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 커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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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이티 커릭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작가, 프로듀서, 그리고 텔레비전 진행자이다. 1989년 NBC 뉴스에 입사하여 국방부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1991년부터 2006년까지 《투데이》의 공동 앵커를 맡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CBS로 이적하여 《CBS 이브닝 뉴스》의 앵커와 매니징 에디터로 활동했으며, ABC 뉴스의 특별 통신원으로도 일했다. 토크쇼 《케이티》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야후! 뉴스에서 글로벌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하며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으며, 암 인식 개선 활동에도 헌신하고 있다.

케이티 커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2년
2012년
본명캐서린 앤 커릭 (Katherine Anne Couric)
출생일1957년 1월 7일
출생지버지니아주알링턴
직업저널리스트
뉴스 캐스터
작가
활동 기간1979년 – 현재
배우자제이 모나한 (1989년 결혼, 1998년 사망)
존 몰너 (2014년 결혼)
자녀2명
친척에밀리 커릭 (자매)
제프 워들로 (조카)
웹사이트katiecouric.com
학력
최종 학력버지니아 대학교 (문학사)
방송 경력
주요 출연작투데이
『CBS 이브닝 뉴스』
『60분』
『케이티』
야후! 뉴스
수상
수상 내역텔레비전 명예의 전당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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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경력

캐서린 앤 커릭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보 담당 임원이자 워싱턴 D.C.의 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 및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뉴스 편집장을 지낸 존 마틴 커릭 주니어이며, 어머니는 주부이자 파트타임 작가였던 엘리노어 툴리(결혼 전 성은 헤네)이다. 커릭의 아버지는 프랑스계 미국인, 잉글랜드계 미국인,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혈통을 가졌으며 성공회 신자였다. 어머니는 유대계 미국인이었으나 결혼 전 장로교로 개종했으며, 외조부모는 독일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의 자녀였다. 커릭은 장로교 신자로 성장했다.

커릭은 알링턴 공립학교인 제임스타운 초등학교, 윌리엄스버그 중학교를 거쳐 요크타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치어리더로 활동했으며, 워싱턴 D.C.의 올뉴스 라디오 방송국인 WAVA-FM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언론계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1975년 아버지의 모교인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1979년 미국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델타 델타 델타 사교 클럽의 일원이었으며, 교내 신문인 더 캐벌리어 데일리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며 활동했다. 4학년 때는 토머스 제퍼슨의 아카데미컬 빌리지 중심인 더 론의 수석 레지던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2.1. ABC, CNN, NBC에서의 초기 경력

1979년 워싱턴 D.C.에 있는 ABC 뉴스 지국에서 저널리스트 스탠 호퍼의 데스크 어시스턴트로 언론계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CNN에서 배정 편집자로 근무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당시 CBS 계열사였던 WTVJ에서 일반 기자로 활동했다.

그 후 2년 동안 그녀는 워싱턴 D.C.에 있는 NBC 소유 및 운영 방송국인 WRC-TV에서 리포터로 활동했으며, 이 활동으로 AP 통신상과 에미상을 수상했다.

1989년 NBC 뉴스에 합류하여 국방부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3. 텔레비전 경력

케이티 커릭은 1989년 NBC 뉴스에 합류하며 텔레비전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NBC의 대표 아침 프로그램인 《투데이》를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5년 동안 진행하며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인지도 높은 언론인 중 한 명이 되었다.

2006년에는 CBS로 이적하여 《CBS 이브닝 뉴스》의 앵커 겸 매니징 에디터를 맡았다. 이는 미국 3대 방송사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단독 앵커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CBS 재직 기간 동안 주요 정치 행사와 국제적 사건들을 취재했으며, 시사 프로그램 《60분》의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과의 인터뷰는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그녀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2011년 CBS를 떠난 후에는 ABC 뉴스의 특별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주간 토크쇼 《케이티》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야후! 뉴스의 글로벌 앵커로 활동하며 디지털 뉴스 분야에서도 경력을 이어갔다.

