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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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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문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신으로, "숨겨진 자" 또는 "보이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이집트 제11왕조 시대에 테베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테베 삼위일체를 형성했다. 중왕국 시대 이후에는 라 신과 결합하여 아몬-라로 숭배되었고, 이집트 신들의 주로 여겨졌다. 아문 신전과 사제단은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으며, 아멘호테프 4세의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아문 신앙은 부활했다. 카르나크 신전은 아문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신왕국 시대에는 국가신으로서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아문은 다른 신들과 동일시되었으며, 특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제우스와 결합되어 숭배되었다. 아문은 누비아, 그리스, 로마 등 다양한 지역에서 숭배되었으며, 암모나이트, 암모니아 등 여러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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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
기본 정보
아마르나 시대 이후 아문의 모습 (푸른 피부색)
아마르나 시대 이후, 아문은 공기와 원초적 창조와의 연관성을 상징하는 푸른 피부색으로 그려졌다. 아문은 다양한 다른 형태로도 묘사되었다.
숭배 중심지테베
헤르모폴리스 (오그도아드의 일원으로서)
상징두 개의 수직 깃털, 양머리 스핑크스 (크리오스핑크스)
가족 관계
배우자아마우네트

무트
레아 (리비아)
자녀콘수
디오니소스 (리비아)
신화적 동일시
그리스 신화제우스
일반 정보
다른 이름아문, 암몬, 아마나, 아멘
신성 문자i-mn:n-C12 또는 M17-Y5:N35-A40
관련 장소
신전시와 오아시스

2. 초기 역사

아문과 아무네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된 피라미드 텍스트에 언급되어 있다.[9] 아문이라는 이름(imn|imnegy)은 "숨겨진 자" 또는 "보이지 않는 자"를 의미했으며,[10] 이는 피라미드 텍스트에 나오는 "오,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신이여"라는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다.[11]

1910년 르네 바세는 아문 숭배가 고대 리비아에서 시작되어 이집트로 전파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했으나,[7] 아문은 우나스 파라오(기원전 2350년경)의 무덤에서 이미 언급되었기 때문에[8] 이 가설은 입증되지 않았다.

원래 아문은 나일강 동쪽 기슭의 테베(현 룩소르) 지방의 대기 또는 풍요의 신이었으며, 처음에는 중요한 신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집트 제1중간기가 끝난 후 이집트 제11왕조 시대에 이르러 테베의 수호신으로 부상했다. 테베에서 아문은 그의 배우자인 무트, 그리고 아들인 달의 신 콘수와 함께 신성한 가족, 이른바 "테베 삼신"을 형성했다.

3. 카르나크 신전

테베의 수호신으로서 아문의 역사는 기원전 20세기에 세누스레트 1세 치하에서 카르나크에 아문-라 신성 구역이 건설되면서 시작되었다. 테베는 이집트 제11왕조 이전에는 큰 중요성을 지닌 도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제18왕조 시대에 테베가 통일된 고대 이집트의 수도가 되면서 아문-라 신성 구역에서 대규모 건설 작업이 이루어졌다. 카르나크 대열주 홀의 건설도 제18왕조 동안 시작되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세티 1세람세스 2세 치하에서 건설되었다. 메르넵타바다 민족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캐시트 안뜰 벽에 기념했는데, 이곳은 룩소 신전으로 가는 행렬의 시작 지점이었다. 현재 내용의 약 3분의 1이 손실된 이 ''대 석문''은 왕의 원정과 귀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석문 옆에는 메르넵타의 장례 단지에서 발견된 메르넵타 석비를 거의 그대로 복사한 ''승리 석비''가 있다.[12] 메르넵타의 아들 세티 2세는 제2탑문 앞에 두 개의 작은 오벨리스크를 추가했으며, 같은 지역의 행렬로 북쪽에 아문, 무트, 콘수에게 바치는 삼중 바크 신전을 건설했다.

