 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쿠루르타이 주의회 의원이 러시아 하원에 죄수의 군사 작전 참여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82]。
이러한 배경 속에서 러시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다음과 같은 징벌 부대를 창설했다.
3. 8. 우크라이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국가 방위를 위해 수감자 동원을 고려하게 되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인 수감자를 석방하여 전선에 투입할 의사를 밝혔다.[47]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은 이전 전투 경험이 있는 죄수의 모집을 허용했다.[24]이후 우크라이나의 최고 라다는 죄수를 군대로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록 초안 법안 11079호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 통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부대들이 창설되었다.
4. 대중문화 속 징벌 부대
- ''실미도'' – 2003년 한국 영화로, 684 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되었다. 영화는 684부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실제 사건의 많은 세부 사항이 기밀로 남아 있어 영화의 일부 내용은 허구적으로 각색되었다.
- ''특공대''(The Dirty Dozen) – 1967년 미국 영화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자살 임무를 위해 훈련된 군사 죄수들로 구성된 가상의 미국 육군 부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버트 알드리치가 감독했으며, 상업적, 비평적으로 성공하여 1980년대에 여러 편의 텔레비전 영화 속편이 제작되었다: ''특공대: 넥스트 미션(The Dirty Dozen: Next Mission)'', ''특공대: 치명적인 임무(The Dirty Dozen: The Deadly Mission)'', ''특공대: 치명적인 임무(The Dirty Dozen: The Fatal Mission)''.
-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 – DC 코믹스 세계관 내에서 징벌 부대 개념을 판타지적으로 변용한 사례이다.
- ''에이스 컴뱃 7: 스카이즈 언노운''(Ace Combat 7: Skies Unknown) – 2019년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가상의 오시아 연방 공군 제444 항공 기지 비행대, 일명 "스페어 비행대"라는 죄수 비행대가 등장한다. 이 부대는 사기꾼, 정치범 등 오시아 공군 내 문제 인물들을 모아 정규군 대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며, 이야기 초반부터 일정 기간 동안 주인공이 소속된다. 적의 전투 드론 방어를 시험하는 데 사용되며, 지휘관이자 공중 조기 경보 및 통제 운용 요원 역할을 하는 교도소장의 감독을 받는다.
- ''스틸 디비전 2''(Steel Division II) – 2019년 전략 게임으로, 플레이 가능한 유닛으로 슈트라프니키(Shtrafniki)가 등장한다.
- 블라디미르 카르포프(Vladimir Karpov) "The Warlord" - 카르포프의 자전적 이야기.[53]
- ''죄수부대'' (원제: Штрафбат|슈트라프바트ru) – 2004년 발표된 니콜라이 도스탈(Nikolai Dostal)의 11부작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 Gav Thorpe, "The Last Chancers" – Warhammer 40,000 소설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미래의 징벌 부대를 무대로 한 SF 소설이다.
-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 미군의 가공의 징벌 부대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부대를 주인공으로 한 비디오 게임이다.
- ''캄프그루페 Zbv'' –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을 무대로 한 전쟁 극화로, 전차를 장비한 독일 육군 징벌 대대가 등장한다.
- ''RAISE'' –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 육군 항공대를 무대로 한 전쟁 만화로, 주인공들은 군사 재판의 판결(총살형) 집행을 피하는 대가로, 독일에 대한 전략 폭격 임무를 전사하거나 종전할 때까지 계속하도록 강요받는다.
- 전장의 발큐리아 3 – 가상의 유럽 소국 갈리아 공국을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정규군 소속의 징벌 부대 '네임리스'를 주인공으로 한다.
-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 장갑기병 보톰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애니메이션 작품. 주인공 메로우링크 알리티가 소속되었던 장갑기병 소대는, 대장이 무모한 작전 수행에 항의한 결과, 부대원 전원이 맨몸으로 전투를 강요받는 기갑엽병으로 강등되어 사실상의 징벌 부대가 된다.
- 조이드 – 제2차 대륙간 전쟁 시기, 헬릭 공화국의 섬광 사단이 철룡기병단 사령관 볼프 무로아 대령(후의 네오 제네바스 제국 황제)을 놓친 책임을 물어 부대 전체가 징벌 부대로 강등되었다는 설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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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 сеть попало видео вербовки Пригожиным заключённых в колони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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