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조약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남극 조약은 1959년 12월 1일에 체결되어 1961년 6월 23일부터 발효된 국제 조약으로, 남극 대륙을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과학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며 영유권 주장을 동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냉전 시기에 남극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과학 연구의 국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체결되었으며, 12개국이 원본 서명국으로 참여했다. 조약은 남극에서의 핵실험, 군사 기지 건설, 자원 개발을 금지하고, 과학 연구 기지 건설과 운영을 허용하며, 남극의 환경 보호를 위한 다양한 부속 협정들을 포함한다. 현재 58개국이 가입했으며, 29개국이 조약 협의 당사국으로서 남극 조약 사무국을 통해 남극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논의에 참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남극조약 | |
---|---|
조약 정보 | |
조약 이름 | 남극 조약 |
원어 이름 | 프랑스어: Traité sur l'Antarctique 러시아어: Договор об Антарктике 스페인어: Tratado Antártico |
조약 종류 | 콘도미니엄 |
![]() | |
서명일 | 1959년 12월 1일 |
서명 장소 | 워싱턴 D.C., 미국 |
발효일 | 1961년 6월 23일 |
발효 조건 | 12개 서명국의 비준 |
기탁자 | 미국 연방 정부 |
사용 언어 |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
참가국 정보 | |
서명국 | 12개국 |
당사국 | 58개국 |
내용 | 남극의 군사적 이용 금지, 과학적 조사 자유 및 국제 협력 규정 |
관련 조약 | |
관련 조약 | 남극 조약 체제 해양법 우주 조약 달 조약 국제 수역 |
2. 역사
== 역사 ==
=== 초기 탐험과 영유권 분쟁 (20세기 초) ===
20세기 초, 여러 국가가 남극 탐험에 경쟁적으로 참여하며 각자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남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고려하며 1946년부터 1947년 초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 원정대인 Operation Highjump을 남극에 파견했다.[5] 이 원정에는 13척의 함선, 4,700명의 병력, 다수의 항공 장비가 동원되었으며, 군사 훈련 및 극한 환경에서의 장비 시험을 목표로 했다.[5]
1947년 미국이 관심을 가진 남극 구역(서경 24°에서 90° W 사이)은 미주 상호 원조 조약의 안전 지대에 포함되어 회원국들이 외부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1948년 미국은 남극을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프랑스, 미국, 영국, 뉴질랜드가 관리하는 유엔 신탁 통치 구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지만,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프랑스, 노르웨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5] 같은 해 미국은 영유권 주장 국가들에게 남극의 국제화를 제안했고 영국이 지지했지만, 칠레가 제안한 영유권 주장 중단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0년, 미국은 소련을 남극 문제에서 배제하려 했으나, 소련이 자신들이 대표되지 않은 어떠한 남극 조약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실패했다.[5] 소련의 영토 주장 가능성과 냉전의 남극 확산 우려로 인해 미국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5]
이러한 국제적 갈등은 오히려 남극에 대한 협정 체결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6] 제2차 세계 대전 중 발생한 사건들과 더불어, 1952년 호프만 만에서 아르헨티나 군대가 영국인 그룹에게 경고 사격을 가한 사건[7], 1953년 디셉션 섬에서 영국 해병대가 아르헨티나 해군을 체포하고 피난처를 파괴한 사건[9] 등은 긴장을 고조시켰다. 1949년 아르헨티나, 칠레, 영국은 남위 60도선 이남에 군함을 보내지 않기로 하는 3자 해군 선언에 서명하여[8] 1961년까지 매년 갱신했지만, 1948년 아르헨티나가 8척의 군함 함대를 남극에 파견하면서 긴장이 발생하기도 하였다.[8]
1955년 영국은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여 영유권 주장의 무효를 선언하려 했으나, 두 국가가 법원의 관할권을 거부하면서 1956년 소송이 종결되었다.[10][11] 1956년과 1958년 인도는 남극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5]
=== 국제 지구 관측년 (1957-1958) ===
1950년, 국제 과학 연합 협의회(ICSU)는 세 번째 국제 극지해 개최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세계 기상 기구의 제안에 따라 국제 극지해의 아이디어는 전 지구로 확대되어 1957년 7월 1일부터 1958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된 국제 지구 물리 관측년이 만들어졌다. 이 행사에는 66개국이 참여했다. 1957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스톡홀름에서 열린 ICSU 회의에서 남극 연구 특별 위원회(SCAR)의 창설이 승인되었고, 남극 조사를 수행하는 12개국에 위원회 통합을 위한 대표 파견을 요청하여 남극에 관한 과학 정보를 회원국 간에 교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SCAR는 후에 남극 연구 과학 위원회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국제 지구 물리 관측년 동안 대륙에서 수행된 연구가 참가자들에게 어떠한 영토적 권리도 부여하지 않으며, 그 해에 세워진 시설은 종료 시 해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958년 2월, 미국은 남극 조사를 1년 더 연장할 것을 제안했고, 소련은 수행 중인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과학 기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 남극조약 체결 (1959) ===
1959년 12월 1일에 맺어져 1961년 6월 23일부터 효력을 발휘한 남극 조약은 1957년/1958년 국제지구관측의 해를 맞아 남극에서 활동중인 12개 나라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초청한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는 남아프리카 연방,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소비에트 연방,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가 참여하였다.
냉전이 남극 대륙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 동안 남극에서 활동한 12개국을 소집하여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12개국 대표는 워싱턴 D.C.에서 만나 1958년 6월부터 1959년 10월까지 60차례 회의를 열어 기본 협상 틀을 정의했지만, 예비 초안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1959년 10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최고위급 회의를 통해 조약이 서명되었다.
