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복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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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롬복섬은 인도네시아 소순다 열도에 위치한 섬으로, 린자니 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형과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롬복 해협을 통해 발리 섬과 인접해 있으며, 롬복 해협은 생물 분포 경계인 월리스 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생물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롬복섬은 4개의 군과 1개의 시로 행정 구역이 나뉘며, 사삭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관광, 농업, 어업이 주요 산업이다. 2018년에는 지진 피해를 입었으며, 냐례 축제와 같은 독특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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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 트라왕안은 인도네시아 롬복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일출, 린자니 산, 길리 메노에서 바라본 풍경을 볼 수 있다.
| 롬복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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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현지 이름 | ᬒᬋᬧᭀᬢ᭄ (구미 사삭) |
| 위치 | 인도네시아 |
| 군도 | 소순다 열도 |
| 면적 | 4,607.68 km2 |
| 최고봉 | 린자니산 |
| 높이 | 3,727 m |
| 최대 도시 | 마타람 |
| 최대 도시 인구 | 441,147 명 |
| 인구 | 3,963,842 명 (2023년 중반 추정) |
| 인구 밀도 | 860.27 명/km2 |
| 민족 | 사삭족 발리족 비마족 (음보조)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숨바와족 플로레스족 아랍계 인도네시아인 자바족 반자르족 말레이족 바탁족 |
| 별칭 | 롬복 섬 주민, 사삭족 |
| 행정 구역 | |
| 속한 주 | 서누사틍가라주 |
| 사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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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리
롬복섬 북부에는 린자니 산(3726 m)이 우뚝 솟아 남쪽 기슭에는 넓은 대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목축이 활발하며 쌀, 쪽, 커피를 생산한다. 서쪽 절반은 발리 사람이 많이 이동하고 역사적으로 그 속령이었던 롬복섬의 동쪽 반 부에는 무슬림인 사삭인들이 거주한다. 발리 섬 사이의 롬복 해협은 생물 분포선인 월리스 선이 지나고 있다.

이 섬은 롬복 해협의 바로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생물지리학적으로 인도말라야 생물지리구의 동물상과 오스트랄라시아의 뚜렷하게 다른 동물상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이다. 이 구분은 "월리스 선"(Wallace Line영어)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두 지역 간의 구분에 대해 처음 언급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1823–1913)의 이름을 따왔을 뿐만 아니라 두 생물군계 사이의 급격한 경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롬복은 소순다 열대 낙엽수림 생태지역에 속한다.
롬복의 동쪽에는 알라스 해협이 있으며, 롬복 섬과 인접한 섬바와 섬을 구분하는 좁은 해역이다.
섬의 지형은 중앙에 위치한 성층 화산 린자니 산이 지배하며, 린자니 산은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으로 3726m까지 솟아 있어 롬복은 최고점별 섬 목록에서 8번째로 높은 섬이다. 린자니 산의 가장 최근 분화는 2016년 9월 구눙 바루자리에서 일어났다. 2010년 분화에서는 화산재가 린자니의 칼데라 호수인 세가라 아낙 호수의 바루자리 원뿔에서 대기 중 2km까지 상승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용암은 칼데라 호수로 흘러 들어가 호수의 온도를 높였으며, 화산재 낙하는 린자니 산 경사면의 농작물에 피해를 입혔다. 이 화산과 그 분화구 호수인 세가라 아낙 호수 (바다의 아이)는 1997년에 설립된 구눙 린자니 국립공원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최근 증거에 따르면, 현재는 칼데라만 남아 있는 고대 화산인 사마라스 산이 1257년 사마라스 화산 폭발의 근원이었으며, 이는 기록된 역사상 가장 큰 화산 폭발 중 하나였고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
롬복의 고지는 숲으로 덮여 있으며 대부분 미개발 상태이다. 저지대는 매우 경작되어 있다. 쌀, 콩, 커피, 담배, 면, 계피, 카카오, 정향, 카사바, 옥수수, 코코넛, 코프라, 바나나 및 바닐라는 이 섬의 비옥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주요 작물이다. 섬의 남쪽 부분은 비옥하지만 특히 남쪽 해안선으로 갈수록 더 건조하다.
롬복섬은 남북, 동서 모두 약 80킬로미터의 섬이며, 서쪽에는 발리 섬, 동쪽에는 섬바와 섬이 인접해 있다. 1년 중 4월부터 9월이 건기, 10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에 해당한다. 우기와 건기의 강수량 차이가 크며, 발리 섬에 비해 건조하다.[56] 농업과 목축이 활발하며, 쌀, 쪽, 커피, 카카오를 생산한다.[57]
북부에는 화산호인 Lake Segara Anak영어를 중심으로 한 화산대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활발한 화산인 린자니 산(3726미터)이 솟아 있으며, 건기에는 남쪽에 사바나가 펼쳐져 있다. 사바나 외에도 산지, 저지 우림 등의 식생이 있으며,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2018년에는 린자니 산을 포함한 롬복섬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과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58][57]
섬의 중앙은 동서 56킬로미터, 남북 25킬로미터의 평야로 되어 있으며, 섬 인구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56] 서롬복이라고 불리는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북동부에서는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동롬복이라고 불리며, 역사적으로 그 속령이었던 남동부에는 무슬림인 사사크인이 거주한다. 두 지역 사이에는 주링(Juring)이라고 불리는 깊은 삼림대가 있다. 섬의 남부는 말레셰 산(716미터)을 정점으로 하는, 해발 300~400미터의 구릉대가 동서로 뻗어 있다.
서쪽 인접한 발리 섬과의 사이인 롬복 해협은 대형 유조선의 중요한 항로이며, 생물 분포상의 월리스 선이 지나고 있다.
2. 1. 자연 환경
롬복섬은 인도네시아 소순다 열도에 위치한 섬으로, 생물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롬복 해협은 인도말라야 생물지리구와 오스트랄라시아 동물상을 구분하는 월리스 선이 지나는 곳이다. 롬복은 소순다 열대 낙엽수림 생태지역에 속한다.섬의 지형은 중앙에 위치한 린자니 산(3,726m)이 주를 이루며,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이다. 린자니 산의 가장 최근 분화는 2016년 9월에 발생했다. 2010년 분화에서는 화산재가 2km 상공까지 치솟았고, 용암이 칼데라 호수인 세가라 아낙 호수로 흘러들어 호수 온도를 높였다. 린자니 산과 세가라 아낙 호수는 구눙 린자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257년에는 현재 칼데라만 남아 있는 사마라스 산이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를 초래했다는 증거가 있다.
