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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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로티노스는 3세기 로마 제국 시대의 철학자로, 북아프리카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났다. 28세에 철학에 입문하여 암모니우스 삭카스에게 플라톤 철학을 배운 후 '플라톤 철학의 해석자'로 불리며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했다. 그는 일자(The One)를 최고의 존재로 설정하고, 유출설을 통해 일자로부터 누스, 세계 영혼, 물질로 이어지는 세계관을 제시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하면서도 이원론을 극복하려 했으며, 헤노시스를 통해 일자와의 합일을 추구했다. 그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 등 기독교 신학,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이슬람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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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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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플로티노스 |
로마자 표기 | Plotinus |
출생 | 기원후 204/5년경 |
출생지 | 이집트, 아슈트 또는 리코폴리스, 로마 제국 |
사망 | 기원후 270년 |
사망지 | 캄파니아, 로마 제국 |
주요 저작 | 엔네아데스 |
학파/전통 | 신플라톤주의 |
주요 관심사 | 플라톤주의 형이상학 신비주의 |
주요 사상 | 하나로부터의 만물 유출 3가지 주요 위격: 일자, 지성, 영혼 헤노시스 |
2. 생애
플로티노스는 북아프리카 리코폴리스(Likopolis)에서 태어나, 2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철학에 입문했다. 암모니우스 삭카스에게서 플라톤 철학을 배우고 큰 감명을 받아 '플라톤 철학의 해석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라고 평가한다.
그는 플라톤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나(Hen)'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플라톤의 사상과 차별화되면서도 플라톤이 이미 알고 활용했던 개념이다(특히 《티마이오스》 안에서).[1] 플로티노스가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는 "어찌 '하나'에서 다수가 흘러나왔는지?"라는 당시 새롭게 제기된 물음에 집중하여 사상을 펼쳤기 때문이다. 즉,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 어떻게 불완전한 다수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유출(Emanation) 개념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다.
플로티노스는 로마 제국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활동하며,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갈리에누스 황제와 그의 부인 솔로니나의 신임을 받아 플라톤 왕국의 건설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는 네 번이나 신적 체험을 했다고 하며, 49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지병으로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토론을 즐기고 몰입하는 열정을 보였다. 부드럽고 공정한 인품 덕분에 그를 찾는 사람들과 후원자들이 많았다. 플라톤 사상에 심취하여 육체보다 영혼에 더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의 가족 및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플로티노스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포르피리오스가 남긴 전기가 유일하지만, 이는 현대적인 의미의 학술적인 전기는 아니다.[59][60]
2. 1. 초기 생애와 교육
플로티노스는 북아프리카 리코폴리스(Likopolis)에서 태어났으며, 2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2][3][4] 알렉산드리아에서 여러 스승들을 만났지만 만족하지 못하다가, 암모니우스 삭카스의 강의를 듣고 "내가 찾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그의 제자가 되었다.[2] 그 후 11년 동안 암모니우스 삭카스 밑에서 공부했다.[2][3][4]플로티노스는 암모니우스 삭카스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1] 전소크라테스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15] 중기 플라톤주의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와 아파메아의 누메니우스, 그리고 다양한 스토아학파[1]와 네오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철학적 저술의 영향을 받았다.[15]
