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겁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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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겁본견은 불교 용어로서, 자아와 우주의 영원성을 주장하는 외도들의 견해를 통칭한다. 이 견해는 상론, 역상역무상론, 변무변론, 종종론, 무인이유론의 다섯 가지로 분류되며, 각 견해는 선정, 추론, 무지 등을 근거로 한다. 상론은 자아와 우주의 영원성을, 역상역무상론은 자아와 우주의 일부 영원성과 무상성을, 변무변론은 자아와 우주의 유한성, 무한성, 또는 그 불확정성을, 종종론은 선악과 내세에 대한 불확실한 답변을, 무인이유론은 자아와 우주의 무인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고타마 붓다가 침묵하거나 비판한 14무기와 관련되어 있으며, 불교에서는 이를 잘못된 견해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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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겁본견 | |
|---|---|
| 육십이견(六十二見) | |
| 정의 | 장아함경의 범동경에 나오는 62가지 악견(惡見) |
| 기원 | 외도(外道)의 아견(薩迦耶見, satkayadristi) |
| 분류 | |
| 근본 원인에 대한 견해 (본겁본견, 本劫本見) | 과거에 대한 18가지 견해 |
| 미래 결과에 대한 견해 (말겁말견, 末劫末見) | 미래에 대한 44가지 견해 |
| 본겁본견 (本劫本見) | |
| 상론(常論) | 4가지 견해 (세상과 자아는 영원하다는 주장) |
| 상무상론(常無常論) | 4가지 견해 (세상과 자아는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는 주장) |
| 유변무변론(有邊無邊論) | 4가지 견해 (세상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는 주장) |
| 종종론(種種論) | 4가지 견해 (애매하고 회피적인 답변) |
| 무인유론(無因有論) | 2가지 견해 (세상은 우연히 생겨났다는 주장) |
| 말겁말견 (末劫末見) | |
| 유상론(有想論) | 16가지 견해 (사후에 자아는 형색, 변, 고락, 생각 등이 있다는 주장) |
| 무상론(無想論) | 8가지 견해 (사후에 자아는 형색, 변 등이 없고 생각이 없다는 주장) |
|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 8가지 견해 (사후에 자아는 형색, 변 등이 없고 생각도 없고 생각 없음도 없다는 주장) |
| 단멸론(斷滅論) | 7가지 견해 (사후에 자아는 완전히 소멸된다는 주장) |
| 현재열반론(現在涅槃論) | 5가지 견해 (현세에서 감각적 쾌락을 통해 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 |
| 악견 성립의 6가지 원인 | |
| 원인 | 인연(因緣) |
| 가르침 | 의교(依教) |
| 명상 | 의정려(依靜慮) |
| 세상 | 의세(依世) |
| 견해 | 의제견(依諸見) |
| 태어나는 곳 | 생처(生處) |
2. 본겁본견 (本劫本見)
2. 1. 상론 (常論)
'''상론'''(常論), '''4상론'''(四常論), '''변상론'''(遍常論) 또는 '''4변상론'''(四遍常論)에서 '상론'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원하다는 견해 또는 이론'으로, 나[我]와 우주[世間]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하다는 견해이다.《장아함경》의 〈범동경〉에 따르면, 상론에는 다음과 같은 상론 초견·제2견·제3견·제4견의 총 4가지 견해가 있다.
# 상론 초견은 과거 20겁(신역의 20중겁)을 기억한 후 '나와 우주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상론 제2견은 과거 40겁(신역의 40중겁)을 기억한 후 '나와 우주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상론 제3견은 과거 80겁(신역의 80중겁, 즉, 대겁)을 기억한 후 '나와 우주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상론 제4견은 경험이 아닌 추론을 통해 '나와 우주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영원불멸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상론의 4가지 견해 중에서 초견부터 제3견까지는 선정을 통한 경험에 근거한 견해이고, 제4견은 추론에 근거한 견해이다. 달리 말해, 초견부터 제3견까지는 부처의 선정력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열반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일체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과거를 기억하여 그 경험에 바탕하여 '나와 우주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고, 제4견은 이러한 선정력이 없는 상태에서 여러 이론과 견해를 논리적으로 판단하여 '나와 우주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상론(常論)은 붓다가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침묵한 14무기 가운데 시간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우주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世間有常]'는 입장을 가진 외도들의 견해에 해당한다. 즉, 당시 불교계에서는 이들이 '이러한 견해를 가지게 된 근거'에 따라 그 유형을 크게 4가지 부류로 나누어 구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상론은 자아가 죽음을 통해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도 다만 형태를 달리할 뿐 그 본질은 항구 불변하여 시간적으로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지는 것이므로, 단견(斷見) · 상견(常見)의 변집견 중 상견에 속한다.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상론의 견해를 가진 외도의 견해로는 6사외도 중에는 파쿠다 카차야나(Pakudha Kaccayana, 가라구타가전연)가 주장한 7사신(七士身) 즉 불변의 7요소설이 있으며, 힌두교의 정통 6파철학 중에는 샹캬 학파의 프라크리티[自性] 전변설(轉變說)이 있다. 또한 《대비바사론》에서는 이 견해들 외에도 은현설(隱顯說)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누구의 견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대비바사론》에 따르면, 파쿠다 카차야나의 불변의 7요소설과 샹캬의 전변설과 어느 누구의 은현설은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선정력으로 과거를 관찰하여 제출된 견해 또는 이론이다. 현대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헬레니즘 철학자 중 영육이원론에 바탕하여 플라톤이 정립한 영혼불멸설과, 헬레니즘 철학의 영육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바울이 확립한 기독교 고유의 영혼불멸설이 상론에 속한다.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바울의 영혼불멸설이 경험적 관찰에 의거한 것인지 아니면 추론에 의거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플라톤이 이집트에 가서 신비 가르침을 배웠다는 설이 있고, 바울이 〈고린도후서〉12:2~4에서 제3천(셋째 하늘)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 자신의 경험을 말한 것이라고 볼 때, 이것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할 때는 경험적 관찰에 의거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혜원의《대승의장》 제6권에 따르면, 위의 4가지 견해가 상론의 전부는 아니다. 혜원의 견해에 따르면, 설혹 8만겁을 기억한 후 '나와 우주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리거나, 심지어, 모든 겁을 전부 기억한 후 '나와 우주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모두 상론에 포합되며, 위의 4가지 견해는 이러한 다른 모든 경우들을 포괄하여 생략해 표현한 것일 뿐이다.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외도들이 상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은 세생멸(細生滅), 즉, 찰나생멸, 즉 찰나생 찰나멸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론은 '''변상론'''(遍常論) 또는 '''변상견론'''(遍常見論)이라고도 한다. 《유가사지론》 제87권에서는 상론을 '''상견론'''(常見論)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경론에서의 상론 4견에 대한 설명이 위의〈범동경〉과 동일하지는 않다. 제4견이 추론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일하지만, 선정력으로 기억하게 된 초견부터 제3견까지의 과거가 어디까지인가에 따라 다음의 표와 같은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해, 6신통 중 숙명통의 성취도에 대해 경론 간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대비바사론》의 경우, 다른 경론과는 눈에 띄게 구별되는 차이가 있다. 즉, 숙명통의 성취도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경론과는 차이가 있다.
