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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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크 타이슨은 196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미국의 전 프로 권투 선수로, 1985년 프로 데뷔 후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WBA, WBC, IBF 통합 챔피언을 달성하며 1980년대 후반 복싱계를 장악했다. 1990년 제임스 더글러스에게 KO패하며 몰락하기 시작했고, 1992년 강간 혐의로 3년간 복역 후 복귀했지만,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경기에서 귀를 물어뜯는 사건으로 실격패를 당하는 등 링 안팎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6년 은퇴했으며, 2003년 파산을 겪었다. 이후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1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마이크 타이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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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 2023년 갤럭시콘
본명마이클 제라드 타이슨
출생일1966년 6월 30일
출생지미국 뉴욕시
배우자로빈 기븐스 (1988년 결혼, 1989년 이혼)
모니카 터너 (1997년 결혼, 2003년 이혼)
라키하 스파이서 (2009년 결혼)
자녀7명
신장5 ft 10 in (약 178 cm)
리치71 in (약 180 cm)
체급헤비급
스타일오소독스 스탠스
전체 경기59
승리50
KO 승리44
패배7
무효 경기2
웹사이트마이크 타이슨 공식 웹사이트
아마추어 복싱 메달
전국 주니어 올림픽1981년 노스캐롤라이나 헤비급 금메달
1982년 테네시 헤비급 금메달
골든 글로브1984년 뉴욕 헤비급 금메달
별명
별명 (영어)Iron Mike (아이언 마이크)
Kid Dynamite (키드 다이너마이트)
The Baddest Man on the Planet (지구상에서 가장 악한 남자)
별명 (일본어)アイアン・マイク (아이언 마이크)
キッド・ダイナマイト (키드 다이너마이트)
地上最凶の男 (지상 최강의 남자)
YouTube 채널 정보
채널명Mike Tyson
채널 URLMike Tyson 유튜브 채널
활동 기간2015년 1월 17일 - 현재
구독자 수약 300만 명
조회수약 262,745,698회
실버 버튼
골드 버튼
통계 업데이트2024년 1월 3일
YouTube 채널 정보
채널명Hotboxin' with Mike Tyson
채널 URLHotboxin' with Mike Tyson 유튜브 채널
활동 기간2021년 1월 11일 - 현재
구독자 수약 92.5만 명
조회수약 91,964,210회
실버 버튼
골드 버튼아니오
통계 업데이트2024년 1월 3일
추가 정보
가장 어린 헤비급 세계 챔피언20세에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등극
주요 타이틀세계 복싱 협회(WBA), 세계 복싱 평의회(WBC), 국제 복싱 연맹(IBF) 타이틀 석권
복싱 스타일핍-어-부 스타일
위협적인 복서역대 가장 위협적인 복서 중 한 명으로 평가
강력한 펀치역대 최고의 펀치력 중 하나로 평가됨
최근 경기2024년 11월 16일 제이크 폴에게 판정패
시청률제이크 폴과의 경기에서 전 세계적으로 6천만 가구가 시청 (넷플릭스 기록)
기타 정보
로마자 표기Maikeu Tai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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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6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마이크 타이슨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의 지도를 받으며 복싱에 입문했다.

1985년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하여, 압도적인 힘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그는 '키드 다이너마이트'(Kid Dynamite영어), '아이언 마이크'(Iron Mike영어)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프로 데뷔 후 첫 19번의 시합 중 12번을 1라운드 KO로 승리할 만큼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1986년 10월 22일, Trevor Berbick영어을 2라운드 TKO로 꺾고 WB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역대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이후 WBA, IBF 타이틀까지 차례로 통합하며 1980년대 후반 분열되어 있던 헤비급을 통일한 최초의 통합 챔피언(undisputed heavyweight champion영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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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성공 가도는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와의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KO패를 당하며 큰 충격을 맞았다. 1992년에는 Desiree Washington영어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3년간 복역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복싱계에서 잠시 떠나게 되었다.

1995년 출소 후 링에 복귀하여 헤비급 타이틀 일부를 되찾았으나, 1996년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11라운드 TKO로 패배하며 타이틀을 다시 잃었다(:en:Tyson-Holyfield I). 이듬해인 1997년 열린 홀리필드와의 재대결(:en:Holyfield-Tyson II)에서는 경기 중 홀리필드의 귀 일부를 물어뜯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켜 실격패를 당하고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은 타이슨의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이후 재기하여 2002년 레녹스 루이스에게 도전했지만 KO패했고, 2006년 대니 윌리엄스와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연달아 KO패를 당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타이슨은 선수 시절 막대한 수입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방만한 생활과 관리 실패로 2003년 파산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펀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펀처 100인' 목록에서 16위에 올랐다.

타이슨의 사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아내인 배우 로빈 기븐스와는 1988년 결혼했으나 가정 폭력 논란 끝에 1년 만인 1989년 이혼했다. 두 번째 아내 모니카 터너와는 1997년 결혼하여 5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타이슨의 외도를 이유로 2003년 이혼했다. 2009년에는 4살 된 딸 엑소더스(Exodus영어)가 집 안에서 러닝머신 코드에 목이 감기는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딸이 사망한 지 11일 후, 오랜 연인이었던 라키하 스파이서(Lakiha Spicer영어)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타이슨은 강간 사건 유죄 판결 당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오랜 기간 알코올 중독약물 중독으로 고통받았다고 고백했다. 2013년에는 중독 상태가 심각하여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밝히기도 했으나, 이후 12단계 프로그램 참여 등을 통해 중독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로시빈(매직 머쉬룸)이나 두꺼비 분비물(5-메톡시-N,N-디메틸트립타민)과 같은 환각제 사용이 우울증 및 중독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2년 4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로 향하는 젯블루 항공기 내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승객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으나, 형사 고소되지는 않았다.

2.1. 어린 시절

마이클 제라드 타이슨(Michael Gerard Tyson영어)은 1966년 6월 30일 미국 뉴욕브루클린의 포트 그린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 로드니(1961년경 출생)와 누나 데니스(1990년 2월 24세의 나이로 사망)가 있었다. 타이슨의 출생 증명서상 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의 택시 운전사 퍼셀 타이슨(Purcell Tyson영어)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타이슨이 아버지로 알고 지낸 인물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인근 그라이어 타운 출신의 지미 커크패트릭(Jimmy Kirkpatrick영어)이었다. 커크패트릭은 타이슨의 어머니 로르나 메이 스미스 타이슨(Lorna Mae (Smith) Tyson영어)을 만나기 전 결혼하여 타이슨의 이복형인 지미 리 커크패트릭(Jimmie Lee Kirkpatrick영어)을 두었다. 그는 마이크가 태어날 무렵 가족을 떠났고, 어머니가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커크패트릭은 1992년에 사망했다. 타이슨의 어머니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출신으로, 매춘부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묘사가 있다.

타이슨 가족은 처음에는 브루클린의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에 살았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타이슨이 7살(다른 출처에서는 10살) 때 브라운스빌로 이사했다. 브라운스빌은 당시 미국에서 범죄율이 매우 높은 지역 중 하나였다. 타이슨은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과 독특한 말투(높은 음색과 혀짧은소리)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 괴롭힘으로 인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타이슨이 아끼던 애완 비둘기를 한 불량배가 죽인 사건을 계기로 처음으로 싸움을 벌여 상대를 때려눕혔고, 이를 통해 자신의 힘을 깨달았다. 이후 절도, 강도 등 비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으며, 13세가 되기 전까지 38회(다른 출처에서는 12세까지 51회)나 체포되었다.

결국 그는 뉴욕주 존스타운에 있는 트라이온 소년학교(소년원)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소년원 상담사이자 전직 복서였던 바비 스튜어트(Bobby Stewart영어)가 타이슨의 복싱 재능을 발견했다. 스튜어트는 몇 달간 타이슨을 지도한 뒤, 1980년 3월 복싱 매니저이자 트레이너인 커스 다마토(Cus D'Amato영어)에게 그를 소개했다. 다마토는 타이슨의 잠재력을 즉시 알아보았고, 타이슨이 13세에 가출소하자 그의 보호자가 되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타이슨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중퇴했으나, 1989년 센트럴 주립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기에는 테디 아틀라스(Teddy Atlas영어)도 훈련에 참여했으나 다마토에 의해 해고되었고, 이후 케빈 루니(Kevin Rooney영어)가 타이슨의 훈련을 전담하게 되었다.

타이슨이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다마토는 그의 법적 후견인이 되었다. 타이슨은 훗날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어머니께서 제가 무언가를 해서 기뻐하시거나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니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영향이 없지만, 정서적,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타격입니다."라고 회고했다.

