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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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았으며,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천 신학 교수를 역임하며, 현대 영성에 대한 통찰력을 인정받았다. 1986년에는 라르쉬 공동체에서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소명을 찾았다. 나우웬은 저술 활동을 통해 영성에 대한 성경적 해석과 사상을 제시하며, 1996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39권의 책을 출판했다. 그의 저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넘어 널리 읽히며,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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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덜란드 네이케르크에서 태어났다.[56] 1957년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은 후, 심리학을 공부하며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노틀담 대학교,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 유수 대학에서 실천 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56] 그는 뛰어난 설교가이자 현대 영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학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85년, 그는 안정적인 교수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장 바니에와의 만남과 라르쉬 공동체 방문은 그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86년, 나우웬은 캐나다 토론토 인근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합류하여,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영성 지도자이자 사제로 봉사하는 삶을 선택했다.[56]
1996년 네덜란드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56] 그의 저서와 영성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성경에 기반한 그의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 영성 이해는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2. 1. 초기 생애와 사제 서품

헨리 나우웬은 1932년 1월 24일 네덜란드 네이커르크에서 태어났다.[56][1] 그의 아버지는 세무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아메르스포르트에서 가업의 부기로 일했다.[8] 그는 4남매 중 장남이었으며, 남동생 파울 나우웬(Paul Nouwen)은 네덜란드의 저명한 사업가가 되었고, 삼촌 툰 람셀라르(Toon Ramselaar)는 위트레흐트 대교구 소속의 가톨릭 사제였다.[2]
나우웬은 예수회가 운영하는 헤이그의 알로이시우스 칼리지에서 공부한 뒤, 아펠도른의 소신학교에서 1년을 보냈다. 이후 사제가 되기 위해 라이젠버그의 주요 신학교로 진학하여 6년간 철학(2년)과 신학(4년)을 공부했다.[8][56]
1957년 7월 21일, 그는 위트레흐트 성 카타리나 대성당에서 베르나르두스 요하네스 알프링크 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평생 위트레흐트 대교구 소속 사제로 남았다.[3][18][56] 사제가 된 후, 나우웬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알프링크 주교에게 신학 대신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18]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져 1957년부터 1964년까지 네이메헌 가톨릭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심리학을 통해, 당시 신학계에서 간과되기 쉬웠던 신앙의 인간적인 측면을 탐구하고자 했다.[4] 이 시기 그는 종교 심리학자 한 포르트만(Han Fortmann)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8] 그는 임상 목회 교육(CPE) 운동의 창시자인 안톤 보이센에 관한 논문을 준비했지만, 과학적 분석과 임상 연구 부족으로 승인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 수정 대신 1964년에 doctorandus 학위를 취득하며 학업을 마쳤다. 'doctorandus'는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영국이나 미국의 박사 학위와는 동등하지 않다.[4][56]

doctorandus 학위를 받은 후, 나우웬은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에 있는 메닝거 재단으로 건너가 2년간 종교와 정신 의학 프로그램의 펠로우로 연구했으며,[4][5]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영향을 받았다.[4] 그는 토페카 주립 병원에서 임상 목회 교육 훈련을 받았다.[6] 1965년 6월 19일 메닝거 재단의 신학 및 정신 의학 이론 훈련 프로그램을 마쳤다.[7] 나우웬은 임상 현장에서 이론적인 분석보다는 환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깨달았고, 현대 심리학과 영성 사역을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시기 그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1965년에는 미국의 시민권 운동의 중요한 사건인 셀마-몽고메리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8]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했으며,[56]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암스테르담 연합 목회 연구소에서 일하며 위트레흐트 가톨릭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영성을 가르쳤다. 1971년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42]
