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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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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가르주나는 2~3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의 불교 철학자로, 대승불교의 중요한 사상인 공(空) 사상을 주창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으며,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출가하여 상좌부 불교를 배우고 히말라야 산에서 대승불교를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을 저술하여 공, 연기, 중도의 사상을 체계화했으며, 이는 한국 불교 선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서로는 《중론》, 《회쟁론》, 《십이문론》 등이 있으며, 다양한 저작들이 나가르주나의 이름으로 전해지나 위작 논란이 존재한다. 나가르주나의 저작과 관련하여 동일인물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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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르주나
기본 정보
나가르주나 그림
이름나가르주나
원어 이름नागार्जुन
로마자 표기Nāgārjuna
텔루구어 표기నాగార్జునుడు
티베트어 표기ཀླུ་སྒྲུབ
로마자 표기 (티베트어)klu sgrub
태국어 표기นาคารชุนะ
출생150년경
출생지인도 남부
사망250년경
사망지인도
직업불교 교사, 비구, 철학자
주요 저서중론
주요 사상중관학
공성
이제설
영향 받은 사상가부처
피론
학파 및 전통대승불교
중관학파
정토교
지역동양 철학
인도 철학
시대고대 철학
존칭용수보살, 용수대사
생몰년150년 - 250년경
출생지 (전승)인도 전 비다르바
스승대룡보살 (마하나가)
추가 정보
추가 정보불공 번역 '삼십칠존출생의'에서는 용수가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한다.
한국어 위키백과 (이하 정보)
머리에 뱀을 이고 있는 용수이미지 참조
참고나가는 뱀(뱀 신으로 전해져 용이 됨)을, 아르주나는 인도 신화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무장(영웅의 의미도 있음)에서 유래되었다.

2. 생애

나가르주나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정확한 생존 시기(서기 1세기~3세기)나 출생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7] 가장 오래된 기록들은 그의 사후 수세기 후에 중국어나 티베트어로 작성되었으며, 대부분 역사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전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7]

구마라습이 번역한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등 전통적인 기록에 따르면, 나가르주나는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74][11][12][13][14] 처음에는 상좌부 불교를 배웠으나 후에 히말라야에서 노비구(老比丘)를 만나 대승불교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초기 대승불교 경전, 특히 《반야경》(般若經)을 깊이 연구하여 (空)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으며, 이는 대승불교 교리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일부 전승에서는 그가 용궁(龍宮)에서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 경전을 가져왔다고 묘사하기도 한다.[17]

활동 시기에 대해서는 2세기경 데칸 고원을 지배했던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야즈냐 슈리 사타카르니로 추정)의 고문이었다는 주장이 있으며,[8] 이를 바탕으로 대략 서기 150년에서 250년 사이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 활동 지역으로는 남인도의 아마라바티 근처가 거론된다.[8]

만년에는 남인도의 크리슈나강 하류 Śrīparvata|스리파르바타sa(흑봉산)에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해진다.[76] 이 지역은 후대에 나가르주나콘다(나가르주나의 언덕)로 불리게 되었으나,[77] 고고학적으로 나가르주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24]

그의 사상은 제자인 제바(提婆, 아리야데바) 등을 통해 계승되었으며,[78] 후대 대승불교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과 한국 등지의 불교에서는 중관파(中觀派)·삼론종[79][80]·천태종[81] 등 여러 종파(八宗)의 조사(祖師)로 추앙받고 있다.

전통적인 전기에는 그가 용(nāga)과 관련된 신비한 능력을 지녔거나,[18] 아유르베다 연금술(Rasayana|라사야나sa)에 능통했다는 등[20] 전설적인 이야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나가르주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저작 중에는 후대에 다른 동명이인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헌들도 있어 연구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25][26]

2. 1. 출생 및 초기 생애

나가르주나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정확한 생존 시기(1세기~3세기)나 출생지(인도 내 여러 지역이 제시됨)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7] 가장 오래된 기록들은 그의 사후 수세기 후에 중국어와 티베트어로 작성되었으며, 대부분 역사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전기적 내용이다.[7]

구마라습이 번역한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따르면 용수는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74] 이 때문에 용수는 당시 불경 기록의 주된 언어였던 팔리어 대신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푸툰(プトゥン)의 『불교사』(佛教史)에 따르면 남쪽 비다르바의 브라만 출신으로, 중인도의 날란다 대학에서 브라만의 학문을 수학한 후 출가했다고도 전해진다.

《용수보살전》에는 용수가 뛰어난 재능으로 학식을 떨쳤으나, 친구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발각되어 친구들은 살해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것을 계기로 출가하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출가 후 처음에는 상좌부 불교를 배웠고, 이후 히말라야산으로 들어가 노비구(老比丘)로부터 대승불교를 배웠다고 한다. 그 후 초기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많은 주석서를 저술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세웠다. 그는 《반야경》(般若經)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의 교의를 철학적으로 구명하고, 대승불교 교의의 중요한 기초를 닦았다. 《용수보살전》에는 용궁에 들어가 대승 경전을 전수받았다는 전설도 있다.

