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 뉴타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다마 뉴타운은 1965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 도쿄의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된 신도시이다. 주택난 해소와 쾌적한 주거 환경 제공을 목표로 주택토지주식회사, 도쿄도 주택공급공사, 도쿄도가 공동 개발을 추진했으며, 1971년 1단계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후 철도 노선 건설, 대학 및 기업 유치 등을 통해 자족 도시를 지향했으나, 저출산 고령화, 건축물 노후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마센터역을 중심으로 상업, 업무, 레저 시설이 조성되었고, 주변 지역은 각 지역의 특색을 갖춘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다마 뉴타운은 보행자 전용 도로망과 오픈 스페이스를 통해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했으며,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2. 역사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지방에서 도쿄로의 인구 유입 속도가 둔화되면서, 다마 뉴타운 개발은 양에서 질로 전환되었다.[7] 계획 인구와 인구 밀도 목표가 낮아지고, 단순한 대규모 단지뿐만 아니라 타운하우스와 단독 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택이 공급되게 되었다. 기본 방침으로는 뛰어난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룬 양호한 주거 환경을 갖춘 주거 기능의 충실과 교육, 문화, 업무, 상업 기능을 갖춘 활기찬 신시가지 조성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다마지역의 자립화를 추진하는 거점 도시로서 광역적인 도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주변 지역과 연계한 복합 도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8]
1971년 3월 26일, 에가야마역 남쪽의 스와·에가야마 지역에서 다마 뉴타운의 첫 입주가 시작되었다.[9] 다마구릉의 자연과 지형을 살리면서 자동차 교통과 입체적으로 분리된 녹지가 풍부한 보행자 전용도로 네트워크를 정비하고, 주변 지역과의 조화를 도모하여 뛰어난 주거 환경을 갖춘 매력적인 도시 조성을 추구하며, "안전한 도시", "건강한 도시", "편리한 도시", "쾌적한 도시", "문화적인 도시" 조성을 목표로 했다.[9]
1974년 석유파동으로 고도경제성장은 종말을 고하고, 대도시권에서 활발했던 주택 수요는 급격히 감소했다. 주택 부족 현상이 해소되면서, 다마 뉴타운은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계획적인 양호한 도시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에서 “시간을 들여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23] 이에 따라 개성적인 타운하우스 주택, 코오퍼레이티브 하우스, 플러스원 주택, 일반 공모 토지 분양 주택 등 다채로운 주택이 공급되었고, 주택뿐 아니라 업무 기능(오피스)도 추가되었다.
1980년대에는 다마센터역 주변 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나미오사와역을 중심으로 하는 서부지역에서도 개발이 진행되어, 다마뉴타운의 인구는 1980년 6만 명에서 1987년에는 10만 명에 달했다.[42] 1983년 3월 제14주구에서 1018세대 입주가 시작되면서 서부지역 입주가 개시되었다.[30]
서부지역 입주 당시에는 미나미오사와역까지 철도가 개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버스로 다마센터역까지 이동했다. 1988년 5월 21일에 게이오 사가미하라선의 게이오 다마센터역 - 미나미오사와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1990년에는 오다큐 다마선이 오다큐 다마센터역에서 가라키다역까지 연장됨과 동시에 카라키다 지역 입주가 시작되었다.
2. 1. 개발 배경
일본의 전후 고도경제성장기 동안 도쿄로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지가가 크게 상승했고,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땅값이 싼 도쿄 외곽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무계획적인 도시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기반 시설 부족, 편의 시설 및 교통 접근성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5년 다마 뉴타운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은 수십만 명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주택토지주식회사, 도쿄도 주택공급공사, 도쿄도(Tokyo Metropolitan Government)가 공동으로 계획 및 개발을 진행했다.
당초 계획 인구는 34만 2,200명, 면적은 2,892.1㏊였다. 1966년 공사가 시작되어 1971년에 1단계가 개통되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다마 뉴타운은 도쿄 교외의 대규모 베드타운으로서 다마구릉을 개발하여 조성되었다. 이 외에도 일본에는 센리뉴타운(오사카부), 코호쿠뉴타운(가나가와현), 지바뉴타운(지바현), 고조지뉴타운(아이치현) 등 대규모 뉴타운이 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지방에서 도쿄로의 인구 유입 속도가 둔화되면서 주택 정책은 양에서 질로 전환되었다.[7] 계획 인구와 인구 밀도 목표가 낮아졌고, 타운하우스와 단독 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택이 공급되었다.

