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신 Il-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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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류신 Il-86은 1970년대 소련에서 개발된 광동체 여객기이다. 350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당시 소련의 항공 수송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Il-86은 독특한 "수하물 휴대 시스템"을 도입하여 승객이 직접 짐을 객실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으며, 쿠즈네초프 NK-86 엔진 4기를 장착했다. 1976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1991년까지 총 106대가 제작되었으며, 아에로플로트를 비롯한 여러 항공사에서 운용되었다. Il-86은 군용 지휘소 버전인 Il-80으로도 제작되었으며, 후속 기종으로는 일류신 Il-9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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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신 Il-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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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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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종 | 광동체 여객기 |
설계 그룹 | 일리유신 |
제작사 | 보로네시 항공기 생산 협회 |
첫 비행 | 1976년 12월 22일 |
도입 | 1980년 12월 26일 |
퇴역 | 여객 서비스에서 퇴역, 러시아 공군에서 운용 중 |
생산 기간 | 1976년–1991년 |
생산 대수 | 106대 |
주요 운용사 | 아에로플로트 (이전) |
기타 운용사 | 시베리아 항공 (이전) 크라스 에어 (이전) 도나비아 (이전) |
파생 모델 | 일리유신 Il-96 |
2. 개발 배경
1960년대 후반, 서방 국가에서는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A300과 같은 광동체 여객기 개발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었고, 1970년 보잉 747이 실제로 취항하면서 대형 항공기를 이용한 대량 수송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에 발맞춰 소련 지도부 역시 자체적인 대형 여객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설계국에 관련 기체 설계를 지시했다. 특히 소련의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는 향후 10년 안에 연간 승객 수가 1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3],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항공기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971년부터 겐리흐 노보지 로프가 이끄는 일류신 설계국 주도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발 목표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개최에 맞춰 '소련판 에어버스'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2. 1. 초기 컨셉
1960년대 중반,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당시 일반적인 여객기의 두 배 크기인 약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여객기, 이른바 '에어버스' 개발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소련 지도부 역시 경쟁적으로 유사한 규모의 '에어로버스'(аэробусru) 개발을 원했다. 이는 단순한 선전 목적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소련의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는 10년 안에 연간 승객 수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 (실제로 1976년 12월 29일, 아에로플로트는 1억 번째 승객을 수송했다.[4])가장 먼저 이 요구에 반응한 곳은 올레그 안토노프가 이끌던 OKB-153 설계국이었다. 안토노프 설계국은 자사의 An-22 군용 수송기를 기반으로 한 724석 규모의 여객기 모델을 제안했다.[5] 이 프로젝트는 1969년까지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상층 383석, 하층 223석으로 총 605명의 승객을 수용하는 내부 설계안까지 마련되었다.[6] 그러나 이 제안은 기술적으로 다소 구식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키이우에 기반을 둔 안토노프 설계국이 실각한 니키타 흐루쇼프와 정치적으로 가까웠다는 이유 때문에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7][8]