사타바하나 왕국 지도. 나가르주나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마라바티와 출생지로 언급되는 비다르바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나가르주나가 활동했던 1세기와 2세기 경 인도는 쿠샨 제국사타바하나 왕조를 포함한 여러 국가로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 불교 공동체는 이미 여러 종파로 나뉘어 있었으며, 초기 대승불교 운동은 아직 소규모였다. 조셉 월서(Joseph Walser)는 5세기 이전의 대승불교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상좌부 불교 내에서 소수의 운동으로만 존재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5] 2세기까지는 「팔천송반야바라밀다경」과 같은 초기 대승 경전이 특정 대승 불교 집단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었다.[6]

아마라바티 스투파 모형


조셉 월서와 같은 일부 학자들은 나가르주나가 2세기에 데칸 고원을 지배했던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아마도 야즈냐 슈리 사타카르니)의 고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8] 이러한 연관성을 바탕으로 나가르주나의 활동 시기는 일반적으로 서기 150년~250년경으로 추정된다.[8] 월서는 나가르주나가 『라트나발리(Ratnavali)』를 저술했을 당시, 마하상기카의 하위 종파인 푸르바사일랴(Purvasailya), 아파라사일랴(Aparasailya) 또는 차이티카 성향의 사원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9] 그는 나가르주나가 2세기 말 안드라 지역(현대의 아마라바티 부근, 다냐카타카)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8]

후일 중부 인도에서 남인도로 돌아가, 만년에는 남인도의 크리슈나강 하류의 흑봉산(黑峰山)에 살다가 그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76] 흑봉산은 후대에 나가르주나콘다(나가르주나의 언덕이라는 뜻)라고 불린 도시 근처에 있었는데,[77] 나가르주나콘다는 지금의 안드라프라데시 주 군투르 지역에 속한다. 부파 불교의 제다부(Caitika)와 다문부(Bahuśrutīya)의 사원들이 나가르주나콘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7]

2. 2. 활동 및 입적

구마라습의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에 따르면, 용수는 인도 남부의 브라만 가문 출신이었다.[74] 이 때문에 용수는 당시 불경 기록의 주된 언어였던 팔리어 대신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출가(出家)하여 상좌부 불교를 배우다가 후에 히말라야산으로 들어가 노비구(老比丘)로부터 대승불교를 배웠다고 한다. 그 후 초기 대승불교의 여러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많은 주석서를 저술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세웠다. 그는 《반야경》(般若經)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空)의 교의를 철학적으로 구명하고, 대승불교 교의의 중요한 기초를 닦았다. 전통적인 종교적 행전들은 나가르주나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Prajñāpāramitā|프라즈냐파라미타sa) 경전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으며, 한동안 숨겨져 있던 이 경전들을 세상에 드러냈다고 묘사한다. 일부 자료에서는 그가 용(nāga|나가sa)들의 땅에서 경전을 찾았다고 한다.[17]

니콜라스 로에리히(Nicholas Roerich) "뱀을 정복한 나가르주나"(1925)


《용수보살전》에는 용수의 활동에 대한 여러 전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용수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투명화 술법을 배워 후궁에 드나들다 발각되어 친구들은 살해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뒤, 욕망의 덧없음을 깨닫고 출가했다. 90일 만에 소승 불전을 독파하고 더 깊은 가르침을 찾아 히말라야에서 대승 경전을 배웠다. 이후 인도 전역을 유랑하며 논쟁에서 승리했으나 교만심을 갖게 되었고, 마하나가(대룡보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용궁으로 데려가 여러 대승 경전을 전수하여 90일 만에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용궁에서 돌아온 용수는 남인도의 국왕을 교화하기 위해 스스로 장군이 되어 군대를 정비하고, 신통력으로 신들과 아수라의 전투 장면을 보여주어 왕과 브라만들을 불교에 귀의시켰다. 또한 한 브라만과의 술법 대결에서 여섯 엄니를 가진 흰코끼리를 만들어 브라만을 굴복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통적인 자료들은 또한 나가르주나가 아유르베다 연금술(Rasayana|라사야나sa)을 실천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구마라습의 전기에는 나가르주나가 투명화 약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으며, 부스톤(Bus-ton), 타라나타(Taranatha), 현장(Xuanzang)은 모두 그가 돌을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20]

티베트의 행전들은 나가르주나가 날란다 대학교(Nālanda University)에서 공부했다고 말하지만, 학자 발서(Walser)는 이 대학교가 나가르주나 활동 시기 이후인 약 425년경에야 주요 수도원 중심지가 되었으며, 현장과 의징(Yijing)이 날란다에서 나가르주나를 중요 인물로 언급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21]

나가르주나는 후일 중부 인도에서 남인도로 돌아가, 만년에는 남인도의 키스토나 강(Kistna River, 지금의 크리슈나강[75]) 하류의 흑봉산(Śrīparvata|스리파르바타sa)에 살다가 그곳에서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76] 《용수보살전》에는 소승 불교도의 미움을 산 나가르주나가 "당신은 내가 장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지"라고 묻고는 스스로 조용한 방에 들어가 입적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용수가 말년을 보낸 흑봉산 근처 지역은 후대에 나가르주나콘다(나가르주나의 언덕이라는 뜻)라고 불리게 되었는데,[77] 이곳은 지금의 안드라프라데시 주의 군투르 지역(Guntur district)에 속한다. 부파 불교의 제다부(制多部, Caitika|차이티카영어)와 다문부(多聞部, Bahuśrutīya|바후슈루티야영어)의 사원(vihara|비하라sa)들이 나가르주나콘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7][22] 그러나 나가르주나콘다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 중 나가르주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는 것은 없으며, "나가르주나콘다"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에 생겨났고, 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3~4세기 비문은 고대 시대에 이곳이 "비자야푸리(Vijayapuri|비자야푸리sa)"로 알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24]

《용수보살전》에 따르면, 용수 사후 100년 뒤 남인도 사람들은 그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부처와 같이 숭배했다고 한다.

