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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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계도는 가족의 계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이다. 나무, 그래프, 원형 차트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며, 세대 간의 관계와 가족 구성원의 정보를 보여준다. 가계도는 족보, 아넨타펠, 부채 차트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각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가계도는 권력, 사회적 지위, 종교적 정통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는 유전자 계보와 같은 기술적 방식으로도 활용된다. 가계도 작성은 자료 수집과 주의사항을 필요로 하며, 족보 위조 및 작성의 한계와 같은 비판적 관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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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 |
---|---|
계보 정보 | |
정의 |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도표 |
유형 | 가계도 아힐레스의 방패 |
표현 방식 | |
구조 | 나무 구조 |
방향 | 위에서 아래로 (가장 일반적) 왼쪽에서 오른쪽 원형 |
목적 | |
용도 | 가족 역사 기록 유전 질환 추적 상속 관계 파악 혈통 강조 |
역사적 배경 | |
기원 | 중세 시대 |
초기 형태 | 왕족 및 귀족 가문에서 주로 사용 |
발전 | 16세기 이후 일반인에게 확산 19세기 이후 유전학 연구에 활용 |
구성 요소 | |
개인 | 사각형, 원 등으로 표시 |
연결선 | 결혼, 혈연관계 등을 나타냄 |
세대 | 수직으로 배열 |
관련 용어 | |
계보학 | 가계 연구 학문 |
혈통 |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계통 |
가문 | 공동의 조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 |
기타 | |
사용 예시 | 역사 드라마 소설 영화 게임 |
관련 소프트웨어 | 가계도 작성 프로그램 |
2. 가계도의 표현 방식
가계도와 족보를 나무 구조로 표현하는 방식 외에도, 혈통과 계보를 설명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되는 다른 주목할 만한 시스템들이 있다.
'''아넨타펠'''(''Ahnentafel'', "조상 표")은 개인의 직계 조상을 고정된 순서로 나열하는 족보 숫자 체계이다. 아넨타펠은 다음과 같이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 대상 (또는 피검자)
# 아버지
# 어머니
# 부계 조부
# 부계 조모
# 모계 조부
# 모계 조모
남성 또는 여성일 수 있는 대상 또는 피검자를 제외하고 모든 짝수 번호의 사람은 남성이고, 모든 홀수 번호의 사람은 여성이다. 이 계획에서 어떤 사람의 아버지의 숫자는 그 사람의 숫자의 두 배이고, 그 사람의 어머니는 그 사람의 숫자의 두 배에 1을 더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트리로도 표시할 수 있다.
가계도는 작성 용도에 따라 가계뿐만 아니라 가계 내 인물의 생년월일, 최고 관위 등을 기입하기도 한다. 일본 에도 시대의 가보처럼 상세한 경력을 기입한 것도 있다. 또한 양자로서 가독을 이은 자도 기록하기 때문에, 가계로서의 가계도는 반드시 혈통과 동의어는 아니다.
가계도의 형태는 다양하다. 현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의 이름을 선으로 연결하여 부자 관계를 나타낸 것이나, 중국 · 조선의 역사서나 족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단에서 하단으로 세대 관계를 나타낸 표 형태, 서아시아의 이슬람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름을 기입한 원을 수형도 모양으로 연결한 것 등이 있다.
여성의 취급 방법도 가계도에 따라 다양하다. 가계도를 남기는 사회의 대부분은 남계(남자의 혈통)를 중시하는 사회이며, 중국의 정사에 싣는 가계도에서는 남성만을 나타내는 것이 많지만, 조선의 족보에서는 딸과 그 혼인 상대를 기록하는 것도 있다. 일본의 가계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남성의 혼인 상대를 기록하는 대신, 자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명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유럽에서는 혼인 상대와 어머니를 분명히 기록한다. 이러한 여성의 취급 방법의 차이는 여성의 신분 차이, 적출자와 사생아의 취급 차이 등 각 사회의 고유한 가족 제도를 반영한다.
