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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가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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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탕가스주는 필리핀 루손 섬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바탕가스 시이다. '바탕간'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타갈로그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96.5%의 높은 문해율을 자랑하며, 초기에는 쿠민탕으로 불리며 탈 시를 중심으로 정치적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는 발라얀 주에 속했으며, 탈 화산 폭발 이후 수도가 바탕가스 시로 이전되었다. 2020년 기준 인구는 290만 명 이상이며, 타갈로그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경제적으로는 농업, 어업, 산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파인애플, 소, 참치, 사탕수수 등이 주요 생산물이다. 또한, 5개의 경제 특구를 갖춘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해안을 따라 발전, 석유, 가스 관련 산업이 활발하다. 바탕가스는 '마탄다 사 두고'와 같은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며, 쿠민탕, 파시온, 수블리 등 다양한 예술 형태가 존재한다. 다양한 향토 음식으로도 유명하며, 불랄로, 로미, 카펭 바라코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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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가스주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바탕가스 깃발
깃발
바탕가스 문장
문장
별칭언덕과 넓은 해안 지역의 땅
용맹한 자들의 지방 (Lalawigan ng mga Magigiting)
표어풍요로운 바탕가스!
국가필리핀
지역칼라바손 지방
설립일1581년 12월 8일
수도바탕가스
최대 도시리파
정부 형태지방 정부
지도자 직책지사
지도자 이름헤르밀란도 만다나스 (PDP-Laban)
부지사 직책부지사
부지사 이름마크 레비스트 (PDP-Laban)
입법부바탕가스 지방 의회
면적3,119.72 km²
면적 순위81개 중 44위
최대 고도1,090 m
최대 고도 지점마킬링산
인구3,011,767 명
인구 기준 시점2020년
인구 순위81개 중 7위
인구 밀도자동 계산
인구 밀도 순위81개 중 6위
시간대PHT
UTC 오프셋+8
우편 번호4200–4234
지역 번호43
ISO 코드PH-BTG
언어타갈로그어 (바탕게뇨 방언)
영어
수호성인카이사사이의 성모
공식 웹사이트바탕가스 공식 웹사이트
행정 구역
독립시0
구성 시바탕가스 시
칼라카
리파
산토 토마스
타나우안
자치시아곤실로
알리타그탁
발라얀
발레테
바우안
칼라타간
쿠엥카
이바안
라우렐
레메리
리안
로보
마비니
말바르
마타아스나카호이
나수그부
파드레 가르시아
로사리오
산호세
산후안
산루이스
산니콜라스
산파스쿠알
산타테레시타
타알
탈리사이
타이산
팅로이
투이
바랑가이1,078
하원 선거구바탕가스 하원 선거구
인구 통계
민족타갈로그인 (99%)
기타 (1%)
기타 정보
저명한 가문De Joya
Diokno
Laurel
Recto

2. 역사

바탕가스 주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주 중 하나로, 스페인 식민 시대 이전부터 해상 옥로를 통한 활발한 무역 활동과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570년 스페인 탐험가들이 바탕가스 해안을 탐험하면서 스페인 식민 시대가 시작되었고, 1578년 '본본 주'가 설립되었다. 이후 1581년 본본 주(Bonbon Province)는 발라얀 주(Balayan Province)로 개칭되었으며, 현재의 바탕가스 주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1754년 탈 화산 폭발로 주도가 바탕가스 시로 이전되었다.

스페인 식민 기간 동안 프란체스코회와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들이 바탕가스 지역의 기독교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72년 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 본당을 시작으로 여러 본당들이 설립되었으며, 선교사들은 타갈로그어 묵상 안내서와 문법책을 집필하여 주민들의 기독교화를 도왔다.

1896년 바탕가스는 스페인에 대항하여 봉기한 8개 주 중 하나였으며, 필리핀 총독(Governor-General of the Philippines)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바탕가스 출신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는 이 8개 주를 상징하는 8개의 광선을 가진 필리핀 국기(Philippine Flag)를 제작했다.

1918년 바탕가스 지도


미국 식민 시대에 바탕가스는 혁명가들의 주요 활동지 중 하나였다. 필리핀-미국 전쟁에서 미국에 항복한 마지막 필리핀 장군은 바탕가스 출신 미구엘 말바르(Miguel Malvar) 장군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이후 바탕가스 공항이 파괴되었고, 필리핀 육군 항공대와 일본군 간의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일본군 점령 기간 동안 바탕가스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1945년 제11공수사단이 나수그부에 상륙하면서 바탕가스 해방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군은 제158연대 전투단과 함께 바탕가스 각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고, 필리핀 게릴라들의 도움을 받아 1945년 4월 말 바탕가스를 완전히 해방시켰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의 리파


1950년부터 사용된 바탕가스 주의 이전 공식 문장. 2009년 빌마 산토스 주지사 재임 시절 바뀌었습니다.


필리핀 독립 이후, 바탕가스 출신 인사들은 필리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일본 점령기에는 바탕가스 출신 호세 P. 로렐(José P. Laurel, Sr.)이 일본 후원 제2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 시대에는 바탕가스 출신 호세 W. 디오크노(Jose W. Diokno) 상원의원이 혐의 없이 투옥되기도 했으며, 칼라카(Calaca) 농지가 산업 용지로 강제 전환되어 세미라라 칼라카 발전소가 건설되는 등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축출 이후 살바도르 라우렐(Salvador Laurel)은 부통령을, 레나토 코로나(Renato Corona)는 대법원장을 역임했다.