2. 3. 전기 자료



나가르주나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정확한 생존 시기(1세기~3세기)나 출생지(인도 내 여러 지역이 제시됨)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7] 가장 오래된 기록들은 그의 사후 수세기 후에 중국어와 티베트어로 작성되었으며, 대부분 역사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전설적인 내용이다.[7]

가장 오래된 전기 자료 중 하나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이 405년경 한문으로 번역한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이다.[10] 이 전기에 따르면, 나가르주나는 인도 남부[74] 비다르바(Vidarbha) 지역[15][16]브라만 가문 출신으로,[74][11][12][13][14] 어릴 때부터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출가 후 소승 경전을 빠르게 익혔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에서 노비구로부터 대승불교 경전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인도 전역을 다니며 논쟁에서 명성을 얻었으나 교만심을 갖게 되었다. 이때 대룡(大龍, 마하나가)보살이 그를 용궁으로 데려가 많은 대승불교 경전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전승은 나가르주나가 용(nāga)에게서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 경전을 받아 세상에 전했다는 이야기의 바탕이 되었다.[17] 용궁에서 돌아온 후 남인도에서 왕을 교화하고 불교를 전파했으며, 만년에는 크리슈나강 하류의 스리파르바타(Śrīparvata, 흑봉산)에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해진다.[76]

현대 학자 조셉 월서(Joseph Walser) 등은 나가르주나가 2세기경 데칸 고원을 지배했던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 특히 야즈냐 슈리 사타카르니(Yajña Śrī Śātakarṇi, 2세기 후반경)의 고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8] 이는 전통적인 전기 자료들과도 일부 부합하는 내용이다.[10] 이러한 연관성을 바탕으로 나가르주나의 활동 시기는 일반적으로 150년에서 250년 사이로 추정된다.[8] 월서는 나가르주나가 당시 아마라바티 근처 다냐카타카(Dhanyakataka) 지역의 사원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보며,[8] 그 사원은 대승불교도와 비(非)대승불교도가 함께 수행하던 혼합 사원이었고, 종파적으로는 마하상기카 계열의 푸르바사일랴(Purvasailya), 아파라사일랴(Aparasailya) 또는 차이티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9]

티베트 불교의 기록들은 나가르주나가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전하지만, 월서에 따르면 날란다는 425년경 이전에는 주요 수도원 중심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기록의 신빙성은 낮다. 또한 현장(玄奘)이나 의정(義淨)과 같이 날란다에서 나가르주나의 저작을 연구했던 후대의 인물들이 현지에서 나가르주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은 점도 의문점으로 지적된다.[21]

나가르주나가 만년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스리파르바타 산 근처는 후대에 나가르주나콘다(나가르주나의 언덕)로 불리게 되었다.[77][22][23] 현재 안드라프라데시 주 군투르 지역에 위치한 나가르주나콘다 유적지에서는 차이티카와 다문부(Bahuśrutīya) 등 부파 불교 종파들의 사원 유적이 발견되었다.[77][22] 그러나 나가르주나콘다라는 명칭은 중세 시대에 붙여진 것이며, 3~4세기 비문에는 이 지역이 '비자야푸리(Vijayapuri)'로 기록되어 있어 나가르주나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24]

전통적으로 나가르주나는 인간과 용(nāga)의 특징이 결합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용은 인도 종교에서 지혜와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며,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나 현자를 상징하기도 한다.[19] 일부 전기에는 나가르주나가 아유르베다의 연금술(Rasayana)에 능통하여 투명해지는 약을 만들거나 돌을 금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20]

나가르주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저작이 많지만, 상당수는 후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나가르주나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아유르베다 의학이나 후대의 밀교를 연구한 동명이인이 있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26][25]

3. 사상

용수는 불교 초기 경전을 바탕으로 중관(中觀)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대표 저서인 《중론》을 통해 이를 체계화했다. 《중론》의 원제는 산스크리트어 Mūlamadhyamakakārikā|물라 마드야마카 카리카sa로, '중도에 대한 근본적인 글'을 의미한다.

그의 사상 핵심은 대승불교의 주요 개념인 (空) 사상이다. 용수는 공을 단순한 허무(虛無)가 아닌, 모든 존재(법)가 고정된 실체(자성, 自性) 없이 상호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연기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 연기, 중도가 동일한 의미임을 밝혔으며, 이는 《중론》의 유명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게송 등에서 잘 나타난다.[82] 이러한 사상은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여 고정관념과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1. 핵심 사상: 공(空), 연기(緣起), 중도(中道)

불교의 초기 경전을 연구한 용수는 중관(中觀) 사상을 주창하였고, 이를 집대성한 대표적인 저서로 《중론(中論)》을 남겼다. 《중론》은 산스크리트어 원 제목 '물라 마드야마카 카리카'(Mūlamadhyamakakārikās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는 '중도에 대한 근본적인 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중론》에서 용수는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空) 사상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는 공을 단순히 '아무것도 없음'(無)이라는 절대적인 허무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발생하는 연기(緣起)의 관점에서 공을 파악했다. 용수는 모든 현상(법)은 고유하고 독립적인 실체, 즉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모든 것은 다양한 원인(因)과 조건(緣)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하는 연기적 존재이므로, 그 자체로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성이 없음'을 뜻하는 공 사상을 무자성공(無自性空)이라고도 부른다.