당시 소련의 많은 공항 터미널은 이러한 대형 '에어로버스'를 수용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9] 서방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응하여 공항 시설 자체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10] 소련 항공 연구 기관들은 기존 공항 시설을 크게 변경하지 않으면서도 승객 처리 능력을 높이는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또한, 많은 소련 공항의 활주로 표면 강도 역시 대형 항공기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소련은 이 문제 역시 공항을 재건하는 대신, 항공기 자체를 기존 인프라 조건에 맞추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따라서 '에어로버스'는 기존 여객기와 유사한 수준의 지면 하중을 가져야 했고, 이를 위해 복잡한 다륜식 착륙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11]
공항 수용 능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련의 독특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승객이 직접 자신의 수하물을 항공기에 싣고 내리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수하물 휴대 시스템"(система «багаж с собой»ru; 로마자 표기: ''sistyema bagazh s soboy'')이라고 불렸다.[12] 당시 소련 항공 저널리스트 김 박시미는 이 시스템을 "출발 5분 전에 공항에 도착해 기내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하고, 좌석 옆에 외투를 걸고, 가방이나 여행 가방은 근처에 두는" 방식으로 묘사했다.[13]
초기에는 기차처럼 객실 내부에 수하물을 보관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으나, 350석 규모의 항공기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동체 길이를 3m나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14] 이를 피하기 위해, 승객이 항공기에 탑승할 때 기체 하부의 화물칸(언더플로어 구획)에 직접 짐을 넣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흥미롭게도 "수하물 휴대 시스템"과 유사한 개념은 서방에서도 잠시 검토된 바 있다. 유럽의 에어버스 사는 1970년대 중반에 이러한 방식을 연구했으며,[15] 미국의 록히드는 1973년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요청으로 L-1011 트라이스타 기종의 하부 화물칸을 승객용 라운지로 개조하여 실제로 구현하기도 했다. 이는 잠재적인 소련 구매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었다.[16]
1967년 10월, 소련 정부는 민간 항공부(아에로플로트)가 제시한 '에어로버스'의 공식 사양을 승인했다. 요구 조건은 350명의 승객을 태우고 3600km를 비행하거나(40톤 화물 탑재 시), 승객만 탑승할 경우 5800km까지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항공기는 활주로 길이가 2600m에 불과한 소규모 공항(소련 분류 기준 '클래스 B' 및 '클래스 V' [класс "Б", "В"ru])에서도 운용이 가능해야 했다.[17]
1960년대 후반, 일류신 설계국(OKB-240)은 흐루쇼프 시대에 잠시 위축되었던 위상을 회복하며 '에어로버스' 프로젝트를 수주할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18] 결국 1969년 9월 8일, 소련 내각의 방위 산업 위원회는 아에로플로트의 요구 사양을 바탕으로 한 예비 프로젝트(аванпроектru; 로마자 표기: ''avanproyekt'')를 일류신 설계국에 위임했다.[19] 일류신 설계국은 1970년 2월 22일에 '에어로버스'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운용 요구 조건을 전달받았다. 이후 일류신 설계국은 항공기의 전반적인 구성(레이아웃), 엔진(동력 장치), 자동화 시스템(항공 전자 공학), 그리고 생산 능력 확보라는 네 가지 주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2. 2. 개발 과정
서방 국가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A300과 같은 고 바이패스 엔진을 사용한 광동체 여객기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었고, 1970년에는 보잉 747이 취항했다. 이를 계기로 차세대 항공 수송의 주류가 단거리 대량 수송이 될 것으로 예상한 소련 지도부는 각 설계국에 이에 상응하는 기체 설계를 지시했다.일리우신 설계국은 1969년 말 '에어로버스' 작업에 착수하여 처음에는 기존 항공기의 개조 가능성을 검토했다. 예를 들어, Il-62를 확장한 Il-62-250은 동체를 6.8m 더 늘려 259석과 30톤의 탑재량을 갖도록 구상되었는데, 이는 더글러스 DC-8 "슈퍼 식스티" 시리즈와 유사한 개념이었다.[14] 이 외에도 Il-62를 복층으로 만들거나 두 개의 동체를 나란히 붙이는 방안, 그리고 Il-76 수송기를 여객기로 개조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1970년 3월부터[20] 설계국은 'Il-86'이라는 제식명을 부여받고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 Il-62의 '적정 기술' 접근 방식과 달리, 동력 제어 장치, 복잡한 고양력 장치, 그리고 비행 갑판 승무원 수를 줄일 수 있는 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21]
1971년 5월 17일, 모스크바 인근 브누코보-2 공항에서 열린 민간 항공 혁신 전시회에서 초기 설계안인 '아반프로예크트'가 소련 지도부에 공개되었다.[22][23][24] 'Il-86'으로 명명된 이 축소 모형은 기체 자체에 탑승 계단을 갖추고, 객실 데크 아래에 수하물 보관소와 갤리(주방)를 두는 '자체 적재' 개념을 선보였다. 내부는 2개의 복도와 '3-3-3' 배열의 9열 좌석으로 구성되었으며, 동체 직경은 6.07m에 달했다. 이는 당시 개발 중이던 어떤 여객기보다도 넓은 내부 공간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결과였고[25], 특히 바닥 아래 수하물칸에서 승객이 서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Il-86의 동체 폭은 이후 보잉 777이 등장하기 전까지 보잉 747 다음으로 넓었다.