남극 조약은 남극에서의 과학 연구 자유와 대륙의 평화적 이용을 핵심 아이디어로 채택하였다. 또한, 비무장화와 현상 유지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남극에서의 핵실험, 군사 작전, 경제적 착취 및 영유권 주장을 금지한다. 현장 실사를 통해 감시가 이루어지며, 허용되는 유일한 영구 구조물은 과학 연구 기지이다.
미국, 소련, 영국, 뉴질랜드는 남극에 대한 국제적 관리를 유엔의 틀 내에 두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은 관찰자에 의한 조사의 필요성을, 영국은 물류 기능을 위한 군사 인력 사용을 제안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모든 원자 폭발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미국이 사전 통지나 협의 없는 폭발만 금지하려 했기 때문에 회의 마지막 날까지 위기를 초래했다. 소련과 칠레가 아르헨티나 제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반대를 철회했다.
이 조약의 서명은 냉전 시기에 이루어진 최초의 군비 통제 협정으로, 참여국들은 남극의 국제화를 피할 수 있었다. 2048년부터 조약 당사국은 상대적 다수의 승인을 얻어 조약 및 전체 규범 시스템의 개정을 요청할 수 있다.
=== 조약 발효 이후의 변화와 발전 ===
냉전이 남극 대륙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 기간 동안 남극에서 활동한 12개국을 소집하여 남극 회의를 열고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1958년 6월부터 1959년 10월까지 12개국 대표는 워싱턴에서 60차례 회의를 열어 기본 협상 틀을 정의했지만, 예비 초안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59년 10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최고 외교 수준의 회의가 열려 조약이 서명되었다.
남극 조약은 1959년 12개국에 의해 서명되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발효되었다. 핵심 내용은 남극에서의 과학 연구의 자유와 대륙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또한 비무장화와 현상 유지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남극에서의 핵실험, 군사 작전, 경제적 착취 및 영유권 주장을 금지하며, 현장 실사를 통해 감시된다. 허용되는 유일한 영구 구조물은 과학 연구 기지이다.
미국, 소련, 영국, 뉴질랜드는 남극에 대한 국제적 관리를 설립하고 유엔의 틀 내에 두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호주와 영국은 관찰자에 의한 조사의 필요성을, 영국은 물류 기능을 위한 군사 인력 사용을 제안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모든 원자 폭발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고,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사전 통지 없이,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진 폭발만 금지하려 했기 때문에 회의 마지막 날까지 위기가 지속되었다. 소련과 칠레가 아르헨티나 제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반대를 철회했다.
조약 서명은 냉전 시기에 이루어진 최초의 군비 통제 협정이었으며, 참여국들은 남극의 국제화를 피할 수 있었다.
1991~1992년, 이 조약은 33개국에 의해 재협상되었으며, 주요 변경 사항은 채굴 및 석유 탐사를 50년 동안 금지하는 환경 보호에 관한 마드리드 의정서였다.
2048년에는 조약의 협의 당사국 중 어느 국가든 상대적 다수의 승인을 얻어 조약 및 전체 규범 시스템의 개정을 요청할 수 있다.
2. 1. 초기 탐험과 영유권 분쟁 (20세기 초)
20세기 초, 여러 국가가 남극 탐험에 경쟁적으로 참여하며 각자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남극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고려하며 1946년부터 1947년 초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 원정대인 Operation Highjump을 남극에 파견했다.[5] 이 원정에는 13척의 함선, 4,700명의 병력, 다수의 항공 장비가 동원되었으며, 군사 훈련 및 극한 환경에서의 장비 시험을 목표로 했다.[5]1947년 미국이 관심을 가진 남극 구역(서경 24°에서 90° W 사이)은 미주 상호 원조 조약의 안전 지대에 포함되어 회원국들이 외부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1948년 미국은 남극을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프랑스, 미국, 영국, 뉴질랜드가 관리하는 유엔 신탁 통치 구역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지만,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프랑스, 노르웨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5] 같은 해 미국은 영유권 주장 국가들에게 남극의 국제화를 제안했고 영국이 지지했지만, 칠레가 제안한 영유권 주장 중단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0년, 미국은 소련을 남극 문제에서 배제하려 했으나, 소련이 자신들이 대표되지 않은 어떠한 남극 조약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 실패했다.[5] 소련의 영토 주장 가능성과 냉전의 남극 확산 우려로 인해 미국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5]
이러한 국제적 갈등은 오히려 남극에 대한 협정 체결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6] 제2차 세계 대전 중 발생한 사건들과 더불어, 1952년 호프만 만에서 아르헨티나 군대가 영국인 그룹에게 경고 사격을 가한 사건[7], 1953년 디셉션 섬에서 영국 해병대가 아르헨티나 해군을 체포하고 피난처를 파괴한 사건[9] 등은 긴장을 고조시켰다. 1949년 아르헨티나, 칠레, 영국은 남위 60도선 이남에 군함을 보내지 않기로 하는 3자 해군 선언에 서명하여[8] 1961년까지 매년 갱신했지만, 1948년 아르헨티나가 8척의 군함 함대를 남극에 파견하면서 긴장이 발생하기도 하였다[8].