용수는 공, 연기, 중도가 궁극적으로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중론》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에 나오는 유명한 게송은 이러한 사상을 잘 보여준다.[82]

>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법(法: 존재)이다.

> 나는 이것을 공하다(無)고 말한다.

> 그리고 또한 가명(假名)이라고도 말하며,

> 중도(中道)의 이치라고도 말한다.

> 단 하나의 법(法: 존재)도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이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82]

이 게송은 모든 존재가 인과 연의 관계 속에서 잠시 존재하는 가명(假名), 즉 임시적인 이름이나 개념일 뿐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공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있음(有)'과 '없음(無)'이라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연기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임을 밝힌다. 용수는 어떤 법(존재)이 고정된 성품(자성)을 가진다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연기)이 성립할 수 없으며, 연기하지 않는 존재란 있을 수 없다고 논증하며 공 사상을 확립했다.[82]

용수는 현상의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에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여 변화하는 연기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용수는 또한 상대성의 개념을 통해 공 사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보석엄선》(Ratnāvalī)에서 그는 '짧음'이라는 개념은 '긺'이라는 개념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그 자체로 고유한 성질(자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모든 개념과 존재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코틀랜드 삼예링 사원에 있는 용수의 금동상


공 사상은 이후 이제(二諦)설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제설은 진리를 두 가지 차원, 즉 궁극적 진리인 승의제(勝義諦, paramārtha satyasa)와 세속적 진리인 세속제(世俗諦, saṃvṛti-satyasa)로 나누어 설명한다. 승의제는 언어나 개념을 초월한 진실 그 자체의 세계를 의미하며, 세속제는 우리가 언어와 개념을 통해 인식하는 일상적인 세계와 석가모니의 가르침 등을 포함한다. 용수의 공 사상은 이러한 불교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2. 이제설(二諦說)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로서 이제설(二諦說, 이원적 진리설)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은 진리를 두 가지 차원, 즉 궁극적인 진리인 승의제(승의제, paramārtha satyasa)와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진리인 세속제(세속제, saṃvṛti-satyasa)로 나누어 설명한다.[56]

승의제는 언어나 개념적 사유를 넘어선,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세계를 가리킨다. 나가르주나에게 있어 승의제는 모든 현상(법, dharma)이 고유한 실체(자성, svabhāvasa)가 없이 (空, śūnyatāsa)하다는 진리이다. 그는 이 공의 개념을 확장하여, 공이라는 개념 자체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공한 것'(공의 공)으로 보았다.[56]

반면, 세속제는 언어, 개념, 사회적 약속 등을 통해 구성되고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세계의 진리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붓다의 가르침과 같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적인 설명들도 포함된다. 즉, 세속제는 궁극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필요한 개념적 이해의 세계이다.

나가르주나는 자신의 핵심 저서인 《중론》에서 이제설을 설명하며, 이 구분이 붓다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였다. 그는 초기 경전인 《가찬냐고타 경》(Kaccānagotta Sutta)을 인용하여, 붓다가 이미 진리에는 확정적인 의미(nītārthasa)와 해석이 필요한 잠정적인 의미(neyārthasa)가 있음을 구분했다고 지적했다. 《가찬냐고타 경》에서 붓다는 세상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양극단의 견해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극단을 피하는 중도의 입장에서 연기의 가르침을 설파했다.[59][60][61]

나가르주나의 승의제에 대한 해석은 후대 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를 낳았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칸트 철학의 누메논(noumenon)처럼 언어와 개념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로 해석하기도 했다.[57] 반면, 마크 시더릿츠(Mark Siderits)나 제이 엘. 가필드(Jay L. Garfield)와 같은 현대 학자들은 나가르주나가 궁극적 진리 자체가 없다는 것을 궁극적 진리로 보았으며,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세속제뿐이라고 주장하는 "의미론적 반이원론자"에 가깝다고 해석한다.[57][58] 이 관점에 따르면, 현상(예: 탁자)의 공함을 분석하는 것은 그것이 고유한 실체 없이 다른 요소들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세속적 존재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58]

결론적으로 이제설은 불교 내에서 심오한 궁극적 진리와 일상적이고 방편적인 가르침을 구분하고,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3. 3. 비판 철학

나가르주나의 주요 철학적 주제는 (空, śūnyatā|슈냐타sa) 개념이다. 그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無我, anātman|아나트만sa)와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프라티탸사무트파다sa) 사상을 종합하여, 당시 일부 학파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본질주의형이상학을 비판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나가르주나에게는 단순히 중생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법, dharma|다르마sa) 역시 자성(自性, svabhāva|스바바와sa), 즉 고유한 본질이나 실체적 존재가 없다고 보았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空)'하다는 것이다.[47] 따라서 그는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자성(svabhāva)에 대한 이론들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반박했다.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모든 것은 항상 연기적으로 발생한다. 즉, 어떤 것이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게 되는 여러 조건들에 의존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자체적인 본성(svabhāva)을 가지며,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akrtaka|아크르타카sa),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paratra nirapeksha|파라트라 니라펙샤sa) 실체를 진정한 실재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논증했다.[47]

