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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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진실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88년 삼성전자 VCR 광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문구로 스타덤에 올랐고, MBC 드라마 《질투》를 통해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남부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여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별은 내 가슴에》, 《장밋빛 인생》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톱스타로 활동했다. 2000년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했으나 이혼 후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2008년 악성 댓글과 루머로 인한 고통으로 자살하며,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인터넷 게시글 규제 강화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최진실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08년 9월 최진실
이름최진실
로마자 표기Choe Jinsil
한자 표기崔眞實
출생일1968년 12월 24일
출생지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사망일2008년 10월 2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사망 원인목맴 자살
안장 장소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갑산공원묘원 하늘재 소공원
국적대한민국
직업배우
활동 기간1988년–2008년
종교개신교(침례회)
가족최진영 (남동생)
최서준 (남동생)
친척최재성 (6촌 오빠)
배우자조성민 (2000년 결혼 ~ 2004년 이혼)
자녀최환희 (아들)
최준희 (딸)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수상 내역
춘사영화상신인여우 (1990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신인여우 (1991년)
MBC 연기대상여자 최우수상 (1992년)
백상예술대상영화부문 여우주연 (1994년)
한국모델페스티벌CF 부문 대상 (1995년)
대종상여우주연상 (1995년)
SBS 연기대상여자 최우수연기상 (1994년, 1995년)
MBC 연기대상대상 (1997년)
KBS 연기대상여자 최우수연기상 (2005년)
백상예술대상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 (2006년)
에이판 스타 어워즈공로상 (2014년)
출연 작품
주요 드라마질투
별은 내 가슴에
주요 영화미스터 맘마
마누라 죽이기
마요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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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실 - 조성민 (야구인)
    조성민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나 부상 후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야구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했으며, 배우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 사망 후 사회적 논란을 겪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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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영은 1988년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청춘스타로 활동하고 1999년 가수로도 데뷔했으나, 누나인 최진실의 사망 후 우울증을 겪다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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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영은 1988년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청춘스타로 활동하고 1999년 가수로도 데뷔했으나, 누나인 최진실의 사망 후 우울증을 겪다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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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자살 - 이호성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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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자살 - 안재환 (배우)
    안재환은 1995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으며, 서울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하고 뷰티유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역임했으며, 2007년 주성대학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으나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2. 생애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성신병원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서울불광국민학교, 1984년 동명여자중학교, 1987년 선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굿네이버스 친선대사(2006년), 경기국제보트쇼·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홍보대사(2008년)를 역임했다.

연예 매니지먼트 연혁은 다음과 같다.
* 배병수
* 박진희
* 대박기획(대표이사 김정수)
* 스타즈(대표이사 김성훈)
* 플로라베이직(대표이사 이민자)
* 드림엔터박스(대표이사 서상욱)

다섯 살 때까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에 살다가 경기도 고양시 삼송리로 이사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다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중동 근로자로 떠나면서 은평구 불광동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동생은 배우 최진영이며, 배우 최재성과는 6촌 관계이다. 1985년에 부모가 별거를 시작하여 1998년에 이혼하기까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에 예체능, 특히 미술에 재능을 보여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다.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 친구들 사이에서 '최수제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예계 진출을 결심하였고, 연예계 진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에는 연예인 중 최고 소득자로 기록되었고, 같은 해 제29회 '저축의 날'에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1988년 최진영의 지원으로 광고 모델로 데뷔하였다. 삼성전자 VCR 광고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가 크게 유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89년 MBC 특채 배우로 발탁되어 드라마에 데뷔하였다.

1990년대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통해 영화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992년 드라마 《질투》를 통해 청춘스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993년에는 가수 변진섭과 교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1994년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심리학자이자 여성운동가 역을 맡았고,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로 재투자하였다. 같은 해 금융실명제 홍보 모델로서 김영삼 대통령이 마련한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았다. 1995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1996년 신한국당 광고 모델이 되었는데, 연예인이 정당의 광고 모델이 된 것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이었다.

1997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는 최고 66.9%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이 드라마로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편지》는 1998년 청룡영화상에서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을 받았다. 1998년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배우 부문에서 최고 인기 연예인으로 뽑혔다. 1999년에는 대한민국 연예인 최초로 일본 광고계에 진출하였다.