1955년 영국은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여 영유권 주장의 무효를 선언하려 했으나, 두 국가가 법원의 관할권을 거부하면서 1956년 소송이 종결되었다.[10][11] 1956년과 1958년 인도는 남극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5]
2. 2. 국제 지구 관측년 (1957-1958)
1950년, 국제 과학 연합 협의회(ICSU)는 세 번째 국제 극지해 개최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세계 기상 기구의 제안에 따라 국제 극지해의 아이디어는 전 지구로 확대되어 1957년 7월 1일부터 1958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된 국제 지구 물리 관측년이 만들어졌다. 이 행사에는 66개국이 참여했다. 1957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스톡홀름에서 열린 ICSU 회의에서 남극 연구 특별 위원회(SCAR)의 창설이 승인되었고, 남극 조사를 수행하는 12개국에 위원회 통합을 위한 대표 파견을 요청하여 남극에 관한 과학 정보를 회원국 간에 교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SCAR는 후에 남극 연구 과학 위원회로 이름이 변경되었다.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국제 지구 물리 관측년 동안 대륙에서 수행된 연구가 참가자들에게 어떠한 영토적 권리도 부여하지 않으며, 그 해에 세워진 시설은 종료 시 해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958년 2월, 미국은 남극 조사를 1년 더 연장할 것을 제안했고, 소련은 수행 중인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과학 기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2. 3. 남극조약 체결 (1959)
1959년 12월 1일에 맺어져 1961년 6월 23일부터 효력을 발휘한 남극 조약은 1957년/1958년 국제지구관측의 해를 맞아 남극에서 활동중인 12개 나라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초청한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는 남아프리카 연방,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소비에트 연방,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가 참여하였다.냉전이 남극 대륙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 동안 남극에서 활동한 12개국을 소집하여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12개국 대표는 워싱턴 D.C.에서 만나 1958년 6월부터 1959년 10월까지 60차례 회의를 열어 기본 협상 틀을 정의했지만, 예비 초안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1959년 10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최고위급 회의를 통해 조약이 서명되었다.
남극 조약은 남극에서의 과학 연구 자유와 대륙의 평화적 이용을 핵심 아이디어로 채택하였다. 또한, 비무장화와 현상 유지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남극에서의 핵실험, 군사 작전, 경제적 착취 및 영유권 주장을 금지한다. 현장 실사를 통해 감시가 이루어지며, 허용되는 유일한 영구 구조물은 과학 연구 기지이다.
미국, 소련, 영국, 뉴질랜드는 남극에 대한 국제적 관리를 유엔의 틀 내에 두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은 관찰자에 의한 조사의 필요성을, 영국은 물류 기능을 위한 군사 인력 사용을 제안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모든 원자 폭발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미국이 사전 통지나 협의 없는 폭발만 금지하려 했기 때문에 회의 마지막 날까지 위기를 초래했다. 소련과 칠레가 아르헨티나 제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반대를 철회했다.
이 조약의 서명은 냉전 시기에 이루어진 최초의 군비 통제 협정으로, 참여국들은 남극의 국제화를 피할 수 있었다. 2048년부터 조약 당사국은 상대적 다수의 승인을 얻어 조약 및 전체 규범 시스템의 개정을 요청할 수 있다.
2. 4. 조약 발효 이후의 변화와 발전
냉전이 남극 대륙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지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국제 지구물리 관측년 기간 동안 남극에서 활동한 12개국을 소집하여 남극 회의를 열고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1958년 6월부터 1959년 10월까지 12개국 대표는 워싱턴에서 60차례 회의를 열어 기본 협상 틀을 정의했지만, 예비 초안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59년 10월 15일부터 12월 1일까지 최고 외교 수준의 회의가 열려 조약이 서명되었다.남극 조약은 1959년 12개국에 의해 서명되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발효되었다. 핵심 내용은 남극에서의 과학 연구의 자유와 대륙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또한 비무장화와 현상 유지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남극에서의 핵실험, 군사 작전, 경제적 착취 및 영유권 주장을 금지하며, 현장 실사를 통해 감시된다. 허용되는 유일한 영구 구조물은 과학 연구 기지이다.
미국, 소련, 영국, 뉴질랜드는 남극에 대한 국제적 관리를 설립하고 유엔의 틀 내에 두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호주와 영국은 관찰자에 의한 조사의 필요성을, 영국은 물류 기능을 위한 군사 인력 사용을 제안했다. 아르헨티나는 남극에서 모든 원자 폭발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고,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사전 통지 없이,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진 폭발만 금지하려 했기 때문에 회의 마지막 날까지 위기가 지속되었다. 소련과 칠레가 아르헨티나 제안을 지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반대를 철회했다.
조약 서명은 냉전 시기에 이루어진 최초의 군비 통제 협정이었으며, 참여국들은 남극의 국제화를 피할 수 있었다.
1991~1992년, 이 조약은 33개국에 의해 재협상되었으며, 주요 변경 사항은 채굴 및 석유 탐사를 50년 동안 금지하는 환경 보호에 관한 마드리드 의정서였다.
2048년에는 조약의 협의 당사국 중 어느 국가든 상대적 다수의 승인을 얻어 조약 및 전체 규범 시스템의 개정을 요청할 수 있다.
3. 주요 내용
남극조약의 주된 내용은 남극에 대해 어떠한 영유권도 항구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남극 지역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항과 남극 지역에 대한 평화적인 이용, 그리고 남극 지역에서 채굴되는 모든 자원을 연구용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조난 시에는 예외)이 들어가 있다.[54] 그러나, 영국(영국령 남극 지역), 프랑스(프랑스령 남부와 남극 지역), 뉴질랜드(뉴질랜드령 남극 지역), 노르웨이(퀸모드랜드),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 칠레(칠레령 남극 지역),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령 남극) 등 남극 조약의 자문 회원국 중에서 일부 국가들은 남극 지역의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대체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다.[54] 브라질도 남극 대륙의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남극 조약에 따른 국제 사회의 비판을 의식하여 공식적으로 이 주장을 확실시하지는 않았다.