이 초기 설계를 바탕으로 1972년 3월 9일[26], 설계국은 상세 설계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1971년 공개된 모델과 최종 완성된 Il-86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초기 모델은 Il-62와 유사하게 엔진이 동체 후방에 달리고 T자형 꼬리 날개를 가진 형태였다. 당시 소련의 TsAGI는 이러한 후방 엔진, T자형 꼬리 구성을 선호했으며, 서방의 BAC Three-Eleven[27]이나 BAC/CASA/MBB의 유로플레인[28]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형 제트 항공기의 엔진 배치 문제는 소련 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항공기 설계자 레오니드 셸랴코프[29]에 따르면, 미국 공군의 B-47 폭격기에서 처음 선보인 후 제트 여객기의 표준이 된 날개 아래 엔진 배치 방식에 대해 소련 항공 과학계는 강하게 비판했다. TsAGI의 고위 관계자들과 산업 지도자들은 이를 "완전한 넌센스"라고 평가절하했고, 보잉 747에 대해서도 유사한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이러한 경직된 태도는 특정 문제에 대해 불변의, "과학적으로 정확한" 해결책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소련의 독단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31][32]
하지만 모든 소련 기술자들이 이러한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 파리에서 보잉 엔지니어들(특히 747 수석 프로젝트 엔지니어 조 설터와 SST 프로그램 핵심 엔지니어 밥 위딩턴)과 소련 측 엔지니어들 사이에 비밀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양측 정부 최고위층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 이 회의에서 소련 측은 보잉이 747의 엔진을 왜 동체 후방이 아닌 날개 아래 파일론에 장착했는지 알고 싶어했고, 보잉 측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소련의 티타늄 가공 및 항공기 구조 적용 기술에 대해 질문했다(이는 당시 보잉이 개발 중이던 보잉 2707 초음속 여객기에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설터의 회고에 따르면, 양측은 서로 원하는 정보를 얻고 만족스럽게 회의를 마쳤다.[33]
이 회의가 소련 항공기 설계, 특히 Il-86의 최종 구성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보잉의 기여는 소련 측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없었다. 대신 일류신 설계국은 1946년 실험용 제트 폭격기 일리우신 Il-22(이 명칭을 처음 사용한 기체)에서 이미 날개 아래 파일론에 엔진을 장착하는 방식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고 강조하며, Il-86의 최종 구성을 소련 자체 기술의 결과임을 내세웠다.[34] 결국 설계국은 '에어로버스' 사양 발표 6년, 설계 배정 4년 만인 1973년에야 날개 아래 엔진을 장착한 최종 구성을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었다.[35][36] 이와 함께 기존 Il-18, Il-62, Il-76 등에서 사용되던 18~20개의 창문 대신 현대적인 6개 창문으로 구성된 비행 갑판이 채택되었다.
Il-86 프로젝트가 직면한 가장 큰 난관은 적합한 엔진의 부재였으며, 이는 끝내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1960년대 말 서방에서는 이미 바이패스비가 4:1 또는 5:1에 달하는 고 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소련 최초의 대형 터보팬 엔진인 로타레프 D-18T는 1980년대 중반에야 등장했다.[37] 당초 Il-86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솔로비예프 D-30 엔진은 당시 소련에서 가장 진보한 민간 항공 엔진이었으나(바이패스비 2.4:1, 공기역학적 조개형 추력 역전기 장착), 필요한 추력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보된 개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3년이 지난 후에야 이러한 엔진이 필요한 이륙 성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38] 결국 1975년 3월 26일, 덜 진보된 쿠즈네초프 NK-8 계열 엔진(바이패스비 1.15:1, 캐스케이드 추력 역전기 위에 항력 유발 그릴 장착)이 채택되었다. 이 엔진은 연료 소비율이 높고 소음이 심했으며, 기존 소형 엔진을 개량한 것이라 향후 Il-86의 성능 향상이나 기체 확장에도 한계를 보였다.
또 다른 과제는 항공 전자 장비였다. 이전의 많은 소련 여객기들이 5명의 비행 승무원을 필요로 했던 것과 달리, Il-86은 서방의 첨단 기술 수준에 맞춰 3명의 승무원으로 대부분의 기상 조건에서 운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Tu-154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소련의 항공 전자 기술은 항법사와 통신사의 역할을 대체할 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Il-86을 위한 새로운 항공 전자 장비 개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생산 시설 부족 또한 초기부터 문제였다. "소련 공군의 급속한 현대화는 ... 상업 생산 확장을 위한 제한된 여지를 남겼다 ... 생산 능력 부족은 부분적으로 ... 국제 협력으로 해결되고 있다."[39] 이에 따라 폴란드 항공 산업이 Il-86 생산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개발진은 1971년부터 겐리흐 노보지 로프의 주도 하에 개발을 진행했으며, "소련판 에어버스"로서 1980년 개최가 결정된 모스크바 올림픽에 맞춰 기체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제작에는 당시 최신 재료와 우주 첨단 기술이 동원되었고, 소련제 여객기로서는 처음으로 엔진을 파일론으로 주익 아래에 매다는 방식을 채택했다. (소련제 실용기로서 이 방식을 처음 채택한 것은 군용 수송기인 일류신 Il-76이다.)