2. 1. 전통적인 표현 방식
계보 데이터는 계통도나 가계도 등 여러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가계도는 종종 가장 오래된 세대가 나무의 상단에, 젊은 세대가 하단에 표시된다. 한 개인의 조상만을 보여주는 가계도는 가족 구성원 전체가 아닌, 모양이 나무와 더 유사하며 상단이 하단보다 넓다. 일부 가계도에서는 개인이 왼쪽에 나타나고 그의 조상은 오른쪽에 나타난다. 반대로, 한 개인의 모든 후손을 묘사하는 후손 차트는 상단에서 가장 좁아진다. 이러한 형식 외에도 일부 가계도는 특정 성씨의 모든 구성원(예: 남성 혈통 후손)을 포함할 수 있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은 독일 왕과 같이 특정 직위의 모든 소유자를 포함하는 것인데, 이는 결혼에 의존하여 왕조를 연결하는 것을 나타낸다.[1]시간의 흐름은 조상과 후손을 설명하는 데 포함될 수 있다. 시간 척도는 종종 사용되며, 중심을 가로질러 방사형으로 확장되며, 10년 단위로 나뉜다. 부모의 자녀는 중심 주위에 분기를 형성하고 그들의 이름은 시간 척도에서 출생 연도에 표시된다. 배우자의 이름은 자녀의 이름과 연결되고 핵가족은 부모와 자녀의 핵가족이 손주로 갈라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증조부모는 종종 상단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의 자연적인 성장 패턴을 반영하여 4~5세대를 묘사하기 위해 중앙에 위치하지만 때로는 증손 또는 그 이상이 있을 수 있다. 후손 나무에서 살아있는 친척은 바깥 가지에 흔하며, 현대 사촌은 서로 인접하게 나타난다.
나무의 이미지는 아마도 중세 예술의 예수의 나무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며,[2] 이는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11:1)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마도 최초의 비성경적 사용이자, 순수한 부계 체계가 아닌 완전한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최초의 사용은 1360년에 처음 제작된 보카치오의 ''이교 신들의 계보''(이방 신들의 계보에 관하여)에 나오는 고전 신들의 가계도와 관련된 것이었다.[3]
2. 2. 현대적인 표현 방식
계보 데이터는 계통도나 가계도 등 여러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가계도는 보통 가장 오래된 세대가 맨 위에, 젊은 세대가 아래에 오도록 배치한다. 한 개인의 조상만을 보여주는 가계도는 나무와 비슷한 모양으로, 위쪽이 아래쪽보다 넓다. 일부 가계도에서는 개인이 왼쪽에, 조상이 오른쪽에 나타나기도 한다. 반대로, 한 개인의 모든 후손을 나타내는 후손 차트는 위쪽이 가장 좁다. 특정 성씨의 모든 구성원(예: 남성 혈통 후손)을 포함하는 가계도도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독일 왕처럼 특정 직위의 모든 소유자를 포함하는 가계도가 있는데, 이는 결혼을 통해 왕조를 연결하는 것을 보여준다.[1]시간의 흐름을 조상과 후손 설명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중심을 가로질러 방사형으로 확장되며 10년 단위로 나뉜 시간 척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부모의 자녀는 중심 주위에 분기를 형성하고, 자녀의 이름은 시간 척도에서 출생 연도에 표시된다. 배우자의 이름은 자녀의 이름과 연결되며, 핵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고, 손주로 갈라지는 식으로 이어진다. 증조부모는 보통 4~5세대를 묘사하기 위해 중앙에 위치하지만, 때로는 증손 이상의 세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후손 나무에서는 살아있는 친척이 바깥 가지에 흔하게 나타나며, 현대 사촌들은 서로 인접하게 나타난다. 살아있는 가계도를 만들 때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야 한다.

부채 차트는 동심원 고리가 있는 반원 형태의 차트이다. 대상은 안쪽 원에 위치하고, 두 번째 원은 둘로 나뉘어 각각 부모를 나타내며, 세 번째 원은 넷으로 나뉘는 식으로 조상을 묘사한다.
가계도는 나무 형태로 묘사되지만, 가족 관계는 그래프 이론에서 말하는 트리를 엄격하게 따르지는 않는다. 먼 친척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있어, 한 사람이 어머니 쪽과 아버지 쪽 모두에서 공통 조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보다 먼저 태어나야 하므로, 개인은 자신의 조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순환 구조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조상은 방향 비순환 그래프를 형성한다. 모계 (모녀 관계)와 부계 (부자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는 트리를 형성한다. 공통 조상이 없다고 가정하면, 각 사람은 한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아버지를 가지므로, 조상 차트는 완전 이진 트리가 되어 규칙적인 구조를 가진다. 반면에 후손 차트는 한 사람이 자녀가 없거나 여러 명의 자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3. 가계도의 역사
가계도는 전 세계적으로 시간과 문화를 통틀어 가족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4] 일본은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와는 달리, 과거 등 시험에 의한 채용이 아닌, 율령제 붕괴 후에는 모든 것이 가업, 가계의 나라였다. 공가나 무가는 물론이고, 명법박사, 문장박사 등의 문관도 각각 그것을 가업으로 하는 일족이 종사했다.