2000년 조성민과 결혼하였으나, 2004년 이혼했다. 이혼 후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하여 KBS 연기대상에서 '여자 최우수 연기상'과 '네티즌상'을 받았다. 2008년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켰다.

최진실은 만 39세(세는나이 41세)에 세상을 떠났다.

2.1. 어린 시절과 데뷔 (1968년 ~ 1988년)

최진실은 1968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 은평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가난 때문에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서울불광초등학교(1981년 졸업), 동명여자중학교(1984년 졸업), 선일여자고등학교(1987년 졸업)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미술에 재능을 보였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화가의 꿈을 접었다. 대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연예계 진출을 결심했다.

어머니는 1985년 아버지와 별거 후 1998년 이혼하였다. 최진실에게는 배우 겸 가수였던 남동생 최진영과 아버지의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두 명의 이부형이 있었다.

1986년 KBS 연기자 공채 시험에 동생과 함께 합격했지만, 어머니의 반대와 연수비 문제로 배우의 꿈을 잠시 미뤄야 했다.

1988년, 동생 최진영의 도움으로 광고 모델로 데뷔하였다. 최진영은 최진실의 프로필 사진을 광고계에 돌리며 홍보 활동을 도왔고, 덕분에 최진실은 광고 출연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삼성전자 광고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카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최진실 신드롬'을 일으켰다. 같은 해 MBC 사극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에 출연하며 TV 배우로 데뷔하였다.

2.2. 1990년대: 톱스타로의 도약 (1988년 ~ 2000년)

1990년대 초
1990년대 초


1988년 MBC 사극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TV 배우로 데뷔하여 1년간 꾸준히 조연으로 활동했다. 1990년 영화 《남부군: 북한의 남한 파르티잔》에서 간호원 역으로 제11회 청룡영화상과 춘사영화예술상에서 신인 여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에서 주연을 맡아 제29회 대종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 여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두 영화 모두 각각 1990년과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 최진실은 청춘 드라마 《두 권의 일기》(1990)에서 활기찬 역할로 주목받았다. MBC 대학생 퀴즈 프로그램 《퀴즈 아카데미》,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다.우리들의 천국》에서 가짜 학생 승미 역을 맡았으나, 다른 작품 활동 일정 때문에 드라마 초반 하차했다.

1991년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에서 고등학생 다혜 역,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웁살라 대학교 종교학과 학생 수잔 브링크(본명 신유숙) 역을 연기했다. 스웨덴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된 이 영화에서 입양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숲속의 방》에서 학생 운동가이자 자살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1991년 11월 MBC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에 출연, 4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간시대: 최진실 진실》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1992년 MBC 드라마 《질투》에서 주연을 맡아 최고 시청률 56.1%를 기록, 해외 방영된 최초의 한국 드라마가 되었다. 1993년 중국 하얼빈TV에서 방영되며 한국 드라마의 아시아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트렌디 드라마'라는 용어는 《질투》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최진실은 하경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신세대 여성 직장인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 여배우로 사랑받았다. 이후 영화 《미스터 맘마》(1992),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1993), 영화 《마누라 죽이기》(1994) 등에 출연했다.

1994년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출연, 출연료를 영화 제작비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제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SBS 드라마 《사랑의 향기》(이병헌과 공연)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 SBS 연기대상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1995년 제1회 한국 모델 페스티벌 CF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SBS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에 출연했다. 11월 《마누라 죽이기》로 제33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7년 영화 《편지》,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당신과 나》에 주연으로 출연했다.별은 내 가슴에》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해외에 방영된 드라마 중 하나였고, '한류'라는 용어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별은 내 가슴에》(1997)에서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 한국에서 50% 시청률을 기록하며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1997년 11월 개봉한 《편지》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최진실은 제19회 청룡영화상에서 8번째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당신과 나》는 1997년 10월부터 1998년 4월까지 주말에 방영, 66.9%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7년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8년 자서전 《그래, 오늘도 진실로 살자》를 출판했다.

1999년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김혜자와 호흡), 영화 《마요네즈》에 출연했다. 《마요네즈》는 김혜자의 추천으로 딸 역에 캐스팅되었다.