2. 1. 초기 역사

이 지역의 최초 기록된 명칭은 쿠민탕(Kumintáng)이었으며, 정치 중심지는 탈 시(현재의 시)였으나, 나중에 발라얀 시로 이동했다. 발라얀은 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로 여겨졌다. 탈 화산의 분화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주민들이 '본본'(Bonbon, 현재 탈)으로 이주했고, 그 이름이 결국 현대 바탕가스주의 영역을 포함하게 되었다.[4][5][6][7]

오늘날 바탕가스주의 해안과 강가에는 이미 큰 인구 중심지들이 번성하고 있었다. 바랑가이들이 판시핏 강을 따라 늘어서 있었는데, 이 강은 탈 호수(현재의 탈 호수)로 흘러드는 주요 수로였다. 이 지역은 선사 시대 세계에서 단일 지질 재료를 기반으로 가장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 중 하나인 해상 옥로의 주요 지역이었으며, 기원전 2000년경부터 서기 1000년경까지 약 3000년 동안 운영되었다. 다른 필리핀 사람들, 보르네오, 중국인, 일본인 등과의 무역 관계가 유지되었다.

16세기 중반 스페인 탐험가들의 고고학적 발견과 기록에 따르면, 식민지 이전의 타갈로그족은 오랫동안 복잡하고 계층화된 사회를 이루었으며,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무역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방추형 조개껍데기로 만든 특정 보석류에서 확인되었는데, 아주 작은 구멍들이 드릴 같은 도구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바탕가스주의 고대 주민들은 인도화된 국가들과의 무역, 그리고 더 적은 정도로 중국과의 무역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많은 차용어와 중국과 오늘날 베트남태국에서 주로 발굴된 필리핀의 무역 도자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칼라타간에서 발굴된 불상은 부조로 된 점토 메달에 주형으로 복제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아리에 있는 불상은 시암, 인도, 네팔에서 붓다의 상징적 묘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항아리는 타원형 광배 안에 아미타불이 삼방형 자세[8]로 묘사되어 있다. 학자들은 또한 보살 관세음보살도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에 강한 대승불교적 성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9]

주요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는 1941년 1월 칼라타간의 팔라파트에서 두 개의 조잡한 석상이 발견된 것이다. 이들은 나중에 필리핀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그중 하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파괴되었다.

18년 후, 인근 푼타 부아야에서 무덤이 발굴되었다. 발견된 12구의 유골 뒤에는 산호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유적지는 "창조하다"라는 뜻의 ''리카''(Likha)라고 명명되었다. 유골에는 14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구가 함께 있었다. 도자기, 팔찌, 석기, 금속 제품도 발견되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중국까지 먼 곳의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했음을 시사한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접시나 "잔"과 같은 식기류의 존재는 또한 선사 시대 바탕가스 사람들이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바탕가스 사람들은 아시아 다른 지역의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와 함께 가구를 매장하는 비슷한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인근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바탕간 또는 초기 바탕가스 사람들은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부분적으로 그들의 직접적인 환경에 있는 대부분의 부족들이 혈연으로 그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탕간 사람들이 사용했던 무기에는 ''바키양''(활과 화살), ''방카우''(창), ''수완''(보로) 등이 있었다.

매우 미신적인 그들은 ''아기마트''(부적 또는 부적)의 사용을 통해 더 높은 존재와 보이지 않는 다른 것들의 존재를 믿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원주민들은 자연의 힘이 이러한 더 높은 존재들의 발현이라고 믿었다.

'타갈로그'라는 용어는 북쪽 지역의 파시그 강을 가리키는 "강가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타가-일로그''(taga-ilog)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필리핀 관계에 관한 글에서 왕 더밍(Wang Teh-Ming)은 바탕가스가 타갈로그족의 진정한 중심지였으며, 그가 ''마이''(Ma-yi) 또는 ''마이''(Ma-i)로 확인한 곳이라고 지적한다. 중국 황실 기록에 따르면, 마이는 이 지역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 카비테, 라구나, 리살, 케손, 바탄, 불라칸, 민도로, 마린두케, 누에바 에시하, 잠발레스의 일부, 그리고 타락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타갈로그와 바탕가스 사람이라는 용어를 서로 바꿔서 사용한다.

미국 고고학자인 헨리 오틀리 베이어도 그의 연구에서 초기 바탕가스 사람들이 옥으로 알려진 귀중한 돌과 특별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필리핀의 후기 구석기 시대를 이 지역에서 발굴된 동굴에서 발견된 많은 옥을 인정하여 ''바탕가스 시대''로 명명했다. 베이어는 옥 숭배가 기원전 800년경에 이 지역에 도달하여 기원전 200년까지 지속되었음을 밝혔다.

2. 2. 스페인 식민 시대

1570년, 스페인 장군 마르틴 데 고이티(Martin de Goiti)와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가 마닐라로 가는 길에 바탕가스 해안을 탐험하다 판시핏 강(Pansipit River) 어귀에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1572년, 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 마을이 건설되었고, 나중에 수도원과 돌로 지은 교회가 세워졌다.[10][11]

공식적으로 스페인은 에스테반 오르티스(Esteban Ortiz) 신부와 후안 데 포라스(Juan de Porras) 신부를 통해 1578년에 '본본(Bonbon) 주'를 설립했다. 이 이름은 이 지역에 거주하던 무슬림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