| 범동경 | 대승의장 | 브라흐마잘라 숫따 | 불설범망육십이견경 | 대비바사론 | |
|---|---|---|---|---|---|
| 상론 초견 | 과거 20겁 | 과거 20겁 | 과거 1생~수십만 생 | 과거 20겁 | 과거 1겁~80겁 |
| 상론 제2견 | 과거 40겁 | 과거 40겁 | 과거 1겁~10겁 | 미래 40겁 | 과거 1생~수십만 생 |
| 상론 제3견 | 과거 80겁 | 과거 80겁 | 과거 10겁~40겁 | 과거와 미래 80겁 | 천안(天眼)으로 5온의 상속을 봄 |
| 상론 제4견 | 추론 | 추론 | 추론 | 추론, 즉, 염적근주치념(念寂根住癡念) | 추론, 즉, 심사(尋伺) |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초견과 제2견의 차이는 초견(과거 1겁~80겁)은 오랜 과거의 겁 동안의 많은 생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연속된 생을 연속해서 기억하지 못하는데 비해, 제2견(과거 1생~수십만 생)은 그만큼 많은 생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연속된 생을 연속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2견은 과거의 소수의 연속된 삶을 끊어짐 없이 기억하여 인과의 흐름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이들에 비해 제3견(천안으로 5온의 상속을 봄)은 4유 즉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의 전 과정을 명확히 기억하는 것이다. 즉, 죽음의 과정 중에 무의식의 상태로, 즉, 5위무심 중 극수면(極睡眠)의 상태로 떨어지지 않고 의식을 유지하는 경지이다. 달리 말해, 죽을 때 어디로 태어나는지 그 과정 전체를 뚜렷이 아는 경지이다. 초견부터 제3견은 숙명통의 성취도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데, 제1견에서 제3견으로 갈수록 숙명통의 경지가 높은 것이다. 제4견(추론, 즉, 심사)은 다른 경론과 마찬가지로 추론에 의한 것인데, 이것을 《대비바사론》에서는 심사(尋伺)라고 하고 있다. 심사는 심(尋)과 사(伺)를 합하여 말하는 것으로, 심은 개괄적으로, 대체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이고 사(伺)는 세밀하게, 정밀하게 사유하는 마음작용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추론을 '염적근 주치념(念寂根住癡念)'이라 하고 있는데, 이것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고요한 근을 염(念, 즉, 수행, 예를 들어, 사념처관)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에 머물고 있다'인데, 즉, '근(6근, 예를 들어, 안근)이 고요한 상태', 즉, '5안 중 육안(肉眼)을 제외한 나머지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이 개발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여전히 육안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 즉, 욕계산지(欲界散地)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즉, 선정력이 없는 상태, 혹은, 있다고 하더라도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 즉, 참된 선정력(9차제정: 4선 · 4무색정 · 멸진정)을 획득하려고 수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2. 1. 1. 상론 초견
상론(常論)의 4견 가운데 초견(初見)은 정의삼매(定意三昧: 삼매의 다른 말)에 들어 20겁(二十劫)을 기억한 후 나(我)와 세간(世間)이 영원하다[常]고 주장하는 것이다.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으로써 20번의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我)와 세간(世間)은 항상 존재한다[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2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이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本劫本見)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我及世間是常]'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승의장》 에 따르면, 어떤 수행자는 선정에 들어 과거 20겁의 일을 기억하고, "나는 선정에 들어 과거 20겁 동안의 성겁과 괴겁을 보았는데, 그 동안 중생은 늘거나 줄지 않고 항상 모여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와 세간은) 항상하다는 것을 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초견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부처님은 외도가 4견에 빠져 유상(有常)을 말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외도는 애욕을 끊고 선(禪)을 수행하여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들어 과거 20겁의 일을 기억하고, '나와 세계는 유상하다.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알지만,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모른다'고 말하며, 과거의 일은 기억하고 알지만 미래의 일은 버린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전제분별견 중 4가지 변상론(遍常論)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1번의 괴겁(壞劫)과 성겁(成劫)을 기억하거나, 혹은 2, 3번, 나아가 80번까지 기억하여 나와 세간이 모두 항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변(轉變) 혹은 은현(隱顯)을 통해 설명한다. 전변론자는 우유가 변하여 낙(酪)이 되고, 종자가 변하여 싹이 되며, 장작이 변하여 재가 되는 것처럼, 어떤 것이 이어져 있다면 그것은 그것이 변한 것이지, 그 법이 소멸하여 이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모든 법의 자성은 항상 머무른다고 주장한다. 은현론자는 모든 법의 자성이 숨거나 드러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전에 있던 대지, 섬, 묘고산왕, 바다, 나무 등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이후에 다시 그 자리에 같은 형상과 분량의 대지 등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중간에 보이지 않는 것은 성품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괴겁(壞劫) 때 그 성품이 잠시 숨었다가 성겁(成劫) 때 다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7사신(士身)은 항상 움직이지 않고 서로 닿지 않으며 목숨을 해칠 수 없으므로, 나와 기억하는 것 모두 항상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나와 세간이 모두 항상 머무른다고 본다.
2. 1. 2. 상론 제2견
상론(常論)의 4견 가운데 '''제2견'''(第二見)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40겁(四十劫)을 기억한 후 나[我]와 세간(世間)이 영원하다[常]고 주장하는 것이다.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으로써 40번의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我]와 세간(世間)은 영원하다[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4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2견[二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本劫本見)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我及世間是常]'고 헤아리는데, 그런 주장은 [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둘째는 어떤 외도가 미래 40겁의 일을 생각할 수 있어서, '아(我)와 세계는 유상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라고 설명한다.
2. 1. 3. 상론 제3견
상론(常論)의 4견 가운데 '''제3견'''(第三見)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80겁(八十劫)을 기억한 후 나[我]와 세간(世間)이 영원[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으로써 80번의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我]와 세간(世間)은 영원하다[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80번의 성겁과 패겁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동안 중생들은 늘지도 않았고 줄지도 않았으며 항상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영원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三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本劫本見)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我及世間是常]'고 헤아리는데, 이러한 견해는 [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유정(有情)들의 죽음과 탄생, 그리고 상속(相續)을 관찰하고, 미세한 생멸을 알지 못하여 상(常)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아(我)와 세간이 모두 영원하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전변(轉變) 또는 은현(隱顯), 즉 칼이 칼집에, 뱀이 굴에, 사람이 어두운 방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에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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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4. 상론 제4견
상론(常論)의 4견 가운데 '''제4견'''(第四見)은 민첩한 지혜[捷疾相智]를 방편으로 사용하여 관찰하고 그 관찰 대상의 '진리성'을 세밀하게 사유[審諦]한 후, 자신의 소견과 변설의 재능[辯才]으로써 나[我]와 세간(世間)이 영원(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20겁, 40겁, 또는 80겁을 직접 관찰하여 그 관찰의 결과로 나와 세간이 영원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추론에 의거하여 나와 세간이 영원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장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捷疾相智]가 있어 잘 관찰한다. 민첩한 지혜 방편으로 관찰하여 '자세히 밝혔다[審諦]'고 여기고는 자기 소견(所見)과 자기의 말재주[辯才]로써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我及世間是常].'
이것이 제4견[四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本劫本見)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데, 이런 주장은 [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승의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혹은 어떤 사람은 민첩한 지혜로 잘 관찰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와 세간은 모두 항상하다. 이것이 제4견이다."
《Brahmajāla Sutta: The All-embracing Net of Views》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 번째 경우, 일부 존경받는 사문과 바라문은 무엇에 근거하여 자아와 세계가 영원하다고 선언하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합리주의자, 조사자이다. 그는 이성으로 두드려지고, 조사에서 추론되고, 자신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견해를 선언한다.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고, 불모이며, 산봉우리처럼 확고하고, 기둥처럼 굳건히 서 있다. 그리고 비록 이 존재들이 (존재의 순환을 통해) 돌아다니고 방황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만, 자아와 세계는 영원함 자체처럼 동일하게 유지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넷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정진하여 적정(寂定)을 일심(一心)으로 수행하며 악행을 끊고 법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의에 들어 근이 고요한 상태를 염(念, 즉, 수행)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에 머물러 그 사람은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有常)하다. 왜냐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르고, 또한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른다 (하지만 '근이 고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선정력이 아니라 추론으로' 유상함을 안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추론으로 진실을 알지 못하여, 나와 세간이 모두 항상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법은 항상 있고, 어떤 법은 항상 없으며, 없는 것은 생겨날 수 없고, 있는 것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과가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그 본성이 오직 하나여서 소멸도 없고 일어남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제분별견에 속한다. 그가 만약 색(色)을 나라고 주장한다면, 현상 형태가 항상 유사한 것을 보고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심(心) 등을 나라고 주장한다면, 심 등의 법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유사하게 생겨나고 항상 생겨나기 때문이다. 세밀한 생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능히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전후의 일이 서로 유사하고, 다른 것이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허망한 추론으로 나와 세간이 모두 항상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전제분별은 겁(劫), 생사(生死), 생(生), 추론(尋伺)의 네 가지 일로 인해 일어난다."