남극은 기상 조건이 험난하여 사람의 정주가 어려웠고, 오랫동안 미지의 땅이었다. 1957년부터 1958년의 국제 지구 관측년에, 남극에서의 조사 연구에 국제 협력 체제를 구축했던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승계 국가의 현 러시아), 아르헨티나, 호주, 벨기에, 칠레, 뉴질랜드, 노르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12개국이, 남극의 평화적 목적 이용을 위해, 1959년12월 1일에 남극 조약을 채택했다.[54] 남극 대륙 (모든 빙붕을 포함한 남위 60도 이남의 지역)이 조약의 대상 지역이 되었다.
조약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남극 지역의 평화적 이용 (군사적 이용 금지)
- 과학적 조사의 자유와 국제 협력
- 남극 지역에서의 영토 주권, 청구권 동결
- 핵폭발, 방사성 폐기물 처분 금지
- 조약 준수를 확보하기 위한 감시원 설치
- 남극 지역에 관한 공통의 이해 관계가 있는 사항에 대한 협의 실시
- 조약의 원칙 및 목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입안하는 회의 개최
그 전까지, '''남극 영유권'''에 대해서는, 1908년에 영국이 남위 50도 이남, 서경 20도에서 80도에 이르는 범위의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한 것을 계기로, 다른 국가도 남극의 일정 구역 지역의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었다. 국제법상 국가 영역 취득 근거로서는 선점 ()이 있지만, 남극은 그 기상 등으로 인해 실효적 지배가 어려워 선점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선점이 없어도 일정 범위 내에서 영역의 취득을 인정한다는 섹터주의가 주장되었다. 섹터주의에 반대하는 국가도 많았고, 국제법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었지만, 과학 기술의 진보로 실효적 지배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본 조약의 '''제4조'''에서 영유권 주장은, 조약 체결국의 신규 또는 확장의 주장은 금지되지만, 동시에 '''영유권 주장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어, 각국의 주장은 '''동결''' 상태가 되었다.
일본을 비롯한 조약 체결국의 대다수는 불승인했으나, 해당 면적이 넓은 순서대로 호주, 노르웨이,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의 5개국은, 조약 발효 이전부터 각각이 주장하는 지역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한 후 서로 '''영유권을 승인'''하고 있다.
또한, 남극이 오로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일체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동시에, 그 실시를 확보하기 위해 지상 및 공중의 자유로운 사찰 제도를 두었다. 평화적 이용에서는 장래, 국제 협정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모든 핵폭발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금지하고 있다. 이 평화 이용을 위한 핵폭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마지막까지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일본의 알선으로 장래 일반 협정이 생기면 남극에도 적용하지만, 그때까지 일체 금지한다는 선에서 합의되었다.[54]
남극에서 과학 관측을 하고 있는 국가는 남극 조약 협의국 회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정보 교환 및 다양한 조약을 포함하여 남극에 관한 각종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51] 또한, 남극의 자연 보호에 관한 추가적인 조약도 체결되어 왔으며, 1972년에는 [55], 1980년에는 [56], 1991년에는 [57] 등이 채택되었다.[51][53] 2004년 9월 1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극 조약 사무국(ATS)이 설치되었다.[58]
3. 1. 남극의 평화적 이용
남극조약은 남극 지역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고, 남극 지역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며, 채굴되는 모든 자원을 연구용으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영국령 남극 지역), 프랑스(프랑스령 남부와 남극 지역), 뉴질랜드(뉴질랜드령 남극 지역), 노르웨이(퀸모드랜드),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 칠레(칠레령 남극 지역),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령 남극) 등 일부 국가는 남극 지역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1959년12월 1일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승계 국가는 러시아) 등 12개국이 남극의 평화적 목적 이용을 위해 남극 조약을 채택했다.[54] 조약의 대상 지역은 남극 대륙(빙붕을 포함한 남위 60도 이남의 지역)이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08년 영국이 남극 영유권을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들이 남극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국제법상 선점()에 의한 영역 취득은 실효적 지배가 어려워 적용이 어렵다는 섹터주의가 주장되었으나, 국제법으로 확립되지는 않았다. 남극 조약 '''제4조'''는 영유권 주장을 동결했지만, '''영유권 주장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호주, 노르웨이,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5개국은 서로의 영유권을 승인하고 있다.
남극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되어야 하며, 군사적 이용은 금지된다. 핵폭발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도 금지된다. 평화 이용을 위한 핵폭발은 논쟁이 있었으나, 일본의 알선으로 일반 협정이 생기면 남극에도 적용하되 그때까지는 금지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54]
3. 2. 과학 연구의 자유와 국제 협력
남극 조약은 과학 연구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제 협력을 장려한다.[54] 조약은 남극에서의 과학적 조사의 자유와 국제 협력을 명시하며, 조약 준수를 위한 감시원 설치 및 남극 관련 사항에 대한 협의 실시를 규정한다.[54]1957년부터 1958년의 국제 지구 관측년에 남극 연구에 대한 국제 협력 체제가 구축되었고, 1959년 12월 1일에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2개국이 남극 조약을 채택하여 과학적 조사의 자유와 국제 협력을 명문화했다.[54]
남극에서 과학 관측을 수행하는 국가는 남극 조약 협의국 회의에 참여하여 정보 교환 및 남극 관련 협의를 진행한다.[51] 또한, 남극의 자연 보호를 위한 추가적인 조약도 체결되었는데, 1972년에는 남극 물범 보존에 관한 협약[55], 1980년에는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 협약[56], 1991년에는 남극 조약에 대한 환경 보호 의정서[57] 등이 채택되었다.[51][53] 2004년 9월 1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극 조약 사무국(ATS)이 설치되었다.[58]
3. 3. 영유권 주장 동결
남극 조약의 주된 내용은 남극에 대해 어떠한 영유권도 항구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54] 조약은 기존의 영유권 주장을 동결하고 새로운 주장을 금지한다. 그러나 영국(영국령 남극 지역), 프랑스(프랑스령 남부와 남극 지역), 뉴질랜드(뉴질랜드령 남극 지역), 노르웨이(퀸모드랜드),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 칠레(칠레령 남극 지역),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령 남극) 등 일부 국가는 남극 지역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54] 이들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은 대체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브라질도 남극 대륙의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남극 조약에 따른 국제 사회의 비판을 의식하여 공식적으로 이 주장을 확실시하지는 않았다.1957년부터 1958년의 국제 지구 관측년에 남극에서의 조사 연구에 국제 협력 체제를 구축했던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승계 국가의 현 러시아) 등 12개국은 1959년 12월 1일 남극의 평화적 목적 이용을 위해 남극 조약을 채택했다.[54] 남극 대륙 (모든 빙붕을 포함한 남위 60도 이남의 지역)이 조약의 대상 지역이 되었다.