롬복의 고지는 대부분 미개발 숲으로 덮여 있고, 저지대는 경작지로 활용된다. 쌀, 콩, 커피, 담배, 면, 계피, 카카오, 정향, 카사바, 옥수수, 코코넛, 코프라, 바나나, 바닐라 등이 주요 작물이다. 섬 남쪽은 비옥하지만 남쪽 해안으로 갈수록 건조하다.
롬복섬은 동서, 남북으로 약 80km이며, 서쪽에는 발리 섬, 동쪽에는 섬바와 섬이 인접해 있다.[56] 4월부터 9월은 건기, 10월부터 3월은 우기이며, 발리 섬보다 건조하다.[56] 농업과 목축이 활발하며, 쌀, 쪽, 커피, 카카오를 생산한다.[57] 북부에는 화산호인 세가라 아낙 호수를 중심으로 한 화산대가 있고, 건기에는 남쪽에 사바나가 펼쳐진다.[58] 2018년에는 린자니 산을 포함한 롬복섬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과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58][57]
섬 중앙은 동서 56km, 남북 25km의 평야이며, 섬 인구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활한다.[56] 서롬복은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비옥한 지역이다. 동롬복에는 무슬림인 사삭인이 주로 거주한다. 섬 남부는 말레셰 산(716m)을 정점으로 하는 구릉지대이다.
2. 2. 기후
롬복섬은 인도말라야 생물지리구와 오스트랄라시아를 구분하는 월리스 선이 지나는 곳에 위치한다. 소순다 열대 낙엽수림 생태지역에 속하며, 동쪽으로는 알라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섬바와 섬과 인접해 있다.섬의 지형은 중앙에 위치한 성층 화산인 린자니 산이 지배적이다. 린자니 산은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으로, 높이는 3,726m이다. 린자니 산의 가장 최근 분화는 2016년 9월에 발생했다. 린자니 산과 세가라 아낙 호수는 구눙 린자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257년에는 역사상 가장 큰 화산 폭발 중 하나였던 1257년 사마라스 화산 폭발이 발생하여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를 일으켰다.
롬복의 고지는 숲으로 덮여 있고, 저지대는 경작지로 활용된다. 쌀, 콩, 커피, 담배, 면, 계피, 카카오, 정향, 카사바, 옥수수, 코코넛, 코프라, 바나나, 바닐라 등이 재배된다. 섬의 남쪽은 비옥하지만 건조한 편이다.
롬복섬은 남북, 동서 모두 약 80km이며, 서쪽에는 발리 섬, 동쪽에는 섬바와 섬이 있다. 4월부터 9월은 건기, 10월부터 3월은 우기이며, 우기와 건기의 강수량 차이가 크다.[56] 농업과 목축이 활발하며, 쌀, 쪽, 커피, 카카오를 생산한다.[57]
북부에는 린자니 산을 중심으로 한 화산대가 있으며, 건기에는 남쪽에 사바나가 펼쳐진다. 산지, 저지 우림 등 다양한 식생이 나타나며,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2018년에는 린자니 산을 포함한 롬복섬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과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58][57]
섬 중앙은 동서 56km, 남북 25km의 평야 지대이며, 섬 인구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한다.[56] 서롬복은 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반면, 동롬복에는 무슬림인 사사크인이 주로 거주한다. 섬 남부는 해발 300~400m의 구릉지대이다.
롬복 해협은 대형 유조선의 주요 항로이며, 월리스 선이 통과하는 곳이다.
2. 3. 수자원 문제
롬복섬의 물 공급은 위태로운 상황이며, 이는 주도인 마타람의 물 공급과 섬 전체의 물 공급에 부담을 주고 있다.[22] 남부 및 중부 지역이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서누사 텡가라주는 삼림 및 지하수 손상과 황폐화 증가, 그리고 인구 증가로 인해 전반적으로 물 위기에 직면해 있다. 총 196만 헥타르 중 16만 헥타르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누사텡가라주 산림 환경 및 보안 서비스 국장 안디 프라마리는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5년 안에 이 NTB(서누사텡가라) 지역 주민들이 물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 농업 생산성도 감소할 것이고, 주민들은 우물에서 물 부족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22] NTB 지역의 높은 목재 절도 사건이 이 문제에 기여하고 있다.[22]2010년 9월 중앙 롬복군에서 일부 마을 주민들은 물 한 통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갔다고 한다. 주도인 마타람에서 약 50km 떨어진 작은 해안 마을인 니엘란도는 수년 동안 우물이 말라 있었다.[23] 이 문제는 종갓, 자나프리아, 프라야 티무르, 프라야 바라트, 프라야 바라트 다야 및 푸줏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보고되었으며, 2010년 주 정부는 6개 지역 모두를 가뭄 지역으로 선포했다.[23] 주의 다른 주요 섬인 숨바와도 2010년에 심각한 가뭄을 겪어 주 전체 문제로 이어졌다.[24]
롬복섬 남부 지역은 낮은 강수량과 수자원 부족으로 인해 건조하며 물 부족에 취약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2011년 5월, 판다두리 댐 건설 기공식이 시작되었으며, 완공되면 약 2,570만 입방 미터의 물을 수용하고 10,350 헥타르의 농지에 관개할 수 있을 것이다.[25]
3. 역사


기원전 6세기경 롬복섬 남부에 발리나 숨바와 같은 계통의 인류가 거주했다는 사실이 고고학 조사로 밝혀졌다.[56] 9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동롬복으로 인도-미얀마 계통의 사삭족이 이동하여 왕국을 건설했다. 사삭인의 전설에 따르면, 마자파힛 왕국의 왕자 라덴 마스파힛이 바투 바랑 왕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며, 이 나라가 롬복의 다른 이름인 슬라파란이라고 여겨진다.[56] 그 후, 13세기에는 자바인 세력이 쿠다로국을 세웠다고 한다.