그는 물질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상은 "더 높고 지적인 것"의 불완전한 이미지 또는 모방(''미메시스'')이라는 플라톤주의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17] 이러한 불신은 자신의 신체에도 확장되어, 초상화 그리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17] 그는 자신의 혈통, 어린 시절, 출생지 등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17]
플로티노스의 출생년도는 약 204년으로 추정된다.[1][2][3][4] 에우나피오스는 플로티노스가 리코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데, 이는 현대의 아스유트(상이집트) 또는 델타 리코폴리스(하이집트)를 가리킬 수 있다.[1][2][3][4] 그의 가족은 헬레니즘화된 이집트인,[7] 그리스인,[8][9] 또는 로마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10] 로이드 P. 거슨은 플로티노스가 "거의 확실하게" 그리스인이라고 말하며,[8] A.H. 암스트롱은 "그리스어가 그의 모국어였고 그는 그리스 교육을 받았다"고 적었다.[11]
2. 2. 페르시아 원정과 로마 정착
플로티노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11년을 보낸 후, 약 38세의 나이에 페르시아와 인도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2][16] 이를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군대에 합류하여 페르시아로 진군했다(242~243).[2][4] 그러나 이 전투는 실패로 끝났고, 고르디아누스가 죽자 플로티누스는 적대적인 땅에 버려져 간신히 안티오키아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2][4]40세에,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통치 기간 동안 로마에 와서 생애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2][4][17] 그곳에서 그는 많은 제자들을 모았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로는 포르피리오스, 토스카나 출신의 아밀리우스 겐틸리아누스, 상원의원 카스트리키우스 피르무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죽음까지 그를 배우고 돌보았던 의사 알렉산드리아의 에우스토키우스가 있었다. 다른 제자들로는 플로티누스보다 먼저 사망하여 그에게 유산과 토지를 남긴 아랍 혈통의 제토스, 비평가이자 시인인 조티쿠스, 스키토폴리스의 의사 폴리누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세라피온이 있었다. 그는 카스트리키우스 외에도 로마 원로원 의원들 사이에서도 제자들을 두었는데, 마르켈루스 오론티우스, 사비닐루스, 로간티아누스가 그들이다. 여성들도 제자들 중에 있었는데,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집에서 살았던 게미나와 그녀의 딸 게미나, 이암블리쿠스의 아들 아리스톤의 아내 암피클레아가 포함된다.[18] 마지막으로, 플로티누스는 철학자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서신을 교환했다.
2. 3. 만년과 죽음
포르피리오스는 플로티노스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즉위 2년째인 270년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전했으며, 따라서 그의 출생년도는 약 204년으로 추정된다.[1] 이후 플로티노스는 시칠리아로 갔다. 그는 친구 제토스가 물려준 캄파니아의 한 부동산에서 은둔하며 마지막 날을 보냈다. 그의 임종을 지킨 에우스토키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플로티노스의 마지막 말은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만물 안에 있는 신성으로 끌어올리도록 노력하라."였다.[19] 에우스토키우스는 플로티누스가 누워 있던 침대 아래로 뱀이 기어들어와 벽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고, 그 순간 철학자는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플로티노스는 253년경부터 사망하기 몇 달 전까지 수년에 걸쳐 ''엔네아데스''(그리스어 ἐννέα(''ennéa''), 즉 9개의 그룹)가 된 에세이를 썼다. 포르피리오는 ''엔네아데스''가 편집되고 정리되기 전에는 플로티노스가 강의와 논쟁에서 사용한 방대한 양의 메모와 에세이 모음집이었으며, 형식적인 책은 아니었다고 언급한다. 플로티노스는 시력이 좋지 않아 자신의 저술을 수정할 수 없었지만, 포르피리오에 따르면 그의 저술은 광범위한 편집이 필요했다. 스승의 필체는 끔찍했고, 단어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으며, 철자에는 무관심했다. 플로티누스는 편집 과정을 매우 싫어했고, 이 일을 포르피리오에게 맡겼으며, 포르피리오는 이를 다듬고 편집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만들었다.
플로티노스는 말년에 전염병에 걸려 로마를 떠나 캄파니아에 거주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제자이자 의사인 에우스토키오스에게 간호를 받았다. 임종의 말은 "나는 지금 우리 내면의 신적인 것을 만유의 신적인 것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한다.
