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채널 제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채널 제도는 영국 해협에 위치한 저지 섬과 건지 섬을 포함한 여러 섬들로 구성된 자치 관할구이다. 영국 왕실 속령으로, 영국 연방의 일부는 아니며, 노르망디 공국에 속해 잉글랜드 왕이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통치해 왔다. 현재는 저지 관할구와 건지 관할구로 나뉘어 자체적인 입법부, 사법 제도, 조세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국제 관계와 방위만을 담당한다. 채널 제도는 관광, 금융 서비스, 농업 등을 경제 기반으로 하며, 자체 통화와 우표를 사용한다. 언어는 영어와 노르만어 방언이 사용되며, 기독교가 주된 종교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브리튼 제도 - 그레이트브리튼섬
    그레이트브리튼섬은 유럽 북서부 해안에 위치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포함하는 섬으로, '알비온', '브리타니아' 등의 이름으로 불리다 현재는 정치적 의미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약칭 'GB'로도 사용되며,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역사를 지니고 다양한 동식물상과 주요 도시들을 포함한다.
  • 브리튼 제도 - 아일랜드섬
    아일랜드섬은 북서유럽에 위치하며 아일랜드 신화 속 여신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빙하기 지형 형성, 켈트족 이주, 바이킹 침략, 캄브로-노르만족 침공, 영국과의 통합 및 분단, 그리고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로 나뉜 복잡한 역사를 지닌 섬이다.
  • 채널 제도 - 세인트헬리어
    세인트헬리어는 영국 해협 저지섬의 12개 교구 중 하나이자 섬의 행정 및 사법 중심지이며, 6세기 성인 헬리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저지 전투 무대이자 다양한 문화 시설과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채널 제도 - 세인트피터포트
    세인트피터포트는 건지 섬의 수도로, 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허름 섬, 제투 섬 등과 인접하고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띠며 다양한 공원, 역사적 군사 시설, 스포츠 클럽, 미디어 시설을 갖추고 여러 저명한 인물과 관련있는 도시이다.
  • 건지섬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건지 섬을 배경으로 작가 줄리엣 애쉬튼이 특이한 이름의 독서 모임과 교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전쟁의 상흔과 사랑, 희망, 문학의 힘을 다루며 2018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호평을 받았다.
  • 건지섬 - 건지섬 파운드
    건지섬 파운드는 1921년 파운드 스털링과 동일한 가치로 채택된 건지섬의 통화로, 주화와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들어가 있으며 건지 관할구에서만 법정 통화로 인정된다.
채널 제도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공식 명칭채널 제도
현지 명칭프랑스어: Îles Anglo-Normandes 또는 îles de la Manche 노르만어: Îles d'la Manche
위치북서유럽
수역영국 해협
총 섬 수7개의 유인도
주요 섬올더니 섬, 건지 섬, 저지 섬, 사크 섬
면적198 km²
최고점레 플라통
국가건지 섬 관할구
수도 및 최대 도시세인트 피터 포트, 건지 섬
면적 (건지)78 km²
국가 1저지 섬 관할구
수도 및 최대 도시 (저지)세인트 헬리어, 저지 섬
면적 (저지)118 km²
거주민채널 제도 주민, 채널리언
인구167,840명 (2023년)
인구 밀도844.6 명/km²
시간대그리니치 평균시 (±0 UTC)
서머 타임영국 서머 타임 (+1)
추가 정보인터넷 TLD = GG 및 JE
정치
정치 체제영국 왕실 속령
국가 원수찰스 3세
행정 수도세인트 헬리어 (저지) 세인트 피터 포트 (건지)
행정 구역
하위 구역 종류대리 관할구
하위 구역저지 섬 건지 섬
지리
2018년 채널 제도 위성 사진
2018년 채널 제도 위성 사진
채널 제도 위치
채널 제도 위치
좌표북위 49° 25′ 48″ 서경 02° 21′ 00″
인구 통계
인구 (2015년)163,858명
기타 정보
ISO 3166-2ISO 3166-2:JE (저지) ISO 3166-2:GG (건지)
경제
금융채널 제도 금융 옴부즈만

2. 지리

채널 제도와 인접한 프랑스 해안


채널 제도는 크게 저지 섬과 건지 섬으로 나뉜다. 이 두 섬은 전체 인구의 99%, 면적의 92%를 차지한다.[1]

채널 제도의 섬들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저지 관할구
  • * 저지 섬
  • * 에크레후 제도
  • * 라 모트 섬
  • * 맹키에 제도
  • * 레크 암초
  • * 디루이에 암초
  • 건지 관할구
  • * 건지 섬: 10개의 교구로 구성
  • ** 리후 섬
  • ** 우메츠섬
  • ** 험 섬: 세인트피터포트 교구에 속하며, 험 아일랜드 리미티드가 임대

제투 섬
크레비숑섬
브레옹 타워

  • * 올더니 섬: 고도의 자치권 보유
  • ** 오르탁섬
  • ** 버후 섬
  • ** 카스케츠섬
  • * 사크 섬: 고도의 자치권 보유
  • ** 브레쿠 섬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섬 주변에는 풍부한 조간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부르후, 에크레호, 민키에 등 일부 섬은 람사르 협약에 따라 지정되었다.[1]

섬 주변의 해역은 다음과 같다.[1]

  • 더 스윙 (올더니와 부르후 사이)
  • 리틀 스윙 (부르후와 레 낸넬 사이)
  • 라 데루트 (저지와 사크, 저지와 코탕탱 사이)
  • 르 라즈 블랑샤르, 또는 올더니 해협 (올더니와 코탕탱 사이)
  • 그레이트 러셀 (사크, 제투, 에름 사이)
  • 리틀 러셀 (건지, 에름, 제투 사이)
  • 수아슈후에 (르 리드공과 레탁 사이, 저지)
  • 르 구리오 (사크와 브레크후 사이)
  • 라 페르세 (에름과 제투 사이)


채널 제도의 최고 지점은 저지 섬의 레 플라통으로 143m이다. 최저 지점은 영국 해협(해수면)이다.