아문-라 신성 구역의 마지막 주요 변화는 넥타네보 1세가 건설한 첫 번째 탑문과 신성 구역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담장의 추가였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은 아문을 모시는 곳이다. 신전의 대열주실 등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벽화에는 아문이 두 개의 깃털 장식을 쓴 인물상이나 숫양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4. 신왕국

이집트 제18왕조의 창시자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 통치자들을 이집트에서 몰아내면서, 그의 출신 도시인 테베는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이에 따라 테베의 지역 수호신이었던 아문은 국가신으로 중요성이 커졌다. 새로운 왕조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모든 성공을 아문에게 돌렸고, 아문에게 바쳐진 신전 건설에 막대한 재산과 전쟁 전리품을 쏟아부었다.[13]

파라오들이 아문의 이름으로 외적을 물리치면서, 아문은 점차 불우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를 지키는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5] 또한 마아트(진실, 정의, 선)를 지지하는 신으로 인식되었다.[5]

이집트가 남쪽의 쿠시 왕국을 정복하면서, 쿠시인들이 숭배하던 숫양 머리의 신을 아문과 동일시했다. 이로 인해 아문은 숫양, 특히 굽은 뿔을 가진 양털 숫양과 연관되었고, 때때로 아몬의 뿔이라 불리는 작은 숫양 뿔을 단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숫양이 다산과 정력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문은 다산의 신 민의 속성을 흡수하여 '아문-민'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러한 다산의 신으로서의 면모는 그에게 '카무테프'(Kꜣ-mwt.f|카무테프egy, "그의 어머니의 황소")라는 별칭을 안겨주었다.[10]

아문-라


신왕국 시대에 아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는 당시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였던 태양신 와 동일시되었다. 이 통합으로 아문은 '아문-라'가 되었고, 이집트 판테온의 최상위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파라오들은 "아문의 아들"로 여겨졌으며, 이집트 제12왕조의 왕 아메넴헤트나 이집트 신왕국 시대 이집트 제18왕조의 왕 투탕카멘처럼 역대 파라오의 이름에도 '아문'이 포함되었다.

아비도스의 세티 1세 신전 예배당에서 세티 1세와 함께 묘사된 아문-라


신왕국 시대 동안 아문 신앙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했고, 특히 카르나크 신전을 중심으로 한 아문 사제단의 영향력은 파라오의 왕권을 위협할 정도까지 커졌다. 이에 아멘호테프 4세(훗날 아케나텐)는 아텐 신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아문 신앙을 억압하려 했으나, 그의 사후 아문 신앙은 곧바로 복원되었다. 기원전 1080년경에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아몬 대사제 국가가 형성되어 파라오의 권력과 이집트를 양분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은 아문을 모시는 중심지였으며, 신전의 대열주실 등에는 두 개의 높은 깃털 장식 왕관을 쓴 아문의 모습이 새겨진 벽화가 많이 남아 있다. 아문은 또한 숫양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세계유산아부 심벨 신전 내부 지성소에는 람세스 2세의 조각상과 함께 아문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1년에 두 번 특정 날짜에만 햇빛이 지성소 깊숙이 들어와 이 조각상들을 비추도록 천문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아문 (신왕국). 일반적으로 머리에 두 개의 깃털 장식, 앙크 상징, 바스 홀을 들고 붉은 갈색 피부로 묘사되었다.


아문-민. 아문이 다산의 신 민과 결합한 형태이다.

4. 1. 아케나텐의 종교 개혁과 아문 신앙의 쇠퇴

아멘호테프 3세의 조상 기둥에 새겨진 상형 문자. 아케나텐의 사람들이 아문의 이름을 지운 두 곳이 있으며, 나중에 더 깊은 표면에 복원되었다. 대영박물관, 런던


이집트 제18왕조 후반, 파라오 아케나텐(아멘호테프 4세)은 태양 원반 아텐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급진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아텐 신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 체계를 세우고, 기존의 신들, 특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아문 신의 상징들을 의도적으로 훼손했다. 이집트에서 종교는 파라오의 통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는 국가 운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케나텐은 수도를 전통적인 종교 중심지였던 테베에서 새로운 도시 아마르나(Akhetaten)로 옮겼는데, 이는 기존 권력 기반을 잃게 된 아문 사제들의 큰 반발을 샀다.