1908년 영국이 남극 영유권을 주장한 것을 계기로, 다른 국가들도 남극의 일정 구역 지역의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었다. 국제법상 국가 영역 취득 근거로 선점 ()이 있지만, 남극은 실효적 지배가 어려워 선점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섹터주의가 주장되었다. 섹터주의에 반대하는 국가도 많았고, 국제법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었지만, 과학 기술의 진보로 실효적 지배의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남극 조약 '''제4조'''는 영유권 주장을 동결했지만, 동시에 '''영유권 주장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54]
일본을 비롯한 조약 체결국의 대다수는 영유권 주장을 불승인했으나, 호주, 노르웨이, 영국, 뉴질랜드, 프랑스 5개국은 서로 '''영유권을 승인'''하고 있다.
남극 조약은 남극에서 과학 관측을 하고 있는 국가가 남극 조약 협의국 회의에 참여하여 정보 교환 및 각종 협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51]
3. 4. 환경 보호
남극은 혹독한 기상 조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미지의 땅이었으나, 1957년부터 1958년까지의 국제 지구 관측년을 계기로 일본, 미국, 영국 등 12개국이 1959년 12월 1일에 남극 조약을 채택하여 남극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 연구를 위한 국제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54] 이 조약은 남극 지역에서의 핵폭발 및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금지하고, 조약 준수를 위한 감시원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54]남극의 자연 보호를 위한 추가적인 조약들도 체결되었는데, 1972년에는 남극 물범 보존 협약(1980년에는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 협약)이 채택되었다.[55][56] 1991년에는 남극 환경 보호 의정서가 채택되었다.[57][51][53] 2004년 9월 1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극 조약 사무국(ATS)이 설치되었다.[58]
4. 관련 협정
남극 조약 체제와 관련하여 환경 보존에 관한 여러 협정이 추가로 맺어졌다.[17] 남극 동식물 보존을 위한 합의된 조치(1964년)(1982년 발효), 남극 물개 보존 협약(1972년),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 협약(1982년) 등이 조약 협의 회의에서 채택되어 정부에서 비준한 약 200개의 권고 사항에 포함된다.[17] 남극 광물 자원 활동 규제 협약(1988년)은 1988년에 서명되었으나 발효되지 않았다.[17]
남극 조약 환경 보호에 관한 의정서는 1991년 10월 4일에 서명되었으며 1998년 1월 14일에 발효되었다.[17] 이 협정은 개발을 방지하고 해양 오염, 동식물, 환경 영향 평가, 폐기물 관리, 보호 구역에 관한 5개의 특정 부속서를 통해 남극 환경 보호를 규정하며, 과학적 활동을 제외한 모든 광물 자원 관련 활동을 금지한다. 환경 비상사태로 인한 책임에 관한 여섯 번째 부속서는 2005년에 채택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17]
4. 1. 남극 해양 생물 자원 보존 협약 (CCAMLR)
4. 2. 남극 물개 보존 협약
4. 3. 환경 보호에 관한 마드리드 의정서
남극 환경 보호를 위한 포괄적인 규제 체제가 추가로 맺어졌다.5. 회원국
매년 "남극 조약 자문 회의"를 통해 남극 지역의 운영과 관리를 논의하고 있다. 남극 조약 가입 58개 나라 중 29개 나라가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자문 회원국이라고 하며, 처음 조약을 가입한 12개 나라 이외에 남극에서 과학 활동을 벌이고 있는 17개 나라를 포함한다. 이 추가 회원국은 네덜란드·대한민국·독일·불가리아·브라질·스웨덴·스페인·에콰도르·우루과이·우크라이나·이탈리아·인도·중화인민공화국·체코·페루·폴란드·핀란드이다.[23][24]
나머지 비자문 회원국은 과테말라·그리스·덴마크·루마니아·말레이시아·모나코·몽골·베네수엘라·벨라루스·스위스·슬로바키아·아이슬란드·에스토니아·오스트리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카자흐스탄·캐나다·콜롬비아·쿠바·튀르키예·파키스탄·파푸아뉴기니·포르투갈·헝가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산마리노, 슬로베니아이다.[23][24]
2024년 현재, 이 조약에는 58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으며, 이 중 조약의 12개 원본 서명국을 포함한 29개국이 협의(투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협의 회원국에는 남극의 일부를 영유권으로 주장하는 7개국이 포함된다. 비영유권 국가 51개국은 다른 국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극 조약의 당사국 42개국은 또한 "남극 조약에 대한 환경 보호 의정서"를 비준했다.[25]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15d7d3fd_fc1684b0.svg|432px|right|thumb|
남극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는 협의 지위 당사국 (주황색)
영유권 주장을 할 권리를 유보한 협의 지위 당사국 (노란색)[26]
협의 지위가 있는 다른 당사국 (파란색)
협의 지위가 없는 당사국 (초록색)
비당사국 UN 회원국 및 옵서버 (빨간색)]]
국가[23][24][27][28] | 서명 | 비준/ 가입 | 협의 지위[24][28] | 비고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1년 6월 23일 | 1961년 6월 23일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1년 6월 23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1987년 8월 25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06년 12월 27일 | 아니요 |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7월 26일 | 1961년 6월 23일 | ||
(비공식 영유권 주장) | 아니요 | 1975년 5월 16일 | 1983년 9월 27일 | |
아니요 | 1978년 9월 11일 | 1998년 6월 5일 | ||
아니요 | 1988년 5월 4일 | 아니요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1년 6월 23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1983년 6월 8일 | 1985년 10월 7일 | ||