14세기 마자파힛 필사본 나가라크레타가마 14장에서는 "롬복 미라"를 마자파힛의 종주권 아래 있는 섬 중 하나로 언급했다.[9] 마자파힛 왕국의 서사시 『나가라크르타가마』에 따르면, 마자파힛 왕국의 자바 침공은 1343년에 이루어졌고, 이듬해에는 롬복섬에 영향이 미쳐 슬라파란과 쿠다로를 예속시켰다.[56] 마자파힛 왕국 붕괴 후, 롬복섬은 소왕국들이 난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15세기 전반에 롬복섬에서 이슬람교에 의한 최초의 개종 운동이 일어나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257 사말라스 분화를 기록한 문서인 ''바바드 롬복'' 외에는 17세기 이전의 롬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시기 이전에는 사삭 '왕자'가 다스리는 수많은 경쟁적이고 분쟁하는 작은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열은 17세기 초에 서부 롬복을 장악한 이웃 발리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마카사르족은 인접한 숨바와의 식민지에서 동부 롬복을 침략했다. 네덜란드인은 1674년에 처음 롬복을 방문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롬복의 사삭 공주와 첫 번째 조약을 체결했다. 발리족은 1750년까지 섬 전체를 장악했지만, 발리족 내부의 분쟁으로 인해 섬은 네 개의 분쟁하는 발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838년, 마타람 왕국은 경쟁 세력을 장악했다.
17세기 초두에 카랑가슴 왕국이 롬복섬에 마타람이나 차크라누가라 등의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숨바와의 마카사르족이 동롬복으로 진출하여, 롬복섬은 1849년의 롬복 전쟁 종결까지, 장기간에 걸친 항쟁의 장이 되었다.[56]
서부 롬복의 사삭족과 발리족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조화로웠으며 혼인이 흔했다. 그러나 섬 동부에서는 관계가 덜 우호적이었고, 발리족은 주둔한 요새에서 통제력을 유지했다. 사삭 마을 정부는 유지되었지만, 마을 촌장은 발리족의 세금 징수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농노가 되었고, 사삭 귀족은 권력과 토지 소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사삭 농민들이 발리족에 대항한 많은 반란 중 하나에서, 사삭 추장들은 발리의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내 롬복을 통치하도록 요청했다. 1894년 6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 반 데르 비크는 동부 롬복의 사삭 반군과 조약을 체결했다. 그는 롬복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고 발리족 라자는 네덜란드의 요구에 굴복했다. (네덜란드의 롬복 개입 참조) 그러나 젊은 왕자들은 라자를 무시하고 네덜란드를 공격하여 밀어냈다. 네덜란드는 반격하여 마타람을 점령했고, 라자는 항복했다. 1895년, 섬 전체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합병되었다. 네덜란드는 발리족과 사삭 귀족의 지지를 얻어 롬복의 50만 명을 250명 이하의 병력으로 통치했다. 롬복에서는 네덜란드를 발리족 헤게모니로부터 해방시킨 해방자로 기억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2 남방원정함대의 일부로 구성된 일본 침공군은 롬복 섬을 포함한 소순다 열도를 침략하여 점령했다. 1942년 3월 8일 09:00에 수라바야 항구를 출발하여 롬복 섬으로 향했다. 1942년 3월 9일 17:00에 함대는 롬복 섬의 암페난 항구로 들어갔다. 네덜란드 수비군은 곧 패배했고 섬은 점령되었다.[10]
적대 행위가 종식된 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철수했고 롬복은 일시적으로 네덜란드의 통제 하에 돌아갔다. 이후 네덜란드로부터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발리족과 사삭 귀족은 롬복을 계속 지배했다. 1958년, 섬은 서누사틍가라주에 편입되었고, 마타람은 주도가 되었다. 자카르타와 중부 자바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후 섬 전역에서 1965-66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 학살이 발생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행정부(1967–1998) 동안 롬복은 어느 정도의 안정과 발전을 경험했지만, 자바와 발리에서와 같은 호황과 부를 누리지는 못했다. 1966년에는 흉작으로 기근이 발생했고, 1973년에는 식량 부족이 발생했다. 국가 정부의 ''트란스미그라시''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을 롬복에서 이주시켰다. 1980년대에는 외부 개발업자와 투기꾼들이 초기 관광 붐을 일으켰지만, 지역 주민들의 수입은 제한적이었다. 1990년대 후반의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는 롬복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00년 1월, 롬복 외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선동자''에 의해 기독교인과 중국계가 주요 희생자가 된 폭동이 마타람 전역에서 발생했다. 관광업은 침체되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7월 롬복 지진으로 20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8일 후에 발생한 더 큰 지진의 전진이었다.[11][12] 2018년 8월 5일 롬복 지진은 모멘트 규모 7.0의 지진이었으며, 북롬복에 파괴적인 피해를 입혔고, 인근 발리에도 피해를 입혔다. 총 550명 이상이 사망하고 7,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13] 또 다른 롬복 지진이 2018년 8월 19일에 발생하여 13명이 사망하고 1,800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14]
인도네시아 국가 재난 관리청은 "지진은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제 원조를 거부했고, 현지인들이 도움 없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5] 그러나 롬복 주변에는 재난 관리 및 구호를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따라서 재난에 대한 최초 대응자는 경찰 및 군 병력과 같은 지역 정부 기관, 국내 및 해외 자원 봉사자, 그리고 길리 섬을 포함하여 지진의 영향을 덜 받은 롬복 지역의 사업주들이었다. 소규모 국제 모금 활동이 소셜 네트워크와 웹을 통해 조직되어 식량 및 깨끗한 물과 같은 기본적인 자원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16] 임시 및 영구적인 쉼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17]
3. 1. 고대 ~ 중세
14세기 마자파힛 필사본 나가라크레타가마 14장에서는 "롬복 미라"를 마자파힛의 종주권 아래 있는 섬 중 하나로 언급했다.[9] 1257 사말라스 분화를 기록한 문서인 ''바바드 롬복'' 외에는 17세기 이전의 롬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시기 이전에는 사삭 '왕자'가 다스리는 수많은 경쟁적이고 분쟁하는 작은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기원전 6세기경 롬복섬 남부에 발리나 숨바와 같은 계통의 인류가 거주했다는 사실이 고고학 조사로 밝혀졌다.[56] 9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동롬복으로 인도-미얀마 계통의 사삭족이 이동하여 왕국을 건설했다. 사삭인의 전설에 따르면, 마자파힛 왕국의 왕자 라덴 마스파힛이 바투 바랑 왕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며, 이 나라가 롬복의 다른 이름인 슬라파란이라고 여겨진다.[56] 그 후, 13세기에는 자바인 세력이 쿠다로국을 세웠다고 한다. 마자파힛 왕국의 서사시 『나가라크르타가마』에 따르면, 마자파힛 왕국의 자바 침공은 1343년에 이루어졌고, 이듬해에는 롬복섬에 영향이 미쳐 슬라파란과 쿠다로를 예속시켰다.[56] 마자파힛 왕국 붕괴 후, 롬복섬은 소왕국들이 난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15세기 전반에 롬복섬에서 이슬람교에 의한 최초의 개종 운동이 일어나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17세기 초에 서부 롬복을 장악한 이웃 발리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마카사르족은 인접한 숨바와의 식민지에서 동부 롬복을 침략했다. 네덜란드인은 1674년에 처음 롬복을 방문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롬복의 사삭 공주와 첫 번째 조약을 체결했다. 발리족은 1750년까지 섬 전체를 장악했지만, 발리족 내부의 분쟁으로 인해 섬은 네 개의 분쟁하는 발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838년, 마타람 왕국은 경쟁 세력을 장악했다.