3. 사상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하면서도 이원론을 극복하려 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에 나오는 "하나인 것"(to hen)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과 동일시했다. 만물(영혼, 물질)은 무한한 존재(선의 이데아)인 "일자"(to hen)에서 유출된 누스(이성)의 작용으로 생겨난다고 보았다(유출설). 일자는 유한한 존재인 만물과 다르며, 유출에 의해 변화하거나 증감하지 않는다. 마치 태양이 변하지 않으면서 빛을 내는 것처럼, 빛에서 멀어질수록 어두워지듯이 영혼과 물질에도 높낮이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플로티노스는 일자로부터 누스(로고스), 세계 영혼, 개별 인간 영혼, 그리고 물질 순으로 단계적으로 유출된다고 보았다. 그는 물질적 창조가 궁극적으로 일자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과 형상에서 선이나 아름다움을 통해 일자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일자"에 대한 사랑(''에로스'')을 통해 "일자"로 돌아갈 수 있다. 일자와 하나가 되어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을 '''엑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드물게 소수의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플로티노스 자신은 생애에 네 번 정도 경험했다고 전해진다.
진정한 인간은 영혼의 사색 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물질적인 것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물질 세계와 무관하며, 이성의 가장 높은 능력에서 발견되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행복을 성취한 사람은 내면의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불편함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플로티노스는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감각적인 것 뒤에 있는 실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철학을 제시했다. 그의 철학은 에우다이모니아(행복)가 의식 내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것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 1. 일자(一者, to hen)
플로티누스는 최고의, 완전히 초월적인 "일자"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일자는 분할, 다양성, 구별을 초월하며, 모든 존재와 비존재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의 "일자"는 "어떤 존재하는 것도 될 수 없으며", 단순히 모든 것들의 합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자보다 우선한다".[20] 플로티누스는 그의 "일자"를 '선'의 개념과 '아름다움'의 원리와 동일시했다. (I.6.9)그의 "일자" 개념은 사유자와 대상을 포함한다. 심지어 자기 성찰적인 지성(노에시스의 누스)조차도 이원성을 포함해야 한다. 플로티누스는 일자에 감각, 자기 인식 또는 다른 어떤 행위도 부정한다.(V.6.6) 오히려, 일자를 순수한 잠재력(Dunamis)이라고 칭한다. (III.8.10) 플로티누스는 일자를 "빛"에, 신성한 지성/누스(선을 향한 첫 번째 의지)를 "태양"에, 마지막으로 영혼(영혼)을 "달"에 비유했는데, 달의 빛은 단지 "태양"으로부터 온 "빛의 파생적인 집합체"일 뿐이라고 보았다. 첫 번째 빛은 어떤 천체도 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일자는 존재와 비존재를 포함한 모든 속성을 초월하는 세계의 근원이지만, 창조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다. 활동은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일자에 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는 복수적인 것은 단순한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덜 완벽한" 것은 필연적으로 "완벽한" 또는 "더 완벽한" 것으로부터 "발산"되거나 나와야 한다. 모든 "창조"는 점점 덜 완벽해지는 단계에서 일자로부터 발산된다. 이러한 단계는 시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지 않지만, 끊임없는 과정으로 시간 내내 발생한다.