아니요 | 1989년 1월 31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22년 8월 11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84년 8월 16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93년 1월 1일 | 2014년 4월 1일 | 1962년 6월 14일 가입한 로부터의 승계.[29] | |
아니요 | 1965년 5월 20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87년 9월 15일 | 1990년 11월 19일 | ||
아니요 | 2001년 5월 17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84년 5월 15일 | 1989년 10월 20일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9월 16일 | 1961년 6월 23일 | |
(역사적 영유권 주장) | 아니요 | 1979년 2월 5일 | 1981년 3월 3일 | 으로 비준. |
아니요 | 1987년 1월 8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91년 7월 31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84년 1월 27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15년 10월 13일[31] | 아니요 | ||
아니요 | 1983년 8월 19일 | 1983년 9월 12일 | ||
아니요 | 1981년 3월 18일 | 1987년 10월 5일 | ||
(역사적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8월 4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2015년 1월 27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11년 10월 31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08년 5월 31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15년 3월 23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67년 3월 30일 | 1990년 11월 19일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11월 1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1987년 1월 21일 | 아니요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8월 24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2012년 3월 1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81년 3월 16일 | 아니요 | 로부터의 승계. 1975년 9월 16일 독립 이후 발효.[32] | |
아니요 | 1981년 4월 10일 | 1989년 10월 9일 | ||
아니요 | 1961년 6월 8일 | 1977년 7월 29일 | ||
아니요 | 2010년 1월 29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71년 9월 15일 | 아니요 | ||
†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11월 2일 | 1961년 6월 23일 | 으로 비준.[33] |
[34] | 아니요 | 2023년 2월 14일 | 아니요 | |
아니요 | 2024년 5월 22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93년 1월 1일 | 아니요 | 1962년 6월 14일 가입한 로부터의 승계.[35] | |
아니요 | 2019년 4월 22일 | 아니요 | ||
[36]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6월 21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1986년 11월 28일 | 1989년 10월 9일 | ||
아니요 | 1982년 3월 31일 | 1988년 9월 21일 | ||
아니요 | 1984년 4월 24일 | 1988년 9월 21일 | ||
아니요 | 1990년 11월 15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96년 1월 24일 | 아니요 | ||
아니요 | 1992년 10월 28일 | 2004년 6월 4일 | ||
아니요 | 2024년 12월 11일 | 아니요 | ||
(영유권 주장)*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5월 31일 | 1961년 6월 23일 | |
† | 1959년 12월 1일 | 1960년 8월 18일 | 1961년 6월 23일 | |
아니요 | 1980년 1월 11일 | 1985년 10월 7일 | ||
아니요 | 1999년 5월 24일 | 아니요 |
* 다른 하나 또는 두 개의 청구국과 중복되는 청구.† 청구할 권리를 유보했다.[26]
[[File:Antarctic Treaty.png|300px|thumb|
서명, 협의국, 영유권 주장 (진한 갈색)
서명, 협의국, 영유권 주장 유보 (주황색)
서명, 협의국 (초록색)
서명 (노란색)
미서명 (회색)
(2023년 1월 현재)]]
5. 1.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 (29개국)
남극 조약 협의 당사국은 매년 "남극 조약 자문 회의"를 통해 남극 지역의 운영과 관리를 논의한다.[59] 이 회의에는 남극 조약 가입 58개국 중 29개국이 참여할 수 있으며, 이들을 협의 당사국이라고 한다.[23][24] 협의 당사국은 남극 조약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가지며, 최초 조약 가입국 12개국과 남극에서 과학 활동을 벌이고 있는 17개국을 포함한다.[59]협의 당사국 중에는 남극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는 7개국(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프랑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영국)이 포함되어 있다.[24] 미국과 러시아는 영유권 주장을 할 권리를 유보하고 있으며,[26] 나머지 국가들은 다른 국가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1986년 남극 조약에 가입했고, 1989년에 협의 당사국 지위를 획득했다.[24] 세종 과학기지와 장보고 과학기지를 건설하여 남극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9개 협의 당사국에는 다음 국가들이 포함된다: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15d7d3fd_fc1684b0.svg|432px|right|thumb|[26]
]]
국가 | 협의 당사국 지위 획득 연도 |
---|---|
아르헨티나 | 1961년 |
오스트레일리아 | 1961년 |
벨기에 | 1961년 |
칠레 | 1961년 |
프랑스 | 1961년 |
일본 | 1961년 |
