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페르보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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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휘페르보레아는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언급되는, 북쪽에 위치한 전설적인 땅 또는 민족을 가리킨다. 헤로도토스는 이 지역에 대한 초기 기록을 남겼으며, 다른 고대 작가들도 휘페르보레아를 언급하거나 묘사했다. 휘페르보레아의 위치는 작가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었으며, 북동아시아, 리파이 산맥 너머, 브리튼 섬 등 다양한 위치로 추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휘페르보레아인들은 행복하고 장수하며, 아폴론 신을 숭배했다. 근현대에는 신지학, 비밀주의, 북유럽 민족과의 연관성을 통해 재해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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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페르보레아 | |
---|---|
지리적 위치 | |
기본 정보 | |
이름 (그리스어) | ὑπερβόρε(ι)οι (휘페르보레오이) |
이름 (라틴어) | Hyperborei (히페르보레이) |
어원 | 그리스어 "ὑπέρ Βορέᾱ" (휘페르 보레아, '보레아스 너머') 또는 "ὑπερφέρω" (휘페르페로, '넘어 나르다') |
다른 이름 (그리스어) | Ὑπερβορέα (휘페르보레아) |
다른 이름 (라틴어) | Hyperborea (히페르보레아) |
다른 이름 (그리스어 복수) | Ὑπερβόρεοι (휘페르보레오이) |
다른 이름 (라틴어 복수) | Hyperborei (히페르보레이) |
신화적 특징 | |
위치 | '보레아스(북풍)'의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너머의 땅, 스키티아 북쪽, 트라키아 북쪽, 리페이오스 산맥 너머 |
거주민 | 휘페르보레오이족 |
특징 | 태양신 아폴론이 겨울을 나는 곳 영원한 봄 풍요와 평화 장수와 행복 |
관련 인물 | 아폴론 아바리스 아리스타에아스 헤카테 |
종교 | 아폴론 숭배 |
전승 | 휘페르보레아에서 델로스로 아폴론 신에게 제물을 보냄 휘페르보레오이족은 신과 가까운 존재로 여겨짐 |
기타 특징 | 슬픔, 질병, 전쟁이 없고 장수하는 이상향 |
역사적 해석 | |
위치 비정 시도 | 스키티아 켈트족 거주지 발트 해 연안 시베리아 북극 영국 스칸디나비아 |
관련 학자 | 헤로도토스 폼포니우스 멜라 플리니우스 프톨레마이오스 |
2. 초기 문헌
헤로도토스의 《역사》(기원전 450년경)는 현존하는 자료 중 휘페르보레아에 대해 가장 먼저 상세히 언급했다.[1] 헤로도토스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휘페르보레아를 언급했다고 기록했는데, 특히 호메로스는 유실된 저서 《에피고노이》에서 이 주제를 다뤘다고 한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호메로스가 실제로 이 서사시를 썼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1]
헤로도토스는 또한 기원전 7세기의 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쓴, 현재는 유실된 시 《아리마스페아》를 언급하며, 이 시에서 아리스테아스가 카자흐 스텝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세도네스로의 여행에 대해 썼다고 기록했다.[1] 아리스테아스에 따르면, 이세도네스 너머에는 외눈박이 아리마스피족, 그 너머에는 금을 지키는 그리폰, 그리고 더 너머에는 휘페르보레아가 있었다.[1] 헤로도토스는 휘페르보레아가 북동아시아 어딘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1]
헤로도토스와 동시대 인물인 테베 출신의 서정 시인 핀다로스는 열 번째 퓌티아 송가에서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묘사하고 페르세우스가 그들에게 간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1] 케오스의 시모니데스와 레스보스의 헬라니코스 같은 다른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작가들도 휘페르보레아인들을 언급했다.[1]
2. 1. 헤로도토스
헤로도토스의 《역사》(4권 32~36장)는 현존하는 자료 중 휘페르보레아에 대해 가장 먼저 상세히 언급한 자료로, 대략 기원전 450년경에 작성되었다. 헤로도토스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포함하여 휘페르보레아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이전 자료를 기록했는데, 호메로스는 유실된 저서 《에피고노이》에서 휘페르보레아에 대해 썼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호메로스가 이 서사시를 썼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헤로도토스는 기원전 7세기의 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아리마스페아》라는 시(현재는 유실됨)에서 이세도네스로의 여행에 대해 썼으며, 이세도네스는 카자흐 스텝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했다. 이세도네스 너머에는 외눈박이 아리마스피족이, 그 너머에는 금을 지키는 그리폰이, 그리고 그 너머에는 휘페르보레아가 살고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휘페르보레아가 북동아시아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추정했다.