다마 뉴타운 개발은 스프롤 현상을 막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주택지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계획되었다.[8]
개발 과정에서 신주택시가지개발법에 따른 최초의 사업 인가 및 승인 신청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마 뉴타운 지역 내에는 토지에 대한 애착이 강한 농가 마을(약 2000세대)이 있었고, 이 지역을 전면 매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1966년 1월, 지역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도쿄도는 기존 마을 지역을 제외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정비하는 방침을 결정했다.[15] 이로 인해 보행자 전용도로망 등이 일부 단절되는 등 공간 구성에 모순이 발생했지만, 도시 형성에 다양성을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15]
법적 절차는 다음과 같다.[16]
- 1963년 11월: 남다마 지역 도시계획구역 결정
- 1964년 5월: 다마 신도시 개발 계획 기본 방침 결정
- 1964년 7월: 다마 뉴타운 관련 용도 지역, 도로 계획 결정 고시
- 1964년 10월~1965년 12월: 농림성 협의
- 1965년 12월: 다마 뉴타운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계획구역 결정
- 1966년 12월: 다마 뉴타운 사업 결정, 토지구획정리사업 구역 결정
- 1969년 6월 2일: 기공식
미노베 료키치가 도쿄도지사로 당선된 후, "도쿄도는 다마 뉴타운에서 손을 떼겠다"는 발언으로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17] 그러나 도쿄도가 이미 주택금융공고로부터 서부 지역(미나미오사와 역 중심)의 백만 평을 취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다.[18]
2. 2. 개발 과정
일본의 전후 고도경제성장기 동안 도쿄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난과 지가 상승이 심각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도쿄 외곽 지역에 정착하면서 무분별한 도시 확장이 이루어졌고, 이는 기반 시설 부족과 교통 접근성 문제를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5년 다마 뉴타운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주택토지주식회사, 도쿄도 주택공급공사, 도쿄도(Tokyo Metropolitan Government)가 공동으로 개발을 추진했다.당초 계획 인구는 34만 2,200명, 지정 면적은 2,892.1㏊였다. 1966년 공사가 시작되어 1971년에 1단계가 개통되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단계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다마 뉴타운은 여러 사업 구역으로 구성되며,[12] 1966년[4] 사업 착수 이후 18차례의 도시계획 변경을 거쳐 정비되었다.
전후 고도경제성장기에 도쿄 도심 지역의 주택난과 지가 급등으로 인해, 저렴한 지가의 시가지가 급속히 주택지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민간의 무계획적인 개발은 스프롤 현상을 초래했으며,[13] 당시 불법적인 주택지 조성이 56%에 달했다.[14] 다마 뉴타운은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주택지를 대량 공급하기 위해 계획되었다.[8]
개발 과정에서 신주택시가지개발법에 기반한 최초의 사업 인가 및 승인 신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마 뉴타운 지역 내에는 토지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약 2000세대의 농가가 있었고, 전면 매입은 어려웠다. 1966년 1월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도쿄도는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병행하여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보행자 전용도로망 등이 일부 단절되어 공간 구성에 모순이 생겼지만, 도시 형성에 다양성을 가져왔다.[15]
법적 절차는 다음과 같다.[16]
미노베 료키치 도쿄도지사 당선 후 계획이 잠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도쿄도가 이미 부지를 취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다.[17][18]
1971년, 다마 뉴타운 최초 입주가 영산역 남쪽의 스와·영산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 지역은 원래 일본주택공단의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 지역"이었으나, 다마 뉴타운에 포함되었다.[19] 석유 파동까지 3년간 약 8,500세대의 주택이 공급되었고, 1974년 다마 뉴타운 인구는 3만 명에 달했다.[42] 초기에는 공공 임대 주택 중심으로 공급되었으나, 고령화의 온상이 되었다.[20]
초기에는 철도가 개통되지 않아 주민들은 경왕선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역까지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했다.[21] 경왕제도전철·오다큐 전철은 건설 비용 문제로 철도 건설을 중단하고 있었으나,[22] 일본철도건설공단의 지원으로 1974년 6월 오다큐 영산역, 10월 경왕 다마센터역이 개통되었고, 1975년에는 오다큐 다마센터역까지 개통되었다.
2. 3. 현재
도쿄 교외의 대규모 베드타운으로 개발된 다마 뉴타운은 현재 여러 가지 특징과 과제를 안고 있다.다마구릉의 지형을 살려 계획적으로 녹지를 많이 배치하였고, 역에서 주택가나 주요 시설까지 보행자 전용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곳이 많다. 다마센터역 남쪽 지역은 뉴타운의 중심 지역인 "도시센터" 역할을 하며, 각 역마다 상업 시설 등이 정비되어 있다.
1973년 석유파동 이전에는 주택 대량 공급을 목표로 하였으나, 이후 양에서 질로 전환하여 타운하우스와 단독 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공급하게 되었다. 뛰어난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룬 양호한 주거 환경을 갖춘 주거 기능의 충실과 교육, 문화, 업무, 상업 기능을 갖춘 활기찬 신시가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뉴타운과 마찬가지로, 도시 조성과 함께 30~40대의 자녀 양육 세대가 일시에 입주하여 연령 구성이 편중되었다는 과제가 있다. 또한 단지 등 주택 건설 시기도 일정 시기에 집중되어 도시 전체 시설이 한꺼번에 노후화되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석유파동 이전에 주택 대량 공급을 목적으로 분양된 스와·에가야마 지역은 단지 노후화와 주민의 급격한 고령화가 발생하고 있다.[10]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개발로 지역에 따라 개발 시기가 크게 달라, 다마 뉴타운 전체가 노후화·고령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며, 지역에 따라 문제의 정도와 양상은 제각각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스와·에가야마 지역의 스와 2정목에서는 복수 동의 단지를 일괄적으로 재건축하는 대규모 단지 리뉴얼이 진행 중이다.[11]
1974년 석유파동 이후, 다마 뉴타운은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계획적인 양호한 도시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에서 “시간을 들여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23] 이에 따라 다채로운 주택이 공급되고 업무 기능(오피스)도 추가되었다.