2.2. 복싱과의 만남

12세까지 51회나 체포되어 뉴욕주에서 가장 악명 높은 소년들이 수용되는 트라이온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사회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복싱을 가르치던 복싱 담당 교사였던 Bobby Stewart영어를 만난다. 타이슨은 스튜어트에게 복싱으로 압도당한 후 그의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 처음에는 복싱을 싸움에 이용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점차 복싱 실력이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타이슨의 재능을 알아본 스튜어트는 1980년 3월 타이슨을 전설적인 복싱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에게 소개했고, 다마토는 타이슨의 재능에 크게 놀랐다. 13세 때 타이슨이 소년원에서 가석방되자, 다마토가 보호자가 되어 타이슨은 다마토의 집에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3. 아마추어 경력

아마추어 권투 선수 시절, 타이슨은 1981년과 1982년 주니어 올림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1년에는 조 코르테즈를, 1982년에는 켈턴 브라운을 이겼는데, 브라운의 코너는 1라운드에서 수건을 던졌다. 1984년 타이슨은 뉴욕에서 열린 내셔널 골든 글러브에서 조나단 리틀스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헨리 틸먼과 두 번 싸워 두 번 모두 판정으로 패배했다. 틸먼은 이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84년 하계 올림픽에서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3. 프로 경력

196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마이크 타이슨은 1985년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에 데뷔했다. 데뷔 초부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연승을 이어가며 Kid Dynamite영어, Iron Mike영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첫 19번의 프로 시합 중 12번을 1라운드에서 KO로 승리하는 등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

1986년 11월 22일, 타이슨은 트레버 버빅을 2라운드 TKO로 꺾고 만 20세 4개월의 나이로 WB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역사상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제임스 스미스와 토니 터커를 차례로 꺾고 WBA와 IBF 타이틀까지 통합하여, 3대 기구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최초의 undisputed heavyweight champion영어이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은 1988년 프로모터 돈 킹과 손을 잡으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스승 커스 다마토가 생전에 경고했던 인물인 돈 킹과의 계약 이후, 기존의 코치진과 매니지먼트 팀이 와해되고 타이슨의 사생활이 문란해지는 등 링 안팎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타이슨은 총 9차례의 통합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강력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와의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10라운드 KO패를 당하며 프로 첫 패배와 함께 모든 타이틀을 잃었다. 이는 복싱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1992년, 타이슨은 데지레 워싱턴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3년간 복역했다. 1995년 출소 후 링에 복귀하여 프랭크 브루노와 브루스 셀던을 꺾고 WBC와 WBA 헤비급 타이틀을 다시 획득했다. 하지만 1996년 11월,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11라운드 TKO패를 당하며 WBA 타이틀을 빼앗겼다.

1997년 6월 열린 홀리필드와의 재경기에서는 복싱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귀 깨물기 사건'을 일으켰다. 타이슨은 경기 중 홀리필드의 귀를 두 차례 물어뜯어 결국 3라운드 종료 후 실격패를 당했고, 이로 인해 3의 벌금과 함께 약 1년 3개월간의 라이선스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복귀했지만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링 안팎에서 폭행 사건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002년에는 당시 통합 챔피언이었던 레녹스 루이스에게 도전했으나 8라운드 KO패를 당했다. 2003년에는 막대한 수입에도 불구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결국 2005년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6라운드 종료 후 기권패를 당한 뒤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타이슨은 그의 강력한 펀치력을 인정받아 링 매거진의 '역대 가장 위대한 펀처 100인' 목록에서 16위에 올랐다. 은퇴 후에도 여러 이벤트 경기를 통해 링에 오르기도 했으며, 2020년에는 로이 존스 주니어와, 2024년에는 유튜버 제이크 폴과 경기를 가졌다.

3.1. 초기 경력

196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타이슨은 1985년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계에 데뷔했다.

프로 데뷔는 1985년 3월 6일, 헥터 멜세데스를 상대로 1라운드 1분 47초 만에 TKO 승리를 거두며 화려하게 시작했다. 데뷔 초 타이슨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연승을 이어갔다. 그의 별명은 Kid Dynamite영어와 Iron Mike영어였으며, 초기 19번의 프로 시합 중 12번을 1라운드에서 KO로 승리하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타이슨은 뛰어난 손 빠르기, 정확성, 신체 조정 능력, 타이밍 감각과 강력한 파워를 결합하여 상대 선수를 압도했다. 또한, 그의 멘토였던 쿠스 다마토에게 배운 피크어부 스타일을 구사하며 뛰어난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손을 높이 들어 상대의 펀치를 피하고, 자신의 타이밍에 맞춰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타이슨의 폭발적인 펀치력은 훅이나 어퍼컷을 날리기 직전에 몸을 웅크렸다가 다리의 탄력을 이용해 힘을 싣는 독특한 방식에서 나왔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는 상대의 복부에 오른쪽 훅을 날린 후, 턱에 오른쪽 어퍼컷을 날리는 콤비네이션이었다. 로렌조 보이드, 제시 퍼거슨, 호세 리발타 등이 이 기술에 쓰러졌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11연승을 거둔 직후인 1985년 11월, 아마추어 시절부터 타이슨을 발굴하고 키워 온 트레이너 쿠스 다마토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련을 맞기도 했다.

다마토 사후에도 타이슨은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27연승을 기록한 뒤 1986년 11월 22일, 트레버 버빅과 WBC 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첫 세계 타이틀 매치를 치렀다. 타이슨은 이 경기에서 2라운드 TKO승을 거두며 만 20세 4개월의 나이로 역사상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제임스 스미스(3월 7일, 판정승)와 토니 터커(8월 1일, 판정승)를 차례로 꺾고 WBA와 IBF 타이틀까지 모두 획득하며, WBA, WBC, IBF 3대 기구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최초의 undisputed heavyweight champion영어이 되었다. 타이슨의 압도적인 경기력은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복싱 평론가 도널드 손더스는 "권투의 고귀하고 남성적인 예술은 이제 뎀프시, 투니, 루이스, 마르시아노, 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헤비급 챔피언을 발견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에는 불안 요소도 존재했다. 1987년 6월 21일, 주차장 여성 직원에게 강제로 키스하고 남성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105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1988년 2월에는 배우 로빈 기븐스와 결혼했지만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 끝에 곧 이혼했고, 이 과정에서 타이슨은 10의 위자료를 지급했다.

결정적으로 1988년 마이클 스핑크스와의 경기 이후, 쿠스 다마토가 생전에 경고했던 프로모터 돈 킹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으면서 타이슨의 경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돈 킹은 타이슨의 주변 인물들에게 접근하여 기존 팀의 와해를 조장했다. 타이슨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빌 케이턴과 지미 제이콥스(백혈병으로 사망)가 팀을 떠났고, 다마토의 복싱 철학을 계승하며 타이슨의 훈련과 사생활까지 관리해주던 트레이너 케빈 루니마저 해고되었다. 다마토가 구축했던 팀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새로운 팀에는 타이슨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만 모여들었고, 타이슨의 사생활은 급격히 문란해졌다. 이혼 소송, 자살 시도, 교통사고, 방탕한 생활, 훈련 부족 등 링 밖에서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링 밖의 혼란은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8년 8월 23일에는 과거 상대였던 미치 그린과 할렘 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 오른손 골절상을 입어 프랭크 브루노와의 경기가 연기되었고, 9월 5일에는 운전 중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실신하기도 했다. 10월에는 아내 로빈 기븐스로부터 이혼 소송과 함께 1억 2천 5백만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타이슨은 1989년 2월 25일 프랭크 브루노를 꺾고, 7월 21일에는 칼 윌리엄스를 1라운드 TKO로 제압하며 타이틀을 방어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예전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와의 방어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몰락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타이슨의 압승을 예상했고(라스베이거스 미라지 호텔의 배당률은 42대 1로 타이슨의 압도적 우세), 이 경기는 이벤더 홀리필드와의 빅매치를 위한 조정 경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타이슨은 훈련 중 스파링 파트너에게 다운을 당하는 등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실제 경기에서도 타이슨은 특유의 스텝인과 위빙이 무뎌진 모습을 보였고, 30cm의 리치 차이를 활용한 더글러스의 공격에 고전했다. 8라운드 막판, 타이슨의 강력한 오른쪽 어퍼컷이 더글러스에게 적중하며 다운을 빼앗았지만, 링사이드 타임키퍼의 카운트 시작이 늦어 실질적으로 13초가 넘는 롱카운트가 적용되었고 더글러스는 KO패를 면했다. 위기를 넘긴 더글러스는 10라운드에 콤비네이션 펀치로 타이슨을 다운시키며 KO승을 거두었다. 이는 타이슨의 프로 경력 첫 패배였으며,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모두 잃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타이슨 측은 경기 후 롱카운트에 대해 항의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타이슨은 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펀처 100인' 목록에서 16위에 올랐다.

3.2.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등극

196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타이슨은 1985년 만 18세의 나이로 프로 복싱에 데뷔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압도적인 기량으로 연승을 거듭하며 주목받았다.