1976년 12월 22일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지만,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려 모스크바 올림픽 일정에는 맞추지 못했다. Il-86은 1980년 12월부터 모스크바 - 알마티 노선에 처음 투입되었다. 소련제 여객기로서는 드물게 일본이나 미국의 항공 잡지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 서방 국가 항공사에 대한 판매 확대를 노렸으나, 당시 서방 시장에는 이미 맥도넬 더글러스 DC-10과 같은 경쟁력 있는 광동체 여객기들이 운항 중이었고, Il-86의 짧은 항속 거리 등의 약점으로 인해 서방 국가 항공사로의 판매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3. 설계 및 특징
Il-86은 전금속으로 제작된 저익(날개가 동체 아래쪽에 붙은 형태) 단엽기이며, 날개 아래 파일론에 4개의 저 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쿠즈네초프 NK-86)을 장착했다.[71][72][73][74] 기존의 소련 여객기와는 달리 군사적 목적보다는 민간 수송, 특히 근거리 대량 수송을 우선으로 설계되었다. 이 때문에 단거리 이착륙(STOL) 성능보다는 2500m 이상의 포장된 활주로 사용을 전제로 했으나, 기반 시설이 취약한 공항에서의 운용을 고려하여 여유 있는 설계의 착륙 장치를 채택했다. 특히 동체 중앙에도 주 착륙 장치(Main Gear)를 추가하여 활주로에 가해지는 하중을 줄였다.
날개는 후퇴각을 가진 사다리꼴 형태로, 캔틸레버식 3개의 주 날개보(spar) 구조를 가진다. 날개 전체에 걸쳐 전연 슬랫과 이중 슬롯 후연 플랩 등 고양력 장치가 장착되어 있으며, 스포일러와 에일러론으로 비행 자세를 제어한다. 엔진을 매단 파일론은 플러터(날개 떨림 현상)를 방지하는 추 역할도 겸한다.
동체는 원형 단면 구조이며, 주 갑판(Main Deck)과 하부 갑판(Lower Deck)으로 나뉜다. 주 갑판에는 조종실, 화장실, 간이 주방(pantry), 그리고 3개의 구역으로 나뉜 객실이 있다. 객실은 광동체 설계로 2개의 통로를 갖추고 있으며, 이코노미석은 일반적으로 3-3-3 배열의 9열 좌석으로 배치되었다. 이는 당시 다른 소련 항공기에 비해 넓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했으며, 본격적인 기내 영화 상영 설비도 갖추었다. 하부 갑판에는 화물칸, 각종 장비실과 함께 중앙부에 주방(Galley)이 위치하며, 음식 등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주 갑판으로 운반되었다.[75][76]
Il-86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승객의 탑승 방식이다. 일반적인 주 갑판 출입문 대신, 하부 갑판 좌측에 설치된 3개의 자체 계단(Airstair)을 통해 승객이 직접 탑승한다. 승객은 탑승 후 입구 옆 공간에 자신의 짐을 보관하고 내부 계단을 이용해 주 갑판의 객실로 올라가는 "휴대 수하물(luggage at hand)"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는 항공기 탑승교가 없는 지방 공항에서의 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설계였으나, 실제 운용에서는 이 방식이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다.[81]
엔진은 개발 초기 솔로비요프 D-30 계열 엔진 탑재가 계획되었으나 개발 지연으로 무산되고, 기존 쿠즈네초프 NK-8 엔진을 개량한 쿠즈네초프 NK-86 저 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이 장착되었다. 당시 소련의 기술적 한계로 고 바이패스 엔진 개발이 늦어져 연료 효율이 서방의 동급 항공기(맥도넬 더글러스 DC-10, 에어버스 A300 등)에 비해 낮았고, 이는 항속거리 단축으로 이어졌다. CFM56이나 V2500과 같은 서방제 고효율 엔진으로의 교체도 검토되었으나[116] 자금 문제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117]
운용 측면에서는 서방 항공사들이 3인 승무원 체제로 전환하던 시기에도 Il-86은 조종사 2명, 항공기관사, 항법사까지 포함된 4인 승무원 체제를 유지했다. 아에로플로트는 3인 승무원 체제로의 전환에 저항적인 입장을 보였다.[82][83]
Il-86의 설계 수명은 20년(최대 25년) 또는 10,000회 착륙(20,000 ~ 35,000 비행 시간)으로 설정되었다.[77]
3. 1. 기술적 문제와 외국의 기술 도입 시도

소련은 Il-86 개발 과정에서 동력 장치, 항공 전자 장비, 제조 능력 등 여러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방 기술 도입을 시도했다. 기술 도입 시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1930년대 리수노프 Li-2 거래처럼 대규모 기술 이전을 받는 것이었고, 둘째는 필요한 개별 시스템이나 부품만 수입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Il-86 개발 자체를 후순위로 미루게 할 수 있었고, 후자는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Il-86 개발이 실제로 지연된 점은 소련이 대규모 기술 이전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이 프로그램을 일종의 보험으로 유지했음을 시사한다.