아케나텐 치하에서 도입된 아텐주의는 사실상 단일신교 체제로, 기존의 아문 숭배와 직접적으로 충돌했다. 아텐 신에 대한 찬양은 아텐 찬가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네가 하늘을 가로지를 때, 모든 얼굴이 너를 바라보지만, 네가 떠나면 그들의 얼굴에서 숨겨진다 ... 네가 서쪽 산에 질 때, 그들은 죽음의 방식으로 잠든다 ... 땅이 생산하는 것의 조형자, ... 신과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어머니; 참을성 있는 장인, 그들의 제작자로서 크게 지쳐서... 용감한 목동, 소를 몰고, 그들의 피난처이자 그들의 삶을 만들고... 유일한 주님, 매일 땅의 끝에 도달하며, 그 위에 걷는 자들을 보는 자처럼... 매일 그의 상승에 모든 땅이 재잘거리며, 그를 찬양하기 위해.[16]

아케나텐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스멘크카레는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아텐주의를 유지했다. 스멘크카레가 죽은 뒤에는 네페르네페루아텐이라는 여성 파라오가 잠시 통치했으나, 이 시기의 상황은 명확하지 않다. 이후 아케나텐의 어린 아들 투탕카텐이 9살의 나이로 파라오가 되었다. 그는 즉위 초기에 아텐주의를 폐지하고 전통적인 다신교 신앙을 복원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도 아텐을 기리는 '투탕카텐'에서 아문을 기리는 '투탕카멘'으로 바꾸었으며, 그의 아내이자 누이였던 앙케세나파아텐 역시 '앙케세나문'으로 개명했다. 아텐 숭배는 중단되었고, 아문-라 신앙이 다시 국가 종교의 중심이 되었다.

호렘헤브 파라오 시대에 이르러 아케나텐의 흔적은 더욱 철저히 지워졌다. 그의 이름은 공식 기록에서 삭제되었고, 그가 추진했던 모든 종교적, 정치적 변화는 원상 복구되었다. 수도 역시 다시 테베로 돌아왔다. 이러한 신속한 복귀 작업으로 인해 아케나텐의 단일신교 개혁과 그에 따른 변화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집트 역사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4. 2. 아문-라의 신학



제18왕조의 창시자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를 이집트에서 몰아낸 후, 그의 출신 도시인 테베는 이집트의 수도이자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테베의 지역 수호신이었던 아문은 국가신으로 부상했다. 새로운 왕조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아문에게 돌리며 막대한 재산과 전리품을 아문 신전 건설에 바쳤다.[13]

아문은 파라오들이 "외국 통치자들"에 대항하여 거둔 승리를 통해, 억압받는 이들을 보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수호하는 신으로 여겨졌다.[5] 또한 그의 이름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돕는 '길의 수호자'로도 인식되었다. 그는 마아트(진실, 정의, 선)를 지지했기 때문에,[5] 아문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스스로 가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데르 엘-메디나의 장인 마을에서 발견된 봉헌 비문에는 아문의 자비로운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 [아문]은 고통받는 가난한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시고, 비참한 자에게 숨결을 주시는 분... 당신은 가난한 자의 목소리에 응답하시는 침묵의 주 아문이시며, 고통 속에서 당신을 부르면 당신이 오셔서 나를 구원하십니다... 비록 종은 악을 행하려 하지만, 주님은 용서하시려 합니다. 테베의 주님은 하루 종일 분노를 품지 않으시고; 그의 분노는 잠시 지나가며,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의 숨결은 자비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당신의 ''카''가 자비롭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14]

이집트가 쿠시 왕국을 정복하면서, 쿠시인들의 주요 신(숫양 머리를 한 신)을 아문과 동일시했다. 이 쿠시 신은 굽은 뿔을 가진 양털 숫양으로 묘사되었고, 이로 인해 아문은 숫양과 연관되기 시작했다. 아문과 관련된 묘사에는 때때로 아몬의 뿔이라 불리는 작은 숫양 뿔이 나타나기도 한다. 숫양은 정력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아문은 다산의 신으로도 간주되어 민의 속성을 흡수하며 아문-민이 되었다. 이러한 다산의 신으로서의 특징은 아문-민에게 '카무테프'(Kꜣ-mwt.f|카무테프egy, "그의 어머니의 황소")라는 별칭을 부여했으며,[10] 카르나크 신전 벽화에는 남근과 "플레일"(도리깨)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아문의 숭배가 확산되면서, 그는 당대 주요 신이었던 태양신 와 동일시되었다. 이 통합을 통해 아문은 아문-라가 되었다. ''아문-라 찬가''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진실의 주, 신들의 아버지, 인간의 창조주, 모든 동물의 창조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 생명의 지팡이의 창조주.[15]

람세스 4세의 무덤에서 라와 아문


원래 바람의 신이었던 아문은 태양신 , 다산과 창조의 신 민과 결합하면서 아문-라는 태양신, 창조신, 다산 신의 주요 특징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그는 또한 누비아 태양신인 숫양의 모습과 여러 다른 칭호 및 속성들을 받아들였다.