2. 2. 역상역무상론 (亦常亦無常論)
## 역상역무상론 초견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초견'''(初見)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대범천왕(大梵天王: 브라흐마)과 같은 유정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겁초(劫初)에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난 유정들이 그곳에서의 목숨이 다했을 때 대범천왕의 원을 따라 대범천(大梵天: 색계 초선천의 제3천)에 태어난 후, 이 유정들이 다시 목숨이 다해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대범천에서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대범천왕은 영원하지만 자신들은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견해에 속한다. 간단히 말하면,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는 영원하지만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1. 이 겁(劫)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空梵天)에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중생도 함께 그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원했다.
2. 이 중생이 애착의 원을 일으킨 뒤에 다시 다른 중생이 목숨과 행과 복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범천(梵天)에 태어났다.
3. 먼저 범천에 태어난 중생은 '나는 이곳의 범(梵)이요, 대범(大梵)이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으며[我自然有] 아무도 나를 만든 자는 없다[無能造我者]. 나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千世界)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自在)하며 가장 존귀(尊貴)하고 잘 변화(變化)하며 미묘(微妙)하기 제일이다.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나 혼자 먼저 있었고 다른 중생은 뒤에 왔으니, 뒤에 온 중생은 다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다[我所化成].'라고 생각했다.
4. 뒤에 온 중생들도 '저 분은 대범이다. 저 분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중생의 아버지로서 저 분 혼자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들 중생은 저 분이 조화로 만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5. 저 범천의 중생들은 목숨과 행이 다해 '이 세상[世間]'에 와서 태어났다. 그들은 점차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三法衣)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6. 그들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을 따라 자기 자신의 본생(本生: 전생, 전생의 삶의 모습, 전생의 보살행)을 기억하고는 '저 대범천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없다. 모든 뜻을 다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저 분은 중생의 아버지로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범천이 조화로 만들었으므로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며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半常半無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역상역무상론의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半常半無常)'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역상역무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역상역무상론 제2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2견'''(第二見)은 천상도의 하늘에서 웃고 즐기면서 방일하다가 그 하늘에서 퇴전하여 인간도에 태어난 유정이 다시 출가 수행하여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퇴전하지 않은 유정들을 보고 이들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중생은 쓸데 없는 우스갯소리[喜戲笑]와 게으름[懈怠]을 좋아하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스스로 즐겼다. 그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다가 몸이 매우 피로해[身體疲極] 곧 의식을 잃었고[失意] 의식을 잃음으로써 곧 목숨을 마치고[命終] 이 세상[世間]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三法衣]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았다. 그는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으로써 자기 자신의 본생(本生)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곳에 있는 다른 중생들은 자주 태어나지 않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그곳에 있고 영원히 머물며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자주 우스갯소리를 한 까닭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變易法]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半常半無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역상역무상론의] 제2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半常半無常]'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역상역무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어떤 외도가 그가 범천에 있던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는 색법(色法)ㆍ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행(行)ㆍ식(識)이 있는데, 이러한 법(法)들 또한 유상하고, 변동하거나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종(地種:地大)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이 있는데, 이것은 무상(無常)하고 견고하지도 않다.'
그 범천에 있던 사람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는데, 그 사람이 정진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의 범천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범천의 색법ㆍ통양ㆍ사상ㆍ행ㆍ식의 법은 유상하고 견고하지만 이 인간 세상의 지종ㆍ수종ㆍ화종ㆍ풍종ㆍ공종의 이러한 법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범천왕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듣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다. 대종(大種)은 무상(無常)하고, 심(心)은 상주(常住)한다. 혹은 이와 반대로 심(心)은 무상하고 대종(大種)은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범세(梵世)에 머물거나 이 세상에 태어나거나, 혹은 전전(展轉)하여 이러한 도리를 듣고 곧 이러한 견해를 일으킨다. 나는 대범천왕(大梵天王)을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간은 일부분은 상주(常住)하고 일부분은 무상(無常)하다."
Bhikkhu Bodhi영어의 팔리어 경전 영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번째 경우, 존경할 만한 은둔자와 브라만 중 일부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영원주의자이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비영원주의자이며,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은 무엇에 기인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비구들이여, '놀이로 타락한'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그들은 건망증이 생기고, 건망증이 생기면 그들은 그 세계에서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어떤 존재가 그 세계에서 사라진 후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 온 그는 집에서 출가하여 은둔 생활을 한다. 그가 출가했을 때, 그는 열정, 노력, 헌신, 근면, 올바른 성찰을 통해 정신 집중의 정도에 도달하여, 마음이 집중된 상태에서 바로 이전의 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전의 생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놀이로 타락하지 않은 존경할 만한 신들은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건망증이 생기지 않고, 건망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신들은 영원하고, 안정적이며,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 그 자체처럼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놀이로 타락한 신이었다. 우리는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건망증이 생겼다. 건망증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세계에서 사라졌다. 이 세상에 온 우리는 이제 무상하고, 불안정하며, 수명이 짧고, 멸망할 운명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다."
## 역상역무상론 제3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3견'''(第三見)은 천상도의 하늘에 있는 동안 욕염(欲染: 번뇌, 또는 욕계의 번뇌)을 일으켜, 더 자세히는 질투와 진(瞋, 미워함, 성냄)의 번뇌를 일으켜 이로 인해 선정력을 잃고 그 하늘로부터 퇴전하여 인간도에 태어난 유정이 다시 출가 수행하여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퇴전하지 않은 유정들을 보고 이들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중생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다가 곧 뜻을 잃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아 정의삼매에 들어갔다. 그는 삼매의 마음으로써 본래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는 곧 이렇게 말했다.
"저 중생들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지 않았으므로 뜻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곳에서 자주 서로 보았고 자주 서로 보고는 곧 뜻을 잃었기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이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승의장》에서는 제3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3견은, 뒤에 태어난 범천의 무리들 중 어떤 이들이 서로 집착하여 욕염심(欲染心)을 일으켜 선정의 뜻을 잃게 되고, 뜻을 잃음으로 인해 목숨을 마치고 아래 세상에 태어난 경우이다. 이후 선정의 뜻을 닦아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저 범천의 무리 중 서로 집착하지 않은 자들은 하늘에 항상 머무르지만, 우리들은 서로 집착하여 이 무상함에 이르러 생사를 윤회한다. 그러므로 나와 세간은 또한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3견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세 번째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셋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름이 기타파도(幾陀波屠, 즉, 희망천)인 천상 세계에서는 그곳에 있으면 서로 즐기고 쾌락한다. 그 후에도 언제나 몸에 병이 들어 병상에 눕는 것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복록과 복덕이 엷어지면 마침내 죽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나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여 그 사람이 곧 말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들의 즐거움과 쾌락은 항상 존재하여 변동하거나 마침내 없어지지 않지만 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지만 이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세 번째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 번째는, 먼저 희망천(戲忘天)에서 죽어 이 세상에 태어난 이가 숙주(宿住)를 기억하는 통찰력을 얻어 '저 하늘의 존재들은 지극히 즐기며 놀고 생각을 잊지 않는 자들은 그곳에 항상 머무른다. 우리들은 먼저 지극히 즐기며 놀고 생각을 잊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어 무상하게 되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 역상역무상론 제4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4견'''(第四見)은 민첩한 지혜[捷疾相智]를 방편으로 사용하여 추론한 후, 자신의 민첩한 지혜와 변설로써 '나와 세간은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로 관찰하고 자기 지혜와 말재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4견이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4견에 속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외도는, 이름이 산제(散提, 즉, 의분천(意憤天))인 하늘이 있는데, 그 천상 세계에 함께 머물다가 서로 성을 내어 본래 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복이 엷은 천인은 죽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 사람이 수행하여 삼매에 들어 전생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천인들은 항상 존재하고 견고하지만, 인간 세상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다. 천상 세계는 유상하고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어떤 이들은 의분천(意憤天)에서 죽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 숙주수념통(宿住隨念通)을 얻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고 말한다. "저 하늘의 천인들은 서로 성내지 않고 보면 그곳에 항상 머무르지만, 우리는 서로 성내고 보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어 무상하게 되었다." 이 하늘의 위치에 대해 묘고층급(妙高層級)에 있다는 설과 삼십삼천(三十三天)이라는 설이 있다. 이러한 네 가지 전제분별(前際分別)은 대범(大梵), 대종(大種), 마음, 희망(戲忘), 분에(憤恚)의 네 가지 일을 집착하여 일어나는 일분상론(一分常論)이다.