소련은 보잉 747이 첫 비행을 하기도 전에 미국을 방문하여 747 도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1971년 파리 에어쇼에서는 일류신 설계국의 겐리흐 노보질로프와 보잉의 조 서터가 비공식적인 기술 상쇄 거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소련 측은 티타늄 가공 기술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 측은 파일론 장착 포드 엔진과 공기탄성 날개 설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40][41] 747 구매에 대한 소련의 관심은 1970년대 후반 데탕트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42]
1974년 3월,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3일간 판매 설명회와 시범 비행을 가졌다.[43][44] 트라이스타는 Il-86과 크기 및 성능이 유사했고 개량 가능성도 있었다. 소련은 트라이스타 30대를 구매하고, 연간 최대 1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신설하여 8만 명을 고용하는 라이선스 생산 협상을 1976년 중반까지 진행했다.[39][45] 그러나 이 협상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가 인권 문제를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두면서 잭슨-배닉 수정안 등과 연계되어 무산되었다. 트라이스타는 첨단 기술을 포함하고 있어 수출 통제 위원회(CoCom)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냉전 시대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승인을 받기 어려웠다. 결국 1978년, 미국 상무부는 소련이 장거리형 Il-86을 위해 주문한 제너럴 일렉트릭 CF6 엔진 12기의 수출을 거부했다.[46]
외국 기술을 얻으려는 노력에는 합법적인 방법 외에 불법적인 수단도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보잉 B-29 폭격기를 역설계하여 투폴레프 Tu-4를 만들고, 롤스로이스 네인 제트 엔진을 복제하여 클리모프 VK-1 엔진을 개발했던 사례처럼 말이다.[47] 당시 안토노프 설계국의 동력 장치 책임자였던 V. G. 아니시옌코는 소련 항공산업부(MAP)가 Il-86과 같은 민간 항공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엔진을 원했으며, 롤스로이스 RB.211-22 엔진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1976년, MAP 조달팀이 영국을 방문하여 이 엔진 구매를 시도했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최소 8대의 엔진을 구입하여 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측은 최소 100대 분량의 엔진만 판매하려 했기 때문에 샘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48]
이처럼 서방의 첨단 기술 도입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고, 항공기 자체의 구성 문제, 동력 장치 개발의 어려움, 항공 전자 장비 개발 지연, 군용기에 비해 낮은 민간 항공기의 개발 우선순위, 그리고 까다로운 소련 및 코메콘의 항공기 인증 표준(NLGS-2) 충족 문제 등이 겹치면서 Il-86의 개발은 10년 이상 소요되었다.[58][59] 특히 NLGS-2 인증 절차는 Il-86이 소련 최초로 전체 과정을 거친 항공기였기에 개발 지연에 영향을 미쳤다.
4. 생산 및 운용
Il-86의 생산은 1976년 말 시작되어 1991년까지 이어졌으며, 프로토타입 없이 바로 생산에 들어갔다. 첫 두 대는 1976년과 1977년에 일류신 설계국 자체의 모스크바 시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는데, 한 대는 비행 테스트용, 다른 한 대는 정적 지상 테스트용으로 사용되었다.
이 초기 기체를 제외한 모든 Il-86은 보로네시에 위치한 항공기 제조부(MAP) 64번 공장(현재 VASO)에서 절반 이상 제작되고 최종 조립되었다.[60] 1979년까지 보로네시에서 세 대가 조립되었는데, 첫 기체(1977년 10월 25일 비행)는 대부분 수작업이었고 이후 점차 생산 장비 사용이 늘어났다. 이 항공기들은 인증 및 개발 비행을 거쳐 아에로플로트에 인도되었다.[61] 보로네시 공장은 50개 이상의 영역에서 설계를 개선하여 기체 중량을 약 1500kg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다.[62]
보로네시의 생산 능력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폴란드 항공기 산업이 초기부터 Il-86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폴란드의 PZL 미엘레츠 공장은 이 협정을 통해 상당한 기술 이전을 받았으며, 이는 "50개 이상의 새로운 공정" 도입과 기업의 근본적인 재정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63] 이를 통해 PZL은 대형 항공기 제조 공정, 티타늄 구조, 화학 밀링, 일체형 패널 가공 등에서 새로운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되었다.[64]
1977년 5월부터 PZL은 Il-86의 전체 꼬리날개(수평 및 수직 미익 포함), 모든 비행 제어면, 고양력 장치, 엔진 파일론 등을 제조했으며, 이는 항공기 전체의 약 16%에 해당했다.[67] 당초 PZL은 날개 전체를 포함하여 Il-86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후속 기종 개발에도 참여할 계획이었으나,[66] 1980년대 폴란드 내 노동 및 정치적 불안이 심화되면서 보로네시 공장이 날개 생산을 계속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 국가 간 국제 분업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1980년 형식 인증 이후 연간 Il-86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생산량 | 비고 |
---|---|---|
1980 | 1 | |
1981 | 0 | |
1982 | 11 | |
1983 | 12 | |
1984 | 8 | |