현상의 공함을 분석하면서 나가르주나는 인과율, 운동, 변화, 개인적 정체성 등 다양한 개념에 고정된 본질(svabhāva)을 설정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본질주의적 개념을 논파하기 위해 인도 논리학의 도구인 사구분별(catuṣkoṭi|차투슈코티sa)을 사용했다. 이 논법은 네 가지 기본적인 명제를 검토한다.[49]

  • 모든 것(법)은 존재한다 (존재 긍정, 비존재 부정)
  • 모든 것(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존재 긍정, 존재 부정)
  • 모든 것(법)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와 비존재 모두 긍정)
  • 모든 것(법)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존재와 비존재 모두 부정)


나가르주나는 이 네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모두 부정함으로써, 존재나 비존재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입장을 확립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비그라하뱌바르타니(Vigrahavyavartani)》나 《바이달야프라카라나(Vaidalyaprakaraṇa)》와 같은 저술을 통해 냐야 학파와 같은 다른 인도 철학 학파들의 인식론(프라마나)과 범주 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63]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궁극적인 존재론적 토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가르주나의 철학은 종종 존재론적 반기초주의(anti-foundationalism)[50] 또는 형이상학적 반실재론(anti-realism)[51]으로 평가받는다.

나가르주나에게 현상의 공한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nirvana)의 성취에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작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고정된 본질(svabhāva)이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구원론적(soteriological) 성격을 지닌다.

3. 4.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한국 불교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핵심 사상인 중관(中觀)은 (空), 연기(緣起), 중도(中道)의 개념을 통해 대승불교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는 동아시아 불교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나가르주나는 그의 대표 저서인 《중론》에서 모든 존재나 현상(법, 法)은 고정된 실체(자성, 自性) 없이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연기적 관점에서 존재의 실상을 '공(空)'하다고 파악했으며, 이는 절대적인 '없음(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성을 나타낸다. 나가르주나는 이처럼 공, 연기, 중도가 궁극적으로 같은 의미임을 주장하며, 이를 통해 고정관념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82]

이러한 나가르주나의 중관 사상은 신라원효고려의 진울과 같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진울은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저술에서 이를 인용하며 공(空) 사상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불교는 나가르주나의 철학을 수용하고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그 사상적 깊이를 더해왔다.

4. 저서

용수의 저작은 한역(漢譯)으로 20부 154권, 티베트 역으로 95부가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상을 담은 주요 저작으로는 중론송, 십이문론, 대지도론, 십주비바사론, 회쟁론, 대승이십송론, 보행왕정론, 보리자량론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들 저작 모두가 나가르주나의 진정한 저술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며,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29][30][35][36][37]

고려대장경에는 그의 핵심 저작 중 하나인 《중론》이 한역되어 수록되어 있다.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확실시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4. 1. 주요 저서



용수의 저작은 한역(漢譯)으로 20부 154권, 티베트 역으로 95부가 전해지나, 이들 모두가 용수의 진작(眞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전통적으로 용수의 저술로 여겨지는 것들 중에서도 『중론』(頌)을 제외하고는 근대 불교학에서 용수의 진작이라는 견해의 일치를 얻고 있는 작품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헌과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의 주요 저작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중론송''' 또는 '''중론''' (Mūlamadhyamaka-kārikā|뮬라마드야마카카리카sa, MMK): 용수의 대표작으로, 연기 사상을 바탕으로 중도(中道)를 체계적으로 논증한다. 특히 설일체유부로 대표되는 실재론적 견해를 비판하며, 모든 현상은 자성(自性)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며 공(空)임을 밝힌다. 이를 통해 세속에서는 모든 것이 언어로 설시된 것일 뿐 실체가 없으며(세속제(世俗諦)), 궁극적 진리(승의제)에서는 모든 언어 활동조차 소멸함을 설파한다. 이 사상은 이후 중관파의 근간이 되었다. 고려대장경에도 한역본이 수록되어 있다.
  • '''회쟁론''' (Vigrahavyāvartanī|비그라하비아바르타니sa): 불교 이외의 여러 학파, 특히 당시 논리학파의 주장을 의 입장에서 논파한다.
  • '''십이문론''' (Dvādaśanikāya Śāstra|드바다샤니카야 샤스트라sa): 연기, 즉 의 관점에서 불교의 근본 사상을 12가지 문(門)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만, 이 저작이 용수의 진작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대지도론''' (Mahāprajñāpāramitopadeśa|마하프라즈냐파라미토파데샤sa): 가장 오래된 《반야경》 중 하나인 《대품반야》의 주석서이다. 당시의 다양한 사상, 전설, 교단의 규정 등을 소개하고 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해설한다. 특히 보살의 실천 수행법인 6바라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역시 용수의 진작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 '''십주비바사론''' (Daśabhūmika-vibhāṣā|다샤부미카 비바샤sa): 《화엄경》의 초기 형태인 〈십지경〉을 주석한 것으로, 보살의 수행 단계인 십지(十地)를 해설한다. 특히 이 책의 '이행품(易行品)'에서는 믿음을 방편으로 삼아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쉬운 수행법(易行道)을 제시하는데, 이는 후대 정토교 발전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 저작 또한 용수의 진작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 '''공칠십론''' (Śūnyatāsaptati|슈냐타삽타티sa): 70개의 게송으로 사상을 설명하며, 용수 자신이 쓴 산문 주석이 함께 전해진다.
  • '''바이달리야 수트라''' (Vaidalya-sūtra|바이달리야 수트라sa) 및 '''바이달리야론''' (Vaidalya-prakaraṇa|바이달리야 프라카라나sa): 인도 냐야 학파의 논리 범주들을 비판하는 산문 형태의 저작이다.
  • '''육십송여리론''' (Yuktiṣāṣṭika|육티샤슈티카sa): 60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논리적 추론을 통해 사상을 논증한다.
  • '''보행왕정론''' (Ratnāvalī|라트나발리sa): '보석 화환'이라는 뜻으로, 인도의 왕(아마도 사타바하나 왕조의 군주)에게 정치와 관련된 실천 수행의 길을 제시한 서한 형식의 글이다.
  • '''대승이십송론''' (Mahāyāna-viṃśikā|마하야나빔시카sa): 의 입장에서 세계는 오직 일심(一心)임을 설파한다.
  • '''보리자량론''' (Bodhisaṃbhāraśāstra|보디삼바라샤스트라sa): 깨달음을 위한 필수 요건, 즉 보살의 길과 바라밀 수행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한역본(대정장 1660)만 남아 있다.[34]
  • '''수트라사무차야''' (Sūtrasamuccaya|수트라사무차야sa): 여러 경전의 구절들을 모아 엮은 선집이다.
  • '''기타 저작''': 《유크티샤스티카(Yuktisastika)》, 《비달라(Vidala)》(바이달야수트라/바이달야프라카라나), 《삼스투티스(Samstutis)》(찬가 모음), 《비야바하라시디(Vyavahārasiddhi)》, 《차투스타바(Catuḥstava)》(네 편의 찬가), 《프라티티야사무트파다흐리다야카리카(Pratītyasamutpādahṝdayakārika)》, 《보디치타비바라나(Bodhicittavivaraṇa)》, 《수흐릴레카(Suhṛllekha)》(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도 용수의 저작으로 거론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저작이 나가르주나의 진작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찬드라키르티(약 600년 ~ 약 650년)는 《(마드히야마카)카리카》, 《유크티샤스티카》, 《수냐타삽타티》,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 《비달라》, 《라트나발리》, 《수트라사무차야》, 《삼스투티스》 등 8권을 언급했다.[29]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tner)는 이보다 많은 12개의 저작을 용수의 진작으로 보았으나,[30] 데이비드 F. 버튼(David F. Burton)이나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 등 다른 학자들은 일부 저작(예: 《보디치타비바라나》)에 대해 후대의 작품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견을 보인다.[35]