핀다로스, 테베 출신의 서정 시인이자 헤로도토스와 동시대 인물인 그는 열 번째 퓌티아 송가에서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묘사하고 페르세우스가 그들에게 간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케오스의 시모니데스와 레스보스의 헬라니코스와 같은 다른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작가들도 그들의 저서에서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묘사하거나 언급했다.
2. 2. 기타 문헌
현존하는 자료 중 휘페르보레아에 대해 가장 먼저 상세히 언급한 자료는 헤로도토스의 《역사》(4권 32~36장)로, 대략 기원전 450년경에 작성되었다. 헤로도토스는 휘페르보레아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이전 자료를 기록했는데, 여기에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호메로스는 유실된 저서 《에피고노이》에서 휘페르보레아에 대해 썼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호메로스가 이 서사시를 썼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헤로도토스는 기원전 7세기의 시인 아리스테아스가 《아리마스페아》라는 시(현재는 유실됨)에서 이세도네스로의 여행에 대해 썼으며, 이세도네스는 카자흐 스텝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했다. 이세도네스 너머에는 외눈박이 아리마스피족이, 그 너머에는 금을 지키는 그리폰이, 그리고 그 너머에는 휘페르보레아가 살고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휘페르보레아가 북동아시아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추정했다.
핀다로스, 테베 출신의 서정 시인이자 헤로도토스와 동시대 인물인 그는 열 번째 퓌티아 송가에서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묘사하고 페르세우스가 그들에게 간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케오스의 시모니데스와 레스보스의 헬라니코스와 같은 다른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작가들도 그들의 저서에서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묘사하거나 언급했다.
3. 위치
휘페르보레아는 눈 덮인 리파이 산맥 너머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파우사니아스는 이곳을 "보레아스의 고향 너머에 사는 사람들, 즉 휘페르보레아인의 땅"이라고 묘사했다.[8] 호메로스는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고, 따라서 휘페르보레아는 그의 견해로는 트라키아 북쪽, 즉 다키아에 있었다.[9]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시모니데스, 칼리마코스 역시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다른 고대 작가들은 보레아스의 고향이나 리파이 산맥의 위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졌다.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오스는 리파이 산맥이 흑해와 인접해 있다고 믿었으며,[9] 핀다로스는 보레아스의 고향, 리파이 산맥, 그리고 휘페르보레아 모두 다뉴브강 근처에 있다고 보았다.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와 안티마쿠스는 리파이 산맥을 알프스 산맥과 동일시하고, 휘페르보레아인들을 알프스 산맥 바로 너머에 살았던 켈트족 (아마도 헬베티족)으로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파이 산맥을 스키타이의 경계에 위치시켰고, 휘페르보레아는 그보다 더 북쪽에 있다고 보았다.[10] 압데라의 헤카타이오스를 비롯한 사람들은 휘페르보레아가 브리튼이라고 믿었다.
후기 로마와 그리스 자료들은 리파이 산맥, 보레아스의 고향,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휘페르보레아의 위치를 계속해서 변경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자료들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 북쪽 또는 남유럽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 로도스의 심미아스는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마사게타이와 연결시켰고,[11] 포세이도니우스는 서부 켈트족과 연결시켰지만, 폼포니우스 멜라는 그들을 북극 인근 지역에 더 북쪽에 위치시켰다.
스트라보가 제시한 기준점과 설명을 기반으로 한 지도에서[12] 휘페르보레아는 반도 또는 섬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며, 현재의 프랑스 너머에 위치하고 동서 방향보다 남북 방향으로 더 길게 뻗어 있다.[13] 다른 설명에서는 우랄 산맥 일반 지역에 위치한다고 보았다.