1986년 10월 22일, 타이슨은 당시 WBC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트레보 버빅에게 도전하여 2라운드 TKO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그는 만 20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타이슨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WBA와 IBF 타이틀을 차례로 통합하며, WBC, WBA, IBF 3대 기구 헤비급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 최초의 복서가 되었다. 이 시기 그는 분열되어 있던 헤비급을 통합하고 명실상부한 undisputed heavyweight champion영어(통합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타이슨은 잔인하고 위협적인 복싱 스타일과 강력한 펀치력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프로 데뷔 후 첫 19번의 경기 중 12번을 1라운드에서 KO로 승리하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그는 Kid Dynamite영어, Iron Mike영어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독주는 영원하지 않았다.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와의 통합 타이틀 방어전에서 예상 밖의 KO패를 당하며 챔피언 벨트를 모두 잃었다. 이는 복싱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타이슨은 그의 강력한 펀치력을 인정받아 링 매거진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펀처 100인'(list of 100 greatest punchers of all time영어) 목록에서 16위에 올랐다.

3.3. 3대 기구 통합 챔피언

1986년 10월 22일, 타이슨은 트레보 버빅을 2라운드 TKO로 꺾고 WBC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당시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기록이었다. 이후 타이슨은 무패 헤비급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인 헤비급 통합 시리즈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1987년 3월 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제임스 스미스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기존의 WBC 벨트에 WBA 타이틀을 추가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타이슨 열풍"이 불었다. 같은 해 5월에는 핑클론 토마스를 6라운드 TKO로 꺾었다.

타이슨은 WBA, WBC, IBF 3대 기구의 헤비급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는 Kid Dynamite, Iron Mike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프로 데뷔 후 초기 19번의 경기 중 12번을 1라운드에서 KO로 승리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 후반, 그는 분열되어 있던 헤비급 벨트들을 하나로 통합하며 명실상부한 통합 챔피언(undisputed heavyweight champion)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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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3대 기구 통합 타이틀 방어 기록
기구방어 횟수
WBC9차
WBA8차
IBF6차


링 매거진은 그를 '역대 가장 위대한 펀처 100인' 목록에서 16위로 선정했다. 그러나 통합 챔피언으로서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임스 버스터 더글라스와의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KO패를 당하며 모든 타이틀을 잃었다.

3.4. 돈 킹과의 만남, 그리고 몰락

1988년 마이클 스핑크스 전 이후, 타이슨은 커스 다마토가 생전에 "돈 킹에게는 가까이 가지 마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매니지먼트를 맡기게 된다. 이 결정 이후 타이슨의 기량은 점차 저하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시기, 타이슨의 초기 후원자였던 빌 케이턴과 함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으며 다마토 외에 타이슨이 가장 신뢰했던 짐 제이콥스가 백혈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이 무렵부터 돈 킹은 타이슨의 아내였던 로빈 기븐스에게 접근하며 타이슨 팀 내부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다마토 사후 그의 복싱 이론을 계승했던 트레이너 케빈 루니와 매니저 빌 케이턴마저 해고되면서 다마토가 구축했던 팀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타이슨이 돈 킹과 정식 계약을 맺은 후, 그의 주변에는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만 모여들었고 사생활은 급격히 문란해졌다. 이혼 소송, 자살 미수, 교통사고, 방탕한 생활, 훈련 부족, 잦은 경기 연기 등 링 밖에서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1988년 8월 23일에는 미치 그린과 거리에서 싸움을 벌여 오른손 골절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프랭크 브루노와의 경기가 연기되었다. 9월 5일에는 운전 중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켜 실신하기도 했다. 10월에는 별거 중이던 로빈 기븐스가 이혼 소송과 함께 125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8개월의 공백 끝에 1989년 2월 25일 프랭크 브루노에게 승리하고, 같은 해 7월 21일 칼 윌리엄스를 1라운드 TKO로 꺾었으나, 도노반 라독과의 타이틀전을 갑자기 취소하는 등 혼란은 계속되었다.

영광에서 몰락으로

1990년 2월 11일, 타이슨은 일본 도쿄돔에서 제임스 더글러스와 경기를 가졌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미라지의 배당률이 42대 1에 달할 정도로 타이슨의 압승이 예상되었고, 이벤더 홀리필드와의 경기를 위한 조정 경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 타이슨은 훈련 중 스파링에서 다운을 당하는 등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경기에서도 평소의 저돌적인 움직임이 사라졌고, 더글러스의 긴 리치를 활용한 공격에 고전했다. 8라운드 막판, 타이슨의 어퍼컷으로 더글러스를 다운시켰으나, 링사이드 타임키퍼의 카운트 시작이 늦어 실질적으로 13초의 롱카운트가 적용되어 KO승을 놓쳤다. 위기를 넘긴 더글러스는 10라운드에 타이슨을 KO시키며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타이슨의 프로 첫 패배였다. 타이슨 측은 롱카운트에 항의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강간 사건으로 수감

1990년 12월, Showtime과 120 규모의 페이퍼뷰 계약을 체결했다. 1991년 도노반 라독에게 2연승을 거둔 후, 이벤더 홀리필드와의 경기가 예정되었으나 훈련 중 입은 갈비뼈 부상으로 취소되었다. 이후 18세의 데지레 워싱턴을 강간한 혐의로 1991년 7월 체포되어, 1992년 3월 26일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3년간 복역 후 1995년 3월 25일 가석방되었다. 수감 중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말릭 압둘 아지즈'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여성 교도관을 임신시켰다는 사실도 알려졌으나 출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5년 8월 19일 피터 맥닐리와의 복귀전에서 승리했지만, 약 4년의 공백기를 거치며 이전의 정교한 복싱 스타일은 사라지고 강펀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챔피언 탈환과 좌절

1996년 3월 16일, 프랭크 브루노를 3라운드 KO로 꺾고 WB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으나, 레녹스 루이스와의 대결을 피하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같은 해 9월 7일, 브루스 셀던을 1라운드 KO로 꺾고 WBA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11월 9일 이벤더 홀리필드와의 WBA 타이틀전에서 예상과 달리 11라운드 TKO패를 당하며 다시 타이틀을 잃었다. 당시 타이슨의 압도적 우세가 점쳐졌으나(배당률 8대 1, 기자 예측 49명 중 1명만 홀리필드 승리 예상), 홀리필드에게 무너졌다.

귀 깨물기 사건

1997년 6월 28일 홀리필드와의 재경기에서 타이슨은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경기 중 홀리필드의 귀를 두 차례 물어뜯는 반칙을 저질렀고, 결국 3라운드 종료 후 실격패를 당했다. 이 사건은 '세기의 깨물기'로 불리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반복적인 머리치기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행위로 파이트 머니 30 중 3의 벌금을 부과받고 약 1년 3개월간 라이선스가 정지되었다. 훗날 타이슨과 홀리필드는 이 사건에 대해 화해했다.

1997년 4월, 소아과 의사이자 공화당 정치인 마이클 스틸의 여동생인 모니카 터너와 결혼했으나 2003년 이혼했다. 1998년 3월 5일에는 돈 킹을 상대로 수천만 달러를 갈취당했다며 100의 소송을 제기했다. 라이선스 정지 기간 중이던 1998년 3월 29일에는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레슬매니아 XIV에 특별 심판으로 참가하여 3를 받았다.

폭행 사건과 계속되는 추락

1999년 1월 16일 프랑수아 보타와의 복귀전에서는 여러 차례 반칙을 저지르고 경기 운영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5라운드 KO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 면에서는 기량 저하가 뚜렷했다. 1999년 2월 5일, 전년도 교통사고 당시 운전자를 폭행한 혐의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4개월간 복역했다. 같은 해 10월 23일 오린 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라운드 종료 공이 울린 후 펀치를 날리는 반칙으로 노리스가 부상을 입어 무효 경기가 되었다.

2000년 6월 24일 루 사바리제에게 TKO승을 거뒀으나, 경기를 말리던 심판을 가격하여 187.5의 벌금을 물었다. 10월 20일 앤드류 고로타 전에서는 상대의 경기 포기로 TKO승을 거뒀지만, 경기 후 소변 검사에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와 무효 경기로 변경되었다.

2002년 1월 22일, 레녹스 루이스와의 대결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타이슨은 루이스에게 달려들어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루이스의 허벅지를 물었다고 인정했으며, 이 소동으로 네바다주 애슬레틱 커미션에서 라이선스 발급을 거부당해 경기가 연기되고 멤피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타이슨은 이 난동으로 335의 벌금을 냈다. 2002년 6월 8일 열린 루이스와의 타이틀전에서는 현저한 기량 차이를 보이며 8라운드 KO패를 당했다.