2. 1. 섬 목록

사크 섬의 항공 사진


건지 섬의 항공 사진


저지 섬건지 섬
영구 거주 섬, 인구 및 면적
무인도


2. 2. 지명 유래

대규모 섬들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ey' 접미사를 사용하는 반면, 작은 섬들의 이름은 'hou' 접미사를 사용한다. 이는 고대 노르드어의 'ey'(섬)와 'holmr'(작은 섬)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2. 3. 쇼지 제도

저지섬 남쪽에 위치한 쇼지 제도(The Chausey Islands)는 일반적으로 채널 제도의 지리적 정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프랑스 관할 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영어로 '프랑스령 채널 제도'(French Channel Islands)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노르망디 공국과 연관되어 있었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 영국 제도나 채널 제도의 일부가 아닌 대륙 노르망디와 함께 프랑스 영토의 일부이다. 쇼지 제도는 망슈(Manche)의 그랑빌에 속해 있다. 프랑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채널 제도 주민들은 다른 섬에서 직접 연결되는 교통편이 없어 개인 보트나 전세 보트를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1]

공식적인 저지 표준 프랑스어(Jersey Legal French)에서 채널 제도는 'Îles de la Manche'라고 불리며, 프랑스에서는 영국령 '채널 제도'를 다른 채널 해협의 섬들과 대조하여 'Îles Anglo-normandes'(앵글로-노르만 제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쇼지 제도는 'Île normande'(앵글로-노르만 제도'와 반대)로 불린다. 'Îles Normandes'와 'Archipel Normand'는 역사적으로 채널 제도 프랑스어에서 섬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1]

2. 4. 해역

매우 큰 조수 간만의 차는 섬 주변에 환경적으로 풍부한 조간대를 제공하며, 부르후, 에크레호, 민키에와 같은 일부 섬은 람사르 협약에 따라 지정되었다.[1]

섬 주변의 해역은 다음과 같다.[1]

  • 더 스윙 (올더니와 부르후 사이)
  • 리틀 스윙 (부르후와 레 낸넬 사이)
  • 라 데루트 (저지와 사크, 저지와 코탕탱 사이)
  • 르 라즈 블랑샤르, 또는 올더니 해협 (올더니와 코탕탱 사이)
  • 그레이트 러셀 (사크, 제투, 에름 사이)
  • 리틀 러셀 (건지, 에름, 제투 사이)
  • 수아슈후에 (르 리드공과 레탁 사이, 저지)
  • 르 구리오 (사크와 브레크후 사이)
  • 라 페르세 (에름과 제투 사이)

2. 5. 최고점

채널 제도의 최고 지점은 저지 섬의 레 플라통으로 143m이다. 최저 지점은 영국 해협(해수면)이다.

3. 기후

채널 제도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서안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5]

채널 제도의 기후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평균 최저 기온 (°C)32578111414121197
평균 최고 기온 (°C)76814142021201714139
평균 강수량 (mm)18612051926643337333117184128


4. 역사

채널 제도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로, 영국 국왕이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다스려 왔다.[62] 역사적으로 노르만어 방언이 사용되었으나, 백년 전쟁 이후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하여 영국령 노르망디의 일부가 되었다.

1259년 파리 조약으로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내 작위를 포기했음에도, 채널 제도는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영토로 간주되어 왔다. 현재는 자체 입법부, 사법 제도, 조세 제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국제 관계와 방위만 책임진다.

채널 제도에 인간이 거주한 초기 증거는 2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석기 시대에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분리되었다.[6] 돌멘과 라 우그 비[7] 등의 고고학 유적은 조직적인 인구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철기 시대에는 아모리카와의 무역이 있었고, 로마 시대에는 관리와 상인들이 방문했다.[8] 6세기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방문했고, 쿠탕스 교구에 포함되었다. 5~6세기에는 켈트 브리튼족이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이킹의 침략과 함께 노르드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933년 채널 제도는 노르망디 공국에 편입되었고,[10]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잉글랜드 왕의 영지가 되었다. 1204년 잉글랜드 왕과 노르망디 공작이 분리된 후에도 잉글랜드 왕의 영지로 간주되었으며, 1254년 잉글랜드 왕실의 개인 영지가 되었다.

백년 전쟁 동안 프랑스의 침략을 받았으나, 잉글랜드 왕실에 대한 충성을 유지했다.[11] 장미 전쟁 이후 1483년 교황 칙서에 의해 중립 특권을 얻어 잉글랜드와 프랑스 양국과 무역을 할 수 있었으나, 1689년 폐지되었다. 1569년 섬은 공식적으로 윈체스터 교구로 편입되었다. 16세기 칼레 상실 이후, 채널 제도는 잉글랜드의 마지막 프랑스 영토로 남았다.

삼국 전쟁 동안 저지는 왕당파를, 건지는 의회파를 지지했다. 섬들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상업적 이익을 얻었으며, 뉴펀들랜드 섬 어업에 관여했다. 찰스 2세는 조지 카터렛에게 뉴저지 주를 하사하기도 했다.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혁명 망명자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세인트피터포트 항만이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채널 제도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군에 점령되었다.[20] 많은 주민들이 영국 본토로 피난했고, 일부는 독일 수용소로 보내졌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독일군은 보급을 받지 못했고, 섬 주민들은 어려운 생활을 했다. 적십자 국제 위원회의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1945년 5월 9일 해방되었다.

전후 재건을 통해 섬들의 경제가 변화했고, 관광업이 발전했다. 역외 금융 수익을 바탕으로 사회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농업과 관광업의 수익성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27]

4. 1. 노르망디 공국 시대

933년, 채널 제도는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 라울에 의해 윌리엄 1세 롱소드에게 양도되어 노르망디 공국에 합병되었다.[10]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2세는 잉글랜드를 침략하여 정복하고 윌리엄 1세로 즉위했으며, 정복왕 윌리엄으로도 알려져 있다. 1204년부터 1214년까지 존 왕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앙주 제국을 프랑스의 필리프 2세에게 빼앗겼지만, 채널 제도의 지배권은 유지했다. 1259년, 그의 계승자 헨리 3세는 파리 조약을 통해 노르망디 공국에 대한 권리와 칭호를 공식적으로 포기했지만, 프랑스의 봉건적 신하이자 프랑스의 동등한 지위로서 채널 제도를 유지했다. 그 이후로 채널 제도는 두 개의 분리된 치외법권으로 통치되었으며, 잉글랜드 왕국이나 그 후계 왕국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또는 연합 왕국에 흡수되지 않았다. 백년 전쟁 동안, 채널 제도는 잉글랜드 국왕의 프랑스 왕위 주장을 인정하는 프랑스 영토의 일부였다.