3. 1. 리파이 산맥
휘페르보레아인들은 눈 덮인 리파이 산맥 너머에 사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파우사니아스는 그 위치를 "보레아스의 고향 너머에 사는 사람들, 즉 휘페르보레아인의 땅"으로 묘사했다.[8] 호메로스는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고, 따라서 휘페르보레아는 그의 견해로는 트라키아 북쪽, 즉 다키아에 있었다.[9]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980–987), 아이스킬로스 (''아가멤논'', 193; 651), 시모니데스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 주석, 1. 121) 및 칼리마코스 (''델로스'', [IV] 65) 역시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다.다른 고대 작가들은 보레아스의 고향 또는 리파이 산맥이 다른 위치에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오스는 리파이 산맥이 흑해와 인접해 있다고 믿었다.[9] 핀다로스는 보레아스의 고향, 리파이 산맥, 그리고 휘페르보레아를 모두 다뉴브강 근처에 위치시켰다.
반면에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와 안티마쿠스는 리파이 산맥을 알프스 산맥과 동일시했으며, 휘페르보레아인들을 알프스 산맥 바로 너머에 살았던 켈트족 (아마도 헬베티족)으로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파이 산맥을 스키타이의 경계에 위치시켰고, 휘페르보레아는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시켰다.[10] 압데라의 헤카타이오스와 다른 사람들은 휘페르보레아가 브리튼이라고 믿었다.
후기 로마와 그리스 자료들은 리파이 산맥, 보레아스의 고향,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휘페르보레아의 위치를 계속해서 변경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자료들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 북쪽 또는 남유럽에 위치한다는 데 동의했다. 기원전 3세기의 고대 문법학자 로도스의 심미아스는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마사게타이와 연결시켰고,[11] 기원전 1세기의 포세이도니우스는 서부 켈트족과 연결시켰지만, 폼포니우스 멜라는 그들을 북극 인근 지역에 더 북쪽에 위치시켰다.
스트라보가 제시한 기준점과 설명을 기반으로 한 지도에서[12] 휘페르보레아는 반도 또는 섬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며, 현재의 프랑스 너머에 위치하고 동서 방향보다 남북 방향으로 더 길게 뻗어 있다.[13] 다른 설명에서는 우랄 산맥 일반 지역에 위치한다.
3. 2. 다양한 위치 비정
휘페르보레아인들은 눈 덮인 리파이 산맥 너머에 사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파우사니아스는 그 위치를 "보레아스의 고향 너머에 사는 사람들, 즉 휘페르보레아인의 땅"으로 묘사했다.[8] 호메로스는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고, 따라서 휘페르보레아는 그의 견해로는 트라키아 북쪽, 즉 다키아에 있었다.[9]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시모니데스, 칼리마코스 역시 보레아스를 트라키아에 위치시켰다.다른 고대 작가들은 보레아스의 고향 또는 리파이 산맥이 다른 위치에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오스는 리파이 산맥이 흑해와 인접해 있다고 믿었다.[9] 핀다로스는 보레아스의 고향, 리파이 산맥, 그리고 휘페르보레아를 모두 다뉴브강 근처에 위치시켰다.
반면에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와 안티마쿠스는 리파이 산맥을 알프스 산맥과 동일시했으며, 휘페르보레아인들을 알프스 산맥 바로 너머에 살았던 켈트족 (아마도 헬베티족)으로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파이 산맥을 스키타이의 경계에 위치시켰고, 휘페르보레아는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시켰다.[10] 압데라의 헤카타이오스와 다른 사람들은 휘페르보레아가 브리튼이라고 믿었다.
후기 로마와 그리스 자료들은 리파이 산맥, 보레아스의 고향,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휘페르보레아의 위치를 계속해서 변경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자료들은 이 모든 것이 그리스 북쪽 또는 남유럽에 위치한다는 데 동의했다. 기원전 3세기의 고대 문법학자 로도스의 심미아스는 휘페르보레아인들을 마사게타이와 연결시켰고[11], 기원전 1세기의 포세이도니우스는 서부 켈트족과 연결시켰지만, 폼포니우스 멜라는 그들을 북극 인근 지역에 더 북쪽에 위치시켰다.