17세기 초두에 카랑가슴 왕국이 롬복섬에 마타람이나 차크라누가라 등의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향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숨바와의 마카사르족이 동롬복으로 진출하여, 롬복섬은 1849년의 롬복 전쟁 종결까지, 장기간에 걸친 항쟁의 장이 되었다.[56]
서부 롬복의 사삭족과 발리족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조화로웠으며 혼인이 흔했다. 그러나 섬 동부에서는 관계가 덜 우호적이었고, 발리족은 주둔한 요새에서 통제력을 유지했다. 사삭 마을 정부는 유지되었지만, 마을 촌장은 발리족의 세금 징수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농노가 되었고, 사삭 귀족은 권력과 토지 소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3. 2. 네덜란드 식민 통치
14세기 마자파힛의 필사본 나가라크레타가마 14장에서는 "롬복 미라"를 마자파힛의 종주권 아래 있는 섬 중 하나로 언급했다.[9] 1257 사말라스 분화를 기록한 문서인 ''바바드 롬복'' 외에는 17세기 이전의 롬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시기 이전에는 사삭 '왕자'가 다스리는 수많은 경쟁적이고 분쟁하는 작은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열은 17세기 초에 서부 롬복을 장악한 이웃 발리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한편 마카사르족은 인접한 숨바와의 식민지에서 동부 롬복을 침략했다. 네덜란드인은 1674년에 처음 롬복을 방문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롬복의 사삭 공주와 첫 번째 조약을 체결했다. 발리족은 1750년까지 섬 전체를 장악했지만, 발리족 내부의 분쟁으로 인해 섬은 네 개의 분쟁하는 발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838년, 마타람 왕국은 경쟁 세력을 장악했다.
서부 롬복의 사삭족과 발리족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조화로웠으며 혼인이 흔했다. 그러나 섬 동부에서는 관계가 덜 우호적이었고, 발리족은 주둔한 요새에서 통제력을 유지했다. 사삭 마을 정부는 유지되었지만, 마을 촌장은 발리족의 세금 징수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농노가 되었고, 사삭 귀족은 권력과 토지 소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사삭 농민들이 발리족에 대항한 많은 반란 중 하나에서, 사삭 추장들은 발리의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내 롬복을 통치하도록 요청했다. 1894년 6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 반 데르 비크는 동부 롬복의 사삭 반군과 조약을 체결했다. 그는 롬복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고 발리족 라자는 네덜란드의 요구에 굴복했다. (네덜란드의 롬복 개입 참조) 그러나 젊은 왕자들은 라자를 무시하고 네덜란드를 공격하여 밀어냈다. 네덜란드는 반격하여 마타람을 점령했고, 라자는 항복했다. 1895년, 섬 전체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합병되었다. 네덜란드는 발리족과 사삭 귀족의 지지를 얻어 롬복의 50만 명을 250명 이하의 병력으로 통치했다. 롬복에서는 네덜란드를 발리족 헤게모니로부터 해방시킨 해방자로 기억하고 있다.
3. 3. 제2차 세계 대전과 독립
14세기 마자파힛의 필사본 나가라크레타가마는 "롬복 미라"를 마자파힛의 종주권 아래 있는 섬 중 하나로 언급했다.[9] 1257 사말라스 분화를 기록한 ''바바드 롬복'' 외에는 17세기 이전의 롬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이 시기 이전에는 사삭 '왕자'가 다스리는 수많은 경쟁적이고 분쟁하는 작은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9] 이러한 분열은 17세기 초 서부 롬복을 장악한 이웃 발리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마카사르족은 인접한 숨바와의 식민지에서 동부 롬복을 침략했다.[9]네덜란드인은 1674년에 처음 롬복을 방문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롬복의 사삭 공주와 첫 번째 조약을 체결했다.[9] 발리족은 1750년까지 섬 전체를 장악했지만, 발리족 내부 분쟁으로 섬은 네 개의 분쟁하는 발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9] 1838년, 마타람 왕국이 경쟁 세력을 장악했다. 서부 롬복의 사삭족과 발리족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조화로웠으며 혼인이 흔했다. 그러나 섬 동부에서는 관계가 덜 우호적이었고, 발리족은 주둔한 요새에서 통제력을 유지했다. 사삭 마을 정부는 유지되었지만, 마을 촌장은 발리족의 세금 징수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농노가 되었고, 사삭 귀족은 권력과 토지 소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사삭 농민들이 발리족에 대항한 많은 반란 중 하나에서, 사삭 추장들은 발리의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내 롬복을 통치하도록 요청했다. 1894년 6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 반 데르 비크는 동부 롬복의 사삭 반군과 조약을 체결했다. 그는 롬복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고 발리족 라자는 네덜란드의 요구에 굴복했다. (네덜란드의 롬복 개입 참조) 그러나 젊은 왕자들은 라자를 무시하고 네덜란드를 공격하여 밀어냈다. 네덜란드는 반격하여 마타람을 점령했고, 라자는 항복했다. 1895년, 섬 전체가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합병되었다. 네덜란드는 발리족과 사삭 귀족의 지지를 얻어 롬복의 50만 명을 250명 이하의 병력으로 통치했다. 롬복에서는 네덜란드를 발리족 헤게모니로부터 해방시킨 해방자로 기억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2 남방원정함대의 일부로 구성된 일본 침공군은 롬복 섬을 포함한 소순다 열도를 침략하여 점령했다. 1942년 3월 8일 09:00에 수라바야 항구를 출발하여 롬복 섬으로 향했다. 1942년 3월 9일 17:00에 함대는 롬복 섬의 암페난 항구로 들어갔다. 네덜란드 수비군은 곧 패배했고 섬은 점령되었다.[10]