1338년, 채널 제도는 프랑스에 의해 침략당했고, 1345년까지 일부 영토를 점령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1341년 7월 저지, 건지, 사크, 올더니에 헌장을 부여하여 잉글랜드 왕실에 대한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습과 법률을 확인했다.[11] 1372년 프랑스 왕실의 용병 지도자인 자유 용병대의 오와인 로고흐는 저지와 건지를 공격했고, 1373년 베르트랑 뒤 게클랭은 몽 오르귀유를 포위했다.[12] 1378년 젊은 국왕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여한 헌장 권리를 재확인했고, 1394년에는 왕실에 대한 큰 충성심을 보인 것에 대한 두 번째 헌장을 통해 잉글랜드 통행세, 관세 및 의무에서 영원히 면제했다.[11] 저지는 장미 전쟁 동안 랭커스터 왕가를 돕기 위해 1461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1468년 요크 왕가에 의해 탈환되었다. 1483년 교황 칙서는 전쟁 시 섬들이 중립을 유지하도록 명령했다. 이러한 중립 특권으로 섬 주민들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모두와 무역을 할 수 있었고, 명예 혁명 이후 추밀원령에 의해 폐지된 1689년까지 존중되었다.

쿠탕스 교구에서 섬을 이관하려는 다양한 시도(낭트(1400년), 솔즈베리(1496년), 윈체스터(1499년)로)는 1569년 추밀원령이 섬을 공식적으로 윈체스터 교구로 가져올 때까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윈체스터 주교의 통제는 섬들이 압도적으로 칼뱅주의로 전환되었고 주교 제도가 1620년 저지, 1663년 건지에서 부활될 때까지 효과가 없었다.[13]

1558년 칼레를 잃은 후, 채널 제도는 프랑스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잉글랜드 영토였으며,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 국왕으로서 통치하는 유일한 프랑스 영토였다. 이 상황은 1801년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 왕위에 대한 칭호와 주장을 포기하고 채널 제도를 그레이트브리튼이나 프랑스의 주권이 아닌, 직접적인 영국 왕실의 종속령으로 확정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6세기의 사크는 1560년대 저지에서 이주해 오기 전까지 무인도였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의 영주 지위 부여는 오늘날 사크 헌법의 기초를 형성한다.

4. 2. 잉글랜드 왕실과의 관계

채널 제도는 공식적으로 잉글랜드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이며, 수장인 영국 국왕은 이 지역을 잉글랜드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다스려 왔다.[62] 역사적으로도 잉글랜드보다 노르망디에 가깝고[62] 노르만어의 방언들이 사용되나, 백년 전쟁 이후 잉글랜드의 노르망디 점유가 끝날 때 계속해서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영국령 노르망디의 일부가 되었다.

1259년 파리 조약으로 인해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영토 내의 모든 작위를 포기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국왕이 노르망디 공작을 칭하며 채널 제도를 다스릴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영토로 간주되어 왔으며 이 문제로 인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영토 분쟁은 없다.

933년, 섬들은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인 라울에 의해 윌리엄 1세 롱소드에게 양도되었고, 노르망디 공국에 합병되었다.[10]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2세는 잉글랜드를 침략하여 정복하여 윌리엄 1세로 즉위했으며, 정복왕 윌리엄으로도 알려져 있다. 1204년부터 1214년까지 존 왕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앙주 제국을 프랑스의 필리프 2세에게 빼앗겼지만, 채널 제도의 지배권은 유지했다. 1259년, 그의 계승자 헨리 3세는 파리 조약을 통해 노르망디 공국에 대한 권리와 칭호를 공식적으로 포기했지만, 프랑스의 봉건적 신하이자 프랑스의 동등한 지위로서 채널 제도를 유지했다.

1254년에는 잉글랜드 왕실의 개인 영지가 되었다. 이러한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져 연합 왕국에는 소속되지 않은 채 왕의 사유 영지로서 존재하고 있다.

4. 3. 근세

933년 롤로가 프랑스 왕으로부터 노르망디 공작으로 임명됨과 함께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1066년 노르만 정복으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 왕이 되면서 잉글랜드 왕의 영지가 되었고, 1204년에 잉글랜드 왕과 노르망디 공작이 분리되었을 때도 잉글랜드 왕의 영지로 간주되었다. 1254년에는 잉글랜드 왕실의 개인 영지가 되었다. 이러한 상태는 현재까지 이어져 연합 왕국에는 소속되지 않은 채 왕의 사유 영지로서 존재하고 있다. 올더니 섬(영국계) 외에 저지 섬과 건지 섬 주민은 노르만계 프랑스인으로, 지금도 농촌 지역에서는 프랑스어 노르망 방언을 사용한다.

삼국 전쟁 동안, 저지는 왕당파를 강력하게 지지하여 1646년1649년-1650년에 찰스 2세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반면 장로교 신자들이 많은 건지섬은 일반적으로 의회파를 지지했다 (비록 코넷 성은 왕당파에 의해 점령되었고 1651년 10월까지 항복하지 않았다).[14]

이 섬들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상업적,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섬 주민들은 17세기에 뉴펀들랜드 섬 어업에 관여하게 되었다. 1640년대에 저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찰스 2세가 받은 모든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찰스 2세는 집정관이자 총독인 조지 카터렛에게 미국 식민지에 대규모 토지 보조금을 주었고, 그는 즉시 그 땅의 이름을 뉴저지 주라고 지었으며, 현재는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경 에드먼드 앤드로스 건지 섬의 집정관은 북아메리카의 초기 식민지 총독이었으며, 단명한 뉴잉글랜드 자치령의 수장이었다.[15][16]

18세기 후반, 이 섬들은 "프랑스 섬"으로 불렸다. 프랑스 혁명을 피해 섬에 거주지를 찾은 부유한 프랑스 망명자들이 있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도시 주택들이 그 당시에 지어졌다. 세인트피터포트에서는 1865년까지 항만의 상당 부분이 건설되었다.