당시 다마시에서는 공공시설 건설비용 부담 문제로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1974년 10월 학교 부지와 건물을 도쿄도가 전액 부담한다는 합의를 통해 개발이 재개되었다.[25] 30% 이상의 녹지와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이후 다마 뉴타운의 도시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다마 뉴타운은 오픈 스페이스와 관련하여 2005년까지 도시재생기구 시행 구역만으로도 녹색도시상을 2회, 일본 도시계획학회상을 2회, 도시경관대상을 3회, 일본 조경학회 특별상, 일본 부동산학회 공적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26]
3. 도시 계획
thumb
다마 뉴타운은 21개의 지역으로 나뉘며, 각 지역은 3,000~5,000채의 주택 및 아파트,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 상점, 파출소(kōban), 우체국, 진료소(clinic) 등을 갖춘 지역 센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여러 지역이 하나의 구역을 형성하며, 각 구역은 통근 열차(commuter rail)역을 중심으로 한다. 다마 뉴타운은 자체적인 시정촌이 아니며, 다마, 하치오지, 이나기, 마치다 시의 경계에 걸쳐 있다. 각 지역은 해당 시 당국에서 관리하며, 모두 도쿄도의 관할 아래 있다.
1980년대에는 다마센터역 주변과 미나미오사와역을 중심으로 서부 지역 개발이 진행되었다. 다마 뉴타운 인구는 1980년 6만 명에서 1987년 10만 명으로 증가했다.[42] 서부 지역은 1974년 녹지와 오픈 스페이스 확보를 포함한 행정 요강에 따라 개발되었으며, 1983년 3월 제14주구에서 1018세대 입주를 시작으로 입주가 개시되었다.[30]
게이오 사가미하라선 연장에는 후추 컨트리클럽 부지 통과 문제가 있었으나, 보상금 합의 후 공사가 진행되어 1988년 5월 21일 게이오 다마센터역 - 미나미오사와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1990년에는 오다큐 다마선이 오다큐 다마센터역에서 가라키다역까지 연장되고, 가라키다 지역 입주가 시작되었다. 가라키다 지역은 도쿄도 시행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과 주택·도시정비공단(현 도시재생기구) 시행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지역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고저차도 커서, 두 지역을 일체적으로 시공하기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도쿄도에서 주택·도시정비공단으로 위탁되었다.[31]
마치다시 내 다마 뉴타운 개발은 1990년대부터 "아이하라·고야마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지역은 서부 지역 서쪽에 위치하며, 당초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유치시설 용지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개발되지 못했다. 이후 신주택시가지개발법 개정으로 유치가 가능해졌지만, 시대적 배경 변화에 따라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개발되었다.[40] 다마 뉴타운 도오리와 오네 간선도로 사이 "업무구역"에는 산리오 유통센터를 시작으로 2005년 기준 약 50개 회사가 진출했다. 다마 뉴타운 도오리 서쪽 "연구주거복합지구"에는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살레시오공업고등전문학교가 2005년 스기나미구에서 이전했다.[41]
1990년 3월 30일, 게이오 사가미하라선 미나미오사와역 - 하시모토역 구간이 개통되었고, 1991년 4월 6일 다마사카이역이 개업했다. 이로써 다마 뉴타운 내 모든 역이 개업 완료되었고, 다마 뉴타운 인구는 1991년 15만 명이 되었다.[42]
행정개혁 등의 영향으로 공공 개발은 도쿄도가 2003년, 도시재생기구(구 주택·도시정비공단, 일본주택공단)가 2006년에 종료되었다. 미개발 용지 244헥타르는 매각되어 민간 등에 의한 개발에 맡겨졌고[43], 고층 아파트 건설로 여유로운 거리 풍경이 변화하고 있다[44].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어, 2021년 기준 다마 뉴타운 인구는 22만 명이지만, 고령자 비율은 25.7%이다[74]. 특히 오일쇼크 이전에 건설된 스와·나가야마 지역 단지는 획일적이고 주택 면적이 좁아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45] 다마 뉴타운 인구는 2025년경 정점을 찍고[49], 2050년에는 2010년 대비 7% 감소, 고령화율은 35%로 예상된다.[50] 건축물 노후화 문제도 있어, 주민들은 분양 아파트 재건축을, 행정은 도영 주택 재건축과 이사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46] "쇼핑 난민" 대책으로 도쿄도와 다마시는 게이오 그룹과 협력하여 이동 판매차를 도입하는 등[53], 재건축 외 고령자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2018년 2월 19일, 도쿄도는 2040년대를 목표로 "다마 이노베이션 교류 존" 설정을 포함한 "다마 뉴타운 지역 재생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54], 시설 노후화, 미나미오사와 역 부근 미개발지, 교통망 재편 문제에 대한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55]

3. 1. 기본 이념
다마 뉴타운의 기본 이념은 초기에는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계획적이고 양호한 도시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4년 석유파동 이후 주택 수요 감소와 사회 변화로 인해 "시간을 들여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목표가 변경되었다.[23]이에 따라 다마 뉴타운은 다양한 주택 유형을 공급하고 업무 기능(오피스)을 추가하는 등 이상적인 도시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23] 30% 이상의 녹지와 오픈 스페이스 확보는 2005년까지 도시재생기구 시행 구역에서만 녹색도시상 2회, 일본 도시계획학회상 2회, 도시경관대상 3회, 일본 조경학회 특별상, 일본 부동산학회 공적상 수상으로 이어졌다.[26]
1986년 신주택시가지개발법 개정으로 "특정업무시설"이 신설되면서, 다마 뉴타운을 포함한 뉴타운에 업무 시설 입지가 법적으로 가능해졌다.[39] 이는 다마 뉴타운 내 업무 용지 판매 호조로 이어져 아사히생명보험 다마 본사, 베네세코퍼레이션 도쿄 본사 등 여러 기업이 유치되었다.