1581년, 스페인 정부는 본본 주(Bonbon Province)를 폐지하고, 발라얀 주(Balayan Province)로 알려지게 된 새로운 주를 설립했다. 새 주는 현재의 바탕가스 주, 민도로 주(Mindoro (province)), 마린두케 주(Marinduque (province)), 남동부 라구나 주(Laguna (province)), 남동부 께손 주(Quezon), 그리고 까마리네스 주(Camarines (province))로 구성되었다. 1754년 타알 화산의 격렬한 분화 이후, 현재의 산 니콜라스인 옛 '타알' 마을은 매몰되었다. 화산 폭발의 추가적인 위험 때문에 결국 주도는 바탕가스(현재는 시)로 옮겨졌고,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10][11]

고이티와 살세도가 이 주를 방문한 해에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이 타알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나중에 바탕가스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이자 필리핀에서 가장 초기 정착지 중 하나가 되었다. 1572년, 아우구스티노회가 현재 산 니콜라스인 '와와(Wawa)' 지역에 타알을 건설하고, 그곳에서 발라얀과 '봄본(Bombon)' 호수(타알 호수) 주변의 모든 큰 마을에서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교구 최초의 선교사였던 아우구스티노회는 스페인에 대한 혁명까지 남아 있었다. 최초의 선교사들 중에는 알폰소 데 알부케르케(Alfonso de Albuquerque), 디에고 에스피나스(Diego Espinas), 후안 데 몬토호(Juan de Montojo) 등 저명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10][11]

처음 10년 동안 봄본 호수 주변 지역 전체가 완전히 기독교화되었다. 이는 주민들의 언어 기초를 배운 사람들의 전도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동시에 그들은 노베나(Novena)와 같은 타갈로그어로 된 묵상 안내서를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온 다른 선교사들에게 도움이 된 최초의 타갈로그어 문법을 집필하기도 했다.[10][11]

수년에 걸쳐 중요한 본당들이 설립되었다.

설립 연도본당
1572년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 (아우구스티노회)
1581년바탕가스 (프레이 디에고 멕시카)
1596년바우안(Bauan)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
1605년리파 시(Lipa City) (아우구스티노회)
1774년발라얀(Balayan)
1852년나수그부(Nasugbu)
1868년바탕가스주 레메리(Lemery, Batangas)



1700년대 말, 바탕가스에는 15,014개의 원주민 가족과 451개의 스페인계 필리핀인(Spanish Filipino families) 가족이 있었다.[10][11]

나수그부(Nasugbu) 마을은 스페인이 이 나라를 점령하는 동안 중요한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필리핀 포춘 섬(Fortune Island (Philippines)), 나수그부(Nasugbu), 바탕가스에서 두 유럽 세력 간의 최초로 기록된 아시아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20세기 후반, 포춘 섬 주민들은 마닐라-아카풀코 은선 무역(Manila-Acapulco Galleon Trade)에서 판매된 물품이 실린 침몰한 갤리온선을 발견했다.[10][11]

바탕가스는 스페인에 대항하여 봉기한 8개 필리핀 주 중 하나였으며, 1896년 8월 30일 스페인 필리핀 총독(Governor-General of the Philippines) 페냐 플라타 후작 라몬 블랑코(Ramón Blanco, 1st Marquis of Peña Plata)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된 주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이 주의 출신인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가 이 8개 주를 상징하는 8개의 광선을 가진 태양을 가진 필리핀 국기(Philippine Flag)를 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10][11]

2. 3. 미국 식민 시대와 일본 점령기

마르틴 데 고이티(Martin de Goiti)와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는 1570년 마닐라로 가는 길에 바탕가스 해안을 탐험하다 판시핏 강(Pansipit River) 어귀의 마을을 발견했다.[10] 1572년 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 마을이 건설되었고, 이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이 타알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탕가스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이자 필리핀에서 가장 초기 정착지 중 하나가 되었다.[10] 1578년 스페인은 '본본(Bonbon) 주'를 설립했고, 1581년에는 본본 주(Bonbon Province)를 폐지하고 발라얀 주(Balayan Province)를 설립했다. 새 주는 현재의 바탕가스 주, 민도로 주(Mindoro (province)), 마린두케 주(Marinduque (province)), 남동부 라구나 주(Laguna (province)), 남동부 께손 주(Quezon), 까마리네스 주(Camarines (province))를 포함했다.[10] 1754년 타알 화산 폭발로 주도가 바탕가스 시로 옮겨졌다.

아우구스티노회는 스페인에 대한 혁명까지 교구 선교사로 활동했다.[10] 초기 선교사들은 주민들의 언어를 배우고 타갈로그어 묵상 안내서와 문법책을 집필했다.[10] 1572년 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 본당, 1581년 바탕가스 본당, 1596년 바우안(Bauan) 본당, 1605년 리파 시(Lipa City) 본당, 1774년 발라얀(Balayan) 본당, 1852년 나수그부(Nasugbu) 본당, 1868년 바탕가스주 레메리(Lemery, Batangas) 본당이 설립되었다.[10] 1700년대 말, 바탕가스에는 15,014개의 원주민 가족과 451개의 스페인계 필리핀인(Spanish Filipino families) 가족이 있었다.[10][11]

나수그부(Nasugbu)는 스페인 점령 기간 동안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다.[10] 필리핀 포춘 섬(Fortune Island (Philippines)), 나수그부(Nasugbu)에서는 유럽 세력 간의 최초로 기록된 아시아 전투가 벌어졌다.[10] 바탕가스는 스페인에 대항하여 봉기한 8개 주 중 하나였으며, 1896년 8월 30일 계엄령이 선포된 주 중 하나였다.[10]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는 이 8개 주를 상징하는 8개의 광선을 가진 태양을 가진 필리핀 국기(Philippine Flag)를 제작했다.[10]

