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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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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시스 퐁주는 1899년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사회당에 입당했다. 1923년 장 폴랑과의 만남을 통해 문학에 대한 방향을 정립하고, 갈리마르 출판사 등에서 일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퐁주는 초현실주의 운동과 잠시 연관되었으나, 고전주의적 합리성을 중시하며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으며, 전후에는 언론인과 교수로 활동하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며,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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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퐁주
기본 정보
이름프랜시스 퐁주
출생일1899년 3월 27일
출생지프랑스, 몽펠리에 (옥시타니 지역, 에로 데파르트망)
사망일1988년 8월 6일
사망지프랑스, 르 바르쉬르루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역, 알프마리팀 데파르트망)
직업시인, 평론가
언어프랑스어
모교소르본 대학교
장르시, 평론
영향호라티우스
루크레티우스

장 드 라 퐁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장필리프 라모
장 시메옹 샤르댕
스테판 말라르메
아르튀르 랭보
알베르 루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장 폴랑
영향을 받은 인물누보 로망
필리프 솔레르스
아베 고보
다니카와 슌타로
주요 작품
프로엠 (프레임)
표현의 불꽃
수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

2. 생애

프랑시스 퐁주는 1899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철학과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 20세 무렵부터 시를 발표하고 1926년 첫 시집을 냈지만,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30년대에 퐁주는 글쓰기 외에도 출판사 노조 활동, 좌파 시위 참여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초현실주의 제2차 선언문에 서명하고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현실 개혁 운동의 한계와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1940년대에 이들과 결별한다.

퐁주는 갈리마르 출판사아셰트에서 일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전에는 보험 판매원으로도 일했다. 초기 시는 1923년에 출판되었고, ''누벨르 르뷔 프랑세즈''에 기고하며 문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편집장 장 폴랑은 퐁주의 멘토가 되어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고, 언론인 전국위원회(1942~1944년)와 공산주의 주간지 ''라크시옹''의 문학 및 예술 감독(1944~1946년)으로 활동했다. 1947년 공산당을 탈당했고, 1952년부터 1965년까지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66년과 1967년에는 미국 버나드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를 지냈다.

퐁주가 작가로서 주목받은 것은 《사물의 편》(1942)을 읽은 장 폴 사르트르가 〈인간과 사물〉(1944)이라는 평론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퐁주는 평범한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사물의 편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글쓰기로 프랑스 시 문학에 한 획을 그었다. 필립 솔레르스,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탈구조주의 사상가들과 앙리 말디네 등 다양한 문인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주목했으며, 1960년대 문학계를 이끈 《텔 켈》 그룹은 퐁주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만년의 퐁주는 은둔 생활을 하며 시골집에서 지내다 1988년 르 바르 쉬르 루에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1974), 프랑스 학사원 프랑스 국립 시상(1981), 문인 협회 그랑프리(1985) 등을 수상했으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1983) 훈장을 받았다.[1][2]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899년 ~ 1919년)

프랑시스 퐁주는 1899년 3월 27일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의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1] 소르본 대학교와 법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1] 1918년부터 1919년까지 프랑스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1919년에는 사회당에 입당했다.[3]

2. 2. 제1차 세계 대전과 정치 참여 (1914년 ~ 1922년)

1914년 15세 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이를 계기로 퐁주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1916년 법학 바칼로레아를 취득한 후, 고등사범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파리로 나가 리세 루이 르 그랑에 입학했다. 이 주재하는 시지(詩誌) 『프레스킬(반도)』에 처음으로 소네트(14행시)가 게재되었다. "증오를 품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시로, 그의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 특히 국민의 단결이라는 당시의 이념에 따른 호전적인 애국심에 대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10]

이듬해 1917년 소르본 대학교의 법학·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시험에 두 번 실패했다.[9] 11월 철학 학사 취득을 위한 시험에서 필기 시험에는 합격했으나 구두 시험에서 "정신 생활에서 공리주의적인 동기가 담당하는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퐁주는 도덕·정신에 관한 자신의 답변이 외부 기준에 따라 평가받고, 솔직한 마음에 반하는 답변을 해야 한다는 모순에 직면해 말을 할 수 없었다.[10] 1918년 3월 고등사범학교 시험에서도 필기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구두 시험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낙제했다. 퐁주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말을 잇는 것"을 할 수 없어 깊은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꼈다고 썼다.[10]