2. 2. 학문적 여정
1950년, 사제가 되기 위해 드리에베르겐 근처 리젠버그에 있는 대 신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 철학(2년)과 신학(4년)을 공부했다. 1957년 7월 21일, 위트레흐트 성 카타리나 대성당에서 위트레흐트 대교구의 베르나르두스 요하네스 알프링크 주교에게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았다.[3][18] 그는 평생 위트레흐트 대교구 소속 사제로 남았다.[56]사제품을 받은 후, 나우웬은 상담하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알프링크 주교에게 신학 대신 심리학 공부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 1957년 9월부터 1964년까지 네이메헌 가톨릭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신앙의 인간적인 면을 탐구하는 수단으로 심리학을 사용하고자 했으며, 이 시기 종교 심리학자 한 포르트만(Han Fortmann)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8] 그의 논문 주제는 임상 목회 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 운동을 시작한 미국 목사 안톤 보이센이었으나, 과학적 분석과 임상 연구 부족으로 논문은 승인되지 않았다. 결국 박사 학위를 위한 논문 수정 대신 1964년 '독토란두스'(doctorandus) 학위를 취득하며 학업을 마쳤다.[4] 이는 박사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네덜란드 학위로, 영국이나 미국의 박사 학위와는 다르다.[56]
이후 나우웬은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에 있는 메닝거 재단의 종교와 정신 의학 프로그램 펠로우로 2년간(1964-1966 추정) 연구했으며,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영향을 받았다.[4][5] 그는 토페카 주립 병원에서 임상 목회 훈련을 받았고,[6] 1965년 6월 19일 메닝거 재단의 신학 및 정신 의학 이론 훈련 프로그램을 졸업했다.[7] 이 시기 나우웬은 이론적인 분석보다 환자와의 직접적인 관계 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현대 심리학과 영성 사목을 통합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보여 1965년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주요 사건인 셀마-몽고메리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8]
1966년부터 1968년까지는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목회심리학 객원교수로 활동했다.[56]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암스테르담 연합 목회 연구소에서 일하며 위트레흐트 가톨릭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영성을 가르쳤다.[42] 이 시기 네이메헨에서 사목 신학, 심리학, 사회학, 교리교수학 시험을 통과하여 또 다른 독토란두스 학위를 받기도 했다.[56] 1971년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42]
1971년부터 1981년까지는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목회 신학 교수로 재직하며 종신교수가 되었다.[56][9] 이 시기 National Catholic Reporter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들을 출판하며 점차 폭넓은 독자층을 얻기 시작했다.[9] 예일 재직 중 여러 차례 안식년을 가졌는데, 이는 그의 저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74년: 뉴욕주 제네시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인 제네시 수도원에서 7개월간 생활하며 일기를 썼고, 이는 1976년 《제네시 일기》(Genesis Diary)로 출간되었다.[10]
- 1976년: 미네소타주 콜레지빌에 있는 세인트 존스 수도원 부설 에큐메니컬 및 문화 연구소 펠로우로 활동했다.
- 1978년: 로마에 있는 교황청 북미 대학 연구원으로 있었다.
- 1979년: 어머니의 사망 후 다시 제네시 수도원을 찾아 머물렀으며, 이때의 경험은 《자비의 외침》(A Cry for Mercy) 출간으로 이어졌다.[11]
나우웬은 자신이 트라피스트 수도 생활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제네시 수도원과 당시 원장이었던 존 유데스 밤버거(John Eudes Bamberger)와의 관계는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10] 예일대를 사임한 후 1년 이상 그곳에서 지냈으며, 1982년 8월 6일 자신의 사제 서품 25주년을 기념하는 장소로 제네시 수도원을 택하기도 했다.[13]
1981년 예일대를 떠난 후, 나우웬은 6개월간 남아메리카로 건너가 볼리비아와 페루를 여행하며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험을 했다.[14][56] 1983년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의 신학 교수로 초빙되어 호레이스 뎁 렌츠 강사(Horace De Y. Lentz Lecturer)로 활동했다.[15] 이 자리는 시간제 임용으로, 매년 6개월만 강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 센터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16][56] 그는 1985년까지 하버드에서 가르쳤다.[17]
1985년, 장 바니에의 초대로 프랑스 트로슬리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에서 9개월(또는 1년)간 생활하며[56] 자신의 소명이 학자나 교수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그의 학문적 여정 이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2. 3. 라르쉬 공동체와의 만남