1985 | 9 | 8 ADON(특수 목적 항공 사단)용 4대 포함 |
1986 | 11 | |
1987 | 10 | |
1988 | 10 | |
1989 | 9 | |
1990 | 11 | 중국 신장 항공 수출용 3대 포함 |
1991 | 3 |
[68]
총 106대가 제작되었으며, 이 중 한 대는 정적 테스트용으로 비행하지 않았고 세 대는 수출되었다.[69] 소련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1995년까지 40대를 더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소련 해체 후 1992년 초 생산 시설이 폐쇄되었다.[70]
Il-86은 판매 방식이 아닌, 소련의 중앙 계획 경제 시스템 하에서 고스플란과 고스스납 기관의 조정을 통해 아에로플로트의 각 지역 본부 및 소련 공군 부대에 배분되었다. 주요 배분처는 다음과 같다: 브누코보 공항 항공 기업 (21대), 셰레메체보 국제 항공 통신 관리국 (22대), 타슈켄트 항공 기업 (9대), 셰레메체보 항공 기업 (10대), 풀코보 공항 항공 기업 (8대), 알마티 항공 기업 (8대), 초칼로프스키 공항 소련 공군 8 ADON (4대), 콜초보 공항 항공 기업 (6대), 톨마체보 공항 항공 기업 (6대), 예레반 항공 기업 (2대), 예멜야노보 공항 항공 기업 (3대).[85] 아에로플로트는 Il-86을 모스크바-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베를린 등 수요가 많은 국내 및 국제 단거리 노선에 주로 투입했으며, 중간 급유를 통해 미국 노선 등 장거리 노선에도 운용했다.
상업적 판매(수출)는 대외 무역 기구인 V/O 아비아엑스포르트가 담당했다. 그러나 설계국, 생산 공장, 마케팅 조직 등이 분리된 소련의 시스템은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가가 있다.[86] 상호 경제 원조 회의(Comecon) 체제 내에서 부품 생산 대가로 LOT 폴란드 항공에 4대가 할당되었으나 인도가 연기되다 1987년 최종 취소되었다.[87] 1988년에는 동독 항공사 인터플루그가 2대 도입을 준비했으나, 대신 에어버스 A310을 도입했다.[88] 유일한 수출 성공 사례는 1990년 중국 신장 항공에 3대를 판매한 것이다. 1982년 불가리아, 1983년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도했지만, 기체에 대한 정보 부족과 서방 기종과의 경쟁 등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93][94] 서방 국가 항공사로의 판매는 맥도넬 더글러스 DC-10 등 경쟁 기종의 존재와 상대적으로 짧은 항속 거리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Il-86은 1977년 파리 에어쇼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여러 국제 에어쇼에 전시되며 홍보되었다.[89] 1981년에는 국제 항공 연맹(FAI) 공인 비행 기록 18개를 수립하며 성능을 과시하기도 했다.[91][92] Il-86은 매우 안정적인 조종 특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으며, 생산량은 적지만 영업 운항 중 사망 사고는 없었고, 심각한 사고는 2006년에 단 한 건 발생했다. 이러한 안정성은 후속 기종인 Il-96에도 계승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운용 역사
1980년 12월 26일 모스크바에서 타슈켄트로 가는 노선에서 첫 운항을 시작했으며, 1981년 2월 1일부터 본격적인 상업 운항에 들어갔다. 아에로플로트는 초기에 Il-86을 주요 국내 노선에 투입했다. 1981년 6월부터는 동유럽 노선 운항을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 겨울 시간표부터는 서유럽의 주요 도시들로 운항 범위를 넓혔다. 이후 유럽 각지로 향하는 전세편 운항과 소련 내 수요가 많은 중·장거리 노선에도 투입되었다.
Il-86은 본래 중거리 노선용으로 설계되었지만, 1982년부터 아에로플로트는 이 기종을 섀넌과 개더를 경유하는 하바나행 정기 노선에 투입했다. 이는 아마도 승객이나 화물을 제한적으로 싣거나 중간 급유를 통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79] 이 외에도 살 섬을 경유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 몬테비데오, 리마,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등으로 향하는 장거리 정기 노선에도 운항 기록이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기존 아에로플로트 소속의 Il-86 기체들은 새로 독립한 국가들의 국영 항공사로 이관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기체가 거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4월부터 유럽 연합,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강화된 소음 규제로 인해 Il-86과 같은 소음이 큰 항공기의 운항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아에로플로트는 2006년 10월 23일, 주로 여름철에만 제한적으로 운항하던 Il-86을 같은 해 11월 15일부터 완전히 운항 중단한다고 발표했다.[80]
5. 1. 군사적 운용

일체형 계단과 하부 화물칸을 갖춘 Il-86은 소련 공군에서 병력 수송기로 널리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광폭동체 항공기인 Il-86은 병력 수송뿐 아니라 미래에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공중 작전을 조율하기 위한 지휘 및 통제 항공기의 기반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84]
실제로 Il-86 생산분 중 마지막 4대(c/n 042, 043, 046, 048, 가상 민간 등록번호 SSSR-86146, '7, '8, '9)는 여객기가 아닌 공중 지휘소 Il-80 사양으로 개조되어 모스크바 인근의 츠칼로프스키 공군 기지에 주둔한 제8 특수 목적 항공 사단에 인도되었다. 이 개조된 항공기는 Il-80, Il-82, Il-87 또는 Il-86VKP(러시아어: ВКП, Воздушный Командный Пост; 보즈두쉬늬 코만드늬 포스트, "공중 지휘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NATO 보고 명칭은 '''맥스돔'''(Maxdome)이다.