일본의 계도는 부자 관계를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기재한 '''종계도'''와 부자 관계를 세로선으로, 형제자매를 가로선으로 연결한 '''횡계도'''로 나뉜다.[12] 가장 오래된 계도에는 9세기부터 10세기에 제작된 시가현오츠시의 미이데라 소장 '와모 계도'나 교토부미야즈시의 코노 신사 소장 '아마베 계도' 등이 있다. 계도집으로는 무로마치 시대 공경으로 좌대신을 역임한 토우인 킨사다가 겐페이토키츠의 계도를 수집하고 교정 후에 발간한 '손비분맥'이 있다.[13]
무로마치 시대 오닌의 난 무렵에는 계도의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에도 시대에는 가계도가 이력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무사가 취직하거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이 향사가 되거나, 묘자타이토(성씨의 공칭, 대도와 소도를 차는 것)를 허락받을 때 등, 가문의 유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에는 가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몰락한 명족, 명문, 명가의 후예의 계도를 사거나, 같은 성씨의 과거 명족과의 관계를 창작하여 선조를 명가나 명족에 연결시킨 계도가 많이 존재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여러 다이묘에게 가계도 제출을 요구하고, '칸에이 제 가문 계도전'이나 '간세이 중수 제 가보' 등을 편찬했다.[15] 에도 시대 중기에는 막부나 각 번의 당국에 의해 다이묘, 하타모토, 고케닌, 번사, 향사, 쇼야 등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들의 가계도가 성행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호적이 전국민에게 만들어지면서 가계도 작성이 용이해졌지만, 전재 등으로 인해 호적이 소멸된 경우도 있었다. 계보학을 제창한 오오타 료는 가계 조사가 향토사 연구와 일본 역사 연구에 공헌한다고 말했다.[16]
1975년 발족한 일본 가계도 학회는 1980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같은 해 가계 연구 협의회도 설립되었다. 역사 연구에서 계도 자료는 문서상에 등장하는 인물의 비정이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사료로서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중세사 분야를 중심으로 계보 사료 자체의 성립 경위나 제작 의도, 유래의 전승과 그 역사적 배경 등을 고찰하는 계보 사료론도 검토되고 있다.
3. 1. 한국의 가계도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한국의 가계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3. 2. 세계의 가계도
가계도는 전 세계적으로 시간과 문화를 통틀어 가족사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의 지배 왕조가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을 통해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통해 그들은 다윗 가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혈통을 추적했다.
고대 이집트의 지배 왕조의 계보는 파라오 시대 시작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국 말기까지 기록되었지만, 이것은 끊임없이 연결된 가족 혈통의 기록이 아니며, 현존하는 기록도 불완전하다.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는 계보 기록에 대한 구전 전통이 우세하다. 예를 들어, 말리의 케이타 왕조 구성원들은 14세기부터 연례 행사에서 그리오들에 의해 그들의 족보가 불려졌다. 한편, 나이지리아에서는 많은 지배 씨족, 특히 오두두와의 후손들은 전설적인 키스라 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족보는 왕실에 소속된 그리옷들이 낭송한다.[5]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에서는 통치 가문과 사제 가문의 가계 기록이 보존되었으며, 일부는 수 세기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국의 통치 왕조에 대한 방대한 가계도가 있지만, 이는 단일하고 통일된 가계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름이 언급된 가장 오래된 역사적 인물들이 어느 시점부터 신화적인 존재가 되는지 불분명하다.
일본에서는 황실의 계보가 일본의 신화적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 기록에 확립된 인물과의 연관성은 서기 1천년 중반부터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가계도는 중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공자 (기원전 551–479년)의 가계도로, 그는 탕왕 (기원전 1675–1646년)의 후손이다. 이 가계도는 그로부터 80대 이상에 걸쳐 있으며 200만 명 이상의 구성원을 포함한다. 1998년에는 이 가계도를 추적하고 수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 450개 이상의 분가가 참여했다. 공자 가계보의 새로운 판이 2009년 9월 공자 가계보 편찬 위원회에 의해 인쇄되어, 중국 사상가의 탄생 2560주년에 맞춰 출간되었다. 이 최신 판에는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약 130만 명의 생존 구성원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암흑기 이전,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신뢰할 수 있는 가계도가 적어도 기원전 1천년기 전반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며, 더 이전의 기원을 주장하거나 신화적인 기원도 있었다. 로마 씨족과 가문의 계보는 그들 사회의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복잡한 개인 이름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고대 말기에 기록 보존의 연속성이 끊어졌다. 이 과도기 동안 교황과 동로마 황제의 계승 계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단일 가문의 연속적인 계보적 역사는 아니다.