일자는 단순한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 경험에서 사람은 모든 다양성을 넘어선다.[21]
3. 2. 유출설(流出, Emanation)
플로티누스는 최고의, 완전히 초월적인 "일자"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모든 존재와 비존재의 범주를 넘어서며, 어떠한 분할, 다양성, 구별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의 "일자"는 "어떤 존재하는 것도 될 수 없으며", 단순히 모든 것들의 합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자보다 우선한다". 플로티누스는 그의 "일자"를 '선'의 개념과 '아름다움'의 원리와 동일시했다. (I.6.9)[20]플로티누스에게 "일자" 개념은 사유자와 대상을 포함했다. 심지어 자기 성찰적인 지성(노에시스의 누스)조차도 이원성을 포함해야 한다. 플로티누스는 일자에 감각, 자기 인식 또는 다른 어떤 행위도 부정한다.(V.6.6)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더 자세히 묘사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일자를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순수한 잠재력(Dunamis)이라고 불러야 한다.(III.8.10) 플로티누스는 일자를 "빛"에, 신성한 지성/누스(Νοῦς, Nous; 선을 향한 첫 번째 의지)를 "태양"에, 마지막으로 영혼(Ψυχή, 영혼)을 "달"에 비유했는데, 달의 빛은 단지 "태양"으로부터 온 "빛의 파생적인 집합체"일 뿐이다. 첫 번째 빛은 어떤 천체도 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일자는 존재와 비존재를 포함한 모든 속성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의 근원이지만, 어떤 창조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활동은 변하지 않고 불변하는 일자에 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는 대신 복수적인 것은 단순한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덜 완벽한" 것은 필연적으로 "완벽한" 또는 "더 완벽한" 것으로부터 "발산"되거나 나와야 한다. 따라서 모든 "창조"는 점점 덜 완벽해지는 단계에서 일자로부터 발산된다. 이러한 단계는 시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지 않지만, 끊임없는 과정으로 시간 내내 발생한다.[21]
일자는 단순한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 경험에서 사람은 모든 다양성을 넘어선다. 플로티누스는 "우리는 그가 '볼 것이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말로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고, 두 가지가 하나라고 단호하게 확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그가 보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21]
플로티누스는 어떤 저술에서도 기독교를 언급하지 않지만, 정통 기독교적 창조 개념인 ''무''에서의 창조(ex nihilo)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조의 형이상학과 유사한 발산(ἀπορροή ''aporrhoe'' (ΙΙ.3.2) 또는 ἀπόρροια ''aporrhoia'' (II.3.11))(문자 그대로 흘러나옴, ροη, 밖으로, απο)의 형이상학은, 만물의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일자(The One) 또는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기술하지만, 그 본성 자체에서는 여전히 그것들을 초월한다. 일자는 이러한 발산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마치 기독교의 신이 창조 행위에 의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 것과 같다. 플로티누스는 발전된 기독교 사상의(대체로 신플라톤주의적인) 형이상학에 결정적으로 중요해질 고대의 비유를 사용하여, 일자를 빛을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면서 스스로를 감소시키지 않는 태양이나, 반영되는 대상을 어떤 식으로든 감소시키거나 변경하지 않는 거울 속의 반사에 비유한다.[22]
첫 번째 발산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데미우르고스와 은유적으로 동일시되는 누스(신성한 정신, 로고스, 질서, 사유, 이성)이다. 그것은 선을 향한 첫 번째 의지이다. 누스로부터 세계 영혼이 나오는데, 플로티노스는 그것을 상위와 하위로 세분하여 영혼의 하위 측면을 자연과 동일시한다. 세계 영혼으로부터 개별 인간 영혼이 나오고, 마침내 존재의 가장 낮은 수준이자 따라서 우주의 가장 덜 완전한 수준인 물질이 나온다. 플로티노스는 누스와 세계 영혼을 매개로 일자로부터 궁극적으로 유래하기 때문에 물질적 창조의 궁극적인 신성을 주장했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과 그 다음 형상에서 선이나 아름다움을 통해 일자를 인식한다. (I.6.6 및 I.6.9)
플로티노스 철학의 본질적으로 헌신적인 성격은 일자와의 황홀한 합일(헤노시스)을 성취한다는 그의 개념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포르피리오는 플로티노스가 그를 알았던 몇 년 동안 네 번 그러한 합일을 성취했다고 전한다. 이것은 깨달음, 해탈 및 많은 동양 전통에 공통적인 신비주의의 다른 개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23]
플로티누스에게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진정한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좋은 것과 동일시하는 데에 있다. 행복은 물질적인 어떤 것 너머에 있기 때문에, 플로티누스는 세속적인 운명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행복을 구성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잠재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소유하지 않은 단 한 명의 인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엔네아드 I.4.4)라고 말한다. 행복의 문제는 플로티누스가 서구 사상에 남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며, 그는 에우다이모니아(행복)가 의식 내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플로티누스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성취한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개념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완벽한 삶”은 이성과 사색을 지배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엔네아드 I.4.4) 행복한 사람은 플로티누스의 동시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행복과 슬픔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행복을 내면적인 방식으로 사는 것(내면성 또는 자급자족)으로 여겼고, 이것은 구체화된 욕망의 대상에 대한 집착의 반대이다.[25]
플로티누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하면서, 그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설명된 "하나인 것"(to hen)을 중시하여, 말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것을 신과 동일시했다. 만물(영혼, 물질)은 무한한 존재(선의 이데아)인 "일자"(to hen)에서 유출된 누스(이성)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유출설). 일자는 유한한 존재인 만물과는 다른 존재이며, 일자 자신은 유출에 의해 어떠한 변화·증감도 없다. 마치 태양 자신은 변하지 않고, 태양에서 나온 빛이 주위를 비추는 것과 같다. 빛에서 멀어지면 점차 어두워지는 것처럼, 영혼·물질에도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또한, 인간은 "일자"에 대한 사랑('''에로스''')에 의해 "일자"로 회귀할 수 있다. 일자와 합일하여, 망아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엑스타시스'''라고 한다. [『에네아데스』VI 9의 제11절] 다만, 엑스타시스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물게, 소수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플로티노스 자신은 생애에 겨우 네 번 정도 경험했다고 한다.