3.1. NBC 뉴스 (1989-2006)

케이티 커릭은 1989년 부 국방부 특파원으로 NBC 뉴스에 합류했다. 같은 해 전국 정치부 기자가 되어 《투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합류 초기인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앵커 대행을 맡았다. 예를 들어, 《투데이》의 브라이언트 검벨, 제인 폴리, 데보라 노빌을 대신하거나, 일요일 《투데이》, 《미트 더 프레스》, 《위켄드 투데이》, 《NBC 뉴스 앳 선라이즈》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기존 진행자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또한 《투데이》의 뉴스 앵커 대행도 맡았다.

1991년 2월, 당시 《투데이》 공동 진행자였던 데보라 노빌이 출산 휴가를 떠나자 커릭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노빌이 프로그램에 복귀하지 않으면서, 커릭은 1991년 4월 5일 《투데이》의 정식 공동 앵커로 발탁되었다. 그녀는 2006년 5월 31일까지 15년 동안 《투데이》를 진행하며, 브라이언트 검벨의 기록을 넘어 역대 최장수 앵커 기록을 세웠다. 커릭이 진행하는 동안 《투데이》는 1996년부터 시청률 1위를 유지하며 NBC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피바디상 시상식을 진행하는 케이티 커릭
피바디상 시상식을 진행하는 케이티 커릭

NBC에 재직하는 동안 커릭은 《투데이》 외에도 다양한 뉴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994년에는 톰 브로커와 함께 저녁 시간대 주간 뉴스 매거진 《Now with Tom Brokaw and Katie Couric》을 공동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Dateline NBC》에 통합되었고, 커릭은 《Dateline NBC》에서도 정기적으로 보도를 담당하며 앵커로 활동했다. 또한, 《NBC 나이트리 뉴스》에서 톰 브로커나 브라이언 윌리엄스를 대신해 앵커석에 앉기도 했으며,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주말판 《NBC 나이트리 뉴스》의 대행 앵커로도 활동했다.

커릭은 뉴스 보도 외에도 여러 특집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했다.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4년 동안 매년 열리는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의 진행을 맡았으며, 2000년 하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밥 코스타스와 함께 올림픽 개막식 공동 진행자로도 나섰다. 《모두의 비즈니스: 미국의 아이들》(1995), 《해리 포터: 마법의 뒤편》(2001)과 같은 특집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커릭은 뛰어난 인터뷰 능력을 보여주었다.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당대의 미국 대통령들과 영부인 바버라 부시를 인터뷰했다. 특히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텔레비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당시 미국 상원 의원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그녀의 첫 TV 인터뷰),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 로라 부시 등 수많은 국제적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1992년 대선 후보 로스 페로와의 인터뷰 중에는 시청자 전화 연결 시간에 하워드 스턴 팬의 장난 전화로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97년에는 워싱턴 포스트밥 우드워드에게 차이나게이트 스캔들과 관련하여 "언론이 지나치게 스캔들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녀의 보도 시리즈 《결장암 대면》(Confronting Colon Cancer)은 피바디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6년 5월 31일, 커릭은 15년간 몸담았던 《투데이》와 NBC 뉴스를 떠나 CBS로 이적한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CBS 이브닝 뉴스의 앵커로 발탁되어, 미국 3대 방송사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의 단독 여성 앵커가 되었다.

NBC를 떠난 후에도 커릭은 몇 차례 NBC 프로그램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2008년 5월 28일에는 암 퇴치 운동 단체인 《스탠드 업 투 캔서》(Stand Up To Cancer) 홍보를 위해 브라이언 윌리엄스, 찰스 깁슨과 함께 《투데이》를 포함한 3사 아침 쇼에 출연했다. 2017년 1월에는 맷 로어의 앵커 20주년을 기념하여 일주일간 《투데이》의 공동 호스트로 복귀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위해 NBC로 돌아와 마이크 티리코와 공동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중계 중 네덜란드에 대해 "겨울철 스케이트가 주요 교통수단"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언급하여 비판을 받았고, 이후 사과했다.