미국 통치 시기, 바탕가스는 혁명가들의 선전 활동 장소로 선택되었다.[10] 미구엘 말바르(Miguel Malvar) 장군은 필리핀-미국 전쟁에서 미국에 항복한 마지막 필리핀 장군으로 인정받고 있다.[10]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군은 바탕가스 공항을 파괴했고, 필리핀 육군 항공대와 일본 영시제로 전투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12] 1942년 일본군 점령 기간 동안 일본 제국 육군바우안 328명, 타알 320명, 쿠엔카 300명, 산호세 107명, 루세로 39명 등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14]

1944년-1945년 필리핀 작전의 일환으로, 1945년 1월 31일 미국 제8군의 일부인 제11공수사단이 나수그부에 상륙하면서 바탕가스주 해방이 시작되었다.[15] 3월 3일 마닐라가 확보되었고, 미군은 바탕가스 해방을 위해 제11공수사단과 제158연대 전투단(RCT)을 투입했다.[16] 3월 11일 제158연대 전투단은 바탕가스 시티에 도착했고,[2] 3월 16일 칼룸팡 반도를 해방했다.[2] 3월 19일 쿠엔카의 마쿠롯 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후 제187 글라이더 보병 연대로 교대되었다.[2] 제188 보병 연대는 바탕가스 시티와 국경 지역에 배치되었다.[2] 제511 공수 보병 연대는 산토 토마스와 타나우안에서 리파 통로 개방을 시작했다.[2]

3월 24일 제188 보병 부대 특별 임무부대가 리파로 향했고,[2] 제187 보병 부대 특별 임무부대는 마쿠롯 산 공격을 개시, 4월 21일 함락시켰다.[2] 3월 26일 제188 보병 연대는 일본군 제86비행장 대대와 교전했다.[2] 북쪽에서는 제1기갑사단이 일본군 방어선을 공격, 남쪽에서 진격해 오는 부대와 합류했다.[2] 리파는 3월 29일 제1기갑사단에 의해 함락되었다.[2] 5월 2일 제511연대가 말레푸뇨 산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면서 조직적인 저항이 끝났다.[17] 제188 보병 부대 특별 임무부대의 일부는 바탕가스 산맥에서 일본군 소탕 임무를 맡았다.[2]

필리핀 게릴라들은 미군과 필리핀 공화국군 병력의 진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2] 1945년 4월 말까지 바탕가스는 해방되어 연합군 통제하에 들어갔다.[2]

필리핀 공화국군 군사 본부 및 군사 캠프는 1942년 1월 3일부터 1946년 6월 30일까지 바탕가스주에 있었다.[10] 필리핀 경찰 부대는 현지 게릴라 저항군, 미군 해방군과 협력하여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10]

2. 4. 필리핀 독립 이후

마르틴 데 고이티(Martin de Goiti)와 후안 데 살세도(Juan de Salcedo)가 바탕가스 해안을 탐험한 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이 바탕가스주 타알(Taal, Batangas)에 도착하여 필리핀에서 가장 초기 정착지 중 하나를 세웠다. 아우구스티노회는 스페인에 대한 혁명까지 선교 활동을 지속했다. 초기 선교사들은 타갈로그어 묵상 안내서와 문법책을 집필하여 주민들의 기독교화를 도왔다.[10][11]

1896년, 바탕가스는 스페인에 대항하여 봉기한 8개 주 중 하나였으며, 페냐 플라타 후작 라몬 블랑코(Ramón Blanco, 1st Marquis of Peña Plata)에 의해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마르셀라 아곤실로(Marcela Agoncillo)는 이 8개 주를 상징하는 8개의 광선을 가진 필리핀 국기(Philippine Flag)를 제작했다.

미국이 필리핀 국기 게양을 금지하자, 바탕가스는 혁명가들의 선전 활동 장소가 되었다. 아멜리아 보니파시오(Amelia Bonifacio)의 일기에 따르면, 바탕가스에서 ''Tanikalang Ginto''라는 연극 공연 후 배우와 관객 모두 체포되었고, 이 연극은 필리핀 전역에서 상영 금지되었다.

필리핀-미국 전쟁에서 미국에 항복한 마지막 필리핀 장군은 미구엘 말바르(Miguel Malvar) 장군이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군은 바탕가스 시티의 바탕가스 공항을 폭격하여 파괴했다.[12] 필리핀 육군 항공대와 일본 영시제로 전투기 간의 공중전에서 예수스 빌라모르(Jesús Villamor) 대위가 승리했지만, 세사르 바사(César Basa) 중위는 전사했다.[13]

1942년 일본군 점령 기간 동안 일본 제국 육군바우안, 타알, 쿠엔카, 산호세 등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14]

제158연대 전투단, 제11공수사단 및 제1기갑사단의 바탕가스 및 인근 지역 작전.


1944년-1945년 필리핀 작전의 일환으로, 1945년 1월 미국 제8군 제11공수사단이 나수그부에 상륙하면서 바탕가스주 해방이 시작되었다.[15] 미군은 3월에 제11공수사단과 제158연대 전투단을 투입하여 바탕가스를 해방했다.[16] 마비니 근처 칼룸팡 반도, 쿠엔카의 마쿠롯 산, 리파 통로 등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말레푸뇨 산 함락으로 주에서 조직적인 저항은 끝났다.[17] 필리핀 게릴라들은 미군과 필리핀 공화국군의 진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2] 1945년 4월 말, 바탕가스는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해방되었다.