스트라보가 제시한 기준점과 설명을 기반으로 한 지도에서[12] 휘페르보레아는 반도 또는 섬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며, 현재의 프랑스 너머에 위치하고 동서 방향보다 남북 방향으로 더 길게 뻗어 있다.[13] 다른 설명에서는 우랄 산맥 일반 지역에 위치한다.
3. 3. 브리튼 섬 비정
기원전 4세기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는 휘페르보레아를 브리튼과 동일시하였는데, 디오도로스 시쿨루스가 보존한 단편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켈트족의 땅 너머 지역에는 시칠리아보다 작지 않은 섬이 바다에 놓여 있다. 이 섬은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그들의 고향이 북풍(보레아스)이 부는 지점 너머에 있어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 휘페르보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섬은 비옥하고 모든 작물을 생산하며, 기후가 유난히 온화하다.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는 또한 휘페르보레아인들이 그들의 섬에 "아폴론의 웅장한 신성 구역과 많은 봉헌물로 장식되고 둥근 모양의 주목할 만한 신전"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신전을 스톤헨지와 동일시했다.[17] 그러나 디오도로스는 휘페르보레아를 브리튼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브리튼에 대한 그의 묘사(5.21–23)에는 휘페르보레아인이나 그들의 둥근 신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의사-스키무스는 기원전 90년경에 보레아스가 갈리아 영토의 끝에 살았으며, 바닷가에 그의 이름을 딴 기둥을 세웠다고 기록했다(''페리에게시스'', 183).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프랑스 북부에 대한 지리적 언급이며, 휘페르보레아가 영국 해협 바로 너머에 있는 영국 제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18]
프톨레마이오스(''지리학'', 2. 21)와 헤라클레아의 마르키아누스(''페리플루스'', 2. 42)는 둘 다 휘페르보레아를 "휘페르보레아 해"라고 불리는 북해에 위치시켰다.
존 톨란드는 드루이드에 관한 1726년 저서에서 디오도로스의 휘페르보레아를 루이스 섬과, 둥근 신전을 캘라니시 스톤과 구체적으로 동일시했다.[19]
4. 전설
툴레와 더불어, 휘페르보레아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여러 미지의 땅|테라 인코그니타la 중 하나였다. 플리니우스, 핀다르, 헤로도토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는 그곳 사람들이 천 년 동안 살면서 완전한 행복을 누렸다고 전했다.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는 기원전 4세기에 유행했던 휘페르보레아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집하여 그들에 대한 길고 지금은 유실된 논문을 출판했는데, 이 논문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ii.47.1–2)에 의해 언급되었다.[20] 전설에 따르면 휘페르보레아에서는 태양이 일 년에 한 번만 뜨고 졌다고 하는데, 이는 휘페르보레아가 북극권 위 또는 그 위에 있거나, 더 일반적으로는 북극 극지방에 위치했음을 의미한다.
테세우스는 휘페르보레아를 방문했고, 핀다르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와 만나는 장면을 전통적인 리비아에서 휘페르보레아로 옮겼다.[21]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는 아르고호의 영웅들이 에리다노스를 항해할 때 휘페르보레아를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4. 1. 이상향
툴레와 더불어, 휘페르보레아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여러 미지의 땅|테라 인코그니타la 중 하나였다. 플리니우스, 핀다르, 헤로도토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는 그곳 사람들이 천 년 동안 살면서 완전한 행복을 누렸다고 전했다.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는 기원전 4세기에 유행했던 휘페르보레아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수집하여 그들에 대한 길고 지금은 유실된 논문을 출판했는데, 이 논문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ii.47.1–2)에 의해 언급되었다.[20] 전설에 따르면 휘페르보레아에서는 태양이 일 년에 한 번만 뜨고 졌다고 하는데, 이는 휘페르보레아가 북극권 위 또는 그 위에 있거나, 더 일반적으로는 북극 극지방에 위치했음을 의미한다.고대 그리스 작가 테오폼포스는 그의 저서 《필리피카》에서 휘페르보레아가 한때 다른 섬에서 온 거대한 군인 종족에 의해 정복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로피스 출신 군인들이 휘페르보레아인들이 너무 강하고 축복받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이 계획은 결국 포기되었다. 어떤 이들은 풍자 또는 코미디라고 믿는 이 특이한 이야기는 아일리안에 의해 보존되었다. (''바리아 히스토리아'', 3. 18).