2010년 3월 21일 기준으로 4대의 개조된 Il-80 공중 지휘소가 운용 중이다.[2]
'''현 운용 기관'''
국가 | 군종 |
---|---|
-- 소련 | 소비에트 공군 |
6. 사고 및 안전 기록
Il-86은 2013년 8월 기준으로 총 10건의 사고에 연루되었으며, 이 중 4건은 기체 손실로 이어졌다. 이 사고들로 총 23명이 사망했지만, 승객 사망자는 없었다.[103] 즉, Il-86은 운항 기간 동안 여객 운송 중 치명적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한 기종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사고 및 사건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날짜 | 등록번호 | 장소 | 사고 내용 | 결과 및 사상자 |
---|---|---|---|---|
1980년대 | 불명 | 미네랄니예 보디 | 접근 중 유압 고장으로 고양력 장치 비대칭 전개 | 안전 착륙, 사상자 없음 |
1980년 | SSSR-86004 | 브누코보 | 시험 비행 중 이륙 시 4번 엔진 화재 | 안전 착륙, 사상자 없음, 엔진 개조로 이어짐[104] |
1984년 | SSSR-86011 | 심페로폴 | 착륙 중 테일 스트라이크 발생 | 사상자 없음[105] |
1994년 3월 8일 | RA-86119 | 델리 | 주차 중 훈련 비행하던 사하라 인디아 보잉 737 추락 파편에 피격 | Il-86 파괴. Il-86 내부 아에로플로트 직원 2명, 러시아 지상 엔지니어 1명, 공항 노동자 1명(지상) 사망 (총 4명). 보잉 737 탑승자 4명 전원 사망.[106][107] |
1998년 | RA-86080 | - | 심한 착륙으로 인한 과도한 기체 스트레스 확인 | 사상자 없음, 수리 포기 후 2001년 셰레메티예보에서 해체 |
2000년 5월 1일 | RA-86113 | 소치 | 이륙 중 엔진 고장 및 화재 경고 (허위로 판명) | 안전 착륙, 사상자 없음 |
2000년 8월 26일 | RA-86066 |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 바르셀로나행 이륙 직후 2번 엔진 고장 및 화재 | 안전 착륙, 사상자 없음 |
2001년 9월 21일 | RA-86074 | 두바이 | 아에로플로트 521편 운항 중 동체 착륙 (조종사 과실: 착륙 장치 미전개) | 사상자 없음, 기체 전손 처리[108] |
2002년 7월 28일 | RA-86060 (풀코보 항공 엔터프라이즈 9560편) |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이동 비행 중 이륙 직후 추락 (꼬리 날개 트림 탭 오작동) | 탑승자 16명 중 14명 사망 (비행 갑판 승무원 4명, 지상 지원 직원 2명, 객실 승무원 8명), 객실 승무원 2명 생존. Il-86 관련 최악의 사고.[109][110][111][112] |
2002년 7월 모스크바 추락 사고는 Il-86 기종과 관련된 유일한 인명 사고이자 가장 큰 사고였다. 사고 원인은 조종간의 트림 토글 버튼 문제로 꼬리 날개의 트림 탭이 의도치 않게 재조정되어 기수가 급격히 아래로 향하는 다이빙으로 이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109][110][111][112] 이 사고 이후, 러시아의 MAK(정부 간 항공 위원회)는 Il-86의 감항 증명서를 일시적으로 철회했으나, 2003년 초까지 단계적으로 복원되었다.[113] 또한, 이집트 민간 항공 당국이 한때 Il-86의 자국 내 운항 금지를 추진했으나, 협상 끝에 2007년까지 이 계획은 철회되어 이집트 노선 운항은 계속되었다.[114]
7. 파생형
Il-86은 기본형 외에 소수의 군용 파생형만 실전에 배치되었으며, 추가적인 파생형이 제안되었지만 실용화되지는 않았다. 화물 또는 여객-화물 혼합 버전은 제안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Il-86D (장거리 버전): 1972년 6월 26일, 소련 내각의 명령으로 개발이 시작된 장거리 버전이다. дальний|달니rus는 러시아어로 "장거리"를 의미한다. 설계는 1976년 6월에 완료되었으며, 약간 확장된 날개 길이와 추가 연료 탑재를 통해 약 8500km (4600nmi)의 항속 거리를 목표로 했다. 이후 발표에 따르면, 1975년 3월부터 로타레프 D-18 엔진을 장착한 Il-86D 버전 개발이 시작되었다.[95] 이 버전은 자중 147500kg (약 147417.40kg), 최대 이륙 중량 300000kg (약 299370.72kg), 연료 탑재량 약 150000kg (약 149685.36kg), 날개 면적 325m2 (약 492.39m2), 항속 거리 10200km (5500nmi)를 가질 예정이었다. 이 기종은 이후 Il-96으로 발전했다.