1916년 사촌 마르크 소렐이 전사한 것을 계기로, 퐁주는 학업을 중단하고 지원병으로 참전하려 했지만, 급성 충수염으로 단념해야 했다. 1918년 4월 팔레즈(칼바도스주)의 보병 연대에 입대했다. 그러나 전선에서 역사적 사건에 직접 참여하면서 기존 신념이 무너져 갔다. 1919년 겨울, 디프테리아에 걸려 샹티이의 전시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쓴 "우리 온실의 산책"에서 "도와주세요! 더 이상 춤을 출 방법도, 몸짓의 비밀도 알지 못하고, 동작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을 할 용기도 지혜도 없는 인간을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하며, 시가 더 이상 정치 참여의 수단이 아닌, 표현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퐁주는 군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복종과 "순치"에 반발했고, 망트라졸리 주둔지에서 무허가 외출로 규율을 위반하여 종전 시 신병이 구속되기도 했다.[10]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스트라스부르의 징집 학생 센터에서 지냈고, 1919년 프랑스 사회당(SFIO)에 입당했다. 같은 해 말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징병 유예를 받아 파리로 돌아왔다. 1922년 , 와 문예지 『무통 블랑(백양)』을 창간했다. 1922년에 정식으로 병역이 해제되었다.

2. 3. 문학 활동과 초현실주의 (1923년 ~ 1940년대)

1923년, 퐁주는 아버지 아르망의 죽음과 장 폴랑과의 만남이라는 두 가지 큰 전환점을 맞는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져 내렸고, 퐁주 역시 전쟁 체험으로 인해 실어증에 빠질 정도의 언어 불신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14] 이러한 시기에 퐁주에게 큰 정신적 위기가 닥치는데,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다.[10] 이때 자크 리비에르의 뒤를 이어 30년간 『누벨르 레뷔 프랑세즈』지의 편집장을 맡아 프랑스 문단을 이끈 장 폴랑을 만나면서, 퐁주는 문학에 대한 방향을 명확하게 결정짓게 된다.[9]

퐁주는 기존의 가치관, 관념, 시의 전통에서의 관념론, 주관성, 인간 중심주의를 배제하고 새로운 언어의 창조, 침묵으로부터의 출발을 목표로 했다. 퐁주가 발견한 것은 바로 사물(오브제)이었으며, 오브제를 묵묵히 응시함으로써 가능한 한 오브제 그 자체,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다가가려 했다. 즉, 언어 표현에 있어서 인간 중심에서 사물로 향하는 방향 결정 (''parti pris'') , "사물의 편"을 드는 것, 사물에 가담하는 것 (''parti pris des choses'') 이다. 퐁주는 이를 "사물들의 다양성이야말로 나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가 침묵 그 자체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나는 사물들에 둘러싸인 공허한 장소와 같다"라고 표현했다.[15]

1926년에 발표한 『12개의 소품』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29년 오데트 샤바넬과 만나 1931년에 결혼한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셰트 출판사의 창립자 루이 아셰트가 창설한 간행물 운송 회사 "아셰트 운수"에 취직했다(1937년 해고). 그 외에도 임시직을 겸하며 생활의 어려움, 사회적 현실의 엄격함에 직면했고, 1935년에 딸 아르망드가 태어나자, 이듬해 1936년에 노동총동맹에 가입하여 노동 운동에 참여했고, 그 다음 해인 1937년에는 공산당에 입당(1947년 탈당)했다.[9][16]

퐁주는 1926년 말부터 이듬해 1927년에 걸쳐 공산당에 입당하여 문학·예술의 혁명인 초현실주의를 사회 혁명으로 연결하려 했던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자들을 만났고, 이 운동에 가까워졌다. 문학의 전통과 결별하고 무의식, 꿈, 우연, 부조리에 새로운 표현을 찾으려 했던 초현실주의는, 기존의 언어 습관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언어의 창조를 목표로 하는 퐁주의 탐구와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퐁주는 1930년에 창간된 『Le Surréalisme au service de la révolution|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프랑스어』 창간호에 기고했다.[19] 하지만, 퐁주는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하는 초현실주의의 "운동"과는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고, 자동 기술이나 수면 실험 등의 활동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주관이나 감정, 인간 중심주의를 배제한 퐁주의 초현실주의는, 오히려 살바도르 달리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적인 오브제의 묘사였다.