미국 통치권 포기 후, 바탕가스 출신 정치인들은 필리핀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 점령 기간 동안 바탕가스 출신 호세 P. 로렐(José P. Laurel, Sr.)이 일본 후원 제2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 시대에 바탕가스 출신 상원의원 호세 W. 디오크노(Jose W. Diokno)는 혐의 없이 투옥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18] 1981년 마르코스는 칼라카(Calaca) 농지를 산업 용지로 전환하여 세미라라 칼라카 발전소 건설을 강행했다.[20] 서부 필리핀 대학(Western Philippine Colleges) 학생 지도자 이스마엘 우말리(Ismael Umali) 등은 시위 후 실종되거나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었다.[21]

마르코스 축출과 필리핀 제5공화국 수립 이후, 살바도르 라우렐(Salvador Laurel)은 부통령을, 레나토 코로나(Renato Corona)는 대법원장을 역임했다.[22]

3. 지리

바탕가스주는 대부분 평야 지형이며 산들이 곳곳에 அமைந்து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 중 하나인 탈산은 탈 호 한가운데에 있으며, 해발 600m이다. 그 외 주요 봉우리로는 마콜로드 산(해발 830m), 바노이 산(해발 960m), 탈라미탐 산(해발 700m), 피코 데 로로 산(해발 664m), 바툴라오 산(해발 693m), 마나보 산(해발 830m), 다굴돌 산(해발 672m) 등이 있다.

바탕가스주에는 팅글로이, 베르데 섬(Isla Verde), 나수그부의 포춘 섬 등 여러 섬이 있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섬 안에 있는 호수 중 가장 큰 섬"은 바탕가스주에 있는데, 이는 루손 섬 탈섬의 탈 호 중앙 분화구 호수에 있는 불칸 포인트이다.

바탕가스주에는 말라바야바스 나무가 자생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과일박쥐 중 하나인 카바그(''Haplonycteris fischeri'')가 서식하며, 나수그부 시 루옥, 파파야, 불리한, 다야프 마을 등 외딴 지역에는 야생 사슴도 서식한다.

2006년 하반기, 미국 과학자들은 산호 삼각 지대의 중심이 바탕가스주 이스라 베르데 해협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해양생물학자 켄트 카펜터의 연구에 따르면, 바탕가스 해역에는 세계 산호 종의 절반 이상이 서식한다. 돌고래도 서식하며, 가끔 세계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현지어: 부탄딩)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후안 시에는 바다거북(현지어: 파위칸)이 서식하며, 올리브각시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등을 나수그부에서 관찰할 수 있다.

바탕가스주는 북쪽으로 카비테주, 북동쪽으로 라구나주, 동쪽으로 께손주와 접한다. 남쪽으로는 베르데섬 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마로파 지방의 오리엔탈 민도로주, 옥시덴탈 민도로주와 인접해 있다. 주 내에는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탈호가 있다.

탈화산은 활화산으로, 여러 차례 분화한 기록이 있다. 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산화황을 주성분으로 하는 화산 가스를 분출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화산 가스로 인해 건강 이상자가 속출하자, 지방 자치 단체는 주민들에게 건물 문과 창문을 닫고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34]

3. 1. 기후

바탕가스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열대 사바나 기후(''As''/''Aw'')와 열대 몬순 기후(''Am'') 두 가지 기후에 속한다. PAGASA 기후 분류에서는 각각 I유형과 III유형으로 나뉜다. 바탕가스주 대부분 지역은 건기우기가 뚜렷한 열대 사바나 기후이지만, 동쪽 일부 지역은 몬순의 영향으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지 않은 열대 몬순 기후를 보인다. 주도인 바탕가스 시는 열대 사바나 기후에 속하지만, 인접한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건기가 짧고 우기가 길다. 특히 남서 몬순(하바갓, ''habagat'') 기간에는 태풍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34]

4. 행정 구역

바탕가스주는 4개의 도시와 30개의 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도는 바탕가스이다.

바탕가스주는 29개의 시정촌과 5개의 도시로 구성된다. 면적은 나수그부가 278.51km2로 가장 크고, 산 니콜라스가 22.61km2로 가장 작다. 인구 밀도는 탈이 km²당 2,066명으로 가장 높고, 로보는 km²당 230명으로 가장 낮다.

이후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바탕가스주를 구성하는 도시와 읍/자치체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4. 1. 도시

바탕가스주는 29개의 시정촌과 바탕가스, 리파, 산토토마스, 따나완의 4개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1]

4. 2. 읍/자치체

바탕가스 주는 29개의 시정촌과 5개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 기준으로 나수그부가 278.51km2로 가장 크고, 산 니콜라스가 22.61km2로 가장 작다. 인구 밀도는 탈이 1 km² 당 2,066명으로 가장 높고, 로보는 1 km² 당 230명으로 가장 낮다.

도시 또는 시정촌구역인구 (2020년)면적 (km²)밀도 (/km²)바랑가이 수
아곤실로3구39,101명49.96km278021
알리타타그3구26,819명24.76km2110019
발라얀1구95,913명108.73km288048
발레테3구24,055명25km296013
바탕가스 시단독351,437명282.96km21200105
바우안2구90,819명53.31km2170040
칼라카1구87,361명114.58km276040
칼라타간1구58,719명101.5km258025
쿠엔카3구36,235명58.18km262021
이반4구58,507명68.99km285026
로렐3구43,210명71.29km261021
레메리1구93,186명109.8km285046
리안1구56,280명76.8km273019
리파단독372,931명209.4km2180072
로보2구40,736명175.03km223026
마비니2구50,858명44.47km2110034
말바르3구64,379명33km2190015
마타아스나카호이3구30,621명19.66km2160016
나수그부1구136,524명278.51km249042
파드레 가르시아4구51,853명41.51km2120018
로사리오4구128,352명226.88km257048
산 호세4구79,868명53.29km2150033
산 후안4구114,068명273.4km242042
산 루이스2구36,172명42.56km285026
산 니콜라스3구23,908명22.61km2110018
산 파스쿠알2구69,009명50.7km2140029
산타 테레시타3구21,559명16.3km2130017


5. 인구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바탕가스주의 인구는 2,908,494명이며, 인구 밀도는 1km2당 930명이다.