2000년 영화 《단적비연수》에 출연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2.3. 결혼, 이혼, 그리고 복귀 (2000년 ~ 2008년)

2000년 12월, 최진실은 5살 연하의 야구 선수 조성민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어 약 50만 명이 접속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2001년 아들 환희를, 2003년 딸 준희를 출산했다.

2002년 MBC 드라마 《그대를 알고부터》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중국 교포 역을 맡아 연변 사투리를 구사했고, 성 차별적인 한국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조성민과의 불화가 시작되었고,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펼치며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 최진실은 이에 대해 이혼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대응했다. 2004년, 조성민은 최진실을 폭행했고, 최진실은 멍든 얼굴을 공개하며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결국 2004년 9월, 최진실은 조성민과 이혼했다.

이혼 후 최진실은 광고 모델 계약 해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최진실은 이를 여성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5년, 최진실은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위암 말기 전업주부 역을 맡아 열연했고, 드라마는 최고 4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진실은 이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7년에는 MBC 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에 출연하여 시청률을 견인했고, 2008년에는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가정관리사 역을 맡아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4. 사망과 사회적 영향 (2008년)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향년 40세(만 39세).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었다. 최진실은 안재환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사채업' 루머 등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이것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최진실의 죽음은 당시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오랫동안 톱스타 자리를 지켜온 최진실의 죽음은 연예인에 대한 악성 댓글과 사이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은 인터넷 루머가 개인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고 지적하며, 최진실의 죽음을 통해 사회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진실은 사망 전날인 10월 1일, 조선일보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발언도 했지만, 목소리에는 걱정과 우울함이 묻어났다고 한다. 사망 당일 새벽에는 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최진실의 발인은 10월 4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기독교식으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경기도 성남시 성남영생원에서 화장 후 양평군 갑산공원에 안치되었다.

이후, 동생 최진영은 2010년 3월에, 전 남편 조성민은 2013년 1월에 각각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3. 사회적 기여

최진실은 배우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다. 2006년 굿네이버스 친선대사로 위촉되었고, 2008년에는 경기국제보트쇼·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1991년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 공연을 열어 수익금 30을 기부했고, 1999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시각장애인 개안 수술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 약정식을 가졌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에는 부도 처리된 기아자동차를 돕기 위해 무료로 광고에 출연했다. 200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젊은 작가 창작 지원을 위한 전시회'에 큐레이터로 참여, 수익금을 젊은 미술가들에게 기부했다.

2002년 재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교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한동대학교에 50을 기부하여 '최진실 장학금'을 만들었다. 2004년 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생존자를 지원했다.

2005년 12월 백혈병 환자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히말라야산맥 안나푸르나산 남벽 베이스캠프(4200m)까지 등반했다. 2007년 굿네이버스와 함께 결식 아동을 위한 여름방학교실 캠프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했다.

2008년 최진실 사망 후, 친구들은 '최진실 재단' 설립을 추진, 그해 12월부터 재단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3.1. 여성 인권 신장

최진실은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이혼 후 자녀들의 성(姓)을 자신의 성으로 변경하는 등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2004년,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한 후 건설회사로부터 '사회적 명예 실추', '사생활 관리 실패' 등의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이에 대해 최진실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혼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여성운동단체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법조인 강지원과 교류하게 되었고, 여성학자 오한숙희와도 교류하며 여성학 관련 서적을 읽었다. 민변 여성복지위원장 진선미 변호사는 "연예인의 CF 계약은 일명 '노예계약'이라지만, 이번 사안처럼 이혼을 최대 귀책사유로 보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반인권적이다"라고 말했다. 신혜수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은 최진실의 사건이 잘 해결되어 여성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2004년 12월, '여성 문화예술인의 인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여성계 인사들은 최진실 사건을 통해 여성 연예인 인권 문제와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최진실은 여성단체 후원 바자회에 물품을 기증하는 등 성 차별 철폐 노력에 동참했다.

2008년 1월 1일부터 자녀의 성(姓)과 본(本) 변경이 가능해지자, 최진실은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허가 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이를 허가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장필화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법이 받아들인 것이고 이에 따라 합법성의 기준이 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진실의 자녀 성본(姓本) 변경은 유명인으로서는 첫 사례여서, 변화하는 가족 형태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9월 30일, 시사IN의 고재열 기자 주최의 《블로거와의 대화》에 첫 초대 명사로 나온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다음 대화 상대자로 최진실을 추천하며, "최진실은 자녀의 성본(姓本) 변경 이후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떴고 눈을 뜬 것을 넘어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성(姓)을 쓰게 할 만큼 사회 진보의 선봉에 선 그를 만나봐야 한다"라고 평가했다.