유럽과 서아시아 기원의 많은 귀족 및 귀족 가문은 서기 1천년기 중후반까지 신뢰할 수 있게 그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일부는 고대 또는 신화적 조상에서 문서화되지 않은 혈통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나일 노이기알라크의 가계도는 백 번의 전투의 콘 (123년경 활동)을 통해 가장 오래된 가계도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으며,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역사에서 그는 브레오간의 후손이고, 궁극적으로는 노아의 아들들을 통해 아담의 후손이다.
또 다른 매우 오래되고 광범위한 가계도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마틴 부버를 포함하는 루리 가계가 있으며, 이 가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의 13세기 랍비 루리에서 시작하여 라쉬로, 그리고 전설적인 다윗 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닐 로젠스타인의 저서 ''The Lurie Legacy''에 문서화되어 있다.[7] 1999년판 ''기네스 세계 기록''은 루리 가문을 "가장 긴 혈통" 부문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존 가문 중 하나로 기록했다.[8]
가족 계보와 계보의 표현은 종교적 전통에서도 중요하다. 예수의 성경적 계보는 또한 다윗 가문의 후손임을 주장하며 약 1000년의 기간을 다룬다. 토라와 구약성서에서 아담의 후손에 대한 기록을 포함하여 많은 성경적 인물에 대한 계보가 제공된다. 또한 토라에 따르면, 코하님은 아론의 후손이다. 테크니온에서 수행된 유전자 검사는 대부분의 현대 코하님이 공통적인 Y 염색체 기원을 공유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코하님의 완전한 가계도는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으며, 새로운 왕조는 종종 이러한 후손 주장을 사용하여 정당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많은 인간 문화권에서, 씨족과 부족의 연관성은 공통 조상에 대한 주장에 기반하며, 이러한 기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종종 매우 제한적이다.
4. 가계도의 사회문화적 의미
가계도는 단순한 혈연 관계를 넘어, 작성 목적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가계도에는 가계 구성원의 생년월일, 관직, 경력 등이 기록되기도 하며, 양자를 통해 가독을 이은 경우도 포함되어 혈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가계도의 형태는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데, 일본에서는 개인의 이름을 선으로 연결하여 부자 관계를 나타내는 방식, 중국과 조선에서는 상단에서 하단으로 세대 관계를 나타내는 표 형태, 서아시아의 이슬람 사회에서는 원을 수형도 모양으로 연결하는 방식 등이 있다.
가계도에 나타난 여성의 취급 방식은 각 사회의 가족 제도를 반영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남성만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의 족보에서는 딸과 그 배우자를 기록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혼인 상대와 어머니를 명확히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은 율령제 붕괴 이후 가업과 가계 중심의 사회였으며, 공가, 무가, 문관 등 각 직업은 특정 가문에 의해 세습되었다. 따라서 가계도는 개인이 속한 가문의 유래를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봉건 사회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일본의 가계도는 부자 관계를 위에서 아래로 기재하는 '''종계도'''와 부자 관계를 세로선, 형제자매를 가로선으로 연결하는 '''횡계도'''로 나뉜다[12]。
무로마치 시대에는 가계도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이력서와 같이 무사의 취직이나 부유한 농민, 상인이 향사가 될 때 등 가문의 유래를 나타내는 실용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몰락한 명문가의 후예 계보를 사거나, 선조를 명가에 연결시키는 등 창작된 가계도도 많이 존재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여러 다이묘에게 가계도 제출을 요구하여 '칸에이 제 가문 계도전', '간세이 중수 제 가보' 등을 편찬했다[15]。
메이지 시대 이후 호적이 전국민에게 만들어지면서 가계도 조사가 가능해졌지만, 전재 등으로 호적이 소멸된 경우도 있다. 1975년에는 일본 가계도 학회가 발족하여 가계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역사 연구에서 가계도는 인물 관계 파악을 위한 사료로 사용되며, 최근에는 계보 사료 자체의 성립 경위와 제작 의도 등을 고찰하는 계보 사료론도 연구되고 있다.