적대 행위가 종식된 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철수했고 롬복은 일시적으로 네덜란드의 통제 하에 돌아갔다. 이후 네덜란드로부터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발리족과 사삭 귀족은 롬복을 계속 지배했다. 1958년, 섬은 서누사틍가라주에 편입되었고, 마타람은 주도가 되었다. 자카르타와 중부 자바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후 섬 전역에서 1965-66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 학살이 발생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행정부(1967–1998) 동안 롬복은 어느 정도의 안정과 발전을 경험했지만, 자바와 발리에서와 같은 호황과 부를 누리지는 못했다. 1966년에는 흉작으로 기근이 발생했고, 1973년에는 식량 부족이 발생했다. 국가 정부의 ''트란스미그라시''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을 롬복에서 이주시켰다. 1980년대에는 외부 개발업자와 투기꾼들이 초기 관광 붐을 일으켰지만, 지역 주민들의 수입은 제한적이었다. 1990년대 후반의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는 롬복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00년 1월, 롬복 외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선동자''에 의해 기독교인과 중국계가 주요 희생자가 된 폭동이 마타람 전역에서 발생했다. 관광업은 침체되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3. 4. 현대
14세기 마자파힛의 필사본 나가라크레타가마는 "롬복 미라"를 마자파힛의 종속된 섬 중 하나로 언급했다.[9] 17세기 이전의 롬복에 대해서는 1257 사말라스 분화를 기록한 ''바바드 롬복''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시기 이전에는 사삭 '왕자'가 다스리는 작고 경쟁적인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7세기 초 서부 롬복을 장악한 이웃 발리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마카사르족은 인접한 숨바와의 식민지에서 동부 롬복을 침략했다. 네덜란드인은 1674년에 처음 롬복을 방문했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롬복의 사삭 공주와 첫 번째 조약을 체결했다. 발리족은 1750년까지 섬 전체를 장악했지만, 발리족 내부 분쟁으로 인해 섬은 네 개의 분쟁하는 발리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1838년 마타람 왕국이 경쟁 세력을 장악했다.
서부 롬복의 사삭족과 발리족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조화로웠고 혼인이 흔했다. 그러나 섬 동부에서는 관계가 덜 우호적이었고, 발리족은 주둔한 요새에서 통제력을 유지했다. 사삭 마을 정부는 유지되었지만, 마을 촌장은 발리족의 세금 징수원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농노가 되었고, 사삭 귀족은 권력과 토지 소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사삭 농민들이 발리족에 대항한 많은 반란 중 하나에서, 사삭 추장들은 발리의 네덜란드에 사절을 보내 롬복을 통치하도록 요청했다. 1894년 6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 반 데르 비크는 동부 롬복의 사삭 반군과 조약을 체결하고 롬복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고, 발리족 라자는 네덜란드의 요구에 굴복했다. (네덜란드의 롬복 개입 참조) 그러나 젊은 왕자들은 라자를 무시하고 네덜란드를 공격하여 밀어냈다. 네덜란드는 반격하여 마타람을 점령했고, 라자는 항복했다. 1895년, 섬 전체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합병되었다. 네덜란드는 발리족과 사삭 귀족의 지지를 얻어 롬복의 50만 명을 250명 이하의 병력으로 통치했으며, 롬복에서는 네덜란드를 발리족 헤게모니로부터 해방시킨 해방자로 기억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제2 남방원정함대의 일부로 구성된 일본 침공군은 롬복 섬을 포함한 소순다 열도를 침략하여 점령했다. 1942년 3월 9일 17:00에 함대는 롬복 섬의 암페난 항구에 들어왔고, 네덜란드 수비군은 곧 패배하여 섬은 점령되었다.[10]
적대 행위가 종식된 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철수했고 롬복은 일시적으로 네덜란드의 통제 하에 돌아갔다. 이후 네덜란드로부터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발리족과 사삭 귀족은 롬복을 계속 지배했다. 1958년, 섬은 서누사틍가라주에 편입되었고, 마타람은 주도가 되었다. 자카르타와 중부 자바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후 섬 전역에서 1965-66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 학살이 발생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신질서 행정부(1967–1998) 동안 롬복은 어느 정도의 안정과 발전을 경험했지만, 자바와 발리에서와 같은 호황과 부를 누리지는 못했다. 1966년에는 흉작으로 기근이 발생했고, 1973년에는 식량 부족이 발생했다. 국가 정부의 ''트란스미그라시''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을 롬복에서 이주시켰다. 1980년대에는 외부 개발업자와 투기꾼들이 초기 관광 붐을 일으켰지만, 지역 주민들의 수입은 제한적이었다. 1990년대 후반의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는 롬복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00년 1월, 롬복 외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선동자''에 의해 기독교인과 중국계가 주요 희생자가 된 폭동이 마타람 전역에서 발생했다. 관광업은 침체되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7월 롬복 지진으로 20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8일 후에 발생한 더 큰 지진의 전진이었다.[11][12] 2018년 8월 5일 롬복 지진은 모멘트 규모 7.0의 지진이었으며, 북롬복에 파괴적인 피해를 입혔고, 인근 발리에도 피해를 입혔다. 총 550명 이상이 사망하고 7,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13] 또 다른 롬복 지진이 2018년 8월 19일에 발생하여 13명이 사망하고 1,800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14]
인도네시아 국가 재난 관리청은 "지진은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국제 원조를 거부했고, 현지인들이 도움 없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5] 그러나 롬복 주변에는 재난 관리 및 구호를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따라서 재난에 대한 최초 대응자는 경찰 및 군 병력과 같은 지역 정부 기관, 국내 및 해외 자원 봉사자, 그리고 길리 섬을 포함하여 지진의 영향을 덜 받은 롬복 지역의 사업주들이었다. 소규모 국제 모금 활동이 소셜 네트워크와 웹을 통해 조직되어 식량 및 깨끗한 물과 같은 기본적인 자원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16] 임시 및 영구적인 쉼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17]
4. 행정
롬복섬은 서누사텡가라주(Nusa Tenggara Barat) 주지사의 행정 관할 하에 있으며, 주는 서롬복의 마타람에서 관리된다.[4][5][6]
섬은 행정적으로 4개의 "kabupaten"(군/구)과 1개의 "kota"(시)로 나뉜다.