2. 4. 제2차 세계 대전과 레지스탕스 활동 (194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퐁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1] 그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언론인 전국위원회에서 일했으며, 1944년부터 1946년까지 공산주의 주간지 ''라크시옹''의 문학 및 예술 감독으로 활동했다.[1] 1930년대에 퐁주는 잠시 초현실주의 운동과 연관되었으며, 그 영향을 받아 1937년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1947년에 탈당했다.[3][5]

1929년 오데트 샤바넬과 결혼한 퐁주는 1931년부터 1937년까지 루이 아셰트가 창설한 간행물 운송 회사 "아셰트 운수"에서 일했다. 그 외에도 임시직을 겸하며 생활고와 사회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1935년 딸 아르망드가 태어난 후, 1936년 노동총동맹에 가입하여 노동 운동에 참여했고, 1937년에는 노동총동맹 대표를 맡았다. 같은 해 사회당 최좌파에 의해 1921년 결성된 공산당에 입당했고, 1938년부터는 보험 회사에 근무했다.[9][16]

1926년 말부터 1927년 초, 퐁주는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앙드레 브르통, 뱅자맹 페레 등 초현실주의자들을 만나며 이 운동에 가까워졌다. 이는 문학 전통과 결별하고 무의식, , 우연, 부조리에서 새로운 표현을 찾으려 했던 초현실주의가 기존 언어 습관에 저항하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려는 퐁주의 탐구와 같은 방향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퐁주는 1924년 창간된 문예지 『초현실주의 혁명』[17]의 후속지로서 1930년에 창간된 『Le Surréalisme au service de la révolution|혁명에 봉사하는 초현실주의프랑스어[18] 창간호에 기고했다.[19] 그러나 퐁주는 브르통 중심의 초현실주의 "운동"과는 거리를 유지하며 자동 기술이나 수면 실험 등의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 5. 전후 활동과 문학적 성취 (1945년 ~ 1988년)

퐁주는 1942년 《사물의 편》을 출간하여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44년 평론 〈인간과 사물〉에서 퐁주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27] 퐁주는 조약돌이나 달팽이 같은 평범한 사물에 주관적 감정이나 초월적 관념을 부여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퐁주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사물의 편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글쓰기로 프랑스 시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립 솔레르스,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 탈구조주의 사상가들과 프랑스 예술현상학의 현상학자 말디네 등 다양한 문인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주목했다. 특히 1960년대 프랑스 문학계를 이끈 《텔 켈》 그룹의 문인들은 퐁주를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28]

1941년 리옹의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던[23] 퐁주는, 알베르 카뮈와 친분을 쌓았으며, 파블로 피카소, 장 뒤뷔페, 조르주 브라크 등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아 1948년 수필 《화가의 작업실》을 저술하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퐁주를 실존주의 시인이라 칭하며, "사물의 본질의 이해를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평가했다.[27] 이후 퐁주는 알랭 로브그리에 등 누보 로망의 선구자로 간주되었고, 필립 솔레르스 등 《텔 켈》파의 유물론적 언어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28] 자크 데리다는 1988년 출판된 《시니에퐁주》[29]에서, 퐁주의 작품은 사물의 자율성, 독자적인 법·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라고 평가했다.[30]

퐁주는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1974년),[1] 프랑스 학사원의 프랑스 국립 시상 (1981년),[2] 문인 협회의 그랑프리 (1985년)를 수상했다.[1] 또한 레지옹 도뇌르의 코망되르(1983년)였다.[1] 1952년부터 1965년까지 파리의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1966년과 1967년에는 미국 버나드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의 객원 교수로 있었다.[1]

3. 작품 세계

프랑시스 퐁주는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독특한 시적 표현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언어의 한계를 탐구하는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 차 있다.