4. 4. 20세기

제2차 세계 대전 중 건설된 독일 요새가 채널 제도의 풍경 곳곳에 흩어져 있다.


독일이 저지섬을 점령하는 동안, 로열 광장의 포장 공사를 하던 석공은 점령자들의 눈 앞에서 승리를 위한 V를 새겨 넣었다. 나중에는 적십자 선박 ''베가''를 언급하도록 수정되었다. ''1945''년 날짜와 더 최근의 틀을 추가하여 기념비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채널 제도는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20]

1940년 6월, 영국 정부는 섬들을 비무장화했으며, 6월 21일에 부총독들이 철수하여 섬의 행정부는 임박한 군사 점령 하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 정부를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20]

독일군이 상륙하기 전인 1940년 6월 30일부터 7월 4일 사이에 대피가 이루어졌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미 자원하여 연합군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저지섬에서는 50,000명 중 6,600명이, 건지섬에서는 42,000명 중 17,000명이 떠났다.[17]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학교와 함께 잉글랜드스코틀랜드로 대피했다.

1945년 세인트피터항에서 채널 제도가 해방되자 환호하는 군중들


사크섬의 인구는 대부분 그 자리에 남아 있었지만,[20] 올더니섬에서는 6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 올더니섬에서 점령한 독일군은 약 6,000명을 수용하는 4개의 포로 수용소를 건설했으며, 그 중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문서 파괴로 인해 다른 섬에서 얼마나 많은 강제 노동자들이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20]

영국 해군은 특히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때때로 섬들을 봉쇄했다. 독일 점령 5년 동안, 특히 인구가 기아 상태에 가까웠던 마지막 몇 달 동안 상당한 배고픔과 고통이 있었다. 격렬한 협상 끝에 일부 인도적 지원이 적십자사를 통해 전달되었고, 1944년 12월 보급선 SS ''베가''에 적십자 구호품이 도착하게 되었다.

1940-45년의 독일 점령은 가혹했다. 2,000명 이상의 섬 주민들이 독일에 의해 추방되었고,[20] 일부 유대인들은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유격대 저항과 보복, 협력 혐의, 그리고 노예 노동도 발생했다. 스페인 내전의 초기 난민이었던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섬으로 끌려왔다.[21][22] 나중에 러시아인과 중앙 유럽 사람들이 그 일을 계속했다.[22] 저지섬에만 65,718개의 지뢰가 매설되었다.[23]

채널 제도에는 본토 프랑스 규모의 레지스탕스 운동이 없었다. 이는 섬들의 물리적 분리, 병력의 밀도(섬 주민 2명당 독일군 1명), 저항 단체가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없는 섬의 작은 크기, 그리고 점령군으로부터 게슈타포의 부재 등 다양한 요인으로 설명되었다. 게다가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의 인구 대부분은 이미 영국군에 입대했다.

1945년 5월 8일 전승절(VE-Day) 이후 점령이 종식되었으며, 저지섬과 건지섬은 5월 9일에 해방되었다. 올더니섬의 독일 수비대는 5월 16일까지 남겨졌으며, 이는 나치 독일의 잔존 세력이 항복한 마지막 중 하나였다.[24] 첫 번째 피난민은 6월 23일에 영국에서 첫 항해로 돌아왔지만,[20] 올더니섬 사람들은 1945년 12월까지 돌아오기 시작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많은 피난민들은 5년간의 헤어짐 이후 가족과 다시 연결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17]

1945년 해방 이후 재건을 통해 섬들의 경제가 변화하여 이민을 유치하고 관광업이 발전했다. 입법부가 개혁되었고, 무소속 정부는 1960년대부터 급성장한 역외 금융 수익의 지원을 받아 사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25] 섬들은 영국이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했을 때 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26] 1990년대 이후 농업과 관광업의 수익성 감소는 섬 정부들을 어렵게 만들었다.[27]

5. 인구

채널 제도의 인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채널 제도의 인구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정치

채널 제도는 건지 관할구저지 관할구라는 두 개의 자치 관할구로 나뉘며, 이들은 영국 왕실 속령이다. 각 관할구는 발리프가 관리하는데, 발리프는 시민 수장이자 의회 의장이며 사법부 수장을 겸하는 관할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이다.

섬의 정부 시스템은 노르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입법 기관의 이름인 스테이츠(States)는 노르만어 'États' 또는 '신분'(왕관, 교회, 국민)에서 유래했다. 각 섬에는 건지 스테이츠와 저지 스테이츠로 알려진 자체적인 주요 입법 기관이 있으며, 사크에는 치프 플리, 올더니 스테이츠가 있다. 채널 제도는 영국 의회에 대표되지 않는다.

1978년 해석법에 따라 채널 제도는 영국 제도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영국 제도와는 구별된다.[34] 1981년 영국 국적법에서는 "영국 제도"를 영국, 채널 제도 및 맨 섬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35]

6. 1. 영국 왕실과의 관계

채널 제도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이며, 영국 국왕은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이 지역을 다스려 왔다. 역사적으로 노르만어 방언이 사용되는 등 잉글랜드보다 노르망디에 가까웠다.[62] 그러나 백년 전쟁 이후 잉글랜드 왕실에 계속 충성하여 영국령 노르망디의 마지막 일부가 되었다.

1259년 파리 조약으로 잉글랜드 왕실은 프랑스 내 모든 작위를 포기했기에, 잉글랜드 국왕이 노르망디 공작을 칭하며 채널 제도를 다스릴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영토로 간주되며, 영토 분쟁은 없다.

현재 채널 제도는 자체 입법부, 사법 제도, 조세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국제 관계와 방위만 책임진다. EU와의 관계는 무역권에만 국한되며, 관세 법규는 영국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EU 내 자유 이동권은 확대 적용되지 않지만, 주민들은 영국 내에서 전통적 권리를 누린다.

