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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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호대장군은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을 임명한 칭호이다. 이들은 유비 휘하의 뛰어난 무장들로, 관우가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정사 삼국지에는 오호대장군 명칭은 없지만,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을 묶어 기록하고 있으며, 각 인물의 군사적 업적과 평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오호대장군은 삼국지 외에도 수호전, 수당연의 등 다양한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오늘날에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다섯 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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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대장군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중국어 간체 | 五虎大将 |
중국어 번체 | 五虎大將 |
병음 | Wǔ Hǔ Dà Jiàng |
웨이드-자일스 | Wu3 Hu3 Ta4 Chiang4 |
한국어 | 오호대장군 |
로마자 표기 | Oho Daejanggun |
일본어 | 五虎大将 (ごこたいしょう, Gokotaishō) |
베트남어 | Ngũ hổ tướng |
구성원 |
2. 삼국지연의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후,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을 오호대장군으로 임명했다고 묘사한다.[1][2]
- '''관우'''는 유비가 황건적의 난을 겪던 초기에 장비와 함께 유비의 지휘를 따랐다. 탁군 지역 상인들의 지원을 받은 유비의 민병대에 합류하여 유비, 장비와 형제 관계를 맺었다.[3] 촉한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사후에 신격화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오호(五虎)는 주로 "'''오호대장'''"으로 나타나며, "'''오호상장'''", "'''오호장'''"이라고도 불린다. 소설 이전의 강담 『삼국지평화』에서는 "'''오호장군'''",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에서는 "'''오호대장군'''"으로 칭한다. 중국에서도 명칭이 통일되지 않아, 쓰촨성몐양 시 푸러산 공원(富楽山公園)에는 "오호상장(五虎上將)"이라 쓰여 있지만[12], 중국어 위키백과 항목명은 "오호장(五虎将)"이다. 본 문서에서는 "'''오호대장군'''"으로 통일한다.
2. 1. 명단
다음은 촉한의 오호대장군으로 불리는 장수들이다.
유비는 한중을 평정하고 한중왕이 된 후, 제갈량의 건의에 따라 신뢰와 공적이 있는 5명의 무장에게 오호대장군 칭호를 수여했다.[1][2] 이들은 중요한 군사적 상황에서 각자 군대를 이끌고 활약하며 군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의형제였고, 조운은 오래된 무장이었으며, 황충은 노장이었고, 마초는 가장 늦게 합류한 항장이었지만, 지위, 나이, 경력 등은 선발 기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호대장군의 수장으로는 관우가 임명되었다.
2. 2. 정사에서의 취급
오호대장군이라는 명칭은 삼국지연의에서 유래했으며, 정사 삼국지에서는 이들을 '관장마황조전'으로 묶어 기록했다.[1] 정사에서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에게 비슷한 장군 직위가 주어졌으나, 조운은 상대적으로 승진이 늦었다.[9]역사가 진수는 『삼국지』에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의 전을 "관장마황조전"으로 한 권에 묶어 기술했다. 관우, 장비, 마초, 황충에게는 동격의 장군위가 주어졌지만, 조운은 비교적 승진이 늦고, 신참인 마초와 황충에게 추월당했다.
; 정사에서의 평가
- 관우·장비는 정욱 등에게서 "만인의 적(혼자서 1만 명과 싸울 수 있는 맹자. 용맹함의 비유)"[13], 유엽에게서는 "삼군 필두의 용"이라고 칭찬받았고[14], 주유에게서는 "웅호의 장(용맹한 장)"이라고 평가받았다[15]. 진수는 "호신(용맹한 신하)"이나 "국사"라고 찬사를 받았다.
- 조운은 『계한보신찬』에서 "충의와 용맹함을 겸비했다"고 칭찬받았다.[16] 또한, 유비는 조운의 호담함을 "온몸이 간이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17] 진수는 "장맹하여, 군의 조아가 되었다"라고 황충과 동일한 평가를 했다.