퐁주는 사물의 편에서 오렌지, 감자, 담배와 같은 평범한 사물들을 시어로 섬세하게 묘사했다.[2] 그는 감정이나 상징에 호소하는 대신, 일상적인 사물의 경험 세계를 세밀하게 재창조하려 했다. 퐁주는 자신의 작품을 사전의 단조로움과 시의 부적절함을 모두 피한 "묘사-정의-문학 작품"이라 묘사했으며, 주요 목표는 고정관념적 사고를 피하는 것이었다.[2]

1947년, 퐁주는 레지스탕스 문학 선집인 『』에 "혐오(번역 '미움')"와 "변신(번역 '전신')" 두 편의 시를 게재했다. 장 폴랑과 도미니크 오리가 편찬한 이 작품집에는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클로드 아브리느, 장 지오노, 엘자 트리오레,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 여러 레지스탕스 작가의 작품이 실렸다. 이 선집은 1951년 일본에서도 와타나베 준, 고바세 타쿠조, 안도 지오의 공역으로 번역 출판되어 퐁주의 작품이 일본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퐁주는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고 프랑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했지만, 1947년 당의 "지적 당파성"을 이유로 탈당했다. 이후 1952년 알리앙스 프랑세즈 교원으로 채용될 때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16]

1952년 출간된 『표현의 불꽃』은 『사물의 편』처럼 긴밀하게 구성되지 않고, 단편적인 텍스트로 이루어진 "시적 일기" 형식을 취했다. 이후 퐁주는 이와 유사한 형식의 작품을 தொடர்ந்து 발표했다. 1971년 발표된 『목장의 제작』은 약 4년에 걸쳐 집필된 60페이지 이상의 글이 연속되는 "시간의 집적체"이다. 1984년에는 자신의 문학 창작에 대한 메모, 초고 등을 담은 『문학의 실천 혹은 영원한 미완성』을 출판하여, 오브제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끊임없는 수정과 개정 과정을 보여주었다.[20]

1961년에는 『대작품집』 전 3권, 1967년에는 『신작품집』이 출간되었고, 퐁주 사후 1992년에는 『신신작품집』이 나왔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갈리마르 출판사플레야드 총서로 전 2권의 전집이 간행되었다. 또한 장 폴랑, 장 토르텔, Jean Thibaudeau프랑스어, 필립 솔레르스, 알베르 카뮈와의 서간집, 그리고 가족에게 보낸 편지 등을 담은 『퐁주와 그 독자』(2014)도 출간되었다.[31]

퐁주는 1980년대에 국가시 대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시 대상, 문학가 협회 문학 대상 등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3. 1. '사물의 편'에 서다

그의 작품 '사물의 편'(종종 "사물의 목소리"로 번역됨)에서,[2] 그는 시적인 어조로 오렌지, 감자, 담배와 같은 흔한 사물들을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개인적인 스타일과 수필 형식(산문시)은 에세이와 매우 유사했다.[1]

퐁주는 감정과 상징에 대한 호소를 피하고 대신 일상적인 물건의 경험 세계를 세밀하게 재창조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전의 단조로움과 시의 부적절함을 모두 피한 "묘사-정의-문학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주요 목표는 고정관념적 사고를 피하는 것이었다. 1961년에 출판된 '거대한 수집'에서 그는 "돌, 풀과 같은 단순한 물건에 대한 집중은 언어의 힘과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더 타임스의 부고에서 설명했다.[2]

1967년, 그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비누'(Le Savon)를 출판했는데, 이는 1969년에 "비누"로 번역되었으며, 더 타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단어와 사물의 주제를 정확하고 종종 매우 유머러스하게 고갈시키기 때문에 독특하다"라는 긴 산문시이다. 원본 발췌문과 1969년 출판된 영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비누 (Le Savon)프랑스어비누 (Soap)영어
만약 내가 그것으로 손을 문지르면, 비누는 거품을 내며 기뻐한다...
그것이 손을 더 순종적이고, 부드럽고,
결합하고, 유연하게 만들수록, 더 많은 침을 흘릴수록, 더
그것의 분노는 부피가 커지고 진주색이 된다...
마법의 돌!
더 많이 공기와 물을 형성할수록
향기로운 포도송이의 무리
폭발적인...
물, 공기, 비누는
겹치고, 놀고
말타기, 형성
화학적이지 않은 조합
물리적, 체조적, 곡예적...
수사학적인가?
[...]프랑스어
만약 내가 그것으로 손을 문지르면, 비누는 거품을 내며 기뻐한다...
그것이 손을 더 순종적이고, 부드럽고,
결합하고, 유연하게 만들수록, 더 많은 침을 흘릴수록, 더
그것의 분노는 부피가 커지고 진주색이 된다...
마법의 돌!
더 많이 공기와 물을 형성할수록
향기로운 포도송이의 무리
폭발적인...
물, 공기, 비누는
겹치고, 놀고
말타기, 형성
화학적이지 않은 조합
물리적, 체조적, 곡예적...
수사학적인가?[6]영어