채널 제도는 건지 관할구저지 관할구로 나뉘며, 영국 왕실 속령이다. 엘리자베스 2세노르망디 공작 칭호로 불렸으나, 파리 조약 (1259년)에 따라 여왕으로서 통치했다.[28],[29] 군주주의자들은 '우리 공작 여왕'으로 왕실 건배를 하는 등 지역 자부심을 보인다.[30]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각 관할구의 발리프는 시민 수장이자 의회 의장, 사법부 수장으로 가장 중요한 시민이다. 21세기 초, 발리프의 권력 집중은 권력 분립 원칙 위반으로 감시 대상이 되었다. 영국 대법원으로 교체되었지만 섬의 발리프들은 여전히 그 역사적인 역할을 지키고 있다.

섬의 정부 시스템은 노르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입법 기관인 스테이츠는 노르만어 'États' 또는 '신분'에서 유래되었다. 스테이츠는 수세기에 걸쳐 민주 의회로 발전했다.

저지 스테이츠 챔버의 공공 갤러리 입구


영국 의회는 섬에 대한 입법 권한을 가지지만, 의회법은 자동 적용되지 않고, 추밀원 명령을 통해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대부분 섬은 자체 입법한다.[31] 각 섬에는 건지 스테이츠와 저지 스테이츠, 사크에는 치프 플리, 올더니 스테이츠가 있다. 채널 제도는 영국 의회에 대표되지 않는다. 스테이츠에서 통과된 법률은 추밀원에서 국왕 재가를 받는다.[32]

섬은 유럽 연합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EU 회원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유럽 공동체의 관세 영토의 일부였다. 2010년 9월, 채널 제도 브뤼셀 사무소를 공동 설립했다.[33]

두 관할구 모두 영국-아일랜드 협의회의 회원이며, 저지어건지어는 섬의 공인된 지역 언어이다.

법원은 분리되어 있으며, 1961년부터 분리된 항소 법원이 있었다. 노르만 법의 법적 유산 중에는 클라머 드 하로가 있다. 두 관할구의 법적 시스템의 기초는 노르만 관습법(Coutume)이지만, 영국의 관습법 요소도 확립되었다.

섬 주민들은 완전한 영국 시민이지만, 영국 국민의 후손이 아니면 유럽 시민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저지나 건지에서 여권을 신청하는 모든 영국 시민은 "영국 제도, 저지 관할구" 또는 "영국 제도, 건지 관할구"라는 문구가 적힌 여권을 받는다. 의정서 3의 규정에 따라 영국과 밀접한 관계가 없는 채널 제도 주민은 자동으로 EU 내 자유 이동에 관한 EU 규정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여권에는 그 취지의 보증이 표시되었다. 이는 소수의 섬 주민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1978년 해석법에 따라 채널 제도는 영국 제도의 일부로 간주되며, 영국 제도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34] 1981년 영국 국적법의 목적을 위해 "영국 제도"는 영국(영국과 북아일랜드), 채널 제도 및 맨 섬을 함께 포함한다.[35]

행정적으로는 저지 섬 대관 관할구와 건지 섬 대관 관할구로 나뉘며, 각 지역은 각각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하고, 국왕의 대리인으로 부총독이 임명된다. 또한 각각 고유의 자치 의회와 정부를 가지며, 영국 의회에는 대표를 보내지 않는다. 주민은 영국의 여권을 소지하지만, 표지에는 연합 왕국이 아닌 British Islands, Bailiwick of Jersey영어 또는 British Islands, Bailiwick of Guernsey영어라고 기재되어 있다. 연합 왕국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이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있는 동안에도 유럽 연합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각각 노르만 법에 기인하는 고유의 법 체계를 가진다. 군사 및 외교는 영국이 담당한다.

6. 2. 유럽 연합과의 관계

채널 제도는 유럽 연합(EU)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2016년 EU 회원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EU 조약 의정서 3에 따라 유럽 공동체의 관세 영토의 일부였다.[33] 2010년 9월, 채널 제도는 EU에 미치는 영향력을 개발하고, 유럽 문제에 대해 조언하며, EU와의 경제적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공동으로 채널 제도 브뤼셀 사무소를 설립했다.[33]

EU와의 관계는 무역권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관세 관련 법규는 영국과 동일한 조건이 적용된다. EU 전체에서 사람과 서비스가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확대 적용되지 않지만, 채널 제도 주민들은 영국 안에서 전통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31]

영국 국민의 후손이 아닌 한, 채널 제도 주민들은 유럽 시민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영국과 밀접한 관계가 없는 채널 제도 주민(영국 출신 부모 또는 조부모가 없고, 5년 이상 영국에 거주한 적이 없는 경우)은 EU 내 자유 이동에 관한 EU 규정의 혜택을 자동으로 받지 못했으며, 여권에 해당 내용이 명시되었다. 이는 소수의 섬 주민에게만 영향을 미쳤다.[35]

7. 행정 구역

행정적으로는 저지 섬 대관 관할구와 건지 섬 대관 관할구로 나뉘며, 각 지역은 각각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하고 국왕의 대리인으로 부총독이 임명된다. 또한 각각 고유의 자치 의회와 정부를 가지며, 영국 의회에는 대표를 보내지 않는다. 주민은 영국의 여권을 소지하지만, 표지에는 연합 왕국이 아닌 British Islands, Bailiwick of Jersey|브리티시 아일랜즈, 베일리윅 오브 저지영어 또는 British Islands, Bailiwick of Guernsey|브리티시 아일랜즈, 베일리윅 오브 건지영어라고 기재되어 있다. 연합 왕국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이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있는 동안에도 유럽 연합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각각 노르만 법에 기인하는 고유의 법 체계를 가지며, 군사 및 외교는 영국이 담당한다.