나우웬의 영성은 장 바니에와의 우정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은 나우웬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르치던 중에 만났다.[18] 바니에는 나우웬이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를 프랑스 트로슬리-브뢰유에 있는 라르쉬 공동체의 첫 공동체 방문하도록 초대했다.[1] 나우웬은 이 프랑스 공동체를 두 번 방문했고, 1985년에는 9개월 동안 머물렀다.[19] 이 체류 기간 동안 나우웬은 자신이 그동안 찾지 못했던 삶의 목적, 즉 성찬 중심의 공동체를 라르쉬에서 발견했다고 여겼다.[20]나우웬이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그는 결혼식을 주례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갔고, 온타리오주 리치먼드 힐에 있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그곳에 있는 동안 레이먼드라는 핵심 멤버가 차에 치여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21] 나우웬은 공동체와 레이먼드의 가족에게 영적인 지도를 제공했으며, 사고에 대해 공동체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과 공동체 사이의 화해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우웬의 헌신적인 모습은 데이브레이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들은 나우웬에게 공동체의 목사(사제)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1][22]
나우웬은 1985년 하버드 대학교 신학 대학원 교수직을 사임하고,[56] 1986년 가을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초대를 받아들여 그곳으로 이주했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영성지도자이자 사제로 활동하며 보냈다.[23] 데이브레이크에서 나우웬은 발달 장애가 심한 핵심 멤버인 아담 아네트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나우웬은 "우리 우정에서 주된 혜택을 얻는 사람은 아담이 아니라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이 관계를 통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음을 고백했다.[24] 그는 아네트와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 ''아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라는 책을 썼다.[25] 이는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그의 중요한 영적 여정을 보여준다.[56]
2. 4. 내적 갈등과 죽음
마이클 앤드루 포드(Michael Andrew Ford)가 쓴 나우웬의 자서전 《헨리 나우웬의 초상》에 따르면, 그는 어릴 적부터 동성애적 감정으로 인한 내적인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삶의 후반기에는 자신의 성향에 대한 갈등을 공개하고픈 유혹과 압력을 받았으나, 친구들은 그의 영성가로서의 명성에 해가 될 수 있다며 만류했다.[57]나우웬은 자신의 성 정체성 문제로 고심했으며, 이는 그의 자기 의심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4][26]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고뇌를 알고 있었지만, 나우웬 자신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 문제를 인정하고 사적인 일기에 개인적인 고뇌를 암시했을 뿐, 공개적으로 동성애자로 밝히지는 않았다.[27] 그의 저서 탕자의 귀향에서 나우웬은 자신을 매혹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결국 관계가 무너지면서 우울증과 타인의 인정 및 수용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한 한 우정에 대해 묘사한다. 전기 작가 마이클 포드는 나우웬의 사후 출판된 전기 『상처 입은 예언자』에서 이러한 점들을 언급했다. 포드는 나우웬이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온전히 편안해졌으며, 그의 우울증은 부분적으로 로마 가톨릭 사제로서의 독신 서약과 그가 경험한 외로움 및 친밀함에 대한 갈망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18] 포드는 "이것은 그의 삶에 엄청난 정서적, 영적, 육체적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의 이른 죽음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18] 사제로서의 정결 서약과 육체적, 정서적 친밀함에 대한 인간적 욕구를 조화시키려는 그의 고뇌는 저술에도 나타나지만, 나우웬이 독신 서약을 어겼다는 증거는 없다.[26][27]

나우웬은 1996년 9월 21일 네덜란드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저서 탕자의 귀향에 관한 네덜란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중이었다. 첫 번째 장례 미사는 9월 24일 위트레흐트 성 카타리나 대성당에서 열렸으며, 라르슈 공동체의 창설자인 장 바니에가 추도사를 맡았다. 이후 나우웬의 시신은 캐나다의 라르슈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 공동체의 배려로 캐나다로 운구되어 매장되었다. 두 번째 장례 미사는 9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마컴에 있는 변용 슬로바키아 가톨릭 대성당에서 열렸으며, 하루 전인 9월 27일에는 리치먼드 힐의 성 마리아 이매큘레이트 가톨릭 교회에서 종일 장례 예식이 거행되었다.[29] 나우웬은 라르슈 데이브레이크의 작업장 '더 우더리'(The Woodery)에서 제작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채롭게 색칠한 소나무 관에 안치되었다.[30] 그는 데이브레이크 공동체 구성원들의 묘지 근처에 묻히기를 원했던 자신의 뜻에 따라 리치먼드 힐의 성 요한 성공회 교회 묘지에 묻혔다.[31] 그의 부모 묘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스테런(Geijsteren)에도 나우웬을 기리는 기념 표지가 세워져 있다.