2. 2. 1. 역상역무상론 초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초견'''(初見)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대범천왕(大梵天王: 브라흐마)과 같은 유정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겁초(劫初)에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난 유정들이 그곳에서의 목숨이 다했을 때 대범천왕의 원을 따라 대범천(大梵天: 색계 초선천의 제3천)에 태어난 후, 이 유정들이 다시 목숨이 다해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대범천에서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대범천왕은 영원하지만 자신들은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견해에 속한다. 간단히 말하면,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는 영원하지만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1. 이 겁(劫)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空梵天)에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중생도 함께 그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원했다.
2. 이 중생이 애착의 원을 일으킨 뒤에 다시 다른 중생이 목숨과 행과 복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범천(梵天)에 태어났다.
3. 먼저 범천에 태어난 중생은 '나는 이곳의 범(梵)이요, 대범(大梵)이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으며[我自然有] 아무도 나를 만든 자는 없다[無能造我者]. 나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千世界)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自在)하며 가장 존귀(尊貴)하고 잘 변화(變化)하며 미묘(微妙)하기 제일이다.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나 혼자 먼저 있었고 다른 중생은 뒤에 왔으니, 뒤에 온 중생은 다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다[我所化成].'라고 생각했다.
4. 뒤에 온 중생들도 '저 분은 대범이다. 저 분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중생의 아버지로서 저 분 혼자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들 중생은 저 분이 조화로 만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5. 저 범천의 중생들은 목숨과 행이 다해 '이 세상[世間]'에 와서 태어났다. 그들은 점차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三法衣)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6. 그들은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을 따라 자기 자신의 본생(本生: 전생, 전생의 삶의 모습, 전생의 보살행)을 기억하고는 '저 대범천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없다. 모든 뜻을 다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저 분은 중생의 아버지로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범천이 조화로 만들었으므로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며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半常半無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역상역무상론의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半常半無常)'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역상역무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 2. 2. 역상역무상론 제2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2견'''(第二見)은 천상도의 하늘에서 웃고 즐기면서 방일하다가 그 하늘에서 퇴전하여 인간도에 태어난 유정이 다시 출가 수행하여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퇴전하지 않은 유정들을 보고 이들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어떤 중생은 쓸데 없는 우스갯소리[喜戲笑]와 게으름[懈怠]을 좋아하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스스로 즐겼다. 그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다가 몸이 매우 피로해[身體疲極] 곧 의식을 잃었고[失意] 의식을 잃음으로써 곧 목숨을 마치고[命終] 이 세상[世間]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三法衣]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았다. 그는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三昧心]으로써 자기 자신의 본생(本生)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곳에 있는 다른 중생들은 자주 태어나지 않고 자주 우스갯소리를 하며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그곳에 있고 영원히 머물며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자주 우스갯소리를 한 까닭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變易法]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半常半無常],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역상역무상론의] 제2견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半常半無常]'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역상역무상론의]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어떤 외도가 그가 범천에 있던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는 색법(色法)ㆍ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행(行)ㆍ식(識)이 있는데, 이러한 법(法)들 또한 유상하고, 변동하거나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종(地種:地大)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이 있는데, 이것은 무상(無常)하고 견고하지도 않다.'
그 범천에 있던 사람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는데, 그 사람이 정진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의 범천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범천의 색법ㆍ통양ㆍ사상ㆍ행ㆍ식의 법은 유상하고 견고하지만 이 인간 세상의 지종ㆍ수종ㆍ화종ㆍ풍종ㆍ공종의 이러한 법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는 범천왕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듣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다. 대종(大種)은 무상(無常)하고, 심(心)은 상주(常住)한다. 혹은 이와 반대로 심(心)은 무상하고 대종(大種)은 상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범세(梵世)에 머물거나 이 세상에 태어나거나, 혹은 전전(展轉)하여 이러한 도리를 듣고 곧 이러한 견해를 일으킨다. 나는 대범천왕(大梵天王)을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간은 일부분은 상주(常住)하고 일부분은 무상(無常)하다."
Bhikkhu Bodhi영어의 팔리어 경전 영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번째 경우, 존경할 만한 은둔자와 브라만 중 일부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영원주의자이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비영원주의자이며,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는 영원하고 부분적으로는 영원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것은 무엇에 기인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비구들이여, '놀이로 타락한'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그들은 건망증이 생기고, 건망증이 생기면 그들은 그 세계에서 사라진다."
"비구들이여, 어떤 존재가 그 세계에서 사라진 후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 온 그는 집에서 출가하여 은둔 생활을 한다. 그가 출가했을 때, 그는 열정, 노력, 헌신, 근면, 올바른 성찰을 통해 정신 집중의 정도에 도달하여, 마음이 집중된 상태에서 바로 이전의 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전의 생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놀이로 타락하지 않은 존경할 만한 신들은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건망증이 생기지 않고, 건망증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신들은 영원하고, 안정적이며,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 그 자체처럼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놀이로 타락한 신이었다. 우리는 웃음과 놀이의 즐거움에 탐닉하는 데 과도한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건망증이 생겼다. 건망증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세계에서 사라졌다. 이 세상에 온 우리는 이제 무상하고, 불안정하며, 수명이 짧고, 멸망할 운명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다."
2. 2. 3. 역상역무상론 제3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3견'''(第三見)은 천상도의 하늘에 있는 동안 욕염(欲染: 번뇌, 또는 욕계의 번뇌)을 일으켜, 더 자세히는 질투와 진(瞋, 미워함, 성냄)의 번뇌를 일으켜 이로 인해 선정력을 잃고 그 하늘로부터 퇴전하여 인간도에 태어난 유정이 다시 출가 수행하여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 후, 퇴전하지 않은 유정들을 보고 이들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만[常] 자신과 같은 유정들은 영원하지 않다[無常]고 주장하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중생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다가 곧 뜻을 잃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점점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아 정의삼매에 들어갔다. 그는 삼매의 마음으로써 본래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는 곧 이렇게 말했다.