뉴타운 지역은 중학교 학구를 기본 단위로 하는 21개 주거지로 구성된다. 각 주거지는 약 100ha 면적에 3,000~5,000호의 주택, 12,000~20,000명의 인구로 계획되었다. 각 주거지에는 중학교 1개교, 초등학교 2개교, 보행자 전용 도로, 공원, 상점, 파출소, 우체국, 진료소 등 주민 서비스 시설을 갖춘 「근린센터」가 배치된다. 이러한 주거지들을 모아 지역을 구성하고, 지역 중심(철도역 주변)에는 「지역센터」가 설치된다.
3. 2. 골격 구조
다마 뉴타운 지역은 지형 등의 조건 덕분에 일체적으로 개발이 가능하며, 배수 체계는 다마가와 수계로 단일화되어 있다. 다마 뉴타운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철도: 동서 방향으로 중앙부를 횡단하는 2개의 노선 (게이오 사가미하라선, 오다큐 다마선)
- 도로:
- 동서 방향으로 중앙부, 남부, 북부를 횡단하는 광역 간선 도로 (다마 뉴타운 도오리, 오네 간선 도로, 노자루 가도)
- 남북 방향으로 광역 간선 도로를 잇는 주거지 간선 도로
다마 뉴타운의 중심인 "도시 센터"는 다마 센터역 주변에 위치하며, 와카바다이, 나가야마, 게이오 호리노우치, 미나미오사와 각 역 앞에는 이보다 작은 규모의 "지구 센터"가 배치되어 있다.[56]
또한, 다마 구릉의 녹지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다마 뉴타운 남쪽 가장자리의 능선 부분에는 지역 공원과 저밀도 유치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계획적으로 배치된 공원 녹지, 보행자 전용 도로, 주택 내 녹지 등의 면적은 지역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한다.[56]
3. 3. 인프라
1974년 석유파동으로 주택 수요가 감소하고 주택 부족 문제가 해소되면서, 다마 뉴타운은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계획적인 양호한 도시를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에서 "시간을 들여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했다.[23]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공급되었고, 업무 기능(오피스)도 추가되었다.다마시에서는 초중등학교 등 공공시설 건설 비용 부담 문제로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다. 신주민들의 이주로 인한 행정 수요 증가로 재정 적자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24] 1974년 10월, 도쿄도가 학교 부지와 건물을 전액 부담하는 합의를 통해 개발이 재개되었고, 30% 이상의 녹지와 오픈 스페이스 확보 내용도 포함되어 다마 뉴타운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25] 그 결과 다마 뉴타운은 녹색도시상, 일본 도시계획학회상, 도시경관대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26]

다마 뉴타운 외곽에는 중앙대학교, 명성대학, 테이쿄대학, 다마미술대학 등 여러 대학들이 있었고, 1983년 구 도쿄도립대학 이전 계획을 계기로 많은 대학들이 다마 뉴타운 지역 내로 진출했다.[32] 다치카와로의 이전이 계획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다마 뉴타운 서부 지역으로 이전이 결정되었다.[33] 1991년 4월, 미나미오사와역 앞에 도쿄도립대학 오사와 캠퍼스가 개설되었다.[35] (이후 수도대학도쿄로 개편되었다가 2020년에 도쿄도립대학으로 명칭 복귀)[36][37][38]
이후 혜천여자대학, 다이마 여자대학, 다마대학, 고시칸대학, 야마자키학원대학, 도쿄의료학원대학 등이 다마 뉴타운 지역 내에 개설되었다. 다마미술대학은 캠퍼스를 다마 뉴타운 지역 내로 확장했다.
전기, 가스, 상하수도 등 생활 인프라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주택 개발 이전부터 정비되었고, "도시센터" 지역에는 무전주화와 지역냉난방 등을 가능하게 하는 지하 공동구가 설치되어 있다.