최진실은 2004년에 젠더폭력에 대항해 싸우면서 강지원, 오한숙희 등과 인연을 맺었다. 2004년 12월 26일,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기획하는 연극 '[https://en.wikipedia.org/wiki/The_Vagina_Monologues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강지원과 함께 관람하였다. 최진실은 여성운동계와의 소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고 밝혔으며, 여성운동계와의 연대 경험은 최진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3.2. 사회적 발언

2008년 5월, 최진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지켜보면서 침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발표하는 데 대해 섭섭함을 표했다.

2008년 7월, 독도 영유권 명기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에 분노를 표현했다.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등에서 일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비판했다.

2008년 3월,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에서 동성애를 다루고 싶다는 의견을 냈으나 시대적 한계로 좌초되었다.

3.3. 공익 활동

최진실은 1991년 5월 소년소녀가장 돕기 자선 공연을 열어 수익금 3천만 원을 기부했다. 이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창 시절 등록금 문제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99년 4월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시각장애인 개안 수술비 지원을 위한 후원금 약정식을 가졌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부도 처리된 기아자동차를 돕기 위해 무료로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CF 1편 출연료가 3억 원에 달하는 최고 광고 모델이었기에 기아자동차에 큰 도움이 되었다. 2000년 5월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젊은 작가 창작 지원을 위한 전시회'에 큐레이터로 자원하여, 수익금을 젊은 미술가들에게 기부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02년 6월에는 재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교를 찾아 재정 및 학습 기자재를 지원했다. 한국통신과의 재계약을 계기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교육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달 한동대학교에 5천만 원을 기부하여 '최진실 장학금'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대한민국 대학교에 대중예술인의 이름을 건 첫 장학금이었다.

2004년에는 밀양 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생존자를 지원했고, 2006년 4월에는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친선대사로 위촉되어 아동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보육원을 방문하거나 입양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등 아동 인권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7년 7월에는 굿네이버스와 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주최한 결식 아동을 위한 여름방학교실 캠프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했다.

2008년 사망 후, 친구들은 고인의 뜻을 기려 '최진실 재단' 설립을 추진했고, 같은 해 12월 이영자, 조성아 등이 성로원 아기집에 기부금을 전달하며 재단 활동을 시작했다.

4. 출연 작품

최진실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고 조언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방송사 연출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유재석안재욱이다.

유재석은 최진실의 추천으로 톱스타가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 최진실은 MBC의 한 고위급 연출가에게 유재석을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메인 MC로 추천했다. 당시 유재석은 크게 유명하지 않았고 최진실과 친분도 없었지만, 최진실은 KBS 《서세원 쇼》에 출연했던 유재석을 눈여겨보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뒤 강력하게 추천했다.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톱스타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안재욱 역시 최진실의 추천으로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1997년)에 출연하게 되었다. 최진실은 같은 소속사에 있던 안재욱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안재욱은 이 드라마에서 최진실의 상대역을 맡아 톱스타 반열에 올랐으며,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하여 한류 스타로 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4.1.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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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연도방송사작품명역할비고
1988년MBC조선왕조 오백년 - 한중록장미데뷔작
1989년MBCMBC 베스트셀러극장 - 시진읍벙어리TV 드라마 첫 주연작
MBC잠들지 않는 나무찬주
MBC조선왕조 오백년 - 파문박선아
MBC제5열대권후보자의 딸 장기화추리 소설 원작
MBC당신의 축배김범경
1990년MBC각시방에 사랑 열렸네오도희설 특집 뮤지컬 드라마
MBC두 권의 일기해리청소년의 달 특집 2부작
MBC우리들의 천국승미1기 초대 여주인공
MBC추억여행미리추석 특집극
1992년MBC약속정인최고 시청률 41.5%
MBCMBC 베스트극장 - 풍경은실단막극
MBC질투유하경16부작, 최고 시청률 56.1%
MBC매혹지훈
1993년MBC폭풍의 계절진희66부작, 최고 시청률 52.1%
1994년SBS사랑의 향기영진52부작
1995년SBS째즈채송화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TV 드라마
SBS아스팔트 사나이오화련허영만 화백 원작, 최고 시청률 32.9%
MBC아파트차나리54부작, 최고 시청률 34.6%
1997년MBC별은 내 가슴에이연이·소피아16부작, 최고 시청률 49.3%
MBC그대 그리고 나윤수경58부작, 최고 시청률 62.4%
1998년MBC추억인영최고 시청률 38.4%
1999년MBC장미와 콩나물손미나51부작, 최고 시청률 44.1%
2002년MBC그대를 알고부터이옥화48부작
2004년MBC장미의 전쟁오미연23부작
2005년KBS장밋빛 인생맹순이24부작, 최고 시청률 41.1%
2007년MBC나쁜여자 착한여자이세영140부작, 최고 시청률 24.6%
2008년MBC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홍선희16부작, 최고 시청률 19.8%