아문-라로서 그는 고통이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자비를 구하는 대상이 되었다.

: '''아문-라''' "기도를 듣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의 울부짖음에 오는 자... 그를 조심하라! 아들과 딸에게, 크고 작은 자에게 반복하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 깊은 바다의 물고기에게, 하늘의 새들에게 그를 전하라. 그를 알지 못하는 자와 그를 아는 자에게 그를 반복하라 ... 비록 종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정상일지라도, 주님은 자비로운 것이 정상이다. 테베의 주님은 하루 종일 화를 내지 않으신다. 그의 분노는 - 잠시의 완성이며 남은 것이 없다 ... 네 카가 견디는 한! 너는 자비로울 것이다![17]

라이덴 찬가에서 아문, 프타, 레는 구별되는 신이지만 다수 안에서 통일성을 가진 삼위일체로 여겨진다.[18] "세 신은 하나이지만 이집트인은 다른 곳에서 세 신 각각의 개별적인 정체성을 주장한다."[19] 이러한 다수 안의 통일성은 다음과 같은 텍스트에서 표현된다.

: 모든 신은 셋이다: 아문, 레, 프타, 그 누구도 그들과 같지 않다. 이름을 아문으로 숨기는 그는 레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의 몸은 프타이다.[20]

앙리 프랑크포르는 아문이 원래 바람의 신이었으며, 바람과 신비로움 사이의 내재된 연결이 요한 복음의 한 구절("바람은 원하는 대로 불어오며,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과 평행을 이룬다고 추측했다.[21][22]

아문에 대한 라이덴 찬가에서는 그가 폭풍우 치는 바다를 괴로워하는 뱃사람을 위해 어떻게 잠재우는지 묘사한다.

: 폭풍은 아몬의 이름을 기억하는 뱃사람을 위해 비켜간다. 폭풍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달콤한 산들바람이 된다 ... 아몬은 그를 마음에 두는 자에게 수백만 명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 덕분에 한 사람은 군중보다 더 강해진다.[23]

5. 이집트 제3중간기

테베의 아문 대사제들은 공식적인 왕조는 아니었지만, 이집트 제3중간기인 기원전 1080년부터 기원전 943년경까지 이집트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만큼 강력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원전 1080년, 람세스 11세의 통치 19년에 헤리호르가 아문의 첫 번째 통치 대사제로 선포될 무렵, 아문 사제단은 이미 이집트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아문 사제들은 이집트 전체 사원 토지의 3분의 2와 선박의 90%를 비롯한 막대한 자원을 소유했다.[24]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문 사제들은 파라오와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일부 대사제는 직접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대사제 파네젬의 아들은 프수센네스 1세로서 약 반세기 동안 이집트를 통치했으며, 테베의 대사제였던 프수센네스 3세는 이집트 제2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2세가 되었다. 이 시기 테베를 중심으로 한 아문 대사제의 세력은 아몬 대사제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하여, 파라오의 왕권과 이집트 내 영향력을 양분하며 때로는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집트 왕국과 완전히 별개의 국가는 아니었지만, 여러 면에서 왕권과 충돌했다.

5. 1. 쇠퇴

기원전 10세기에 이르러 이집트 전역에 미치던 아문의 강력한 영향력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베 지역에서는 아문 숭배가 계속 이어졌으며, 특히 누비아 출신의 파라오들이 다스린 이집트 제25왕조 시기에는 누비아인들에게 국가적인 신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신왕국 시대에 세워진 제벨 바르칼 아문 신전은 이후 쿠시 왕국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기원전 8세기에 세워진 제벨 바르칼의 피예 승전비에는 '나파타의 아문'과 '테베의 아문'이 구분되어 언급되기도 했다. 누비아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탄타마니(기원전 653년 사망) 역시 자신의 이름에 아문의 누비아식 이름인 아마니를 포함시켜, 당시까지 아문 신앙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6. 철기 시대와 고전 고대

철기 시대와 고전 고대에 들어서면서, 이집트 신 아문에 대한 숭배는 국경을 넘어 널리 퍼져나갔다. 특히 누비아수단 지역에서는 국가적인 신으로 추앙받으며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25] 리비아 사막의 시와 오아시스에 위치한 아문 신탁은 고대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리스에도 영향을 미쳤다.[30] 레반트 지역에서는 히브리 성경에도 아문 또는 관련된 지명이 언급되기도 했다.[32]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문을 최고신 제우스와 동일시하였으며,[33]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스스로를 '아문의 아들'이라 칭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37][38]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문은 고대 근동지중해 세계의 중요한 신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6. 1. 누비아와 수단

이집트 밖에서도 아문 숭배는 고대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누비아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마네(Amane)' 또는 '아마니(Amani)' (메로에 상형 문자: 𐦀𐦉𐦊𐦂egy, 필기체: 𐦠𐦨𐦩𐦢egy)로 불렸다.