3. 4. 근린주구 이론
뉴타운 지역은 신주택 시가지 개발 사업지에 신주거지를 조성하고, 간선도로를 경계로 중학교 학구를 기본 단위로 하는 21개의 주거지로 나뉘어 있다. 이 개념은 커뮤니티 공간의 외곽에 간선도로를 배치하여 생활 공간에서 불필요한 통과 교통을 배제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하는 근린주구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56]기본 이념은 이상적인 주거 환경을 목표로 하여, 1주거지는 면적 약 100ha, 주택 3,000~5,000호, 인구는 대략 12,000~20,000명으로 계획되었다. 각 주거지에는 원칙적으로 중학교 1개교, 초등학교 2개교를 설치하고, 보행자 전용 도로를 도입한 생활 도로, 오픈 스페이스로서의 공원(근린공원·주택단지공원)과 녹지대, 식료품·일용품 등의 상점, 파출소, 우체국, 진료소 등 주민 서비스 시설이 모인 「근린센터」가 배치되어 있다. 개발로 인해 농업을 그만둔 주민이 상점을 경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를 여러 개 모아서 지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지역의 중심(철도역 주변)에는 「지역센터」가 배치되어 있다.
3. 5. 보행자 전용 도로
다마 뉴타운에서는 보행자와 자동차의 동선을 분리하여 안전한 도시를 목표로 하는 "보차 분리" 관점에서 보행자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보행자 전용도로와 일반도로는 입체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주택가에서 역, 공원이나 학교 등 다양한 시설을 차도를 전혀 횡단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으며, 이는 다마 뉴타운의 큰 특징이다.[57]3. 6. 토지 이용 계획
3. 7. 쓰루마키·오치아이 지역의 오픈 스페이스 계획
석유파동 이후 다마 뉴타운 개발 정책은 30% 이상의 오픈스페이스(공원, 녹지 등) 확보를 목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초기 오픈스페이스는 중고층 주택에 가려져 인지도가 낮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쓰루마키·오치아이 지역은 계획을 재검토하여 독특한 도시 경관을 조성했다.[59]쓰루마키·오치아이 지역은 오픈스페이스를 도시 골격으로 삼는다는 발상으로 설계되었다. 도로망 중심의 일반적인 도시 골격 구조와 달리, 건물 없이 공원과 보행자 전용 도로만 그린 도면을 만들어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공공 이익을 고르게 누린다는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 4개의 근린공원을 고리 모양으로 연속 배치하여 "기간 공간"을 만들었다.[59]
기간 공간 외곽에는 "기간 공간계"를 보완하는 "링계"가 있다. 이는 보행자 전용 도로와 근린공원으로 구성되어 다마 뉴타운의 "길 공간" 조직화를 꾀한다. 더 바깥쪽 "외주계"는 3개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동쪽은 지역 동단에서 다마추오 공원·유적 공원(도쿄도 매장문화재센터)으로, 서쪽은 지역 서부에서 카라키타로, 남쪽은 다마 요코야마의 길로 이어진다. "독립계"와 함께 "기간 공간계", "링계", "외주계", "독립계"가 지역 오픈스페이스를 형성한다.[60]
보행자 전용 도로는 지역 내 모든 주택, 공원, 학교, 시설을 연결하며, 다마센터역 앞 보행자 전용 통로와 이어진다. 차도와 교차점은 보행자 전용 육교로 입체 교차되어, 차도를 건너지 않고도 지역 전체와 역 앞까지 이동 가능하다.[60]
경관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 "비주얼 플랜"이 작성되었다. 이는 "본다·보인다"를 의식한, 오늘날 경관 계획의 선구적 사례였다. 도시 경관뿐 아니라 도시 전체 전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산" 경관을 중시하여 기간 공간을 구성하는 "후지미도리"는 후지산 방향으로 직선 정비되었다.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쓰루마키히가시 공원의 "쓰루마키산" 등 지역 곳곳에 전망 포인트를 설치했다.[59]
1982년 쓰루마키·오치아이 지역에 최초로 주택이 공급되었는데, 당시 인기 있던 타운하우스를 중심으로 공급되었다. 공단 기술자들은 다엔조부처럼 만들고자 했으나, 근로자 주택 공급이라는 공단 사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본부로부터 질책받았다. 당시 일반 분양가는 약 2500만~2600만 엔이었으나, 이곳 분양가는 약 4800만 엔으로, "공공기관이 고가 부동산을 판매한다"는 비판을 받았다.[59][61]
결과적으로 이 호화로운 도시 경관은 일본 전국 계획 도시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것으로, "도시 전체가 공원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3년 드라마 "금요일의 아내들에게"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 도시 개발 성과로 공단은 1983년 "녹색 도시상", 1985년 "일본 도시계획학회 계획 설계상", 1993년 "일본 조경학회 특별상"을 수상했다.[62][63][61]
4. 각 지역의 특징
다마 뉴타운은 도쿄도의 이나기시, 다마시, 하치오지시, 마치다시 4개 시에 걸쳐 있으며, 각 시별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개발되었다.