"저 중생들은 이리저리 서로 쳐다보지 않았으므로 뜻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곳에서 자주 서로 보았고 자주 서로 보고는 곧 뜻을 잃었기에 이 무상한 곳에 태어나 변하고 바뀌는 몸이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써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3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승의장》에서는 제3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3견은, 뒤에 태어난 범천의 무리들 중 어떤 이들이 서로 집착하여 욕염심(欲染心)을 일으켜 선정의 뜻을 잃게 되고, 뜻을 잃음으로 인해 목숨을 마치고 아래 세상에 태어난 경우이다. 이후 선정의 뜻을 닦아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저 범천의 무리 중 서로 집착하지 않은 자들은 하늘에 항상 머무르지만, 우리들은 서로 집착하여 이 무상함에 이르러 생사를 윤회한다. 그러므로 나와 세간은 또한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3견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세 번째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셋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름이 기타파도(幾陀波屠, 즉, 戲忘天)인 천상 세계에서는 그곳에 있으면 서로 즐기고 쾌락한다. 그 후에도 언제나 몸에 병이 들어 병상에 눕는 것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복록과 복덕이 엷어지면 마침내 죽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나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여 그 사람이 곧 말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들의 즐거움과 쾌락은 항상 존재하여 변동하거나 마침내 없어지지 않지만 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지만 이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세 번째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 번째는, 먼저 희망천(戲忘天)에서 죽어 이 세상에 태어난 이가 숙주(宿住)를 기억하는 통찰력을 얻어 '저 하늘의 존재들은 지극히 즐기며 놀고 생각을 잊지 않는 자들은 그곳에 항상 머무른다. 우리들은 먼저 지극히 즐기며 놀고 생각을 잊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어 무상하게 되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2. 2. 4. 역상역무상론 제4견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의 4견 가운데 '''제4견'''(第四見)은 민첩한 지혜[捷疾相智]를 방편으로 사용하여 추론한 후, 자신의 민첩한 지혜와 변설로써 '나와 세간은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로 관찰하고 자기 지혜와 말재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 이것은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4견이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4견에 속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외도는, 이름이 산제(散提, 즉, 의분천(意憤天))인 하늘이 있는데, 그 천상 세계에 함께 머물다가 서로 성을 내어 본래 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복이 엷은 천인은 죽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데, 이 사람이 수행하여 삼매에 들어 전생을 기억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천인들은 항상 존재하고 견고하지만, 인간 세상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다. 천상 세계는 유상하고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어떤 이들은 의분천(意憤天)에서 죽어 인간 세상에 태어나 숙주수념통(宿住隨念通)을 얻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고 말한다. "저 하늘의 천인들은 서로 성내지 않고 보면 그곳에 항상 머무르지만, 우리는 서로 성내고 보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어 무상하게 되었다." 이 하늘의 위치에 대해 묘고층급(妙高層級)에 있다는 설과 삼십삼천(三十三天)이라는 설이 있다. 이러한 네 가지 전제분별(前際分別)은 대범(大梵), 대종(大種), 마음, 희망(戲忘), 분에(憤恚)의 네 가지 일을 집착하여 일어나는 일분상론(一分常論)이다.
2. 3. 변무변론 (邊無邊論)
세간, 즉,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에 대한 견해이다. 또는 자아와 우주가 유한한가 무한한가에 대한 견해이다.[6]〈범동경〉 등에 따르면, 변무변론에는 변무변론 초견 · 제2견 · 제3견 · 제4견의 총 4가지 견해가 있다.
# 변무변론 초견은 선정력을 통해 나와 우주가 유한한 것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에 바탕하여 자아와 우주가 유한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초견에서 말하는 선정력은, 5안 중 천안(天眼)으로 아래로는 무간지옥까지 위로는 초선천까지를 보고, 또한 자아가 이 영역에 편만해 있는 것을 보는 경지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선정을 통해 과거의 성겁(成劫) 때의 일을 기억한 것이다.
# 변무변론 제2견은 선정력을 통해 나와 우주가 무한한 것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에 바탕하여 자아와 우주가 무한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제2견에서 말하는 선정력은, 초견보다 더 뛰어난 정천안(淨天眼), 즉, 보다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우주가 횡적으로 무한하고 또한 자아가 이 영역에 편만해 있는 것을 보는 경지이다. 그리고 이 경험도 선정을 통해 과거의 성겁(成劫) 때의 일을 기억한 것이다.
# 변무변론 제3견은 선정력을 통해 나와 우주의 일부는 유한한 것으로, 일부는 무한한 것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에 바탕하여 자아와 우주가 일부는 유한하고 일부는 무한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제3견에서 말하는 선정력은, 천안(天眼)으로 우주를 종적으로 보아 아래로는 무간지옥까지 위로는 초선천까지를 보고 또한 자아가 이 영역에 편만해 있는 것을 보고, 또한 신족통(神足通)으로 우주를 횡적으로 여행하여 그 끝이 없음을 보는 경지이다. 즉, 나와 우주가 종적으로는 유한하고 횡적으로는 무한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도 선정을 통해 과거의 성겁(成劫) 때의 일을 기억한 것이다.
# 변무변론 제4견은, 〈범동경〉과 《브라흐마잘라 숫따》등에 따르면, 경험이 아닌 추론을 통해 자아와 우주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에 비해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제4견도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정력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앞의 세 가지 견해가 과거의 성겁(成劫) 때의 일만을 기억한 것임에 비해, 제4견은 과거의 괴겁(壞劫) 때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해진 것이다. 즉, 과거의 괴겁(壞劫) 때에 천안(天眼)으로 우주를 종적으로 보고 신족통(神足通)으로 우주를 횡적으로 여행한 경험의 기억이 더해져, 이로 인해 자아와 우주에 대해 유한하다고도 무한하다고도 '확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제4견은 단순한 회의론 혹은 불가지론이 아니다. 비록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에 비할 때는 제한된 것이지만, 뛰어난 경지의 선정을 통한 경험에 근거한 (제한된) '사실'의 진술이다.
《대비바사론》의 제4견에 대한 견해를 제외하고 〈범동경〉등에 따르면, 변무변론의 4견 중에서 초견부터 제3견까지는 선정 즉 수혜(修慧)를 통한 경험에 근거한 견해이고, 제4견은 문혜(聞慧) · 사혜(思慧)를 통한 추론에 근거한 견해이다. 달리 말해, 초견부터 제3견까지는 제한된 선정력으로, 즉, 부처의 선정력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열반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일체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세간 즉 '우주 공간'의 한계를 관찰하고 그 경험에 바탕하여 '자아와 우주는 유한하다', '자아와 우주는 무한하다', 혹은 '자아와 우주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4견은 선정을 통한 경험이 아니라 문혜 · 사혜를 통한 추론에 근거하여 '우주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 경우의 제4견은 단순한 회의론 혹은 불가지론이라 할 수 있다.
변무변론(邊無邊論)은 고타마 붓다가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침묵한 14무기 가운데 공간과 관련된 4가지 질문에 대한 견해, 즉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하다(世間有邊) · 무한하다(世間無邊) ·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世間有邊無邊) ·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世間非有邊非無邊)'라는 견해를 가진 외도들에 대응한다. 즉, 변무변론은 이들이 어떤 근거로 이러한 견해들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당시 불교계의 입장과 해석을 보여준다. 그리고 변무변론은 자아와 우주의 공간적 유한성과 무한성에 대한 견해인데, 공간은 사물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고 사물의 운동을 순서에 따라 나열한 것이 시간이므로, 공간이 무한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끝이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공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끝이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따라서, 《대비바사론》 제199권에 따르면, 자아와 우주가 공간적으로 유한하다고 보는 초견은 단견(斷見) · 상견(常見)의 변집견 중 단견에, 무한하다고 보는 제2견은 상견에,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보는 제3견은 일분단견일분상견(一分斷見一分常見)에 속한다. 자아와 우주가 공간적으로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라고 보는 제4견은 단견이라고도 상견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다만, 자아가 실유한다고는 보는 견해이기 때문에 살가야견에 속한다.
변무변론은 '''유변무변론'''(有邊無邊論) 또는 '''세간유변무변론'''(世間有邊無邊論)이라고도 한다. 《유가사지론》 제87권에서는 변무변론을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이라 부르고 있다.