메로에와 노바티아에서 아문은 국가 신으로 여겨졌으며, 그의 사제들은 신탁을 통해 국가 운영 전반에 관여하여 통치자를 선택하고 군사 원정을 지휘했다.[25]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이들 사제들은 왕에게 자살을 강요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관행은 기원전 3세기에 아르카마네 왕이 사제들을 살해하면서 중단되었다.

수단의 단게일 지역에서는 2000년부터 수단 국립 유물 박물관 위원회(NCAM)와 영국 대영 박물관의 공동 조사단에 의해 아문 신전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 결과 신전은 화재로 파괴되었으며, 불탄 지붕 들보에 대한 가속기 질량 분석법(AMS)과 탄소 연대 측정법(C14) 분석을 통해 신전의 마지막 건축 시기가 서기 1세기경임이 밝혀졌다. 이는 함께 발견된 도자기와 비문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26] 신전은 파괴된 이후 점차 쇠락하여 무너져 내렸다.

누비아에서 아문에게 봉헌된 가장 중요한 신전 중 하나는 나일강 제4폭포 인근에 위치한 제벨 바르칼의 신전이다. 이 신전은 거대한 사암 언덕 주변에 세워졌는데, 초기 형태는 투트모세 3세 시기 흙벽돌로 지어졌다.[27] 이후 아케나톤 통치기에는 탈라타트 블록을 사용하여 외부 안뜰, 탑문, 내부 성소를 갖춘 영구적인 석조 구조물의 기초가 마련되었다.[27] 람세스 2세 시대에는 안뜰과 앞마당 확장이 계획되고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완성되지는 못했다.[28] 신전 뒤편 사암 언덕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는 흔히 우라에우스나 상 이집트의 백색 왕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27] 누비아를 점령한 이집트인들은 이 산이 카르나크 아문의 근원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믿었으며, 제벨 바르칼을 '두 땅의 왕좌'(Nswt-TꜢwyegy)라고 불렀다.[28]

이는 누비아 원주민과 이집트 점령자 모두에게 제벨 바르칼 신전이 지닌 종교적,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집트인들은 이곳을 통해 자신들의 제국과 피정복민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자 했다.[29] 제벨 바르칼은 신성한 왕권의 원천으로 여겨졌으며, 이곳의 아문 숭배는 이집트 통치자들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28] 이러한 상징성은 이집트 제25왕조가 무너진 이후에도 이어져, 누비아의 쿠시트 왕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29] 제벨 바르칼의 전략적 위치와 아문 숭배에서 비롯된 종교적 권위는 피안키와 같은 쿠시트 왕들이 나일 삼각주까지 영토를 확장했을 때에도 이곳을 권력의 중심으로 삼게 만들었다.[29]

6. 2. 시와 오아시스와 리비아

이집트 서부에 위치한 시와 오아시스에는 리비아 사막 근처에 아문의 고독한 신탁이 남아 있었다.[30] 암몬(아문) 숭배는 이른 시기에 그리스에 전파되었는데, 아마도 키레네에 있던 그리스 식민지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키레네는 오아시스에 있던 암몬의 위대한 신탁이 세워진 직후 그곳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리비아의 신화적인 왕인 이아르바스 역시 암몬의 아들로 여겨졌다.