- '''이나기시 지역'''은 "파인힐 이나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1988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향양대는 1995년 도시경관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나가미네는 전망이 좋고 이나기 중앙공원이 있다. 와카바다이는 보행자 전용도로로 연결된 상업 시설과 시립 복합문화시설 "i플라자"가 특징이다.
- '''하치오지시 지역'''은 유키 지구로, 1964년 하치오지시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부터 다마 뉴타운 개발이 시작되었다. 미나미오오사와와 가미유키 지역은 보행자 전용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다. 미나미오사와역 주변은 "지구 센터"로 개발되어 도쿄도립대학(현 수도대학도쿄)과 대규모 쇼핑센터, 문화회관 등이 있다. 가시마와 마쓰가야는 다마시와의 경계에 있어 생활권이 다마시 쪽에 편입되어 있어, 다마시 편입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 '''마치다시 지역'''은 "마치다 그랑넷 타운"으로 불리며, 1988년에 도시 계획이 결정되었다. 코야마가오카는 다마사카이역 주변 지역으로, "마치다 테크노파크"라는 공업 단지와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할인점이 있다.
다마 뉴타운 개발 초기에는 현재 다마시 지역의 일부가 마치다시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다마시로 편입되었다.
4. 1. 다마시 지역

다마시 지역에는 1971년(쇼와 46년) 다마 뉴타운 제1차 입주 지역이 된 스와·나가야마 지역과 다마 뉴타운의 중심으로 계획된 다마센터 지역 등이 포함된다. 미나미다마 오네간센(尾根幹線道路) 연선 지역 일부는 개발 당시 마치다시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쇼와 48년) 12월에 다마시에 편입되었다.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지역은 4~12주구와 17, 18주구에 해당하며,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은 다마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 오노로 제1~3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이 해당한다.
가로는 도로마다 테마를 가지고 통일된 가로수가 식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주구 상호를 네트워크하는 보행자 전용도로에도 애칭이 붙여져 지역·근린센터와 주거지, 공원이나 학교 등을 잇고 있다. 또한, 주민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설 "커뮤니티센터"를 지역별로 설치하고 있다.
공원(지역공원·근린공원·가로공원·보전녹지 등)은 시역 전체에 크고 작은 약 200곳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마시 전체 면적당 공원 면적은 도쿄도에서 1위, 인구당 2위이다.[68]
; 히지리가오카(聖ヶ丘)
: 1984년(쇼와 59년) 입주 시작의 제4주구를 구성하며,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개발되었다. 히지리가오카라는 지명은 공모로 정해졌으며, 근처에 세이세키 기념관이 있는 것에서 유래한다. 히지리가오카 병원과 다마대학 다마 캠퍼스, 육상경기장과 무도관을 개설하고 있는 다마히가시 공원이 있다. 개발 전에는 세이부 철도가 자갈 채취를 하고 있어, "아파치 요새"라고 불리는 송전탑 주위만을 남기고 깎여진 채 위험한 상태였다.
; 렌코지(連光寺)
: 제4주구의 동쪽 끝을 구성한다. 렌코지는 다이지 렌코지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이 도립 사쿠라가오카 공원과 오타니토 공원이 되어 있다.
; 세키도(関戸) (다마시)
: 가마쿠라 가도와 그 옛길에 끼인 일대. 세키도 6초메 1~9번지가 해당한다.
; 마히키자와(馬引沢) (다마시)
: 야토부스지(谷戸部筋)에 따라 있는 지역으로, 전역이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이다. 이 지역 남부는 원래 다마 뉴타운 개발에서 제외되었지만, 지주의 강한 요구가 있어 "다마 뉴타운 다마 토지구획정리사업" 제2공구로 개발되었다. 마히키자와라는 지명은 렌코지의 옛 지명, 마히키자와에서 유래한다.
; 스와(諏訪) (다마시)
: 1971년(쇼와 46년)에 제1차 입주가 이루어진 제5주구를 구성한다. 당시 도쿄의 주택 부족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 대규모 단지가 늘어서 있다. 다마 뉴타운 개발 전부터 있는 "마히키자와 단지"와 일체적으로 정비되었다. 스와라는 지명은 스와 신사와 렌코지의 옛 지명, 스와고에, 스와자카에서 유래한다. 분양 단지 중 하나였던 스와니초메 주택은 일본 최대급의 맨션 재건축이 이루어져 "브릴리아 다마 뉴타운"이 되었다.
; 나가야마(永山) (다마시)
: 1971년(쇼와 46년)에 제1차 입주가 이루어진 제6주구를 구성한다.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은, 다마 토지구획정리사업 및 오노로 제3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었다. 나가야마라는 지명은 코타(乞田)의 옛 지명 나가야마에서 유래한다. 당시 도쿄의 주택 부족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여, 대규모 단지가 늘어서 있다. 나가야마역 주변은 지역 센터로서 "벨브 나가야마"가 정비되어, "그리나드 나가야마", "게이오 리토나드 나가야마", "오다큐 마르셰 나가야마", "휴맥스 파빌리온"과 같은 다수의 상업 시설과 종합병원인 "일본의과대학 다마나가야마병원"이 있다. 그 외에도 기업 등의 연수 센터가 산재해 있다. 또한, 6초메의 "서비스 인더스트리 에어리어"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북오프[69]라고 여겨지는 "북오프 슈퍼바자 다마나가야마점"이 있으며, 그 외에도 자동차 판매점과 중소기업의 공장이 모여 있다. 7초메에는 고쿠시칸대학 다마 캠퍼스가 있다.