3. 3. 영혼의 정화와 합일(合一, Henosis)
헤노시스(Henosis)는 고전 그리스어로 신비적인 "일체", "합일" 또는 "통일"을 의미한다. 플라톤주의에서, 특히 신플라톤주의에서는 헤노시스의 목표가 현실의 근본적인 것, 즉 유일자(τὸ Ἕν), 근원, 또는 모나드와의 합일을 뜻한다.[26]헤놀로지에 관한 플로티노스의 저술에 따르면, 개인은 백지상태에 도달하여 유일자를 파악하거나 유일자와 합일될 수 있다. 이 절대적인 단순성은 누스(nous) 또는 인격이 녹아서 모나드로 완전히 흡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에서 모나드는 데미우르고스(demiurge) 위에 있는 선(善)으로 언급될 수 있다.[27][28] 모나드 또는 두나미스(dunamis, 힘)는 하나의 특이한 표현(의지 또는 선인 유일자)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모나드에 포함되어 있고 모나드가 모든 것이다(범신론). 모든 분열은 하나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특이성에 도달하기 전의 마지막 단계인 이원성(dyad)은 모나드, 근원 또는 유일자 안에서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일원론 참조).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 또는 실체로서, 모나드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무한하고 불확정적인 모든 것은 두나미스 또는 유일자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플로티노스에게 헤노시스는 명상을 통해(서구 사고방식에서는 비관조로) 의식의 존재론적 과정을 역전시켜 개인(존재) 내에서 어떤 사고(누스 또는 데미우르고스)도, 어떤 분열(이원성)도 없는 상태로 향하는 것이다. 플로티누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행 중에 직접 접촉했던 여러 세계 종교들도 조화시키려고 했다. 플로티누스의 저술은 물질을 환상(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금욕적인 특성을 지닌다. 물질은 본질적으로 그 존재에 필수적인 것으로 엄격하게 취급되었으며, 참된 또는 초월적인 특성이나 본질, 실체 또는 우시아(οὐσία)를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철학적 관념론이라고 한다.[29]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하면서, 그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설명된 "하나인 것"(to hen)을 중시하여, 말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것을 신과 동일시했다. 만물(영혼, 물질)은 무한한 존재(선의 이데아)인 "일자"(to hen)에서 유출된 누스(이성)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유출설). 일자는 유한한 존재인 만물과는 다른 존재이며, 일자 자신은 유출에 의해 어떠한 변화·증감도 없다. 마치 태양 자신은 변하지 않고, 태양에서 나온 빛이 주위를 비추는 것과 같다. 빛에서 멀어지면 점차 어두워지는 것처럼, 영혼·물질에도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다.