| 지역 코드 | 도시 또는 군/구 이름 | 수도 | 면적 (km2) | 2010 인구조사 | 2020 인구조사 | 2023년 중반 추정 인구 | 인간 개발 지수(HDI)[7] 2023년 추정치 |
|---|---|---|---|---|---|---|---|
| 52.01 | 서롬복군(Lombok Barat) | 게룽 | 922.91 | 599986 | 721481 | 753641 | 0.721 (높음) |
| 52.02 | 중앙롬복군(Lombok Tengah) | 프라야 | 1208.39 | 860209 | 1034859 | 1099201 | 0.704 (높음) |
| 52.03 | 동롬복군(Lombok Timur) | 셀롱 | 1605.55 | 1105582 | 1325240 | 1404343 | 0.706 (높음) |
| 52.08 | 북롬복군(Lombok Utara) | 탄중 | 809.53 | 200072 | 247400 | 265500 | 0.680 (보통) |
| 52.71 | 마타람 시 | 61.30 | 402843 | 429651 | 441147 | 0.811 (매우 높음) | |
| '총계 롬복섬' | 4607.68 | 3168692 | 3758631 | 3963842 |
5. 인구
롬복섬 주민의 85%는 사삭족이며, 그들의 조상은 기원전 1천 년에 자바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26] 다른 주민으로는 약 10~15%의 발리인을 포함하며, 소수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자바인, 숨바와족 및 아랍계 인도네시아인이 있다. 사삭족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발리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힌두교를 믿는 발리인과 달리 대부분 이슬람교도이며, 풍경에는 모스크와 첨탑이 점재해 있다.[26] 이슬람 전통과 휴일은 섬의 일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26]
2008년 롬복 섬에는 866,838가구가 있었고 가구당 평균 3.635명이 거주했다.[26] 2020년 인구 조사에서 누사 틍가라 바라트 주(NTB)의 인구는 5,320,092명으로 기록되었으며,[27] 2022년 중반 공식 추정치는 5,590,359명이었으며, 이 중 70.9% 이상이 롬복에 거주하여 당시 인구는 3,963,842명이었다.[28] 199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롬복 섬의 전체 인구는 2,403,025명이며, 서롬복에 858,996명, 중앙롬복에 678,746명, 동롬복에 865,28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약 9할이 사삭족이다.[56]
6. 종교
롬복섬의 원주민인 사삭족은 주로 무슬림이다.[29] 이슬람이 도래하기 전 롬복은 자바를 통해 섬에 도달한 오랜 기간의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소수의 발리 힌두교 문화가 롬복에 남아있다. 이슬람은 17세기에 숨바와에서 도착한 상인들에 의해 롬복에 처음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들은 동부 롬복에 추종자들을 세웠다. 다른 기록에서는 16세기 전반에 처음 영향을 받았다고 묘사한다. 롬복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야자 잎 필사본 바바드 롬복(Babad Lombok)은 수난 프라펜이 인구를 개종하고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아버지 기리의 수수후난 라투에 의해 롬복과 숨바와로 군사 원정을 보낸 방법을 설명한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는 매우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띠며, 종종 애니미즘 및 힌두-불교 신념과 관습을 이슬람과 혼합했다.[30]
보다 정통적인 이슬람 버전은 20세기 초에 인기를 얻었다. 1967년과 1968년 롬복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의 종교화 프로그램(종교 획득)은 종교적 충성과 관습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다. 이러한 종교화 프로그램은 나중에 롬복에서 종교적 관습의 더 큰 동질성을 가져왔다. 힌두교 소수 종교는 다수 무슬림 종교와 함께 롬복에서 여전히 실천되고 있다.[30]
힌두교는 발리족과 소수의 원주민 사삭족이 따른다. 모든 주요 힌두교 종교 의식이 롬복에서 기념되며, 힌두교 인구가 다수인 마을이 롬복 전역에 많이 있다. 지역 전설에 따르면 섬에서 가장 오래된 두 마을인 바얀과 셈발룬은 마자파힛의 왕자에 의해 세워졌다.[30]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힌두교 신봉자는 101,000명으로,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마타람 레겐시에서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였다.[31] 2012년에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롬복의 힌두교 인구는 445,933명이었다. 이 수치는 섬 인구의 10~15%가 힌두교라는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견해와 더 일치한다.[32]
나가라케르타가마는 롬복에서 발견된 14세기 야자 잎 시는 섬을 마자파힛 제국의 봉신 중 하나로 묘사한다. 이 필사본에는 마자파힛 왕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사원, 궁궐 및 여러 의례 관찰을 설명하여 마자파힛 제국에서 힌두-불교의 중요성을 확인했다.[30]
기독교는 소수의 사람들이 실천하며, 여기에는 일부 중국계 민족과 발리 및 동누사텡가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포함된다. 암페난, 마타람, 프라야 및 탄중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교구가 있다. 마타람에는 가톨릭 병원도 있다.
탄중 주변에서는 약 800명의 불교 신자들이 살고 있으며 두 개의 불교 사원을 방문할 수 있다.