; 코타(乞田)
: 코타라는 지명은 옛날, 가뭄으로 주민이 영주에게 "논을 구걸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간선도로인 다마 뉴타운 도오리와 벚꽃 명소가 되는 코타가와에 따른 일대로, 전역이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이다. 지명은 옛 코타의 명칭이 남아 있다.
; 카이도리(貝取)

: 1976년(쇼와 51년)에 입주가 시작된 제7주구를 구성한다. 조용하고 녹지가 많은 편안한 주택 환경이 특징이며, 북쪽 구릉지에는 옛 산촌을 보전한 카이도리야마 녹지가 있다. 카이도리라는 지명은 다이지 카이도리에서 유래한다.
; 토요가오카(豊ヶ丘)
: 1976년(쇼와 51년)에 입주가 시작된 제8주구를 구성한다. 토요가오카라는 지명은 오치아이의 옛 지명 토요가오카에서 유래한다. 휴식의 장소로 옛 산촌을 재생한 토요가오카키타 공원과 큰 연못과 비상용 저수조를 갖춘 토요가오카미나미 공원 등이 있다. 주택·도시정비공단(당시) 시공의 공동주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주구이지만, 1989년(헤이세이 원년)의 입주에서 종래부터 원칙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신주 지역으로의 민간 맨션 진출에 선구가 된 "코스모포럼 다마"가 있다.
; 오치아이(落合) (다마시)
: 오치아이 지역은 아오키바도오리에 따른 다마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과, 그것을 경계로 하여 동서에 있는 제9·10주구, 오네간센(尾根幹線道路) 부근의 오노로 제1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으로 구성된다. 오치아이라는 지명은 다이지 오치아이에서 유래한다. 제9주구는 도쿄도주택공급공사가 단독으로 조성하여, 1976년(쇼와 51년)에 입주가 시작되었다. 이어 1982년(쇼와 57년)에 입주가 시작된 제10주구에서는, 제11주구(츠루마키)와 일체의 굵직한 오픈 스페이스가 특징인 독특한 마을 만들기가 이루어졌다. 공원이나 녹지가 많이 배치되어, 고층에서 보면 주택가가 녹지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10주구의 북쪽 끝은 "다마센터 지역"이며, 츠루마키·오치아이 지역을 아우르는 유산책로(보행자 전용도로)가 다마센터역 앞의 보도 데크에 연결되어 있다.
; 츠루마키(鶴牧)
: 1983년(쇼와 58년)에 입주가 시작된 제11주구의 동부를 구성한다. 츠루마키라는 지명은 오치아이의 옛 지명 츠루마키에서 유래한다. 북부는 "다마센터 지역"에서 비즈니스파크로 위치 지정되어, 기업의 본사 빌딩과 다마추오 경찰서, 집배국인 다마우체국 등이 집적하고 있다. 이 주구에서 10주구(오치아이)에 걸친 오픈 스페이스 계획은 특징적이며, 다마 뉴타운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공원과 공원을 "선"으로서 유산책로로 잇는 것뿐만 아니라, 츠루마키 지역에서 오치아이 지역(제10주구)에 걸쳐 큰 공원 자체가 연속하여 링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거기서 뻗어 나가는 유산책로(보행자 전용도로)는 주택가를 아우르고, 다마센터역 앞의 보도 데크에 연결되어 있다. 공원 상호의 연결이나 유산책로는 차도와 입체 교차되어 있으므로, 주택지에서 역전, 학교 등으로는 차도를 전혀 횡단하지 않고 왕래할 수 있다. 이러한 "축"이 되는 후지미도오리 주변은, 특히 벚꽃철에는 시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일 정도의 명소가 되기도 하며, 그 경관의 훌륭함에서 일본도시계획학회에 의한 일본도시계획학회상 "계획설계상"을 수상하고 있다.
; 카라키다(唐木田)
: 1991년(헤이세이 3년) 입주 시작. 카라키다라는 지명은 오치아이의 옛 지명 카라키다에서 유래한다. 제11주구·제12주구를 구성하며, 광대한 골프 컨트리가 인접하는 단독주택지(무전주화된 가든로드 외)가 되어 있다. 카라키다역에서 뻗어 나가는 카라키다도오리에는 상점이 늘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다이츠여자대학 다마 캠퍼스와 기업의 연수 센터, 오다큐선의 카라키다 차고, 다마 청소 공장과 종합 복지 센터가 있으며, 지역 서쪽 끝은 "카라키다·나가이케 업무 지역"이 되어 있어 데이터센터가 많이 입지하고 있다. 개발에 따라 시경계의 변경이 이루어져, 일부가 마치다시에서 다마시에 편입된 외에, 그린워크 다마 부지의 약 절반은 다마시에서 하치오지시에 편입되었다.