2003년 2월 22일 클리포드 에티엔느에게 KO승을 거두며 얼굴에 새긴 문신을 처음 선보였으나, 이후 루이스의 재경기 제안을 거절했다. 같은 해 폭행 혐의로 체포되고, 돈 킹의 경호원에게 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는 등 문제가 이어졌고, 결국 8월 2일 파산을 신청했다.

2004년 4월 K-1과 계약했으나, 범죄 기록 때문에 일본 입국이 불가능하여 경기는 성사되지 못했다. 7월 30일 대니 윌리엄스에게 4라운드 KO패를 당했는데, 경기 중 입은 무릎 인대 파열이 영향을 미쳤다.

사실상의 은퇴

2005년 6월 11일, 무명의 케빈 맥브라이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으나 6라운드 종료 후 기권하며 TKO패했다. 타이슨은 훗날 이 경기에 대해 돈 때문에 싸웠을 뿐 이길 생각이 없었고, 복싱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고 밝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더 이상 싸울 용기가 없다"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프로 경기가 되었다.

3.5. 강간 혐의로 복역

1991년 7월, 타이슨은 18세의 미인 대회 참가자였던 데지레 워싱턴을 호텔 방에서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듬해인 1992년 3월 26일,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3년만 복역한 뒤 1995년 3월 25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수감 기간 동안 타이슨은 이슬람교개종하였고, مالك عبد العزيز아랍어라는 무슬림 이름을 갖게 되었다. 또한 복역 중 여성 교도관을 임신시켰으나 해당 여성은 출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타이슨은 자신의 자서전 『Undisputed Truth』에서 감옥 생활 중에도 면회 온 팬과 성관계를 갖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인한 약 4년간의 공백기는 타이슨의 권투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25세라는 전성기에 활동을 중단해야 했으며, 출소 후 복귀전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이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강펀치에 의존하는 단순한 스타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 전과 기록으로 인해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입국이 거부되는 등 사회적인 제약도 따르게 되었다.

3.6. 복귀와 재기, 그리고 좌절

1992년 타이슨은 데지레 워싱턴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3년간 복역하였다. 1995년 출소 후, 그는 피터 맥닐리와 버스터 매시스 주니어와의 복귀전에서 쉽게 승리했다. 타이슨의 첫 복귀전은 "그가 돌아왔다!"라는 문구로 홍보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96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미국에서는 PPV 텔레비전으로 63의 기록을 세웠다. 이 경기는 152만 가구에서 시청되어 PPV 시청률과 수익 모두 신기록을 세웠다. 89초 만에 끝난 경기는 타이슨의 매니지먼트가 그의 복귀를 위해 실력이 부족한 상대들을 섭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TV 가이드는 1998년 타이슨-맥닐리 경기를 역대 최고의 TV 스포츠 순간 50선에 포함시켰다.

타이슨은 1996년 3월 프랭크 브루노와의 경기에서 WBC 타이틀을 쉽게 획득하며 벨트 하나를 되찾았다. 이는 두 선수의 두 번째 대결이었으며, 타이슨은 3라운드에서 브루노를 KO시켰다. 같은 해 9월에는 챔피언 브루스 셀던을 1라운드에서 물리치며 WBA 벨트를 추가했다. 셀던은 타이슨의 가벼운 펀치에도 무너진 것처럼 보여 대중 매체로부터 심한 비판과 조롱을 받았다. 당시 레녹스 루이스는 타이슨과의 경기에 대한 13.5의 보장금을 거절했는데, 이는 루이스의 최고 수입이 될 수 있었다. 루이스는 이후 돈 킹으로부터 4를 받고 물러났고, 타이슨은 예상 수입 30를 걸고 셀던과 경기를 치렀다. 타이슨이 셀던을 이길 경우, 다음 경기는 루이스와의 대결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타이슨은 복귀 후 4번째 경기에서 에반더 홀리필드와 WBA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홀리필드는 마이클 무어러에게 챔피언십을 빼앗긴 후 1994년 은퇴했었기에, 당시 34세였던 홀리필드는 기량이 쇠퇴한 선수로 여겨졌고 대부분 그가 패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6년 11월 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타이틀 매치("드디어(Finally)")에서, 예상을 뒤엎고 홀리필드가 11라운드 TKO 승리를 거두었다. 홀리필드는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세 번이나 획득한 두 번째 복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경기 중 홀리필드가 여러 차례 고의적으로 헤드 버트를 했다는 타이슨 측의 주장으로 논란이 되었다. 심판은 이를 우연한 사고로 판정했지만, 이는 재경기의 쟁점이 되었다. 1997년 열린 재경기에서는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 일부를 물어뜯어 실격패를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02년 타이슨은 다시 한번 헤비급 챔피언십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상대는 당시 WBC, IBF, IBO 및 라인열 타이틀 보유자였던 레녹스 루이스였다. 두 사람은 유망주 시절인 1984년 쿠스 다마토가 주선한 훈련 캠프에서 스파링을 한 적이 있다. 타이슨은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며 네바다주에서 경기를 치르려 했으나, 당시 성폭행 혐의로 인해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로부터 복싱 라이선스를 발급받지 못했다. 경기 2년 전, 타이슨은 사바레스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루이스를 향해 "네 심장을 원한다. 네 자식들을 먹고 싶다"는 등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2002년 1월 22일, 경기를 홍보하기 위한 뉴욕 기자회견에서는 두 선수와 관계자들이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여러 주에서 라이선스 발급을 거부당한 끝에, 6월 8일 테네시주 멤피스의 피라미드 아레나에서 경기가 열렸다. 루이스는 경기를 지배했고, 8라운드에서 오른손 펀치로 타이슨을 KO시켰다. 타이슨은 경기 후 루이스의 승리를 칭찬하며 예의를 갖췄다. 이 경기는 당시 미국에서 195만 건의 유료 시청으로 106.9를 벌어들여 유료 방송 역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2003년 2월 22일, 멤피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타이슨은 클리포드 에티엔을 1라운드 49초 만에 이겼다. 경기 전에는 타이슨의 체력 저하, 훈련 중단, 파티 참석, 새로운 얼굴 문신 등의 소문이 돌았다. 이는 타이슨의 마지막 프로 승리가 되었다.

수년간의 재정적 어려움 끝에 타이슨은 2003년 8월 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300 이상을 벌었지만, 당시 부채는 약 23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같은 해 8월 13일, 타이슨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밥 샙이 키모 레오폴도를 이긴 직후 링에 올라 샙과 대면했다. K-1은 타이슨과 샙의 경기를 성사시키려 했으나, 타이슨의 전과 때문에 일본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하는 등 문제로 결국 경기는 열리지 못했다.

2004년 7월 30일, 타이슨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영국 복서 대니 윌리엄스와 경기를 치렀다. 초반 라운드를 지배했으나 4라운드에서 예상치 못한 KO패를 당했다. 경기 후, 타이슨이 1라운드에 무릎 인대가 찢어진 상태에서 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타이슨의 5번째 패배였다. 그는 경기 4일 후 인대 수술을 받았다. 이후 케빈 맥브라이드에게도 KO패를 당한 뒤 2006년에 프로 복싱에서 은퇴했다.

2022년 1월, 타이슨은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로이 존스 주니어와의 복귀전 주최사인 트릴러(Triller)로부터 파이트 머니를 아직 전액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유튜버 제이크 폴과의 시합에 대해서는 시기를 놓쳐 더 이상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같은 해 4월에는 로이 존스 주니어와의 복귀전이 원래는 밥 샙과의 경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6월에는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하여 제이크 폴과의 대결에 대해 "매우 흥미롭다. 올해 안에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2024년 3월, 텍사스주 얼링턴의 AT&T 스타디움에서 제이크 폴과 타이슨의 시합이 7월 20일에 개최되고 넷플릭스를 통해 생중계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4월에는 이 시합이 텍사스주 체육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프로 복싱 공식 경기로, 2분 8라운드, 14온스 글러브 사용 규칙으로 진행된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5월 말, 타이슨이 비행 중 지병인 궤양 재발로 건강 이상을 보여 응급 처치를 받았고, 이로 인해 시합 연기가 발표되었다. 6월 초, 경기는 11월 15일로 재조정되었다.

2024년 11월 15일, 제이크 폴과의 대결에서 타이슨은 초반에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4라운드부터는 거의 손을 쓰지 못했고, 제이크 폴 역시 결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8라운드까지 진행되었다. 결과는 타이슨의 0-3(72-80, 73-79×2) 판정패였다. 타이슨은 경기 내내 총 97발의 펀치만 날렸고, 그중 유효타는 18발에 불과했다. 파이트 머니는 최고 3.1 + 성과급으로 알려졌다.

