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외침을 막고 불교의 힘으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간행된 불경이다.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 속대장경을 포함하여 총 3차례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특히 몽골의 침략을 불력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염원이 담겨 있다. 초조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되었으나, 팔만대장경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려대장경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 율, 논 외에도 다양한 저자들의 글과 만트라, 다라니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쇄술과 출판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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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13세기 고려 시대에 몽골 침입을 불력으로 막고자 제작된 대장경 판목으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불리며 대한민국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고, 방대한 분량과 보존 상태로 동아시아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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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외침을 막고자 불경을 간행한 것이 고려대장경이다. 대장경 2회, 속대장경 1회, 총 3회 간행되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국호를 정했으며, 통일신라(남조)의 귀족 문화를 거의 그대로 이었다. 발해(북조)와 별개로 후삼국을 군사적 대립과 복속으로 통일했기에, 문반과 무반의 차이를 문화 특징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각 호족과 사병 집단의 느슨한 연합 구조가 유지되던 중, 거란과 몽골 등 북방 유목 민족 국가들의 침입을 받자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방대한 대장경 간행 사업이 이루어졌으며, 크게 제1차 대장경 간행과 제2차 대장경 간행으로 나뉜다.[1]
3. 제1차 대장경 간행
고려대장경은 고려 때 외침을 막고자 간행한 불경이다. 간행 횟수는 대장경 2회와 속대장경 1회까지 합하여 총 3회이다. 1963년~1965년 해인사에서 1,339권으로 전판을 영인하였다.[1]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귀족 문화를 바탕으로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거란과 몽골 등 북방 유목 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대장경 간행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는 크게 제1차 대장경 간행과 제2차 대장경 간행으로 나눌 수 있다.
제1차 대장경 간행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대장경(續大藏經)》으로 나뉜다.
3. 1. 초조대장경
고려대장경은 고려 때 외침을 막고자 간행한 불경이다. 간행 횟수는 대장경 2회와 속장경 1회까지 합하여 총 3회이다.[1]
제1차 때 간행한 대장경은 흔히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라고 불리는 《초판고본대장경(初版古本大藏經)》과 《속대장경(續大藏經)》으로 나눈다. 요나라(거란)의 침입을 받아 곤경에 있을 때 불심(佛心)으로 그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간행에 착수하였다.
현종 때부터 문종 때에 걸쳐 완성되었다. 대구의 부인사(符仁寺 : 지금은 없음)에 도감(都監)을 두고, 《대반야경》 6백 권, 《화엄경》, 《금광명경》, 《묘법연화경》 등 6천여 권을 목판에 새겨 만들었다.
이 《초조대장경》은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을 받아 병화(兵火)로 없어졌고, 약간 남아 있는 것은 일본 교토 난젠지(南禪寺. 南禅寺. 남선사)에 1,715권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3. 2. 교장
《교장(敎藏)》은 대장경이 아닌 여러 불교 교파의 교리를 정리한 장서이다. 이전의 초조대장경의 주석도 포함되어 있기에, 《속대장경(續大藏經)》 또는 《의천의 속장경》이라고도 부른다.[1]
의천은 송나라에 다녀오면서 불서와 불경을 수집하고, 요나라와 일본에서 수집한 것을 모아 4,700여 권을 수집하였다. 1073년(문종 27)부터 1090년(선종 7)까지 수집한 불경의 총 목록을 작성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 했다. 이 목록에 따라 차례대로 목판에 새겨 만들었다.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을 두고 1096년(숙종 1)에 완성하였다.
이는 모두 1,010부 4,740여 권이며,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두었던 것이 1235년(고종 22년) 몽골과의 전쟁으로 황룡사 9층 목탑과 함께 소실되었다. 그러나, 《속장경》의 인쇄본 일부와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이 순천송광사에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 중 제9권과 제10권이 있고,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천태사교의》, 일본나라 도다이사(東大寺)에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 40권, 나고야 신후구사(眞福寺)에 《석마하연론통현초(釋摩詞衍論通玄鈔)》 4권이 전해 온다.