바탕가스주 인구 조사[23]
연도인구
1903년257,715
1918년332,393
1939년442,034
1948년517,595
1960년688,662
1970년926,308
1975년1,032,003
1980년1,174,201
1990년1,476,783
1995년1,658,570
2000년1,905,348
2007년2,245,869
2010년2,377,395
2015년2,694,335
2020년2,908,494



바탕가스주의 주요 주민은 타갈로그족이며, 비콜라노족, 비사야족, 깜빵간족, 팡가시난족, 일로카노족 등도 거주하고 있다.[24]

바탕가스주는 전국에서 높은 읽고 쓰는 능력 (96.5%)을 보이며, 남성(97.1%)이 여성(95.9%)보다 약간 더 높다.

5. 1. 언어

바탕가스 방언은 스페인이 도착하기 전에 사용되던 옛 타갈로그어와 매우 유사하다. 이 때문에 여름 언어학 연구소는 이 지역을 타갈로그어의 중심지라고 부른다. 오늘날까지도 타갈로그 문화의 강한 영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2]

바탕가스 주민들은 문장 끝에 'eh' 또는 'ga' (필리피노어의 'ba'에 해당)와 같은 강조 부사를 붙이는 독특한 어투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Ay, oo nga, eh!" ("아, 그렇지, 정말!")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eh'를 'ala eh'로 길게 발음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의미는 없다.

영어는 바탕가스주에서 널리 사용된다. 특히 나수그부, 탈, 레메리 등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여전히 있는 마을의 고령층은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비콜어, 팜팡가어, 일로카노어, 비사야어, 마구인다나오어, 마라나오어, 타우스그어도 비콜 지방, 일로코스 지방, 코르딜례라 행정구역, 카가얀 계곡, 중부 루손, 비사야스, 민다나오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때문에 소수 민족에 의해 사용된다.

5. 2. 종교

바탕가스 주 인구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필리핀 독립 교회(Iglesia Filipina Independiente)를 믿는다. 다른 주요 종교 단체로는 (국제) 하나님의 교회 회원들(MCGI),[25] 이기리스토 교회, 그리고 복음주의가 있다.[26] 그 외 주요 종교로는 이슬람교, 불교, 세대림 교회, 예수는 주님 세계 교회, 프로테스탄티즘,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있다.

6. 경제

2020년 기준, 바탕가스주는 감사위원회(Commission on Audit)에 의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주로 평가되었다. 2년 연속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주였으며, 2020년에는 252억필리핀 페소의 자산 가치를 기록하며 칼라바르존(Calabarzon)과 루손(Luzon)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35] 바탕가스는 지역적으로 ''발리송''으로 알려진 나비 칼 제조 산업으로도 유명하다.

6. 1. 농업 및 어업

바탕가스에서는 농업과 어업이 발달하였다. 파인애플은 바탕가스에서 흔하게 재배되는 작물 중 하나이다. 과일 외에도 잎은 피냐(piña)라는 비단 같은 직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이를 이용해 필리핀 전통 의상인 바롱 타갈로그를 만든다.[4]

축산업 또한 바탕가스에서 번성한다. "바탕가스 소"(bakang Batangas)는 필리핀 최고 품종의 소를 의미하며, 전국적으로 수요가 많다. 바탕가스에서는 소 사육이 널리 행해지며, 산 후안, 바우안, 파드레 가르시아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매주 토요일 경매가 열린다.

어업은 바탕가스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리핀의 참치 산업은 제네랄 산토스에 집중되어 있지만, 바탕가스는 눈다랑어(tambakol), 황다랑어(berberabe), tambakulis, 참다랑어(tulingan), 가다랑어(bonito)와 같은 작은 종류의 참치로도 알려져 있다.[5] 와후(tanigi) 산업 또한 중요하다.

탈 호수는 필리핀에 담수어를 공급한다. 이 호수에는 탈 호수에만 서식하는 담수 정어리 종인 Sardinella tawilis(타윌리스)가 서식한다. 탈 호수에서는 Chanos chanos(방어)도 양식한다. 또한, 현지어로 티라피아(tilapia)라고 불리는 ''Oreochromis niloticus niloticus''와 ''Oreochromis aureus''도 상당량 서식한다. 방어와 티라피아는 이 호수의 토착종이 아니며 침입종으로 간주된다.[6]

사탕수수 산업도 주요 산업이다. 필리핀 최대 사탕수수 생산업체였던 루이시타 농장이 토지 개혁으로 해체된 후, 나수그부 지방 자치 단체에 현재 최대 사탕수수 생산업체인 센트럴 아주카레라 데 돈 페드로가 자리 잡았다. 과 과자도 중요한 산업이다.[7]

라구나와 인접한 일부 마을에는 번창하는 대나무 산업이 있으며, 여러 주택과 가구가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현지 주민들은 대나무로 요리한 음식에는 향과 맛이 더해진다고 말한다. 죽순(labong)은 코코넛 밀크 또는 다른 재료와 함께 조리하여 바탕가스의 별미를 만든다.[8]