경기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 테렌스 크로포드: "그의 경기는 형편없었다. ... 그가 경기에서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 코너 맥그리거: "스파링 글러브를 낀 16분간의 스파링. 엿 먹어라."
* 토니 벨류: "녀석(제이크)은 중간에 마이크를 때리는 것을 주저했고, 마이크가 살아남도록 존경과 존엄성을 보여준 것이다."
* 매직 존슨: "중간에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 오늘 밤 경기는 복싱에 있어서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 스티븐 A. 스미스: "58세는 58세다. 그의 다리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았다. ... 이제야말로 제이크를 톱 10 복서, 아니 챔피언과 싸우게 할 때다."
* 라이언 가르시아: "이 시합에 점수를 매길 만한 부분은 없었다."
* 青木真也일본어: "60세 가까운 할아버지가 '진짜' 싸움을 해서는 안 되잖아.", "윤리와 도덕이 자본주의 속에서 매몰되는 것이 괴로웠다."

3.7. 핵이빨 사건

1996년 11월 9일, 타이슨은 이반더 홀리필드에게 WBA 타이틀을 빼앗겼다. 당시 34세였던 홀리필드는 기량이 쇠퇴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11라운드 TKO로 승리하며 예상을 뒤엎었다. 홀리필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타이슨 측은 홀리필드가 경기 중 여러 차례 고의적인 헤드 버트를 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되었다. 심판은 이를 우연한 사고로 판정했지만, 이는 재경기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1997년 6월 28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재경기가 열렸다. The Sound and the Fury(소리와 분노)라는 제목이 붙은 이 경기는 큰 관심을 모으며 당시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타이슨은 30, 홀리필드는 35의 파이트 머니를 받았고, 페이퍼뷰 구매 건수도 199만 건에 달해 2007년까지 최고 기록을 유지했다.

경기는 현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3라운드 중,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오른쪽 귀를 물어뜯었다. 심판 밀스 레인은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타이슨에게 2점 감점을 주었다. 경기가 재개된 후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왼쪽 귀를 다시 물었고, 결국 3라운드 종료 후 실격패를 당했다. 첫 번째 물기 때 떨어져 나간 홀리필드의 귀 일부는 경기 후 링 바닥에서 발견될 정도였다. 타이슨은 이후 홀리필드가 반칙 없이 계속해서 헤드 버트를 했기 때문에 보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종료 후 판정이 발표되자 경기장은 혼란에 휩싸였고, 일부 관중들의 난동으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경기는 50년 만에 실격으로 끝난 첫 헤비급 타이틀 경기였다.

사건 직후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는 타이슨의 파이트 머니 30 중 3를 벌금으로 즉시 몰수했다. 이틀 뒤 타이슨은 성명을 통해 홀리필드에게 사과하고 영구 제명만은 면해달라고 요청했다.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소설가 캐서린 던과 같이 홀리필드의 스포츠맨십을 비판하며 타이슨을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다.

1997년 7월 9일,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타이슨의 복싱 라이선스를 취소하고, 3의 벌금과 청문회 비용 지불을 명령했다. 이로 인해 타이슨은 미국 내에서 복싱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었으나, 1998년 10월 18일 위원회는 4대 1의 결정으로 라이선스를 재발급했다.

훗날 타이슨과 홀리필드는 이 사건에 대해 화해했으며, 함께 방송에 출연하여 당시 상황을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8. 은퇴

2002년 레녹스 루이스와의 헤비급 챔피언십 경기에서 8라운드 KO패를 당하며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이 경기는 당시 미국에서 195만 건의 유료 시청과 106.9의 수입을 기록하며 유료 방송 역사상 최고 매출을 올렸다.

2003년 2월 22일, 멤피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클리포드 에티엔을 1라운드 49초 만에 이겼다. 경기 전 타이슨의 컨디션 난조와 새로운 얼굴 문신 등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이 승리는 타이슨의 마지막 프로 경기 승리가 되었다.

수년간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타이슨은 2003년 8월 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300 이상을 벌었지만, 당시 부채는 약 23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같은 해 K-1과 계약하여 밥 샙과의 경기를 추진했으나, 타이슨의 전과로 인한 비자 문제로 일본 입국이 불가능해 경기는 성사되지 못했다.

2004년 7월 30일,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영국 복서 대니 윌리엄스에게 4라운드 KO패를 당했다. 경기 후 1라운드에 입은 무릎 인대 부상으로 한쪽 다리로 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이슨은 경기 4일 후 인대 수술을 받았다.

2005년 6월 11일, 케빈 맥브라이드와의 경기에서 7라운드 시작 전 기권했다. 훗날 다큐멘터리 영화 타이슨(2008)에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싸웠으며 이길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고, 복싱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고 밝혔다. 마지막 네 경기 중 세 경기를 패배한 후, 타이슨은 복싱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도 재정 문제는 계속되었다. 2007년 8월, 애리조나 법원에서 약물 소지 및 음주 운전 혐의를 인정했으며, 코카인 중독임을 시인했다. 2013년 자서전 Undisputed Truth에서 현역 시절 아내나 유아의 소변을 이용해 도핑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인정했다.

빚을 갚기 위해 2006년 '타이슨의 월드 투어(Tyson's World Tour)'라는 이름으로 시범 경기 복귀를 시도했다. 첫 상대로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서 코리 샌더스(Corey Sanders)와 4라운드 시범 경기를 가졌다. 당시 타이슨은 98kg의 체중으로 비교적 좋은 컨디션을 보였으나 전성기 기량에는 미치지 못했고, 상대인 샌더스(198cm)를 배려해 힘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타이슨은 "재정적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누군가의 샌드백이 될 수도 있다"며 복귀 이유를 설명했지만, 경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투어는 취소되었다.

2022년 1월, 한 팟캐스트에서 로이 존스 주니어와의 복귀전 파이트 머니를 아직 전액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유튜버 제이크 폴과의 대결에도 시기를 놓쳐 관심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는 제이크 폴과의 대결에 대해 "매우 흥미롭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안에 실현되지 않으면 안 돼. 올해 안이야"라며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2024년 3월 7일, 7월 20일 텍사스주 얼링턴의 AT&T 스타디움에서 제이크 폴과의 경기가 넷플릭스를 통해 생중계된다고 발표되었다. 4월 29일, 이 경기는 텍사스주 체육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프로 복싱 공식 경기로, 2분 8라운드, 14온스 글러브 사용 규칙으로 진행된다고 확정되었다. 그러나 5월 26일 타이슨이 비행기에서 지병인 종양 재발로 건강 이상을 보여 응급 처치를 받았고, 이로 인해 5월 31일 경기 연기가 발표되었다. 경기는 11월 15일로 재조정되었다.

2024년 11월 15일, 제이크 폴과의 경기에서 8라운드를 마친 후 0-3 (72-80, 73-79×2) 판정패를 당했다. 초반에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4라운드 이후로는 거의 손을 내지 못했고, 총 97번의 펀치 중 18번만 적중시키는 데 그쳤다. 이 경기의 파이트 머니는 최고 3.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기 반응 ===
* 테렌스 크로포드: "저는 마이크 타이슨을 사랑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너무 과대평가합니다. 그의 경기는 형편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훈련을 하고도 경기 전체에서 97발의 펀치만 날린 것은 이상합니다. 다만 그가 경기에서 부상을 입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코너 맥그리거: "스파링 글러브를 낀 16분간의 스파링. 엿 먹어라."
* 토니 벨류: "이 바보 같은 녀석(제이크)은 싫지만, 이것만은 말해두겠습니다. 녀석은 중간에 마이크를 때리는 것을 주저했고, 마이크가 살아남도록 존경과 존엄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 매직 존슨: "중간에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시합은 모두 보러 갔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픕니다. 오늘 밤 경기는 복싱에 있어서 훌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스티븐 A. 스미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마이크 타이슨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58세는 58세입니다. 그의 다리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노크아웃되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이제야말로 제이크를 톱 10 복서, 아니 챔피언과 싸우게 할 때입니다. 농구 선수, 종합격투기 선수, 노인과 싸우는 것은 이제 충분합니다. 그가 진정한 싸움에 도전할 때가 왔습니다. 그는 이미 충분히 강합니다! 실현시켜 주세요."
* 라이언 가르시아: "이 시합에 점수를 매길 만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 아오키 신야: "60세 가까운 할아버지가 '진짜' 싸움을 해서는 안 되잖아.", "윤리와 도덕이 자본주의 속에서 매몰되는 것이 괴로웠다.", "복싱조차도 이런 엔터테인먼트와 숫자 중심의 풍조에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거지."

4. 은퇴 이후

2003년 2월 22일, 멤피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타이슨은 변방의 경쟁자 클리포드 에티엔을 1라운드 49초 만에 이겼다. 경기 전 타이슨의 체력 저하에 대한 소문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그가 훈련을 중단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파티를 즐기며 새로운 얼굴 문신을 했다고 전했다. 이는 타이슨의 마지막 프로 경기 승리가 되었다.