- 황충은 입촉 때 "항상 선봉을 맡아 삼군 필두의 용자"였다고 기록된다.[18]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정려하고 용장하여, 적을 격파하고 난에 나아가, 무공을 세워, 당시의 주간이 되었다"고 찬미되고 있다.[16] 진수는 조운과 함께 "장맹하여, 군의 조아가 되었다"라고 평한다.
- 마초는 고대의 영웅에 준해졌으며, 양부에게는 "한신·경포의 무용을 가졌다"고 말해졌고[19], 제갈량에게는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고, 비범하게 용맹하며, 당대의 영웅이며, 경포·팽월의 부류"라고 칭찬받았다.[20] 더 나아가 순욱·주유에게도 유력자로 인정받았다.[21] 진수의 평에는 "무와 용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
; 정사에서의 관우의 프라이드(마초, 황충에 대한 것)
- 마초가 유비에게 항복했을 때, 관우가 "그의 능력은 누구와 비교될 수 있는가"라고 편지로 물었을 때, 제갈량은 "익덕(장비)에는 필적하지만, (관우의 훌륭한 턱수염과 뺨수염에서 유래한 별명)에는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답했다. 관우는 이 답장에 기뻐하며, 방문객에게 자랑했다.[20]
- 유비가 황충을 후장군에 임명할 때, 제갈량은 황충의 명망이 관우·마초에 미치지 못함을 지적하고, "〔황충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을〕 관우는 불쾌하게 생각(납득하지)하지 않을까요"라고 진언했다.[18] 실제로, 이 인사를 들은 관우는 "대장부(훌륭한 남자)는 늙은 병사(황충)와 동열이 될 수 없다"라고 분노했지만, 비시의 설득으로 분노를 풀었다.[22]
; 군웅과의 관계
- 관우·장비는 유비가 기치를 든 때부터 함께했으며, 그 죽음도 거의 같은 시기였다. 또한 황충·마초도 같은 시기에 사망했다.
- 유비와 유선 두 사람 모두를 군주로 모신 것은 조운뿐이다.
- 황충은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이에 따라 비장군에 임명되었으므로, 조조를 군주로 삼은 적이 있다. 관우 또한 서주가 함락되어 유비가 도망쳤을 때 잠정적으로 조조를 따랐다. 마초도 조조가 원소 잔당과 다투던 시기에, 조조 측의 전력으로서 싸우고 있다.
- 독립한 세력의 정상이 된 적이 있는 것은 마초뿐이다.
인물 | 장군위 | 봉호 | 시호 | 생몰년 | 군주 |
---|---|---|---|---|---|
관우 | 편장군→탕구장군→전장군 | 한수정후 | 장무후 | ?년 - 220년 | 유비 |
장비 | 정로장군→우장군→거기장군 | 신정후>서향후 | 환후 | ?년 - 221년 | 유비 |
조운 | 아문장군→익군장군→정남장군→진동장군→진군장군 | 영창정후 | 순평후 | ?년 - 229년 | 공손찬→유비→유선 |
황충 | 비장군→토로장군→정서장군→후장군 | 관내후 | 강후 | ?년 - 220년 | 유표→유종→한현→유비 |
마초 | 편장군→정서장군(자칭)→평서장군→좌장군→표기장군 | 도정후>려향후 | 위후 | 176년 - 222년 | 마등→독립세력→유비 |
2. 3. 정사에서의 평가
- 관우·장비는 정욱 등으로부터 "만인의 적(혼자서 1만 명과 싸울 수 있는 맹자. 용맹함의 비유)"[13], 유엽에게서는 "삼군 필두의 용"[14], 주유에게서는 "웅호의 장(용맹한 장)"[15]이라고 칭찬받았다.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호신(용맹한 신하)"이나 "국사"라고 찬사를 보냈다.
- 조운은 『계한보신찬』에서 "충의와 용맹함을 겸비했다"고 칭찬받았고[16], 유비는 조운의 호담함을 "온몸이 간이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17]. 진수는 "장맹하여, 군의 조아가 되었다"라고 황충과 동일하게 평가했다.