테세우스는 휘페르보레아를 방문했고 핀다르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와 만나는 장면을 전통적인 리비아에서 휘페르보레아로 옮겼는데, 이는 그의 알렉산드리아 편집자들을 불만족스럽게 했다.[21]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는 아르고호의 영웅들이 에리다노스를 항해할 때 휘페르보레아를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4. 2. 메로피스 군대의 침공
고대 그리스 작가 테오폼포스는 그의 저서 《필리피카》에서 휘페르보레아가 한때 다른 섬에서 온 거대한 군인 종족에 의해 정복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로피스 출신 군인들이 휘페르보레아인들이 너무 강하고 축복받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이 계획은 결국 포기되었다. 어떤 이들은 풍자 또는 코미디라고 믿는 이 특이한 이야기는 아일리안에 의해 보존되었다. (''바리아 히스토리아'', 3. 18).[20]4. 3. 델로스와의 관계
헤로도토스는 휘페르보레아인들이 짚으로 포장된 헌물을 스키티아로 보냈고, 이 헌물이 부족에서 부족으로 전달되어 도도나를 거쳐 델로스의 아폴론 신전에 도착했다고 기록했다.[23] 헤로도토스는 처음에 휘페로케와 라오디케라는 두 처녀가 다섯 명의 호위병과 함께 선물을 가져왔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자, 휘페르보레아인들이 선물을 국경까지 가져와 이웃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23]헤로도토스는 또한 아르게와 오피스라는 두 처녀가 휘페르보레아에서 델로스로 와서 출산을 돕는 여신 일리티아에게 공물을 바쳤으며, 신들이 직접 동행했다고 덧붙였다. 이 처녀들은 델로스에서 영예를 받았고, 델로스 여성들은 그들에게서 선물을 받고 찬송가를 불렀다.[23]
4. 4. 치료자 아바리스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작에서 "아바리스" 또는 "치료자 아바리스"로 알려진 특정 휘페르보레아의 전설적인 치료사를 처음 묘사했다.[5] 플라톤은 (''Charmides'', 158C) 아바리스를 극북의 의사로 여겼고, 스트라보는 아바리스가 초기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처럼 스키타이인이라고 보고했다 (''지리학'', 7. 3. 8).5. 신체적 특징
아일리안의 저술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보레아스와 눈의 님프 키오네(또는 키오네)의 후손인 보레아데스가 휘페르보레아에 최초의 신정 군주국을 세웠다고 한다.[24][25] 디오도로스 시쿨루스는 이 기록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휘페르보레아) 도시의 왕들과 신성한 구역의 감독관은 보레아데스라고 불리는데, 이는 그들이 보레아스의 후손이며, 이 직위로의 계승은 항상 그들의 가문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레아데스는 키가 약 3.05m 정도 되는 거인 왕으로, 휘페르보레아를 통치했다고 여겨졌다. 고전 자료에는 휘페르보레아인에 대한 다른 신체적 묘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3세기의 문법학자 아일리우스 헤로디아누스는 신화적인 아리마스피가 신체적 외모에서 휘페르보레아인과 동일하다고 썼고(''De Prosodia Catholica'', 1. 114) 6세기의 스테파누스 오브 비잔티움도 같은 내용을 썼다(''Ethnica'', 118. 16). 고대 시인 칼리마코스는 아리마스피를 금발로 묘사했지만, 아리마스피가 휘페르보레아인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헤로디아누스에 따르면, 아리마스피는 외모가 휘페르보레아인과 가까웠으므로 휘페르보레아인이 금발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6. 켈트족과의 동일시
콜로폰의 안티마코스, 프로타르코스,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코스, 압데라의 헤카타이오스,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 아파메이아의 포세이도니오스 등 고대 그리스 작가 6명은 켈트족을 북쪽의 하이퍼보레아인과 동일시했다.[27] 그리스인들이 비(非)그리스인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특히 그리스의 식민지화와 무역의 맥락에서 황금 시대의 신화가 동시대의 장면에 이식되는 방식에 의해 크게 형성되었다.[27]