3.2. CBS 뉴스 (2006-2011)

2007년의 케이티 커릭
2007년의 케이티 커릭

케이티 커릭은 2006년 4월 5일, 15년간 진행했던 NBC 투데이에서 하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CBS는 커릭이 CBS 이브닝 뉴스의 새로운 앵커이자 매니징 에디터가 될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이 계약에는 60분 기고와 CBS 프라임 타임 뉴스 특집 프로그램 진행도 포함되었다. 커릭의 연봉은 15로 알려졌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저널리스트 연봉으로 ABC의 바버라 월터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녀는 2006년 9월 5일 CBS 이브닝 뉴스 with 케이티 커릭의 앵커 겸 매니징 에디터로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CBS는 커릭의 영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저녁 뉴스 시간대의 부활을 꾀했으나, 일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첫 주에는 높은 관심을 받으며 시청률이 급등했지만, 이후 CBS 이브닝 뉴스는 경쟁 프로그램인 ABC 월드 뉴스NBC 나이틀리 뉴스에 밀려 3위에 머물렀다. 커릭 체제 하의 시청률이 전임자 밥 셰이퍼 시절보다는 개선되었지만, ABC의 찰스 깁슨이 진행하는 월드 뉴스와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이적 당시 커릭의 저널리스트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과, CBS 이브닝 뉴스라는 권위 있는 프로그램을 맡기에 적합한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특히 월터 크롱카이트와 같은 전설적인 앵커들과 비교하며 커릭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커릭은 CBS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요 정치 이벤트를 취재했다. 2006년 미국 중간선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및 전당대회, 2010년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CBS 뉴스의 보도를 이끌었으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CBS 뉴스의 공식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아이티 지진 발생 당시 포르토프랭스 현장에 가장 먼저 파견된 네트워크 앵커였고, BP 석유 유출 사고 때는 걸프 해안에서 매주 뉴스를 진행하며 재난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당시에는 카이로타흐리르 광장에서 현지 상황을 보도했으며, 같은 해 4월에는 런던에서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식 관련 CBS 뉴스 보도를 총괄했다.

60분의 특파원으로서도 활동하며 연간 8~10개의 심층 보도 기사를 기고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비행기 사고 이후 조종사 설리 설렌버거를 최초로 인터뷰했으며, 발레리 플레임,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미셸 리 워싱턴 D.C. 교육감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이브닝 뉴스 앵커로서도 전 세계의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당시 아내 엘리자베스의 암 재발 발표 직후), 이스라엘 외무장관 치피 리브니, 가수 노라 존스, 배우 마이클 J. 폭스 등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인터뷰 등 일부 인터뷰에 대해서는 시청자들로부터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진행한 사라 페일린 인터뷰는 특히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과의 일련의 인터뷰는 선거 기간 내내 반복적으로 방송되며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커릭은 이 인터뷰로 월터 크롱카이트 언론 보도상(Walter Cronkite Award for Journalism Excellence)을 수상했다. 당시 존 매케인 캠프의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슈미트는 훗날 이 인터뷰에 대해 "전국적인 공직 후보가 겪었던 가장 중대한 부정적 인터뷰였다"고 평가하며 그 파급력을 인정했다.

커릭이 진행한 CBS 이브닝 뉴스는 2008년과 2009년, 최고의 뉴스 방송으로 선정되어 에드워드 R. 머로 상을 수상했다. 또한 커릭은 2009년, 방송계에 기여한 공로로 에미 거버너스 상을 받았다. 그녀는 2009년 12월 다이앤 소여가 ABC 월드 뉴스 앵커로 부임하기 전까지 미국 방송사에서 유일한 여성 단독 저녁 뉴스 앵커였다. 커릭과 소여는 각각 NBC 투데이와 ABC 굿 모닝 아메리카 진행자 시절부터 오랜 경쟁 관계였다.

2011년 초, 커릭은 CBS와의 계약이 만료되면 CBS 이브닝 뉴스 앵커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녀의 마지막 CBS 이브닝 뉴스 방송은 2011년 5월 19일이었다.

3.3. ABC 뉴스 복귀 (2011-2013)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케이티 커릭은 ABC 뉴스의 특별 통신원으로 활동했으며, 이 역할은 그녀가 진행하게 될 토크쇼와도 연계되었다. ABC 복귀 후 첫 출연은 나이트라인에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를 인터뷰한 것이었다.

커릭은 다이앤 소여,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바바라 월터스, 엘리자베스 바르가스, 조지 스테파노풀로스, 로빈 로버츠 등 동료 앵커들과 함께 9.11 테러 10주년 기념 보도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는 커릭이 NBC투데이를 진행하던 시절 테러 발생 당일 소식을 전하고, 이후 CBS 뉴스에서 5주년 기념 보도를 이끌었던 경험에 이은 것이었다.