또한, 인간은 "일자"에 대한 사랑('''에로스''')에 의해 "일자"로 회귀할 수 있다. 일자와 합일하여, 망아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엑스타시스'''라고 한다. [『에네아데스』VI 9의 제11절] 다만, 엑스타시스에 이르는 것은 매우 드물게, 소수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플로티노스 자신은 생애에 겨우 네 번 정도 경험했다고 한다. 또한 제자 포르푸리오스는 『플로티노스의 생애와 그의 저술의 순서에 관하여』(『플로티노스 전』이라고 불린다)에서, 자신은 한 번 경험했다고 적고 있다.
3. 4. 미학
어떤 사물은 때때로 아름답고 때로는 아름답지 않으므로, 사물인 것과 아름다운 것은 별개의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원인으로 조화(symmetria)가 거론될 수 있지만, 만약 이것이 아름다움의 원리라면 아름다움은 복합체에만 존재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빛이나 단음처럼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으며, 또한 “절제는 어리석음이다”라는 명제와 “정의는 승자의 편이다”라는 명제는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이러한 윤리관은 아름답지 않다. 따라서 조화는 아름다움의 원리가 아니다.[32]아름다움이 감지되는 것은 무언가 정신을 끌어들이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정신과 동질적인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사물은 아름답지 않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근원은 로고스의 밝음의 중심으로서 빛에 비유되는 신이며, 초월적인 아름다움(to hyperkalon)인 일자(一者)를 정점으로 하여, 누스, 여러 덕의 이데아, 여러 존재자의 형상, 질료라는 아름다움의 계층이 성립한다. 이러한 구상은 플라톤적이며, 그 증명 방법은 플라톤처럼 신화(mythos)에 의존하지 않고 미적 경험의 분석에 의한다.[32]
예술적 아름다움과 자연적 아름다움을 원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지만, 예술은 자연 사물을 모방해서는 안 되고, 자연적 아름다움을 성립시키는 원리를 모방해야 한다. 즉 예술가에게는 정신의 직관력에 의해 로고스로서의 이데아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플로티누스의 종교적 미의식은 “네 자신의 영혼 안을 보라.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면, 자신의 행위를 맑게 하고, 자신 안에 아름다움이 보일 때까지 노력하라. 신 즉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하는 자는 자신을 신과 닮은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32]
4. 《엔네아데스》(Enneades)
플라톤의 사상에 심취했던 플로티노스는 육체보다 영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기에, 그의 가족 및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포르피리오스의 『플로티노스의 생애』 중에서). 다행히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그의 작품 54편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전해져 온다. 포르피리오스는 스승의 전 작품을 9권씩 묶어서 총 6집으로 편집했는데, 숫자 9(enneas)는 ‘완성’의 의미를 띠었기에 스승의 가르침이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늘날 그의 작품을 《엔네아데스(Enneades)》라고 부른다. 6집으로 배치된 작품들의 내용 및 주제를 보면 포르피리오스가 체계적으로 편집했음을 알 수 있다. 제1집은 일상적인 주제, 제2집은 대자연, 제3집은 인간의 삶, 제4집은 영혼, 제5집은 정신, 제6집은 하나(궁극적인 선이자 존재)에 관하여 다룬 작품들로 구성했다.[3]
『엔네아데스』(Enneades)는 “하나인 것, 선한 것”, “영혼의 불멸에 관하여” 등 플로티노스의 유고를 그의 제자인 포르푸리오스가 정리한 것이다. 54편의 논문이 6권으로 나뉘어 각 권에 9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6은 완전수이며, 포르푸리오스에 따르면 9는 “신학의 정점<오묘함>”을 나타낸다 (『플로티노스 전기』).[3]
엔네아(Ennea)는 그리스어로 9를, 엔네아스(Enneas)는 “9개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엔네아데스는 그 복수형이다. 한국어로는 『에네아데스』라고도 표기된다.[3]
5. 영향
플로티노스는 당시에 유행하던 인과적 점성술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보인다. 그는 별들이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견해가 우주에 비합리성을 부여하고 도덕적 타락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별들과 행성들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37]
율리안 황제, 히파티아, 가짜 디오뉘시오스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37][38][39][40]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적 가르침을 통해 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였다.[41][42]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플로티누스가 중세 그리스도교와 신학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43]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에너지’에 대한 견해 차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레고리 팔라마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누스를 다르게 해석한 데서 기인한다.