; 아타고(愛宕) (다마시)
: 1972년(쇼와 47년) 입주 시작한 제17주구를 구성하며, 서쪽에 위치한 하치오지시 카시마와는 동일 주구를 이루고 있다. 아타고라는 지명은 현존하는 아타고 신사에서 유래한다. 지역에는 테니스 코트 등이 있는 아타고히가시 공원과 옛 산촌을 보전한 아타고야마 녹지가 있으며, 오네스지(尾根筋)의 고지에 따라 전망을 좋게 한 대규모 단지가 늘어서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귀를 기울이면'의 모델이 되고 있다.
; 히가시테라가타(東寺方)
: 제17주구의 북동쪽 끝의 겨우 2ha 부분을 구성한다. 테라가타라는 지명은 부근에 절이 많은 데서 유래하며, 하치오지시 오카타 지역에 같은 테라가타가 있는 것에서 동쪽이 붙었다. 지역에는 겨우 단지 6동이 서 있다. 히가시테라가타 단지라고 불린다.
; 와다(和田) (다마시)
: 제17주구의 시도 아타고키타도오리 이북을 구성한다. 지역에는 와다우체국이 있다. 와다 단지라고 불린다.
; 산노우시타(山王下)
: 제18주구를 구성하며, 북쪽에 위치한 하치오지시 마츠가야와 동일 주구를 이룬다. 산노우시타의 유래는 다이지 오치아이의 옛 지명 산노우시타에서 유래하지만, 당초는 다마·하치오지 시경계에 있던 "미혼마쓰"가 될 예정이었고, 오치아이지 산노우시타의 기존 주민이 산노우시타를 요구했기 때문에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 도립 미나미다마 간호 전문학교가 있는 외에, 기업의 연수 시설과 데이터센터가 집적하고 있다. 옛날에는 도쿄도의 다마 뉴타운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다마 뉴타운 개발 본부"가 있었다.
; 나카자와(中沢) (다마시)
: 1993년(헤이세이 5년) 입주 시작. 제11주구의 북서부를 구성한다. 나카자와의 유래는 다이지 오치아이의 옛 지명 나카자와에서 유래한다. 당초는 카라키다가 될 예정이었지만, 오치아이지 나카자와의 기존 주민이 나카자와를 요구했기 때문에, 나카자와가 되었다. 지역에는 미나미다마 지역 전체의 의료를 담당하는 "도쿄도립다마난부지역병원"이나 "텐본 병원" 등의 대형 의료기관이 집적하고 있다. 단독주택과 민간 맨션이 많고, 서쪽 끝의 야토부에는 꽃창포의 경승지 나카자와이케 공원이 있다. 뉴타운 외부에 인접하여 후추 컨트리클럽과 클럽하우스가 있다.
; 미나미노(南野) (다마시)
: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지역 7~11주구와 오노로 제1~2 토지구획정리사업 지역의, 오네간센(尾根幹線道路) 이남으로 구성된다. 미나미노는 대부분이 옛 마치다시 오노로마치로 다마시의 남쪽이라는 것을 명칭으로 삼았다. 케이센여학원대학 다마 캠퍼스와, 야간 조명이 있는 시영 야구장과 테니스 코트, 이축된 고민가와 연못 등을 갖춘 잇폰스기 공원이 있다. 미나미노가 위치하는 뉴타운과 마치다시와의 경계선이 되는 오네스지(尾根筋)에는 연속적으로 "요코야마노미치"라는 유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4. 2. 하치오지시 지역
하치오지시(八王子市) 유키 지구(由木地区)는 예로부터 "호리노우치(堀之内), 벳쇼(別所), 히가시나카노(東中野), 오오츠카(大塚), 마츠키(松木), 코에노(越野), 미나미오오사와(南大沢), 시모유키(下柚木), 카미유키(上柚木), 야리미즈(鑓水), 나카야마(中山)"의 11개 정(町字)과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구역(10개의 주구(住区)), 그리고 토지구획정리사업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마츠가야(松が谷)・카시마(鹿島)는 히가시나카노(東中野)・오오츠카(大塚)에 새로 설치된 지명이다.[23]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구역은 제12~20주구에 해당하며, 토지구획정리사업 구역은 유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벳쇼(別所), 나카야마(中山), 카미유키(上柚木), 마츠가야(松が谷), 카시마(鹿島) 지역을 제외하면, 다마 뉴타운(多摩ニュータウン) 개발 이전부터 거주하던 주민이 많다. 1964년 8월 1일에는 개발 반대 주민들의 의향으로 히노시(日野市) 편입 움직임도 있었으나, 개발 추진 측인 하치오지시(八王子市)에 편입되었다. 1971년 도쿄도(東京都)에 의해 신주택시가지개발사업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어 다마 뉴타운 개발이 진행되었다. 미나미오오사와(南大沢)・카미유키(上柚木) 지역 주변은 보행자 전용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다.[23]
구 유키(由木) 지역의 상세 정보는 다음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