6. 2. 산업

바탕가스는 지역적으로 발리송으로 알려진 나비 칼로 유명하며, 그 제조는 이 지역의 산업으로도 성장했다.[1] 바탕가스주에는 필리핀 경제 특구청(Philippine Economic Zone Authority, PEZA)에 등록된 5개의 산업단지가 있으며, 이들은 STAR 고속도로(STAR Tollway)와 호세 P. 로렐 고속도로(Jose P. Laurel Highway)를 따라 집중되어 있다.[1] 가장 큰 산업단지는 다음과 같다.[1]

산업단지명위치면적특징
리마 기술 센터(LIMA Technology Center)리파(Lipa), 말바르(Malvar)500ha기술 기업 중심의 상업 및 산업 지역
필리핀 제1산업단지(First Philippine Industrial Park, FPIP)산토 토마스(Santo Tomas), 타나우안(Tanauan)350 헥타르 이상
라이트 산업 과학단지 IV(Light Industry and Science Park IV, LISP IV)말바르(Malvar)170ha주거 및 업무 복합단지



바탕가스 시티(Batangas City)와 인근의 산 파스쿠알(San Pascual), 바우안(Bauan), 마비니(Mabini) 시는 해안가 위치와 관련된 대규모 산업 활동을 하고 있으며, 발전, 석유 및 가스 처리 및 환적, 선박 수리 등이 포함된다.[1]

7. 문화

바탕가스 주는 선사 시대부터 해상 옥로의 주요 지역으로, 보르네오, 중국, 일본 등과 교류했다.[4][5][6][7] 16세기 중반 스페인 탐험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바탕가스 주민들은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차용어와 중국,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발굴된 필리핀의 무역 도자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칼라타간에서 발견된 불상은 대승불교의 영향을 보여준다.[9]

1941년 칼라타간에서 발견된 석상과 푼타 부아야에서 발굴된 유골은 14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과 함께 발견되어, 당시 사람들이 중국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식기류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며, 이는 아시아 다른 지역과 유사한 풍습이다.

바탕간 사람들은 바키양(활과 화살), 방카우(창), 수완(보로) 등의 무기를 사용했으며, 아기마트(부적)를 통해 더 높은 존재를 믿는 미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타갈로그'라는 용어는 "강가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타가-일로그''(taga-ilog)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마이(Ma-yi)는 바탕가스를 중심으로 카비테, 라구나 등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헨리 오틀리 베이어는 바탕가스 사람들이 옥과 친밀했으며, 후기 구석기 시대를 ''바탕가스 시대''로 명명했다. 마리아 칼라우 카티그박은 바탕가스 주민들을 "혼혈 타갈로그족"이라 불렀으며, "마탄다 사 두고"라는 혈연 존중 관습을 언급했다. 바탕가스 주민들은 지역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고상한 대화를 즐기며, 대가족으로 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종교적 관습이 강하며, 수블리와 루와 같은 의식을 통해 신앙을 표현한다. 사순절에는 파시온을 낭송하며, 5월에는 마할 나 푼 응 산타 크루스 축일을 기념한다. 탈(Taal) 마을에서는 카이사사이 성모와 투르의 마르티누스 축일을 기념하는 행렬을 한다.

바탕가스주는 다양한 향토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요리설명
불랄로소의 정강이뼈와 골수를 푹 고아 만든 국물 요리이다.
바탕가스 로미걸쭉하고 진한 국물에 돼지고기, 간, 어묵 등을 넣어 만든 국수 요리이다.
고토소 내장을 넣어 끓인 죽 요리이다.
아도보 사 딜라우강황을 넣어 노란색을 띠는 아도보이다.
파칼라스테코코넛 밀크를 넣어 만든 바탕가스식 아도보이다.
탈 롱가니상마늘, 흑설탕, 후추 등으로 양념한 소시지이다.
탈 타팡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에 재워 말린 요리이다.
시나잉 나 툴린간훈제한 참치 요리이다.
타길라우돼지고기, 소고기, 염소고기 등을 식초, 간장, 양파 등에 절여 만든 요리이다.
말리푸토 시니강말리푸토(Maliputo)라는 생선을 넣어 끓인 시니강이다.
시눈가옥 또는 삼페네돼지 선지와 내장을 넣어 만든 바탕가스식 디누구안이다.
발라얀 바구옹발라얀 지역에서 생산되는 멸치젓이다.
레메리 티나파레메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훈제 생선이다.
푸포르바탕가스식 치차론이다.
판싯 토스타도구운 면 요리이다.
판싯 니 비코비코라는 사람이 만든 국수 요리이다.
판싯 풀라/티키야노붉은색 면 요리이다.
이반 타말레스찹쌀, 닭고기, 땅콩 등을 바나나 잎에 싸서 찐 요리이다.
타나우안 수망 마그카야캅타나우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찹쌀떡이다.
칼라마이 카핏찹쌀가루, 코코넛 밀크, 설탕 등으로 만든 쫀득한 떡이다.
닐루팍으깬 카사바, 바나나, 고구마 등에 설탕, 우유 등을 넣어 만든 간식이다.
카펭 바라코바탕가스에서 재배되는 리베리카 커피 품종이다.
초콜라테 타블레아초콜라테 에(진한 초콜릿)와 초콜라테 아(묽은 초콜릿)이다.
파눗사땅콩, 설탕, 버터 등을 섞어 만든 과자이다.
무르콘바탕가스식 엠부티도이다.