신화 시대의 리페안 산맥이 북부 이탈리아의 알프스와 동일시되면서, 하이퍼보레아인을 알프스 내외에 거주하는 켈트족과, 또는 적어도 하이퍼보레아 땅을 켈트족이 거주하는 땅과 동일시할 만한 지리적 근거가 있었다. 잔치에 대한 명성과 금에 대한 사랑이 이러한 연결을 강화했을 수 있다.[27]
7. 근현대의 해석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는 기원전 4세기에 로마를 약탈한 골족과 휘페르보레아를 연결했다(알리아 전투 참조).[14] 아일리언,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와 비잔티움의 스테파누스는 모두 휘페르보레아에 대한 중요한 고대 그리스 자료를 기록했지만 새로운 묘사는 추가하지 않았다. 2세기 스토아 철학자 히에로클레스는 휘페르보레아인을 스키타이인과 동일시했으며, 리페안 산맥을 우랄 산맥과 동일시했다.[15][1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다른 초기 기독교 작가들 또한 이와 같이 스키타이인과 동일시했다.
북유럽 민족 동일시 외에도 "휘페르보레아"라는 용어는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1824년 테오도어 파노프카, 오토 마그누스 폰 슈타켈베르크, 아우구스트 케스트너, 에두아르트 게르하르트는 로마의 고전 유적을 연구한 북유럽 학자들의 모임인 "휘페르보레아-로마 학회"를 설립했다. 워싱턴 어빙은 애스터 원정대를 태평양 북서부에서 상세히 설명하면서, 영국인이 캐나다의 휘페르보레아 지역에서 모피 무역을 추구하여 북극권 안으로까지 진출했다고 묘사했다.[28] "휘페르보레아"라는 용어는 춥고 추운 기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농담조로 사용되기도 하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자신의 공감하는 독자들을 휘페르보레아인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헤로도토스는 마사게타이와 이세도네스 너머에 휘페르보레아인을 위치시켰는데, 이들은 모두 중앙 아시아 민족이므로, 그의 휘페르보레아인은 시베리아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휘페르보레아에서 아르테미스의 황금 뿔 암사슴을 찾았는데, 순록은 암컷이 뿔을 가진 유일한 사슴 종이므로, 이는 북극 또는 아북극 지역을 암시한다. J. D. P. 볼턴이 이세도네스의 위치를 알타이 산맥의 남서쪽 경사면으로 추정한 후, 칼 P. 룩은 휘페르보레아를 준가리아 문 너머 신장 북부로 위치시키며, 휘페르보레아인이 아마 중국인이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37]
1974년 로베르 샤루는 처음으로 휘페르보레아인과 고대 우주인 종족을 연결시켰다.[38] 미겔 세라노는 샤루의 휘페르보레아 관련 저술에 영향을 받았다.[39] 알렉산드르 두긴은 광대한 러시아 제국에 대한 그의 비전을 옹호하기 위해 "아틀란티스의 수몰된 도시와 신화적인 문명 휘페르보레아에 대한 고대 전설"을 내세웠다. 그는 러시아가 고대 '휘페르보레아인'의 현대적 환생이며, 현대의 '아틀란티스인'인 미국과 대립해야 한다고 믿는다.[40]
7. 1. 북유럽 민족의 동일시
북유럽인(스칸디나비아인)들은 지중해의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접했을 때 자신들을 휘페르보레아인과 동일시했다. 이는 북쪽 너머에 영원히 햇볕이 내리쬐는 땅이라는 전통적인 측면과 일치하는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북쪽 절반은 한여름에 밤이 없는 긴 낮(백야)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17세기 스웨덴에서 특히 강했는데, 고트주의의 후기 대표자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잃어버린 아틀란티스이자 휘페르보레아 땅이라고 선언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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