다른 작품으로는 화가 에밀 피크 (Émile Picq, 1911–1951)의 이름으로 말장난을 한 '말벌'(La Guêpe)이 있다.[7][8]

퐁주는 기존의 가치, 관념, 더 나아가 시의 전통에서의 관념론, 주관성, 인간 중심주의를 배제하고 (사르트르는 나중에 이를 "말의 때 벗기기"라고 부르게 된다), 새로운 언어의 창조, 침묵으로부터의 출발을 목표로 했다. 이때 퐁주가 발견한 것이 바로 사물(오브제)이었으며, 오브제를 묵묵히 응시함으로써 가능한 한 오브제 그 자체,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다가가려 했다. 즉, 언어 표현에 있어서 인간 중심에서 사물로 향하는 방향 결정(''parti pris''), "사물의 편"을 드는 것, 사물에 가담하는 것 (''parti pris des choses'') 이다. 퐁주는 이를 "사물들의 다양성이야말로 나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가 침묵 그 자체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나는 사물들에 둘러싸인 공허한 장소와 같다"라고 표현했다.[15]

하지만, 시집 《사물의 편》 출판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기성 언어, "타인들의 언어 습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사회 비판 (특히 부르주아 사회 비판) 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문학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바구니, 담배, 조약돌, 뽕나무 열매, 주방 도구 등 일상적인 사물을 다루게 되기까지의 경위는, 시인이 스스로를 사회의 주변 (소수자, 약자의 편) 에 위치시키게 되는 경위와 관련이 있다. 즉, 퐁주에게 있어서, 사회에서 배제된 자의 입장에 놓이는 것이 문학 전통에서 배제된 사물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10]

3. 2. 언어에 대한 탐구

그의 작품 ''사물의 편''(종종 "사물의 목소리"로 번역됨)에서,[2] 그는 시적인 어조로 오렌지, 감자, 담배와 같은 흔한 사물들을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개인적인 스타일과 수필 형식(산문시)은 에세이와 매우 유사했다.[1]

퐁주는 감정과 상징에 대한 호소를 피하고 대신 일상적인 물건의 경험 세계를 세밀하게 재창조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전의 단조로움과 시의 부적절함을 모두 피한 "묘사-정의-문학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주요 목표는 고정관념적 사고를 피하는 것이었다. 1961년에 출판된 ''거대한 수집''(Le Grand Recueil)에서 그는 "돌, 풀과 같은 단순한 물건에 대한 집중은 언어의 힘과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더 타임스''의 부고에서 설명했다.[2]

1967년, 그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비누''(Le Savon)를 출판했는데, 이는 1969년에 "비누"로 번역되었으며, ''더 타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단어와 사물의 주제를 정확하고 종종 매우 유머러스하게 고갈시키기 때문에 독특하다"라는 긴 산문시이다. 원본의 발췌문과 1969년에 출판된 영어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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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으로는 화가 에밀 피크 (Émile Picq, 1911–1951)의 이름으로 말장난을 한 '말벌'(La Guêpe)이 있다.[7][8] 퐁주는 기존의 가치, 관념, 더 나아가 시의 전통에서의 관념론, 주관성, 인간 중심주의를 배제하고 (사르트르는 나중에 이를 "말의 때 벗기기"라고 부르게 된다), 새로운 언어의 창조, 침묵으로부터의 출발을 목표로 했다. 이때 퐁주가 발견한 것이 바로 사물(오브제)이었으며, 오브제를 묵묵히 응시함으로써 가능한 한 오브제 그 자체,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다가가려 했다. 즉, 언어 표현에 있어서 인간 중심에서 사물로 향하는 방향 결정 (''parti pris'') , "사물의 편"을 드는 것, 사물에 가담하는 것 (''parti pris des choses'') 이다. 퐁주는 이를 "사물들의 다양성이야말로 나를 형성하고 있으며, 내가 침묵 그 자체 안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나는 사물들에 둘러싸인 공허한 장소와 같다"라고 표현했다.[15] 하지만, 시집 《사물의 편》 출판까지는 아직 수년이 걸렸다. 기성의 언어, "타인들의 언어 습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사회 비판 (특히 부르주아 사회 비판) 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문학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바구니, 담배, 조약돌, 뽕나무 열매, 주방 도구 등 일상적인 사물을 다루게 되기까지의 경위는, 시인이 스스로를 사회의 주변 (소수자, 약자의 편) 에 위치시키게 되는 경위와 관련이 있다. 즉, 퐁주에게 있어서, 사회에서 배제된 자의 입장에 놓이는 것이 문학 전통에서 배제된 사물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10]