7. 1. 문학

바탕가스 주는 문학 분야에서 호세 리살의 노리 메 탕헤레를 옹호하는 논문을 쓴 빈센테 가르시아 신부로 알려져 있다.[9] 2004년에는 바탕가스 주 출신의 도밍고 란디초에게 "국민 시인"으로서 공로를 인정하여 ''당갈 응 바탕가스''(바탕가스의 자랑) 상을 수여했다.[9]

7. 2. 예술

음악학자들은 바탕가스주를 고대 전쟁 노래인 ''쿠민탕''의 기원으로 밝혔으며, 이는 후에 필리핀 사랑 노래의 대표격인 ''쿤디만''으로 발전했다. 고대 쿠민탕에서 ''아윗''으로 알려진 또 다른 성악이 등장했다. 시편과 같은 자장가인 ''훌루나''는 바우안을 비롯한 일부 마을에서도 유명하다.

사순절 기간에는 기독교 수난 이야기인 ''파시온''이 주 전역에서 들려온다. 학자들에 따르면 최초로 인쇄된 파시온은 로사리오 출신 평민인 가스파르 아키노 데 벨렌이 저술한 것이다. 데 벨렌의 판본은 1702년에 인쇄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다른 판본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바탕가스 주민들은 노래 형식의 논쟁인 ''두플로''(각 행이 8음절)와 ''카라가탄''(각 행이 12음절)으로 유명하다. 문자 그대로 "바다"를 뜻하는 카라가탄은 도입부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카라가탄은 항상 바다의 깊이를 언급하고 논쟁에 참여하는 어려움에 비유하는 구절로 시작하며, 논쟁은 노래로 진행되어야 한다.

바탕가스주는 ''발리타오''의 기원이기도 하다. ''발리타오''는 성악의 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춤 음악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수블리''와 함께 바탕가스주에서 가장 유명한 토착 춤 형태이다.

탈(Taal)의 산 마르틴 성당(Basilica de San Martin)


바탕가스주는 오래된 교회 건축물에서 보여지듯이, 특히 탈(Taal)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필리핀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식민지 시대 건축물 중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파에테(Paete)의 조각 산업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탈(Taal)은 가구에 새겨진 조각품으로도 여전히 알려져 있다. 때때로 탈(Taal)에서 온 제단 탁자는 "수도사들의 선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필리핀의 학자인 밀라그로스 코바루비아스-하미르(Milagros Covarubias-Jamir)에 따르면, 식민지 시대 탈(Taal)에서 온 가구는 중국산 가구와 비교할 만한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가구의 제작이 매우 정교하여 못이나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바탕가스 사람들은 경재(硬材)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약 100년 전에 만들어진 가구는 오늘날에도 많은 오래된 교회와 집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7. 3. 음식

바탕가스주는 다양한 향토 음식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음식은 다음과 같다.

요리설명
불랄로소의 정강이뼈와 골수를 푹 고아 만든 국물 요리이다.
바탕가스 로미걸쭉하고 진한 국물에 돼지고기, 간, 어묵 등을 넣어 만든 국수 요리이다.
고토소 내장을 넣어 끓인 죽 요리이다.
아도보 사 딜라우강황을 넣어 노란색을 띠는 아도보이다.
파칼라스테코코넛 밀크를 넣어 만든 바탕가스식 아도보이다.
탈 롱가니상마늘, 흑설탕, 후추 등으로 양념한 소시지이다.
탈 타팡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에 재워 말린 요리이다.
시나잉 나 툴린간훈제한 참치 요리이다.
타길라우돼지고기, 소고기, 염소고기 등을 식초, 간장, 양파 등에 절여 만든 요리이다.
말리푸토 시니강말리푸토(Maliputo)라는 생선을 넣어 끓인 시니강이다.
시눈가옥 또는 삼페네돼지 선지와 내장을 넣어 만든 바탕가스식 디누구안이다.
발라얀 바구옹발라얀 지역에서 생산되는 멸치젓이다.
레메리 티나파레메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훈제 생선이다.
푸포르바탕가스식 치차론이다.
판싯 토스타도구운 면 요리이다.
판싯 니 비코비코라는 사람이 만든 국수 요리이다.
판싯 풀라/티키야노붉은색 면 요리이다.
이반 타말레스찹쌀, 닭고기, 땅콩 등을 바나나 잎에 싸서 찐 요리이다.
타나우안 수망 마그카야캅타나우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찹쌀떡이다.
칼라마이 카핏찹쌀가루, 코코넛 밀크, 설탕 등으로 만든 쫀득한 떡이다.
닐루팍으깬 카사바, 바나나, 고구마 등에 설탕, 우유 등을 넣어 만든 간식이다.
카펭 바라코바탕가스에서 재배되는 리베리카 커피 품종이다.
초콜라테 타블레아초콜라테 에(진한 초콜릿)와 초콜라테 아(묽은 초콜릿)이다.
파눗사땅콩, 설탕, 버터 등을 섞어 만든 과자이다.
무르콘바탕가스식 엠부티도이다.


참조

[1] 웹사이트 List of Provinces http://www.nscb.gov.[...] National Statistical Coordination Board 2020-03-05
[2] 웹사이트 History – Official Website of the Province of Batangas https://www.batangas[...] 2023-09-22
[3] 웹사이트 History – Official Website of the Province of Batangas https://www.batangas[...] 2023-09-22
[4] 논문 Recent advances in the Iron Age archaeology of Tai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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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뉴스 Birthplace of Austronesians is Taiwan, capital was Taitung: Scholar Taiwan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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