변무변론에 대한 설명은 제4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론에서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제4견에 대해서는 선정력, 즉 천안과 신족통에 의한 것인지 추론에 의한 것이지에 대해 다음 표와 같은 차이가 있다.
| style="width: 10%" | | 범동경 | 대승의장 | 브라흐마잘라 숫따 | 불설범망육십이견경 | 대비바사론 |
|---|---|---|---|---|---|
| 변무변론 초견 | 천안: 종적 유한, 성겁 | 천안: 종적 유한, 성겁 | 천안: 종적 유한, 성겁 | 천안: 종적 유한, 성겁 | 천안: 종적 유한, 성겁 |
| 변무변론 제2견 | 천안: 횡적 무한, 성겁 | 천안: 횡적 무한, 성겁 | 천안: 횡적 무한, 성겁 | 천안: 횡적 무한, 성겁 | 천안: 횡적 무한, 성겁 |
| 변무변론 제3견 | 천안과 신족통: 종적 유한, 횡적 무한, 성겁 | 천안과 신족통: '종적 유한, 횡적 무한' | 천안과 신족통: 종적 유한, 횡적 무한, 성겁 | 천안과 신족통: 종적 유한, 횡적 무한, 성겁 | 천안과 신족통: 종적 유한, 횡적 무한, 성겁 |
| 변무변론 제4견 | 추론 | 추론 | 추론 | 천안과 신족통: 유한/무한 불확정, 괴겁 | 천안과 신족통: 유한/무한 불확정, 괴겁 |
2. 3. 1. 변무변론 초견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가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을 관찰하고는 '끝이 있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이 세간은 끝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에 끝이 있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간은 끝이 있으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본견(本劫本見)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아함경》 제14권 〈21. 범동경(梵動經)〉. 《대승의장》 제6권 〈62견의(六十二見義)〉. 《Brahmajāla Sutta: The All-embracing Net of Views》, Bhikkhu Bodhi의 팔리어 경전의 영역(英譯). 《불설범망육십이견경》.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99권.
2. 3. 2. 변무변론 제2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을 관찰하고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세간은 끝이 없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세간이 끝이 없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간은 끝이 없으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내가 행하는 것과 보는 것은 무한하니, 아(我)와 세간은 무한함을 알겠다"고 말한다.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고 여기고, 그 사람은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나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도리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들은 속이는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어떤 수행자는 선정에 들어 세간을 관찰하고 세상이 무한하다는 생각을 한다. 곧, 세상은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두 번째 견해라고 한다.
어떤 수행자는 열심히 노력하여 정신 집중을 통해 세상이 무한하다고 지각한다. 그는 세상이 무한하며, 유한하다고 하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정신 집중을 통해 세상이 무한함을 지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다.
뛰어난 정려를 통해 정천안으로 주변을 보니 무한하여, 자신(我)이 그 가운데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자신과 세간이 모두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두 번째 무분한의(無分限義)이다.
2. 3. 3. 변무변론 제3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정(禪定)에 들어 삼매심(三昧心)으로 세간을 관찰하고는 '상방(上方)은 끝이 있고, 사방(四方)은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3:2 그는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나는 갖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상방은 끝이 있고 사방은 끝이 없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간이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라고 말한다.:3:2혹은 어떤 외도(外道)는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것을 안다. 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말들은 어리석고 허망하면서도 도리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3
이것이 제3견(第三見)이다.:3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본견(本劫本見)에 대해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3
천안통(天眼通)으로는 아래로는 무간지옥(無間地獄)까지만 볼 수 있고, 위로는 초정려천(初靜慮天)까지만 볼 수 있다. 신경통(神境通)으로 몸을 움직여 옆으로 가 보아도 끝이 없었다. 그래서 상하로는 유한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나'는 그 가운데에 두루 가득하다고 집착한다. 이로 말미암아 '나'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집착한다.:2
2. 3. 4. 변무변론 제4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가 있어 잘 관찰한다. 그는 민첩하게 관찰하는 지혜로 관찰하고는 자기의 지혜와 말재주로써 말한다.'나와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4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장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은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본 것을 기억하여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은 것을 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나머지는 어리석고 허망한 말인데도, 도리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말하니,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 무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대승의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간이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 어떤 사람은 민첩한 지혜로 세간을 관찰한다. (그 결과)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 뜻은 앞의 14난(難)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이것이 4견이다(이 3문(門)이 끝났다).
《Brahmajāla Sutta: The All-embracing Net of Views》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번째 경우, 존경할 만한 은둔자와 브라만교도들은 무엇에 근거하여, 무엇과 관련하여, 세상을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선언하는 확장론자들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은둔자나 브라만은 합리주의자이자 조사자이다. 그는 이성으로 두드려 만든 그의 견해를 선언하고, 그의 조사에서 추론하고, 자신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세상을 유한하고 경계가 있다고 선언하는 은둔자와 브라만들, 세상을 무한하고 경계가 없다고 선언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유한하고 무한하다고 선언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는 거짓을 말한다. 세상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은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본 것을 기억하여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은 것을 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나머지는 어리석고 허망한 말인데도, 도리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말하니,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 무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외도들이 어떤 이는 '유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무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한다. 아(我)와 세간에 대한 견해는 모두 이 4견에 빠져 있어서 이 4견을 벗어날 수 없지만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이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고 받아들임도 집착도 없이 부처는 잘 해탈하였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넷째는 유변(有邊)도 아니고 무변(無邊)도 아니라는 것으로, 즉 셋째 것을 부정하여 넷째 것으로 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나와 세간은 모두 변(邊)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고 무변(無邊)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모두 진실로 존재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는 세간이 가로로는 무변(無邊)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와 세간은 모두 유변(有邊)이 아니라고 집착하고, 그는 세간이 세로로는 유변(有邊)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와 세간은 모두 무변(無邊)이 아니라고 집착한다. 비록 결정적인 것은 없지만 나와 세간은 실로 존재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는 아(我)의 본체가 혹은 펴지기도 하고 혹은 오므라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집착한다. 펴지면 무변(無邊)이기 때문에 유변(有邊)이 아니라고 말하고, 오므라지면 유변(有邊)이기 때문에 무변(無邊)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한다.
문: 이와 같은 네 가지는 이미 현재를 반연하는데, 어째서 전제분별(前際分別)이라고 말하는가?
답: 그것은 미래를 기다려서 역시 전제(前際)라고 이름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 네 가지는 성겁(成劫)과 괴겁(壞劫)을 기억함으로써 건립되기 때문에 모두 전제분별(前際分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첫째 논은 과거 성겁(成劫)의 시기에 나와 세간이 세로로는 한계[分限]가 있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곧 유변(有邊)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만일 둘째 논은 과거 성겁(成劫)의 시기에 나와 세간이 가로로는 한계[分限]가 없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곧 무변(無邊)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만일 셋째 논은 과거 성겁(成劫)의 시기에 나와 세간이 세로로는 한계[分限]가 있고 가로로는 한계[分限]가 없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유변(有邊)이기도 하고 무변(無邊)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만일 넷째 논은 과거 괴겁(壞劫)의 시기에 나와 세간은 비록 한계[分量]의 넓고 좁음을 얻을 수 없지만, 이것은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유변(有邊)도 아니고 무변(無邊)도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유변(有邊)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은 곧 단견(斷見)이고, 무변(無邊)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은 곧 상견(常見)이며, 유변(有邊)이기도 하고 무변(無邊)이기도 하다고 집착하는 것은 곧 일분(一分)은 단견(斷見)이고 일분(一分)은 상견(常見)이며, 유변(有邊)도 아니고 무변(無邊)도 아니라고 집착하는 것은 곧 유가야견(薩迦耶見)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종류의 전제(前際)에서 분별하는 유변(有邊) 등의 논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네 가지 일[四事]에서 많이 일어난다.
2. 4. 종종론 (種種論)
선악에 과보가 있는가, 다른 세상 즉 내세 혹은 열반이 있는가, 어떤 것이 선이고 불선인가를 포함한 일체법에 대한 갖가지 질문에 대해 아는 바대로 정직하게 곧바로 답하지 않고,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혹은 이런 의도는 없으나 무지하여서 여러 가지 상황적인 대답을 나열하여 얼버무리는 것으로써 질문에 대한 답을 삼는 것을 말한다.종종론은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이라고도 한다. 《대비바사론》 제199권과 《유가사지론》 제87권에 따르면, 종종론자들은 불사천(不死天),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天, deva], 즉 최고신을 귀히 여기고 섬기며 사후에 이 신의 거주처로서의 불사천(즉, 말하자면, 천국 또는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의 교의 중에 '누군가가, 특히, 이치에 밝은 사람이 불사천에 대해 질문할 때, 답을 잘하면 그것이 좋은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불사천에 태어나고, 반대로 거짓을 답하거나 답을 잘하지 못하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 불사천에 태어나지 못한다'는 교의가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의는 바른 원인이 아닌 것을 청정하고 뛰어난 원인으로 삼는 것이므로 계금취에 해당하는데, 이들 외도에게는 답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회피하는 답 혹은 얼버무리는 답을 한다는 것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는 고타마 붓다가 다음과 같은 문맥상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 진술은 외도가 가진 '불사천 교의'를 가리킨 것이다: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며, 그 말이 틀림이 없는가 자세히 관찰하며, 그의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이의 소견을 버렸더라도(즉, 경험적 선정력은 없지만 아주 밝은 추론적 지식이 있을 때),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 이를 깨우쳐 주어 보내지 못하면, 그 외도(즉, 질문을 받은 사문과 바라문)는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즉, 이러한 계금취가 종종론의) 첫 번째 견해(가 있게 된 이유)이다."