비교적 논란이 적고 많은 학자들이 용수의 핵심 저작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 《뮬라마드히야마카카리카》(MMK)
  •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
  • 《수냐타삽타티》
  • 《유크티샤스티카》
  • 《바이달야프라카라나》
  • 《라트나발리》


얀 베스터호프(Jan Westerhoff)는 이 여섯 저작이 "단일하고 일관된 철학적 체계"를 보여주며, 인도와 티베트의 다양한 자료에서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귀속된다고 평가했다.[36] 티베트의 역사가 부스톤 역시 이 여섯 저작을 나가르주나의 주요 논문("유크티 코퍼스", "릭스 초그스")으로 간주했다.[37]

4. 2. 기타 저서

용수의 저작은 한역(漢譯)으로 20부 154권, 티베트 역으로 95부가 전해지며, 대표적인 저작 외에도 다양한 저술이 있다.

  •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Ratnāvalī|라트나발리sa): '보석 화환'이라는 뜻으로, 부제는 '라자파리카타(rajaparikatha)'이다. 정치 지도자, 특히 인도의 왕(아마도 사타바하나 왕조 군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실천 수행의 길을 제시한다.[33]
  • '''보리자량론(菩提資糧論)''' (Bodhisaṃbhāraśāstra|보디삼바라샤스트라sa): 보살의 길과 6바라밀 등 깨달음의 필요조건에 대해 설명한 저술이다. 현재는 중국어 번역본(대정장 1660)만 남아 있으며, 찬드라키르티아리아데바의 저술에 대한 주석에서 인용하였다.[34]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인정되는 범위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찬드라키르티(약 600년 ~ 약 650년)는 《마드히야마카샤스트라스투티(Madhyamakasastrastuti)》에서 나가르주나의 저서로 다음 8권을 언급했다.[29]

  • 《(마드히야마카)카리카(Madhyamakakarika)》 (중론송)
  • 《유크티샤스티카(Yuktisastika)》 (육십송여리론)
  • 《수냐타삽타티(Sunyatasaptati)》 (공칠십론)
  •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Vigrahavyavartani)》 (회쟁론)
  • 《비달라(Vidala)》 (또는 《바이달야수트라/바이달야프라카라나(Vaidalyasutra/Vaidalyaprakarana)》)
  • 《라트나발리(Ratnavali)》 (보행왕정론)
  • 《수트라사무차야(Sutrasamuccaya)》
  • 《삼스투티스(Samstutis)》 (찬가 모음)

이는 중국과 티베트에 전해지는 방대한 저작 목록보다 훨씬 적은 수이며, 찬드라키르티 자신이 인용한 모든 저작을 포함하지도 않는다.[29]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tner)는 다음과 같은 저작들이 나가르주나가 확실히 저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0]