- 황충은 입촉 때 "항상 선봉을 맡아 삼군 필두의 용자"였다고 기록되며[18],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정려하고 용장하여, 적을 격파하고 난에 나아가, 무공을 세워, 당시의 주간이 되었다"고 찬미되고 있다[16]. 진수는 조운과 함께 "장맹하여, 군의 조아가 되었다"라고 평했다.
- 마초는 고대의 영웅에 비견되었으며, 양부는 "한신·경포의 무용을 가졌다"고 말했고[19], 제갈량은 "문무의 재능을 겸비하고, 비범하게 용맹하며, 당대의 영웅이며, 경포·팽월의 부류"라고 칭찬했다[20]. 순욱·주유에게도 유력자로 인정받았다[21]. 진수의 평에는 "무와 용을 믿고" 있었다고 한다.
3. 수호전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108명의 호걸이 모인 후, 송강은 관승, 임충, 진명, 호연작, 동평을 오호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오호대장은 양산박에서 총두령과 군사 다음으로 높은 직책으로, 군인 중에서는 최고의 자리였다.
3. 1. 명단
고전 소설 《수호전》에서 양산박 108명의 호걸 중 관승, 임충, 진명, 호연작, 동평 등 다섯 명은 양산박 기병대의 "오호대장"으로 꼽힌다.[23] 이들은 양산박에서 총두령과 군사 다음으로 높은 직책을 맡았으며, 군인 중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해당한다.[23]
3. 2. 삼국지와의 연관성
수호전에서 양산박 108명의 호걸 중 관승, 임충, 진명, 호연작, 동평 등 다섯 명은 양산박 기병대의 "오호대장"으로 꼽힌다.[1]대도(大刀)라는 별명을 가진 관승은 관우의 직계 후손으로 관우와 똑같은 외모를 물려받았으며, 관우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무기를 사용했다.[1] 채경에 의해 정부군을 이끌고 양산박을 공격하도록 임명되었으나, 호연작에게 패한 후 양산박에 항복했다.[1] 이후 양산박에 합류하여 송나라 정부군인 선정규와 위정국을 사로잡았으며, 108명의 호걸 중 5위로 랭크되었다.[1] 양산박에서의 공식적인 군사 직함은 "오호대장군의 좌장"이었다.[1]
양산박의 직책 중 이보다 높은 직책은 총두령과 군사뿐이며, 군인 중에서는 최고의 자리이다 (수호전 108성 일람표).[2] 편성은 좌군 대장 - 대도 관승, 우군 대장 - 표자두 임충, 선봉 대장 - 벽력화 진명, 합후 대장 - 쌍편 호연작, 호군 대장 - 쌍창장 동평의 5명이다.[2]
관승은 관우의 자손이라는 설정이며, "대도"는 《삼국지연의》에서의 관우의 무기인 청룡언월도를 가리킨다. 청룡언월도를 실제로 사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도의 명수였던 것은 사실이다.[2] 임충은 무기가 사모이며, 용모가 "표두환안 연안호수"라고 형용되는 점에서 장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2]
4. 다른 문학 작품에서의 오호대장군
수당연의에서 와강군의 반군 세력은 진숙보, 단웅신, 정요금, 왕백당, 라성을 "오호대장군"으로 둔다.
청나라 작가 리위탕은 자신의 작품 《적인전》, 《오호평서》, 《오호평남》에서 적청, 시위, 장중, 리이, 류칭을 "오호대장군"으로 지명했다.[11]
명나라 건국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소설 《영웅기》에서는 서달, 탕화, 상우춘, 호대해, 목영이 "명나라 개국 오호대장군"으로 불린다.
『삼국지연의』나 『수호전』 등의 영향을 받아, 후세의 다른 연의 소설에도 "오호대장군"으로 명명된 조합이 다수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수호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소설의 오호대장군 중에는 관우(적면, 대도를 사용하며, 인의를 중시함)와 장비(흑면, 뱀창을 사용하며, 날뛰는 용맹함)와 비슷한 인물도 있으며, 나머지 3명의 설정은 비교적 자유롭다.