4.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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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도역할비고
남부군1990년박민자 역이태 원작
꼭지딴1990년혜지 역액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년미영 역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1991년다혜 역하이틴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년수잔 브링크 역
숲속의 방1992년소양 역강석경 원작, 공지영 각색
미스터 맘마1992년영주 역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년유라 역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년강민주 역양귀자 원작
마누라 죽이기1994년장소영 역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1995년은재 역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1995년김주영 역
고스트 맘마1996년차인주 역
홀리데이 인 서울1997년전화 교환수 역왕가위 식 연출 영화
베이비 세일1997년지현 역
편지1997년정인 역
마요네즈1999년아정 역전혜성 원작·각색
단적비연수2000년비 역은행나무 침대 속편

5.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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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명칭, 수여 연도, 부문, 후보, 결과
시상식연도부문후보/작품결과비고
APAN 스타 어워즈2014공로상최진실수상
백상예술대상1991영화 부문 여자 신인연기상남부군후보
영화 부문 인기상나의 사랑 나의 신부수상
1992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수잔 브링크의 아리랑후보
영화 부문 인기상수상
1993TV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질투후보
TV 부문 인기상수상
1994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수상
1995마누라 죽이기후보
영화 부문 인기상수상
1997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고스트 맘마후보
영화 부문 인기상수상
1998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편지후보
1999영화 부문 인기상마요네즈수상
2006TV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장밋빛 인생수상
청룡영화상1990여우신인상남부군수상
여우조연상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1여우주연상수잔 브링크의 아리랑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2여우주연상숲속의 방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3결혼 이야기수상
1994여우주연상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5여우주연상마누라 죽이기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7여우주연상고스트 맘마후보
인기스타상수상
1998여우주연상편지후보
인기스타상수상
2008명예 인기스타상최진실수상
춘사영화상1990여우신인상남부군수상
대종상1991나의 사랑 나의 신부수상
1993인기여우상결혼 이야기수상
1994여우주연상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후보
인기여우상수상
1995여우주연상마누라 죽이기수상
1997고스트 맘마후보
그리메상1998당신과 나수상
황금촬영상1991여우신인상나의 사랑 나의 신부수상
1994인기스타상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수상
KBS 연기대상2005여자 최우수연기상장밋빛 인생수상
네티즌상수상
베스트 커플상 (손현주와 함께)수상
한국방송대상1998여자 연기자상당신과 나수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1991여우신인상나의 사랑 나의 신부수상
한국모델페스티벌1995대상 (CF 부문)최진실수상
MBC 연기대상1989여자 신인상한중록후보
1992여자 최우수연기상수상
1993폭풍의 계절수상
1997대상수상
여자 최우수연기상별은 내 가슴에후보
베스트 커플상 (안재욱과 함께)수상
2007여자 최우수연기상나쁜 여자 착한 여자후보
2008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후보
공로상최진실수상
SBS 연기대상1994여자 최우수연기상사랑의 향기수상
1995수상
TV Journal 스타 오브 더 이어 어워즈1992대상최진실수상
1993우수상수상

6. 평가 및 논란

최진실은 1990년 MBC 《퀴즈 아카데미》에 출연하면서 주철환 PD와 20여 년간 인연을 맺었다. 고졸 학력 때문에 처음에는 출연을 망설였지만, 주철환 PD의 설득으로 출연했고 대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동생 최진영이 군 복무를 할 때는 면회를 겸해 MBC 《우정의 무대》에 네 번 출연했다.