종종론자의 논리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아함경》 〈범동경〉에서는 다른 세상이 있는가 즉 열반 또는 피안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종종론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 "나는 다른 세상이 있는지 다른 세상이 없는지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만일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곧 거짓말이 된다. 나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니 이것으로써 귀의할 데를 삼고 섬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를 삼자. 그가 만일 물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리라.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이 일은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비바사론》과 《유가사지론》의 위의 '불사천 교의'에 의거하여 위의 종종론자의 논리를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 "나는 (그들이 말하는) 열반이 있는지 열반이 없는지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따라서 만일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곧 거짓말이 된다. (나는 불사천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나는 사후에 불사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불사천에 태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귀의할 데를 삼고 섬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를 삼아 만일 누군가가, 특히 이치에 밝은 사람이 물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리라: '어떤 점을 근거로 하다면 열반은 있다. 어떤 점을 근거로 하다면 열반은 사실이다. 어떤 점을 근거로 하다면 열반은 없다. 어떤 점을 근거로 하다면 열반은 없지 않다. 어떤 점을 근거로 하다면 열반은 없는 것도 아니요 없지 않은 것도 아니다.'"
〈범동경〉에 따르면, 종종론에는 다음과 같은 종종론 초견
# 종종론 초견은 선악에 과보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혜가 부족하여 그 답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 종종론 제2견은 다른 세상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천안지(天眼智)와 타심지(他心智)를 성취한 상태가 아니어서 그 답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 종종론 제3견은 어떤 것이 선(善)이고 어떤 것이 불선(不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직은 그 답을 알고 있지 못하고 다만 현재는 번뇌를 없애기 위해 수행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역시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 종종론 제4견은 어떤 사람이 묻는 질문에 대해, 어둡고 미련하여 그 답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이 4가지 견해는 모두가 선정 즉 수혜(修慧)를 통한 경험에 근거한 견해가 아니라 문혜(聞慧) · 사혜(思慧)를 통한 추론에 근거한 견해이다.
종종론은 '''궤변론'''(詭辯論) 또는 '''이문이답'''(異問異答)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궤변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7]
- 도리에 맞지 않는 변론. 도리가 아닌 말을 '''도리에 맞는 것처럼 억지로 공교롭게 꾸며대는''' 말
-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의 사고의 혼란ㆍ불확정 및 감정의 격앙을 이용하여 '''참이 아닌 것을 참인 것처럼 꾸며대는''' 논법
- 옳은 전제(前提)에서 누가 보든지 '''이상하게 생각할 결론을 유도'''해서 쉽사리 반박하기 어렵게 하는 논법
《유가사지론》 제87권에서는 종종론을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이라 부르고 있다. 누군가가 불사천에 대해 물으면,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한편으로는 왜곡[諂曲]된 마음이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서, 한편으로는 어리석어서, 이러한 갖가지 이유들로 인해 물음에 곧바로 명확히 답하지 않거나 못하고 갖가지로 교란되게 답하기 때문에, 종종론을 불사교란론이라고 한다.
| 범동경 | 대승의장 | 브라흐마잘라 숫따 | 불설범망육십이견경 | 대비바사론 | |
|---|---|---|---|---|---|
| 종종론 초견 | 선악과보: 대답 못하면 부끄럽고 두려워서 | 선악과보: 대답 못하면 부끄럽고 두려워서 | 선과 불선: 거짓말이 두려워서 | 후세의 유무: 문답 계금취로 인해 | 선 · 불선 · 4성제: 거짓말이 두려워서 |
| 종종론 제2견 | 다른 세상의 유무: 거짓말이 두려워서 | 다른 세상의 유무: 거짓말이 두려워서 | 선과 불선: 집착이 두려워서 | 선악과보: 반대심문이 두려워서 | 선 · 불선 · 4성제: 사견이 두려워서 |
| 종종론 제3견 | 선과 불선: 번뇌가 두려워서 | 선과 불선: 생을 받음이 두려워서 | 선과 불선: 반대심문이 두려워서 | 선악, 행(行) · 불행(不行), 악도 · 선도, 현세와 후세의 보배, 고락: 문답 계금취로 인해 | 선 · 불선 · 4성제: 무지가 두려워서 |
| 종종론 제4견 | 일체법: 어리석음으로 인해 | 일체법: 어리석음으로 인해 | 피안, 화생, 선악과보, 여래의 사후 존재: 어리석음으로 인해 | 일체법: 어리석음으로 인해 | 일체법: 어리석음으로 인해 |
2. 4. 1. 종종론 초견
어떤 사문 바라문은 선악에 과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널리 배우고 지혜로운 다른 사문 바라문이 깊은 뜻을 물으면 대답할 수 없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질문을 받으면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와 같이 얼버무리는 대답을 한다. 이러한 견해는 4견(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대승의장》에서는 이를 두고, 지혜로운 사람이 물으면 대답할 수 없어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얼버무린다고 설명한다.
붓다보디(Bhikkhu Bodhi)의 영역본에서는,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 무엇이 유익하고 유익하지 않은지 알지 못하여 거짓말을 할까 두려워 얼버무린다고 설명한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후세(後世)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척하는 외도들은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죽어서 나쁜 곳에 떨어진다고 한다. 반면, 질문자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외도 역시 나쁜 곳에 떨어진다고 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어떤 외도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진리에 대해 물으면 거짓말로 답하여 천상에 태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모든 천상에 대한 비밀스러운 의미를 다 말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2. 4. 2. 종종론 제2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주장하고 견해를 가진다. "나는 다른 세상이 있는지, 다른 세상이 없는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세간의 여러 사문 바라문은 천안지(天眼智)와 타심지(他心智)로써 능히 먼 일을 본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능히 다른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만일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곧 거짓말이 된다. 나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니 이것으로써 귀의할 데를 삼고 섬을 삼고 집을 삼고 구경도를 삼자.":299:300그들은 만약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299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299
어떤 외도는 '''선악의 재앙과 복'''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선악의 재앙과 복이 있다고 말하면 집착하게 되고, 없다고 말하면 집착을 벗어난 것이 되며,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도리어 받아들인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명성이 높아, 다른 견해를 버리고 와서 자세히 묻는데 깨우쳐 보낼 수 없으면, 그 외도는 '''와서 물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한다'''.:301
어떤 이들은 자신이 '''선'''과 '''불선''', 그리고 '''4성제'''(四聖諦)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러한 뜻을 묻는다면, 그 질문을 부정하면 삿된 견해(邪見)가 되고, 삿된 견해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302
2. 4. 3. 종종론 제3견
어떤 수행자들은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불선(不善)인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선과 불선을 말하면 애착과 증오가 생기고, 이로 인해 수(受)가 생기므로, 수를 없애기 위해 출가 수행한다고 한다. 그들은 수를 두려워하여, 선도 불선도 아닌 것에 귀의한다. 《대승의장》에서는 이를 '수(受)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라 표현한다.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팔리어 경전의 영역본에서는, 어떤 수행자는 무엇이 유익하고 유익하지 않은지 알지 못하며, 논쟁에서 질문받고 반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어떤 것도 유익하거나 유익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린다고 설명한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어떤 외도(불교 이외의 수행자)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을 행해야 하고 행하지 않아야 하는지, 무엇이 악도(惡道)이고 선도(善道)인지, 무엇이 현세와 후세의 보배인지, 무엇을 행해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질문을 받으면 가르침을 줄 수 없어 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고, 질문에 따라 다르게 답한다고 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어떤 수행자는 선과 불선, 그리고 사성제를 알지 못하고, 다른 수행자가 질문하면 답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얼버무린다고 말한다.