수년간의 재정적 어려움 끝에 타이슨은 2003년 8월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여러 경기에서 30 이상, 선수 생활 동안 총 300 이상을 벌었으나, 당시 언론은 그의 부채가 약 23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04년 7월 30일, 타이슨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열린 복귀전에서 영국 복서 대니 윌리엄스와 맞붙었다. 타이슨은 초반 라운드를 지배했으나 4라운드에서 예상치 못하게 KO패를 당했다. 경기 후, 타이슨이 1라운드에 입은 무릎 인대 부상으로 인해 한쪽 다리로만 싸우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매니저 셸리 핀켈은 타이슨이 무릎 부상 때문에 오른손 펀치를 제대로 날릴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2013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있는 타이슨

2005년 6월 11일, 타이슨은 아일랜드 출신 복서 케빈 맥브라이드와의 경기에서 6라운드 종료 후 7라운드 시작 전에 기권했다.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타이슨에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맥브라이드와 싸웠으며, 이길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고, 컨디션 난조와 복싱에 대한 열정 상실을 이유로 들었다. 마지막 네 경기 중 세 경기를 패배한 후, 타이슨은 복싱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빚을 청산하기 위해 타이슨은 '타이슨의 월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시범 경기를 발표했다. 2006년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에서 베테랑 헤비급 선수 코리 샌더스와 4라운드 시범 경기를 치렀으나, 전성기 기량에 미치지 못했고 팬들의 반응도 좋지 않아 투어의 나머지 일정은 취소되었다.

2007년 8월, 타이슨은 애리조나 법원에서 약물 소지 및 음주 운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는 12월 체포 건과 관련된 것으로, 당국은 타이슨이 코카인 사용 및 중독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2013년 자서전 Undisputed Truth에서는 현역 시절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당시 아내였던 모니카 터너와 자신의 유아의 소변을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2009년 5월 26일, 4살 된 딸이 자택에서 트레드밀 코드에 목이 감기는 사고로 사망했다. 딸의 사망 11일 후인 2009년 6월 6일, 오랜 연인이었던 라키하 스파이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타이슨은 과거 강간 사건 유죄 판결 당시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2013년에는 알코올 및 약물 중독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임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후 12단계 프로그램 참여 등으로 중독 극복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비건 채식은 중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었을 때 실로시빈(매직 머쉬룸)과 같은 환각제 사용으로 증상이 개선되었다고 언급했으며, 두꺼비 분비물(5-메톡시-N,N-디메틸트립타민) 사용이 약물 및 알코올 중독 개선과 인생관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2022년 4월에는 젯블루 항공기 내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승객에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형사 고소는 되지 않았다.

2020년 7월, 타이슨은 전 4체급 챔피언 로이 존스 주니어와 8라운드 시범 경기를 치르기로 계약했다. 라파엘 코르데이로가 트레이너를 맡았으며, 경기는 캘리포니아 주 체육위원회(CSAC)의 승인을 받아 11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카슨의 디그니티 헬스 스포츠 파크에서 열렸다. 경기는 8라운드 끝에 스플릿 드로(무승부)로 선언되었다 (채점: 채드 도슨 76-76, 크리스티 마틴 79-73 타이슨, 비니 파지엔자 80-76 존스).

같은 해 7월, 타이슨은 소피 왓츠 및 에로스 이노베이션과 협력하여 '마이크 타이슨의 레전드 온리 리그(Mike Tyson's Legends Only League)' 창설을 발표했다. 이 리그는 은퇴한 프로 선수들에게 경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로이 존스 주니어와의 경기가 리그의 첫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는 2020년 최고 판매 PPV 이벤트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2024년 3월, 타이슨은 유튜버 출신 복서 제이크 폴과 7월 20일 텍사스주 알링턴의 AT&T 스타디움에서 프로 복싱 경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경기는 텍사스주 규제 당국(TDLR)에 의해 프로 경기로 승인되었으나, 5월 말 타이슨의 궤양 문제가 악화되어 경기는 11월 15일로 연기되었다. 경기 결과, 타이슨은 8라운드 전원일치 판정승(80-72, 79-73, 79-73)으로 제이크 폴에게 패배했다.

5. 복싱 스타일

헤비급 복서로서는 작은 체격( 178cm, 몸무게 100kg)이지만, 목 둘레가 52cm에 달하는 등 맷집이 상당히 좋았다. '핵주먹'이라는 별명처럼 그의 주먹은 강철 슬레지해머와 같은 파괴력을 지녔다.

타이슨은 헤비급에서는 보기 드문 스피드와 발놀림, 급소를 정확하게 노리는 고도의 공격 기술, 상대의 타격을 단순히 가드로 막는 것이 아니라 바디워크로 피하는 방어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강점들을 무기로 자신보다 훨씬 큰 상대들을 링 위에 쓰러뜨렸다.

그의 복싱 스타일은 플로이드 패터슨과 같은 체육관 출신이라는 점과 유사점이 많다. 두 선수 모두 헤비급에서는 작은 체격이었고, 안면 방어에 집중하며 파고드는 피카부 스타일(peek-a-boo style)을 구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98년 링 매거진은 타이슨을 '역대 최고 헤비급 복서' 14위로 선정했다. 2002년 같은 잡지에서 선정한 '지난 80년간 최고의 복서 80인'에서는 72위에 올랐으며, 2003년 '역대 최고의 펀처 100인'에서는 16위에 랭크되었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마이크 타이슨은 뛰어난 복싱 실력과 별개로 선수 생활 내내 끊임없는 논란과 사건 사고에 휘말렸다.

경기 중 비신사적인 행동이나 판정 논란도 잦았다. 1991년 도노반 러독과의 첫 경기에서는 7라운드에 심판 리처드 스틸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정으로 타이슨의 TKO 승리를 선언하여 관중의 격렬한 항의와 난투극을 유발했다. 1999년 프랑수아 보타와의 경기에서는 초반 열세 속에서 상대의 팔을 비틀려는 반칙을 시도하고 심판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5라운드 KO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오를린 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1라운드 종료 공이 울린 후 펀치를 날려 상대를 쓰러뜨렸고, 노리스가 부상으로 경기를 속행하지 못해 무경기 처리되었다. 2000년 루 사바레스와의 경기에서는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킨 후에도 계속 가격하여 심판을 넘어뜨리기까지 했으며,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레녹스 루이스를 겨냥하며 "네 심장을 원한다! 그의 아이들을 먹고 싶다!"는 등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1997년 이반더 홀리필드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일어난 귀 깨물기 사건이다. 타이슨은 3라운드 중 홀리필드의 귀를 두 번 물어뜯어 결국 실격패 당했다. 첫 번째 물기 후 심판 밀스 레인은 타이슨에게 2점 감점을 주었으나, 경기가 재개되자 타이슨은 또다시 홀리필드의 다른 쪽 귀를 물었다. 이로 인해 홀리필드의 오른쪽 귀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반복적인 헤드 버트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으로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로부터 복싱 라이선스를 박탈당하고 3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라이선스는 약 1년 3개월 후인 1998년 10월에 회복되었다.

2002년 레녹스 루이스와의 통합 타이틀전을 앞두고는 뉴욕 기자회견장에서 루이스 측과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타이슨은 루이스의 허벅지를 물었다고 인정했으며, 저속한 욕설을 퍼부어 큰 물의를 빚었다. 이 난동으로 네바다주에서 라이선스 발급이 거부되어 경기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려야 했다.

선수 생활 말년과 은퇴 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2024년 유튜버 출신 복서 제이크 폴과의 복귀전에서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판정패하며 경기 내용과 판정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경기 후 테렌스 크로포드, 코너 맥그리거, 매직 존슨 등 많은 스포츠계 인사들이 실망감을 표출했다.

타이슨은 매니지먼트와 재정 문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프로모터 돈 킹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으며, 1998년에는 수천만 달러를 착취당했다며 킹을 상대로 100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랜 재정난 끝에 2003년 8월에는 결국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그의 부채는 약 2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4년 FIFA 월드컵 당시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가 상대 선수를 깨문 사건에 대해 "경기장에서 뛰다 보면 이기기 위한 집념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는 경우가 아주 많다"며 수아레스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2023년에는 이스라엘 방위군 친구들(FIDF)이 주최한 모금 행사에 참석한 사진이 공개되어 비판을 받았으나, 타이슨은 모금 행사임을 몰랐고 기부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며 자신은 평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타이슨은 강간 유죄 판결로 3년간 복역했으며(폭행 및 법적 문제 참조), 배우자 폭행, 약물 남용, 음주 운전 등 여러 차례 법적, 도덕적 문제에 연루되었다(약물 및 음주 운전, 여성 관련 문제 참조).