1952년에는 『표현의 불꽃』이 출판되었다. 이것은 『사물의 편』과 같은 긴밀한 구성이 아니라, 단편적인 텍스트로 구성된 "시적 일기"라고 칭하는 것으로, 이 이후로는 비슷한 형식의 작품을 계속 발표했고, 특히 1971년 발표된 『목장의 제작』은 약 4년에 걸쳐 집필된 60페이지 이상의 글의 연속, "시간의 집적체"이다. 이 일환으로, 1984년에는 『문학의 실천 혹은 영원한 미완성』이 출판되었다. 이것은 그 자신의 문학 창작에 대한 메모·기억, 초고이며, 시인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오브제의 진실에 어디까지나 다가가기 위해, 여러 번 다시 읽고 수정을 가하고, 잇따라 개정판이 만들어지는 창작의 현장이다.[20]

3. 3. 주요 작품


  • 사물의 편(1942년) -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한 시집으로, 이끼, 담배, 바구니, 계절의 순환 등을 다루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25][26]
  • 서시(1948년)
  • 표현의 분노(1952년) - 단편적인 텍스트로 구성된 "시적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 대집 (1961년) - 전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I. "방법"
  • II. "리라"
  • III "작품"
  • 말레르브를 위하여(1965년)
  • 비누(1967년) - 조나단 케이프(Jonathan Cape) 출판.
  • 필리프 솔레르스와의 인터뷰 (1970년)
  • 프레의 공방(1971년) - 약 4년에 걸쳐 집필된 60페이지 이상의 글이 연속되는 "시간의 집적체"이다.
  • 어떻게 말의 무화과가, 그리고 왜(1977년)
  • 아틀리에의 페이지, 1917–1982(갈리마르 출판사, 2005년)
  • 화가 에밀 피크 (Émile Picq, 1911–1951)의 이름으로 말장난을 한 '말벌'(La Guêpe)[7][8]


퐁주는 사물의 편에서 오렌지, 감자, 담배와 같은 흔한 사물들을 시적인 어조로 묘사했다.[2] 그는 감정과 상징에 대한 호소를 피하고, 일상적인 물건을 세밀하게 묘사했다.[2] 1961년에 출판된 대집에서 그는 "돌, 풀과 같은 단순한 물건에 대한 집중은 언어의 힘과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2]

1967년 출판된 비누는 단어와 사물의 주제를 정확하고 유머러스하게 다룬 긴 산문시이다.[6]

비누 (Le Savon) 발췌비누 (Soap) 영어 번역본 (1969년 출판) 발췌[6]


4. 퐁주와 한국

퐁주의 작품은 1951년 일본어로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1965년 인문서원에서 출간된 『사르트르 전집(제11권)』에 사르트르의 퐁주론 「사람과 사물」이 수록되었다. 같은 해 아베 히로카즈가 번역한 『사물의 옹호자』는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이었다.[32]

아베 히로카즈는 1978년 퐁주를 만나기 위해 남프랑스를 방문했고, 1982년에는 『프랑시스 퐁주 시선』을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는 카뮈, 사르트르, 블랑쇼 등 여러 작가들의 퐁주론 일부도 함께 수록되었다. 1974년에는 아베 요시오의 『퐁주 - 사람·말·사물』이 출판되어 퐁주 작품 번역과 퐁주론을 제시했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또한 퐁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32]