이 외에도 커릭은 ABC의 다른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토크쇼 더 뷰라이브! 위드 레지스 앤 켈리에 게스트 공동 진행자로 출연했으며, 추수감사절 프라임 타임에는 A Very Gaga Thanksgiving 특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팝스타 레이디 가가를 인터뷰했다. 2011년 11월에는 ABC에서 25년간 활동한 방송인 레지스 필빈의 은퇴를 기념하는 특별 프라임 타임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동료 바바라 월터스와 마찬가지로, 커릭은 ABC 네트워크와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 20/20을 위한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한, 2011년부터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 해의 주요 뉴스 메이커와 사건들을 다루는 연례 특집 The Year with Katie Couric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피플 잡지와의 협력으로 제작되었으며, 뉴스, 스포츠,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소식을 다루었다. 이는 연말에 그 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월터스의 대표 프로그램 바바라 월터스의 10명의 가장 매력적인 사람들과 유사한 형식이었다. 커릭은 이 특집에서 다른 언론인들을 인터뷰하며 해당 사건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2일부터 6일까지는 휴가 중인 공동 앵커 로빈 로버츠를 대신하여 ABC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의 진행을 맡았다. 이는 커릭이 NBC 투데이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아침 뉴스 쇼를 진행한 것이었다.

3.3.1. 케이티 (토크쇼) (2012-2014)

2011년 6월 6일, ABC는 커릭이 40의 기록적인 계약을 체결했으며, 2012년 9월부터 디즈니-ABC 국내 텔레비전에서 주간 토크쇼를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CBS와의 계약 만료 후 결정된 사항으로, 커릭은 ABC 뉴스 프로그램에도 "특별 특파원"으로 기여하기로 했다. 2011년 8월 22일, 토크쇼의 제목이 케이티로 정해졌다고 발표되었다. 케이티는 커릭이 관여한 두 번째 웹 쇼였으며, 첫 번째는 CBS 이브닝 뉴스@katiecouric이었다. 첫 에피소드는 2012년 9월 10일에 방송되었다.

커릭은 ABC 뉴스 부서와의 제휴를 통해 뉴스 동료들을 케이티에 출연시켜 중요한 뉴스 이벤트를 다루게 했다. 출연자로는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데보라 로버츠, 마이크 보에처, 맷 거트먼, 리처드 베서, 마르시 곤잘레스, 짐 아빌라, 댄 에이브럼스, 조쉬 엘리엇, 브라이언 로스, ABC 뉴스 기상 앵커 샘 챔피언과 진저 지, 그리고 ABC 월드 뉴스 앵커 다이앤 소여와 데이비드 뮤어 등이 있었다. 또한 더 뷰의 공동 진행자 우피 골드버그, 라이브! 위드 켈리 앤드 마이클켈리 리파와 마이클 스트라한, 그리고 연속극 제너럴 호스피털의 일부 출연진도 게스트로 초청되었다.

디즈니-ABC 국내 텔레비전은 2013년 가을부터 시작하는 케이티를 두 번째 시즌으로 연장했다. 그러나 2013년 10월, 할리우드 리포터는 낮은 Q 점수, 저조한 시청률, 그리고 핵심 여성 시청자들의 불만을 이유로 케이티가 곧 종영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디케이션 쇼는 첫 번째 시즌에 평균 1.7 가구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2013-14 시즌에는 1.8을 기록했다. 2013년 12월, 디즈니–ABC 국내 텔레비전은 케이티가 종영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마지막 쇼는 2014년 6월 12일에 녹화되었으며, 최종회는 2014년 7월 30일에 방영되었다.

3.4. 야후! / ABC 뉴스 (2014-2017)

2013년 11월, 야후!의 CEO 마리사 메이어는 케이티 커릭을 야후! 뉴스의 글로벌 앵커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커릭은 2014년 1월 13일,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야후! 뉴스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 국무부 장관 존 케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2015년 3월, 야후 뉴스와 ABC 뉴스는 뉴스 자료를 공유하고 특별 프로그램 및 특집 기사를 공동 제작하는 등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커릭을 비롯한 야후 편집자들은 ABC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에 매일 출연하게 되었다. 또한 커릭은 이 파트너십을 통해 ABC 뉴스의 특별 기고가 자리를 얻었다.