와강채(瓦崗寨)의 직책. 엄밀히 말하면, 《수당연의》를 기초로 한 2차 창작 소설 속에서 이밀이 와강채의 주인이 된 후 설치된 직무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파생된 다른 작품에서는, 정교금이 와강채에서 혼세마왕(混世魔王)으로 불렸을 때 설치되었으며, 진숙보는 오호장(五虎將)보다 지위가 높은 대원수였으므로, 어느 쪽 설이든 《연의》와는 다르다.
유명한 안사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백호성의 세 번째 환생인 곽자의를 그린 소설 속 5명의 무장은 다음과 같다. 안록산은 백호성과 대대로 숙적인 청룡성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이들 5명이 손을 잡고 안록산을 무찌르는 장면은 "오호박창룡(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창룡을 잡는다)"이라고 불린다.
- '''백호성 곽자의''' : 쌍두오륜고, 정국분룡창, 분룡두, 분룡갑, 현무편, 진천궁, 천운시 등의 보물을 가짐
- '''흑호성 위지발''' : 위지경덕의 후손
- '''비대수・유교'''
- '''와호성 오강'''
- '''취호성 임충'''
곽자의 외에는 기본적으로 가공의 인물이다. 또한, 실제로 신(성군)으로 취급되는 것은 서방의 의신화, 백호의 민간에서의 호칭에 해당하는 백호성뿐이다. 흑호성은 명청 소설 속에서 인, 지, 용을 겸비한 백호성의 환생에 대응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단순한 만용을 갖춘" 가공의 성군을 대표한다. 나머지 3명의 성군은 완전히 소설가의 창작이다.
『혼당연의』나 『잔당오대연의』 등을 포함하여, 황소의 난으로 시작하여 오대십국의 역사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지장왕보살의 신수·제청의 환생이자 잔당십육영웅의 제4석인 금통제·황소(자금등창을 사용하며, "살인 팔백만, 유혈 삼천리[24]"라는 숙명을 짊어진 신검·혼당보검을 지님)가 세운 대제국의 5명의 무장은 다음과 같다.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십육영웅의 제1석, 십삼태보 용남공·이존효의 보좌 역할로 존재한다.[25]
- '''백옥장·갈종주'''(제10석) : 호두량은창을 사용하며, 병법에 정통한 주사로 설정
- '''철파천대도장·맹절해'''(제11석) : 삼정청룡언월도를 사용하며, 관우를 모델로 한 가공의 인물
- '''철천왕·등충'''(제12석) : 빈철력관삭을 사용하며, 가공의 인물, 통칭은 "등천왕"
- '''추귀새온신·주온'''(제13석) : 거치비겸대절도를 사용하며, 구추성의 환생
- '''은창장·장귀패'''(제14석) : 팔보반룡량은창을 사용
『수호전』에서 무곡성의 환생이라 불리며, 문곡성 포증과 함께 송나라의 수호자로 칭송받는 명장 적청을 중심으로 한 『적청연의』(『적청연의(만화루)』, 『오호정서』, 『오호평남』 포함)에서는 5명의 무장(적청 본인도 오호 중 한 명이다)이 등장한다.
- '''출산호 적청''' : 송태조 조광윤이 전래한 정당금도와 현월룡구, 혈결원앙, 칠성시, 인면금패 등의 보물을 지님
- '''파산호 장충''' : 관우를 모델로 함
- '''이산호 이의''' : 장비를 모델로 함
- '''비산호 유경''' : 보물 "석운파"를 가지고 하늘을 날 수 있음
- '''소면호 석옥''' : 선인으로부터 전래된 명창과 창술을 지녔으며, 적청과 마찬가지로 선술에 능통함
그 외에도 『양가장연의』 시리즈에서 유명한 영웅 초귀와 맹량의 후예인 '''초정귀'''와 '''맹정국'''도 희극적인 인물로 적청의 부하로 등장한다.
『주원장연의』나 『대명영렬전』 등의 작품 속에서, 명 태조 주원장의 부하인 5명의 무장은 다음과 같다.