뉴질랜드 | 1961년 |
노르웨이 | 1961년 |
남아프리카 공화국 | 1961년 |
러시아 | 1961년 |
영국 | 1961년 |
미국 | 1961년 |
폴란드 | 1977년 |
독일 | 1981년 |
이탈리아 | 1987년 |
인도 | 1983년 |
브라질 | 1983년 |
중화인민공화국 | 1985년 |
우루과이 | 1985년 |
스페인 | 1988년 |
스웨덴 | 1988년 |
대한민국 | 1989년 |
페루 | 1989년 |
핀란드 | 1989년 |
네덜란드 | 1990년 |
에콰도르 | 1990년 |
불가리아 | 1998년 |
우크라이나 | 2004년 |
체코 | 2014년 |
[[File:Antarctic Treaty.png|300px|thumb|
지도 2023년 1월 현재]]
남극 조약에는 빈도는 낮지만,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되는 특별 남극 조약 협의회(SATCM)와 전문가 회의도 있다.[60]
5. 2. 기타 조약 체약국 (27개국)
2024년 현재 58개국이 남극 조약에 가입되어 있으며,[23] 이 중 29개국은 협의 당사국 지위를 가지고 있다.[24] 협의 당사국 외에 조약에 가입한 국가는 다음과 같다.[61][[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515d7d3fd_fc1684b0.svg|432px|right|thumb|[26]
]]
- 과테말라 (1991)
- 그리스 (1987)
- 덴마크 (1965)
- 루마니아 (1971)
- 말레이시아 (2011)
- 모나코 (2008)
- 몽골 (2015)
- 베네수엘라 (1999)
- 벨라루스 (2006)
- 산마리노 (2023)
- 스위스 (1990)
- 슬로바키아 (1993)
- 슬로베니아 (2019)
- 아이슬란드 (2015)
- 에스토니아 (2001)
- 오스트리아 (1987)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87)
- 카자흐스탄 (2015)
- 캐나다 (1988)
- 코스타리카 (2022)
- 콜롬비아 (1989)
- 쿠바 (1984)
- 튀르키예 (1995)
- 파키스탄 (2012)
- 파푸아뉴기니 (1981)
- 포르투갈 (2010)
- 헝가리 (1984)
- 사우디아라비아 (2024)
- 아랍에미리트 (2024)
위 국가들은 협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남극 조약 체약국으로서 조약의 적용을 받는다.
6. 남극조약 사무국 (ATS)
'''남극 조약 사무국'''(Antarctic Treaty Secretariat, ATS)은 2004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극 조약 협의 당사국 회의(ATCM)에 의해 설립되었다.[59] 초대 사무총장은 네덜란드의 얀 후버(Jan Huber)로, 2009년 8월 31일까지 5년간 재임했다. 2009년 9월 1일 독일의 만프레드 륀케(Manfred Reinke)가 후임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우루과이의 알베르트 루베라스(Albert Lluberas)가 2017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0차 남극 조약 협의 당사국 회의에서 선출되었다.[59]
남극 조약 사무국의 주요 업무는 다음과 같다.[59]
- 연례 남극 조약 협의 당사국 회의(ATCM) 및 환경 보호 위원회(CEP) 회의 지원.
- 조약 및 환경 의정서에 필요한 당사국 간의 정보 교환 촉진.
- ATCM 문서 수집, 보관, 정리 및 출판.
- 남극 조약 시스템 및 남극 활동에 대한 공공 정보 제공 및 배포.
남극 조약 협의국 회의(ATCM)는 남극 조약 사무국(ATS)이 매년 개최하는 남극의 관리 및 운영을 위한 국제 회의이다.[59] 이 회의에는 54개 조약 체결국 중 29개국만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가지지만, 나머지 25개국도 참여할 수 있다.[59] 29개 의사 결정 참여국에는 최초 서명국 12개국 외에 남극에서 과학 활동을 하는 데 관심을 보인 17개국이 포함된다.[59] 남극 조약에는 빈도는 낮지만, 더 중요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되는 특별 남극 조약 협의회(SATCM)와 전문가 회의도 있다.[60]
7. 한국과 남극조약 체제
7. 1. 가입 배경과 과정
7. 2. 남극 연구 활동
7. 3. 국제 협력
7. 4. 미래 전망과 과제
참조
[1]
서적
"Antarctic Treaty" in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1992
[2]
웹사이트
ATS –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
http://www.ats.aq/in[...]
2010-02-10
[3]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https://treaties.uno[...]
United Nations
2018-03-28
[4]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https://www.state.go[...]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2022-09-11
[5]
서적
Antarctic Treaty System: An Assessment: Proceedings of a Workshop Held at Beardmore South Field Camp, Antarctica, 7–13 January 1985
National Academy Press
1986
[6]
서적
Antarctic Treaty System: An Assessment: Proceedings of a Workshop Held at Beardmore South Field Camp, Antarctica, 7–13 January 1985
National Academy Press
[7]
웹사이트
Falkland Islands Dependencies (Hope Bay Incident)
https://api.parliame[...]
1952-02-20
[8]
서적
Digest of International Law, Volume 2
U.S. Department of State
[9]
웹사이트
Historia y Arqueología Marítima. Churchill envió una fragata para repeler la "invasión" de las Malvinas por dos soldados Argentinos en 1953.
http://www.histarmar[...]
[10]
웹사이트
Antarctica (United Kingdom v. Argentina)
https://www.icj-cij.[...]
[11]
웹사이트
Antarctica (United Kingdom v. Chile))
https://www.icj-cij.[...]
[12]
간행물
An international hierarchy of science: Conquest, cooperation, and the 1959 Antarctic Treaty System
2021
[13]
웹사이트
La Antártica después del año 2048
https://www.elmostra[...]
El Mostrador
2022-01-20
[14]
웹사이트
La Antártica es urgente
https://revistamarin[...]