나우웬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유산을 수 모스텔러(Sue Mosteller)에게 맡기고 그녀를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문학적 집행자로 지정했다. 토론토 성 미카엘 대학의 존 M. 켈리 도서관에 '헨리 J.M. 나우웬 기록 보관소 및 연구 컬렉션'(Henri J.M. Nouwen Archives and Research Collection)을 설립한 것은 모스텔러가 나우웬의 개인 기록을 통합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이 작업에는 라르슈 데이브레이크에 있던 개인 서신, 원고, 시청각 자료 등을 정리하는 것과, 1975년부터 예일 신학 대학 도서관에 보관하기 시작했던 기록들의 공개를 협상하는 것이 포함되었다.[32][36] 나우웬 기록 보관소는 2000년 9월에 문을 열었다.[33]
3. 사상과 영성
헨리 나우웬의 사상과 영성은 그가 평생 씨름했던 외로움과 대인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41] 그리고 우울증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33] 그는 자신의 내면적 고통과 영적 여정을 솔직하게 글로 풀어냄으로써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으며, 이는 그가 영적 지도자로서 널리 인정받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42] 나우웬은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일상의 구체적인 삶과 통합하고자 노력했다.[43]
그의 사상은 여러 저작을 통해 구체화되었는데, 특히 ''사랑의 내면의 목소리''나 ''돌아온 탕아''와 같은 책에서는 사랑, 용서, 영적 귀향과 같은 주제를 깊이 탐구했다.[42] 또한, 나우웬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생명 존중과 평화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이나 베트남 전쟁 개입과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44]
가톨릭 사제이자 예일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실천 신학을 가르친 저명한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1985년 교수직을 내려놓고 1986년 캐나다 토론토의 라르슈 공동체로 이주하여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것은 그의 사상과 영성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그는 열정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한 강연으로도 유명했으며,[18][1] 예수 중심적인 그의 영성은 가톨릭뿐 아니라 성공회, 복음주의 등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18] 1996년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저서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영적 성찰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3. 1. 주요 주제
나우웬은 외로움과 대인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41] 이러한 자신의 내면적 고통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썼다.[33] 그가 영적 지도자로서 널리 인정받은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뇌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능력에 있다.[42] 그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고민과 그 자신의 기독교적 삶의 여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인 관심사에 통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항상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깊은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씨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했다.[43]
나우웬의 글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그가 겪었던 우울증과 이를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조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이 주제를 가장 깊이 다룬 작품은 ''사랑의 내면의 목소리''로, 이 책은 그가 극심한 임상 우울증을 겪었던 1987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다. 나우웬은 또한 ''돌아온 탕아''라는 책에서도 이 주제를 탐구하며, 사랑과 용서를 무조건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이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렘브란트가 그린 동명의 그림과 화가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영적인 본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성찰을 나눈다.[42]
나우웬은 평화 만들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여러 글을 썼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생명을 존중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지속되던 냉전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라는 그의 깊은 신념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기도한다는 것은, 즉 우리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는 분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거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는 곳에서 나는 모든 나의 형제자매들을 만난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모든 사람과의 연대는 현재의 순간에 거하는 두 가지 측면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44]
일본에서도 최근 나우웬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분야에서 높아지고 있다. 영문학자 오츠카 노유리[51], 나우웬에게 직접 배운 사카이 요스케[52] 등이 신앙과 영성의 관점에서 그를 소개하고 있으며, 사회복지학자 키하라 카츠노부[53]는 기독교 사회복지학의 입장에서 나우웬의 사상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있다.[54] 그의 저서들이 다수 번역되어 널리 읽히면서, 나우웬의 사상에 대한 소개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3. 2. 영적 지도와 실천
나우웬은 외로움과 대인 관계에 대한 욕구로 어려움을 겪었으며,[41]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썼다.[33] 영적 지도자로서 그의 인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뇌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42]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기독교적 삶의 여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인 관심사에 통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항상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깊은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씨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했다.[43]
나우웬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자신의 우울증과 기독교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이 주제를 다룬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랑의 내면의 목소리''로, 임상 우울증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1987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다. 나우웬은 또한 ''돌아온 탕아''에서 이 주제를 탐구하며 사랑과 용서를 무조건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이 책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렘브란트의 그림 묘사와 화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비유를 통해 영적인 귀향의 여정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42]
나우웬은 평화 만들기의 필요성에 관한 여러 에세이를 썼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명 보존의 근거로 삼아,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정당화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라는 그의 신념과 일치했다.