6.1. 폭행 및 법적 문제

1991년 7월, 타이슨은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캔터베리 호텔(캔터베리 호텔)에서 18세의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 데지레 워싱턴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타이슨은 강간 1건, 성폭행 2건, 불법 감금 1건으로 기소되었으며, 이는 최대 63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였다.

타이슨의 강간 재판은 인디애나주 매리언 카운티 상급 법원에서 1992년 1월 26일부터 2월 10일까지 진행되었다. 워싱턴은 타이슨이 자신을 호텔 방으로 유인한 뒤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그녀의 증언은 타이슨의 운전기사 버지니아 포스터와 응급실 의사 토마스 리처드슨 박사의 증언으로 뒷받침되었다. 포스터는 사건 직후 워싱턴이 충격받은 상태였음을 확인했고, 타이슨이 과거 자신에게도 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증언했다. 리처드슨 박사는 워싱턴의 신체 검진 결과가 강간 피해와 일치한다고 증언하며, "성폭행 사건에서 관찰되는 부상의 20~30%와 일치하는 두 개의 작은 질 상처"가 있었고, 합의된 성관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상처라고 설명했다.

타이슨 측 변호인 빈센트 J. 풀러는 워싱턴과의 관계가 합의 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으나, 변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풀러는 백색 칼라 범죄 변호에는 능했지만 성범죄 사건 경험이 부족했고, 증거 확보 및 제시, 인디애나 주법 이해 등에서 미숙함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타이슨의 전 매니저 돈 킹이 과거 풀러의 도움으로 탈세 혐의를 벗어난 인연으로 선임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타이슨 본인도 나중에 풀러를 "끔찍한 변호사"라고 평가했다. 변호팀은 워싱턴의 증언에서 나타나는 모순점(예: 팬티 라이너 제거 이유, 구강성교와 제압의 동시성 문제, 상처 부족 등)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배심원단은 약 10시간의 심의 끝에 1992년 2월 10일, 타이슨에게 강간 혐의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후 앨런 더쇼위츠 변호사가 항소를 맡아 피해자의 과거 성적 행위 증거 배제(강간 피해자 보호법), 변호 측 증인 배제, 배심원 지시 부족 등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인디애나 항소 법원과 인디애나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다.

1992년 3월 26일, 타이슨은 징역 6년과 보호 관찰 4년을 선고받고 인디애나 청소년 센터(현 플레인필드 교정 시설)에 수감되었다. 그는 3년 미만의 형기를 복역한 후 1995년 3월 출소했다. 복역 중 아서 애쉬, 마오쩌둥, 체 게바라 등의 문신을 새겼다. 유죄 판결로 인해 타이슨은 연방법에 따라 II등급 성범죄자로 등록되었다. 타이슨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한편, 1992년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딸 에린 코스비가 1989년 타이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나, 형사 고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타이슨의 폭력성은 결혼 생활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1988년 배우 로빈 기븐스와 결혼했으나, 곧 타이슨의 폭력, 배우자 폭행, 정신적 불안정 문제가 불거졌다. 1988년 9월, 기븐스는 바버라 월터스와의 TV 인터뷰에서 타이슨과의 생활이 "고문, 순수한 지옥"이었으며 타이슨이 "조울증 환자"라고 폭로했다. 타이슨은 이후 출간된 책에서 기븐스를 때린 것을 인정하며 "내가 평생 던진 주먹 중 최고의 주먹이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실렸으나, 타이슨은 해당 책 내용이 부정확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1989년 이혼했다.

2006년 12월 29일, 타이슨은 스코츠데일에서 음주운전(DUI) 및 중범죄급 약물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약물 사용 사실과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했다. 2007년 1월 무죄를 주장했으나, 같은 해 9월 코카인 소지 및 음주 운전 혐의를 인정했다. 2007년 11월, 법원은 타이슨에게 24시간 징역형, 3년 보호 관찰, 36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2013년 출간한 자서전 Undisputed Truth에서는 현역 시절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당시 아내였던 모니카 터너나 자신의 유아 소변을 이용해 검사를 조작했다고 고백했다.

2009년 11월 11일, 타이슨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사진 기자와 몸싸움을 벌여 체포되었으나 기소되지는 않았다. 2022년 4월 20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로 가는 제트블루 항공 기내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다른 승객을 여러 차례 폭행했으나, 이 역시 형사 고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2023년, 익명의 여성이 타이슨을 상대로 5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은 1990년대 초 타이슨이 자신의 리무진에서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과 관계 형성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6.2. 약물 및 음주 운전

2000년 10월 20일, 앤드류 고로타와의 경기 후 소변 검사에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와 무효 경기로 처리되고 3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6년 12월 29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음주운전(DUI) 및 중범죄급 약물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그는 나이트클럽을 나온 직후 경찰 차량과 거의 충돌할 뻔했으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당일 코카인을 사용했다고 인정하고 자신이 중독자임을 시인했다. 2007년 1월 22일, 마리코파군 상급 법원에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으나, 2월 8일 재판을 기다리며 "여러 가지 중독" 치료를 위한 입원 프로그램에 스스로 들어갔다.

2007년 9월 24일, 타이슨은 결국 코카인 소지 및 음주 운전 혐의를 인정했으며, 같은 해 11월 유죄 판결을 받고 24시간의 징역형과 3년의 보호 관찰, 360시간의 사회 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1년 징역형을 요구했지만, 판사는 타이슨이 약물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점을 참작했다.

2011년 3월,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하여 지난 2년간 금주와 채식(veganism)을 통해 삶을 개선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금주에 대해 거짓말을 했으며 실제로는 알코올 중독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더 이상 채식주의자가 아니며 "가끔 닭고기를 먹는다"고 밝혔다.

2013년에 출간한 자서전 Undisputed Truth에서는 과거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당시 아내였던 모니카 터너(1997년~2003년 결혼)나 자신의 아기 소변을 사용했다고 인정했다.

6.3. 여성 관련 문제

마이크 타이슨은 여러 차례 여성과 관련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88년 2월 7일, 타이슨은 배우 로빈 기븐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타이슨의 폭력과 배우자 폭행, 정신적 불안정 문제로 얼룩졌다. 1988년 9월, ABC 방송의 20/20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기븐스는 타이슨과의 생활을 "고문, 순수한 지옥"이라고 표현하며 그를 "조울증 환자"라고 지칭했다. 이 인터뷰 한 달 후 기븐스는 이혼을 발표했고, 1989년 2월 14일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타이슨은 기븐스에게 10의 위자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책에서는 타이슨이 기븐스를 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내용이 실렸으나, 타이슨은 해당 책의 내용이 부정확하다고 주장했다.

1991년 7월, 타이슨은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호텔에서 당시 18세였던 미스 블랙 아메리카 참가자 데지레 워싱턴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워싱턴은 미스 블랙 로드아일랜드 출신이었다. 타이슨은 강간 1건, 성폭행 2건, 불법 감금 1건으로 기소되었다. 1992년 1월 26일부터 2월 10일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워싱턴은 타이슨이 자신을 호텔 방으로 유인하여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성폭행했다고 증언했다. 타이슨의 운전기사는 사건 직후 워싱턴이 충격받은 상태였다고 증언했으며, 응급실 의사는 워싱턴의 신체 상태가 강간 피해와 일치한다고 증언했다. 타이슨 측 변호인 빈센트 J. 풀러(Vincent J. Fuller)는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했으나, 변호 과정에서의 전략 미흡과 풀러 변호사의 성범죄 사건 경험 부족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배심원단은 약 10시간의 심의 끝에 1992년 2월 10일 타이슨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알란 더쇼위츠 변호사가 항소를 진행했으나 기각되었고, 타이슨은 1992년 3월 26일 징역 6년과 보호관찰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인디애나 교도소에서 약 3년간 복역한 후 1995년 3월 가석방되었다. 수감 중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여성 교도관을 임신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유죄 판결로 타이슨은 연방법에 따라 II등급 성범죄자로 등록되었다. 타이슨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또한 1992년,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딸 에린 코스비는 1989년에 타이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나, 형사 고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타이슨은 1997년 4월 19일, 의사 모니카 터너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터너는 당시 조지타운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 수련 중이었으며, 공화당 정치인 마이클 S. 스틸의 여동생이다. 그러나 2002년 1월, 터너는 타이슨이 결혼 생활 중 간통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2003년 1월 14일 이혼했다.