저서 (산스크리트어 원제)한국어 명칭 및 설명
Mūlamadhyamaka-kārikā|뮬라마드야마카카리카sa중론송. 중도의 기본 경전. 세 개의 산스크리트어 사본과 다수의 번역본이 있다.[31]
Śūnyatāsaptati|슈냐타삽타티sa공칠십론. 공(空)에 대한 칠십 구절. 나가르주나 자신의 산문 주석이 딸려 있다.
Vigrahavyāvartanī|비그라하비아바르타니sa회쟁론. 논쟁의 종식.
Vaidalyaprakaraṇa|바이달리아프라카라나sa범주 파괴. 인도 냐야 철학의 범주를 비판하는 산문.
Vyavahārasiddhi|비아바하라시디sa관습의 증명.
Yuktiṣāṣṭika|육티샤슈티카sa육십송여리론. 추론에 대한 육십 구절.
Catuḥstava|차투스타바sa네 편의 찬가. 《로카티타스타바(Lokātīta-stava)》(초월 찬가), 《니라우파미야스타바(Niraupamya-stava)》(무쌍 찬가), 《아친티야스타바(Acintya-stava)》(불가사의 찬가), 《파라마르타스타바(Paramārtha-stava)》(궁극적 진리 찬가).[32]
Ratnāvalī|라트나발리sa보행왕정론. 보석 화환. 인도의 왕에게 한 설법.[33]
Pratītyasamutpādahṝdayakārika|프라티티야사무트파다흐리다야카리카sa연기의 핵심에 대한 경전. 짧은 주석(Vyākhyāna|비아키야나sa) 포함.
Sūtrasamuccaya|수트라사무차야sa다양한 수트라 구절 선집.
Bodhicittavivaraṇa|보디치타비바라나sa깨달음의 마음 설명.
Suhṛllekha|수흐릴레카sa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Bodhisaṃbhāraśāstra|보디삼바라샤스트라sa보리자량론. 깨달음의 필요조건. 보살의 길과 6바라밀에 관한 저술.[34]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린트너의 목록 중 일부 저작의 진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데이비드 F. 버튼(David F. Burton)은 린트너가 "매우 관대한" 편이라고 지적하며,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가 《보디치타비바라나》가 후대의 저작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고 언급한다.[35] 버튼 자신은 연구에서 《뮬라마드히야마카카리카》,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 《수냐타삽타티》, 《유크티샤스티카》, 《차투스타바》, 《바이달야프라카라나》, 《라트나발리》 등 "가장 논란의 여지가 없는" 7권의 텍스트를 사용한다.[35]

얀 베스터호프(Jan Westerhoff) 역시 저작 귀속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며, 《뮬라마드히야마카카리카》,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 《수냐타삽타티》, 《유크티샤스티카》, 《바이달야프라카라나》, 《라트나발리》 등 6권의 저작을 주로 다룬다. 이 저작들은 "단일하고 일관된 철학적 체계"를 설명하며 다양한 인도와 티베트 자료에서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인정받는다.[36]

티베트 역사가 부톤 린첸 드룹은 처음 여섯 권(MMK, 《비그라하비야바르타니》, 《수냐타삽타티》, 《유크티샤스티카》, 《바이달야프라카라나》, 《라트나발리》)을 나가르주나의 주요 논문("유크티 코퍼스(yukti corpus)", "릭스 초그스(rigs chogs)")으로 간주한다. 반면, 타라나타는 처음 다섯 권만을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본다. T.R.V. 무르티(TRV Murti)는 찬드라키르티가 자주 인용한 《라트나발리》와 《프라티티야사무트파다흐리다야》, 그리고 샨티데바가 많이 인용한 《수트라사무차야》를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간주한다.[37]

5. 논란

Nāgārjuna|나가르주나sa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저작과 행적이 매우 다양하여, 이것이 과연 한 인물의 업적인지에 대한 학술적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불교의 중요한 사상가로서의 모습 외에도 연금술사나 밀교 수행자로서의 기록이 남아 있어, 후대의 동명이인과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동일 인물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학계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5. 1. 동일인물 논쟁



Nāgārjuna|나가르주나sa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저작들이 매우 다양하여, 이들이 모두 한 사람의 저작인지, 아니면 여러 명의 나가르주나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불교 승려로서의 모습보다는 연금술사나 점성술사로 더 알려진 측면이 있는데, 이는 후대의 동명이인 연금술사와 혼동된 결과로 여겨진다. 연금술과 관련된 저작으로는 나가르주나가 저술한 연금술 방법이 기록된 『라사 우파니샤드』(Rasa Upanishadsa), 나가르주나와 샤리바하나(Śālivāhanasa) 왕(引正王)의 불로장생 영약 등에 대한 대화를 담은 『라사 라트나카라』(Rasa Ratnakarsa), 수은학의 학자 중 한 명으로 나가르주나를 언급하는 『라사라트나 삼무차야』(Rasaratna-samuccayasa) 등이 전해진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나가르주나와 샤리바하나 왕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다이쇼 시대의 일본 학자 가구 혜해와 테라모토 엔가는 『팔십사성취자전』에 나타난 용수전의 내용이 독특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여기에 등장하는 용수는 본래의 용수(나가르주나) 사후(테라모토는 6세기로 추정)에 활동한 동명이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본래의 용수를 '고용수'(Nāgārjuna Isa), 『팔십사성취자전』의 용수를 '신용수'(Nāgārjuna IIsa)라고 구분했다. 가구 혜해는 밀교 경전 중 『무상요가 탄트라』(좌도밀교)를 신용수의 저작으로 보았는데, 이는 고용수의 저작에 기반한 진언밀교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테라모토 엔가는 용수에게 귀속된 모든 밀교 경전이 신용수의 저작이며, 고용수는 밀교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즉, 고용수는 중관의 조사이고, 신용수는 밀교의 조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수/신용수 구분 설에 대해 우케이 료테이는 두 용수의 전기에 나타나는 공통점, 즉 ▲남인도브라만 출신 ▲날란다에서 출가 ▲남인도 왕에게 장생약 수여 ▲제자로 용지를 둠 등을 근거로 두 인물이 동일인물이며, 『팔십사성취자전』의 다른 내용은 밀교의 영향으로 윤색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토가오 쇼운은 『팔십사성취자전』 자체의 사료적 가치를 부정하기도 했다.