8. 경제

관광 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저지섬과 건지섬은 1960년대 이후 주요 역외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다.[36] 역사적으로 건지섬의 원예 및 온실 활동은 저지섬보다 더 중요했으며, 건지섬은 저지섬보다 경제에서 경공업의 비중을 더 높게 유지해 왔다. 저지섬에서는 감자가 중요한 수출 작물이며, 주로 영국으로 수출된다.[37]

저지섬은 금융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2018년 총 부가가치(GVA)의 39.4%가 이 부문에서 기여했다. 임대 소득은 15.1%로 두 번째를 차지했으며, 기타 사업 활동은 11.2%, 관광은 4.5%, 농업은 1.2%, 제조업은 1.1%를 차지했다. GVA는 20년 동안 45억 파운드에서 50억 파운드 사이에서 변동했다.[38]

저지섬은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여 2000년 90,000명 미만에서 2018년 105,000명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GVA가 평탄해지면서 1인당 GVA가 57,000 파운드에서 44,000 파운드로 감소했다.[38]

2018년 건지섬의 GDP는 32억 파운드였으며,[39][40] 약 66,000명의 안정적인 인구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GDP가 증가했으며, 2018년 1인당 GVA가 52,000 파운드를 넘어섰다.[38]

섬의 경제는 조세 회피처로 지탱되고 있으며, 많은 회사가 섬에 페이퍼 컴퍼니를 두고 있다. 또한 저지 섬의 중심 도시인 세인트헬리어 등에는 관광객도 많다.

8. 1. 통화

저지와 건지는 각각 독자적인 통화와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1] 섬 내에서는 잉글랜드 은행이나 스코틀랜드 은행이 발행한 통화도 유통된다.[1]

9. 교통 및 통신

과거 채널 제도에는 저지 섬, 건지 섬, 올더니 섬에 철도망이 있었지만, 저지와 건지의 모든 노선은 폐쇄 및 해체되었다. 현재 채널 제도에는 3개의 운행 중인 철도가 있으며, 이 중 올더니 철도가 정기 여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철도이다. 나머지는 올더니에 있는 소형 철도와 팔로트 헤리티지 증기 박물관의 일부로 저지에서 운영되는 유산 증기 철도이다.[1]

현존하는 올더니 철도


저지 섬, 건지 섬, 올더니 섬에는 공항이 있다.[1]

영국 포츠머스, 프랑스 생말로, 셰르부르 등과의 선편도 많다.[1]

저지 섬은 영국과 독립적으로 자체 전화 서비스를 운영해 왔으며, 건지 섬은 1968년에 자체 전화 서비스를 설립했다. 두 섬 모두 영국 전화번호 체계의 일부를 형성하지만, 본토의 Ofcom은 섬의 통신 규제 및 면허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해저 케이블은 다양한 섬을 연결하고 잉글랜드 및 프랑스와의 연결을 제공한다.[48]

모든 섬에서 최신 광대역 속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저지 섬에서는 완전 광섬유(FTTH)를 통해 최대 1Gbit/s의 속도를 제공한다. 건지 섬에서는 VDSL과 일부 기업 및 가정에 광섬유 연결을 제공한다. 제공업체로는 슈어와 JT이 있다.[48]

두 자치구는 각각 자체 인터넷 도메인인 .GG (건지 섬, 올더니, 사크)와 .JE (저지 섬)를 가지고 있으며, channelisles.net에서 관리한다.[48]

9. 1. 도로

세 개의 주요 섬은 각각 별개의 차량 등록 제도를 가지고 있다.

  • 건지(GBG): 최대 5자리 숫자
  • 저지(GBJ): 'J' 다음에 최대 6자리 숫자 ('JSY' 맞춤형 번호판도 발급)
  • 올더니(GBA): 'AY' 다음에 최대 5자리 숫자 (중복된 번호가 재발급되므로 4자리가 가장 많이 사용됨)


사크 섬에서는 대부분의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몇 안 되는 차량(거의 모든 트랙터)은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는다. 자전거는 세금 납부 증지를 부착한다.

9. 2. 해상 교통

1960년대에 섬과 웨이머스 사이의 우편 노선을 운항하는 해협 횡단 페리에 사용된 이름은 섬의 대중적인 라틴어 이름에서 따왔다. Caesareala (저지섬), Sarniala (건지섬), Ridunala (올더니섬)이다. 50년 후, 채널 제도와 영국 간의 페리 노선은 콘도르 페리가 저지섬의 세인트 헬리어와 건지섬의 세인트 피터 포트에서 운행하며, 고속 쌍동선 고속선을 사용하여 영국 로 운항한다. 코모도어 클리퍼(Commodore Clipper)의 정기 여객 페리 서비스는 채널 제도 양쪽 항구에서 매일 포츠머스로 운행하며, 여객과 화물을 모두 수송한다.

노르망디행 페리 서비스는 Manche Îles Express|italic=no프랑스어가 운행하며, 저지섬과 생말로 간의 서비스는 Compagnie Corsaire|italic=no프랑스어 및 콘도르 페리가 운행한다. 사크섬 해운 회사(Isle of Sark Shipping Company)는 사크 섬으로 가는 소형 페리를 운행한다.[42] 노르망디 트레이더(Normandy Trader)는 섬과 프랑스 간의 화물 운송을 위해 전 군용 탱크 상륙정을 운용한다.[43]

2013년 8월 20일, 사우스햄튼 항구와 저지섬 항구 사이에서 80년 동안 "리프트 온 리프트 오프" 컨테이너 서비스를 운영해 온 Huelin-Renouf|italic=no프랑스어가 영업을 중단했다.[44] 저지섬 정치인인 앨런 J. H. 맥린 상원의원은 이 회사가 제공하는 90여 개의 일자리를 구제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45] 9월 20일, 채널 아일랜드 라인스(Channel Island Lines)가 이 서비스를 계속할 것이며, 파산 수탁자로부터 이를 구매한 Associated British Ports로부터 MV ''Huelin Dispatch''를 구매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46] 새로운 운영자는 저지섬 사업가들의 사적인 협회인 록케인 리미티드(Rockayne Limited)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예정이었다.[46]

영국 측의 포츠머스, 프랑스 측의 생말로, 셰르부르 등과의 선편도 많다.