퐁주의 작품은 다음과 같이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작품명번역 및 출판 정보
"증오", "전신"와타나베 준 외 공역, 『조국은 밤낮으로 만들어진다』 제1권, 월요서방, 1951년
"블랙의 예술"테라다 토오루 역, 『미즈에』 제566호, 미술출판사, 1952년
"달팽이", "물에 대하여"사토 사쿠 역, 『세계 시인 전집(제6권, 20세기 시집(하))』, 카와데 서방, 1956년
"프랑시스 퐁주"쿠보타 반야 역, 『현대 프랑스 시인집(제2책)』, 서점 유레카, 1956년
"사물의 옹호(초)"사토 사쿠 역, 『세계 명시집 대성(제5, 프랑스 편 제4)』, 헤이본샤, 1959년
"프로엠"히라오카 아츠요리 역, 『현대 프랑스 시론(세계 시론 대계 1)』, 사조사, 1964년
『사물의 옹호』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65년 (신판 1984년)
『아베 히로이치 시집』아베 히로이치 저, 사조사, 1998년
『표현의 불꽃』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80년
『프랑시스 퐁주 시선』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82년
『퐁주 - 사람·말·사물』아베 요시오 역·저, 치쿠마 서방, 1974년
『프랑시스 퐁주 시집』아베 요시오 역, 오자와 서점, 1996년
현자의 가족 / 담배의 숲 / 겨울의 맑은 날다나카 준이치 역, 『세계 문학 전집(제48권, 세계 시집)』, 고단샤, 1972년
소묘풍의 산문(초) / 비 / 계절의 순환 / 어떤 마르멜브론을 위해서(초)요시다 가나코 역, 『프랑스 시 대계』, 아오토사, 1989년


4. 1. 한국에의 소개와 영향

퐁주의 작품은 1951년 일본어로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1965년에는 인문서원에서 출간된 『사르트르 전집(제11권)』에 사르트르의 퐁주론 「사람과 사물」이 수록되었다. 같은 해, 아베 히로카즈 번역의 『사물의 옹호자』가 출판되었는데, 이는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이었다.[32]

아베 히로카즈는 1978년 퐁주를 만나기 위해 남프랑스를 방문했으며, 1982년에는 『프랑시스 퐁주 시선』을 번역 출간했다. 이 책에는 카뮈, 사르트르, 블랑쇼 등 여러 작가들의 퐁주론 일부도 함께 수록되었다. 1974년에는 아베 요시오의 『퐁주 - 사람·말·사물』이 출판되어 퐁주 작품 번역과 퐁주론을 제시했다.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또한 퐁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32]

퐁주의 작품은 다음과 같이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작품명번역 및 출판 정보
"증오", "전신"와타나베 준 외 공역, 『조국은 밤낮으로 만들어진다』 제1권, 월요서방, 1951년
"블랙의 예술"테라다 토오루 역, 『미즈에』 제566호, 미술출판사, 1952년
"달팽이", "물에 대하여"사토 사쿠 역, 『세계 시인 전집(제6권, 20세기 시집(하))』, 카와데 서방, 1956년
"프랑시스 퐁주"쿠보타 반야 역, 『현대 프랑스 시인집(제2책)』, 서점 유레카, 1956년
"사물의 옹호(초)"사토 사쿠 역, 『세계 명시집 대성(제5, 프랑스 편 제4)』, 헤이본샤, 1959년
"프로엠"히라오카 아츠요리 역, 『현대 프랑스 시론(세계 시론 대계 1)』, 사조사, 1964년
『사물의 옹호』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65년 (신판 1984년)
『아베 히로이치 시집』아베 히로이치 저, 사조사, 1998년
『표현의 불꽃』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80년
『프랑시스 퐁주 시선』아베 히로이치 역, 사조사, 1982년
『퐁주 - 사람·말·사물』아베 요시오 역·저, 치쿠마 서방, 1974년
『프랑시스 퐁주 시집』아베 요시오 역, 오자와 서점, 1996년
현자의 가족 / 담배의 숲 / 겨울의 맑은 날다나카 준이치 역, 『세계 문학 전집(제48권, 세계 시집)』, 고단샤, 1972년
소묘풍의 산문(초) / 비 / 계절의 순환 / 어떤 마르멜브론을 위해서(초)요시다 가나코 역, 『프랑스 시 대계』, 아오토사, 1989년


5. 수상 및 영예

연도수상 및 영예
1969년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1]
1972년인그램 메릴 재단상[1]
1974년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1]
1980년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 명예 회원[1]
1981년제1회 국가 시 대상(프랑스어: Grand prix national de la poésie)[1]
1983년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1]
1984년아카데미 프랑세즈 시 대상(프랑스어: Grand prix de poésie de l'Académie française)[1]
1985년파리 시청 시상[1], 문학자 협회 문학 대상(프랑스어: Grand prix de littérature de la SGDL)[1]