기도한다는 것은, 즉 우리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는 분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거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거하시는 곳에서 나는 모든 나의 형제자매들을 만난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모든 사람과의 연대는 현재의 순간에 거하는 두 가지 측면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44]
나우웬은 대중 강연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가르치는 일 외에도 피정을 인도하고 설교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뚜렷한 억양과 활기찬 연설 스타일을 지닌 나우웬은 매력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유명했다.[18] 그의 설교는 마치 연극 공연이나 지휘자의 연주를 보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었다.[18] 나우웬은 연설이나 강의 중에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거나 팔과 손을 흔드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1] 밥 매시(Bob Massie)는 그의 저서 ''Befriending Life''(2001)에서 나우웬의 강연을 본 경험을 "그는 의미를 공기 중에서 직접 짜내려는 듯 손짓을 하고 잡아당기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목을 돌리며 마치 각 손가락으로 작은 냄비를 저으려는 듯했다"고 묘사했다.[45]
나우웬의 예수 중심적인 영성은 성공회 신자와 복음주의자를 포함한 폭넓은 청중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1992년, 그는 로버트 H. 슐러의 초청을 받아 캘리포니아주 가든 그로브의 크리스탈 대성당에서 열린 ''파워의 시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3주 연속으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그의 설교 영상은 나중에 슐러가 새로운 목사들을 가르칠 때 설교 모델로 사용하기도 했다.[18]
가톨릭 사제이면서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천 신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뛰어난 설교가였으며, 현대 영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85년 학문적 영역으로서의 대학 교수직을 갑자기 사임하고, 장 바니에(Jean Vanier)의 영향을 받아 1986년 캐나다 토론토의 라르슈 공동체로 이주했다. 라르슈 공동체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그룹 홈으로, 기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곳이다. 나우웬은 이곳에서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1996년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그의 저서는 오늘날까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영성에 관한 성경 해석과 사상은 성경적 신앙에 입각한 복음주의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광범위한 영역에서 나우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영문학자 오츠카 노유리[51], 나우웬에게 직접 사사한 사카이 요스케[52] 등이 신앙과 영성의 관점에서 그를 소개하고 있으며, 사회복지학자 키하라 카츠노부[53]는 기독교 사회복지학의 입장에서 학술 연구[54]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번역서도 많이 출간되어 폭넓게 지지를 받으며 나우웬의 사상 소개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4. 저술 활동
헨리 나우웬은 생전에 39권의 책을 출판하고 수백 편의 글을 썼다.[36] 그의 책들은 전 세계적으로 7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36] 2003년 ''크리스천 센추리'' 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 성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로 헨리 나우웬의 이름이 올랐다.[37] 그의 여러 저서 중 ''상처 입은 치유자'', ''탕자의 귀향'' 등은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38][39]
4. 1. 주요 저서
헨리 나우웬은 생전에 39권의 책을 출판했고 수백 편의 기사를 썼다.[36] 그의 책들은 전 세계적으로 7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다.[36] 2003년 ''크리스천 센추리''가 실시한 잡지 조사에서 나우웬의 작품은 가톨릭 및 주류 개신교 성직자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작가로 나타났다.[37] 그의 저서에는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의 이름으로'', ''로마의 어릿광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마음의 길'' 등이 있으며,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책 중 하나는 ''탕자의 귀향''이다.[38][39]
나우웬은 프랑스의 라르쉬 트롤리-브뢰유(L'Arche Trosly-Breuil) 공동체를 방문하던 중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 포스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직접 그림을 보기로 결심하고,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당시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방문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림을 며칠 동안 묵상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동명의 책을 쓰게 되었다. ''탕자의 귀향''은 2014년 ''처치 타임스''가 선정한 기독교 서적 100선에서 66위를 차지했다.[40]
다음은 그의 주요 저서 목록이다.
4. 2. 한국어 번역 저서
4. 3. 헨리 나우웬 관련 도서 (한국)
5. 평가 및 영향
가톨릭 사제이면서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실천 신학 교수를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뛰어난 설교가였으며, 현대 영성 분야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5년에는 안정적인 교수직을 내려놓고, 장 바니에(Jean Vanier)의 영향을 받아 1986년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르슈 공동체로 이주했다. 라르슈 공동체는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그룹 홈으로, 기도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곳이다. 나우웬은 이곳에서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1996년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저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넘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영성에 관한 그의 성경 해석과 사상은 성경적 신앙을 중시하는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사상은 여러 나라에서 연구되고 소개되고 있으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51][52][53][54]
5. 1.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가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내용이며,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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