- Il-86V (고수용량 버전): Il-86의 "최소 변경" 개발 모델로, 1982년 6월 1일에 시험 비행을 했고 1985년 4월 27일까지 운용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알려졌다. 이 모델은 450석 규모로, 하부 통로에 좌석을 설치하고 주 갑판의 좌석 배열도 변경했을 가능성이 있다.[96] 이 버전이 실제 여객 서비스에 투입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군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95]
- 엔진 교체 버전:
- 1980년대에 RB211-22 엔진을 장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97] Il-86V라는 명칭(이 명칭의 두 번째 사용)이 붙은 이 기종은 9000km (4860nmi) 이상의 항속 거리 또는 증가된 탑재량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RB211-524G 엔진을 장착한 450석 규모의 Il-86V도 계획되었다. 그러나 소련 경제 붕괴로 인해 이러한 계획들은 진전되지 못했다.
- 1991년에는 프랑스와 미국이 합작한 CFM56-5C2 엔진을 장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98]
- 1995년, 인터내셔널 에어로 엔진스(IAE)는 5개의 Il-86 운영사에게 V2500 엔진을 제공하여 25대의 항공기를 재엔진화하는 제안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99][100]
- Il-80 (군용): 여객기가 아닌 공중 지휘소 목적으로 개발된 군용 파생형이다. Il-80으로 명명되었으며, Il-86 중 마지막으로 제작된 4기가 이 사양으로 만들어졌다.


8. 평가 및 영향
1960년대 후반 서방 국가에서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A300 같은 광동체 여객기 개발이 활발해지자, 소련 지도부는 1970년 보잉 747의 취항을 계기로 대량 수송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체적인 광동체 여객기 개발을 지시했다.[1][2] 이에 따라 1971년부터 겐리흐 노보지 로프가 이끄는 설계팀이 개발을 시작한 Il-86은 소련 최초의 광동체 여객기로서, 당시 소련 항공 기술의 도약을 상징하는 프로젝트였다.[3]
개발 과정에서 최신 재료와 우주 기술이 동원되었으며, 소련 여객기로서는 처음으로 엔진을 주익 아래 파일론에 장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3] 이는 기술적 진보를 위한 노력이었으나, 군용 수송기인 Il-76이 이미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3] 엔진으로는 4개의 쿠즈네초프 NK-86 터보팬 엔진이 사용되었는데,[4] 이는 서방의 고 바이패스 엔진에 비해 연료 효율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1] 지상 전력 공급 및 엔진 시동을 위해 VSU-10 APU가 탑재되었다.[5]
Il-86은 1976년 12월 22일 첫 비행에 성공했지만,[3] 실용화 과정이 지연되어 당초 목표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투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3] 실제 운항은 1980년 12월 모스크바-알마티 노선에서 시작되었다.[3] 소련은 Il-86을 서방 항공사에도 판매하기 위해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3] 이미 서방 시장에는 보잉 747, 맥도넬 더글러스 DC-10 등 경쟁력 있는 광동체 여객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Il-86의 상대적으로 짧은 항속 거리와 낮은 연료 효율성 등은 시장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여 결국 서방 국가로의 판매는 성공하지 못했다.[3][1]
결론적으로 Il-86은 소련 최초의 광동체 여객기로서 대규모 수송 수요에 부응하려는 시도였지만, 서방과의 기술 격차, 낮은 경제성, 개발 지연 등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는 국가 주도 대규모 프로젝트가 가질 수 있는 비효율성과 경직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며, 기술 혁신과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개방성과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9. 후계 기종
10. 유사 기종
- 에어버스 A300
- 맥도넬더글러스 DC-10
- 록히드 L-1011 트라이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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