커릭은 자신의 저서 Going There에서 2016년에 진행했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편집했음을 인정했다. 당시 긴즈버그는 미국 국가 제창 중 무릎 꿇기 시위를 벌인 NFL 선수들을 비판했는데, 커릭은 이 발언 부분을 삭제했다. 커릭은 긴즈버그가 "평등의 투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발언으로 비판받을 것을 우려하여 보호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2017년 6월, 버라이존이 야후!를 인수하여 오스로 합병하면서 커릭은 야후! 뉴스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제작 회사를 통한 활동에 집중하면서, 야후! 뉴스와는 "프로젝트 기반"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4. 기타 활동

커릭이 2011년 4월 8일 이라크 모술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함께
커릭이 2011년 4월 8일 이라크 모술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함께

커릭은 모든 CBS 뉴스 플랫폼에서 방송된 두 개의 CBS 리포트 시리즈의 수석 리포터였다. 첫 번째 시리즈인 "CBS 리포트: 경기 침체의 아이들"은 당시 진행 중이던 대침체의 가장 어린 희생자들이 겪는 고통을 조명했으며, 이 시리즈는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의 알프레드 아이 듀폰 상을 수상했다. 2010년 초에 방송된 두 번째 시리즈 "CBS 리포트: 미국이 서 있는 곳"은 CBS 뉴스 여론 조사팀의 연구를 바탕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이 직면할 주요 문제에 대해 베테랑 CBS 뉴스 특파원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개인사

* 1989년, 커릭은 제이 모나한과 결혼하여 1991년 7월 23일에 첫째 딸 엘리노어 탈리를, 1996년 1월 5일에는 둘째 딸 캐롤라인을 낳았다. 그러나 1998년 1월 24일, 남편 제이가 42세의 나이로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커릭의 언니이자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었던 에밀리 커릭(민주당) 역시 2001년 10월 18일, 54세의 나이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커릭은 매우 가까웠던 언니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며 장례식에서 언니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조문객들에게 "저는 에밀리 커릭의 여동생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생전에 언니가 늘 "케이티 커릭의 언니"로 불리는 것에 대해 느꼈던 불만을 언급하기도 했다.
* 케이티에게는 클라라 커릭 바첼러와 존 M. 커릭 주니어라는 다른 형제자매도 있다.
* 피플지에 따르면, 커릭은 스무스 재즈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와 교제했으나, 2005년 2월 결별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이전에는 텔레비전 프로듀서 톰 워너와 간헐적으로 교제했지만, 워너의 거주지가 캘리포니아주에 있어 뉴욕에서 활동하는 커릭과는 장거리 관계의 어려움이 있었다.

조상

* 《투데이》 쇼에서 커릭은 자신의 조상 중 한 명이 19세기에 미국으로 이민 온 프랑스 고아이며, 면화 제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4.1. 영화 및 TV 프로그램 출연

케이티 커릭은 여러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 1992년 CBS 시트콤 《머피 브라운》에 본인 역할로 게스트 출연했다.
* 2002년 코미디 영화 《오스틴 파워: 골드 멤버》에서는 조지아주 교도소의 교도관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 2002년 말 NBC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에 본인 역할로 게스트 출연했는데,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자신과는 정반대인 다가가기 어려운 "기분 나쁜 케이티 쿠릭"을 연기했다.
* 드라마 《제너럴 호스피털》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의사로 위장한 저널리스트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으며, 해당 에피소드의 스토리 제작에도 참여했다.
* 2003년 5월 12일에는 NBC의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위드 제이 레노》의 진행자 제이 레노와 하루 동안 역할을 바꿔 사회자를 맡기도 했다.
* 2004년 애니메이션 영화 《샤크 테일》에서는 뉴스 리포터 물고기인 "케이티 커런트"(Katie Current)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 2011년 2월 6일 방영된 글리의 슈퍼볼 이후 에피소드에 본인 역할로 게스트 출연하여, 극 중 치어리딩 코치 수 실베스터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 리얼리티 프로그램 《폰 스타즈》의 한 에피소드에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 2016년에는 영화 《쥬랜더 리턴즈》와 《설리》에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 특히 《설리》에서는 영화를 위해 60분 인터뷰 장면을 재현했다.