서기 6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의 작가인 코리푸스에 따르면, 라구아탄으로 알려진 리비아 민족은 서기 540년대에 비잔틴 제국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신 구르질의 조각상을 들고 싸웠는데, 이들은 구르질을 암몬의 아들로 믿었다.[31]

6. 3. 레반트

아문은 히브리 성경에서 예레미야 46장 25절에 אמון מנא|아몬 마나heb로 언급되었는데, 이는 "노의 무리" 또는 "알렉산드리아의 무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또한 테베나훔 3장 8절에서 נא אמון|노-아몬heb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인구 밀집 도시 알렉산드리아"로도 번역된다. 이 텍스트들은 기원전 7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32]

구약성서 예레미야기 46장 25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테베의 아몬과 파로(파라오)와 이집트와 그 신들과 그 왕들, 곧 파로와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하리라.'" (성경 개역개정판)

아문은 신들의 주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와, 로마인들은 유피테르와 동일시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32년 이집트에 입성했을 때 스스로를 "아몬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6. 4. 그리스

그리스인들은 아문을 '''암몬'''(Ἄμμων|Ammongrc) 또는 헬리오폴리스(태양신의 도시)로 부르며 숭배했다.[33] 이들은 아문을 최고신 제우스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핀다로스는 아문을 기리는 찬가를 지었다.

테베 (그리스)에는 핀다로스(기원전 443년경 사망)가 기증한 아문 신전과 조각상이 있었고,[34] 스파르타에도 신전과 조각상이 존재했다. 파우사니아스(지리학자)에 따르면, 스파르타 사람들은 다른 그리스인들보다 일찍부터 리비아에 있는 아문의 신탁을 중요하게 여겼다.[35] 칼키디케의 아피티스에서는 뤼산드로스(기원전 395년 사망) 시대부터 아문을 암모니움(Ammonium, 시와 오아시스의 아문 신전)만큼이나 열렬히 숭배했다. 메갈로폴리스에서는 이 신을 숫양의 머리로 묘사했으며(파우. viii.32 § 1), 키레네의 그리스인들은 델포이에 아문의 조각상이 있는 전차를 봉헌했다.

제우스-아문. 기원전 5세기 후반 그리스 원본의 로마 복제품. 하부 나일 델타와 키레네의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의 특징과 이집트 신 아문-라의 특징을 결합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정복한 후[36] 시와 오아시스를 방문하여 신탁을 받았다. 이 신탁은 그를 '아문의 아들'로 선언했다.[37]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와 동일시된 아문, 즉 '제우스-아문'을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자주 언급했으며,[38] 그의 사후 발행된 주화에는 그의 신성을 상징하는 아문의 뿔 장식이 묘사되었다.[39] 아문의 뿔을 가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묘사 전통은 수세기 동안 이어졌고, 알렉산드로스는 코란에서 '두르 알-카르나인'(두 뿔을 가진 자)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중동의 동전[40]과 조각상에서 아문의 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 것[41]을 가리킨다.

'암모니아'나 '암모나이트'와 같은 몇몇 단어는 아문의 그리스식 이름인 '암몬'에서 유래했다. 로마인들은 고대 리비아의 유피테르-아문 신전 근처 퇴적물에서 수집한 염화 암모늄을 '살 암모니아쿠스'(sal ammoniacus, 아문의 소금)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전과의 근접성 때문이었다.[42] 암모니아는 화학 물질일 뿐만 아니라 유공충의 속명이기도 하다. 껍질을 가진 원생동물인 유공충과 멸종된 껍질을 가진 두족류인 암모나이트는 모두 숫양과 아문의 뿔을 닮은 나선형 껍질을 가지고 있다. 해마 영역은 세포층의 어둡고 밝은 띠가 이루는 뿔 모양 때문에 코르누 아모니스(Cornu Ammonis)라고 불리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아문의 뿔"을 의미한다.

7. 아문에 기원하는 명칭

몇몇 단어는 아문의 그리스어 형태인 '암몬'(Ἄμμων|암몬grc)에서 유래했다.


  • '''암모나이트''': 고대 그리스에서 암몬은 숫양의 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암모나이트 화석의 나선형 모양이 이 뿔과 닮았다고 여겨져 이름 붙여졌다. 자세한 내용은 암모나이트#명칭 참조.
  • '''암모니아''' 및 '''암모늄염''': 고대 로마인들은 고대 리비아의 유피테르-아문 신전 근처 퇴적물에서 발견된 염화 암모늄을 신전과의 관련성 때문에 '살 암모니아쿠스'(sal ammoniacus|살 암모니아쿠스lat, '암몬의 소금')라고 불렀다.[44] 여기서 암모니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 '''코르누 아모니스''': 해마 영역은 세포층의 어둡고 밝은 띠가 이루는 뿔 모양 때문에 cornu Ammonis|코르누 아모니스lat, 즉 '아문의 뿔'이라고 불린다.


또한, 아문 신을 마법서 『고에티아』에 기록된 악마 중 하나인 아몬(Amon)의 기원으로 보는 설도 존재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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