2. 4. 4. 종종론 제4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어리석고 어둡고 미련하여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말을 따라 이렇게 대답한다.'이 일은 이러하다. 이 일은 사실이다. 이 일은 다르다. 이 일은 다르지 않다. 이 일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제4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다른 질문, 다른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외도는 뜻과 생각이 어리석어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고 그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이러한 가르침을 내린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이 4견 중에 빠져 있어 이 4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따르면, 4견은 "나는 성품이 어둡고 열등하여 교란스러운 말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결같이 집착하는 것은 묘하고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한, "나는 성품이 어리석어 만약 다른 사람을 거스르면 그들이 나를 따돌릴까 두렵다"고 생각하여, 불사에 대한 물음에 교란스러운 말로 답하게 된다. 이 4가지는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원인으로 삼는 것이므로 계금취견에 해당하며, 현재의 일에서 비롯되지만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전제분별에 해당한다. 혹은, 이 4가지는 모두 이전에 들었던 가르침, 즉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불사의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므로 전제분별견에 해당한다. 이 4가지 전제분별은 거짓말, 삿된 견해, 무지, 어리석고 둔함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2. 5. 무인이유론 (無因而有論)
무인이유론(無因而有論) 또는 무인론(無因論)에서 '무인이유론'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는 견해 또는 이론'으로, 나와 우주가 원인 없이, 즉, 우연히, 즉,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견해이다.무인이유론에는 무인이유론 초견제2견의 총 2가지 견해가 있다.
# 무인이유론 초견은 색계의 무상천(無想天)에서 살던 유정이 죽어서 욕계에 태어난 후에, 욕계에서의 수행을 통해 성취한 제한된 선정력으로, 즉, 부처의 선정력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열반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즉, 일체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선정력으로 자신의 무상천에서의 전생을 관찰하고 그 경험에 바탕하여 '세간이 즉 욕계가 원인 없이 생겨났다', 즉, '무(무상천)에서 유(욕계)가 생겼다', 즉, '만물은 원인 없이 생겨난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무인이유론 제2견은 선정력을 통한 경험 없이 자신이 살고 있고 세계, 즉, 욕계만을 관찰한 후 오로지 그 제한된 지각과 추론을 통해 '만물은 원인 없이 생겨난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 중에서 초견은 선정 즉 수혜(修慧)를 통한 경험에 근거한 견해이고, 제2견은 문혜(聞慧) · 사혜(思慧)를 통한 추론에 근거한 견해이다.
무인이유론은 '''무인견론'''(無因見論) 또는 '''무인유론'''(無因有論)이라고도 한다. 《유가사지론》 제87권에서는 무인이유론을 '''무인론'''(無因論)이라 부르고 있다.
2. 5. 1. 무인이유론 초견
어떤 중생(무상천의 중생)은 생각도 없고 앎도 없다. 만일 그 중생이 생각을 일으키면 곧 목숨을 마치고 이 세간에 태어난다. 그가 점점 자라나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다. 그는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으로써 본래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기억하고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본래 없었는데 이제 갑자기 생겨났다. 이 세간은 본래 없었는데 이제 있게 되었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초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원인 없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름이 무상입(無想入)인 하늘이 있는데, 그곳은 사상(思想:想)도 없고, 통양도 없다. 그 곳의 천인이 만일 사상을 내면 복록과 복덕이 곧 엷어지고 없어져서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난다.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정의(定意:선정)를 닦으면 뜻이 곧 법에 여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삼매는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할 수 없어서 그 사람이 곧,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 나는 옛날에는 없다가 지금 저절로 태어났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는 2가지 무인생론(無因生論) 가운데 하나로,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에서 죽은 뒤 이 세상에 태어난 자가 숙주수념통(宿住隨念通)을 얻어 무상천에서 벗어나는 마음과 그 이후의 여러 단계는 기억하지만, 그 이전의 단계는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그때 본래 없었는데 이제 일어났다. 모든 법도 나와 같이 본래 없다가 생긴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2. 5. 2. 무인이유론 제2견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민첩한 지혜로 능히 잘 관찰한다. 그는 민첩하게 관찰하는 지혜로써 관찰하고는 자기의 지혜와 말재주로써 이렇게 말한다.'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제2견이다. 여러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이 세간은 원인 없이 생겼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2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아함경》 제14권 〈21. 범동경(梵動經)〉에서는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둘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뜻과 생각이 어리석으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한다.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구나. 나도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구나. 왜냐하면 나는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 세간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그 외도가 '나는 본래 태어나게 된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나게 된 곳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이니, 이것으로 인한 견해로 '본래 세간이 없고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모두 이 2견에 빠진 것이다. 이 2견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99권에서는 이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sūक्ष्मयाsan dṛṣṭyāsan parīkṣamāṇosan yuktavāksan pratyāhasan
"ihasan lokasyāhetutosan 'stitāsan satyamsan idamsan śeṣaṃsan mṛṣāsan."
itisan dvitīyaṃsan darśanamsan idamsan sarvesan śramaṇabrāhmaṇāsan etenasan pūrvāntakalpadṛṣṭausan lokasyāhetutosan 'stitāṃsan vadantisan dviṃśatividheṣusan darśaneṣusan nasan atikrāntāḥsan bhavantisan.
"여기서 세간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 이것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이것에 의해 전겁견에서 세간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스무 가지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tatrasa kecitsa śramaṇabrāhmaṇāḥsa tīkṣṇayāsa prajñayāsa samanvāgatāḥsa bhavantisa tīkṣṇaprajñāsa casa samanvāgatāḥsa santosa 'nuprekṣantesa svenasa prajñābalenasa casa pratyākhyāyantesa
"ihasa lokosa 'hetukaḥsa astisa satyamsa idamsa śeṣaṃsa mṛṣāsa"
itisa dvitīyaṃsa darśanamsa idamsa sarvesa śramaṇabrāhmaṇāḥsa anenasa pūrvāntakalpadṛṣṭausa lokasyāhetutosa 'stitāṃsa vadantisa dviṃśatividheṣusa darśaneṣusa nasa atikrāntāḥsa bhavantisa.
"여기서 세상은 원인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며, 나머지는 거짓이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이것에 의해 전겁견에서 세간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스무 가지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Idhapi bhikkhavepi ekaccopi samaṇopi vāpi brāhmaṇopi vāpi takkipi hotipi vīmaṃsīpi sopi takkipi vīmaṃsānucaritaṃpi sayapaṭibhānaṃpi āhapi
"Ahetupi appaccayāpi sattānaṃpi saṃsāropi hotipi."
Idampi bhikkhavepi dutiyaṃpi ṭhānaṃpi.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사색가이고, 조사자이다. 그는 사색하고, 조사하고, 자신의 통찰에 따라 선언한다.
"원인과 조건 없이 중생의 윤회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다."
참조
[1]
논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2]
간행물
"「梵網經」의 62見과 無記의 관계 연구"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3]
백과사전
영혼불멸설
https://terms.naver.[...]
2017-09-16
[4]
저널
Plato and The Wisdom of Egypt
http://poiesis.nlx.c[...]
Dept. of Scholastic Philosophy, Queen's University of Belfast
2007-12-03
[5]
성경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http://info.catholic[...]
천주교
2017-09-16
[6]
웹사이트
Brahmajāla Sutta: The All-embracing Net of Views
http://www.accesstoi[...]
Access to Insight (Legacy Edition)
2017-09-19
[7]
사전
詭辯
http://hanja.naver.c[...]
네이버 한자사전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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