2008년에는 주철환 PD의 권유로 OBS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 진행을 맡았다. 주철환 PD는 최진실과 김구라의 조합이 신선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최진실을 '캔디'라고 불렀으며, 사망 후에는 추모시를 기고하고 추모 도서를 발간했다.

한편, 최진실은 이혼 과정에서 사생활 논란에 휩싸였다. 조성민과의 갈등, 가정폭력 피해 사실 공개 후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광고의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문구는 여성운동계의 비판을 받았다.

6.1. 긍정적 평가

최진실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솔직한 성격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광고계, 영화계, 방송계 등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밝고 명랑한 이미지 속에 슬픔과 발랄함이라는 상반되는 특성을 담고서 대중에 어필하였다. 칼럼니스트 박진규는 '최진실은 귀여운 척이 아닌 생활 연기 속에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귀여움이 강점이었다. 물론 그 귀여움 때문에 다른 감정 연기에도 탁월했던 그의 연기가 묻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근한 귀여움이 패셔너블한 여성 배우, 연기 잘 하는 여성 배우가 넘쳤던 1990년대에 최진실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 무기였다'라는 평을 내놓기도 하였다.

1988년에 출연한 삼성전자 광고의 성공으로 최진실은 광고 모델과 배우의 관계를 뒤집어 놓았다. 광고 모델은 배우가 드라마의 성공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은 후에 부업 거리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진실은 광고를 통해 배우가 드라마의 성공을 통해 얻는 인지도 못지않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광고계도 배우의 당당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최진실의 이런 성취는 1988년 하계 올림픽 전후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이 급변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를 걸쳐 청룡영화상에서 '인기 스타상'을 총 8회 수상하면서 1990년대 청룡영화상 최다 '인기 스타상' 수상자가 되었고,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영화 부문에서 총 5회의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닐슨 미디어 리서치는 1992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역대 시청률 톱 50 TV 드라마>를 선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최다 주연 배우를 조사하였는데, 최진실은 MBC약속》(1992년), MBC 《질투》(1992년), MBC 《폭풍의 계절》(1993년), MBC 《그대 그리고 나》(1997년), MBC 《별은 내 가슴에》(1997년), MBC 《장미와 콩나물》(1999년) 등 6편의 TV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등장하여 최다 주연 배우로 기록되었다. 2011년 10월 13일, 네티즌 1300명을 대상으로 한 1990년대 최고의 TV 드라마와 배우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질투》와 최진실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드라마 2위는 《별은 내 가슴에》였다.

최진실은 광고를 통해 대중의 욕망과 환호를 이끌어내는 이미지를 구축한 뒤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시대적 아이콘', '트렌드 세터', '톱스타' 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가벼운 공처럼 톡톡 튀어 오르고 여름 날의 햇살처럼 쨍한 여자, 깜찍하고 귀엽고 편안하고 참신하며 익살스런 숙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붙잡았다. 한남대학교 마정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최진실 신드롬》(1993년)에서 “최진실을 읽어나가는 것은 일단 광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매력과 성공의 근원은 광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를 선호하고 그에게 익숙해진 원인을 찾는 출발점도 같은 곳이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잖은 TV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보이시한 패션'과 '중성적인 매력'을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연예인으로서 여성성과 남성성 모두를 아우르는 포지션을 점할 수 있었다.