모두 역사상 유명한 무장이지만, 상우춘과 목영을 제외한 3명은 소설 속에서는 일류의 실력자는 아니다(서달은 문무를 겸비한 주사(主帥)로 설정되어 지장의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명영렬전』에 의한 2차 창작으로, 실제로 명의 주력 부대를 담당한 것은 상우춘의 아들 상무, 호대해의 아들 호덕계 등의 후배 영웅이었다.
『대만외지자수상오호뇌남경전』(上巻)과 『대만외지후전자수상오호장소평해분기』(下巻)로 구성된 『대만외지오호전』(台湾外志五虎伝)에는 정성공의 부하인 10명의 무장(상권과 하권에 각각 1명, 푸젠성과 대만 일대에서는 각각 "전오호"와 "후오호"라고 불린다)이 있다.
- "전오호"
- '''비산호·진괴기'''(飛山虎・陳魁奇)
- '''찬지호·진표'''(鑽地虎・陳豹)
- '''천석호·진전'''(穿石虎・陳典)
- '''번강호·감휘'''(翻江虎・甘輝)
- '''순야호·만례'''(巡夜虎・萬禮)
- "후오호"
- '''가채'''(柯彩)
- '''허봉'''(許鳳)
- '''진룡'''(陳龍)
- '''람리'''(藍理)
- '''오전'''(呉田)
진괴기가 역사상의 무장 진괴를 모델로 한 것을 제외하면, 역사상의 실존 인물이다. 또한, '''주전빈'''(周全斌), '''감휘'''(甘輝), '''마신'''(馬信), '''유국헌'''(劉国軒), 시랑을 정성공의 오호장으로 간주하는 설도 있다.[28]
5. 문화적 영향
오늘날 한국에서 '오호대장군'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다섯 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대만 오페라에서는 샤오 쇼울리, 장우퉁, 차오 차이바오, 천춘셩, 수텅왕이 '오호대장군'으로 불린다.
대만 정치에서 궈위신, 리완쥐, 궈궈지, 리위안찬, 우산롄은 대만성 자문위원회의 '오호대장군'으로 불리며, 여성 정치인 쉬스시엔과 함께 이들 여섯 명은 "五龍一鳳|오룡일봉중국어"으로 불린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대만의 텔레비전 채널 산리흐 E-텔레비전의 다섯 MC인 허이항, 펑 자자, 양판, 위톈, 리텅차이는 '오호대장군'으로 불렸으며, 이들은 함께 三立五虎將 金牌點唱秀|삼립오호장 금패점창수중국어를 진행했다.
1980년대 홍콩 텔레비전 배우 황르화, 먀오차오웨이, 탕전예, 류더화, 양조위는 TVB의 오호대장군으로 불린다. 이들은 1991년 영화 ''The Tigers''에 함께 출연했다.
2009년, 우후장이라는 대만 음악 밴드가 결성되었다. 다섯 멤버는 현대 학교를 배경으로 한 ''K.O.3an Guo''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촉나라의 오호대장군으로 출연했으며, 이 드라마는 ''삼국지연의''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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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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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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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53
https://www.three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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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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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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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of Three Kingdoms - Luo Guanzhong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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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汉职官制度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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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客矛盾与蜀汉政权的失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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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pen-l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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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楽山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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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志』巻45楊戯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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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三国志』巻36黄忠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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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志』巻25楊阜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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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志』巻36関羽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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瓦岗五虎
https://baike.ba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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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即、「八百万を殺し、三千里を流血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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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元代の雑劇『鄧夫人苦痛哭存孝』で、李存孝が孟截海(孟絶海)、鄧天王、張帰覇を破ったエピソードは、すでに劇中の人物に取り上げられており、李存孝の架空の引き立て役としてかなり古い源流を持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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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存孝演义》第六回 长安城称帝
https://www.zgping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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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虎征西
http://daizhi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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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漳州版“五虎将”_郑成功_历史_章回小说
https://www.so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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