Revista Marina
2021-07-24
[15]
웹사이트
Por qué es importante la Antártida para Uruguay con miras al 2048
https://www.elobserv[...]
El Observador
2021-01-21
[16]
웹사이트
In 30 years the Antarctic Treaty becomes modifiable, and the fate of a continent could hang in the balance
https://theconversat[...]
The Conversation
2018-07-12
[17]
웹사이트
Convention on the Conservation of Antarctic Marine Living Resources – CCAMLR
http://www.ccamlr.or[...]
[18]
문서
Exchange of Notes constituting an Agreement between the Governments of Australia, New Zealand and the United Kingdom of the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the Government of the French Republic, regarding Aerial Navigation in the Antarctic (Paris, 25 October 1938). ATS 13 of 1938.
http://www.austlii.e[...]
[19]
문서
Treaty between the Government of Australia and the Government of the French Republic on cooperation in the maritime areas adjacent to the French Southern and Antarctic Territories (TAAF), Heard Island and the McDonald Islands (Canberra, 24 November 2003) – ATS 6 of 2005”
http://www.austlii.e[...]
[20]
문서
Agreement on Cooperative Enforcement of Fisheries Laws between the Government of Australia and the Government of the French Republic in the Maritime Areas Adjacent to the French Southern and Antarctic Territories, Heard Island and the McDonald Islands (Paris, 8 January 2007) – ATS 1 of 2011”
http://www.austlii.e[...]
[21]
웹사이트
Welcome to the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 Website
https://www.ats.aq/
[22]
웹사이트
List of Meetings
https://www.ats.aq/d[...]
2020-01-13
[23]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https://www.state.go[...]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2022-09-11
[24]
웹사이트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 Parties
https://www.ats.aq/d[...]
2022-09-11
[25]
웹사이트
Protocol on Environmental Protection to the Antarctic Treaty
https://www.state.go[...]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2019-06-30
[26]
웹사이트
Antarctic Region
https://www.state.go[...]
2024-08-16
[27]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2
[28]
웹사이트
The Antarctic Treaty System: Introduction
https://2009-2017.st[...]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2014-03-12
[29]
웹사이트
Czech Republic: Succession to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2
[30]
웹사이트
Germany: Accession to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3
[31]
간행물
Iceland's Accession to the Antarctic Treaty
2018-12-08
[32]
웹사이트
Papua New Guinea: Succession to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3
[33]
웹사이트
Russian Federation: Ratification of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3
[34]
웹사이트
San Marino accedes to the Antarctic Treaty
https://www.ats.aq/d[...]
2023-04-28
[35]
웹사이트
Slovakia: Succession to Antarctic Treaty
http://disarmament.u[...]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rmament Affairs
2014-03-13
[36]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System (ATS)
http://www.dfa.gov.z[...]
Depart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and Cooperation
2010-10-05
[37]
논문
The Ownership of Antarctica, Its Living and Mineral Resources
[38]
웹사이트
Dronning Maud Land
http://www.npolar.no[...]
Norwegian Polar Institute
2015-09-22
[39]
뉴스
Norge utvider Dronning Maud Land helt frem til Sydpolen
http://www.aftenpost[...]
2015-09-21
[40]
논문
The Common Heritage of Mankind Principle and the Deep Seabed, Outer Space, and Antarctica: Will Developed and Developing Nations Reach a Compromise?
[41]
웹사이트
Australian Antarctic Division – Australian environmental law and guidelines
http://www.aad.gov.a[...]
2007-08-03
[42]
웹사이트
U.S. Marshals Service
http://www.usmarshal[...]
2006-01-11
[43]
뉴스
South Pole death file still open
http://www.stuff.co.[...]
2006-12-17
[44]
뉴스
Death of Australian astrophysicist an Antarctic whodunnit
http://news.monsters[...]
Deutsche Presse-Agentur
2006-12-14
[45]
뉴스
New Zealand Probes What May Be First South Pole Murder
https://web.archive.[...]
2006-12-14
[46]
뉴스
South Pole scientist may have been poisoned
http://www.nzherald.[...]
2006-12-14
[47]
뉴스
South Pole Death Mystery – Who killed Rodney Marks?
http://www.stuff.co.[...]
2007-01-21
[48]
법률
Section 2 of the South African Citizens in Antarctica Act, No. 55 of 1962, as amended by the Environmental Laws Rationalisation Act, No. 51 of 1997.
[49]
법률
Antarctic Treaties Act, No. 60 of 1996.
[50]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https://www.state.go[...]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2019-04-22
[51]
웹사이트
南極条約・環境保護に関する南極条約議定書
https://www.mofa.go.[...]
2016-03-17
[52]
웹사이트
外務省: わかる!国際情勢 Vol.31 南極をめぐる課題と南極条約
https://www.mofa.go.[...]
2009-03-25
[53]
웹사이트
南極条約体制(Antarctic Treaty System)
https://www.nipr.ac.[...]
null
[54]
간행물
1959年(昭和34年)12月21日官報第9900号付録資料版14ページ「南極条約」
[55]
법률
南極のあざらしの保存に関する条約
[56]
법률
南極の海洋生物資源の保存に関する条約
[57]
법률
環境保護に関する南極条約議定書
[58]
웹사이트
About us
https://www.ats.aq/e[...]
The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南極条約事務局)
null
[59]
웹사이트
Welcome to the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 Website
http://www.ats.aq/
2021-06-23
[60]
웹사이트
List of Meetings
https://www.ats.aq/d[...]
2020-01-13
[61]
웹사이트
Antarctic Treaty > Parties
https://www.ats.aq/d[...]
The Secretariat of the Antarctic Treaty(南極条約事務局)
2017-11-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