롬복의 작은 아랍 공동체는 예멘 출신 상인들의 초기 정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공동체는 주로 마타람의 오래된 항구인 암페난에서 여전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롬복에서만 발견되는 비정통적인 이슬람 집단은 Wektu Telu("세 번")로, 다른 지역의 다수 무슬림이 관찰하는 다섯 번 대신 세 번의 의무적인 매일의 기도(살라)를 수행한다.[33][34] Waktu Telu의 신념은 애니미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슬람뿐만 아니라 힌두교와 범신론적 신념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이슬람의 영향으로 희석되지 않은 원래의 사삭 문화를 나타낼 수 있는 토착 사삭 신념을 유지하는 보다가 남아있다.[30]
사삭족 내에서는 애니미즘 신념의 많은 영향이 지배적이며, 그들 대부분은 영이나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 그들은 죽은 자를 포함한 영과 소통할 때 음식과 기도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며, 의례적인 전통 관습이 지속된다.[35] 전통적인 마법은 악과 질병을 막고 분쟁과 반감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다. 마법은 혼자서 실행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일에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이 사람에게 돈이나 선물이 주어지며, 가장 강력한 실력자들은 상당한 존경을 받는다.[36]
7. 경제
롬복섬을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과 섬의 많은 상품은 발리에서 해상 또는 항공 노선을 통해 롬복 해협을 건너 이동한다. 두 섬은 25 km 떨어져 있다.[37] 롬복섬은 "훼손되지 않은 발리" 또는 "발리의 자매 섬"으로 마케팅된다. 중앙 정부의 지원으로 롬복섬과 숨바와섬은 인도네시아의 두 번째 국제 및 국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롬복섬은 자연스럽고, 붐비지 않으며, 개발되지 않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며, 느긋한 분위기와 섬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 환경을 탐험할 기회를 찾아 여행객들이 방문한다. 롬복/숨바와섬에 대한 보다 현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은 발리와 차별화하고 롬복섬을 독립적인 여행지로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1년 10월 1일 롬복 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이러한 노력을 지원했다.
누사 tenggara Barat와 롬복섬은 선진국 기준으로는 경제적으로 침체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인구의 대다수가 빈곤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은 비옥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업에 충분한 강우량을 보이며 다양한 기후대를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 농민 시장에서 풍부한 양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가뭄과 자급자족 농업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38] 4인 가족은 쌀, 채소, 과일을 단 US$0.50로 먹을 수 있다. 가족의 수입이 어업이나 농업으로 하루 US$1.00에 불과할 수 있지만, 많은 가족은 저소득으로도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롬복섬 사람들은 식량 및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점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 공교육은 주 전체에서 무료이며 초등학교는 외딴 지역에서도 존재하려고 노력하지만, 주택, 교육 및 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섬의 원주민들에게 여전히 어렵다.
누사 tenggara Barat의 도시 지역에서 빈곤 인구의 비율은 2008년 29.47%, 2009년 28.84%였다. 2008년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19.73%였으며, 2009년에는 18.40%로 소폭 감소했다. 도시와 마을을 합한 수치는 2008년 23.81%였고, 2009년에는 22.78%로 소폭 감소했다.[38]
2008년 마타람에서 미혼 인구의 비율은 40.74%, 기혼 52.01%, 이혼 2.51%, 사별 4.75%였다.[39]
마타람시에서는 불법 새장 조류 거래가 관찰되었으며, 2018년과 2019년 5번의 시장 방문 동안 108종의 10,326마리의 조류가 관찰되었으며, 이 중 18종은 국가적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많은 다른 종들은 국가 수확 및 거래 할당량을 위반하여 야생에서 채집되었다.[40]
7. 1. 농업
7. 2. 관광 산업
롬복섬의 관광 산업은 1980년대 중반부터 발리의 '훼손되지 않은'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개발되기 시작했다.[41] 초기에는 길리 섬과 남부 해안의 쿠타를 중심으로 저예산 방갈로가 많이 생겨났으며, 대부분 현지 사업가에 의해 운영되었다. 1990년대에는 국가 정부가 관광 계획 및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발리 관광 개발 공사(BTDC) 및 롬복 관광 개발 공사(LTDC)와 같은 민간 기구가 설립되었다.[41] 대형 호텔은 지역 주민에게 주요 고용을, 레스토랑 및 미술품 상점과 같은 부대 사업은 부차적인 고용을 제공했다.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와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의 몰락 이후, 롬복 관광 산업은 10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통화 가치 하락, 민주화 전환 과정에서의 국내 불안, 과격 이슬람 세력의 테러 등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했다.[41] 2000년 1월, 제마 이슬라미야의 급진 이슬람 선동가들이 마타람과 셍기기 지역에서 종교적, 민족적 폭력을 유발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발리로 대피하기도 했다.[41]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2005년 발리 폭탄 테러, SARS 발생 진행 상황 등도 관광 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2007~2008년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여행 경보를 해제하면서 관광 산업이 회복되기 시작했다.[42]
2010년까지 관광 산업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방문객 수는 2000년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롬복과 인접한 숨바와섬을 발리에 이어 두 번째 관광지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2009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2012년까지 롬복과 숨바와를 합쳐 연간 10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43][44] 이를 위해 도로 개선, 롬복 국제공항 건설 등 인프라 개선이 이루어졌다.[45]
롬복에서 가장 개발된 관광 지역은 섬 서해안의 셍기기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되어있다.[46] 주요 관광 지역은 린자니산 기슭의 북서쪽 탄중까지 뻗어 있으며, 시레 및 메다나 반도와 길리섬을 포함한다. 길리섬은 일반적으로 페메낭 근처 방살, 남쪽의 텔루크 나레 또는 더 남쪽의 셍기기 및 망싯 해변에서 보트로 접근할 수 있다. 길리섬은 배낭여행객의 휴양지와 고급 리조트 여행지를 모두 제공한다.
다른 관광지로는 린자니산, 길리 비다라, 길리 라왕, 나르마다, 공원, 마유라 공원, 쿠타 등이 있다.[46] 남롬복의 쿠타 지역은 서핑 명소로 유명하며,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파도와 건기에 부는 남동 무역풍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서핑 환경을 제공한다. 롬복 남서부의 세코통은 다양한 스쿠버 다이빙 장소로 유명하다. 탄중 근처 북서 해안에는 길리섬 근처 시레 및 메다나 반도를 중심으로 고급 호텔과 빌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롬복섬 서부에는 승기기 해변이 있다. 또한 북서부 해안에는 길리 제도/Gili Islandsms라고 불리는 3개의 작은 섬(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이 있다. 길리(Gili)는 사삭어로 '작은 섬'을 의미하므로 '섬'을 붙인 명칭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남부에 있는 탄중안 해변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해변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 해변 근처의 마을인 푸줏에는 몇 채의 호텔이 있으며, 서핑을 목적으로 체류하는 서퍼도 많다.