4. 제2차 대장경 간행
고려 시대에는 외침을 막고자 불교 경전인 대장경을 간행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장경 간행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여기서는 제2차 대장경 간행에 대해 알아본다.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경',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담은 '율', 후대 학자들의 글인 '논'의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1] 이 중에는 붓다의 가르침 외에도 인도, 중국, 한국의 109명(팀)의 저자들이 만든 글도 포함되어 있다. 고려대장경 저자 (일부)
고려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외침을 막고자 간행한 불경으로, 경(經), 율(律), 논(論) 삼장(三藏)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은 붓다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율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논은 후대 학자들의 글을 담고 있다.[1]
고려대장경에는 붓다의 말씀 외에도 100명이 넘는 다른 저자들의 글이 포함되어 있는데, 인도, 중국, 한국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이며, 활동 시기 또한 붓다 생전부터 고려 시대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불교 경전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승려와 학자들이 번역에 참여하였다. 특히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온 경전, 또는 먼 바닷길을 통해 들어온 경전 번역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때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수백, 수천 명의 승려와 번역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학술 모임 형태로 번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구마라습이나 현장의 한역 과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 초조대장경은 당나라 지승이 지은 개원석교록을 참고하여 구성되었으며,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에 일부 경전이 추가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초기 500년은 구전으로 암송되어 계승되다가, 스리랑카에서 기근과 전쟁의 위험으로 붓다의 가르침이 사라질까 염려되어 문자로 처음 기록되었듯이, 몽골과의 전쟁이 있었던 고려도 대대적으로 목판 대장경을 제작하고 그 목판을 국가차원에서 잘 보호하여서 이 땅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지속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시대 처음 제작된 목판 대장경(초조장경)은 당나라 지승이 지은 개원석교록을 참고로 구성되었다. 지승은 50개 가까이 되는 옛문헌(역경 기록서)들을 비교 분석하여 가짜경전과 위경을 분류하였으며 그 과정을 세세히 밝히고 있어 그의 분류는 상당히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초조장경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다시 만들어진 재조장경(팔만대장경)은 초조장경에 일부 경전이 추가되어 제작되었다.
지승은 개원석교록에서 장경을 보살 3장(경,율,론), 성문 3장(경,율,론), 성현전기(붓다 이후 저술된 기록물) 등 3부분으로 분류하였으며, 고려대장경도 개원석교록과 같이 구성되었고, 1088번부터는 개원석교록에 포함되지 않는 추가된 경전들이 주가 된다.
7. 고려대장경의 만트라와 다라니
석가모니가 살던 시대는 브라만교가 발달했던 시기이다. 인도는 제사를 지내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 왕족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바이샤, 천민인 수드라 등 계급이 있는 사회였다. 고타마 붓다는 신분이나 성별의 차별을 두지 않았지만, 상수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을 포함하여 많은 출가 제자들이 브라만(제사장) 출신이었고, 재가제자들도 상당수 브라만이었다.[1]
초기 경전을 보면 상당수의 브라만 수행자들과 질의응답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브라만의 문화가 불교와 접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만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서 브라만교에 많이 접목하게 되고, 브라만 출신의 제자들은 브라만의 특성들을 불교에 많이 접목시켰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특히 브라만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만트라(주문)를 외는 의례를 행하였는데, 이런 의식이 불교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1]
불교에서 만트라를 외우는 행위는 잡념을 없애며, 정신 집중을 통해 깊은 삼매에 이르는 도구로 많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 경전에서는 다라니를 암송하는 것 자체로 보살과 붓다와 하나가 되거나 보호를 받는다고 설명되어 있다. 고려대장경에는 다라니를 해석하는 경전도 포함되어 있는데, 옴이나 훔 등의 소리에 담긴 의미와 다라니 문구의 단어별 해석도 포함되어 있다.[1]
7. 1. 고려대장경에서 만트라와 다라니가 포함된 경전 목록
고려대장경에는 만트라(짧은 주문)와 다라니(긴 주문)가 포함된 경전이 400개가 넘는다.[1]
8. 영향
고려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간행된 불경으로, 인쇄술과 출판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장경 제작은 고려의 국가적인 대사업이었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컸지만,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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