5. 가계도 작성의 실제
가계도는 본인의 가문 유래를 파악하는 것으로, 봉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12] 일본에서는 부자 관계를 위에서 아래로 쓴 '''종계도'''와 부자 관계는 세로선, 형제자매는 가로선으로 연결한 '''횡계도'''로 나뉜다.[12]
무로마치 시대 오닌의 난 무렵에는 가계도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에도 시대에는 이력서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무사가 취직하거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이 향사가 되거나 묘자타이토를 허락받을 때 필요했다. 그러나 가계도가 없는 집이 많아 명족의 계도를 사거나, 선조를 명가에 연결시킨 가짜 가계도가 많이 만들어졌다.[13] 1721년 '병가다화'에는 가계도 위조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현대에는 호적 등본을 통해 작성할 수 있지만, 직계의 호적만 취득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일반인이 작성하기 위한 자료로는 친척에게 묻거나, 호적 등본을 떼거나, 법무국에서 구・토지대장을 열람하는 방법 등이 있다.
묘에는 계명 등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고, 과거장은 개인 정보 보호 문제로 열람이 어렵다. 호적은 메이지 시대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인이 조사할 수 있는 선조는 에도 시대 후기에서 메이지 시대 정도까지가 한계이며, 전재로 소실된 경우도 있다.
가계도 조사를 행정 서사 등에 위탁할 수도 있지만, 17세기 이전의 기록은 매우 적어 세이와 겐지나 칸무 헤이시에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에는 스즈키 마토시, 나카타 켄신 등이 전국의 가계도를 수집했다. 오오타 료는 가계 조사가 향토사 연구, 나아가 일본 역사 연구에 공헌한다고 말했다.[16]
1975년 일본 가계도 학회가 발족했지만 1979년 폐회했다. 1980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같은 해 가계 연구 협의회도 설립되었다.
역사 연구에서 가계도는 사료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계보 사료 자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5. 1. 자료 수집
일본에서는 율령제 붕괴 이후 가업과 가계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공가, 무가는 물론 문관까지 특정 가문이 직을 세습했다. 따라서 자신의 가문의 유래를 나타내는 가계도는 봉건 사회에서 매우 중요했다.[12]일본의 가계도는 부자 관계를 위에서 아래로 쓴 '''종계도'''와 부자 관계는 세로선, 형제자매는 가로선으로 연결한 '''횡계도'''로 나뉜다.[12]
가장 오래된 가계도로는 9세기에서 10세기에 제작된 시가현 오츠시 미이데라 소장 '와모 계도', 교토부 미야즈시 코노 신사 소장 '아마베 계도' 등이 있다. 가계도집으로는 무로마치 시대 토우인 킨사다가 쓴 손비분맥이 있다.[13]
무로마치 시대 오닌의 난 무렵에는 가계도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분쇼기에 남아있다. 에도 시대에는 가계도가 이력서처럼 사용되었다. 무사가 취직하거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이 향사가 되거나 묘자타이토를 허락받을 때 가계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가계도가 없는 집이 많아 명족의 계도를 사거나, 선조를 명가에 연결시킨 가짜 가계도가 많이 만들어졌다. 오다 씨가 칸무 헤이시라거나, 도쿠가와 씨가 세이와 겐지라는 등의 계보도 창작된 것이다.
1721년에 쓰여진 '병가다화'에는 가계도를 위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걸쳐 출신이 명확한 센고쿠 다이묘로는 시마즈 씨와 모리 씨가 있다.[14]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다이묘들에게 가계도 제출을 요구하여 칸에이 제 가문 계도전, 간세이 중수 제 가보 등을 편찬했다.[15]
에도 시대 중기에는 다이묘, 하타모토 등은 물론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들 사이에서도 가계도가 유행했다.
현대에 들어 호적 등본을 통해 가계도를 작성할 수 있지만, 직계의 호적만 취득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일반인이 가계도를 작성하기 위한 자료 수집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조부모나 친척에게 묻는다.
# 호적 등본을 뗀다.
# 법무국에서 구・토지대장을 열람한다.
묘에는 계명 등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고, 과거장은 개인 정보 보호 문제로 열람이 어렵다. 호적은 메이지 시대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인이 조사할 수 있는 선조는 에도 시대 후기에서 메이지 시대 정도까지가 한계이다. 전재로 호적이 소실된 경우도 있다.