6. 참고 문헌


  • 《사물의 편견》 (1942)
  • 《서시》 (1948)
  • 《표현의 분노》 (1952)
  • 《대집》 (I. 〈방법〉, 1961; II. 〈리라〉, 1961; III 〈작품〉, 1962)
  • 《말레르브를 위하여》 (1965)
  • 《비누》 (1967) (영국 런던, 조나단 케이프 출판)
  • 필리프 솔레르스와의 인터뷰》 (1970)
  • 《프레의 공방》 (1971)
  • 《어떻게 말의 무화과가, 그리고 왜》 (1977)
  • 《아틀리에의 페이지, 1917–1982》 (갈리마르, 2005)

참조

[1] 간행물 Francis Ponge http://galenet.galeg[...] Thomson Gale 2012-02-29
[2] 뉴스 Obituary – M. Francis Ponge http://docs.newsbank[...] The Times 1988-08-11
[3] 웹사이트 Francis Ponge http://www.greeninte[...] 2011-12-29
[4] 간행물 Greatness through method The Times Literary Supplement 1986-12-26
[5] 웹사이트 Ponge, Francis http://www.oxfordref[...] Oxford University Press 2012-02-29
[6] 서적 Soap Jonathan Cape 1969
[7] 서적 The Art Criticism of Francis Ponge 1994
[8] 서적 The Riddle in the Poem 2004
[9] 웹사이트 FRANCIS PONGE. Un itinéraire exemplaire et original http://www.universal[...] 2019-11-21
[10] 논문 Ponge avant Ponge : incertitudes https://hal-univ-lyo[...] Université de Lille / HAL 2014
[11] 서적 Entretiens de Francis Ponge avec Philippe Sollers Seuil 2001
[12] 논문 『新フランス評論』創刊百周年 : アンドレ・ジッド関連の出版・行事を中心に https://doi.org/10.1[...] 京都大学フランス語学フランス文学研究会 2009-10-15
[13] 웹사이트 Histoire de ''la NRF'' http://www.lanrf.fr/[...] 2019-11-21
[14] 웹사이트 FRANCIS PONGE. Entre mots et choses http://www.universal[...] 2019-11-21
[15] 서적 Le Grand Recueil : I. "Méthodes" Gallimard 1961
[16] 웹사이트 La vie et l’œuvre de Francis Ponge http://www.savoirs-a[...] Département des Alpes-Maritimes 2019-11-21
[17] 웹사이트 シュルレアリスム革命 https://kotobank.jp/[...] 2019-11-21
[18] 웹사이트 革命に奉仕するシュルレアリスム https://kotobank.jp/[...] 2019-11-21
[19] 웹사이트 Le Surréalisme au Service de la Révolution (1930-1933) http://www.revues-li[...] Les revues littéraires 2019-11-21
[20] 웹사이트 FRANCIS PONGE. L'inachèvement perpétuel http://www.universal[...] 2019-11-21
[21] 웹사이트 FRANCIS PONGE. Classicisme et modernité http://www.universal[...] 2019-11-21
[22] 웹사이트 ルクレティウス https://kotobank.jp/[...] 2019-11-21
[23] 웹사이트 L’honneur des poètes en résistance https://www.humanite[...] 2019-11-22
[24] 문서 詩人の光栄 ― フランス抵抗詩集 https://iss.ndl.go.j[...] 大月書店 1951
[25] 서적 阿部弘一詩集 思潮社 1998
[26] 웹사이트 L'huître - Francis Ponge https://www.bacdefra[...] 2019-11-21
[27] 서적 サルトル全集(第11巻、シチュアシオン1) 人文書院 1965
[28] 뉴스 Francis Ponge, poète de l'objet https://www.lemonde.[...] 1962-01-20
[29] 서적 シニェポンジュ 法政大学出版局 2008
[30] 서적 Signéponge Seuil 1988
[31] 웹사이트 Ponge et ses lecteurs https://www.editions[...] 2019-11-21
[32] 서적 谷川俊太郎詩を語るダイアローグ・イン・大阪2000-2003 澪標 2003
[33] 웹사이트 Nouveau Nouveau Recueil (Tome 1-1923-1942) De Francis Ponge https://www.librairi[...] 2019-11-21
[34] 웹사이트 哲学の夕べ-客体・物・身体- https://www.institut[...]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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