9. 3. 항공 교통

채널 제도에는 올더니 공항, 건지 공항, 저지 공항 세 개의 공항이 있으며, 이들은 블루 아일랜즈와 오리니에서 운항하는 항공편으로 서로 직접 연결된다.[1]

영국 포츠머스, 프랑스 생말로, 셰르부르 등과의 선편도 많다.[1]

9. 4. 통신

저지 섬은 항상 영국의 전국 시스템과 독립적으로 자체 전화 서비스를 운영했으며, 건지 섬은 1968년에 자체 전화 서비스를 설립했다. 두 섬 모두 여전히 영국 전화번호 체계의 일부를 형성하지만, 본토의 Ofcom은 섬의 통신 규제 및 면허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Ofcom은 섬 전체의 무선 전신 면허를 담당하며, 협약에 따라 두 개의 큰 섬에 대해서만 방송 규제를 담당한다. 해저 케이블은 다양한 섬을 연결하고 잉글랜드 및 프랑스와의 연결을 제공한다.[48]

모든 섬에서 최신 광대역 속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저지 섬에서는 완전 광섬유(FTTH)를 통해 모든 광대역 연결에서 최대 1Gbit/s의 속도를 제공하며, 건지 섬에서는 VDSL과 일부 기업 및 가정에 광섬유 연결을 제공한다. 제공업체로는 슈어와 JT이 있다.[48]

두 자치구는 각각 자체 인터넷 도메인인 .GG (건지 섬, 올더니, 사크)와 .JE (저지 섬)를 가지고 있으며, channelisles.net에서 관리한다.[48]

10. 문화

노르만어는 19세기까지 채널 제도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정착민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운송 연결이 쉬워지면서 영국화가 진행되었다.[49] 빅토르 위고는 저지와 건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건지는 위고의 소설 ''바다의 노동자''의 배경이기도 하다.[51] 허먼 멜빌의 ''모비 딕'' 91장에는 "건지 사람"이 등장한다.[52]

섬 간의 연례 축구 경기인 "무라티"는 중요한 스포츠 행사였지만, 방송 보도로 인해 20세기 동안 관중들의 인기가 줄어들었다.[53]

제르네세어로 광고된 해상 축제


저지는 채널 제도의 저지섬에서 유래한 울 니트 스웨터이다. 저지 소도 저지섬에서 유래한 유명한 젖소 품종이다. 미국 뉴저지주의 이름은 저지섬에서 유래했으며, 코코 샤넬의 성 "샤넬"은 채널 제도의 프랑스어 변형이다.

10. 1. 언어

채널 제도의 섬 이름은 큰 섬에는 '-ey' 접미사를, 작은 섬에는 'hou' 접미사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이는 고대 노르드어의 'ey'(섬)와 'holmr'(작은 섬)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0. 2. 스포츠

크리켓은 채널 제도에서 인기가 많다. 저지 크리켓 팀과 건지 크리켓 팀은 모두 국제 크리켓 위원회의 준회원이다. 두 팀은 1957년부터 인터-인슈럴 경기에서 서로 경기를 해왔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채널 제도가 MCCA 녹아웃 트로피에 팀을 출전시켰는데, 이는 영국 및 웨일스 크리켓의 마이너 카운티의 원데이 토너먼트이다.[54]

채널 제도 선수들은 각 섬을 대표하여 코먼웰스 게임에 참가하며, 섬들은 또한 아일랜드 게임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사격은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섬 주민들이 코먼웰스 메달을 획득했다.[55]

건지의 전통적인 스포츠 및 기타 목적 색상은 녹색이고 저지의 색상은 빨간색이다.[56]

10. 3. 전통적인 동물 별칭

주요 섬 주민들은 전통적인 동물 별칭을 가지고 있다.[57][58]

별칭설명
건지레 앤 ("당나귀")세인트 피터 포트 거리의 경사 때문에 짐을 운반하는 짐승이 필요했지만, 건지 사람들은 또한 그것을 그들의 성격의 강인함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저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완고함으로 해석한다.
저지레 크라포 ("두꺼비")저지에는 건지에 없는 두꺼비와 뱀이 있다.
세르크레 코르뱅 ("까마귀")섬 해안에서 바다에서 까마귀를 볼 수 있었다.
올더니레 라팽 ("토끼")섬은 토끼 굴로 유명하다.



세인트 헬리어에 있는 ''크라포드''(두꺼비) 조각상은 저지 사람들의 전통적인 별칭을 나타낸다.

10. 4. 종교

기독교는 6세기경 채널 제도에 전파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저지는 성 헬리어에 의해, 건지는 성 돌의 삼손에 의해 복음화되었으며, 작은 섬들은 다양한 시기에 켈트 기독교의 여러 종파를 대표하는 수도 공동체에 의해 점령되었다. 종교 개혁 시기, 이전의 가톨릭교 섬들은 제네바에서 출판된 프랑스어 소책자의 유입으로 칼뱅주의로 개종했다. 성공회는 17세기에 강요되었지만, 비국교도적 지역 성향은 감리교를 강력하게 받아들이면서 되돌아왔다. 20세기 후반에는 많은 포르투갈 노동자(본토 포르투갈마데이라 섬 출신)의 유입으로 강력한 가톨릭교의 부활이 일어났다. 그들의 수는 최근 폴란드 및 동유럽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여러 언어로 예배가 진행된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39%는 무종교였다.[59][60]