가계도 조사를 행정 서사 등에 위탁할 수도 있지만, 17세기 이전의 기록은 매우 적어 세이와 겐지나 칸무 헤이시에 연결되는 가계도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에는 스즈키 마토시, 나카타 켄신 등이 전국의 가계도를 수집했다. 오오타 료는 가계 조사가 향토사 연구, 나아가 일본 역사 연구에 공헌한다고 말했다.[16]
1975년 일본 가계도 학회가 발족했지만 1979년 폐회했다. 1980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같은 해 가계 연구 협의회도 설립되었다.
역사 연구에서 가계도는 사료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계보 사료 자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6. 현대 기술과 가계도
유전자 계보에서 가계도의 형태가 사용된다. 2022년, 과학자들은 여러 출처의 인간 게놈을 통합하여 인류 역사, 조상 및 진화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가장 상세한 인간 유전자 계보를 보고했다. 이들은 게놈을 따라 1,300만 개의 연결된 나무 계열을 통해 인간 DNA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추정하는 새로운 계산 방법을 시연했는데, 이는 가장 큰 "인간 가계도"로 묘사되었다.[9][10][11]
7. 비판적 관점
가계도는 자신의 가문 유래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졌으나, 많은 경우 위조되거나 매매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가업과 가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에도 시대 이전 봉건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12]
무로마치 시대 오닌의 난 무렵에는 가계도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분쇼키'에 나타나 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가 취직하거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이 향사가 될 때 가문의 유래를 나타내는 자료로 가계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에는 가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몰락한 명문가의 계도를 사거나, 같은 성씨의 과거 명족과의 관계를 창작하여 선조를 명가나 명족에 연결시킨 가계도가 많이 만들어졌다. 오다 씨가 칸무 헤이시라고 하거나, 도쿠가와 씨를 세이와 겐지라고 하는 등의 계보도 창작된 것이다. 당시 '병가다화'에는 이러한 가계도 위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막부는 여러 다이묘에게 가계도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칸에이 제 가문 계도전', '간세이 중수 제 가보' 등을 편찬하기도 했다.[15]
7. 1. 족보 위조 및 매매 문제
일본에서는 가업과 가계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에도 시대 이전 봉건 사회에서 가계도가 자신의 가문의 유래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졌다.[12] 무로마치 시대 오닌의 난 무렵에는 가계도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분쇼키'에 나타나 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가 취직하거나,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이 향사가 될 때 등 가문의 유래를 나타내는 자료로 가계도가 필요했다.하지만 대부분의 집에는 가계도가 없었기 때문에, 몰락한 명문가의 후예의 계도를 사거나, 같은 성씨의 과거 명족과의 관계를 창작하여 선조를 명가나 명족에 연결시킨 가계도가 많이 만들어졌다. 오다 씨가 칸무 헤이시라고 하거나, 도쿠가와 씨를 세이와 겐지라고 하는 등의 계보도 창작된 것이다. 당시의 '병가다화'에는 이러한 가계도 위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에도 시대가 되자, 막부는 여러 다이묘에게 가계도 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칸에이 제 가문 계도전', '간세이 중수 제 가보' 등을 편찬했다.[15] 에도 시대 중기에는 다이묘, 하타모토 등은 물론 부유한 농민이나 상인들 사이에서도 가계도가 유행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호적이 만들어지면서 일반인도 가계도를 조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전쟁 등으로 호적이 소실된 경우도 많았다. 1975년 일본 가계도 학회가 발족되었고, 1980년에는 가계 연구 협의회도 설립되었다. 최근에는 중세사 분야를 중심으로 계보 사료 자체의 성립 경위, 제작 의도 등을 고찰하는 계보 사료론도 연구되고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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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ib.ugent.be[...]
2020-08-2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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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culturetr[...]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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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ucius family tree has two million me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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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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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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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The oldest family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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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4
[9]
뉴스
DNA reveals biggest-ever human family tree, dating back 100,000 years
https://edition.cnn.[...]
2022-03-10
[10]
뉴스
We're analysing DNA from ancient and modern humans to create a 'family tree of everyone'
https://phys.org/new[...]
2022-03-21
[11]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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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5
[12]
서적
戦国大名は経歴詐称する
柏書房
2024-01-10
[13]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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柏書房
2024-01-10
[1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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柏書房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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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戦国大名は経歴詐称する
柏書房
2024-01-10
[16]
서적
家系系図の合理的研究法
https://dl.ndl.go.jp[...]
立命館大学出版部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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