7. 3. 할랄 관광
롬복섬은 2019년 관광부가 실시한 연구에서 인도네시아의 할랄 관광지 10곳 중 최고 점수인 70점을 받았다.[47]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6년까지 전 세계 2억 3천만 명의 무슬림 여행객을 유치하여 최대 3,000억 달러의 지출을 기대하고 있다.[47]이슬람 협력 기구에 따르면, 할랄(이슬람) 관광 요소는 할랄 호텔(술, 도박 금지, 각 객실에 코란, 기도 매트, 메카 방향 표시), 할랄 교통(청결, 무알코올 음료, 이슬람 율법에 따른 출판물), 할랄 음식 시설, 할랄(이슬람 테마) 투어 패키지, 할랄 금융(호텔, 레스토랑, 여행사 및 항공사의 재정 자원은 이슬람 원칙에 부합해야 함) 등이다.[48]
섬의 서쪽에 승기기 해변이 있다.[48] 또한 북서부 해안에 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로 구성된 길리 제도(Gili Islands영어)가 있다.[48] 길리(Gili)는 사삭어로 '작은 섬'을 의미하므로 '섬'을 붙인 명칭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다.[48]
남부에 있는 탄중안 해변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해변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48] 해변 근처의 마을인 푸줏에는 몇 채의 호텔이 있으며, 서핑을 목적으로 체류하는 서퍼도 많다.[48]
8. 교통
발리의 파당바이에서 롬복섬의 렘바르(Lemabar)에 페리가 취항하고 있다. 또한 길리섬 각 섬에 방살 항구(Bangsal Harbor)에 보트가 취항한다.
롬복 국제공항(Lombok International Airport, ''반다라 인터내셔널 롬복'')은 롬복섬 남중앙 지역의 작은 도시인 프라야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2011년 10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다. 암페난 근처의 셀라파랑 공항을 대체했다.[49][50] 서누사텡가라주(''누사텡가라 바랏'') 내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국제공항이다.
암페난의 셀라파랑 공항은 2011년 9월 30일 저녁에 운영이 중단되었다. 이전에는 자바, 발리, 숨바와로 가는 국내선과 싱가포르에서 수라바야와 자카르타를 경유하여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국제선 서비스를 제공했다. 롬복섬 최초의 공항이었으며 마타람 북서쪽 외곽의 잘란 아디 수치토에 위치해 있다. 터미널과 기본적인 공항 기반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모든 민간 항공 교통은 중단되었다.
남서부에 위치한 렘바르 항구 해운 항구는 도로 차량 및 여객 서비스를 위한 해운 시설과 페리를 갖추고 있다. 2013년 총 톤수는 430만 톤이며, 2012년 데이터에서 72% 증가하여 롬복과 서누사텡가라 지역의 경제가 크게 발전했음을 의미한다.[51]
동해안의 라부안 롬복 페리 항구는 숨바와의 포토 타노로 가는 도로 차량 및 여객 서비스를 위한 페리를 제공한다.
발리 섬의 파당바이에서 롬복 섬의 렘바르까지 페리가 운항하고 있다. 또한 길리 각 섬으로는 방살 항구(Bangsal Harbor)에서 보트가 운행되고 있다.
8. 1. 항공
발리의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롬복 "자이누딘 압둘 마지드" 국제공항까지 항공편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롬복 국제공항은 롬복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롬복 서부의 주요 관광지인 셍기기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길리섬으로 건너가기 전 텔루크 나라 부두까지는 차로 2시간, 롬복 남부의 쿠타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공공 페리는 발리 동남부의 파당 바이와 롬복 남서부의 렘바르에서 매시간 출발하며, 왕복하는 데 최소 4~5시간이 소요된다.
쾌속정 서비스는 발리의 여러 출발지점에서 이용 가능하며, 주로 길리섬으로 운행하며, 롬복 본토로 가는 상당한 교통량을 처리한다. 롬복 도착 지점은 운영업체에 따라 텔루크 나레/텔루크 코덱, 방살 항구 또는 롬복 북서 해안에 위치한 셍기기 읍 중 한 곳이 된다.
8. 2. 해상
발리의 파당바이에서 롬복섬의 렘바르(Lemabar)에 페리가 매시간 출발하며, 왕복하는데 최소 4~5시간이 소요된다. 길리섬 각 섬에 방살 항구(Bangsal Harbor)에 보트가 취항한다. 쾌속정 서비스는 발리의 여러 출발지점에서 이용 가능하며, 주로 길리섬으로 운행하며, 롬복 본토로 가는 상당한 교통량을 처리한다. 롬복 도착 지점은 운영업체에 따라 텔루크 나레/텔루크 코덱, 방살 항구 또는 롬복 북서 해안에 위치한 셍기기 읍 중 한 곳이 된다.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롬복 "자이누딘 압둘 마지드" 국제공항까지의 항공편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롬복 국제공항은 롬복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롬복 서부에 위치한 주요 관광지인 셍기기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길리섬으로 건너가기 전 텔루크 나라 부두까지는 차로 2시간, 롬복 남부의 쿠타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
9. 문화
'''냐례 축제''' 또는 바우 냐례("바다 벌레를 잡다"[53]라는 뜻)는 2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리는 전통적인 행사이다. 이 행사는 '냐례' 또는 '와워'로 알려진 팔롤라 비리디스의 산란 부분을 잡는 데 초점을 맞춘다.[52][53] 현지 전설에 따르면, 냐례는 아름다운 만달리카 공주의 환생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잠재적인 구혼자들이 서로 싸우는 대회를 열자, 세거 해변에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54]
9. 1. 냐례 축제
냐례 축제 또는 바우 냐례("바다 벌레를 잡다"[53]라는 뜻)는 2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리는 전통적인 행사이다. 이 행사는 '냐례' 또는 '와워'로 알려진 팔롤라 비리디스의 산란 부분을 잡는 데 초점을 맞춘다.[52][53] 현지 전설에 따르면, 냐례는 아름다운 만달리카 공주의 환생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잠재적인 구혼자들이 서로 싸우는 대회를 열자, 세거 해변에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54]10. 기타
10. 1. 산림청 해외조림지
대한민국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한 최초의 해외조림지로 인도네시아 서부 누사틍가라 주에 위치한 롬복섬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62] 양국 정부는 롬복섬 조림지를 국제기후변화협약(UNFCCC)상의 "신규 조림 및 재조림 청정개발 사업"(AR CDM 사업)으로 인정받아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확보할 예정이다.[62]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일정한 기준에 맞는 조림사업을 한 나라는 인센티브로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을 더 확보하거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할 권한을 다른 나라나 기업에 팔 수 있다.[6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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