참조

[1] 웹사이트 Royal.gov.uk http://www.royal.gov[...] Royal.gov.uk 2012-10-04
[2] 웹사이트 Fact sheet on the UK's relationship with the Crown Dependencies https://www.gov.uk/g[...] Ministry of Justice 2016-02-14
[3] 웹사이트 Channel Islands Financial Ombudsman https://www.ci-fo.or[...]
[4] 서적 At their Majesties' Service Gateway Publishing 2015
[5] 웹사이트 NASA Earth Observations Data Set Index http://neo.sci.gsfc.[...] NASA 2016-01-30
[6]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jer[...] Thisisjersey.com 2012-10-04
[7]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jer[...] Thisisjersey.com 2012-10-04
[8] 서적 A Gallo-Roman Trading Vessel from Guernsey Guernsey Museums & Galleries
[9] 서적 Balleine's History of Jersey 1998
[10] 서적 Magni rotuli scaccarii Normanniæ sub regibus Angliæ 1840
[11] 서적 The Charters of Guernsey Woodfield Publishing 2004
[12] 웹사이트 Bertrand du Guesclin: The Black Dog of Brittany https://web.archive.[...]
[13] 서적 The Channel Islands https://books.google[...]
[14] 서적 A People of the sea: the maritime history of the Channel Islands https://books.google[...] Methuen 2020-05-31
[15] 서적 A People of the sea: the maritime history of the Channel Islands https://books.google[...] Methuen 2020-05-31
[16] 웹사이트 Sir Edmund Andros https://www.britanni[...] 2019-02-11
[17] 웹사이트 Guernsey Evacuees Oral History http://guernseyevacu[...] Guernseyevacuees.wordpress.com 2012-10-04
[18] 웹사이트 Appendix F: Concentration Camps: Endlösung – The Final Solution http://www.tartanpla[...] 2009-06-06
[19] 웹사이트 Aurigny; un camp de concentration nazi sur une île anglo-normande (English: Alderney, a Nazi concentration camp on an island Anglo-Norman) http://www.matisson-[...] 2009-06-06
[20] 서적 The German Occupation of the Channel Islands Oxford 1975
[21]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s://web.archive.[...]
[22] 서적 Jersey Occupied: The German Armed Forces in Jersey 1940–1945 Channel Island Publishing
[23] 서적 German Fortifications in Jersey Jersey 1975
[24] 웹사이트 Nazi Germany Surrenders: February 1945 – May 1945 http://history.howst[...] 2007-09-11
[25]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jer[...] Thisisjersey.com 2012-10-04
[26] 웹사이트 Error http://www.gov.je/Ch[...] 2017-05-20
[27]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gue[...] Thisisguernsey.com 2012-10-04
[28] 웹사이트 Public Hearing: Review of the Roles of the Crown Officers http://www5.gov.je/S[...] States of Jersey 2010-11-27
[29] 웹사이트 Review of the Roles of the Jersey Crown Officers http://www.gov.je/Si[...] States of Jersey 2010-11-27
[30] 웹사이트 This is Jersey: History & Heritage http://www.thisisjer[...] thisisjersey.com 2010-11-27
[31] 웹사이트 R (on the application of Barclay and another) v. Secretary of State for Justice [2014] UKSC 54 http://www.supremeco[...]
[32] 웹사이트 Background briefing on the Crown Dependencies: Jersey, Guernsey and the Isle of Man http://www.dca.gov.u[...] 2012-10-04
[33] 웹사이트 Guernsey and Jersey begin recruiting for senior Brussels positions http://www.gov.je/Si[...] 2012-10-04
[34] 웹사이트 '"British Islands" means the United Kingdom, the Channel Islands and the Isle of Man. (1889)' http://www.statutela[...] Statutelaw.gov.uk 2012-10-04
[35] 간행물 British Nationality Act 1981 http://www.opsi.gov.[...] Office of Public Sector Information 2009-09-14
[36] 웹사이트 The Global Financial Centres Index 8 http://www.zyen.com/[...] Z/Yen 2012-09-15
[37] 웹사이트 Jersey Economy 2020, CIA World Factbook https://theodora.com[...] theodora.com 2020-06-30
[38] 웹사이트 Measuring Jersey's economy GVA and GDP – 2018 https://www.gov.je/S[...] States of Jersey 2020-08-13
[39] 웹사이트 Gross Value Added and Gross Domestic Product https://www.gov.gg/g[...] Guernsey government 2020-08-13
[40] 웹사이트 Guernsey Annual GVA and GDP Bulletin 2018 (First Estimates) https://gov.gg/CHttp[...] 2020-08-13
[41] 웹사이트 Other British Islands' Notes {{!}} Bank of England http://www.bankofeng[...] 2017-07-28
[42] 웹사이트 Sark Travel https://www.simplysa[...] 2023-08-24
[43] 웹사이트 Normandy Trader https://normandytrad[...] 2023-08-24
[44] 뉴스 Shipping company stops trading https://www.bbc.co.u[...] 2018-06-21
[45] 뉴스 Shipping company at risk of closure https://www.bbc.co.u[...] 2018-06-21
[46] 뉴스 New Channel Island company offers freight service https://www.bbc.co.u[...] 2018-06-21
[47] 웹사이트 Channel Islands digital radio launches with an all DAB+ line-up – RadioToday https://radiotoday.c[...] 2021-08
[48] 웹사이트 Channel Isles: The Islands' Domain Names :: Home http://www.channelis[...] 2020-08-21
[49] 서적 The Triumph of the Country Jersey
[50] 서적 La Grève de Lecq
[51] 뉴스 Trail of the unexpected: Victor Hugo's Guernsey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2010-07-03
[52] 서적 Moby-Dick https://archive.org/[...] St Botoph Society edition
[53]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jer[...] Thisisjersey.com 2012-10-04
[54] 웹사이트 Minor Counties Trophy Matches played by Channel Islands https://cricketarchi[...] Cricketarchive.com 2012-10-04
[55] 웹사이트 Thecgf.com Thecgf.com 2012-10-04
[56] 웹사이트 Non-FIFA National Teams Colours https://www.rsssf.or[...] Rsssf.com 2010-08-21
[57] 서적 Dictionnaire Jersiais-Français
[58] 웹사이트 Thisisjersey.com http://www.thisisgue[...] Thisisguernsey.com 2012-10-04
[59] 웹사이트 First ever Jersey official religion statistics show 39% of islanders are non-religious https://humanism.org[...] British Humanist Association 2017-02-01
[60] 웹사이트 Jersey Annual Social Survey 2015 https://www.gov.je/S[...] States of Jersey 2017-02-01
[61] 웹사이트 Îles Anglo-Normandes – Jersey et Guer https://www.populati[...] PopulationDate.net 2017-09-15
[62] 문서 채널 제도는 10세기와 11세기에는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였으며 1204년 노르망디 본토를 프랑스에 잃은 후에도 영국의 영토로 남아 있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