최진실은 데뷔 초기에 다소 연기력이 부족했으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좋은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성장했다. 최진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소화한 TV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들은 진정성과 생명력을 얻어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기 외적으로 데뷔 초기부터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었는데,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대중매체에서 이런 모습을 선보였던 배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최진실의 이런 모습은 대중에 인상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대중이 배우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최진실이 20여 년 동안 톱스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월에 따라 연기 변신을 자연스럽게 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대에는 '통통 튀면서 귀여운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고, 30대에는 '대중이 갈망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창출했으며, 40대에는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캐릭터'로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런 모색을 통해 최진실은 배우로서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매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현하였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배국남은 "최진실은 단순한 톱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 드라마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MBC 《질투》(1992년)로 '트렌디 드라마'의 활성화를 꾀했고,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로 '아줌마 트렌디 드라마'의 장을 여는 등 한국 드라마사에 족적을 남긴 스타였다"라고 말했다.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는 최진실·최수종 주연의 MBC 《질투》(1992년)였다.질투》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을 속도감 있는 전개와 세련된 영상, 그리고 경쾌한 주제곡으로 표현했는데, 최고 56.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트렌디 드라마는 신파극 일색의 한국 드라마에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경쾌한 리듬을 부여하며 한국 드라마의 주류를 바꿔놓았다.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에 비해 트렌디 드라마는 가볍고 감각적이었다. 이런 트렌디 드라마의 인기로 한국 드라마계의 중심은 '중견 연기자'들에서 '청춘스타'들로 바뀌게 되었다.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년)은 ‘줌마렐라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여타의 드라마에서는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 고부 간의 갈등, 이혼, 비혼모로서의 삶, 재혼 등이 다소 칙칙하게 그려졌지만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이런 소재들을 똑같이 사용하되 여성의 삶을 보다 경쾌하고 유쾌하게 그렸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최고 19.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매니아를 양산해냈다. 시청자들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청자 게시판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가 제작되기를 바란다는 글들을 올렸고, 이런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 최진실은 코믹한 연기와 로맨틱한 연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고 인터넷상에서 '[http://cafe.daum.net/newzealand/YQ/493?q=%C3%D6%C1%F8%BD%C7 최트루]'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얻었으며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갤러리'에 직접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이 작품의 성공 요인으로 반전의 미학을 살린 '작가', 완성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준 'PD' 그리고 작품 속 '배우'들의 호흡을 꼽았다.

최진실은 2004년에 젠더폭력에 대항해 싸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변호사 강지원, 여성학자 오한숙희 등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의 배우자이기도 한 강지원은 여성문제와 청소년문제에 관심이 많은 법조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2004년 12월 26일, 최진실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기획하는 연극 '[https://en.wikipedia.org/wiki/The_Vagina_Monologues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강지원과 함께 관람하였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여성의 성기를 소재로 성폭력, 동성애, 오르가슴, 출산 등 여성이 겪는 모든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다루면서 여성의 성적 해방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품이다.

최진실은 이러한 여성운동계와의 소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하는 등 여성운동계와의 연대 경험은 최진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6.2. 부정적 평가 및 논란

최진실은 이혼 과정에서 사생활 논란에 휩싸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약 2년간 이혼과 관련하여 사적으로 고려 기간을 가졌으며, 이 기간 동안 이혼 소송을 당하지 않았다. 2004년 9월, 조성민과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약 2년 동안 최진실에 대해 부정행위, 폭력, 명예훼손을 저질렀고, 최진실의 어머니와 남동생에게서 돈을 빌린 후 빚을 갚지 않아 고소당했다. 2002년 11월과 2004년 8월에는 최진실을 폭행했다. 최진실은 가정폭력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후 신한건설은 최진실이 멍들고 부은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계약상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최진실의 가정폭력 피해 사실 공개를 "사회적·도덕적 명예"를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비난하며, 두 자녀도 상속인으로서 피고가 되었다고 판결했다. 여성단체들은 이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며, 가정폭력의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품위"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1988년 삼성전자 광고에 등장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광고 카피는 여성이 남성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여성운동계의 비판을 받았다. 최진실은 이 광고로 인해 부권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 탓을 하는 논리'에 휘둘린 측면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최진실은 자전 에세이에서 성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밝혔고,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통해 여성인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했다고 서술하였다.

7. 최진실이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

최진실은 1990년대 초 한국 트렌디 드라마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92년 MBC 드라마 《질투》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최진실은 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신세대 여성 직장인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질투》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드라마이기도 하다.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는 한류 드라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최진실은 이 드라마를 통해 '영원한 신데렐라'라는 별칭을 얻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등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05년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과 2008년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중년 여성의 삶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중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폭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했다.

최진실은 악성 댓글과 사이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자녀의 성·본 변경과 관련하여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이는 결국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졌다.

또한, 최진실은 자녀의 성·본 변경을 신청하고 허가받은 최초의 유명인으로서, 자녀 성·본 변경 허가 제도의 안착에 기여했다. 2008년 개정된 민법에 따라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게 되면서, 최진실의 사례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 장필화는 최진실의 결정이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합법성의 기준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