4.2. 저술 활동

그녀의 저서 Going There에서 커릭은 2016년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편집했음을 인정했다. 편집 과정에서 미국 국가 제창 중 무릎을 꿇는 NFL 시위대에 비판적인 긴즈버그의 발언이 삭제되었다. 커릭은 이러한 편집이 긴즈버그가 "평등의 투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잠재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4.3. 프로듀서 활동

2010년대부터 여러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4년에는 음식 산업과 미국의 비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페드 업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내레이터로 참여했다. 2016년에는 미국의 총기 폭력과 미국의 총기 규제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언더 더 건의 총괄 프로듀서 및 내레이터를 맡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버지니아의 총기 권리 단체 회원 인터뷰 중 답변 대신 의도적인 침묵 장면을 삽입하여 편집 논란이 일었다. 커릭은 다큐멘터리 웹사이트에 편집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글을 게시하고 실제 답변 내용을 공개했지만, 해당 단체는 커릭과 감독 스테파니 소에치티그를 상대로 12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법원은 해당 장면이 허위이거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소송을 기각했다.

2015년에는 영화 제작사 '케이티 커릭 미디어'를 설립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제휴하여 여러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그 첫 결과물인 젠더 레볼루션은 2017년에 공개되었다. 같은 해, 플린트 물 위기 사건을 다룬 라이프타임 TV 영화 플린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2019년에는 넷플릭스의 범죄 실화 미니시리즈 언빌리버블의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터닝 테이블스: 쿠킹, 서빙, 엔드 서바이빙 인 어 글로벌 팬데믹 제작에 참여했다.

5. 사생활 및 자선 활동

커릭은 1989년 변호사 존 폴 "제이" 모나한 3세와 결혼하여 두 딸, 엘리노어 툴리 "엘리" 모나한(1991년 출생)과 캐롤라인 "캐리" 모나한(1996년 출생)을 두었다. 남편 제이 모나한은 1998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커릭은 2013년 9월 금융인 존 몰너와 약혼했고, 2014년 6월 21일 햄튼의 자택에서 재혼했다. 두 사람은 Sur La Table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요리 시리즈 케이티 & 존과 함께하는 풀 플레이트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커릭의 언니인 에밀리 커릭은 버지니아주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었으나, 2001년 10월 18일 54세의 나이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커릭은 언니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통해 "저는 에밀리 커릭의 여동생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애도를 표했다. 그녀에게는 클라라 커릭 배칠러와 존 M. 커릭 주니어라는 다른 형제자매도 있다.

과거 피플지에 따르면, 커릭은 스무스 재즈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와 교제했으며, 텔레비전 프로듀서 톰 워너와도 교제한 바 있다.

2021년 1월 15일 빌 마허와 함께하는 리얼 타임에 출연하여 자신이 미국의 제9대 대통령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과 먼 친척 관계임을 밝히기도 했다.

5.1. 암 인식 개선 활동

1998년 1월 24일, 첫 남편 제이 모나한이 대장암으로 사망한 이후, 커릭은 대장암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대사로 활동해 왔다. 2000년 3월, 그녀는 자신이 진행하던 투데이 쇼에서 직접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모습을 방송했다. 이 방송은 큰 반향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독려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케이티 커릭 효과'(Katie Couric effect)라고 불리게 되었다. 2003년 《JAMA 내부 의학》에 발표된 연구는 "케이티 커릭의 텔레비전 대장암 인식 개선 캠페인은 두 가지 다른 데이터 세트에서 일시적으로 대장 내시경 사용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이는 잘 알려진 개인이 가치 있는 대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커릭은 유방암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했다. 2005년 10월 7일, 전미 유방암 인식의 달을 맞아 투데이 쇼에서 자신의 유방 조영 사진을 공개하며 유방암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미국 암 협회 제1회 디스커버리 볼(Discovery Ball)의 명예 손님으로 초청되어 암 인식 개선 및 검진 증진에 기여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국립 하키 리그(NHL)의 하키는 암과 싸운다(Hockey Fights Cancer)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공익 광고에 출연하고 캠페인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6.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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