2011년 9월, 타이슨은 한 인터뷰에서 전 알래스카 주지사 사라 페일린에 대해 인종 간 성행위를 저속하고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이 발언은 데일리 콜러 웹사이트에 실렸으며, 기자 그레타 반 수스테렌 등은 이를 "저속함"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에는 익명의 여성이 1990년대 초 타이슨의 리무진 안에서 강간을 당했다며 그를 상대로 5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여성은 타이슨이 강제로 키스하고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성폭행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7. 대중문화 속 타이슨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성기 시절, 타이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수많은 스포츠 업적 외에도, 링 안팎에서의 논란이 많은 행동으로 인해 대중의 시선과 법정을 끊임없이 오갔다. 이러한 이유로 타이슨은 영화, 텔레비전, 책, 음악 등 다양한 대중 매체의 주제가 되었으며,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거나 패러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

닌텐도(Nintendo)는 타이슨의 경기를 보고 그의 "힘과 기술"에 감명받아, 1987년 NES용으로 마이크 타이슨의 펀치 아웃!!(Mike Tyson's Punch-Out!!)을 출시했다. 이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며 백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오늘날 역대 최고의 비디오 게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는 원래 경품용 게임이었던 펀치 아웃!!이 타이슨을 최종 보스로 등장시켜 일반 판매되었으며, 광고와 패키지에도 타이슨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초상권 문제로 버추얼 콘솔 등 이식판에서는 타이슨 대신 '미스터 드림'이라는 캐릭터로 교체되었다.

또한 유명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II에 등장하는 복서 캐릭터 마이크 바이슨(M. Bison)은 타이슨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판에서는 초상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캐릭터 이름을 발로그(Balrog)로 변경했다.

2016년 출시된 PS4엑스박스 원용 게임 EA SPORTS UFC 2에서는 예약 구매 특전 또는 게임 내 해금을 통해 타이슨 캐릭터를 플레이할 수 있다.

영화 및 텔레비전

타이슨은 다수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95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HBO 영화 타이슨(마이클 제이 화이트 주연)이 방영되었고,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타이슨칸 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그는 영화 록키 발보아(2006), 행오버(2009)와 그 속편 행오버 2(2011) 등에 본인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으며, 엽문 3(2015)에서는 악역인 부동산 개발업자 '프랭크' 역을, 킥복서 더 레전드(2018)에서는 '브릭스' 역을, 벤데타: 복수의 시간 (2022)에서는 '로치'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스파이크 리 감독과 협력하여 자신의 삶을 다룬 원맨쇼 마이크 타이슨: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Mike Tyson: Undisputed Truth영어)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고, 이듬해 미국 36개 도시 순회공연을 진행했으며 HBO를 통해 방영되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는 애덜트 수윔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이크 타이슨 미스터리에서 주인공인 본인 역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 외에도 드라마 법과 질서: 성범죄 특별수사대(2013), 리얼리티 쇼 헬스 키친(2021) 등에 출연했다.

2021년에는 ABC에서 2부작 다큐멘터리 마이크 타이슨: 노크아웃(Mike Tyson: The Knockout영어)이 방영되었고, 제이미 폭스 주연, 앙투안 푸쿠아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제작 총괄의 타이슨 전기 미니시리즈 타이슨(Tyson영어) 제작이 발표되었다.

2022년에는 훌루에서 타이슨의 삶을 다룬 미니시리즈 마이크(Mike영어)를 공개했으나, 타이슨 본인은 제작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훌루가 내 이야기를 훔쳤다"고 비판하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2022년 타이슨
2022년 타이슨


음악

2015년에는 마돈나의 앨범 레벨 하트 수록곡 "아이코닉"에 참여하여 도입부 내레이션을 맡았다. 2020년에는 티키 라우의 댄스곡 "마이크 타이슨"에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같은 해 에미넴의 "갓질라" 뮤직 비디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프로레슬링

타이슨은 1998년 WWF(WWE의 전신)에 등장하여 스티브 오스틴과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숀 마이클스의 편에 서는 듯했으나, 레슬매니아 XIV 메인 이벤트 경기에서 특별 심판으로 등장해 숀 마이클스를 배신하고 스티브 오스틴의 승리를 도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훗날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기타 미디어 활동 및 영향

타이슨은 핫복싱 위드 마이크 타이슨(Hotboxin' with Mike Tyson영어)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코미디 영상 제작사인 샷츠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패러디 뮤직 비디오와 코미디 스케치를 선보였다.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는데, 일본에서는 1988년 산토리 드라이 맥주와 토요타 트럭 광고에 출연했고, 2017년에는 호주 자동차 정비 프랜차이즈 울트라 튜네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울트라 튜네 광고는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마이크스 하드 레모네이드 셀처 광고에 출연했다.

최근 로건 폴, 제이크 폴유튜버들이 복싱 경기에 나서는 현상에 대해, 타이슨은 이들이 복싱의 인기를 높이고 팬층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유튜브 스타는 복싱을 크게 돕고 있다. 복싱은 유튜버 복서들에게 경의를 표할 정도로 은혜가 있다"고 말하며 이들의 활동을 옹호했다.

정치적으로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출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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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도제목역할비고
2001크로커다일 던디 인 로스앤젤레스본인카메오 출연
2006록키 발보아본인 (극중 인물)카메오 출연
2008타이슨본인다큐멘터리
2009행오버본인카메오 출연
2011행오버 2본인카메오 출연
2013리벤지 매치본인카메오 출연
2013마이크 타이슨: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 Mike Tyson: Undisputed Truth영어본인원맨쇼 공연 실황
2015엽문 3프랭크
2017차이나 세일즈맨카바
2018킥복서 더 레전드 Kickboxer: Retaliation영어브릭스
2018걸스 2 Girls 2: Girls vs Gangsters영어드래곤
2022벤데타: 복수의 시간 Vendetta영어로치
2022리거 Liger영어마크 앤더슨볼리우드 영화; 확장 카메오 출연
2023아스팔트 시티 Asphalt City영어버로스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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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연도제목역할비고
1995타이슨본인 (주제)HBO TV 영화
2013법과 질서: 성범죄 특별수사대레지 밀포드에피소드: "Monster's Legacy"
2014–2020마이크 타이슨 미스터리본인 (목소리)애니메이션 시리즈
2021마이크 타이슨: 노크아웃 Mike Tyson: The Knockout영어본인ABC 2부작 다큐멘터리
2021헬스 키친본인시즌 20, 에피소드: "Young Guns: Young Guns Come Out Shooting" (VIP 손님)
2022마이크 Mike영어본인 (주제)훌루 미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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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비디오
연도아티스트곡 제목역할비고
2020에미넴"갓질라"본인카메오 출연

8. 수상 및 영예

타이슨은 선수 시절 동안 여러 상을 받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다양한 매체에서 역대 복서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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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상 및 헌액 내역
연도내용비고
1985 올해의 유망주
1986 올해의 복서
1987슈거 레이 로빈슨 상미국 복싱 기자 협회(BWAA) 선정
1988 올해의 복서
1989슈거 레이 로빈슨 상미국 복싱 기자 협회(BWAA) 선정
1989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해외 부문
1989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중앙주립대학교 수여
2010귀르랑드 도뇌르국제 스포츠 영화 TV 연맹(FICTS) 수여
2011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훌리오 세사르 차베스, 코스챠 츠주, 실베스터 스탤론과 함께 헌액
2012WWE 명예의 전당 헌액
2013네바다 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
2015네바다 남부 명예의 전당 헌액


1989년 오하이오주 윌버포스에 있는 중앙주립대학교는 타이슨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마이크는 노력, 결단력, 인내가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고 밝혔다.

복싱 전문지 은 여러 차례 타이슨을 역대 복서 순위에 포함시켰다. 1998년 '역대 최고 헤비급 복서' 14위, 2002년 '지난 80년간 최고의 파이터 80인' 72위, 2003년 '역대 최고 펀처 100인' 16위 등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전문가 패널 투표를 통해 선정한 20명의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 중 타이슨을 9위로 평가했고, 2020년 지의 빌 캡런은 역대 최고 헤비급 선수 20인 중 타이슨을 17위로 선정했다.

BoxRec은 현재 타이슨을 헤비급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복서 중 역대 20위로 평가하고 있다. 2020년 CBS 스포츠 복싱 전문가들은 지난 50년간 최고의 헤비급 선수 10인을 선정하며 타이슨을 7위에 올렸다. 반면, 무술 월드 리포트(Martial Arts World Report)는 타이슨의 전성기가 약 5년으로 짧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역대 최고 헤비급 10인 순위 대신 명예로운 언급(Honorable Mention)으로 평가했으며, 2011년 Bleacher Report는 "타이슨은 이겨야 할 선수들은 이겼지만, 다른 정상급 선수와 싸울 때는 항상 졌다"며 상위 10위 헤비급 선수 명단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타이슨은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놓고 11명의 복서를 꺾었는데, 이는 역사상 7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그는 WBC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9차례, WBA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8차례, IBF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6차례 방어했다.

챔피언 시절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자들과 싸웠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압도적인 녹아웃 파워와 위압감은 그를 스포츠계 최고의 흥행 카드로 만들었다. 그러나 1990년 무명의 버스터 더글러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1997년 이밴더 홀리필드와의 경기에서 귀를 물어뜯는 사건 등은 그의 경력에서 논란이 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