플로티누스의 신비주의적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통해 기독교 신학에 도입되었다. 그의 저작은 피치노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되었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교적 사상과 후세의 신비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플로티노스는 영지주의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신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일은 없다”며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5. 1. 고대와 중세
플로티노스는 당시에 유행하던 인과적 점성술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보인다. 후기 저술 2.3장 "별들은 원인인가?"에서 플로티노스는 특정 별들이 한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완벽한 우주에 비합리성을 부여하고 도덕적 타락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별들과 행성들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역행 운동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37]율리안 황제와 히파티아는 신플라톤주의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37] 신플라톤주의는 가짜 디오뉘시오스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38][39][40]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종 "플라톤주의자"로 불리지만,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적 가르침을 통해 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였다.[41][42]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동방 정교회의 ‘에너지’에 대한 견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해와 종종 대조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우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동방 정교회의 경우 그레고리 팔라마스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누스를 다르게 해석한 데 기인한다.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초기 기독교의 아우구스티누스 등에도 영향을 미쳐 기독교 신학에 도입되었다고 여겨진다. 플로티누스의 저작 자체는 중세 서유럽에는 전해지지 않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인 피치노가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재발견되었다(1492년 간행). 피치노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교적인 사상을 키웠고, 또 후세의 신비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플로티노스는 동시대의 영지주의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플로티노스 자신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영지주의를 포함한)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한다.
5. 2. 르네상스 시대
플로티누스의 저작은 중세 서유럽에는 전해지지 않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인 피치노가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재발견되었다(1492년 간행). 피치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교적인 사상을 키웠고, 후세의 신비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5. 3. 현대 철학에의 영향
플로티노스는 당시 유행하던 인과적 점성술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보인다. 후기 저술 2.3장 "별들은 원인인가?"에서 플로티노스는 특정 별들이 한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완벽한 우주에 비합리성을 부여하고 도덕적 타락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37] 그러나 그는 별들과 행성들이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역행 운동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율리안 황제와 히파티아는 신플라톤주의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37] 신플라톤주의는 가짜 디오뉘시오스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38][39][40]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종 "플라톤주의자"로 불리지만,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적 가르침을 통해 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였다.[41][42]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동방 정교회의 ‘에너지’에 대한 견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해와 종종 대조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우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동방 정교회의 경우 그레고리 팔라마스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누스를 다르게 해석한 데 기인한다.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초기 기독교의 아우구스티누스 등에도 영향을 미쳐 기독교 신학에 도입되었다고 여겨진다. 플로티누스의 저작 자체는 중세 서유럽에는 전해지지 않았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인 피치노가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재발견되었다(1492년 간행). 피치노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교적인 사상을 키웠고, 또 후세의 신비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플로티노스는 동시대의 영지주의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플로티노스 자신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영지주의를 포함한)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한다.
6. 비판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신플라톤주의는 중세 이슬람에 영향을 주었으나, 그 과정에서 변형이 있었다. 무타질라파 압바스 왕조는 그리스 사상을 국가 지원 하에 편찬된 문서에 융합했고, 이는 이스마일파 시아파와 무함마드 알 나사피, 아부 야쿠브 시지스타니와 같은 페르시아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44]
11세기에는 이집트 파티마 왕조가 신플라톤주의를 채택하여 가르쳤다.[44] 하미드 알딘 알 키르마니는 파티마 궁정에 신플라톤주의를 전했지만, 그의 가르침은 플로티노스의 원래 가르침에 더 가까웠던 나사피와 시지스타니와는 달랐다.[45] 키르마니의 가르침은 나시르 흐스라우 같은 페르시아 철학자들에게 다시 영향을 미쳤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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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プロティノス伝』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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