한편, 테라모토 엔가는 고용수와 신용수 외에, 고용수의 제자인 용맹(Nāgāhvayasa)이라는 인물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맹을 정토교의 시조로 보았으며, 『입릉가경』에 기록된 용수의 수기는 이 용맹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학계에서 용맹을 별개의 인물로 간주할 때는 주로 밀교 관련 업적을 그의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테라모토가 설정한 용맹보다는 신용수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다만 용맹과 신용수는 서로 다른 사료에 기반한 인물상이다.)

나카무라 하지메는 나가르주나에게 귀속되는 수많은 저서들이 과연 동일 인물의 저작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여러 명의 나가르주나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나가르주나의 저작으로 알려진 것들을 검토하여 최소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특히 5번(진언밀교 학자)과 6번(연금술 학자) 유형은 1번(공 사상가) 유형과는 상당히 성격이 달라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나카무라 하지메가 분류한 나가르주나 유형은 다음과 같다:

번호유형주요 저작/특징
1공 사상가중론』 등 공 사상 전개
2백과사전적 저술가대지도론
3화엄경 주석가『십주비파사론』 (십지품 주석)
4현실 문제 저술가『보행왕정론』 등 현실 문제 논의
5진언밀교 학자밀교 관련 저술
6화학(연금술) 학자연금술 관련 저술


참조

[1] 서적 unnamed
[2] 서적 The Fundamental Wisdom of the Middle Way Oxford University Press
[3] 서적 unnamed
[4] 서적 unnamed
[5] 서적 unnamed
[6] 서적 Studies in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and other essays
[7] 서적 unnamed
[8] 서적 unnamed
[9] 서적 unnamed
[10] 서적 unnamed
[11] 간행물 Notes on the Nagarjunikonda Inscriptions
[12] 서적 Unfolding A Mandala: The Buddhist Cave Temples at Ellora SUNY Press
[13] 서적 Buddhist Critical Spirituality: Prajñā and Śūnyatā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4] 서적 Mahamudra: The Quintessence of Mind and Meditation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5] 웹사이트 Journal https://books.google[...]
[16] 간행물 Transaction Indian Institute of World Culture
[17] 서적 unnamed
[18] 서적 unn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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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A History of Indian Buddhism: From Śākyamuni to Early Mahāyā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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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웹사이트 Nāgārjunakoṇḍā: A Cultural Study https://books.google[...] Concept Publishing Company
[25] 서적 unn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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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웹사이트 Seeing the Sacred in Samsara: An Illustrated Guide to the Eighty-Four Mahasiddhas https://books.google[...] Shambhala Publications 2019-05-28
[28] 웹사이트 SN 12.15 Kaccayanagotta Sutta: To Kaccayana Gotta (on Right View) http://www.accesstoi[...]
[29]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30] 서적 Nagarjuniana: studies in the writings and philosophy of Nāgārjuna Akademisk forlag
[31]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32] 간행물 Nagarjuna's Catustava
[33]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34]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35] 서적 Emptiness Appraised: A Critical Study of Nagarjuna's Philosophy Routledge
[36] 서적 (제목 없음)
[37] 서적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
[38] 서적 (제목 없음)
[39] 서적 (제목 없음)
[40]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41]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42] 서적 (제목 없음)
[43] 서적 (제목 없음)
[44]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45] 서적 The Literature of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in India Otto Harrassowitz Verlag
[46] 서적 (제목 없음)
[47] 서적 Indian philosophy
[48] 서적 Nagarjuna's Middle Way: Mulamadhyamakakarika (Classics of Indian Buddhism) Wisdom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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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서적 An Investigation into Emptiness (Kōng zhī Tànjìu 空之探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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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논문 “Dependent Origination = Emptiness”—Nāgārjuna’s Innovation?
[56] 서적 Empty Words: Buddhist Philosophy and Cross-cultural Interpretation
[57] 논문 On the Soteriological Significance of Emptiness
[58] 서적 Empty words
[59] 웹사이트 SN 12.15 Kaccayanagotta Sutta: To Kaccayana Gotta (on Right View)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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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서적 The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
[64] 서적 Master of Wisdom Dharma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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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서적 Pyrrhonism: How the Ancient Greeks Reinvented Buddhism
[67] 서적 The Shape of Ancient Thought
[68] 논문 Greek Buddha: Pyrrho's encounter with early Buddhism in central Asia
[69] 논문 Neither Scythian nor Greek: A Response to Beckwith's Greek Buddha and Kuzminski's "Early Buddhism Reconsid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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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백과사전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제바
[79] 백과사전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삼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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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백과사전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천태종
[82] 문서 T30n1564_p0033b10(00) - T30n1564_p0033b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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